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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탐구]도심 공동화 르포

    대구시 중구 동인동2가 구청사 뒤편 한옥가.낡은 한옥들이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이곳이 ‘대구의 얼굴’이라는 중구의 요즘 모습이다.비가 새는지 지붕마다 천막을 덮은 한옥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직도 도심에 이런 곳이 있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사람들이 간신히 비켜갈 만한 골목에서 만난 이옥분(72) 할머니는 “옛날에는 이곳에 집 한채만 있으면 큰 부자였는데 요즘은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세를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아직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집들도 더러 있다. ●공무원 기피 1순위… 市 교부금 꼴찌 80년대 초 20만명을 웃돌던 중구의 인구는 20년 사이에 8만여명으로 뚝 떨어졌다.신흥 택지개발지인 달서구의 61만명에 비하면 7분의1 수준이다.이 때문에 ‘대구의 정치 1번지’라던 중구는 내년 총선부터 독립 선거구 유지가 어려워 인접구와 함께 선거를 치러야 할 처지다. 화려했던 상권도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서울에선 잘 나가는 ‘밀리오레’가 지난 2001년 8월 대구상권의 핵심이라는 중구 동성로에 진출했지만 갈수록 빈 가게가 늘어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밀리오레 이학균 홍보팀장은 “전반적인 경기침체 탓도 있지만 중구 상권 자체가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진 증거”라고 말했다. 중구가 공무원 기피 1순위 자치단체로 전락한지도 오래다.구청 직원들은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수당이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올해 중구가 시로부터 받은 교부금은 165억원으로 대구지역 8개 구·군 가운데 꼴찌다.장석준 부구청장은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에 달해 청소와 교통 등의 행정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교부금은 단순히 상주인구와 면적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중구는 인구 감소와 도심 슬럼화를 돌파하기 위해 지난해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카드를 꺼냈다.인접한 자치구의 일부 동을 편입시키려는 시도였으나 인접구의 반대는 물론 편입대상 주민들이 ‘중구로 가기 싫다.’고 시위를 벌여 무산됐다. ●주차문제 골머리… 밤거리는 썰렁 한때 ‘대한민국 1번지’였던 서울 중구도 공동화로 고민하고 있다.업무용 빌딩이 즐비한 소공동·회현동·명동 등은 낮에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지만 심야에는 거리가 텅비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중구토박이회’ 김성완(72·신당동) 회장은 “70년대 이후 서울 외곽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매일같이 상계동·강남 등지로 떠나 지금은 토박이가 드물다.”고 말했다. 구는 공동화 방지와 상주인구 증가를 위해 2001년 11월 행정자치부에 ‘일반상업지역내에서 주상복합건물에 한해 건축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했지만 형평성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업지역이 많다 보니 주차문제도 골칫거리다.서울시는 도심의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97년부터 1급 상업지역내 시설물의 부설주차장 설치규모를 제한하는 ‘주차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중구는 전체의 43%인 상업지역이 적용대상이다.구는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의류상가 등은 승용차보다 승합차·화물차의 주차수요가 대부분인 현실을 들어 시에 탄력적 운용을 수차례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 부산 중구도 중산층이상의 주민들이 신도시인 해운대구 등 다른 구로 옮겨가 갈수록 인구수가 줄고 있다.대표적 재래시장인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이 있지만 상인들 대부분이 장사만 하고 밤이 되면 떠나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구청에서는 옛 부산시청 자리에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너도나도 “둔산신도시로” 빈사무실 가속 대전 중구 역시 날로 구세(區勢)가 위축되고 있다.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영업중인 곳들도 파리만 날리고 있다.대흥동에서 백반을 파는 김모(여·46)씨는 “도심 침체에다 경제난까지 겹쳐 장사가 최악”이라며 “주변상인들이 문을 닫고 둔산신도시로 떠났으며 나도 임대기간이 끝나면 그쪽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건물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따지는 중구의 건물공시율은 지난해 말 현재 12.1%.6%인 둔산신도시의 2배가 넘을 정도로 건물마다 텅텅 비어 있다.대형 건물들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선뜻 매입자가 나서지 않는 상태다. 80년대 말까지 상가·금융기관·유통업·극장 등이 밀집돼 전성기를 누렸던 울산 중구 또한 90년대 들어 개발 한계에 부딪히면서 남구 신정동·삼산동·달동 등에 밀리기 시작했다.올들어 중구에 한개 있던 백화점마저 할인점으로 바뀌었고 호텔 2곳 가운데 1곳도 문을 닫았다. 강한무 울산 중구 지역경제과장은 “중심상가에 10평도 안 되는 점포를 분양받기 위해 집 서너 채를 팔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흘러간 옛노래’”라고 말했다. 서울 황장석·대구 황경근 대전 이천열·부산 김정한·울산 강원식기자 kkhwang@ ■인구 늘리기 백태 중심구들은 인구를 불리기 위해 ‘행정구역 개편’‘내고장 주소갖기 운동’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최근 5년사이 2만여명의 인구가 줄어든 광주의 도심에 위치한 동구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등 쾌적한 도심환경 가꾸기에 골몰하고 있다.동구는 전입자에게는 전셋집을 알선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광주 동구는 최근 풍향동,두암동 등 인접한 북구지역의 편입을 시에 요구했으나 해당 구의 반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구 중구 역시 인구 감소와 도심 슬럼화를 막기 위해 지난해 ‘행정구역 개편’이란 카드를 꺼냈으나 인접 자치구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대구 중구는 또 지난해부터 실제로 거주하면서 주민등록이 등재되지 않은 세대 등의 전입을 유도하고 있다.새 전입자에게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무료 지급하고 출생자에게는 5000원권 출생기념 통장을 만들어 주고 있다. 부산 중구는 대표적 재래시장인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등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자갈치축제 등 문화관광 이벤트,사이버상가 구축 등을 통해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상가 활성화가 인구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대전 중구도 문화동 보급창 부지와 용두동 재개발사업을 추진,아파트단지를 만들어 인구유입 효과를 극대화하고 선화동 음식거리,서대전,중고 가구거리,인삼약초거리 등 9개 특화거리를 지정,육성키로 했다. 울산 중구 관계자는 “재래시장과 상가 등을 새로 단장하고 대형 극장 등을 유치,인구 늘리기에 모든 행정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전국 정리 최치봉기자 cbchoi@ ■김홍섭 인천중구청장 인터뷰 “자치단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지난날 도시의 핵이었던 중심구들이 날로 위축돼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국 대도시 중심구청장협의회’ 회장인 김홍섭(金洪燮) 인천 중구청장은 중심구들이 과거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구 자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광역단체나 중앙정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심구가 침체되는 이유는. -우선 인구가 줄고 있어요.도시 팽창과 더불어 사람들이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신개발지로 이주하기 때문입니다.인구가 줄다 보니 주요 관공서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상권도 죽어 구도심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중심구들은 인구를 다시 늘리기 위해 각종 시책을 펴고 있지만 한번 줄어든 인구는 좀처럼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기초단체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극복에 한계가 있지요.현행 도시개발 관련법은 도심공동화 대책이 미비하므로 중앙정부 차원의 특별법 제정과 이에 근거한 특례 지원을 통한 구도심권 활성화가 절실한 실정입니다.그런데 중앙정부는 아직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행자부는 인구 10만 미만 자치단체의 국을 폐지키로 했는데. -이 경우 중심구 상당수의 국이 폐지돼 업무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됩니다.행정기구는 지역 특수성과 유동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인구수만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인천 중구만 해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등 주요 기능이 있는데 인구가 적다 해서 국을 폐지하는 것은 모순입니다.이를 시정하기 위해 중심구 구청장들은 지난 4월 행자부에 공동건의문을 제출했습니다. 부구청장 직급도 인구를 기준으로 하는데. -기초단체 부구청장간의 직급이 다를 경우 우열의 문제가 발생하고 조직 구성원의 사기 저하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부구청장의 직급은 행정수요를 감안해 조정되어야 합니다. 인천 김학준기자
  • [월요탐구 ]자전거도시 상주

    경기도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1300여억원을 들여 자전거도로 1560㎞,자전거보관대 6만대분을 설치하는 등 자전거 보급률 확대에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자전거 수송분담률(통근·통학인구 가운데 자전거 이용자 비율)은 1990년 2.1%에서 2000년 0.8%로 오히려 낮아졌다. 자전거 도시 경북 상주시에 자전거 보급활성화에 나섰다 실패한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지난 1년간 서울 송파구청 등 40여개 자치단체에서 300여명이 상주의 자전거문화를 견학했다. ▶관련기사 3면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청은 지난해 도로계장 등을 파견,상주의 자전거문화를 둘러본 뒤 올 2월에는 아예 구청장이 44명의 대규모 견학단을 이끌고 직접 상주를 찾았다. 전남 나주시도 체육진흥팀 공무원 2명을 상주에 파견했다.조영렬(48)씨 등 2명은 자전거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자전거축제 추진 준비사항 등을 챙겼다. 출퇴근길을 은륜으로 장식하는 상주의 자전거 보유대수는 8만 5000여대에 이른다.4만 2300여 가구인 것을 감안하면 한 집에 자전거가 두대 이상 있는 셈이다. 상주가 자전거 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도시 전체가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지형이 첫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공무원과 시민이 힘을 합쳐 자전거 도로확충,자전거보관대 설치 등 자전거 인프라를 잘 정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반경 5㎞ 내외의 타원형 도시는 자전거로 10∼20분이면 닿는다.지자체들은 상주에서만 볼 수 있는 자전거도로와 차도와의 분리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분리대는 스테인리스 재질에 U자형으로 되어 있어 자전거와 자동차를 분리하는데 용이할 뿐 아니라 도시 미관에도 좋다. 또 분기별로 자전거 대행진을,주말에는 테마가 있는 하이킹대회를 열어 시민들이 자전거와 친해질 수 있도록 한다.봄이면 철쭉,벚꽃길 자전거대회,가을이면 단풍맞이 자전거행사 등이 줄지어 기다린다. 김근수(金瑾洙) 시장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자전거 다니기에 편한 우레탄으로 개선키로 했다.”며 “올해 서문동 6㎞구간을 교체하고 앞으로 점차적으로 늘려가 자전거도시로서의 명성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도시계획전문가들은 “갈수록 도시의 대기환경이 악화되고 교통난도 심화되고 있는 만큼 상주시의 성공사례는 충분히 벤치마킹을 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 토박이로 7년전 상주로 내려온 의사 안준형(40)씨는 “처음에는 상주에 왔을 때 엄청난 자전거 행렬에 놀랐다.”면서 “시내 순환버스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전거타기가 생활화됐다.”고 말했다. 상주 한찬규 기자 cghan@
  • [월요탐구] 자전거도시 상주

    ■도시 현황 경북 상주시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자전거다.거리마다 골목마다 반짝이는 은륜(銀輪)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현재 상주시내를 오가는 자전거는 8만 5000여대.전체 가구수가 4만 2300호(13만 16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시민 1명당 0.6대,1가구당 2대 꼴로 자전거를 갖고 있다. 출퇴근 시간대는 수백대의 자전거 행렬이 양쪽 차도 하나씩을 가득 메운다.상주여고 등 일부 학교는 90% 이상의 학생이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학교마다 주차공간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는다.상주초등학교는 2㎞ 미만에 사는 학생들은 자전거 통학을 제한하고 있다.남산중학교 학생들은 학교내 주차공간이 부족해 학교 입구 사유지에 하루 100원씩의 보관료를 내고 자전거를 맡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주에서는 아이들이 걸음마와 함께 자전거를 배운다고 한다.4살이면 세발 자전거를 타고,6살이면 두발자전거로 면허를 바꾼다는 것이다.며느리를 볼 때에도 가장 먼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가를 묻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체육대회 때 경품으로는 으레자전거가 등장한다.심지어 백일장이나 미술대회 등에도 상품은 자전거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자전거를 탔다는 김문숙(47·여·상주시 낙양동)씨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되어 있다.”면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면 상주에서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주에선 대기오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시내버스가 없을 정도니 경유차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이 그만큼 적다. 서울 토박이로 6년전 상주로 내려온 의사 이용환(40)씨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으나 곧 이 대열에 동참했다.”면서 “이제 서울에선 못살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고 MTB(산악자전거)도 즐기는 자전거 마니아로 변신했다. 이같이 상주가 명실상부한 자전거왕국으로 자리잡은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시내가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전거가 유리하다.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상주시내에는 시내버스가 없다.시 외곽을 연결하는 노선버스가 간간이 지나갈 뿐이다. 상주시가 도심 외곽 순환선과 도심을 연결하는 64㎞에 이르는 사통오달(四通五達)의 자전거도로를 개통하고 도심 곳곳에 자전거보관대를 만든 것도 자전거 인구를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상주시는 내년부터 4년 동안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 투어를 할 수 있는 전용도로 70㎞를 조성할 방침이다. 자전거가 많아 무질서하게 보인다.더구나 자전거가 전혀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이같은 무질서 속에서도 서행·양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상주대 이광우(45·섬유공학)교수는 “웬만하면 자동차가 자전거를 피해간다.”면서 “대부분의 운전자들에게는 습관이 된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차량조심·교통안전교육 대신 자전거 안전운행교육을 실시하고 네거리 통행량을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측정하는 곳.그래서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삼베로 유명한 ‘3백(白)의 고장에서 은륜의 눈부신 자전거 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상주 한찬규기자 cghan@ ■국내 최초 자전거 박물관 자전거 면허증 경북 상주시에는 자전거에 관한 한 특별한 것이 많다. 자전거 면허증을 발급하는 자전거학교.2001년 개설돼 3년째 운영되고 있다.그동안 3800여명이 참여했으며 이 중 786명이 면허증을 땄다. 자전거학교를 개설한 상주 냉림사회복지관 측은 “자전거를 많이 타다보니 자전거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가 잦아 자전거학교를 개설했다.”면서 “9일 동안의 이론교육과 7일간의 실기교육 뒤 시험에 통과해야 면허증을 발급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자전거 박물관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자전거 바퀴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 전시실에는 1800년대 초기의 자전거부터 산악자전거,월드컵자전거 등 30여점이 전시돼 있다.먼저 세계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가 눈길을 끈다.1813년 독일인 드라이스가 만들고 5년 후 프랑스에서 특허를 받은 목제 자전거의 복제품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도 만나볼 수 있다.조성채(73·상주시 인평동)씨가 박물관에 기증한 이 자전거는 1947년에 제작된 것으로 최고참 자전거에 속한다.상주시 측은 “미국과 독일,일본 등에는 자전거박물관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상주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축제도 상주의 자랑거리다.1999년 개최 이래 올해로 4번째.그동안 자전거도시를 알리는 것은 물론 관광객유치,주민화합 등 많은 결실이 있었다.문의 054―533―2001 ■상주시 자전거역사 자전거왕국 경북 상주시와 자전거의 인연은 일제시대인 9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일본인 면사무소 직원이 업무효율성 증대를 위해 자전거를 가져왔다.곡창지역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 많은 탓에 자전거가 꾸준히 공급될 수 있었다. 1924년에는 경북선이 개통되고 상주역이 개설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역 광장에서 ‘조선8도 전국자전거대회’가 열렸다.‘유명한 사이클 선수였던 엄복동과 상주출신 박상헌이 출전,일본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하여 ‘만세’소리가 상주전역에 울려 펴졌다는 기록이 있다. 상주에 자전거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크게 는 것이다.다른 지역에서는 승용차가 빠르게 늘어났지만 상주에서의 자전거 인구 증가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94년부터 자전거 전용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했다.오는 2010년까지 모두 126.7㎞의 전용도로가 조성돼 상주 내외곽 전체를 연결하게 된다. ■김근수 상주시장 인터뷰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면 한번 쯤 와 보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김근수(사진) 시장은 “자전거도시라고 자부하면서도 전용도로 하나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면서 “지난 94년 취임 직후부터 자전거전용도로 개설에 들어갔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앞으로 전용도로를 승차감이 좋은 우레탄으로 개선할 계획”이라면서 “우선 10월말까지 서문동구간을 우레탄으로 교체하고 점차적으로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천봉산엔 5㎞에 이르는 산악자전거코스가 마련돼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자전거 보관대도 6900여대 확보했다. 김 시장은 “시청 새마을과에 자전거문화담당 부서를 지난 4월 신설했다.”며 “일부 다른 자치단체에도 상주를 벤치마킹해자전거 관련 부서를 신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최근에는 자전거도시 이미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상주의 발전과 미래상을 잘 표현한 ‘맑고 푸르고 건강하게’란 작품을 현상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김 시장은 “지난해 코렉스 자전거를 생산하는 중원테크㈜를 유치했다.”면서 “자전거가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현재 직원 100여명이 하루 800대 가량 자전거를 생산하고 있다. 상주 한찬규기자
  • 위도 전입 급증… 보상금 갈등 우려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이 들어설 전북 부안군 위도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현금 보상방침이 알려지자 지급기준을 두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위도면 전입인구가 최근 갑자기 늘고 있는 데다 보상대상,피해기준,보상지역 등을 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최근 크게 늘고 있는 위도면의 인구 증가는 보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현지 여론이다. 때문에 최근 전입한 주민들을 현금보상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기존 위도 주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게 된다.제외하면 이들이 행정소송 등 법정투쟁 나서게 되면서 지역사회에 갈등과 반목이 예상된다. 더구나 최근 전입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자녀들의 학교문제 등으로 일시적으로 주민등록을 뭍으로 옮겼거나 출향했던 위도 토박이가 많아 보상기준은 더욱 논란이 될 전망이다. 실제거주 여부,부동산 소유실태,거주기간 등을 구분해 보상기준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전입시점에 따라 보상을 두고 주민들간에 형평성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위도에서 모텔과 음식점 등을 경영하고 있는 뭍 사람들도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보상기준 적용도 아리송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지적이다. 기존 주민들도 가구당 보상금을 지급하느냐 아니면 주민등록상 세대원 수로 하느냐에 따라 보상 내용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3000억원을 가구수로 나누면 대략 3억 4200만원씩 지급되지만 인구수로 따지면 1인당 1억 6600만원씩이란 계산이 나온다.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은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의 편입토지 외에 어장 등에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의 어업보상이나 영업보상 등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위도와 인접해 있는 유인도와 격포 등 부안군 주민은 물론 고창군 주민들도 위도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설치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물이 빠지면 위도와 연결되는 거륜도,큰딴치도 등 6개 유인도 주민들은 당연히 보상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위도 주민 김모(45)씨는 “정부의 현금보상이 이뤄질 경우 보상 대상과 액수를 놓고 혼란이 예상된다.”며 “보상금이 나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
  • “복날 음식 형편따라 즐겼지요”/서울 班家음식의 산증인 김숙년씨

    현대인들은 24절기를 대부분 잊고 지낸다.하지만 복날만큼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여름 무더위가 지겨웠던 까닭일까,여름 보양식을 즐겁게 먹었던 기억 때문일까. 초복(16일)을 앞두고 전통요리연구가 김숙년(金淑年·69)씨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마른 장마 속에 몹시 더웠던 이날 그는 2시간 남짓 계속된 인터뷰 동안 앉음새를 흩뜨리지 않았다.흰색 모시 저고리에 포도색 치마로 곱게 차려입고 단아하게 화장을 한 김씨는 일흔을 바라보지만 수줍어하는 듯한 소녀티가 가시지 않았다.목소리 또한 낭랑했다. ●혀끝의 기억으로 350가지 맛 찾아 김씨는 최근 100년간의 서울 토박이 반가(班家) 문화를 대변한다.그의 고조부 김석진(金奭鎭) 이전 11대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고 증조부 김영한(金寗漢)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더위를 화제로 삼은 김씨는 복날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옛날엔 초복은 여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말복은 한여름을 넘겼다는 다소 허전한 느낌으로 맞았지요.제가 어릴 때만 해도 복날엔 ‘복놀이’가있었지요.학동들은 천렵을 나서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았고,어른들은 황구를 몰고 산등성이로 넘어 갔지요.” 복날 음식 이야기가 끝이 없다.복날 형편은 가세에 따라 다 달랐다.서민들은 보신탕과 추어탕을 즐겼고,반가에선 육개장이나 삼계탕으로 더위를 이겼다. “‘더 있는 집’에선 민어 잔치를 벌였지요.민어로 구이와 매운탕을 먹고,부레로 순대를,알로 어란을 만들었지요.” 인삼이 귀하던 옛날,서민들은 삼계탕 대신 닭곰탕을 먹었다. “장닭 몇 마리를 푹 고아 식구들이 한 그릇씩 먹으며 더위를 달랬지요.” “당시에도 음식 사치가 있었고 경제력이 있던 중인들은 궁궐 못지않게 먹었습니다.대표적으로 용봉탕을 들 수 있지요.” 용봉탕이란 잉어와 닭을 함께 고아 낸 다음 잣·호두 등으로 고명을 한 것으로 겉보기에도 화려하면서 먹음직한 것이다. 또 한겨울 동짓날의 팥죽도 복날 먹었다고 한다.붉은 팥을 액막이로 여겼기 때문이다. “참외와 수박도 빠지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김씨는 참외와 증편(떡)을 살갑게 갖고 나왔다. 이렇게 당시의음식을 꿰뚫고 있는 김씨는 ‘김숙년의 600년 서울음식’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김씨는 어린시절 혀끝의 기억만으로 350가지나 되는 전통 서울음식의 맛을 찾아낸 것이다.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의 차원을 넘어 서울 반가의 생활문화와 예의범절이 담긴 역사책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한 가풍… 4대 42명 한집서 살기도 음식 이야기로 바뀌면서 김씨는 추억속에 빠져드는 듯했다. “어릴 적의 가풍이 무척이나 엄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김씨 집안은 조선 인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김상헌(金尙憲)을 배출했고,순조의 둘째딸 복온(福溫)공주의 시댁이기 때문이다. 김씨 가문은 김상헌 이후 잣골(효자동) 등 서울 4대문 안에서만 살아왔으나 1910년 한일합방 당시 형조판서였던 고조부 오천(梧泉) 김석진이 “세상을 보고 듣지 않겠다.”며 두메산골이던 서울 도봉구 번동 드림랜드 자리의 한 부분인 오현(梧峴·당호)집으로 이사를 했다.오천은 결국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못이겨 자결했다. 고조부의 자결 이후 일본의 감시와 수탈이 한창이던 1934년 김씨는 오현집에서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김씨는 대가족의 울타리 속에 살았다.오현집에 증조부·조부모·부모·삼촌·고모·당숙·당고모·김씨의 5남매 등 4대 42명의 식구가 살았다고 회상했다.일제시대 가족은 엄했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정겨웠다. 이런 대가족이자 일제를 거부하는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의 손이 마를 날이 없었다.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제사와 어르신들의 생신,세시풍속을 다 챙겼기 때문이다. 대신 집안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 또한 가시질 않았다.댕기머리 소녀였던 김씨는 감히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부엌에선 할머니와 어머니가 ‘숙아 맛좀 보렴.’하고 한 숟가락 떠준 덕분에 맛을 봤다.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음식은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해방과 더불어 김씨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일제 때 증조부가 신식교육은커녕 외출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6·25 때 800평에 이르던 오현집은 인민군에게 빼앗겼고 유엔군에게 폭격됐다.현재 드림랜드에는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안채는 수년 전에 복원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씨는 1957년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합하고 성심여고에서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서예 교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1959년 국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1973년 전근갔던 창문여고에선 가정 교사였지만 서예도 많이 가르쳤다.그동안 틈틈이 서예를 출품,국전에 입선한 적이 여러차례였다.한글 서예의 지평을 연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이 그의 숙부이다. 지난 1996년 교사를 그만둔 뒤 서예에서 멀어지는 대신 전통 음식에 가까워졌다.“감기 기운이 있다가도 부엌에만 들어가면 감기가 다 나았어요.” 그에겐 음식이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언젠가 쇠골찜을 만들었는데,‘할아버지,숙이가 만들었어요.드셔보세요.’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지요.그리곤 즉시 전화를 걸어 7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며 먹으라고 했지요.” ‘…서울음식’ 발간 이후 김씨는 잡지와 방송에서 음식 코너를 맡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요리 연구가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서울 반가음식의 산 증인인 김씨.그에게는 요즘 전통 음식과 생활문화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언탁기자 utl@
  • 부단체장 서러운 2인자 “설땅이 없다”

    부시장·부군수 등 부단체장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자치단체내 서열 2위로 ‘인사위원장’이자 ‘경리관’으로 돈과 인사를 정리하는 길목에 서 있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단체장들의 입김에 따라 보따리를 싸야 하고 자칫 ‘원칙주의자’로 찍히기라도 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부단체장은 행정에 서투른 단체장의 시행착오를 막고 전횡을 견제하며 공조직을 원만하게 이끄는 역할을 요청받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정문 수위만도 못하다.”는 푸념마저 나오고 있다. ●기막힌 ‘왕따’유형 전남도내 A시에서는 최근 도시계획위원회 회의장에 이해가 걸린 주민들이 난입,과장과 직원들을 폭행했다.부시장도 멱살이 잡히고 와이셔츠 앞단추 다섯개가 떨어져 나갔다. 국장 등 공무원 10여명이 현장을 지켜 봤지만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은 부시장의 지시에도 고소하지 않겠다고 버텼다.부하 직원들은 끝내 “폭행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발뺌했다.결국 A시 부시장은 와이셔츠를 수선한 세탁소 주인의 진술을 확보해 사법처리를 마무리했다.부하직원들은 “부단체장은 곧 가지만 우리는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하므로 징계나 좌천을 당하더라도 부시장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전남 B군에서는 군수가 원칙을 강조하는 부군수에게 “다음부터 간부회의에 나오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다.이후 눈치빠른 공무원들은 결재라인인 부군수방을 지나쳤고 부르면 마지못해 들렀다.전북 C군에서 퇴직한 부군수는 “인사·수의계약·예산 등 권한은 단체장이 휘두르고 부단체장은 이를 뒤탈이 없도록 뒷받침하는데 그쳤다.”고 털어놨다. 충남도청 간부들이 유독 D군 부군수로만 가면 몇개월 버티지 못했다.군수의 힘을 등에 업은 기획감사실장의 견제에 밀려 쫓겨오다시피한 것.지난 96년 경기도 E시에서는 부시장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현직 시장의 역점사업인 장학금 조성이 300억원대로 인근 시에 비해 60배나 많고 투자 우선순위에서도 문제가 있어 제동을 걸자 “시장에 출마하려고 그러느냐.”는 주민들의 거친 항의와 협박전화에 시달렸다.울산시에서는 단체장들이 동향 출신 부단체장은 ‘새끼호랑이 키운다.’며 받지 않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러다 보니 일선 공무원들도 부단체장보다는 과장의 지시를 더 따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여기다 의회의장이나 의원,정당 관계자 등의 민원까지 끼어들면 부단체장의 위상은 말이 아닌 셈이다.시·군간 인사교류마저 막히면서 시·군은 지역 토박이들로 채워지고 있고,공무원과 주민들이 선·후배와 형님·동생으로 엮이면서 행정의 기준인 공정성과 객관성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눈칫밥 먹고 성공한 경우도 하지만 부단체장들은 이같은 현실에서도 기회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부단체장 출신이 선전해 주목을 받았다.이들은 모두 50대 초반으로 공직에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공직자도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당선된 한 군수(55)는 “부단체장 시절 인사나 계약은 단체장의 몫으로 간주하고 의도적으로 관여치 않아말썽 소지를 제거했다.”며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도덕성을 검증받은 훌륭한 인물을 단체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단체장은 국가직으로 전남공직협의회 한 간부는 “부단체장이 정책 결정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단체장의 결정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에 매달리면서 반대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부단체장의 임면권이 시장·군수에게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부단체장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시도지사가 기초단체장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부단체장 인사를 단행할 수 있도록 해 신분의 안정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여름탈출 - 해외여행 / 필리핀 ‘팍상한’과 ‘타가이타이’

    |마닐라 글·사진 손정숙 특파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40여년전 쯤으로 필름을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무너져가는 수상가옥들,도시에 전혀 일체감을 보태주지 않는 형형색색의 조악한 대중교통편들,그 틈바구니를 무심코 활보하는 웃통벗은 사내들. 마닐라 변두리의 까맣고 앙상한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역사가 읽힌다.500여년의 스페인 통치,다시 숨돌릴 틈 없이 미국,일본의 식민지배….제 것을 가져본 역사가 짧은 이 땅의 얼굴들과 가게들은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상품진열대마다 미제 캔디와 캐릭터상품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필리핀의 태양만은 일급이다.적도에 한발을 걸친 필리핀은 남태평양위로 7000여개의 보석같은 섬들을 쏟아놓았다.섬들마다 가족들과 연인들을 겨냥한 리조트들이 성업중이다. 국내 여행사들의 필리핀 관광상품들은 크게 두가지다.리조트들이 만개한 섬에서의 휴양여행이 하나.세부-막탄,보라카이,엘니도 등은 가족들과 신혼부부들을 손짓하는 대표적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또하나가 마닐라 근교관광지 기행.통상 팍상한폭포-타가이타이 화산 등을 묶어낸 3,4박짜리 상품들이다.리조트 체류에다가 마닐라근교 관광까지 곁들인 ‘두마리 토끼잡이’ 상품도 보인다. 토박이들의 사는 모양새를 구경하려면 쉬러 온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리조트는 지루하다.물론 팍상한이며 타가이타이 역시 판에 박힌 관광상품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노동하는 원주민들의 살냄새가 묻어난다. #1.물의 세례,‘팍상한’ 마닐라 중심가 호텔에서 나와 남동쪽으로 두시간여를 달린다.제법 그럴싸한 마천루들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한참동안 꾀죄죄한 슬레이트 지붕 행렬,그리곤 이곳 지주들이 소유했다는 끝이 없는 평원들을 바라보며 잠깐 졸다보면 어느새 팍상한 입구다. 수영장에 온것도 아닌데 계곡으로 접어드는 길목엔 남녀 탈의실과 샤워실이 오종종하게 붙어있다.홀딱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여행가이드의 말을 한귀로 흘려버린 관광객들이라면 새삼 긴장하게 된다. 겁먹은데 견주면 시작은 싱겁다.바나나모양의 길쭉한 통나무배에 몸을 싣는 뱃놀이다.적도의 태양아래반들반들 그을린 검은 원주민 사공 두사람이 손님 둘을 맞아들인다.이렇게 넷이 한배를 타고 40여분간 물의 계곡을 거슬러오른다. 수영을 못해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위 ‘맥주병’이라도 안심할 수 있다.바닥이 빤히 들여다뵈는 수심은 깊어야 어른 허벅지께.폭좁은 계곡은 딱 맞게 아늑하다.우거진 수풀 사이로 새들이 출몰하고 햇살 한줄기가 비스듬히 비춰들어 오수를 재촉할 즈음,갑자기 마음이 가시방석이 된다.바위가 이리저리 돌출한 급한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자 사공 두명이 강으로 첨벙 뛰어내려 아예 배를 밀고 끈다.코스를 통틀어 그런 ‘고난의 계곡’이 네댓차례 거듭되고 나면 바위틈을 디뎌가며 사느라 유난히 문드러진 사공의 엄지발가락이 눈에 밟힌다. 봉건시대,사람이 사람을 부리는 시스템이 신분제도였다면 현대의 그것은 돈이다.사공은 자기 직업에 종사하고 우린 그 노동을 사기 위해 돈을 내지 않느냐는 논리로 불편한 마음을 달랜다.그래서 때로는 강 중턱의 꼬치집에서 음료수 따위를 사달라는 그들의 가련한 요구를 “그건 다 상술이며 우린 그들에게 충분한 팁을 주고 있으니 넘어가지 말라.”는 가이드의 말을 떠올리며 뿌리치기도 한다. 상류에 닿았다.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나룻배엔 한무리의 사람들이 벌써 잔뜩 올라타 있다.사공의 재촉에 사람들 틈바구니를 파고들며 주저앉는 순간,아차,선뜻한 뭔가가 아랫도리를 온통 적신다.나룻배를 반쯤 잠군 물이 어느새 허릿께까지 차올라 있다.사공들이 10m쯤 앞에서 떨어져내리는 폭포를 향해 노를 저어가면 나룻배위로는 벌써부터 비명이 난무한다.이윽고 비닐 우비위로 폭포줄기가 가차없이,아프도록 떨어져내린다.물의 세례.이 먼곳까지 날아와 이 무슨 고생이냐 싶은 한편으로 마음 한쪽이 개운해진다.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계곡을 되내려오는 길은 뭔가에 정화(淨化)된 듯하다.침례교도들의 마음을 알것도 같다. #2. 모래바람을 뚫고,‘타가이타이’ 역시 마닐라에서 1시간 30여분를 달려가야 하는 타가이타이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타알화산’을 품고 있다.활동 한지 500년이 지나지 않아 지질학자들 분류기준으로는 아직도 활화산인 곳.살아있는 불덩이는 겹겹이 ‘천연요새’로 둘러싸여 있다. 일단 화산의 분화구 격인 ‘타알호’를 건너야 한다.모터보트를 타고 40여분간 질주,화산땅의 발치에 도달한다.뭍에 오르기 무섭게 밀짚모자를 든 아이들이 부옇게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든다.“원달러,원달러.”학교갈 나이도 안된 조그만 계집아이들이 모자며 먼지가리개용 스카프 따위를 팔고 있다.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집요한 눈빛들이 일렁이던 측은한 마음을 한순간에 질겁하게 한다. 한무리의 강매단을 뚫고 나와도 목적지인 산 정상까지는 한 고비가 더 남았다.하나 둘 도열한 말 등에 올라타고 해발 700여m 등성이를 올라가야 한다.길은 말그대로 모래바람과의 사투.밀짚모자를 있는대로 눌러써도,스카프를 꽁꽁 동여매도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수없는 모래 알갱이들이 입속에서 지금지금 씹힌다.눈동자를 사정없이 할퀴어온다. 드디어 정상.눈아래로는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작은 용암호.그 가운데로 타알화산이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지금이라도 저 분화구가 활동을 시작해맹렬하게 용암들을 뿜어낸다면?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새도 없이 한쪽에서 판을 벌인 장사아치들이 코코넛 주스 한통을 건넨다.코코넛 한가운데 꽂힌 빨대를 빨아들이자 달싸하고도 미지근한 액체가 목젖을 적신다.오는길에 들이마신 먼지들이 한꺼번에 씻겨져 내려간다.다 마신 코코넛을 반으로 잘라 과육을 파먹으면 숙취해소에 그만이라지만 설탕섞어 거품낸 계란 흰자같은 그 맛이 비위에 안 맞을수도 있겠다.짧은 관광을 마치고 말을 타고 되돌아내려오는 길,벙어리같던 마부들이 어쩐일로 입을 뗀다.화두는 역시 ‘팁’을 달라는 거다. #3. 낙수 수상스포츠·골프 등을 즐길 수 있는 해변리조트 ‘푸에르토 아즐’,삼림욕과 온천욕을 한데서 해결하는 ‘히든 밸리’ 등도 마닐라 근교 명소로 손꼽힌다.마닐라 안에서만도 리잘공원,마닐라베이 등은 여행사마다 필수로 집어넣는 관광코스다. 이처럼 볼거리가 풍성한데도 마닐라는 3급 관광지 취급을 못면하고 있는 듯하다.차라리 남태평양의 리조트들은 변함없이 인기다. 우선은 가이드라도 딸리지 않고는 신변보장이 안되는 마닐라의 열악한 치안 탓.또하나는 오랜 식민 지배로 인한 전통의 공백이 마닐라 대기에서 은은한 문화의 발효향을 앗아가 버린게 아닌가 싶다.미 군용지프를 개조한 교통 수단인 지프니가 온통 길을 뒤덮고 싸구려 생 미구엘 맥주가 정갈한 마실거리를 대체하는 곳.리조트의 저녁밤을 장식하는 원주민들의 민속춤에서조차 화려하게 치장한 미제 분가루 냄새가 난다. 마닐라에서 진짜배기는 막노동판과 향락업소,관광지에서 함부로 몸을 굴리는 이곳 노동자들의 땀냄새,그리고 태양뿐인 것 같다.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마닐라는 매력적이다.네온불빛 명멸하는 밤거리 사이로 생존에의 진한 욕망에 정면으로 대거리하는 사람들의 원시적 몸부림을 읽을 수만 있다면. jssohn@ 마닐라행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하루 세 차례 뜬다.오전 8시, 9시(금요일제외), 오후 8시20분.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필리핀 항공편이다.소요시간은 대략 4시간 내외.마닐라 공항을 벗어나면 길에 널린 게 지프니다.이곳 사람들에게는 버스값 정도의 값싼 대중교통수단이지만타갈로그어를 쓰지 않는 관광객들에겐 예사로 바가지를 씌우니 꼭 흥정을 한 뒤 승차할 것. 치안부재 상태인 마닐라 근교 등을 배낭여행하는 용감한 집단은 미국인들뿐이란게 정설.이곳은 어쩔수 없이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의존하게 된다.마닐라 근교는 50여만원대,샹그릴라 등 최고급 리조트는 70여만원대부터 숙식포함 상품이 나와있다.싼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으니 옵션 포함 여부 등을 꼼꼼히 따질 것.
  • 이집이 맛있대요 / 횡계 ‘납작식당’

    영동고속도로 용평·횡계 인터체인지에서 횡계로 접어드는 도로.곳곳에는 ‘2010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다음에는 유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진하게 묻어났다.횡계버스터미널을 지나 로터리에서 대관령쪽으로 50m쯤 가면 ‘납작 오징어불고기’란 간판이 보인다. 1층 ‘해맑은 금고’의 옆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열면 맞은 편에 ‘納爵食堂’이란 나무 현판이 눈에 띈다.그 옆에는 녹색 바탕에 흰색으로 ‘은근하고 소박하게 살자’는 가훈이 나란히 걸려있다.식당 이름이 특이해 물어봤다.지역 특성상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옛날엔 집 지붕이 매우 낮았단다.드나드는 손님들이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낮아 이름을 ‘납작식당’으로 지었다. 한 스님이 “벼슬을 버리고 먹을 정도로 맛있는 집”이란 뜻에서 ‘버릴 납(納),벼슬 작(爵)’을 지어줬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횡계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이 집은 오징어 불고기의 원조다.용평리조트가 개장한 1975년 ‘오징어 불고기’를 처음 시작한 이래 조상현(30)씨가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빨간 고추장 옷을 입힌 오징어를 불판에 구워 먹는 오징어 불고기를 이젠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제주도에서 ‘오불’을 먹으러 오는가하면 전국에서 양념비결 문의가 쏟아진다. 최근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삼불고기’(사진)가 최고의 인기다.오삼불고기는 오징어와 삼겹살의 만남이다.담백한 오징어와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가 무척이나 언밸런스할 것 같은데 맛의 조화가 절묘하다.오징어 특유의 향이 삼겹살에 스며들고,삼겹살의 기름은 오징어에 배어 맛에 시너지효과를 낸다.오징어의 졸깃한 맛과 삼겹살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은근하게’ 살아있다. 직접 기른 고추로 만든 양념에 맛의 비밀이 숨어있다.단맛을 줄이면서 매운듯 칼칼한 맛을 살렸다.알알한 맛에 여름 더위가 무색해진다.산채 나물과 동치미 국물이 매운 맛을 달래준다.이런 맛에 반한 피서객,골퍼·스키어들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다. 평창 이기철기자
  • “우미관 다리가 최고의 놀이터였지”‘청계천 토박이’ 이순형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만일 화가라 ‘황혼의 청계천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지게꾼’을 묘사한다면 밀레의 ‘만종’(晩鍾)에 뒤질 것인가?”(1954.7.18) 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청계천을 서울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려는 복원공사를 하루 앞둔 30일,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동문회관 ‘함춘원’(含春苑)에서 이순형(李純炯·68) 전 서울대의대 학장을 만났다.그는 인터뷰 도중 어언 반세기가 지나 샛노랗게 바랜 경기고 시절 학교신문 한 쪽을 감회 어린 눈으로 읽어나갔다.2학년 때 문예반원으로 수필란에 실은 ‘청계천송’(淸溪川頌)이란 제목의 글이다. ●‘서울의 하수구'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 소년 순형은 이 글을 통해 당시만 해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인근 빈곤층 가정에서 흘려보낸 구정물 등으로 더러워져 ‘서울의 하수구’로 불렸던 청계천의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에 있다고 보고 목청껏 비난했다.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을 예로 들며 청계천의 소중함을 일깨운 뒤,아침 일찍 청계천에 나가 보면 나라의 혼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세련됐지만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는) 명동거리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이 박사는 60년대부터 불모지였던 국내 기생충학에 몸을 던져 후학을 길러낸 뒤 지난해 은퇴해 명예교수로 있다.청계천을 화두로 꺼내자 금방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낡은 볼펜을 꺼내 청계천 주변 지도까지 그려가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한 차례 큰 비가 지나간 뒤엔 장대 끝에 줄을 매단 볼품없는 낚싯대로 가물치를 건져 올리기도 했지요.그럴 때면 웃통을 벗어젖힌 아이들이 너나없이 환호성을 질러대고….” ‘서울 토박이회’ 부회장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청계천 근처에 살아온 토박이.본적이 청계천변에 자리한 장교동 56번지다.지금은 없어진 종로구 수하동의 청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박사는 “어릴 적 청계천 수표교 쪽에는 부드러운 모래밭이 멋지게 깔려 나이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정한 뒤 둔치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즐겼다.”고 회고했다.아치형으로 만들어 모양 자체만으로도 인기를 얻은,현재 삼일빌딩앞 우미관 다리는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던 당시엔 손꼽히는 놀이터였다.주민들이 철봉,역기 등 운동기구를 하나 둘씩 들여놓아 요즘 드라마로 더욱 유명한 김두한도 힘자랑을 했단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청계천 하면 탁류를 떠올릴 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잠시 피란 떠났다가 1·4후퇴 무렵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라본 청계천은 글자 그대로 푸르디 푸른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너나없이 가정형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집집마다 청계천변으로 나와 떡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팔아 연명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이 박사 자신도 열다섯살이던 9·28수복 때에는 담배,껌을 팔아 돈을 벌었다.아직도 국산 ‘공작’이나 미제 ‘러키 스트라이크’ 등 담배 이름을 잊지 못했다. ●‘나이애가라' 막걸리집의 어원은 전쟁이 끝난 50년대 중반,가난을 벗어날 생각에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청계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늘어 갔다.판자로 얽은 막걸리집을 ‘나이애가라’라고 불렀다.화장실이 없어 취객들이 청계천 둑 위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 물줄기가 거세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5월 단오,8월 한가위 때면 장사교 위에서 동네마다 대표를 뽑아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곤 했지요.” 중·고교생들이 정동 등 시내 학교로 통학하는 길이었던 청계천 10리 뚝방길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분홍빛 사연을 실어나르는 길이기도 했다.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비좁은 길에 학생들이 넘쳐나 남녀끼리 자연스레 어깨가 마주쳤다며 이 박사는 씩 웃었다. 흔히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수도(首都)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타지인들에게 내준 탓이라고 했다.팔도 사람이 모인 서울을 그는 ‘공설운동장’으로 비유한다.한강도 서울의 하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대부분 사대문 안에서 둥지를 틀었던 서울 사람에게는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게 청계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계천 복원은 고향 찾아주는 일 “청계천 복원은 서울토박이는 물론 고향을 잃고 살아가기 쉬운 미래 서울시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는 일로 반기지 않을 수 없지요.” 최근 서울토박이회 회원들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을 염원하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던 중 광교 조흥은행 옆으로 난 뒷골목에서 50여년 전의 여염집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향의 흔적을 찾았다는 감격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중산층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청계천 쪽에 살면서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북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때로는 청계천 주변을 떠나기 싫어했던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는 이 박사.조상 대대로 무교동·수하동·삼각동 등 청계천 주변을 내내 떠나지 못하다가 60년 모두 의학도였던 4형제의 학비 마련 등을 위해 당시 신도시로 개발된 불광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청계천과 약간은 멀어져야만 했다. “개발에 떠밀려 청계천이 복개될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는 이 박사.2년 후에 다시 드러날 청계천의 새 모습을 꿈꾸며 옛 추억에 잠긴 듯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글 송한수기자 oneko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 “첫사랑 쟁취에 목숨 걸었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 “첫사랑 쟁취에 목숨 걸었다”

    언감생심 담임선생님의 딸을 사랑했다.그것도 걸핏하면 몽둥이 세례를 퍼붓는 다혈질에 ‘악질’로 소문난 학생주임의 화초같은 딸을.●‘악질 담임의 외동딸 사랑 이야기’ 27일 개봉하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제작 팝콘필름)는 충무로에서 잊힐 만하면 나오는 첫사랑을 소재로 한 코믹멜로다.담임의 외동딸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는 단선적이고 순진한 발상이 영화의 기본 틀. 남자주인공이 첫사랑을 이뤄내기까지의 좌충우돌 우여곡절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덕분에 영화에는 멜로보다는 코미디의 정서가 훨씬 강하다. ‘연애소설’에서 두 여자친구 사이에서 제법 심각하게 사랑과 우정을 고민했던 차태현이 이번에는 코미디 연기에 작정하고 소매를 걷었다.부산 토박이 뺨치게 생생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부터 심상찮다. 그의 역할은 촌스럽게 곱슬거리는 더벅머리의 손태일.그의 첫사랑 주일매(손예진)는 말 그대로 ‘젖동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일매가 태일의 엄마젖을 나눠 먹고 자란 것.어려서부터 일매와 결혼하겠다고 졸라대는 태일을 일매의 아버지이자 담임선생님인 주영달(유동근)이 우격다짐으로 주저앉혀 왔지만, 태일이 머리가 굵어지고(?)부터는 더는 달랠 방법이 없다. 등교길 영도다리 아래(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찍었다.)에서 확성기로 담임에게 딸을 달라고 협박하는 강심장의 손태일이다. ●단선적 전개… 진실성 너무 떨어져 영화는 신세대 스타 차태현과, ‘가문의 영광’으로 ‘대박배우’가 된 유동근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에 한참동안 초점을 맞춰 놓는다.연기인지 생활인지 헷갈리는 차태현의 자연스러운 코믹연기가 관람 포인트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선생님의 신임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S대 법대에 입학하고 사법시험 1차까지 장난처럼 통과하는 손태일의 순애보는, 아무리 코미디라지만 진정성이 너무 떨어진다. 심심할 정도로 단선적인 이야기 전개도 ‘뒷심’을 받쳐주지 못하는 걸림돌. 첫사랑 쟁취에 사생결단 의지를 불태우는 남자 주인공의 저돌성만을 감상하며 2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기는 아무래도 힘들다.일매가 아무도 모르게 불치병을 앓아 왔다는 느닷없는 설정에 맥이 풀릴 관객도 꽤 될 것 같다. ●‘피아노’의 오종록PD 감독 데뷔작 그러나 관건은 영화의 ‘실수요자’인 10대 관객층의 반응이다.이러쿵 저러쿵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청소년 관객들이 신세대 아이콘인 차태현·손예진 커플의 유쾌한 연애담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코미디란 외피 속에 은근슬쩍 집어 넣은 엽기와 키치적 요소도 10대 관객에겐 장점일 수 있다. ‘결혼’‘줄리엣의 남자’‘피아노’ 등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히트작을 내온 오종록 PD의 감독 데뷔작.시나리오까지 직접 썼다.‘연애소설’에서 노래솜씨를 자랑했던 손예진이 이번엔 아예 주제가를 불렀다. 황수정기자 sjh@
  • 23년째 ‘연평약포’ 운영 김운선 씨

    “연평도 주민들이 필요할 때 약을 못 살까봐 돈이 안 돼도 약포(藥鋪) 문을 못 닫는 거지.” 연평도에는 변변한 약국 하나 없다.대신 김운선(金雲線·69)씨가 운영하는 연평약포가 지역 보건소와 함께 섬마을 주민 1300여명의 건강을 23년째 책임지고 있다. ●연평도 유일의 ‘임시 약국’연평약포 약포는 조제약을 뺀 일반의약품만 취급하는 ‘임시 약국’이다.보건소의 허가를 받은 일반인이 운영할 수 있다.김씨도 정식 약사는 아니며 약을 조제하지는 않는다.보건소에서 지정한 기본 의약품만 판매하고 있다.약포는 외딴 산골짜기나 섬마을 등지에서 의료 시설을 대신해 왔지만 요즘은 교통의 발달로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김씨가 약포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당시만 해도 연평도에 작은 약국이 있었다.하지만 정가보다 두 배 이상 되는 비싼 가격에 약을 파는 바람에 ‘가난한’ 주민들은 약을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감기약을 사려고 뭍으로 나가기도 했다.김씨는 “가끔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료제 등 내가 다룰 수 없는 약을 찾는 주민들이 있다.”면서 “그때마다 ‘연평도에도 정식 약사 한 명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소한 약 하나라도 아픈 사람에게는 명약(名藥)” 4평 남짓한 약포에는 종합감기약,소화제,파스,피로회복제 등 50여가지의 기본 의약품이 선반 위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요즘 같은 꽃게잡이 철이면 저녁 무렵 조업을 끝낸 선원들로 약포가 북적거린다.이들이 구입하는 파스와 진통제가 3만원 안팎인 하루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평도 주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김씨의 자부심만큼은 여느 정식 약사 못지 않다.김씨는 “연평도 주민치고 내 약 안 먹어 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김씨에게는 영업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밤 늦은 시간에 약포 옆 김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주민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김씨는 “5년 전 급성맹장염을 앓던 청년에게 진통제를 먹인 뒤 연평면 행정선에 태워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시켰다.”면서 “그 청년이 수술을 받은 뒤 ‘할아버지가 생명의 은인’이라며 청주 한 병을 들고 찾아왔을 때 ‘이래서이 일을 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군복무 7년을 빼고는 줄곧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난 61년 제대하고 조기잡이를 하는 가족을 돕기 위해 연평도로 돌아왔다.지난 80년부터 11년 동안 이장을 맡았을 정도로 주민들은 그를 믿고 의지한다. 김씨는 “자식들도 떠나고 아내와 단 둘이 살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걱정이라면 갈수록 약이 덜 팔린다는 것이다.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최근에 꽃게잡이가 시원치 않은 탓이다.90년대 초만 해도 1800명을 웃돌던 주민이 1300여명으로 줄었다.덩달아 약 판매량도 3분의1 가까이 감소했다. 김씨는 “주위에서 ‘돈이 된다.’며 무허가 강장제 등을 팔 것을 권유한다.”면서도 “혹시 주민들이 탈이라도 날 것 같아 믿을 수 있는 약만 팔겠다.”며 너털웃음을 떠뜨렸다. 글·사진 연평도 이두걸기자 douzirl@
  • 서울토박이회 “청계천 복원 찬성”

    청계천 복원공사의 연기 또는 반대 주장이 거세 고민하던 서울시가 마침내 20만 원군(?)을 얻었다. ‘서울토박이회’(회장 김인동 서울시의정회 사무총장)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청계천 복원공사를 오는 7월1일 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예정대로 시작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토박이회는 “청계천 복원을 반대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높아 무언(無言)의 지지자들을 대신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세계적으로 드물게 정도(定都)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의 생명력을 되찾아 현대적인 면모와 조화를 이루려는 복원사업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릇 큰 사업에는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기 마련”이라면서 “서울의 미래를 고려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검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앞으로 청계천 복원에 찬성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연계,자체 홈페이지(www.seoultobagi.or.kr)를 중심으로 공사기간 중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 등 원활한 사업을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지난 21일에는 시 청계천사업본부를 방문,자연하천으로의 복원에 힘쓸 것을 요청하는 등 문제점도 지적했다. 서울토박이회는 조선조 청계천 수위(水位)를 재던 다리 ‘수표교’가 있던 곳으로,서울역사의 상징성이 짙은 중구 수표동에 1994년 사무실을 내고 출범했다. 서대문구·중구 등 7개 지회를 뒀으며 수필가 피천득(94),아동문학가 윤석중(92) 선생도 회원이다. 선조가 1910년 이전부터 현 서울시 행정구역 내에 정착한 시민들을 회원으로 한다.현재 3546가구 1만 4500여명이 등록돼 있다. 서울토박이는 대체로 3대 이상 시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비등록 회원을 포함하면 5만 5000여가구 22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이 고향인 우리가 서울의 아름다움을 낡은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돼 안타깝다.”면서 “오늘날처럼 도시화만 계속돼 자연환경이라는 자산을 잃은 채 삭막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진정 ‘실향’의 피해는 1000만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협조를 호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야생茶 연구 5년 ‘화개 작목반’ / 찻잎 따는 남자들

    “산에서 키운 찻잎을 곡우(穀雨·4월20일) 이전에 딴 우전차(雨前茶)가 국산 최고급품이지요.요즘 막 나오기 시작하는 우전차를 한번 맛보세요.한 입 머금은 향이 여운을 남기며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지난 주말 경남 하동 섬진강변의 화개 지역에서 야생차를 재배하고 만드는 농군 ‘다인’(茶人)들이 ‘부춘다원’에 모였다.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의 하동 토박이인 이들은 ‘화개야생차작목반’ 회원 6명 가운데 4명. 하동야생차 연구와 보존 등을 위해 5년전 ‘다심회’(茶心會)란 모임을 만들어 수시로 미팅을 갖고 토론을 해왔는데,최근 군청과 농협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모임 명칭을 작목반으로 바꾸었다. 찻잎을 처음 따내기 시작하는 시기라서 무척 바쁜데 마침 비가 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앉게 됐다. 짧게는 5년,길게는 10년 이상 야생차를 만들어온 이들의 이야기는 소박하지만 거침이 없다. 먼저 부춘다원 주인인 여봉호(42)씨가 자랑하는 하동야생차의 가치. “야생차와 재배차,특히 우리 토종차와 일본에서 도입된 재배차는 흔히 산삼과 인삼에 비유됩니다.그만큼 맛과 향에서 차이가 나지요.특히 차나무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하동 화개의 차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국내 최고급 차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통일신라 이후 화개차 최고급 인정 하동차는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때(828년) 대렴이라는 사람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씨를 쌍계사 아래에 심은 것이 퍼진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사실 현재의 하동차는 사람들이 퇴비를 주고 가꾸기 때문에 100% 야생차라고 하기는 어렵다.그러나 대부분 지리산 자락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재배하므로 국내에선 그래도 가장 야생에 가까운 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무를 맡고 있는 최효승(42)씨는 야생차의 점차적인 ‘하산’에 대해 근심스런 표정을 짓는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재배지가 자꾸 평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야생차가 산자락에서 평지로 내려오다 보면 기존의 재배차와 차별성이 없어지고,고유의 맛을 잃게 됩니다.많이 재배하는 것 못지 않게 품질을 유지하는게 중요합니다.” 야생차에 대한 애착과 철학 때문인지이들에게선 소박한 농군의 이미지와 함께 도회적 다인(茶人)의 이미지가 동시에 풍긴다. 전통 방식으로 직접 차를 만들며 맛을 봐온 만큼 차에 대한 안목은 여느 전문가 못지 않다.사실 잎을 따고,솥에서 살짝 볶은 차(덖음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달라지는 미묘한 차 맛을 이들 만큼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이들이 있을까. “녹차는 찻잎이 어릴수록 고급입니다.중국차 가운데 최고인 명전차(明前茶)는 항저우(杭州)의 룽징(龍井)에서 청명(淸明·4월5일) 전에 딴 것입니다.중국의 항저우보다 평균 기온이 낮은 우리나라는 요즘에 최고급 녹차가 나오고 있지요.” 차는 그 종류와 키우는 방식,덖는 정성에 따라 품질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기계로 잎을 대량 채취해 증기에 쪄서 말린 것과,찻잎 하나하나를 따내 솥에서 손으로 비비며 덖어낸 수제차 맛은 확연하게 다르다. 같은 품종의 수제차라도 4월들어 처음 잎을 따낸 첫물차(우전)가 두번째(세작),세번째(중작) 따낸 것보다 품질이 훨씬 뛰어나다.그래서 한 등급 떨어질 때마다 차의 가격도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격식보단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그만 이들은 일천한 맛의 경험만을 가지고 전문가인양 일반인들을 ‘무식쟁이’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자칭 차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중 상당수는 독선적입니다.막연하고,애매한 말로 특정한 맛을 표현하고,그 맛이 아니면 모두 저급한 차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어요.그러나 고급,저급을 따지기에 앞서 차 맛은 다양하고,사람들의 입맛도 제각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이호복(40)씨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인다.인근의 ‘곡천다원’ 주인인 그는 “야생차로 유명한 국내의 몇몇 사찰에서도 하동의 재배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차 맛을 보고 구입해간 뒤 사찰 브랜드로 판매도 한다.”고 귀띔한다. 이씨는 또 “차마시는데 격식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향과 맛을 음미하면 족하다.”고 말한다.단 기왕이면 찻잔은 흙으로 빚어 구운 것으로,물은 수돗물 보다는 생수를 끓여 적당한 온도(섭씨 60∼70도)로 식혀 마실 것을권했다. 적정량을 생산하면서도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해발 800m 이상에서 서식하는 토착 미생물을 채취해 집에서 배양하고,이를 다시 퇴비 원료와 섞어 발효시켜 유기질 비료를 직접 만든다. 이렇게 만든 것을 산자락의 재배지에 일일이 뿌려주고,병충해가 생겨도 농약은 절대 안쓴다.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병충해는 별로 생기지 않는 편이다.매년 4월초엔 고품질 차를 수확하기를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는데,올해는 8일 행사를 치렀다. 이들은 다원을 찾는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차를 판매한다.서울 백화점 등에서10만∼12만원 정도 하는 ‘우전’의 경우 6만∼7만원에 살 수 있다.부춘다원(055-883-9516),곡천다원(〃-883-5160). “지난해 제가 산자락 여기저기 산재한 야생차 재배지 3000여평에서 올린 수익이 1000만원 정도예요.사실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찻잎을 따내고 거름을 주는 수고에 비하면 너무 적지요.그러나 돈만 보고 할 수 있나요.야생차는 제게 바로 삶이고 희망입니다.” 모임에서 ‘젊은 피’에 속하는 김종열(39)씨의 각오가 다부지다. 하동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살인의 추억 형사역 송강호·봉준호 감독/ “범인은 지금 행복한지 묻고 싶네요”

    “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려운 것이 없었다.”라는 영화 카피가 있었다.이 두 남자를 보면,무슨 영문일까.그 문구가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은. 수식어가 따로 필요없는 배우 송강호(36)와,아직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감독 봉준호(34).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형사스릴러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25일 개봉)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완성도 높은 흥행실패작(?) ‘플란다스의 개’가 봉 감독의 데뷔작.웬만한 코미디를 보고는 웃지 않는다는 송강호가 “떼굴떼굴 굴렀다.”며 극찬하는 작품이다.둘이 어떻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는지는 이쯤되면 설명이 끝난 거다. ●머리나쁜 시골형사,배우 송강호 첫 시사회를 끝낸 그는 편안해 보인다.넥타이를 매지 않은 간편한 정장차림의 인터뷰 자리에서 우적우적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랠 만큼 여유가 있다.그에게 이번은 딱 10번째 영화다.96년 데뷔했으니 햇수로는 7년째.그러고 보면 다작(多作)이다. “이번 영화 때문에 몸을 많이 불렸어요.‘YMCA 야구단’ 때보다 8㎏은 더 쪘어요.어떻게 불렸냐고요? 그거야간단하죠.밤마다 진탕 술마시고 운동은 절대로 안해 보세요.마구 찝니다.” 극중 역할은 연쇄살인의 실마리를 육감 하나로만 찾는 막가파 시골형사 박두만.논리를 세우는 수사는 절대 하지 못하는 캐릭터라 육중하고 굼떠 보이는 외모가 필수였다. 배우에게 의미없는 작품이 어디 있을까.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실화,그것도 연쇄살인의 중심에 서는 역할에 부담이 없었을 리 없다.“실제 사건이 일어나던 무렵 군복무 중이었다.”는 그는 “시나리오를 받아든 순간 뭔가에 분노가 치밀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을 잇는다.그러고 보면 내심 별러온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원작이 연극(‘날보러 와요’)이잖아요.연극판 선배들이 주도한 작품이라 지금까지 너댓번은 봤을 겁니다.” 소문을 듣고 봉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먼저 조른 그였다. 차기작 ‘남극일기’의 촬영이 내년으로 밀리면서 그는 요즘 “빈둥거리는 게 일”이다.건들건들 농담을 잘도 늘어놓다 막판에 정색하고 덧붙이는 말.“이번 영화,잘 돼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좋은감독,제작자들의 소신이 꺾이는 게 요즘 충무로의 분위기 아닙니까.우리 봉 감독이 9회말 2아웃에서 마지막 타자로 나섰다니까요.” ●논두렁으로 스릴러 무대 옮긴 감독 봉준호 봉 감독은 자신의 새 영화에 “농촌 스릴러”라는 언밸런스한 수식어를 곧잘 붙인다.“한국의 농촌과 스릴러라는 상충된 이미지를 꼭 한번 묶어보고 싶었다.”는 그다. 사실과 허구를 얼마만큼의 비율로 섞어야 할지,실화를 극화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터.“사건일지를 꼼꼼히 뒤지는 건 물론이고 담당형사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는 그는 “단서를 못 찾는 형사의 무능함보다는 80년대라는 시대 자체의 전근대성과 조악함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다.몽땅 시위진압에 동원돼 수사에 도움이 못 되는 전경부대,구타를 밥먹듯하는 취조실 등을 끼워넣은 건 그런 의도였다.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전력이 묻어나는 고집이다.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프레임 속의 기억’‘지리멸렬’ 등의 단편으로 두각을 나타내다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로국제영화제의 상이란 상은 휩쓸다시피 했지만 국내 관객들에겐 보기좋게 외면당했다. 이번은 어떨까.맺음말이 길어진다.“너무 빨리 모든 걸 잊어버리는 나라 아닙니까.대한민국이,우리가 어떻게 살았었나 돌아본 작업이니 어찌보면 슬픈 영화죠.흥행은,글쎄요….이런 생각은 해봤어요.범인을 만나면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꼭 물어보겠다고요.의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기억하는 것 자체가 응징이니까요.” 황수정기자 sjh@ ■‘살인의 추억'은 어떤 영화 세월이 흘러 극도의 광기가 한줄기 회한이나 앙상한 추억으로만 남았을 때.형사스릴러 ‘살인의 추억’은 제목부터가 도발적이고 역설적이다.살인이 추억이 될 수 있다니….영화는 세상이 다 아는 실제 살인사건에서 극적인 요소만 골라내는 위험한 작업을 시도했다. 형사물이되 사건보다는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요리할까 궁금한 관객에게 영화는 상반된 두 형사의 캐릭터를 대비,시선을 분산시킨다.연쇄살인을 수사하지만 실마리 하나 못 찾고허우적대는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 앞에 서울에서 자원해 내려온 두뇌파 형사 서태윤(김상경)이 나타난다. 전반부는 그대로 코미디다.폭력수사에 넘겨짚기가 주특기인 두만과,증거와 논리를 따지는 태윤이 주고받는 코믹한 대사들에 스릴러물의 냄새는 온데간데없을 정도.두 형사의 주도권 다툼으로 한참동안 버디영화의 익숙한 얼개를 엮던 영화는,강력한 살인용의자인 현규(박해일)를 거의 후반부에 흐릿하게 노출시킴으로써 긴장의 진폭을 극대화한다. 스릴러 장르 특유의 도회적 이미지가 농촌 무대와 절묘하게 결합한 것도 묘미다.잡풀이 우북한 논두렁,갈대밭,야산 등 시골풍경 그대로가 시종 영화의 공간이 된다는 점도 관객들에겐 색다른 감상포인트가 될 듯하다. 그러나 인물묘사 위주로 진행되는 영화의 장기는 뭐니뭐니 해도 배우들의 매끈한 연기.날카로운 형사의 캐릭터를 위해 10㎏이나 감량한 김상경,형사들의 압박 속에서도 눈꼽만큼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박해일,두만의 동료형사이자 고문수사관으로 시대적 부조리를 대변한 김뢰하 등이 모두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추억’이란 단어를 끌어붙인 영화의 의도는 뭘까.영화 속 살인사건도 현실에서처럼 끝내 의문으로 남겨진다.마지막 대목에서 살인을 추억하는 주체가 형사인지 살인범인지,관객들은 포스터의 카피처럼 ‘미치도록’ 정답이 궁금해진다. 살인의 광기마저 나른한 낭만과 웃음으로 풀어낸 화술이 기막히다.듣지 말아야 될 비밀을 들었을 때처럼 뭔가 언짢고,불쾌하고,찜찜한 감상.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의 특장이자 의도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황수정기자
  • 메트로 플러스 / 전통고추장 구입희망자 신청 접수

    서울시농업기술센터는 보리고추장·찹쌀고추장 등 전통 고추장의 구입을 희망하는 시민 200명을 대상으로 12일까지 신청받는다.4대째 서울토박이로 고추장 기능보유자인 김복인(64)씨의 전통 고추장 맛보기를 원하면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전화(3462-5704)로 신청하면 된다.
  • [시네 드라이브] 사투리 연기가 흥행대박 좌우?

    영화 촬영현장에 때아닌 사투리 열풍이 강하다.경상,전라,강원 등 사투리의 출처도 다양하다.코미디 붐 속에 손쉽게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사투리를 끌어들이는 추세인데,배우들이 덩달아 바빠졌다. 가을 개봉을 목표로 새달 1일 크랭크인할 ‘황산벌’팀의 사투리 연습은 살벌(?)할 정도다.영화는 백제 계백장군과 신라 김유신 장군의 대결을 그리는 코미디.영화 전체가 영·호남 사투리로 진행되는 터라 주인공들의 사투리 대사는 필수다.계백의 부인을 맡은 김선아의 노력은 눈물겹다.전라도 출신인 매니저의 주선으로 여수 토박이 아줌마에게 시나리오를 보낸 뒤 사투리 육성을 녹음테이프로 공수받아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다.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역사공부에도 한창인 계백 역의 박중훈은 아예 촬영현장에 ‘전담선생’을 모셔갈 계획이다.김유신 역의 정진영도 뒤질세라 경상도 출신의 조연 김인문과 사투리만 쓰는 술자리를 따로 마련하고 있을 정도. 지난달 28일 개봉한 ‘선생 김봉두’는 배경이 강원도 산골.아역배우 5명은 촬영 두달 전부터 영월 출신의 극중 조연에게서 강원도 사투리를 과외수업받았다.장규성 감독이 강원도 시골 출신인 덕도 톡톡히 봤다. 이처럼 감독이 지방출신이면 사투리의 결은 한결 더 생생해진다.차태현과 유동근이 부산사람으로 설정된 코미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부산 출신인 오종록 감독이 일일이 억양과 발음을 교정해주고 있다.‘친구’의 장동건과 유오성이 사투리를 흠없이 구사한 것도 부산 출신 곽경택 감독의 공이었다.곽 감독은 번번이 대사를 녹음해 배우들에게 나눠줬다.‘가문의 영광’에서 익살스러운 호남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한 유동근은 ‘사투리의 달인’으로 통한다.가깝게 지내던 탤런트 김성한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결과였다.‘선생 김봉두’에서 인정많은 학교 소사로 나온 성지루도 강원도 토박이의 생활용어를 직접 녹음해가며 사투리를 익혔다.요즘 배우들에게 사투리는 액세서리 수준을 넘어섰다.힘껏 공들일 수밖에.‘친구’가 대박터질 때 최고의 유행어는 장동건의 대사 한줄,“고마해라,마이 무따 아이가.”였으니. 황수정기자
  • 국조실·재경부 차관급 자리다툼 치열

    국무조정실에 신설되는 차장(차관급) 한 자리를 놓고 국무조정실과 재정경제부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책임총리제 도입의 상징으로 국무조정실에 1·2차장의 두 자리 신설방안이 추진됐으나 행정자치부와 의견조율 과정에서 한 자리로 축소되면서 자리다툼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무총리실은 차장 2자리가 신설되면 내부 승진자와 재경부 출신을 임명해 과부하가 걸려있는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을 효율적으로 보좌한다는 구상이었다.유력 후보로는 국무조정실 이형규(50·행시 16회)총괄조정관과 재경부 김영주(53·17회) 차관보가 꼽혔다. 하지만 차장 한 자리로 줄면서 국무조정실과 재경부는 조직의 사활을 건 듯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국무조정실은 이영탁 실장이 재경부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차장은 국무조정실 ‘토박이’인 이 조정관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편다. 더구나 산하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재경부와 달리 총리실은 외부로 나갈 기회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총리실 관계자는 “차장 자리의 인선결과는 고건 총리가 내부 출신을 챙겨 명실상부한 실세 총리인지를 가늠짓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며 고 총리를 압박했다. 김 차관보의 입성은 이 조정관 등 행시 16회 출신 선배들이 옷벗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깔려있다.외부에 빼앗기는 데다 세대교체 바람마저 불면 국무조정실의 사기저하도 우려된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국무조정 업무가 부처의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자리인 만큼 거시정책을 다룬 ‘경제통’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특히 오는 7∼8일쯤 1급 대규모 인사를 앞둔 재경부는 1급 간부 1∼2명을 외부로 승진시켜야 퇴진을 최소화하면서 인사의 숨통을 틀 수 있기 때문에 치열한 물밑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재경부에는 이미 국무조정실 차장에 김 차관보가 영전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한 상태다. 조현석기자 hyun68@
  • [대전청사 24시]업무 늘고 인사적체 심각 통계청 직원 불만 ‘폭발직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통계청 직원들의 인사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간부 자리는 상급부서에 내려오는 인사들이 차지하는가 하면,‘토박이’ 직원들은 늘어난 업무에 인사적체에 사기는 꺾여 있다는 얘기다. 오종남(51) 청장 등 국장급 이상 간부 7명 가운데 5명이 재정경제부 등 상급부서에서 내려왔다.이들 5명(개방직 포함)의 재임기간은 18.8개월.통계청에서 잔뼈가 굵은 국장 2명의 재임기간은 61개월로 상급부서 출신의 3배가 넘는다. 더욱이 현 선주대 사회통계국장이 지난 98년 1월 국장 보직을 받은 이후에는 5년동안 내부 승진의 맥이 끊긴 상태다.본청(19명)과 지방사무소장 등 과장급 25명 가운데 10년을 넘긴 만년과장 4명,5년 이상 과장은 19명이다. 5급 이하 하위직의 인사적체도 마찬가지다.지난 98년 농수산 통계를 인수하면서 공무원 319명을 흡수했다.이 가운데 315명이 6급 이하여서 6급공무원은 기형적으로 많다.지난해 통계청의 5급과 6급의 비율은 1대 6으로 중앙부처 평균 1대 2를 훨씬 넘어섰다. 공무원직장협의회 조명윤 대표는 “산하 기관이 없어 인력 재배치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결원이 생기면 본부에서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인사 적체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통계청을 우대해 달라는 게 아니라 다른 부처와 비슷한 여건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게 통계청의 요구사항”이라고 공무원들의 불만을 전했다. 직장협의회측은 최근 5년동안 35건의 통계가 55건으로 20건이 늘었지만 조직은 그대로여서 야근을 밥먹듯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
  • ‘빠른 삶’ 접고 ‘느린 삶’ 으로...“경쟁 염증” 잘나가던 CEO등 귀농 자연품으로

    “처음엔 ‘나노(nano·10억분의 1)초를 다투는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무슨 부질없는 행동인가.’라는 자괴감도 느꼈지만,이젠 ‘느리게 사는 삶’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3년차 농사꾼 안병덕(49)씨는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20년 남짓 쌍용그룹의 건설·정보통신 계열사에서 일했다.그는 3년전 정보통신 벤처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끝으로 서울생활을 접었다. ●49살 퇴물이 농촌선 청년 경기 고양시 벽제3동 산 1번지가 안씨의 일터다.매일 아침 일산의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출근’해 보리와 콩,상추,고구마 등을 키운다.비 오는 날에는 고구마를 다듬고 콩을 깐다. “콩을 까다보면 지나온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다가 마침내 내가 콩을 까는지 콩이 나를 까는지 모를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농사가 생각보다 쉽진 않았지만,40줄이면 ‘퇴물’ 취급 당하는 IT업계의 생리에 익숙해 있던 안씨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첫해 안씨의 ‘소출’은 200만원.직장 다닐 때 연봉의수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땅 속 깊이 박힌 풀뿌리를 중간에 끊지 않고 뽑아내려면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포착해 비틀듯 돌려빼야 합니다.” 그는 농사를 “언어가 필요없는 자연과의 대화”라고 예찬한다.안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졸업하는 대로 환경운동을 하는 아내와 함께 농촌에 완전히 뿌리를 내릴 작정이다. ●내가 콩을 까는지 콩이 나를 까는지 21세기 신판 러다이트(Luddite)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기에 실직위기에 처한 수공업자들이 전통적 삶의 양식을 무너뜨리는 기계 파괴운동을 벌였다면,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컴퓨터 문명과 급속한 사회발전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생활실천운동이 번져가고 있다. ‘느림’과 ‘자연’이란 화두가 대도시 전문직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경쟁과 효율성,속도가 지배하는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귀농(歸農)’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농촌생활이 관심사로 떠오른 5∼6년전에는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이농 1.5세대의 ‘생계형’ 귀농이 주류였다.반면 최근엔 농촌이란 공간에서 ‘대안적 삶’을 개척하려는 ‘대안형’이 새로운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행에서만 23년을 일한 정통 ‘은행맨’ 함찬호(50)씨는 지난해 4월 부국장급 간부직을 내던지고 강원도 화천에 둥지를 틀었다.그는 “극심한 경쟁에서 비롯된 긴장과 피로감에 염증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연고도 없는 화천을 택한 것은 물이 맑고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일거리가 없는 지난 겨울 그는 독서와 사색으로 30년만에 ‘느림 속의 자유’를 만끽했다. ●극심한 경쟁 피로감에 염증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2년전 경북 상주에 정착한 이찬배(44)씨는 밭갈이에 고추종자 키우는 일로 분주하다.산 자락에 있는 밭 1800평에 올해는 고추와 과일을 키울 작정이다.중학생인 두 딸과 함께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 농촌생활과 유기농법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그는 “4인 가족이 생활하는 최소단위의 농사모델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는 “99년을 정점으로 줄어들던 귀농인구가 1,2년 전부터 고학력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귀농은 단순히 거주지와 직업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세영 박지연기자 sylee@
  • 우리구 살림 이렇게/이낙기 송파구 의장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의회의 존재를 확실히 부각시키겠습니다.” 이낙기(66·풍납1동) 송파구의회 의장은 12일 “아직도 의회를 잘 모르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면서 제4대 의회의 의정활동을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이 올해 초 주민들을 초청해 신년 인사회를 가진 것도 이같은 취지에서다.그는 “구청장,일부 기관장 등과 함께 신년 인사회를 가졌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풍납동에서만 38년째 사는 송파 토박이로 1·2대 의원을 지낸 경륜가다. “1966년 당시 강동구 성내동에서 분리된 풍납동 주민은 2000여명으로 비피해가 끊이질 않았다.”는 이 의장은 “지금은 주민수가 7만명으로 늘었지만 수해에 대한 걱정이 없다.”며 상습 침수지역의 오명을 씻었음을 자랑했다. 그의 의회관은 ‘열린 의회’다.집행부 행정에 대해 시빗거리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옳은 대목은 격려하고 아쉬운 점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해야 주민들의 진정한 대표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것. 지난해 의정 활동상이 이를 입증해 준다. 송파구의회는 지난해 미군기지 송파이전 반대결의안 등 6건의 결의안과 잠실 재건축 일괄사업승인 건의안 1건 등 지역 주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데 총력을 모았다. 이 의장은 송파구의회의 또다른 면모는 ‘뚝심있는 의정 활동’이라고 밝혔다.주민들이 싫어하는 도심 부적격시설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내 서울축산물공판장 도축장의 시설 폐쇄를 96년부터 줄기차게 촉구해 어느정도 성과를 냈다. 그는 “시가 3월까지 경기지역으로 도축장을 옮기기로 했으나 새 도축장의 규모가 현 도축장보다 적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시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의장은 “의회와 집행부는 주민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기능은 다르다.”면서 구정을 감시하는 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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