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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 D-13] 서울 25개구 구청장후보

    [지방선거 D-13] 서울 25개구 구청장후보

    기초자치단체장은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광역자치단체장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친다. 소속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 주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노래방 인허가 단속, 불법주정차 위반단속, 나아가 21층 미만이거나 연면적 10만㎡ 이내의 건축물 신증축 인허가권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지역행정의 제왕인 셈이다. 서울 구청장의 경우, 평균 1200명의 직원들을 거느리며 평균 예산만도 3200억원대에 이른다. 기초단체장은 정치적으로 영남권은 한나라당에서, 호남권은 민주당에서 양분하는 구조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도 같은 양상이어서 부정과 비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현 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47.8%인 110명이 검찰에 기소됐다. 이번 선거에서는 228명을 선출하는데 3.4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유권자들이 6월2일 투표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지역별 기초단체장 면면을 살펴본다. ■중구 초접전… 성동에선 여야 서로 “우세” 중부권에서 한나라당은 종로구와 중구에서 우세를 점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동대문구에서의 선전을 기대하는 등 예상외로 박빙의 승부처가 많아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종로 후보등록이 많은 종로구는 한나라당 정창희 후보와 민주당 김영종 후보의 박빙 우세 속 무소속으로 나온 김성은 후보와 유미영 후보의 여풍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곳이다. 종로 토박이를 자처하는 정 후보의 핵심공약은 ‘종로세계화 프로젝트’다. 파리·로마처럼 고궁과 문화재가 즐비한 종로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다는 구상이다.김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은 ‘품격 있는 종로, 기품 있는 종로’다. 특히 김 후보는 “관광특구 북촌, 인사동, 돈화문로를 연계한 문화관광벨트를 구축해 도심상권도 부활시키겠다.”고 말했다. 중구 한나라당에서 우세를 내다보고 있는 가운데 중부권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후보인 황현탁 전 공보처 국장과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동일 현 구청장, 이학봉 전 코레일유통 대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형상 변호사 등이 4파전을 벌이고 있다. 황 후보는 중구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남산 고도제한 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출산양육지원 예산 두 배 증액·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등 보육정책을 쏟아냈다. 이에 맞서 박 후보도 구립 어린이집 확충·지원. 야간보육에 대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각동별로 24시간 보육시설을 지정·운영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영어교육특구에 걸맞은 국제중학교를 유치하는 등 교육 1번지로 우뚝서게 한다는 공약을 내세운 무소속 정 후보와 ‘무보수 구청장’ 구호를 내건 이 후보의 기세도 만만찮아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된다. 동대문 민주당이 유덕열 후보(민선2기 동대문구청장)를 내세워 선전을 기대하는 동대문구는 한나라당 방태원 후보(민선4기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가 바짝 추격하는 형국이다. 방 후보가 ▲에듀업 ▲문예부흥 ▲도심재창조 ▲구민행복 업그레이드 ▲중랑천 르네상스 등 10개 프로젝트로 구성된 ‘2020 이노베이션 플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유 후보는 ‘신명나는 도시·살맛나는 동대문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20 프로젝트 설계 ▲열린행정 으뜸행정 구현 ▲무상급식 전면 실시 등 6개를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성동 한나라당 이호조 후보와 민주당 고재득 후보가 서로 박빙우세를 점치고 있는 지역. 이 후보는 영어체험센터 건립 등 공교육강화와 자기주도학습으로 사교육비를 줄여 으뜸교육 1번지로 거듭나겠다는 공약을 최우선으로 내걸었다. 반면 고 후보의 제1공약은 공교육특구. 이를 위해 ▲명문학군 건설 ▲일반계고 등록금 수준의 공립특목고 유치 ▲왕십리뉴타운 내 인문계고와 명문고 육성 ▲초·중학교 의무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약속했다. 성북 관록과 신예의 대결 구도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서찬교 후보는 민선4기 성북구청장을 지낸 만큼 지역 사정에 밝고 민주당 김영배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행정관 등을 지낸 40대 초반의 젊은 후보다. 현직 구청장인 서 후보는 ▲교육 보조금 600억원 지원 ▲서울형 어린이집 80%까지 확대 ▲무상급식 정부안보다 10% 추가 시행 ▲북악하늘길 생태관광코스 개발 등의 공약이 관심을 끈다. 김 후보의 핵심공약은 창조산업특구. 이를 위해 성북구내 7개 대학에 소호형 비즈니스센터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 또 도서관·체육·보육시설 완비, 공립보육시설 10곳 확충 등을 통한 ‘걸어서 10분 프로젝트’도 눈길이 간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노원·중랑·도봉 박빙… 공약이 표심 가를 듯 서울 동북권에서 여야 모두 확실한 우세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선거전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의 공약이 막판 표심의 향배를 좌우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박빙 우세 지역으로 노원·중랑구를 꼽았다. 민주당은 강북구를 우세 지역으로, 도봉구를 박빙 우세 지역으로 점쳤다. 광진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현역 구청장인 정송학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가운데 40대 여성 자원봉사가인 한나라당 구혜영 후보, 30여년의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운 민주당 김기동 후보, 노무현 비서관을 지낸 국민참여당 조상훈 후보가 ‘4파전’을 벌이고 있다. 구 후보는 ‘엄마 구청장’을 모토로 교육·보육 분야에 공을 들였으며, 서울시 동북권 르네상스 및 한강 르네상스 등의 사업과 연계한 종합개발계획을 약속했다. 김 후보는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지하화 사업과 역세권 활성화, 노후지역 주거시설 향상 등을 내세운다. ‘사람 사는 세상 광진구’를 기치로 내건 조 후보는 참여와 균형, 복지를 강조한다. 정 후보는 군자역세권에 대한 전략거점 육성, 구의·자양 재정비촉진지구 개발과 동서울터미널 현대화사업을 연계한 ‘뉴비즈 벨트화’ 추진, 중곡역 일대 종합개발계획 수립 등을 핵심 공약으로 꼽는다. 중랑 3선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문병권 후보와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출신의 민주당 김준명 후보가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문 후보는 중화뉴타운·상봉재개발촉진지구에 대한 차질없는 개발, 면목동 산업뉴타운 유치, 망우동 공동묘지 공원화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김 후보는 역세권 활성화, 망우동 공동묘지 도깨비공원 조성, 온라인쇼핑몰·재래시장을 연계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강조한다. 노원 한나라당 이노근 후보는 현역 구청장 프리미엄과 준비된 공약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이 후보의 공약에는 교육·복지·개발·치안 등이 총망라됐다. 이중 창동차량기지 이전 개발과 도봉운전면허시험장 부지 개발, 성북·석계 역세권 개발, 경전철 건설 및 연장 등으로 표심을 설득하고 있다. 민주당 김성환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라는 점과 현역 구청장의 전시행정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서울산업대·한전연수원·원자력병원을 중심으로 한 나노·정보기술·바이오산업 육성, 패션·디자인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에 공을 들였다. 강북 야권 단일 후보인 민주당 박겸수 후보를 서울시의회 의장 출신의 한나라당 김기성 후보가 바짝 뒤쫓는 양상이다. ‘힘찬 강북’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박 후보는 집에서 10분 거리 풀뿌리 도서관 구축, 시립종합도서관 건립 등으로 표심을 설득한다. 김 후보는 ‘1동 1공용주차장’ 확충, 초등학생 및 결식 어르신 대상 무상급식 실시 등을 내놓았다. 도봉 한나라당 김영천 후보와 민주당 이동진 후보, 국민참여당 이백만 후보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김 후보는 방학동 봉제공장 지원센터 건립, 창동역 인근 예술의전당 조성, 대형병원 유치 등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동진 후보는 ‘주민참여 예산제’ 도입·시행, 적성·전인교육에 초첨을 둔 선진국형 혁신학교 지정·지원, 분야별 사회적기업 육성 등을 강조한다. 이백만 후보는 쌍문~도봉산역 연장 및 역세권 개발, 어린이 필수예방접종 본인부담금 지원, 학습준비물 걱정 없는 학교 육성 등을 내세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與 보수층 결집·野 후보단일화로 표몰이 한나라당은 전통의 텃밭인 강남·서초·송파구에서, 민주당은 강남벨트의 끝자락인 강동구와 동작구에서 우세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야권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서초와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 중인 송파의 경우, 쉽사리 한나라당의 우세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동작과 강동도 흩어졌던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결집하면서 민주당 후보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강남 한나라당이 우세를 장담하는 곳이다. 서울시 여성정책보좌관(1급)을 지낸 한나라당 신연희 후보는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내 명품 오페라·뮤지컬 전문 공연장 건립 ▲세곡동 신개념 노인복지 인프라 ‘어르신 행복타운’ 건립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한나라당의 전략공천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한 맹정주 현 구청장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맹 후보는 ▲77개 초·중·고 교육여건 개선에 재정수입의 5%(2009년 기준 250억원) 투입 ▲하수구 악취, 먼지, 모기 없는 3무(三無) 도시 실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 이판국 후보는 교육 1번지로 불리는 지역 주민들의 교육열을 감안해 ‘사교육비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서초 전통적인 한나라당 우세지역이지만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만만찮은 변수로 떠오르면서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출신인 한나라당 진익철 후보는 ▲잠원동 고교 유치 ▲강남대로 지하 복합·문화 상업단지 조성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 곽세현 후보는 야권 단일화로 진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고 주장한다. 곽 후보는 ▲서초동 장제터널 개발 대신 우회도로 개설 ▲경부고속도로 통행시스템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송파 전통적인 한나라당 우세 지역이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가 변수다. 한나라당은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여성 전략공천지역으로 정해 박춘희 변호사를 공천했다. 박 후보는 ▲제2롯데월드 건설과 연계한 지역 경제 활성화 ▲임신·출산·보육·교육 정책의 혁신적 변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 박병권·국민참여당 성기청 후보는 한나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단일화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는 ▲서울 동남권 경제중심 도시 ‘송파벨트’ 구축 ▲세계적 문화관광도시 조성을, 성 후보는 ▲육아·보육 무상 지원 ▲노인 복지 확충을 핵심공약으로 내놓았다. 동작 민주당이 우세지역으로 꼽고 있는 곳이지만 한나라당으로서도 정몽준 대표의 지역구인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양당 후보들도 서로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이재순 후보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동작기술산업진흥구역 조성 ▲중앙대·숭실대·총신대를 아우르는 동작 대학로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당 문충실 후보는 ▲7호선 숭실대~이수역 사업벨트 조성 ▲현충원~한강수변길~제1한강교~공군수송단부지~보라매공원을 연결하는 동작올레길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밖에 무소속 김영재·정기철 후보도 입시·교육 고민 해결을 위한 전문가 특강 정례화 등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공약을 제시했다. 강동 민선 4기 구청장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당 소속 구청장을 배출한 만큼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꼽힌다. 반면 한나라당은 부구청장 출신을 공천해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는 각오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한나라당 최용호 후보는 ▲천호·성내 재정비 촉진지구 본격 개발 ▲둔촌·고덕 재건축사업 조기 추진을, 현 구청장인 민주당 이해식 후보는 ▲공·사교육이 어우러진 명품 교육지구 조성 ▲선비즈 시티 및 제2첨단업무단지 조성을 각각 차별화된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경전철·재건축 등 개발공약 경쟁 치열 현 구청장과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양천구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지역이라서 지역개발 공약을 놓고 후보간 경쟁도 치열하다. 교육 분야 공약도 다양하다. 강서 현 구청장인 한나라당 김재현 후보와 민주당 노현송 후보의 전·현직 구청장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김 후보는 ‘공항고도제한 완화’를 강조한다. 그는 “강서구가 34년 동안 고도제한으로 받은 유무형의 피해가 50조원이 넘는다.”면서 “완전한 고도제한 해제가 아니라 획일적인 규제를 현실에 맞게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가칭 ‘희망나눔 문화재단’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마곡지구개발이 강서주민을 위한다면 워터프런트 등 환경파괴적인 개발보다는 국제업무단지와 첨단 산업단지를 늘려야 한다.”면서 “마곡지구 개발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양천 현 구청장으로 3선에 도전하는 무소속 추재엽 후보가 앞서는 가운데 한나라당 권택상 후보와 민주당 이제학 후보가 뒤쫓고 있다. 이들은 목동 경전철 사업에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추 후보는 남부순환도로 구간 지상화 등 사업비 절감, 권 후보는 7호선과 연결해 사업성 확보, 이 후보는 경전철 노선 조정을 통한 경제성 확보를 제시했다. 권 후보는 목동 아파트 재건축과 항공기 소음대책 지원 확대에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추 후보는 노련한 구정 운영을 통한 목동 아파트 재건축과 신정뉴타운 완성, 사교육 근절을 위한 다양한 학교지원 예산 확대를 내세웠다. 이 후보는 사회적기업 100개 육성을 통한 일자리 1만개 창출로 지역경제활성화를 약속했다. 구로 현 구청장인 한나라당 양대웅 후보와 서울시 감사관 출신 민주당 이성 후보의 양강 구도다. 양 후보는 경인선로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8년 동안 구로구를 이끈 수장으로서 경인선 지하화를 꼭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구로동 일대를 고급복합주거지역으로 탈바꿈시키는 광역단위 주거지역 종합정비계획도 내세웠다. 이 후보는 “365일, 24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개방형 어린이집과 공공성이 강한 보육, 가사지원, 복지서비스 등으로 착한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구청에 일자리과를 설치하고 전담 컨설턴트도 배치한다고 약속했다. 금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 구청장 한인수 후보와 한나라당 이종학 후보, 민주당 차성수 후보가 백중세다. 금천 공약의 화두는 ‘교육’이다. 한 후보는 자율형 공립고와 영재교실·영어학습센터 건립을, 이 후보는 지역 학생들의 수준 높은 학습을 책임질 금천 학력증진센터를, 차 후보는 교육특구 지정과 교육지원예산 100억원 확대 등을 내세웠다. 또 이 후보는 독산동 군부대 이전지를 첨단 산업단지로 개발하고 가산디지털단지 입주 기업에 과감한 세제지원 등을 약속했다. 한 후보는 매년 1000개 이상의 새로운 노인일자리 창출과 구심도시개발 계획수립을 강조했다. 차 후보는 IT·패션·만화 등을 테마로 한 사회적기업과 1인 창조기업 육성을 손꼽았다. 영등포 현 구청장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형수 후보와 한나라당 양창호 후보, 민주당 조길형 후보의 3파전이다. 김 후보는 초등학교 전면 무상 급식 지원, 정보문화 도서관 건립, EBS와 인터넷 강의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 양 후보는 학부모·학교·구청 협의체인 민·관·구 교육위원회를 꾸리고 국제고, 특목고 등을 유치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조 후보는 우수고 육성과 학생·학부모·교사 지원 전담부서, 보육정보센터 건립 등을 이루겠다고 했다. 관악 민주당 유종필 후보를 한나라당 오신환 후보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유 후보는 지역 도서관으로 관악을 새롭게 도약시키겠다고 했다. 그는 “도서관 예산을 100억원으로 늘리고 작은 도서관 활성화로 도서관특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오 후보는 서울대 사범대학 제2부설 고교 유치와 교육경비 예산 300% 확대를 약속했다. 그는 “명문고 유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남순환도로 조기 완공, 신림~봉천 간 지하도로 건설, 관악산 명품공원 조성 등도 약속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4곳 모두 팽팽… 한나라-민주 혈전예고 서북권 4개 지역은 그야말로 ‘피 튀기는’ 싸움에 휩싸였다. 용산에서는 한나라당, 서대문에선 민주당이 우세를 점칠 뿐이다. 은평, 마포에선 살얼음판이다. 적어도 19일 현재 한나라, 민주의 양당 구도라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분석이다. 용산 한나라당 지용훈 후보는 평생 교육도시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나와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용산구’로 가꿀 것을 약속했다.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영어센터를 권역별로 곳곳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방과 후 학교와 학교별 특성화 교육 등 유휴 교실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삶의 질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생각이다. 살맛나는 용산 구현이라는 공약의 내용도 특이하다. 미소금융 지점을 유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성장동력으로 랜드마크를 겸한 ‘국제아이스링크’를 건립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 성장현 후보는 30여년간 지역에 거주했다는 자부심으로 관내 100여개의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는 강점을 최대한 살려 글로벌 용산시대를 준비하는 구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다. 역시 관내에 자리한 숙명여대, 폴리텍 대학과 학·관 교류협력협정을 맺어 맞춤형 교육을 하고 관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용산구민 우선 추천 채용제’를 검토하겠다는 공약에도 적잖이 무게를 실었다. 서대문 출사표를 던진 한나라당 이해돈 후보는 30여년에 이르는 공직 생활 속에서 우러난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랜 행정 경험 덕분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안산~백련산~홍제천~불광천~한강을 잇는 녹지축과 수변공간 조성, 자연과 어우러지는 녹색 명품 도시건설, 홍은·홍제균형발전촉진지구사업 조속 추진, 신촌지역 도시공간 재창조를 강조한다. 민주당 문석진 후보는 가정복지 분야에서 민간 어린이집을 구립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행정력을 전폭 지원할 방침이다. 지역의 상징이던 독립문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고 관내 고가도로를 철거해 사람 중심의 지역으로 가꾼다는 것이다. 은평 녹번동 국립보건원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벌이는 은평구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와 민주당 김우영 후보의 싸움도 볼 만하다. 김도백 후보는 보건원 자리와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 자리에 생명공학단지, 금융센터 등을 유치해 미래경제를 선도하겠다는 계획을 앞세웠다. 김우영 후보는 보건원 자리에 아시아 최대의 어린이복합문화공간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체험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 공간을 만들어 문화산업 육성은 물론, 연간 방문객 500만명과 1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낳겠다는 설명이다. 마포 ‘빅2’가 맞붙었다. 이미 적잖은 행정 경험을 쌓은 후보들이다. 한강공원사업소장과 종로구 부구청장을 지낸 한나라당 권종수 후보는 강변북로를 지하로 뚫어 단절된 한강을 되찾는 동시에 도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2012년까지라는 구체적 목표도 곁들였다. 이를 위해 당인리 발전소 부지 및 성산~양화대교의 망원동 구간에 보행데크를 만들고, 월드컵공원~망원지구를 거쳐 선유도로 가는 보행자 전용 교량을 건설한다는 슬로건도 눈에 띈다. 전 마포구청장인 민주당 박홍섭 후보는 당인리 발전소를 옮기고 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이 자리한 동교동에 기념사업단지를 만들어 민주화의 성지로 부활시키겠다는 꿈을 내보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도시와 길] 양림동 10대째 토박이 차종순 호남신학대 총장

    [도시와 길] 양림동 10대째 토박이 차종순 호남신학대 총장

    “양림동은 광주 근대화의 탯자리나 다름없습니다.” 이곳에서 10대째 살고 있는 차종순(62) 호남신학대 총장은 “지역의 모든 ‘길’에는 근대 역사 문화의 숨결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토사학자’나 다름없을 정도로 동네의 옛 이야기를 줄줄이 꿰고 있는 토박이다. 애착도 그만큼 강하다.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이뤄진다. 이듬해에 민영익·홍영식·유길준 등은 ‘견미사절단’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다. 이어 20세기 초반까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몰려들어 온다. 이들이 처음 자리잡은 곳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양림산 자락이다. 이들은 1905~1910년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과 수피아여고·숭일고·고아원 등을 짓고, 선진 농업기술 보급에 나선다. “이때부터 한센병·결핵 등의 환자가 몰려들고, 하층민 자녀들도 신식 학교에 입학했다.”는 차 총장은 “이는 단순한 빈민구제가 아니라 조선의 계급구조가 실질적으로 무너진 계기였다.”고 말했다. 현대적 의미의 인권의식이 싹튼 전환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1894년 갑오개혁이 신분제도를 철폐한 선언적 사건이라면 교육을 통한 평등의식 확산은 신식 학교의 몫이었다고 평가한다. 1920년대 초 이곳에서는 미곡 증산과 과수재배, 가축사육 기술이 집중 보급됐다. YMCA·YWCA 등도 설립됐다. 이를 중심으로 소작과 노동자 임금 투쟁, 공창제 반대, 금주운동 등을 주도한 사회단체가 탄생한다. 차 총장은 “1945~1948년 미군정기에는 수피아여고의 일부 시설물이 사병들의 숙소로 사용됐고, 6·25전쟁 때는 미국인 거주지라서 폭격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북한군이 같은 시설에 주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일대는 근대화로 가는 모든 길의 시작점이나 다름없다.”며 “지금은 이런 자산을 활용할 때가 왔다.”고 역설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퀸5월호]스타 스타일리스트’ 정보윤 & 연봉 10억 자산관리사 송준호 부부

    [퀸5월호]스타 스타일리스트’ 정보윤 & 연봉 10억 자산관리사 송준호 부부

    이효리의 핑클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스타일링 호흡을 함께하고 있는 정보윤 씨는 이효리만큼이나 유명한 스타일리스트. 그녀의 남편 송준호 씨 또한 이효리의 자산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억대 연봉의 보험맨이다. 두 부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내조·외조법은 무엇일까. 이효리, 에프터스쿨, 동방신기, 포미닛, 비스트 등의 스타일링을 담당하고 있는 ‘런던 프라이드’의 대표 정보윤, 메트라이프생명 로얄 프레지던트 FSR 송준호 부부는 결혼 7년 차로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을 일구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 로얄 프레지던트 송준호 씨는 COT3회, TOT4회를 달성, 현재 5백 명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대학 졸업하고 번듯하게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가 갑자기 보험 일을 하겠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지금이야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좀 불안정한 직업으로 인식됐잖아요. 이직하고 월급이 2백만원이었는데 1년 만에 5백만원까지 늘리겠다고 하더니 정말 하더라고요.”송준호 씨는 이미 연예계에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인정받은 아내를 보고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좀 더 전문적이고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일로 자산관리사를 택했다. 송준호 씨는 현재 이효리, 빅뱅의 대성, 보아 등을 비롯해 스포츠스타, 연예기획사 대표, 사업가,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유명인사들을 고객으로 관리하고 있다. 연예인 고객이 많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아내의 인맥 때문일 것이라고 으레 짐작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편이 자존심도 세지만 저도 제가 막 나서서 소개하고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보아도 제가 스타일리스트를 맡고 있었지만 남편이 다른 루트를 통해 연결이 돼서 가입을 했더라고요. 효리야 저랑 워낙 친하니까 자연스럽게 남편을 알게 된 거지만 직접적으로 소개해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대성이도 그렇고요.”아직도 송준호 씨는 처가 식구들을 고객으로 두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스스로의 인맥을 통해 성공을 이뤄내고 있다. 하루에 만나는 고객만 서너 명. 그것도 시간이 부족해서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서울 외곽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부부는 공기 좋은 동네를 산책하는 것을 최고의 휴식으로 여긴다. 바쁜 일상 탓에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짬을 내서 휴가를 즐기려고 한다.오래 견디기 힘든 연예계를 10년 넘게 지켜온 정보윤 씨는 정석으로 일하는 스타일이다. 때로는 스타의 팬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고 늘 변하기 마련인 패션 트렌드를 가장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스타일리스트의 대표 1세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다른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연예계는 정말 말도 많고 힘든 세계잖아요.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직원들이 있으니까 더 책임감이 막중한데 남편이 많이 도움을 줘요. 전형적인 강남 토박이로 자라서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걸 잘 못했거든요. 그런데 어려울 때마다 남편이 좋은 조언을 많이 해줘요.”송준호 씨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점이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에서 아내가 훨씬 선배인데도 늘 남편의 입장과 상황을 배려해준다.“연애하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 자존심을 상하게 한 적이 없어요. 뭐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그러면 남자들은 상당히 싫어하잖아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항상 저를 따라주고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요. 우리는 바보온달, 평강공주로 만났다는 생각이요(웃음). 아내가 자신의 업계에서 프로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게 남편으로서도 늘 자극이에요.”언제나 신혼의 설렘을 간직할 것 같은 이들 부부에게서 행복한 봄내음이 물씬 전해졌다. ☞퀸 본문기사 보러가기퀸 취재팀 엄지혜 기자 eumji@queen.co.kr
  • [문화마당]북한강/신동호 시인

    [문화마당]북한강/신동호 시인

    물푸레나무 그림자가 출렁인다. 강은 흘렀다. 강은 저 깊이 살찌는 소리를 내며 부풀어갔다. 겨울을 지나고, 짧은 우기를 지나 수면이 눈부시게 반짝이면 안개는 일찍 골짜기로 기어들었다. 등줄기에 땀을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때 이르게 강으로 몸을 던졌다. 강은 울렁였지만 그것도 잠시, 고요의 뒤로 물러났다. 오월의 강은 소풍날 찍은 흑백사진의 뒤에서, 성장통의 쓸쓸한 날을 보내던 안개 속에서, 큰아버지의 장송곡이 울리던 긴 밤에도 그저 흘렀다. 오랜만에 북한강 굽이를 돌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를 지났다. 어린 날 구만리는 포병부대의 잦은 훈련과 전쟁의 상흔이 박힌 거먹다리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강은 범람했지만 소리만 요란했지 마당까지 올라오진 않았고, 가문 날에도 새벽이면 잉어들이 뛰었다. 산기슭에는 옥수수가 자랐다. 봄볕 가득히 파로호의 담수는 푸르렀다. 먼지를 풍기며 지나는 군용트럭이나 화천발전소에 파견된 소부대의 아침 구보 소리가 아니었다면 여긴 전방마을이 아니었다. 고봉준령이 연이어 손을 잡은 첩첩산중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은 평화의 댐까지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 수복지구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갈등을 몰랐다. 반공웅변대회에서 상을 타면 하루종일 강가에 나가 머리를 적셨고 낡은 탁자 끝에서 벌어지던 어른들의 싸움을 그냥 취기 탓으로 생각하면 되었다. 따뜻했고 나른했다. 강물 때문이었다. 잠시도 멈춰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또 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은 내게도, 네게도, 우리에게도 공평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아이들은 커갔다. 쫓치기는 아이들의 낚시 방법이었다. 버려진 그물을 강에 드리우고 나뭇가지를 수면으로 휘두르면 피라미나 똥고기 같은 게 걸려들었다. 조숙한 아이들은 대낚시를 배웠다. 미끼를 갈고 제법 기다림에 익숙해지면서 소년이 되어갔다. 릴낚시는 불끈 솟은 근육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낚싯줄에 걸어 되도록 멀리 던져 보냈다. 몇 번이나 허망한 세월이 빈 낚시로 걸려들었으나 가끔 커다란 누치와 힘겨루기를 하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릴은 스무 살의 나이만큼 빠르게 감겼다가 다시 꿈꾸듯 풀려나갔다. 강은 흘렀다. 시간은 지나고 늘 진실은 밝혀졌다. 방과 후 강가로 졸졸 쫓아다녔던 잡종개 해피는 기력을 잃은 이모의 부엌에서 삶아졌다. 그걸 십년이 지나서야 고추밭 모종을 하다 듣게 되었다. 그날 밤새 해피를 찾아다녔던 상실감이 나를 의심 많은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평화의 댐이 생기면서 파로호는 점점 말라가고 하늘을 까맣게 뒤덮던 까마귀도 어디로 가고 없다. 무용담을 입에 달고 살던 상이용사도, 전쟁 전 인공치하에 살던 토박이 농사꾼도. “1986년 전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이른바 금강산댐 소동. 그해 10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비밀리에 200억t 저수용량의 금강산댐 건설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이 댐이 붕괴될 경우 서울은 12~16시간 내에 물바다가 되고 여의도 63빌딩의 3분의2, 국회의사당의 지붕 부분만 남게 된다는 충격적인 상황과 함께 제2의 남침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성금운동으로 6개월 만에 630억원을 모금했다. 1987년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2005년 10월 총 3995억원이 투입된 끝에 완공됐다. 이후 실제 금강산 댐의 저수 용량은 정부 발표치의 8분의1도 안 되는 26억t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평화의 댐은 호우대비용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금강산댐 위협은 터무니없이 과장되었으며 정권 유지 차원의 국면전환용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언제였을까, 강은 흘렀다. 맥국으로 불리던 시절에서부터 일제시대 거먹다리가 놓이던 시절까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아직 이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시절에도 흘렀고, 그 모든 걸 결딴낼 듯 대립하는 마음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흐를 터이다. 안개 자욱한 이 오월의 국토를.
  • [문화계 블로그] 인사동에 多 모여라~

    [문화계 블로그] 인사동에 多 모여라~

    요즘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초입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화장품 가게가 6개나 성업 중이다. 모두 ‘스타벅스 커피’처럼 한글 간판으로 한국적인 문화를 존중한다는 표시를 내고 있지만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고미술품 등을 팔아 온 화랑 주인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인사동의 정신과 분위기를 지켜 온 화랑은 떠나고 상업공간만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와 위기의식도 크다. 그래도 어느덧 23회를 맞은 ‘인사전통문화축제’는 어김없이 시작됐다. 다음달 4일까지 계속된다. 인사동 화랑과 공예품점 212곳이 함께 모여 대규모 연합 전시행사와 문화체험을 마련했다. 박정준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29일 “인사동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자 화랑, 고미술점, 공예점에서 특별히 기획한 작품과 진기한 대표작을 내놓았다.”며 “서울시의 ‘하이서울페스티벌’과 맞추어 행사를 화려하게 진행하려 했으나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공연행사는 모두 취소했다.”고 전했다. 인사동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만든다는 취지로 기획된 축제기간에는 전시품도 20~30% 싸게 살 수 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작품도 최초로 공개된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며 이방자 여사는 수묵채색화, 칠보 공예 등의 작품을 남겼다. 세종갤러리가 다음달 10일까지 전시한다. 하나아트갤러리는 순수하고 동화적인 그림을 남긴 김점선(1946~2009) 추모전 ‘헬로우 김점선’을 다음달 18일까지 연다. 김점선을 닮은 자유분방한 말과 여유로운 오리 등 강렬한 선과 색이 담긴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김점선의 작품을 응용한 액자와 가방 등 여러 가지 아트 상품도 판매한다. 전시장이었던 ‘광주요’에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고, 갤러리 ‘아트사이드’에는 화장품 회사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찻집이 생기는, 말릴 수 없는 문화현실을 렌즈에 담은 사진전도 열린다. 인사동만이 풍기는 분위기 형성에 크게 기여했던 전시·상업공간 쌈지길도 모 회사의 부도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갤러리 북스는 다음달 4일까지 ‘인사동, 봄날은 간다’란 제목으로 2006년부터 촬영한 인사동 사람들과 인사동 자료사진을 선보인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토박이와 문화예술인들이 만들었던 풍류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호주도 25년 만에 최악의 지진 발생

    비교적 지진피해가 드문 호주에서 25년 만에 최악으로 기록될 지진이 발생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8시17분 서호주 퍼스에서 동쪽으로 600km 떨어진 캘굴리-볼더에 리히터 지진계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호주지질연구소는 진원지는 캘굴리 시내에서 10km 지역으로 지표면에서 얕은 지역이라고 발표했다. 캘굴리-볼더는 노천금광지대로 유명하다. 이번 지진으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한 10대 소녀가 무너진 건물에 깔리면서 의식을 잃었다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구조됐고 2명의 주민이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볼더지역에서는 5-6채의 오래된 호텔 건물이 부분적으로 내려 앉았고, 학교및 시청건물도 지붕 일부분이 부서지거나 벽이 무너져내렸다. 지진발생 후 호주내 가장 큰 노천 금광지역인 캘굴리의 광산직원들이 대피소동을 벌였고,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이 안전지역으로 대피하는 등 지역전체가 지진공포에 휩싸였다. 지역 토박이면서 캘굴리-볼더 시장인 론 유리비치는 “평생 경험한 가장 큰 지진으로 104년된 시청건물이 파손되는등 유서깊은 건물들이 손상을 입어 안타깝다.” 고 말했다. 호주지질연구소는 “25년만에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지진으로 호주내에서도 최악의 지진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려대女, 대학을 거부하다.

    고려대란 이름의, 높디 높은 상아탑의 한 일원이었던 여학생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충격적인 제목과 내용의 대자보를 내걸며 세간의 이목을 모은다. 3월10일 벌어진 일이다. 이 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던 이 여학생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대자보에 담지 못했던 자신의 심경과 생각들을 모아 ‘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김예슬 지음, 느린걸음 펴냄)라는 책을 낸다. 책은 전체를 꼼꼼히 살피지 않더라도 느낌으로 단박에 알 수 있는, 우리 대학과 사회의 온갖 병폐와 치부들을 통렬하게 꼬집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전락한 대학부터 ‘거짓 희망에 맞서 저항하자’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저자를 포함한 이 땅의 대다수 젊은이들이, 또 선량한 의식을 가진 시민 대부분이 고민했을 그런 문제들이다. 또 누구나 알고 있면서도 바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문제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단은 ‘대학’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사회’로 확대된다. 저자가 꼬집은 문제들을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결국 돌고 돌다 보면 또다시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는 118~120쪽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편에서 자신이 원하는 문제 해결 방안, 혹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 대학은 입학시험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퍼스도 없다.” 다만 입학시험 대신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고, 졸업장 대신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으되 숨은 현자와 장인, 세계의 토박이 지성이 교수 몫을 한다. 저자는 또 호미와 삽을 들고 생명농사를 짓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나눔 농부가 되자고 역설한다. 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불의한 현장에 함께 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행동을 하자고도 권유한다. 이 밖에 실천적인 방법들이 여럿 제시됐지만, 대부분 나와 사회가 공동선을 이루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그것 역시 쉬 손에 넣기 어려운 가치인 탓에 이 책은 미덕과 독을 함께 지니고 있다. 75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노원구 도심 둘레길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노원구 도심 둘레길

    멀리 떠나고 싶지만 여유를 찾기 어려운 ‘딱한 처지’의 도시민들에게 서울 노원구 둘레길(산책로)은 도심에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반가운 곳이다. 지하철 6·7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지난 주말 오후 태릉입구역 8번 출구로 나오자 찌든 마음을 말끔히 씻어주는 나무와 꽃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노원구가 공사를 마무리한 ‘불암산 올레길’이다. 중랑천을 따라 조금 걸으면 1300㎡ 규모의 ‘장미터널’이 나온다. 이상기후 탓인가. 꽃몽우리를 한껏 머금고 있어야 할 장미는 파란 잎사귀만 부끄러운 듯 내밀고 있다. 16종 4000여그루의 장미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맛보는 즐거움은 5월을 기약하고 있다. 발걸음은 중랑천 따라 한천교를 지난다. 첫 번째 육교를 건너면 풍림아파트와 방음벽 사이로 소나무길이 나온다. 300m 남짓한 이 길을 걷다 보면 수북하게 쌓인 솔잎의 푹신한 감촉이 발 밑에서 머리 끝까지 느껴진다. 아파트 102동 옆 방음벽 사이로 난 쪽문을 거쳐 나무가 깔린 길을 지나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면 400m 잣나무길이 펼쳐진다. 도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잣나무길 끝에서 서울산업대 정문을 지나 창의문(후문)을 통과하면 바로 ‘공릉동~불암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등산이라고 겁먹을 필요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수준이다. 조금 더 걸으면 태릉(泰陵)이 나온다. 서울 토박이들에겐 지명으로 귀에 익다. 하지만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조선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무덤을 일컫는다. 중종이 죽은 후 인조를 거쳐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여인이다. 윤씨는 생전에 지금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삼성동 봉은사 옆으로 옮기고 자신도 그 곁에 묻히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명종은 모후의 시호를 문정으로 하고, 능호를 신정릉(新靖陵)이라 했다가 태릉으로 고쳤다. 이렇게 2시간 남짓 서울의 자연을 느끼고 역사도 되새기며 삶의 활력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 출출해진 배를 달래줄 맛집도 적지 않다. 태릉입구역 6번 출구 쪽에 자리한 숯불갈비집 ‘참만나’(974-1500)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삼육대에서 별내 방향으로 담터사거리 주변에는 담터통추어탕(031-571-9502) 등 추어탕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문수 재선이냐, 야권 돌풍이냐

    김문수 재선이냐, 야권 돌풍이냐

    6·2지방선거를 70일 남짓 앞두고 경기지사 선거 구도가 윤곽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현 지사가 21일 재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다. ●한나라 경선없이 추대… 정권심판론 차단 김 지사는 오후 경기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2일 공천신청서를 중앙당에 내겠다.”면서 “재선 도전이 도민들과 당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앞서 오전에는 경기지역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이 김 지사를 당의 단일후보로 지지한다고 결의했다. 사실상 경선 없이 김 지사를 한나라당 후보로 합의 추대한 것이다. 김 지사는 수도권 선거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무상급식과 관련, “책임과 순서에 따라 실시돼야 한다.”면서 “시·군 간 재정 형편이 달라 어려운 아이들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차기 대선 도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김 지사를 앞세워 확실한 승리를 따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기에서 기선을 제압해 수도권에서 야권의 ‘정권 심판론’을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혼전 양상을 보이는 서울·인천과 달리 지금까지 경기에서는 김 지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들을 따돌리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김 지사 쪽은 여론조사에서 4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한나라당과 1대1로 맞서는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 야권으로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민주당 김진표·이종걸 의원,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가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승리하기 힘들다는 점에는 야권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주류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진표 의원과 참여당의 명운을 짊어진 유 전 장관 간 단일화가 전국적인 단일화 협상의 가늠자가 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은 수원 토박이로 경기 남부권에서 경쟁력이 있고, 유 전 장관은 친노(親) 리더로서 선거 바람몰이에 강점이 있어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 여론조사·국민경선 단일화 제안 하지만 민주당과 참여당은 후보 단일화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연대 협상 테이블에서 단일화 방식으로 여론조사와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의 혼합 방식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여론조사만 적용하면 인지도와 지지율이 높은 유 전 장관이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참여당은 국민경선이 실시되면 조직력이 앞서는 민주당이 선거인단을 대거 동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시민 “선대위원장 맡을 수도” 배수진 유 전 장관은 경기 광명시에서 열린 수도권 당원대회에서 “다음 주에 (경기지사) 예비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니 민주당은 나에게 더 이상 다른 곳(대구)으로 가라고 하지 말라.”면서 “김진표 의원으로 단일화되면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을 테니 정정당당하게 경쟁해 보자.”고 말했다. 이창구 홍성규기자 window2@seoul.co.kr
  • “냉냉이 타고 나들이… 진고개서 집뺏기 놀이”

    “냉냉이 타고 나들이… 진고개서 집뺏기 놀이”

    이원임 할머니는 1925년 서울 충신동에서 태어난 이후 85년간을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연지동 조양유치원을 다녔고 지금의 효제초등학교인 어의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기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 시절에는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좌익활동을 한 친구 오빠 수첩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서대문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교사로 일하다 1975년부터 25년 동안은 일본어 강사로 일했다. 현재 안암동에 살고 있으며 수필을 집필 중이다. 그는 “서울에도 문을 열어놓고 물장사가 마음대로 들어와서 붓고 가도록 해도 도둑 걱정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6명 경험담 생생히 담은 구술자료집 이 할머니처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엮은 구술자료집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이 8일 발간된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서울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시작한 ‘서울역사구술자료집’ 발간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다. 자료집은 이 할머니를 비롯해 1925~1938년 사이에 출생한 서울 토박이 16명이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사대문 안에 살면서 겪은 경험을 70여개 주제에 걸쳐 담고 있다. ●영천 동동구리무 장수 따라다니던 기억 토박이들에게 화신백화점과 탑골공원은 ‘놀이터’였다. 이들은 경적 대신 단 종소리가 맑고 냉냉거린다고 해 전차를 ‘냉냉이’라 불렀고 영천 동동구리무 장수를 따라다녔다는 공통된 기억도 있다. 1934년 통의동에서 태어난 김숙년 할머니는 “안국동 거리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젊음의 거리였다.”면서 “반면 집은 여인숙처럼 죽 늘어서 있었고 집 없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기억했다. 진고개에서 한 집뺏기 놀이, 일본인들이 만든 유곽에 쌓아 놓은 소금을 차고 달아난 기억 등 어린시절의 추억부터 광복 직후와 6·25전쟁 당시의 고통, 빠른 도시화 과정 속에서의 세태 변화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65년부터 계동 한옥에서 살아온 이형술 할아버지는 “한옥보존지구가 생기면서 집수리도 못하게 해 서울시와 주민들의 갈등이 심했다.”면서 “수십년에 걸친 논쟁과 혼란 끝에야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다양한 계층의 구술 내용을 모아 자료집으로 묶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시 문화정보네트워크(culture.seoul.go.kr)를 통해 전문이 공개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싱글 라이프] 오피스텔서 하숙집까지… 내 집 찾기 사연·속내

    [싱글 라이프] 오피스텔서 하숙집까지… 내 집 찾기 사연·속내

    “진정한 독립은 내 집을 갖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만의 집에서 완벽한 독립을 꿈꾸는 싱글들은 이상과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다. 도시 감각의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최신형 오피스텔부터 에어컨, 세탁기에 침대까지 풀옵션으로 갖춰진 원룸까지.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이끌어 갈 멋진 기대 앞에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은 야속한 통장 잔고와 함께 나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20년간 부모님 밑에서 살 때는 집 고민이라곤 해본 적이 없던 나. 정작 내 집을 찾으려고 나서고 보니 현실은 녹록잖다. 싱글라이프 ‘주거’ 편에는 강남의 오피스텔부터 대학가 하숙집까지 찾아 들어간 그들의 사연과 속내를 들여다본다. ●취직해도 대학가 못 떠나는 현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강남의 한 대기업에 취직한 남두현(28)씨. 불황을 극복하고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었다는 기쁨도 컸지만, 그보다도 이제 드디어 대학 4년 내내 갇혀 지낸 답답한 반지하 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남씨는 더욱 흥분했다.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졌던 것도 잠시,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앞에 어안이 벙벙했다. 강남의 10평 남짓한 주거용 오피스텔은 전세금이 1억원에 육박했고, 목돈이 들지 않는 월세도 한 달에 60만원을 넘었다. “회사와 가까운 강남이야 그렇다 쳐도 마포나 신촌 부근의 집값도 만만찮더라고요.” 결국 남씨는 대학가에서 2년 더 생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개발 바람에 주변 집값도 2년 사이 부쩍 올라 남씨는 반지하에서 1층으로 오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취직을 해도 마땅한 내 방 하나 갖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생각하니 허탈합니다. 그나마 이제 햇빛이라도 볼 수 있는 걸 위안 삼아야 하겠죠.” 대학원생 이재경(26·여)씨는 지방 출신으로 대학 1학년 때부터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끼니를 걱정하는 부모님 때문에 아침, 저녁을 주는 하숙집에 살았다. 그러다 독립된 공간에 살고 싶다는 이씨의 고집에 2학년 때부터 원룸에서 자취했다. 이씨는 5년 동안 한동네에서만 4번의 이사를 했다. 1년 단위로 계약이 끝나다 보니 더 좋은 집을 찾고자 부근의 원룸으로 이사를 반복했다. “5번 집을 구하면서 들어간 월세와 이사비용을 합치면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옮겨다니면서 얻은 정보 덕에 이제는 집 구하기 도사가 됐죠.” 이제 이씨는 집을 볼 때는 채광과 통풍은 잘 되는지, 집주인이 괜한 트집 잡는 사람은 아닌지, 집 주변이 너무 어둡거나 외지진 않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또 인근 부동산 시세에 능통한 건 물론이다 보니 집을 구하는 친구에게 각자의 조건에 맞는 집을 추천해줄 정도다. “대학가는 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정작 나한테 꼭 어울리는 좋은 집을 찾는 건 쉽지 않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결국 품을 판 만큼 마음에 드는 집을 얻을 겁니다.” ●강남아파트·오피스텔 “불가능은 없다” 1년차 새내기 직장인 김은희(25·여)씨는 경기 수원시의 한 오피스텔에 산다. 20평(66㎡) 신축으로 넓고 깔끔한 방 2개가 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와 세금을 합쳐 한 달에 60만원이 들다 보니 직장인 혼자서 살기엔 만만찮았다. 하지만 회사와 5분 거리로 가깝고 여자 혼자 살기에는 보안도 철저해 고민 끝에 이사왔다. 부담스러운 방값은 온라인 카페 등에 ‘동거인 집 구하기’란에 글을 올려 근처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을 구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 집에 두 사람이 살면 불편할 거라고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주변에 비슷한 부류들이 많다는 설득 끝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집 안에 사람이 있어 오히려 안전한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직장인과 대학생, 둘이 살다 보니 각자 생활이 바빠 서로 생활에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주말엔 같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저녁 식사 후 함께 맥주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독립생활의 자유를 얻은 데다 집값 부담도 줄이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 세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이죠.” 의류매장 디자이너인 권정은(가명·29·여)씨는 강남의 18평짜리 아파트에서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엄청나게 비싼 집값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좁은 빌라와 원룸에서 자매가 부대껴야 하는 불편함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3년간 집에 드는 돈을 아끼고 알뜰하게 월급을 절약해온 덕분에 지난해 드디어 마음에 드는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남의 교통이 편리하고 집 주변에 공원과 문화센터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기 좋다는 장점 때문에 두 자매는 선뜻 1억 8000만원의 거금을 투자했고, 현재는 새집에서 만족스럽게 각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디자이너답게 집을 꾸미는 데도 욕심이 있었던 권씨는 “전세라 마음 놓고 고칠 순 없었죠. 그래도 일을 마치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 가장 좋은 공간인 욕실만은 500만원을 들여 새롭게 꾸몄습니다. 독립하면 가장 먼저 내가 설계한 욕실을 갖겠다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어릴 적 고향집 잊지 못해서” “주변에 편의점은 없어도 동네상점에서 외상도 해주고 마치 시골집 같아요.” 인문과학 출판사를 운영하는 백종학(41)씨는 5년 전부터 종로구 통인동의 옥탑방에서 살고 있다. 월세 50만원에 가스·수도·인터넷비 등 한 달에 고정 지출만 60만원이 넘지만, 정작 집 주변에는 마땅한 주차 공간도, 대형마트나 편의점도 없다. 그런데도 백씨가 5년째 이 지역을 고집하는 데는 수십 년째 이곳을 지켜온 토박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백씨는 ‘서울 속 시골’을 찾다가 수소문 끝에 통인동을 발견했다. “동네 곳곳에 50~60년대나 볼 수 있을 법한 한옥과 좁은 골목의 고풍스러운 담벼락이 이 동네가 버텨온 긴 세월을 말해주죠.” 이 마을의 토박이가 돼가는 과정에 대해 “친구들과 한 집 건너 살다 보니 심심할 땐 담 너머로 불러네 같이 운동하러 가고, 정말 어릴 적 고향 같아요. 앞으로도 쭉 여기서 더 살고 싶습니다.” 퀵서비스 기사인 정기성(36)씨는 동대문 이문동의 하숙집에 살고 있다. 1970~80년대 주류를 이루던 하숙집이 최근 사라지는 추세지만 이곳은 주변에 대학이 많아 여전히 하숙이 많이 남았다. “30년째 하숙만 해온 아주머니 덕분에 매일 아침 어머니가 해주는 것처럼 따뜻한 밥과 국을 먹고 다니는 게 생활에 낙입니다. ‘밥맛 때문에 아직도 장가를 못 가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시는데 당분간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글 사진 안석 이민영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nuvo@seoul.co.kr
  • 둑방길에 저녁놀 비치면 물비늘 환상

    둑방길에 저녁놀 비치면 물비늘 환상

    물속에 잠긴 의암호 옛 뱃길이 호수변을 따라 ‘명품 걷는 길’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의암댐~송암리~봉황대~중도배터~어린이회관~공지천~에티오피아 전적 기념관~의암호 둑방길~근화동배터~소양강 처녀상~소양2교~인형극장~신매대교~오미나루~만화박물관~금산리배터~현암리~석파령옛길~덕두원~의암댐을 잇는 가칭 ‘의암호 둘레길’이 개발중이다. 삼천동 봉황대와 중도배터에서 현암리까지는 걷는 길과 자전거 길로 이미 연결됐지만 현암리에서 석파령 옛길을 돌아 의암댐과 중도배터를 잇는 길은 험하고 예산이 많이 들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둘레길의 3분의1이 아직은 미완성인 셈이다. 우선 소나무숲길을 따라 나무계단으로 잘 단장된 삼천동 라데나콘도 뒷산인 봉황대에 올라 의암호를 바라보면 호수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중도배터로 내려선 뒤 어린이회관을 지나 공지천 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좋다. 소나무와 곳곳에 만들어 놓은 벤치, 잔디밭이 데이트 길로 제격이다. 공지천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을 마신 뒤 호수변을 따라 이어진 둑방길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저녁 노을이나 달빛을 보며 걷는다면 호수 위에 반짝이는 물비늘이 환상적이다. 물비늘이 아름다워 둑방길은 ‘윤슬길’이란 별도의 이름을 붙일 작정이다. 이렇게 근화동배터와 소양강 처녀상까지 족히 1시간 이상 걸린다. 이후 소양2교를 건너 인형극장까지 물길을 따라 걷고 신매대교를 지나면 서면에 이른다. 서면은 호수와 춘천도심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더욱 아름답다. 길을 걷다 오미나루 카페촌에 들러 한잔의 차로 목을 축이고 금산리뱃길과 만화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형극장에서 잠시 코스를 달리해 상중도를 찾으면 고산대와 부래산이 반긴다. 섬은 주로 근화동배터에서 뱃길로 오가지만 지금은 골재채취장 차량들이 드나드는 가교가 놓여 왕래가 가능하다. 섬 주변으로 둑방길이 잘 닦여 걷기나 자전거 드라이브코스로도 좋다. 춘천 토박이 박완성(45)씨는 “빠른 시일 내에 중간중간 끊긴 길을 잇고 정비해 호수를 따라 걷는 명품길로 개발하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 사진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영어에 밀리고 중국어에 치이고… 불어가 작아진다

    영어에 밀리고 중국어에 치이고… 불어가 작아진다

    “지금 파리의 벽에는 나치가 점령했을 당시의 독일어보다 더 많은 영어가 붙어 있다.” 프랑스어를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아브니 드 라 랑그 프랑세즈(ALF·프랑스어의 미래라는 뜻)’ 등 8개 단체는 지난달 8일 르몽드와 뤼마니테 등 2개 일간지에 이 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영어가 프랑스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 단체들의 외침에는 영어에 밀린 프랑스어의 위기가 고스란히 서려 있다. 위상이 높아지는 언어는 영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중국어의 경우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 개막한 밴쿠버동계올림픽의 준비위원회에 주어진 과제 중 하나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두 언어 모두 캐나다의 공식 언어이지만 경기가 열리는 밴쿠버가 속해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프랑스어 인구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중언어 정책에 냉소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 3000명이 ‘bonjour(안녕하세요)’라고 쓰인 배지를 달고 곳곳에 배치됐지만, 존 펄롱 밴쿠버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VANOC) 위원장이 개막 연설 대부분을 영어로 진행하는 등 사실상 프랑스어는 소외되는 분위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34년만에 캐나다 안방에서의 첫 금메달을 안겨준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남자 부문의 알레산드르 빌로도는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선수였다. ●프랑스·캐나다에서도 위상 흔들 공식 공용어는 없지만 사실상 프랑스어가 그 역할을 해왔던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도 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이 지역 토박이 말인 플레밍어와 정부 언어인 프랑스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자국어 보호의 교과서로 불리는 프랑스에서도 영어의 위협은 크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2006년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한 프랑스 경제인이 영어로 연설하자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본인은 영어를 못함에도 “국제회의에서 더 이상 프랑스어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취임 다음해인 2008년 교육부가 영어 교육 강화 방침을 밝힌 이후로 프랑스 내 영어 사용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프랑스의 자국 언어 보호 정책은 1994년 제정된 ‘투봉법’으로 대표된다. 모든 방송·광고 등에서는 프랑스어를 우선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라디오 전파를 타는 노래의 40%는 프랑스어곡이어야 한다. 하지만 영어가 법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고 프랑스어 보호 단체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고속 철도인 테제베(TGV)가 최근 가족 여행자를 겨냥해 내놓은 표의 이름은 ‘TGV family’이다. PSA 푸조-시트로앵의 최고경영자(CEO) 필리프 바랭은 지난해 취임 후 모든 임원 회의와 공식 문서 작성을 영어로 하라고 지시했다. ●외교 언어=프랑스어 공식 깨지나 아그레망(agrement), 코뮈니케(communique) 등 익숙한 외교 용어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을 들지 않더라도 프랑스어 하면 곧 외교 언어로 인식돼 왔다. 유엔의 경우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6개 언어가 공식 언어다. 하지만 유엔 사무국 등 대부분의 유엔 조직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실무 언어다. 프랑스어는 명사와 형용사, 동사가 남성·여성 그리고 복수·단수 구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중의적 문장으로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낮다. 이 두 언어는 유엔 공식 출범 다음해인 1946년부터 실무 언어 역할을 해 왔지만, 최근 크게 달라졌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프랑스어를 거의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외교가는 ‘충격(choc)’과 ‘끔찍함(horreur)’에 몸서리쳤다고 다니엘 해넌 EU 의원은 전했다. 고위 외교직에 오른 인물이 프랑스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어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가 됐다. ●추락해도 바닥은 있다 영국의 보수 성향의 역사가인 앤드루 로버트는 “프랑스는 이제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인터넷과 항공업계, 컴퓨터 산업, 국제 사업 등에서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는 현실로 미뤄볼 때 수긍이 간다. 중국에서의 영어 열풍도 대단해, 2030년이면 영어를 구사하는 중국인이 미국인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인도가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로서의 위치를 중국에 내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자국어 사랑은 여전히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강하다. 제라르 아로 유엔 주재 프랑스대사는 유엔 안보리이사회 순번 의장국으로서 계획을 영어로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나는 영어할 줄 모릅니다. 푸앵(마침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 후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의 프랑스어 진흥 특별 대사 자격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 장 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는 “반 총장이 프랑스어로 얘기하기를 고집했다.”면서 “(이날 대화로)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닻을 올린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2기 집행위원 대부분은 업무 중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국제협력·인도주의 구호 담당 집행위원으로 지명된 불가리아 출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는 영어 실력도 부족하지만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선언, 갈채를 받았다. 국제프랑스어사용권기구(OIF)에 따르면 프랑스어는 32개국의 공용어이며 전 세계 2억명이 구사하는 언어다. 영어와 함께 5대륙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언어이기도 하다. 영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언어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달 20일 창설 40년을 맞는 OIF는 초창기와 다름없이 왕성한 활동으로 프랑스어권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프랑스 주간 르누벨옵세르바퇴르 기자인 마리 엘렌 마르탱은 “프랑스어에 오 르부아르(작별인사)를 말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제 사회에서 이라크 전쟁처럼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거들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강하게 ‘농(non·안돼)’을 외칠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면서 OIF는 유럽, 아프리카, 일부 아랍권 국가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해 영미권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 그 이상”이라면서 “누구나 자국어로 생각할 권리를 지니듯 프랑스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비운의 거인’ 10년 투병 헛되이… 前롯데 포수 임수혁의 삶과 죽음

    ‘비운의 거인’ 10년 투병 헛되이… 前롯데 포수 임수혁의 삶과 죽음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10여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프로야구 롯데 포수 임수혁이 7일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1세로 세상을 등졌다. 서울 명일동 부친의 집 근처 요양원에서 이틀 전 감기 증세를 보여 서울 강동 성심병원으로 옮겨진 임수혁은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직접적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에 허혈성 뇌손상 합병증. 아버지 윤빈씨는 “처음 수혁이가 쓰러졌을 때 담당의사가 짧으면 3년, 길면 5년을 산다고 했는데 10년이면 상당히 오래 산 것 아니냐.”며 아들의 영면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서울 토박이 임수혁은 서울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4년 신인 2차 지명으로 계약금 55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185㎝, 90㎏의 건장한 체구에 강한 어깨, 장타력을 겸비한 임수혁은 입단 당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시즌 동안 통산 488경기에서 1296타수 345안타(타율 .266)에 47홈런을 때리며 257타점을 올렸다. 입단 초기 선배 김선일과 동기생 강성우의 그늘에 가렸지만 타고난 슬러거의 자질에다가 수비 능력이 향상되면서 데뷔 2년째 롯데 안방자리를 꿰찼다. 1996년 113경기에 출장, 타율 .311, 홈런 11개, 타점 76점을 올리면서 정상급 포수로 뛰어올랐다. 1999년에는 포스트시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과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3-5로 패색이 짙던 9회 말,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동점 2점 홈런을 뽑아내 연장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롯데는 연장전에서 6-5로 뒤집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돌발사고가 발생한 것은 2000년 4월18일 잠실구장 롯데와 LG전이었다. 임수혁은 2회 2사 후 5번 지명타자로 타석에 섰다. 유격수 실책으로 1루에 진루한 임수혁은 후속타자 안타로 2루에 간 뒤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의식불명인 채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호흡과 맥박이 일시 정지됐다. 결국 제때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한 그의 뇌는 소생불능이었다. 임수혁의 투병생활 동안 동료와 팬들의 온정은 쏟아졌다. 롯데 선수들과 임수혁선수후원회가 매년 일일호프와 자선행사를 열었고, 2000년 현대 시절부터 히어로즈 선수들은 월급에서 1만원씩 떼 후원했다. 축구의 홍명보·안정환, 골프의 최경주 등 스포츠스타들과 미국 메이저리그 강속구 투수 랜디 존슨까지 힘을 보탰다. 그러나 임수혁은 끝내 가족과 동료, 팬들을 뒤로 했다. 사이판에서 전지훈련 중에 비보를 접한 롯데 주장 조성환은 “선수와 팬들 모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너무나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이다.”며 “선배님의 못다 이룬 꿈을 반드시 우승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상일동 경희대의과대학 동서신의학병원 장례식장(02-440-8912)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유족으론 아내 김영주(40)씨와 아들 세현(16·중3), 딸 여진(14·중2)양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종로

    [도시와 길] 서울 종로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은 단순히 차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중심으로 집과 건물이 생기며 또 그곳에서 도시와 문화가 생긴다. 그래서 길은 도시나 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한다. 유행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있다. 서울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도시와 길’을 연재한다. ‘도시와 길’은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다. ‘종로로 갈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말 그대로 ‘1번지 길’이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수만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 보신각종의 서른 세 번 울림.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도 지켜보는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 1953년 이래 오늘날까지 ‘종로(鐘路)’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해를 시작하는 거리다. ●서민들 삶의 터전… 추억이 고스란히 종로는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길’을 떠올릴 때 감히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에서 이름에 유일하게 길을 담은 곳도 종로구뿐이다. 구로구가 있지만 구로(九老)는 길이 아닌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곳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종로 138번지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6가 78번지 동대문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2.8㎞의 왕복 8차선길인 종로는 수백 년 전부터 언제나 번화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세종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의 철마다 바뀌는 초대형 간판은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종각에서 인사동 초입, 종로3가부터 시작되는 귀금속 거리와 종로5가의 약국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겨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우정호(60)씨는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워서 장가를 보냈다.”면서 “종로는 나에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살거나 종로를 즐겨 찾는 사람들도 종로를 생각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종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학수(85) 할아버지는 “처음 기억하는 종로와 지금의 종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술회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종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로의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호연(25·여)씨는 “다른 번화가들은 유행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종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며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번화한 밤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고 전했다. 또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만 해도 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편안하게 찾는 곳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상점과 간판이 바뀌고, 건물의 높낮이는 달라졌지만 종로는 그 자체로 역사다.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사거리에 종을 매단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 종가(鐘街), 종루가(鐘樓街),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라는 이름도 모두 같은 연유다. 태종 때 시전행랑(오늘날의 상가)이 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들어선 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점과 노점들이 길을 잠식하면서 도로폭이 오히려 줄어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에 종로는 ‘최첨단’, ‘신문물’의 거리였다. 1899년 5월에는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 4월에는 종로사거리에 처음으로 전기 가로등 3개가 밝혀졌다. 당시 조선을 찾은 러시아인 파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서 “종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상점과 가게, 시장들이 있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은 종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1년부터 일제는 종로를 동대문에서 경희궁 앞까지, 폭을 28m로 좁게 줄였다. 일제가 조선인 상가가 밀집돼 있던 종로를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의 번영은 멈추지 않았다. 1931년 종로사거리 북동쪽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들어섰고 1932년에는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상인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혼마치(本)’의 일본인 거리와 각축을 벌이며 상권을 지켜 나갔다. 3·1만세시위운동의 출발과 중심도 종로였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경제자립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거점도 종로였다. ●‘도심재창조’… 변화의 갈림길에 선 종로 광복 후에도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배오개시장의 맥을 이은 광장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세운상가는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했고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이 급격히 커지자 종로는 번화가의 기능을 다른 곳에 나눠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백양로로 대표되는 신촌과 대학로를 찾기 시작했고, 유흥가는 강남대로와 영등포로 옮겨 갔다. 오래된 건물과 노점은 서민의 정취를 담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유행을 만들지도 못했고,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피맛골도 세운상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간판들이 들어섰고, 오랜 세월 종로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개발을 명목으로 역사를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신 서울시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세운상가 주변을 재정비해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종로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변화의 중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600년의 세월, 길 자체가 서울시민의 역사인 종로가 앞으로 또 다른 6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 사망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 사망

    ‘울고 싶어라’의 가수 이남이(62)가 폐암 투병 끝에 29일 오후 별세했다. 이남이의 한 측근은 이날 오후 “이남이씨가 오늘 오후 2시 14분께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밝혔다. 이남이는 지난해 11월 기침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상태가 악화돼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故이남이의 빈소는 강원도 춘천 학공리 춘천장례식장 101호에 마련됐다. 한편 1974년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해 사랑과 평화 멤버로 활약하며 가요사에 길이 남길만한 업적을 남겼다. 또 80년대에는 솔로곡 ‘울고 싶어라’를 발표해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후 이남이는 지난 2000년 강원도 토박이 뮤지션들을 모아 그룹 ‘철가방 프로젝트’를 결성해 딸과 함께 음악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딸 이단비 역시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제주 따라비오름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제주 따라비오름

    1995년쯤, 처음으로 제주 오름을 올랐는데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초원의 부드러운 곡선과 시원한 전망, 말과 소가 풀을 뜯는 한가로운 시간, 무덤과 오름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풍경…. 그야말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살아 있었다. 제주에 대략 368개의 오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입이 쫙 벌어졌다. 그 후 제주에 갈 때마다 오름을 찾았고, 오름은 히말라야와 알프스에 견줄 만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2000년 들어 오름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제주올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름 역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구불구불 농로를 따라 찾아가는 맛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자리잡은 따라비오름은 가을철 억새가 좋은 오름으로 유명하지만, 겨울철 눈과 어울린 풍경도 빼어나다. 따라비오름의 들머리는 가시리와 성읍2리 두 군데가 있지만, 겨울철에는 접근하기 쉬운 가시리 쪽이 좋겠다. 따라비오름의 높이는 342m, 실제 오르는 높이는 100m가 좀 넘는다.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데 2시간이면 넉넉하다. 따라비란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땅할아버지’에서 나온 것이 설득력이 있다. 주변에 모지(어머니)오름, 장자(큰아들)오름, 새끼오름 등이 있어 오름 가족을 이루고 있다. 정석비행장 남쪽 가시리 사거리에서 성읍 방향으로 100m쯤 가면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된 농로가 보인다. 농로 앞에는 ‘따라비오름 가는 길 약 2㎞’라고 파란색 페인트로 쓴 작은 팻말이 보인다. 주민들이 고맙게도 오름 입구를 알려준 것. 오름은 들머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입구만 찾으면 오르기는 누워 떡 먹기다. 농로는 굽이굽이 이어지면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양한 오름을 보여준다. ‘저곳이 따라비오름인가?’ 하면 길은 다시 다른 오름을 보여주고, 이렇게 몇 번 헛다리를 짚다 보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최근에 주차장 옆에 따라비오름 안내판이 세워졌다. 이곳에서 보면 따라비오름의 남사면이 보이는데, 펑퍼짐한 것이 별 볼일 없어 보인다. 오름 탐방에 나서면 우선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오름에서 만나는 철조망은 소와 말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사람들은 철조망을 피해 들어가면 된다. 철조망을 지나면 왼쪽으로 ‘수렵금지’를 알리는 노란 안내판 옆으로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그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소나무와 억새 사이를 10분쯤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태흥리와 남원리 바다가 아스라하다. 출발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바람이 떼거리로 몰려와 귀때기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설문대할망 치마에서 떨어진 흙이 오름이 돼 “이 정도는 바람 축에도 못 껴요.” 마침 내려오던 제주 토박이들이 바람에 절절매는 필자에게 한마디 던지고는 웃으며 사라진다. 제주에 바람, 여자, 돌이 많아 삼다도라니…. 제주에 많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오름도 많고, 조랑말도 많고, 제주의 설화에 등장하는 신들도 무진장 많다. 제주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려고 치마폭에 담아온 흙이 떨어져 오름이 생겼다고 한다. 능선에 올라붙자 전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밑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으로 많은 봉우리와 굼부리(분화구)를 거느리고 있다. 오름의 곡선미는 용눈이오름을 최고로 치지만, 따라비오름도 만만치 않다. 붉은 돌을 쌓아올린 방사탑에 서자 오름의 전체 윤곽이 잡힌다. 신기하게도 굼부리가 셋이고 그것을 감싸는 능선이 오밀조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세 개의 굼부리가 만나는 지점이 움푹 들어갔는데, 거기에 무덤이 자리잡았다. 굼부리 안에는 드문드문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방사탑은 제주 사람들이 풍수지리적인 비보(裨補)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말을 키우던 말테우리(말몰이꾼)들이 소원을 염원하며 쌓은 듯하다. ●여섯 봉우리, 세 개 굼부리가 빚어내는 곡선미 이제부터는 오름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펼쳐진 조망을 감상한다. 첫 봉우리에 올라서니 동쪽 가까이 모지오름의 큰 품이 보인다. 그 뒤로 영주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고, 멀리 우도의 우도봉 머리가 가물거린다. 저물 무렵에는 우도봉 등대가 불 밝히는 모습이 보기 좋겠다. 너울너울 구릉을 따라 굼부리를 내려갔다 올라오니 북서쪽으로 제주 오름 1번지라 알려진 구좌읍 송당 일대의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동검은오름, 좌보미오름 등의 오묘한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따라비오름에서 만난 가장 멋진 풍광이다. 계속 길을 따르면 어느덧 세 개의 굼부리가 만나는 무덤에 이른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오름과 무덤이 어우러진 풍경은 참으로 편안하다. 무덤을 지나면 다시 방사탑으로 돌아오게 된다. 방사탑에서 보면 따라비오름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이 들어찬 모습이 보인다. 오름에서 정상과 중심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천차만별의 생김과 크기를 가진 오름들은 서로 배경이 되어 절묘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그래서 제주 오름이 참 좋다.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은 불편해 자가용을 가져가야 한다. 따라비오름은 아직 내비게이션이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한다. 가시리 사거리에서 성읍 방향으로 100m쯤 가면 길 건너편으로 작은 농로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따라비오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길을 2.8㎞쯤 따르면 주차장에 닿는다. 가시리의 가시식당(064-787-1035)은 허름한 동네식당이지만, 입소문이 나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두루치기, 순대국밥이 저렴하면서 맛있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 “A 친화력으로 여성엔지니어 편견 녹였죠”

    “A 친화력으로 여성엔지니어 편견 녹였죠”

    ‘0.02%’의 그녀들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국내 대표적인 중화학 장치산업으로 ‘여풍(女風)’도 비켜간다는 정유공장의 여성 엔지니어들 얘기다. 절대 다수가 남성인 정유공장 현장에서 금녀(禁女)의 영역을 허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심장’으로 불리는 SK에너지 울산공장의 정유생산기술팀 김미경(26)씨와 에쓰오일 온산공장의 정유공정부 김민희(27)씨, 2년차 두 여성 엔지니어들의 삶과 입사기를 들여다 봤다. 2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여성 엔지니어 비율은 2% 미만이다. SK에너지 울산공장은 전체 엔지니어 440명 중에서 여성이 10명(0.023%) 뿐이다. 에쓰오일 온산공장도 여성 엔지니어가 6명으로 전체 235명의 0.025%에 불과하다. 정유업계는 2015년 이후 엔지니어의 수급 부족을 예상하고 있다. ●“첫날 반응은 여자가 나타났다” 두 엔지니어는 매일 정제 현장과 씨름한다. 지난해 3월 울산공장에 배치된 김미경씨는 정유공장(CDU)의 기술 지원을 맡고 있다. 김민희씨도 지난해 8월 온산공장에 온 후 동력 공정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관록이 만만치 않은 생산직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두 사람의 일이다. 처음에는 우려도 컸다. 남성 직원들과 겉돌지 않을지, 힘들다고 포기하지는 않을지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2년차인 두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평가는 ‘A+’수준. 업무 이해도가 높고 여성 특유의 친화력도 만만치 않다고 칭찬한다. 미경씨가 울산 현장에 배치된 첫날 반응은 “여자가 나타났다.” 였다. 남자직원들은 미경씨와 악수를 하는 것도 어색해했다. 민희씨도 내가 여자라서 ‘말을 퉁명스럽게 하나.’하고 혼자 고민을 했다고 한다. 공장 생활 한 달이 지나자 두 사람에게 따라 다니던 ‘새로 온 여자’라는 말은 쑥 들어갔다. 꼼꼼한 일처리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어느새 ‘김기사’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졌다. SK에너지는 울산공장에 여성용 샤워 시설을 마련했다. 지난 1월부터는 여성용 작업복이 지급됐다. 여성 엔지니어들은 그동안 남성용 작업복을 줄여 입었다. 에쓰오일 온산공장에는 반말투와 호통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 엔지니어가 늘면서 현장 언어를 순화하자는 분위기이다. ‘성희롱 교육’은 대폭 강화됐다. 민희씨는 “오래 같이 일할 동료가 될 수 있을까라는 여성 엔지니어들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사라진 자리를 동료애가 채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맷집·근성으로 200대1 경쟁 뚫어 두 사람은 깊이 있는 ‘전공 지식’과 ‘자신감’을 취업 성공 이유로 꼽는다. 미경씨는 한 우물만 판 케이스. 3학년 때 SK에너지 입사를 목표로 삼은 후 회사 홈페이지에서 주요 공정과 제품, 업무 등의 정보를 샅샅이 훑었다. 또 정제 업무와 연관된 열역학과 유체역학, 분리공정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녀의 전략은 통했다. 실무 면접에서 던져진 7개의 질문 중 5개를 완벽하게 대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미경씨는 “지원 회사에 대해 많이 알고 그 회사의 최근 이슈와 관심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희씨는 졸업한 해인 2006년 1월부터 1년 동안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현장 업무를 익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이 때문에 민희씨를 면접했던 수석부사장이 “최종 면접자 중 가장 준비된 지원자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맷집이나 근성도 중요한 요소이다. 두 사람은 업종 특성상 남성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근성을 보이라고 조언한다. 민희씨는 인성 면접에서 “공장 생활을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저 공대 나온 여자입니다.”라는 당찬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미경씨는 “60m 높이의 상압증류탑에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체력 하나는 자신있다.”며 즉석 팔굽혀펴기 시범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2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은 그녀들의 숨은 비법은 ‘자신감’이었다.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공순이 팔자’라고 표현하면서 “공순이라는 말이 어때서요?”라고 되묻는다. 여성 엔지니어의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최고엔지니어 목표는 현재진행형 ‘상명하복’의 수직적 문화가 강하고 보수적인 정유업계의 특성상 엔지니어 출신의 여성 임원은 찾기 어렵다. 채용문을 통과한 여성 수가 적고 지방 공장 지원을 꺼리는 경향도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90년, 93년, 99년 여성 엔지니어가 1명씩 입사했지만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퇴사했다. 에쓰오일은 2006년부터 여성 엔지니어를 다시 뽑았고, SK에너지는 같은 해 처음으로 선발했다. 민희씨는 “여성 엔지니어 중 아직 과장급도 없다.”며 “앞으로 입사할 후배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경씨는 “입사 초기에 어떤 분이 ‘꿈이 뭐냐.’고 물어 공장장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울산 공장장이셨다.”며 “최고 엔지니어를 향한 목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서울 토박이다. 그러나 “화학공학을 전공할 때부터 엔지니어를 희망했고 지방 근무는 필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경씨와 민희씨는 공장 현장이 제일 좋다고 한다. 둘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울산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꽂이]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우애령 외 지음, 하늘재 펴냄) 소설가 우애령, 이영희, 유숙희, 민선기 4인 소설가의 4색 작품집. 단편 16편과 10여편의 엽편을 모았다. ‘사계절’이란 동인 이름대로 각자 개성 있는 문체로 다양한 인생의 이면과 이국적 사랑, 음악처럼 흐르는 삶의 감정, 인간의 순백함 등을 이야기했다. 1만원. ●나는 달린다(윤효 지음, 이룸 펴냄) 1960년대 전남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10대 ‘열혈소년’ 박수형의 성장기. 직장에서 좌천된 아버지를 따라 함평에 온 수형은 동네 토박이 짱인 종수와 혼혈아 토미 등을 만나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부하 아이들을 관리·통솔하는 방법 등 심리싸움도 전개되며 ‘대장’에 집착하는 아이들을 통해 당시 사회를 투사했다. 1만 1000원.
  • [국제배드민턴] 윙크왕자 이용대 2관왕

    화순 토박이인 ‘윙크왕자’ 이용대(삼성전기)가 고향에서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걸었다. 이용대는 29일 전남 화순 하니움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2009화순 코리아챌린지 국제배드민턴선수권 마지막 날 혼합복식과 남자복식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용대는 ‘금빛남매’ 이효정(삼성전기)과 짝을 이뤄 출전한 혼합복식에서 고성현(동의대)-하정은(대교눈높이)을 2-1(21-14 15-21 21-9)로 누르고 정상에 섰다. 이어 정재성(국군체육부대)과 호흡을 맞춘 남자복식에서도 유연성(수원시청)-고성현을 2-1(21-19 15-21 21-15)로 제압했다. 이로써 이용대는 최근 홍콩오픈(남복)과 중국오픈(남복·혼복)에 이어 국제대회 3연속 정상에 올랐다. 여자복식에서는 정경은(KT&G)-유현영(한국체대)이 우승했다. 남자단식과 여자단식에서는 노예욱(한국체대)과 배연주(KT&G)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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