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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현 “남편 손준호 절친과 치명적 키스 6번”

    김소현 “남편 손준호 절친과 치명적 키스 6번”

    뮤지컬배우 김소현이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키스신을 언급하며 남편 손준호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19일 방송된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는 김소현과 이민웅이 게스트로 출연했다.이날 김소현은 자신이 출연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남편 손준호가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었다. 저희가 어제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남편을 버리고 모든 것에 올인하는 역할을 하려니까 제가 하면서도 다른 날보다 더 민망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연기는 연기지만 키스신이 6번이 나오는 치명적인 역할이다보니 어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손준호의 절친 민우혁과 키스신을 연기하는 것 에 대해 “연습할 때에는 상대 역이 민우혁 씨로 보여서 걱정도 됐는데 무대에서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난다. 그냥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안나’라는 한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가족과 사랑 등 인류 본연의 인간성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담아낸 작품.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7월 14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케인호의 반란’ 작가 美 허먼 오크 별세

    ‘케인호의 반란’ 작가 美 허먼 오크 별세

    ‘케인호의 반란’ 등 수많은 소설을 집필해 ‘미국의 톨스토이’로 불려온 작가 허먼 오크가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다. 103세. 오크는 2차 세계대전 경험 등을 바탕으로 케인호의 반란을 비롯해 ‘전쟁과 추억’, ‘전쟁의 폭풍’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만 100세가 된 2015년에는 자서전 ‘선원과 바이올린 연주자: 100세 작가의 생각’을 펴내기도 했다. 오크의 대리인은 “오크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도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해군에 입대해 장교로 복무한 오크는 당시 기억을 살려 1951년 케인호의 반란을 썼고 이듬해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케인호의 반란은 1954년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영화로 제작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교육부 대표단 울산도서관 견학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교육부 대표단이 17일 울산도서관을 방문했다. 대표단은 이르쿠츠크주 교육부 장관 페레구도바 발렌티노 단장과 인솔자, 고등학생 등 4명으로 구성됐다. 울산도서관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울산에 머무르며 교육 교류, 우수시설 견학 등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대표단은 종합자료실, 장애인자료실, 디지털 자료실, 어린이·유아 자료실 등 각종 자료실과 15만여 권의 도서, 1만 3000여종의 전자책을 둘러봤다. 종합영상실에서는 시정 및 도서관 홍보 영상을 관람하고 전시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진전도 감상했다. 울산시와 이르쿠츠크주 간의 지속적인 독서문화 교류를 위한 도서 교환 행사도 한다. 울산시는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정은의 ‘산책을 듣는 시간’, 문경민의 ‘딸기우유 공약’, 이분희의 ‘한밤중 달빛 식당’, 구병모의 ‘한스푼의 시간’ 등 울산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5권을 전달한다. 이르쿠츠크주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수집된 작품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등 러시아 고전 5권을 전한다. 이르쿠츠크주는 구역으로 동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에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언니네 라디오’ 윤공주, ‘안나 카레니나’ 완벽 열창 “소름”

    ‘언니네 라디오’ 윤공주, ‘안나 카레니나’ 완벽 열창 “소름”

    뮤지컬 배우 윤공주가 ‘언니네 라디오’에서 입담과 가창력을 뽐냈다. 8일 방송된 SBS 러브FM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의 은프라 숙프리 쇼에는 윤공주와 민우혁이 출연했다. DJ 송은이와 김숙은 뮤지컬계에서 대단한 윤공주의 업적을 극찬했다. 이에 민우혁 역시 공감하며 “제가 데뷔 전에 윤공주라는 이름을 들었는데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서 대기실에 찾아가 팬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뒤 ‘아이다’ 오디션을 보는데 윤공주씨도 계시더라. 그 때 오디션을 보는 모습을 보고 ‘윤공주와 잘하면 되겠구나’ 했었는데 돼서 꿈을 이뤘다”며 “무대 위에서 호흡을 하고 나서 ‘괜히 윤공주가 아니구나. 이렇게까지 깊이있구나’ 느꼈다. 그 후에 더 팬이 됐다”고 윤공주에게 존경을 보냈다. 이에 윤공주는 “민우혁씨는 후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인성을 가지고 있다. 또 비주얼이 너무 멋있다. 그냥 주인공의 피지컬이다. 불공평한 게 훈훈한 비주얼에 노래 실력까지 뛰어나니까 계속 주인공을 하더라. 아직까지는 단점을 못 찾았다. 또 너무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밝게 만들어준다”고 민우혁에게 화답했다. 윤공주 민우혁은 5월 17일 첫 막을 올리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 출연한다. 윤공주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1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넘버 ‘자유와 행복’을 라이브로 열창했고, 송은이와 김숙, 민우혁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윤공주의 파워풀한 가창력에 두 DJ들은 “말씀은 조곤조곤하게 하셔서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는데 깜짝 놀랐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청취자들도 “윤공주 목소리 너무 예쁘고 멋지다”, “라이브에 소름 돋았다”, “윤공주 민우혁, 공연 너무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원작으로 재탄생 되어 아름답고 매혹적인 ‘안나’라는 한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가족과 사랑 등 인류 본연의 인간성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담아낸 작품. 오는 17일부터 7월 14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박보검 시집’서 못다 한 이야기… 인생, 사랑 그리고 행복

    ‘박보검 시집’서 못다 한 이야기… 인생, 사랑 그리고 행복

    등단 49년차. 올해 일흔 넷인 노(老)시인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치면 ‘드라마 남자친구 책’이 뜬다. 극 중 배우 박보검이 송혜교에게 선물한 책이 시인이 2015년에 낸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이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나태주 시인이 시집에서는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아 산문집을 냈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는 크게 인생, 사랑,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는 ‘행복’이다. 시인이 말하는 행복은 단촐하다. “저녁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외로울 때/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그는 우리가 소망하는 행복은 이미 내 안에 내재해 있으며, 다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좋은 쪽으로 성장시키는 일이다.”(181쪽) 가장 사랑받은 광화문 교보생명 글판으로 알려진 시인의 시 ‘풀꽃’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도 ‘풀꽃’에서 가장 와닿는 지점은 ‘너도 그렇다’였다고 한다. 시인은 “그 말이 독자에게 가면 ‘나도 그렇다’가 된다”며 “물아일체, 나아가 우아일체의 사상으로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너그러운 심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늙어 버렸다’는 시인. 그러한 시인이 톨스토이와 윤동주와 달라이 라마에게 보고 배운 이야기와 ‘박보검의 시집’으로 불리어 하염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책에 모두 담았다. 그는 시가 자신의 삶에 힘이 돼 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시 또한 다른 이들에게 도움·위로·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목마른 사람이라면 한 모금의 찬물이 되고, 그들이 지친 사람이라면 따스한 악수가 되고, 그들이 먼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동행이 되고, 그들이 외로운 사람이라면 가슴에 꽃다발이 되어 다오.”(141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빨래터 아낙들은 알았을까… 청계천변에 닥칠 자본주의 물결을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빨래터 아낙들은 알았을까… 청계천변에 닥칠 자본주의 물결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 투어’ 제32회 서울의 문학4(박태원의 천변풍경) 편이 지난 8일 청계천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종각역 5번 출구에 모인 참석자들은 무교동과 다동에 걸쳐 있는 ‘오래된 맛집’ 용금옥~부민옥~북어국집을 차례차례 탐방한 뒤 관철동으로 향했다. 삼일빌딩~베를린광장~종로양복점~안동장~송림수제화 등 방문 코스 모두가 미래유산이어서 마치 서울미래유산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3시간에 걸친 일정은 수표교~세운상가~광장시장에서 마무리됐다.이날 올겨울 들어 가장 낮은 체감온도 영하 19도의 한파가 몰아쳤지만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예약자 30명과 대기자 10명까지 40명이 모두 참석해 청계천변과 골목을 맘껏 누볐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씨와 견문기 필자 신수경씨는 막간을 이용해 ‘천변풍경 풍자극’을 즉석 무대에 올려 웃음보와 함께 추위를 녹여줬다. 참가자들은 “소설 속 빨래터 아낙네들의 대화를 만담으로 전달해줘 재미와 이해도를 높였다”는 소감을 남겼다.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며, 시대의 산물이다. 1930년대 청계천 주변에 살던 하층민들의 삶을 영화처럼 보여주는 장편소설이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1936년과 1937년 중편소설로 ‘조광’에 연재됐고, 1937년 장편소설로 개작돼 1938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청계천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뚜렷한 주인공 없이 70여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50가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태소설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시도했던 모더니즘과 처음 구현한 리얼리즘의 양 극단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천변풍경’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구보가 글을 배운 당대 최고봉 춘원 이광수는 “박태원씨의 ‘천변풍경’은 내가 일생에 읽은 문학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의 만년 작품에서 받은 것과 방불한 감동을 받는다. 작가의 그 진지하고도 경건한 태도, 그 꾸밈없는 붓을 아끼는 필법, 그 표현의 효과 그 어느 것으로 보든지 나는 이 작품을…인류의 문학적 작품들 중에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극찬했다. 문단 선배인 월탄 박종화는 구보가 춘원과 횡보 염상섭을 능가했다고 추켜세웠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조선 문단에는 실로 기기괴괴한 ‘갑바’ 머리에 너부죽한 이마를 앨 써 좁히고…이른바 최첨단(?)을 걷는 문학의 청년사도가 한 사람 나타났다. …‘천변풍경’을 통독하고 나니 아하! 박태원은 순수한 조선학파 문인이다. 그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가 순수한 경알이(서울)파 문인이다. …순수한 경알이 문학을 세워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태원은 확실히 대 춘원을 능가하고 서울 중류가정 시어머니, 며느리, 시뉘, 올케의 풍파를 잘 쓴다는 거벽 (염)상섭을 물리칠 수 있다.”월탄의 장담처럼 구보는 순수한 서울파 문인이다. 청계천변 수중박골(다동 7번지)에서 태어나 28세에 관철동으로 분가하기 전까지 천변에서 자란 이른바 ‘천변사람’이다. 여기서 ‘경알이’란 서울말을 쓰는 서울토박이란 뜻이다. 월탄은 “순 경알이적 풍속 행동 언어는 여태껏 다른 작가가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하던 난숙한 솜씨요, 묘사다. 더욱이 그 순 경알이적 어휘에 있어서는 조선말을 수집하는 어학자로 앉아서도 경알이 말의 노다지를 발견했다고 찬탄하여 당목치 않고는 못 배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말은 ‘~구료(구려)’, ‘~에요(어요)’ 등 특유의 어미 활용과 ‘것두’, ‘깎재두’ 같은 ㅗ모음의 ㅜ모음으로의 상승 경향이 특징이다. 소설에는 서울방언이 생생하고 풍부하게 기록돼 있으며 표준어로 쓰여 있다. 서울말과 표준어를 구분해 대화는 사투리로 하고, 지문은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사람을 이르는 변변한 호칭조차 없지만 한때 서울내기, 서울깍쟁이, 서울토박이 같은 호칭이 널리 쓰였다. 서울내기 혹은 서울깍쟁이는 비하하는 성격이 강해서 대중성을 갖지 못했고, 일부에서 애착을 갖는 서울토박이의 경우 ‘토박이’가 서울 사람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흠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앞 둔 요즘은 서울라이트, 서울메이트, 서울러 같은 국적불명의 영어식 별칭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경알이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부유한 조선 사람들이 사는 북촌과 일본인들의 거주지 남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촌, 청계천변에는 빨래터, 한약방, 포목전 등 전통적 시설과 이발소, 하숙집, 카페 등 근대적인 시설이 공존했다. 전통과 근대의 변화상이 교차하는 공간인 청계천변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세태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변혁의 공간이다. 주요 공간 중 빨래터와 한약국집, 이발소, 카페는 상징성을 갖는 장소이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뺄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라는 소설의 첫 대목에서 등장하는 빨래터는 여성 공동의 작업장이자 사교와 친목의 공간이었다. 천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소식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이었다.돈을 주고 빨래하는 일은 과거의 전통적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도시의 자본주의 논리를 이미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소문을 들으면, 무어 청계천을 덮어 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위생이 나쁘다든가…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이유? 온, 참….”이라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샘터 문답이 나온다. 청계천 복원 얘기가 나돌자 빨래터 주인 김첨지의 걱정이 크다. 1920년대부터 제기된 청계천 복원은 1934년 경성계획이 수립되면서 복개와 고가철도 건설 계획이 발표됐으나 재정 문제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위생 문제 해결 때문이 아니라 경성을 일본 본토와 중국 대륙을 잇는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군수물자 수송대책 차원이었다. 한약국집은 작중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실제로 작가는 공애당이라는 약국집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경영하던 공애당과 숙부가 운영한 공애병원이다. 자유연애로 결혼한 신식커플은 1934년 결혼한 자신이 모델이었다. 돈과 권력, 정력에만 관심 있는 50대 사법서사 민주사와 이발사 재봉이가 등장하는 이발소도 전통적인 사회와 근대적인 사회를 선명하게 구분 짓는 장소이다. 이발사는 1895년 고종의 단발령 이후 생긴 신흥 직업이었다. 전통사회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천한 사람이나 승려로 여겼다. 소설에 등장하는 평화카페는 광교 모퉁이 다동 1번지쯤에 있었다. ‘하나꼬’와 ‘기미꼬’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카페의 여급은 ‘여자급사’의 줄임말로 근대화가 낳은 새로운 여성 직업이었다. 천변풍경은 정치적인 사건이나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한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잔잔하게 펼쳐진다. 1930년대 경성 청계천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근대 서울과 서울사람 탄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시절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서대문(안산 아랫동네) ●일시: 12월 15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 ●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달콤한 사이언스] 이성이 많은 직장에 다니는 배우자를 의심하라?

    [달콤한 사이언스] 이성이 많은 직장에 다니는 배우자를 의심하라?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아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라는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가정법원 이혼소송 내용들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드라마 ‘사랑과 전쟁’만 보더라도 헤어지는 이유들은 가지각색이다. 한국의 이혼율은 OECD 30여개 국가 중 9위 수준이며 아시아에서는 1위라는 우울한 통계도 있다. 복지 천국이라는 북유럽 국가 연구진이 이혼 이유에 대한 재미있고 독특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들은 이성이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기혼자들이 이혼할 가능성이 높고 고학력 남성일수록 그 같은 경향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대 사회학과 인구학연구소 연구팀은 덴마크에서 1981~2002년에 결혼한 사람들과 이혼한 사람들의 비율과 직업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많은 곳에 근무하는 남성 기혼자나 남성이 많은 곳에 근무하는 여성 기혼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혼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각각 15%, 10%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왕립학회에서 발행하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 26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이 덴마크를 시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혼생활에 대해서 ‘살아있는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있으며 업종별로 성비가 다양하고 출산 직후 일자리에 복귀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1981~2002년 사이에 결혼한 남녀를 대상으로 업종과 이혼율을 분석했는데 전체 결혼 커플 중 10만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이성 직장동료의 비율이 높을수록 이혼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 종일 여성과 근무하는 남성의 경우 남성이 많은 환경이나 남성만 있는 곳에서 일하는 남성보다 이혼율이 1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또 남성과 하루 종일 근무하는 여성은 여성이 많거나 여성만 있는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여성보다 이혼율이 10%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성향은 고학력 남성들에게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 저학력 남성의 두 배 이상의 비율을 보였다. 직종별로 보면 젊은 이성동료들이 많은 호텔업이나 식음료관련 업종에서 이혼율이 높고 나이든 동성 동료들이 많은 농업분야나 도서관 사서직종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롤린 우글라 박사는 “덴마크의 이혼율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이번 연구에서는 직장에서 이성과 만나는 기회가 많을 수록 결혼의 안정성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를 전한 ‘사이언스’의 저자는 “본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며 아내와 행복한 결혼기념일을 맞을 수 있길 희망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손녀에게 줄 동화 만들다가… 작가로 인생 2막 시작”

    “손녀에게 줄 동화 만들다가… 작가로 인생 2막 시작”

    “딸이 어느 날 손녀에게 전해 줄 동화를 써 달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인생의 2막’을 열어줄지 그때는 몰랐죠.”지난 10일 세종시 한적한 마을의 ‘우보고택’에서 만난 최민호(62)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가족을 위한 동화 작가로 변신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보고택은 최 전 비서실장이 사는 오래된 한옥에 자신의 호인 ‘우보’(牛步:소의 걸음처럼 느린 걸음)를 따 붙인 이름이다. 지난해 12월 출간한 ‘미노스의 가족동화-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한 최 전 비서실장은 충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에 이어 차관급인 소청심사위원장, 행복도시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책을 출간했을 때만 해도 순수하게 글로써 평가받고자 ‘미노스’(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섬의 전설적인 왕)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공직자 출신임을 비밀에 부쳤다. 책이 출간되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쏟아졌고, 오히려 더 많은 독자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중 앞에 섰다. 처음 동화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땐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낯선 길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는 딸의 말에 동화가 가진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 전 비서실장은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동화를 읽으며 ‘세상엔 좋은 동화와 나쁜 동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의붓어머니가 딸을 죽이려 하고, 또 그런 의붓어머니를 죽임으로써 복수하는 백설공주를 나쁜 동화로 꼽았다. 반면 “톨스토이가 쓴 동화들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묵직하게 전달한다”면서 “이렇게 상상력을 키워 주면서도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이야기가 좋은 동화”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최 전 비서실장의 동화에는 오래도록 곱씹게 만드는 교훈이 담겨 있다. ‘아들 속의 아버지’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부하 직원의 실수로 발생한 금전적 손실을 자신이 메워 주고 부하의 허물을 덮어 준다. 최 전 비서실장은 “실제 일제시대 농업은행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일화가 담긴 이야기”라면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에 상상력을 더해 가족을 위한 동화가 됐다”고 말했다. 요즘 두 번째 동화를 쓰고 있다는 최 전 비서실장은 “책이 나오면 전국에 있는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 사진 세종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김동연 “일자리 20만개 넘으면 광화문서 춤추겠다”

    김동연 “일자리 20만개 넘으면 광화문서 춤추겠다”

    金 “폭우 뚫고 왔다” 李 “좋은 징조 같다” 구내식당 식판 배식에 톨스토이 책 선물 “비가 억수로 와가지구요.”(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폭염에) 좋은 징조 같습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이뤄진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국내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처음이다. 김 부총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정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를 맞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이어 김 부총리가 방명록에 “우리 경제 발전의 礎石(초석) 역할을 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써내려 갈 때도 이 부회장은 두 손을 앞에 모은 채로 기다렸다. 다만 이 부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언급을 극도로 자제했다. 재판 중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에서도 이 부회장이 아닌 윤부근 부회장이 대표로 나섰다. 윤 부회장은 “옆에 이재용 부회장입니다”고 소개해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은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함께했다. 두 사람 모두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았고 삼성 직원들이 이 모습을 보고 환호성도 질렀다. 이 부회장은 간담회 전에 촬영한 기념사진을 액자에 넣어 김 부총리에게 선물했다. 김 부총리는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등 책 2권을 전달했다. 김 부총리는 “창업 회장인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봤는데 톨스토이의 책을 읽었던 덕에 노비 30여명을 해방해 준 일을 사업 전에 한 가장 보람 있던 일이라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행사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를 배웅하면서 “어렵게 와 주셨는데 저희가 너무 불평, 불만만 늘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는 말도 남겼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러시아의 아침 우뜨라 라시야] 고려인이 숨쉬는 카잔서 1% 기적을 쏴라

    태극전사들이 ‘1%의 기적’에 도전하는 곳은 고려인의 끈질긴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땅이다.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수도였던 카잔이다. 과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투르크족 타타르인들의 터전인데, 스탈린 시대 시베리아 개발의 필요성에 따라 멀리 사할린 등에서 고려인이 강제 이주해 면화 등을 따며 살아남은 땅이다. 1804년 카잔주립대학이 세워져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작곡가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1837~1910), 혁명 영웅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34) 등을 배출한 곳으로도 이름 높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평지에 갑자기 현대적인 도시가 나타나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군수산업과 화학산업이 번창해 한눈에 돈이 많은 도시란 것을 느끼게 했다.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이듬해 세계펜싱선수권, 2015년 세계수영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는 등 러시아 스포츠의 메카이기도 하다. 카잔연방대학 한국학 과정에는 100명가량이 공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케이팝 경연 대회가 열려 34개 팀이 열띤 경쟁을 펼쳤고 스웨덴과의 1차전이 열렸던 니즈니노브고로드에까지 달려온 고려인 응원단도 있었다. 이들은 독일과의 최종전에도 응원전을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의 고영철 교수에 따르면 카잔과 니즈니노브고로드, 멕시코와 격돌했던 로스토프나도누 등 볼가관구의 14개 주에 1만 1000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랑하던 고려인들이 고국에서 온 전사들을 응원한다. 세계 최강 독일을 맞아 열심히 싸워야 할 분명하고도 엄연한 이유 하나가 더 새겨진 셈이다. 카잔은 날씨가 지금까지 있던 곳과는사뭇 다르다. 멕시코전을 마치고 돌아온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떠나기 전과 달리 비바람도 불고 쌀쌀했다. 그런데 카잔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긴 하지만 한낮엔 수은주가 30도까지 오른다. 공항 밖 더운 열기가 확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부상 선수가 많아 골치 아픈 신태용호인데 독일과의 벼랑 끝 승부를 앞두고 행여 컨디션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bsnim@seoul.co.kr
  • 文·푸틴 “대북 제재 완화되면 한·러·유럽 잇는 철도망 구축”

    文·푸틴 “대북 제재 완화되면 한·러·유럽 잇는 철도망 구축”

    北 나진-러 하산 철도 공동사업 등 협력 한·러, 한반도 종단철도 공동연구 지속 EAS 등 다자 지역협의체서 공감대 강조 남·북·러 3각협력의 新북방정책 강화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반영해 추진될 남·북·러 3각 협력, 특히 철도 부분이다. 대북 제재가 완화될 경우에 대비해 남북 경협의 교두보를 구축하는 한편, 남·북·러 협력을 통해 우리 경제의 영토를 넓히려는 문 대통령의 신(新)북방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러시아로선 푸틴 대통령이 공들여 온 신동방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양측은 한국~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과 관련, “‘우호적인 여건이 확보되는 대로’ 나진(북한)~하산(러시아) 철도 공동활용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호적인 여건의 확보’란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남·북·러는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하산, 동해 항로를 연결하는 물류 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 3차례에 걸친 시범운송이 진행됐다. 서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한 석탄을 화물열차에 실어 나진항으로 옮긴 후 벌크선으로 동해항을 통해 광양·포항항에 입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같은 해 3월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가 채택되자 박근혜 정부는 이를 중단했다. 한·러는 또한 시베리아대륙횡단철도망(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관련 공동연구를 위한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하원 연설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국이 서비스·투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신속하게 추진키로 한 것은 지난해 9월 두 정상이 합의했던 한·유라시아경제연합(EAEU) FTA 공동연구와 무관치 않다. 한·EAEU FTA의 물꼬를 트기 위해 우선 양국 간 서비스·투자 협상부터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러시아 주도로 출범한 EAEU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를 회원국으로 뒀으며, 인구 1억 8000만명, 세계 천연가스의 20%, 석유 매장량의 15%를 보유했다. 양 정상은 또한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공동노력을 하기로 했다. 아·태 지역의 전략적 측면을 논의하는 장으로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아세안+한·중·일·미·러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다자 지역협의체에서의 협력에 공감했다. 한편, 전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푸시킨을 거론하며 딱딱한 분위기를 풀었던 문 대통령은 이날 비즈니스포럼에서도 이들을 또 언급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톨스토이의 글을 인용했다.김정숙 여사도 짬을 내 대문호가 20여년간 머물며 ‘부활’, ‘어둠의 집’ 등을 집필했던 모스크바 시내 ‘톨스토이의 집’을 방문했다. 김 여사는 “학창 시절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뜨거운 인류애와 휴머니즘이 생각난다”면서 “방문해 보니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푸틴 “대북 제재 완화되면 한·러·유럽 잇는 철도망 구축”

    文·푸틴 “대북 제재 완화되면 한·러·유럽 잇는 철도망 구축”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합의한 공동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반영한 남·북·러 3각 협력, 특히 철도 협력 부분이다. 대북 제재가 순차적으로 완화될 경우 남북 경협의 교두보를 구축하는 동시에 남·북·러 3각 협력을 통해 우리 경제의 영토를 넓히려는 신(新)북방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양측은 한국~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과 관련, “‘우호적인 여건이 확보되는 대로’ 나진(북한)~하산(러시아) 철도 공동 활용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철도 사업에서 협력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호적인 여건의 확보’란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남·북·러 3국은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하산, 동해 항로를 연결하는 물류 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 3차례에 걸친 시범운송이 진행됐다. 서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한 석탄을 화물열차에 실어 나진항으로 옮긴 후 벌크선에 실어 동해항을 통해 광양항과 포항항에 입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곧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가 같은 해 3월 채택되자 박근혜 정부는 이를 중단했다.  한·러는 공동성명에서 시베리아대륙횡단철도망(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관련 공동연구를 위한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하원 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위한 공동노력을 해 나가기로 했다. 두 정상은 또한 아·태 지역의 전략적 측면을 논의하는 장으로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아세안+한·중·일·미·러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다양한 다자 지역협의체에서의 협력에 공감했다. 두 정상은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통화(29일)에서도 “남·북·러 3각 협력이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에 도움이 되고 다자 안보체제로까지 발전할 필요가 있다”며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한편 전날 하원 연설에서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푸시킨을 거론하며 딱딱한 분위기를 풀었던 문 대통령은 이날 양국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비즈니스포럼에서는 이들을 또 한번 언급하는 동시에 러시아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인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거명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톨스토이)라는 글귀를 꺼낸 뒤 “지금 만나고 있는 양국의 경제인이 앞으로 러시아와 한국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 갈 주역이다. 서로 간에 우정과 신뢰를 쌓고 경제협력 기회도 많이 찾으시기 바란다”고 밝혀 호응을 끌어 냈다.  김정숙 여사도 이날 일정이 빈 틈을 이용해 톨스토이가 20여년간 머물며 ‘부활’, ‘어둠의 집’ 등을 집필했던 ‘톨스토이의 집’을 방문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대통령 “내가 자란 부산까지 시베리아 철도 다다르기를”

    文대통령 “내가 자란 부산까지 시베리아 철도 다다르기를”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되면 러시아와 3각 협력으로 확대 러·韓·北의 지혜가 합쳐지면 동북아 경제공동체 다져질 것”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부산과 유럽을 잇는 철도 실크로드 구상을 밝혔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관통하는 남북 철도(TKR)를 구축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 새로운 물류 대동맥을 완성하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에서 연설한 건 처음이다. 러시아 하원의원 450명 가운데 410명이 자리해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18분 연설… 러시아 의원들 수차례 박수 문 대통령은 18분 연설에서 7차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우리는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더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세계 앞에 약속했다”고 말한 대목에서 예상치 못한 갈채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한 명의 지혜는 좋지만 두 명의 지혜는 더 좋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러시아의 지혜와 한국의 지혜, 여기에 북한의 지혜까지 함께한다면, 유라시아 시대의 꿈은 대륙의 크기만큼 크게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3국 간의 철도, 에너지, 전력협력이 이뤄지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의 공고한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 평화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러시아(58번), 한국(33번), 협력(23번), 평화(18번), 유라시아(17번), 경제(13번) 순이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공동 번영을 꿈꿔 왔다”며 “이 자리에 계신 의원 여러분께서도 그 길에 함께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과 한국 정부의 신(新)북방정책이 맞닿아 있다며 한·러 협력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러시아가 사랑한 대문호 톨스토이를 언급하며 “러시아 국민과 마찬가지로 한국 국민은 정신적으로 아주 강인하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똑같이 톨스토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정서적 공감대를 넓혔다. 러시아로 망명해 국권 회복을 도모했던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도왔던 나라도 러시아라고 언급하고 양국 간 역사적 교집합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자 의원들은 30여초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연단 뒤쪽으로 이동해 하원 의장단 및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환담하는 중에도 여러 번 박수갈채가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문 대통령을 둘러싸고 ‘셀카’ 촬영을 했다.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를 포함해 문 대통령은 러시아 의원들에게 3차례 기립 박수를 받았다. ●2차대전 ‘무명용사의 묘’ 헌화도 이날 문 대통령은 2차 대전 중 희생된 러시아인을 기리는 ‘애도의 날’(22일)을 앞두고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으며, 러시아 정부청사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면담했다. 또 재외국민, 고려인 동포, 러시아 인사 등 200여명과 ‘한·러 우호 친선의 밤’ 행사를 했다. 러시아 무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해 한·러 우호 친선의 의미를 더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대통령 “내가 자란 부산까지 시베리아 철도 다다르기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부산과 유럽을 잇는 철도 실크로드 구상을 밝혔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러시아 하원의원 4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를 관통하는 남북 철도(TKR)를 구축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 새로운 물류 대동맥을 완성하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에서 연설한 건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한 명의 지혜는 좋지만 두 명의 지혜는 더 좋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러시아의 지혜와 한국의 지혜, 여기에 북한의 지혜까지 함께 한다면, 유라시아 시대의 꿈은 대륙의 크기만큼 크게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와 남과 북 3각 경제협력은 철도와 가스관, 전력망 분야에서 이미 공동연구 등의 기초적 논의가 진행돼 왔다”면서 “3국 간의 철도, 에너지, 전력협력이 이뤄지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의 공고한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 평화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58번), 한국(33번) 다음으로 협력(23번), 평화(18번), 유라시아(17번), 경제(13번)란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이번 러시아 국빈방문의 목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러 경제협력 확대, 향후 남·북·러 3각 경제협력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게 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공동 번영을 꿈꿔 왔다”며 “이 자리에 계신 의원 여러분께서도 그 길에 함께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핵실험장과 미사일실험장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유예 등 대북 군사적 압박을 해소하는 조치로 호응하고 있다”고 달라진 한반도의 모습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과 한국 정부의 신(新)북방정책이 맞닿아 있다고 강조하며 한·러 협력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가 사랑한 대문호 톨스토이를 언급하며 “러시아 국민과 마찬가지로 한국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아주 강인하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똑같이 톨스토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정서적 공감대를 넓혔다. 한국 최초의 주(駐)러시아 상주공사인 이범진 공사가 1905년 러시아에서 ‘망국 소식’을 들었을 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러시아로 망명해 국권 회복을 도모했던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도왔던 것도 러시아라고 거론하며 양국 간 역사적 교집합을 강조했다. 한국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은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이다.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했던 문 대통령으로선 취임 후 두 번째 러시아 방문이다. 특히 이번 방문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과 한반도 주변 4강(미·중·일·러)의 첫 번째 정상외교 무대란 점에서 안팎의 관심이 쏠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공연리뷰] 행복과 질투, 사랑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공연리뷰] 행복과 질투, 사랑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정교한 앙상블 속에 악기 각각의 존재감이 조화롭게 드러났다.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지난 5일 첫 내한공연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현악4중주단다운 정상급 연주를 선보였다.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은 1부에서 작곡 순서상 베토벤의 첫 4중주 작품으로 알려진 베토벤 현악 4중주 3번과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가 연주됐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동명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소재로 쓴 톨스토이 소설의 금욕주의에 항의하는 뜻으로 쓴 곡이다. 베토벤을 연주하며 제1바이올린 뒤에 숨어 있는 듯했던 제2바이올리니스트 앤티아 크레스튼은 야나체크를 연주하며 자신의 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첼로,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순서로 같은 선율을 신경질적으로 주고받는 크로이처 소나타 1악장의 연주가 시작됐고, 제2바이올린은 연주자의 몸을 객석을 향해 노련하게 움직이며 악기 소리를 스스로 ‘증폭’시키는 듯했다. 2부에서는 슈만 현악 4중주 3번이 연주됐다. 슈만 4중주는 아르테미스 콰르텟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레퍼토리답게 색채감을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연주가 30여분간 이어졌다. 특히 비올리스트 그레고르 지글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역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동시에 자신을 드러낼 때를 아는 연주가였다. 넉넉한 풍채 때문인지 무대 위 그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날 공연은 관객에게 행복에서 질투, 사랑의 헌신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양 극단을 오가게 만들었다. 앞서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슈만과 야나체크의 대조’에 초점을 맞춰 이번 프로그램을 소개한 바 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과거 멤버들이 녹음한 베토벤 현악 4중주 음반이 워낙 유명해서인지 이번 베토벤 연주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특히 2부 연주가 좋았는데, 슈만의 낭만과 특유의 뉘앙스가 세련되게 잘 표현됐다”고 말했다. 이날 앙코르는 바흐의 코랄 ‘성령의 자비’였다. 1분 남짓의 아주 짧은 곡이었지만 바로크 시대의 트리오 소나타(2개의 선율 악기와 저음·통주저음 악기로 구성된 고전 실내악)에서 지금의 현악 4중주가 유래했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대였다. 이날 무대에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앞서 뉴욕 공연 등에서 올해 3월 세상을 뜬 미국의 비올리스트 마이클 트리를 추모하며 이 곡을 연주한 바 있다. 이번 연주를 놓친 실내악 팬이라면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파벨 하스 콰르텟의 내한 공연을 기대해 볼 만하겠다. 두 번째 내한하는 파벨 하스 콰르텟은 그들의 대표 레퍼토리인 스메타나의 ‘내 삶으로부터’ 등을 연주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봄에 만나는 ‘춤의 제전’

    봄에 만나는 ‘춤의 제전’

    국제현대무용제, 5개국 26개 단체 27일까지 공연 대한민국발레축제, 클래식~모던까지 31일부터 무대에지친 일상 속 몸의 리듬을 일깨워 줄 ‘춤의 제전’이 펼쳐진다.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 ‘제37회 국제현대무용제’와 국내 대표 발레단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제8회 대한민국발레축제’다. 세계 현대무용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가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과 마로니에공원 등지에서 ‘치어, 유어 댄스, 유어 라이프’라는 주제로 열린다. 한국과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미국 등 5개국 26개 예술단체 133명의 아티스트가 관객들을 맞는다. 개막작인 영국 현대무용단 ‘게코’의 ‘웨딩’과 폐막 무대를 장식하는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의 세 가지 작품 ‘나는 새로 그때’, ‘슬픈 사례’, ‘선인장’이 눈길을 끈다. 아미트 라하프 게코 예술감독이 안무한 ‘결혼’은 많은 계약 속에 묶여 있는 현대인을 ‘결혼한 상태’라고 규정하고 그 관계의 본질을 묻는 작품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초연이다. NDT의 ‘나는 새로 그때’는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밴 모리슨의 노래에 맞춰 소년 소녀들이 무대를 뛰어다니는 장면을 통해 집단에 반항하거나 집단으로부터 자유롭길 원하는 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풀어낸다. ‘선인장’에서 무용수들은 새롭게 편곡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에 맞춰 손뼉 소리, 괴성 등을 내는 ‘인간 오케스트라’로 변신한다. 3만~7만원. (02)765-5352. 국내 대표 발레 단체들의 명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오는 31일부터 새달 24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CJ토월극장·자유소극장에서 열린다. 클래식발레부터 독창적인 모던발레까지 부담 없는 공연들로 구성된 이번 축제의 주목작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 무용가들의 기획 공연이다. 발레무용가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신작 ‘더 타입 비’(The Type B)에서 전형적인 B형 발레리노인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몸짓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초청 공연으로는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동명 작품을 옮긴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와 한국 고전 ‘춘향전’을 재해석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이 무대에 오른다. 1만~8만원. (02)580-1300.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불두화 꽃그늘 아래서

    [정찬주의 산중일기] 불두화 꽃그늘 아래서

    산방 연못가에 불두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다. 마치 백자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쌀밥 같다.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핀다고 해서 불두화(佛頭花)란 이름이 붙었겠지만 실제로는 어버이날 무렵에 피기 시작해서 스승의 날부터 만개하는 꽃이다. 나는 낙향해서 한동안 불두화와 수국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불두화는 수국과 꽃 모습은 흡사하지만 잎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다르다. 산중에서 살다 보니 관찰력이 배가된 느낌이다. 불두화를 보고 있으려니 세 분의 스승이 생각난다. 모두 내 인생의 신호등이 돼 주신 분들이다. 문학의 스승이신 동국대 전 총장 고우(古雨) 홍기삼 박사님은 나에게 고결한 문학정신과 문장의 조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불가의 스승이신 법정 스님은 방대한 불경 속에서 불법의 핵심을 짚어 주셨고, 인생의 스승이신 아버지께서는 나의 사춘기 방황을 멈추게 해 주셨으며 남을 위해 살라고 유언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이 세 분은 나의 문학관, 종교관, 인생관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분들이 아닐 수 없다.며칠 전이 어버이날이었으므로 아버지 이야기를 짧게나마 하고 싶다. 돌아가신 지 11주년이 넘었다.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선친께서는 병상에서 몇 개월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시기 2개월 전에는 의사 권유로 퇴원하셨다. 광주 집으로 가지 않고 내 산방으로 오셨다. 나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와 나, 아내는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간병하기로 했다. 퇴원하신 아버지는 워낙 애연가였으므로 담배를 다시 피우셨다. 나는 엄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농담하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무심한 성격인 내게 접빈객(接賓客)을 잘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곡기를 끊으신 지 2주 만에 눈을 감으셨다. 새벽에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나서 잠시 나란히 누웠다가 일어나 보니 직감한 대로였다. 편안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보니 좋은 곳으로 가신 것이 분명했다.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슬프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생이 미소 속에 다 들어 있는 듯했다. 나처럼 사춘기 때 방황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중2 때부터는 학교공부를 아예 하지 않고 우리 집에 전세 들어 살던 월부책 장사의 책만 읽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은 뒤 친구들에게 개똥철학자 행세를 하고 다녔다. 재수 시절에는 가출을 했다. 어느 낯선 도시에서 낭만과 불안의 하루하루를 되풀이하다가 아버지에게 붙들려 귀가하고 말았지만. 그때 나는 불벼락이 내릴 줄 알고 몹시 위축돼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라이터를 주시면서 뜻밖에 목소리를 낮추어 자애롭게 훈계하셨다. “새 옷으로 갈아입어라. 벗은 옷은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 태워라. 너는 이제 어제의 네가 아니다.” 아버지의 훈계는 그뿐이었지만 어머니와 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나를 숨겼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또 하나 늘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우애인데 삼국유사에나 나올 법한 일화가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자 아버지께서는 친족이 모인 자리에서 “앞으로 나는 형님 내외분을 아버지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모시겠다”고 선언했다. 형제들의 우애를 강조하고자 하신 빈 말씀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미국에 사는 여동생 집에서 6개월 동안 사실 일이 생겼을 때 큰아버지를 남모르게 위로한 일이 있었다. 당시 농사를 짓던 큰아버지께서는 지병이 있어 광주의 딸 집에 와 계셨는데, 아버지는 큰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6개월 동안 배달하도록 한 제과점에 계산하고 떠나셨던 것이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법정 스님께서 아버지에게 드리라고 두툼한 겨울 내의 한 벌을 주신 적이 있다. 신도가 보내 준 내의였겠지만 스님께서는 형님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자못 감동하셨던 듯하다. 불두화만 보고 있으려니 함박꽃이 ‘나도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친다. 법정 스님께서 사랑했던 모란 꽃잎이 봄바람에 너울너울 하늘거린다. 용인에 계시는 고우 선생님 댁에는 무슨 꽃이 피어 선생님의 속뜰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 톨스토이의 고향… F조 예선 마지막 격전지

    톨스토이의 고향… F조 예선 마지막 격전지

    ‘신태용호’의 F조 조별리그 마지막 독일과의 경기(6월 27일)는 타타르인들의 숨결을 간직한 타타르 주도인 카잔에서 열린다. 우리 베이스캠프가 차려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1540㎞ 떨어져 있고 비행기로 1시간 50분 걸린다.카잔카강과 볼가강이 합쳐지는 퀴비셰프 저수지 위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1005년 만들어져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중 하나다. 2014년 현재 12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대 카잔(이스케카잔)은 13세기 말 킵차크 칸국의 몽골족(타타르인)이 볼가강 중류 불가르 왕국을 정복한 뒤 세워졌다. 1469년 러시아의 이반 3세가 정복했고 ‘공포왕’ 이반 4세는 오랜 포위 끝에 1552년 다시 점령해 칸국을 폐지했다. 1773년 푸카체프 폭동 때 잿더미가 됐던 것을 예카테리나 2세가 복구하고 시가지를 격자형으로 재건했다. 시베리아가 개발되면서 교역 중심지로 떠올랐고 1920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수도로 연방에 편입됐다. 1804년 카잔주립대학이 세워졌는데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작곡가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1837~1910), 혁명 영웅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34) 등을 배출했다. 대회가 열리는 6~7월 평균 기온은 섭씨 19.2도이며 비 오는 날은 4~5일, 습도는 67%, 결전지인 카잔 아레나의 해발 고도는 60m다. 한국-독일 외에 프랑스-호주(C조), 이란-스페인(B조), 폴란드-콜롬비아(H조) 경기 등 네 경기가 열리고 16강전과 8강전 한 경기씩이 치러진다. 2013년 7월 개장돼 하계유니버시아드를 개최했고 러시아 프로축구 FC 루빈 카잔이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4만 5000여명을 수용한다. 카잔 크렘린(성채)의 흰 벽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해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들머리 격인 스파스카야 탑은 야경이 특히 빼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오랜 정복과 피정복의 역사만큼이나 여러 종교,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로도 잘 알려졌다. 푸른색 지붕이 인상적인 쿨 샤리프 이슬람 모스크와 경건함이 압도적인 성모수태고지 정교회가 공존한다. 타타르인부터 독일계 주민, 아제르바이잔에서 흘러들어온 이민자들까지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신태용호를 응원하기 위해 카잔 아레나를 찾는 이들이라면 저녁에 모스크바를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2층 열차를 타 보라고 권하는 현지 유학생이 꽤 많다. 카잔 중앙역 앞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아침 햇살 속에 마주하는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신태용호가 16강에 조 2위로 오르면 7월 2일 사마라에서, 조 1위로 오르면 다음날 베이스캠프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8강 진출을 다투게 된다. 16일자 지면을 통해 두 차례 평가전이 열리는 잘츠부르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소개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는 한국의 해물탕을 좋아한다. 이유는 국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나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제 병원까지 다녀왔던 분이라 뵐 수 없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내주셨다. 서태지가 나왔던 1991년 현재,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제목만치 서글프다. 그를 만난 아침은 소설의 첫 장면처럼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소설 주인공 끼엔은 열일곱 살 때 북베트남 정규군에 입대한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많이 자원입대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은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전사자 유해발굴단으로 끼엔은 부대원이 몰살당한 지역을 찾아간다. 가는 곳마다 끼엔은 생시를 구별할 수 없는 혼령을 목격하곤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한 무리의 흑인 병사가 산기슭으로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도 찾아온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끼엔에게 프엉만은 확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다. 전쟁은 그녀를 변화시키고,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끼엔은 글을 쓴다. 악몽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고자 끼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쓰는 일이었다.“신짜오(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며 외웠는데 금방 잊은 인사말, 통역해 주시는 하재홍 선생께서 가르쳐 주셔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 선생은 천호동에 있는 한 모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모시고 내려왔다. 그는 담배를 맘대로 태울 수 있는 모텔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홍마초의 뿌리와 이파리, 꽃잎을 담뱃잎에 섞어 말아 피워 물고 환각에 들어가곤 했다던 북베트남 병사들이 떠올랐다. 꼬박 밤을 새운 나보다 더 초췌한 그를 만나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가려 할 때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얘기를 시작할 때 마치 정글에 비 내리듯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졌다. 장딴지까지 차오른 핏물 속을 행군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벌건 내장을 드러낸 해물탕이 나왔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대로 쓴 톨스토이식 소설이 아니다. 끔찍한 비극의 찌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지금과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쓰기와도 달랐다. “그래요. 맞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쓰자 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비슷하다는 데 베트남어판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번역이 이상한지 읽기 어려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1988년 베트남말로 번역됐는데 참 좋았어요.” 그가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단순히 마르케스의 영향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했던 마르케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달리, ‘전쟁의 슬픔’은 비극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끌어 쓰고 있었다.소설에서 2375회나 이름이 등장하는 끼엔은 1969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해 북베트남 보병사단의 병사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던 작가의 이력과 유사하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보기에 끼엔이 아니다. 숨은 주인공이 있다. 끼엔이 외면적 주인공이라면, 950회 이름이 나오는 프엉은 내면적 주인공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작가들,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 같은 이들은 여러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 넣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끼엔은 베트남 전쟁을 겪은 베트남 병사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이고요. 프엉은 내면의 제 자신입니다.” 마르케스와 다른 그의 글쓰기에는 베트남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혼령들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끼엔이 찾아가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고이 혼’이라는 지역이다. 우리말로 하면 ‘혼을 부른다’는 초혼(招魂) 지역이랄까. 거기서 끼엔은 죽은 자를 두 눈으로 자주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으스러진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귀신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이다. 정신병이 아니라 해질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이 귀신의 노랫소리로 들린다. 소설에는 귀신 72회, 유령 24회, 혼령 18회, 망령이 4회 등장한다. 모두 죽은 이의 영혼들이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상력이 아니에요. 동남아 사람들은 육신이 사라져도 혼령이 일상에 함께한다고 믿지요. 내 작품에서 영혼, 귀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쓴 거예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어도 혼령으로 떠돌죠. 문화권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공산주의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유령이 뭐냐 하지요. 가톨릭 신도들은 영혼이 위로 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아니라 혼령은 영원히 우리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작가로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소통시키는 영매(靈媒)다. 죽은 자 중에 호아라는 여성 병사 얘기가 가장 마음 아팠다. 호아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98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호아는 부대원의 길을 인도하는 선도병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미군이 있는 곳으로 부대원을 인도했다. 그들을 포위한 미군이 다가오자 부대원을 남기고 호아가 미군에게 뛰어든다. 풀밭에 쓰러진 호아 위로 알몸의 미군들이 숨을 헐떡이며 먼저 차지하려고 으르렁댔다. 집단 강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보면서도 끼엔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을 던지면 위치가 발각돼 죽을까 봐.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던 비겁함은 살아남은 끼엔에게 가장 아픈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 때 여군들이 생포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군에게 강간당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얘기를 쓴 거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택시 드라이버’, ‘람보’, ‘플래툰’ 등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미국의 시각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오리엔탈이면서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베트남을 소비해 왔다. 이 영화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이며, 자가치유 방식이다. 미국인이 겪는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이 주제다. 그나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우리의 입장에서 전쟁이 파괴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한편 ‘전쟁의 슬픔’에는 영웅이 없다. 도박과 환각에 빠진 베트남 병사들이 등장한다. 짐승으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기에, 베트남 정부로서는 지금도 꺼림칙한 소설이다. 승리한 전쟁을 ‘슬픔’으로 표현했다며 처음엔 제목이 ‘사랑과 숙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1995년 런던 인디펜던츠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 2011년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정작 베트남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금서(禁書)였다. 베트남 국내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잘 모른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에게 물어 보면 외국에서 이 소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는 학생도 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 끼엔처럼 그는 아직도 악몽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이만큼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까. 베트남 파병을 다녀와서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한국인 얘기를 전했다. “많이 회복됐어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울어 주고 그러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더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예요. 미군이나 한국군은 낯선 타국에서 전쟁의 비극을 겪은 것이죠. 베트남 군인은 함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풀 수 있었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화 상대도 없으니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거예요.” 이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제27청년여단 소년병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방황하던 그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교수였던 아버지는 작가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전쟁 무용담이나 문학 작품 얘기를 많이 했죠. 군에 입대하고 6년 동안 전쟁터에 있느라 글을 잊었지요. 전쟁 끝나고 돈 벌러 다녔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글재주 있다며 기억해 주셔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거죠. 처음엔 전쟁 중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장 깊은 체험이 전쟁이었기에 전쟁 소설을 쓴 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극복하는 생존 방식이었다.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 작가로 한국인에게 전할 말씀을 부탁드렸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기에 승자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체제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통일 후 갈등이 컸어요. 남베트남 사람 중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망명했어요. 전쟁을 통한 통일은 가짜 통일이에요. 진짜 통일은 평화를 통한, 대화를 통한 통일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인내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의 교역국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베트남이다.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과의 교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소설과 베트남 문학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다. 내년에 베트남 문학과 교류를 추진을 위해 베트남에 가볼 요량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000년에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베트남 작가협회와 결연을 했어요. 이후 경제협력은 많이 하는데 문학 쪽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죠.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데 한국 문학 번역은 고은, 방현석, 김영하 외에 뜸해요.” “깜언깜언(정말 감사합니다).” 배운 표현을 이제야 써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베트남 말을 써 봐야겠다. 해물탕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아차,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의 필명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다. 개울물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흐르는 베트남의 지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적지 않은 인세를 받아 서방으로 이민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 중 정글에서 자던 병사처럼 지금도 허름한 곳에서 노숙인처럼 살아야 편하다는 그의 선조가 견디며 살던 땅의 이름이다. 1952년생 바오닌. 시인·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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