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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러 대표부 총격전/류민특파원 러대사관 통화

    ◎40대직원, “망명희망국은 대답 못한다”/“범인 우리가 보호중… 협상 시간 걸릴것” 서울신문은 14일 모스크바 시각 하오 4시30분부터 약 6분간 현재 망명을 요청중인 북한청년과 러시아공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협상 상황취재를 위해 평양 모스크바공관과 통화하는데 성공했다. 목소리로 보아 40대중반으로 보이는 대사관직원은 통화하는 동안 시종 누군가 도청하거나 옆에 있는듯 조심스런 태도가 역력했다.그는 『북한 청년이 난입한 뒤 「쫓기고 있다」「정치적 망명을 원한다」고 말했다』는 말외에 특이사항은 말해주지 않았다.『어느나라로 망명을 원했느냐』는 질문에도 답해주지 않았다.다음은 40대중반의 대사관직원들과 두차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조용하다…』 ­난입순간을 전해달라. 『총소리가 나고 얼마되지 않아 대사관부지내 무역대표부 1층사무실에 그가 총을 겨냥하며 들어왔다.그는 「지금 나는 쫓기고 있다.정치적 망명을 하려는데 도와달라」고 다급하게 들어왔다』 ­협상은. 『지금 옆 빌딩인 무역대표부에서 아직 진행중이다.순조롭게…통역요원으로 북한인을 쓰려했으나 「범인」은 북한인 어느 누구도 거부해 우리 직원들이 하고 있다.북한측 관계자들도 나와있다.시간이 걸릴것 같다』 ­어느나라로 망명을 요구하고 있는가. 『지금단계에선 절대로 말못한다』 ­경비병력이 증원됐다는데. 『지금 추가 경비병력은 없다.금방 조용해졌다』 ­이름을 말해 줄 수 있는가. 『(몹시 당황)얘기 못한다.빨리 끊어라』(두번째 통화) ­지금 협상상황을 얘기해달라. 『아직 계속중이다.누구냐』(모스크바 주재기자라고 응답해줌.목소리로 보아 무관같은 인상을 받음) ­「범인」인상착의나 직업등을 말해줄 수 있나. 『젊었다.잘 모르겠다.뉴스(이타르타스통신 같음)에서 나온 그대로다.제발 빨리 좀 끊자.지금상황에선 얘기할 것이 없다』 두번에 걸쳐 약6분간 진행된 전화통화는 감도가 비교적 좋았다.그러나 첫 통화시도까지는 도시코드와 평양시내 전화번호사이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시간이 걸려 애를 먹었다.모스크바에서는 8­10850­2­3­813101이 평양대사관 전화번호다. ◎총격전 벌어진 러 대표부/평양중심 러 외교단지내 위치/3층 대사관옆 2층건물… 5∼6명이 근무/인근에 만수대예술극장… 북 경비병이 감시 북한의 20대 무장청년이 14일 하오 망명을 요구하며 침입한 러시아 무역대표부는 평양 중심가의 러시아 외근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는 만수대거리 일부인 평양시 중구역 신양동.이 단지안에 자리잡은 러시아 대사관은 3층건물 1개동에 2층건물 1개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두 건물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3층짜리 건물은 대사관건물로,2층짜리 건물은 무역대표부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 외무부관계자들의 얘기다.난입한 무장 북한인은 정원이 보이는 정문쪽으로 들어와 무역대표부 건물을 대사관 건물로 착각,들어선 것이 아닌가 외무부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현재 주 평양 러시아대사관에는 대사를 포함,외교관 16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무역대표부에는 5∼6명의 직원을 파견해놓고 있는것으로 외무부 관계자들은 밝혔다.평양에 파견된 러시아외교관의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해외공관이 해마다 축소돼 상호주의에 입각,줄어드는 것으로 모스크바 외교소식통들은 밝히고 있다. 각국 외교관들은 북한당국의 허가 없이 평양시내를 벗어날 수 없으며 평양시내를 돌아다니는데도 항상 감시원들의 감시를 받았었다고 최근 북한에서 들어온 한 외교관은 말했다.이 외교관은 보통 공관마다 5∼6명의 북한경비병들이 경비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외교관 또는 상주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밝히고 있다.그는 특히 최근 북한인들이 여러 목적으로 허가절차없이 타국 외교관저 출입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공관건물에 대한 북한인들의 접근방지를 위해 북한당국이 경비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귀순 강명도씨 평가/“노동당사 바로옆… 믿기지 않는 일” 총격전이 일어났다는 러시아무역대표부가 북한노동당 청사 옆에 있고, 더욱이 그 관리를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한다는 점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다. 더욱이 무역대표부가 들어있는 2만여평 규모의 러시아대사관부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구역 안전부보위팀이 지키는 등 이중삼중으로 경비가 삼엄한 곳에서 이러한 망명기도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번 사건은 하마디로 북한체제가 중심부에서도 서서히 붕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마가단의 교육현실(시베리아 대탐방:62)

    ◎“배고픈 지식층 싫다”… 대학인기 시들/중학 11학년제… 9학년부터 취업·진학 선택/시장경제 전환뒤 교단이탈 교사 줄이어/유치원 국고보조금 줄어 학부모 부담 가중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학제는 중학교가 11학년제다.우리의 초·중·고교를 합쳐놓은 셈이다.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11학년까지 마친 뒤 5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하든지,아니면 9학년까지만 다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직업학교에 간다.만7살까지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마가단 제2중학교 역사실.정규대학 진학을 앞둔 졸업반인 11학년 1반학생 18명이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장래 희망직업을 물었다.변호사나 판·검사등 법률가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원 4명,사업 3명,경찰1명,통역1명이다.과학자나 우주인 군인 엔지니어 노동자 등 예전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수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법률가·은행원 가장 인기 9학년2반 교실.학생 23명에게 학교를 계속 다닐지 여부를 물었다.11명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 9학년까지만 다닌다는 대답이다.일부는 직업학교에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남학생 유라 아브라모프는 『공부도 잘못하지만 비싼 돈내고 대학에 다녀봤자 별볼일 없기 때문에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학급 담임 아냐 스처니코바(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학자나 교사 등 지식층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아져서 학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 나가 장사하거나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장사를 하거나 처우가 좋은 은행원이 되려고 하지 애써 열심히 공부해 배고픈 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루드밀라 베르진스카야 교장(여)은 『학부모들도 예전에 무료였던 대학학비가 이제는 유료로 비싸진 데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 터여서 공부를 시켜야 할지 시장에 내보내 장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설명한다.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덩달아 변화를 겪고 있는 학교교육 현장의 고민이다.마가단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학년별 4학급씩 44개반 학생 1천명이 다닌다.수업은 주5일.1학년 24시간에서부터 11학년 32시간까지다. ○교과서 공급 제대로 안돼 교사는 80명으로 대부분 여자다.작년에만 6명이 그만 뒀다.교사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초임이 25만루블(약4만원),10여년 경력자가 60만∼70만루블,20년이상이 1백만루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옐친 대통령이 지난 8월1일부터 교사월급 인상을 지시했으나 한달이상 오르기는 커녕 제때 지급마저 안돼 지난 9월26일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쟁취한 월급이 그 정도다.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이직자가 속출한다.사범대학 졸업생들마저 학교로 오지 않고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나이들어 오갈데 없어 연금받기를 기다리거나,아니면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들만이 교단을 지키는 형편이다.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져간다.1주일에 18시간 수업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20∼27시간이 보통이다.게다가 영어·독어 등 외국어 시간이 늘어나고 컴퓨터 등 새로운 과목이 많아서 인근 연구소나 도서관 등에서 특별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어렵사리 모셔오면 실력있는 특별강사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기존교사들이 일하기란 더욱 어렵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 교과서도 많이 개정되고 학생들도 잡지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역사 교과서는 트로츠키나 부하린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과 벌였던 권력투쟁 등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문학교과서도 예전에는 공산주의 작가의 작품위주로 실었으나 이제는 사상적인 작품분석은 사라지고 솔제니친 같이 예전에 공산주의에 맞지않아 발간되지 않고 잊혀졌던 작품들도 교과서에 나오고 시중에서 출간된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 5∼6년사이에 한꺼번에 교과서가 너무 여러가지 나와 어떤 책을 택해야 할지 교사들도 곤혹스럽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는교과서 공급마저 제때 안돼 교사들이 모스크바로 출장갈 때 한권씩 사와 복사해서 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생 52명에 직원 31명 25년 경력의 역사교사 마리아 스파크는 『러시아 역사의 좋고 나쁜 점이 모두 교과서나 시중서적에 다양하게 나오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책이나 잡지,신문 등을 읽고 재량껏 가르친다』고 말한다. 1학년의 경우 유치원에서 간단한 읽기 쓰기는 배워오는데 요즘에는 학비 때문에 유치원을 안다닌 학생들이 늘어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인근에 위치한 36년 역사의 마가단 제2유치원을 찾았다.만2세부터 7세까지 나이에 따라 4개학급으로 나뉘어 52명이 다닌다.아침 7시30분쯤 부모들이 출근하면서 데리고 와 저녁7시30분쯤 퇴근길에 찾아간다.러시아어 읽고 쓰기,산수·미술·체육·음악 등을 가르치고 하루 세끼를 제공한다.교실외에도 장난감실·체육실·마사지실·치료실·음악실 등을 갖추고 있다.취침실도 마련돼 있어 점심식사후에는 2시간 정도씩 재운다. 교사 11명,보조교사 6명과 요리사·마사지사·세탁부·운전기사 등을 모두 합하면 직원수는 31명이다.지난 9월부터 54% 인상된 월급이 30만∼42만루블(6만원 내외)이다.나탈리야 젤렌스카야 원장은 『봉급이 적어도 천직으로 알고 일한다』고 말한다. 학비는 하루 4천1백루블씩으로 월 평균 8만∼9만루블(1만5천원)씩이다.실제비용은 한아이당 한달에 50만루블이 소요돼 80%를 국가에서 보조받아야 하지만 국고보조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지만 여의치 않다.올들어 식비가 10% 올랐다.유치원 학비부담이 몇년전까지만 해도 월평균급여의 2%였지만 요즘은 10%로 높아졌다.앞으로 학비는 더욱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유치원생 1.7명당 직원 1명씩을 두고 부족할 것없는 시설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절의 유산이다.교육분야에서도 일정부분 시장원리에 따른 수익자 부담 원칙을 수용해야 하고 가치관마저 변화하는 현실은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 LG,인니에 대형TV 공장/6억달러 투입

    ◎금융·통신운영 등 사업다각화/발리서 사업세미나… 사장단 대거 참석 【덴파사르=김균미특파원】 LG그룹이 6억달러를 투입,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근교에 대형 컬러 TV 생산공장을 건설한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및 동남아지역의 사업전략 방향을 기존의 제조업 일변도에서 금융과 통신운영,개발사업등 3차산업으로 다각화시켜 나가고 기존의 전기·전자,석유·화학등 그룹 주력사업분야는 현지의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시장토착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LG그룹은 해외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1일 인도네시아 발리 쉐라톤 컨벤션센터에서 「인도네시아 및 동남아지역의 사업환경과 지역전략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동남아지역에서의 향후 사업전략을 이같이 밝혔다. 2일부터 발리에서 열리는 「스킬경진대회」 일정중의 하나로 마련된 이날 세미나는 LG그룹의 해외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변규칠LG상사회장겸 그룹 부회장이 주관하고 성재갑LG화학부회장,구자홍LG전자 사장,천진환중국지역본부사장등 해외사업추진 위원인 10여명의 사장단과 해외사업 및 해외금융 담당 임원등 40여명이 참석해 인도네시아 및 동남이지역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는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됐다.
  • 조선성씨 집성촌(압록강 2천리:19)

    ◎봉성­본계현일대 서·문씨들 “오순도순”/이주후 300여년 걸려 서가보·박보촌 등 형성/동성동본 혼인기피… 다른민족 아내로 맞아/조상숭배 대단… 혼례전 선조묘소 절하고 예식치러 요령성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왕래하자면 반드시 지나가야하는 회랑이다.그래서 오가는 길에 주저앉아 눌러살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와 자리를 잡기도 했다.동아시아 역사와 무관치 않은 요령성 이유민은 대를 두고 많은 후손을 남겼다.오늘의 조선족과 크게 구별되는 이유민의 역사는 꽤 오래되어 요령성에는 조선 성씨를 가진 유명한 집성촌이 더러 있다. 서씨와 문씨가 많이 사는 요령성 봉성현의 서가보,박씨의 못자리판인 본계현 산성자향의 박보촌이 대표적 집성촌이다.박씨의 경우는 박보촌 말고도 개현 진둔향의 박가구가 또 있다.이들이 집성촌을 이룬 것은 약 3백∼3백50여년이 된다고 한다.그러니까 이유민으로 들어온 선조로부터 약10∼11대손이 조선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봉성현 서가보의 문씨 선조가 요령성에 첫발을 들여놓은 시기는 17세기 중엽이었다.서가보의 문씨가 현재 보존하고 있는 「문가씨보서」의 머릿말을 보면 내력을 잘 밝혔다.시조는 문서였는데 본래 조선인이었다는 것과 압록강에서 1백20리 떨어진 옥상좌동(평안북도 땅)에서 세세대대를 살았다고 기록했다.그리고 문씨 시조 문서가 청나라 순치연간(1644∼61년)에 시험을 치러 역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청나라 역관신분 정착 문서는 역관이 되었을 때 나이는 30살이었고 조선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인 요령성 봉성현 봉황성에 배치받았다.6품 통역관 직책으로 조선사절의 신분을 조사하는 일을 담당했던 그는 늘 후덕한 인상을 풍겼다.그리고 김씨와 나씨,박씨 등 세 부인 사이에서 아들 셋을 두었다.그 후손들은 1911년 신해혁명까지 한 자리에서 세습 통역관의 대를 이었다.이들이 봉성일대에 여러 문가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봉성현에서 진장을 지낸 윤희봉(35)씨 이야기에 의하면 문씨와 서씨 말고도 여러 조선 성씨를 가진 만족(만주)이 요령성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현재 단동시 조선족문화관장인 그는 조선 성씨를 가진 민족의 생활상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만족들 중에는 최씨와 김씨,백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디요.집성촌은 아닙네다만,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네다.술자리에서 더러 자리를 같이 하면 자기 조상이 아무개 누구라면서 조선족 만난 것이 반갑다고 난리를 칩데다.그들 조상도 대개 문씨네 조상과 같은 시기에 건너온 사람들이디요.그러나 문씨와 서씨네 만큼은 조선의 냄새가 덜 합네다.문씨네는 초상을 당하면 흰상복에 삼띠를 두르고 여자들은 머리를 풀어 흰댕기를 매더란 말입네다』 그리고 본계현 삼성자향 박보촌에는 40가구가 박씨들이었는데 전체주민의 40%를 차지했다.박보촌은 만족어로 쌍하스마후다.17 25년부터 그렇게 불렀으니 3백년의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청나라 초에 박대와 박오가 땅을 부친 것이 동기가 되어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박보촌의 맥을 잇고 있다.지금 박보촌에 자리잡은 박씨네는 박오의 후손이라고 한다. 청나라 가경연간(1796∼1821년)에 만든 「박씨족보」는 박씨 자신들이 조상신을 모신다는 사실을 기록했다.이는 한족이나 만족이 모시는 신보다 하나가 더 많은 것이다.이 마을 박문수(89)노인은 어렸을 때 자신이 실제로 본 조상신을 기억해냈다.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통 넓은 바지차림을 한 노인이었다고 했다.노인이 기억한 조상신상이라는 것은 아마도 영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보촌 박씨네들의 조상숭배 의식은 혼인풍속에도 나타났다.그들은 혼례를 올리기 이전에 먼저 고구려 고분에 재배분향하고 이어 박씨 조상묘소에 절을 올리고 내려와 예식을 치른다.혼례 전에 찾는 고구려 고분은 박보촌에서 3백여m 떨어진 산성유적 꼬우리광즈(고려방자)안에 있다.박씨의 조상들이 이주해온 이역타국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노력한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김·백씨 만족도많아 박보촌 박씨들은 장례식 축문에서도 고구려를 떠받들었다.첫 구절에 「당나라 백만 대군이 침입하매 연개소문이 이를 무찔러 쫓아버렸도다」(당국백만대군입침 연개소문격이지퇴)라는 말이 나온다.고구려의 영광을 예찬한 이 글은 후손들에게어떤 긍지와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족보에는 동성동본끼리의 혼인 흔적이 전혀 없다.한족과 만족의 잡거지역에 살았던 터라 다른 민족을 아내로 맞았다.그럼에도 조선족 전통음식인 된장과 간장을 집집마다 담갔다.또 옷과 이불 호청에 풀을 빳빳하게 먹이는 습속도 그대로 간직했다.어른을 공경하는 전통예절 역시 철저히 지켜 집안 어른의 밥상은 작은 소반에 따로 차렸다. 조선의 성씨인 박씨가 많기로는 개현 진둔향 박가구가 단연 으뜸이다.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89가구 2백87명을 헤아렸다.심양∼대련을 잇는 일망무애한 요동평원에 자리한 이 마을 이웃에도 고려산성과 같은 고구려유적이 있다.조선의 글과 그림이 있는 옹기와 조선의 낫과 호미,3백근짜리 동종이 마을에 전해내려왔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다.지금은 돌절구 방아확 하나가 남아있다.그 절구마저도 깨진채 절반쯤 땅속에 묻혔는데,무심한 빗물이 확을 가득 채웠다. 마을 어귀에는 화강함 비석 하나가 서 있다.청나라 연호로 가경14년(1809년)에 박씨 가문의 6대손 박동국을 기리기 위해 아들 4형제가 세운 것이다.박경청이 보존하고 있는 족보를 훑어보았더니 모계도 4대까지는 조선족 이름을 적었다.그후로는 한족이나 만족의 이름이 섞여 나왔다.마을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면 한어로 『나도 조선족』이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을어귀에 박씨 비석 중화민국시기에 이 마을에 사는 형씨들이 마을 이름을 박가구 대신 형가구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박씨들은 현에 진정하는 등 반대운동을 벌여 마을 이름을 지켰다는 것이다.한번은 좀 떨어진 다른 조선족 마을에서 안노인 둘이서 고사리를 꺾으러 박가구까지 갔는데 마을 박씨들이 집으로 불러들여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그리고 조선족 안노인들이 꺾어온 고사리나물 보따리를 10여리나 되는 정거장까지 등짐으로 날라다 주는 따뜻한 인정을 베풀었다. 요령성 조선 성씨들의 집성촌에서는 지난 1982년 중국 총인구조사 당시 조선족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벌였다.그 결과 서가보,박보촌,박가구에 사는 조선 성씨를 가진 사람들 모두가 정부의 비준으로 조선족 대열로 들어왔다.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어서 그들에게 무한한 연민의 정이 우러났다.
  • 국제협력관실 신설/재경원

    재정경제원은 6일 통상현안에 대한 부처간 의견조정과 협조체제 구축을 위해 차관 직속의 국제협력관실을 신설했다.국제협력관실은 국제협력관(국장)과 4급 국제협력담당관(과장),국제통상직 특채 1명을 포함한 5급 사무관 4명,통역원 1명을 포함한 6급이하 6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되며 정규 보직외에 통상관계 부처로부터도 3명정도 인원을 파견받을 계획이다.
  • 남북한 어휘 5만개이상 달라

    ◎북,한자·외래어는 한글로 바꾸거나 풀어써/주요 사례­사실혼부부→뜨게부부 미혼모→해방처녀 손자→두벌자식 지하도→땅속건늠굴길 뒷걸음질→물레걸음 노크→손기척 『북한사람들의 말귀를 못알아들을 때가 더러 있었다.이러다가 동족간에도 통역이 필요한 때가 오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투자조사차 북한에 다녀온 우리측의 한 업계 인사의 우려였다. 이처럼 분단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남북간 언어 이질화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통일원 산하 통일연수원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일상적·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중 약 5만개 이상이 남한의 그것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테면 남한에서 쓰이는 토요일,잔돈,연립주택,사실혼부부등이 북한에서는 「문화일」,「사슬돈」,「문화주택」,「뜨게부부」등 생경한 어휘로 대체되고 있다.가정주부와 「가두녀성」,간통사건과 「부화사건」,미혼모와 「해방처녀」,공무원과 「정무원」,손자와 「두벌자식」등도 남북간 언어 이질화의 산물이다. 이처럼 남북 언어의이질화가 심화되는 일차적인 요인은 북한이 이른바 「문화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이「문화어」는 평양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서울의 중산층이 쓰는 말씨를 기준으로 한 우리측의 표준말과는 어휘나 어법상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문화어」의 특징은 첫째,한자어는 한글고유어로 대체하거나 고유어가 없을 경우에는 뜻을 풀어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각선미→다리매,권련→마라초,구설수에 오르다→말밥에 오르다,냉수욕→찬물미역,돌파구→구멍수,멸균→균깡그리죽이기,미숙아→달못찬 아이,산란기→알쓸이철,지하도→땅속건늠굴길,합병증→따라난 병 등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외래어를 새로 작명한 한자어나 고유어로 대체해 사용하는 경우이다.즉 헬리콥터→직승비행기,볼펜→원주필,노크→손기척,도넛→가락지빵,드레스→나리옷,소프라노→녀성고음,슬리퍼→끌신,아파트→살림집,액세서리→치레거리,캐라멜→기름사탕,클로즈업→큰보임새 등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남쪽말과는뜻이 다르거나 판이하게 쓰이는 말도 많다.예컨대 괜찮다→일없다,귀빈석→주석단,개고기→단고기,구석구석→고삿고삿,김매기→풀잡이,악착스럽게→이악하게,이제→인차,단잠→쪽잠,단비→꿀비,뒷걸음질→물레걸음등이 그것이다.또 디딤돌→구팡돌,식혜→밥감주,배웅하다→냄내다,오전→낮전,빼어닮다→먹고닮다,은행원→은행경제사,삿대질→손가락총질,서명하다→수표하다도 마찬가지 사례다.
  • 제2개척지 보산촌(압록강 2천리:14)

    ◎1인당 연소득 8백원… “조선족 부자마을”/20년간 65만평 개간… 곡물 연32만근 수확/137가구 482명 거주,교육열 높아 석학 많아/노인퉁소대 등 문화예술단 조직… 민속전통 보존 압록강유역의 길림성과 요령성에는 조선족자치현이 1군데,자치향이나 진이 16군데가 있다.자치현은 길림성 장백현이 유일하고 진은 길림성 집안시에 1곳이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요령성에 분포돼 있다.그렇다고 해서 자치지역에 조선족만 사는 것은 아니다.한족과 만족·몽골족이 함께 살아가는 잡거지인 것이다. 그런데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에 속하는 석호구향의 보산촌은 조선족 못자리판이다.비록 만족의 자치현이기는 하나 보산촌에 사는 한족과 만족은 「쌀의 뉘」와 같은 미미한 존재다.조선족이 1백37가구 4백82명인 데 비해 한족과 만족은 10가구 39명에 불과했다.모두가 파란데 하나가 붉다는 만록청중일점홍과 같은 조선족 마을이라고나 할까.보기드문 현상이었다. 보산촌은 망보산 자락 비산비야 지대에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이다.관전만족자치현성과는 10리가채 못되었다.보산촌 당서기 문영빈(47)씨 집에 짐을 풀고 촌장 배일명(47)씨를 만났다.탱크부대 훈련단장을 지낸 그는 마을현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경작면적이 1.5㎦라는 것과 지난 1981년 현정부가 각지의 조선족을 이주시켜 마을을 만들었다는 사연 등을 이야기했다. ○평야지대의 보금자리 조선족의 마을 보산촌을 일구어낸 주인공 김창영(66)선생은 지금 요령성 단동시에 살고 있다.단동시 조선족노인협 부회장직을 맡아 만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1975년부터 관전만족자치현 상무(상임)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보산촌을 세웠다.그는 일찍 보산촌지역에 욕심을 냈다.당시 보산촌일대는 군의 훈련장과 군량미 자급을 위해 개간한 수전지대가 있는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논농사경험이 없는 군이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버려둔 상태였기 때문에 눈독을 들일 만했다.김부현장(김창영)은 부대장을 찾아가 훈련장과 논을 지방정부에 돌려줄 것을 요구한 끝에 이를 실현시켰다.중국인민해방군 건군절 8월1일을 상징한 8·1저수지라는 용수원까지 갖춘 군사지역은심양군구의 비준을 받아 결국 지방정부에 이양되었던 것이다. ○군지역 불하받이 정착 이에 따라 단동시는 1981년 봄 군사지역의 논을 조선족에게 풀어주는 일을 착수했다.조선족에게 땅이 돌아가기까지는 조선족의 벼농사기술과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맞물렸다.보산으로 이주하는 조선족은 의무적으로 국가에 바치는 징구량을 3년간 면제받는 한편 농업세 역시 면제되었다.그리고 1무(3백평)를 개간하면 50원의 장려금을 대주었다.그리고 성정부에서 2년에 걸쳐 27만원을 들여 도로와 전기·수도 등을 건설했다. 그러니까 보산촌은 선조들의 서북간도 개척에 이은 제2의 개척지다.그 개척의 기수는 물론 당시 부현장이었던 김창영선생이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도 조선족이지만 조선족에게 남다른 애정을 기울였다. 『저는 세살을 먹던 해에 부친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왔디요.고향은 평안북도 초산입네다.관전에 사는 조선족들은 거개가 평북 초산·벽동·창성에서 이주한 사람들였디요.50년대말까지도 많이들 모여 살아서리 그런대로 생활이 편리했댔는데 지금은 그렇디가 않아요.문화혁명 이후 한 마을에 몇 가구씩 끼어사는 신세가 되어 한족에게 급속히 동화하고 말았다 이 말입네다.조선족학교가 엉망이라 말과 글을 제대로 못 배우고,짝 찾아 시집·장가가기도 어려워졌디요.그래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방법을 강구했댔습네다』 지금 보산촌에 사는 한족과 만족은 군훈련장에 붙어살던 사람들이다.조선족의 이주는 1981년 31가구가 보산촌에 자리를 잡는 것으로 시작되었다.요령성과 관전현 이외지역 거주자는 이주할 수 없도록 원칙을 세웠으나 연줄을 대고 찾아와 죽치는 바람에 외지인 13가구도 결국 받아들였다.조선족끼리 살고 싶어서 찾아온 핏줄을 문전박대하지 못한 인심이 가상스러웠다. 내가 보산촌에 와서 머무르던 집주인인 당서기 문영빈씨는 조선족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보산촌으로 이주하기 이전에는 조선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는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한량 없다는 이야기를 후회삼아 슬슬 풀어놓았다. 『한국과 민족만 사는 태평소현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조선말을 할 턱이 없었디요.1971년 연변 안도현 북흥촌으로 선보러 갔을 때 중매쟁이가 통역을 했디 뭡네까.나는 한족말만 하고 처가식구들은 조선말 말고는 못하니까 별도리가 없데요.우리 애들도 여기 오기 전에는 조선말 못했디요.이자 나나 애들이나 조선말 유창한 걸 보면 보산촌은 그 자체가 커다란 조선족 학교입네다』 ○비닐공장 등 개설 운영 고생인들 오죽했을까만 보산촌 사람은 모두가 잘 살고 있다.농토가 2천1백73무에 곡물수확량이 32만근에 이르는 부자마을이다.그리고 비닐제공장을 포함한 2개의 공장을 경영하여 36만원의 농공업총생산량을 기록했다.1인당 연간소득이 8백원(한화8만원)이고 학교경영비와 각종 세금을 공장경영이익에서 충당하고 있다.보산촌 소학교 출신 10명이 대학과 전문학교를 나와 2명이 석사학위를 받았다.현재 대학생도 6명이나 된다. 보산촌은 현이 지정한 조선족민족문화촌이다.조선족 고유민속 발굴과 보존은 물론 노인퉁소대와 같은 문화예술공연단체도 조직되었다.요즘은 연변을 통해 백두산을 구경한 한국의 관광단이 압록강을 따라 보산촌을찾고 있다. 그래서 보산촌 사람의 춤과 소리를 구경하고 함께 어울려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한국관광객을 곧잘 만나게 되었다. 지난 6월20일에는 보산촌을 들른 한국평생교육회가 보산촌노인협회에 중국 인민폐 1만원을 내놓았다.그 돈으로 노인들은 사과나무를 심고 밭머리에 「중·한노인친선사과원」이라는 푯말을 세웠다.사과나무는 3년이 지나면 혈육의 정이 담긴 꽃을 피울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나서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매를 맺으며 보산촌 노인퉁소대가 「우리의 소원」을 또 연주할 것이다.
  • 타계한 카피차 구소 외무차관과 한반도/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옛 소련의 외무부 제1차관이던 미하일 카피차 박사가 지난 18일 지병 때문에 향년 74세로 별세했다는 부음이 모스크바로부터 보도됐다.짧막한 기사여서 지나치기 쉬운데,옛 소련 외무부에서 1급 아시아전문가로 정평있던 그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모스크바의 마리아토레즈 외국어교육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카피차는 졸업과 동시에 20대초반의 젊은이로 옛 소련 외무부에 들어갔다.때는 19 43년으로,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나치독일에 큰 타격을 입힘으로써 승기를 잡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다.카피차는 곧 모스크바의 동방학연구소로 파견됐고 여기서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연구해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야심만만한 그에게 곧 출세 길의 실마리가 잡혔다.49년 12월 하순부터 50년 2월 중순까지 모스크바에 머물며 중소우호동맹조약의 체결을 교섭하던 중국공산당 주석 모택동에게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마침내 정상회담의 기회를 베풀었는데,이 때 스탈린의 중국어 통역으로 『중국어를 중국 사람처럼 잘 한다』는 칭찬을 받던 카피차가 뽑힌 것이다.이 정상회담의 결과 50년 2월1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은 맺어졌다.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첫번째 회담이었던 이 중소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관계에서는 물론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에서,그리고 세계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녔다.많은 전문가들은 이 회담에서 50년 6월25일에 개시된 북한의 전면 남침 공격의 계획이 논의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카피차의 회고는 뜻밖이었다.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의 비밀들이 마구 공개되던 시점에서도 그는 그 회담에서 그러한 계획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강력히 반박했던 것이다. 지난해 6·25 남침전쟁과 관련해 옛 소련의 비밀문서들 가운데 일부가 공개됐다.그러나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중소 정상회담부분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이 부분이 앞으로 공개될 때 카피차의 반론의 진실성 여부는 가려질 것이다. 어떻든 이때 스탈린에게 잘 보였던 카피차는 소련 외무부안에서 승진을 거듭해 동아시아국장으로 올랐고 파키스탄 주재 대사라는 중책도 맡았다.그러나 파키스탄 대사때 현지출신 여비서와 대사 집무실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철제 걸상으로 이마를 찍혔다.비명 소리에 뛰어든 대사관원들의 보호로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그 큰 상처는 평생토록 그의 이마에 남아 있었다.이러한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시아전역을 담당하는 제1차관으로 승진했다. 카피차는 자연히 북한도 다루게 됐다.특히 84년 5월에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그때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던 체르넨코와 회담했을 때,실무적으로 깊이 관여했다.이어 84년 11월에는 카피차 스스로 북한을 방문해 소련과 북한 사이의 국경분쟁을 매듭지었다. 이때 카피차를 직접 상대했던 북한의 교섭창구가 김정일이었다.카피차는 이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국제학술 회의에서 『북한의 김정일이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준 외국인이 바로 나였다』고 회고하곤 했다.『나하고 김정일 둘이 두만강과 백두산에 가서 여기는 소련 땅이고 여기는 조선 땅이라고 줄을 그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84년이면 김정일이 만 42세때다.카피차는 『김정일이 키에 비해 살이너무 쩠고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는 것 같다』고 뒷날 회고해,김정일 건강이상설의 주요한 한 원천이 됐다. 88년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카피차는 이미 외무부를 그만두고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또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 원사칭호도 지니고 있었다.그래서 정식 외교관계가 열리기 이전에 흔히 활용되는 비정부차원의 「학술외교」「문화외교」의 창구로 적격이었다.실제로 그는 몇차례에 걸쳐 소련의 학자들을 이끌고 서울의 초청에 응했으며 또 역시 몇차례에 걸쳐 소련에 한국학자들을 초청해 한소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한소수교의 막후에서 일한 공이 있다고 할까? 그를 서울과 모스크바,그리고 도쿄(동경)에서 여러차례 상대했던 필자로서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빌게 된다.
  • 강 주석,반도체 생산라인 돌며 진지한 질문/방한 사흘째 이모저모

    ◎“청와대 단풍곱다”며 북경의 단풍 자랑/조깅트랩선 뛰는 시늉하며 관심 표명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방문 사흘 째인 15일 역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강주석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한 뒤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이어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들을 접견하고 경주로 직행,이의근 경북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김대통령과 강주석의 조찬회동은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과 돈독한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임을 상징하듯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1시간동안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상오 7시30분 반코트 차림으로 상춘재앞 녹지원에 나와 넥타이를 매지 않은 간편복 차림의 강주석을 맞아 아침인사를 나눈 뒤 강주석을 조찬장인 상춘재로 안내했다. 김대통령은 강주석과 함께 녹지원 뜰을 걸어가는 동안 청와대 뒷산을 가리키며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하자 강주석은 「단풍이 꽃보다 곱다」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한시를 소개하고 『북경에도 향산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김대통령이 녹지원 주변 조깅트랙을 가리키며 『이곳이 내가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잠시 뛰는 시늉을 해보이며 『제자리에서 뛰느냐.아니면 실제로 달리기를 하느냐』며 조깅에 관심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이 『상춘재가 전통 한식건물』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목조건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중국인도 목조가옥을 좋아한다』고 화답하는 등 두 정상은 우리의 전통가옥과 서울의 공기 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다 양측의 통역만 배석시킨 가운데 조찬회동을 시작했다. ○…강주석은 김대통령과 조찬회동을 끝낸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을 방문,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안내로 시설들을 둘러봤다. 강주석은 1층 로비의 제품전시장에서 휴대용 무선전화기로 북경의 삼성지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장시설 보호를 위해 방진복 방진화와 헬멧 장갑까지 착용한 강주석은 생산라인을 둘러보면서 정통 기술관료답게안내인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궁금한 점을 빠짐없이 물어보는 등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강주석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이 좋아서 인상적』이라면서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삼성반도체공장 시찰을 마친 강주석은 육로를 이용해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 등 80여명과 만나 격려했으며 이어 이날하오 다음 방문지인 경주로 출발했다. 강주석은 경주 힐튼호텔에 여장을 푼뒤 이날 저녁 이경북지사가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했으며 16일에는 불국사를 관광하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할 예정이다.
  • 중국속의 한국 붐(한·중 새 시대:4)

    ◎북경 등 대도시에 우리 기업 광고탑 즐비/한국어과 개설 열풍… 한국식당 성업/한국특수속 조선족사회엔 「한국병」도/곳곳에 한국산 자동차… 가전제품 매장 “북적” 증국은 더이상 한국인에게 낮선곳은 아니다.수도 북경의 관문,북경공항에 내리면 개인용 짐수레에는 어김 없이 국내 대기업 광고판이 부착돼 있다.공항에서 시내까지 30분가량 달리는 동안 고속도로 양편 길옆으로 현대·대우·우방등 국내 기업의 대형 간판이 늘어서 있다. 북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도로인 장안대로주변으로 국내기업들의 대형광고탑이 경쟁하듯 솟아있다.중국학술연구의 전당이라는 사회과학원 본부건물 옥상엔 삼성전자 광고탑이 일본 도시바 것과 함께 서 있고 전국신문공작자 건물위에는 한아항공(아시아나항공)의 네온사인이,국무빌딩에선 대한항공 광고판이 빛나고 있다.번화가인 동단과 왕부정거리엔 아예 금성등 국내 가전품 전문매장이 자리잡고 있다.한국기업의 광고탑은 북경만은 아니다. ○공항 짐수레에도 광고 요녕성의 성도 심양의 상징인 거대한 모택동주석 동상뒤로 양담배인 「켄트」 광고판과 함께 영문으로 골드스타(금성)라는 대형광고탑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에는 프린스와 엘란트라·쏘나타등 대우와 현대 자동차가 적잖게 눈에 띈다.북경 뿐 아니다.베트남과 국경지역인 운남에서나 변방인 청해도에서도 한국차는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중국인에게 한국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과 같다.한국차는 한국의 경제기적의 표본 같은 것이다. 한국 사랍이 택시에 오르면 운전사들은 일본 사람이냐는 질문을 더이상 하지않는다.대뜸 한국인이냐 묻는 경우도 늘고 있다.그만큼 한국인이 북경등 주요도시마다 메워 터진다.수교다음해인 93년 15만명에서 지난해엔 30만명이 중국을 다녀갔다.올 연말엔 5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주중대사관은 예상한다.고급쇼핑센터,관광지 등에선 한국 사람을 부딪치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은 없다.북경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고궁에는 동시 통역서비스 7개 언어 가운데 우리말이 들어있다.북경공항에는 조선족 관광안내원이 상주해 있고 우의상점,북경호텔 상품부등 주요 쇼핑지의 귀금속과 고가품점에는 조선족종업원이 어김 없이 자리를 지킨다.중국 사람은 한국인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에 대해 묻던 택시운전사들의 요사이 질문이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으로 바뀔정도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높다.TV와 신문에서도 한국관련 기사를 적잖게 다루는 것도 이유다. ○한국 사정에 많은 관심 북경 거리의 조선족음식점과 한국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부쩍늘어 수교이후 한국인의 물밀듯한 중국진출현상을 상징한다.두산주가·경복궁·보배원·진로주가·대정·한국음식점경영은 북경과 중국의 대도시에서 유망산업이다.두사람의 한번 식사에 2백∼3백위안(2만∼3만원)정도는 거뜬히 나오는 이 한국식당의 3분의 2 가량의 손님은 중국인이다.예약 없이 갔다간 낭패하기 십상이다.보배소주에서 직영하는 보배원의 고병창부장은 『북경에만 조선족음식점을 제외하고도 1백여개의 한국인 음식점이 있다』면서 『한국인을 겨냥한 한국음식점의 진출이 오히려 중국인의 입맛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중국인의 큰 반향을얻으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북경의 한국음식점은 소규모투자에서 대규모 기업형으로 바뀌고 있다.싸이트어호텔부근에서 개인이 운영하던 싸이트어 아리랑은 개점초기부터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을 맞자 효성그룹이 달려들어 합작형태로 규모를 2배가량 넓혔다.기업형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한우리의 서라벌은 북경시에만 체인점을 4곳으로 확장하기도 했다.이러한 한국음식점은 심양·청도등 한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론 해남도에까지 뻗어있다.수백개를 헤아리는 북경의 가라오케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인을 겨냥한 곳이다.아예 간판도 한글인 경우도 적잖다. 대학등 학원가는 중국의 한국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중 하나다.수교전 십수명에 불과하던 한국학생은 3년사이에 6천명으로 뛰어올랐다.인민대학 70명,어언문화대 어학연수생 5백50명등 7백명,북경대 어학연수생 89명등 2백30명….하오삔 북경대 부총장은 『올 신학기(9월학기)부터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유학생수로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고 한국 유학생의 급증 추세를 설명했다. 이러한 한국열기를 타고 북경대·상해복단대·어언문화대등 주요 대학의 한국학 연구와 한국어학과 개설붐이 일고 있다.지난 93년 길림대·대련외국어대등,지난해엔 북경외대·요령대·산동대·산동사범대등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고 올 9월 새학기엔 북경어언문화대·북경 제2외국어대학·남개대학등 13개 대학에 무더기로 한국어학과를 개설해 한국열기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학 연구센터 발족 북경 서성구의 184중학(고교과정)에선 한국어학과를 설치,올해 35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등 우리말 배우기 열풍이 고등학교까지 퍼져나가고 있다.어언문화대학의 양경화총장은 『지난 93년부터 국제교류재단의 협력으로 추진해온 한국어과를 신설,올 신학기부터 학생들을 받게 됐다』며 『한국어학습 및 한국학열기는 두나라 관계발전과 국민사이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고말했다.수교후 중국사회과학연구의 본산이라는 사회과학원과 북경대학에 각각 한국학연구센터가 발족,불모지였던 한국학연구의 새지평이 열리고 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사회에서의 한국열기는 이제 과열단계를 넘어섰다.한국가면 돈번다는게 한국행의 직접 동기다.주중대사관은 올 한해 1만3천여명의 조선족이 한국으로 건너갔다고 밝히고 있다.정식비자를 얻기 어려워지자 비자위조에서 밀입국,위장결혼까지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는 등 「한국병」이란 신조어를 낳고 있다.이제 한참 달구어지기 시작한 한국열기는 중국사회 각 분야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 여성취업 길잡이 책 눈길/강명희씨 「당찬 여자의 성공비결」

    ◎박효신씨 「자,이제 여성시대 엔터키를 치자」 제약조건과 난관을 뚫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은 날로 늘고 있다.『적당히 대학 나와서 시집이나 가지』라고 당당히 말하는 분위기는 어디를 둘러봐도 사라진지 오래이다.최근엔 「여성고용 10대 과제」가 발표되는가 하면 해마다 10월이 남녀고용평등의 달로 지정되는등 여성취업을 장려하는 장미빛 정부시책도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일하는 여성의 사기가 어느때보다 높은 요즘 성공적 직장생활을 꿈꾸는 여성들의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대학강사인 강명희씨의 「당찬 여자의 성공비결」(황제)과 여성신문 편집부장을 지낸 박효신씨의 「자,이제 여성시대 엔터 키를 치자」(여성신문사)등이 그 책들.여성직장인으로서의 쓴맛 신맛을 직접 맛본 지은이들이 남자동료들과의 관계,커피타는 문제따위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체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들려주는 책이다. 「당찬 여자∼」는 교과서같이 「이론적」으로 여성이 직업을 가져야 할 필요성부터 직업여성의 건강관리,외국어·컴퓨터공부같은 실질적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감정평가사,관광통역안내원,환경기사,카피라이터,사보기자 등의 직업을 소개하는등 소소한 정보가 가득해 취업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성신문에 연재됐던 칼럼을 묶은 「자,이제∼」에는 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 한국광고주협회 홍보부장으로 뛰고 있는 지은이가 직장에서 직접 부딪쳐본 많은 직업여성들의 얘기가 담겨있다. 「나를 안 뽑으면 이 회사 손해」라는 한마디로 남자들도 어려운 광고회사 면접을 뚫은 맹렬여성,외부손님의 커피접대에도 당당한 배불뚝이 여직원등의 사례를 통해 임신·맞벌이·생리휴가처럼 직업여성들이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문제를 짚어주고 있다.
  • 브로드웨이 32번가 코리아웨이로 명명/뉴욕 김 대통령 여로

    ◎뉴욕 중심 한·영문표지판 등장… 교민 환호/한·불 정상 예정시간 30여분 넘기며 환담 유엔특별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각국 국가원수들과 개별정상회담을 계속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낮(한국시간 25일 새벽·이하 현지시간)까지 프랑스를 비롯,루마니아·스페인·베트남·타지키스탄·마셜공화국 등 6개국 정상과 연쇄회담을 갖고 실질경제협력 증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 김대통령은 강행군 정상외교를 갖는 가운데에서도 뉴욕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한·마셜공화국 정상회담◁ ○…24일 낮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아마타 카부아 마셜공화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은 지난 91년4월 수교이후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양국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는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고 우리 건설업체의 진출 확대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이에 대해 카부아대통령은 공항확장과 관광시설 건설에 대한 한국기업의 참여를 특별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정상은 또 최근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실시한 핵실험에 우려를 표시하고 앞으로 핵실험의 중단과 함께 핵군축이 실현될 수 있도록 상호 노력키로 합의했다. ▷한·타지키스탄 정상회담◁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33층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20여분에 걸쳐 라흐마노프 타지키스탄대통령과 회담을 열었다. 두나라 말을 각각 영어로 옮기는 이중통역을 거치는 등 정상간 상견례 성격이었던 이 회담에서 두 정상은 경제협력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우리나라의 기술 및 자본과 타지키스탄의 자원을 결합한 합작사업을 적극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한·베트남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또 이날 상오 유엔본부에서 40여분간 베트남의 레둑안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자본 및 기술과 베트남의 우수한 노동력 및 자원이 결합하는 합작사업이 양국 모두에게 긴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를 확대 장려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우리 기업이 관심을 보여온 석유 등 자원개발과 건설,원자력 등의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이 이뤄지기를 기대했고 이에 레둑안 국가주석도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표명했다. ▷한·스페인 정상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아침(한국시간 24일 저녁)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곤살레스 스페인총리와 조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및 유럽정세와 양국간 실질협력강화방안등에 관해 협의. 김대통령은 『총리께서 지난 82년 취임한 이후 스페인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고 인사하자 곤살레스총리는 『한국의 개혁성과에 축하드리며 스페인도 한국처럼 개혁을 통해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화답. 김대통령은 이어 내년중 카를로스 1세 국왕의 한국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을 전했고 곤살레스총리는 김대통령의 스페인방문을 공식 초청하는등 조찬회담은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1시간여동안 진행. ▷한·루마니아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23일 하오 7시부터 호텔 4층 콘래드 스위트룸에서 루마니아의 일리에스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먼저 회담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일리에스쿠대통령이 들어서자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돼 기쁘다』며 반갑게 악수를 건넸고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지난해 3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있다』고 화답했다.이에 김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양국 관계발전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낳고 있다』며 『앞으로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서 두나라의 정부 및 민간 레벨의 관계가 더욱 발전되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한·프랑스 정상회담◁ ○…23일 하오 뉴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김대통령과 자크 시라크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예정 시간을 30분이나 넘기며 진지하고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김대통령이 회담장인 호텔 14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마중나온 시라크대통령은 『뉴욕에서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고,이에 김대통령은 『대통령취임을 축하한다』고 화답했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 실질협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며 첨단산업분야의 기술협력과 고속전철 사업의 기술이전,외규장각 도서의 조속한 반환에 상호 노력키로 합의했다. ▷뉴욕대 박사학위수여식◁ ○…김대통령은23일 하오 뉴욕대에 도착해 올리바 총장의 영접을 받은뒤 학위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데이비드 티쉬맨강당에서 1시간여동안 진행된 학위수여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학위수락연설을 통해 『이 법과대학 회의실에 「어떤 나라도 정의없이 강할 수 없으며,연민없이 풍요로울 수 없고,자유없이 안전할 수 없다」고 새겨진 문구는 한국 국민 모두가 마음속으로 진정 공감할 수 있는 명언』이라고 역설했다. ▷뉴욕 코리아웨이 명명식◁ ○…뉴욕시는 23일 이현홍 뉴욕총영사,이정화 한인회장,프렌치 라이트 뉴욕주상원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내 브로드웨이 32번가를 코리아웨이로 명명하는 현판식을 가졌다.뉴욕시는 지난해 뉴욕 한인경제인의 건의에 따라 코리아웨이 명명식을 계획했으며 김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이날 현판식을 가졌다. 한인경제인협회장을 지낸 이영규씨는 『뉴욕중심부에 한글과 영문 거리표지판이 영원히 부착되는 것은 35만명 뉴욕교민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 북송 일인 「옥수수 주식병」 신음/「아이치 모임」서 증언

    ◎일의 동생 야스모토/“돈·약 보내달라” 전화 자유왕래 방안 호소 일본 나고야시의 국제센터빌딩에서 21일 열린 「귀국자 가족을 돕는 아이치의 모임」(대표 하기와라 시게오 와코대 교수) 주최의 강연회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여성 야스모토 사쿠코(안본좌구자·51)씨는 북송가족의 애절한 삶의 고통과 북한의 어려운 실상을 밝혔다. 야스모토씨는 그녀의 언니가 북한으로 간 북송가족.그녀의 언니는 23살이었던 지난 60년 남편등 가족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 북송선을 탔다.일본에 있는 귀국자들의 가족·친척들은 북송교포들의 비참한 삶을 잘 알지만 북한에 있는 부모·자식·형제의 안위를 염려해 입을 열지 않는다.그저 부지런히 돈과 물건을 보내고 남몰래 눈물을 흘릴 뿐이다.인질인 셈이다.야스모토씨도 그랬다.그러나 그녀는 이날 『북송자 가족중 누군가 입을 열지 않으면 문제해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연에 임한다』고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언니는 울면서 말리는 가족들에게 「차별이 없는 조국으로 간다.자리잡으면 부를께」라면서 떠나갔다.지금은 황해남도에 살고 있다.언니는 늘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려로… 잘 지낸다」라고 편지했다. 지난 83년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언니를 만나러 북한을 방문했다.23년만의 상봉. 가슴이 벅찼지만 언니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통역·주민·안내원 등 10여명이 끼어들었다.친밀한 말을 나눌 수 없었다.언니는 23년전 일본을 떠나가면서 니가타에서 한벌 사 입었던 가디건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언니는 그 곱던 손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6일 북한으로부터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언니는 「신장약 간장약 그리고 페라글라병 약을 보내줘」라고 말했다.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려고 했는데….뭐든지 좋으니까 도와줘」라고 말했다.페라글라병이 무어냐고 물으니 영양부족병이라고 말했다.옥수수를 주식으로 할 때 생기는 병이었다. 그 두달전에 언니의 막내딸로부터 편지가 있었다.조카는 「어머니는 요통,큰 오빠는 후두열,가운데오빠는 신장염,셋째 오빠는 급성간염,그리고 조카는 눈병을 앓고 있습니다.미안한 부탁이지만 약을 보내주세요.될수록 빨리 보내주세요.약이 안되면 돈이라도 보내주십시오」라고 부탁해 왔었다. 그녀는 여기서 강연을 마치면서 북송가족의 자유왕래 실현을 위해 북한 조총련 일본 모두가 노력해야만 할 것이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 단체사진 촬영·총회 5분연설/유엔특별정상회의 난제 2건

    ◎단체사진 촬영/사람수 많아 기술적 애로… 자리배치도 고심 유엔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행사중 유엔직원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22일 상오 특별정상회의 시작전 각국 정상들의 기념촬영을 주선하는 일이 꼽히고 있다. 이처럼 많은 수의 각국 정상들이 한데모여 「단체사진」을 찍는 일은 처음있는 일이다.당연히 각국 정상들을 서게할 것이냐,의자에 앉힐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으며 유엔주재 각국 외교관들은 각국 정상들이 동일한 크기의 의자에 앉아 사진찍기를 고집했다.그러나 유엔담당직원들과 이번 촬영을 위해 특별카메라를 제공하는 코닥회사의 사진촬영기사들이 촬영공간부족과 기술상의 이유로 반대했다.결국 정상들이 서있는 모습을 렌즈에 담기로 하고 지난 13일 1백50명의 유엔직원들이 선자세로 6시간동안 사진찍는 연습을 했다.유엔직원들은 당일 정상들에게 『이렇게 서라 저렇게 서라』고 할수도 없어 정상들이 알아서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유엔이 여러가지를 고려해 자리를 정했다고 하지만 적대관계인 유고슬라비아와보스니아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서있게 됐다.그러나 유엔 직원들은 키가 큰 국가의 수반이 키가 작은 국가의 수반 바로 앞에 서게되는 경우는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총회 5분 연설/총 15시간 소요… 시간초과때 중단요청 고민 유엔 직원들이 머리를 썩이는 또 다른 난제는 5분으로 지정된 각국 정상들의 총회연설시간을 조정하는 일이다.연설에 소요되는 시간만도 15시간.각국 정상들은 3일동안 차례대로 연설하게 되지만 연설시간이 길어지면 행사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김영삼 대통령은 회의 첫날 상오 11번째로 연설한다.유엔직원은 이에따라 3가지 색의 「교통신호등」을 설치했다.연설시간이 4분30초 경과하면 불이 초록색등에서 노란색 등으로 바뀌고 5분이 되면 빨간등으로 바뀌게 해 연설시간 엄수를 요구할 생각이다.이번 총회의장인 포르투갈의 디오고 프레이타스 아마랄 전외무부장관은 정상들의 연설이 5분을 초과할 경우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연설중단을 요청하기 위해 주요국가의 말로 된 연설중단요청문을 준비했다.유엔의 한 직원은 『연설시간이 초과할 경우 어느 외무장관이나 대사가 연단에 올라가 자국 정상에게 내려올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국제회의 경험이 많은 유엔통역사들은 연설계획이 잘 맞아 떨어진다해도 무려 6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있는 특별정상회의 마지막날인 24일 하오에는 연설이 25일 새벽까지 계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인질범 권총 쏘며 “1천만달러 내라”/현대직원 인질극

    ◎피랍에서 범인 사살까지/러 특공대 구출 예행연습 4시간/17시30분­현대직원 타는 사이 섞여 버스 올라/22시47분­3차 돈보따리 건네주자 8명 석방/15일 3시­통역원에 “돈세라” 명령순간 전격 작전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14일 하오 5시30분(현지시간).모스크바 중심부 크렘린과 바실리성당 사이에 세워둔 45인승 벤츠버스에 범인이 현대전자직원들에 섞여 탑승,인질극은 시작됐다.범인은 윤동현씨(30)의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가이드 서경수씨를 통해 『커튼을 닫으라』 『1백만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몰살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인질극을 직감한 관광객들은 이때 창밖을 통해 버스 옆으로 몰려든 마트료시카 장사꾼에게 몸짓으로 인질극을 알렸다.범인은 인질들이 커튼을 내리지 않자 버스 천장을 향해 권총을 한발 발사했다.범인은 오른손에 권총을,왼손은 줄곧 주머니에 넣은 채 『폭발물로 폭발시키겠다』며 위협해왔다. 순간 단장인 박련수씨 등 2명의 인질은 뒤쪽문을 발로 차로 탈출하는데 성공,이 사실을 한국대사관과 경찰측에 알렸다.한시간쯤 지나 경찰병력이 이들과 대치하기 시작했고 범인은 하오 8시쯤 『탈출한 사람을 데려오라』며 윤씨를 내보냈다.하오 9시 범인은 경찰이 준비해준 돈보따리를 처음으로 받아들고 우선 9명의 여성 인질을 내보냈다.돈을 받아든 범인은 버스 밖에 서 있던 「협상창구」 경찰에 『10만달러를 가져오라』고 했으며 30분쯤 뒤 2차 돈보따리를 받고 3명을 추가로 석방했다. 범인은 여행가이드 서씨­버스운전사­버스 밖 경찰 루트로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다시 1천만달러를 요구했다.더욱이 도모제도보 공항에 헬기를 보내줄 것도 요구했다. 하오 10시47분.경찰은 3차 돈보따리를 건넸고 이어 다시 8명이 석방됐다. 이때부터 1천만달러를 가지고 지루한 협상이 시작됐다.현지 경찰은 범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주변 병력을 다소 철수시켰고 버스안으로 커피 등을 들여보냈다.이때부터 작전 개시까지 약 4시간 동안 경찰은 이웃 다리밑에서 여행자들이 탄 것과 같은 벤츠버스를 가져와 「인질 구출 예행연습」을 벌였다. 상오 2시45분 H아워.경찰관 2명은 마지막돈보따리를 범인에게 건네며 버스에서의 범인의 위치를 살피고 돌아갔고 테러진압을 위한 특수부대인 알파부대 요원들이 인질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접근했다. 3시쯤 범인이 서씨에게 돈을 세라고 지시하는 순간 특수부대 요원들이 작전을 개시.남아 있던 6명의 인질들은 전원 무사히 구출됐다. ◎구사일행의 통역원 서견수씨/“러시아 치안부재 상황 반증”/외국인이란 이유로 범행대상 된듯/“공항 곳곳에 폭발물 장치” 으름장도 15일 상오 2시45분.러시아 연방 특수부대에서 쏜 수발의 총알이 범인에게 쏟아지면서 간신히 구출된 서경수씨(22·모스크바 마이공대 4학년)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범행의 대상이 된 것 같았다』면서 『이번 사건은 러시아내의 치안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악몽의 순간을 털어놨다. 서씨는 범인이 북한인이나 북한관련인이 아니냐는 질문에 『복면 사이로 빠져 나온 코가 서양인이었으며 범인도 자신이 러시아인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초 상황을 말해달라. 『일행이 버스에 앉을 즈음 복면을 한 범인이 권총으로 동료 윤씨를 위협했다.우리는 처음 여행회사 직원들의 장난으로 여겼다.그러다 범인이 권총을 한발 발사하면서 사태를 직감했다』 ­외부에 급박함을 어떻게 알렸나. 『일행은 버스 주변에 때마침 몰려든 잡상인들에게 손짓,발짓으로 위급하다는 사실을 알렸고 처음으로 탈출한 박단장 등이 경찰과 대사관에 신고한 것으로 안다.잡상인중 누군가가 물건을 팔기 위해 버스에 오르려다 이상한 낌새를 채고 경찰에 연락하게 됐다.』 ­범인의 요구사항은. 『범인은 자신의 아이들이 카프카즈에 인질로 잡혀 있으며 모스크바 이웃 도모제도보공항에는 자신의 아우가 3∼4명의 감시를 받으며 돈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공항에는 다른 범인들이 폭발물을 곳곳에 장치해 놓았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협상진행 방식은. 『차안에서는 나와 범인,러시아인 운전수가 얘기를 주로 했고 범인은 운전수에 자신의 요구사항을 종이에 쓰도록 했다.밖에서는 경찰관 한두명이 오가며 통로구실을 했다』 ­범인은 한국인임을 알고 범행을 했나. 『그런 것같지 않았다.단지 벤츠버스를 우리가 대절했고 외국인이어서 우리를 선택한 것 같았다』 ◎알파부대란/특수부대 재편… 테러진압 특기 구소련 붕괴 이후 대서방 특수전 부대인 스페츠나츠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대 테러특수부대로 창설된 알파부대는 지난 93년 10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반기를 든 러시아 보수파들을 체포,사태를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파부대의 모체인 스페츠나츠는 냉전시대 소련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구의 전략 시설물에 대한 정부수집,파괴,후방교한,요인 납치 및 암살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특히 스페츠나츠는 군사정부국(GRU)의 통제아래 68년 체코 침공과 79년 아프카니스탄 침공때도 정치 지도자 암살과 납치,군지휘소 경격 등의 특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최주활씨는 누구/해외근무 경험 풍부한 통역 출신

    ◎부친은 6·25때 전사… 부인과 2남1녀/82년 체코서 군사기밀 수집하다 추방 이번에 귀순한 최주활씨(46)는 상좌계급의 북한 현역군인으로 우리나라의 중령과 대령사이에 해당하는 고위 군간부다.지금까지 귀순한 북한 현역군인 28명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49년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에서 태어난 최씨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에서 10년간 공부한뒤 19세때인 68년 7월 인민군에 입대,정찰국 소속 항공육전여단에 배치돼 하사로 복무했다.70년부터 2년동안 정찰국 산하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75년까지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으로 근무했다.그뒤 3년동안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에 편입해 공부한뒤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으로 일하다 79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부임,해외파견업무를 담당했다. 최씨는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활동하던중 신형방독면과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 비밀자료를 수집한 혐의로 82년 북한으로 추방돼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에 임명됐으며 91년상좌 계급으로 진급했다. 특히 최씨는 80년이후 대외사업국에 근무하면서 북한 군사대표단 통역원으로 러시아·헝가리 등지를 10여 차례 방문하는 등 비교적 많은 해외 나들이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의 군수기지사령부에 해당하는 병참·보급담당부서인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에 임명된 최씨는 중국 연변등지에서 무역실무 대표단으로 활동하다 지난 6월19일 대표단에서 이탈,동남아 제3국을 거쳐 지난달 말 귀순했다. 가족으로는 모친 이순음씨(67)와 평양시 평천구역 의약품 관리소 판매원인 부인 조현실씨(42),딸 애화양(17),아들 철준(12)·철민군(10)이 북에 남아 있고 부친 최석보씨는 6·25당시 전사했다. 형 금활씨(51)는 사회안전부 병기국 「11·24관리소」 소장으로 최씨와 같은 상좌계급이다. ◇약력 △49년 4월19일 함북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 출생(46세) △59년9월∼68년3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11년제)10년재학중 군입대 △68년3월∼70년11월 정찰국소속 항공육전여단(하사) △70년11월∼72년10월 정찰국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노어과 졸 △72년10월∼75년8월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 △75년8월∼78년9월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 3년편입(상위) △78년9월∼79년5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 △79년5월∼82년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 △82년7월∼94년12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91년 상좌 진급) △95년1월∼95년6월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 △북한내 주소 평양시 동대원구역 문신1동 70반 아파트 12층2호 회
  • 외국인들 한글 작문솜씨 자랑

    ◎어제 덕수궁서 백일장… 7백명 참가 성황 「천년의 기와에서 나오는 향기가 나를 감싼다」「내일,그것은 나에게는 새로운 출발이다」 6일 상오 서울 덕수궁 중화전 앞.7백여명의 외국인들이 「덕수궁」과 「내일」을 주제로 한글 시와 수필을 지은 뒤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돌바닥 여기저기에 앉아 작품을 쓰고 일부는 푸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구상에 몰두하기도 했다.일부는 아예 가져온 사전을 뒤적이며 적절한 표현을 찾는다. 이날 연세대 한국어학당이 주최한 「제4회 전국외국인 한글백일장」에는 일본·미국·독일·러시아·중국 등 30여개국 외국인이 참가했다.연세대 한국어학당을 비롯,국내 12곳의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있는 외국인들이다. 일본인 시미즈 와타루씨(24)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자 『야,어렵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가도 이내 일한사전을 펼친다.『지난해 백일장에도 참석했다』며 『88올림픽 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진게 한국어를 배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재미교포 안광선씨(26)는 「변덕스러운 장래성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자 사전을 찾아 「불확실한 미래」로 바꾸기도 했다.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안씨는 MIT대를 졸업하고 3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일주일전에 한국에 왔다고.안씨는 『국제무역을 하는데 필요할 것같아 앞으로 1∼2년정도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동양학 연구소의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박사(33·역사학)는 『덕수궁이란 시를 붓펜으로 적었다』면서 『내년에 러시아로 돌아가 대학에서 민속학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87년부터 88년까지 평안남도 순천 비날론 연합기업소에서 기술자와 통역자로 일한 적이 있다는 세르게이씨는 『넉달전 한국에 왔을 때 북한 억양이 세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지금은 별 문제없다』고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백봉자 한국어교학부장은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92년부터 한글날을 기념해 열고 있는 백일장에 중국·러시아·동구권 사람들을 중심으로 갈수록 참가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러에 한국학대학 개교/어학·역사·경제과 3백명 모집

    ◎명문 연해주 극동대에 설립 광복 5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본산지였던 러시아 연해주에 한국학 대학이 문을 열었다.그동안 해외에서 한국학과의 신설은 줄을 이었지만 단과대학의 개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대학설립은 1만여명의 러시아 한인들이 거주하는 이곳에 대학을 세워 조국의 뿌리를 모르는 한인 신세대에게 한국의 얼을 심고,러시아 젊은이들에겐 한국문화를 알린다는 취지다. 고려학술문화재단(설립자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 있는 러시아 국립극동대학교에 정규 단과대학인 한국학대학을 건립,2일 개교식을 가졌다.이날 개교식에는 장회장을 비롯,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등 한국측 인사 80여명과 나즈드라텐코 연해주 지사,쿠릴로프 극동대 총장 등 러시아측 인사 2백여명이 참석했다. 고합그룹이 약 1백50만달러를 투자해 지상 5층,연건평 1천평 규모로 준공한 이 대학은 한국어학과와 한국 역사학과,한국 경제학과 등 5년제 과정의 3개학과에 총 3백명 규모의 정원을 모집한다.한국학 학사 및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고 3년제 어학과정을 통해 한국어 통역사도 양성한다. 러시아에서 1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대학으로 꼽히고 있는 극동대학교는 지난 78년 조선어과를 개설했으나 재정빈곤으로 그동안 명목만을 유지해 왔었다.
  • 서울신문 발굴 「이사민 보고서」를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

    ◎「박헌영 숙청」 본질 파악 단서 제공/「이사민 부부와 연계」 일부 밝혀/해방후 미 교포사회 친북인사 활동 처음 알려져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박헌영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쟁점중의 하나다.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증언이나 연구는 선입견이나 불확실한 사실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오늘날 북한에서는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이었다는 믿음만이 존재한다.반면에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성이 6·25 패전의 책임을 물어 박헌영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으며,이로써 김일성 정권은 더욱 공고화됐다고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이번에 공개한 「이사민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박헌영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한다.정치적 성격이 강한 역사적 사건일수록 무엇보다 먼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박헌영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사건의 기원까지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조선노동당은 1953년1월부터 「문헌토의사업」이라는 것을 전개했다.토의는 문헌에 기초해 당사업을 총화하는 것이었다.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박헌영과 그 주변인물의 과거비리와 문제점이 하나둘 폭로되었다.이 과정에서 전쟁전에 미국의 정보공작선이 여럿 침투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추어냈다. 여기서 무엇보다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이미 간첩혐의로 체포된 이사민·현 앨리스와 이들이 맺은 관계였다.북한당국의 공판기록에는 『박헌영이 이들의 간첩활동을 백방으로 보장해주었다』고 기술되어 있다.이번에 공개된 「이사민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공판과정에서 쟁점이 된 사안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이사민과 현앨리스가 체코 프라하로 가 북한으로의 정치망명을 요구한 사실이 「이사민의 보고서」에는 예고돼 있다. 최근 미국의 한국현대사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에서 미국 CIA가 박헌영사건으로 체포당한 설정식을 통해 북한의 여러가지 정보를 입수했음을 자료를 통해 새롭게 입증한 바 있다.설정식은 함남 단천 출신으로 미국 마운트유니언대학을 나왔으며 해방후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을 지낸 인물이다.46년9월 공산당에 입당해 51년7월 개성휴전회담에서는 인민군대표단 통역을 맡았다.그는 53년8월 이승엽등과 함께 「미제간첩」혐의로 재판받아 사형을 당했다. 이사민·현앨리스의 경우도 이와 같은 부류에 해당될 것으로 판단된다.아울러 「이사민의 보고서」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해방후 미국에서 전개된 친북인사의 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다.
  • 통역원 최고인기 직종 부상(북한 이모저모)

    ◎외화 쉽게 벌고 각종 혜택 많아/암거래로 수십배 차익 ○…북한에서는 통역원이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어 눈길. 귀순자들에 따르면 통역원은 북한사회에서는 만져보기 어려운 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각종 혜택이 따르기 때문에 주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통역원들은 외국인에게 편법으로 필요물품을 사주고 외화나 「외화바꾼 돈」으로 물품대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북한에서 외화는 외화상점·백화점 등에서 쉽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고 암거래시에는 수십배의 차익도 남길 수 있다는 것. 통역원들은 외국인과의 동행시에는 통행증없이도 자유롭게 타지역을 다닐 수 있고,이들은 또 일반주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각종 행사연회 등에도 참석할 기회가 종종 주어지고 있는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후문. ○탄광 「야간조」 사기 진작 ○…심각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은 최근 석탄 증산의 일환으로 야간생산조 탄부들을 대상으로 「정치사업」(사상선동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 이와 관련,노동신문은 최근호를 통해 당창건 50주년을 앞두고 다른 탄광들보다 석탄생산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고건원탄광을 소개,각지의 탄광들에 대해 이를 적극 따라 배워 분발할 것을 촉구. 이 탄광의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야간생산조의 채탄량이 주간조보다 떨어진다는사실을 감안,원인을 분석한 결과 주간조에 비해 사기가 떨어지는 점을 파악하고 야간조를 대상으로 「입갱전 환영행사」를 진행하며 이들의 사기진작에 주력하는 한편 당위원회 간부들로 3∼4명씩 조를 짜 휴식시간을 활용한 「정치사업」을 진행했다는 것. ○초상화 구하려다 익사 ○…지난 8월 대홍수와 관련해 대내적으로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이번엔 당시 물속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를 구하다가 희생된 두처녀의 「위훈」을 크게 선전해 수재인명 피해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노출. 북한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를 인용,전한 바에 따르면 함남 장진군 신포고등중학교 교사였던 두처녀는 야밤에 학교주변을 돌아보던중 집중호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이 교사를 덮치자 각 교실들에 걸려있던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를 구하기 위해 세찬 물길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 이들은 여러개의 초상화를 언덕위의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나 남은 한개 교실의 초상화를 마저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희생되었다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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