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도청 테이프 공개, 법치주의 우선해야/성재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
통상적인 예측 범위 내에서 일이 전개되는 곳일수록 안정된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예측하고 싶지 않았던 일로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을 접하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이 사인간의 대화를 도청한 사실만으로도 답답한 심정인데, 도청내용이 개인적 동기에서 공개되면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정치적 여파가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혹자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도청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입장에서는 도청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불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란 점에서 법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알 권리는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 등 국제적 규범에서도 규정하고 있고, 정보보호법(미국)이나 연방데이터보호법(독일)과 같이 국가마다 다양한 입법형태로 법제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개인의 기본권과 연계하여 논의되고 있는 알 권리란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정보의 자유와 표리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원으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일정한 정보를 알리기에 적합한 시설적 기술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 언론이나 국가가 대표적인 것이다. 알 권리를 강조하게 된 것은 정보가 인간다운 삶과 자유로운 인격실현의 필수적 요건이 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정보원을 차단하여 국민에게 정보를 주지 않는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조치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알 권리 또는 정보의 자유를 근거로 국가기관에 모든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에서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는 예외로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따라서 ‘알 권리’와 ‘알고 싶어 하는 기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으로 불법 도청테이프는 알 권리의 대상이 아니며, 도청 테이프의 공개보다 도청 행위의 문제점이 선결적 검토 대상이라는 것이 올바른 법리 해석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도청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법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불법적 수단을 이용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적법절차의 법원칙을 구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청내용의 공개 여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은 선후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적법절차를 요구하는 실정법이 특정 사안에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도청내용을 공개할 것인가 여부는 도청행위의 불법성과 알 권리의 충족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의 이론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적법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법 이념에 비추어 해결하여야 할 과제이다.
법 적용이 마무리된 후 도청내용을 공개할 것인가는 국민의 알고 싶어하는 기대와 법적 가치 판단 등을 고려하여 2차적 조정을 시도하여야 하는 과제일 뿐이다. 그러지 아니할 경우 앞으로도 불법 도청을 자행하는 구태는 근절되지 아니하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옛 동독 정보기관의 불법도청자료와 관련하여 독일이 제정한 ‘슈타지법’ (Stasi-Unterlagen-Gesetz)도 2년여에 걸친 신중한 검토를 거쳐 연구나 학문 목적에 국한하여서만 접근을 허용하고, 중대한 반인권적 사항에 대하여만 제한적으로 공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결국 불법도청 자료의 공개문제는 도청의 불법성을 전제로 개인의 권익 손상과 사생활 침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유는 국민의 알 권리가 가지는 궁극적 목적은 공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 자체에 있고, 인간의 정보욕구가 가지는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도청이라는 하나의 불법행위가 새로운 불법을 연속적으로 몰고 온 불법의 다중적 연속선을 보고 망연자실한 상태이다.
가치의 혼돈까지 몰고 온 불법도청은 사회의 신뢰체계를 무너뜨리고, 법치주의의 기초를 흔들 수도 있다. 도청의 불법성 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안정된 법치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데 있다는 것을 간과하여서는 아니된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