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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최대 강릉단오제 2일 개막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천년 축제’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가 2~9일 강릉 남대천 단오장에서 펼쳐진다. 강릉 단오제위원회는 영신행차에 사상 최대 규모인 30개 팀 6000여명이 참여해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예년보다 행사 규모를 확대하고 변화를 주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본행사가 시작되는 2일 창포머리감기를 비롯해 전시·체험·공연 등 프로그램만 10개 분야 72개다. 하이라이트는 4일 대관령 국사성황과 여성황을 단오장 굿당으로 모시는, 홍제동 옛 명주초교에서 남대천 단오장까지 펼쳐지는 영신행차다. 30개 시민팀이 참가해 경연을 펼친다. 축제 기간 동안 분위기 확산을 위해 공공기관과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단오등(燈) 걸기도 실시된다. 또 10명으로 구성된 단오서포터스를 운영, 단오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주요 행사를 온라인상에서 홍보하는 등 축제 마케팅을 주도한다. 외지 관람객을 대상으로 1인당 5만원씩의 참가금을 지원하는 ‘공짜 단오투어단’도 운영한다. 이 밖에 인터넷 커뮤니티도 개설, 관광객들끼리 강릉단오제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도록 할 예정. 단오제 일정 및 주요 행사는 물론 맛집과 숙박 정보, 생생한 관람 후기 등을 나눈다. 외국 군인과 장교, 그 가족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 강릉단오제의 모든 것을 홍보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공군 블랙이글스의 에어쇼 등 다양한 볼거리도 늘렸다. 특히 수리마당 공연장에 수화 통역 인력을 배치하는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차별 없는 축제가 되도록 했다. 김동찬 (사)강릉단오제위원회 상임이사는 “영신행차 퍼레이드가 이번 축제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배심원 12명·통역 5명 최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우리 해군에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재판은 국내 첫 해적 재판이라는 것 외에도 여러 진기록을 남겼다. 27일 부산지법 등에 따르면 해적들은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첫 외국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민참여재판은 보통 하루 만에 끝났고 길어야 이틀을 넘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5일간이나 열렸다. 해적 5명 가운데 압둘라 후세인 마카무드는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해 혼자 일반 재판을 받게 됐는데, 이처럼 공범이 각각 다른 형태로 재판을 받는 것도 처음이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은 최다 9명까지 구성할 수 있고, 예비 배심원을 5명까지 둘 수 있다. 지금까지는 예비 배심원을 1명만 뒀으나 이번에는 ‘장기 레이스’에 대비해 예비 배심원을 3명이나 뒀다. 통역인 수도 단일 재판으로는 가장 많았다. 해적들이 대부분 이슬람권에서 널리 쓰는 아랍어도 구사할 수 없는 문맹 수준인 데다 국내에는 소말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한국어-영어-소말리아어’ 식으로 순차 통역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 통역인 3명과 소말리아어 통역인 2명 등 모두 5명이 이번 재판에 매달려야 했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동시통역을 시도하다 보니 피고인들에게 헤드폰을 끼도록 했다. 또 세계적인 관심을 고려해 다른 강력 사건 피고인들과는 달리 수갑 등 계구를 사용하지 않았고, 변호인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피고인석과 변호인석을 분리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공범이 있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별로 국선 변호인이 선임된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해적들은 1명당 국선 변호인 2명의 조력을 받았다. 부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46)의 몇몇 작품은 영문으로 번역됐지만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58)에게는 낯설었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 장편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 몇 작품 역시 정지아의 독서 편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맞춘 듯 서로 꼭 들어맞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낮고 겸손한 시선이 하나였고, 생명을 경외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물질적 곤궁함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눅진한 흙냄새 풍기는 농사꾼이자 치열하게 원고지 붙잡고 씨름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언어의 다름, 경계의 차이를 넘어 둘을 스스럼없이 만나게 했다. 정지아, 한사오궁이 26일 서울 종로1가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지난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계기가 됐다. 1시간 30분에 걸친 둘의 대화는 유쾌했고, 진지했다.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선험적, 지성적, 비판적 통찰이 질문으로, 대답으로 오갔다. 둘은 통역을 제쳐 두고 만나자마자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지아는 “부모님이 모두 남한 사회가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이야기들은 남한에서는 금기시된다.”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이 변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신념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고 말을 건넸다. 한사오궁은 “오오, 그런가. 그러면 당신은 어떤가.”라고 슬쩍 되물었다. 정지아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내가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눙치더니 이내 “사회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을 고쳤다. 이쯤에서부터 통역이 끼어들었다. 대화의 속도는 조금 더뎌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묵직해졌다. 한사오궁은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전 이데올로기 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좌파와 우파, 돈을 벌지 못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뉠 뿐”이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정지아는 “기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이 시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말을 받은 뒤 “한 선생님은 돈을 버는 좌파인가요?”라고 한 걸음 더 내쳤다. 그는 “100만~200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돈을 벌겠지만 나는 그저 10만~20만권 팔리는 정도”라면서 “그나마 중국 출판 시장이 크니까 겨우 살아가게는 한다.”고 받았다. 엄살에 가깝다.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다. 현재 하이난성작가협회 주석이며 모옌(莫言), 위화(余華)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그는 이 대목이 대화에 언급되자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믿지 말라.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계량해서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또한 엄살에 가깝다. ●시골생활 예찬론자끼리 만나다 정지아는 “한 선생님의 포럼 발제문 ‘수요와 욕구’를 읽고 탐욕에 대한 경계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10여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사신다고 하는데 저도 최근 시골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나. 고향인가.”라는 한사오궁의 질문에 정지아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의 풍경이 핏줄기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여러 욕망들을 버리기 쉽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야채 키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절로 사라진다. 쾌적하고 평화롭다.”고 답했다. 한사오궁은 “맑은 날 열심히 농사짓고, 비오는 날 책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이라고 했다(청경우독·晴耕雨讀). 손과 발, 머리를 모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특히 도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맞장구쳤다.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은 루쉰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중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경이 된 후난(湖南)성 바시동(八溪洞)은 문화대혁명 시절 그가 청년 지식인으로 하방을 간 곳으로 11년 전부터 그곳에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내며 농사짓는 곳이다. 한사오궁은 바시동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작가로서 실존적 고민을 나누다 정지아는 “근대문학의 위기, 시장의 변화 등으로 작가들이 괴로운 시절이다.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사오궁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떡하겠나. 계속 밀고 나가고, 그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스 신화를 보면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가 떨어진 돌을 다시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가 있지 않나. 사람의 인생도 똑같다.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복습 철저’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이지만 정지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끝없이 써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향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가 2년 전부터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희망은 살아있는 것이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한사오궁은 “맞다. 나빠도 그 범위 안에서 나빠지고, 좋아도 그 범위 안에서 좋아진다. 욕망도 절망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위로하며 서로 희망을 나눴다. 정지아는 우직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틀어쥐며 작품 활동을 하는, 문단에 몇 남지 않은 작가다. ‘빨치산의 딸’뿐 아니라 ‘행복’, ‘봄빛’, ‘숙자 언니’ 등 자본주의사회에 남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습과 내면을 핍진하게 풀어가는 작품을 주로 썼다. 리얼리스트 정지아 역시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오궁은 “정 선생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아쉽긴 하지만 영어로 된 책을 찾아 읽어 보겠다.”면서 “다음에 중국 오시면 꼭 연락해 달라. 내가 직접 마중나가고 또 직접 기른 토마토와 야채도 맛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아가 활짝 웃으며 “혹시 노벨문학상 받은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인가.”라고 묻자 한사오궁은 “노벨문학상보다 직접 가꾼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고 맞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한사오궁은 정말 토마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지아는 각자 직접 가꾼 고추와 토마토를 나누자고 했다. 땅 일구는 이들은 보통의 도시 사람보다 조금은 더 욕망을 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두 작가가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사오궁은… 한사오궁은 중국 후난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대표적 문예지 ‘줘자’(作家)로 등단했다. ‘뿌리 찾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작품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형식 등 중국의 전통을 재현하려 한다. ‘아빠, 아빠, 아빠’(爸爸爸), ‘유혹’(誘惑), ‘빈 성’(空城), ‘열렬한 책읽기’ 등의 작품이 있다. 하이난(海南)성 작가협회 주석이지만 후난성 바시동에서 살며 가을걷이가 마무리돼야 하이난다오로 돌아갈 정도로 시골 생활에 흠뻑 빠져 있다. 첫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興建)은 중국 출신 프랑스인이다. ■ 정지아는… 정지아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실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1990년 실천문학에서 펴내며 등단했다. 소설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됐다. 작가 자신도 3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는 등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돼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가족사적인 배경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현대사의 중심과 주변에서 역사를 직조했던 개인들의 상처와 희망, 불안 등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소설상 등을 받았다. 올 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연세(年貰) 200만원’에 집을 얻고 낮에는 밭 가꾸고 저녁에는 글쓰는 단출하고 정갈한 삶을 시작했다.
  • [함께 뛰는 대기업·중소기업] SK브로드밴드, ‘행복한 나눔·참여·소통’ 프로그램 추진

    [함께 뛰는 대기업·중소기업] SK브로드밴드, ‘행복한 나눔·참여·소통’ 프로그램 추진

    SK브로드밴드는 ‘행복한 나눔’, ‘행복한 참여’, ‘행복한 소통’을 사회공헌 활동의 3대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기업으로서 인터넷 중독 등 역기능을 해소하고 건강한 정보 문화를 확산하는 ‘해피인터넷’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해피인터넷은 유익한 정보와 재미를 제공하는 인터넷 환경 및 정보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SK브로드밴드의 핵심 사회공헌 활동이다. SK브로드밴드는 2009년 4월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한 후 지난해 40명의 임직원이 해피인터넷 멘토로 나서고 있다. 멘토들은 인터넷행복학교에서 청소년 대상 멘토링 자원봉사를 하는 등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치료에 앞장서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106 수화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종아동 전문기관과 협력해 ‘실종 아동 및 노인 찾기’ 공익 캠페인도 전개해 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2008년 9월 사내 자원봉사단을 발족해 ‘사랑의 집짓기 운동’, 김장·연탄 나눔 등 소외계층에도 따듯한 온기를 전해주는 ‘행복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전국에 IPTV 공부방 60곳을 열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최초의 해적 재판’ 시작… 국내외 100여개 언론사 취재 경쟁

    ‘최초의 해적 재판’ 시작… 국내외 100여개 언론사 취재 경쟁

    삼호주얼리호 납치범인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첫 재판이 23일 오전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2008년 이후 5일간에 걸쳐 재판이 열리기는 처음이다.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례적으로 박흥대 부산지법원장도 방청석에서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또 아랍권역의 알 자지라 방송 등 국내외 100여개 언론사의 취재기자와 카메라 PD 등이 취재 경쟁에 나섰다. 오전 11시 40분쯤 배심원 12명(예비 3명 포함)과 검사, 변호사, 통역진이 먼저 입석한 뒤 재판장인 김진석 부장판사가 피고인 입장 지시를 했다. 교도관의 안내로 푸른색 수의를 입은 해적 피고인 4명이 법정으로 들어와 차례로 자신들의 변론을 맡은 국선 변호인 뒷좌석에 앉았다. 석해균 선장에게 총을 난사해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 마호메드 아라이(23·어부)와 압둘라 알리(21·전직 군인), 아부카드 애맨 알리(24·전직 군인), 아울 브랄라트(19·학생) 등 4명이다. 붙잡힌 해적 중 압둘라 세룸(21·요리사)은 국민참여 재판을 거부함에 따라 6월 1일부터 혼자 일반재판을 받게 돼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해적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재판장이 먼저 “사건의 중요성과 공공의 이익 등을 위해 피고인들의 사진 촬영을 허용한다.”면서 이례적으로 30초간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본격적인 인정신문에 앞서 아부카드 애맨 알리에 대한 이름을 정정하는 작은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국어 통역이 “아부카드 애맨 알리라는 이름이 맞느냐.”고 재판장에게 묻자 재판장은 얼마간 확인 후 “압디카더 이난 알리가 현지식 이름”이라고 확인했다. 또 아부카드 애맨 알리의 변호인이 발언권을 요청하더니 “형사소송법상 부산지법이 이번 사건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해적들을 우리나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가 지켜졌다고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위법하게 이송이 이뤄진 만큼 부산지법이 피고인을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우리 법원에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 관할권이 있는 점에 대해서는 (유무죄를) 선고할 때 함께 선고하겠다.”고 말한 뒤 심리를 계속 진행했다. 오후1시 40분부터 속개된 재판에서는 재판장이 한국어로 말하면 영어 통역이 영어로 소말리아어 통역에게 전달하고, 소말리아어 통역이 이를 다시 소말리어로 피고인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일반 국내 재판 진행 때보다 평균 6~7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선박을 납치하고, 금품을 빼앗은 뒤 배를 소말리아로 운항하도록 하면서 선사 측에 거액을 몸값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청해부대원과 석 선장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또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우는 등 8가지 범죄행위를 함으로써 (해상)강도살인미수를 비롯한 5가지 혐의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라이의 변호인은 “아라이가 청해부대원은 물론 석 선장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덴만 여명작전 때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운 일이 없다.”며 핵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한편 이번 재판 중에 배심원단은 해적들에게 최대 사형까지 평결할 수 있다. 확인된 혐의만 적용되더라도 해적들에게는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최고 무기징역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9일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개막식을 한국 속담으로 시작했다. 박 의장은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인 세계 입법부 수장들에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쉽게 풀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각국의 공조를 강조했다. ●국회 ‘중앙홀’에 모인 의회 수장들 앞서 오전 8시 30분 개막식을 앞두고 박 의장은 8시부터 국회의사당 내 정현문 앞에서 각국 의회 정상들을 직접 맞았다. 의회 정상들은 레드카펫을 따라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말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을 벌였던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공식 회의장이 마련됐다. 푸른색으로 장식된 회의장에는 정중앙의 대형 테이블에 각국 의회 대표들의 자리가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안쪽 바닥에는 태극을 형상화한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엠블럼이 새겨졌고, 회의는 9개국 언어로 동시통역됐다. 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통 보안·경비가 펼쳐졌다. 국회 외곽 및 경내 경비를 위해 회의 기간 4500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다. 의장단의 근접 경호는 서울·부산·경기·울산 등 지방경찰청에서 파견한 외빈경호팀이 맡았다. 회의에 참석한 25개 의장단은 서울 하얏트·롯데·신라·프라자 등 4개의 지정호텔에 묵는다. 호텔에서 국회로 이동할 때는 현대차가 무상 제공한 ‘에쿠스 VS 380’을 이용했다. 캐나다 최초 한국계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 의원은 회의 도중 “한국 태생으로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와 감회가 새롭다.”면서 “한국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마틴 의원은 “1972년 떠난 한국을 와보니 많이 달라졌다.”면서 “최근 캐나다 6·25 참전용사와도 한국을 방문했는데 세계가 함께하고 국민 의지가 모였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목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각국 입법 수장들의 ‘한류’ 체험 회의에 참석한 의장단은 국회 내 전통 한옥인 ‘사랑재’에서 공식 오찬을 가졌다. 전복 잡채와 인삼닭죽, 삼색전, 한우 갈비구이, 떡, 한과 등의 메뉴에 복분자주를 곁들여 올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천일염이 선물로 전달됐다. 사랑재에서는 한복을 입은 직원들이 음식을 날랐고 가야금 앙상블그룹의 가야금 연주가 고즈넉하게 울려퍼졌다. 박 의장은 “한옥에서 한식을 먹으며 한류에 듬뿍 젖어달라.”면서 “또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한류의 바람을 세계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장의 건배제의로 참석자들은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혔다. 저녁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영 만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은 전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나라가 됐다.”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의장들의 부인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의장 부인들은 오전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서 전통 자수 작품을 둘러보며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직접 수를 놓는 체험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한남동 리움박물관에서 고미술품을 감상한 뒤 국회의장공관으로 이동해 전통 가정 문화를 체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고시&취업플러스]

    ●보건복지인력개발원 정규직 채용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일반직 6급 4명. 일반행정분야(3명)는 기관평가·기획업무, 예산·회계업무, 인사업무 담당. 교육행정분야(1명)는 교육기획·운영업무. 응시연령 및 전공 제한 없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 지원 가능. 일반행정분야는 업무 관련 3년 이상 유경험자 우대. 응시원서는 개발원 홈페이지(www.kohi.or.kr) 및 나라일터(gojobs.mopas.go.kr)에서 내려받아 27일까지 우편(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 643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운영지원부) 또는 방문 제출. 운영지원부 (043) 710-9132.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국토해양부 계약직 모집 국토해양부 행정자료실 사서 보조원 1명. 간행물 및 도서출납 관리업무 담당. 연령제한 없이 전문대학 도서관 관련 학과 졸업자(준사서 이상). 응시원서는 부처 홈페이지(www.mltm.go.kr) 및 나라일터에서 내려받아 23일까지 우편(경기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4동 국토해양부 정보화통계담당관실) 또는 방문 제출. 정보화통계담당관실 (02) 2110-6164~5. ●부산진 우체국 집배원 채용 상시계약 집배원 1명. 우편물 수집 및 배달 관련 업무. 18세 이상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부산인 자. 제1종 또는 제2종 운전면허 소지자. 정보화 자격증 소지자, 우편물 배달 경력자, 저소득층 우대. 응시원서는 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www.koreapost.go.kr) 및 나라일터에서 내려받아 25일까지 우편(부산 진구 가야대로 579 부산진우체국 지원과 인사담당) 또는 방문 제출. 지원과 (051) 810-0852. ●창원지검 방호원 특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방호원(기능 10급) 1명. 18세 이상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경남인 자. 무술유단자, 취업 보호·지원대상자 우대. 응시원서는 대검찰청 홈페이지(www.spo.go.kr) 및 나라일터에서 내려받아 31일까지 방문(경남 진주시 동진로 77 진주지청 1층 총무계) 제출. 총무계 (055) 760-4543~6. ●국립전주박물관 일본어 통역 채용 기간제 일본어 통역사 1명. 안내 데스크 운영 및 관람객 안내 업무. 20세 이상으로 남자는 군필 또는 면제자. 일본어 관련 학과 졸업자, 일본어 관련 인증서·자격증 소지자. 박물관·미술관 등 관련 기관 근무 경력자 우대. 응시원서는 박물관 홈페이지(http://jeonju.museum.go.kr) 및 나라일터에서 내려받아 23일까지 방문(전북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 전주박물관 기획운영과) 제출. 기획운영과 (063) 220-1018.
  • [29회 교정대상 수상자] │대상│ 전구호 서울구치소 교위

    [29회 교정대상 수상자] │대상│ 전구호 서울구치소 교위

    “이 일이 제가 맡은 일인 이상, 걸어온 길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현장을 충실히 지켜갈 겁니다.” 제29회 교정대상 대상을 수상한 전구호(55) 서울구치소 교위는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힘찬 각오로 먼저 답했다. “32년 교정 생활을 하면 누구라도 나 정도는 할 것”이라며 겸손의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전 교위는 1979년부터 교정 업무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서울 영등포 지역에 살았던 그는 근처에 영등포 구치소가 있어 구치소와 교정 문화가 어색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웃 중에 교도관도 많아서 전 교위는 자연스럽게 교정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때부터 “힘들어도 해볼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어린 시절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된 지 32년, 그 기간 동안 전 교위가 수용자 교화와 재범 방지를 위해 벌인 활동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사형수들을 위해 무려 660여회 개인교화를 벌였고, 생계 유지가 곤란한 사형수 가족들을 위해 기초생활보호 수급자가 될 수 있게 돕기도 했다. 또 불우수용자를 위해 영치금 지원을 알선하고, 수형자 취업 지원도 꾸준히 해 왔다. 특히 전 교위는 중국어 회화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인 수용자 교화 등 교정 행정 세계화 부분에서 큰 활약을 했다. “초년에 일했던 영등포 구치소에는 밀수로 잡혀온 중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통역할 사람이 없어서 짧은 영어로만 대화를 하더군요. 그때 그걸 보고 중국어와 외국인 교화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전 교위는 교정 일에 반평생 넘게 몸을 바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교정 기간을 거치고 출소했던 재소자가 다시 구치소에 들어왔을 때 가장 서글프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까지 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범자를 볼 때마다 교도관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교정 제도조차도 그런 재범을 막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제도의 한계와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전 교위가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일로 가정을 일군 것은 물론이고, 교정은 이 사회를 바람직하게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도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인간의 선한 면은 보듬으면서도 범죄의 악한 면은 단죄할 수 있는 그런 교도관으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 (6)] 외래관광객 ‘미소’로 모셔오자/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 (6)] 외래관광객 ‘미소’로 모셔오자/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지난 4월의 어느 일요일,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세계 최고 공항을 만든 인천공항 사람들은 역시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영문인가 물어보니 인천공항에서 자녀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서 매장을 나오다 바닥에 떨어뜨렸단다. 아이스크림으로 얼룩진 바닥을 닦을 화장지를 구하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환경미화원을 만났는데,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자기가 치울 테니 그냥 두라고 하더란다. 그리고 오히려 알려줘서 고맙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다른 고객이 미끄러져 2차 사고의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감사의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미안함을 가졌던 지인은 환경미화원의 말 한마디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내게 일부러 전화까지 했던 것이다. 해외여행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 그런 짧은 순간의 작은 친절과 거리에서 만난 낯선 이의 미소가 한 나라의 이미지 전체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공항의 약 3만 5000명 직원 모두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가 잘못하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경직된 표정은 경직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해외출장 시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는 서양인들이 서로 편안하게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해외에서 마주치는 동양인들 간에는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조금 전까지 이방인을 환대하던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에게는 어색하게 인사말을 읊조리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외래관광객 1000만명 유치를 위한 다양한 관광 소프트웨어 개발과 지원 제도 및 정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외래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 이들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관광산업이 국가 성장동력의 한 축을 이루려면 손님을 환대할 국민적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나라의 국민은 관광객 한 명 한 명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를 안겨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우 친절하다. 카메라를 들고 서서 관광지를 배경으로 두고 두리번거리면 서슴없이 다가와 “사진 찍어 드릴까요?”하며 먼저 묻는다. 멋진 풍광에 기분 좋고, 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인심 때문에 귀국해서도 그 나라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외래관광객을 단순히 지나가는 ‘뜨내기손님’ 정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돌아가서 우리를 평가한다. 그들은 우리의 손님이자,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92만명에 달하는 외국인의 가족이고 친구들이다. 그리고 ‘언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미소’와 ‘정’을 아낌없이 퍼주기를 주저하지 말자. 언제 어디서나 1588-5644로 전화하면 3600명에 달하는 외국어 통역자원봉사자가 무료로 그 장벽을 무너뜨려 줄 것이다.
  • 친일파 송병준 후손 ‘땅찾기’ 패소

    친일파 송병준(1858~1925)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낸 2500억원대의 토지 환수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3일 송병준의 증손자 송모(66)씨가 인천 부평구 미군 부대 일대 땅 430만여㎡를 반환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등기 말소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상 귀속 조항 등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음을 전제로, 해당 부동산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송병준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친일 재산에 해당돼 국가 소유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소송 대상이 된 땅은 부평 미군 기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시지가로 따져도 가치가 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송병준의 소유였던 이 토지는 1921년 강모씨, 1922년 동모씨에게 넘어갔다가 1923년 국가 소유로 귀속됐다. 송씨는 2002년 미군 기지 반환이 결정되자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이 국가에 있음을 입증하는 구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이 위조되거나 사후에 허위 작성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땅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송병준은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 통역을 하고,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했으며,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당시 고종 황제의 퇴위를 요구하는 등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 한일 합병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자작·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총독부 중추원 고문 자리에까지 올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 이 길을 걷는다면’ 펴낸 이동미 작가

    [저자와 차 한 잔] ‘… 이 길을 걷는다면’ 펴낸 이동미 작가

    ‘서울에 대추나무 길을 아시나요.’ 일단 한 사연부터 살펴보자. ‘옛날 신당동에 자식이 없는 독지가가 살고 있었다. 전쟁통에 집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가진 돈을 다 내어 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었다(중략).골목과 골목 사이는 두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 되었다. 그 골목 끝에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던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하여 이 길을 대추나무 길이라고 했다.’ 여행작가 이동미(42)씨가 최근 펴낸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서울의 정겨운 골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냥 밋밋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이라는 테마를 놓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찾아 헤매고 있다.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충무로, 비오는 오후의 피맛골, 골목의 진수 한남동, 도심 속의 문화골목 정동길, 코리안 드림의 쪽방촌 가리봉동, 서울 같지 않은 부암동 등 낯익지만 낯설은 구석을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다. 지난 11일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저자 이씨를 만났다. 두 아이를 둔 엄마이지만 1년 반 동안 틈틈이 발품을 팔아 서울 골목길을 누볐고 그 결실로 책을 내게 됐다. 놀랍게도 그는 이번이 일곱 번째 펴내는 책이고 공저까지 합하면 20여 권에 이른다. 대부분 여행 관련 주제로 하고 있다. ‘매일 너와 이 길을~’에는 섬세한 여성의 솜씨로 보기 좋게 시와 에세이를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그가 골목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부터 골목을 좋아했습니다. 골목에는 문화가 살아 있지요. 여행 취재기자로 출발해 여행 칼럼니스트, 여행작가 협회 홍보이사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골목길과 친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목에는 사람과 정, 그리고 추억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울의 골목을 탐닉하게 된 것은 1998년 서울에서 강화도로 이사하면서였다. 서울을 떠나고 나서야 서울의 구석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골목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골목을 글로나마, 사진으로나마 남겨둬야 한다는 사명감도 앞섰다. “서울의 골목은 너무 예뻐요. 희소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지는 골목길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에게 비록 작은 목소리이지만 훈훈함과 인간적인 냄새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골목길이 계속 사라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피맛골, 공덕동 골목이 그러하다. 자연적으로 생긴 골목길은 둥근 원이지만 재개발 등 인공적인 길은 각진 ‘네모’여서 운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서울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골목길이 어디냐고 했더니 그는 “명보극장 맞은편 쪽 충무로길은 역사의 맛이 살아 있다.”고 추천했다. 신당동 뒤쪽 골목도 가볼 만하다고 덧붙인다. 강원 영월 태생인 그는 원래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한국관광공사에서 통역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행 전문가’로 전향했다. “다음번에는 지방의 골목을 순회하면서 동화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책을 펴낼 생각입니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항모서 시신 씻겨 가방에… 이슬람 장례후 추 매달아 水葬

    [빈라덴 사살 이후] 항모서 시신 씻겨 가방에… 이슬람 장례후 추 매달아 水葬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하루가 지나면서 구체적인 작전 당시 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빈 라덴의 무장저항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빈 라덴이 현장을 급습한 미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과 마주한 순간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빈 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아 총을 쏘며 미군에 저항했다는 설명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백악관의 설명이 맞다면 비무장 상태인 빈 라덴을 굳이 사살한 이유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빈 라덴의 최후의 순간에 대한 설명이 뒤집힌 이유에 대해 백악관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미 정부 당국은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요원 25명을 태운 블랙호크 헬기 4대가 파키스탄 시간으로 2일 새벽 1시 15분쯤 은신처를 급습하면서 작전은 시작됐다고 밝혔다. 빈라덴과 가족들은 3층짜리 맨션 건물 중 1~2층에 머물고 있었다. 빈라덴은 네이비실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같이 살던 한 여성을 인간 방패 삼아 AK47 자동소총을 쏘며 저항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이 여성이 빈라덴의 부인 중 한명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백악관 관계자는 “부인이 아니라 빈라덴이 비상상황에서 인간 방패로 이용하려고 데리고 있던 여성이었다.”고 정정했다고 CNN과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브레넌 보좌관은 “빈라덴은 (치졸하게도) 여성을 인간 방패로 삼는 인간이었다.”고 비난했다. 40여분의 작전 시간 중 마지막 10분 사이에 빈라덴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한방씩 맞고 즉사했다. 인간 방패로 이용된 여성과 빈라덴의 아들 한명, 연락책 남성 두명도 네이비실의 총격에 숨졌다. 반면 빈라덴의 부인과 다른 여성 한명은 부상만 당했다. 네이비실 요원들은 절명한 빈라덴의 얼굴을 확인한 뒤 들것에 실어 헬기로 날랐다. 헬기는 시신을 아라비아해 북부에서 작전 중인 미 항공모함 칼빈슨함으로 옮겼다. 항모 위에서는 간략한 이슬람식 장례절차가 진행됐다. 미군 관계자가 주관했고 현지인을 통한 아랍어 통역이 이뤄졌다. 시신은 씻긴 뒤 하얀 천으로 덮어 관 대신 가방에 담아 바닷속으로 미끄러뜨리듯 빠뜨렸다. 시신이 물에 뜨지 않도록 가방에 추를 매달았다. 미 정부 관계자는 “사망한 지 9시간 만에 수장된 셈”이라면서 “빈라덴의 시신은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빈라덴 사살에서 수장까지의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은 치밀한 준비 덕분이다. 네이비실은 빈라덴의 은신처와 닮은 모형 건물을 만들어 놓고 수차례 실전연습(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미국 측은 은신처를 발견한 뒤 습격하기까지 8개월 동안 한번도 빈라덴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빈라덴이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작전 개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라고 CNN은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미군이 빈라덴의 시신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인도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는 설도 나돈다. 이런 가운데 알카에다의 유력 이론가인 ‘아사드 알 지하드2’(온라인 필명)가 빈라덴의 사망 사실을 인정하고 복수를 다짐했다고 이슬람권 웹사이트 SITE가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국가미래 이끌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을”

    “국가미래 이끌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을”

    전쟁 통에 나라도 집안도 폐허가 됐으나 소녀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늘 눈을 반짝이던 소녀에게 당시 교장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권유했다. 이공계 전공자에게 4년 국비장학금을 지원한다는 기회를 소녀는 당당히 거머쥐었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뒤로 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55~1959년 필라델피아 소재 가톨릭 대학인 체스넛힐에서 화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곧바로 결혼, 살림과 육아에 묻혀 살았다. ●화학 전공한 덕에 인생의 물꼬 트여 하지만 운명은 그를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있도록 놔두지 않았다.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갑작스럽게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남편(고 채몽인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맡아 작은 비누 회사를 대기업으로 당당히 키워냈다.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 이야기다. 그가 화학을 택하지 않았다면 미국 유학길에 오를 일도 없었으며, 성공한 여성 기업인으로 우뚝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화학을 전공한 덕에 결정적인 순간 인생의 물꼬가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기초과학에 대한 장 회장의 사랑은 깊을 수밖에 없다. 또 선진 문물을 접한 그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기초과학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 사연이 바탕이 돼 기초과학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카이스트(KAIST)와 자연스럽게 연이 닿아 2007~10년 카이스트 이사로 활동했다. 지난 2월 카이스트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도 받아 인연은 더욱 끈끈해졌다. 애정과 신뢰는 기부로 이어졌다. 2일 장 회장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에 힘써 달라.”며 카이스트에 30억원이란 거액을 쾌척했다. 돈이 꼭 사랑의 척도는 아니지만 종종 잣대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매출 3조 7000억원으로 아직 50대 그룹 안에 이름도 못 올린 애경이 내놓은 거액은 기초과학과 카이스트에 대한 장 회장의 사랑 크기를 가늠케 한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카이스트에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장 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이 돈이 카이스트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업 환경 조성 및 복지향상에 사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젊은 인재들을 위한 장 회장의 통큰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지만 한창 중국어 공부에 빠져 있던 1994년 한국외대에 10억원을 내놓고 동시통역관인 ‘애경홀’도 지어줬다. 2000년 세운 ‘애경복지재단’ 이사장으로만 활동하며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7년에는 서울 신당동 자택을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무료 창작·전시 공간인 ‘몽인아트스페이스’로 탈바꿈시켰다. ●거창한 전달식 대신 조촐한 저녁식사 회장 직함은 달고 있지만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다. 통큰 기부가 전해진 이날도 거창한 전달식 대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식사만 가졌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4)]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4)]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외국인은 그야말로 이국인(異國人), 이방인(異邦人) 그 자체였다. 늘 낯설고 피하고 싶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심 곳곳에서, 관광지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외국인은 우리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시대의 도래. 참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신이 절로 난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상 가운데 한 가지를 꼽으라면 관광산업을 들곤 한다. 1968년에 외래 관광객 10만명을 돌파한 이래 2000년에 532만명, 2010년 880만명 등 어느 통계 수치보다 성장세가 가파르고 비약적이다. 이는 경제 발전과 함께 교통·통신·숙박시설과 같은 물적 관광 인프라를 갖추었고, 우리 국민과 관광업계,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현재 안정적 성장 단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도성장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관광산업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첫째, 우리만의 관광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발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국 방방곡곡에 수천년 전 선조들의 손길이 어려 있는 문화재들이 무수히 많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도 갖추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빌딩 숲 사이에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정원을 갖춘 고즈넉한 고궁이 있고,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과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빼어난 자연환경도 갖췄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속을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동계스포츠 체험 관광, 의료관광과 같은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를 갖춘다면 우리의 관광산업 경쟁력도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둘째, 인적·물적 관광 인프라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보면 ‘낯선 손님에게도 언제든지 사랑방을 내어주고 정성을 다해 모시는’ 친절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외국인들은 우리의 친절 문화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어 구사 가능 시민이 증가하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친절 문화를 외국 관광객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실리 위주 관광객을 위한 중저가의 숙박시설은 물론 높아진 국격에 맞춰 고궁과 조화를 이루고 우리 고유문화와 잘 어우러진 고품격 호텔을 도심에 건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부 차원의 홍보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비자제도를 완화하고, 외국인 방문객이 많은 시설에는 통역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해 외국인들의 불편을 없애는 등 관광산업 육성 정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그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관광산업 분야는 아직도 성장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를 계기로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관광산업을 도약시키기 위해 국민 모두와 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광 인프라를 확대하고, 정책 지원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아닉 마시스 “늦깎이 성공비결? 트라바유와 파시옹”

    아닉 마시스 “늦깎이 성공비결? 트라바유와 파시옹”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1899~1963)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195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오페라계에 충격을 던졌다. 지금껏 오페라가 사랑에 관한 아리아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카르멜회’는 자아 성찰적인 대화를 담은 노래로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의 공기가 무겁게 드리운 1794년 7월 카르멜회 수녀들의 처형을 소재로 했다. 둔탁한 단두대의 칼날이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떨어지면 수녀들도 한 명씩 쓰러지는 기괴하고 인상적인 피날레가 백미다. ‘카르멜회’가 5~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국보급 오페라이지만 한국 공연은 처음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나섰다.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 2008년 로렌스 올리비에 상(영국극장협회가 주최하는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 수상자인 프랑스 연출가 스타니슬라스 노르디의 솜씨를 우선 눈여겨봐야 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순교와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여주인공 블랑슈 역의 프랑스 소프라노 아닉 마시스(51)다. 지난달 18일 입국해 연습에 한창인 그녀를 서초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초반 분위기는 어색했다. 그녀가 약속한 사진 촬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는 편하게 얼굴을 내놓기에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답이 서너 차례 오가자 그녀는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빠르지만 논리적이고 정돈된 답이 돌아왔다. 마시스는 “언제나 새로운 문화와 도시를 체험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면서 “입국 이후 하루 9시간씩 일(연습)만 해서 서울을 느껴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28살 때 파리의 프란시스 플랑 음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았다. 그녀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면서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성악을 반대한 탓에 진로를 교사로 수정했지만 결국에는 원래의 물줄기로 돌아왔다는 고백이다. 1990년인가 1991년(그녀의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모차르트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가운데 여주인공 시녀인 블론트켄 역으로 데뷔했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출연하면서였다. 정략결혼을 한 루치아가 신랑을 칼로 찌르고서 피묻은 잠옷 차림으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이후 마시스의 상징이 됐다. 늦깎이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통역을 통해 질문을 듣더니 그녀는 “트라바유(travail·일), 트라바유, 트라바유… 파시옹(passion·열정), 파시옹, 파시옹…”이라며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우문현답이다. 마시스는 “남들보다 늦어 처음에는 이해도 못 하고 당황했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닥치는 대로 해치워 따라잡았다.”면서 “호기심과 음악에 대한 사랑,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다. 시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시스는 2005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황금기러기상(La Siola d‘Oro)을 받았다. 1983년 세기의 소프라노 리나 팔리우기(1907~1980)를 기념하려고 만든 상이다. 2년마다 최고의 여성 성악가가 상을 받는다. 조수미(1993년), 엘리자베스 비달(프랑스·2000년), 조안 서덜랜드(호주·2007년)도 이 상을 받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에게도 ‘카르멜회’의 블랑슈는 첫 경험이다. 그녀는 “귀족 출신으로 수도원에 들어간 블랑슈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한다.”면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진실들을 직시하느냐 피하느냐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 더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과는 다른 음색과 스타일로 블랑슈를 연기할 것”이라면서 “제대로 해낸다면 (수없이 해냈던) ‘라 트라비아타’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무대경력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녀는 5·7일 무대에 선다. 6·8일은 독일 슈베린극장의 주역으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박현주가 맡는다. 평일 오후 7시 30분, 일요일 5시. 1만~15만원. (02)586-528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EBS 토요일 밤 11시)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출신의 피치(마이클 케인)와 대니얼(숀 코너리)은 절도와 총기밀수 등 사기행각을 벌이다 추방당하게 된다. 피치는 과거에 키플링(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시계를 훔쳤다가 알게 된 사이다. 키플링은 기회의 땅으로 가서 통치자가 되겠다는 피치와 대니얼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정복했었고 록산느라는 아내까지 있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프리메이슨 문양의 목걸이를 선물로 준다. 그렇게 무기와 술을 챙겨 길을 나선 두 사람은 혹독한 기후와 눈사태를 이겨낸 후 꿈에 그리던 카피리스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구루족 출신의 보병 빌리 피시를 통역자로 쓰게 된 두 사람은 군사들을 정비해나간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고 날아오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지만 대니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에 원주민들은 그가 ‘시칸더’ 즉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이 신으로 내려왔다고 믿게 된다. ●라스트 프로포즈(OBS 일요일 밤 11시 50분)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외모의 샘(유덕화)은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모든 것을 가진 그이지만 세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샘은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당찬 매력의 클럽 댄서 밀란(서기)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사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밀란이 상류층 여자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동안 샘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결국 샘은 주위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혼전 계약서를 내밀고 상처받은 밀란은 샘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샘은 사업과 사랑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신의 손(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1930년대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미국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 연구소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던 흑인 청년 비비언 토머스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탁월한 손재주와 의사를 꿈꾸는 열정으로 저명한 백인 외과의사인 블레이럭 박사의 조교가 된다. 그후, 박사를 따라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옮겨간 비비언은 블레이럭의 주요 의학 연구와 수술에 점점 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간다. 유색인종은 뒷문으로 출입하고 화장실도 백인과 따로 써야 했던 시대에 백인 의사와 흑인 조교는 끊임없이 언쟁하고 갈등하면서도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극심한 논란 속에 치사율 백퍼센트였던 청색증 아기 환자의 심장을 세계 최초로 수술해 성공하면서 마침내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장 수술의 길을 열게 된다.
  • 레이나, 셰인 통역사로 ‘위탄’ 깜짝 출연 화제

    레이나, 셰인 통역사로 ‘위탄’ 깜짝 출연 화제

    교육방송 EBS에서 활동 중인 ‘얼짱 강사’ 레이나가 MBC ‘위대한탄생’(이하 위탄)에 통역사로 깜짝 등장해 화제다. 레이나는 지난 15일 방송한 ‘위탄’에서 캐나다 국적의 참가자 셰인의 통역사로 등장했다. 이날 마지막 무대에는 신승훈 멘토의 제자 셰인이 올라 ‘Don’t know why’(돈 노우 와이)를 감미롭게 열창했다. 노래가 끝난 뒤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셰인에게 영어로 심사평을 설명해주기 위해 통역사로 깜짝 등장한 것. 레이나는 얼마 전 ’김태희 닮은꼴‘의 미녀 영어강사로 크게 화제가 됐던 인물. 그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TESOL 과정을 밟았다. 현재 강남, 광화문, 송파 대성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대성마이맥과 EBS의 인터넷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이날 ‘위탄’에서는 팝송 미션이 주어졌고, 신승훈 멘토의 제자 조형우와 김윤아 멘토의 제자 백새은이 탈락했다. 사진=MBC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소말리아 해적 부분적 국민참여재판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우리 군에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 5명 가운데 4명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된다. 부분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이 제도를 도입한 후 처음 시행된다.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김진석 부장판사)는 납치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 5명 중 참여재판을 거부한 압둘라 후세인 마카무드를 제외한 4명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마카무드는 재판을 받지만 배심원단의 평결은 받지 않는다. 첫 공판은 오는 5월 23일쯤 열리며, ‘한국어-영어-소말리아어’ 순의 순차 통역과 5~6명의 증인 신문 등을 고려할 때 5일간 연속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된 뒤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재판부는 원활한 재판을 위해 외교통상부로부터 추천을 받은 에티오피아나 지부티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 1명을 소말리아어 통역인으로 추가 선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통역인이 영어 담당 2명과 소말리아어 담당 2명으로 늘어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연임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연임

    언론중재위원회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새 위원장으로 권성(70) 현 위원장을 재선출했다. 권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 서울행정법원장,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4월부터 언론중재위원장을 맡아 왔다. 다음은 임원 및 위원 명단. ▲부위원장 정학철(전 동아일보 편집위원) 김종량(전 전북일보 편집국장) ▲감사 윤구(전 문화일보 논설주간) 위철환(변호사) ▲운영위원 권성(위원장) 김종량(부위원장) 이영덕(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강영수(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양은경(충남대 언론정보학 교수) 김길소(전 강원일보 상무이사) 남승욱(전 KBS 청주방송총국장) 남부희(전 경남신문 논설주간이사) 김재원(제주대 통역대학원 교수) ▲시정권고위원 권성(위원장) 정학철(부위원장) 권일(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무(전 뉴시스 편집담당 상무) 어경택(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충일(전 경향신문 기획사업본부장) 유의선(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 교수)
  • 대우인터내셔널, 안산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 2억 기탁

    대우인터내셔널, 안산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 2억 기탁

    대우인터내셔널은 29일 경기 안산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 운영지원금 2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안산 이주민통역지원센터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 구성원 등 이주민의 언어 적응을 돕기 위해 안산시와 안산지역 비정부기구(NGO)가 운영하는 단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08년부터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현재까지 센터에 8억원 이상을 지원했으며, 센터 운영모델이 민·관·기업의 성공적인 사회공헌 협력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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