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부 수출1과 송경자씨(월요초대석)
◎“집계업무 27년”… 수출한국의 산 증인/수출입실적 매일작성… “부내 큰언니”로/1억불·1백억불 수출순간 못 잊어
상공부 사람들은 그녀를 「송언니」라고 부른다. 여직원들은 물론이고 박필수장관을 비롯한 상공부의 모든 남자직원들도 그녀를 마주할때는 「송언니」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수출업계에서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사무실에서 그녀가 없으면 어떤 자료도 쉽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공부 수출업무의 산 증인이다. 지난 63년 상공부에 들어온 이래 만 27년동안 오로지 수출집계 업무만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60,70년대 수출입국의 기치아래 온 나라가 너도 나도 밤도 낮도 없이 수출드라이브에 매달릴때 노상 야근만 하다보니 부모님들이 상공부로 찾아와서 그만두라고 성화였습니다. 그러나 맡은 일이 중요하다보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군요…』
상공부 상역국 수출1과에 근무하는 송경자씨(48).
서울 여상과 동덕여자초급대를 졸업하고 지난 63년 3월 당시 행정서기보(지금의 9급) 공채시험을 통해 상공부에 들어왔다. 당시 초임 사무관들이 홍성좌 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김기배 현 민자당의원 등이었다. 그러니까 연륜으로 따지면 그녀는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부내 터줏대감인 셈이다.
처음으로 맡은 일이 수출집계. 수출과의 고용직 여직원 7명과 함께 주판을 놓으며 매일매일의 수출입실적을 집계해서 「일일수출속보」를 만드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지금은 전산화가 이루어져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일을 하고 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수출입 집계는 모두 손(수)작업으로 했다. 수출업체들이 상품을 선적한 뒤 은행에 제출한 입금증을 받아다가 이를 대상국가별,품목별로 재분류하느라면 낮과 밤이 쉽게 뒤바뀌곤 했다.
『제일 보람을 느꼈던 일은 우리나라의 수출이 1억달러(64년),10억달러(70년),1백억달러(77년)를 달성하던 순간이었어요. 그때마다 손때묻은 주판알을 만지며 환호성을 질렀으니까요』
상공부에 들어온지 1년만에 행정서기(8급)로 승진한 이래 현재는 행정주사로 사무관대우에 올라있다.올들어 지난 9월에는 상공부내에서 손꼽을 만한 「필수실무요원」에 임명됐다. 필수실무요원이란 문자그대로 꼭 필요한 사람으로서 종전의 준사무관을 말한다.
이날 「송언니」는 저녁 귀가길 통근버스에서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모님의 퇴직종용에 직장을 옮겨볼까 하고 인천교대를 다니며 국민학교 정교사자격증을 따냈고 바쁜 근무시간을 틈내 늦은 밤에 성균관대 무역대학원의 1년 코스 연구과정에 다녔던 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진천리에 있는 시댁과 과천 상공부청사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 통근차를 놓치는 날이면 시내버스를 서너차례나 번갈아 타고 출근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송언니」는 건축업을 하는 한기문씨(48)와의 사이에 아들만 셋을 내리 두었다. 맏아들은 대입재수중이며 나머지는 국교 6년,3년생이다.
투박한 단발머리차림의 「송언니」는 1년내내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매니큐어도 하지 않는다. 올가을 들어서는 얼굴이 매우 쓸쓸해 보인다. 수출부진이 계속되는 바람에 컴퓨터단말기앞에 앉게 되면 먼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수출한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장담한다. 『1천억달러 수출시대가 곧 올 것으로 믿어요. 그때까지는 상공부에 머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