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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리 선생이 잠든 통영

    박경리 선생이 잠든 통영

    지난 9일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원했던 대로 고향인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자락에 묻혔다. 한산도 등 아름다운 섬을 품은 통영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선생이 그토록 사랑한 통영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수구초심(首丘初心)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선생이 나고 자란 ‘뚝지먼당’에서 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인 간창골, 해저터널 등을 거쳐 영면한 미륵산자락까지 하나하나 짚어봤다. #박경리 선생에게 통영이란… 통영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해군 사령부격인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이다. 전쟁의 험악한 기운으로 가득찼던 통영은 그러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예술의 향기 그윽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통영이 고향인 시인 유치환은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중앙동 우체국에서 이영도에게 연서를 썼고, 그 우체국 앞길은 현재 ‘청마거리’로 명명돼 있다. 그뿐 아니다. 음악가 윤이상과 시인 김춘수,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시조시인 김상옥 등 당대를 풍미했던 예술인들이 펜으로, 또 붓으로 통영에 대한 사랑을 읊고 그려냈다. 하지만 고 박경리 선생에게 고향 통영은 애증이 엇갈린 도시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김순철 통영시청 문화예술계장에 따르면 선생은 27∼28세 나던 해 고향을 떠난 후 2004년 처음으로 통영땅을 밟았다. 피보다 붉은 뚝지먼당 동백꽃이 50번도 넘게 피고 진 세월이다. 김 계장은 “몇몇 동창들과 감격적인 해후의 시간을 갖긴 했으나, 끝내 생가가 있는 뚝지먼당 등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가난에 시달렸던 유년기를 추억하기 싫어서였을까. 앞서 유방암과 싸웠던 1973년에는 토지 1부 자서를 통해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단 말인가.”라며 심경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선생의 생가에 대해서는 친구들간에도 견해가 엇갈리는데, 김 계장은 선생의 기억과 호적 등의 자료를 토대로 역추적한 결과 문화동 328의1번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지인들이 뚝지먼당이라 부르는 곳이다. 삼도의 수군통제사들 중 으뜸이 되는 원수의 깃발을 모신 사당을 ‘뚝사’라 하는데,‘뚝지’는 ‘뚝사’,‘먼당’은 ‘고개’의 사투리다. 즉 ‘뚝사가 있는 고개’가 뚝지먼당인 것.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뚝사는 사라지고 말았다. #문단의 거목 키워낸 뚝지먼당 선생은 뚝지먼당에서 ‘박금이’(朴今伊)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다. 돈 있는 사람이 고갯길 골목에 사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뚝지먼당 또한 마찬가지. 굽어진 골목마다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이웃들이 그러했듯 가난에 시달렸던 ‘문학소녀’의 생가는 이미 허물어졌고, 그 자리엔 붉은 벽돌집이 들어섰다. 골목길 입구의 ‘김약국의 딸들’ 작품비만이 그 시절을 웅변하고 있을 뿐. 선생은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강신연(84), 김천수 할머니 등과 자주 어울렸다. 강 할머니는 당시의 박금이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금이는 작은 키에 예쁘장했제. 친구들도 잘 사꼬.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서도, 부산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다아이가. 원래 내가 있는 통영초등학교에 올라꼬 했는데 자리가 없었어. 그래가 산양읍에 있는 산양보통학교(현 진남초등학교)를 잠깐 다니다 4학년 때 다시 통영초등학교로 전학온기라.” 강 할머니는 선생이 어린 나이에도 소설책 읽기를 즐겼다고 전했다.“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다 소설책을 피놓고 봤다니께네. 공부를 열심히는 안 했지만서도, 그래도 잘한 편이었어. 그 가시나가 얘기도 참 잘했따꼬. 정신없이 금이 얘기 듣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퍼뜩 정신차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니께네.” 뚝지먼당 아랫마을이 간창골이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무대다. 작품 속 서문고개는 슬프고 기구하다.‘김약국의 둘째딸’ 용빈의 독백을 들어보자. 명망 높았던 한 가족의 몰락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하략”‘토지’의 시작이나 ‘김약국의 딸들’이나 하나같이 비극적인 이유가 혹시 뚝지먼당이 심어준 정서 때문은 아닐까. 뚝지먼당에서 보면 통영항은 물론, 세병관과 남망산 등 통영의 전체적인 윤곽이 잡힌다. 선생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진주여고에 들어갈 무렵 아랫동네 명정동으로 이사를 간다. 명정동 골목집 바로 앞은 윤보선 전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 여사의 생가로도 유명하다. #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잠들다 2007년 12월 선생은 세번째로 통영을 찾는다. 그곳이 산양읍 미륵산 자락의 양지농원이다. 선생이 통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자, 영원한 잠을 자게 된 곳이다. 양지농원 정대곤 대표에 따르면 원래는 현 묏자리 바로 아래에 선생이 거처할 집을 짓기로 했었다. 양지농원 내 2층짜리 전원주택풍의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선생은 통영 앞바다의 수려한 풍경에 “왜 이제사 여기에 왔을까.”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생전에 집을 짓지는 못했어도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일까. 통영 읍내에서 차로 통영대교, 또는 충무교를 넘거나 혹은 걸어서 해저터널을 건너면 닿는 곳이 통영에서 가장 큰 섬인 미륵도다. 미륵산은 미륵도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내친 걸음, 미륵산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등산로는 빽빽한 편백나무 숲 사이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절집 미래사에서 시작된다. 관광 케이블카가 수리 중인 탓에 가파른 산길을 40분쯤 걸어 올라야 했다. 정상에 서면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경이 주르륵 펼쳐진다. 흰 거미줄을 뽑아내듯 바닷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어선들이 한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을 종횡으로 엮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관광엽서에서 흔히 보는 한려수도 사진은 십중팔구 이곳에서 찍는다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의 풍광이다. 선생의 묘지가 있는 미륵도는 오후에 찾을 것을 권한다. 한 굽이 돌 때마다 해안절경을 토해내는 22㎞의 산양일주도로는 해질녘 달려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특히 해가 다도해의 섬들 뒤편으로 사라지고 난 뒤 만들어내는 붉은 기운은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글 사진 통영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경부고속도로→대전 분기점→대전·통영중부고속도로→통영. ▶주변 명소:통영 시내에 윤이상 생가, 청마문화관, 화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집, 전혁림 미술관 등이 있다. 시민문화회관 부근에는 15명의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조각공원, 유치환의 ‘깃발´ 시비도 있다. 산양일주도로변 달아공원은 국내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곳. 통영시청 문화예술계 650-4510, 문화관광과 650-4610. ▶맛집:울산다찌집(645-1350), 통영사랑 다찌집(644-7548), 만성복집(645-2140). #‘토지´ 속 또 다른 명소 ‘토지’ 4부에 등장하는 충무교 옆 해저터널은 한번쯤 걸어보는 것이 좋겠다.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둔 유인실과 좌파 지식인 오가다 지로는 서로 사랑하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란 처지 때문에 선뜻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통영에 내려와 처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곳이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통영 읍내와 미륵도를 연결한다.1932년 완공후 30여년 동안은 차들이 다니기도 했으나, 요즘엔 도보로만 오갈 수 있다. 세병관을 지나 서문고개 끝자락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공대천의 원수’를 기리는 곳일 텐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별다른 피해 없이 용케 살아남았다.‘토지’5부에서 송영광(길상과 서희 부부의 수양딸 양현과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색소폰 연주자)의 상념을 통해 잠깐 등장한다. 충렬사 앞의 명정우물(정당샘)도 가볼만 하다. 선생이 진주여고에 입학하면서 이사한 명정동 집에서 3분거리다. 일정(日井)과 월정(月井) 두 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월을 합해 명정(明井)이라 부른다.1670년쯤 우물을 하나만 팠는데, 물이 곧 탁해지고 말라버렸다. 두 개를 파자 그제서야 수량이 풍부해지고 맑아졌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엔 식수원이자 빨래터였다고 한다. 작품 속엔 등장하지 않지만, 선생도 여고시절 이곳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를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28)경남 하동 화개 부춘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28)경남 하동 화개 부춘마을

    길은 부춘 마을 가슴팍을 관통해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형제봉 활공장까지 이어진다. 날개를 편 패러글라이더들은 악양 들판 위를 휘휘 돌아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지만 활공장으로 올라서려면 화개 부춘 마을 길을 빌려야만 한다. 형제봉 산길은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의 경계이자 지리산 영신봉(1652m)에서 출발한 지맥이 삼신봉(1289m)을 거쳐 섬진강까지 내달린 남부능선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부춘 마을 동쪽은 이 형제봉 능선이, 북쪽엔 아득히 주능선, 서쪽 역시 700고지 이상의 무명능선, 남쪽으론 발아래 섬진강 그리고 그 건너 거대한 백운산(1215m)을 마주하고 있다. ●2년 전 봄 노선버스 첫 운행 행정지명은 ‘부춘’이지만 마을이 형제봉 산허리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해서 ‘부치동’ 또는 고려시대 때 원강사라는 큰절이 있어 ‘부처골’로 부르던 게 변하여 부춘이 됐다고 한다. 예전엔 ‘불출동’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 지명에 관해선 고려사람 한유한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학식은 높지만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던 한유한이 왕의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고 이 마을에 숨어 살았으며, 바위에 ‘불출동(不出洞)’이라 쓰고 평생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종국엔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것.‘화개면지’에 따르면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부처가 나는 동네’ 즉 불출동(佛出洞)이고, 지금과 같은 부춘이 된 건 1879년 호구단자부터이다. 부춘 마을에 노선버스가 들어온 것은 2년 전 봄.‘토담농가’를 운영하는 공상철(49)씨는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들어온 버스여서 기쁨을 주체 못한 어르신들은 미리 아랫마을까지 내려가 버스를 타고 올라 왔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한다. 호리병처럼 긴 모양새여서 마을 첫집에서 끝집까지 걷기도 버겁던 차에 버스가 들어 왔으니 그도 그럴 것. 운전기사 목에 꽃다발을 걸고 버스 앞에서 고사까지 지냈을 정도란다. 마을에서 시인으로 통하는 공씨는 그날의 기억을 “멋진 버스가 꽃 보란 듯 물도 보란 듯 숨찬 소리를 내며 아침마다 마을길을 오릅니다.”라고 예쁜 시로 적고 있다. 자가용 없는 주민들에겐 아침에 딱 한 대, 장날엔 두 번씩 운행하는 귀한 버스다. ●장아찌 특성화 마을 조성 한창 공상철·양영하(44)씨 부부는 6년 전 부춘으로 들어 왔다. 고향이 하동이기도 하고 시집간 여동생이 이곳에 살고 있기도 해서 몇 번 드나들다 아예 이사해 왔다고. 처음엔 남의 집을 빌려 살다가 3년 만에 지금의 집을 지었고, 그 집을 지은 지 다시 3년이 지났다. 신축 공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필 또 그 해엔 뭔 비가 그리도 많이 왔는지 미완성된 흙집 위로 천막을 치고 날이 맑기를 기다리는 등 8개월의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됐다. 다행히 주말이면 입소문을 탄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와 주는 편이다. 부춘 마을은 전체 약 40여 가구 중 10여 집을 주축으로 ‘지리산 장아찌 마을’ 농가법인을 내놓은 상태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매실과 제피, 비비추, 녹차, 곶감, 머위, 취나물 등을 이용해 다양한 장아찌를 만들고 특성화할 계획이다. 공상철씨는 이 법인의 총무를 맡았다. 이번 주는 공씨를 포함해 마을주민 모두가 분주하다.21일(수요일)부터 시작돼 25일까지 닷새간 열릴 제13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 기간에 화개와 악양의 10개 마을에서 녹차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부춘의 경우 찻잎 따기, 녹차두부 만들기, 형제봉 일출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 집집마다 빨갛게 익은 앵두만 느긋이 봄을 즐길 뿐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서부 사상 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화개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어디서든 구례나 하동까지 간 다음 화개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읍에서 부춘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이므로 택시를 타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 등에서 19번 국도를 따른다. 부춘 마을은 화개장터 삼거리에서 하동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한 다음 큰길 쪽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마을 진입로 입구에 이정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녹차체험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면 이장 이강주(011-838-6005)씨나 공상철(011-884-3741)씨에게 문의한다.
  • [글로벌 시대] 영어, 그리고 미국식 영어/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시대] 영어, 그리고 미국식 영어/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영어는 글로벌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키워드다. 현재 영어를 배우는 전세계 사람들의 수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영어학습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전세계적인 현상인 셈이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적어도 향후 100년간 영어가 국제공용어로서 확고한 위상을 과시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기업세계에서 체감하는 영어의 위상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영어 역시 시대상을 반영해 진화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원어민과 비원어민간의 소통을 넘어 비원어민들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양한 국적, 문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지구촌 차원에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다. 영어를 모국어나 공식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12%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제2외국어이자 국제공용어로 영어를 배운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얼마나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가.’라기보다는 상대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고 쉽고 명확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졌는가.’라고 볼 수 있다. 영어는 1600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끊임없이 여러 외국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일종의 국제혼합어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어는 크게 영국 영어(British English)와 미국 영어(American English)로 나뉜다. 아직 정통영어로 대접받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후손들이 사용하는 영국 영어다. 하지만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대세는 미국 영어다. 소위 ‘스탠더드 미드웨스턴(Standard Midwestern)’이라 불리는 방송 아나운서들이 쓰는 미 중서부 영어를 표준 미국영어로 본다. 한국인은 미국 영어를 배운다. 그래서 미국 영어가 곧 영어라는 잘못된 공식이 우리들의 의식 속에 굳어진다. 미국 영어만 영어가 아니다. 영국 영어, 호주 영어, 남아프리카 영어,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필리핀 영어, 그 외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비원어민이 국제공용어로 쓰는 영어도 모두 영어다.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영어실력이란 완벽한 미국식 발음으로 미국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알아 듣기 힘든 싱가포르 영어, 고약한 억양의 인도 영어, 통통거리는 프랑스 사람의 영어 모두 거부감 없이 소통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영어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배울 때 재떨이를 재러리로 발음해야 할 것만 같은 한국인의 애처로운 강박관념 역시 미국 영어가 곧 영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애꿎은 오렌지, 아니 아륀지를 둘러싼 소동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아이들의 영어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수술이 유행하는 극단적 양상이 나타난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외국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국어와 자신이 속한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원어민뿐 아니라 제2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세계인의 다양한 영어 발음과 표현방식의 차이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글로벌 마인드이다. 운 좋게도 자신의 모국어가 국제공용어라서 평생 커뮤니케이션상의 수혜를 누리는 영어 원어민이라면 비원어민과 말할 때 쉬운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현학적 표현이나 속어를 삼가려는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 지구촌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성숙한 글로벌 마인드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것도 멀리서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화적 유연성이다. 타문화를 인정하고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는 어쩌면 영어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자질일지 모른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미국 영어만 영어가 아니다. 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구례 문수리는 왕시루봉(1212m) 능선을 곁에 두고 평행선처럼 그어진 마을로,‘밤재’는 이 문수리 안에서도 제일 끝, 도로가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들어서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 김해 김씨가 처음 정착해 개척한 ‘율치’는 밤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해발이 600여m다. 덕분에 질매재의 잘록한 산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이 율치 아래에 신율이 있고, 신율 못 미쳐 밤재가 있다. 지금은 율치와 신율을 합쳐 통상 밤재라고 부른다. 예전부터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두 곳 모두 밤 ‘율’자를 사용한다. 실제 밤재는 마산면 화엄사에서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을 오갈 때 거치는 형제봉 북쪽 해발 약 720고지의 고갯길 이름이기도 하다. ●첩첩산중 밤나무골 ‘개발 몸살´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 등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며 마을이 불에 타고 방치되었던 율치와 신율과는 달리 밤재는 10여년 전에 새로 생긴 부락이다. 산간 논밭 터에 하나씩 집이 생기면서 이제 13호 남짓까지 가구 수가 늘었는데, 계곡을 끼고 형성된 민박집이나 퇴직을 하고 들어온 외지인들의 전원주택이 대다수다. 밤재 입구에는 집채만 한 큰 바위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 두지바위(뒤주암) 안쪽 골짜기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이 바위를 청학동 석문으로 여기고 살다가 1913년 3월11일 밤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져 그 운세가 다했다고 믿는단다. 최근엔 마을 진입로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전태균(49)씨는 그게 또 못마땅한 모양이다. 길이 넓으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게 마을 주민들이겠지만 공사 때문에 큰 바위며 족히 80년은 되었을 법한 소나무를 마구 베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는 살리고 도로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어이 베어내고 조각조각 도려내는 것이 싫다. ●금싸라기땅 변신 ‘외지인 세상´ “길이 굽이지면 돌아가면 되고, 조금 늦게 천천히 가면 되잖아요.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라면 다른 마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길의 편리성이 오히려 이 마을의 정취를 빼앗아갔어요. 무분별한 개발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공사비도 적게 나오는데 마치 공사비를 늘리기 위한 편법 같다니까요.” 배낭 가득 두릅과 엄나무 새순을 따온 전씨는 도처에 그득했던 산나물이 줄었다며 연이어 한숨이다. 도벌이 금지돼 숲은 울창해졌지만 그로 인해 볕이 못 들면서 약초나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자랄 수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종복원센터와 방사 곰들의 자연적응훈련장까지 이곳에 들어섰을까. 전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일대는 벌거숭이였다. 구례군 전체가 아궁이 군불을 때던 시대였으니 나무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어김없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적당한 간벌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다. 가난한 이웃들은 꽉 막힌 산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는데 전씨는 30리 고갯길을 지게질하며 넘나들어도 고향 떠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들어와 살 수 없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첩첩산중이던 동네에 길이 뚫리면서 구례읍까지도 15분이면 족하다. 좋은 경치와 맑은 공기 덕에 저절로 땅값이 오른 것. 이제는 원주민보다 외지인들의 비율이 3배는 더 많을 정도다. 두지바위는 깨졌지만 21세기의 밤재는 새로운 청학동으로 급부상 중인 셈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가 있긴 하지만 문수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밤재까지 택시비는 1만 2000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문수사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 [ Local] 창원서 16일 채용박람회

    경남도는 12일 창원시와 노동부(창원·진주·통영지청), 누리사업단협의회, 경남대 등과 공동으로 16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2008년도 경남도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는 ㈜무학·넥센타이어·㈜효성·한국화이바·노키아티엠씨 등 11개 대기업과 193개 중견기업 등 200여개 업체가 참여해 현장 면접을 거쳐 7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특히 한국철강㈜와 현대산기,㈜호텔인터내셔널 등 7개 업체에서는 창원여성희망일터지원본부와 연계해 별도로 여성 채용관을 운영할 계획이어서 도내 여성 구직자들에게도 좋은 취업 기회가 될 전망이다. 병역특례업체와 장애인 채용업체도 많이 참여해 다양한 계층의 구인·구직 활동이 이뤄진다. 경남도 경제정책과(055-211-3164)나 창원시 경제통상과(055-212-2912), 노동부 창원지청(055-239-0941)으로 문의하면 된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노루·사슴 노는 고향 땅서 편히 잠드소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9일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의 미륵산 자락에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전국의 문인, 통영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영 앞바다와 한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의 미륵산 자락에 안장됐다. 오후 1시쯤 양지농원에 도착한 유해는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유족, 지인들의 큰 절을 뒤로 하관됐다. 이어 유족들과 강원도 원주, 경남 하동 문인들이 고인이 소설 ‘토지’를 완간한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옛집의 흙과 타계 전까지 살았던 원주 토지문화관 텃밭의 흙, 최참판댁이 있는 하동 평사리의 흙을 관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열렸다. 고인이 2003년 전남 함평나비축제 명예대회장을 했던 인연으로 함평에서 가져온 하얀 나비 수십마리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가운데 고인은 양지바른 산자락에 영원히 육신을 눕혔다. 앞서 오전 통영시내 강구안 문화마당과 충렬사 주차장에서 추모제와 노제가 열렸다. 유해가 실린 꽃상여와 200여개의 만장(輓章)이 어릴 적 고인이 뛰놀던 통영시내 1㎞를 이동하는 동안 13만여명의 고향 주민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선생의 타계로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깨닫게 됐다.”면서 “이순신 장군의 독전 소리가 저렁저렁하던 한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뵈는 양지바른 곳,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그곳은 노루와 사슴이 쉬었다 가는 좋은 땅, 평화로운 땅이다. 그곳에서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추모사를 했다. 한편 통영시는 지난해 12월24일 고인이 81번째 생일을 기념해 외손자 2명과 통영을 찾아 시에 전달했던 유품 수백여점을 이날 시청 강당에서 공개했다. 공개 유품에는 ‘박경리문학상 제작에 관하여’ 육필원고(23장), 본명인 ‘박금이’(朴今伊)로 된 여권, 진주여고 재학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김약국의 딸들’ 영역본, 외손자 등과 주고 받은 엽서와 편지,‘토지’ 완간 10주년 특별대담 DVD세트, 충무시 문화상 수상패, 고인의 연필 드로잉, 액세서리 주머니, 신문 스크랩 등이 포함돼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나의 생활이요, 나의 문학이요, 나의 예술”이라며 가장 아꼈던 3가지 물품인 재봉틀과 국어사전, 통영 소목장(小木匠·목재로 만든 세간)은 들어 있지 않았다. 통영시는 유품을 2010년 개관 예정인 통영 박경리문학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국내 최장 통영 케이블카 개통 20일새 3번째 고장

    국내에서 가장 긴 노선의 경남 통영 케이블카가 개통 한달도 안 돼 3번째 운행이 중단됐다. 통영소방서에 따르면 9일 낮 12시 30분쯤 통영시 도남동 통영 케이블카 하부정류장과 미륵산 정상(해발 461m) 부근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42분간 운행이 중단됐다.이 사고로 30여개의 ‘곤돌라(소형 케이블카)’에 탄 관광객 200여명이 공중에 매달려 공포에 떨었다. 케이블카는 오후 1시18분쯤 작동이 됐으나, 통영관광개발공사 측은 탑승객들에게 환불을 해주고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통영 케이블카의 운행 중단사고는 지난달 18일 개통 후 같은 달 19일과 이달 4일에 이어 세번째다. 케이블카의 운행 길이는 1975m다.통영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하늘의 토지’에서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문학인장으로 엄수됐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정·관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완서, 최일남, 오탁번, 박범신, 윤흥길, 김원일, 조정래, 김초혜, 이근배,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 등 문인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외손자 세희씨가 든 위패와 최유찬 연세대 교수가 든 영정을 앞세우고 소복을 입은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정현기 세종대 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고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는 고인의 육성은 장례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선생님 손의 온기가 지금도 제 찬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데….”라는 대목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 이근배씨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조시를 통해 “선생님은 흙과 물, 나무, 짐승, 세상 사람들, 소설, 문학의 어머니”라면서 “부디 사랑의 손길을 한 번 더 잡아주소서.”라며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족을 대표해 김영주 관장은 “어머니께서는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어머니 죽음을 애통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울먹이며 힘겹게 인사말을 전했다. 유족과 내빈들의 헌화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최근까지 머물던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 원주에서는 고인의 단구동 옛 집터에 마련된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제를, 매지리 토지문화관과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다.9일 오전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헌무·헌다례 등 추도식에 이어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안장식을 끝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김규환 김승훈기자 khkim@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6) 경남 함양군 마천면 점태양지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6) 경남 함양군 마천면 점태양지

    ‘성안’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점태양지’는 하봉(1781m)에서 뻗은 초암능선과 두류능선 그리고 두 능선 사이의 굴곡을 곁에 둔 산중 은신처다. 추성리를 우측에 두고 광점동∼깨진박골까지 이어진 시멘트 외길 도로마저 끊겨 온전히 흙길뿐인 곳, 별장처럼 쓰이는 한 집을 제하면 마을을 통틀어 두 집이 전부다. 이곳 지명의 정확한 유래를 확인할 순 없지만 마을 주민 선득영(47)씨는 그저 ‘볕이 잘 드는 양지’라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 귀띔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오전 9시는 되어야 햇살이 들지만 해발 600m가 넘는 데다 마을 주위의 거대한 능선들을 감안하면 그 볕도 꽤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볕 잘드는 양지´라는 뜻… 마을 통틀어 두 집뿐 이름 그대로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안은 마을에서 두류능선 산행 초입 쪽으로 더 들어서야 만날 수 있다. 선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기와파편은 물론 놋그릇에 칼자루까지 발견되었다는데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 갖고 놀다가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단다. 관련 자료에는 가락국 마지막 왕이었던 양왕(구형왕)이 군마를 이끌고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한 성, 또는 신라가 백제를 방비했던 성 등으로 이곳의 석성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농막 한 채만 있을 뿐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아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남매를 인천의 장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단둘이 고향으로 내려온 선씨는 한봉과 염소 방목, 특용작물, 산나물 채취 등으로 생계를 잇는다.“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골이 좋아서” 귀농했다는 선씨의 주력 품목은 토종 벌꿀. 벌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 빼곡한 꽃나무 덕에 양질의 벌꿀을 생산할 수 있다고. 작년 5월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곰이 벌꿀 20통을 거덜 낸 적도 있다. 다행히 적절한 보상은 받았지만 집을 잃은 벌들이 다른 벌통의 벌들과 싸우는 바람에 총 100통이었던 것이 39통으로 줄어버렸다.5월부터는 본격적인 분통 작업이 진행된다.1통당 많게는 3통으로 불릴 수도 있다니 올봄은 여느 해보다 더 바빠질 것 같다. ●선득영씨 부부, 아기염소 ‘깜순이´와 알콩달콩 고향으로 내려온 건 선씨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 행정직원으로 근무했던 셋째는 깨진박골에서 ‘두리봉펜션’을 운영한다.7남매 중 대구로 시집간 막내를 제하고 맏이인 형은 추성리에서 ‘칠선산장’을, 선씨의 동창과 결혼한 넷째 여동생은 광점동 초입에서 ‘두레박흙집’을, 다섯째는 면소재지, 여섯째는 현재 같이 살고 있고, 아버지 삼형제 중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빼곤 역시 다 추성리 거주 중이니 그야말로 이 동네에서 태어나 다시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선씨 가족은 4대째 점태양지에 태를 묻었다고 한다. 아기 염소 ‘깜순이’는 선씨에게 귀여운 강아지나 마찬가지다. 깜순이 어미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혹독한 겨울에 깜순이를 낳았는데 젖을 찾아 달려드는 새끼를 내치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방안에서 분유까지 먹이며 키웠더니 이제는 선씨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얼마 전엔 뜨거운 쇠죽가마에 빠져 걷는 게 영 성치 못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녀석, 절대 내다 팔 수 없는 녀석이다. 나란히 걸터앉은 선득영씨와 깜순이 등 뒤로 웅웅,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들려온다. 마을을 나서며 들른 ‘서암’에서 잠시 산쪽을 돌아보니 황갈색 두리봉펜션만 성벽처럼 보일 뿐 점태양지는 둥그런 봉우리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손바닥같이 작은 마을은 지리산 능선과 숲에 싸여 조용조용 하루를 접을 모양이다. 서암의 처마 끝 풍경소리만 산바람을 타고 그 마을에 가 닿는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추성리까지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칠선계곡 이정표를 보고 의탄을 지나면 광점동과 추성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점태양지는 왼쪽 광점동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인근에 벽송사와 서암이 있으므로 오가는 길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 진안 흰구름마을

    진안 흰구름마을

    대단한 볼거리가 있다거나, 뛰어난 먹거리가 있는 여행목적지는 아니다. 다만, 그곳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고, 도시인들과 소통하려는 시골 사람들의 작은 손짓이 있을 뿐이다.‘흰구름 마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얘기다. 흰구름 마을 사람들은 이 지역을 지붕 없는 전원 박물관, ‘에코 뮤지엄´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상점간판을 바꿔달고, 자전거 산책길을 만드는 등 일견 제 얼굴에 화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속내를 가만 들여다 보면 자연과 사람이,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숲을 이루어 보자는 그들의 뜻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붕 없는 전원박물관 ‘에코 뮤지엄’ 북한의 개마고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이 전북의 진안고원이다. 특히 우리나라 오지의 대명사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한가운데 위치한 진안군 백운면은 고원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살아 있다.(흰)구름도 쉬어 간다는 백운면(白雲面) 원촌마을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 문화를 매개체로 사라져 가는 시골마을 특유의 ‘공동체´정신과 지역 경제를 살려보자는 주민들의 몸짓에서 마을의 변화는 시작됐다. “마을 위쪽 데미샘이 발원지인 섬진강 물길과 금남·호남정맥의 산길, 30번 국도 자동차길, 그리고 도보 국토종단에 나선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사람길 등 네 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백운면을 지납니다. 그런데 사람의 흐름은 있었지만, 그들과 소통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역 마케팅을 통해 그들을 이곳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농촌 경제 활성화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보자는 것이 ‘에코 뮤지엄´ 계획입니다.” 이 마을 ‘옹기장이´ 이현배씨의 설명이다. 가시적인 효과를 채근하는 마을 어른들을 설득하기 위해 상점 간판부터 바꿔 달았다. 각 상점 주인들의 ‘속사정´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작업도 벌였다.‘행운떡방앗간´ ‘흰구름 할인마트´ 등 정겨운 이름의 간판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산간마을에서 상점의 간판을 바꾼다고 당장 매상이 오를리는 없다. 오가는 이가 많지 않은데다, 주민이라면 어디에 무슨 가게가 있는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간판 바꿔달기 프로젝트를 계속한 이유는 도시인들에게 흰구름마을을 알리는 ‘이정표´로 삼기 위해서였다. 하나씩 예전 정서를 되찾다 보면 외지인들이 저절로 찾아올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자전거산책로 조성 간판 바꿔달기에서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자전거 산책로´와 ‘B-마트´ ‘자전거 터미널´ 등 설치물 제작으로 이어졌다.‘논길 타고 흰 구름 잡고´가 이 설치물들을 이용한 대표적인 테마 프로그램.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자전거 터미널에서 자전거를 빌려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낭만적인 자전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 산책길 설계는 백운초등학교 어린이 작가들로 구성된 ‘흰구름 탐사단´이 담당했다. 이들은 자전거 산책길로 정해진 논길 등을 다니며 표지판과 구간 이름, 쉼터 등을 정하는 작업을 벌였다. 어린이의 시각에서 정한 산책로 이름은 다소 유치하긴 하나, 각 구간의 특징을 어김없이 잘 살려내고 있다.‘두 그릇 쉼터´엔 큰 나무와 돌이 한 숨 쉬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고 있고, ‘개조심길´에 접어들면 담장 아래 도사견 두 마리가 기둥에 묶여 있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염소똥길´은 짐작이 가듯, 풀 뜯는 염소들이 많은 개천변길을 표현한 것. 운교리 물레방앗간은 어른들조차 마음에 담을 만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붉은 색 정미소 안쪽엔 실제 사용됐던 물레방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물레방아가 방앗간 내부에 설치돼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지방문화재임을 알리는 표지판에 1850년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적혀 있으니, 최소한 160년 동안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온 셈.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쌓였을 법도 하건만, 소나무로 짠 물레방아와 도정 시설들은 단단했던 옛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자전거 산책길의 절정은 역시 ‘아무나 수영장´. 무더운 계절, 아이건 어른이건 겉옷 훌훌 벗어던지고 자전거 타느라 흘린 땀을 씻어 내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젖은 옷일랑 수중보에 올려놓으시라. 뽀송뽀송하게 마르는 데 반나절 햇볕이면 충분하다. ●굽이마다 고운 풍경 숨겨놓은 모래재길 진안읍에서 30번국도를 타고 남원·임실 방향으로 진행하다 흰구름마을 조금 못미쳐 주천마을 진입로로 들어서면 726번 지방도와 만난다. 현지 주민들이 꼭꼭 숨겨놓은 등산로이자 자동차 드라이브길이다. 총 14㎞. 이 중 6㎞ 구간은 비포장길이다. 산벗꽃 꽃잎들이 낙화하는 덕태산 자락을 휘휘 돌아가는 맛이 각별하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자락 사이로 불쑥 솟아오른 마이산의 자태를 감상하기에 이만한 곳은 없을 듯하다. 산자락 경사면에 거대한 규모로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은 다시 백운면으로, 오른쪽은 장수군으로 향한다. 왼쪽길로 내려오는 동안 ‘무진장´ 오지를 실감케 하는 풍경들과 마주한다. 진안군의 한 ‘3선´ 군수가 10여년 임기 내내 관내 지역들을 도느라 발품을 팔았어도 끝내 못가본 곳이 있다던가. 우체부가 화전민들을 위해 산 아래쪽에 마련해둔 우체통이며, 너와로 지붕을 인 영모정 등에서 ‘오지의 풍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농사에 댈 물을 막아둔 신전제는 풍경의 덤. 진안에서 전주를 연결하는 24번 군도를 발견한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모래재길´로도 불리는 이 도로는 신설 26번 국도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진안에서 완주와 전주 등을 잇는 대로였다. 곳곳에 풍경의 보물들을 숨겨 놓은 멋들어진 길.‘대로´로서의 역할을 다한 요즘엔 지역주민들의 드라이브 길로 애용되곤 한다. 진안읍에서 전주방향 26번국도를 타고 4㎞쯤 가다 신정리 과적차량 검문소에서 좌회전하면 모래재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꽃잔디 등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효령대군 가족공원´을 지나면 곧바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전남 담양의 그것과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유있게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범상치는 않다. 모래재 휴게소를 지나 완주군을 휘돌아가기 시작할 때쯤 산길은 절정의 풍모를 과시한다. 승무를 추는 여인네의 소맷자락처럼 먼먼 산자락에 이르도록 ‘S´자로 휘어진 산간도로가 여간 장쾌한 풍경이 아니다. 막 신록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나무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오간다. 단풍들 무렵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글 사진 진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익산분기점→진안·장수방면→진안나들목,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 진안나들목. ▶숙소:진안장(433-6776)마이장(433-0771)이 깨끗한 편.2만 5000∼3만원. ▶먹거리:생후 1개월 안팎의 새끼돼지로 만든 애저찜이 유명하다. 진안관(433-2629), 금복회관(432-0651) 등이 입소문 난 곳.1인분 1만∼1만 5000원을 받는데, 2∼4인 이상 주문해야 한다. ▶주변 관광명소 ▲마이산: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국가지정 명승 제12호. 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암마이봉(673m)과 수마이봉(667m), 내부에서 풍화작용이 진행된 타포니 현상, 천지탑 등이 주요한 볼거리다. 문화재관람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430-2560. ▲운일암 반일암: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다 해서 운일암(雲日岩), 하루 중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다 해서 반일암(半日岩)이라 불리는 곳. 용쏘바위 등 집채만 한 기암괴석 사이사이를 운장산 자락에서 솟구친 냉천수가 휘감아 돌며 옥수청산(玉水靑山)을 이루고 있다. ▲풍혈냉천:한여름에도 4℃를 유지하는 동굴. 마이산 서쪽 성수면 양화마을 대두산 기슭에 있다. 여름철엔 마을 주민들이 김치저장고로 이용한다. 진안군청 문화관광과 430-2228.
  •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6일 고 박경리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류우익 대통령 실장,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영정에 헌화한 뒤 분향, 묵념을 했다. 또 이 대통령은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직접 영정 옆에 놓고, 유족인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뒤 박완서 장례위원장, 진의장 통영시장 등과 고인과의 인연과 장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조만간 뵈면 폐암수술 받으시라 권유하려고 했다.”며 안타까운 뜻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날 오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토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다른 세상에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근태 국회의원, 정동영 국회의원, 김기열 원주시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도 걸음해 조의를 표했다. 문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박경리 선생님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어 돌아가셨지만 아직 살아계신 것 같다.”며 “한국의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죽음은 한 연대기의 종지부를 찍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설가 전상국씨도 “박경리 선생님은 글 쓰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바위 얼굴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소설가 오정희·유시춘·신경숙, 시인 정현종ㆍ오탁번, 시나리오작가 신봉승, 만화 ‘토지’의 오세영 화백,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 등도 조문했다. 한편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와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모교인 진주여고에 차려진 분향소에도 이날 하루종일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통영시 중앙동 문화마당에 설치된 야외분향소는 오전 10시부터 지역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줄지어 분향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선생의 문학 뿌리와 원류는 통영의 자연 풍광과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유해는 8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 같은 날 원주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치른 뒤, 모교인 진주여고를 거쳐 장지인 경남 통영으로 운구된다. 그리고 9일 오후 1시 영결식을 지내고 산양읍 미륵산 기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규환 이정규 윤설영기자 khkim@seoul.co.kr
  • [소설가 박경리 타계] 작품 세계

    박경리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감내하기 어려운 곤고한 삶을 살아왔지만, 문학적으로는 누구도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을 이뤘다. 굳이 여러 작품을 들지 않더라도 대하소설 ‘토지’,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는 한국 소설사에서 누구도 건널 수 없는 대하(大河)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행한 출생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 그리고 폐암 선고…. 그가 사석에서 “나는 슬프고 고통스러워 문학에 몰입했고, 훌륭한 작가가 되기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고백한 것만 봐도 그 아픔이 얼마나 폐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박경리 문학작품에서 짙게 배어나는 인간 존엄에 대한 치열한 작가 의식, 도저한 생명사상에 대한 탐구도 그의 고단한 삶에서 기인한다.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한 박경리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불신시대’,1958년 ‘벽지’‘암흑시대’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단편소설이고, 체험적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이 화자(話者)로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이처럼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當代)를 읽어낸다. 대표적인 작품이 ‘불신시대’와 ‘암흑시대’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극도로 반발했던 박경리는 자연스레 여성이 처한 불행한 현실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부모의 삶에 깃든 억압-피억압의 관계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의 고민은 초기 단편 ‘전도’와 장편 ‘김약국의 딸들’‘파시’ 등을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됐다. 작가는 1959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독한 여인의 심적 방황을 그린 ‘표류도’를 발표하면서 장편 소설로 선회했다. 이후 ‘내마음은 호수’‘푸른 은하’ 등을 발표하는 한편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내놓았다. 이전의 전쟁 미망인을 즐겨 등장시키던 체험적 작풍(作風)에서 벗어나 한층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했다는 ‘김약국의 딸들’은 공간 배경도 전쟁터가 아닌 통영으로 바뀌었고 제재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드러낸다. 박경리 문학의 명제는 자유에 대한 집착,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 믿음 등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제도와 관습에 대한 치열한 저항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김약국의 딸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 후반 들어 박경리 문학은 일대 전기를 맞는다. 장편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 그 자신 “빙벽에 걸린 자일, 주술에 걸린 죄인이 된 기분으로 25년간 글감옥 속에서 ‘토지’를 완간했다.”고 할 만큼 ‘토지’의 집필은 피를 말리는 지난(至難)한 작업이었다. 한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품인 만큼 ‘토지’에 대한 논의 또한 풍성하다. 역사소설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 속에 ‘토지’는 가족사 소설·민족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는 등 한국문학 담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토지’는 이처럼 거대한 서사 구도 아래 다종다양한 계층의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토지’는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와 함께 생명사상의 흐름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토지’의 주인공 서희는 바로 이 존엄성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에게 있어 인간 존엄성의 상실은 한(恨)의 정한과 통한다. 그 한을 풀어가는 과정은 곧 박경리 문학 등장인물들의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토지’로 대표되는 박경리의 작품 세계는 민족적 삶의 총체상을 보여준다.”며 “박경리 문학의 밑바닥에는 인간적 품위와 낭만적 사랑의 정신,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한 줄기로 흐른다.”고 말한다. 하층민부터 상층민까지 한 사회의 모든 삶을 아우르는 ‘총체소설’의 양상이말로 박경리 문학의 업적이요 특징이라는 것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박경리 영원히 ‘土地’로 돌아가다

    박경리 영원히 ‘土地’로 돌아가다

    한국 문단의 거목 박경리씨가 5일 오후 2시4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82세. 지난해 7월 폐암 선고를 받은 박씨는 고령을 이유로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투병해오다 지난달 4일 뇌졸중 증세로 쓰러져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달 말 한 차례 고비를 겪은 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치료를 받다 끝내 이날 숨을 거뒀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씨는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이 소설가 김동리에 의해 추천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김약국의 딸들’‘파시’‘시장과 전장’ 등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현대문학에 ‘토지’ 1부를 연재하기 시작한 후 ‘문학사상’‘월간경향’‘문화일보’ 등으로 매체를 옮기며 1994년 8월 집필 25년만에 원고지 4만장 분량의 대하소설 ‘토지’ 전 5부를 탈고했다. 1897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1945년 8월 해방 때까지 서울과 중국 간도 등을 무대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간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토지’는 한국 문학사의 가장 큰 수확으로 꼽힌다. 1980년부터 강원 원주시 단구동, 지금의 토지문학공원에 정착했으며 1998년부터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왔다.‘토지’ 탈고 이후 9년만인 2003년 현대문학에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세 차례만 실은 채 미완으로 남겼다.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어머니’‘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여만에 발표하며 창작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1950년 남편 김행도씨와 사별했으며 유족으로는 외동 딸인 김영주(62)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67) 시인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8일 오전 8시 영결식을 가진 뒤 원주시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지내고 이튿날 장례를 치른다. 장지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기슭 양지농원. (02)3010-2631. 한편 정부는 5일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했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소설가 박경리 타계] “노벨상 받고 가시리라 믿었는데…”

    5일 한국 문단의 큰 별인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생의 제2의 고향인 강원 원주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원주가 선생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3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토지’를 완간하는 등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다.”며 애통해 했다. 시민들은 선생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6일부터 옛 집인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에서 매일 저녁 촛불기도 모임을 갖고 쾌유를 빌어왔다. 시민 정규완(47·회사원)씨는 “선생이 원주에 정착한 뒤 옛 집을 토지문학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선뜻 내준데다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을 만들어 창작의 산실로 삼는 등 지역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며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례위원인 김기열 원주시장은 “1980년 내려오신 뒤 활발한 작품활동은 물론 원주에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져주셔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갖게 하신 분인데 황망히 떠나시게 돼 섭섭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조의를 표했다. 선생을 곁에서 보필해 온 고창영 토지문학공원 소장은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시간과 모든 추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원주시는 이날 토지문학공원 내 선생의 옛 집필실 1층에 시민들이 조문을 할 수 있도록 분향소를 설치했다. 장례일에는 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준비하고 토지문화관도 들를 예정이다. 한편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민들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유치환, 김춘수에 이어 통영이 낳은 한국 문학계의 마지막 산맥이 타계하셨다.”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실 때까지 살아계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순철 통영문인협회 회원은 “‘김약국의 딸들’ 등 박경리 선생의 많은 작품의 무대가 통영이었다.”면서 “살아계실 때 통영에서 박경리 문학관 착공 테이프라도 직접 끊었으면 좋았을 텐테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통영시는 이날 진의장 시장을 명예 위원장, 정해룡 통영예총회장을 위원장으로 해 문화·교육·언론계·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명이 참여한 ‘고 박경리 선생 추모위원회’를 구성해 애도를 표하고 추모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추모위원회는 6일 오전 10시부터 통영시내 중심가인 강구안 문화마당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통영 이정규·원주 조한종기자 jeong@seoul.co.kr
  • [소설가 박경리 타계] 1955년 등단…본지 기자 지내

    [소설가 박경리 타계] 1955년 등단…본지 기자 지내

    1926년 10월28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아버지의 방랑벽으로 사실상 홀어머니 밑에서 생활하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이런 신산한 삶을 잊기 위해 독서와 시작(詩作)에 매달렸다. 훗날 그가 사석에서 “혹시나 어머니의 눈에 띌까 전전긍긍하며 매일매일 시 쓰기에 매달렸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크나큰 위안이었다. 삶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경리는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이듬해 결혼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고 그해 말 남편을 사별한 데 이어 전쟁 직후에는 아들마저 여의는 참척(慘慽)의 아픔을 겪었다. 이런 절망적 삶은 그를 처연한 문학의 외줄타기로 더욱 거세게 내몰았다.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은 단편 ‘계산’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그는 오롯이 글쓰기에만 한평생 매달렸다. 1969년 박경리는 자신의 문학적 삶에 큰 걸음을 내디딘다.‘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1994년 5부를 끝으로 20여년에 걸친 ‘토지’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토지’를 완간한 그는 1998년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돼 후배 양성에 매진하는 한편 99년 토지문화관을 건립, 후배 작가들에게 창작의 공간을 제공해 왔다. 박경리는 뛰어난 작가이기 이전에 유능한 기자이기도 했다.1959년부터 3년여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를 지냈다. 당시 ‘다치기레’(해설 박스기사)를 혼자 쓰다시피하며 필명을 날린 일화들이 전해온다. 그러나 그 자신 언론에 몸담았으면서도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언론과의 접촉은 극도로 꺼렸다. 작가는 오로지 글로만 말한다는 신념에서였다.“작품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만큼 독자들이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작가가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미흡하다는 뜻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삼엄한 경계였던 셈이다. 생명운동가답게 그는 일상생활도 아주 소박했다. 새벽 2시쯤 일어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쓴 뒤 동이 터오면 텃밭에 나가 손수 심은 고추 등 채소를 정성스레 돌봤다. 토지문화관 옆의 텃밭에도 철마다 푸성귀를 가꿔 오가는 지인들에게 나눠준 그였다. 작가에게 글쓰기 이외의 유일한 위안은 담배였을까. 그는 하루 1갑 넘게 담배를 피운 지독한 애연가였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국내 첫 크루즈선 ‘순항’

    국내 첫 크루즈선 ‘순항’

    ●중간 기항지서 자기 차로 육상 관광 환상적 바다여행의 지평을 연 크루즈선이 국내 첫 취항 후 한달째를 맞아 순항하면서 국내 관광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경남과 전남, 제주도 등의 섬과 내륙을 잇는 이 크루즈선은 4일 취항 한 달을 맞는다. 2일 팬스타라인닷컴과 여행사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첫 출항한 1만 5000t급 팬스타 허니호는 첫 운항 때 정원(300명)에 육박하는 평균 250여명이 탔다. 이후 3박4일과 1박2일짜리 등 4번 출항에 평균 탑승률이 150여명이었다. 이 크루즈선은 부산에서 출발, 여수∼진해∼완도∼제주 등 남해안을 오간다. 더욱이 팬스타 허니호는 자동차를 싣고 다니다 중간 기항지에서 멈추면 관광객들이 자신의 차량으로 육상 관광을 할 수 있다. ●지자체들 관광객 증가 기대 이를 노려 여수·진해·완도·제주·통영 등 주요 기항지에서는 단체장들이 크루즈선 입항 때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펴는 등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선상에서 색다른 공연과 이벤트를 즐기면서 일출과 일몰, 아름다운 섬 풍경, 기항지의 명소와 특산물, 먹을거리 등을 한꺼번에 즐기는 것은 기존 관광 상품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를 탔던 관광객들은 “팬스타 허니호가 세계를 누비는 호화 크루즈선에는 못 미치지만 기존 유람선이나 여객선과는 차별화된 고급 시설과 서비스로 고품격 바다 여행 시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전용부두 부족·고유가 등 걸림돌 그러나 1인당 1박 기준으로 15만∼50여만원인 요금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1박2일부터 3박4일까지 상품권이 있고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받지만 4인 가족이 3박4일 동안 이용하려면 180만원이 든다. 또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전용부두가 부족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팬스타라인닷컴측은 “대형 선박에는 많은 기름과 인력이 들어가 경영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며 “면세유 사용이나 선내 면세점 허용 등 정부 차원의 크루즈 관광 육성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팬스타 허니호는 이달부터 일본의 주요 온천지나 러시아를 둘러보는 국제 크루즈도 시작한다. 한편 전남에서는 크루즈선과 맞먹는 시설을 갖춘 씨월드고속훼리㈜ 소속 1만 7000t급 퀸 메리호가 지난 1일부터 목포항에서 제주항을 하루 1차례씩 오간다. 이 여객선은 길이 150m, 폭 25m로 관광객 1650여명과 차량 300여대를 싣고 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배 안에서는 300여명이 영화 감상을 할 수 있고 오락실, 레스토랑, 편의점, 사우나, 호텔 수준의 객실(81개) 등이 있다. 부산 김정한·무안 남기창기자 jhkim@seoul.co.kr
  • ‘도다리 세꼬시’ 당분간 잊어라

    ‘도다리 세꼬시’ 당분간 잊어라

    봄철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도다리 ‘세꼬시(뼈회)’는 앞으로 먹기 어렵게 됐다. 경남도가 전년도 자연 산란된 어린 고기와 방류된 종묘 등 어자원 보호를 위해 시·군과 동해어업지도소, 통영해경과 합동으로 다음달 16일부터 6월 말까지 ‘어린 고기 불법포획 및 판매행위’를 집중 단속한다. 수산자원보호령이 정한 포획금지 대상 어류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봄에 주로 잡히는 도다리와 볼락은 15㎝, 감성돔은 20㎝, 넙치 21㎝, 농어 30㎝다. 또 돌돔과 참돔은 24㎝, 붕장어는 35㎝ 이하 어린 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 아울러 불법포획한 어린 고기를 운반하거나 판매 또는 소지하는 행위도 단속대상이다. 단속에서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30∼60일 영업 및 조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도는 단속에 앞서 다음달 1일부터 15일까지 도와 시·군 공무원이 직접 어민과 횟집, 활어 운반차, 어류 도·소매점 등을 대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어민과 수협 임직원,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어업질서확립 워크숍을 열고 올해를 ‘어린 고기 보호·육성의 해’로 정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즐겨 먹던 도다리 세꼬시는 못먹게 된다. 도다리 세꼬시는 15㎝ 내외 어린 놈이어야 가장 맛있지만 잡을 수 없다. 이 틈을 노려 악덕 유통업자와 횟집은 중국산 돌가자미를 도다리라 속이고세꼬시로 만들어 손님 상에 내놓을 듯하다. 넙치 양식장에서 솎아낸 치어를 도다리라고 속일 수도 있다. 한편 올들어 중국에서 수입된 활돌가자미는 381t에 이르고, 수입량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 관계자는 “대대적인 단속에도 어린 고기 불법포획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정부와 다른 시·도의 협조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일부 업자들이 불법포획한 어류를 다른 시·도에서 판매해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도는 올해 52억원을 들여 1800만마리를 방류할 계획이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Zoom in 서울] 반포대교 ‘분수다리’로

    [Zoom in 서울] 반포대교 ‘분수다리’로

    9월이면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반포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멋진 분수를 연인과 함께 감상하며 향긋한 커피향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반포분수, 잠수교 보행로 확보, 반포지구 한강시민공원 재조성 등 ‘반포권역 특화사업 및 반포분수 설치공사’를 29일 착공식과 함께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9월 말 반포대교 600m 구간 양쪽 상판 밑에 각각 190개의 ‘노즐’을 설치하고,44대의 수중펌프로 끌어올린 한강물을 분당 60여t씩 한강으로 내뿜는다. 약 30도 위로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다리 상판에서 2m 정도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20m 아래 한강으로 떨어진다. 특히 무빙 노즐과 시간·수압 조절장치가 장착돼 물을 하나의 모양으로 내뿜는 것이 아니라 ‘웨이브’ 등 다양한 형태로 연출할 수 있으며, 다채로운 색상으로 변하는 경관 조명과 독일 오아제(OASE)사의 최첨단 음향효과 설비도 설치된다. 반포분수 인근에 경관조망대와 카페 등 다양한 특화공간을 조성해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만든다. 4∼10월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5차례에 걸쳐 3시간씩 가동할 예정이다. 잠수교도 보행자의 다리로 변한다.10월 말까지 길이 1558m의 잠수교 4개 차로 중 2개 차로를 없애고 폭 14∼18m의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만든다. 차선 2개도 ‘S’자형으로 변경, 차량 속도를 현재 시속 60㎞에서 40㎞ 이하로 제한하고 경사가 급한 낙타봉 구간도 중앙에 차선 규제봉을 설치하는 등 보행자를 배려하는 다리로 거듭난다. 이와 함께 잠수교에 7개의 테라스식 ‘접속 데크’를 만들어 시민들이 한강에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하고 구름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웨이브 타공판’을 잠수교 천장에 설치해 반포대교 하부의 볼품없는 구조물을 가릴 계획이다. 또한 반포지구 한강공원에는 달을 형상화한 4만㎡ 규모의 ‘달빛광장’과 한강의 ‘인라인 허브’ 역할을 할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설치한다. 리버워크 산책로, 피크닉장, 놀이터, 주차장 등도 리모델링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김영걸 본부장은 “앞으로 교통영향평가 등을 통해 잠수교의 차로를 없애고 보행자 전용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경남·도내 9개 시·군 행정 업그레이드

    경남·도내 9개 시·군 행정 업그레이드

    경남도내 지방자치단체들이 전문가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행정의 질을 높이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앞다퉈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28일 경남도와 시·군에 따르면 도를 비롯한 9개 시·군에 모두 32명의 외부 전문가가 채용돼 근무하고 있으며, 일부는 올해 안에 채용할 계획이다. ●김해 도시디자인 벤치마킹 대상 이들의 경력은 대기업 임원 출신에서부터 언론계, 각종 연구원 근무까지 다양하며, 일부는 박사 및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거의 2∼3년 단위의 전임 계약직으로 채용돼 근무하고 있다. 도내에서 전문가들을 가장 많이 채용한 지자체는 창원시이다. 경제·환경·통상 등 분야에 모두 20명이 근무 중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은 기업유치 및 상담, 환경 관련 전문가들은 시가 지향하는 환경수도 건설을 위한 정책개발 등 각자의 전문분야 및 경험을 살리고 있다는 평가다. 김해시의 경우 박사 학위를 가진 40대 여성이 도시디자인과에 근무하며, 시의 색채를 결정한다. 그녀가 솜씨를 살린 김해의 도시디자인은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다. 특히 지난해에는 ‘김해시 공장 색채 가이드라인’을 마련, 시 전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 색깔을 지정해 눈길을 끌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 교육센터로 선정된 통영시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춘 전문가 두 명을 영입했다. 이들은 각종 국제기구 가입이나 국외 홍보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거제시는 어촌 민속전시관에 어류 질병관리 전문가 2명을, 남해군은 곤충분야 전문가 1명을 채용, 나비생태관에 배치했다. 의령군과 고성군은 지방지 부장급 출신을 각각 홍보관으로 임명, 대외 홍보를 강화했다. ●함양, 산림전문가 연내 채용 또 산청군은 지역 특산물인 약초 사업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영입한 박사급 전문가는 관련 자료 조사 및 약초의 이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평생학습도시 거창군은 평생교육사 2명을 뽑아 소외 계층을 위한 문화교육과정을 기획하도록 했다. 함양군은 천연기념물인 상림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산림 전문가를 올해 안에 채용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행정의 다변화 및 민원도 다양화하고 있다.”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외부 전문가의 영입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분’과 만날 시간이 왔다.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맞이하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천지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퍼붓는 정열의 햇살로 온통 찬란해진다.98세에 작고한 피천득 시인은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찬미했다. 어디 이뿐이랴. 어버이, 스승,‘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삼 생각나게 한다. 그럴 것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기념적인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禪),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奉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5월과 무관치 않은 한 스님을 만나보자. 곧 칠순임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지낸다. 무장무애(無障無), 아무 거리낌 없이 ‘하하하’ 크게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한 부처 같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말할 수 없도록’ 그리워해 그림(禪畵·선화)을 그리고 시를 쓴다. 내공이 워낙 깊은지라, 주위에서는 ‘선화의 대가’라고 칭송한다. 10년 전쯤이다. 스님이 양저우(揚州)박물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루는 양저우시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때마침 선화의 대가가 양저우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글씨와 그림에 관한 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어릴 적 은사도 참석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중국의 한 원로화가가 붓을 잡더니 즉석에서 물소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 화가는 붓을 한국의 스님에게 건넸다.‘화답’을 청했던 것. 뒤질세라 스님은 주먹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원래 악필(握筆)인 스님은 창호지에 원을 그리고 점을 몇군데 쓱쓱 찍었다. 불과 몇분 후 붓을 내려놓자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짓는 복덩이 동자상이었다. 양저우시장이 즉석에서 “공부 잘하도록 우리 아들 방에 걸어놓으면 너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은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을 섰다. 스님은 이날 밤 새도록 붓을 잡았다. 스님과 관계된 일화는 많다. 프랑스 상원의장 초청으로 뤽상부르궁전 의장공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프랑스와 우리나라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베를린, 카사블랑카,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돌며 전람회를 열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얼마 전에는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엽서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다. 법문 스타일도 독특하다.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마무리할 때 ‘우리의 소원은 성불’을 불러 신도들을 울리기도 한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중생을 연민하고 구제하는 일에 남달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통도사(通度寺)의 축서암(鷲棲庵)을 찾았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된 암자로 영축산(靈鷲山·혹은 영취산)의 옛 이름 축서산에서 비롯된다. 400여년이라는 축서암의 세월 가운데 근래 30년을 문제(?)의 스님이 살아서인지 축서암은 거대한 화실처럼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게 핀 자목련이 원숙한 여인처럼 금방이라도 유혹할 듯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 뒤로는 온갖 푸른나무들이 병풍처럼 쭉 늘어서 넋을 놓게 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자양반인가? 읍내(서울)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촌구석까지는 뭐할라고 왔노.”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선화의 대가 수안(殊眼) 스님이었다. “차나 마시고 가게.” 합장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쥐 두마리가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떠받치는 그림이 창문에 붙여져 있었다. “왜 ‘수안’이라고 했습니까?” “내 속가의 성이 ‘문(文)’이야.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殊)에다 ‘문수의 안목을 키워라’해서 안(眼)을 넣었지.” “만화방창, 이 봄에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허허허, 봄이 되면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많지.” 연근차 몇잔을 마셨다. 스님은 평소 길을 떠날 때 차보따리를 끼고 다닌다. 스님이 마실 차, 그리고 스님과 만날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한다. 그게 바로 풍류의 시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수무향(眞水無香)의 ‘풍류차’를 권하면서 ‘어차피 인생살이가 다반사(茶飯事)이지요.’라고 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을 보더니 “어라, 머리만 안깎았군.”이라고 했다. 전생이 스님인가? “호 하나 지어주랴? 고을 제(濟)에서 삼수는 빼버리자, 그리고 산에 기대 살아야 하니 산(山)을 넣어 제산(齊山)으로 해삐리라.‘재산’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다. 하하하.” 얼핏 ‘개구쟁이 스님’의 장난기로 들려올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토굴생활 등 혹독한 수행으로 ‘대긍정(大肯定)’의 경지까지 오른 ‘큰스님’의 말씀 아닌가. “대긍정은 어떤 것인가요?” “별거 아니야, 긍정과 부정도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부정이 많다 보면 그림자가 많아져. 캄캄한 방에 전깃불 켜는 것도 수행이지. 스위치 하나로 어둠과 밝음, 즉 긍정과 부정이 생기거든. 흐르는 물이 굴곡을 탓하는 거 어디 봤는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별로 들 것도 없으면서 왜 무겁게 짊어지고 쫓기면서 살아? 아나 다 놓아삐리라. 집착은 곧 노예인 것이야.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해봐. 요즘은 어머니도 고향도 다 잊고 살아가. 지혜는 없고 지식과 정보의 노예로 다들 전락했어. 그러니까 고급인력들이 빈둥빈둥 놀고 자빠졌지.” 스님의 시 중에 ‘사모곡’이 있다.‘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자/기쁠 때 불러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아기가 됩니다.’ 스님은 ‘진리는 곧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비원’을 통해 무의탁 노인을 돕는다. 또 부산 지역 지체장애아동들에게 매년 휠체어 100대씩 사서 선물하는 등 수십년째 선행을 베풀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져 몇푼의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일도 다반사이다. 스스로 ‘수행화가’라고 표현하는 그는 17세 때 출가 직후부터 석정 스님을 스승으로 전각과 선화를 익혔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 어머니, 초가집 등 토속적 냄새가 짙게 담겨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됐습니다. 그동안 후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비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안 일어날 물이 어디 있겠어. 성불하려면 비워야 해. 가득차 있으면 뭘 담겠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문 하나를 정중히 부탁했다.“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이 절로 푸르기 마련인데 괜히 욕심 보탤 거 없어. 심청사달(心淸事達)이야.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부정과 긍정도 다 흑백논리야. 최선을 다해도 나중에 부끄러운데 눈속임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영혼이 부끄럽겠나. 내 자식이 귀하면 이웃 자식도 귀하고, 사회와 국가도 귀하지 않겠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수안 스님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57년 석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64년 월하 스님에게 비구계 수지하고 이후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에서 수선안거에 정진했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85년 파리 초대전,86년 중앙승가대건립기금마련 전시회,89년 두달간 유럽순회전 등 유럽과 러시아, 남미 등에서 전시를 가져 독특한 수행력을 과시했다. 특히 불우어린이와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는다. 그림전시도 ‘중생돕기’ 차원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전’에 공동전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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