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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구역 개편을 말한다] 행정구역개편 가상 시나리오

    [행정구역 개편을 말한다] 행정구역개편 가상 시나리오

    새해 아침,지리산 정상인 천왕봉(해발 1915m).산 아래 마을인 함양,산청,하동,남원,구례 등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내뱉는 구수한 사투리로 영·호남 사람들이 모이는 화개장터처럼 왁자지껄했다.천왕샘에서 약수물을 떠서 건네며 “와따 친구 반갑네잉.올해는 소원풀이 하소잉. 니도 복 많이 받어뿌라마.” 잠시 후 먼 산 너머에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불끈 솟아 햇살을 비추자 환호하는 메아리가 울림으로 되돌아왔다.경제권,생활권,개발권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지리산’ 통합시가 생겨나면서 지역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고 이웃 사촌끼리 트고 지내는 미풍양속이 되살아났다.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일상을 가상 시나리오로 엮어봤다. ●지리산처럼,섬진강처럼 포근하게 산을 내려온 몇몇이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덕담을 건넸다.“우리들끼리 언제 경상도,전라도가 있었나.그래서 인자 맘이 놓이네.”화개장 손님들은 구례군 토지면과 구례읍 사람들이 더 많다.반대로 화개면 주민들은 하동장이 아닌 구례읍장 단골손님들이다. 구례 토박이인 구제훈(64·토지면 기촌마을)씨는 “마을에서 2㎞ 떨어진 화개장터는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닌 장이고 거기 사는 서재근,정재은이가 친구여서 늘 만난다.”고 자랑했다.토지면과 화개면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서로가 분별없이 잘 지내다가 지역감정으로 조금 꺼림칙했으나 이런 거 저런 거 다 사라지니까 다들 좋아한다.”고 전했다.같은 생활권인 구례와 하동,함양군 등 산사람들이 지리산 품처럼 통크게 합쳐지면서 부쩍 내왕이 잦아지고 농산물 판매량이 늘었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 “지역감정 몰라요” 구례읍사무소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던 이모(50)씨는 새해부터 경남 함양군 마천면사무소로 출근했다.이씨는 “마천면에 홀로 사시는 장모님이 거동이 불편해 외동딸인 아내가 병수발을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광양시 다압면사무소도 새해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섬진강 다리 건너 하동읍에 사는 신참 여직원 2명이 기능직에 배치되면서부터다.구례군 토지면 이일권(54·중기마을)씨는 “우리 마을 40가구 가운데 대여섯 가구는 경상도에 처가가 있고 행정구역이 통합되면서 영·호남이 한 가족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리산 칠선계곡을 사이에 두고 위아랫마을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도 교류가 잦아졌다.함양에는 남원댁이,남원에는 함양댁이 적잖다.마천면사무소 남자 직원은 “주민 가운데 50대 후반만 하더라도 두 지역에서 혼사를 자주 했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감정으로 거의 막혀 아쉬웠다.”고 웃었다. ●아직까지는 영~ 어색하구먼 많게는 4~5군데 군이 합쳐져 통합시가 됐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어색하다.전남 중·남부권인 고흥·장흥·보성·화순군이 합쳐졌으나 일부는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통합시를 말해야 할지 나고 자란 고향을 내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불평했다. 1000여명에 이르던 전남도청 직원들도 대부분 고향과 연고지의 시·군청으로 전진배치됐다.고위 직급은 한정되고 직원들이 넘치면서 눈치보기,편가르기,연고찾기가 더 심해졌다.예산을 맡은 한 공무원은 “옛날에는 도청을 통해 국비를 받아 쓰니까 일하기가 편했는데 정부에서 직접 예산을 관장한 뒤로는 현지 사정도 모른 채 까다롭게 군다.”고 불만을 터트렸다.통합시장은 지역별 재경 향우회가 통합이 안 되고,그대로 유지되면서 참석에 부담을 느낀다고 하소연했다.연례행사였던 읍·면·동별 체육대회는 군 대항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횟수가 줄었고 주변 상인들의 거친 항의로 통합 이전 군 단위로 돌아가면서 열린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남해안축제로 발돋움 전남 여수시가 2007년 말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결정되면서 한동안 경남 쪽에서 “우리가 들러리냐.”는 등 볼멘소리가 들렸다.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호화 유람선이 그림 같은 남해안 일대를 오가면서 육지와 바다를 잇는 거점별 테마 관광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김용우(52) 여수시 기획계장은 “여수 세계박람회 방문객들이 여수는 물론 순천,광양,고흥과 경남 하동,진주 나아가 부산까지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하승완(57·지방자치) 조선대법대 교수는 “행정구역 통합은 예산을 통한 중앙정부 직접 통제 강화로 풀뿌리 지방자치를 뿌리째 흔드는 잘못된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인천 3047만㎡ 10년넘게 도시계획 족쇄

    인천 지역에서 10년 이상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토지면적이 서울 여의도 면적의 3.6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3일 국회 국토해양위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인천 중구·동구·옹진군)이 국토해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천의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토지는 총 3047만㎡로 집계됐다. 미집행 기간별로는 10년 이상∼20년 미만 토지가 341만 3000㎡,20년 이상∼30년 미만이 167만 5000㎡,30년 이상이 2537만 3000㎡이다. 이 가운데 토지소유주가 행정기관에 토지 매입을 요구할 수 있는 매수청구 대상토지로 지정된 32만 3000㎡에 대해서도 실제 매수청구는 1만㎡(3.07%)에 그쳤다. 이는 토지소유주가 매매나 개발 등 재산권 행사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실거래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는 보상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박 의원은 “인천의 경우 30년 이상 장기미집행 토지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시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받고 있는 만큼 30년 넘게 미집행되고 있는 도시계획은 해제하거나 매수청구 대상토지로 지정해 시민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외국인 분당 10배 땅 보유

    외국인이 국내에서 보유한 땅 면적이 분당 신도시의 10배를 넘어섰다. 27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토지는 2억 196만㎡이다. 분당 신도시 면적의 10.3배, 전 국토 면적의 0.2%다. 외국인이 보유한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27조 8182억원이다. 올 상반기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들인 땅은 742만㎡, 처분한 토지는 362만㎡다. 상반기 외국인 보유 토지면적은 지난해 말보다 380만㎡ 늘었으나 증가율은 1.9%로 지난해(9.9%)보다는 낮았다. 외국인들이 사들인 땅은 경기도 44.2%, 인천 16.3%, 서울 12.4%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땅 매입자는 교포가 79.9%였다. 용도별는 선산·노후활용 목적이 53.2%로 가장 많았다. 소유자 국적은 미국(56.8%), 유럽(15.4%), 일본(9.3%), 중국(1.2%)의 순이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 19번 국도변에 자리한 ‘송정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는데, 각각 한수내(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마을이 되겠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던 것을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때 마을 존재조차 몰라 1590년쯤 금녕 김씨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1800년께 창녕 성씨가 입주해 크게 번성했지만, 여순사건 때 마을 전체가 소개되면서 가구 수가 줄었다. 안한수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건 50년 전쯤으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도 없고 딱히 마을을 떠난 사람도 없어 22호 40명 남짓한 주민이 한 가족처럼 거주 중이다. 당시 뿔뿔이 흩어졌던 집들 중 일부가 신촌에 정착했는데 그런 연유로 ‘새로 생긴 마을’, 즉 ‘신촌’이 된 것이라고. “큰길에서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터라 일제시대 전까지만 해도 내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많아 의병장 고광순이 은거하며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담양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고경명의 후손으로 산능선 너머 연곡사에서 순절했지요.” 여기저기서 마을 설명이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고영만(70)씨는 말이 없다. 그이는 고광순의 손자이다. 안한수내는 한학자들에게도 좋은 피난처였던 터라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한자에 능하다고 한다. 마을 초입 정자의 현판과 상량문도 이장이 직접 쓴 것이란다. 예전엔 개울가 주위로 다랑이 논이 많았지만 소득을 올릴 수 없어 20년 전부터 과실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두릅, 고로쇠, 고사리, 젠피(초피)도 수확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피서를 즐기려는 외지인들이 적잖이 몰려드는데, 부녀회에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매일매일 쓰레기 수거와 오물 처리를 한다. 그렇다고 펜션이나 최신식 민박집이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평상과 유산각 대여료를 받는 게 전부다. 모기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선 잠을 못잘 만큼 시원하다. ●봉화산 봉화축대 아직도 흔적 남아 간혹 등산객들도 보이는데 봉애산을 거쳐 왕시루봉(1212m)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부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이곳을 거쳐 서울까지 소식이 닿았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축대 흔적이 남은 봉애산에는 불을 피웠던 옛 기억 대신 산불을 감시하는 무인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왕시루봉은 2017년까지 출입통제로 묶여 있어 공개적인 산행은 할 수 없다. 마을을 관통하는 한수내는 이 왕시루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다. “고생한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지. 나무를 해다 팔아 식량을 구입했어. 새벽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었지. 소나무 껍질을 말려서 돌로 빻아 먹었는데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어. 산죽 열매를 먹으려고 화개 연동골까지 가곤 했는데 열매를 갈아 채에 내려 죽을 쒔어. 그 열매조차 매년 열리는 게 아니었는데 일설엔 산죽 열매가 맺히면 흉년이 든다는 말도 있고, 봉황이 먹는 음식이란 전설도 있지. 그야말로 안한수내 사람들 모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송기홍(77)옹이 씁쓸히 술잔을 들었다. 마을 자랑은 딱히 할 게 없단다. 전기, 전화, 차가 다 들어오니 불편할 것도 없다.5년 전 2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하루 세 번씩 군내버스도 다닌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가는 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송정리는 구례읍과 하동군 화개면 중간쯤에 위치한다.
  • [李정부 지역발전정책 추진 전략] 행복·혁신·기업도시 개발 어떻게

    [李정부 지역발전정책 추진 전략] 행복·혁신·기업도시 개발 어떻게

    국토해양부는 21일 지역발전정책 추진전략회의에서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균형발전 전략의 큰 틀은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행정복합·혁신·기업도시 축소 논란이 있었으나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행복·혁신·기업도시 등을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들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지역성장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특히 혁신·기업도시가 축소될 가능성과 관련,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으로 이전할 공기업이 민영화를 해도 예정대로 지방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확실하게 교통정리까지 했다. 혁신도시가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확실한 정책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통폐합 공기업이 이전할 혁신도시는 지방자치단체간 협의 등을 통해 결정하기로 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주택공사는 경남 진주로, 토지공사는 전북 완주로 이전할 계획이지만 두 공기업이 통합할 경우는 어디로 최종 목적지를 정해야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업·대학 등의 이전을 유도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을 추가한 것은 지역발전효과를 파급시키고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이해된다. 참여정부 지방발전정책의 줄기를 이어받고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가꾸기 위한 대책이 보완됐다는 의미를 가진다. 행복도시에는 첨단기업·연구소·대학·비즈니스 지원기능을 적극 유치하기로 했다. 행정기능 수용만으로는 조기에 50만 인구를 충족하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행복도시 이전 기업·대학에는 싼값으로 땅을 공급하고 세금도 깎아 주기로 했다. 기업들의 지방행(行)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당근’의 핵심은 개발권이다. 핵심수요자인 기업에 도시개발권을 더 주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 기업도시는 주로 개발사업자가 개발·분양해 왔다. 정작 수요자인 기업들은 인센티브가 적고 규제는 많아 참여가 저조했다. 기업들의 호응이 커질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세부기준이 나오지 않아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은 “기업들이 지방행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청사진을 짤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이번 지원책의 특징은 수요자 맞춤형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이전 기업 또는 기업군이 각자 수요에 맞게 ‘리모델링’을 할 수 있도록 토지 수용권, 도시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수립권, 시공권, 분양권 등을 더 주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기업도시 시행자가 개발구역 토지면적의 50% 이상을 확보해야만 토지 수용권을 준다. 따라서 이 ‘50%’ 기준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부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기업도시 시행자가 해당도시 토지를 일정부분(20∼50%) 직접 사용해야 하는 규제와 개발구역 기준(330만㎡ 이상)도 완화될 전망이다. 지식경제부는 국토해양부와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법(기업도시개발특별법)을 고쳐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충남 탕정에 투자할 때, 현행 기업도시 규제 때문에 개별단위로 내려갔지만 앞으로 규제가 완화되면 협력업체들과 함께 지방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지경부측의 설명이다. 이 경우 기존 수도권 부지 매각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지금은 토지공사가 채권 형태로 사들이지만 앞으로 건당 50억원까지는 현금으로 사준다. 광역경제권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것도 지역발전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광역경제권 내의 원활한 교통을 위해 수도권 제2외곽, 부산·대구·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을 건설한다. 광역경제권간 교류를 위해서는 서울∼평택고속철도, 제2서해안고속도로, 서울∼행복도시고속도로, 제2남해안고속도로 조기완공, 수도권∼강원권 고속화철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류찬희 안미현기자 chani@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를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또는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약 40년, 피아골대피소에서만 20년을 지낸 함태식(81)옹의 저서에 따르면 1984년 산장 신축 굴착공사 중에 나온 인골만도 한 트럭분이나 된다고 한다. 피아골,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계곡 초입의 직전(稷田)마을도 그로 인해 유래했다는 게 보편적이다. 원래는 8세기 중엽 연곡사를 찾던 사람들 중 김해김씨와 밀양박씨 2가구가 농경지 이용이 가능한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평도·직전·죽리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토지면 내동리가 되었지만 국립공원 구역 내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 직전마을을 따로 떼어내 직전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고 오는 2011년까지 주민 이주 작업을 완료키로 결정했으니 오히려 직전만 외톨이가 된 셈이다. ●규제 심해 관광객 발길 뜸해져 마을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자리한 ‘산아래첫집’ 한형석(46) 한선임(40) 부부는 20년 전 피아골로 들어왔다. 남편 형석씨는 결혼 전부터 설악과 지리를 누볐던 산꾼이었다. 멋모르고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나는 이도 많지만 다행히 한씨 부부는 TV도 라디오도 접할 수 없던 산중생활을 슬기롭게 견뎌냈다. 적어도 철거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타 관광지가 그렇듯 비수기와 성수기 구분이 뚜렷한 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규제가 심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심지어 이미 ‘마을이 철거된 게 아니냐?’고 문의 전화를 해오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예요.” 이주 단지 신규 조성이나 금전적 보상 등의 대안이 있긴 하지만 용역만 끝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하다는 게 한선임씨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국립공원 권역을 아예 마을 위쪽으로 옮겨 규제가 심한 공원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바라기도 한다. 마을 진입로에서 징수하는 연곡사 문화재관람료(2000원)도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주단지는 연곡사 아래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 되었든 피아골 산행 초입, 가장 끝 마을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다. ●성수기는 고로쇠 한달, 여름 한달, 가을 한달뿐 8년 전 ‘노고단산장’(상호)을 인수한 정명곤(48)씨는 이주단지가 연곡사 아래로 정해질 경우 그냥 그곳에 머물 계획이다. 어중간한 지역에 뚝 떨어져나가 식당을 계속 꾸려갈 자신이 없어서다. 정씨의 말대로라면 피아골 주민들의 성수기는 고로쇠 한 달, 여름 한 달. 가을 한 달뿐. 그렇다고 나머지 달은 마냥 노는 게 아니어서 고로쇠가 끝나는 3월 말부터 산나물을 뜯고, 새끼를 낳은 벌들을 위해 분봉 작업을 해야 하고, 그것마저 끝나면 슬슬 여름 장사를 준비하며 짬짬이 죽순 수확도 한다. 여름이 정신없이 지나면 산열매를 따고, 가을 장사 준비도 해야 하고, 후딱 단풍철이 지나면 눈 오기 전 고로쇠 호스 점검 작업에 들어간다. 눈이 폴폴 쌓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1월에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그저 “실속은 없이 바쁜 생활”이라며 너스레다. 적어도 이번 여름 동안은 민박과 식당을 겸한 직전의 30여집들 모두 철거와 이주의 머리 아픈 시름을 접어둔 채 복작복작 관광객들로 바빠져야 할 터, 피아골을 훑는 시원한 바람이며 맑은 물줄기도 덩달아 분주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남원IC 등으로 나와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이후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선다. 연곡사 입장료 2000원은 마을에 식사하러 간다고 얘기하면 안 낼 수도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구례 문수리는 왕시루봉(1212m) 능선을 곁에 두고 평행선처럼 그어진 마을로,‘밤재’는 이 문수리 안에서도 제일 끝, 도로가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들어서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 김해 김씨가 처음 정착해 개척한 ‘율치’는 밤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해발이 600여m다. 덕분에 질매재의 잘록한 산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이 율치 아래에 신율이 있고, 신율 못 미쳐 밤재가 있다. 지금은 율치와 신율을 합쳐 통상 밤재라고 부른다. 예전부터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두 곳 모두 밤 ‘율’자를 사용한다. 실제 밤재는 마산면 화엄사에서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을 오갈 때 거치는 형제봉 북쪽 해발 약 720고지의 고갯길 이름이기도 하다. ●첩첩산중 밤나무골 ‘개발 몸살´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 등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며 마을이 불에 타고 방치되었던 율치와 신율과는 달리 밤재는 10여년 전에 새로 생긴 부락이다. 산간 논밭 터에 하나씩 집이 생기면서 이제 13호 남짓까지 가구 수가 늘었는데, 계곡을 끼고 형성된 민박집이나 퇴직을 하고 들어온 외지인들의 전원주택이 대다수다. 밤재 입구에는 집채만 한 큰 바위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 두지바위(뒤주암) 안쪽 골짜기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이 바위를 청학동 석문으로 여기고 살다가 1913년 3월11일 밤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져 그 운세가 다했다고 믿는단다. 최근엔 마을 진입로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전태균(49)씨는 그게 또 못마땅한 모양이다. 길이 넓으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게 마을 주민들이겠지만 공사 때문에 큰 바위며 족히 80년은 되었을 법한 소나무를 마구 베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는 살리고 도로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어이 베어내고 조각조각 도려내는 것이 싫다. ●금싸라기땅 변신 ‘외지인 세상´ “길이 굽이지면 돌아가면 되고, 조금 늦게 천천히 가면 되잖아요.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라면 다른 마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길의 편리성이 오히려 이 마을의 정취를 빼앗아갔어요. 무분별한 개발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공사비도 적게 나오는데 마치 공사비를 늘리기 위한 편법 같다니까요.” 배낭 가득 두릅과 엄나무 새순을 따온 전씨는 도처에 그득했던 산나물이 줄었다며 연이어 한숨이다. 도벌이 금지돼 숲은 울창해졌지만 그로 인해 볕이 못 들면서 약초나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자랄 수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종복원센터와 방사 곰들의 자연적응훈련장까지 이곳에 들어섰을까. 전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일대는 벌거숭이였다. 구례군 전체가 아궁이 군불을 때던 시대였으니 나무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어김없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적당한 간벌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다. 가난한 이웃들은 꽉 막힌 산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는데 전씨는 30리 고갯길을 지게질하며 넘나들어도 고향 떠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들어와 살 수 없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첩첩산중이던 동네에 길이 뚫리면서 구례읍까지도 15분이면 족하다. 좋은 경치와 맑은 공기 덕에 저절로 땅값이 오른 것. 이제는 원주민보다 외지인들의 비율이 3배는 더 많을 정도다. 두지바위는 깨졌지만 21세기의 밤재는 새로운 청학동으로 급부상 중인 셈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가 있긴 하지만 문수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밤재까지 택시비는 1만 2000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문수사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18) 전남 구례군 토지면 조동마을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18) 전남 구례군 토지면 조동마을

    경남 하동과 군계를 이루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중기마을은 1780년쯤 연곡사로 승과를 치르러 들어간 승려들이 아녀자를 데리고 오다 숨겨둔 곳, 김해김씨가 절터를 만들었던 곳, 혹은 승려가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중터’ 또는 ‘승기’라 불리다가 1950년쯤 외곡과 피아골의 중간 지점이라 하여 ‘중기’라 개칭했다. 작은 중기마을 안에 교집합처럼 들어선 조동마을은 지리산 왕시루봉(1212m)에서 갈라진 봉애산(613m)과 목아재를 뒷동산 삼고, 피아골에서 출발한 연곡천 물줄기 너머 중기마을을 마주하고 있다. 중기 뒷산이 구례와 하동을 나누는 삼도봉∼불무장등∼황장산∼촛대봉 능선이니 결국 조동은 앞뒤로 지리산의 험준한 산세, 피아골의 풍만한 청류를 고루 품은 셈이다. 마을 어른들은 녹차, 밤, 매실 농사에 종사하고 요즘 같은 계절엔 고로쇠 작업도 병행한다. 대체로 기온이 따뜻해 겨울 내내 눈이 쌓이는 날은 사나흘뿐. 그래서 녹차 농사가 잘되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선 녹차를 상비약처럼 사용한다. 싱싱한 찻잎을 바로 덖는 것이 아니라 아랫목에 일주일씩 널어 건조시킨다. 발효차는 외딴 마을 주민들의 감기약과 소화제 역할을 대신해 왔다. 조동마을 최고령 부부 박봉수(86) 할아버지와 임남례(80) 할머니는 슬하에 무려 9남매를 두었다. 할머니는 섬진강 건너 문척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50년을 살았다. 전에는 하동장 구례장 모두 걸어 다녔는데 이제 그럴 여력은 없다. 도로가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아골과 연곡사를 오가는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있어 불편함은 덜하다. 용케 일제 때나 한국전쟁 때 마을이 소개(疏開) 당하는 아픔도 겪지 않았다. 마을 이름의 첫 글자(助)대로 그 몹쓸 난리 속에서 정말 하늘이 도운 건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난 1999년 지리산 일대의 물난리는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진이라고 믿을 만큼 강한 충격이었단다. 마치 물이 서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 물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풍광 좋던 계곡은 그렇게 한바탕 몰아친 홍수 때문에 황폐화되었다. 다리가 떠내려간 게 벌써 두 번째. 다리 위로 물이 넘쳐 휩쓸려 간 사람도 많았다. 모 심으러 왔다가 얼떨결에 떠내려간 이도 있었으니까. 마을과 도로를 잇는 시멘트 다리는 2006년에 새로 놓았다. 마을 위쪽엔 올해로 조동마을 주민 4년차인 정명엽씨가 산다. 시국사건에 휘말리는 등 고초를 겪다가 1980년대 초반 가족들을 데리고 독일로 훌쩍 떠났다고 한다. 그 후 10년을 조금 더 채우고서야 타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대구의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했다. 처음엔 이 산중생활이 유배나 진배없었지만 지금은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고 너스레다.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TV가 없으니 세상사 보고 듣는 것도 없이 삶의 꼬인 것들이 하나씩 풀어져버리는 느낌이란다. 가끔씩 그리운 산악회 친구들이 다녀간다. 동남향인 조동은 계곡 건너편 중기마을에 비해 아침이 빠르다. 정씨는 ‘조동’마을을 ‘아침이 빠른’ 마을로 해석하길 좋아한다. 마을은 모두 깊은골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물 흐름도 좋고 물맛과 수질이 뛰어나다. 마당 한쪽으로 흐르는 ‘서출동유’의 석간수 소리에 맞춰 정씨가 연주하는 나지막한 트럼본 소리가 겹겹이 덧칠하듯 포개진다. 땅거미 지는 지붕들 위로 함박눈처럼 음표들이 나풀나풀 내려앉는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조동마을로 가려면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서야 한다.
  • “경북도청 이전 후보지 기준 완화하라”

    “경북도청 이전 후보지 기준 완화하라”

    오는 6월 예정된 경북도청 이전지 결정을 앞두고 도내 상당수 시·군이 도청이전추진위원회의 후보지 입지 기준안이 부당하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청추진위가 당초 이달에 확정·발표키로 한 후보지 입지 기준안 마련이 3월 초로 연기되는 등 파행이 우려된다. ●“기준 따르면 신청할 부지 없다” 볼멘소리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4일간 실시한 북부·서부·중부·동남부 등 4개 권역별 주민설명회 이후 이날까지 안동시 등 13개 시·군이 도청이전추진위에 입지 기준안 개선 방안을 제출했다. 추진위는 주민 설명회 당시 주요 도청 입지 기준안으로 ▲전체 토지면적 최소 15㎢(계획 인구 15만명) 이상 ▲전체면적 중 개발 가능지 면적 10㎢ 이상 ▲경사도 20% 이하 ▲자연생태환경 및 공적 규제지역 중 보존지(조수 보호구 경계 1㎞ 이내, 하천 구역 및 소하천 주변 250m 이내 등) 제외 ▲유보지(자연공원 지구 경계에서 500m 지역 등) 면적 비율은 최대 50% 이하 ▲개발 가능지 직경 6㎞ 이내 분포 등이다. 이에 안동시는 지역에 산간 농경지가 많아 경사도를 25% 이내로 상향할 것과 유보지 일부 삭제, 평가기준 사전 공개 등 12개항의 개선을 요구했다. 산악지대인 영주시는 전체 토지면적 최소 10㎢로 하향과 전체 면적 중 개발 가능지 면적 직경 7㎢, 경사도 25% 이하로 기준안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평야지역인 영천시는 전체 토지면적을 18㎢(계획 인구 50만명)로 확대하고 풍수지리학적 입지 기준 등을 반영해줄 것을 건의했다. 포항시는 개발 가능지 면적을 직경 8㎢로 축소하는 반면 개발 가능지 직경 8㎢ 확대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경북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한 군위군은 면적 및 개발 가능지 면적 10㎢ 및 7㎢(〃 10만명)로 각각 축소, 경사도 36.4%로 상향 등을 반영하도록 했다. 의성군은 100㏊ 미만 소규모 경지정리 및 농업보호 구역에 대한 개발 허용과 유보지 면적 비율을 최대 70%까지 확대 적용토록 했다. 이밖에 경주·구미·상주시와 청송·영양·예천·봉화군 등이 전체 토지면적 축소와 경사도 상향 조정, 생산녹지 유보 등을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 시·군 관계자는 “도청이전추진위의 후보지 입지 기준안의 각종 규제로 후보지로 신청할 부지가 없다.”면서 “공정한 경쟁을 위해 후보지 기준 완화와 함께 도청 이전지 규모 축소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새달 기준안 마련 계획 차질 우려 따라서 도청추진위는 이달 중 이들 시·군의 요구 사항을 종합 검토한 뒤 3월 초 추진위를 개최, 후보지 입지 기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추진위의 신도청 입지 기준안 마련 과정에서 안동 등 북부지역 시·군들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들 지역 11개 시·군 관계자들로 구성된 북부지역 혁신협의회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등 향후 추진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도청 관계자는 “신도청 이전 후보지 입지 기준 마련을 위한 시·군의 건의 사항을 수렴해 다음달 중 공정하고 합리적인 입지 기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농평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농평마을

    지리산 주능선 서쪽에 치우친 삼도봉(1499m)은 전남·전북·경남이 만난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삼도봉 북쪽이 전북 남원이고, 서남쪽은 전남 구례, 동남쪽은 각각 경남 하동이 된다. 삼도봉 남쪽, 그러니까 전남과 경남을 가르는 도경계 능선을 따르면 불무장등(1446m)∼황장산(942.1m)을 거쳐 19번 국도로 떨어지는 색다른 산행이 가능하다. 현재는 반달가슴곰 보호 등의 이유로 비법정탐방로가 되었지만, 반달곰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몇해 전만 해도 삼도봉에서 19번 국도를 오가는 종주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능선의 반 토막 산행만 원한다면 꼭 농평마을엘 들러야 한다. 농평∼불무장등∼삼도봉이 약 4시간, 농평∼황장산∼화개가 5시간 30분쯤 걸린다. 농평은 도로가 갈 수 있는 가장 끝, 삼도봉에서 뻗은 능선과 고작 10여 분 떨어진 산중의 산마을이다. 풍수지리설 ‘노호농골(老號弄骨)의 대지 근처에 평평한 곳’이라 해서 농평이라 부른다.1950년대엔 270명쯤 살았지만 지리산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6·25전쟁 때 불에 탔고, 무장공비 침입에 대비한 독가촌 철거 때도 동네를 비운 적이 있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650m에서 803m까지 자료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데, 만약 800m가 넘는다면 ‘하늘아래 첫동네’는 바로 이곳 차지가 되는 셈이다. 언젠가 가을, 농평마을 이강율(50)씨 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이미 보름이 지났는데도 지리산 능선에 걸린 둥그런 달은 푸른빛이었다. 자정을 넘긴 어스름 시골길에 까치발을 서면 손끝에 걸릴 듯한 별 세 개, 산너머까지 길게 이어진 구름, 바스락대는 풀벌레 소리, 등 뒤로 파도처럼 걸린 남도의 산자락…. 오래 된 산악인들에게 농평의 민박집이라곤 이 댁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강율씨 댁에 다시 들른 건 꼭 7년 만인 모양이다. 이씨는 주로 구례나 하동으로 일을 다니며 생계를 잇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땐 본가인 농평을 비롯, 구례로 순천으로, 소위 세 집 살림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1남 2녀 모두 올곧게 자라 다행이다. “50년을 살아서인지 밖에선 못 살 것 같아요. 읍에만 나가도 답답합니다.” 농평 태생 이씨는 그렇다 쳐도 멀리 경상도 진주에서 시집 온 아내 이순자(49)씨에겐 지금도 아찔한 기억이 있다. 둘째가 급체를 했는데 추석인데다 (그때만 해도 길이 좋지 않은) 산골이어서 택시도 오지 못했다. 아들의 열 손가락을 따고 1시간 남짓 거리를 무조건 내달렸다. 실제 구례군 자료에 따르면 ‘매우 높은 산간오지로 전 농가가 영세성을 면치 못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농평은 도시다. 이젠 집집마다 차도 있고, 도로가 뚫려 구례를 나가는 일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 물론 지금도 대중교통은 전혀 없다. 겨울 폭설엔 간혹 길이 끊기기도 하지만 주민들 스스로 제설작업에 열심인데다 남향을 안고 있어 며칠씩 고립되는 일은 드물다. “언제부터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3대는 살았지요. 선산도 이 곳에 있고요.” 6·25전쟁 등을 거치며 수난을 겪었던 터라 사람이 수시로 들고 나고 했을 것이다. 이제는 원주민 여섯 집, 외지에서 들어온 집이 3가구다. 외지인의 출현이 익숙한 건 아니지만 땅이란 것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몇 번씩 주인을 달리하며 새 집들을 그 위에 짓는다. 변화와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자연과 사람, 원주민과 외지인의 훈훈한 조화가 마을 중심에 꽃을 피운다. # 교통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부산쪽에서 올 경우 하동군 화개면까지 간 다음 화개에서 택시로 농평을 가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그동안 인기리에 연재됐던 ‘산이 좋아 산이’ 코너는 전국의 가볼 만한 명산을 대부분 다뤘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산 소개를 중단하고, 대신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 남도의 주요 산자락에 숨어 있는 ‘산골 마을’을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혹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산골을 지키는 마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등산을 떠날 적에 그곳 주변 마을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다면, 그 보람과 의미 또한 일석삼조이겠지요. 먼저 지리산 지역의 산마을을 10여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구례 최고의 명당이라는 토지면 오미리에서 지리산 품속으로 차를 돌려 닿는 곳이 ‘문수리’인데, 저수지 위쪽의 상죽(웃대내)·중대(영암촌)·불당·밤재 등이 문수리에 속한 마을들이다. 노고단(1507m)∼왕시루봉∼형제봉을 삼각점으로 생성된 이 골짜기의 넓이는 약 2660㏊. 따라서 예부터 좁고 긴 계곡과 동·북·서로 막힌 산자락 때문에 사람이 숨어살기 적당했고, 그것이 또 문수리 일대를 ‘피의 전장’으로 전락시켰다. ●사람 숨기 적당한 지형이 주민에 고통 안겨 해방과 분단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기간은 지리산 촌로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명당 인근에 산다는 문수골 사람들에겐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괴로운 시기였다. 지리산과 강 건너 백운산이 여순사건(10·19사건) 때 소위 빨치산과 경찰 토벌대의 피 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구만들을 거쳐 문수골로 숨어든 주민들은 경찰 추산 2000여명.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문수골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물론 동네도 급격히 쇠락해 간다. 구례군 토지면 주민들은 1948년부터 약 7년의 세월을 전쟁 속에서 보낸 셈이다. 다시 이념이 갈리고 전쟁이 난다면 그때 또 지리산은 반란군을 품어줄 은신처가 될 것인지, 그때도 이 산은 그들을 잡아내려는 토벌대의 총성과 그 총성 속에 쓰러진 수많은 젊은이의 피로 물이 들 것인지, 이제 문수골은 과거의 일 따위는 잊은 것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청명하다. 문수사로 이어지던 도로 우측으로 ‘영암촌’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기 전에 조금 더 직진하면 폐교된 문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앞에서 내려다보는 영암촌의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영암촌에서 태어나 여태껏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조삼남(87) 할머니는 “타지에선 데려갈 총각이 없어 고향인 이 마을에서 혼례를 치렀다.”고 너스레다.“한때는 35가구쯤 되었던 마을이 여순사건 때 많이 사라졌다.”며 지금도 한숨을 쏟아낸다.“14연대 반란군이 먼저 들어오고 그 후에 군인들이 들어왔지. 바위틈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붙였응께.”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20년 전쯤 영암촌으로 들어온 황창옥(64)·신연남 동갑내기 부부의 어둑한 방안에는 외손자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딸만 넷을 둔 딸부잣집이다. 밤과 한봉,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실 큰돈이 될 만큼은 아니다. “물 좋고 산도 좋지만 노인들은 불편해.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 하거든.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몇 배는 더 비싼께. 노인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해 전만 해도 다랑이논에 농사도 지었고, 기계가 들어갈 수 없으니 소로 밭을 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땅을 경작할 사람도 없어 경작지라야 텃밭 정도가 고작이다. 작년 추석 즈음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내려와 이곳에서 생포되기도 했다. 도로 끝에 자리한 문수사에선 불자가 방생했다는 곰을 키울 정도니 이래저래 산이 깊긴 깊은 모양이다. ●봄엔 산수유·여름엔 피서인파로 북적 영암촌 곳곳에 멋지게 들어선 집들은 예상대로 외지인들의 별장이다. 번창하던 마을이 주민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바다가 되기도 하였으니, 이 마을에 다시 집이 들어서고 사람이 드나드는 건 차라리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봄이면 마을 곳곳에 핀 산수유 꽃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모이고, 여름엔 계곡을 찾아든 피서 인파로 북적이고, 가을엔 밤과 감을 수확하는 손길로 바쁘고, 겨울이 되어야 그나마 조금 한가해지는 작은 산골마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 노고단 너머로 짧아진 하루해가 황급히 저물고 있었다. ●교통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는 있지만 문수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영암촌까지 택시비는 1만원 안쪽.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전주∼순천간 4차선 산업도로로 들어서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 지리산 반달곰 가을날의 수난

    지리산 반달곰 가을날의 수난

    지리산의 반달 가슴곰들이 가을철 수난을 겪고 있다. 수확기를 맞아 밭과 과수원이 있는 민가 주변을 넘나들다 멧돼지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올무 등 덫에 걸려들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북한산(北韓産) 반달곰 ‘장강24’가 지난 13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과수원 근처에서 목에 올무가 걸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찾아내 구출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난해 7월 방사된 ‘장강24’는 보통 지리산 고지대에서 활동한다. 가을철 수확기를 맞아 먹이를 구하러 농가로 내려왔다가 멧돼지를 쫓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걸렸다. 반달곰의 귀에 전파 발신기를 매달아 하루 2차례 정도 위치를 확인하는데 장강24가 이틀 정도 농가 주변에서 머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공단 직원들에 의해 구출됐다. 공단은 2004년부터 반달 가슴곰을 복원하기 위해 국내 혈통과 같은 아종(亞種·subspecies)의 연해주산 반달곰 12마리, 북한산 8마리 등 모두 20마리를 수입해 지리산에 방사했다. 하지만 4마리는 폐사하고,1마리는 실종됐으며,4마리는 회수해 현재 11마리만 지리산에 남아 있다. 공단은 다음달 중 러시아에서 반달곰 새끼 6마리를 추가로 들여와 방사할 계획이다. 장강24는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 별 무리 없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지리산 반달곰 무리들은 올무 때문에 이미 3마리의 동료를 잃었다.2005년 8월14일 ‘랑림32’, 같은 해 11월4일 ‘장강21’이 올무에 걸려 폐사했다. 같은 해 11월15일에도 ‘제석’이 올무에 걸렸지만 구출돼 치료를 받은 뒤 방사됐지만 치료기간 중 사람을 기피하는 습성이 약해져 자연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해 11월7일에는 ‘울카’가 관리공단이 전파발신기 교체를 위해 설치한 생포용 트랩에 걸려 뒤늦게 발견되는 바람에 폐사했다.‘레타’는 2005년 11월27일 발신기만 나무에 걸린 채 실종돼 누군가 잡아간 것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했지만 찾지 못했다. ‘라나’는 올해 5월22일 나무에서 떨어져 숨졌다. ‘천왕’이는 등산객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에 맛을 들여 등산로를 돌아다니다 ‘대인기피훈련’까지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 지난 5월1일 회수됐다. 천왕이는 사람 음식을 먹는 바람에 이빨이 11개나 썩어 있었다. 앞서 ‘칠선’이와 ‘덕성17’도 대피소와 민가 주변에서 먹이를 구걸하다 각각 2005년 7월17일과 12월7일 회수돼 관리공단의 보호 아래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반달곰을 방사한 이후 지금까지 지리산에서 올무와 덫 1500여개를 수거했다.”면서 “가을이 되면 동면을 앞둔 곰들이 먹이를 구하러 민가까지 내려오는 바람에 사고가 잦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구례군 “멧돼지 꼼짝마”

    ‘멧돼지 3마리씩만 잡아라.’ 전남 구례군이 4일 지리산 중턱에 있는 밤과 배 밭으로 멧돼지들이 떼지어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자 농민 엽사(사냥꾼)를 동원, 멧돼지 소탕에 나섰다. 군은 이날부터 대한수렵협회와 야생동물피해방지협회 소속 회원 등 엽사 14명으로 포획팀을 꾸렸다. 당국의 수렵 허가가 나오는 대로 이들은 11월10일까지 야생동물 사냥에 나선다. 김형호 군 산림소득과장은 “엽사 1명이 잡을 수 있는 야생동물은 멧돼지와 고라니 각 3마리이고 꿩과 까치·비둘기 등 조류는 무제한”이라고 밝혔다. 천명준 대한수렵관리협회 구례군지회장(62·구례읍 계산리)은 “멧돼지 사냥은 2명이나 3명이 한 조를 이룬다.”며 “멧돼지는 후각이 아주 예민해 구례에서 총소리가 나면 섬진강을 헤엄쳐 건너 곡성쪽으로 달아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례·토지·마산 등 8개 읍·면 33개 마을 농민 239명이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농작물 피해(30만㎡)를 신고했다. 배 농장을 하는 이호연(62·마산면 마산리)씨는 “밤 사이 멧돼지가 1개 소대가량 배 밭으로 내려와 익은 배만 골라 가지를 부러뜨리고 따먹었다.”며 “멧돼지 새끼들은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뿌리를 갉아버려 배나무가 통째로 말라 죽었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이씨는 순간 고전압(9000v)이 흐르는 철조망을 쳐 멧돼지를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다. 밤 농사를 짓는 장재진(62·토지면 파도리)씨는 “멧돼지들이 내려와 알밤만 모조리 주워 먹어버려 수확할 게 없다.”며 “라디오를 틀어놓고 전등을 켜놔도 멧돼지들에게는 안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구례에서는 포수 21명이 멧돼지와 고라니 등 25마리를 잡았다. 잡은 멧돼지는 인근 마을 사람들의 잔칫상에 올랐다.구례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Let’s Go] 전국의 고택명소

    [Let’s Go] 전국의 고택명소

    컴퓨터는 물론 TV도 없다. 푹신한 침대에 익숙해진 허리는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고택체험에는 이처럼 약간의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하루쯤 양반 집 사랑채에서 잠을 청하고, 장닭의 울음소리에 단잠을 깰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전국의 명소를 소개한다. 하회마을과 퇴계 종택 등 조선시대 생활양식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고택들이 즐비한 안동지역은 표로 정리했다. ●만산고택 조선 말기의 문신 강용이 고종 15년에 지은 건물. 작가들의 문화 탐방이나 건축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고택체험을 원하는 방문객에게는 칠류헌과 서실을 개방하고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1박(5인 기준)에 칠류헌 10만원, 서실 5만원. 종가댁 아침상 5000원.(054)672-3206. ●송소고택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99칸짜리 한옥.1880년 송소 심호택이 지었다. 안채, 사랑채 등 건물마다 마당이 딸려 있고, 내부를 반쯤 가려주는 헛담이 설치되어 있다.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와 절골계곡, 달기약수탕 등 관광명소들이 자동차로 5∼30분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승합차가 청송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나간다.1박(2인 기준) 4만∼9만원선. 별당독채는 18만원. 식사 5000원. 취사는 불가.www.songso.co.kr,(054)873-0234. ●개실마을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4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살아오는 곳. 주요 볼거리로는 점필재 종택과 지역 유림들이 학문을 연마하던 도연재 등이 있다. 떡메치기, 엿만들기 등 전통체험도 가능하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1박 3만원.www.gaesil.net,(011)810-5936. ●윤증고택 구조가 간결하면서 견실해 신선한 맛을 풍기는 조선 후기 한옥. 후손들이 고택에 그대로 살고 있어 깨끗하게 보존됐다. 담장과 행랑채 대문이 없는 독특한 모습. 사랑채는 전체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1박에 6~8만원.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등도 판매하고 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041)735-1215, www.yunjeung.com ■ 그 밖의 가볼만한 고택 ●한개마을 낙동강 지류인 백천과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은 성산 이씨 집성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이석문(李碩文)이 평생을 은거한 북비고택과 TV 등의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한주종택 등 100여 채의 고택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총 3300여m에 달하는 마을 돌담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054)930-6063. ●주실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일월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양 조씨 집성촌.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80년 가까이 양력설을 쇠고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워낙 심심산골에 자리잡고 있어 ‘육지속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문향(文鄕)이다. 시인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학초정 등이 주요 볼거리.5월18∼20일까지 ‘지훈 예술제’가 열린다.(054)680-6067. ●운조루 섬진강과 지리산의 따뜻한 품이 느껴지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잡고 있다.‘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의 이름만큼 아름답다. 사랑채 내부의 마루 공간, 거기에 이어지는 누마루, 중간에 기둥을 생략한 과감한 구조의 사랑방 등은 건축주의 집에 대한 자존심이 엿보인다.1776년 건축됐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선교장 천상의 향기를 담은 맑디맑은 곳.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한다.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최초의 민간주택이기도 하다. 건평만도 300평이 넘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연못, 정자까지 갖춰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 손색이 없다.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033)640-4543. ●닭실마을 ‘닭이 알을 품은 모양(金鷄抱卵)’을 하고 있어 이름지어졌다. 조선중기의 문신 충재 권벌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전통 마을. 한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총재고택과 청암정 등이 둘러볼 만한 곳. 부석사와 청량사 등 봉화·영주 일대 문화유산 답사를 겸할 수 있다. 닭실마을 부녀회 (054)673-9541. ●양진당 풍양 조씨(氏)의 선조 조정(趙靖)이 1626년 지은 가옥. 집 전체가 땅 위에 떠서 2층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상식(高床式·기둥 아래에 주춧돌을 놓은 방식) 고택이다. 땅 기운이 습해 건물 전체를 들어올린 발상에서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99칸짜리 저택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작아졌지만, 조선 중기 건축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054)537-6063. ●외암리 민속마을 입구에서부터 5㎞에 걸쳐 마을 전체를 돌아나가는 돌담길의 우아하고 소박한 곡선과 그 사이를 잇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낸다. 다른 민속마을들이 어설픈 관광지로 변해가는 것에 비해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영암군수댁과 예안 이씨(氏) 종가인 이참판댁. 충남 아산시 송악면.(041)544-8290. ●김동수 가옥 창하산(蒼霞山)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동진강(東津江)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터에 세운 가옥. 나지막한 건물과 군더더기 없는 마당,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건축 자재로 쓴 행랑 등 보기 드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보수, 개조되지 않아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1784년 건립.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정읍시청 문화관광과 (063)535-5141∼7. ■ ‘신비의 왕국 대가야’ 고령 ●‘현의 노래´ 가야금 12줄의 비밀 역사는 분명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대가야처럼 500년 가까운 역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경우는 흔치 않다. 남아 있는 기록도 대부분 전성기는 생략된 채 왕국의 쇠락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미스터리가 많은 것이 오히려 대가야의 왕도(王都) 고령 여행의 장점이 된다. 여행객들이 마음껏 역사적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야의 역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가야금을 만든 우륵. 그는 왜 하필 가야금을 12줄로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기록은 역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 낀 당시 상황에서 대가야 주변 12국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할 필요를 느낀 가실왕(몇대 왕인지조차 불분명하다)이 우륵에게 주변국들을 상징하는 12줄의 가야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 우륵은 왜 자신을 총애한 가실왕을 버리고 신라로 갔을까? ‘귀화설’‘망명설’‘밀사설’ 등 논란이 분분하지만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충북 충주시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타며 통한의 세월을 보낼 바에야 차라리 조국의 명운과 함께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이 또한 여행자의 상상에 맞겨질 부분. ●20m~50m 이름모를 봉분 200여기만 가실왕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던 562년. 저 유명한 ‘신라장군 이사부’는 화랑 김사다함과 기병 5000명을 선봉으로 세우고 대가야를 침노했다. 신라의 급습을 예상치 못했던 대가야 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고, 대가야의 성지 가야산은 이들의 피로 물들여졌다. 망국을 예감한 대가야의 도설지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철의 제국’ 대가야는 어느 왕의 묘인지도 모르는 지름 20∼50m의 거대한 봉분 200여기만을 남긴 채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대가야 군사들의 철검은 고령땅 아래서 그렇게 1500년 가까이 녹이 슬어가고 있었다. ●9일까지 대가야 체험축제 그리고 오늘. 역사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왕국은 볼품없는 시골도시를 살리는 관광자원으로 되살아났다. 고령 여행의 첫걸음은 지산리 고분군에서 시작된다. 거리는 5㎞남짓. 최초로 순장풍습이 확인된 44호 고분 등 주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고분군을 둘러보는데 2시간쯤 걸린다. 대가야 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을 둘러본 다음 고분군 산책에 나서는 게 좋다. 고분의 주인과 순장자들에 대한 궁금증이 산책길에 즐거움을 더해 주기 때문. 1977년 44호 고분 발굴 이후 총 7기의 고분이 발굴됐다. 가장 큰 47호 고분만이 ‘금림왕릉’이라 구전될 뿐, 나머지 고분들은 번호로만 존재한다. 4월6∼9일까지 고령읍내 일대에선 ‘2007 대가야 체험축제’가 열린다. 철과 관련된 각종 체험행사와 함께 역사공부를 하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여행수첩 ▶가는 길 자동차:서울→경부고속도로→88고속도로→고창 나들목, 또는 중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88고속도로→고창 나들목. 시외버스: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고령행 버스. 하루 5회.4시간30분 소요. 기차:동대구역→서부정류장(지하철 1호선 성당못역)→고령행 버스 ▶문의 대가야 체험축제위원회 fest.daegaya.net (054)950-6424 고령군청 문화체육과 (054)950-6111∼2 배재대 관광이벤트연구소 (042)520-5790
  • [Local] 외국인 제주토지매입 봇물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제주 국제자유도시 건설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외국인들의 제주지역 토지취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27일 2월말 현재 936건에 885만 4000㎡의 토지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토 최남단 섬인 마라도(29만 8000㎡) 면적의 30배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최근 5년간 외국인들이 취득한 토지면적은 337만 2000㎡로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면적의 38.1%를 차지해 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398만㎡(635건)로 전체 면적의 45%를 차지했고, 일본 356만 1000㎡(111건), 기타 아시아권 55만 4000㎡(81건),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이 47만 6000㎡(51건) 순으로 집계됐다. 토지 취득 용도는 골프장과 호텔 건설 등 관광레저용이 403만 8000㎡(45.6%), 주택용지 21만 9000㎡(2.5%), 상업용지 6만 1000㎡(0.7%) 등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꽃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화사해진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진다. 어떤 꽃인들 그러지 않을까마는, 차디 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3월이라…. 초순을 훌쩍 넘긴 이맘 때라면 청매실 농원이 있는 광양 매화마을로 가야 한다. 바람에 흩날린 하얀 매화꽃이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광경, 생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섬진강 자락에 기댄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에선 노란 산수유가 다투어 피어났다. 해마다 중순을 넘어서야 만개하더니 매화꽃을 시샘하는 까닭인가, 일찌감치 꽃을 피워 냈다. 계곡과 돌담 사이에 흐드러진 산수유가 눈부시고 애절하다. 이맘 때면 또 봄이 깃든 약숫물, 고로쇠가 매화, 산수유와 공명을 다툰다. 삼국시대 병사들이 전투 중 화살에 꽂힌 나무에서 흘러나온 고로쇠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던가.‘나도 예 있소!’하며 목청을 높이는 듯하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휘감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에 봄빛이 완연하다. 주 초반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서둘러 찾아 온 봄이 개화시기를 앞당겨 놓은 탓에 서두르지 않으면 낙화하는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만화방창 때는 좋아 아니 가지는(?) 못하리라∼. 글 사진 구례 손원천 기자 km@seoul.co.kr ■ 산수유 군락지 전남 구례 산동 상위마을 전주와 임실을 뒤로하고 남원땅에 접어드니 이름도 살가운 춘향터널과 방자교차로가 이방인을 맞았다. 설핏 웃음이 흘러 나왔다. 혹시 몽룡 고가도로나 향단이 삼거리, 변학도 다리는 없을까. 도로시설 이름만으로 가슴 한자락 내려놓게 하는 남도의 해학에 장시간 운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 노란 군무(群舞) 산수유 남원을 지나 20분쯤 달렸을까.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고샅길과 개울가 곳곳에서 노오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던 산수유가 어느새 선연한 노랑색 군락을 이루며 눈앞에 펼쳐졌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작가 윤대녕씨가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던 바로 그 꽃.3월로 들어서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가 산동마을 농가 앞마당과 돌담길, 논두렁이며 산기슭에 꽃구름을 피워 놓았다. 마치 마을 전체가 노란 구름에 파묻힌 듯한 느낌. 노랑빛 감도는 이끼가 낀 채 단정하게 서 있는 돌담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좁은 돌담길을 걷다보면 남녀간 정이 도타워지고, 없던 정도 생긴다 해서 사랑의 길이라 불린다. 그 돌담 위로 산수유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산수유도 돌담도 온통 노랑빛. 때마침 내린 봄비마저 노란 색깔을 머금고 흩뿌려지는 듯하니, 그야말로 꽃처럼 아름다운 봄날이다. 아마 여수·순천 10·19사건 때 ‘산동애가’를 부르며 토벌대에 끌려갔다는 19세 백씨(氏)소녀도 그처럼 아리따웠을 게다.‘잘 있거라 산동아 한을 안고 나는 간다/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고/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산수유가 지리산을 노랗게 물들여갈 때면 이곳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산동애가의 한 구절이다. 산수유에서 왠지모를 애절함이 느껴졌던 건 이처럼 가슴아픈 해방공간의 현대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상위마을에서 19번 국도를 가로질러 가면 만날 수 있는 현천마을과 반곡마을 또한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산수유 명소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 가볼 만한 곳 ●사성암 화엄사쌍계사 등 지리산을 대표하는 거찰 외에도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사성암도 놓치면 아쉬운 볼거리. 절 뜨락에 서면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드넓은 토지면 등 구례 들녘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다. 문척면 죽마리. ●운조루 1776년 건축된 조선시대 전통 양반가옥.‘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의 이름만큼 아름답다. 남한 3대 길지(吉地)위에 세워져 세인들의 관심을 더한다. 중요 민속자료 8호. 토지면 오미리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해 갈 경우, 산수유마을을 먼저 둘러본 뒤 매화마을로 가는 게 편하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나와 남원 방향 17번 국도를 탄 뒤, 임실을 거쳐 남원시 직전에 있는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19번 국도로 갈아 탄다. 밤재터널을 지나 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2㎞쯤 가면 산수유 마을에 닿는다. 매화마을은 산수유 마을에서 나와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방면으로 가다 화엄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861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직진, 화개장터 지나 남도대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산수유마을에서 40∼50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구례까지 가는 것이 우선. 구례행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차례 운행한다. 기차는 하루 15회. 구례구역에서 내린다. 상위마을까지는 구례공용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061)780-2731. ■ 지리산 피아골 직전마을 고로쇠 ‘여러분은 지금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계십니다.’지리산 피아골로 향하는 섬진강변 861번 지방도로 한쪽에 서있는 입간판 글귀다. 가슴에 여실히 와 닿는 명문. 최소한 이맘때 만큼은 더없이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 봄이 깃든 물 고로쇠 산수유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을 봄비에 씻기운 맑고 깨끗한 섬진강 바람에 날려보내고, 지리산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동네 직전마을로 향했다. 고로쇠 산지로 유명한 곳. 경칩을 막 지난 요즘 이 마을 사람들은 고로쇠 채취로 분주하다. 가을엔 부지깽이도 덤빈다더니, 딱 그 모양. 봄기운이 약동하는 피아골 자락에 나무들의 수액 차오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피아골에서 고로쇠 채취로 40여년을 보낸 손경섭(53)씨의 설명.“고로쇠는 뿌리에서 새순으로 흘려보내는 수액을 뽑아낸 겁니다. 날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이맘때 아니면 채취가 안되지요.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많은 수액이 나오지만, 비가 오고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불어 날씨가 좋지 않으면 수액 양도 적습니다.”손씨의 자랑이 이어진다.“경칩 전후 한 달 동안 채취하는 직전마을 고로쇠 수액은 야산에서 생산되는 것에 비해 당도와 효능이 뛰어나 그야말로 산중 보약이죠.” 동행한 문화관광 해설가 박미연(35)씨는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로쇠 수액 한 말(18ℓ)을 서너명이 밤을 도와 마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지리산 자락의 민박집 등에서 관광객들이 밤새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죠.”라며 거들었다. 막 채취한 고로쇠 한잔을 들이켰다. 들척지근한 것이 온몸에 산골의 봄기운이 통째로 전해진다. 미각을 통한 봄맞이처럼 생생한 게 또 있을까. 한화리조트 지리산(www.hanhwaresort.co.kr)은 피아골 직전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택배로 보내준다.18ℓ1통 5만 5000원.(061)782-2171.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로쇠 수액의 약리효과 단풍과에 속한 활엽수인 고로쇠나무의 껍질을 한방에서는 ‘지금축’이라는 약재로 사용해 왔다. 지금축은 성미가 맵고 따뜻해 풍을 제거하고 습기를 없애며(祛風除濕), 혈액순환을 도와 어혈을 없애는(活血祛瘀) 작용을 한다. 따라서 풍과 습이 원인인 사지마비, 동통은 물론 골절·타박상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해발 600∼1000m의 고지대에 자생하는 고로쇠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는 수액을 인위적으로 채취한 것이다.1m 정도 높이의 나무 몸통에 드릴로 1∼3㎝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소백산, 오대산 등 산이 깊고, 공해가 적은 곳에서 많이 재배하거나 자생하며 ‘고로쇠’란 이름은 관절통 등 관절질환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동안 고로쇠 수액의 성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당분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B1·B2와 비타민C, 각종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일반 물보다 40배 정도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알칼리성의 이온화된 성분은 인체에 쉽게 흡수된다. 이 가운데 주성분인 당분은 1∼2%가량 함유되어 있으며 사당, 포도당, 과당이 함께 어울려 달콤한 맛을 낸다. 성분이나 맛의 차이는 고로쇠나무가 자라나는 토양, 기후, 채취 시기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고로쇠 수액은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아 평소 물처럼 하루 4∼5회 음용하면 되며, 다른 음식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함유 성분이 풍부하고 체내 흡수도 좋은 고로쇠 수액은 건강음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쇠 수액의 효능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수액에 포함된 당분이 혈당조절을 원활하게 해 당뇨, 고혈압, 피로회복 등에 효능이 있고, 각종 미네랄은 류머티즘 관절염, 통풍, 신경통, 산후 후유증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칼슘성분이 많아 노약자나 골다공증 등이 많은 부녀자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위장병, 피부병, 비뇨기과 질환 등에도 좋은 효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경희대한의대 한방부인과 교수 ■ 전남 광양 섬진강 다압 매화마을 매화(梅花)라 한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줄 뿐만 아니라 그 자태가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봄처녀의 아리따운 모습과 닮아 애간장을 녹인다. 매화는 또 한평생 춥게 살면서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옛 선비들은 매화의 그 고결한 기품을 본받으려 늘 가까이 두고 노래했다. 청빈과 지조, 그리고 올바른 법도를 지키게 하는 절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병풍이나 족자, 청자·백자 도자기에서도 오롯이 피어나 사시사철 길잡이 역할을 했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매화가 좋아 시 여러 편을 남겼다. 그 중 한 구절이다.‘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밝고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아/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壬子正月二月立春(임자년 정월 초이틀 입춘) 매년 3월 한 달이면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 일대에는 매화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자,‘얼씨구나 매화로다’처럼 춘정이 그립거든 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그곳으로 훌쩍 떠나보자. 지리산과 구비진 섬진강을 덮은 매화의 시향(詩香)에 흠뻑 빠져 봄맛을 진하게 느껴 보자. 글 광양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광양시청 제공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 다압면(多鴨面). 지난달 하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는 550리 섬진강, 아름다운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을 배경으로 그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경남 하동 나들목에서 매화마을로 들어섰더니 섬진강 강가 주변에는 대나무와 억새풀숲 또한 그림처럼 쭉 이어진다.‘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그럴듯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나는 차창 밖으로는 ‘섬진강 재첩국’이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입맛을 자극했다. 매화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백운산 자락에 내려앉은 연분홍 구름선녀들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가를 감상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 광경에 ‘와∼’라는 탄성을 연발한다. 또한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 추억을 담아내려고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꽃잎 가까이에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볼에 비벼보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 17일부터 25일까지 매화축제 가장 이른 시기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매화꽃을 소재로 한 매화축제는 섬진강변 매화마을 일원에서 해마다 3월에 열리며 전국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되는 꽃 축제이다. 1997년 시작된 매화축제는 품질 좋은 매실과 매실로 만든 매실식품을 널리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섬진나루터와 청매실농원의 전통옹기, 그리고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강변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광양시청에서 주최하는 매화마을 축제는 매화꽃이 만개하는 오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열린다(청매실농원 자체에서는 이미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주제는 ‘달빛 어린 매화, 섬진강 따라 사랑을’이다. 특히 올해는 ‘매화학술대회’‘매화작품전시회’‘매화음악회’ 등의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아울러 ‘나만의 매화만들기’‘봄을 깨워라’‘매화탁본’‘꽃차만들기’‘섬진강변 소달구지여행’ 등의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밖에 전국 매화사진 촬영대회, 매화백일장, 매화사생화대회 등의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광양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 기간 동안 전국에서 5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섬진강의 유래 1385년 고려 우왕 11년 때의 일로 전해 내려온다. 경남 하동에 왜구들이 많이 출몰하면서 양민들을 괴롭혔다.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할 때 두꺼비 수만마리가 몰려와 울음으로 왜구를 쫓아내자 이를 가상히 여긴 임금님이 강 지명을 한문으로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蟾津江)이라 부르라고 했다. 예부터 두꺼비는 집지킴이, 재복신으로 불리웠다. 액을 물리치고 부귀영화를 불러주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예를 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고 잘 살아라’,‘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등의 동요도 있다. 또한 두꺼비가 절에 나타나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등 불가에서는 큰스님, 또는 실지 금와보살로 지칭되기도 한다. # 교통편 서울에서 갈 경우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다가 산청으로 빠져 국도로 가는 길이 있으나 지리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아예 진주까지 가서 하동읍내를 통해 다압면으로 가는 편이 좋다고 경험자들이 권한다. ●서울∼대전∼진주∼하동IC∼하동읍∼섬진교∼매화마을.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해 익산을 거쳐가는 방법도 있다. 익산∼전주∼구례∼간전교∼다압면∼매화마을. ●열차편으로는 하동역 또는 진상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 주변 볼거리 ●자연관광 백운산과 4대계곡, 섬진강나루터, 광양만, 망덕포구와 배알도, 희양십경 등.(061)797-2731. ●문화유적 옥룡사지 동백림, 중흥사, 형제의병 유적지, 성불사 등.(061)797-3363. # 먹을거리 재첩국과 고로쇠 등이 풍부하며 그외 식당안내는 (061)797-2607로 하면 된다.
  •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재개발

    경기도가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고민거리인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해결책을 마련,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1일 도에 따르면 도내에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고도 활용되지 않는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 모두 1억 8020만㎡에 달하고 이 가운데 10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시설도 전체의 76%인 1억 4310만㎡에 이르고 있다. 도는 해당 토지를 모두 매입, 활용하는데 대략 18조 6000억원이 소요되는 등 예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다. 도는 이에 따라 시흥시 거모동 금호지구(6만 9000㎡), 김포시 북변동 북변지구(6만㎡), 연천군 전곡읍 전곡지구(7만 1000㎡) 등 3곳을 선정, 도시재개발사업방식으로 도시계획시설을 해소하기로 했다. 도는 재개발사업 방식을 통해 도로나 공원 등 필요시설을 확보하고 나머지 토지를 지주에게 돌려 주는(환지)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렇게 하면 지주들은 여건에 맞게 토지를 활용, 건물을 짓는 등 개발할 수 있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해당 자치단체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도 도시계획시설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는 우선 연내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하고 내년 중 실시설계, 개발계획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2009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의 성과가 좋으면 나머지 지역으로 확대한다. 도 관계자는 “도시계획시설로 일단 지정되면 토지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주 입장에서는 사업후 토지면적이 다소 축소되더라도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어 좋고 자치단체입장에서는 막대한 토지매입대금 없이도 필요시설을 확보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Local] ‘전남도 명품 민박집’ 책자 발간

    전남도가 31일 펴낸 ‘남도민박을 움직이는 힘, 남도지기의 특별한 이야기(199쪽))’에는 6개 주제에 따라 지역별 특성을 살린 명품 민박집을 담았다. 주인의 성격과 집의 구조와 유래, 가족사, 풍수 등을 재미나게 엮어 냈다. 홈페이지(www.namdominbak.go.kr)로 가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민박집과 주변 관광지는 사진으로, 시설과 주소, 규모, 방값, 전화번호, 찾아오는 길 등은 글로 기록됐다. 민박집은 주제별로 ▲전통한옥형▲친환경농수특산물 판매형▲온라인 인기형▲체험프로그램형▲관광펜션형▲주변관광지 활용형 등으로 나뉜다. 전통한옥형으로는 풍수지리로 볼 때 지리산 형제봉에서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 중의 명당으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쌍산재 민박이 대표적이다.6대째 이어온 집으로 안채·사랑채·서당·연못·텃밭 등 6000여평이다. 이밖에 22개 시·군별로 운영중인 민박집 1389개가 소개된다.
  • 퍼도 퍼도 줄지않는 사랑

    “지난 여름부터 쌀 걱정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주시 남구 월산 5동 김모(75)할머니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동사무소에 들러 이곳에 설치된 ‘쌀뒤주’에서 쌀을 퍼간다. 김씨는 “처음엔 쑥스럽기도 했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의 따뜻한 배려로 요즘은 맘놓고 쌀을 가져 간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 주는 이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홀로 살고 있는 박모(71) 할머니도 서구 금호1동 사무소에 설치된 뒤주에서 쌀을 가져다 끼니를 잇는다. 박씨는 자녀들이 경제적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받지 못해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끼니 걱정 없이 사는 덕분인지 고달픈 일상이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광주지역에서 이같은 현대판 ‘운조루(雲鳥樓) 뒤주’가 퍼져 가면서 세밑 훈훈함을 더해 주고 있다. 운조루의 주인이 뒤주를 곳간 뒤채에 마련해 쌀을 퍼가는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사랑의 쌀뒤주’는 지난 1월 광주시 서구 금호 1동 사무소에 처음 설치됐다. 뒤주 앞엔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고 따뜻한 밥을 지어 드세요.’란 안내문이 붙었다. 일주일 만에 참여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이어 다른 동사무소로 이 운동이 확산됐고 부녀회·청년회 등 주민 자치조직과 독지가의 도움이 이어졌다. 현재 시내에는 ▲주월동 ▲백운 2동 ▲월산 5동 ▲금호 1동 ▲화정 3동 등 모두 5개 동사무소에 뒤주가 설치돼 있다. 뒤주의 운영 방식도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동사무소에서 설치·운영을 맡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이웃의 형편을 공무원들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주민들이 앞장서고 있다. 남구 월산 5동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사랑의 쌀 나눔 운영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영업자·사업가 등 주민들이 쌀을 직접 구입해 뒤주에 붓거나 매달 5만∼10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있다. 현재 월산 5동에서는 매월 20㎏들이 쌀 6∼8가마가 소비된다. 한달 40∼50명의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남구는 이들 뒤주를 ‘효사랑 나눔의 가게’로 이름 붙이고 독지가의 참여확대에 나섰다. 서구 화정 3동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동사무소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쌀을 건네주고 있다. ■ 운조루의 뒤주는 조선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 곳간에 놓인 뒤주를 일컫는다.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 ‘누구든 마음대로 쌀을 퍼갈 수 있다.’는 의미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주인은 이 통나무 뒤주를 곳간에 놓아 편안한 마음으로 쌀을 퍼가도록 배려했다. 주인은 매월 말 뒤주를 열어 보고, 쌀이 남아 있으면,“덕을 베풀어야 집안이 오래간다. 당장에 이 쌀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 줘라.”며 며느리에게 호통을 쳤다고 전해진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고로쇠 약수 ‘덕’ 본지가 언젠지…

    경칩(6일)을 전후해 보름가량 특수를 누렸던 고로쇠 약수가 옛날의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6일 전남 광양시와 구례군의 채취농가 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경제사정을 이유로 고로쇠 물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줄기 시작하면서 채취 농가들이 울상이다. 백운산으로 들어가는 광양시 봉강면 항월마을에 자리한 광양농원 주인 서병섭(44)씨는 “고로쇠 물을 마시러 백운산으로 올라가는 차량만 봐도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는데 택배 주문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고 밝혔다. 서씨는 “남자손님 10명이 오면 물값(2통에 10만원)을 빼더라도 염소 1마리와 술 등 40만원어치를 먹는다.”고 말했다. 광양시청 산림과 정민희(39·여) 담당은 “지난해 고로쇠 택배 주문량은 전체 판매량의 13%로 집계됐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보통 물을 통으로 판 돈에 곱하기 4를 해서 간접수익을 계산했지만 지금은 찾는 손님이 적어 3을 곱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광양시는 봉강·옥룡·다압·진상 등 4개면 290여 농가에서 18ℓ들이 2만 7000여통(48만ℓ)을 팔아 13억여원의 직접소득을 올렸다. 지리산 자락인 구례군 토지면 토지우체국에는 하루 평균 100여건의 고로쇠 물 택배 주문이 접수되고 있다. 민간인 택배 회사들도 앞다퉈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구례군의 경우 지난해 토지·간전·산동·마산·광의 등 5개 면 375농가가 70여만ℓ를 모아 17억여원의 직접매출을 기록했다. 피아골에서 고로쇠 민박집을 하는 최정순(50·여)씨는 “택배 물량이 늘면서 고로쇠 수입이 옛날의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구례군청 환경산림과 관계자는 “고로쇠 채취농가뿐 아니라 인근 식당이나 노래방 등도 고로쇠 특수를 먼 옛날의 얘기로 생각한다.”고 전했다.광양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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