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통역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청나라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파월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내전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마야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24
  • 헬가 피히트박사 “남북회담, 北 점진개방 계기될것”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 동독의 평양 주재 문화담당관이었던 헬가 피히트 박사(66)는 한반도 통일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30일 밤 국제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유창한한국말을 구사하면서 간간이 ‘호상(상호)교류’ 등 북한식 어휘와 액센트를썼다. 구 동독 외교관이었던 그녀는 유럽에선 손꼽히는 북한문제 전문가.동독의호네커 총리나 크렌츠 당총비서가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주석과 회담할 때단골 통역관이었다.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녀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호상 교류를 통해 양측이 이해의 폭을 넓히고,북한 독제체제를 점차적으로 개방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독일식 흡수통일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특히“북한체제가 갑자기 무너지면 한반도의 큰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곁들였다. 독일식 흡수통일이 한반도에서 재연되기 어려운 점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설명했다.즉 “옛 서독은 현재의 한국에 비해 훨씬 부자였던 반면 북한은 과거의 동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까닭에 남북 양측이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상호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점진적으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였다.그러기 위해선“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좋은 첫걸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기대감과 함께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지난 70년대초 남북조절위원회 구성과 7·4공동성명 발표 등 요란했던 합의가 이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의 준비접촉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녀는 요즘 베를린 근교에서 오랜 소망이었던 한국문학 번역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구본영기자 kby7@.
  • 서울시 ‘동시통역 택시’ 외국인승객 감탄

    30일 오후 1시쯤 김포공항 국제선 택시 승차장.개인택시 운전사 박판규씨(47)는 막 공항에 도착한 여자 승객을 맞았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승객은 서투른 영어로 행선지를 말했으나 알아들을 수가없었다. 박씨는 그러나 곧 일본어 통역사와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이 승객의 행선지가 서울시청 앞 P호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인 승객이 이날 이용한 택시는 서울시가 외국인 택시승객을 위해 처음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500대의 동시통역서비스 택시의 하나.영어 일어 중국어 등 3개 외국어 동시통역 서비스에 대한 운전자와 외국인 승객들의 반응은일단 합격점이었다. 무료 통역을 맡은 전화어학학습기관 ㈜피커폰의 중국어 통역사인 김희선(27)씨는 “승객들이 처음에는 행선지만을 물었으나 차츰 서울의 첫 인상 등에대해 이야기를 걸어오는 등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 후나바시 치카(船橋千佳·31·여)씨는 “외국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같은 서비스는 처음”이라며 “관광안내 책자에 서울의 택시가 불친절하다고 돼있어 내심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우려였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 서비스는 차내에 설치된 핸즈프리 통화기능을통해 운전자와 외국인승객,전문통역사 간의 3자 동시통역을 통해 행선지,요금안내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제도. 운전자는 외국인 승객의 질문에 말문이 막힐 때 동시통역 전용전화(017-200-3000)를 걸면 ㈜피커폰의 3개 외국어 전문 강사들이 승객,운전자와 동시에통화하며 문제를 해결해 준다. 동시통역 택시 뒷 유리창에는 ‘무료통역 택시’라는 내용의 로고가 영문과한자로 써있고 앞·뒷좌석에도 안내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통역비용은 무료.그러나 운전자는 핸드폰 통화료를 부담해야 하며,이용시통역회사에 소속 및 차량번호,이름을 일일이 밝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오전 7시부터 밤10시까지만 서비스하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박진창(朴鎭昌) 서울시 운수물류과장은 “대화 내용이 녹음되기 때문에 불친절이나 부당요금 징수 등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면서 “동시통역 택시에 콜기능을 갖추게 하는 등 일부 운영상 문제점들에 대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동시통역 택시’ 서울을 달린다

    외국인 승객들에게 통역 전문요원이 영어·일어·중국어 등 3개 외국어로행선지 및 요금 등에 관해 안내해주는 ‘외국어 동시통역 택시’가 다음주서울에서 첫 운행에 들어간다. 서울시는 오는 29일부터 매일 500대씩 6월초까지 모두 3,000대의 동시통역택시가 선보인다고 24일 밝혔다.이어 오는 9월말까지 1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시는 동시통역 택시로 지정될 모범택시 및 개인택시 기사 3,000명에게 1인당 8시간씩 동시통역시스템 이용방법 및 기초 회화 등을 교육할 예정이다. 동시통역 택시는 서울시가 오는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2002년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방문객들을 위해 전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시스템이다. 동시통역 택시는 3만원 정도의 핸즈프리를 장착해야 하며 동시통역 서비스는 전화 어학학습기관인 ㈜피커폰이 무료로 제공한다. 외국인 승객과 ㈜피커폰의 통역요원,운전자는 택시에 설치된 핸드폰의 핸즈프리 기능을 통해 동시에 통화하며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동시통역 택시에는 동시통역 서비스가 가능한 택시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뒷좌석 유리창에 ‘Free interpretation by phone’이라는 로고가 부착된다. 서울시는 오는 하반기에 서비스 대상에 러시아어를 포함하는 한편 동시통역택시가 콜기능을 갖출 경우 30만∼50만원의 단말기 구입비를 저리로 융자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김용수기자 dragon@
  • 서대숙교수 특별인터뷰/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남북분단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상호 관계개선을 통해 분단 현실을극복하고 민족 화합을 이뤄내는 일이다.현재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서대숙(徐大肅)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는 17일 대한매일과 국제전화를통해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이 서로 정부를 인정하고 국교를 수립,경제 교류와 긴장 완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과거 냉전논리에 젖은 무조건적 비판이나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찬양은 모두 남북관계의 진정한 개선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성격과 인품은. 한국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적 성격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한두차례 만났다고 인품이나 성격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괴팍하다’는 말도 있지만 ‘효자’로 평가받기도 한다.양쪽이 다 맞을 것이다. 지난 82년 제가 덩샤오핑(鄧小平)과 후야오방(胡耀邦) 등의 초대로 중국에갔을 때 통역자들이 그의 성격에 대해 ‘덩샤오핑이나 후야오방에 비해 굉장히 괴팍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아버지 김일성 주석에 대한 효심은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한 이기적차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한국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다. ■김정일 위원장의 성장배경과 지도자로서의 교육은. 아버지에 비해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한국전쟁이 일어난 8살때 만주로 피난가서 조선 혁명가 유자녀들이나 다른 빨치산의 아이들과 함께 혁명학원을 다녔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평양에 돌아온 그는 초등학교와 초급중학교에 이어 60년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는 등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았다. 또 64년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당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지도자 준비 과정을 철저하게 거쳤다. ■그동안 국내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내성적 성격이라는말이 많았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우쭐한 자세로 별 달린 군복을 입은 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외국 손님이 북한을 방문할 때 화려하게 환대하거나 접대하는 일도 드물다.이를 두고 내성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처지에서자기가 해야 할 일에 주력하기때문이다.한국에서는 객관적인 입장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무엇을 하려는지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다른 점을 꼽는다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지도자로서 완전히 구별된다.김일성 주석은항일 빨치산이었다. 어릴때부터 목숨을 걸고 항일 운동을 했다.중국사람들과도 같이 학교에 다니면서 가까이 지냈다.또 국내파,연안파 등 정적(政敵)을자기 손으로 한사람,한사람 숙청하고 나라를 세웠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반대다.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당에 들어갔다.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군에 입대하지도 않았고,정규군의 훈련을 받은일도 없다. 아버지가 만든 국가를 인계 받았을 뿐,누구를 숙청한 경험도 없다.대신 연극 연출이나 영화 제작 등 예술계통에 관심이 높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인받기까지 정치적 카리스마를스스로 획득했는가. 그렇다고 본다.왜냐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 74년부터다.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까지 20년 동안 후계자 학습을 받은것이다. 김일성 주석에게 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다.예를 들면 70년대 후계준비 사업인 3대혁명소조운동은 초창기 실패를 거쳤다.그러나 후계준비 작업이 끝날 무렵인 79년12월에는 ‘김일성 훈장’ 제1호를 받는 등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또 당내 2인자로 등장한 80년 이후 91년 12월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될 때까지 11년 남짓 지도자로서 자질을 닦았다.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자기의 확고한 카리스마를정립할 수 있었다. 정치지도자로서 아버지보다 더 배짱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 주석직을차지하지 않고도 북한을 다스리고 있다.중국 공산당 당수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이 국가 주석을 맡지 않고도 대륙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지난 9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본다.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의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이 개방으로 나서고 미국·일본과 관계개선도 제대로 안되니 생존방법으로서는 핵무기와 핵무기를 운반하기 위한 미사일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실례를 들면 70,80년대부터 줄곧 현장시찰을 많이 해왔다. 군 시찰이 특히잦다.선군(先軍)정치를 해야 강성대국으로 번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때문이다.군수공장을 자주 둘러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는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고,지도력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고 본다. ■김정일 위원장의 예술적 식견은 어떤가. 높은 편이다.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에서 일하면서 여러가지 영화제작을 지도했다.특히 69년에 발표된 ‘피바다’,70년의 ‘어느 자위단원의 운명’,72년의 ‘꽃파는 처녀’ 등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아버지의 빨치산 운동때 얘기를 토대로 극본을 만들었는데,김일성 주석도 감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서양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작품과 비교·연구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평양의개선문이나 주체탑도 그가 만들었다. ■서방세계의 문물에 대한 이해나 수용 정도는. 평양에서 당 간부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면 한국은 물론 서방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김정일 위원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평양에서는 1주일에 한차례씩 당 간부를 대상으로 ‘평양순보’가 발행되는데 국제뉴스가 빠짐없이 실려 있다. 북한을 ‘봉쇄된 나라’,‘아무 것도 모르는 나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한주민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식은. ‘좋다’는 생각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절반 정도씩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천재(天災)가 오면 임금이 천운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여겼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나서자 홍수,가뭄등 자연재해가 닥쳤다.때문에 주민들이 잘못 인식하는 점도 있다. 그러나 금년부터 이탈리아와 국교를 맺고 중국,소련,필리핀,캐나다 등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김정일 위원장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는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전망하면. 낙관적으로 본다.회담이 좋게 발전할 것이다. 두 정상의 만남 자체도 남북 화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지만,악수만 하고헤어지진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 볼 때 김대중 대통령은 이승만(李承晩) 이후 자기들에게 가장 가까이 생각되는 대통령이다.북한으로서도 민족화합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가장좋은 기회인 것이다. 한국이 북한에 혜택을 주는 것이 있다면 북한도 한국 대표단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예를 들면 휴전선 일대 지뢰를 제거한다든지,동·서해안의 해상경계선을 합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든다든지,긴장완화를 위한 대표부를 세운다든지,여러가지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은 ‘북한이 돈이 없어 일방적으로 손을 내밀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북한은 차라리 굶더라도 자존심은 지키려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관은. 과거 김일성 주석은 ‘200일 전투’,‘생산고지 점령’ 등의 구호로 국가계획경제를 추진했다.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 세대처럼 성장과정에서 큰고생을 하지 않았다.또 노동력 동원 등 국가계획경제 개념과 달리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컴퓨터를 활용하는 등 새로운 경제개발 방식에 눈을 돌리고 있다.앞으로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기동취재소팀 박찬구기자 ckpark@. ◆ 서대숙교수 프로필. 서대숙(徐大肅·69)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는 30년 남짓 북한을 연구한 세계적인 북한문제 전문가이다. 올 들어 북한연구 전문기관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과 북한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70년대 이후 여러차례 방북,핵심권력층과 정책토론을 벌이는 등 북한연구에 독보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지난 4월 발간한 ‘현대북한의 지도자-김일성과 김정일’이란 저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권력승계 과정과 ‘김정일 체제’의 특징, 향후 과제 등을 잘분석해 요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주요 독서파일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 [시베리아 대탐방](20.끝)재벌 꿈꾸는 개인기업들

    [이르쿠츠크·앙가르스크 특별취재반] 시베리아의 동토(凍土)에서도 미래의‘재벌’을 꿈꾸는 개인기업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州) 3,000여개 개인기업 가운데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에네르쁘레트’를 찾았다.이 회사는 지난91년 이르쿠츠크 인근 도시 우스트일림스크에서 일하던 젊은이 5명이 1만달러를 들여 창업한 기계 생산업체다.그들은 “전 러시아에 팔 수 있는 기계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국영기업에 근무할 때보다 몇배는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창업 9년째인 99년,에네르쁘레트는 이제 300만달러의 자산과 4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또 이 회사는 러시아 군수산업부품의 70%를 조달할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그리고 경상이익이 매출액의 30∼40%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도 견실하다. 에네르쁘레트는 이르쿠츠크 지역 대학졸업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중 하나다. 높은 임금과 성장성,개방성이 이 회사의 매력이다.이 회사는 2년전 입사한이르쿠츠크 공대 졸업생의 능력을 높이 평가,지난해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해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벤처기업 열풍이 러시아에도상륙했다는 느낌을 줬다. 에네르쁘레트는 그동안 시베리아 탐방 중 돌아본 다른 기업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는 “이렇게 컴퓨터가 많은 사무실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사무실 풍경은 거의 선진국의 기업과 닮았다.또공장의 분위기도 활기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러시아의 다른 기업에서 목격했던 느슨한 기업 분위기와는 달랐다.또 사장과 전 임원이 취재에 응할 정도로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트보로고프 수석부사장은 “우리의 성공은 개인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며“무사안일의 타성에 젖은 국영기업이 이런 약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은 취재팀이 12월 3일 방문한 앙가르스크 의류(주)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한 기업들은 대규모 자본을 갖고 있었지만,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앙가르스크에 있는 이 회사는 지난 56년 국영기업으로 출발,최근 민영화됐다.이르쿠츠크 주정부는 안내하기 앞서 취재팀에게 “미국회사의 외자유치를 받아 미국,독일에서 올해 1월 최신설비를 들여왔다”며 “러시아 최고수준의 공장”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앙가르스크 의류 공장은 역시 동부 시베리아 최대의 의복공장답게 대규모였고 시설도 훌륭했다.한국의 의류공장 못지 않게 깨끗했고 첨단 자동화 설비도 갖췄다.여성인 코롤료바 스베틀라나 사장은 “우리의 여성 및 아동외투가올해 러시아 최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며 “설비교체후 생산능력이 4배나늘어났다”고 말했다.그러나 막상 회사측의 안내에 따라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이완된 분위기가 느껴졌다.절반 이상의 설비가 놀고 있었고 종업원들은‘잡담중’이었다.코롤료바 사장은 “주문이 없어 이렇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최근 한국업체와 운동복 외주계약 협상을 벌였는데 그쪽에서 너무싼 가격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수출 건을 따내러 직원들이 외국으로 직접 돌아다니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런 적 없다”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또 첨단설비인만큼 옷의 바느질 상태는 빈틈 없었지만 디자인은 영 엉성해서 우리시장에서는 한 벌도 안팔릴 것 같은 수준이었다.또 민영화과정에서 종업원들이 모두 주식을 받았지만 사장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회사 주가에 관심이없었다.회사 주가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종업원 지주제의 취지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하드웨어만 민영기업이지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국영기업의때를 벗지 못한 셈이다. oosing@. * 러시아 최대 의약콤비나트. [우솔레시비르스코예 특별취재반]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중소도시 우솔레시비르스코예에는 러시아 최대의 의약콤비나트가 있다.창립 30주년을 맞는 이 의약콤비나트의 16개 공장에서는 50여종의 각종 화학제품과 의약재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 의약콤비나트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고려인사장 김신범씨는 “옛 소련 때는 유럽 각국에 수출할 정도로 훌륭한 콤비나트였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와 함께 이 콤비나트에 들어선 취재팀은 그만실망하고 말았다.공장 부지와 건물은 대규모인데 설비는 마치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 했다.가동이 중단된 몇군데 공장은 아예 폐허와 같았다. 미로치니코프 페도로비치 의약콤비나트 사장은 “설비가 이미 낙후된데다재료를 구입할 만한 운영자금도 모자라 생산량이 급감했다”며 “자금부족으로 최근 5년간 유럽에 비해 뒤떨어졌지만 외자만 유치되면 몇년내 따라 잡을수 있을 정도로 기초기술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그는 “투자자에게는 콤비나트의 주식도 주겠다”고 덧붙였다. 우솔레 의약단지가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생산품으로는 ‘페놀 페르비탈’을 우선 꼽을 수 있다.이는 두통 또는 수면제로 쓰이는 의약재료다.메지우스김사장은 “한국도 수교관계가 없을 때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입해썼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줄어들어 질 낮은 중국산을 사다 쓸 것”이라고 말했다.생선이나 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들 때 쓰이는 ‘벤조아트’도 질이 높은것으로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로치니코프 사장은 “외자유치 금액의 상당부분은 주로 의약 완성품 공장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 이유는 의약재료보다는 완성품이 자본회임기간이 짧고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현재 10%에 불과한 의약 완성품 비중을 절반까지 올릴 방침이다. 그는 “북한측과 인삼약 제조에 관해 협상을 했으나 이미 결렬된 상태”라며 “콤비나트 산하 4개 공장이 현재 한국과도 모종의 협상을 진행중이지만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브이 로시스키'…자본주의 바람 타고 급부상. [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 특별취재반] 러시아에서는 요즘 ‘노브이로시스키(새로운 러시아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자본주의에 발빠르게 적응해 돈을 번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브이 로시스키 가운데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경우도 많다.그래서인지 노브이 로시스키란 말속에는 비아냥의 뉘앙스도 섞여 있다.우리의졸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노브이 로시스키는 남들보다 앞서 용감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해 새 사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졸부와는 다르다.러시아의 ‘신흥세력’내지는 ‘신흥상류층’으로 번역하는것이 적당할 것이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즉 고려인 사회에서도 노브이 로시스키를 응용한 ‘노브이 카레이스키(새 고려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취재팀은 극동과 동부 시베리아를 취재하면서 두명의 노브이 카레이스키를 만났다.이 두사람은 학문의 길을 걷다가 생존을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았다.역경을 기회로 바꾼 것이다. 김 보리스 예브게니예비치,한국 이름으로는 김신범이다.그의 신분은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사장.러시아에서는 매우 생소한 종류의 회사이다.취재팀은 그를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에서 만났다.김사장은 우리의 우솔레시비르스코예 의약단지 취재를 안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이 의약단지에 대한 투자사업은 모두 그가 총괄하고 있었다. 김사장은 이르쿠츠크 의대 출신의 의사다.러시아 용어로는 의학중박사(의학석사).병원 외과의사와 의학연구소 연구원 등 정상적인 길을 가던 그는 91년구소련 붕괴로 연구소가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김사장은 이 때 일회용 주사기,수술장갑 등 수술에 필요한 의약품을 수입,판매하는개인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그리고 96년 투자회사를 차렸다.김사장은겉보기에도 재력이 있어 보였다.그는 질 좋은 무스탕에 진갈색 렌즈 안경을쓰고 있었다.그리고 5,6년 이상된 일본 중고차를 쓰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달리,그는 국산 쏘나타를 탔다. 김 사장은 “생활수준이 이 지역에서 최상위급”이라면서도 의학도로서의생활에 미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사업이 마음에 든다고는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학,약품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그는 사업차 서울에도 자주 들른다고 했다. 이에 앞서 26일 만났던 고가이 보리스는 벤처회사를 창업했다.아직 큰 돈은못벌었지만 석유시추공을 효과적으로 청소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전도가유망하다.고가이에 붙은 ‘가이’자(字)는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이 흔히자신의 성 뒤에 붙여 러시아식으로 작명하는 접미사다. 카자흐스탄에서 출생한 고가이 사장도 66년 톰스크 공대를 졸업한 뒤 크라스노야르스크 석탄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으나 구소련 붕괴의 격동속에서 연구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연구소를 나왔다.그는 처음에는 이 연구소 출신 몇몇과 동업,목재 등을 수출하고 한국산 직물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했으나 자금사정으로 그만뒀다.지금은 ‘시브레’란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려 자체 기술을 판매하는 한편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여러 연구소들이 창출해낸 성과들을실제 산업에 적용하도록 중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일종의 벤처캐피탈이다. 고가이 사장은 공익사업도 시작,‘국경없는 어린이(Boundless Children)’이란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잠재력을 세계 어린이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고가이 사장은 인터넷 마인드와 영어실력으로 무장한 지식형 노브이 카레이스키인 셈이다.고가이 사장은 “할아버지가 연해주에 살면서 사업차 한국에 자주 왕래하다 6·25전쟁이 나면서소식이 끊겼다”며 “얼마전 할아버지의 성함을 잡지에서 봤는데 장남 이름을 아버지 이름과 똑같이 지어놨다”고 말했다.
  • 운전중 휴대폰 사용 못한다

    서울시는 4일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운전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일부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운전중에 휴대폰을 사용,대형 교통사고가 우려된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됨에 따라 버스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2조 규정에 따라 이날부터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운전중에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8,300여대의 시내버스와 2,500여대의 마을버스 및 전세버스 운전기사가 운전중에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2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택시의 경우는 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동시통역서비스 제공에 맞춰스피커 폰을 설치할 계획인데다 단속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이번규제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서울시 관계자는 “버스운전사의 운전중 휴대폰 사용을 철저하게 단속,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시가 지난달 6일 시내버스와 택시기사의 운전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시킨데 이어 광주시도 최근 휴대폰사용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나섰다. 김용수기자 dragon@
  • ‘비목’ 작곡가 張一男교수등 3명 구속·입건

    교수 채용 및 체육특기생 선발 비리와 관련해 대학교수 3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특수3부(부장 金佑卿)는 3일 장일남(張一男·68)한양대 객원교수와 배화여대 우동완(禹洞完·46)관광중국어통역과 교수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고려대 김상겸(金相謙·65·대한체육회 부회장 겸 대한스키협회 회장)체육교육학과 교수를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 교수는 정규 교수직에서 물러난 지난 98년 2월19일 이모씨(69)에게 “대학 재단이사장 등에게 말해 바이올린 연주자인 딸을 음대 교수로 임용시켜줄 수 있다”며 로비 자금조로 지난해 1월28일까지 7차례에 걸쳐 이씨로부터 2억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장 교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 ‘비목’ 등을 작곡한 원로 작곡가로 현재 한양대 객원교수(작곡과)로 재직 중이다. 또 우동완 교수는 관광중국어통역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95년 8월 대학후배 이모씨(43)에게 “돈을 내면 교수로 채용시켜 주겠다”고 제의한 뒤 이씨로부터 같은해 11월까지 4차례에 걸쳐 6,27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있다.김상겸 교수는 고려대 체육위원회위원장을 겸직했던 98년 12월 정모씨(20) 등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2명을 99년도 체육특기생으로 선발키로 내정한 뒤 이들 부모로부터 사례비로 2,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락기자 jrlee@
  • 中企 무역거래 외국어‘고민 끝’서울성동구 번역지원센터 운영

    성동구는 최근 관내 중소기업들의 무역거래 지원을 위해 구청 지역경제과에번역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지난 1월부터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지원자 39명중 21명을선발,배치한 것.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로 남자가 16명,여자가 23명이다. 이들은 관련분야의 인력을 채용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무역상담이나 제품설명서 및 무역소개장 등의 번역을 도와준다.번역료는 무료다. 이들의 면면은 각양각색인 것이 특징.육군 통역장교 출신으로 한국해외개발공사 영국지사장을 지낸 73세의 최규대씨를 비롯해 외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관광안내원 경력의 주부 등 능통한 외국어 실력으로 무장돼 있다.번역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업은 구청 지역경제과(2290-7365)로 신청하면 된다. 문창동기자 moon@
  • [대한시론] 부패구조 더 놔둬선 안된다

    1960년대 군사정권의 부패 분위기속에서 군사정권 개발독재의 나팔수로 기웃거리던 어느 경제학 교수는 부패에 대한 변호론을 썼다.어느 정도의 부패는 사회발전에 촉매체가 된다는 외국학자의 논의를 자기 편리한대로 끌어다가 엮어낸 궤변이었다.당시 쿠데타를 한 군인들은 ‘혁명공약’이란 쿠데타정당화론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1로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노라고 했다.그런데 그들 자신이 역사상 최대의 부패분자가 되었다. 부패는 미군정시대에 ‘통역정치’로부터 이승만 정권하에서 ‘빽’과 ‘사바사바’의 시대로 이어졌다.그래서 1960년 4·19혁명 후에는 헌법을 개정해부정축재를 몰수하기 위한 소급입법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이들부정축재 장본인들을 근대화의 기수로 변신시켜 그들과 밀월관계로 돌입했다.특히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일본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부패가 단군 이래 반만년 역사에서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군사정권 이전에 김성두가 쓴‘재벌과 빈곤’이란 책에서 밝힌 부패구조는 어린애 걸음마 배울적 이야기가 되었다.결국 뇌물이란 부패의 핵을 둘러싸고 정상배와 고급관료 및 기업이 유기적 결합을 이룬 정경유착 구조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여기서 부패에 기생하는 부류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뇌물의 주고받기의 과정과 구조를 보면 된다.정치인은 흔히 ‘떡값’이라고 해 기업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먹는다.그것이 말썽이 되면 떡값은 ‘정치자금’으로 될수도 있다.정치자금이라는 옷을 입혀서도 말썽이 나서 법정에 서면 아는 사람끼리 ‘대가성 없이’ 준 돈이기 때문에 죄는 안된다는 법이론으로 무죄가되어 실뱀장어처럼 법망을 빠져 나온다. 참으로 절묘한 묘기이다.우리사회에서만 통하는 법이론이고 법기술이다. 유사한 나라라고 하면 일본 보수정권의 부패구조에 선례가 있다.유식한 법률가가 그 기발한 외국선례를 이용하지 않을리가 없는 것이다.그런데 그 것으로도 안돼 잠시 감옥이란 곳에서 머무르게 되면 ‘사면’이란 편리한 제도를 통해서 ‘새사람’으로 되어 감옥을 걸어나오는 요술을 부리기도 한다.그래서 우리 법률에선 부자나 높으신 관료가 감옥신세를 지는 일이 없다.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쿠데타의 정치를 말한 적이 있는데,이러한 ‘사이비 법치’가 후세에 ‘한국적 법치주의’라는 말로 불리게 될까봐 걱정이다. 80년대 사나운 군사정권시절에 공공연히 “민나 도로보다”란 말이 유행했다.일본말로 “모조리 도적놈”이란 뜻이다.이런 부패가 구조화된 사회는 정치고 경제고 법제이고 공중분해되어 버려서 망하게 된다.그래서 개혁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자구책이다.개혁의 대상은 정경유착으로 표현되고 독과점과정부의 특혜로 나타난 파행적 관행과 구조이다. 일본에서 패전직후 민주화개혁의 일환으로 재벌을 해체했듯이 우리에게도재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그런데 반세기에 걸쳐 불사조처럼 뻗어나오며 1990년대부터는 정권을 압도할 정도로 기세와 위력이 세진 재벌을 무서워 비판하기를 겁낸다.한국 의회정치의 역사에서 처음 있은 청문회에서 유수한 재벌의회장이 그 입으로 말하기를 청문대에 들어갈 적마다 거액의 돈을 챙겨가지고 가서 상납했다고 실토했다.청문회가 있은지 얼마가 지났는데 아직도 정경유착의 과거 찌꺼기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박정권 초창기의 부패필요론에서 발전해 지금은 재벌의 경제기여론이란 찬양 옹호론이 버티고 있다. 여기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정리해보면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로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경제 정의를 실종시키고 ▲개방화 추세에서 재벌의 시장독점은 유지할수 없고,그런 체질로는 국제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킬 뿐이며▲독점재벌의 독식은 소비자,중소기업과 농어민,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전가시키고 ▲부의 일부 집중과 벼락부자의 풍조는 퇴폐 타락을 조장하고계층간 이질화와 갈등을 심화시킨다. 전근대적 족벌지배의 독점기업집단이라는 재벌의 문제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도의 교묘한 악용과 법의 허점을 최대한 악용한 탈세와 부자간 변칙상속,일가 일족의 사유물로 기업을 변질시켜,일족의 수장이 ‘전제군주’로 군림하는 관리방식이라는 시대착오적 경영,자기 돈은 몇푼 없고 압도적 비율로정부와 국민의 돈을 특혜융자로 빌린 자금을 사유물로 생산보다 유통구조에기생하여 부당이득을 챙기는 파행적 기업구조 때문 아닌가.개혁의 주역은 국민이 돼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부패 기득권세력의 방해로 개혁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그치게 된다.해방이래 부패기득권층은 교묘하게 위기를 넘기면서살아 남았다.이번에도 그들은 과거의 수법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개혁을 회피해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한상범 동국대교수 법학.
  • 서울시 ‘브랜드택시’ 졸속 추진

    서울시가 택시의 서비스 향상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브랜드택시’ 도입을 졸속 추진해 비난을 사고 있다. 서울시는 28일 법인택시의 브랜드화를 추진,3,000대 규모의 2개 브랜드택시를 오는 9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7만여대의 시내 택시중 2만3,165대인 법인택시의 서비스 개선을 위해서는 브랜드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브랜드택시란 여러 개의 법인택시회사를 단일 브랜드로 묶어 브랜드명 차량색상 운전기사제복 등을 동일하게 해 서비스와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브랜드명 등은 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서울시는 브랜드택시에 콜시스템 및동시통역시스템 부착,영수증 발행기 설치 등을 통해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요금도 기존 중형택시 기본요금 1,300원보다 400원 비싼 1,700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브랜드택시가 서비스 개선보다는 일반 중형택시에 비해 30%의 요금인상만 초래할 수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실제로 서울올림픽이 시작되기직전인 지난 88년 2월 중형택시가 도입된 이후 소형택시는 사라져 결국 택시요금만 인상된 꼴이 됐었다. 특히 브랜드택시에 대해 기본요금은 다소 비싸게 책정해 놓고도 심야시간대에는 할증제 적용을 배제,승객이 몰리는 심야시간대에는 승차 거부 등 불친절의 불씨를 남겨놓아 서비스 부실의 우려마저 안고 있다. 또 승객 감소로 수익이 줄어들어 브랜드택시를 탈피,일반택시로 환원할 경우의 대책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지난 98년 11월 모범택시 408대가 강력하게 요구했던 일반택시로의 환원을 서울시는 들어줘야 했다. 기존 모범택시 및 개인택시의 수익 감소에 따른 집단행동도 우려된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택시가 도입될 경우 이제 겨우 정착단계에 접어든 모범택시의 위상이 흔들리고 결국 3중 가격제 때문에 승객들의 혼란과 부담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법인택시회사가 영세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부실하다”면서 “가격과 서비스를 한꺼번에 높이는 고급브랜드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이동전화 동시통역시스템 개발 오강석회장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큰 불편을 호소하는 언어소통 문제가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동전화를 이용한 동시통역시스템을 개발한 벤처기업 (주)케이엔티(KNT)의오강석(吳岡錫·51) 회장은 “아셈(ASEM),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행사가 예정돼 있지만 아직도 외국인들의 언어소통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이 서비스가 보편화돼 외국인들의 불편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케이엔티는 인터넷,PC통신,유선전화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 세계 15개 언어권,100여개국의 언어를 동시통역,번역해주는 벤처기업이다. 이 업체는 최근 이동전화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기술특허와 실용신안을 출원했다.이른바 ‘코네티서비스’(통역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통역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동시통역사를 사이에 두고 통화하고자 하는 제3자와 통화하는 방식이다.통역사는 두 언어권의 사람과 3자간동시,순차통역을 실시한다. 이용법도 간단하다.이용자는 이동전화 단말기 번호판에서 1번(영어),2번(일본어),3번(중국어) 등 해당 언어의 ‘핫키’를 3초간 누르기만 하면 된다. “곧 이동전화서비스 업체들과 함께 본격적인 서비스에 돌입할 예정이고 다음달에는 경찰청,공항,개인택시연합회 등과도 전략적 제휴를 체결할 계획입니다.” 일간지 사진부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인 오 회장은 “궁극적으로 2001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언어소통의 불편 없이 관광을 할 수 있도록 공항에서 이동전화 단말기를 무료로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가입신청은 (02)555-5555. 박홍환기자 stinger@
  • 趙南起 政協부주석 인터뷰·프로필

    조남기(趙南起·74)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전국위원회 부주석이 24일 고향 땅을 밟았다.12살이던 1938년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 조남식씨를 따라 중국에 건너간 뒤 62년만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이다. 조 부주석은 지난 98년 정협내 31명의 부주석 중 1명으로 선출돼 소수민족중 정계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출생지는 충북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44년 팔로군에 입대한 이후 47년 중국 공산당에 정식 입당했다.한국전쟁 때는 인민해방군 후근부(後勤部·병참)사령관 통역장교를 지냈다.82년부터 97년까지 3차례에 걸쳐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특히 98년 지린(吉林)성 정협대표와 함께 평양을 방문하는 등 남북한 양쪽 사정에 밝아 남북관계 개선을 앞두고 그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국내에는 조카 조흥연(趙興衍)씨 등 친인척들이 살고 있으나,방한기간 동안 성묘를 제외한 특별한 가족행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조남풍(趙南豊) 전 보안사령관이 16촌 동생이다. 청주대는 그에게 명예경제학박사를 수여할 예정이다. 다음은 조 부주석이 방한직후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한국방문 소감은. 10년이면 산천도 변한다는데 산천만 변한게 아니라 하늘과 땅도 많이 변한 것 같다.한국 국회의 초청으로 중국대표단을 이끌고 방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방문목적은. 목적은 두가지이다.하나는 원래의 토대 위에서 중·한 양국민의 유대를 증진하고 관계발전을 강화하는데 있다.또하나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경제위기 극복의 경험을 배우려고 찾아왔다.개인적으로는 고향의 여러분을 찾아뵙는 의미도 있다.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은. 중국은 정상회담 합의에 지지와 환영을 표하고 있다.정상회담은 남북한 전체 이익에 부합한다.98년 북한 방문때 북한주민들도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중국은 일관되게남북대화와 자주적 통일을 지지한다.중국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다할용의가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시베리아 대탐방](17)하바로프스크의 관광상품

    [구트조브카 특별취재반] 자연림이 풍부한 시베리아에서는 사냥도 훌륭한관광 상품이다.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에는 사냥 전문 여행사가 있다.이곳은 주로 미국,캐나다에서 사냥 관광객을 모집한다.사냥 관광객들은 헬리콥터를 이용,숲으로 이동한 뒤 이틀간 사냥을 즐긴다.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의 모든 주정부가 제한적으로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매년 동물 종류에 따라 사냥 한도를 정해놓는다.물론 사냥터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취재팀이 만난 이르쿠츠크 주정부의 비쿠로브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대외경제고문도 사냥 매니어중 한명이다.그는 주로 이르쿠츠크에서 300㎞ 떨어진바이칼호수 중간지대로 가서 사냥을 즐긴다.현지어로 ‘바랄’이라고 하는사슴과 산양이 주로 사냥 대상이다.그는 “사냥을 하는데 드는 경비가 보통1인당 500루블(2만2,500원)이나 들기 때문에 자주는 못간다”며 “고기만을원한다면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싸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하바로프스크에서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 정추광씨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는곧바로 그곳을 찾았다.한 사냥꾼이 그동안 자신이 쏘아죽인 동물들에 대해 속죄한다는 뜻에서 어미 잃은 새끼들을 데려가 키우고있다는 것이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구트조브카에 정씨에게 들었던 ‘동물 건강회복 센터’가 들어서 있었다.야트막한 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이곳 설립자의 딸이라는 예노토비트나야 코바카양이우리를 안내했다. 그녀는 호랑이 사냥꾼이었던 아버지가 은퇴해 연금생활자가 된 뒤 갑자기이 시설을 만든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줬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미가 죽으면새끼들은 홀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며 후배 사냥꾼에게 새끼들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했다.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집에 가져온 새끼들을 잘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게 됐다.그런데 4년전에 문제가 발생했다.송곳니가 빠져버린 생후 9개월짜리 호랑이 새끼를 받아다 조금 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려했는데 동물원측에서 “송곳니가 없어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결국 그는 그 호랑이 새끼를 키우기 위해동물건강 회복센터를 설립하게 됐다는 것이다.구트조브카 지역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동물 키우기 좋은지역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지금은 이곳이 하바로프스크주에널리 알려져 새끼들을 많이 보내준다”고 말했다. 그녀의 안내로 동물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올라갔다.이곳을 만든 계기가 된호랑이부터 만났다.식사를 하는 도중에 방해가 됐는지 굉장히 으르렁거렸다. 철장이 다소 허술해보여 호랑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근접하기가두려웠다.송곳니를 잃은 이 호랑이는 연한 송아지 고기만 먹었다.또 ‘동물의 왕’답게 0.5㏊의 넓은 영역이 주어져 있었다.예노토비트나야양은 “원래두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숲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옆 우리에는 반달곰이 있었다.먹이를 주니까 일어서서 도는 등 재주를 부렸다.반달곰만 지금까지 16마리가 이곳에서 원기를 찾은 뒤 동물원에 보내졌다고 한다.여우와 너구리,살쾡이,산양,염소,사슴 등 15마리의 동물들이 현재이곳의 보호를 받고 있다. 취재팀은 문득 무슨 돈으로 이곳을 운영할까 궁금해졌다.사료비만 해도 엄청날 것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때문에 입장요금과 숙박요금,반야(러시아식 사우나)요금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주정부가 이곳을 보호지역으로 지정은 했지만 자금지원은 별도로 해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산에서 내려와 보니 아담한 통나무집과 반야가 눈에 띄였다.통나무집에서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생들이 단체로 놀러와꼬치구이를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일반 동물원과 차별화되는 이곳만의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동물 우리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돼 있지 않고 철책만 둘러쳐져 있을 뿐이다.산과 동물과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이 때문에 주말이면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많이 온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많이 늘었다”며 “한국인들도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있다. oosing@. * ‘한국식 사우나’명물로 자리잡아.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취재팀은 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와 보름동안 함께 다니면서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머나먼동토(凍土)에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한국인이었다. 사할린주 출신인 정추광씨는 노보시비르스크공대 졸업후 하바로프스크공대교수를 거친 엘리트로 현재 ‘러시아의 소리 방송’하바로프스크지국 과장이다. 6남매를 대학까지 보낸 그의 부모가 그랬듯 그도 두 아들에 쏟는 정성이지극했다.하바로프스크공대 졸업후 장남은 외국인회사,차남은 철도회사에근무중인데 정씨는 미혼인 두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줬다.러시아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땅이 넓은 러시아에서는 아파트가 아니면 지역난방과 수도물공급이 안되기 때문에 아파트가 무척 비싸다.정씨는 직장 일과 통역을 병행하며 번 돈을 자식에게 모두 내줬다.정씨는 요즘 장남이 슬라브족 여성과 사귄다며 걱정하고 있다.“고려인 여성만큼 남편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정조관념도 미흡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그러나 요즘 고려인 3세의 25%는 슬라브족과 결혼하는 추세다. 고려인들의 식단도 여전히 한국형이었다.취재팀은 귀국 전날인 199년 12월3일 정씨의 아파트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인 정씨 부인은 깍두기와 김치,국은 매일 저녁 꼭 준비한다고 말했다.물론 매운맛은 덜했지만 역시 한국식이었다.정씨는 “북한식당이 자금사정으로 문을닫아 아쉽다”고 말했다.실제로 취재팀이 찾아간 하바로프스크의 ‘평양식당’은 한국인과 고려인이 공동으로 인수한 곳이다.‘젬추지나’로 식당 이름도 바뀌었다.블라디보스톡의 유명한 식당 ‘모란각’은 문이 잠겨있었다. 고려인들은 개고기도 무척 즐긴다.그는 “매달 한번씩 고려인 친구들과 함께 개를 직접 잡아 탕과 수육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친구들끼리 차를 몰고 조용한 시외로 나가서 개를 직접 잡은 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단독주택을 가진 친구집에서 ‘개고기 파티’를 연다.정씨의 차남 비타라씨도 “개고기 파티에는 부인과 자식들도 꼭 참석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고려인 생활.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한·러 수교 이후 수많은 우리기업들이 극동 시베리아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결국 IMF사태가 터지자 너도나도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의외로 성공한 기업이 있다.러시아 유일의 한국식 사우나인 하바로프스크의 ‘달리 사우나’가 그 주인공.1999년 12월 4일 취재팀이 찾았을 때이곳은 수십명의 러시아인들로 붐비고 있었다.사우나뿐만 아니라 부대시설인 레스토랑과 오락실,안마실에도 러시아인들이 많았다.사우나 입장료가 1인당 800루블(우리 돈 3만6,000원)으로 비싼 만큼 부유층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 사우나는 지난 95년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51대 49의 지분으로 합작 설립했다.당시 여기에 쓰이는 나사못 한개도 러시아에 없어 모든 것을 한국에서날라오느라 공사시간이 1년이나 걸렸다.한국인 사장인 김영진씨는 첫달부터흑자를 내 98년에는 이미 자신의 투자비 50만달러를 모두 회수했다.모스크바연방정부의 고관들이 하바로프스크에 오면 항상 이 사우나를 찾을 정도로명물로 자리 잡았다. 성공비결을 묻자 김사장은 “합작파트너를 속이지 않았고 투명하게 일을 한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며 “이제는 모든 사우나관리를 나에게 일임했다”고 말했다.사우나안에 식당과 오락실을 차리는 식으로 이종(異種)사업들을병행한 것도 주효했다.위험분산과 시너지 효과를 누리게 됐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힘이 됐다. 지금은 직원이 55명에 이르지만 처음에는 15명만 둬 1인 2·3역을 해야했다. 또 우리처럼 사우나가 일상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남·여탕을 따로 안차리고홀수날은 여자,짝수 날은 남자날로 정해 투자비용을 줄였다. 김사장은 “경쟁자가 적은만큼 중국보다는 러시아쪽이 기회의 땅”이라며“모스크바에서 사우나 설립 제의가 들어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사장은 이제 러시아를 넘어 유럽의 한국식 사우나를 꿈꾸고 있다.
  • 한국인 첫 퓰리처상 받은 최상훈 기자

    “처음 수상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회사에서 성대한 축하인사를 계속 해주는 바람에 정말 ‘큰 상을 받긴 받았구나’하고 실감하게 됐습니다” 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보도로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최상훈(崔相焄·38)씨는 1년6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냉전논리에 묻혔던 사건을 양지로 끌어낸 게 보람”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98년 봄 한 잡지의 인물란에 실린 노근리대책위원회 기사를 읽고 취재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며 취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본격 취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그런데 대책위가 법무부에 낸 배상신청건을 조사하면서 미군 당국이 거짓이거나 매우 불성실한 답변을 보냈다는 사실에 오기가 발동,취재성과를 본사에 기획안으로제출했다. 처음 두달간 혼자 취재한 그는 과외근무를 하면서 밤시간대를 이용,피해자를 만나거나 수백통의 전화취재를 했다.국제문제 대기자 찰스 핸리 등 기자2명과 조사기자 1명을 지원해줘 한결 힘을 얻었다.특히 국익논리에 빠지지않고 편견없이 판단한 AP통신사는 가해자인 미군 제1기갑사단 7연대 관련 기록을 뒤져 당시 미군들의 신원을 확인해 인터뷰하는 등 측면 지원했다.취재막바지에 취재팀은 한·미관계나 북한의 선전에 동원될 가능성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으나,진실을 은폐한채 구축된 외교관계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보도하게 됐다. “사건이 워낙 오래되고 당시 미군이 패주하는 상황이어서 자료가 없어,증거를 찾아 기사를 완성하는 과정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한 최씨는 코리아헤럴드를 거쳐 94년 미국AP통신으로 옮긴 그는 앞서 조지 포크상·존스 홉킨스대 SAIS-노브리타이스상 등 주요 언론상도 받았다. 김규환기자 khkim@
  • 중형택시 영수증 발급 의무화

    이르면 내년부터 중형택시도 영수증을 주고받게 된다.또 다음달부터는 동시통역시스템을 갖춘 택시가 서울시내에 1만대로 늘어나 외국인 이용자들의 불편을 덜게 된다. 기획예산처는 11일 경실련,행정개혁시민연합,녹색연합 등 17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공동으로 제2차 시민제안심의회를 열어 지난해 말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5개 민생과제의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이같은 내용의 향후 추진계획을마련했다. 예산처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택시 바가지요금 횡포를 막는 방안으로 건설교통부와 함께 중형택시에 대해서도 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해 나가기로 했다. 현재 서울시내 477대의 택시에 적용하고 있는 외국어안내서비스도 올해 안에1만대로 범위를 늘릴 계획이다. 또 공항택시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김포공항의 각 택시 승강장에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한다. 예산처는 이밖에 지난해 말 1,500㏄ 이하 소형차를 대상으로 실시한 신차(新車)평가를 확대,3·4분기 중 2,000㏄급 중형차에 대해서도 신차평가를 실시하는 한편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신차평가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진경호기자
  • [시베리아 대탐방](16)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

    시속 100㎞는 되는 것 같았다.로만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손바닥처럼훤하다”고 자신했지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안되겠다 싶어 몇번이나‘안전운전’을 부탁했지만 허사였다.‘정식 렌터카를 빌릴 것을 괜히 돈 몇푼 아끼려다가 목숨을 거는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실제로 정면충돌하거나 뒤집힌 차들이 이따금씩 목격됐다.갑자기 숲에서 찻길로 뛰어드는 사슴 등 들짐승도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한다. 오전 7시 15분 드디어 목적지인 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에 무사히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동이 트지도 않았지만 시장은 벌써 가게를 열고 상품을 들여놓는 상인들로생동감이 넘쳤다. 정식명칭이 ‘우수리 쉔트르(센터)’인 우수리스크 중국인시장은 극동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민간시장이다. 중국인시장이란 별칭은 러시아 국경지역인 중국 지린(吉林)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인들이 중국산 물품을 들여와 장사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러시아 극동지역 공산품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만큼 ‘극동유통센터’로도 불린다. 지난 94년 건립된 이 시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의복이 가장 많다. 이와 함께 카페트,소파,가전제품,벽지,장판,건설재,조명기구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식품 가운데는 한때 러시아 전역을 휩쓸던 초코파이와 쌕쌕,봉봉같은 캔음료는 몇년전만큼 찾기가 쉽지 않았다.대신 최근에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고있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노점과 옥내점이 공존하는 구조였지만 간판이나 모습이 꼭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케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컨테이너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중국 지린성 무역발전협회 우수리스크 지점’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러시아에한번 들어오면 한달이상 머물러야 하는 중국상인들에게 싼 값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기숙사였다. 취재팀과 통역이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갑자기 “한국분이예요?”하며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가죽 의복 장사를 하는 조선족 양성학(梁成學·40)씨였다.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양씨는 “여기 상인 80%가 조선족”이라고 귀띔해줬다.그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가죽옷은 잘 안팔린다”며 “대신 한벌에 150루블 하는 T셔츠가 주력상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불이행) 선언 이후 러시아 국민소득이 급락하면서 이곳도 타격을 입었다. 옌벤(延邊)출신의 직물상인 신영호씨(43)는 “7달전 친구한테서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장사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신씨는 “그래도 얼마전 러시아 여성을 점원으로 고용한 뒤로는 말이 조금통해서 벌이가 나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단층 옥내점인 하얼빈 상품판매점에서는 TV 장식대에 ‘유즈나야 코레아(남한) 80달러’란 꼬리표가 붙여져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왠지 허술해 보이기도 해서 “정말 한국산이냐”고 캐물었더니 한족 점원은 “사실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털어놓은 뒤 “잘 팔릴까 해서 그렇게 썼다”며 겸연쩍어했다. 5년전부터 하얼빈 상품점에 근무했다는 조선족 김모씨(43세)는 “지금은 불경기지만 지난 93∼95년 여기서 큰 돈을 번 조선족들도 많았다”며 “중국에서도 못 본 물건이 여기는 있을 정도로 구색이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시장의 연혁과 앞으로의 계획등을 취재하기 위해 시장 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관리인격인 제 1부소장이 발레리 쉐크,우리 성(性)으로 서(徐)씨인 고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서 부소장은 다소 서툴지만 분명한 우리말로 “나도 고려인입니다”라고 밝혔다.우수리 시장은 상인도 조선족,관리인도 고려인이었다. 결국 중국인 시장이 아니라 한국인 시장인 셈이다. 서씨는 “현재 이곳의 정식 등록상인은 750명이지만 여름에는 1,500여명까지 늘어난다”면서 “지금도 주말이 되면 러시아 상인까지 들어와 상인 수는 90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점의 경우,상인과 손님 모두가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고생이심하다”며 “곧 건물을 신축해 시장을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중 국경무역의 상징인 우수리시장은 우리에게도 기회의 장(場)이다.중국 현지공장에서 값 싸게 생산한 물품이라면 이곳을 통해 극동 러시아의교두보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oosing@. * 고려인학과장 한국어 완벽 구사.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극동 러시아의 양대축인하바로프스크에도 한국어는 낯설지 않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는 아무런 현판도 붙어있지 않아취재반이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한국어학과가 있는 2층 복도에 들어서니 고려인인 임 발렌치나 한국어학과장이 취재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반은 그녀의 완벽한 우리말에 잠시 놀랐다.북한식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단어 선택과 문장 표현이 완벽에 가까왔다.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다닌 덕택이었다.그녀의 부모는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의 한국어학과 재학생은 1학년 18명,2학년 19명 등 5개학년(러시아대학은 5년제)에 걸쳐 모두 69명이다. 한 학년 재학생이 평균 14명으로 사범대에서 학생수가 가장 적다. 사범대에서 인기가 최고로 좋은 학과는 일본어과.한 학년 재학생이 35명수준이다. 임 교수는 “한국의 IMF사태로 최근 졸업생들이 한국어를 활용할 수 있는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경제난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있지만,일부에서는자동차나 가전제품같은 물건은 계속 갖다 팔면서 사무실은 철수하느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취재반은 1,2학년생들의 수업을 지켜봤다. 대부분 고려인이겠거니 하던 취재팀의 예상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여지없이 깨졌다. 슬라브족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고려인처럼 보여 말을 건네보면 절반은 야쿠트족이었다. 임교수는 “69명중 고려인은 23명뿐”이라고 말했다.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도착하기 앞서 들렀던 하바로프스크 한국어교육원(교육부 산하기관)의 석윤균(石允均)원장도 “교육생 대부분이 슬라브족”이라고 말했다.이제 우리말도 국제화됐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리말 실력은 저학년임을 감안해도 기대 이하였다. 국민학교 수준의 교과서였지만 제대로 읽는 학생들이 없었다.임교수는 “교수들도 한국에 유학해보지도 못하고 교단에 서니 학생들 실력이 이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1학년 수업중이던 올가 비예트로스카야 교수는 “지난 97년 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바로 교단에 섰다”고 실토했다.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2학년인 김 나타샤는 “한국어를 쓸 수 있는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 김명국기자.
  • [시베리아 대탐방](7)블라디보스토크 국립 극동대 한국학대학

    [블라디보스토크 특별취재반] 외국에 한국관련 학과들만 모은 단과대학이있을까.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학 단과대학이 바로 냉전시대 우리의 오랜 적대국이었던 러시아,그것도 군항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 극동대에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23일 취재팀은 극동대 한국학 대학을 방문했다.한국학대학은극동대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빅토르 코제미아코 부학장이 유창한 우리말로 취재팀을 반겼다.그는 자신이 이 대학 출신이며 춘천 한림대에 교환교수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다.95년에는 북한을 방문,평양과 원산,남포,나진,금강산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대와 한국학의 인연은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899년 극동대 동양대 한국어학과로 출발했으나 30년대 스탈린의 소수민족 억압정책으로 동양대학은 폐쇄되고 직원 일부는 숙청됐다.75년 한국어학과가 다시 생겨나 5명의 학생을 모집했다.부학장도 이 때 입학했다.이후 94년 한국어문학과와 한국역사학과,한국경제학과 등 3개학과로 지금의 틀을 갖춘한국학부가발족했고 95년에는 한국학대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학대학에는 현재 250명이 수학하고 있으며 매년 50∼60명의 신입생을뽑는다.어학실습실에는 한국 위성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단과대 부설 도서관에는 7,000여권의 한국어 교재가 잘 정리돼 있었다.하바로브스크나 사할린의 사범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한국어 교재도 바로 이곳 극동대 한국학대학에서 만든 것이다. 한국학대학에는 태권도 전용 연습장도 설치돼 있다.경희대 출신의 한국인사범이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면서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또 한국 전통춤 동아리에도 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인터넷실은 특히 눈에 들어왔다.러시아에서 이처럼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수 있는 곳이 몇군데 되지 않기때문이다.학생들은 삼성전자에서 기증한 PC로한국의 주요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한국어 실력과 한국에 대한 지식을 쌓고있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로만 메신그씨도 2년전에 이 대학 한국경제학과를졸업,학교를 떠났지만 바로 이 인터넷 때문에 학교에드나들고 있었다.그는98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고려대 어학당에서 6개월 공부한 뒤다시 6개월 동안 서울의 러시아전문 바이칼 여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우리말을 스승인 부학장보다 잘하는 듯 보였다. 한국학대학의 또 다른 특징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밀도있게 가르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학생들은 졸업후 영어통역으로도 활동할수 있을 정도다. 부학장은 “학생들이 졸업한 뒤 봉급수준이 낮은 교수가 되기보다는 한국등 외국의 회사나 외교공관에 취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러나 “한국기업들이 IMF사태를 겪으면서 러시아내 지사를 속속 철수하고 있어 학생들의진로가 다소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학대학의 교수진은 모두 20명.이 가운데 경기대 김정오 교수 등 3명은한국에서 온 교환교수다.부학장은 그러나 “한국교수들이 이쪽으로 더 많이파견왔으면 한다”며 “회화를 가르칠 수 있는 3명 정도의 한국인 교수가 더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현재 극동대 한국학대학은 두가지 장기 과제를추진하고 있다.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한국어 관련 자료를 수집,보관,열람할 수 있는조직인 ‘한국어 은행’의 설치를 추진중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뱅크오브 잉글리쉬(Bank of English)’를 모델로 삼고 있다.이와함께 ‘한국 현대사 연구소’의 설립도 검토중이다.아울러 이 대학 교수들은 이미 한국어-한자-영어-러시아어 등 4개국어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전자 사전’편찬작업에 들어가 이미 상당부분 완성했다. 부학장은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학을 연구하기 가장 좋은 지리적 이점을갖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이 대학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김명국기자 oosing@. * 우수리스크 극동 최대 고려인촌. [우수리스크 특별취재반] 우수리스크는 극동지역에서도 고려인(까레이스키·한국출신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약 1만3,000명의 고려인이거주하고 있다. 우수리스크에 고려인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생활고를 겪던 한반도 북부의 주민들이 1862년부터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 춥지 않아 농사 짓기도 괜찮은데다 중국과 가까워 장사하기도 좋았기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의 주택협회와 새마을운동중앙본부,고합그룹이 인근에 농장을 갖고 있다. 현재 우수리스크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출신이 95%,사할린 출신이 5%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마을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사라졌다가 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복구됐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의 이 로베르트 아나톨리비예치 회장은 “스탈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인지 예전에는 고려인임을 나타내기를 싫어했다”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야 고려인 단체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모국을 잊어버릴만한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아직도 모국의 끈을 놓지 않고있다. 한글학교를 세워 고려인 3,4세들에게 한글과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도 꼭 지킨다. 한글학교 김문자 부회장은 “명절 전날 가족들이 모여 유쾌하게 어울리지만젊은이들은 잘 모이지 않는다”며 “이들은 조국을 다 잊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수리스크에는 또 연해주재생기금이란 고려인단체도 있다.고합그룹이 후원하는 이 단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주를 돕고 있다.요즘도 중앙아시아고려인 3,000여명이 여름내 이곳 농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겨울에 돌아가곤한다.북한인들도 연해주재생기금의 초청을 받아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 취재팀은 평양출신 북한 외화벌이꾼 신상현(40)씨와 려국현(36)씨를 만났다. 신씨는 “지난 5월 10명이 입국해 두명은 여기서,나머지는 이곳 산하 농장서일하고 있다”며 “1만달러를 벌러 왔는데 잘 안된다”고 걱정했다. 그들은 취재진과의 대화나 사진촬영에도 자연스레 응했다.하지만 “아무뜻없이 점심식사나 대접하겠다”는 취재팀의 제의에는 “할 일이 많다”며 황망히 자리를 떴다.
  • 안중근의사 순국 90주기/ ‘만주일일신문’서 본 최후의 날

    최근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서 안 의사의 ‘최후’에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의사연구가인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이지난 76년 일본에서 입수,공개한 ‘만주일일신문’(1910.3.27)의 ‘사형집행기’는 간접취재한 것이긴 하나 안 의사 형집행 당일의 기록이 별무한 상황에서 유익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다음은 이 신문의 보도를 통해 안의사 ‘최후의 날’을 재구성한 것이다. 191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처단한 안 의사는 체포된 후 여섯 차례의 재판 끝에 이듬해 2월 1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사형선고를 받았다.안 의사는 “비굴하게 살아남는 것 보다는 깨끗하게 죽음을 택하겠다”며 항소를 포기했다.형집행은 3월 26일,의거일로부터 152일째되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 뤼순감옥에는 봄비가 내렸다.형 집행시각은 오전 10시,장소는 뤼순감옥내 형장이었다.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안 의사는 고향에서 보내온 옷으로 갈아입고 간수 4명의 호위를 받으며 형장으로 향했다.이날 안 의사의 복장은 조선명주로 만든 흰 웃저고리,검정색 비단바지에 흰 두루마기 차림이었다.흑백으로 대비된 옷차림은 몇 분 후 명(明)에서 암(暗)으로 바뀌는 형인(刑人)을 상징하는듯 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잠시후 검사,전옥(典獄,교도소장),통역,서기 등이 교수대 전면에 있는 검시실에 도착하자 교수대 옆 준비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 의사가 끌려나왔다. 교도소장이 “본년 2월 14일 재판언도 확정명령에 의해 사형을 집행한다”고하자 통역이 이를 통역하였고 안 의사는 이에 대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도소장이 다시 “유언이 있느냐”고 묻자 안 의사는 “유언할 말은 없으나단지 내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므로 내가 죽은 후 한일양국이 일치 단결,동양평화를 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때 간수는 종이 두 장을 접어 안의사의 눈을 가리고 그 위에 다시 흰 베를 둘렀다.안 의사는 수분간 묵도를 올린 후 간수의 부축으로 교수대에 올랐다.곧이어 형이 집행됐고 10시 15분경 안 의사는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형집행에는 불과 11분이 걸렸다. 사형수의 유해는 보통 나무통에 넣는 것이 상례인데 안 의사 용으로 별도의소나무 침관(寢棺)이 제작됐다. 시신을 담은 관 위에 백의(白衣)를 두른 뒤관을 감옥안 교회당으로 옮기고는 안 의사가 최후의 순간까지 가슴에 품고있던 그리스도상을 관 양쪽에 걸어놓았다.교도소측은 우덕순 등 거사 동지 3명에게 마지막 고별기회를 주었는데 이들은 천주교신자가 아니어서 한국식으로 재배하고 모두 흐느꼈다.안 의사의 유해는 이날 오후 빗속에서 감옥내 공동묘지로 옮겨져 매장됐다. 정운현기자 jwh59@. *안중근 의사 연구현황. 국내 학계의 안중근 의사 연구는 아직 불모지 상태라고 할 수 있다.박사학위 논문 한 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지난 93년 한국 외국어대에서 ‘안중근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일고(一考)-그의 군주관과 동양평화론을 중심으로’라는 석사학위 논문 한 편이 나왔을 뿐이다.지난해 인하대 윤병석 교수가 펴낸 ‘안중근전기전집’이나 출판인 이기웅씨(열화당 사장)의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등은 모두 연구서라기 보다는 자료집성격이 짙다.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 원장이 거의 유일하게 수 십년째 안의사 관련 자료수집과 연구를 해오고 있을 뿐이다. 현재 국내 역사학계에서 안 의사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는 약 20여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 이들 가운데 안 의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없고 자기 분야 가운데서 안 의사 부분을 다루고 있는 정도다. 반면 해외에서는 연구자는 물론 연구활동도 왕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96년 일본인 학자 20여명이 중심이 돼 ‘안중근연구회’를공식 발족했다.회장인 가노 다쿠미(鹿野琢見)변호사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수감시절 간수 헌병을 지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의 후손이다. 중국 조선족동포들의 연구열기도 뜨겁다. 지난 92년 하얼빈시에서는 ‘중국 흑룡강성 안중근연구회’(회장 김성배)가 결성됐다.이 연구회는 조선족 학자·지식인 9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북한의 안 의사에 대한 연구실태는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북한당국은 80년대부터 유해발굴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문제아가 인터넷·영어박사 됐어요”

    “공부라면 지겨워하며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렸던 제가 영어와 워드,인터넷검색 등에 흥미를 느끼며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춘천신촌중 3반 송대성군)”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전국 12개 소년원에 어학실,컴퓨터 교육실을 설치한이후 김정길(金正吉) 법무부 장관 앞으로 감사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영어회화와 컴퓨터를 익히게 된 원생들이 편지 또는 인터넷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송군은 법무부 인터넷에 띄운 E메일에서 “이제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컴퓨터도 열심히 해 인터넷도 잘하게 됐다”며 “부모의 이혼과 의붓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 방황해 온 저에겐 엄청난 변화”라며 고마워했다.비행청소년들이 영어와 인터넷을 배울수 있게 된 것은 김 장관이 소년사범은 비행에 상응하는 징벌보다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며 교화를 강조해 왔기 때문. 법무부는 지난해 정보통신부의 정보화예산 등을 끌어들여 소년원에 최첨단어학실습실과 컴퓨터교육실을 완비하고 자원봉사자와 원어민 강사들을 초빙,학생들의 학업욕구를 충족시켜 줬다.또 원생들에게 영어사전을 한 권씩 보내주었다. 대전웅변협회 주최 영어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원촌직업학교 영어회화반 조우상군은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과 원어민 강사들의 성실한 지도로팝송을 읊조리고 영어로 말을 걸고 하는 사이에 어느덧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영어회화수업이 흥미있고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변했다”며 “몇몇 친구들은 영어 통역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고 전했다. 박종열(朴淙烈) 보호국장은 “지난해 연말에는 50여명의 원생들이 공부가끝날 때까지 퇴소를 늦춰 달라고 할 정도로 교육효과가 높았다”며 “올 하반기에는 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하고 중도 퇴소하는 학생들이 산업인력관리공단,직업훈련원 등에서 더 배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6) 정보통신교육원

    일상적인 편지 배달만을 생각하고 최근 우체국을 찾은 박모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인터넷,디지털,전자상거래….디지털혁명의 한 가운데 우체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우체국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우체국이 아니다.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혁명을 주도하는 정보화의 첨병(尖兵)역할을 하고 있다.정보통신부의 핵심영역인 우정업무는 이제 완전히 정보화됐다.그 주역은 단연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www.icoti.go.kr)이다. 교육원은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긴 공무원 교육기관이다.구한말 우정 역사가 시작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충남 천안시 유량동 태조산 기슭에 위치한 교육원에서 고리타분한‘옛그림자’는 찾기 어렵다.정보화의 첨병을 양성하는 보루답게 최첨단 기자재들로 넘쳐난다.6개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300여 좌석의 컨벤션룸까지갖추고 있어 웬만한 컨벤션센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교육원이 서울 용산구 원효로 옛 둥지의 70여년 세월을 마감하고 천안 신청사로 옮겨온 것은 지난해 5월.동시에 800명이 합숙,교육할 수 있는 시설을갖추고 있는 천안교육원을 거쳐간 정보통신부 공무원은 지난해만 모두 1만여명이 넘는다.올해는 다른 부처 공직자와 일반인 4,500여명을 포함,모두 1만9,000여명에 대해 살아 있는 정보화교육과 함께 우편,금융,정보통신,전파 등정보통신 업무의 전문성을 심화시키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4만여명의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에게 있어서 교육원은 공직생활중 숱하게 드나들어 친숙할 수밖에 없는 ‘필수코스’ 가운데 하나다.특히 간부가 되기위해서는 우정,금융,경영,정보통신(정보화,전파) 등 4개 분야를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최소한 4주 이상을 교육원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원의 정보화교육은 다른 교육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치밀하게 이뤄진다.모든 교육생이 PC를 접하도록 야간 전산실습 시간을 편성해 집중교육을 시키는가 하면,3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에대처할 수 있도록 ‘디지털 포스트’ 과정을 개설해 운영중이다.정보화교육과정이 우수하기 때문에 1주 동안의 합숙교육이 끝난 뒤 정보검색사 자격증을100% 취득한다.정통부 간부진들이 ‘서류없는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원은 정보화교육의 산실답게 최근들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이른바 ‘원격교육’이다.직접 교육원에 오지 않고 근무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교육을 받는 사이버 원격교육을 올 7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공무원 교육기관 가운데는 최초의 시도다. 구영보(具永甫)교육원장은 “인터넷,디지털 등과 관련,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일정시간을 정해 교육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면서 “2∼3년내 원격교육의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안 박홍환기자 stinge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