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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톈안먼 21주년… 끝나지않은 진상규명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공산당 지도부는 우리가 지쳐 쓰러지거나 모두 죽으면 문제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진짜로 믿는가?” 톈안먼(天安門) 사태 21주년(6월4일)을 앞두고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이 또다시 중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도 소리없는 메아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어머니들은 어김없이 2일 중국 지도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는 회원 128명 명의로 미국 뉴욕의 인권단체를 통해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진상규명을 원하는 우리의 요구를 묵살해 왔다.”고 비난한 뒤 대화 수락과 학살사태에 대한 조사를 거듭 촉구했다. 어머니들은 또 “중국 정부는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주저앉히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나무는 죽어도 그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는 법”이라고 진상 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아직도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진상과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 관영 신화통신의 국내뉴스부 주임이었던 장완수(張萬舒)는 지난해 펴낸 책에서 정부의 강제진압이 진행된 1989년 6월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민간인 713명, 군인 14명 등 모두 727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4일 밤 희생자 추모를 위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린다. 홍콩 시민들은 1990년 이후 매년 6월4일 같은 장소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으며 2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무려 15만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stinger@seoul.co.kr
  • 달라이 라마-중국인 트위터 스킨십 60분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좇는 이른바 ‘실사구시 접근법’을 배워야 티베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충고했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단문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인 트위터를 활용해 중국인들과 대화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달라이 라마는 “한족과 티베트인 사이의 갈등은 인민들 때문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덩샤오핑의 실사구시적 접근법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서 “후 전 총서기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달라이 라마는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후 전 총서기의 실사구시적 통치 스타일을 찬양하는 글을 올린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원 총리의 글은 후 전 총서기의 현장중심적 업무스타일을 공인한 것”이라고 말했다.개혁주의자였던 후 전 총서기는 학생시위에 대한 온건한 대처 탓에 지난 1987년 당시 덩샤오핑에 의해 총서기직에서 밀려난 뒤 심장병을 앓다 1989년 4월15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했다. 달라이 라마의 트위터 대화는 21일 밤 8시부터 9시까지 1시간 정도 진행됐으며, 중국의 티베트 및 신장위구르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저명작가 왕리슝(王力雄)의 계정을 통해 생중계됐다. 달라이 라마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중국인들과 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stinger@seoul.co.kr
  • 中, 美와 인권대화 앞두고 목사 체포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지하교회’를 이끌던 목사가 공안 기관에 체포됐다. 오는 13일~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중 인권대화에서 이 문제를 비롯, 중국내 인권침해 실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광저우에서 량런(良人)이라는 이름의 지하교회를 운영하던 왕다오(王島) 목사가 지난 8일 자택에서 붙잡혔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1일 왕 목사의 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경찰은 왕 목사의 컴퓨터와 여행 증명서, 통장 등을 압수했다. 함께 체포됐다 풀려난 왕 목사의 부인은 “경찰이 ‘사회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대중집회를 열었다.’는 내용의 범죄기록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난 1989년 톈안먼(天安門) 학생시위에 참여했다가 1년 정도 수감되기도 했던 왕 목사는 일요일마다 광저우의 한 공원에서 교인 10여명과 함께 야외 목회를 주재해왔으며 최근 3개월동안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됐었다. 특히 왕 목사의 체포를 계기로 2년 동안 중단됐다가 다시 열릴 미·중 인권대화도 순탄치 않을 것 같다. 미 국무부의 제임스 크롤리 대변인도 지난달 말 “현지 변호사들의 문제와 종교상 권리, 인권운동가, 인터넷검열 문제 등이 논의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은 대표적 반체제인사 류샤오보(劉曉波) 문제와 구글사태 등도 핵심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stinger@seoul.co.kr
  • 中 ‘칭하이’ 희생자 추모 물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칭하이(靑海)성 위수(玉樹)현 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국 애도일’로 정해진 21일 중국 각지에서는 하루 종일 엄숙한 분위기 속에 추모행사가 이어졌다. 새벽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조기게양식을 시작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비롯한 전국의 공공기관과 해외 공관은 조기를 내걸고 2239명의 사망·실종자를 애도했다. 칭하이성에서는 전체 주민이 오전 10시를 기해 3분간 사이렌 소리와 함께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의식을 거행했다.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위수현 제구(結古)진에서도 잠시 구조와 복구의 손길을 멈추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은 회의에 앞서 기립해 1분간 눈을 감고 희생자들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중국의 모든 신문과 인터넷 포털사이트도 지면과 화면을 컬러 대신 흑백으로 바꿔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중국중앙방송(CCTV) 등 모든 방송은 드라마를 비롯한 오락프로그램을 일절 방영하지 않고 전국적인 추모 열기와 ‘7일간의 구조 드라마’를 전하는 데 힘썼다. 전날 밤 CCTV가 주재한 특별 모금방송에서는 21억 7500만위안(약 3545억원)의 성금이 쇄도해 2008년 쓰촨(四川)대지진 당시 모금액인 15억 1400만위안을 훌쩍 넘겼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 18일 현장을 시찰한 후 주석이 어깨를 껴안아 위로했던 티베트 소녀가 1만여명의 부상자 가운데 처음으로 베이징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게 됐고, 피해 지역 어린이 15명과 교사 2명이 베이징에서 3개월간 머물며 지진으로 입은 상처를 보듬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전했다. 한편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당국이 지진현장에서 열정적으로 구호작업을 벌이던 외지의 티베트 승려들에게 ‘철수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위수현은 전체 주민 10만여명의 95% 이상이 짱(藏·티베트)족이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고향과도 가까워 지진 발생 직후 수천명의 승려들이 찾아와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stinger@seoul.co.kr
  • 中 신좌파가 말하는 자본주의 위기

    미국은 쇠락한다. 그리고 중국은 떠오른다. 그렇게 되면 과연 무엇이 바뀔까.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헤게모니를 교체한 것만으로 마치 영생을 부여받은 듯 영원할 수 있을까.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리민치 지음, 류현 옮김, 돌베개 펴냄)은 덩샤오핑 이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는 개혁개방 정책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낸다.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자본 축적의 위기를 겪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음을 논증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에 이미 편입된 중국이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된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경제 발전을 지속할 경우 미국의 뒤를 이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리더 역할을 맡더라도 조만간 잉여 노동력이 고갈돼 임금 비용 및 세금 비용, 환경 비용이 상승하면서 자본 축적을 제약하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마오주의 시기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했지만 오히려 이 시기야말로 중국 인민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 성공 시기라고 역설한다. 나아가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역시 기나긴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사회 체제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조건이 진화, 발전함에 따라 어느 순간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리민치(李民騏)는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베이징대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하던 자유주의 지식인으로 반체제 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기회주의적인 지식인과 관료주의적 자본가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자본론’ 등 마르크스 저서를 통독한 뒤 좌파로 전향했다. 현재 미국 유타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애정을 담아 긍정적으로 중국의 오늘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외국인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슈퍼 차이나’ 8가지 키워드

    ‘슈퍼 차이나’ 8가지 키워드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이래로 중국은 이미 세계무대에서 군사, 경제, 외교, 문화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일상 소비재 시장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 달러보유국으로서 환율을 둘러싼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도 당당하다. 위안화 절상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중국’과 ‘경제’를 주제로 한 책들을 묶어봤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중국, 중국 내부에서 바라본 중국, 문화예술을 통해 읽는 중국 등 다양한 각도에서의 중국 읽기다. 이를 통해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에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를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안녕하시오. 나, 덩샤오핑이오. 내, 1997년 2월 그 세상을 떠나 여기 구름 위로 올라온 지 벌써 13년을 훌쩍 넘겼구려. 참, 눈부시게 발전했소. 공자 말씀처럼 후생가외(後生可畏)요,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이 맞는 말씀들이오. 후 주석 당신이 이 정도로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 일찍이 예상했소. ●10년간 100번 중국 방문해 연구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직후 암울하고 뒤숭숭하며 궁핍했던 1978년 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소. ‘부유해지는 것은 영예로운 일(致富光榮)’이라고 선언했고,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며 능력있는 사람 또는 지역부터 잘살도록 하자는 선부론(先富論)을 얘기하고 추진했소. 지금의 기틀을 내가 잡았다고 감히 자부하오. 한데 당신은 이를 넘어서서 공부론(共富論·공동부유론)으로 대륙 전체, 인민 전체가 함께 잘살자고 했지. 괘씸할 정도로 예쁘더구먼. 비록 ‘무늬만 사회주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인민들이 함께 생산력을 높이고, 그 생산물을 향유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和皆社會)는 마오쩌둥 주석 이후 변함없는 우리 사회주의 중국의 목표 아니겠소.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믿었지. 실사구시적인 업무 능력이며, 혹독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은 13억 인민의 중국을 이끌며 나의 개혁개방 정책을 완성시킬 적임자라고 확신했으니까. 이것이 일찌감치 당신을 차차기 후계자로 점찍어둔 이유였을 테고. 그래서 골치아픈 티베트자치구 당서기로 보낸 것 아니었겠소. 기억나시오? 1989년 티베트 사태 현장에서 덜렁 철모 하나 눌러쓰고 거리를 누비며 그토록 과감하게 유혈 진압을 감행하는 것을 보고 당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소. 비록 수백명의 티베트인을 학살했다는 오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지만 말이오. 우리 중국은 여전히 갈 길이 머오. 이번에 내가 갓 구한 따끈따끈한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어서 당신 손에 닿을지도 알 수 없는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이오. 아마 당신도 잘 알 것이오. 존 나이스비트(81)라고, 앨빈 토플러와 함께 세계 미래학의 양대 거두로 통하니 모를 리가 없겠소만. 그가 1982년에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미묘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포착, 분석해 펴낸 책 ‘메가트렌드’요. 106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데다 중국에서만 2000만부가 넘게 팔렸소. 그가 이번에는 중국을 제대로 해부했더구려. 아내 도리스 나이스비트와 함께 쓴 ‘메가트렌드 차이나’를 보니 꽤 정밀하게 분석하고 의미있는 변화의 흐름을 읽었다는 판단이 들더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 동안 중국을 100번 넘게 방문했고, 난카이(南開)대학교 교수이자 중국연구소까지 직접 차렸으니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드오. 일단 손에 쥐면 마지막 쪽까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면서도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라오. 그는 최근 30년 동안 진행했던 중국식 사회주의를 중국이 지금 슈퍼 파워를 휘두를 수 있는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소. 이 모든 출발점이 된 나를 당연히 책 곳곳에서 인용하며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중국인보다 중국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애정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중심이 된다고 하더군. 그리고 우리의 8가지 동력이자 접근 키워드로 ▲정신의 해방(解放思想) ▲하향식 지도와 상향식 참여의 균형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틀 ▲실사구시가 이끄는 성장 ▲미래의 문화를 선도할 예술과 학술의 힘 ▲세계 속의 중국, 중국 속의 세계 ▲자유와 공정성 ▲중국이 준비하는 미래 등을 꼽았소. 서방 언론의 악랄한 보도의 홍수 속에 빛나는 보석과 같은 탁견들이오. ●동북공정 언급 없어 아쉬워 다만 나이스비트가 대수롭지 않게 써놓은 마지막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나와 생각이 조금 달랐소. 이른바 ‘금지된 3티(T) 문제’요. 타이완(양안 문제), 티베트(분리자치 대응), 톈안먼 사태(인권 문제)는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중국이 글로벌 리더 국가로 설 수 있는지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오. 또 하나. 나이스비트는 역사를 뒤틀어 ‘하나의 중국’을 만들려는 시도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소만, 동북아 주변 국가와 문화 역사적으로 화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겠소. 부디 경제대국, 군사대국을 넘어 평화대국 중국을 만들기를 바라겠소. 아, 다음달 시작되는 상하이 엑스포를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지렛대로 삼으시오. 13억 인민들의 전진을 믿소. 또한 올해는 당신이 얘기한 샤오캉(小康·기초 의식주를 넘어 문화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구현해야 할 해이지 않소. 나도 여기에서 늘 당신네들을 굽어보겠소. ※30년 전 중국 개혁개방정책의 물꼬를 튼 덩샤오핑이 신간 ‘메가트렌드 차이나’(안기순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 1만 8800원)를 읽었다면 느낄 법한 소감을 후진타오 주석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톈안먼광장 마오쩌둥 초상화 봉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 초상화가 봉변을 당했다고 홍콩 일간 명보(明報)가 7일 보도했다. 청명절인 지난 5일 오후 톈안먼 성루 아래에 있던 한 남성이 갑자기 마오쩌둥 초상화(높이 6m, 너비 4.6m)를 향해 먹물 등으로 추정되는 오물을 투척했다. stinger@seoul.co.kr
  • 21C 슈퍼파워 중국을 해부한다

    21C 슈퍼파워 중국을 해부한다

    EBS TV ‘다큐10+’가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로 거론되는 중국을 심층취재한 ‘특별기획 중국’을 7일부터 4주 동안 매주 수요일 방영한다. ‘21세기, 세계를 바꾸는 중국의 힘’, ‘미국과 중국의 총성 없는 전쟁’, ‘중국식 자본주의의 탄생’, ‘덩샤오핑,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다’ 4편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중국은 지난 20여년간 지속적인 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죽의 장막’을 던져 버리고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눈길을 끄는 존재는 덩샤오핑이란 지도자다. 인구만 많은 가난한 사회주의국가에 불과했던 중국. 더구나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에도 중국 내 강경파들은 문화혁명을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내세워 사회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윤’과 ‘외국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였다. 집권 10년 만에 일어난 톈안먼사태로 인해 전면적인 반동의 분위기가 덮쳐 오기도 했지만, 덩샤오핑은 정치적 탄압과는 별개로 경제개혁만은 지속시킨다. 양감 있는 취재도 돋보인다. 톈안먼 사태를 보도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밥 우드러프가 아프리카, 브라질, 캄보디아 등을 돌면서 오늘날의 중국을 조명한다. 부작용도 있다. 이는 슈퍼파워 미국과 똑같은 모습이다. 독재정권이라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관여치 않는다. 중국의 이런 성장은 미국과의 갈등을 낳는다. 대표적인 것이 타이완 문제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타이완의 독자노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반면, 미국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오랜 우방관계임을 내세워 타이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국방,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은 끊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6년 타이완해협 사태, 1999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사태 등을 통해 갈등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자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슈퍼파워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중국은 아직 성장에 목마르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승자없는 e전쟁

    승자없는 e전쟁

    중국 정부가 사전 검열에 반대하며 홍콩 서버를 통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구글에 대해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검열 정책이 크게 부각되면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한마디로 어느 한쪽도 얻는 것 없는 ‘루즈-루즈(lose-lose)게임’이 돼 가는 형상이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구글이 중국 본토 검색 서비스 중단을 선언한 다음날인 23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등과 같은 검열 대상 단어를 입력하면 검색 자체가 안 되거나 검색 내용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중국 정부의 방화벽 때문이다. 당초 구글이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구글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보복을 우려, 구글과의 사업을 꺼리는 분위기다. 구글과 중국 시장 진출 초창기부터 손을 잡고 휴대전화 검색 및 지도 서비스를 제공해 온 중국 최대 이동통신 업체 차이나모바일은 곧 계약을 해지할 것으로 전해진다. 또 2위 업체인 차이나 유니콤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한 휴대전화 출시를 연기해 놓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광고 수입도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구글의 주가는 전날 대비 8.5%(1.5%) 하락한 주당 549달러를 기록했다. 구글은 본토 검색 서비스만을 중단했을 뿐 중국 내 기술은 물론 영업 관련 직원 규모를 예전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 중국 정부의 대응 수위가 낮아진 뒤 재기를 노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스테플튼 로이 전 주중 미국 대사는 “구글 측의 계산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검열 문제에 있어 구글이 중국을 굴복시킬 방법이 안 보인다.”며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결국 구글은 사전 검열을 피해, 정보 접근의 자유를 추구하겠다는 당초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의 인터넷 시장까지 놓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중국 정부의 승리로 보기도 어렵다. 구글의 이번 결정이 중국에 당장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인터넷 사전 검열로 인해 국경 없이 움직이는 정보의 흐름에서 중국은 소외되고, 결과적으로 국제 경제와의 연결 고리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자유로운 정보 교환을 막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국가 이미지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소프트 파워’ 확산에 공들이는 정부의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중국에서 인터넷 기업을 운영하는 빌 비숍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이번 결정은 중국 정부의 계획에 커다란 구멍을 낸 셈”이라고 지적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되살아나는 장쩌민 향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량후이(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또 다시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장 전 주석의 저서 두 권이 발간됐다고 모든 관영 언론이 25일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24일 저녁 종합뉴스 시간에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유력한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입성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 부주석의 후원자로 알려진 장 전 주석이 량후이를 앞두고 세력을 과시하는 양상이어서 주목된다. 중국에서는 은퇴한 정치지도자는 국경절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 장소나 뉴스 보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장 전 주석은 지난해 10월1일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나란히 서서 건국60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과시한 바 있다. stinger@seoul.co.kr
  • [박홍환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후진타오 트위터’ 비밀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트위터’에 이름을 올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마이크로 블로그)에 입성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인터넷사이트 런민왕(人民網)이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런민웨이보에 후 주석이 실명으로 계정을 개설했다고 22일 중경만보(重慶晩報)가 보도했다. 네티즌들이 확인한 개인프로필에는 후 주석의 공식 직함인 ‘중국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쓰여 있었다. 후 주석의 웨이보 개설 소문에 네티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현재 후 주석과 일종의 ‘친구맺기’를 한 네티즌이 1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후 주석이 쓴 글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런민웨이보는 정부기관 고위직 인사나 기업체의 고위관계자, 공공적 성격이 강한 인물의 경우 실명으로 계정을 개설할 때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어 이 계정은 최소한 후 주석 측의 허락 하에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은 2008년 6월20일 런민왕 창궈(强國)포럼을 통해 네티즌들과 직접 온라인 대화를 나눈 바 있어 중국 네티즌들은 곧 후 주석의 단문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바링허우(80後·1980년대 태어난 세대) 네티즌은 “후 총서기의 일성을 듣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트위터나 유튜브 등에 접속할 수 없다. 민감한 내용을 담은 신문기사나 CNN의 특정화면도 차단된 채 서비스된다. 인터넷 검색서비스에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입력하면 1989년의 톈안먼사태 관련 내용은 게시되지 않는다. 트위터 등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는 100자 안팎의 단문을 삽시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전파력을 갖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선거기간 중 트위터를 애용한 트위터족이었다. 중국이 원조 트위터를 막아놓고 ‘산자이(山寨·짝퉁) 트위터’를 서비스하는 이유와 후 주석이 웨이보에 입성한 까닭이 더욱 더 궁금해진다. stinger@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中 류샤오보 11년형 확정

    중국 베이징시 고급인민법원은 11일 국가전복 선동 혐의로 지난해 12월25일 1심에서 징역 11년형이 선고된 반체제 작가 류샤오보(劉曉波·53)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중국은 2심제여서 이번 판결로 사실상 형이 확정됐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에도 참여했던 류샤오보는 2008년 12월 유엔인권선언 발표 60주년을 맞아 진보적인 학자, 변호사 등과 함께 중국의 일당독재 폐지와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었다.
  • “한국 민주화에 기여” 워싱턴서 릴리 전 美대사 추모식

    한국의 6월 민주 항쟁과 중국 톈안먼 사태 등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에 한국과 중국에서 대사를 지낸 고(故) 제임스 릴리 전 대사 추모식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존스 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열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린 파스코에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릴리 전 대사는 동아시아의 평생 친구였고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면서 “그는 국익과 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주저함이 없었지만 실용주의의 중요성을 이해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현홍주 전 주미 대사, 외교통상부는 추모식장에 화환을 보내 고인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을 되새겼다. 릴리 전 대사는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nds)’에서 주한대사 시절인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중국 칭다오 태생인 릴리 전 대사는 지난해 11월12일 워싱턴에서 지병인 전립선암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81세. 워싱턴 연합뉴스
  • ‘구글 사태’ 美·中 자존심대결 양상

    ‘구글 사태’ 美·中 자존심대결 양상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구글이 “중국어판 구글(www.google.com.cn)의 검색결과에 대한 검열을 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직후인 13일 밤부터 중국어판 구글에서는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민감한 사진들이 검색되기 시작했다. 파룬궁(法輪功) 등도 조심스럽게 온라인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시장 철수’라는 배수진을 치고 검열에 항거하고 있는 구글에 대해 중국 정부는 14일 “국내법을 따른다면 우리는 해외 인터넷 업체들이 중국에서 영업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검열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구글 검색에 뜬 민감한 내용들은 또 다시 사라졌다. 검열 당국과 구글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 중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 등으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 역시 G2(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이다. 때마침 데이비드 셔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 “동아시아에서 적극적 개입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했다. ‘구글 사태’는 G2가 지난해의 탐색전을 거쳐 본격적인 힘겨루기 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여서 전 세계가 그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은 정보통신(IT)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야후와 MS가 구글의 입장에 동참한 가운데 중국에서는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닷컴이 나섰다. 야후는 “사용자들의 정보를 무단으로 얻기 위해 네트워크에 침투하는 모든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한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는 구글과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반면 알리바바닷컴의 최고경영자 마윈(馬云)은 “떠나는 건 쉽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하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구글을 질책했다. 홍콩 펑황왕(鳳凰網) 긴급 여론조사에서 중국 네티즌의 83%는 구글의 철수를 바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양국 정부도 일진일퇴했다. 미국은 백악관과 상무부 등이 나서서 “중국은 인터넷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의 인터넷은 개방돼 있다.”며 “중국 정부는 인터넷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맞섰다. 중국을 대하는 미 내부 분위기는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함께 건너다)’를 외쳤던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안보담당 고위인사들은 전날 하원 군사위청문회에서 중국발 위기 가능성을 집중 거론했다. 로버트 윌러드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미군과 정부 통신망 및 컴퓨터시스템 등이 중국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의 지속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윌리스 그렉슨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과 중국 간에 오해 또는 소통부족이 발생하면 대결이나 분쟁 국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셔 차관보는 “‘타이완 문제에 대해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한다면 중국은 증강된 군사력을 인접국을 압박하는 데 사용할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한 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적극 개입 필요성을 설명했다. stinger@seoul.co.kr
  • 中 류샤오보 11년형 선고… 美 조속석방 촉구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법원이 예상대로 25일 반체제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54)에게 징역 11년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미국 측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중국 정부에 조속한 석방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혀 류샤오보 처리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은 이날 체제전복 선동 혐의로 기소된 류샤오보에게 징역 11년형을 선고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법원은 성명을 통해 “류샤오보에 대한 정치적 권리를 2년간 박탈한다.”고 판시하고 “소송과정에서 그의 법적 권리와 반론권이 충분히 보장됐으며 대중에 공개된 재판에 2명의 변호인단과 가족들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P와 로이터, AFP 등 외신들은 중국 법원 발표와는 달리 비공개 재판을 통해 이같이 선고했다고 전했다. 판결이 나온 직후 미국 정부는 류샤오보의 조속한 석방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첫 심리가 열린 23일 법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그레고리 메이 주중 미국대사관 1등서기관은 판결 직후 또다시 법원 앞에서 “미국 정부는 류샤오보에게 11년형이 선고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우리는 중국 정부가 그를 조속한 시일 내에 석방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비롯한 10여개국 외교관들과 외신들이 이날 법원을 찾았으나 법원은 이들의 방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스웨덴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성명을 통해 “(중국이) 류샤오보에게 징역 11년형을 선고한 데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완강한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서방국가들과 인권단체들의 개입에 대해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은 “명백한 사법권 침해이자 내정간섭”이라고 강력한 불만을 제기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했던 류샤오보는 지난해 12월 진보적인 학자, 변호사 등과 함께 중국의 일당독재 폐지와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구금돼 지난 1년여간 조사를 받아왔다. stinger@seoul.co.kr
  • 반체제 류사오보 선고공판… 최대갑부 황광위 혐의 추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크리스마스와 연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2건의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명한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왼쪽·54)에 대한 선고 공판과 중국 최대 갑부인 궈메이(國美)그룹 전 회장 황광위(黃光裕·오른쪽·40)의 탈법경영 사건 첫 재판이다. 두 사람 모두 체포된 지 1년이 넘었다. 류샤오보는 유엔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진보적인 학자, 변호사 등과 함께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와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시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0여개 국가의 외교관들이 몰려들었지만 공안 당국에 의해 방청이 저지됐다. 이틀만인 25일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서 체제전복 혐의가 인정되면 류샤오보는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 등은 “류샤오보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중국과의 새로운 긴장관계 형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류샤오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1989년 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하자 급거 귀국,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20개월간 수감됐으며 1996년부터 3년간 노동교화 처분을 받기도 했다. 중국측은 이번 재판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메시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 판단이다. 황광위에 대한 첫 재판은 베이징시 제2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다. 그는 지난해 11월 내부자거래 등의 혐의로 공안 당국에 연행돼 조사를 받아왔다. 당초 성탄절인 25일쯤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검찰이 새 혐의를 발견, 수사 기관에 이송하는 바람에 재판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조사과정에서 광둥(廣東)성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 주석 천샤오지(陳紹基)와 공안부 부장조리(차관보급) 정샤오둥(鄭少東), 광둥성 전 선전시장 쉬쭝헝(許宗衡) 등을 비롯, 1000여명의 공무원들이 뇌물수수, 도박 등으로 황광위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 세력의 보이지않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황광위와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광둥성 산터우(汕斗) 출신인 그는 궈메이전기를 창업, 중국 가전유통업계를 평정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해 평가자산 430억위안으로 중국 최고의 부호 자리에 올랐다. stinger@seoul.co.kr
  •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뉴욕 센트럴파크와 42번가 브로드웨이, 파리 샹젤리제와 몽마르트르, 베이징 톈안먼광장과 왕푸징(王府井), 도쿄 신주쿠(新宿)와 하라주쿠(原宿)….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을 찾는 이라면 한 번쯤 보고 싶어 하고 발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리 명소들이다. 이렇게 보란듯이 이름을 알려 사람들이 찾아들게 할 만한 한국의 거리가 있다면 어떤 곳일까. 한국의 ‘문화지구 1호’ 서울 인사동이라면 그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인총이 몰리는 명소라면 이름에 걸맞은 가치들이 있을 터.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인사동의 가치는 한국문화의 전통과 숨결일 것이다. 인사동이 어떤 땅인가. 조선 정궐에 가깝다 하여 내로라하는 세도가며 명인들이 자리잡아 살았고 그에 따른 문화와 풍습들이 옹골차게 배어든 곳이다. 조선시대 중부 관인방의 인(仁)자와 지명인 대사동의 사(寺)자를 엮어 이름 지어진 인사동이다. 오래도록 탑동, 사동, 탑사동이란 이름이 통용된 건 원각사에 딸린 석탑이 유명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비슷한 이름의 상호며 건물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이름과 명성은 사람과 사건을 불러오게 마련. 조선조 최대의 철학가 이이, ‘사동대감’이라 불렸던 문신 김병학은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장안의 부호와 총독부 관리들이 즐겨 찾았고 3·1독립선언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가 개교한 승동교회는 일제치하 전국으로 번진 학생운동의 발상지였으니 인사동은 분명 보통 땅은 아니다. 일제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골동품 상가는 아무래도 인사동 정체성의 으뜸이다. 살아 있는 노상박물관의 별명답게 200여개의 골동품, 전통공예상이 즐비했고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한국미술협회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수도 한복판에 이만큼 한국의 가치를 담았던 역사적 공간이 또 있을까마는 인사동의 모습은 영 딴판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 5000명, 한 해 170만명이 방문한다니 연간 외국인 관광객의 25%가 찾는 셈이다. 이같은 숫자의 성황 속에 가치 변질이 급속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2002년 기준으로 골동품점은 33%, 필방·지업사는 21%가 준 데 비해 술집은 80%, 음식점은 35%가 늘어났다고 한다. 먹거리, 잡상품을 팔려는 호객이며 목소리의 홍수는 여느 유흥가와 다르지 않다. 인사동 변질의 아픔은 10년 전 이미 겪은 바여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인사동길 복판, 이른바 ‘전통 12가게’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이 보존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종로구가 호응했고 서울시가 문예진흥법에 따라 2002년 지정한 게 문화지구이다. 빼어난 전통과 가치의 자랑이 아닌, 홍수처럼 밀려드는 싸구려 상점과 먹거리 장사들을 제어하기 위한 태생의 아픔을 갖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인사동의 값싼 상업화는 악의 개선이 아닌, 전철의 답습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가치의 상실은 현실의 쇠퇴와 몰락을 불러옴을 역사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외국인이 더 이상 찾을 가치가 없는, 이름뿐인 인사동의 함몰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한국 ‘문화지구 1호’ 명예(?)의 손상이고 그것은 곧 한국전통의 큰 훼손이다.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지 못할 소중한 가치를 그 어느 외국인이 찾아낼까. 다행히 서울시는 최근 인사동 새 정비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문화지구 1호의 박탈을 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장쩌민은 시위중?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은퇴한 중국의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최근들어 부쩍 자주 중국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입성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장 전 주석의 잦은 등장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시 부주석 견제세력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해석하기도 한다. 권력구도의 변화 가능성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오후 7시뉴스인 신원롄보(新聞聯報)는 중국 전역에 방송되며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시청률이 높다. 16일 방송된 신원롄보에는 장 전 주석 관련 뉴스가 2건 보도됐다. 이날 개관한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의 문자박물관 현판을 장 전 주석이 직접 썼다는 내용과 최근 타계한 구무(谷牧) 전 부총리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을 조문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특히 구 전 부총리 장례식에서는 후 주석과 똑같이 1분 정도 그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17일 후 주석과 장 전 주석의 조문 사진을 나란히 게재했다. 중국 언론에 장 전 주석이 재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일 건국 60주년 국경절을 전후해서다. 전야제 때 후 주석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아 건재를 과시한 장 전 주석은 국경절 당일에는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후 주석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그 모습은 CCTV를 통해 고스란히 전 중국인들에게 생중계됐다. 국경절 직전에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4중전회(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는 시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선임 여부가 최고 관심사였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국경절 이후 발표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다. 중앙군사위 입성은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확정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장 전 주석의 잦은 행보를 권력구도의 ‘이상’ 및 내부 권력 암투와 연관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tinger@seoul.co.kr
  • 영화처럼… 日공항에 사는 中운동가

    수돗물과 비스킷으로 버티며 일본 공항에서 2주째 살고 있는 중국인이 화제다. 17일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한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인권운동가 펑정후(55)씨. 펑씨의 사연은 미국 영화 ‘터미널’(2004)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동유럽 가상 국가 크로코지아 사람인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조국을 잃게 되면서 공항 보안구역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그렸다. 펑씨의 사정은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 4일 펑씨는 상하이 경찰로부터 중국 입국을 거절당했다. 경찰은 전일본공수(ANA) 항공기에 펑씨를 태운 뒤 일본 지바현 나리타공항에 돌려보냈다. 이번에는 펑씨가 일본 입국을 거부했다. 그는 “납치하듯 비행기에 태워 일본으로 내쫓은 것은 나는 물론 중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그 후 펑씨는 공항의 도착게이트와 입국심사대 사이에 있는 보안구역에서 ‘농성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ANA가 자신을 중국에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한 일본에 입국하지 않을 작정이다. 면세점과 공항 식당을 드나들 수 있었던 영화 속 나보스키와 달리 펑씨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있다. 승객이나 직원들이 동정심에 건네는 비스킷과 케이크가 유일한 먹을거리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에서 인권운동을 해온 펑씨는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다가 발이 묶였다. 8번이나 상하이 집에 돌아가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펑씨는 1989년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을 비판한 것이 당국의 눈밖에 난 이유라고 믿고 있다. 펑씨는 최근 오랜 친구인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나리타공항 외교관 통로를 지나는 것을 보고 다가가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으나 왕자루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부고]6월항쟁 계엄반대 릴리 前미국대사 별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시블리메모리얼병원에서 별세했다. 81세. 가족 측은 릴리 전 대사가 전립선 암 합병증을 앓아왔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중앙정보국(CI A) 요원으로 활동했던 릴리 전 대사는 한국과 중국의 민주화 격동기인 1986~91년 한국과 중국주재 대사를 각각 역임한 아시아통이다. 릴리 전 대사가 주한미국 대사를 지내던 1986~89년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등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릴리 전 대사가 지난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 nds)’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을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미 정부 내 중국통인 그는 주중대사(1989~91)에 부임하자마자 발생한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 중국의 인권탄압을 강하게 비난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물밑 조율작업을 벌였다. 릴리 전 대사는 석유관련 사업을 하던 부친이 중국에서 머물던 1928년 칭다오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미 예일대를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51년 CIA에 투신했다. 이후 1978년까지 27년간 도쿄와 베이징, 타이완, 홍콩,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릴리 전 대사는 이후 국무부로 자리를 옮겨 외교관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뒤 주한·주중대사를 잇달아 역임했다. 릴리 전 대사는 지난해 여름 캐서린 스티븐스 현 주한미국대사의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 참석,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한국 관련 싱크탱크 행사들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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