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통치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도널드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아리아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요즘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있지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655
  • [글로벌 시대] 시진핑의 중국 대개조/민재홍 덕성여대 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시진핑의 중국 대개조/민재홍 덕성여대 중문학과 교수

    중국 시진핑은 신년 회견에서 2015년 춘제(春節) 메시지로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의거해 나라를 통치)을 제시했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주요2개국(G2)의 반열에까지 올라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중국이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국민들의 문화 의식 낙후, 준법 의식 결여, 부정 부패, 극심한 빈부 격차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문제들로 인해 명실상부한 선진사회 진입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춘제 메시지는 관시(關係)가 아닌 법과 시스템에 따른 원칙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시진핑의 강력한 의지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2014년 세계부패지수에서 중국은 175개 국가 중 100위를 차지할 정도로 부패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저우융캉(周永康)으로 대표되는 고위 관료들의 부패와 축첩, 관언 유착, 지방 하급 관리들의 부정 축재들이 사회 깊숙이 만연해 있다. 최근 거액의 뇌물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한 부패 관료의 뇌물 수수액은 무려 63억원에 달하고, 중국의 최하위급 관리인 촌관(村官)들도 국가보조금 횡령, 강제철거 주택 빼돌리기 등으로 거액의 불법 자금을 만들 정도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진핑은 부패와의 전쟁, 호화 사치 금지령을 선포했다. 공무원들의 회식 제한, 유흥업소 출입 금지 등으로 술 매출이 줄고, 고가의 선물 금지로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고급 의류, 가방과 같은 명품 소비가 줄고 카지노와 골프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으며, 5성급 호텔도 도산하는 등 사회 정풍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인의 시민의식과 도덕의식에 대한 시진핑의 강력한 중국 대개조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공무원 골프금지 등 개혁적인 조치와 이전 군사정권하에 만연하던 권력 부패와 비리 척결을 통해 신한국 건설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당명도 신한국당이라고 바꿀 정도였으니 말이다. 현재 시진핑의 중국도 대대적인 사정과 뇌물 수수 금지, 권언(權言) 유착 금지 등을 통해 신중국을 건설하고 있다. 정치적·역사적 관점에서 1949년 10월 1일 출범한 중국 대륙의 공산당 정부를 신중국이라고 칭하는데, 2015년 시진핑 중국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문화적·의식적 수준의 신중국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 후진타오(胡錦濤)로부터 모든 힘과 권력을 물려받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고, 시진핑이 모든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반부패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시진핑에 대해 궁지에 몰린 부패 관료들의 역습이 있기도 하다. 저우융캉은 시진핑 암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탐관오리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중국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역시 여러 번 암살 시도를 당했고 청산가리가 담긴 연하장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는 이미 공고해졌고, 개혁과 여유가 함께 뒤따르고 있다. 올 초 시진핑이 신년 인사를 할 공산 원로 100인의 명단에는 정적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자신의 정치 철학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국가 대개조를 주창했다. 현재 진행되는 중국의 대개조는 부패 척결과 사회 정풍을 통해 중국인의 의식과 수준을 대개조하는 차원이다. 중국이 이를 통해 경제 발전 속도에 걸맞은 국민 의식과 문화 수준을 갖춘 명실상부한 선진 중국으로 도약할지 기대된다.
  •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으로 분단 70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원년이기에 3·1절의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온 민족이 남녀노소, 신분과 나이, 종교와 지역을 넘어 하나가 돼 외쳤던 3·1 만세운동은 조국의 독립뿐 아니라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 조화와 통합 이념을 구현한 위대한 민족유산이다. 특히 70년 동안 분단된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영토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3·1정신의 소중한 시대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국권 강탈과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조선총독부의 무력통치 및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민족의식과 항일독립 투쟁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에 따라 시작된 3·1 만세운동은 수개월 만에 전국 각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운동은 일본·만주·연해주·미주 지역 등 국외에서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만세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하거나 부상과 옥고를 치른 분이 7만여명에 이른다. 3월 1일부터 3개월간 국내외에서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전개됐고 참가 인원은 200만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역사 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은 중국 길림의 대한독립선언과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에 이어 일어난 최고의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된 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 또한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 정세와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선열들의 숭고한 저항이 반영된 혁명이다. 미국 월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와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는 국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독립운동단체에 일제 침략의 불법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한청년당에서는 당시 김규식을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고 국내와 일본, 만주와 연해주로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보내 독립 시위를 크게 전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됐고, 필리핀·이집트 등 세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3·1정신은 우리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늘날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요,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이념인 것이다. 96년 전 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 선열들의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과 튼튼한 국가와 번영된 통일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오늘날 국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고 지난 70년의 이념 대립과 분단 갈등의 고리를 끊고 국민 통합을 이뤄 미래와 통일의 문을 열어 가는 소중한 민족유산으로 간직하자.
  • 무려 18cm...담뱃재 떨지 않고 시가 피우기

    무려 18cm...담뱃재 떨지 않고 시가 피우기

    쿠바에서 열린 담뱃재 떨지 않고 시가 피우기 대회에서 쿠웨이트 남자가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완벽한 흡연'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시가 피우기 대회는 2월 23~27일(현지시간) 개최된 17회 시가 페스티발의 부대행사로 열렸다. 세계에서 모여든 시가 애연가 200명이 참가한 대회에선 쿠웨이트 남자 알리 알라미가 우승했다. 알리 알라미는 길이 180mm짜리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45분 동안 11mm를 남기기까지 재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쿠바의 여기자 올리비아 테리는 2연패를 노렸지만 올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0cm를 태웠을 때 담뱃재를 떨궈 일치감찌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담뱃재 떨지 않고 시가 피우기 대회가 페스티발의 부대행사로 열린 건 2014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한편 시가 페스티발 폐막식엔 영국의 세계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 미국의 패리스 힐튼 등 서방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화제가 됐다. 셀카봉을 갖고 폐막식에 참석한 패리스 힐튼은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의 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와 셀카를 찍어 또 다른 화제를 낳았다. 중남미 언론은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이 쿠바의 시가 페스티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보도했다. 개최 측에 따르면 올해 시가 페스티발에는 세계 60개국에서 1600여 명이 참석했다. 폐막식에 앞서 페스티발에선 쿠바에서 생산되는 고급 시가 경매가 열렸다. 중남미 언론은 "총 170만 달러(약 18억7000만원)의 경매수익이 났다."면서 "수익금은 전액 국민보건의 예산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에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3개 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후보자를 지명했다. 그중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2명이다. 모두 임명되면 현 정부의 국무회의 구성원 20명 중 여당 의원이 국무총리와 부총리 둘을 포함해 6명이 된다. 인사청문회 부담을 감안했겠지만 내각제형 정부 형태의 시도로 볼 만하다. 국가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시원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다. 그러기에 특정 정책 사안을 놓고 국가의 통치 권력을 분담 행사하는 국회와 정부, 법원 등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시차적으로 국회의 입법이 선행되고 정부가 정책을 집행한 후 법원의 판결이 있을 경우 최종 확정되지만, 입법과 정책은 대체로 같은 방향이다. 그런데 국가의 각 기관은 가치관과 성향 등이 천차만별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매사 만장일치 결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일 의사를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해 우리 헌법은 각 통치 기관의 의사형성 방법을 직접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 대해서는 헌법 제49조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법률로 특별히 달리 정하려면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수반’이라 함으로써 대통령의 결심이 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여기에서 정부의 공무원들은 상관의 합법적인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파생된다. 법원에 대해서는 헌법 제101조에서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명시함으로써 대법원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각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지만 개별 사안에 관해서는 상급 법원 판결에 기속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113조에 따라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하므로 역시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이처럼 각 기관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밟더라도 외부로는 하나만 표시돼야 한 인격체인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모든 국가 기관에 공식 의견을 발표하는 대변인을 두는 논거이기도 하다. 소송이 제기돼야 시비를 가리는 소극적 입장의 법원과 달리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선출된 권력이므로 공약 사항을 정책으로 실행해야 하는 적극적 입장에 있다. 정당의 이념에 따라 지향성 차이는 있지만 국회와 정부는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을 독점했던 왕으로부터 입법권과 행정권을 차례로 찾아온 입헌군주제 국가 대부분이 의원내각제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제헌 헌법 초안에는 내각제였으나 막바지에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 중요 국책을 국무원에서 ‘의결’토록 하고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막지 않은 것은 두 제도의 절충물이다. 여당 의원이 국회 과반수이면 국회와 정부의 의사를 하나로 만들기 쉽다. 그러나 대립형인 우리나라 대통령제하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늘 협조적이지는 않다. 더러 긴장 관계가 조성되는 이유는 5년 단임의 대통령과 4년의 연임 제한이 없는 국회의원 임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 의원이더라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부 비판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즘 어딜 가나 대로변 목 좋은 곳에는 정당의 현수막이 경쟁하듯 걸려 있다. 이미 정부의 부처 이름이 거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 국정의 추동력이 정부로부터 정당 또는 국회로 사실상 넘어간 정치과잉 시대의 정부3.0 모습이다. 정부의 존재감이 급격히 줄어드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차라리 국무위원 모두를 여당 의원으로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국가 의사의 단일화 및 책임행정 구현 측면에서는 장점이 많을 것 같다. 또한 대통령 재임 중 정부와 여당은 실질적 운명공동체가 돼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현행 헌법하에서도 가능하므로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정당도 내각제형 정부의 예비내각을 염두에 두고 분야별 전문가를 적극 찾아 공천할 것이다. 다만 ‘공직선거법’상 총선 전에 국무위원을 사임해야 하는 문제는 있으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운영의 묘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 ‘절대적 진리’ 갑옷 벗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

    ‘절대적 진리’ 갑옷 벗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

    민주주의의 수수께끼/존 던 지음/강철웅·문지영 옮김/후마니타스/354쪽/1만 8000원 지구촌 대세의 통치 시스템이라는 민주주의를 더 좋은 쪽으로 바꾸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나 현장의 몸부림은 꾸준하다. 하지만 정작 대안적 차원의 실체 규명을 위한 속살 해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거개가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가치를 의심할 여지 없는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동지인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찬양이나 절대 지지의 개념이 아니었고 아테네 이후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어떤가.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많은 이들이 ‘이상적 통치 시스템’으로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를 비틀어 들여다봤다. 제목처럼 수수께끼 같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차근차근 털어내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민주주의가 탁월한 지위를 얻게 된 까닭을 묻는다면 대개 두 부류의 답을 낸다. 첫째는 자명한 정치적 정의(正義)다. 민주주의가 명백히 최선이며 인간이 ‘지배받는다’는 외견상의 모욕을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명료한 정당화의 유일한 근거 차원이다. 둘째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잘 보호되면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본래 민주주의는 지배구조를 분명하고 확고하게 특정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들어 그런 이유를 다 거부한다. 그러면서 아테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 시대와 지금 사이에 민주주의의 의미가 급격히 변한 까닭은 정치적 기대의 엄청난 변천 탓이라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자본주의적 대의민주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건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기대 수준의 하락과 서구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필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데모크라시(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정치적으로 특정 세력을 이롭게 하기 위한 통치 시스템이었을 뿐이다.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도입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덕적·지적 확신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그저 경쟁세력 견제에 필요한 지지 확보 차원의 편의적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썼던 것으로 풀이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테네의 몰락 이후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입에 담기조차 꺼렸다는 점이다. 이 같은 금기의 민주주의는 역사가 투키디데스, 철학자 플라톤,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됐다. 아테네에서 생애의 상당 부분을 보낸 세 사람은 지배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한 신봉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플라톤은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만난 유례없이 혹독한 비판자”로 책에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싫어했음은 당연해 보인다. 대의제 민주주의 모델의 창시자라는 매디슨이나 슘페터가 ‘정치인에 의한 지배’를 말했을 뿐 출발점에선 민주주의를 부정한 사실도 들춰진다. 민주주의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테네 몰락 후 2000년이 지난 17세기에 들어서였다. 홉스와 스피노자가 민주주의를 다시 꺼내 든 대표 사상가로 평가된다. 18세기 초입까지도 민주주의는 매우 저급한 수준의 단어였지만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의 거대한 정치적 파고가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책 속 ‘민주주의 이야기’는 옹호나 폄훼, 그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다. 대신 ‘당연한 인정’이 아닌 ‘이유 있는 규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결말은 역시 발전적 대안을 위한 노력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가장 끈덕지게 내세우는 제도이며 그런 주장에 일말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제도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태극기 뒤에 숨은 ‘가짜 애국심’/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태극기 뒤에 숨은 ‘가짜 애국심’/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연수 중에 여권이 만료돼 워싱턴DC의 주미 한국대사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사관을 나오는데 정문 앞에 태극기가 푸른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촌스럽게도 울컥했던 탓에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기념사진을 찍었다. 외국에 나가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심사를 이해할 만했다. 주미 참사관으로 두 번째로 미국에 간 이완용은 1889년 5월 8일 미국 워싱턴DC의 대한제국 공사관 현관 앞에서 이하영 서리 전권공사, 고종의 어의였던 앨런 참찬관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사관 건물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연세대박물관이 보관 중인 127년이 지나 노랗게 빛바랜 작은 흑백 사진에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직 국권을 잃지 않은 나라의 관리로서의 당당함을 상상하게 된다. 짐작건대 애국심이 넘쳐났을 것이다. ‘조선의 엘리트’였던 이완용은 자신이 21년 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된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요즘 애국심은 국가대표들이 겨루는 A매치 축구 경기에서 흔히 드러난다. 월드컵 경기든, 친선 경기든 표범처럼 늘씬한 몸매의 기성용이나 손흥민 등이 푸른 잔디밭에서 거친 태클을 가볍게 뛰어넘어 슛을 할 때면 사람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땅을 친다. 해외 여행길에 한국인들은 외국의 어느 길거리에서 현대차를 만나거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옥외 간판을 만날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할 것이다. 한국이 많이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배낭여행 중에도 한국의 외교관들이 있는 외국의 건물 앞에서 바람에 무심하게 흔들리는 태극기를 보고도 가슴이 출렁할 것이다. 나쁜 기억도 있다. 1970년대 국기 하강식이다. ‘얼음 땡’이 돼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들었던 경험은 40대 이상의 한국인은 누구나 있다. 볼일이 급한데도 국기 하강식에 붙잡혀 꼼짝하지 못할 때는 태극기나 애국은 그저 귀찮은 강요가 돼 버리고 만다. 영화관에서는 애국 뉴스인 ‘대한뉴스’를 보고 애국가가 나오면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경배를 해야 했다. 미국인들이 성조기로 팬티를 만들어 입을 때, 한국인은 태극기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태극기가 훼손되면 처벌까지 받았으니 귀찮고 달갑지 않았다. ‘유신 시절에 강요한 국기 하강식이나 영화관의 의례가 사라졌지만, 애국심이 줄지 않았다고 입증한 시점이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몸에 둘렀고, 초대형 태극기가 관중석에서 흔들렸으며, 국민은 열광했다. ‘관제 애국’을 강요하지 않아도 애국심은 줄지 않았다. 사회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19세기 인도네시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극장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물리적인 공권력과 감시뿐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상징과 의례, 문화예술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국가를 전체주의로 운영하는 극단적인 방식을 말한다. 대표적인 극장국가인 북한은 1930년대 항일투쟁을 전면적으로 활용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백두혈통’을 강조해 3대 세습의 전근대적 통치를 정당화한다. ‘민주공화국’인 한국에서도 최근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와 같은 애국심의 강조다. ‘태극기 게양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가 국민에게 애국을 강요하겠다는 의도 같다. 때마침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에는 대형 태극기가 나붙기 시작했다. 관공서도 있고 민간 기업도 있었다. 행정자치부는 26일 광복 70주년 3·1절에 맞춰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광화문 길 양옆으로 쭉 걸린 대형 태극기에서 대한민국 서울의 특별한 아름다움도 찾기 어렵다. 마치 이상한 전체주의 국가 같고 유치하다. 태극기나 애국심을 국가가 전유하고 강요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이 공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 자격을 갖췄다는 뉴스를 어제 들었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충역으로 군 복무를 끝냈다. 미국 군수업체에 군사기밀을 팔아넘겨 25억원을 챙긴 전 공군 참모총장에게 겨우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한국의 장관 후보자는 국가 운영의 능력을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통해 보여 줘야 한다. 태극기를 내걸어 애국을 입증한다면 한국에서 애국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symun@seoul.co.kr
  •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 독립선언은 재일(在日) 조선인 유학생들이 제국의 심장인 도쿄 한복판에서 독립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뒤에는 ‘일본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한 일본인 변호사의 조력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후세 다쓰지(1880~1953).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의 조선인을 위해 변호에 나서는 등 식민지 시대 많은 조선인을 도운 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후세 변호사는 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 25일 후세 변호사의 외손자인 오이시 스스무(80)를 만나 2·8 독립선언 사건 당시의 상황과 후세 변호사의 치열했던 삶에 대해 들었다. 1980~2008년 출판사 일본평론사의 사장·회장을 역임한 오이시는 2010년 한국에도 번역 출판된 ‘후세 다쓰지와 조선’을 비롯해 4권의 책을 펴내는 등 할아버지의 삶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후세 변호사가 2·8 독립선언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할아버지는 항소심부터 관여했다. 기소된 한국인 유학생의 친구가 찾아와서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중국과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더군다나 유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맡게 된 것 같다. 2·8 독립선언은 나도 감동할 정도로 훌륭하다. 학생들은 어두운 역사에서 맨 처음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2·8 독립선언에서 유학생들이 대한제국의 부활이 아닌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것에 주목했다. 거기에 동조해 그들을 동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8 독립선언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나. -그해 음력 정월은 2월 1일이었다. 8일의 독립선언은 새해 축하를 끝낸 조선인 유학생들이 체포를 각오하고 감행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특별고등경찰(일본 구 경찰 중 정치·사상 관계를 담당)의 주목 대상이었다.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그들은 그날 오전 한글, 영어, 일어로 쓰여진 독립선언문을 몰래 각국 대사관과 신문사, 학자 등에게 보냈다. 오후 2시 간다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을 선언했다. 경찰에 의해 즉시 해산됐고 체포자가 나왔다.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뿌린 것이 출판물의 인쇄·발행·배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출판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후세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을 때의 상황은. -재판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8일 체포돼 10일 기소, 15일 1심 판결, 3월 21일 항소심 판결, 6월 26일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상고심까지 끝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반일 사건의 처리는 길게 끌수록 통치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대개 즉결 처리했다. 기소된 9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내란예비죄가 아니라 출판법으로 기소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항소심에 관여하기 전 1심을 담당한 두 명의 변호사는 ‘국헌 문란이기 때문에 유죄를 인정하지만 젊은이들이니 집행유예를 부탁한다’, ‘조선은 일본에 합병됐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일본이라는 본가의 행랑방을 빼앗은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의 국체가 붕괴되는 일은 없다’며 감형을 호소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그들을 나무랐다. 할아버지는 당국의 온정을 바란 것이 아니라 2·8 독립선언을 한 청년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19년 일본은 러시아 소비에트 정권에 붙잡힌 체코군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시베리아를 침공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논리를 역이용해 “체코의 독립을 도왔던 일본이 왜 조선의 독립은 돕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하며 피고인석과 방청석을 열광케 했다고 한다. →조선인과 대만인 등 식민 치하의 국민들을 도우면서 후세 변호사는 두 번의 변호사 자격 박탈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할아버지는 기독교(그리스 정교) 세례도 받았지만 그전에 중국 묵자를 공부했다. 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이웃의 아픔은 곧 자신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할아버지의 주변에서 가장 아파하는 사람이 우연히도 조선인이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조선인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조선인이 당시에 매우 귀했던 우유를 공짜로 넣어주거나, 집마다 1명씩 차출되는 방공훈련을 할아버지 대신 해준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와 조선인 간에는 마음의 이어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다큐멘터리도 제작됐지만 아직 후세 변호사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동의한다. 할아버지가 좌익이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여든 살이다. 나처럼 할아버지가 한 일을 후세에 전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전전, 전후에 대한 역사가 제대로 평가된다면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한 일도 평가받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도 식민 지배와 관련된 청산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어려운 문제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전체의 틀을 보지 않고 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개별 문제를 놓고 무엇이 사실인지 일일이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틀리기 쉽다. 더 큰 틀에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식민지배와 관련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의 식민 지배, 아니 그 이전에 청일전쟁이 끝난 뒤 명성황후 시해부터 시작된 역사에 대한 사죄나 배상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서 경제협력이나 무상지원이 실시됐지만 그런 정치적인 조치 말고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사죄나 배상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이 독일과 다른 점이라고 본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한국인은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사진 가마쿠라(가나가와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현존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 포항 중성리 신라비 국보로

    현존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 포항 중성리 신라비 국보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추정되는 경북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황룡사 구층목탑의 수리 내력을 적은 신라대의 찰주본기(刹柱本記)는 발견 반세기 만에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26일 찰주본기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최근 경기 이천 영원사에서 발견된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 조성 내력기인 금동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 등 1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1면 12행에 걸쳐 모두 203자를 새긴 것으로 제작 시기는 지증왕 2년(501)으로 추정된다.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와 지방 통치, 분쟁 해결 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 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알려주는 내용을 담아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2년 보물 1758호로 지정된 뒤 이번에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 예고됐다.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 찰주본기는 경문왕 11년(872) 구층목탑을 중수하면서 이 탑의 건립 과정과 중수 과정을 적은 국보급 유물로 평가되지만, 이제야 보물 지정이 예고됐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데스크 시각] 폐쇄회로 TV가 만병통치 ‘약’인가/한준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폐쇄회로 TV가 만병통치 ‘약’인가/한준규 사회2부 차장

    “여기 폐쇄회로(CC)TV의 사각지대가 어디예요.” 올해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어린 자녀를 맡기는 부모들이 상담을 마치고 꼭 묻고 가는 이야기란다. 지금 보육 현장에는 ‘불신’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부모도, 교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이 옷에 초소형 녹음기를 몰래 넣어 보내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현장 교사도 아이를 안아 주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현장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와 정치권은 지난달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영상이 공개된 뒤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해 CCTV 카드를 빼들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전국 모든 어린이집 CCTV 설치 등 영상정보 처리기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 법안은 영상을 60일 이상 보관해 아동 학대가 의심될 경우 해당 아동의 보호자나 공공기관이 CCTV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꼴이다. 정부와 정치권을 빼고 모든 국민이 한숨만 쉬었다. 몸에 퍼진 암으로 피가 흘러나오는데 그저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다.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필요 예산을 어떻게 편성할지, 면적당 몇 개를 설치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세부 방안도 추후 논의로 미뤘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키워 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사라졌다. 마치 어렸을 때 동네에 가끔씩 찾아와 ‘이 약 한번 먹어봐~ 치통, 위통, 방통 모든 병이 한 방에 나아~’라고 떠들던 약장사 아저씨처럼 상습적인 폭행과 상한 급식, 비싼 보육료 등 모든 문제를 CCTV로 해결할 듯한 기세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도 CCTV가 달려 있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CCTV가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두루뭉술한 해결 방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턱없이 낮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보육 교사의 처우 개선, 양질의 보육 교사 육성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1980년대부터 보육 문제를 ‘민간’에 떠넘겼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어린이집 4만 3000여곳 중 국공립 어린이집은 2489곳으로 5.4% 수준에 그쳤다. 선진국의 50%가 넘는 비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30%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7800억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올해 모든 것을 투자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길이다. 보육 교사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그들의 고충을 덜어 주지 않는다면 양질의 보육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자녀를 사랑하는 교사들이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 보조교사 지원과 근무시간 개선 등 정부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문제를 3~4월에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 예산 확보 여부가 불투명해 올해 당장 시행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 보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늦더라도 박 대통령의 약속을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안심하고 자녀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모든 국민은 바라고 있다. hihi@seoul.co.kr
  • [광복 70년 기획] “항일역사 더 자세히 가르쳐야”

    [광복 70년 기획] “항일역사 더 자세히 가르쳐야”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양국의 갈등으로 커진 형국이다. 일본 역사학자이면서도 한국의 대표 역사연구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 후지이 다케시(44) 연구실장에게 바람직한 역사교육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교육만 놓고 봤을 때 역사 왜곡은 정부 간에 외교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한국과 일본의 갈등으로까지 연결하니 해법이 어려워지고 있다. 두 나라가 역사를 외교에서 서로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일제 식민통치가 한·일 역사교과서 문제의 핵심인데. -한국인은 그 기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고, 더 자세히 가르쳐야 한다. 일제 시대 피해상만 강조해선 안 된다. 그 당시 한국이 어떤 저항을 했는지 좀 더 많이 알려줘야 한다. 한국인은 다양하게 저항했고, 새로운 사회를 갈망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고 학생 스스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가르치지 않는지 의문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역사는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고 했다.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결여된 것 같다. 역사가 마치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이나 규범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역사 교육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교육은 그런 관점을 가르쳐야 한다. →한국의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향은. -역사교육은 나와 국가와의 ‘연결 고리’가 중요하다. 이 고리가 너무 강하면 민족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한국의 역사교육에서는 해방 이후 이념 대립에 따라 개인이 이 고리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안 되고 끌려다녔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국가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는 이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단순한 테러리스트인가… 무슬림 이상주의자인가… “IS가 궁금해” 이슬람 서적 봇물

    단순한 테러리스트인가… 무슬림 이상주의자인가… “IS가 궁금해” 이슬람 서적 봇물

    무자비한 인질 참수와 화형, 이슬람을 비하한 만평가를 향한 무차별 총격 등 자극적인 테러와 폭력으로 전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과격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난달 시리아 접경지역인 터키 킬리스에서 잠적한 김모(18)군이 IS에 가담해 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IS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맞춰 출판가에서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출현 배경과 활동 목적,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서적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이슬람 불사조’(글항아리)는 IS의 정체와 그들이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칼리프 국가’ 건설의 전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칼리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혹은 대리인으로 선발된 이슬람제국 최고통치자를 가리킨다. 저자인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러리즘 전문가로 특히 테러조직의 자금 루트에 정통하다. 일본에서 지난 1월 번역 출간돼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던 책은 IS가 중동의 오래된 종파 대립, 아랍민족주의와 서구의 갈등, 칼리프에 대한 해석 문제, 천연자원 쟁탈, 아랍 보수 왕정과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IS는 단순한 과격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칼리프 국가 건설을 꿈꾸는 국가(지향적) 세력”이라며 “이상적인 무슬림 국가, 즉 현대판 칼리프 국가의 부활은 IS 구성원들에게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속력을 제공한다”고 진단했다. 저자에 따르면 IS 탄생의 역사적 근원은 서구 제국주의의 중동 분할 공작인 사이크스피코협정(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따라서 이들은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처럼 예언자 무함마드의 권위를 이어받는 칼리프의 이름으로 국경선을 다시 긋는 ‘현대 중동의 재탄생’을 기획하고 있다. 20년간 테러집단의 재정 흐름을 분석해 온 저자는 IS를 세계화와 최신 테크놀로지에 의해 성장한 준(準)국가로 바라보며, 특히 경제력과 사회 인프라를 정치 주권보다 우선시한 조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친서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테러경제학에 초점을 맞춰 IS의 실체를 보여 줄 수 있는 책”이라며 “이슬람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슬람 총서’ 시리즈로 10여권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이슬람 근대성과 자유주의 및 과격분자들의 기만성을 다룬 슬라보이 지제크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프랑스 여기자의 지하드 잠입 취재기 ‘지하디스트가 되어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슬람 파시즘’ 등을 연이어 출간할 계획이다.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니콜라스 웨이드의 ‘종교유전자’(아카넷)는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을 일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 연원을 파헤치는 책이다. 현직 언론인인 정의길 국제 전문기자가 쓴 ‘이슬람 전사의 탄생’(한겨레출판)은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IS까지 지난 35년간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분쟁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담아냈다. 그런가 하면 무슬림의 시각에서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만화도 출간됐다. ‘미래의 아랍인’(휴머니스트)은 독재자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와 하페즈 알아사드 치하의 시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작가 리아드 사투프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대상 수상작이다. 30여년 전으로 돌아간 작가는 어떤 편견도 갖지 않은 순진한 소년의 눈으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아랍 내부의 풍경을 담아낸다. 책은 특히 시리아 수니파 집안 출신으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리아드의 아버지를 통해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당시 아랍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한다. 무슬림이지만 돼지고기를 먹고 기도도 하지 않는 아버지는 종교적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도 아들에겐 쿠란을 외우게 한다. 서구 자본주의를 배척하는 듯하면서도 고급 외제차를 동경하는 그는 당시 아랍의 과도기적 상황을 고스란히 체화한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휴머니스트의 위원석 교양만화주간은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중동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독자들이 적은 편”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IS 합류시도 미국인 3명 체포…미국 현재 상황은?

    IS 합류시도 미국인 3명 체포…미국 현재 상황은?

    IS 합류시도 미국인 3명 체포…미국 현재 상황은? ‘IS 합류시도 미국인 3명 체포’ IS에 합류시도한 미국인이 3명 체포된 가운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 50개 주 전역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려고 시도하거나 IS를 돕는 이른바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일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25일 전미법무장관연합회(NAAG) 연례 동계회의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현재 FBI의 일제 조사가 진행 중임을 밝혔다. 코미 국장은 “50개 주에서 급진화 정도가 다양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뉴욕이나 워싱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50개 모든 주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 국장의 이 발언은 연방 검찰이 이날 IS에 합류하기 위해 외국여행을 계획했거나 이들을 지원한 뉴요커 3명을 전격으로 체포했다고 밝힌 것과 비슷한 시점에 나온 것이다. 그는 그러나 현재 얼마나 더 많은 용의자를 추적·조사 중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코미 국장은 “IS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힘든 영혼들은 칼리페이트(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국가)로 오라.그러면 영광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오지 못한다면 당신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를 죽이라’는 등의 선전선동을 하는데 이것이 힘든 영혼들이나 어떤 끔찍하고 잘못된 길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모든 주에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코미 국장은 이어 이 같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체포를 위해 테러 관련 정보를 철저히 공유할 것을 전국 법무장관 및 지역 법 집행 관리들에게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운찬 “정부, 양극화 완화 아예 관심없어”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24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양극화 완화나 성장 잠재력 확충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초청 강연에 앞서 배포한 강연문에서 “현 정부의 정책은 단순히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는 규제 완화로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소득 주도의 성장정책으로 개인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하지만 성과가 미미하다”면서 “규제는 투자의 주요 걸림돌이 아니고, 소득이 늘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소비가 늘어날 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저성장과 양극화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오늘날 가계 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문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고객과 근로자, 협력 업체들에게 성과가 합당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는 또 “공공 부문이 솔선수범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민간 기업의 정규직 전환 노력에 대해 강력한 재정과 세제상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증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학계의 합리적 연구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복지부동하는 여야 정치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中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 새달 3일 ‘양회’ 개막 앞두고 대륙의 미래를 말하다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中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 새달 3일 ‘양회’ 개막 앞두고 대륙의 미래를 말하다

    중국의 연중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새달 3일 개막한다. 세계 각국은 중국이 올해 어떤 청사진을 제시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신문은 양회를 앞두고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戴晴·74)을 만나 중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이칭은 중국 공산당의 전형적인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의 자손)이지만 권력을 좇기보다는 기자와 작가의 길을 걸으며 민주·인권·환경 운동에 헌신했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는 싼샤(三峽)댐 건설이 가져올 환경 파괴 문제를 내부에서 처음으로 제기해 공사를 5년 동안 중단시키기도 했다. 2012년 한국의 환경운동 30주년을 맞아 방한한 적이 있지만 국내 언론과 중국 전반의 문제를 놓고 인터뷰하긴 처음이다. 인터뷰는 춘제(春節·중국 설)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베이징시 외곽 순이(順義)에 있는 한적한 자택에서 두 시간 동안 이뤄졌다. →친아버지 푸다칭(傅大慶)과 양아버지 예젠잉(葉劍英) 모두 항일운동가이자 혁명군의 지도자들이었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내가 네 살 때 일본헌병에 의해 살해되셨다. 친아버지와 황푸(??)군사학교 친구였던 양아버지가 나를 딸로 삼았고 헌신적으로 키워 주셨다. 친부와 양부 외에도 의붓아버지, 시아버지 등 두 분의 아버지가 더 있다. →일본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나. -어머니 역시 일본군에게 처참한 고문을 당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 앞에서는 일본의 ‘일’자도 꺼낼 수 없었다. 1991년 싼샤댐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할 때 밤새 고민했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개인 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일본에서 온 엽서를 보이며) 지금은 친한 일본 친구들이 많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의 극우화를 어떻게 보나.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세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국주의의 부활은 재앙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은 중국에도 마땅히 적용돼야 한다. 중국이 군사주의를 앞세운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중국 언론이 과도하게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비판하기에 앞서 중국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과연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 극우파가 맹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듯 우리도 무비판적으로 우리의 지도자들을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건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옹색한 민족주의에 기댄 통치는 옳지 않다. →한·중·일이 평화롭게 지낼 방법은 없나. -3국 모두 더 냉정하고 차분해져야 한다. 누가 감정 싸움을 부추기고 그 싸움에서 누가 이득을 챙기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요즘 중국에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양분되는 것 같다. -동북3성의 항일운동에서 조선 의용군의 역할은 컸다. 많은 중국인들이 항일운동 당시 조선인들의 활약을 기억하며 북한을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을 무조건 감싸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그만 북한을 포기하자는 쪽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을 잘 설득해 한반도 통일에 일조하는 게 옳은 길 아닌가. -북한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게 우선인데 중국의 정치가 과연 북한을 개방시키고 설득할 만한 수준이 되는지 의문이다. 북한을 단지 바둑판의 ‘바둑알’ 또는 사회주의의 ‘막냇동생’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공산당 간부 자녀 학교인 하얼빈(哈爾濱)군사공정학원을 졸업하고 인민해방군 총참모국에서 근무하다가 어떻게 기자 겸 작가가 됐나. -대학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자동제어를 공부했다. 많은 친구들이 고위직에 올랐다. 만약 중국에서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나도 그 길을 갔을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 아주 제한적으로 언론·사상의 자유가 열렸다. 그때 처음 신문을 보게 됐고 비판적인 시각도 길렀다. 광명일보(光明日報)에 기고한 글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기자가 됐고 소설도 쓰게 됐다. →길을 바꾼 것을 후회하지 않나.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으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훙얼다이로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괴로운 선택’을 많이 해야 했을 것이다. 말을 조심해야 하고, 오늘은 이 아저씨(고위 간부)에게 내일은 저 아저씨에게 잘 보여야 한다. 가끔은 선물도 줘야 한다. 때때로 충성도도 시험받는다. 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자유와 존엄이 부귀영화보다 중요하다. →생활은 어렵지 않은가. -편하진 않다. 톈안먼(天安門) 진압을 비판해 투옥됐었다. 사회보험이나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글을 계속 쓰지만 출판은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열사이기 때문에 순이구에서 한 달에 1000위안(약 17만원)씩 준다. 그러나 나는 이 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나중에 순이 지역 학교에 기부할 것이다. →훙얼다이들이 과도한 특혜를 받는 것 아닌가. -혁명원로의 자녀들인 훙얼다이와 현재 고위 관료의 자녀인 ‘관얼다이’(官二代)는 구분해야 한다. 훙얼다이는 부모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고 아무런 노력 없이 좋은 일자리를 꿰차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관얼다이들은 아버지로부터 권력과 자본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 JP모건 취업 문제로 말썽이 된 상무부장 아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관얼다이가 앞으로 문제가 될 것 같나.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들에겐 훙얼다이처럼 인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정신이 없다. 오히려 인민의 몫을 가로채고 있다. 따라서 인민들도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혁명원로들과 달리 이들의 아버지는 국가와 당이 아닌 오직 자식에게 부와 권력을 물려줄 궁리만 했다. 최근 낙마한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는 나의 대학 친구다. 그가 한 일이라곤 관직을 사들여 가족들에게 나눠준 것뿐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3대째 세습되면서 부작용이 심화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지만, 중국은 사회적 감시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각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나. -어렸을 때 만난 적은 있으나 연락하지는 않았다. →시 주석의 국정 운영을 평가한다면. -시 주석은 지금 굉장히 힘든 위치에 있다. 갈수록 다변화되는 현대 사회에선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될수록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시 주석은 군대를 통솔해야 하고 금융도 컨트롤해야 한다. 홍콩의 ‘센트럴 점령’ 시위도 책임져야 하고 윈난(雲南)성 기차역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그것도 진압해야 한다. 다만 한 단면을 가지고 시 주석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자유파 친구들이 많이 투옥됐다고 덮어놓고 시 주석을 비판할 수는 없다. 최근 교육부장이 대학에서 서양식 교육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지식인들은 물론 변호사들까지 나서 그를 비판했다. 교육부장의 시대착오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시 주석 통치하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지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정통 좌파(보수파)와 자유파(개혁파) 간 사상투쟁도 전개되는 것 같다. 좌파를 어떻게 보나. -좌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 고리타분한 좌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계획경제를 가르치던 베이징대 교수가 자살했는데, 그런 부류들을 말한다. 둘째,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교조적으로 마오 사상을 부르짖는 좌파가 있다. 최근 사망한 덩리췬(鄧力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큰 힘을 갖고 있다. 셋째, 향수에 사로잡힌 좌파다.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유파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이다. 극단적인 자유파와 이성적인 자유파로 나뉜다. 톈안먼 시위 당시 극단적 자유파는 ‘덩샤오핑·리펑 타도’를 외치며 체제가 전복되면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망상에 젖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만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생각에 찬성할 수 없다. 중국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다. 누가 정권을 쟁취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기자 시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문예정풍’으로 희생된 작가 왕스웨이(王實味)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일방적으로 매도됐던 왕스웨이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세상은 일시에 대약진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보는가. -전혀 아니다. 인성 교육 등 개별 정책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체제 자체를 베끼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더 모범적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인류는 자신에게 적합한 체제가 무엇인지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갖고 있다. 평등, 자유, 인권이 그것이다. →중국 사회가 질적으로 도약하려면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가. -먼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성숙돼야 한다. 시민이 납세자로서 정부를 감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중국인들은 당과 정부에 무조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사실은 당과 정부가 인민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납세자가 정부를 기르고, 감독하고, 심지어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전 세계가 놀라워한다. -최근 한국의 방송사에서 중국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나는 그런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중국 경제성장의 뒤안길엔 인민과 환경의 희생이 숨어 있다. 양쪽을 다 조명해야 한다. →중국 정부도 이젠 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나. -정부의 대책은 오염의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말의 성찬으로 끝날 뿐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앞에 환경은 늘 장애물로 취급된다. 경제 성장이 빈곤층에 대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줬는지 이제 고찰할 때가 됐다. 글 사진 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window2@seoul.co.kr ■다이칭의 친아버지, 푸다칭 1920년 중국 공산당 창시자 천두슈(陳獨秀)를 따라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했고 1927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함께 난창(南昌)봉기를 주도했다. 1940년 일본군이 점령한 베이징에 밀파돼 정보공작 활동을 하다가 일본헌병대에 살해됐다. 푸다칭의 중매를 섰던 예젠잉은 푸가 죽자 그의 딸 다이칭을 양녀로 삼아 키웠다. ■다이칭의 양아버지, 예젠잉 중국 공산군(홍군·紅軍)의 지도자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0대 원수 중 한 명으로 추대됐다. 대장정(大長征) 당시 마오쩌둥과 장궈다오(張國燾)가 진로를 놓고 대립하자 상관인 장궈다오의 오류를 비판하고 휘하 부대를 이끌고 마오 진영으로 합류해 마오가 권력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화대혁명 이후 4인방 척결에 앞장섰다. 중국 공산당 부주석, 국방부장 등을 지냈다.
  • [시론] 민심과 감통정치/문순태 소설가

    [시론] 민심과 감통정치/문순태 소설가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고 했다. 작은 생선을 굽고 지질 때는 살이 부서지지 않도록 창자를 긁어내지도, 비늘을 벗기거나 휘저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살이 부스러지고 검게 타서 옹글게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심을 대할 때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바람 부는 날 불조심하듯 민심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나 몸짓 하나에 민심은 춤을 추게 된다. 을미년 설 연휴에는 총리 인준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 추이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에서 출발했으나, 청와대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40%로 급락해 한때 20%대까지 추락했다. 4주째 변동이 없다가 2월 둘째 주부터 상승해 30%대로 진입했다. 청와대가 레임덕 마지노선인 30%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40%는 유지하여야 하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승부수로 이완구 국무총리 카드를 내놓았으나 절반의 실패로 끝났고 설맞이 개각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남은 반전 카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 인사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면 국면 전환의 모멘텀이 되겠지만, 역풍을 맞으면 국정 동력을 상실할 것이 뻔하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게 된 것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고 했던가. 귀를 기울이면 마음을 얻는다는 말이다. 정치인은 민심의 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훌륭한 제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민심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당나라 조유가 중국 제왕들의 통치술에 대해 쓴 ‘패권의 법칙’을 보면 한나라 고조 유방도 민심을 얻는 것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했다. 고려시대에도 여항(閭巷)의 풍속을 알기 위해 패관(稗官)이라는 임시직 사관으로 하여금 시사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하게 하였다. 왕들은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미복잠행(微服潛行·군주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다님)도 잦았다. 김주영의 장편소설 ‘상도’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보부상들을 관리했는데, 이는 민심을 수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민심은 바람난 며느리 심보와 같아서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기 힘들다. 그러기에 수원수구(誰怨誰咎), 떠난 민심을 두고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심은 물과 같아서 순풍일 때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역풍일 때는 뒤엎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난 민심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민심무상(民心無常)이요, 민심변심(民心變心)이라는 말도 있다. ‘천심은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선하고 바르면 천명을 얻고 올바르지 않으면 천명을 잃는다’고 한다. 민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이반이 오기 전에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민심 이반에는 7단계가 있다. 열광과 기대에서 출발하여 실망-혐오-분노-폭발-무관심-체념이 그것이다. 혐오의 단계에 이르면 반전 가능성이 없다. 소통만으로는 민심이 살아나지 않는다. 열린 사회에서 소통은 정치의 기본이다. 민심을 움직이려면 이제 소통을 넘어 감통(感通) 정치가 필요하다. 서서 차 마시고 재래식 시장에 가는, 보여 주기식 이벤트만으로는 안 된다. 말과 문자를 매개로 하는 소통 없이도 생각이나 느낌이 서로 통하는 마음의 상호 공명이 있어야 민심이 움직인다. 혼자 우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같이 울고 다가가서 위로의 눈물을 닦아 줄 때 감응과 감통이 가능하다. 이 시대에 감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가식 없이 보여 주고, 진심으로 만나고, 서로 웃고 울고, 소리치며 마음의 벽을 허물 때, 비로소 공감의 과정을 거쳐 감응으로 마음이 열리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단계인 감통에 이른다. 민심은 보이지 않는 국민의 힘이다. 국민의 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직심(直心)이다.
  • 미얀마 ‘코캉’ 화약고 터지나

    미얀마 ‘코캉’ 화약고 터지나

    중국과 미얀마 국경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BBC 중문망 등은 22일 미얀마 북부 코캉 지역에서 2주일째 미얀마 정부군과 중국계 소수민족 반군이 교전을 벌여 130여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정부도 21일 교전 발생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군과 경찰 61명, 반군 72명 등 133명이 사망하고 정부군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대변인은 “전투가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물러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교전으로 난민 9만여명이 발생했으며, 이 중 3만여명은 중국으로 피란하고 나머지는 미얀마 중부, 동북부 지방으로 피신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난 17일에는 구호단체마저 습격을 당해 구호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번 교전은 2009년 정부군에 의해 쫓겨난 코캉 반군 지도자 펑자성(彭家聲)이 코캉 수복을 시도하면서 발생했다. 11개 반군 연합단체인 민족연합위원회(UNFC)도 펑자성을 지지하고 있다. 펑자성은 전투에 앞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서한을 보내 “중화민족을 위한 전투”라고 주장하며 지원을 요청했으며, “코캉을 수복한 뒤에는 중국에 통합돼 민족자치구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중국은 미얀마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정식으로 코캉 반군을 지원하지는 않았으나 인민해방군 정보요원들이 사복 차림으로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북부 샨주에 위치한 코캉은 중앙정부의 통치권이 거의 미치지 않는 산악지역으로 주민 15만여명 가운데 80% 이상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한족(漢族)이다. 이들은 명나라 멸망 당시 만주족의 청나라에 반대해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후예이다. 청나라 때 중국에 속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얀마 영토로 편입됐다. 코캉 반군은 독립 및 중국과의 통합을 꾸준히 요구해오다 2009년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패퇴한 뒤 이번에 다시 무장봉기에 나섰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IS, 리비아·나이지리아 勢 확장… 美는 IS 근거지 모술 탈환 사활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리비아와 나이지리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20일 보도했다. 권력 공백을 맞은 리비아 동부 지역에선 이날 잇따라 연쇄 폭탄 공격이 일어나 최소 45명이 숨지고, 70명 넘게 부상했다. 리비아 군 당국에 따르면 동부 쿠바 지역의 한 경찰서 청사와 주유소 부근, 국회의장 자택 등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졌다. 쿠바는 IS 리비아 지부 거점으로 알려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에서 약 30㎞ 떨어진 곳이다. IS는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며 이집트와 리비아 공군의 합동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아는 지난해 6월 총선 이후 이슬람 세력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하며 2곳의 통치권역으로 나뉘어 있고, IS는 이 틈을 타 데르나와 시르테 등 2곳 이상의 도시를 장악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이 IS와 협력관계에 있다는 정황 증거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보코하람이 조만간 IS와 동맹을 맺어 IS의 나이지리아 공식 지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미군은 이라크 제2의 도시이자 IS의 근거지인 모술 탈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사령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는 4~5월부터 최대 2만 5000명 안팎의 지상군을 투입, 본격적인 모술 탈환에 나설 것이라고 공개했다. 주력군은 이라크군 5개 여단과 쿠르드 자치정부군 페슈메르가 3개 여단이다. 미군은 주로 이라크군 훈련과 정보수집, 감시, 정찰, 운송 등 지원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술에 대한 지상군 파병을 승인하면 소수 정예의 작전 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NYT는 이번 작전이 오바마의 IS 전략에 관한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21일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라크가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이번 작전의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에선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6월 17일) 이전에 탈환 작전이 마무리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의 이례적인 작전 공개는 IS 저항세력의 결집을 유도하고 민간인 대피를 촉구하는 일종의 심리전”이라고 평가했다. CNN은 미군이 현재 모술 내 IS 병력을 200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번 작전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이라크군도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쿠르드족 페슈메르가군 사령관 설완 바르자니의 말을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北, 국제 제재 강화에 통치자금 조달 ‘총력’

    핵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제재를 받는 북한이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노동당 당원증과 평양거주권 등을 지방 부유층에게 팔고 있는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최근 북한 당국은 개인이 스스로 당국에 돈을 제공하는 ‘충성자금’ 모금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의 묵인 아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노동당원증과 평양거주권 등을 매매해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원증의 경우 미화 500~1000달러에 팔리며 평양거주권은 미화 1만~2만 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 당원의 노령화를 막기 위해 당원 정년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거주권 등은 주로 부유하지만 지방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등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뤄진다”며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거주권의 경우 평양 인근 남포나 평성, 신의주지역 주민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대폭 강화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북한 당국이 평양 시내에 건설 중인 아파트도 김정은 치적용보다 부유층 대상으로 분양하는 것이 우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 대상자는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에서 북한 식당을 운영하는 재일교포와 화교, 조선족 등 신흥 부자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소식통은 “이들 신흥 부자는 아파트를 다시 일반 주민을 상대로 매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다스 베이더 장례식? ‘실제 상황’ 충격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다스 베이더 장례식? ‘실제 상황’ 충격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다스 베이더 장례식? 알고 보니..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가 화제다. 최근 외신은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소식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스타워즈의 팬인 고든 디콘(58)의 장례식에 스타워즈 스톰 투루퍼가 등장했다.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 의장대는 마차를 호위하며 영국 웨일즈 카디프 지역의 한 교회까지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또 이들은 디콘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교회 앞을 지키기도 했다. 이는 마치 스톰 트루퍼 군대가 악당 다스 베이더의 마지막 길을 호위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는 스타워즈를 너무 사랑한 디콘을 위해 마련한 아내와 지인의 선물이었다. 디콘의 부인 마릴린(54)은 “그는 스타워즈에 미쳐있었다. 우리는 1977년에 그 영화를 처음 보러갔고 그 이후부터 그는 스타워즈에 집착했다”며 “내 남편은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소원은 색다른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었다”고 장례식에 등장한 스톰 트루퍼에 대해 설명했다. 디콘은 췌장 및 간암으로 인한 긴 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했다. 한편 스톰 트루퍼는 스타워즈에서 은하 제국의 통치자이자 악의 화신인 다스 베이더의 부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시론] 갈 길이 먼 IS와의 전쟁/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시론] 갈 길이 먼 IS와의 전쟁/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군복을 입고 결연히 나타난 요르단 압둘라 국왕의 모습에 세계가 열광했다.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산 채로 분살(焚殺)당한 자국 조종사의 죽음에 국왕이 직접 나서서 복수를 천명했다. 요르단 공군은 지난주 60여 차례 이상 IS 거점을 공습, 타격했다. 미국 및 걸프 아랍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에 호응하며 4월 대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다국적군은 이제 IS의 무도한 도발을 꺾을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맞았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IS는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알고 있던 여느 폭력적 극단주의 조직과는 사뭇 다르다. 한 지역에서 들고일어난 여러 테러그룹 중 하나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완전히 새로운 미증유의 그룹이다. IS를 겨냥한 테러전은 오래갈 가능성이 높다. 먼저 이들 3만명 병력 중 적어도 5000명 이상이 죽음을 감수하는 전사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살 테러를 미화하는 오도된 교리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다. 이슬람 움마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걸면 곧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교리를 신봉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미국의 공습에도 체첸 반군 해방을 선언하며 푸틴의 러시아를 도발하고, 중국 신장위구르 무슬림들의 저항을 독려하고 있다. 겁 없이 세계 초강대국들을 도발함으로써 오히려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상도 함께 나타난다. 둘째, IS의 실질적인 화력과 자금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뛰어난 전투 경험과 막강한 화기를 갖고 있다. 2001년에 결성된 IS의 전신 ‘유일신과 성전’ 그룹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성장한다. 사담 후세인의 실각으로 쫓겨난 기존의 군인, 관료, 경찰들의 상당수는 직업을 잃고 ‘유일신과 성전’ 그룹에 가담해 미군과 싸웠다. 이라크 독재 정권의 근간이었던 군경, 관료들이 테러 집단에 몸담아 세계 최강 미군과 싸우면서 얻은 전투 경험은 이들의 자산이다. 여기에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제공한 다양한 화기들을 노획하면서 웬만한 국가의 정규군 못지않은 전투력을 갖게 됐다. 또한 석유 밀매, 인질 몸값, 중앙은행 보유 외환 탈취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력도 건재하다. 셋째 이유는 이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다. 현재 IS가 장악하고 있는 안바르주를 비롯한 이라크 수니파 거점 지역의 경우 바그다드 시아파 주도 정부로부터 차별과 괄시를 받아 왔다. 시리아의 경우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그동안 학살을 당해 왔다. 중앙정부로부터 따돌림과 학살을 당해 온 주민들은 무력과 돈 그리고 강력한 공포 정치의 이념을 들고 자신들을 지배하는 IS를 선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강한 이념, 실질적인 힘 그리고 대중들의 복종이 어우러진 IS를 국제사회가 단기간 내에 격퇴하기란 쉽지 않다. 국제사회의 무력 공격은 두 번째 요인, 즉 IS의 화력과 자금력을 약화시키는 데는 유효하나 이념과 대중의 지지까지 무너뜨리기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 답이 있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을 통해 가공할 만한 IS의 무력과 자금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저들의 이념을 무력화하고 대중의 정서를 파고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IS의 선전전에 대응하는 논리와 설득을 통해 폭압적 이념의 실체를 알리는 전략이 절실하다. 자살을 감수하며 무차별한 살인을 자행하는 비정상적 광기의 세력은 정상적인 통치 세력이 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극단주의에 저항하며 민심이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대IS 무력 공격과 더불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전략은 ‘정치의 정상화’다. 이라크 바그다드 정부를 도와 소외당한 수니파를 포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다수의 수니파를 끌어안을 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극단주의에 가담하는 흐름을 막아 낼 수 있다. 동시에 쉽지 않지만 시리아의 정상화도 시급하다. 알아사드를 하야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제대로 된 거버넌스와 공권력 복원만이 바그다드와 다마스커스의 폭정을 피해 IS를 지지하는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결국 이 싸움의 관건은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달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