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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 외치던 시진핑 ‘보수파 달래기’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당의 지도자로 취임한 지 반년 여 만에 당의 혁명 성지인 허베이(河北)성 시바이포(西柏坡)를 찾아 중국 내 보수파 달래기에 나섰다. 시바이포는 공산당이 국민당과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던 시기에 사용하던 요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3월 이곳에서 열린 제7기 2중 전회에서 ‘량거우비’(兩個務必·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를 제창했다. 공산당 제7기 2중전회의는 공산당의 중국통일을 앞두고 당의 신지도부를 구성한 회의다. 마오는 이 회의에서 “당원들이 집권한 뒤에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면서도 분투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당과 군을 이끌고 수도 베이징으로 입성했다. 시 주석은 11일 이곳에서 “‘량거우비’에는 인민의 정권인 공산당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승리한 뒤에도 당원들이 선진성과 순결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마오를 치켜세웠다. 시 주석의 이번 시바이포 방문은 반부패 등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마오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를 달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18차 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취임하던 첫날부터 “중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개혁·개방”이라며 ‘리틀 덩샤오핑(鄧小平)’의 행보를 보여 보수파의 불만을 샀다. 홍콩 시사평론가 조니 라오는 “시 주석의 시바이포 방문은 보수파의 지지를 겨냥한 것으로 시 주석이 아직 정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추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이집트 스핑크스 이스라엘서 발견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인 스핑크스가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발굴됐다. 중동 지역 일간 더내셔널은 고대 유적지인 이스라엘 북부의 텔 하조르 국립공원에서 스핑크스의 발 부분이 발견됐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발굴단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한 스핑크스 발 부분의 길이는 0.5m 정도로 약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왕국을 통치한 멘카우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멘카우라 왕은 수도 카이로 인근 기자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 3개 가운데 하나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스핑크스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아울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을 아우르는 레반트 지역에서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인 스핑크스가 발견된 것 역시 최초다. 발굴단은 이 스핑크스가 하조르 지역의 가나안 왕궁이 파괴됐던 기원전 13세기의 단층 지대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 암논 벤 토르에 따르면 전체 스핑크스의 길이는 1.5m, 높이는 0.5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멘카우라 왕의 스핑크스가 이스라엘에 이르게 된 경위를 둘러싸고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히브리대 소속 샤론 주커먼은 “멘카우라 왕이 하조르 왕국에 건넨 선물이었을 것”이라면서 “이는 가나안과 이집트 간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벤 토르는 “당시에는 이집트와 레반트 지역이 전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멘카우라 왕 생전에 이 스핑크스가 가나안에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원전 16세기 초반 가나안인들이 이집트 남부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스핑크스를 약탈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소비자 리포트(KBS1 밤 7시 30분) 온 국민의 대표적 영양제인 비타민. 우리에게 알려진 비타민의 효능은 피로회복에서 암 예방까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비타민제 열풍 속에서 수백여 종에 달하는 비타민제가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비타민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90% 이상에 달했다. 많은 소비자가 비타민제가 건강을 지켜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힐링투어 야생의 발견(KBS2 밤 8시 20분) 배우 온주완은 수목 드라마 ‘칼과 꽃’에서 ‘장’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야생의 발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천혜의 자연, 원시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인천 대청도다. 그곳에서 승부욕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가 2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샌드보딩에 도전한다. ■나 혼자 산다(MBC 밤 11시 20분) 여름을 맞아 무지개 회원들은 경기 파주의 어느 야외 정자에서 정모를 가졌다. 모여드는 벌레와 싸우며 여름과 관련된 추억담을 나누던 중 깜짝 등장한 서인국에 회원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의 환호성을 질렀다. 회원들은 반가운 포옹으로 그를 반겼다. 한편 무지개 회원들이 모여 각자 개성 있는 여름맞이를 하는 모습을 담는다. ■좋은 아침(SBS 오전 9시 10분) 개그맨 이혁재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최근 근황을 방송한다. 이혁재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고 사업까지 실패했고 결국 자금압박에 대한 심적 부담으로 인천대교 위에 올랐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아빠 이혁재가 생애 첫 캠핑에 나섰다. 힘든 일을 겪은 후 처음으로 나눈 아이들과의 속 깊은 대화가 공개된다. ■시스터(EBS 밤 11시 15분) 12세 소년 시몽은 비싼 돈 주고 구한 리프트권으로 스키장을 출입하며 관광객들의 스키 장비를 훔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한편 시몽의 유일한 가족이자 누나인 루이는 동생이 어렵게 벌어온 돈으로 남자들과 놀러다닌다. 생필품을 구하려고 시작된 도둑질이 점점 대담해지면서 스키장 요리사가 시몽이 훔쳐온 장물의 중간책 노릇을 하게 된다. ■비커밍 제인(OBS 밤 11시 5분) 혼기 꽉 찬 나이에 남자보단 글 쓰는 것을 더 좋아해 부모님의 골칫거리가 된 제인 오스틴 앞에 부모님의 잔소리보다 더 신경 쓰이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톰 리프로이. 겸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함을 가진 최악의 남자다. 그녀는 우연히 마주치는 그와 티격태격 신경전이 계속되지만, 이 느낌이 왠지 싫지만은 않다.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광화문의 어제:육조거리의 부활을 기다리며 조선시대 국가의례·행사 열린 정치·행정·문화의 중심광장 세종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에 해당하는 국가 중심도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사료에는 육조대로, 주작대로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다. 주요 행정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6개 관청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육조(六曹)거리라고 불린 듯하다. 흔히 어가(御街)라고 지칭됐으며 일반인들은 육조거리, 육조 앞, 해태 앞이라는 지명을 주로 썼다. 관청가인 육조대로가 세종로의 본디 이름인 셈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의정부와 삼군부, 육조, 한성부, 사헌부 등 주요 관청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육조거리에는 광장의 개념까지 포함됐다. 국가의례나 문화행사가 열리는 정치·행정·문화의 중심 광장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폭 58m, 길이 200m의 큰길이었다. 노면이 고르고 배수가 잘 됐으며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멋진 길이었다. 중국, 일본의 사신이나 개항 이후 방문한 백인 외교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수선전도, 조선경성도 등을 보면 육조거리의 관아는 위계에 따라 배치됐다. 의정부가 광화문 왼쪽 맨 앞자리인 현재의 광화문 열린 광장 자리에 있었고 이조, 한성부, 호조가 뒤를 이었다. 반대쪽 정부서울청사 쪽에는 삼군부, 예조,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차례로 터를 잡았다. 서울역사문화연구소 이상협 소장의 논문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대한 고찰’을 보면 의정부와 예조 등 모든 관아가 육조거리에 직각 방향으로 있으며 육조거리의 공간 구성과 관아 배치는 경복궁에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있는 공간 구성의 틀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조성 당시의 배치 구조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다만 1900년대 전후에 촬영한 사진과 관아 그림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양쪽의 긴 담장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긴 행랑 때문에 육조를 흔히 육조장랑(六曹長廊)이라고도 지칭할 정도였다. 일제는 조선의 행정관청인 육조라는 명칭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거리 이름을 광화문통으로 바꿨다. 육조장랑은 뜯겨 나갔고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1926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 신청사를 짓자마자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해체해 건춘문 옆으로 옮겨 버리고 나서는 총독부 광장이라고 호칭했다. 어용 군중집회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다. 미 군정기에는 군정청이 입주하면서 군정청 광장이라고 불렸다. 정부 수립 기념식이 개최됐다. 해방을 맞았지만, 육조거리로 복권되지 못하고 세종로라는 이름이 붙여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리를 광화문이나 광화문광장이라고 즐겨 부른다. 세종로라는 작위적 지명보다 현존 구조물인 광화문이 더 친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 번이나 옮겨지고, 두 번이나 불탄 광화문 수난사가 마음속에 새겨진 탓인지도 모른다. 이름 하나가 역사적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1946년 해방 직후 구성된 지명위원회는 국가 중심가로의 역사성을 간과했다. 일제가 붙인 광화문통을 세종로로 바꾸는 데 급급했다. 육조대로라는 지명을 원상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세종로가 100m의 도로폭을 갖게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맥아더의 호언장담처럼 종전 후 서울도 이상적인 도시계획의 기회를 잡았다. 1945년부터 1956년까지 11년 동안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맡은 한국인 1호 도시계획가 장훈씨가 1952년 고시된 최초의 서울 도시계획에서 광화문사거리~중앙청까지 500m 길이 도로의 폭을 기존 53m에서 100m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폭 12m에 길이 2750m이던 청계천을 폭 50m의 도로 부지로 확장해 오늘의 청계천을 있게 했다. 광화문광장, 시청 앞 광장, 숭례문광장 등 주요 광장 부지도 확보했다. 대담한 도시계획에 맞춰 건물과 토지를 매수하고 수용해야 했지만 서울시의 재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내버려둘 수도 없고 매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민원이 빗발치자 가건축 허가를 내줘 가건물을 짓도록 했다. 도로 확장은 1966~1979년 계획대로 실행했지만, 광장 부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세종로사거리를 기점으로 반지름 150m의 광장이 계획대로 실현됐다면 현재의 동아일보 사옥과 광화문 우체국, 교보빌딩과 KT빌딩은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건설부고시에 따라 광화문광장계획선은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세종로와 태평로를 연결하는 광장계획선 안에 일부 건물이 건재하다. >>광화문의 오늘:주요 건물의 부침사 정부서울청사 옛 삼군부·예조 자리에… 개인건물은 4채뿐 광화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대한민국역사박물관·주한미국대사관·KT빌딩·교보빌딩·비각이 차례로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정부서울청사와 별관·세종로공원·세종문화회관·삼보빌딩·현대해상화재·세광빌딩 등이 자리 잡았다. 폭 100m, 길이 500m의 광장구조 거리에 공공건물 5채와 대기업 건물 3채, 개인건물 4채, 문화재 1개, 공원 2곳뿐인 쾌적한 구조다. 해방 이후 육조거리를 복원하지 않은 탓에 건물들의 격렬한 부침(浮沈)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세종로를 폭 100m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헐렸다. 먼저 1967년 의정부 자리를 꿰차고 있던 경기도청과 국제전신전화국 일부가 철거됐다. ‘서울 한복판에 웬 경기도청’이냐고 하겠지만, 옛 경기도청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경성부(서울)를 경기도의 일개 지방도시화한 일제가 의정부를 헐어 내고 지은 건물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기억에서 지우기 위한 식민통치의 음모였다. 한 때 치안본부 등으로 쓰였다. 정부는 이 자리에 정부 제2종합청사를 지으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고무된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이 ‘국가 중심가로 구상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정부로부터 매입해 광화문 시민열린 마당을 조성했다. 부지를 지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명칭을 의정부 광장이나 육조마당, 육조광장으로 붙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질책받을 일이다. 서울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도시 개조 사업이 벌어졌다. 이른바 ‘서울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외국 원조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민간 자본이 속속 건물을 지었다. 1961년 10월 완공된 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은 쌍둥이 건물이다. 역사박물관은 이조, 미국대사관은 한성부 터다. 이 건물은 미국대외경제원조처(USOM)가 500만 달러의 원조자금을 대고 필리핀에 건축을 의뢰해 지어졌다. 정부청사용 건물을 짓고도 280만 달러가 남자 건물을 한 채 더 지었는데 여기에 대사관이 입주한 것이다. 역사박물관 건물은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건물로 사용됐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청사로 쓰이다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지난해 448억원의 예산을 들여 역사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전시 내용과 건물의 구조 등이 박물관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KT 광화문 빌딩은 1981년 국제전신전화국 자리에 세워졌고 체신부와 함께 입주했다. 이후 잦은 정부 조직 개편으로 소관 부처가 체신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뀔 때마다 간판을 변경했다. 1998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체신청으로부터 분리, 공사가 된 이후 2002년 민영화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관 당시 체신부가 갖고 있던 이 건물의 12~14층까지 3개 층의 소유권도 방통위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 교보빌딩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건축가 등 전문가 그룹은 ‘짝퉁’ 건물이라고 깎아내리고, 일반인들은 건물 외관의 대형 걸개 글판과 시내 한복판 책방인 교보문고의 존재를 달가워한다. 왜 그렇까? 이 건물의 정체성 때문이다. 일본 도쿄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의 디자인을 빼닮았다는 이유다.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에게 같은 건물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이 디자인을 교보의 전국 지사 건물로 복제했다. 최근 한 건축 잡지는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리스트에 올렸다. 층수와 용도를 둘러싸고 뒤탈도 많았다. 설계 당시 40층을 계획했지만 23층에 그쳤다. 완공 단계에서 정부청사보다 낮은 17층 이하로 지으라고 행정 당국이 종용하자 당시 신용호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완공 단계의 건물을 자르라면…. 내가 광화문 복판에서 배를 자르겠다”는 격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또 용도를 호텔로 변경하라고 권하자 “정부청사 앞에 술과 밥을 파는 숙박업소를 짓는다는 것은 나라 체면을 먹칠하는 것”이라고 거절한 사연도 자서전에 남아 있다. 교보빌딩은 2009년부터 2년 동안 건물의 뼈대만 남겨 두고 건물 옆면 일본식 다다미 모양을 유리로 교체하는 등 리모델링했다. 짝퉁 논란에서 벗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정부서울청사는 1970년 옛 삼군부와 예조 자리에 들어섰고, 별관인 외교부청사는 2002년 옛 교통방송국 터에 자리 잡았다. 1966년에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던 서울전신저금보험관리국, 경찰기동대 순찰반이 헐렸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 자리에 있던 종로보건소와 광화문전화국이 철거됐다. 시민회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지어졌지만 4·19혁명 이후 시민회관으로 이름을 바꿔 1961년 개관했다. 1972년 불타 버리는 바람에 1978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17층짜리 현대해상화재빌딩은 현대그룹의 성장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1976년 현대건설 본사로 지어져 1983년 현대건설이 계동으로 옮겨 가기 전까지 현대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중동특수를 누린 이 건물에 애착이 강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민당 당사로 썼다. 현대해상은 그룹 계열에서 분리되기 직전인 1999년 이 건물을 현대건설로부터 인수했고, 2004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대한민국 심장부에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KT와 교보, 현대해상화재뿐이다. 그보다 엄청난 격랑을 헤치고 최고의 요지에 끝까지 살아남은 개인 빌딩 4채의 존재감이 더 빛난다. joo@seoul.co.kr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 (36)] 공공계약 체결은 민사법원 관할 입찰공고는 변경 허용될 수 없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일방 당사자가 되어 상대방인 사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공공 계약이라 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이하 ‘지방계약법’)에 관한 법률에서는 각각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당사자가 되는 계약에 관한 법률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공공 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 ①국가 등이 사인과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것이고, 이를 규율하는 실체법 또한 사인의 경우와 마찬가지인 민법 기타 사법이며, 계약자유의 원칙, 신의성실의 원칙 등이 적용된다고 보는 견해(사법상 계약설) ②통치권의 행동으로 인하여 체결하는 계약은 행정의 일부분에 해당하고, 공법상 계약에 관해서는 민법뿐 아니라 공법적인 규정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는 견해(공계약설)로 대비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비교법적으로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공공 계약의 공법적 성격을 강조하고, 재판 관할도 행정 소송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국가계약법의 규정 및 판례는 일관되게 공공계약의 성격을 사법상 계약으로, 재판 관할을 민사 법원으로 보고 있다. 오늘 살펴볼 대판 2005다41603판결은 공공 계약의 성격에 대해 논의할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광주시는 그 소유 부동산에 관하여 ‘현 상태대로 매각한다’라는 내용으로 입찰공고를 한 이후, 낙찰자가 선정되고 광주시가 낙찰자로부터 낙찰대금 전액을 받은 다음, 그 계약서 작성 시에 비로소 매각 대상 토지 중 지목이 도로인 1필지를 일반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낙찰자가 불응하자, 광주시는 낙찰자가 10일 이내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입찰을 취소하였다. 먼저, 광주시와의 계약이 사법상 계약의 성질을 가지므로, 계약의 성립 시기는 계약서를 작성한 때에 해당한다(지방계약법 제11조). 따라서, 낙찰자의 결정으로 계약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고, 낙찰자는 지자체에 대해 계약을 체결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데 그친다(대판 94다41454). 이러한 점에서 국가(지방)계약법에 따른 낙찰자 결정의 법적 성질은 입찰과 낙찰행위가 있은 후에 더 나아가 본 계약을 따로 체결한다는 취지로서 계약의 편무예약에 해당한다(대판2002다46829, 46836). 따라서, 낙찰자의 결정으로 예약이 성립한 단계에 머물고 아직 본계약이 성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약의 목적물, 계약금액, 이행기 등 계약의 주요한 내용과 조건은 지자체의 입찰공고와 최고가 입찰자의 입찰에 의하여 당사자의 의사가 합치됨으로써 지자체가 낙찰자를 결정할 때에 이미 확정되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 지자체가 계약의 주요한 내용 또는 조건을 입찰공고와 달리 변경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는 것은 이미 성립된 예약에 대한 승낙의무에 반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될 수 없다. 만약, 공공 계약을 공법상 계약으로 본다면, 위와 같은 경우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 등으로 바로 위법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법상 계약으로 보는 한계로 인하여 신뢰보호의 원칙을 언급할 수는 없으나,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 [포토 다큐 줌인] 섬마을 주민 건강지킴이 병원선 ‘인천 531호’

    [포토 다큐 줌인] 섬마을 주민 건강지킴이 병원선 ‘인천 531호’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변한 진료소 한 곳 없는 섬 마을 주민들이다. 특히 고령자들이 많다 보니 아픈 몸을 이끌고 뱃길로만 3시간 이상 걸리는 병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병을 참다가 더 큰 병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매주 힘찬 항해를 하는 배가 있다. 바로 ‘병원선’이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해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3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 지도(池島). 거친 파도를 헤치고 주민 29명의 섬을 찾아온 병원선 ‘인천 531호’의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요란하다. 접안 시설이 없어 병원선은 섬에서 100여m 떨어진 바다에 정박했다. 병원선이 내린 0.5t 종선이 배와 섬을 천천히 오가며 섬사람들을 열심히 실어 나른다. 조용했던 병원선은 진료를 받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로 북새통이다. 저마다 먼저 진료를 받기 위해 한바탕 순서 쟁탈전이 벌어졌다. 김용숙(81) 할머니는 “뭍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꼬박 이틀 동안 생업을 포기해야 해요.” 섬사람들에겐 병원선이 아니고선 진료를 받기 어려운 까닭이다. 인천시는 병·의원이나 보건소가 없는 섬 주민들을 위해 병원선을 운영하고 있다. 공중보건의 3명, 간호사 3명, 의료기사 1명, 선박지원 8명과 취사원 1명 등 15~16명이 근무 중이다. 선상진료 과목은 내과·치과·한방과 등 3개 과다. 가장 인기 높은 진료과목은 한방과다. 고기잡이로 온몸 어디 한 군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주민들에게 한방은 만병통치약이다. 허리가 불편한 김영덕(73) 할아버지는 “마땅히 치료할 곳도 없는 섬에 병원선이 오면 침도 맞고, 약도 탈 수 있어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채승석(27) 한방과 진료의는 “환자가 많아 힘들긴 하지만 의료진을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튿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강풍이 잦아들어 주민 113명이 사는 문갑도(文甲島)로 출항을 했다. 전날과는 반대로 의료진이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에 올랐다. 주민들이 모두 병원선에 오를 수 없어 마을 경로회관에서 진료를 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한 사람들만 병원선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병원선이 온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경로회관이 떠들썩하다. 주민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속속 모여들었다. 같은 시간, 치과 의사는 문갑도의 분교를 찾아 학생들의 치아 상태를 점검했다. 병원선은 의료진들의 근무지 중에서도 가장 힘든 도서벽지로 분류된다. 때문에 자원자를 모집한다. 주요 임무는 배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섬을 돌며 지역민을 치료하는 것. ‘병원선 사람’들은 1년 중 150일 이상을 배에서 보낸다. 의료업무가 이들의 주 업무이지만 외지인을 접하기 어려운 섬사람들에게 바깥 소식을 전해주며 말벗이 되어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황정진 선장은 “육지와 왕래가 별로 없는 낙도 주민들은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며 “이들과의 대화도 중요한 진료”라고 말했다.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사건으로 공공의료기관의 적자 문제가 전국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현재 전국적으로 병원선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4곳에 불과하다. 병원선도 5척밖에 안 돼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낙도 주민들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황정진 선장은 “경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낙도 주민의 건강과 복지”라며 “공공의료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병원선 사람들은 배가 집이고, 섬사람들이 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병원선 인천 531호의 항해로 좀 더 많은 이들이 건강과 웃음을 찾게 되길 기대한다. 글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씨줄날줄] 위장전입/박현갑 논설위원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라는 고위공직자 검증제도가 도입된 이래 위장전입 규명은 청문회의 단골메뉴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김빠진 맥주같이 취급받고 있다.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 추이,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따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를 가늠하는 잣대로서의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7, 8월에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했다. 부동산 투기 및 자녀 취학용 위장전입 때문이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3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위장전입으로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임태희 노동,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 의 위장전입이 사실로 확인됐거나 의혹이 제기됐으나 통과됐다. 한상대 검찰총장, 김기용 경찰청장은 사과 한마디로 넘어갔다. 현 정부에서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 등이 위장전입 등의 사유로 사퇴했다. 이러는 동안 서민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고위공직 후보자가 되려면 위장전입, 군대 면제, 탈세, 논문 표절 등 이른바 ‘위법 스펙’을 최대한 갖추는 게 유리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가 위장전입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8일부터 가동한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할 때 담당 공무원이 국토부에서 관리하는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을 활용해 주소 이전지역의 거주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전입신고를 받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입신고 업무는 담당 공무원이 신고를 접수한 뒤, 나중에 지역의 통장이나 이장을 통해 전입신고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는 식이어서 위장전입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다 보니 투기 등을 위해 관공서나 임야, 논, 비닐하우스 등 거주가 불가능한 곳에 주민등록을 하더라도 적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투기용 위장전입과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을 같은 잣대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녀 진학을 이유로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학교 배정의 경우, 전국단위 모집을 하는 국제중이 아니라면 강제배정된다. 물론 거주지를 감안하지만, 재수 없으면 집 앞에 학교가 있는데도 버스로 가야 하는 황당한 배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행정이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것으로, 고치는 게 옳다. 고교 진학 시 학교 선택제가 도입된 서울은 위장전입 ‘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중학교 단위에서는 여전히 위장전입을 부르는 요인이 있다.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교는 학군이라는 행정권 중심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으로 배정하는 게 온당하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정중동’ 朴대통령

    ‘정중동’ 朴대통령

    박근혜(얼굴) 대통령이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5일 공식 일정이 없었다. 지난달 30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이날까지 닷새간 박 대통령이 소화한 공식 일정은 3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2개는 호주의 국방·외교장관과 인도 총리특사를 접견하는 외교 일정이었던 만큼 여성주간 행사에 참석한 것이 이번 주 대외 공식 일정의 전부인 셈이다. 주말인 6~7일에도 이렇다 할 공식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 하지만 공식 일정이나 외부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청와대 측은 강조하고 있다. 주말에는 주로 관저에 머물며 청와대 각 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업무보고서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외적인 일정이 없을 뿐이지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보여주기식’ 일정이나 형식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을 앞장서서 진두지휘하기보다는 막후 조정하는 역할에 더 충실하다는 것이다. 대북 정책이 대표적이다. 통일부로 창구를 일원화하는 ‘원 보이스’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박 대통령의 원칙론이 전제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제의에 응한 것과 관련, “북한이 대화에 응한 것은 순리”라고 강조했다. ‘순리’라는 표현에서는 남북관계에서 일정 부분 주도권을 잡았다는 자신감도 묻어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러한 ‘잠행’에 대해 “통치만 있고, 정치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박 대통령이 정책 추진을 위한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정치를 지나치게 멀리한다.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실상 정치 부재, 정치 실종 상태”라면서 “박 대통령이 드러나는 대외 활동, 특히 정치 행보를 좀 더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민생 외면한 혁명의 末路 보여준 이집트

    2년 전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 체제를 종식시키며 ‘아랍의 봄’을 활짝 열었던 이집트가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사상 첫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가 취임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쫓겨나고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을 임시대통령으로 한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수백만 군중의 반정부 시위로 인해 자칫 대규모 유혈사태로 치달을 뻔했던 상황이 수습 국면에 접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오랜 독재 체제에서 비롯된 가난과 분열의 적폐(積弊)를 이집트인들이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 지구촌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군부 쿠데타에 의한 무르시 정권의 퇴진은 이집트가 당면한 총체적 난제의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부재, 지도력의 부재가 혼란을 불렀다. 대내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출범한 무르시 전 대통령은 그러나 집권 후 자신이 속한 강경 이슬람 정파인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고 이슬람 통치를 강화하는 등 독선적 행태를 이어갔다. 율법을 앞세운 ‘파라오 헌법’을 밀어붙이고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사회 통합과 거리가 먼 행보로 다른 정파와 시민들의 불만을 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르시 정권에 대한 군부의 반발은 더해만 갔다. 지난 60년간 정치권력과 이집트 경제의 40%를 틀어쥐고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군부는 지난해 민정 이양 후 무르시 정부가 예상과 달리 자신들에게 강경하게 맞서자 야권 정파들을 움직여 무르시 정권을 흔들었고, 결국 뜻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군부와 각 정파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떠나 도탄에 빠진 민생이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직접적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재정 악화로 인해 빵과 유류에 대해 지급하던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그나마 물량조차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서 민심 이반에 불을 붙인 것이다. 2년 전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내몬 것도 결국 식량위기에 봉착한 성난 민심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정권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의 빛과 어둠 속에서 민주화, 선진화를 이뤄낸 우리로서는 지난 2년여에 걸친 이집트의 혼란이 결코 먼 나라의 얘기일 수만은 없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권과 민생을 소홀히 하는 무능한 정부, 그리고 사분오열된 사회가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몰아넣는지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 역사학자 225명 국정원 사태 시국선언

    국내 역사학자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시국 선언에 동참했다. 하일식 연세대 역사학과 교수(한국역사연구회장) 등 사학계 교수 10여명은 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역사학계 교수 및 강사 225명이 서명한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전국의 역사학자들이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기에 앞서 “현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온 국민이 나서서 책임을 물어야 하기에 ‘격문’ 형식으로 시국 선언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국가정보기관이 최고급 국가기밀을 마음대로 공개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반국가 행위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한 중대한 범죄 행위”라면서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정원의 책임을 묻고 모든 실상을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자료 요구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역사학자, 기록물 관리 전문가의 입장에서 입법 취지와 법 정신에 모두 위배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사법연수원 2년차인 43기 연수생 95명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공소 유지를 엄정히 해달라는 청원 형식의 의견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들은 대검찰청에 낸 A4용지 3장 분량의 의견서에서 “국정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상 최고 통치기구인 대통령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헌정 문란 범죄라는 점을 검찰총장이 충분히 감안해 사건을 정당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집트 軍, 무르시 축출… 쿠데타 논란에 민심 분열

    이집트 軍, 무르시 축출… 쿠데타 논란에 민심 분열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반정부 시위와 군부 개입으로 결국 권좌에서 축출됐다. 군부는 조기에 대선을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쿠데타 논란과 함께 민심도 분열돼 정국은 혼란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CNN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3일 오후(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발표했다. 엘시시 장관은 “무르시가 이집트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아랍의 봄’으로 퇴진한 뒤 지난해 6월 대선을 통해 권력을 잡은 무르시 대통령도 정책 실정과 민심 이반으로 실각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집트 군부는 현행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또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을 차기 대선 때까지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만수르 소장은 4일 취임식에서 “무르시 사임을 촉구한 대규모 시위로 영예로운 혁명의 길을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르시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반발이 거세 정치적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는 축출 발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선출된 대통령이다. 군의 로드맵 발표는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무르시는 측근들과 함께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병영 건물에 억류됐다가 국방부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의 정치적 세력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면 무르시 취임 1주년인 지난달 30일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여 온 수십만명은 이날 발표 후 축포를 쏘며 환호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집트의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군부는 조속히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군이 이른 시일 안에 투명한 절차를 거쳐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전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집트 정국이 시계 제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부와 세속주의자, 무슬림형제단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경우 ‘아랍의 봄’을 능가하는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현지시간)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의 효력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집권 1년 만에, 그것도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끌어내린 것이다. 국영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발표 직후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MB) 핵심 멤버들은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체포됐다. 조기 대선·총선 실시 방침을 밝힌 군부가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게 임시 대통령직을 맡기기까지 겨우 반나절이 걸렸다. 군사독재 타도 30년 만에 얻어낸 민주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 2년 전 과도정부를 세운 군부에 민권 이양을 요구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번 시위에서 충돌을 빚었던 세속주의 야권과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변화무쌍하다. 2년 전 힘을 합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두 세력은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는 서로 비방을 퍼붓더니 무르시가 취임한 이후에는 또다시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이 같으면 허물없는 동지가 됐다가도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상극으로 바뀔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군부의 권력 이양이 늦어질 경우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이집트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과정도 안갯속이다. 현재의 가장 유리한 세력은 군부다.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나기브를 비롯해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까지 네 명의 지도자를 잇달아 배출한 군부는 지금도 이집트 정치·경제·사법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권력 중추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최상위사법기구인 최고헌법재판소(SCC) 모두 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의 40%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60년간 실권을 유지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928년 서구 지배와 왕정정치 타파를 목표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이집트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슬람이라는 정신적 코드를 바탕으로 권력 내부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지지 세력을 보유한 덕에 역대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온건 노선으로 돌아선 무슬림형제단은 급기야 지난해 자유정의당(FJP)을 창당해 제1당에 오르더니 정치 신인인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수세 국면에 놓여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수백만 지지자와 함께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온 다음 정국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재차지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퇴출에 이어 무르시까지 무너뜨린 세속주의 세력 또한 이집트 핵심 권력이다. 야권인 구국전선(NSF)은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현재 야권 내부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콥트 기독교도 등 각계각층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적인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며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경우 군부나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새누리 내부 ‘국정원 개혁론’ 잇따라

    새누리당에서 잇따라 국정원 개혁론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2일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논란에 대해 “국정원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국내 정치 전반에 대한 국정원의 여러 가지 불필요한 간섭이나 네트워크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이같이 말하고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부분들을 정비해야 한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국정원의 대북 파트나 해외·산업 파트는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오 의원도 지난 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 국내 정치 파트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기웃거리고 국내 정치판에 끼어들 때는 이미 지났다”면서 “지난날 군사독재 시절에 통치 강화 목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 수준을 넘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몽준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의 운영을 개선할 것도 제안했다. 정 의원은 “미국 의회 정보위는 16개 정보 기관을 관장하면서 구체적 정보를 보고받기보다는 기관들이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지, 불법적 활동을 하진 않는지 감독하는 일을 주로 한다”면서 “반면 우리 국회 정보위는 정보기관의 정보를 보고받고, 경쟁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일에 치중한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정보위도 합법적 정보수집을 감독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국정원 직원이 국회에 출입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관행부터 고쳤으면 한다”고 국정원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의 부자 세계의 부자/손성진 수석논설위원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시대 영남에서 대표적인 부자 가문이었다. 12대 300여년간 만석꾼으로 살았다.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한 최부잣집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집 안에는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의 ‘육훈’(六訓)이 적혀 있다. 6·25 이후 기업가들은 거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에는 종합소득 신고액으로 부자 순위를 알 수 있었다. 1970년에는 한진 조중훈씨가 1위, 경남기업 정원성씨가 2위, 현대건설 정주영씨가 3위였다. 조중훈씨는 베트남 특수를 타고 1968년부터 내리 4년 1위를 차지했다. 1972년에는 서울통상 대표 최준규씨와 같은 회사 조성곤씨가 일약 1위와 2위로 뛰어올랐는데, 서울통상은 가발제조업체였다. 1973년에는 부산 동명목재 소유주 강석진씨가 1위에 등극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일까.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조사에 따르면 1위는 멕시코의 통신 회사 텔맥스 텔레콤 회장인 카를로스 슬림으로, 재산은 690억 달러에 이른다. 2위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560억 달러), 3위는 미국의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500억 달러)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06위,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161위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미국 ‘셀러브리티 넷워스’라는 곳에서 ‘인류 역사상 세계 최고부자 25’를 발표했다. 1위에는 14세기 아프리카 말리 왕국의 ‘황금왕’인 ‘만사 무사’가 올랐다. 그의 재산은 현재 가치로 약 4000억 달러나 된다. 20년간 통치하며 800여명의 아내를 거느렸다고 한다. 2위는 로스차일드(3500억 달러), 3위는 록펠러(3400억 달러), 4위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3100억 달러)로 매겨졌다. 로스차일드는 독일계 유대 금융자본가다. 로스차일드의 재산은 드러나지 않은 게 많다고 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체이스맨해튼은행이 이 가문에서 만든 은행이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1839~1937)는 생시에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쥔 독점으로 엄청난 돈을 모았다. 얼마 전 재벌닷컴이 매긴 올해 국내 개인재산 순위는 1위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정몽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뒤를 이었다. 부자들의 순위와 재산변동을 보면 두 가지가 느껴진다. 경제는 불황 속에서 헤매는데 억만장자는 매년 늘어나고 그들의 재산도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2세, 3세들의 급부상이다.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이 읽히는 것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 중에 한반도와 국토 및 인구 규모가 가장 유사한 나라는 영국(UK)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영국으로 하여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건설’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상 위대한 통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지도자는 단연 엘리자베스 1세(1533~1603)가 아닐까 싶다. 영국 의회와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추앙을 받았던 여왕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미혼으로 통치권자에 올랐다.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순탄하지 못한 노정도 경험했다. 당시 유럽 국왕들과 혼사를 기피하면서 그녀가 자주 했던 말은 “자신은 영국과 결혼했다”였는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44년간의 오랜 재임 동안 영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달성에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영국을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킨 것이다.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고,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전 세계 무역루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왕이 이토록 강력한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국내 정세 안정에 있다. 영국과 유럽 전역은 신교와 구교 간의 참혹한 종교전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교도였지만 가톨릭 신도와 의례를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과의 ‘통합과 소통’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일궈냈다. 정치적 안정 없이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의 뛰어난 통치스타일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국정운영을 맡겼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윌리엄 세실 경을 중심으로 측근들이 여왕을 보좌했고, 여왕은 그들을 신뢰하고 존중했다. 세실 경은 여왕 즉위 해부터 재임 말기(1598)까지 무려 40년간 최고행정관으로 보좌했다. 그는 종신총리에 가까운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정치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그녀는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I see, and say nothing)는 원칙을 고수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일이 챙기는 것이 아니라 측근들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의 협력과 경쟁이 국정의 활력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여왕은 국익을 위해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을 견지했다. 강한 군대를 육성했지만 섣불리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슬람국가와도 협력했다. 교황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튀르크와 무역협정(15 80)을 맺은 것이 그 한 예다.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여왕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에게 엄정했고 잘못에 솔직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최측근이라도 잘못하면 처벌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기 2년 전에 가진 의회연설에서 정부의 특혜정책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 위기를 솔직함으로 헤쳐 나간 셈이다. 필자를 포함해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는 말과 행동, 의지와 능력이 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간은 늘 사람의 말을 희미하게 만든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여왕이 남긴 “셈페르 에아뎀”(Semper Eadem, 항상 같기를)이라는 모토가 시대를 초월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의지와 각오가 한결같기를 기대해 본다.
  • [사설] 한·중관계, 더 넓게 더 깊게 내실 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동안 전에 없는 환대를 받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물론 일반 국민도 박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따뜻하게 맞이했다. 유구한 동북아시아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여성 통치자라는 희소성과 박 대통령의 개인적 인생역정이 관심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들로서도 이제 한국을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요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첨예한 현안이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북한 비핵화’라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명기하는 데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쉽다는 지적도 있지만, 중국이 북한 문제에 진전된 자세를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정상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논의의 진전을 위해 보다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도 앞으로 협상을 구체화하는 데 적잖은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적 사안에 가려 있지만, ‘한·중 인문 교류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유대를 강화키로 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과거 인문학 교류가 대륙에서 한반도로 일방적으로 흘렀다면, 이제는 쌍방향 교류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경제 영역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임을 확인한 이상 두 나라는 한·중 ‘인문공동체’로서 문화교류 확대의 구체적 결실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한·중이 새로운 동북아 중심시대를 펼치고자 협력하는 마당에도 일본이 여전히 그릇된 과거사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본은 동북아 중심시대를 다시 맞기 위한 두 나라의 노력에 동참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중심국가이다. 하지만 우경화한 역사인식에 휘둘리는 국내 정치 논리에 함몰돼 국제적 시야를 스스로 좁히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국제정세의 지형을 면밀히 살펴 불필요한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이번 박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통해 대국적 차원에서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라는 목표에 한층 근접했다고 본다. 기존 우호 관계를 실질적 협력 관계로 격상시켜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는 국제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양국이 힘을 합쳐 공동의 이익을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의 한·중관계는 내용적으로 더욱 넓고 깊어져야 할 것이다. 두 나라의 미래를 밝히고 국제사회에도 기여하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발돋움하기 바란다.
  •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인 NLL을 넘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공격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월드컵 4강에 오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는 축제일에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의 해군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북한 경비정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화염에 휩싸여 퇴각했다. 꽃다운 청춘의 우리 해병들이 무엇 때문에 희생된 전투였던가. 그들의 피로 지킨 서해 북방한계선이 최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NLL에 관한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공개되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권이 이 발언록을 입수했는지의 진위 여부를 놓고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논의가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NLL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오랜 역사 위에서 정립된 지리적 개념이다. 원래 국가는 일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통치권을 갖추어서 성립한다. 국가인 이상 자국의 영역 안에서는 배타적 지배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이 바로 영토고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로 헌법상 규정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중 실효적으로 국가통치권이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지역도 당연히 우리 영토로 인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의견 대립이 다소 있다. 헌법 제3조는 비록 현재는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휴전선 남쪽에서만 행사되고 그 북쪽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휴전선 북쪽 지역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영역은 구한말의 국가영역 위에 위치한 것이며, 휴전선 북쪽 지역은 소위 인민공화국이 불법 점령한 미수복 지역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록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로 존속하고 있고 평화적 공존과 통일을 위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등에서 특례를 두고 있더라도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북방한계선에 대해 논의해도 그렇다. 헌법 제3조의 국가영역 규정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 관한 논의이므로 모든 국민이 ‘영토권자’의 지위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을 정하지 못하였는데, 이후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한반도 수역에서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예방한다는 취지에서 한국 측 해군과 공군의 초계활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정한 북방한계선이 바로 NLL이다. 동해의 NLL은 육지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기준으로 하고, 서해의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하면서 NLL을 부정,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973년 이후 여러 차례 침범을 하면서 NLL을 부정하고 있으나 좌초된 북한 선박을 NLL상에서 인계받거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에서 NLL을 인정하고 준수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영토권 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한계선인 NLL의 유지·수호는 대한민국 역사의 책무이자 국민의 소임이다. 11년 전의 전투에서 희생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영화가 올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성금 모금에 참여한 국민이 6만명을 넘어섰고,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80%가 20~30대라는 보도도 접할 수 있다. 아무리 정치적 논란이 있어도 지혜로운 국민들은 NLL에서 조국의 미래와 희망을 분명하게 보는 것 같다.
  • [책꽂이]

    영웅 백범(홍원식 지음, 지식의숲 펴냄)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백범 일지’의 사건들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400쪽. 1만 3900원. 활력 경영(정이만 지음, 나남 펴냄) 63시티, 플라자호텔 대표이사를 지낸 저자는 인간 중심 경영을 통해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목표 대비 130%, 200%도 달성할 수 있다는 ‘활력 경영’론을 주장한다. 267쪽. 1만 4000원. 길에서 별을 만나다(유별남 지음, 이마고 펴냄) 10여년간 사막이나 고산지대, 분쟁지역을 오간 사진작가 유별남의 편지와 사진을 엮었다.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길 위의 삶이 담겼다. 240쪽. 1만 5000원. 제왕들의 사생활(윌 커피 지음, 남기철 옮김, 이숲 펴냄) 제왕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 유쾌한 역사서.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페리클레스, 네로 등 그리스·로마의 통치자, 루이 14세 등 유럽의 군주까지 제왕 20여명의 삶을 소개했다. 328쪽. 1만 5000원. 셜록 홈즈 추리파일(팀 데도풀로스 지음, 윤금현 옮김, 보누스 펴냄) 150개의 미해결 사건을 제시하고 독자가 직접 이를 풀어내도록 유도한다. 수학적 사고를 추상화한 책의 화법이 돋보인다. 300쪽. 1만 2800원.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신동삼 지음, 눈빛 펴냄) 전후 북한과 관련된 500여장의 컬러 사진을 복원해 수록했다. 망명한 북한 유학생 출신 신동삼(83) 선생이 함흥시 재건 현장과 북녘 산하, 문화재 등의 모습을 전한다. 488쪽. 2만 9000원. 사랑은 왜 아픈가(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펴냄) 감정사회학의 대가인 에바 일루즈의 역작. 오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성 간 사랑의 이면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이 빛난다. 부제는 ‘사랑의 사회학’. 556쪽. 3만원.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테드 코언 외 지음, 문은실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야구와 철학을 접목한 통섭적인 서술이 독특하다. 테드 코언 시카고대 철학과 교수 등 20명의 필진이 야구사의 흥미로운 사건과 비화를 끄집어내 철학적인 해답을 찾는다. 422쪽. 2만원. 열녀전(유향 지음, 이숙인 옮김, 글항아리 펴냄) 동아시아 2000년 역사에서 고전의 권위를 누려온 열녀전의 완역본. 기존 문헌 속 인물을 선별해 편집하는 대신 저자가 이야기를 변형시켰다. 역사와 서사, 사실과 허구가 섞였다. 712쪽. 2만 9000원. 하루 한 끼의 기적(이태근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MBC다큐멘터리 ‘기적의 사나이’의 주인공이 전하는 1일 1식의 기적. 신장이식을 했던 저자는 1일 1식으로 28년간 약을 끊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8쪽. 1만 2000원. 밤의 인문학(밥장 지음, 앨리스 펴냄) 늦은 밤 ‘바’에서 벌어지는 인문학의 아라비안나이트. 인문학의 접근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도와주는 도서 지침서. 저자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읽어온 책의 기록이다. 300쪽. 1만 5000원. 상인 이야기(이화승 지음, 행성:B잎새 펴냄)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호령한 중국 상인사. ‘사기’의 화식열전에 실린 범려, 자공, 백규와 같은 상인들의 경영전략이 담겼다. 국내 학자가 처음으로 집대성한 중국 상인의 성장사다. 384쪽. 1만 8000원.
  • [당신의 책]

    엄마 에필로그(심재명 지음, 마음산책 펴냄) 온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던 엄마를 떠나보낸 딸이 7년이 지나서야 마음속에 담아뒀던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야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슬픔이 옅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접속’부터 ‘건축학 개론’에 이르기까지 한국 흥행영화의 계보를 쓴 제작자 심재명이 엄마 얘기로 첫 책을 냈다. 나이 오십에 문득 지금 내 나이의 엄마를 생각하는 첫 대목부터 60년 넘은 엄마의 숟가락을 유품으로 간직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떠나보낸 뒤에야 깨닫게 되는 엄마의 한없는 사랑과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절절하게 다가온다. 176쪽. 1만 1500원. 티베트 비밀역사(박근형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우리나라 학자가 쓴 첫 티베트 통사다. 티베트와 우리는 역사적으로 별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고려시대 몽골을 통해 건너온 티베트 불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묘사된 티베트와 청나라의 모습 등을 통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쓰촨(四川)대학에서 티베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개국 신화부터 반중 독립운동까지 우리가 미처 몰랐던 티베트 역사를 폭넓게 서술한다.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승려들의 잇단 분신 등 외신으로 전해지는 단편적 정보 이면에 놓인 티베트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그들의 강렬한 독립 열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살펴본다. 564쪽. 2만 9000원. 중국화하는 일본(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눈길을 끄는 제목만큼 독창적인, 또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의 소장파 학자이자 아이치현립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동일본)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일본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으로 당나라 때까지는 중국을 의식적으로 모방하려 한 일본이 송나라 때부터는 중국의 것을 별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은 송나라 때 이미 기술적으로나 사상적 측면에서 서양의 근세 수준에 도달했으며 현재 중국의 부상 역시 이른바 “세계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면서 일본이 1000년 전에 글로벌 스탠더드인 중국화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면서 이제라도 중국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일본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310쪽. 1만 4800원. 사물의 역습(에드워드 테너 지음, 장희재 옮김, 오늘의 책 펴냄) 인공 젖꼭지는 턱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빨아도 우유가 나오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렇게 인공 젖꼭지 수유 습관에 젖은 유아는 본능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지 않으려 해서 정작 모유 수유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전장에서 부상을 막는 군사 도구로 사용됐던 헬멧은 광부, 건설 노동자, 소방관 등의 안전을 지키는 도구일 뿐 아니라 영유아의 질식 위험을 낮추는 동시에 뒤통수가 눌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아 헬멧의 특이한 형태로 발전했다. 국립미국사박물관의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이 외에 운동화, 안락의자, 건반, 안경 등 인류가 고안하고 발전시킨 9가지 물건에 얽힌 숨겨진 기발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408쪽. 1만 6500원.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英 왕실도 쓰는 ‘명품’ 안동포 명맥 끊기나

    英 왕실도 쓰는 ‘명품’ 안동포 명맥 끊기나

    경북 안동을 대표하는 특산품인 안동포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원료인 대마(삼) 재배면적 및 기능인력이 갈수록 줄고 있어서다.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던 안동포는 백화점과 영국왕실에 공급될 정도로 명성을 자랑한다. 특히 ‘이승’에서 실컷 못 입어 ‘저승’까지 입고 간다는 안동포 수의는 한 벌에 보통 500만~600만원을 호가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안동포 황금수의는 무려 4000만~5000만원이나 나간다. 28일 안동시에 따르면 올해 수확철을 맞아 지역 임하·서후면 일대 대마 재배 16개 농가가 3㏊에서 한창 수확을 하고 있다. 1㏊에서 대마를 수확할 경우 삼베 380필(1필은 가로 35㎝ 길이 22m) 정도를 짤 수 있다. 삼베 1필로는 도포 1벌과 저고리 한 장을 짜는 게 가능하다. 수의 한 벌을 짜려면 5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배 면적은 불과 5년 전인 2008년(30㏊)보다 10분의1로 급감했다. 1970년대에는 가가호호 대마를 재배해 면적이 110㏊를 넘었다. 또한 삼굿(삼을 찌는 구덩이나 솥)을 이용해 삼을 찔 때면 대마 장터가 성시를 이뤘다. 이와 함께 안동포를 짜는 부녀자들이 고령인 데다 전수받는 이가 거의 없어 제조 기술도 단절될 형편이다. 현재 안동에는 안동포 기능 보유자가 250~300명에 이르지만 이들의 평균 연령이 80세 이상이라고 시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에 따라 시는 올해부터 ‘전통 빛타래 길쌈마을’ 조성 사업을 통해 안동포 마을 살리기에 나서는 한편 안동지역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삼 훑기-삼 삼기-베 매기-베 짜기 등 생산 전 과정을 교육하는 안동포 기능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호응이 신통치 않아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마 재배 면적 및 안동포 기능인력이 크게 감소하는 것은 까다로운 재배 및 가공 방식, 값싼 중국산 삼베 수입 등 때문이라는 것. 안동포는 1명이 연간 고작 10필 정도를 짤 수 있는 데 반해 총 수입은 750만원(재료비 포함) 정도로 미미하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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