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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축제’의 유혹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길 축제 보러오이소’ 농촌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지역의 관광자원인 `돌담´을 소재로 소담한 축제를 마련했다. 1일 돌담마을로 유명한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운영위원회(위원장 홍대일)에 따르면 3,4일 이틀간 마을 일원에서 ‘제1회 한밤마을 돌담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부림 홍씨 집성촌인 한밤마을(대율·동산·남산리)은 530여가구에 주민 1000여명이 살고 있다. 첫날에는 밤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동안 마을 돌담길에서 이동 천문차량을 이용해 별자리와 밤하늘을 관측하는 별자리 관찰학습 기회가 마련된다. 다음 날엔 주민과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한밤 가요제와 7080콘서트, 인기가수 초청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가 준비됐다. ‘한밤마을’은 800여년전부터 돌만으로 쌓은 돌담길(2㎞ 정도)이 전통가옥과 함께 어우러져 전해지고 있으며, 문화재청과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밤마을운영위원회 홍진규(48) 총무는 “이번 축제는 마을이 지난해 행정자치부 등이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고 돌담을 관광자원화하는 등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가꾸어 가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뭍을 그리워하는 섬이라고 해야 할까, 물길과 몸을 섞고 싶은 뭍이라고 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인연을 단절할 듯 뭍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이를 두고 버선발을 닮은 안동 하회마을에 비유해, 금방이라도 가지에서 똑 떨어질 것 같은 호박을 닮았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제1지류 내성천이 영주와 안동 등을 지나 남녘을 향해 흐르다 경북 예천땅에 접어든다. 난데없이 앞길을 막아선 예천의 명산 비룡산에 부딪친 내성천이 350도 태극무늬 모양으로 돌아나가며 거대한 모래사장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마을을 하나 얹어 놓았는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이라 평가받는 회룡포(回龍浦)다. 말 그대로 비룡산을 부여잡은 용이 몸을 외로 꼬며 돌아나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곳. #비룡산 전망대 오르면 회룡포가 한눈에 내성천과 회룡포의 진면목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 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경남 기장과 황해도 개성, 그리고 예천 등에 세운 같은 이름의 절집 3곳 중 하나.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絶唱)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장안사에 머무르며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는 나그네의 마음이더니/한 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 속에서 잦아드네.” 장안사 뒤편 산길을 따라 400m쯤 걸어 회룡대에 올랐다. 바닥색을 닮은 황톳빛 내성천이 희디 흰 모래사장, 그리고 짙푸른 하늘과 희롱하며 흘러가고 있다. 마을 왼편으로 한때 유일한 뭍과의 연결통로였던 ‘뽕뽕다리(공사장에서 쓰는 구멍뚫린 철판을 연결해 만든 다리)’의 모습이 아련하다. 제방 옆길에는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회룡포 마을 주민수는 20명가량. 우리네 농촌이 그렇듯 5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경주 김씨 동성만 모여 사는 것이 이채롭다. #세금 내는 나무 황목근과 석송령 회룡포 인근 금남리 금원마을에는 세금 내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黃木根)이란 어엿한 이름도 갖고 있다.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해서 성을 황,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이름을 목근이라 했다. 무려 1만 2899㎡나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부자나무. 나이는 약 500세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 보존회에서 대납의 형태로 일년에 9000원가량 종합토지세를 낸다. 감천면의 석송령(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은 나이 600세로 황목근의 형뻘된다. 토지대장에 자신의 이름으로 땅 6000여㎡를 등재해 놓고 있다.1년에 1만여원가량 세금을 낸다. 역시 석송령 보존회에서 대납하고 있다. #늙은 회화나무 아래 삼강주막 회룡포를 돌아본 후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三江)주막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700리 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19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 삼강의 합수머리에 있다 해서 삼강주막이라 불린다. 이 시대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89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하면서, 이젠 덩그러니 빈집으로만 남았다.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나루터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부산과 대구 등에서 서울로 향하는 과객과 장사치들, 그리고 온갖 물산들로 북적댔다. 특히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 내륙에서 내려온 미곡선 상인들이 활발하게 물물교환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인적이 뚝 끊겨 버렸다. 고 유옥연 할머니는 16살 되던 해인 1932년 이 마을 배봉송(50년전 작고)씨와 결혼한 뒤 70여년간 삼강주막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유 할머니는 말년에 간혹 찾아오는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멸치 안주 등을 팔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여간 안타깝지 않다. 200년 된 회화나무가 굽어보고 있는 삼강주막은 흙바람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서 있었다. 방은 2개. 수많은 과객들이 발고랑내 풍기며 잠을 청했을 봉놋방은 장정 예닐곱이 앉아 술추렴했을 마루와, 주모가 사용했음 직한 작은 방은 시커먼 검뎅이가 묻은 부엌과 각각 연결돼 있다. 주막과 회화나무 사이 너른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국밥과 술로 요기를 했을 게다. 경상북도에서는 삼강주막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금년 중 완공이 목표다. 삼강주막 옆에 있던 뱃사람 숙소 등도 함께 복원할 계획. 옛 정취는 고스란히 살리되, 과유불급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1. 글 사진 예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2007 예천 곤충바이오 엑스포(www.insect-expo.co.kr)가 11∼22일 예천읍 일대에서 열린다. 곤충의 산업적 이용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한 곤충의 세계를 보여줄 이색 행사다. 주행사장인 공설운동장에 곤충생태관과 곤충놀이관,3D영상관 등이 설치되고, 특별행사장인 곤충산업연구소에는 곤충생태원, 유리온실 등이 만들어져 곤충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054)650-6291∼8. ●예천 천문과학문화센터 100여명이 숙박을 겸해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곳. 감천면 덕율리에 있다. 낮시간에는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보조프로그램도 마련해 두었다.654-1710. ●진호국제양궁장 예천 출신 양궁선수 김진호의 세계대회 제패를 기념해 세운 국제 규모의 양궁장. 예천읍 청복리에 있다. 일반인에게 무료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드시 예천군청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www.yecheon.go.kr,650-6411∼2. ●금당실 마을 전통가옥과 7.2㎞에 달하는 돌담길 등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마을. 용문면 상금곡리에 있다. 돌담길에 무시로 핀 과꽃 등이 인상적이다. 마을 정원 격인 금당실 쑤(소나무숲)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지친 걸음 쉬어가기에도 맞춤하다.654-2222. ●가는 길 금당실 마을과 석송령,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장 등을 찾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 회룡포와 삼강주막, 황목근 등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 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전통가옥 4채 중요민속자료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전남 신안의 화가 김환기가 살던 집을 비롯한 전통가옥 4채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27일 지정예고했다. 김환기의 집과 ▲전남 강진의 시인 김영랑 생가 ▲경북 봉화의 송석헌(松石軒) ▲경북 청송의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신안 안좌도 읍동마을에 있는 김환기 가옥은 김환기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광복 이후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강진의 영랑 김윤식 생가는 전형적인 부농의 생활공간으로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이 길이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송석헌은 동암 권이번이 아들 선암 권명신에게 지어준 집으로, 조선 후기 영남지역 사대부저택의 기능과 면모를 잘 보여준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만석부자였다는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1880년 지은 집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신적(神笛)이다.‘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신라의 소리’라고 했다. ‘만파식적’ 설화에 등장한다. 제31대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그러자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그런데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하루는 현장에 나갔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었다. 용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피리를 국보로 삼고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이름지었다.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 있던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3죽(竹)이라고 해서 대금·중금·소금 등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笛(적)’은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시인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내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속에/터질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흰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거나∼/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어둠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0·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 다섯살 때부터 소금(小)을 배웠으니 사실상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를 맞은 셈. 그 세월만큼이나 대나무 악기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지난 4월5일 북악산 개방행사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감동적인 대금산조를 연주,39년 동안 잠자던 북악산의 정기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획을 하나 더 그었다.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본인의 평생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이 전집에는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번을 시작으로 나머지 350장(최종목표 400장)의 음반을 더 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2∼3년 안에 완결짓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구실(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괄괄한 목소리에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우리나라의 난다긴다는 예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인데 그곳에 가서 대금을 배울 때 경상도 사투리를 함부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누가 말을 시키면 “그저 대금을 입에 대고 소리만 냈다.”며 웃는다. 얼굴이 50대로 젊어 보인다고 하자 “대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며 나름대로의 비결을 귀띔했다. 20여평 남짓한 연구실 벽면에는 온갖 상장이며 지나온 발자취의 업적이 쭉 내걸려 있었다. 아들 이광훈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 국악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뒤를 잇고 있다면서 “저기봐, 대통령상도 받았어, 아주 잘해.”라며 잠시 자랑끼를 발동한다. 친손자와 외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금과 가야금 등에 소질이 많다고 부연했다. “11세 되던 1947년, 전주에 계신 스승(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판소리든 민요든 한국의 전통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것이 중단되고, 또 6·25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 서양음악이 거칠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국악공부에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6·25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일곱분의 스승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켜가면서 ‘대니 보이’‘엘 콘도 파사’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그랬더니 얼마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다섯살 때 선친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11세 때 한주환 선생을 비롯,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 즉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숙원사업 그의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이때 단원의 악사로 참가했으나 춘향역을 맡은 주연 무용수 안나영씨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13분 동안 최초의 대금독주로 시간을 때운 것. 이때 객석에서는 동양적 음향에 반했다며 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40여개국 순회공연까지 가졌다. “군대생활요? 27사단 정훈부 군예대에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같이 근무했어요. 나중에는 피리명인 정재국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서로 ‘정악’(피리)과 ‘민속악’(대금산조)을 가르쳐주며 생활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정씨가 먼저 됐지요.” 나이 70을 넘기면서 그에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하루속히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서울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 강의)이고 각종 공연활동과 음악강연을 틈틈이 하면서도 ‘춤의 소리’ 백과사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 사업이야말로 먼저 가신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후배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명감이다. 오래전부터 단소와 단소교본을 만들어 왔는데 ‘국민1인 1국악기 갖기’운동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또한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숙원사업.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그러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화합번영과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민속악의 대금소리는 계속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강조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해방후 부산 정착.▲42∼60년 이덕희·지영희·전추산·오진석·방태진·한주환 등에게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힘.▲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음악반주.▲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77년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 이후 16차례 개인발표회.▲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지정. ▲2005년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세종문화회관). ▲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 제작.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 수상경력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78년), 신라문화재 대통령상(84년),KBS국악대상(84년), 한국국악대상(02년), 서울시 자랑스런 시민상(94년), 대한민국 국민상(97년) # 주요 작품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07년, 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 외에 400여 종의 앨범제작.
  • 서울도심서 몽골 축제

    서울 도심에서 호쾌한 몽골 유목민 축제가 펼쳐진다. 28일 광진구에 따르면 다음달 8일 오전 10시∼오후 5시 광장중학교 운동장에서 ‘제7회 나담 축제’를 연다. 국내에 있는 몽골인들에게 모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기획했다. 구민들에게는 이색적인 몽골 유목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담 축제는 본래 7월 초순쯤 몽골 사막에서 펼쳐지는 몽골 최대의 국가축제다. 공식 명칭은 ‘에링 구루방 나담’. 씨름·경마·활쏘기 등 3종의 중요한 경기라는 뜻이다. 지방 예선에서 강자를 선발한 뒤 중앙 무대에서 몽골 최고의 강한 남자를 뽑는 대회다. 서울 축제는 나담 축제의 축소판인 셈이다. 다만 서울에서는 몽골 말을 구하기 쉽지 않아 경마를 생략하고 몽골 전통씨름 ‘부흐’와 활쏘기, 이어 달리기 등을 한다. 양이나 염소의 복숭아뼈로 일종의 구슬치기를 하는 ‘샤가이’도 한다. 주한 몽골학교 학생들이 전통무용도 선보일 예정이다. 경기장 주변에는 몽골 전통가옥 ‘게르’를 전시하고 양고기 구이 ‘허르헉’ 등 전통음식도 싸게 판매한다. 광진구는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 항올구(區)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정송학 구청장이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로 지난 5월 몽골에 다녔왔을 정도로 인연이 각별하다. 지역에 중소기업이 많아 몽골 근로자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과 주한 몽골학교가 광장동에 있다. 몽골인 260만명 중 1.3%인 3만 5000여명이 국내에 살고 있다. 광진구 관계자는 “매년 2000명 가까운 몽골인들이 이 축제에 와서 고향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서 “광진구 주민과 몽골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결연을 맺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천연간수로 만든 초당두부 맛 일품

    동해 바다를 끼고 있는 강릉은 볼거리·먹을거리가 참 많은 고장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을 넘으면 곧 강릉시로 접어든다.외곽도로를 타고 오죽헌을 찾아 율곡 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인근 조선시대 전통가옥인 선교장, 해운정, 경포대, 방해정 등 경포호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단아한 정자를 둘러보며 옛 선비의 풍류를 들여다 보자. 이어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등이 전시된 ‘참소리 박물관’을 둘러보고 가까운 경포해수욕장을 찾아 동해바다에 발을 담그면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신다. 동해바다의 기암괴석을 따라 펼쳐진 해안도로를 달려 보는 것도 좋겠다. 드라이브를 하다 안인진의 통일공원에 펼쳐진 함정전시관(북한 잠수함 전시)과 안보전시관을 둘러 보고 등명낙가사를 찾아 마시는 약수는 별미다. 정동진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자연친화형 예술공원인 하슬라아트월드, 시계박물관, 모래시계공원, 썬쿠르즈 조각공원이 펼쳐져 관광객을 맞는다. 동해바다를 둘러보는 금진항의 바다유람선도 색다르다.대관령자연휴양림과 대관령 옛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다. 먹을거리도 곳곳에 널렸다. 초당부두마을에는 30여곳의 두부집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만들어 손님상에 올리는 두부는 인공 간수가 아닌 동해바다 천연 간수를 사용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주문진과 경포·강문 횟집골목을 찾아 동해바다를 조망하며 싱싱한 회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HAPPY KOREA] 해외편 일본(하) 오이타현 유후인

    [HAPPY KOREA] 해외편 일본(하) 오이타현 유후인

    |유후인(일본 오이타현) 글 임창용특파원|‘연 400만명이 이 평범한 작은 마을을 찾아온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 자리잡은 유후인(由布院)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기 쉽다. 하지만 인구 1만 2000여명의 농촌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유후인 관광종합사무소 요네다 세이지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오래전 잊고 살았던 정을 되돌려 주는 곳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마을 만들기’ 정도로 정의될 수 있는 일본의 전통적 주민자치운동인 ‘마치 쓰쿠리’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유후인을 찾아보았다. ●연인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 뽑혀 유후인은 구마모토현 아소에서 벳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온천마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지인 벳푸가 지나치게 도시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벳푸와 다른 조용한 휴양지’를 만들자는 모토 아래 주민들이 주도하는 ‘공생공존형’ 지역개발로 자리잡게 됐다. 이곳은 유적이나 신사 등 전통적 소재보다는 농촌과 온천, 문화예술 등이 어우러져 누구나 기분 좋게 휴식과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따라서 잘 정리된 깨끗한 거리와 안내 표지판, 화분이 내걸린 상가,20여곳의 미술관과 갤러리, 독특한 모양의 공예품점, 쾌적하게 정리된 하천, 단아한 집들이 조화를 이루며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일본에서 연인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요네다는 “사람들이 1∼2시간 허둥지둥 둘러보고 기념품이나 사가는 ‘방문형’ 마을이 아닌 하루·이틀 푹 쉬며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을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400만명 중 100만명 정도는 하루 이상 숙박을 한다고 했다. ●‘소 잡아먹고 소리지르기 대회´ 독특한 행사로 또 단순히 머무는 차원을 넘어 본인 취향에 따라 마을과 깊은 인연을 맺도록 했다. 매년 7월과 8월에 열리는 음악제와 영화제, 전통축제가 그 역할을 한다. 이 행사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이벤트가 아니다. 영화제든, 음악제든 행사가 시작되면 전국에서 마니아들이 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순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다. 어린이 음악제, 다큐영화제 등 파생행사도 점차 늘고 있다. 70년대 말 시작된 ‘소 잡아먹고 소리 지르기’대회는 도시와 농촌의 성공적 공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도시인이 구입한 소를 5년간 키워서 잡아주고, 그 대가로 송아지 한 마리를 받는데, 행사기간 중 도시인들은 소리지르기 시합을 한다. 이때 전국의 유명 요리사를 초청해 다양한 쇠고기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 행사는 일본 전역에 안전한 음식, 최고의 상품이라는 인식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와 유후인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80%가 관광업 종사… 젊은이들 돌아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유후인은 농촌마을임에도 1차산업 비중이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음식 숙박 서비스업 등 관광업이 80%를 차지한다. 이곳 업소들은 모두 주민들을 고용하고, 필요한 농축산물도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쓰도록 마을 자치단체가 정해 놓고 있다. 외부인이 투자한 업소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의 고용창출과 농가 소득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고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도시로 나가기만 하던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요네다는 “70·80년대만 해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했다.”면서 “그러나 현재 젊은이들은 물론 장년층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sdragon@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등록 시라카와 ‘합장촌’ |시라카와 합장촌(기후현) 임창용특파원|기후현과 도야마현 경계 산악지역에 자리한 마을들을 지나다 보면 독특한 모양의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을 반쯤 펴서 세워 놓은 듯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곳에선 ‘합장’(合掌)가옥이라 한다. 불교에서 두 손을 모아 인사하는 ‘합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붕은 억새를 엮어 덮었다. 합장촌이 발달한 것은 이곳의 기후 때문이다. 마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기후현 북쪽이 바다와 가까워 눈이 엄청 많이 내린다. 마을을 방문했을 때가 4월 하순인 데도, 산 중턱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삼림이 마을의 93%를 차지해, 농경지가 절대 부족한 이곳 주민들을 먹여살리는 것은 순전히 이 합장가옥들이다.1995년 시라카와, 오기마치, 스기누마 등 3개 합장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이후 이곳 주민들에겐 ‘보전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100여년 전 1800여채에 달하던 합장가옥들이 인근 강의 댐 건설과 산업화로 급감,70년대 초반 300여채로 줄어들었던 것. 하지만 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더 이상 줄지 않고 있다. 시라카와 합장촌 교육위원회 사무국 히사요시 곤도 계장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보존회를 만들고, 조례까지 만들어 가옥은 물론 주변 수림, 돌담 등 자연경관을 철저히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전을 위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팔지 않는다’‘빌려주지 않는다’‘부수지 않는다’ 등 3대 원칙. 건물 신축이나 개·보수시 주민보존회가 이같은 원칙을 철저히 적용한다. 권유를 따르지 않고 억지를 부리자 보존회가 나서 새 건축물을 부숴버린 적이 있을 정도다. 신축건물은 반드시 보존지구 밖에 세우도록 하고,‘차량통행금지 지역’을 만들어 마을을 쾌적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붕 올리기 등 합장가옥 보수 비용, 화재 방지를 위한 첨단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 등 보전에 필요한 비용은 전액 정부가 지원한다. sdragon@seoul.co.kr ■주민들 하나되어 ‘자연과 공생하기’ |유후인 임창용특파원|유후인의 성공은 순전히 마을 사람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주민들은 70년대 이후 유후인을 자연과 공생하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70년대 고원지대에 조성되던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던 운동을 계기로 구성된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과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 등이 무분별한 개발을 철저히 막았고,‘자연환경 보호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주민들은 폭넓은 비전을 공유하면서 마을 만들기를 함께 추진할 수 있었다. 댐 건설 계획으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마을 집단으로 댐과 리조트 반대운동을 펼쳐 정부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 윤택한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주민들이 자발적인 개발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유후인에서 일정 규모 이상 개발사업은 사전 환경조사 및 사업계획 30일간 공개설명회, 마을만들기 심의회의 심의, 공청회 개최 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유후인 마을을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중심은 마을만들기(마치 쓰쿠리)심의회다. 주민들이 협의를 통해 뽑은 2명의 리더가 심의회를 이끌어간다. 유후인이 지금처럼 발전하는 데 이 리더들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주민들은 평가한다. 하지만 유후인도 한 가지 큰 고민을 안고 있다. 정부의 시·정·촌 합병 정책으로 인해 마을의 개성이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 것이다. 자칫 ‘평범한 마을’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이타현의 경우 이 합병정책으로 총 56개 시·정·촌이 18개로 줄어들었다. 유후인도 인근 쇼나이정과 하지마정 2개 마을과 합쳐 최근 행정구역상으론 3만 3000여명의 소도시가 됐다. 두 마을은 1차산업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유후인 주민들은 “마을 이미지와 경제수준이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유후인은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합병된 이웃마을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유후인에서 생산되지 않는 1차산업 부산물들을 두 마을이 제공하게 함으로써 마을 전체의 자립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dragon@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 in] 전도연 평가 배경

    5월27일 막을 내린 60회 칸 영화제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축제로 기억될 것이다. 기억의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전도연의 수상이다. 공식 시사를 마친 뒤 6분 간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는 소문이 돈 후,‘밀양’의 수상은 조심스럽게 짐작에서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짐작은 여우주연상 획득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동양인으로서 두 번째 여우 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은 이제 세계적인 여배우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밀양’ 공식 시사회 때 기대와 달리 포토콜에 선 외신 기자는 열 명 안팎이었다. 게다가 드레스 코드가 제한되지 않은 상태라 포토라인 앞에 선 기자들은 편안한 라운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안젤리나 졸리나 ‘오션스 13’의 배우들이 레드 카펫에 섰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셈이다. 소박한 분위기는 제3세계, 동양권의 영화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중국의 궁리나 장만위 같은 스타급 배우가 없는 형편 때문이기도 했다. 여우주연상 획득 가능성이 있다고는 했지만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아직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만의 것이었다. 전도연의 수상이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국적을 초월한 스타급 여배우의 예고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여기서 비롯된다. 60번째 칸 영화제의 결말은 칸의 다양성과 개방적 혁신이라는 면에서 대략적 합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두 가지 점에서 가능하다. 하나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4개월 3주 이틀’이 루마니아 신예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코엔 형제, 데이빗 핀처, 에밀 쿠스트리차, 구스 반 산트와 같은 쟁쟁한 감독들의 인증된 경력이 아니라 동유럽 변방의 젊은 감독의 감각이 소통된 것이다. 마흔 살을 앞둔 동유럽 감독의 수상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두번째 이유는 주요 부문 수상 목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치적 배려에 있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국의 ‘밀양’,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가와세 나오미의 ‘모가리의 숲’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의 주요 부문은 국적과 문화적 경계에 따라 안배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금은 납득되지 않는 수상 결과가 있다는 반응도 있지만, 칸이 제3세계의 새로운 영화에 애정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제3세계라는 말이 암시하고 있듯이 파티 아킨,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와 같은 감독들의 작품은 유럽이나 할리우드의 영화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임신중절, 사랑, 죽음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지만 이들 작품은 구체적 자국 현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서구 중심의 문화에 평준화된 시각으로 볼 때 이들의 작품은 매우 파격적이면서도 진실해 보인다. 이는 한편 우리 영화의 미래를 암시해주기도 한다. 제3세계, 내셔널 필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각국의 사회, 정치적 형편에 대한 이해 위에 조형되어야 한다. 자기 내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고발이 곧 세계적으로 소통가능한 주제의식인 셈이다. 영화평론가
  • [HAPPY KOREA] 해외편 일본(상) ‘문화특구’ 가나자와

    [HAPPY KOREA] 해외편 일본(상) ‘문화특구’ 가나자와

    |가나자와시(일본) 글 임창용 특파원|동해와 맞닿아 있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시내 거리를 걷다 보면 전통과 현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쪽에 옛 무사들이나 게이샤들이 살던 집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엔 초현대적 감각의 미술관이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서울의 청계천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수로엔 맑은 물이 힘차게 흘러 청량감을 더해준다.45만명의 시민 중 3분의1 이상이 아마추어 예술인일 정도로 문화적 열정이 넘치는 곳. 가나자와의 문화적 인프라는 일본에서도 으뜸이다. 그만큼 주민 만족도도 높다. 세계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문화행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가나자와를 자주 방문하는 것도 이 때문. 정부와 서울신문이 공동추진하고 있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의 하반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일본의 ‘문화특구’ 가나자와시를 찾았다. ●콘크리트 걷고 집·도로 사이엔 수로 가나자와시엔 전통가옥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히가시차야 가이(東茶屋街), 무사계층이 모여 살았던 무가마을 등 전통문화 보존구역이 10개 있다. 가나자와시 시마무라 국제스포츠과 과장은 “거리풍경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개별 건물보다는 연결된 ‘존’(ZONE) 개념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존을 위한 보조금은 시에서 지원한다.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전통가옥에 주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 보여주기 위해 전시된 공간이 아니라, 현재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 있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거리의 각 집과 도로 사이의 좁은 수로엔 맑은 물이 흐른다. 산업화와 함께 콘크리트로 덮여 있던 것을 모두 걷어냈다. 각 주택과 도로는 작은 교량으로 연결했고, 그 비용은 시가 전액 지원한다. 시마무라 과장은 전통가옥들 사이로 물이 흐르는 이같은 풍경을 ‘가장 가나자와다운 모습’이라고 자랑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노가쿠’(能樂)를 보존하기 위한 청소년학교도 운영하고 있다.10∼15살 청소년을 2년간 가르치는데, 올해 3기째 졸업생이 배출된다. 일본 전통오케스트라인 ‘호가쿠’도 이같은 방식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500년 역사를 가진 다도회도 성황이다. 가나자와에서 차 관련 공예품 생산이 발달한 것도 이 때문. 금박공예도 가나자와의 전통문화를 살찌우는 명물이다. 교토의 ‘금각사’ 등 일본 내 주요사찰의 금박이 대부분 가나자와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돔형 ‘21세기 미술관´ 관광객 300만명 다녀가 가나자와시엔 오는 2014년 신칸센이 개통된다. 가나자와역에 들어설 역사는 일본에서 가장 큰 유리 구조물이 될 예정.‘모테나시돔’이란 애칭이 붙은 이 구조물은 눈·비가 많은 이곳 기후환경에 맞게 돔형으로 설계됐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전통과 어긋난다.’며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측에선 파리 에펠탑 사례를 들어 ‘현대적 아름다움을 전통으로 만들어간다.’는 발상으로 건축을 강행했다. 이는 지난 2004년 개관된 시청 앞 ‘21세기 미술관’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건립비와 부지비용을 합쳐 200억엔이 투입되었다는 이곳 역시 처음 건축 당시엔 전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이 일었다. 주변에 현립 미술관이 있어 중복시비도 오갔다. 가나자와역과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는 돔형으로 설계된 이 미술관은 그러나 국내외 유명 건축상을 휩쓴 데 힘입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300만여명이 다녀갔다. 유명세를 치르면서 가나자와의 대표적 명물이 됐고, 점차 공동화되던 시 중심부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측은 미술관으로 인한 경제효과가 연간 180억엔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sdragon@seoul.co.kr ■ 소연습실 6시간 1000엔 시민예술촌 문턱 낮춰 |가나자와 임창용특파원|“이곳은 화재를 조심하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다는 두 가지만 약속하면 누구나 시설 이용이 가능합니다.24시간 꺼지지 않는 가나자와 문화예술의 엔진 같은 곳이지요.” 가나자와시 외곽에 위친 ‘가나자와 예술촌’의 후지이 히로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장은 “가나자와시민예술촌은 오로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활동의 거점”이라고 소개했다. 시민예술촌은 옛 방적회사 창고를 문화 창작 및 연습장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1996년 개관했다. 부지와 리모델링 비용으로 120억엔 정도가 들어갔다고 한다.3만 3000여평의 부지에 음악,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연습 및 발표를 위한 공간과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예약하면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후지이 촌장은 시민예술촌의 성공에 대해 “철저히 시민 이용자 중심의 운영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설운영의 기본 이념을 ‘시민이 주역’으로 설정, 실천하고 있다는 것. 전국 공립문화시설로는 처음으로 ‘연중무효·24시간 이용’시스템을 도입했고, 이용료가 매우 저렴하다. 음악이나 연극 공연 등을 연습할 수 있는 소연습실을 6시간 이용하는 데 1000엔이면 된다. 시민들의 문턱을 대폭 낮춘 것이다. 단, 시설 보호를 위해 이용 전 꼭 화재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또 이용자를 대표하는 ‘시민디렉터’를 위촉하고 있다. 예술촌의 자주적 운영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낌없는 지원이다. 가나자와시에선 가나자와현의 도움을 받아 연간 10억엔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후지이 촌장은 “예술촌을 시민 중심으로 운영하다보니 시설을 이용하려는 예약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연간 30만여명이 이용하는데, 그중 10%는 외지인들이라고 한다. sdragon@seoul.co.kr
  • 대구 관광 ‘동해안 연계 전략’

    대구시는 2011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유치를 계기로 대구를 관광 거점도시로 육성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21일 경북관광개발공사와 관광 진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규모 관광프로젝트와 관광상품 개발에 실무 경험이 많은 경북관광개발공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이들 두 기관은 대구·경북을 연계해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공동 홍보 활동을 통해 대구의 관광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또 경남과 강원도까지 아우르는 관광상품 개발에 힘을 쏟기로 했다. 이와 함께 대구시 관광개발 사업 추진 때 경북관광개발공사가 자금을 투자하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대구시는 또 도심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비보이와 마술공연, 뮤지컬축제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사육신의 위패가 봉안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 일대를 정비하고 경주 최씨 집성촌인 동구 옥골마을에 전통가옥을 복원할 계획이다. 동화사 통일대불 지하공간 개발, 팔공산집단시설지구 활성화, 팔공산 박물관타운 건립 등을 추진하고 현재 대구 동구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불로동 공예예술인촌 조성사업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불로고분공원 및 화훼목공예촌 조성, 안심습지 및 동촌유원지 생태 복원, 금호강 수변관광벨트 개발 등도 계획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구시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동안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카지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대구시는 팔만대장경 전신인 초조대장경 간행 1000주년 기념행사를 오는 2011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족 침입을 계기로 1011년부터 1087년까지 팔공산 부인사에서 만든 것으로 1232년 몽골군 침입으로 소실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2011년 대구를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대구의 문화와 관광자원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타버린 혼불

    타버린 혼불

    15일 새벽 1시12분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삭령(朔寧) 최씨 종가(宗家)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이날 화재로 본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 삼문 등 목조 기와건물 5채 가운데 본채 84㎡가 전소돼 29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30분만에 진화됐다. 목격자 박모(80·여)씨는 “갑자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부엌과 다른 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 집에는 숨진 박씨 등 2명만 살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씨의 방에 설치돼 있던 변압기가 합선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삭령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작가 고(故)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다.190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전통가옥으로 마을과 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노봉마을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숨진 종부 박씨는 18세에 전남 보성에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둘째 딸은 국회의원을 지낸 최영희(68)씨이며 아들 강원(63)씨는 서울대병원 내과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큰딸 강희(70)씨는 교직을 정년퇴직했다. 남원의료원에서 빈소를 지키던 강희씨는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면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며 종가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 집안은 문과 12명과 무과 14명의 급제자를 배출해 남원의 명문가로 알려졌다. 박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효원아씨, 박씨의 시어머니는 율촌댁, 시할머니는 청암부인의 모델이 됐다. 혼불문학관 문화해설사 황영순(54·여)씨는 “박씨는 기억력이 좋고 학식이 높아 말씀도 조리있게 잘하고 건강했다.”면서 “자녀들이 조석으로 문안전화를 하고 한 달에 두번 정도 방문하는 효자들”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빈소는 서울대병원과 남원 의료원 2곳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서울대 병원에서 열리며, 장지는 종가 옆 선산이다. 한편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북애향대상, 단재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고 1998년 지병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전주시 전통문화도시 청사진 잠정 확정

    전북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천년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 건설사업의 밑그림이 잠정 확정됐다. 26일 전주시에 따르면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총사업비 1조 6000억원을 투입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 19개 선도사업과 4대 우선사업을 선정했다. 4대 우선사업은 ▲한문화진흥원 건립▲무형문화유산의 전당 건립▲전통문화체험교육원 건립▲전통문화 도시경관 조성사업 등이다. 한문화진흥원은 옛 경원동 전북도 2청사 부지에 연건평 5700평 규모로 건립된다. 이곳에는 전통문화종합홍보관, 시민예술창작촌, 청소년어울마당 등이 들어선다. 무형문화유산의 전당은 동서학동 도청 산림환경연구소에 건립된다.1만 9630평의 부지에 911억원을 들여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 전통가교 등을 조성한다. 이곳은 다양한 무형문화를 체계적으로 계승·보존하고 체험·교육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통문화체험마당은 교육원, 판소리체험전시관, 완판본체험전시관, 한식체험관, 부채체험관, 서화체험전시관 등을 건립한다. 이와 함께 전통문화도시의 멋을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도시경관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멋과 맛의 거리, 은행나무길, 역사의 길을 만들고 한옥마을과 도심 야간 경관 등을 정비한다. 향교 앞길과 전주천변은 한식 테마거리로 단장된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단장(斷腸)의 고통이란 이런 것일까.1950년 9월초였다.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는 할 수 없이 어린 딸과 피란길에 나섰다. 서울 미아리고개를 막 넘었을 때였다. 허기를 견디지 못한 어린 딸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을 헐떡이다 그만 명줄을 놓고 말았다. 오열을 토해내던 아내는 정신을 차려 딸의 시신에 간신히 흙을 덮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남편과 재회한 것은 그로부터 몇달 뒤였다.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어느 겨울날, 남편은 아내와 함께 딸이 묻힌 미아리고개 근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딸의 무덤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얕게 묻어서 이리 저리 발끝에 차이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여겼다. 남편은 비통한 마음에 아내의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흐느꼈다. 저절로 한 편의 시를 썼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작사가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눈물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절며∼.”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말 그대로 장(腸)이 끊어지는 아픔의 노래다. 이 시는 1956년 이해연의 목소리로 처음 불려진 후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국민 가요가 됐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90) 선생.191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91세인 셈. 부인인 윤경분(86) 여사도 살아 있어 가끔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반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가요사(史)의 백과사전이요, 산 증인이다. 올해로 70년 가요인생을 맞는다. 그동안 무려 5000곡에 가까운 노래를 만들어냈으니 기네스북 등재가 부럽지 않다. 특히 노래비만 해도 ‘울고넘는 박달재’‘단장의 미아리고개’‘만리포사랑’‘소양강처녀’‘삼천포아가씨’ 등 10여개에 달해 생존 가요인으로는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지고 있다. ●청계천 주제로 10곡 선보인다 그는 요즘도 여전히 현역이다. 보통 사람의 나이로 보면 눈과 귀가 멀어 뒷방에 나앉을 법도 하건만 매일 오선지 위에 시를 써내려간다. 최근에도 ‘청계천 트위스트’,‘청계천 엘레지’,‘꿈꾸는 청계천’ 등 청계천을 소재로 한 가사를 10곡이나 만들어 놓았고, 이 가운데 여러 곡이 녹음 중이어서 늦어도 상반기 중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이 그토록 반 선생의 창작열을 달구고 있을까.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 위치한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반 선생(협회 원로원 의장)과 어렵게 마주 앉았다. 파란 체크무늬 넥타이에 정장을 한 모습이 90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더니 “이젠 잘 안들려. 성질은 급하고 할말은 많은데 말야.”라며 웃는다. 이어 “다리도 좀 쑤시지만 전철타고 다녀.(다리)부러지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지.”라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을 드러냈다. 병원에서 가끔 건강을 체크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아픈데는 없다고 했다. 채식 위주의 소식(小食)도 건강비결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이 나이에 매일 일기 쓰고 4개의 일간신문을 다 보고 살아. 사회면은 물론 사설까지 몽땅. 그러다 보니 잠은 새벽 1시쯤에나 자게 돼. 모든 것이 정신 통일이야. 그리고 말야, 아직까지 작품을 쓰고 있잖아. 그러니 치매 걸릴 틈이 어딨어? 음식? 거 많이 먹으면 못써. 그저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하고, 즐거움 속에 그냥 소리내어 크게 웃는 거야. 하늘이 놀랄 정도로 말야. 자, 따라해 봐.‘우하하하’, 이게 최고지, 암.” 그는 가끔 택시를 타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자신을 알아보는 운전사에게 자신의 나이를 물으면 70대라고 한단다.“기자양반, 다니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 많아. 그러니 내가 세수 안하고 꺼벙하게 다닐 수 있겠어.‘꼰대’소린 듣기 싫거든.”이라며 깔끔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그다. 최근 작품으로 화제를 옮겼다. 주저없이 서랍 속에서 악보를 꺼내더니 막 작업을 끝낸 ‘꿈꾸는 청계천’을 먼저 낭송한다.‘아, 청계천아 꿈꾸는 청계천아/육백년 긴 세월에 부귀영화 속절없고/임금님께 바친 절개 치마폭에 한을 담고/낙화되어 사라져간 궁녀들의 눈물이여.’ 고저장단, 정확한 발음과 감정이입이 사뭇 감동적이다. 듣는 자세가 진지해서일까. 그는 “자 들어봐, 이번에는 ‘청계천 블루스’야.”라며 다시 낭송을 했다.“네온등 꽃물결에 황혼빛 청계천/새단장 곱게 꾸민 분수가 꿈을 쏟네/그이와 만나자고 약속한 광교다리/퇴근길 늦은시간 가슴만 조마조마/아 서울의 연인이여 청계천 블루스/울어라 색소폰아 밤새워 같이 울자∼.” “어때, 괜찮아? ‘청계천 시리즈’로 10곡을 만들고 있어.(옆에 앉아 있는 작곡가 김병환씨를 가리키며)작곡이 훌륭해. 청계천을 가끔 걷다 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많아. 그래서 쓰기 시작했어. 이봐, 청계천의 다리가 몇갠줄 알아? 광교, 수표교, 배오개….22개나 돼. 다들 600년의 역사와 한이 담겨 있거든.” ●“‘꼰대´ 소린 듣기 싫다고” 옛날에는 을지로 3가 일대를 ‘스카라 계곡’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산에서 내려온 물이 스카라 극장 앞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갔다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일대가 생활무대여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다. 그가 왜 ‘청계천 시리즈’ 노래를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눈 감는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어디 (죽는 것도)맘대로 돼야 말이지. 먼저 간 동료나 선배들이 꿈속에서 천천히 오라고 자꾸 그래.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살면서 후배들을 이끌고 뒷바라지하라는 팔자지 뭐겠어.”라며 또한번 크게 웃는다. 요즘의 가요계 세태와 관련해서는 “국적 불명의 노래가 많은 데다 기승전결이 없어 영 맛이 없어. 또 듣는 노래가 아닌 보는 노래로 변질돼가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고….”라며 원로다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제시대 때)노래도 글도 다 빼앗긴 시절에 눈물로 우리 노래를 지켜왔어. 온돌, 김치, 된장만이 전통이 아니라 노래도 전통이 있는거야. 살려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매년 한번씩 ‘가요사랑 뿌리찾기 운동’을 펼칠 예정이라면서 살아 있는 동안 전통가요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본명은 박창오(朴昌吾).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1939년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사가 주관했던 전국가요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뽑혀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예명은 ‘진방남’.1940년 ‘불효자는 웁니다’로 일약 스타가 된다.1942년에는 작사가 ‘반야월(半夜月)’로 또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이왕이면 곧 일그러질 보름달보다 앞으로 점점 커질 반달이 희망적이라는 뜻에서 ‘半夜月’로 했다. 이밖에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등의 예명으로 암울했던 시절을 노래했다. ●“가요 뿌리찾기 운동 할 거야” 그는 애주가로 소문나 있다. 지금은 부인의 건강 때문에 일찍 귀가하지만 그 전만 하더라도 항상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렸다. 술시(時)가 되면 초걸이(1차)를 시작으로 소걸이(2차), 중걸이(3차)까지는 기본이다. 이 때마다 ‘자, 사랑합시다.’라며 권주사를 드높인다. 가끔 중중걸이(4차)까지 해도 귀가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얼마전에는 70여년의 음악인생을 정리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930쪽짜리 회고록을 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흥미진진한 가요사의 이면까지 담아 사료적으로도 중요한 저술이다. 슬하에 2남4녀를 두었으며 대부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 주요 노래 꽃마차, 고향만리 사랑만리, 불효자는 웁니다, 세세년년, 잘 있거라 항구야 등. # 주요 작사 두메산골, 만리포사랑, 무너진 사랑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산장의 여인, 삼천포 아가씨, 유정천리, 울고넘는 박달재, 잘했군 잘했어 등. # 주요 저서 반야월 히트가요 선집, 반야월 명작가요 전집, 반야월 가요야화, 불효자는 웁니다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참을 수 없는 봄 정취의 유혹

    참을 수 없는 봄 정취의 유혹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훌훌 털고, 가까운 곳을 찾아 봄기운을 마셔보자. 서울시는 23일 남산, 청계천, 서울 숲, 한강시민공원 등 ‘동네 봄나들이’ 명소 25곳을 소개했다. 봄꽃 향기에 취하고 싶다면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놀이터, 식물원 등을 둘러보자. 남산은 자연 탐구와 운동, 휴식으로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도심 속의 정원이다. 특히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색색이 피어난 야생화는 봄을 느끼기에 좋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가옥도 거닐 만하다. 광진구 아차산 생태공원에는 24시간 개방에 생태전문가가 늘 있어 체험학습에 안성맞춤이다. 또 주말생태교실, 봄 농작물 모종심기, 모내기 행사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자생식물관, 나비정원, 황톳길, 소나무숲, 습지원 등 22개의 테마공원도 가볼 만하다. 서초구의 청계산, 시민의 숲, 우면산 생태공원도 삼림욕과 함께 봄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청계산은 각종 봄꽃과, 바위가 많지 않아 가족 단위의 등산객에게 잘 어울린다. 우면산 생태공원은 자연 야산의 생태를 복원한 국내 최초의 산림형 생태공원. 주말 하루쯤 도심을 벗어난 듯 가벼운 산행 삼아 찾아도 좋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도 등산 마니아를 유혹한다. 자운봉을 비롯해 만장봉 등이 주말에 나들이 하기에 적격이다. 특히 도봉구를 가로지르는 중랑천변 산책로가 단장을 끝내고 손님을 맞는다. 벚꽃이 만개하면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을 듯싶다. 가족과 함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나들이 코스로는 강북구의 ‘국립 4·19묘지→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진달래능선→대동문(100분 코스)’이 안성맞춤이다. 또 북한산 진달래능선도 진달래에 취하며 30여분 정도면 오를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암사동 선사주거지, 석촌호수, 오금공원, 용마폭포공원 등도 봄나들이 명소들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진화의 첨병’ 컨셉트카 미래로 질주

    ‘진화의 첨병’ 컨셉트카 미래로 질주

    교통수단에서 첨단기술의 집합체로 진화하는 자동차. 그 진화의 끝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진화의 첨병은 각 자동차회사에서 선보이는 ‘컨셉트카(concept car)’다. 컨셉트카는 대량 생산을 앞두고 소비자의 반응을 떠보거나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내놓은 실험작이다.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공략대상의 시장 환경에 맞는 컨셉트카를 꾸준히 내놓으며 새로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컨셉트카, 시장개척의 첨병 현대차는 2007 제네바 모터쇼에 ‘카르막(QarmaQ)’을 선보였다. 각종 첨단 소재를 이용한 환경친화적인 디자인을 내세웠다.‘카르막’은 에스키모족이 흙, 고래수염, 동물가죽 등으로 짓는 전통가옥을 뜻한다. 설계 방식과 디자인에서 기존의 상식과 틀을 넘어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선 유리가 아닌 신소재를 이용해 만들어낸 ‘C’자(字) 모양의 옆면 유리창이 돋보인다.3중 에너지 흡수 구조를 통해 보행자와의 충돌 때 보행자의 충격을 감소시킨 일래스틱 프런트(Elastic Front)를 장착했다. 또 다양한 첨단 소재 사용을 통해 최대 60㎏ 이상 경량화함으로써, 연비 절감과 이산화탄소 및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친환경차량의 미래를 보여준다. 기아차도 유럽형 신차 ‘씨드´를 기반으로 한 씨드 스포티 왜건 모델과 컨버터블 컨셉트카인 ‘익씨드(ex-ceed)’를 공개했다. 익씨드는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컨버터블의 대세인 금속재 지붕 대신 전통적인 방식의 소프트톱(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지붕)을 채택하는 ‘역(逆)발상‘을 선보였다. 쌍용차도 SUV 컨셉트카인 ‘액티언 스포츠´를 내놓고 유럽 공략에 나섰다. 컨셉트카의 매력은 뭐니해도 파격과 실험성이다. 탄생과 함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양산의 영광은 선택받은 차의 몫이다. 시장반응에 따라 도로를 달려보지도 못하거나 현실 속의 각종 법규 등 제약으로 ‘성형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는 1991년부터 대표적인 컨셉트카인 HCD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였다. 초기 HCD시리즈는 당시만 해도 직선으로만 디자인되던 자동차에 곡선을 도입한 점이 독특했다.90년대 중반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곡선디자인 차량의 모태인 셈이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모터쇼에서 HCD시리즈의 열번째 모델 ‘헬리언(HCD-10)’이 나왔다. 현대차는 유럽, 북미, 아시아 등 거점에 디자인 연구소를 두고 10여종의 컨셉트카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양산된 것은 극히 일부다. 티뷰론과 싼타페 등이 대표적인 양산 사례다. 기아차는 2001년 유럽형 복합미니밴(KCV-1)을 선보이는 등 2000년대에 들어서만 14종류의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하지만 실제 도로를 달리는 것은 2,3종에 불과하다. 씨드시리즈는 유럽시장에만 출시됐다. ●오직 미래를 향해 달린다 기아차 관계자는 “컨셉트카는 양산을 위해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것과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앞서가는 종류로 나뉜다.”면서 “눈요깃거리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선보이는 신개념들을 언젠가는 도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선보인 컨셉트카는 디자인 부문에서 차종을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가 대세다. 속도·연료의 한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환경오염이 없는 천연연료나 전기, 수소전지로 달리는 자동차도 양산을 앞두고 있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도요타는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은 물론 어떤 공해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 차량 개발’을 선언했다. 폴크스바겐은 5.1ℓ 주유로 100㎞(ℓ당 19.6㎞)를 주행할 수 있는 ‘파사트 블루모션’을 선보였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대학원 박종서 교수는 “세계 각 회사들이 수많은 컨셉트카를 내놓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미래’라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컨셉트카는 운전자의 조작을 최소화하는 단순함이 주제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재벌 3·4세 경영참여 “한발 앞으로”

    재벌 3·4세 경영참여 “한발 앞으로”

    주요 그룹의 임원인사가 마무리됐다. 지난 연말부터 석 달 가까이 달려온 ‘인사 레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너 주자’들의 약진이다. 특히 3·4세로 넘어가는 ‘젊은 피’가 대거 승진했거나 새로 수혈됐다. 안팎의 불확실한 경영 여건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 대비해 안정적인 오너 체제를 두텁게 쌓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이나 사후 평가 없이 관대하게 이뤄지는 ‘핏줄 등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영 전면 속속 부상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재용씨는 올초 전무 승진과 동시에 고객총괄책임자(CCO)를 맡았다.2001년 상무보로 입사한 지 6년 만이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의선씨는 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해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언제 현대차 사장을 맡을 것인지가 핵심 관심사다. 현대가(家)의 다른 ‘선(宣)’자(字) 항렬들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정몽근(정몽구 회장의 동생)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일선 퇴진으로 장남 지선씨가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차남 교선씨는 입사 3년 만에 올초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그룹도 3세 체제를 구축했다. 이명희(이건희 회장의 동생)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씨가 이사대우 입사 12년 만인 지난 연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대표이사 타이틀만 남겨두고 있다.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이건희 회장의 형)씨의 장남 재현씨는 삼성가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2002년부터 CJ를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두 아들인 채형석·동석씨도 각각 총괄부회장, 부회장을 맡아 형제 경영을 펼치고 있다. 제주항공 런칭, 삼성플라자 인수 등은 형석씨의 작품이다. 효성도 3세 체제를 공고히 했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현준(사장)·현문(부사장)·현상(전무)씨가 올초 나란히 승진했다. 모두 핵심인 전략본부 근무를 거쳤다. ●요직에 포진한 잠룡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원태씨는 지난 연말 상무보로 승진했다.2004년 차장으로 입사한 지 2년 만이다. 얼마 전에는 IT 계열사인 유니컨버스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외아들 세창씨도 지난 연말 그룹 전략경영담당 이사로 승진했다. 부장 입사 1년 만에 요직에 배치됐다. 손(孫)이 많기로 유명한 두산가에는 4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경영 복귀를 추진중인 박용성 전 그룹 회장의 장남 진원씨가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석원씨가 두산중공업 부장으로 각각 근무 중이다. 그룹의 실세인 박용만(박용성 전 회장의 동생)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의 장남 서원(28)씨가 언제 경영에 합류할지가 관심사다. 서원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LG그룹에서 분리된 LS그룹은 본가와 달리 2세대인 ‘자(滋)’자 항렬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갓 합류한 20대 후계자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광모씨가 가장 눈에 띈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2004년 말 동생(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을 입적했다. 광모씨는 LG전자 재경 부서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다.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장남 윤홍씨는 2002년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지금은 GS건설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GS칼텍스 허동수(허창수 회장의 사촌형) 회장의 장남 세홍씨는 올초 상무로 경영에 합류했다. 대신증권 이어룡 회장의 장남 양홍석씨도 지난해 6월 공채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나란히 유학중인 LS그룹 구자홍 회장의 장남 본웅(28)씨와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의 장남 승담(27)씨는 입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딸들도 맹활약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장손녀인 CJ엔터테인먼트 이미경 부회장이 대표주자다.‘그룹 경영을 넘겨받을 딸’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맏딸 정지이씨가 가장 근접해 있다. 정씨는 지난 연말 전무로 승진했다. 롯데쇼핑 신영자(신격호 회장의 딸) 부사장의 딸 장선윤 롯데쇼핑 상무와 신세계 이 회장의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유통가의 맞수다. 정 상무가 백화점 업무에 가세하면서 세간의 화제인 ‘명품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진 조 회장의 딸 현아씨와 두산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딸 혜원씨도 각각 상무로 일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맏딸 성이씨는 그룹내 광고계열사 이노션의 설립을 주도했다. 직함은 고문이지만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양 현 회장의 두 딸 정담씨와 경담씨, 대신증권 이 회장의 맏딸 양정연씨는 갓 입사해 ‘기초 훈련중’이다. ●화려한 이력서 창업주 세대와 달리 이들은 화려한 이력서가 특징이다. 미국 하버드대·브라운대 등 이른바 명문대학이 몰려 있는 ‘아이비 리그’ 출신들이다.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수식어도 공통적으로 따라붙는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상무는 “이력서만 보면 기업들이 일부러 스카우트해올 인재들”이라면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인들이 자질이 떨어지는데도 핏줄이라고 무조건 중용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반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오너 후계자들은 신상필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무책임한 핏줄 등용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독립된 사외이사제 등과 같은 평가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미현 김태균 박경호기자 hyun@seoul.co.kr
  • [Local] 부여에 계백장군무예촌 조성

    충남 부여군은 7일 ‘계백장군 무예촌’을 2009년까지 충화면 가화리에 조성한다고 밝혔다. 무예촌은 2005년 방영된 SBS드라마 ‘서동요세트장’ 위 4545평에 총 82억여원을 들여 지어진다. 군은 모두 9만여평에 무예촌과 서동요세트장 외에 백제음식촌, 생태공원, 전통가옥형 펜션과 주차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무예촌은 전통무예공연장과 훈련장, 마상무예관, 마구간 등으로 꾸며진다. 이곳에서는 백제시대 무기와 복장으로 전통 마상무예와 국궁을 체험할 수 있다. 부여군은 계백장군이 태어나 젊은 시절에 무예를 닦은 인근 천등산과 서동요세트장 앞의 가화저수지 등을 연계해 백제관광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 [문화마당] 전통예술의 힘/한명희 예술원 회원

    지난 1990년대 말의 일이었다. 프랑스 아비뇽축제의 총감독 다르시에가 당시 필자가 책임자로 있던 국립국악원장 방을 찾아왔다. 아비뇽축제기간에 한국의 전통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그 대상을 물색하러 온 것이다. 접견실에서 전통음악과 춤에 대한 몇몇 비디오테이프를 보여 줬다. 고백하건대 비디오를 보여 주는 당시 필자의 심중은 겸연쩍은 듯 당당하지가 못했었다. 현대문명의 주류이자 첨병임을 자처하는 저들의 눈에 한국의 전통예술은 역시 한참 후진 변방의 예술로 비쳐질 게 뻔하다는 통상적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그때 필자가 느낀 충격은 그랬다. 전통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전통예술의 진가를 저들의 시각처럼 바라보는 심미안이나 가치의 준거를 갖추지 못한 외눈박이 세상보기가 우선 부끄러워 충격이었다. 저들의 시각을 통해서나마 그 동안 일상성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전통예술의 진수를 전광석화처럼 ‘돈오(頓悟)’할 수 있었던 게 더 큰 놀라움이었다. 당시 다르시에는 이매방의 승무를 보며, 이것이 어떻게 ‘전통’이냐고 놀라워하며, 머스 커닝엄(미국의 전위무용가로 백남준과도 활동)의 춤을 능가하는 현대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식상하리만큼 천편일률로 접해 그 진가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승무를 두고, 저들은 첨단적 전위무용을 능가하는 현대성을 느끼다니! 지난해 연말이었다. 나는 짐짓 판소리와 전통가곡만을 들고 파리공연을 추진했다. 시조시 한 수 부르는데 10분이 소요될 정도로 느리기 짝이 없는 음악, 그래서 정상적(?)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외면하는 전통가곡을 가지고 파리공연을 기획하다니. 그것도 전광판의 자막 해설은 물론 무대에서 흔히 쓰는 마이크도 일절 배제한 채. 그때 관계자 대부분이 우려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시에와 같은 예를 수시로 겪으면서 내심 확신하는 게 있었다. 우리가 우리 것을 보는 감각과 남이 우리 것을 보는 감각은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는 평범한 믿음이 곧 그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통가곡과 판소리, 두 가지 레퍼토리만으로 단순하게 꾸민 음악회는 기메박물관 400석을 이틀 모두 만석으로 매진시켰으며, 르몽드 문화면은 이 공연을 중심으로 한국예술 전반을 전면으로 다뤘다.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인 전통문화의 육성에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정책을 결집시켜야 마땅하다. 분석적 서구문화의 여파로 종합예술적 성격이 짙은 우리의 전통은 갈기갈기 분화되어 각자의 장르 속에 편입되어 왜소해졌다. 전통음악만 해도 서양 음악과 함께 음악이라는 장르로 간주되며, 그 입지가 좁아졌다.‘전통’의 넓이와 무게보다도 장르개념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실효성 있는 문화 계발정책을 위해서는 장르개념에 앞서 전통예술 대 현대예술이라는 이분법적 발상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전통의 범주 속에도 음악, 미술, 무용 등이 있고, 서구문화와 혼재된 현대 속에도 각종 예술이 있다는 대칭적 경계선을 분명히 인지하는 일이 곧 그것이다. 문화발전의 대원칙은 온고(溫故)하고 법고(法古)해서 창신(創新)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애정어린 온고는 하지 않은 채 지신(知新)만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거목으로 자랄 문화나무의 실뿌리가 내리지 못했다. 때마침 문화지형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전통문화를 비중 있게 키우려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의 문화정책이 그러하고, 국회 강혜숙 의원이 앞장선 전통문화진흥법의 발의가 곧 그것이다. 역시 문화현장에 밝은 현역들이기에 문화발전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문화중흥을 고대하는 국민의 염원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한명희 예술원 회원
  • 3대의 엽기적인 애정행각

    3대의 엽기적인 애정행각

    조·부·손(祖·婦·孫)의 3대가 한 마을에서 간통을 했다고 발칵 뒤집힌 마을 사람들. 전 부락 25호의 호주 25명이 간통자의 집 사립문에 새끼줄을 매고 간통가족을 추방하려다가 전 부락 25호 호주가 무더기로 입건되어 웃지 못할 화제를 빚고 있다. 법과 윤리는 어느쪽이 더 당당할까? 친척 건드리고 쫓겨났던 오(吳)노인집에 꼬리문 소문 친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조·부·손 3대가 무질서한 성(性)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분개한 마을 사람들이 한 가족을 마을에서 몰아내기 위해 사립문을 새끼줄로 묶는 등 폭력행위를 가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전남 광산군내의 ○○부락은 25농가에 1백50여 주민이 법을 모르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외딴 마을. 이 마을에 깊이 뿌리박혔던 전근대적 봉건사상은 해방과 더불어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윤리관은 달라졌고, 그래서「섹스·모럴」에도 붉은 신호등이 켜졌는지 모를 일이다. 정절을 최고의 미덕으로 내세웠던 이 마을은 지난 해 겨울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지난 5월 중순 분노의 사화산이 폭발하고 말았다. 할아버지 며느리 그리고 손자 등 3대가 고유한 부부유별(夫婦有別)의 풍속을 무시하고 친족들과 근친상간, 또는 동네의 총각 머슴과 놀아났다는 것. 사고는 이 마을 오홍식(吳洪植) 노인(가명·85)이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당시 55세의 나이로 혈기 왕성한 정력을 쏟을 길 없어 가까운 친척인 오충남(吳忠男)씨(가명)의 큰 어머니와 관계를 맺다가 들통이 난데서 비롯됐다. 남편 일찍 여읜 며느리는 수절 4년, 머슴과 눈맞아 얼굴을 못들게 된 그는 귀양살이(?) 봇짐을 꾸려 함평군 문장면으로 내뺐다. 그 당시만 해도 이 마을의 규율은 엄격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당연히 마을을 쫓겨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태는 자꾸 변했다. 그는 정든 고향을 버릴 수 없었음인지 추방 5년만에 다시 살던 마을로 돌아왔다. 주민들도 반대는 없었다. 오노인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근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뿐인 외아들을 결혼시켰다. 일 잘하고 건강한 류옥체(柳玉體)여인(가명·43)이 며느리로 들어왔다. 18세에 시집 온 류(柳)여인은 옥동자까지 낳았다. 그러나 류여인은 결혼한지 6년만에 6·25동란으로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 때가 24세의 꽃다운 청춘. 단란했던 가정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 때부터 커다란 시련이 청상과부 류여인을 덮치기 시작했다. 남편생각에 일손은 잡히지 않고 뜬 눈으로 몇 날을 지새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조차 모를 일이었다. 『어린것이 불쌍하지…』-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4년동안 수절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류여인을 칭찬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육욕을 억제하기란 힘들었다. 그녀는 어느날 이 마을에서 고용살이하는 총각 머슴과 눈이 맞았다. 그들은 눈짓으로 사랑의 말을 속삭여왔지만 고유한 향약(鄕約) 바로 그것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들판에서만 밀회를 가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신명이 났다. 길일(吉日)을 택해 수풀이 우거진 숲속을 밀실(密室)로 삼고 도취경에 빠져 서로 껴안고 뒹굴었다. 그러나 얄궂은 마을 청년들의 「서치·라이트」는 기어코 이들의 정사장면을 비추고 말았다. 손자가 친척과 추문내자 온마을이 추방운동 벌여 『○○네는 총각 머슴과 배가 맞았다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을 휩쌌다. 어린이, 아낙네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들의 험담에 열을 올렸다. 류여인은 그대로 앉아 무정한(?) 마을에서 함께 섞여 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총각머슴 새서방과 몰래 괴나리 봇짐을 꾸려 어디론지 마을을 등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도록 마을은 태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 66년 이미 어른이 된 류여인의 아들 相根(상근)씨(가명·26)가 어머니 주소를 알아내어 다시 마을로 모셔왔다. 그때는 주민들도 더 흉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해 겨울 또다시 마을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저주로 발칵 뒤집혔다. 총각인 상근씨가 손자뻘 되는 오삼랑(吳三郞)씨(가명·29)의 아내 정복순(鄭福順)여인(가명·27)과 정을 통하다가 삼랑씨에게 꼬리를 잡힌 것이다 이들의 추행현장을 붙잡은 삼랑씨는 기가 막혔지만 창피한 생각에 아내만 친정으로 쫓아버리고 사건을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이 약점을 노린 상근씨는 『광주에 집 한 채만 마련해주면 모든 사실을 비밀에 붙이겠다』고 거꾸로 삼랑씨에게 뻔뻔스러운 협상을 제의하여 문제가 표면화되어 버린 것. 협상은 결렬됐다. 두 사람 사이에 좋지않은 말이 오고 가면서 모든 추행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쩌면 3대에 걸쳐 그럴 수가, 그 조상에 그 자식은 어쩔 수 없는 법』이라고 주민들은 분개해서 쑥덕거렸다. 문제는 험악해졌다. 마을대표들은 마을회의를 긴급히 소집, 『미풍양속을 해치고 마을을 욕되게 했다』는 죄명(?)을 들어 오씨 가족을 마을에서 몰아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표들을 통해 이 뜻을 류여인에게 전했다. 류여인은 『8순이 넘은 시아버지를 남겨두고 그냥 떠날 수는 없다』고 며칠동안만 참아주기를 애원했다. 그러나 약속날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주민들은 또다시 마을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했다. 실력행사(?)까지 들어가자는 것에 의견이 일치됐다. 지난 5월 21일 이장 李敦雨(이돈우)씨(46)를 비롯한 마을대표 25명이 오씨집에 몰려가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 이에 오씨 가족은, 『유부녀 간통이 얼마나 대단한 죄냐? 요즈음은 서로 눈만 맞으면 사는 세상인데 뭣 때문에 죄가 되느냐?』고 팽팽하게 맞섰다. 대표들은 주민의 의견에 따라 오씨집 사립문을 새끼줄로 꽁꽁 묶어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농사일도 절대로 돕지 말자로「따돌리기」벌을 내리기로 결의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찰은 주민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입건하기에 이른 것. 한편 법을 모르는 이 마을 주민들은『법이 이런 줄은 몰랐다. 3대에 걸쳐 간통한 놈들을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간통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친고죄이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알려주면서 노한 주민들을 달래고 있다. <광주(光州)=정일성(丁日聲)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수확은 고사하고, 논밭을 갈아엎었다는 상처받은 ‘농심(農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농촌도 이제는 소득원을 다양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단순히 주식시장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고령읍 쾌빈3리 가얏고마을 주민들도 알게 모르게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었다. ●멜론으로 일어선 ‘작은 거인’ 가얏고마을은 주민이래 봐야 41가구 88명이 고작이다. 고령지역의 특화 쌀인 ‘흑미’가 주산물이지만, 그동안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5년 전부터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멜론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멜론은 3∼6월이 수확철로, 멜론 수확이 끝나면 곧장 비닐하우스를 철거한 뒤 벼농사를 다시 짓는다. 이를 통해 1년 열두 달이 농번기로 바뀌었다. 600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을 경우 매출은 150만원에 그친다고 한다. 게다가 농기계 운영비와 비료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반면 같은 규모에서 멜론 재배를 통해 거둬들이는 매출은 1000만원, 순수익은 600만∼700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멜론으로 얻는 수입만 연간 4억∼5억원에 이른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연평균 소득은 2300만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까지 올랐다. 배(쌀)보다 배꼽(멜론)이 더 커진 셈이다. 대다수 농촌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빈집도 가얏고마을에만은 비켜가고 있다. 홍석진 이장은 “지난해부터는 도매상인을 거치지 않고, 농협으로 멜론 판로를 일원화한 것도 소득 향상에 기여했다.”면서 “벼농사는 안 지어도 멜론 농사는 반드시 지을 정도”라며 미소지었다. ●“우리는 아직도 배 고프다” 주민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 선정을 계기로 새로운 소득원을 발굴,‘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근 중화저수지에 자연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1차 산업에 치우친 소득기반을 2·3차 산업으로 넓혀 나간다는 구상이다. 홍 이장은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늘면 직거래도 활성화돼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얏고마을 주민들을 위해 이 지역 대학인 가야대도 거들고 나섰다. 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경관을 정비하는 데 필요한 전통가옥 양식을 개발·보급한다는 구상이다. 고령지역에 숙박시설이 부족한 만큼 학교 기숙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원태 가야대 교수는 “마을이 자생력을 가져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을 수 있고, 소득 증대보다 소득 분배가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방문객이 아닌 주민 관점에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마을 주민들의 평균 소득을 오는 2010년까지 4700만원으로 지금보다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사진 고령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촌부들의 희망가 “젊은 사람들 많은 마을 만들고 싶데이”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가얏고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하지만 절실했다. 표현 하나하나에는 자식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이숙희(56·여) 서울 사는 맏딸 진경이, 수원 사는 큰아들 진봉이, 대구 사는 둘째 딸 보경이, 구미 사는 막내아들 덕봉이. 살기 좋도록 만들어준다 카이끼네. 흩어져 가지고 사는 4남매가 마을로 드와서(돌아와서) 다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데이. ●손욱수(55)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5년이나 됐데이. 가구 수는 그대론데, 주민 수는 옛날보다 반도 몬(못) 미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아이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뿌고, 젊은 사람들이 드오는 마을로 만들고 싶데이. ●조인제(50) 나이 50에도 우리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더간다(든다). 아~들(아이들) 통학시키려면 어려움이 많테이. 내 집 고치는 것조차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라카믄 이런 불편을 없애주는기 맞다. ●손봉화(77) 우리야 크게 잘 살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다만 마을 옆에 우륵박물관이 들어서고 나서 드오는 사람 한 명 없던기 마을에 사람들이 드오고 있다.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변추자(51·여) 1979년에 여(이곳에) 시집 왔는데, 지금은 친정보다 좋다. 친정 식구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 낀데, 기사에는 쓰지 마이소. 외지에서 시집온 나도 이제는 마을 사람 다 됐는데, 마을이 좋아지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끼다. ●이일균(59) 나락(쌀) 농사만 지으면 20마지기(논 4000평)가 있어도 자식 교육 몬 시키는 게 농촌 현실이다.4남매 대학까지 보내느라 땅 팔고, 안 빌린 학자금이 없데이.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이야 고향을 등지긴 어렵지만,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라마 소득부터 불라야(늘려야) 한다. ●홍석진(62)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은 어려우이끼네 새로운 소득원도 찾고, 마을 경관도 정비해야 한다. 뭐 할라카마(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뭐든 힘을 모아서 열심히 할 끼다. ●김조자(67·여) 농촌을 발전시킬라꼬 하면서, 뭐 할라카마(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뭔 규제가 많노. 마을 발전이라는 게 별 게 있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이가. ●손용수(67) 농촌이 어렵기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동네는 그동안 살기 좋다는 말은 들어왔다. 이웃끼리 단합도 잘 되고, 마을 일에 너나할 것 없이 거든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든다며 좋은 분위기 뿌사지지 안을랑가 걱정이데이. ●김태선(62·여)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는데 의심부터 든다. 주민들끼리 갈등이나 불만 없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주민들 마음부터 헤아리는 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아이가. 그라믄 뭘 한다고 해도 걱정 없다. ●김종순(55·여) 인생은 육십부터잉께네, 마을을 바꾸마 인자(이제)부터 올키(제대로) 인생을 살끼 아이가. 아직 50대 청춘인데 걱정 안 한다. ●김순자(56·여) 인자는 농촌도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일을 많이 해야 한다. 팔, 다리 아픈데 운동시설도 넣어주고, 목욕탕이라도 하나 있어야 일 마치고 시원하게 풍덩 빠질 수 있는 거 아이가. 그라믄 된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가얏고마을’ 이렇게 변신 ‘관광 안내원’을 자청한 이태근(60) 고령군수를 따라 나섰다.1만 1000여명이 거주하는 고령읍내는 차로 2∼3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고령은 4∼5세기에 번성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였으나, 남아 있는 사료가 충분치 않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읍내 뒷산인 주산 능선을 따라 올록볼록 솟아 있는 200여기의 고분들, 고분에서 발견된 문화재를 모아둔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탔다는 정정골,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양전동 암각화 등 다양한 문화유적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도 지루하지 않다. 이것도 모자라 한창 공사 중인 70만평 규모의 수목원,5만평 규모의 대가야테마파크 등이 올해 안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군수는 “지난해 180만명 정도가 고령을 찾았지만 대부분 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하룻밤 머물지도 않고 그냥 가는 게 현실”이라면서 “도로 하나 덜 내더라도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인 가얏고마을은 읍내 동북쪽에 위치한 정정골이다. 정정이라는 마을 이름도 맑은 가야금 소리에서 유래했다. 마을 양 옆으로는 각각 중화저수지와 우륵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가얏고마을의 변신은 대가야를 대표하는 가야금과 맞물려 있다. 마을 인근에는 현악기전시장과 가야금체험관, 예술인촌 등 ‘하드웨어’가 구축될 예정이다. 국제현악기축제와 농촌체험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마련된다. 전통 현악기의 ‘메카’로 자리매김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국비 34억원, 지방비 38억원, 민자유치 30억원 등 1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군수는 “읍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인프라를 하나로 묶어낼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고령군에서 가야군으로 개칭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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