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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갑오(甲午) 최후의 전쟁 -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갑오(甲午) 최후의 전쟁 -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석대들로 내뺀다. 저놈들 몰살을 시켜라!”<송기숙, 녹두장군, 1989> 지금도 전라남도 장흥은 지리학적으로 빼어난 곳이다. 뭍으로는 나주, 화순, 강진, 보성에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닷길로는 완도에 뻗어 있다 보니 사통팔달 장흥 땅에는 예부터 사람과 물산이 차고 넘쳤다. 이에 더해 나주 너른 평야와 화순 너릿재 터널, 자울재고개 앞으로 나아가면 금강천, 탐진강 사이에 있는 너른 석대들판은 한결같이 그 빛깔이 곱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 석대들은 국가지정 사적 제 498호로 지정된 장소로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공주 우금치, 정읍 황토현, 장성의 황룡과 더불어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이자 동학 농민혁명 최후의 전투가 펼쳐진 땅이기 때문이다. 장흥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으로 가 보자. 1894. 갑오(甲午)년이다. 동학농민혁명이 기포하였다. 그 해 1월 10일, 동학 북접의 지도자였던 녹두장군 전봉준(1854-1895)이 고부관아를 점령한 이후 ‘보국안민 척왜양창의’를 기치를 내걸고 남도 땅을 휩쓸고 다녔던 동학의 파죽지세는 11월 공주 우금치 전투와 태인 전투 패배를 기점으로 급격히 쇠락한다. 더더군다나 지도부였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대부분 피체되자 구심점을 잃은 농민군들은 나주와 화순을 지나 장흥으로 모여든다. 이에 동학의 장흥 접주였던 이방언(李邦彦 1838~1895)을 중심으로 적게는 1만, 많게는 3만 여명에 달하는 동학 농민군이 집결하여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12월 3일 전투를 시작한 이후 동학 농민군은 금새 장흥 벽사역과 장흥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공과를 세운다. 하지만 이런 성과도 잠시였다. 곧이어 일본군 대장이었던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와 관군 이두황, 조희연, 이두재 등이 신식무기인 개틀링 기관총, 즉 회선포(回旋砲)를 석대들 양옆에 걸고 쏘아대자 한 번에 수백여 명의 농민군들은 바로 절명한다. 곡괭이, 몽둥이, 화승총으로 무장한 동학 농민군의 최후는 석대 들녘을 가득 메운 피비린내로 남게 되었다. 이로써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세상을 뒤집어 보려던 동학 농민 혁명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된다. 10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장흥 석대들은 여전히 그 안타까운 시간을 어루만지고 있다.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은 전라남도 장흥읍 남외리 165일대에 터 2만6000㎡, 지상 1층, 건축면적 2800㎡ 규모로 134억원을 들여 2015년 4월 26일에 개관하였다. 외부에는 동학 농민 전쟁 당시의 상징 조형물과 깃발광장을 조성하였고, 전시관 내부에는 체험실, 영상실, 수장고, 휴게실 등을 설치하여 동학 최후의 전투였던 석대들 전투를 기억하고 있다. 특히, 이 곳에는 당시 일본군의 총탄을 막기 위해 사용하였던 ‘장태’ 모형과 더불어, 동학 농민군들의 무기 등도 전시되어 있어 실감나는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22살의 여자 장수였던 ‘이소사’와 13세 소년 장수 최동린, 농민군 수백명의 생명을 완도와 고흥 섬으로 피신시켰던 소년 뱃사공 윤성도의 이야기도 관람객들에게 의미를 더하고 있다.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반외세, 반봉건을 외친 동학의 마지막 전투 현장이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2. 누구와 함께? -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읍성로 2 4. 감탄하는 점은? - 기념관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석대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관람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것은? - 장태, 기념탑, 석대들 전경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삼합 ‘명희네장흥삼합’, 키조개 ‘갯마을’, 콩국수 ‘시루와 콩’, ‘삼대곰탕’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jangheung.go.kr/tour/attractions/exhibit_hall?mode=view&idx=48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두륜산 대흥사, 다산초당, 윤선도 기념관, 정남진 토요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동학의 마지막 전쟁터. 나라를 지키려는 민초들의 순수한 열정이 아직도 석대들에는 남아있는 듯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로마 분수에 팬티 차림 뛰어든 영어 쓰는 관광객 추적 중

    로마 분수에 팬티 차림 뛰어든 영어 쓰는 관광객 추적 중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분수에 벌거벗은 채 뛰어들어 목욕을 즐긴 두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해 이탈리아 부총리까지 “멍충이들”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경찰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로마 알타레 델라 파트리아(일명 웨딩케이크)의 피아차 베네치아 분수에 팬티 차림으로 뛰어든 철딱서니 없는 관광객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의 한 블로거가 이들이 목욕을 즐기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놓아 공분을 사고 있다. 둘 중 한 명은 팬티마저 내린 채로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은 이탈리아 통일 후 초대 국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으며 이름 없는 전몰 장병들의 무덤이기도 해 나름 신성한 곳이었다. 지나던 이들은 웃기도 하고 사진도 촬영했지만 다른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고 두 남자 보고 분수에서 나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트위터에 “만약 잡히면 이 멍충이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알게 될 것”이라며 “이탈리아는 그들의 집 목욕탕이 아니다”라고 공박했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이 “불법이며 매우 공격적인” 사건이라며 둘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둘 모두 외국인이며 “토박이 영어 사용자들”이라고 단언했다. 루카 베르가모 로마 부시장은 이들이 “우리 모두를 공격한 것이며 우리 조국과 전몰 장병들에 대한 기억을 해친 것”이라며 “로마와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고 멍청함과 무례함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로마 트레비 분수에서 완벽한 셀피를 찍겠다며 줄 서 있던 관광객들끼리 드잡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거대한 파도들이 깊은 물이랑을 뒤로 끌면서 말 위에 높이 앉듯 흉흉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서정인, 물결이 높던 날. 1963>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다방 아가씨 ‘명자’를 사랑한다. 거북섬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송도해변의 높은 파고와 모래밭을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다방과 문 앞만을 맴도는 서툰 염정(艶情). 자신도 어찌할 줄 모르게 솟아오르는 연민과 증오, 욕정의 어지러움을 달래기 위해 송도 해변을 현수는 한없이 걷고 또 걷는다. 소설은 송도해수욕장 주변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쉼없이 드러내고 뱉어낸다. 처음이자 최초로 다가 온 사랑의 감정앞에 현수는 결국 좌절한다. 어찌되었던 간에, 어느 쪽에서나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는 것은 용한 일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붙박여있는 지역이나 건물이 그런 이름표를 걸게 되면 마을 하나가 살아갈 요량은 더더욱 확실해진다. 그러하다보니 제각기 서로가 원조이자 처음이고, 시작임을 내세우고 싶지만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터.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이라는 명찰 확실히 붙이고 있는 부산 송도해수욕장으로 가보자. 부산에는 현재 해운대, 광안리, 송정, 일광, 임랑, 송도,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총 7곳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 있다. 이중에서 송도와 다대포 해수욕장은 부산의 서남권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자 부산의 구도심과 연결되어 있어 역사가 만만치가 않다. 특히 송도해수욕장의 경우 부산역과 부산항에 인접하여 접근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해수욕장 자리로는 제대로였다.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송도(松島)해수욕장은 1913년 7월에 개장한 우리나라 제1호 공설 해수욕장이자 최초의 근대 해수욕장이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거류민을 중심으로 송도 해변가 주변이 조금씩 해수욕장으로 탈바꿈하다가, 1913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송도(지금의 거북섬)에 ‘수정(水亭)’이라는 휴게소가 들어서면서 해수욕장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후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과 6.25전쟁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값을 날린다. 1964년에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거북섬을 잇는 구름다리가 만들어지면서 해수욕장의 인기는 지금의 해운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신혼부부들이 꼭 가봐야하는 신혼여행지로 명성을 날려 구름다리와 거북섬은 하루 종일 연인들의 사진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비하여 해수욕장 주변 환경 개선 사업은 전무하였는데 각종 생선 부산물 및 음식찌꺼기와 생활 하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 내려갔다. 또한 부산 남항에서 배출된 각종 선박들의 오염물질 등으로 인하여 2000년에 들어서서는 송도는 해수욕장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해안도로 200여 미터가 파손되어 송도 해수욕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부산시는 해수욕장 앞쪽 300m에는 너비 40m, 길이 300m에 이르는 수중방파제인 잠제(潛堤)를 설치하여 모래유실을 막는 공사를 하였고 이에 더해 27만m³의 모래를 백사장에 더해 지금의 송도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는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가 800m, 폭은 공식적으로는 50m이며 바로 옆에 위치한 수변공원의 넓이는 30,000m2에 이른다. 이 외에도 바다 위를 강화유리로 밟아보는 길이 104m, 폭2.3m의 ‘구름산책로’가 있어 바다 위를 걸어 거북섬에 닿을 수도 있으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1.6Km 길이를 둘러 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2018년 여름. 하루 종일 머리 위 불덩이 하나씩 얹고 보낸 올 여름의 중순. 송도해수욕장에서 여름과의 시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도 괜찮지는 않을까. <송도해수욕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부산 해운대 지구가 아닌 부산 서구쪽 여행을 계획한다면. 부산 구도심과 가까운 해수욕장이서 가벼운 산책길로 괜찮다. 2. 누구와 함께? - 수심이 깊지 않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서면역(1호선 승차) -> 자갈치역(하차) -> 96번 버스(환승)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 부산역에서 26번 버스(승차)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4. 감탄하는 점은? - 구름다리의 야경. 송림 공원의 시원한 바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이름에 비하여 피서객은 많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6. 꼭 봐야할 공간은? - 거북섬. 케이블카. 구름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예전부터 송도해수욕장은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해안가 주변 횟집들의 수준은 비슷한 수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ongdo.bsseogu.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국제시장, 이바구 거리, 산복도로, 자갈치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예전의 바가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찰제로 운영이 되며 인근 식당의 경우도 주거공간과 아울러 있는 송도해수욕장 특유의 입지 조건으로 인해 도심 여느 식당과 가격 차이가 없을 정도로 준수한 수준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강남야행(청담동에서 압구정동까지) 편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무더위를 피해 야간에 진행하는 첫날이었다. 낮에 한 차례 비가 쏟아지고 갠 뒤라 안심했으나 출발 시각인 오후 6시쯤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일단 첫 목적지인 청담동배수지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동하는 10여분 동안 신발과 옷이 다 젖었지만 공원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강의 여름 저녁 풍경을 맞았다. 강남의 야경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참가자들은 이날 지하철 7호선 청담역 1번 출구에서 만나 청담배수지공원~한강공원~청담동 명품거리~K스타거리~압구정로데오거리~한일관 순으로 한강변과 밤거리를 누볐다. 무더위가 가신 쾌적한 거리를 걸으면서 오디오가이드시스템을 통해 강남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 해설을 맡은 청담동 토박이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정감 있는 목소리로 강남의 속살을 조곤조곤 들려줬다.우리는 흔히 ‘조선’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조선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백제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원조 서울’은 강북 사대문 안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강남 중에서도 한성백제의 왕궁과 왕릉이 있던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이 강남 사대문이었다. 서울 2000년 역사 중 1400년을 훌쩍 건너뛴 뒤 조선 건국 이후 600년 역사만 기억하면서 역사의 땅 강남지역을 조선시대 강북 사대문 주민용 초식(草食)재배지로 전락시킨 셈이다. 기원전 18년 고구려의 왕자 온조가 한강을 건너 오늘의 강남땅에 십제(백제)를 세운 이유는 한강을 방어선 삼아 북방의 강국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했다. 475년 웅진(공주)으로 퇴각한 뒤 다시 깨어나기 전까지 ‘망각의 왕국’으로 버려졌다.답사단이 찾은 삼성동 청담배수지공원과 경기고 터는 한성백제의 옛 땅이었다. 고고학계에서 ‘삼성동 토성’이라고 불리는 이 공원은 한성백제시대 쌓은 토성의 흔적이 1980년대 초반까지 남아 있었다. 성 안에 흰 바윗돌이 우뚝 솟아 있었는지 조선 후기 문인 삼연 김창흡이 ‘백석성’(白石城)이라고 노래한 곳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옛 토성 터를 둘러싸고 더 높이 솟아 ‘아파트 산성’을 형성하고 있다. 봉은초등학교에서 청담배수지공원의 서북 경사면을 올려다보면 옛 산성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드러나는 듯하다.청담배수지공원 정자에 오르면 한성백제의 옛 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청담대교를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잠실주경기장 너머 123층 롯데월드타워에 이르는 넓은 벌이 펼쳐진다. 바로 백제의 왕성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왕릉인 석촌리 고분 영역이다. 강 건너 강북 아차산을 마주 보고 고구려 군사와 대치하는 형국이다. 한강 서쪽 남산에서부터 동쪽 광나루까지 탁 트인 조망은 삼성동토성이 포기할 수 없는 백제의 군사요충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삼성동토성은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백제의 3대 토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삼성리 산성은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 봉은사 동북쪽에 있다. 총길이는 170간, 높이 1간의 토루(土壘)가 산허리를 에워싸고 한강에 접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1간은 180㎝이니 성 둘레는 500m쯤 된다. 청담역 2번 출구에서 삼성역 방향으로 가다가 경기고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삼성동토성’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에는 ‘건국 초 한산에 도읍을 정하였던 백제는 고구려 및 신라에 대항하여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곳 옛 삼성리 일대에서 뚝섬 맞은편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따라 토성을 쌓았다. 토성의 유적이 최근까지 남아있었으나, 강남 개발로 인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삼성동토성은 탄천이 한강으로 합류하는 서쪽 구릉인 현재의 경기고에서 청담배수지공원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고에서 청담동배수지공원을 잇는 산성구간은 영동대로를 놓으면서 도로 아래에 묻혔다.향토사학자들은 지대가 가장 높은 경기고 화동관이 옛 삼성동토성 본성 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이 성의 길이는 약 350m에서 500m에 이르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파내 축성하는 형식)이다. 1871년 작 광주부읍지에 보면 대모산 뒤쪽이 대왕면, 탄천 오른쪽이 중대면, 양재천 아래쪽이 언주면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 강남 중심부를 이루는 옛 광주의 3개 면이다. 또 언주면 관내에 선릉과 정릉 그리고 양재역과 무동도 등 4개의 지명이 등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삼성리토성은 등장하지 않는다.삼성리라는 지명은 1914년 언주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봉은사, 저자도, 무동도의 ‘세(三) 땅을 합쳤다(成)’고 하여 만들어진 합성지명이다. 한강에 접한 언주면은 뚝섬으로 건너가는 청숫골 나루가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나 충청·경상·전라 삼남지방과의 연결은 주로 송파나루나 광나루를 통했지만 양재역이 번성했던 점으로 미뤄 선·정릉과 봉은사를 오가는 행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삼성동을 이룬 세 곳 중 저자도와 무동도는 압구정동 공유수면 매립공사 때 해체돼 지금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단지 아래로 사라졌다.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을 남긴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는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 언덕에 있다. 봉은사는 조선시대 강남지역의 압도적인 랜드마크였다. 왕릉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였다. 본래 성종을 모신 선릉 자리가 절집이었다. 1495년 선릉이 조성될 때 이곳에 견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기에, 왕릉 안에서 능을 수호하는 능침사(陵寢寺)의 역할을 맡기면서 견성사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왕릉 안에 절집이 있는 것을 반대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선릉의 동쪽으로 이전했다. 1562년 중종을 모신 정릉이 견성사 자리로 옮겨오면서 자리를 비워주고 지금의 수도산 아래로 옮겼다. 이때 80결(1결은 볏단 1000개)의 토지와 200명의 노비를 보유한 대찰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 강남개발과정에서 봉은사 소유 10만평의 금싸라기 땅이 한 평당 5300원씩 총 5억 3000만원에 정부 수중으로 넘어갔다. 오늘의 삼성동 코엑스와 한전 부지이다. 1974년 서울에 고교평준화가 시행돼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 학교를 짓는 와중에 한성백제시대 삼성동토성도 덩달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그렇게 햇볕과 달빛을 번갈아 쬐는 법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일시 : 8월 4일(토) 오후 6~8시 ●집결 장소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앞 ●무료 신청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futureheritage.seoul.go.kr)
  • 백혈병 청년에게 전한 칠곡 동명면 ‘이웃 사랑’

    농촌 마을 주민들이 백혈병을 않는 이웃 청년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5000만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 29일 경북 칠곡군에 따르면 동명면 남원2리 주민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이상협(27)씨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25일 만에 5415만원을 모아 이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이씨 아버지 찬우(59)씨는 이 마을 이장으로 200가구 주민들의 든든한 심부름꾼이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고 식당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치료비 마련이 막막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마을 노인회는 마을 총무 조진식(57)씨와 새마을지도자 김석배(56)씨에게 모금운동을 할 것을 제안했고 최병천(55) 동명농협조합장도 동명면 부녀회, 동명상공인협의회와 손을 잡고 모금활동을 벌였다. 칠곡군 이장협의회 300만원, 동명면 이장협의회 200만원, 농명농협 165만원을 빼면 순전히 주민들만으로 4500만원을 모았다. 특히 이 마을 130여가구는 대구 등으로 출퇴근하거나 은퇴 후 이주한 외지인들로 주위에서는 “참된 이웃사랑”이라며 놀라워하고 있다. 한 주민은 300만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상협씨는 현재 3차례 항암치료를 받고 다음달 누나(29)로부터 동종 골수를 이식받는 수술을 할 예정이다. 수술비는 40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아버지 찬우씨는 “도움을 주신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꼭 완쾌할 것”이라며 “마을 주민들의 과분한 사랑과 격려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 눈물 나게 감사하다”고 했다. 마을 총무인 조씨는 “대구 근교에 위치한 우리 마을은 외지인들이 농사를 짓는 토박이보다 다소 많은 편”이라면서 “얼핏 보기에는 서먹서먹하고 삭막할 것 같지만 이번 모금 운동에서 나타났듯 단합이 잘 되고 인정이 살아 있는 동네”라고 자랑했다. 칠곡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한현민 “한국인에게 한식 좋아하냐고 왜 묻죠?”

    한현민 “한국인에게 한식 좋아하냐고 왜 묻죠?”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대’ 자랑스러운 한국인 찬사 속에도 낙인이 된 다양성… 일상의 차별 내가 꿈꾸는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날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여기 3번 테이블에 김치찌개 하나, 안 맵게!” “사장님, 아녜요. 저 매운 거 엄청 좋아해요. 많이 맵게 해 주세요.” 189㎝의 큰 키, 삐죽 솟은 곱슬머리,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모델 한현민(17)군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매번 겪는 일이다. 현민군을 외국인으로 착각한 식당 주인 입장에선 배려한다고 한 행동일 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수백번은 겪었을 현민군은 “익숙하지만 아직도 씁쓸한 일상”이라고 했다. ‘한국인’ 현민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순댓국이다. 국물에 빨간 다대기를 풀고 청양고추까지 잔뜩 넣어 먹는 토종 ‘아재 입맛’을 가졌다. 현민군은 “흔히 사람들은 제가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먹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제 생김새 때문이겠죠”라고 말하곤 “이해해요. 한국에서 누가 제 외모를 보고 얼큰한 찌개를 떠올리겠어요”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아재 입맛 가진 ‘고딩’… 얼큰한 김치찌개·순댓국에 청양고추 팍팍 ‘다문화’. 한 사회 안에 다양한 민족이나 문화가 혼재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흔히 다름에 대한 ‘선 긋기’로 오용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사회는 다수와 다른 생김새, 다른 문화를 ‘다문화’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양성은 오히려 낙인이 됐다. 이런 순혈주의 한국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제 몫을 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뜨거운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아직 어린 나이지만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깨우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현민군을 만났다. 까만 벙거지를 푹 눌러쓰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못 먹어 배가 너무 고프다”며 2100원짜리 편의점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청소년이었다. 2001년 한국에서 태어난 현민군은 줄곧 서울에서만 살아온 ‘서울토박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한국인 어머니와 수출업을 하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씨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고,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 하나뿐이다. 2016년 모델 데뷔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한국의 ‘고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형들이 고등학교 가기 전엔 무조건 놀아야 한다고 해서 중학교 때는 진짜 실컷 놀았죠.” ●국적은 ‘대한민국’ 하나… 아버지 나라 나이지리아도 궁금해져 사람들은 현민군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오해하지만 정작 현민군은 단 한 번도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 본 적이 없다. 그는 “20살 전에 아버지의 나라 나이지리아에 가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함께 가 보자”고 제안했지만, 현민군은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모르는 곳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절대 싫다고 거부했다”고 했다. “한식밖에 못 먹는데, 먹는 것도 걱정이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래서 아직 나이지리아는 현민군에게도 낯선 나라다. 나이지리아의 문화도 최근에야 음악으로 처음 접했다. “나이지리아의 음악을 소개해 달라”고 주문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민군은 요즘 아프리카 음악에 푹 빠졌다. 현민군은 “음악을 듣고 나니 아버지의 고향이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 다만 나이지리아 공용어인 영어가 걱정이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영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현민군에게 아버지는 우스갯소리로 “너 거기 가서 6개월만 버티면 영어 할 수 있어”라며 놀리곤 한단다.●야구 포기하고 찾은 모델의 꿈… 내가 멈추지 않는 한 한계 없을 것 2016년 모델로 데뷔한 현민군의 원래 꿈은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돈 많이 드는 운동선수 준비를 포기했다. 공부에 영 취미가 없었다는 그는 모델 준비를 하던 아는 형을 통해 모델이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끼면서 틈틈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렸다. 그러다 지금의 소속사 윤범 대표를 만나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데뷔 3년차. 한국 패션계에서 검은 피부색 모델로 쇼 중심에 섰다. 벌써 그가 선 쇼만 60여개가 넘는다. 최근엔 방송까지 넘나들며 부쩍 유명해진 그에게 “성공했다”며 농담을 건네자, 그는 “아직 10대인데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닐까요. 이제 시작이죠”라며 씩 웃어 보였다. “모델 일은 비교적 수명이 짧다고들 하는데 몇 살까지 이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제가 제한하지 않는 한 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배정남 형님도 아직 멋지게 활동하고 계시듯 가능한 한 오래 모델을 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일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사진 기자가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자 모델 포즈가 바로 나왔다. 굽은 등을 하고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열심히 달리는 현민군에게는 ‘한국 최초의 검은 피부 모델’, ‘성공한 십대’ 등 여러 타이틀이 붙었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7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오른 그에게 대중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 현민군을 사람들은 ‘다르게’ 본다. ●외국보다 한국에서 낯선 시선들… 많이 변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차별은 큰 사건에만 있지 않았다. 일상 속 작은 ‘가시’가 그가 다르다는 것을 되새기게 했다. 어떤 때 가장 기분이 나쁘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매운 것도 먹을 줄 알아요?’, ‘한식 좋아해요?’라고 물어 오거나 “한국어 되게 잘하네요!”라며 감탄하는 것이 현민군에게는 아리송한 일이다. 토종 한국인 현민군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니까. 현민군은 “말하는 사람은 별 의미 없이 그냥 한 말도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와닿을 수 있다”면서 “서로 그런 세세한 배려를 가지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모델과 방송 일을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 봤다는 그는 “한국에선 아직도 내가 길을 지나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외국에선 아무도 안 쳐다보고 자기 할 일을 한다”면서 “그게 참 신기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속 우뚝 선 현민군은 다양한 피부색, 문화를 가진 청소년들의 희망이 됐다. 얼마 전 현민군은 한참 방황하던 중학교 시기 의지했던 상담 선생님을 만나러 모교에 들렀다가 뭉클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랑 피부색이 비슷한 중학교 1학년 후배가 다가와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기에 찍어 줬더니 ‘고마워, 형. 형은 진짜 나의 우상이야’라고 말하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찡했죠.” 현민군은 ‘서로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갈 길도 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정말 다양한 인종이 이질감 없이 살던데, 한국도 그렇게 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제가 그런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러니 제 자리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죠.”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둔의 절집, 세계문화유산으로 - 공주 마곡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둔의 절집, 세계문화유산으로 - 공주 마곡사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 봄은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는 옛말이 전해질 정도로, 충청남도 공주에 위치한 마곡사는 충청도 근역에서는 단연 최고의 풍광을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해발 417m의 태화산 깊숙이 들어앉은 마곡사는 물살 넉넉히 흐르는 마곡천을 대웅보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가람배치가 무척이나 특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한여름 녹음 우거진 사찰 옆 개울물소리는 풍경소리와 어우러져 참배객들의 없던 불심(?)도 끌어낼 만큼 매력적이다. 바로 이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 의해 보존되어야 할 세계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지난 6월 30일에 등재되었다. 그동안 정부는 공주 마곡사와 더불어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를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에 힘을 쏟아 왔었다. 이중 공주에 위치한 마곡사는 이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다른 여섯 사찰들에 비하여 그동안 대중의 관심을 덜 받아온 사찰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마곡사가 자리 잡은 마곡천 일대는 <정감록>이나 <택리지>에도 몸을 보전할 땅 10군데, 즉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으로 선정될 정도의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은 물론 국군도 들어오지 못했다는 말도 내려올 정도이니 은둔의 사찰로서는 제 격인 셈이다. 마곡사는 이런 지리적 연유로 인하여 독특한 이력들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과의 인연이다. 1896년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감리서 옥사에 갇혔던 백범은 1898년 3월에 탈옥,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이곳 마곡사였다. 하은당 스님의 상좌가 된 백범은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아 승려로 1년여를 지냈는 데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거처가 백범당이라는 이름으로 대광보전 왼편에 소박하게 자리잡아 있다. 마곡사의 연원은 꽤 깊은 편이다. 640년, 중국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선덕여왕으로부터 토지 200결을 받아 마곡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172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다시금 대규모 불사를 벌여 중창하였는데, 세조가 친히 영산전 현판을 친필로 남기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51년 현재의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마곡사에는 보물 제80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보물 제802호인 목조 건물 대광보전, 보물 제 799호로 높이 8.7m 오층석탑이 사찰 중앙에 모여 있어 사찰의 깊이를 더해 준다. 특히 오층석탑은 상륜부가 라마탑 형식의 청동도금제로 만들어진 한국 유일의 탑이기도 하다. 무더위가 가시지 않는 여름 한 낮, 마곡천 시원한 냇가 그늘 옆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곡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의 수준, 방문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 친목회 3. 가는 방법은?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마곡사까지 770번 버스 종점 하차. 40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마곡천과 어우러진 경내의 가람배치, 울창한 녹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관람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대웅보전, 대광보전, 마곡천, 백범당.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짬뽕 ‘동해원본점’, ‘명성불고기’, ‘황해도전통손만두국’, 어죽 ‘어가명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magoksa.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송산리 고분군, 갑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역사로 인하여 유명 사찰이 지니는 분주함은 없는 편이다. 더운 여름, 마곡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냇가 바람을.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마음이 활짝 피었습니다… ‘회복의 섬’ 제주

    마음이 활짝 피었습니다… ‘회복의 섬’ 제주

    일상에 지쳤을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제주. 1988년 최성원이 발표한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을 후배 가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하고 그때마다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누구나 제주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어서일 것이다.사시사철 여행객으로 붐비는 제주라 항공편이 10~20분씩 연착되는 일은 예사지만 제주공항에 내리면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육지와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제주 ‘힐링’ 여행이 시작된다. ●‘사려니숲길’은 빼놓을 수 없는 핫 플레이스 서울시 면적의 3배가 조금 넘는 제주도(1849㎢)는 메인 코스로 개발된 올레길만 모두 21개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든 그곳이 힐링 장소가 되는 제주지만 아직 갈 곳을 정하지 않았다면 이름난 관광 포인트부터 요즘 뜨는 핫 플레이스까지 하나씩 둘러보는 것도 좋다.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제주시 봉개동까지 10㎞ 남짓 이어지는 사려니숲길은 ‘힐링 명소’로 이름을 떨치는 길이다. 한라산 기슭 물찻오름을 끼고 도는 길 주변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이 울창한데 익숙한 육지의 숲과 달리 태곳적 신비가 느껴진다. 제주말로 ‘신성한 숲’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의 장소다. ●3만 3000㎡ 해바라기 농장에서 ‘인생샷’ 사려니숲길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북쪽으로 가다 보면 해바라기가 펼쳐진 풍경을 만나게 된다. 6년 전 서울에서 귀농한 김경숙 대표 부부가 3만 3000㎡ 농지에 조성한 ‘김경숙해바라기농장’이다. 5월부터 10월까지 순차적으로 해바라기가 피기 때문에 넓은 농장 전체가 샛노랗게 물든 장관을 볼 수는 없지만 기념사진을 남기기엔 충분하다. 잎이 떨어져 가는 해바라기에 얼굴을 그려 보는 등 소소한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초기에는 무료로 운영했지만 입소문을 탄 뒤 방문객이 연간 10만명으로 늘어났고 관리를 위해 입장료 3000원을 받고 있다. 대신 같은 가격의 쿠폰을 줘 해바라기씨 아이스크림, 해바라기씨유, 볶음씨앗, 해바라기 훈제 바비큐포크 등 판매 상품을 살 때 할인받을 수 있다.활동적인 체험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다. 김경숙해바라기농장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20분 달리면 ‘제주 오프로드’를 체험해 볼 수 있다. 한초이 대표가 직접 개조한 지프 차량을 타고 도로 없는 숲과 언덕을 누비는 상품이다. 차에 몸을 싣고 영화 ‘쥬라기 공원’이나 ‘아바타’ 속 정글이 연상되는 제주의 자연 속을 탐험하면 1시간이 금방 지난다. 오름과 호수, 풀을 뜯는 말 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 1인 3만 9000원. (070)8880-3900.서귀포 색달동 ‘박물관은 살아 있다’는 착시아트, 미디어아트 등을 보고 듣고 만지면서 체험하는 오감 만족 박물관이다. 가족, 연인 관람객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140여점의 작품 중 매년 20~30%를 새 작품으로 바꿔 재방문 시에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명화와 제주 곶자왈의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한 착시미술 콘텐츠 ‘백작의 방’을 새롭게 내놨다. 백작의 정원에 이르면 1920년 벨기에에서 제작된 대형 오르간이 들려 주는 신비한 합주를 경험할 수 있다. 어른 1만 2000원. ●한낮 더위 사라진 협재·쌍용굴 제주공항에서 한림읍 쪽으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한림공원을 만난다. 창업자 송봉규 한림공원 회장이 1971년 사들인 바닷가의 황무지 모래밭에 야자수와 관상수를 심어 가꾸기 시작한 공원이다. 새로운 시설을 끊임없이 개발해 제주 대표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아열대식물원과 산야초원, 제주석·분재원, 재암민속마을, 사파리조류원 등 열 가지 테마공원을 둘러보는 데 넉넉잡아 2시간이 소요된다. 각양각색의 식물을 구경하면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공원 내 협재·쌍용굴에 들어가면 여름 한낮의 더위가 금세 날아간다. 다음달 6일까지 열리는 연꽃축제에서는 희귀한 100여종의 연꽃과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어른 1만 1000원.●중문색달해수욕장 서핑 끝내고 한잔 어때? 한림공원까지 왔으니 도보 5분 거리의 협재해수욕장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면 2.5㎞ 앞에 봉긋이 솟은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돌아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해변을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럽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수영 초보자도 물놀이하기 좋다. 소나무숲 야영도 가능하다. 비양도 서쪽으로 해가 질 때 인근 식당이나 카페의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감상하는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 된다. 제주의 협재해수욕장이 잔잔한 느낌을 준다면 서귀포의 중문색달해수욕장은 정반대의 매력이 있다. 중문관광단지 안에 위치한 이곳에는 길이 약 560m의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파도가 높아 서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파도에 몸을 맡기면 워터파크 파도풀보다 생생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수영 초보자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 해수욕을 마쳤다면 출구 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카페 ‘더 클리프’에 들러 보자. 클럽풍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곳에서 커피나 맥주 한잔을 시키면 외국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글 사진 제주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행가방 →잘 곳:힐링을 목적으로 제주 여행을 왔다면 한라산과 중문관광단지 중간쯤 위치한 위(WE)호텔을 이용해 볼 만하다. 프리미엄 헬스리조트를 표방하는 위호텔은 지하 2000m 화산암반수 온천이 나오는 곳에 지어져 수영장 등 시설과 식음료에 화산암반수를 사용한다. 중탄산나트륨 등이 다량 함유돼 있어 몸속 노폐물 제거와 피부 미용에 좋다는 게 호텔 측 설명이다. 몸을 물에 띄운 상태에서 전문가가 스트레칭과 지압 마사지를 해 주는 ‘해암하이드로’, 기능성 풀을 순환 이용하는 ‘아쿠아 서킷’ 등 물을 활용한 세러피 상품이 있다. 숲 해설사를 따라 제주 원시림을 산책하는 ‘힐링 포레스트’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064)730-1200. →맛집:제주산 우럭으로 조림을 잘하는 집이 있다. ‘고집돌우럭’의 전복우럭조림은 단단한 뼈와 근육이 특징인 제주산 우럭의 통통하고 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인 메뉴다. 푹 삶은 무와 우거지 시래기를 넣고 발갛게 조려 먹는 별식으로 제주 토박이들 사이에서 여름 보양식으로 통한다. 중문점과 제주공항점이 있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땅의 이야기 속으로 - 영암 전라남도농업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땅의 이야기 속으로 - 영암 전라남도농업박물관

    “땅을 밟구 다니니까 땅을 우섭게들 여기지? 땅처럼 응과(應果)가 분명헌 게 무어냐? 하눌은 차라리 못 믿을 때두 많다. 그러나 힘들이는 사람에겐 힘들이는 만큼 땅은 반드시 후헌 보답을 주시는 거다.” <이태준, 돌다리, 1943> 일제강점기 시절이나 광복 이후, 아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라를 통째로 들었다 놓았다하는 것은 땅이다. 지금에서야 재산으로서의 땅, 자본으로서의 땅, 욕망과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땅이 되어버려 대한민국을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들어 버린 야속한 땅이지만 한때는 우리 민족의 삶을 튼튼히 지탱해준 생명으로서의 고마운 땅이었던 적도 있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가 담겨 있는, 쇠똥 내음 가득한 땅의 역사가 잘 담겨 있는 박물관이 있다. 영암에 위치한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이다. 으레 지역 박물관 수준이 그저 그런 정도이겠거니 짐작하며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을 방문한다면 큰 코 여러 번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 기실 그동안 정치적 이해에 얽히어 만들어졌던 전국 방방곡곡의 숱한 박물관들, 사실 박물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그런 박물관들과는 애초부터 결이 사뭇 다른 곳이 바로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이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우선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은 규모부터 남다르다. 3만 6,922m²에 달하는 광대한 시설부지에 건물면적이 6,052㎡, 전시면적은 2,423㎡에 이르니 말 그대로 단연 국내 최대 농업박물관이라는 이름표를 걸어줄만하다. 여기에 더해 7,500여점이 넘는 남도의 희귀한 전통 농기구를 비롯한 민속 생활유물 및 중국 농기구 등도 소장되어 있기에 전시품 수준으로만 보아도 단연 으뜸 수준을 자랑한다. 박물관 구역은 크게 농경문화관, 남도생활민속관, 쌀문화관, 야외전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농경문화관은 박물관 개관 당시부터 설치된 곳으로 선사시대의 농기구부터 각종 농경 유물을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남도생활민속관은 남도민의 전통 생활상과 민속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전형적인 남도의 마을과 가옥 모형을 옮겨 놓은 곳이다. 또한 쌀문화관의 경우 우리 겨레와 함께 한 쌀 농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고 체험 중심의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4년 6월 9일 신축 개관한 쌀주제 전시공간으로 찻집, 먹을거리 장터, 혼례청 등으로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많다. 마지막으로 야외전시장에는 민속자료인 석장승 20기를 비롯하여 물레방아, 통방아, 디딜방아, 전통 초가삼간 등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농촌 분위기를 그대로 자아내고 있다. 이 외에도 전라남도농업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전통놀이인 그네, 널뛰기, 투호, 윷놀이, 줄다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토끼·닭·오리·염소·진돗개 등 가축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작은 동물원도 갖추어져 있다. <전라남도농업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생각보다 훨씬 유익한 곳이다. 꼭 가 보길 권유한다. 2. 누구와 함께? - 아이들과 함께 방학 체험으로는 제대로인 공간이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녹색로 653-11 - 목포역에서 300번, 500번, 700번 버스 4. 감탄하는 점은? - 모든 것에 대하여. 모처럼 만나는 박물관다운 박물관.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영암에 위치하다 보니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야외전시장에 있는 농촌의 모습.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낙지와 육회 ‘영빈관’, ‘수궁한정식’, 닭백숙 ‘월출산이야기’, 콩나물해장국 ‘구림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www.jam.go.kr/web?site_id=19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월출산 국립공원, 왕인박사 유적지, 도갑사, 국립나주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우리네 삶의 중심이었던 농업에 대한 완벽한 스토리텔링 장소. 각종 체험행사도 다양하여 쥐불놀이,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등과 같은 전통 놀이 경험도 가능한 곳이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에어비앤비, ‘부산 아트 투더’ 등 부산 트립 7월 신규 론칭

    에어비앤비, ‘부산 아트 투더’ 등 부산 트립 7월 신규 론칭

    에어비앤비는 ‘부산 아트 투어’ 트립 등 부산을 포함한 국내 전역에 트립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에어비앤비 트립은 열정, 관심 등을 토대로 특별한 경험 여행을 공유하는 서비스로, 현재 전 세계 180여개 도시에서 14,0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 한국은 2016년 11월 서울, 2018년 3월 제주, 7월 부산에 잇달아 런칭했다. 이제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어느 도시에서건 트립 호스팅을 신청할 수 있어, 앞으로 전국권으로 트립 서비스가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서울 200여 개, 제주도 20여 개 트립이 운영 중이며, 부산에서는 출시 시점에 20개 이상 트립을 오픈했다. 김은지 에어비앤비 코리아 컨트리 매니저는 “에어비앤비 트립은 외국인에게는 현지인을 만나서 하는 독특한 여행경험을 제공하고 내국인에게는 자신의 취향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동네를 여행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관광문화 창출에 일조한다”며 “또한 호스트들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본인의 시간과 열정을 공유하면서 마이크로창업의 기회를 갖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트립은 식음료, 스포츠, 음악, 자연, 웰빙, 예술,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에어비앤비의 서비스다. 부산은 옛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매력적인 항구도시로 다양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색다른 ‘마법 같은 여행’을 체험하며 부산 현지인들의 삶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부산 트립은 발효 전문가, 일식 셰프, 섬유 디자이너, 야간 산행 마니아, 가곡 및 가야금 전공자와 같은 독특한 호스트들이 특별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구수한 막걸리 만들기, 예술 작품과도 같은 김밥 만들기, 현대 미술 갤러리 둘러보기, 야간 하이킹, 가곡 및 가야금 배우기 등을 통해 게스트들은 부산에서 지루할 틈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산에서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에어비앤비 주요 트립을 살펴보면, 먼저 ‘부산에서 즐기는 막걸리’ 트립은 발효 전문가인 호스트에게 막걸리의 역사와 제조 방법에 대해 배우고, 막걸리를 직접 만들고 이를 전통 안주와 곁들여 마셔볼 수 있는 트립이다. 부산의 멋진 향취가 담긴 막걸리를 직접 만들고, 테이스팅하며 유쾌한 시간을 즐겨보자. 호스트가 만든 작은 막걸리 한 병이 제공된다. ‘아트 김밥 만들기’ 트립은 일본에서 10년간의 셰프 생활을 해온 호스트와 함께 예술적인 매력이 풍기는 멋진 김밥을 만들어보는 트립이다. 고기나 시금치, 햄 등의 일반적인 재료들로 꽃이나 동물 모양의 특별한 예술 작품과도 같은 김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부산 아트 투어’ 트립은 섬유 디자이너인 부산 토박이 호스트와 부산의 현대 미술 갤러리를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유명하고 전도 유망한 아티스트들의 최신 미술 작품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갤러리를 둘러본 뒤, 부산의 역사가 담긴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도자 예술이 매력적인 유니크한 카페를 경험한다. ‘황령산에서 즐기는 밤 하이킹’은 10년간 야간 산행을 해온 호스트와 함께 부산의 황령산을 하이킹하는 트립. 도시에서 벗어나 상쾌한 산 공기를 마시며 일상의 지루함을 잠시 잊어볼 것.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부산 야경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부산에서 배우는 가곡과 가야금’ 트립은 가곡과 가야금을 전공한 호스트에게 가야금의 반주에 맞춰 가곡을 부르는 방법과 가야금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가곡을 부르고 가야금을 연주해보며 한국 전통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보자.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새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새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과거길 한양길, 조령길 진사길“ 예부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3갈래로 나뉜다. 좌로(左路)는 추풍령 고갯길, 우로(右路)는 죽령 고갯길, 그리고 중로(中路)가 문경새재라 불리는 조령(鳥嶺) 고갯길이다. 이 중에서 가문의 명운을 걸고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 지역 선비들이 일부러라도 넘어가야 하는 고개는 바로 문경에 위치한 조령이었다. 이유인즉슨 간단하다. 추풍령으로 길을 넘으면 과거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고, 죽령으로 건너가면 과거에서 죽죽 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조령, 즉 문경새재를 넘어가면 ‘귀로 경사소식을 듣게 된다.’라는 ‘문경(聞慶)’의 의미가 청운의 꿈을 품은 과거 응시자들에게는 그리도 크게 와닿으리라. 소백산맥 중에서 1,017m 높이의 조령산을 넘어가는 길목인 문경새재는 조령(鳥嶺)이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불러 ‘새재’라고 부른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한 번은 쉬어야만 넘어간다는 고갯길, 옛길의 향수가 지금도 남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문경새재로 가 보자.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에 맞닿아 있는 백두대간의 조령산은 예나 지금이나 험한 고갯길로 유명하다. 실제 해발 1,017m에 불과하다하지만 산길의 험준함은 사람과 물산의 교류마저 잘라 놓았다. 하기에 문경새재는 지금도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이기도 한 이유다. 여기에 더 나아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문경새재는 사연도 많다. 후삼국 시절 견훤과 왕건이 이곳에서 합을 겨루었고, 고구려 장수왕도 딱 이곳에 막히어 신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적의 한양길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로 적격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주를 선택한 신립 장군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두고두고 비웃기도 하였다. 여하튼 문경새재는 그 높이와 험준함으로 유명해졌지만 반대로 교통이 수월치못한 시절에는 과거길이나 보부상들 이외에는 이 고갯길을 굳이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새재 주변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 등은 지금도 천혜 자원을 잘 보존하고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문경새재에 남아있는 날의 유지(遺址)로는 봉수터, 성터, 각종 선정비, 공덕비 등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을 비롯하여 조곡관(鳥谷關), 조령관(鳥嶺關)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한국방송공사가 2000년 2월에 건립한 오픈세트장이 꾸준한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70,000㎡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궐내각사, 양반집 등 103동, 초가집 22동과 기와집 5동 등 총 130동의 세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문경새재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는 또다른 볼거리도 제공한다. <문경새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로 산세가 수려하다.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과 함께 천천히 옛길을 걸어보자. 3. 가는 방법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 / 문경버스정류장에서 문경새로 가는 버스 30분 간격 4. 감탄하는 점은? - 드라마 촬영 현장, 녹음 우거진 옛길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단체 여행객들이 많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옛길 박물관, 드라마 촬영현장, 주흘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한우등심 ‘대흥식육점’, 고추장 삼겹살 ‘문경식당’, 옛날영양돌솥쌈밥, 진남매운탕, 삼겹살 ‘문경약돌돼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www.gbmg.go.kr/tour/contents.do?mId=010101010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옛길박물관, 문경자연생태박물관, 문경도자기박물관, 문경석탄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문경새재는 접근이 쉽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곳이다. 드라마세트장 관람을 포함하여 한나절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우거진 녹음과 계곡이 있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휠체어 타고도 고향 찾았는데…충청의 거목 잃었다”

    부여에 분향소…주민 발길 줄이어 “2인자의 삶, 충청의 족쇄” 평가도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과 충청 지역 주민들은 “큰 인물을 잃었다”며 안타까움과 함께 애도를 표했다. JP가 태어난 부여군 규암면 외리2구의 이장 이일건(62)씨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던 80대에도 휠체어를 타고 부여 행사에 참석할 만큼 고향을 사랑했다”면서 “마을에 오면 금일봉을 내놓거나 동답(洞畓·마을 공동 논)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1987년 김 전 총리가 창당한 신민주공화당 후보가 선거에 나오면 부여에서 90% 이상 지지율이 나왔다”며 “그러면 득표율이 전국 1등이라며 당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었는데 김 전 총리 부부가 당 간부들을 데리고 참석했다”고 했다. 이 마을에는 아직 김 전 총리의 생가가 있다. 이씨는 “김 전 총리가 생가에 공원을 만들려다가 당시 소유주가 팔지 않아 무산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불릴 때 부여에서는 김 전 총리를 ‘김종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최근 들어 ‘JP가 고향에 한 게 뭐가 있느냐’고 꼬집는 사람도 있지만 평가는 대부분 호의적이다. 부여 토박이 이재만(59)씨는 “지금 와서 그러지만 숙원사업 해결에 JP의 공이 많다”며 “정치적 평가야 엇갈릴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어쨌든 큰 인물”이라고 했다. 부여군은 부여중학교 내 군민체육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오는 27일 발인이 끝날 때까지 운영한다. 이날도 분향소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JP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로 있을 때 부여군수를 지낸 유병돈씨는 “한 달 전에 자택을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더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박정현(더불어민주당) 부여군수 당선자는 “부여군민은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충청 지역 정치권도 일제히 애도했다. 김 전 총리는 충청권 기반의 자민련을 창당하며 ‘충청의 맹주’로 불렸다. 양승조 충남지사 당선자는 “제2인자라는 삶이 충청에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의 별세를 도민과 함께 애도한다”고 밝혔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수색역을 철도물류 중심 육성…은평을 통일시대 아이콘으로”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수색역을 철도물류 중심 육성…은평을 통일시대 아이콘으로”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당선자는 24일 “남북화해 시대를 맞아 은평구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됐다”면서 “은평구가 통일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게 발전 계획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 당선자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수색역은 서울의 관문이며 공항철도, 지하철 6호선과 경의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대북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라면서 “수색역을 철도 물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여성 후보 간의 경쟁으로 주목받았던 은평구에서 66.6%의 득표율을 기록, 홍인정 자유한국당 후보(23.2%)를 43.4% 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음은 일문일답.→당선 소감은. -은평구민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데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 50만 은평구민을 위해 제가 할 역할에 대해 어깨가 무겁다. 혼자가 아닌 은평구민과 함께 은평의 발전을 이뤄 나가도록 하겠다. →민주당 후보 공천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컷오프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소회가 남다를 듯한데.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4월 말 발표된 민주당 은평구청장 경선 후보군에서 제외돼 재심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지면서 1, 2차 경선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오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구의원 시절에는 지역을 너무 다닌다고 해서 ‘발바리’, 시의원 시절에는 걸어다니면서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뜻으로 ‘뚜벅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저 스스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 뼘 더 크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당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더욱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련을 겪었던 게 오히려 앞으로 구정을 이끌어 가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은평구를 통일시대의 아이콘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은평구는 한반도의 평화 경제 교류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통일로는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1번 국도로 상징적인 곳이다. 남으로는 부산 동래, 북으로는 의주까지 양쪽으로 천리라고 해서 양천리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교통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경제적 교류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경제 환경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수색역은 항공·철도·도로가 합류하는 사통팔달 접근성을 갖춘 수도권 교통의 요충지이다. 중국, 러시아 등 대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수색역 부근에 북한의 경제상황 변화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국제질서 환경 등 관련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연구단지와 첨단물류기지 등을 조성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또 방송국과 미디어 센터가 몰려 있는 만큼 수색역 부근을 문화, 쇼핑, 상업 시설을 갖춘 제2의 타임스퀘어로 개발하겠다.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을 소개한다면. -선거과정에서 은평정책연구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뚜벅이 유세를 하면서 한 분 한 분 여러 의견을 들었다. 주민 의견들을 모아 연구소를 통해 정책화할 계획이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민도 깊다. 은평구는 인구는 50만명에 달하는데 일자리는 없고 예산도 부족한 도시다. 우선 공공형 일자리의 질을 높이도록 하겠다. 시설관리 공단 등에서 관리했던 일자리를 마을이나 사회적기업이 운영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로 만들 생각이다. 또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민선 5·6기 동안 추진된 다양한 일자리사업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업그레이드하도록 하겠다. →앞서 김우영 구청장이 추진했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는 어떻게 되는지. -분위기가 좋아지는 상황이라고 본다. 은평구에 유치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애초에는 진관동 기자촌에 설립하는 안을 요구했었는데 만약 어렵다면 제2, 제3의 대안도 내놓을 생각이다. 통일로에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유치하는 방안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취임 후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은평구는 마포구, 서대문구와 함께 3개 구 재활용 폐기물을 처리하는 ‘광역자원순환센터’를 은평구 진관동에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서북 3구가 폐기물 처리 협력체계를 구축하면서 은평구는 재활용 폐기물, 서대문은 음식물 쓰레기, 마포는 소각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역자원순환센터가 마치 혐오시설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주민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반지하로 건설 계획 중인 광역자원순환센터를 지하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 계획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만 잘 해결해 보도록 하겠다. 지상에는 축구장, 족구장, 배드민턴장 등을 설치해 주민 편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주민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각종 교육시설도 마련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분권에 대한 생각은. -문 대통령이 계속해서 지방자치분권을 강조해 온 만큼 많은 권한을 지방에 넘겨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방의회만 보더라도 현재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의회 감사담당 직원 인사 등을 집행부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현재 8대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3 또는 6대4까지로 늘려야 한다. →어떤 구청장이 되겠는가. -발로 뛰는 구청장이 되겠다. 제가 구청장이 되기까지 지켜주신 분들이 구민이다.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주민의 의견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청장이 되겠다. 민주당에 압도적인 표를 주셨지만 자만하지 않고 구민만 바라보고 구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김미경 당선자는 서울시의회 여성 첫 도시계획관리위원장…추진력 뛰어나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당선자는 6·13 지방선거에서 반전드라마를 쓴 주인공이다. 김 당선자는 지역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음에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컷오프 대상으로 분류돼 경선조차 치르지 못할 뻔했다. 불공정 논란이 일었고 결국 중앙당이 재심을 받아들였다. 1~2차 경선에서 높은 득표율로 본선 티켓을 거머쥔 끝에 구청장에 당선됐다. 김 당선자는 오히려 “스스로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김 당선자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수색으로 전학 와 45년을 은평구에서 산 토박이다. 누구보다 은평구 지역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2003년 은평구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김 당선자는 “1998년 아버지가 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돈선거의 민낯을 보며 불합리한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면서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 이 같은 문제점들을 상당수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이후 5대 은평구의원과 8~9대 서울시의원을 지냈다. 서울시의원으로 서울시의회에서는 여성 최초로 도시계획관리위원장을 맡았다. 도시계획관리위원장을 맡을 당시 수색역 개발을 위한 서북권사업과를 만드는 등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에는 서울시의회 민주당 대변인으로 당시 오세훈 시장에 맞서 학교 무상급식을 위해 싸웠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서울시민캠프 상임대표, 19대 대선에서는 서울시캠프 보훈특위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적 경험을 넓혀 왔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사람덜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오?...(중략)...가난하고 무식헌 것덜이 믿고의지헐디웂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쳐웂애고 그 전답 노놔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이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태백산맥 1권, 248p) 소설 태백산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의 하나다. 김범우 집안의 가복(家僕)이자 일자 무식꾼인 문서방은 공산당과 빨갱이를 ‘대놓고’ 말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서조차도 빨갱이와 공산당을 ‘대놓고’ 말하기 힘든 시절이었던 1983년 9월, 소설 태백산맥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4년간의 자료조사와 6년간의 집필 끝에 원고지16,500매에 달하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시대와 이념의 금기(禁忌)를 정면으로 다룬다.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써 외면하였던 우리 현대사의 한 면을 과감히 드러낸 작품,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으로 가 보자. 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은 이러하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 세력인 우익 군경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 와중에 좌익과 우익의 갈등은 심해지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많은 피해를 입는다. 더구나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안에 대한 소작인들의 반발은 날로 극심해진다. 이럴 즈음 1950년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좌익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고, 이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전쟁이 고착화되자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은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계속하지만, 군경의 진압 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지고 빨치산 대장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결국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바로 이러한 소설 태백산맥의 강렬한 주제와 메시지를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공간이 벌교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2008년 11월에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은 자리 선정도 제대로다. 소설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잣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벌교 제석산 끝자락에 터를 잡아 개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관은 소설 태백산맥이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산자락을 파내서 특이하게 설계된 건물로 세워졌다. 문학관은 총 1층과 2층으로 나뉘는 데, 연면적이 1,375.8㎡에 이르며 건축면적만으로는 979.7㎡에 달하는 넓이다. 이곳에는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 등 증여 작품을 포함하여 159건 719점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 태백산맥의 독자들에게는 작품의 깊이를 더더욱 음미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건물 내부는 총 6개의 마당으로 구역이 나뉘어지는 데, 첫째 마당에는 태백산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자료조사, 집필, 작품의 탄생을 알린다. 둘째 마당에는 16,500매에 달하는 작품의 육필 원고를 셋째 마당에는 작품을 둘러싼 이적성 시비와 논란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넷째 마당에는 작가 조정래의 문학 세계를 그리고 있다. 다섯째 마당에는 문학 사랑방이 있으며 여섯째 마당에는 작가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한 번은 방문해도 좋을. 2. 누구와 함께? - 태백산맥의 배경을 이룬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19. 벌교 버스터미널 지나자마자 좌회전(150M 지점) 4. 감탄하는 점은? - 태백산맥의 육필 원고와 치열한 작가의 고민의 흔적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작가의 육필 원고. 건물이 지닌 건축학적 아름다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벌교는 꼬막정식이 유명하다. 원조수라상꼬막정식, 외서댁 꼬막나라, 제석꼬막회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tbsm.boseong.go.kr/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낙안읍성, 보성 녹차밭, 순천만 정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의미가 있는 장소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장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소설의 재미를 뛰어 넘어 우리 민족 역사가 건너온 질곡의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옛길 복원하고 지역경제 다시 세워야”

    “옛길 복원하고 지역경제 다시 세워야”

    주월리 백사장 고려 왕실 휴양지 적벽·감악산 연계 관광지화 필요“남북 왕래가 자유롭게 되면 예전에 번화했던 문산, 장파리, 장좌리, 고랑포, 적성, 대광리 등등이 다시 주목받을 것입니다. 첫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배들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던 6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그래도 당시 곳곳에 얽힌 옛이야기를 모두 살리면서 100년, 200년 먹거리 고장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19일 만난 9대째 적성 토박이로 살아온 이종필(78) 민주평통자문회의 파주시협의회 고문의 말이다. 그는 1987년부터 적성면장을 8년간 지내고 파주시의원을 두 번 지냈다. 이 고문은 두지포와 고랑포의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모습을 이렇게 기억한다. “두지포에는 늘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었어요. 일본 강점기 때는 더 많았다고 하는데, 물류 이동이 활발하다 보니 상업도 지금보다 활발했습니다. 적성 읍내도 지금보다 더 붐볐어요.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도 안 걸렸던 고랑포는 더 별천지였고요. 마치 꿈을 꿨던 것처럼 지금은 적막만 남았네요.” 남북 화해 시대를 맞아 이 고문의 기대도 크다. 그는 “옛날에 특정 지역이 번성했던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옛길의 복원이 우선 이뤄지고 몰락하다시피 한 지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주상절리 적벽이 신비로운 임진강을 관광지화하고 옛 군사적 요충지였던 중성산과 감악산을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려 왕실의 여름철 휴양지로 알려진 주월리 백사장은 맑은 바닷가 못지않다”며 옛날을 그리워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기북부도 민주당 휩쓸어

    경기북부도 민주당 휩쓸어

    북한과 가까워 보수 성향이 강한 경기북부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였다.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지방선거 개표 결과를 종합하면 민주당 후보들은 경기북부 10개 시·군 중 접경 지역인 연천과 농촌인 가평을 뺀 모든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렸다. 연천과 가평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은 막판까지 오차범위 안에서 한국당 후보들을 맹추격하는 등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포천 등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조차 민주당 후보가 압승했다. 포천시장 선거에서는 1995년 지방선거 도입 이후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인 박윤국 전 시장이 당선돼 4선을 달렸다. 지난 해 4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속에 치러진 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이다. 박 전 시장은 그동안 포천에서 보수정당 또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또 다른 접경 지역인 파주에서도 민주당 최종환 후보가 토박이 공무원 출신 박재홍 한국당 후보를 2배 이상 표 차로 눌렀다.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한국당에 입당한 김성기 가평군수는 민주당 소속 안병용 의정부시장과 함께 3선 도전에 성공했다. 안 시장은 경기북부를 관할하는 경기도 행정2부지사 출신 한국당 김동근 후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주변의 예측을 깨고 2배 이상 넉넉한 표 차로 승리했다. 전·현직 시장 간 대리전 양상을 보인 구리, 남양주시장 선거에서는 한국당 소속 현직 시장들이 모두 패배해 향후 주요 지역 현안을 두고 당선자 측과 큰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박영순 전 구리시장은 자신의 야심작인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 사업을 사실상 백지화한 백경현 후임 시장을 겨냥해 이번엔 안승남 당선자 지원에 앞장을 섰다. 이석우 전 남양주시장은 지난 5월 말, 한 달 남은 시장직을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손수 영입한 예창근 전 부시장의 당선을 도왔으나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경기북부 지역 34석을 쓸어담았다.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재개된 이후 처음이다.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인 한국당 박종희 전 국회의원은 “이번 지방선거는 야당에서 문재인 정부를 합리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상투적·악의적으로 발목 잡는 당으로 유권자들에게 비쳐지면서 ‘야당 심판 선거’가 됐다”며 패배 원인을 야당 내부에서 우선 찾았다.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통일 기대감이 높아져 지난 해 5월 대선 때 승리한 경기북부 5개 시·군에서조차 한국당이 무릎을 꿇었고 여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길 수 있는 선거를 공천 후유증으로 내줬다”고 분석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포동(南浦洞) 전성시대 - 부산 자갈치 시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포동(南浦洞) 전성시대 - 부산 자갈치 시장

    “저녁때가 가까워서 부둣가로 나갔다. 거기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목노상에서 대폿술을 한 잔 마시기 위함이었다....(중략)...야, 바다란 아무 때 봐도 좋다. 가까운 눈앞에 갈매기란 놈들이 껑충인다. 야, 멋들어졌다.” < 황순원, 곡예사, 1952> 부산 남포동에 위치한 자갈치 시장은 한 마디로 극적인 공간이다.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거쳐 온 우리 민족의 기막히고도 고단한 삶의 궤적이 지금도 전설처럼 흘러 내려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다보니 일반인들은 물론 예술가들에게도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공간이 또한 자갈치 시장이기도 하다. 소설가 황순원의 ‘곡예사’(1952)에서는 곡예를 펼치듯 삶을 살아가는 지친 피난민의 인생에 유일한 휴식 공간으로,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1955)에서는 자갈치 시장은 가난한 예술인들의 마지막 낭만이 서린 곳으로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소설뿐만이 아니다. 영화에서도 자갈치 시장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이다. 영화 ‘친구’(2001)에서는 주인공 준석이가 친구들과 함께 자갈치 시장 골목을 가로질러 달렸고, 최근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블랙팬서’(2018)의 주인공 트찰라도 이 거리를 힘껏 질주하였다. 누구든 쉼 없이 달리고, 달려야 할 것 같은 삶의 열기가 가득한 곳, 부산의 자갈치시장이다. 자갈치 시장은 현재 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을 가로지르는 수산물 전문 시장으로 영도대교 근처에 위치한 남포동 건어물 시장과 충무동의 공동 어시장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시장과 더불어 남포동 자갈치 시장은 피난민들이 모여 들던 곳으로 각자의 생계를 위해 날품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지게꾼으로, 미군들의 군수품을 몰래 빼돌려 팔거나, 뻥튀기나 국화빵, 밀면 등을 노포에서 판매하였고 더구나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원도심권 최대 규모, 최대 인원이 밀집한 생활 공간이기도 하였다. 자갈치란 이름의 유래는 이곳이 원래 자갈밭이었다는 설과 더불어 자갈치라는 활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자갈밭이라는 공간성에 어원의 의미를 두고 있다. 원래 이곳은 1924년 8월에 출발한 남빈시장(南賓市場)이 있던 지역으로 대규모 시장을 만들기 위해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는 1932년 12월 인근 자갈밭 부지 101,963.4㎡를 매축하면서부터이다. 광복 이후에는 연안 여객선의 정박 공간과 더불어 연근해 어선들의 수산물 집하장, 노점상들의 활어 판매와 더불어 갖가지 생필품 가게들이 들어섰고 이즈음에 들어 현재 자갈치 시장의 형태를 거의 갖추게 된다. 본격적으로 시장 이름에 자갈치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한 때는 1974년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자갈치라는 지역명은 있었으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자갈치 어패류 처리장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이후 자갈치시장은 1986년에는 부산어패류처리장이라는 이름으로, 2006년부터는 부산종합수산물유통센터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갈았지만, 여전히 사람들 입에는 현재까지 자갈치 시장이라는 명찰 하나로 정리되어 있다. 지금의 자갈치 시장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현대식’ 자갈치 시장은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이며, 전용면적이 7,243m²에 달하여 480개가 넘는 점포가 성업 중이다. 한편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옛날’ 자갈치 시장에는 생선구이집과 더불어 대구, 청어, 조개, 문어, 해조류, 장어 등의 활어를 대야에 가득 담아 노점에서 판매하는 난전 주변에는 광복 후 그때 어느 때인 듯 지금도 여전히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부산이라는 지리적 성격이 가장 선명한 공간이자 해방 이후부터 전후 피난민들의 지독했던 삶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는 부산 최대 어패류 시장인 자갈치 시장. 이곳에서 우리는 어쩌면 잃어버렸던 생의 감각을 다시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갈치시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부산이라는 특성이 가장 잘 투영된 곳. 부산 구도심의 원형이다. 국제시장과 더불어 부산 중구 여행의 핵심. 2. 누구와 함께? - 부모님과 함께, 초등학생 어린 자녀라면 수족관보다 나은 자연학습. 3. 가는 방법은? - 지하철이 편하다. 1호선 : 자갈치역 10번 출구 / 남포동역 7번, 1번 출구 - 부산광역시 중구 자갈치해안로 52 4. 감탄하는 점은? - 삶의 활력. 생각보다 넓은 시장. 오래된 생선구이집과 선창의 노포 주점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부산을 상징하는 곳. 여전히 부산에서는 가장 복잡한 시장 중의 하나. 6. 꼭 봐야할 공간은? - 노전에 위치한 오래된 선창의 선술집. 생선구이 백반 가게들. 해방 이후의 시장의 원형이 남아 있는 옛 시장 거리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토박이 꼼장어집 ‘동성꼼장어’, 이미 방송에서 유명한 ‘남해자연산횟집’, 돼지불백의 진미 ‘포항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jagalchimarket.bisco.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국제시장, 용두산 공원, 차이나타운, 송도해수욕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자갈치시장은 광복 이후 한국 전쟁 전후 시간의 흔적이 가장 많이 새겨진 곳. 50년대와 60년대 향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부망천’에도… 인천 투표율 또 전국 꼴찌

    인천시가 6·13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중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투표 마감 결과 잠정 투표율은 55.3%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발언 때문에 인천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을 내기도 했다. 정태옥 전 한국당 대변인의 인천 비하 발언을 표로 심판하겠다는 여론이 들끓어서다. 그러나 이달 8∼9일 사전 투표 때보다도 인천 투표율 순위가 더 하락한 점으로 미뤄 오히려 투표율을 떨어뜨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인천 사전 투표율은 17.58%로, 대구·부산·경기에 이어 네 번째에서 결국 꼴찌로 주저앉았다. 특히 정 의원의 비하 발언 때 직접 언급된 인천 중구와 남구 투표율이 인천 다른 지역보다 더 낮았다. 남구 투표율은 51.9%로 인천 10개 군·구 중 꼴찌를 달렸고, 중구 투표율은 54.4%로 인천에서 7위를 기록했다. 정 전 대변인은 앞서 7일 모 방송에서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 잘 살다가 이혼 한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나 이런 쪽으로 간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켜 투표율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 투표율은 2008년 18대 총선 땐 15위(42.5%),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13위(50.9%), 2012년 18대 대선 땐 14위(74.0%)를 기록했다. 2014년 6회 지방선거 땐 15위(53.7%), 2016년 20대 총선은 14위(55.6%), 2017년 19대 대선 땐 13위(75.6%)에 그쳤다. 전체 유권자 중 인천에서 태어난 토박이 비율이 낮고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구 비중이 높은 인구통계학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는 풀이도 있다. 거주 지역에 대한 연대감과 귀속감이 떨어지고 지역 정체성도 옅은 탓에 내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포토] ‘참기름녀’ 서리나, 미끄러지는 섹시

    [포토] ‘참기름녀’ 서리나, 미끄러지는 섹시

    ‘참기름녀’ 서리나가 고향집 나들이를 했다. 서리나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프리마 호텔에서 열린 ‘2018 김준호 클래식’에 초대받아 포토월을 장식했다. 그는 2016년 초대 대회에서 비키니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피트니스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자신의 인지도는 물론 스타성을 부각시킨 대회다. 서리나는 “김준호 클래식은 고향 같은 곳이다. 선배 동료와 트레이너는 물론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 기뻤다. 참가 선수들의 수준도 전보다 몰라보게 좋아져 더욱 좋았다. 계속 발전하는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덕담을 건넸다. 이날 포토월에서 누드톤의 미니 드레스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특히 밝은 미소와 우윳빛 뽀얀 피부가 드레스와 어우러지며 여신의 자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탄력적이면서 동시에 눈부신 뽀얀 피부로 인해 ‘참기름녀’라는 애칭을 갖게 된 연유를 확인시키는 듯 했다. 서리나는 현재 연기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로 연기 신고식을 치르기도 한 그는 “모델과 연기자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 앞으로 나의 과제는 연기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토박이인 서리나는 최근 드론 국가자격증 필기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의 바다와 하늘이 좋아 드론을 시작하게 됐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해 너무 기쁘다. 최종시험도 잘 치러서 꼭 국가자격증을 따겠다. 다음에는 ‘드론여신’이라고 불리고 싶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스포츠서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토박이도 몰랐던 ‘진짜 서울’

    서울 토박이도 몰랐던 ‘진짜 서울’

    서울선언/김시덕 지음/열린책들/416쪽/1만 8000원내가 서울 사대문 안, 이른바 ‘진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좋아한 것은 그곳이 잘 변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고향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인데, 그건 아마 저 변화무쌍한 땅에서 무슨 추억과 정체성을 찾느냐는 것일 것이다. 그 와중에 경복궁을 둘러싼 지역은 비교적 옛 풍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됐다. 그러나 알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곳이 변하지 않는 곳이 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의 흔적을 보호하기 위한 편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울은 그보다 까마득히 크다. 그리고 이 책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지금도 살아 있는 서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진짜 서울과 그 밖을 나누려는 생각이 다섯 가지 선입견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조선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과 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라고. 책 제목에 걸맞게 그는 ‘선언’한다.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 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옛 책이 동일하게 귀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속의 모든 공간과 사람도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로 살펴보고 있는 지역은 1936년과 1963년 이후 ‘서울’이라고 불리게 된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그가 살았던 지역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보통 서울을 주제로 한 책이 보여준 지역과는 크게 다르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것의 근본부터 뒤집고 의문을 제기하는 그의 글은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또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문헌학자인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울’을 넘어서는 대서울의 곳곳을 ‘무수히 많은 책이 꽂힌 도서관’에 비유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부수고 잊혀졌거나 왜곡된 것을 밝히는 그의 “서울 순례” 덕에 서울이라는 도시는 좀더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근사한 문화재의 위용을 자랑하는 사진이 아니라 평범한 동네를 찍은 수많은 도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책 또한 “아직 제각각의 정체성이 강하고 서로 간의 관계성이 긴밀하지 않은 서울”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임을 강조하며, 현재의 서울을 사는 우리 개개인이 자신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편견을 깬 너머에 “진짜 서울”이 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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