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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황폐하 만세” 아베, 군국주의 외쳤다

    “천황폐하 만세” 아베, 군국주의 외쳤다

    일본 정부는 연합군 점령 상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61주년인 28일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주권 회복 기념식’을 개최했다. 정부 행사로 열리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기념식에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아베 신조 총리, 중·참의원 의장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오키나와현의 반발 등 논란에도 기념식을 강행한 것은 일본이 이웃 국가들을 침략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선언을 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행사 막바지에 아키히토 일왕이 행사장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한 남성의 선창에 따라 갑자기 양손을 치켜들며 “천황(일왕) 폐하 만세”를 세차례 외쳤다. 만세 삼창에는 총리, 중·참의원 의장 등 단상에 있던 3권 수장과 국회의원들이 가세했으며 일부 참석자들은 당혹해했다. 이 같은 행동은 군국주의 문화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전후 공식 행사에선 거의 사라진 것으로 갈수록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6년 8개월간 지속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점령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오키나와 등 일부 지역은 이후 일본 본토에서 분리돼 계속 미국의 점령하에 놓여 있다가 1972년 5월에야 반환됐다. 이 같은 이유로 오키나와현 주민들은 “4월 28일은 주권을 회복한 날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버림당한 ‘굴욕의 날’”이라며 반발해왔다. 실제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날 정부의 기념식 개최에 항의하는 집회를 오키나와 기노완 시에서 갖고 “이번 기념식은 오키나와 현민들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집회에는 1만여명(주최 측 발표)의 주민들이 참석했다. 주권 회복의 날 행사는 1997년 일본 대표적 우파 원로 학자인 고보리 게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민간 행사로 처음 시작했다. 전범 국가에 부과된 미군정과 이후 전후 체제를 일본이 아무 저항 없이 수용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주권 회복의 날 첫 정부 행사 승격은 개헌을 위한 포석”이라고 전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정부가 26일 개성공단 우리 측 체류 인원의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전날 우리 측이 제의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제의를 북한이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개성공단을 사이에 놓고 남북이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 성명을 통해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개성공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어 국민 보호를 위해 잔류 인원 전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류 장관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우리 국민들에 대한 식자재와 의료 지원 등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조차 허용하지 않고, 우리가 제의한 당국 간 대화까지 거부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우리 국민 175명과 중국인 1명 등 모두 176명이 체류 중이다. 앞서 정부는 북한이 실무회담 제의 거부 의사를 밝힌 직후 오후 3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개성공단에 취할 ‘중대 조치’를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가장 좋은 방법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것이겠지만 무작정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지, 국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면서 “이 문제를 논의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체류 인원의 전원 철수를 결정하면서도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철수’가 아닌 ‘귀환’이란 말을 쓴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최고통치기관인 국방위원회는 26일 오전으로 답변 시한을 못 박고 거부 시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우리 측 제의를 “우리(북한)를 우롱하는 최후통첩”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괴뢰 패당이 계속 사태의 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가 먼저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중대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개성공업지구에 남아 있는 인원들의 생명이 걱정된다면 남측으로 모든 인원을 전원 철수하면 될 것”이라며 “철수와 관련해 제기되는 신변안전보장 대책을 포함한 모든 인도주의적 조치들은 우리의 유관기관들이 책임지고 취해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성명 발표 후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측 근로자 철수를 위한 협의에 착수했으며 27일 오후 2시와 2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27명을 75대의 차량에 태워 1차로 철수시키기로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어벤져스’ 이후 스타크의 고군분투 ‘아이언맨3’

    ‘어벤져스’ 이후 스타크의 고군분투 ‘아이언맨3’

    1963년 코믹북으로 데뷔한 마블의 ‘아이언맨’만큼 영화화에 성공한 캐릭터도 드물다. 2008년 ‘아이언맨’(5억 8517만 달러·약 6548억원)과 2010년 ‘아이언맨2’(6억 2393만 달러·약 6982억원)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마블의 캐릭터를 모은 종합선물세트 ‘어벤져스’는 무려 15억 1175만 달러(약 1조 6916억원)를 벌어들였다. 국내에서도 뜨거웠다. 1·2편은 각각 430만명과 450만명, ‘어벤져스’는 707만명을 불러모았다. 25일 ‘아이언맨3’가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북미보다 1주일 빠르다. 영화는 ‘어벤져스’ 이후부터 시작한다. 영웅의 삶에 회의를 느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수면장애와 정서불안에 시달린다. 그새 최악의 테러리스트 만다린 일당은 스타크의 저택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목숨을 건졌지만, 남은 건 망가진 슈트 한 벌뿐. 테러의 위협에서 세계와 사랑하는 여인 페퍼(기네스 펠트로)를 지켜내기 위한 스타크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UP] 살아있는 3D·액션… 쾌감 충족 철학적 고민 더한 현실적 영웅으로 컴백 할리우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언맨. 명석한 두뇌와 준수한 외모, 위트 넘치는 유머까지 두루 갖춰 큰 사랑을 받아온 스타크(아이언맨)는 시즌3에서 영웅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더해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이전에 오만하리 만큼 당당했던 그도 두려움을 느끼는 연약한 존재였다는 점을 부각시켜 현실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어벤져스’에서 자신보다 강력한 존재를 겪은 뒤 불안감에 시달리며 개발해 낸 47벌의 슈트는 초반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고편부터 화제를 모았던 말리부 해안가 절벽의 토니 스타크의 저택이 적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세트장을 45도 각도로 기울어지도록 고안돼 3차원(3D) 입체감이 더 살았다. 추락하는 에어포스 원에서 아이언맨이 13명의 인명을 구하면서 펼쳐지는 고공 액션 장면도 놓칠 수 없다. 스카이다이빙팀이 투입돼 열흘간 비행기가 62회 이륙하며 만들어내 생생함이 느껴진다. 다앙한 관객층을 공략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1편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주인공 페퍼가 직접 슈트를 입고 아이언맨을 구하는 등 비중을 대폭 늘려 여성 관객의 호감을 샀다. 또 스타크를 돕는 최연소 조력자로 소년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버려진 대형 유조선에서의 전투 장면은 남성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분히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수십 대의 아이언맨 슈트가 동시에 등장해 사방에서 적을 공격하는 장면은 통쾌한 쾌감을 안겨준다. 로맨티스트로서의 모습은 중장년층 관객들도 포용할 것으로 보인다. 엔드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나오는 깜짝 영상은 놓치지 말아야 할 덤이다. [DOWN] 차별성 없는 영웅… 매력 상실 틀에 갇힌 캐릭터·희소성 없는 물량공세 존 파브로가 연출한 ‘아이언맨2’에 대한 평가는 신통치 않았다. 북미에서는 심지어 1편만큼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장수 시리즈로 살아남으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리썰웨폰’ 시리즈와 ‘마지막 액션히어로’ ‘롱키스굿나잇’ 등 1990년 할리우드의 A급 시나리오 작가였던 셰인 블랙이 각본 겸 연출가로 투입된 배경이다. 고집불통에 남의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고, 쇼맨십에 취해 단독행동을 일삼던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3’에서 타인과 협력하는 법을 깨닫는다. 연인과 비서 사이에서 애매하던 페퍼와의 관계도 한걸음 발전한다. 블랙 감독은 심지어 페퍼에게도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 속편에서의 활약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진을 기반으로 한 블랙 감독의 수술은 잘못됐다. ‘아이언맨’의 매력은 다른 슈퍼히어로와 차별성에서 비롯됐다. 군수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스타크는 늘씬한 미녀와 파티를 밝히는 플레이보이인 동시에 스스로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 만큼 손재주가 좋다. 벌레에 물리거나 광선에 쏘여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게 아니라 스스로 의지와 첨단기술을 빌어 영웅이 됐다. 때론 모든 것을 다 가진 그가 얄밉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만만하고 유머러스한 슈퍼히어로도 없었다. 그런데 블랙 감독은 스타크를 적당히 착하고, 책임감을 갖춘 고만고만한 영웅으로 바꿔놓았다. 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한 악당을 상대하려고 원격조정되는 수십 대의 아이언맨 수트가 떼로 등장하는 후반부 역시 아쉽다. ‘어벤져스’의 하이라이트 장면 못지않은 화끈한 물량공세로 볼거리는 얻었다. 하지만, 희소성이 없는 슈퍼히어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감독이 놓쳤거나, 무시한 대목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정부, 日대사 초치 엄중 항의…中도 “日 미래 없을 것” 경고

    정부, 日대사 초치 엄중 항의…中도 “日 미래 없을 것” 경고

    정부는 2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태평양전쟁 전범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한 것과 관련해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한·일 간 갈등이 갈수록 확산되자 일본 정부는 “단편적인 발언이 아니라 전체적인 톤을 보고 우리의 역사인식을 평가해 달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오전 벳쇼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일본 정부와 정계 인사들의 일그러진 역사 인식과 시대착오적인 언행에 대해 강력하게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벳쇼 대사는 새 정부 출범 후 윤병세 외교장관을 예방하기도 전에 자국 총리의 망언으로 외교적 항의 수단인 초치부터 경험하는 굴욕을 맛봤다. 김 차관은 벳쇼 대사에게 ‘시대착오’, ‘극도의 안타까움’ 등의 표현을 쓰며 일본 정부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일본 사회가 내부적으로 정직과 신뢰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안다”며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고, 과거를 뒤로하고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자 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극도의 안타까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벳쇼 대사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본국에 전달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외교부가 일본 대사를 초치한 것은 아베 총리의 도발적 발언과 일본 내 동향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중국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지도자들이 군국주의와 식민 통치를 자랑할 만한 역사와 전통으로 여긴다면 일본은 영원히 역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과 아시아 이웃의 미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의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한국·중국과의 관계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우리나라가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줬고, 모든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한다는 입장은 이전 내각과 마찬가지”라며 “단편적 발언이 아닌 전체적인 톤을 보고 우리의 역사 인식을 판단하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씨줄날줄] 아소의 웃음/박정현 논설위원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고대 그리스의 웃음의 어원은 ‘헬레’(hele)였고, 그 뜻은 건강(health)이었던 것을 보면 고대인들도 웃음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뼈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웃음이 갖는 의학적 효과를 오랫동안 연구한 미국 리버트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에게는 암의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세포의 양이 증가했다. 면역력 증가는 물론이고 감기에도 쉽게 걸리지 않는다. 웃으면 얼굴 근육의 14개가 펴지고 찡그리면 72개의 근육이 수축된다. 웃음은 건강뿐 아니라 행복도 가져다 준다. 미국 한 대학의 조사에서 50명은 시종 웃는 표정을 짓도록 했고, 50명은 험상궂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물건을 판매하도록 했더니 ‘웃음팀’은 목표량의 3~10배까지 팔았다. 이에 비해 인상을 쓴 팀은 하나도 팔지 못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그대로 실증해 주는 조사결과다. 웃을 때는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의 양이 급증한다. 엔도르핀은 인간의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점에서 모르핀과 같지만 모르핀보다 300배 강력하면서도 중독성이 없다. 엔도르핀의 최대 장점은 공짜라는 데 있다.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를 위해 하루에 한번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웃음에 인색하다.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400번 웃지만 어른들은 6번에 그친다. 웃음에도 많은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포복절도(抱腹絶倒) 같은 호탕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 웃음을 머금는 함소(含笑) 등은 조용한 웃음에 속한다. 비아냥거리는 조소(嘲笑)와 코웃음인 비소(鼻笑), 바보같이 웃는 치소(痴笑)는 호르몬과는 무관하다.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의 웃는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것도 모자라 두 다리를 팔짝 들어올린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엔저정책을 위주로 한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견이 나오지 않아 무제한 엔저정책이 면죄부를 받은 게 감격스러웠을 법하다. 일본은 2015년까지 무제한 엔저 공습을 펼 수 있게 됐고, 달러당 엔화는 107엔까지 오를 기세다. 그럼에도 “엔저정책이 주변국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과 반발을 의식했더라면 대놓고 웃었을까. 그의 웃음은 아무래도 호르몬 분비와는 무관해 보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취임식 중 마이크 뺏긴 마두로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51)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개표부정 논란 속에 치러진 취임식 도중 괴한에게 마이크를 빼앗기는 망신을 당했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마두로는 지난 19일 오후(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그는 디오스다도 카베요 국회의장 앞에서 헌법책을 들고 “베네수엘라를 14년간 통치한 차베스의 정책들을 계속 밀고 나가면서 그의 유산을 계승하겠다”고 덧붙였다. 취임 선서를 한 마두로 대통령이 연설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한 괴한에 의해 연설이 제지당했다. 붉은색 점퍼를 입은 괴한은 의사당 내 왼쪽 통로를 통해 쏜살같이 연단으로 달려와 마이크를 낚아챘다. 국회의장석에 앉아 있던 카베요 의장이 괴한을 붙잡으려 했지만 팔이 닿지 않았다. 괴한은 마이크를 잡고 “니콜라스, 내 이름은 헨리”라고 외친 뒤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괴한이 왜 연단에 올라 연설을 방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두로 대통령은 괴한이 끌려 나간 뒤 “여기서 총에 맞을 수도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지나갔다. 내가 나중에 그 남성과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고 애써 침착함을 보였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공연리뷰] 연극 ‘안티고네’

    [공연리뷰] 연극 ‘안티고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한결같이 이런 반응이다. “한태숙스럽다.” 예술사전의 연극 분야에 등재될 법한 표현이다. 뜻이라면 ‘간결한 무대 위에 강렬한 이미지를 올려놓는다’이거나 ‘어둡고 암울하며 잔혹하며 처절하다’가 될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안티고네’는 처음부터 ‘한태숙 연극’이라고 강렬하게 전달했다. 무대 바닥은 객석 쪽으로 오르막을 이룬다. 천장과 좌우도 안쪽으로 좁아지니,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커다란 액자 같은데, 사람들이 끝에 몰려 있으니 낭떠러지 같기도 하다. 오르막 경사는 9도라는데, 굉장히 가파른 느낌이다. 배우들이 오르내릴 때면 힘겹고 위태로워 보인다. 테베의 새로운 통치자가 됐지만, 적통이 아니라는 불안감에 휘둘리는 크레온, 아버지이자 오빠인 오이디푸스와 두 오빠까지 잃은 안티고네, 가혹한 운명의 두려움에 휩싸인 동생 이스메네, 폭정 속에 살아 남아야 하는 시민들, 어디에도 평온한 사람이 없는 상황을 표현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무대다. 극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빗소리, 사람들의 속삭임, 흉조의 울음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역자, 반역자!” 격렬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시체가 굴러 내려온다. 몸 한가운데가 짓이겨져 피범벅이 된 시체는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니케스다. 크레온은 폴리니케스에 대한 애도와 매장을 금지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안티고네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죽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면서 시신을 수습하려다가 붙잡혔다. 극은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이 중추다. 크레온이 인간의 법을 주창하는 인물이라면, 안티고네는 신의 뜻을 받든다. 두 인물에게서 절충은 없다. 뜻을 굽히지 않는 안티고네는 동굴에 감금된 채 자결하고, 고집스럽게 신념과 통수권을 지키려던 크레온은 아들과 부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붕괴된다. ‘안티고네’와 엮이는 소포클레스의 두 작품 ‘오이디푸스’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고 이 작품을 접하면,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나 긴장감을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통치자로서 살다가 죽음에 이른 아버지를 끝까지 지킨 안티고네에게서 ‘누군가’를 투영할 수도 있겠다. 2500년 전 이야기가 현대에서도 깨달음을 던지게끔 하는 고전의 힘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태숙 연출가와 전작 ‘오이디푸스’(2011)를 함께했던 김창기 조명 디자이너, 이경은 안무가, 김우성 의상 디자이너 등 대부분 스태프가 이번에도 참여했다. 비탈 무대, 부분 조명, 현대적인 의상 등을 비슷하게 가지고 왔다. 달라진 것은 가운데가 갈라지는 무대. 안티고네의 어두운 내면이자 그를 옥죄는 감옥이다. 먼저 노장의 열연에 박수를. 하지만 TV 속 모습이 너무 익숙한 탓일까. 신구(크레온)의 독특한 억양이 가끔 무대 위에서 어색하게 들린다. 김호정(안티고네), 손진환(파수꾼) 등 많은 배우가 제 역할을 해냈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띈 건 역시 박정자였다. ‘오이디푸스’에 이어 다시 예언자 티레시아스 역을 맡은 그는 신의 뜻을 읽는 영험함과 만사가 귀찮은 노인네의 괴팍함, 크레온에게 경고하는 섬뜩함을 단 두 번 출연하면서 제대로 뿜어냈다. 흑백의 조명 아래서 격렬한 움직임, 불길한 기운을 전하는 흉조의 날갯짓 등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연기가 암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국립극단과 예술의전당이 함께 제작한 ‘안티고네’는 CJ토월극장에서 28일까지 공연한 뒤 5월 24~26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 6월 21~23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로 이어진다. 2만~5만원. 1688-5966.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데스크 시각] 국민 법 감정과 검찰권 행사/박현갑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국민 법 감정과 검찰권 행사/박현갑 사회부장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확충 시대, 지방재정 확충 방안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통치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뤄지던 헌법 개정 논의에 지방재정 확충 방안을 적극 포함시키자는 거대 담론에서부터 지방세 비과세·감면조치 반대 등 과세자주권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국세 대 지방세가 8대2인 세입구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에다 지자체의 방만경영 문제가 끊이질 않고, 의회가 윤리강령 제정에도 소극적인 상황에서 선뜻 동의해줄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볼 일이기도 했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검찰권 행사 또한 마찬가지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에 따른 ‘상설특검 도입’이라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드러나듯 검찰권 행사는 늘 시비의 대상이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기소처분했다 뒤늦게 구속시킨 사건,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의혹 수사,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다 차명계좌로 ‘검은돈’을 받아 챙긴 부장검사 뇌물 사건, 검찰청에서 벌어진 현직 검사 성추문 사건에 이르기까지 검찰권 남용에 따른 사건은 부지기수였다. 이 때문에 국민 입장에서 보면 검찰의 대오각성은 당연한 것이다. 검찰은 최근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 법 감정에 상응하는 엄정한 처벌을 다짐했다. 4대 사회악 근절을 위해 검찰의 최우수 인력을 배치하고 4대악 범죄 구형 및 항소 기준을 높여 국민들이 범죄 걱정 없이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채동욱 검찰총장은 나름의 행동지침까지 공개했다. 지난 9일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보직 변경 신고식에서 “총장 권한을 일선에 대폭 위임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면서 “증거 판단 내지 혐의 유무 판단은 일선과 대검 주무 부서가 협의해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서울중앙지검장의 주례 면담 보고도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검찰총장은 매주 화요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주요 현안을 보고받고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해 왔다. 채 총장은 “일선 검사장과 중요한 사건에 대해 논의할 경우에도 단둘이 만나는 것보다는 대검의 주무부장이 배석하고 일선에서도 지휘간부와 주임검사까지 참석해 한자리에서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적 시빗거리는 아예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검찰이 정말 국민의 법 감정에 부응할 생각이라면 논란이 되고 있는 상설 특검 문제는 국회에 완전히 맡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본다. 기본권 침해, 권력분립 원칙 위배 등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학자들의 견해를 들먹일 게 아니라 기구특검 등 국회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면 될 일이다. 이런 자세를 보일 때 검찰로서는 대형 비리사건 처리를 놓고 쏟아진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일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선 검사들로서는 채 총장의 열린 복무지침에 따라 소신 있는 수사로 사회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앞장서 주기를 기대해 본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내곡동 대통령 사저 부지 고발사건 등이 달라진 검찰권 행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eagledu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주룽지와 아베 신조의 다른듯 같은 길/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주룽지와 아베 신조의 다른듯 같은 길/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에서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로 꼽힌다. 경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 국궁진췌(鞠躬盡瘁·몸과 마음을 다해 힘쓰다)하는 철저한 공복 정신, “100개의 관(棺)을 준비해라. 99개는 부패 공직자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몫”이라고 호통치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인 청렴성 등 국가 지도자의 덕목을 두루 갖췄다. 27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국가 안정에 혼신을 바쳐 ‘영원한 총리’로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능가한다. 주룽지의 가장 큰 업적은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양강을 형성하는 ‘주요 2개국(G2) 시대’의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가 부총리에 취임한 1990년대 초반 중국 경제는 10% 안팎의 고성장이 지속됐지만 23%가 넘는 엄청난 인플레에 시달렸다. 그러나 ‘성장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하는 바람에 경제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칭병(稱病)하고 쓰러진 리펑(李鵬) 총리의 대행을 맡은 주룽지는 경기 과열과 투기에 철퇴를 가하는 고강도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경기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물가도 한 자릿수로 잡혀 안정을 되찾았지만 성장이 주춤거리자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직까지 겸임한 그는 1994년 벽두 과감한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5.77위안에서 8.72위안으로 33%나 끌어내린 것이다. 그해 말 수출 증가율이 30% 치솟는 등 ‘위안화 매직’을 선보이면서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이 지속돼 승승장구했다. 이후 20년간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 규모와 외환보유액이 각각 1조 달러, 3조 달러를 훌쩍 넘어 세계 1위의 ‘현찰 대국’으로도 발돋움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소리 높이 울려퍼진다. 그는 ‘아베노믹스’라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경제정책을 펼쳐 ‘잃어버린 20년’을 끝낼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 물가를 2%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대담한 양적 완화 정책과 13조엔(약 148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아베가 취임한 이후 엔화 가치는 20% 가까이 떨어져 달러당 100엔 돌파를 앞두고 있고, 증시는 30% 이상 폭등했다. 그의 지지율도 70% 이상 고공 비행 중이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북핵 위협이 최고조에 이른 와중에 8분기째 1% 미만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며 경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리 동결로 찬물을 끼얹고,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가정주부들의 시장 보는 일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내수 죽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새 정부가 두 달 만에 겨우 내놓은 17조원 규모의 추경안마저 서민예산이라고는 ‘쥐꼬리만큼 들어 있는’ 속 빈 강정이고, 이를 빌미 삼은 야당 측은 전면 거부할 태세여서 이달 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경기부양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실기(失機)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khkim@seoul.co.kr
  • [사설] 北 개성공단 빗장 풀고 즉각 대화 나서라

    개성공단의 기계가 멈춰선 지 오늘로 꼭 열흘을 맞았지만 공단 가동이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개성공단 방문 계획이 좌절됐다. 기업대표들은 북측 인사들에게 기업인들의 애로를 전달하고 현지에 체류 중인 우리 측 직원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은 이마저 불허한 것이다. 최소한도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치마저 팽개친 북측 행태는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10년 만에 멈춰선 개성공단이 하루빨리 정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에는 우리 측 근로자 200여명이 남아 있다. 식료품과 가스 등 필수품이 턱없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공장 생산설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공단 가동 중단 사태의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장 가동 중단이 길어질수록 우리 측 근로자들이 받을 고통은 커지고 자칫 안위조차 위협받는 한계상황에 내몰릴지 모를 일이다. 북측은 우리 근로자들의 기본적 생활과 안위를 보장하는 조치를 한시바삐 취하길 바란다. 공단에 송전되는 10만㎾의 전력이 끊기는 날이면 공장은 사실상 쓸모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공단 폐쇄 상태를 맞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비망록을 통해 남한 정부가 현재의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을 북한에 전가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공단 폐쇄에 따른 모든 책임은 잠정 중단조치를 내린 북측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공단 가동 10년의 경험으로 그 정도는 알 때가 됐다고 본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을 대상으로 한 의도적인 대결구도를 당분간 이어갈 태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남측 보수단체의 반북 퍼포먼스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상태가 조성됐다면서 전 주민에게 만반의 대응태세를 촉구한 데서 도발의 빌미를 찾으려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가 국지적인 도발 가능성에 따른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해야 할 이유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도 이런 대결구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이 어떤 곳인가. 인력이 모자라면 한두 개 사단을 해체해서라도 인력을 공급하겠다고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담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공단 가동이 중단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김정일 유훈 통치가 진행되는 북한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언제까지 통할 수는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변화가 없을 경우 대화와 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은 한·미가 내민 대화의 손을 붙잡을 타이밍에 대해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다. 북측은 대결구도에서 대화 국면으로 선회할 명분과 이유를 개성공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글로벌 시대] 굿바이 티나(Tina), 굿모닝 타타(Tata)?/장홍 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굿바이 티나(Tina), 굿모닝 타타(Tata)?/장홍 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얼마 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오랜 투병 끝에 타계했다. 시골 구멍가게 주인의 딸로 태어나 옥스퍼드를 거쳐 영국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한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 대처처럼 극명하게 명암이 갈리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대처는 영국의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던 1979년 총리에 취임하여 1990년 사임할 때까지 11년간 영국을 통치하면서 영국 사회를 급진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또한 심오하게 분열시키기도 했다. 여전히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대처 추종자들이 있다. 심지어 토니 블레어 노동당 출신 총리를 비롯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유럽의 좌파들에게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에게 대처는 영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줬고, 침몰하던 영국 경제의 회생에 성공했고, 금융 분야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런던의 금융가 시티(The City)지역이 세계 금융시장의 한 중심으로 우뚝 서게 했으며, 무주택자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해 새로운 중산층의 탄생을 가능케 한 성공한 정치인의 모델이다. 반면에 ‘철의 여인’ 대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대처는 1980년 6월 25일 미국 언론 앞에서 처음으로 ‘티나(Tina·There is no alternative)’를 언급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로 해석될 수 있는 그녀의 경제 정책은 공공기업의 민영화, 금융시장의 대폭적 규제 완화, 작은 정부, 카지노식 자본주의, 노동조합의 파괴 등으로 요약된다. 1983년 막 재선에 성공한 대처는 영국 북부의 노동자 파업, 특히 광부들의 파업을 티나를 외치면서 단호하게 제압했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상처는 지금까지도 영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또한 대처는 유럽에서 마담 노(Madame no)로 통했다. 유럽통합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대처는 ‘나의 돈을 돌려 받기를 원한다’(I want my money back)를 되풀이하며, 유럽통합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대처에 대해 ‘칼리굴라의 눈과 메릴린 먼로의 입술’을 가진 여인이라고 평했을 정도이다. 사실 2000년대에 일어나고 있는 국제금융위기는 대처리즘의 결과이자 대처리즘의 위기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규제 완화 정책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바이블이 되었고, 그 속에 리먼 브러더스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위기가 이미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처리즘은 철의 여인의 이미지에 걸맞게 급격히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비롯된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세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금융자산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와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유럽의 극심한 국가부채 위기 앞에서 이런 희망은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달 7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만약에 다른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라고. 대처가 그랬던 것처럼 티나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처리즘은 영국 내부에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또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데올로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티나에서 타타(Tata·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로 갈아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 26년 만에… 개헌, 시동

    26년 만에… 개헌, 시동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 기구를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여야 합의로 국회 개헌 논의 기구가 구성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6인협의체’ 비공개회의에서 개헌을 논의하는 기구를 꾸리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통치·권력 구조 등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산발적인 논의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상호 협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는 이 원내대표가 먼저 제안하고, 박 원내대표가 흔쾌히 수용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향후 국회 차원의 개헌 특별위원회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변재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양당 내부에서 몇몇 의원들이 개헌 논의를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각 당에서도 부담스러워 국회 차원의 공통된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면서 “될 수 있으면 이른 시일 안에 신속하게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개헌 문제를 논의하고 국회 특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땐 개헌특위 구성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의 헌법은 군부 장기독재를 종식하고 5년 임기의 대통령 직선제를 중심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룬 ‘87년 체제’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했지만 87년 이후 제왕적 대통령 등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학계와 정치권, 시민사회에서 개헌 논의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권력구조만을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좌절됐다. 이명박 정부 때도 개헌이 추진됐지만 유력한 차기 후보였던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려는 시도로 해석돼 결국 실패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여야 후보를 비롯해 정치권 내에서 권력구조 변경 등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이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와 당선인 시절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민의 기본권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개헌 과제를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새 정권이 출범하고 총선이나 지방선거 등 큰 선거가 없는 올해를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서는 각 당의 유불리로 인해 개헌 논의가 쉽게 좌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에는 이재오 새누리당, 유인태 민주당 의원 등의 주도로 여야 국회의원 70여명이 참여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가동되고 있어 개헌 논의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들은 현재의 5년 대통령 단임제를 현재의 시대상황에 맞게 손질한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이 의원이 주도하는 ‘분권형 개헌추진 국민연합’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8대 국회 때 국회의장 산하에 구성된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처럼 지루하게 시간 끌기식 논의만 하고 끝나서는 결코 안 된다”면서 “개헌안을 국민 다수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여야가 합의해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관련기사 6면
  • 세계 최강 미국·일본 관계사 전직 日외교관이 파헤치다

    한 나라의 운명은 친소 관계를 맺는 나라의 정책과 입장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특히 그 관련국이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강국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동맹국이라는 허울 좋은 관계의 내면도 따져보면 종속과 추종이 압도적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세계사는 관계국 간의 지배와 종속이 부른 흥망성쇠로 점철된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메디치 펴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실감 나게 파헤친 책이다. 일본의 2차대전 패망기인 1945년부터 2012년까지의 미·일 관계사를 역대 수상·정권별 기록과 증언으로 솔직하게 고발했다. 저자는 영국, 구 소련, 이라크,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이란 대사를 거치며 36년간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한 외교관 출신. 그런 그가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패전 이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과 처지는 변함없는 추종’이라는 것이다. 일본 내에 미국의 견제와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주파와 친미·종미파 간의 갈등과 전복이 있어 왔지만 ‘미국은 갑, 일본은 을’인 관계의 지속은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의 미국 추종사는 1945년 연합국 총사령부의 일본통치가 막 시작될 무렵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자’고 주장했던 요시다 시게루 외상의 노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때 이후 그 추종 노선을 벗어나려는 이른바 대미 자주파 수상과 정권이 어김없이 거세됐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책에 줄줄이 등장한다. 패전처리비 삭감을 주장하다 추방된 이시바시 단잔, 미군 완전철수론을 펴다가 의문의 급사를 당한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 소련과의 국교 회복을 추진하다 공직서 추방된 하토야마 이치로 수상, 미군의 유사시 주둔론을 주장해 정계에서 강제 은퇴당한 아시다 히토시…. 이들의 희생과 미국의 배후 조종 사료와 고증이 예사롭지 않다. 일본 말고도 이른바 미국의 ‘분할 통치’에 걸림돌이었던 각국 지도자들의 실각과 죽음도 만만치 않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처형은 물론, 미국에 적극 협조했던 이란 팔레비 국왕의 축출과 패망한 월남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살해도 모두 미국이 개입한 것으로 저자는 단정한다. 지미 카터와의 정상회담 때 카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안보론을 펴고, 미국의 청와대 도청기 설치에 맞서 미국대사관을 도청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런 연장선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평화와 질서보다는 일본 국익에 철저해 보이는 저자의 지론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한·미 관계는 미·일 관계보다 훨씬 더 긴박한 순간이 많았다.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한국 문제에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고,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개입한 사례는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서문 속 적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1만 8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4·24 재·보선 공식선거운동 스타트… 13일간 열전 돌입

    4·24 재·보선 공식선거운동 스타트… 13일간 열전 돌입

    4·24 재·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11일 시작됐다. 후보들은 선거 출정식을 열고 13일간의 재·보선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4·24 재·보선은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 등 세 곳에서 치러진다. 큰 주목을 받는 서울 노원병에서는 4명의 후보가 공식 선거 유세를 시작했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는 별도의 출정식 없이 새벽에 지하철 7호선 마들역 거리청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유세차량으로 노원병 곳곳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출정식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정치가 새 정치”라면서 “4월 24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냐. 노원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는 날이다. 새 정치의 중심에 상계동을 거는 날”이라며 투표를 독려했다.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심상정 의원 등 진보당 지도부와 멘토단에 합류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하고 세몰이에 주력했다. 김 후보는 “상계동 주민들께서 노회찬의 명예회복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도 이정희 대표와 함께 출정식을 하고 선전을 다짐했다. 부산 영도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후보, 김비오 민주당 후보, 민병렬 통합진보당 후보가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김무성 후보는 “태종대 진입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등 혼잡한 교통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우리나라 제1의 국제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비오 후보는 출정식에서 “낡고 한물간 새누리당의 퇴물 정치꾼이 아닌, 박근혜 정권 초기 불통 통치와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독주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젊고 새로운 후보를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출정식에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석했지만 관심을 모았던 문재인 의원은 임시국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첫날 선거지원에는 나서지 않았다. 양측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김무성 후보의 위장 전입 의혹으로 충돌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김무성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주소가 김 후보가 신고한 재산 내역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부산 남구에서 생활하면서 주소지만 위장으로 옮긴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무성 후보 측은 “해당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고 선거법상 재산 공개 기준은 지난해 12월 31일이기 때문에 올해 2월 영도로 전입한 김 후보의 전세 내역이 재산신고에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부여·청양에서는 이완구 새누리당 후보, 황인석 민주당 후보, 천성인 통진당 후보가 본격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 후보는 “중앙무대에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높은 득표율로 당선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지역구를 다니며 “침체에 빠진 농업을 살릴 전문가”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천 후보도 “노동자 농민, 서민을 살리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대한매일신보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대한매일신보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나는 죽으나,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했던 파란 눈의 영국인 청년 배설(裵說·본명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전기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가 출판사 기파랑에서 나왔다. 일제의 식민 통치가 극에 달한 1909년 언론인 배설은 낯선 땅 한반도에서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다. 배설 선생의 불꽃 같은 삶의 궤적을 다룬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명예교수가 서재필기념회의 제안으로 펴낸 것으로, 26년 전 발간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의 개정판에 해당한다. 정 교수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일본 외교문서, 대한매일신보 지면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배설 선생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러일전쟁 특파원 자격으로 한반도 땅에 발을 디뎠지만 일제에 억압당하는 조선인의 고통을 목격한 배설 선생은 ‘한국 동포’의 편으로 돌아서 항일 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한매일신보는 고종의 밀서를 사진 기사로 대서특필하고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을 널리 알려 구국 투쟁의 선봉을 지켰다. 정 교수는 “배설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숨을 던졌다”면서 “그가 창간한 신문의 항일정신은 찬란한 금자탑이 되어 영원히 빛을 발한다”고 적었다. 김균미 기자 kmkim@seoul.co.kr
  • 尹산업, 공공기관장 물갈이 시사

    尹산업, 공공기관장 물갈이 시사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일 공공기관장 교체 문제에 대해 “당연히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코드가 맞아야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면서 교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 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업무보고에서 “현재 (산하 공공기관장) 41명에 대해 한 번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장관은 “임기가 끝나는 분은 당연히 전문성과 혁신성 부분을 적용할 것”이라면서 “임기가 도래하지 않더라도, 또 일부 교체할 필요가 있다면 그런 부분을…”이라면서 임기에 상관없이 공공기관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공공기관 내부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공공기관 내부의 관료주의와 현장·국민이 아닌 정치권과 장관을 보고 있는 부분은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장관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대형 에너지 공기업의 주무 장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공공기관장이 대거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두 사람이 사타구니가 쓰리도록 열불 나게 걸어 당도한 곳은 샛재 턱밑인 비석거리였다. 이름하여 선정비나 공덕비란 것들은 길손들의 내왕이 번다한 길목에 즐비하게 세워두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번화한 곳을 가리켜 비석거리로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 곳에 숫막이 들어서고 간혹 들병이들도 술 단지를 끌어안고 길손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춘궁기를 앞두고 있는 시절이어서 내왕도 뜸하고, 숫막 경영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석거리에는 숫막 세 집이 나란하게 문을 열고 있었고,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돌을 쌓아 바람막이를 한 마방도 갖추고 있었다. 마방이 딸린 숫막에는 어림잡아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나이가 이팔인 구월이라는 여식과 사팔뜨기에 밤이나 낮이나 눈에 눈곱을 달고 사는 늙은 중노미 한 사람을 데리고 숫막질을 하고 있었는데, 택호가 난데없는 월천댁이었다. 그것은 6, 7년 전에 역병으로 열명길에 오른 남편이 이곳에서 한식경 거리에 있는 말내(두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사람을 업어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이자 길라잡이로 연명했기에 붙여진 택호였다. 월천댁은 여식 하나를 남기고 졸지에 명줄을 놓아버린 아비를 이곳 비석거리 언덕에 묻고 시묘살이를 하더니, 아예 이곳에 숫막을 열어 자리잡고 말았다. 죽은 남편의 무덤을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 한미한 집 자손이지만 심덕 한 가지는 열녀의 반열에 올려둘 만하였다. 궐녀는 샛재를 오가는 길손들 중에 반명하는 위인이든 상것들이든 층하를 두지 않고 상종하였다. 선비라고 호들갑스럽게 아양 떨며 납죽거리지 않았고, 상것이라고 체면을 깎고 홀대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간혹 도포 입고 행세한다는 표객이 궐녀의 숫막에 식주인을 정하고 객고나 풀자 하고 지분거리기도 하였다. “여보게, 술어미. 그냥 두면 곰팡이만 슬고 젓국 냄새만 등천을 한다네. 더러는 뒷물할 일도 생겨야 쓸모가 있는 게 바로 임자 불두덩 아래 붙어 있는 가죽방아가 아닌가. 어떤가? 내 말의 깊은 이치를 알아듣겠지? 임자가 살보시만 질탕하게 해준다면 먼 길 행보, 만리 행역이 싹 가시지 않겠는가. 해우채는 섭섭하지 않게 헤아려줌세.” “길거리에 나와 앉은 본데없는 계집이라고 깔보고, 실없는 언사가 낭자하시구려. 공규를 지키는 하찮은 계집을 상종하여 양반 행티 너무 마시오. 댁이 남행* 부스러기로 벼슬길 맛을 보았는지… 작둣간에서 풀무질이나 하다가 공명첩으로 양반의 직첩을 얻었는지 어느 개 아들놈이 알겠소. 말본새하며 행티 하는 거조가 댁이 겉보기와는 달리 가문 있는 집 자손이 아닌 것은 분명하오. 육허기가 목젖까지 차올랐거든 나보고 지분거리지 말고 봉놋방 외짝문 닫아걸고 혼자 실컷 용두질이나 해서 육허기를 채우시지요. 그러나 해보았자 허망하긴 마찬가질 것이오.” “술어미… 내 잠깐 실언을 했기로서니 면박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집구석이 망하려면 제석 항아리에 말 좆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간구하게 살다보니 댁과 같이 비위짱 사나운 꼴을 보아도 주리 참듯 참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가련하네요.” 그런 꼴같잖은 위인에겐 가차없이 면박을 주지만, 평소에는 범절이 더없이 무던한 아낙네여서 병자를 샛재까지 한달음으로 업고 온 것이었다. 병자를 좁은 툇마루에 내려놓자 파랗게 질린 월천댁은 불당그래를 손에 든 채로 부엌의 널쪽문을 밀치고 엎어질 듯 내달았다. 봉당 쪽마루에 사지를 늘어뜨리고 누운 병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월천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장독을 입었는지 오장육부를 다쳤는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된장밖에 약이 없네요.” 정주간으로 달려가더니 된장을 한 바가지나 떠왔다. 우선 병자를 바로 눕힌 다음 서둘러 된장을 발랐다. 정한조가 말했다. “어성초나 소리쟁이 뿌리 말려둔 것은 없소? 어혈을 풀어주는 데 그만한 갈약*이 없소.” “쑥이나 명아주 말린 것은 있습니다.” “지네 말린 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게 하면 그것도 효험이 좋소. 타박상에는 광대나물이 제격이오.” “지네나 광대나물 말린 것은 말내 도방에 당도하면 돌팔이를 불러 구처하시고 우선 된장이나 바릅시다. 된장도 만병통치라 하지 않습니까.” 부러진 다리와 상처에는 쑥을 두드려 발라준 다음, 소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로 싸매주고, 경황중에 끓인 미음을 떠먹였다. 그러나 병자는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병증이 뼈에 사무친 것이었다. 발을 싼 감발을 벗겨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동상까지 앓았던 듯 두 발등이 죽장같이 부어올라 있었다. 구완 않고 오래 방치하면 화농되어 썩어들어갈 것이 뻔했다. “어허 이런 야단이 없군.” “한군데도 성한 구석이 없네요. 말린 쑥은 있으니, 싸매주어야 하겠소.” *남행: 음직을 낮추어 부르는 말 *갈약: 상비약
  • 식료품집 딸에서 11년 최장수 총리로…‘영국병’ 고친 여걸

    식료품집 딸에서 11년 최장수 총리로…‘영국병’ 고친 여걸

    8일(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87) 전 영국 총리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보수당을 이끌며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대표적인 지도자다. 대처 전 총리는 1925년 영국 중서부 랭커셔주 그랜섬에서 보수적인 감리교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식료품점을 운영했던 아버지 앨프리드 로버츠는 학력은 짧았으나 성실히 일해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대처가 두 살 때 시의원에 당선된 이래 그랜섬의 시장 자리까지 올랐다. 대처 전 총리가 여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이러한 성실함과 책임감 덕분이었다. 대처 전 총리는 옥스퍼드대학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법학과 화학을 공부했다. 1950년 여성 후보로 최초로 총선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하지만 11살 연상의 기업인인 남편 데니스 대처를 만나 쌍둥이 남매를 낳은 뒤 금전적인 도움에 힘입어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1959년 보수당 소속으로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됐을 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1961~1964년 연금·국민보험부 차관을 지냈고 교육 장관을 거쳐 1969년에 과학장관까지 역임했다. 1975년에는 보수당 대표인 히스를 물리치고 영국 최초의 여성 야당 당수가 됐다. 이후 1987년 총선거 때까지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영국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대처 전 총리는 총리 취임사에서 “문제는 사회주의적 병폐”라면서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11년 재임 기간에 전후 복지 자본주의 모델인 ‘케인스주의’와 결별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여 당시 영국 내 만연했던 나태함을 버리고 ‘영국병’으로 불리던 고질적인 문제를 치유해 영국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동시대 정치적·역사적 친구로 ‘레이거 노믹스’라는 용어를 남긴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시장자유주의의 효시로 불린다. 취임 당시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강인한 지도력으로 회생시켰으며 과감한 민영화와 교육·의료 부분에 대한 복지 지출 삭감을 통해 1980년대 초 치솟던 인플레도 잡았다. 특히 경쟁력이 떨어진 공기업은 과감히 민영화하고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통치철학을 가리켜 ‘대처리즘’이라는 단어도 생겨날 정도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한편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반공주의와 함께 ‘강한 영국’을 표방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당시 영국 사회는 전쟁 찬반론으로 양분됐으나 “타국의 무력 침공은 영국의 주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명예와 주권을 위해서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해 두 달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외교적으로는 레이건과 함께 옛 소련에 대해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며 강력히 대응해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반면 1983년에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미국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고, 1986년에는 리비아 폭격을 위해 미군 전투기의 영국 공군기지 사용을 허가하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로부터 ‘피의 보복’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대처의 외교 노선에 대해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소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 출범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당의 반발에 부딪혀 1990년 11월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미국 윌리엄메리대 총장과 필립 모리스 고문 등을 지냈다. 2002년 가벼운 뇌졸중을 겪은 이후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데니스 경은 2003년에 사망했다.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뇌졸중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버락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대처 전 총리의 서거로 전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대처는 대단한 총리였다. 그녀는 뚜렷한 의견을 가진 훌륭한 여성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그녀가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슬람 건물에 십자가 낙서해서…이집트 무슬림-기독교인 총격전, 장례식서도 충돌…2명 또 사망

    이집트에서 무슬림과 콥트 기독교인의 충돌로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서 양측의 해묵은 종파 갈등이 반복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의 알쿠수스 콥트교 성당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충돌해 2명이 사망하고 89명이 다쳤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이날 충돌은 이틀 전 카이로에서 일어난 양측의 충돌로 사망한 기독교인 4명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 일어났다. 앞서 카이로 북부 알쿠수스 마을에서는 지난 5일 기독교 어린이들이 이슬람 학교 기관의 담벼락에 십자가 문양의 낙서를 한 것이 두 종교 집단 간 총격전으로 번지면서 기독교인 4명과 무슬림 1명이 사망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성당을 나오던 문상객들은 현지 마을 주민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지면서 부상자가 늘어났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집트 보건 당국은 “기독교인 1명이 사냥용 엽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나머지 1명의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성당 안에서 “무슬림형제단의 통치를 끝내자”는 구호를 외쳤고 이를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이 성당으로 달려가 이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충돌은 충분히 예상됐지만 장례식 당일에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콥트교 타와드로스 2세 교황에게 전화를 걸어 “성당에 대한 공격은 곧 나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폭력 사태를 강하게 규탄했고 이에 교황은 ‘평온’을 당부했다고 관영 MENA통신이 보도했다.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기독교인 콥트교는 전체 인구 8500만명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임 무바라크 대통령 시절부터 중앙정부로부터 사회, 경제적인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특히 수니파인 무슬림형제단의 지지로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는 소수 콥트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지난해에는 반이슬람 영화인 ‘무슬림의 무지’를 제작한 이집트 콥트교도 7명이 신성모독 혐의로 전원 사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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