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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기는 시위’에 모두 빠진다

    ‘즐기는 시위’에 모두 빠진다

    시민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1주일 전 경찰의 폭력진압에 맞섰던 분노에 찬 흥분이 아니라,‘기분좋은 흥분’이었다.6일 촛불집회에서 만난 회사원 송모(27)씨는 “72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시위가 재미있어 자리를 뜨지 못하겠다.”고 웃음을 지었다.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이영용 한국드럼서클협회 회장이 주도한 북연주. 이 회장은 ‘짐베’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북을 비롯해 50개의 북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미국산 쇠고기 축제(?)’를 즐겼다. 회사원 김진영(33·여)씨는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투쟁’을 외치는 게 시위의 전형이라 생각했는데,‘즐거운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고 말했다. ●음악가는 연주·화가는 현장 화폭에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급조된 음악밴드 ‘시민악단’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트럼펫과 색소폰, 기타 등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시민들이 시위 현장에서 음악을 연주하자는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악단을 만들었다. 북을 연주하는 대학생 문정석(20)씨는 “구호만 외치기엔 목이 아프고 심심해 음악의 힘이 필요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술가들도 나섰다. 서양화가 김성룡(42)씨와 이선일(42)씨는 텐트를 치고 3박4일 촛불시위의 대장정을 이어갔다. 김씨는 “1992년 소 파동 당시 ‘누운 소’라는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아 그 인연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위 현장을 그림으로 담고 있다. 한밤중의 도심은 공원으로 변했다.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시위를 즐겼다. 한 손에는 ‘쇠고기 재협상’ 피켓을, 다른 한 손에는 김밥을 들었다. ●한밤 도심은 ‘시위 나들이´ 가족공원 대학생들은 기차놀이를 했고, 경찰 옷을 입고 손수레 감옥을 끌고 다니면서 ‘탄압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차벽 너머로 빵을 던지고 의경들은 이를 받으며 마음을 나눴다. 여고생들은 “의경 오빠의 잘 생긴 얼굴 좀 보여달라.”고 외쳤다. 김현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시위는 위계화된 방식으로 정치적 표현이 이뤄지고 ‘선봉대’,‘사수대’처럼 역할이 나뉘어졌다.”면서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유머러스하고 소박한 정치 표현을 통해 과거 집회의 한계인 ‘과도한 엄숙주의’를 탈피, 집회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토론과 행동 융화… 새 소통의 장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일대가 5일 오후 7시부터 72시간 동안 토론과 소통이 끊이지 않는 거대한 온·오프라인의 아고라(광장)가 됐다. 토론의 장이었던 온라인과 행동의 장이었던 오프라인은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하나가 됐다. 시민들은 한 목소리만 들리던 광장에 소통의 기능을 부여했다. 서로의 주장을 막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토론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거대한 하나로 만들어갔다. ●전국민의 촛불MT로 변화 그들은 광장에서 정부를 향해 쇠고기 재협상·대운하 반대·일자리 창출·물가 안정 등을 소리치는 한편 나와 다른 남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했다. 온라인 세대인 10∼30대들은 노트북을 꺼내 행진 장면을 온라인에 생중계하고, 거리로 나오지 않은 네티즌들과도 대화했다. 김영성(21·대학생)씨는 “시청광장만큼이나 컴퓨터도 우리에게 큰 광장이다. 이 둘이 지금처럼 오묘한 조화를 이루면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2시간 릴레이 집회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 청년은 “컴퓨터 세대에게는 밤도 낮”이라면서 “72시간 정도 버틸 체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20여년 전 화염병이 난무하던 광장은 ‘전국민의 촛불 MT’로 바뀌었다. 시위 도중에는 모두 목이 쉬어라 구호를 외쳤지만 문화제 시간에는 자유분방하게 애인끼리 대화를 나누고 가족끼리 김밥을 나누어 먹고 덕수궁 주위를 산책하기도 했다. 박수림(35·주부)씨는 “정부는 시위‘꾼’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면서 “구심점은 없지만 모든 시민이 구심점인 만큼 오히려 그 힘은 더욱 견고하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에 처음으로 도착해 텐트를 친 김송룡(42·미술가)씨는 “동료 4명이 함께 숙식을 하며 정부에 쇠고기 재협상의 당위성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광장이 등장한 것은 4·19혁명(1960년),6월항쟁(1987년), 미선·효순양 추모(2002년), 탄핵반대(2004년)정도다. 정부에 대항하는 의미의 광장이라는 점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4·19와 6월항쟁의 맥을 잇는다. 하지만 부패·독재로 국민을 탄압하는 정부가 아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탄생한 정부의 실책을 논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2008년의 광장은 이전의 무엇과도 다르다. ●IT힘이 광장의 디지털화 이뤄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2008년의 광장은 소통이 없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항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구호부터 행진까지 탈권위적인 형태로 저항을 표현한다.”면서 “한국 IT의 힘은 오프라인 광장에 모든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광장의 특성을 추가했으며, 광장의 디지털화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경주 이경원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72시간 촛불시위’…함께 맞은 아침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 이틀째인 6일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예비군, 중고생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 첫 아침을 맞았다. 참가자들은 새벽 6시까지 세종로에서 집회를 가진 뒤 날이 밝고 나서야 서울 시청 주변 천막들과 각자 준비한 소형 텐트 등에서 휴식을 취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준비한 텐트에 ‘광우병 쇠고기 반대’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릴레이 집회가 철야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만큼 참여의 폭이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로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릴레이 집회가 진행될 수록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번 릴레이 집회에 참가한 다음 커뮤니티 ‘엽기 혹은 진실’ 회원들은 “아직도 ‘냄비근성’이라는 말을 믿으며 열이 식기를 바라는 것 같다.”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인터넷을 통해 시위대는 점점 더 커지고 구성도 다양해 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72시간 잠들지 않는 촛불

    72시간 잠들지 않는 촛불

    광우병 쇠고기 관련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외치는 시민들이 5일 저녁 서울광장 주변에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에 들어갔다. 시민 2만여명(경찰 추산·주최측 추산 7만여명)은 이날 덕수궁 앞에서 30번째 촛불집회를 열고 정부와 과잉진압 경찰 등을 규탄했다. 당초 촛불집회는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북파공작원(HID) 전우회원들이 서울광장에 전사자들의 신위를 세우고 추모 행사를 열어 급히 장소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날 밤 10시쯤 HID유족회원들이 서울광장을 찾아 “왜 유족 동의없이 신위를 세웠느냐.”며 전우회원들에게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저녁 8시20분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남대문∼명동∼종각 쪽으로 행진한 뒤 청와대 쪽으로 향하려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벽에 막혔다.72시간 릴레이 집회에 들어간 시민들은 스스로 서울광장 주변에 텐트를 치고 캠핑 장비 등을 준비해 8일까지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시민들은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30개월 이상 소 수입 제한을 미국에 요청하겠다.’고 해놓고 하루 만에 ‘수출업자 자율규제도 미국쪽 답신으로 인정하겠다.’며 국민을 기만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부산과 대전, 광주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도 수천명이 촛불을 들었다. 경찰은 135개 중대 1만여명을 동원해 시위대와 HID 요원들 사이에 폴리스라인을 만들고 양쪽의 충돌에 대비했다. 회사원 김호섭(37)씨는 서울광장을 HID 회원들에게 내준 데 대해 “섭섭함이 없진 않지만 현충일이니 HID 요원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고 광장을 쓸 자격도 있는 시민 아니냐.”면서 “충돌이 발생해도 의연하게 비폭력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투표로 동맹휴업을 결의한 서울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경희대, 성균관대, 고려대 학생들은 학내에서 자체적으로 촛불집회를 연 뒤 서울광장으로 합류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국민 청구인단 9만 6072명의 이름으로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상에 대한 장관고시는 무효’를 주장하는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에 냈다. 이는 단일 사건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청구인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이경원 김정은 장형우기자 leekw@seoul.co.kr
  • [한국인의 질병] (37) 뇌졸중

    [한국인의 질병] (37) 뇌졸중

    뒷머리를 잡고 쓰러졌다가 깨어난 뒤 신체의 일부가 마비된 환자를 두고 보통 ‘풍(風)을 맞았다.’고 한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세포가 파괴되고 곧바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뇌졸중. 많은 이들이 뇌졸중을 가장 잘 아는 병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미리 대처하려고 마음 먹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뇌혈관질환 전문가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중풍뇌졸중센터 김국기(65) 교수를 만나 뇌졸중 대처법을 들어봤다. ●환자 매년 10만명 발생… 20~30% 사망 매년 뇌졸중에 새로 걸리는 환자는 10만명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20∼30%는 사망하고, 나머지 생존자들은 신체·정신적으로 다양한 장애를 겪게 된다. 뇌졸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혈관이 막혀서 뇌세포가 죽는 ‘허혈성 뇌졸중’(뇌경색)과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는 ‘출혈성 뇌졸중’(지주막하출혈, 뇌내출혈)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허혈성 뇌졸중 환자가 전체 환자의 70%가량을 차지한다.“단일 질환 가운데는 환자가 가장 많은 것이 뇌졸중입니다. 살아 남더라도 여러 장애를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죠.” 뇌졸중은 전조증상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혈액이 막히면서 생기는 대표적인 증상은 뇌세포가 죽으면서 언어 중추에 문제가 생겨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모두 뇌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액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나 뇌 혈관 내부가 70% 이상 막히면 전조증상을 눈치채기도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 또 뇌 혈관이 파열되면 머리가 부서질 듯 아프고 음식물을 토하는 환자도 있다. 혈액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정신을 잃게 되는데, 대부분 목 뒤쪽이 뻣뻣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뇌 100g 당 50㏄ 이상의 혈액이 공급돼야 하지만 그 이하로 낮아지면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뇌혈관 터지면 늦어도 3시간내에 복구해야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 적어도 3시간 안에 혈류가 제대로 흐르도록 복구해야 한다. 분, 초를 다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생명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영구적인 신체장애가 남을 수 있다. 남아있는 뇌혈관으로 6시간까지 버티는 환자도 있지만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소생한 환자의 예후는 나쁠 수밖에 없다.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119나 전문병원 응급실에 연락해야 한다. 욕실이나 화장실, 시끄러운 장소 등에서 쓰러진 환자는 머리 부위를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주는 것이 좋다.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음식물이나 약을 먹여서는 안 된다. 환자가 누워 있으면 벨트와 단추를 풀고 입속에 토한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꺼낸 뒤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부축해줘야 한다. “뇌졸중 전조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 뇌 혈류검사, 경동맥 초음파, 뇌혈관 조영술, 자기공명 혈관촬영(MRA) 같은 전문적인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심혈관 장애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심전도, 심초음파 등의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뇌졸중은 주로 고혈압, 흡연, 음주 등 나쁜 생활습관이나 질병에 의해 생긴다. 수축기 혈압이 140 이상, 이완기 혈압이 90 이상이라면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하루에 담배를 한 갑 이상 피우면 혈관의 탄력이 떨어져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높다. 흡연은 혈액의 점도를 높여 끈적하게 만들기 때문에 혈류 순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술을 장기간 마시면 동맥경화(동맥이 딱딱하게 굳는 증상)가 촉진돼 뇌졸중이 생길 수 있다. 술을 마신 날이나 술을 마신 다음날 뇌졸중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뇌졸중 발병 위험이 가장 높은 65세 이상 노인은 하루 소주 1∼3잔, 맥주 1∼3컵 이하로 주량을 조절해야 한다. ●고혈압·음주·흡연·당뇨가 주원인 이밖에 당뇨병과 고지혈증, 심혈관질환도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뇌졸중 환자의 10%는 당뇨병 환자이며, 두개골 속에서 동맥경화증이 생길 위험이 크다. 따라서 당뇨 환자는 꾸준히 당뇨약을 복용하면서 혈당치를 조절해야 한다. 대표적인 심혈관질환인 심방세동(심장근육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증상)도 뇌졸중과 연관성이 높으므로 혈전을 녹이거나 심장기능을 높이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뇌졸중은 재발이 잦은 병입니다. 한번 터졌다고 안심하다가 3∼4차례씩 다시 터져 결국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지요. 미리 대비하려면 흡연, 음주와 같은 뇌졸중 유발 인자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65세 이상 환자는 뇌 관련 검사를 1년에 한 차례 이상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뇌졸중 환자에게는 주로 아스피린과 같은 항혈전제를 처방한다. 혈류가 잘 흐르지 않으면 스텐트(혈관을 뚫는 가는 관)를 혈관에 집어넣어 혈전을 제거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들은 뇌졸중이 재발하기 전에 예방적인 차원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뇌졸중이 발병했다고 해도 이른 시간에 처치를 끝내면 일주일 안에 퇴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뒤에도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염분·지방섭취 줄이고 채소는 많이 소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혈압을 높일 수 있으므로 멀리해야 한다. 또 지방이 많이 포함된 육류는 가능하면 피하고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짜야 한다. 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도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 특히 임의로 항혈전제 복용을 중단하면 혈관이 다시 두꺼워지면서 1년 내에 뇌졸중이 재발할 수도 있다. “뇌졸중은 전문병원을 찾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 뒤의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중도에 약 복용을 포기하는 환자도 많죠. 꾸준한 운동과 식이조절,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약물복용이 뇌졸중의 재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中은 지금 ‘조문외교 무대’

    |베이징 이지운·도쿄 박홍기특파원|중국이 조문 외교로 바빠지고 있다. 기존의 일정에다 티베트 사태, 지진 등 여러 사정으로 미뤄졌던 각국 주요 인사들의 방중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지도자로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4일 첫 테이프를 끊었다.6월 방문이 예정된 상황에서 지진 때문에 마련된 갑작스러운 일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30일 재난 현장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의 방중도 실은 티베트 사태 등으로 예상보다 다소 늦춰진 것이었다. 앞서 23∼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신임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지만,‘조문’의 성격은 약했다. 이날에는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가 베이징을 방문, 사회주의 국가간의 우의를 다진다. 조문 외교는 당사자 상호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점’도 없지 않다. 재난을 당한 중국으로서는 ‘무리한’ 요구를 피해 가거나 뒤로 미룰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위문을 하는 나라로서는 ‘생색’을 내는 효과가 있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과 미국도 지원과 원조 등으로 중국민들의 민심을 많이 회복했다. 일본은 가장 큰 덕을 보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계획이 보류되긴 했지만 일본 자위대 수송기 파견 계획이 적극 검토됐을 정도다.2차대전 이후 최초로 일본 부대와 군용기가 중국 내륙에 들어오는 의미가 있다. 중국과 일본은 국민간 우호 정서 조성 등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 때 미흡했던 점들을 조문 외교로 뒤늦게 보완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26일부터 31일까지 방중하고 있는 우보슝(吳伯雄) 타이완 국민당 주석 역시 ‘동포애’를 극대화시키며 서로 적지 않은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분위기 조성은 부족했지만, 막판 현장 방문으로 어느 정도 이를 만회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일본은 항공자위대의 수송기를 이용, 중국으로 긴급 구호물자를 실어 나르려던 계획이 중국 측의 반대로 무산됨에 따라 민간 전세기로 텐트와 모포 등 구호품을 수송할 방침이다. 마치무라 노부타가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위대 수송기를 파견할 수 없게 됐다. 중국 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수송기의 활용도 하나의 방안이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jj@seoul.co.kr
  • MB, 이재민 손 일일이 잡고 위로

    |두장옌 공동취재단 진경호 특파원·서울 윤설영기자|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30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대지진 피해지역인 쓰촨성(四川省) 일대를 방문했다. ●“하루빨리 복구를” 눈시울 붉혀 이 대통령은 쓰촨성 내 청두(成都)공항에 도착해 장쥐펑(蔣巨峰) 성장의 영접을 받았다. 장 성장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 대통령의 방문을 쓰촨성 주민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하루빨리 복구하길 바란다. 나도 눈물이 난다.”며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공항 주기장에 텐트 등 긴급지원물품을 실은 우리 군 수송기 3대가 계류 중인 모습을 보고는 “우리 군 수송기가 중국에 들어온 전례가 없다. 인도적 차원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이번 대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 인근 인구 60만의 도시 두장옌(都江堰)을 찾았다. 미색 점퍼와 검은색 바지, 검은색 신발 차림이었다. 이동 중에 황옌룽(黃彦蓉) 쓰촨성 부성장으로부터 지진피해 규모와 복구대책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 대통령은 “발전소도 파괴됐다는데 전기는 어떻게 하나.”,“완전히 도시를 새로 지어야 하는 수준이네.”라며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현지·해외 언론 20여곳 취재경쟁도 이 대통령은 이어 이재민촌을 둘러보면서 간이병원과 간이학교, 우리측 구호물품 전시장소들을 꼼꼼히 살폈다. 현지 주민들은 “정말로 감사하다.”“한국에서 지원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했고 이 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어깨를 다독이며 “고생이 많다.”는 등의 위로를 건넸다. 이 대통령은 이재민촌을 떠나면서 방명록에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위로를 드린다. 여러분이 희망과 용기를 갖길 바란다. 저희들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위로하며 돕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제전화로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쓰촨성에 와보니 대부분 건물들이 파괴됐고 텐트나 담요도 필요한 것 같다.”며 후속 지원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지진현장 방문에는 국내 언론뿐 아니라 중국 신화통신과 CCTV,AP통신, 싱가포르 CNA방송 등 20여곳의 기자들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jade@seoul.co.kr
  • “어려울때 함께 하는게 친구” MB, 30일 쓰촨성 전격방문

    “어려울때 함께 하는게 친구” MB, 30일 쓰촨성 전격방문

    |칭다오 진경호·베이징 이지운특파원|이명박(얼굴) 대통령은 중국 방문 마지막 날인 30일 귀국을 앞두고 지진 피해 현장인 쓰촨성(四川省)을 전격 방문, 이재민들에게 위로의 뜻과 함께 구호품과 피해복구 장비 등을 전달한다. 외국 정상의 쓰촨성 지진현장 방문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예정에 없던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은 지난 27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단독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제의하고, 후 주석이 동의하면서 성사됐다. 이 대통령은 29일 산둥성 진출 기업인 초청 리셉션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쓰촨성에 가겠다고)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쳐다보기에 ‘나는 실용주의, 실천주의자다.’라고 했다.‘말하면 지킨다.’고 했다.”면서 “후 주석이 외교장관을 불러서 그 자리에서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쓰촨성 방문을 통해 대지진 피해를 입은 중국 국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중국 정부와 국민들이 합심해 재난을 극복하는 데 우리 정부와 국민도 적극 협력하고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은 양국 정부와 국민간 우호와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 군 당국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요청에 따라 텐트와 모포 등 3억 8000만원어치의 구호물품을 29일 쓰촨성으로 공수한 데 이어 200만달러 상당의 긴급 구호물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과 중국간의 우의 증진에 10년 걸릴 것을 1년으로 단축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 쓰촨 대지진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국 국상(國喪)에 온 것이 도리어 두나라 관계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라는 역발상을 하게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중 FTA 문제와 관련,“계속적으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그러나 산·관·학 검토 정도로 그칠 문제는 아니다. 보다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국에는 아직 중국 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검토기관이 없다.”고 말해 향후 중국 전문 연구기관의 설립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중국 방문 사흘째인 이날 베이징대학교를 방문, 연설을 통해 “북한이 변화에 나선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경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의 좋은 경제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8월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보고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한 뒤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로 이동, 현지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jade@seoul.co.kr
  • 자위대 수송기·병력 파견 약속 “중국내 반일감정 누그러뜨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쓰촨(四川)성 대지진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한층 가까워졌다. 이른바 ‘지진외교’로 불릴 정도다. 중국은 지진 발생 3일 뒤인 지난 15일 처음으로 일본에 긴급구조대의 파견을 요청한 데다 27일 비행기에 의한 구호물자의 수송도 부탁했다.중국이 다른 나라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것이다. 일본 정부조차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마치무라 노부타가 일본 관방장관은 2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항공자위대의 수송기를 파견할 방침을 굳혔다.”면서 “텐트나 모포 등 물자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은 이미 밝혔던 5억엔(약 50억원)의 긴급 지원과 별도다. 일본 정부의 대응도 발빠르다. 최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 등으로 조성된 양국의 우호·협력 및 전략적 호혜관계를 한층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또 중국 내의 반일감정을 완화시키는 기회로도 삼고 있다. 일본은 이번 주 안에 구호물자를 실은 C130 수송기 두세 대를 중국에 보내는 한편 선발대도 파견할 방침이다. 일본 자위대 수송기의 중국 영공 진입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이다. 자위대의 중국 파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쓰촨성 대지진을 계기로 ‘방위교류’까지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일 양국은 지난 2006년 10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방중 때 방위교류 촉진에 합의한 뒤 핫라인 개설과 함정 교류 등을 실시하고 있는 터다. 나카지마 미네오 국제교양대학장은 요미우리신문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해온 중국의 지원 요청은 양국관계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응하면 대일 이미지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hkpark@seoul.co.kr
  • 전남 “해수욕장 오세요”

    전남 “해수욕장 오세요”

    완도군 신지도 명사십리와 진도군 가계 해수욕장이 다음달 2일 전국 처음으로 문을 여는 등 전남도내 61개 해수욕장이 6월 잇따라 개장한다. 29일 전남도에 따르면 현재의 남해안 일대 평균 수온이 섭씨 18도로 해수욕에 알맞은 20도에 육박하고 주말 나들이객이 벌써부터 몰려들면서 올해도 일찍 개장키로 했다.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개장일 오전 10시부터 해변 골프대회와 모래조각 전시회, 국악공연 등이 펼쳐진다. 골프대회는 아스라이 펼쳐진 모래사장에서 ‘장타 대회’, 벙커샷 등의 경기가 이어진다.‘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고군면 회동리 해안으로 이어지는 진도 가계 해수욕장은 무사고 기원제, 비치 발리볼 시연 등으로 개장을 알린다. 또 해수욕장을 낀 각 자치단체는 피서객을 위해 시카약, 바다래프팅, 해변축구대회, 천일염 메고 달리기, 해양레포츠 체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전남도는 완도 신지해수욕장·고흥 남열해수욕장 등 피서인파가 몰리는 29개 해수욕장에 ‘사랑의 텐트촌’ 609동을 설치해 부족한 숙박시설을 해결한다. 도 관계자는 “피서객들이 청정 해역인 남해안에서 여름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수상 안전요원 배치 등 이용객들의 편의시설 확충과 서비스 향상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13억 보듬는 ‘조문외교’ 프로젝트

    |칭다오 진경호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의 쓰촨성(四川省) 지진피해 현장 방문은 지난 27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단독정상회담에서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이 대통령이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함께하는 것이 친구”라며 후 주석에게 쓰촨성 방문 의사를 밝혔고, 후 주석이 감사의 뜻과 함께 “이 대통령이 방문할 수 있도록 준비를 지시하겠다.”고 화답하면서 이뤄졌다.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관계 격상을 이룬 상징이라는 것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이다. ●외국 정상 첫 피해현장 방문 당초 우리 정부는 한·중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을 중국측에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구상은 지난 23일 본지가 게재한 김승채 고려대 정책대학원 교수(중국정치)의 시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이 대통령 방중, 감동외교 펼쳐야’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쓰촨성을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며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이를 본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잘 읽었다. 유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국측은 한동안 경호상의 어려움 등을 들어 이 대통령 방문에 난색을 보이다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 테이블에서야 동의했다.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은 인도적 차원의 행보라는 점에서 첫째 의미가 있다. 다만 외국 정상으로서는 첫 이례적 방문인 만큼 중국민들에게 미치는 무형의 외교적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교문화의 전통을 지닌 나라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문(弔問)외교’는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실 이 대통령의 방중은 우보슝(吳伯雄) 타이완 국민당 주석의 중국 방문과 일정이 겹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인들의 관심이 적었다. 특히 중국 CCTV 출연이 무산된 뒤로 중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이벤트’가 아쉬웠던 우리 정부로서는 전격적인 쓰촨성 방문을 통해 중국에 ‘이명박 효과’를 심어줄 전기를 잡게 된 셈이다. 중국 언론들이 연일 지진피해 복구상황을 머리기사로 보도하는 상황에서 피해현장을 둘러보고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대통령의 쓰촨성 방문에는 수행경제인들도 대거 동행한다. 이미 최태원 SK회장을 비롯해 상당수 인사들은 29일 현지로 건너가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등 이 대통령 방문을 위한 정지작업을 펼쳤다. ●국방부 구호물자 26t 전달 29일 우리 군 당국이 300만달러어치의 텐트와 담요, 의약품 등을 전달한 것을 비롯해 우리 정부와 기업의 중국 지진피해 지원 규모는 2900만달러에 이른다. 국방부의 구호물자는 10인용 천막 100동, 개인용 천막 2010동, 모포 3000장, 비상식량(전투식량) 1만 8개, 위생구(칫솔+치약+면수건+세탁비누 묶음) 3000명분 등 총무게 26.6t에 이른다. 이와 함께 삼성 250만달러, 현대 150만달러 등 민간기업의 지원액이 2400만달러, 정부 지원이 500만달러다. 이는 6000만달러를 지원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미국의 민·관 합동 2300만달러, 러시아 800만달러, 유엔 700만달러, 이탈리아 532만달러, 인도 500만달러 등과 비교해 파격적인 지원 규모다. 최근 후진타오 주석의 일본 방문으로 중국과 급속한 해빙무드를 보이고 있는 일본도 480만달러 지원에 그쳤다. 쓰촨성 방문을 통한 이 대통령의 조문외교가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jade@seoul.co.kr
  • [이지운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中 언론에 ‘한국 구호’는 없다

    요즘 중국의 TV나 인쇄매체를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많았다. 쓰촨 대지진과 관련, 각국 구조대나 의료진의 활동, 구호품 전달 소식 등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희한하리만큼 한국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 일본 구조대의 중국 도착 소식에 중국 언론들이 반색할 때만 해도 ‘일본은 지진에 특별한 경험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팀의 활동에 대한 언론의 조명이 지속되면서, 이달 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방일 등 정치적 상황 때문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급기야 일본 구조대가 시신 발굴 이후 묵념을 하는 장면이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중계돼 많은 중국인이 이에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뒤에는 더이상 이유도 중요치 않게 됐다. 인도·인도네시아의 구호품 전달 장면도 생중계되고 ‘영국제 대형 텐트가 뒤늦게 들어와서 훨씬 편해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니 더욱 그렇다. 이쯤 되면 한국은 지진 경험이 적어서인지, 늦게 와서인지, 구조대가 묵념을 하지 않아서인지, 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중의 차이 때문인지 원인 분석보다는 한국인의 ‘온정’이 중국에서 실종된 결과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상갓집에 조화 보내 놓고, 세워진 위치가 맘에 안 든다고 투덜대는 것이 우리의 미덕은 아니다.부조금 액수도 생색내지 않는 법이다. 중국 기업들이 기부 사실의 홍보에 열을 올리는 요즘, 적지 않은 돈을 내고도 조용히 있는 한국 기업들이 대견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국가 간의 도움은 조금 다르지 않겠나.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국민들의 온정은 표시되고 전달돼야 하는 것 아닐까.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방문에서 얻을 ‘실용’ 가운데서 중국 국민의 민심보다 큰 것이 있을까? 이 대통령도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표시한 ‘구두 위로’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았을 터. 이번 방중에서 이 대통령의 진짜 ‘실용’을 기대해 본다.jj@seoul.co.kr
  • “구호품 빼돌린다” 주민-경찰 충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쓰촨(四川)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구호물자 비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이재민 구호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격렬한 유혈 충돌사태마저 빚어졌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23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21일 더양(德陽)시 뤄장(羅江)현에서 구호물품을 실은 화물트럭이 한 상점에 물품을 들여놓으려는 것이 발견된 뒤 주민 수천명이 해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했다.이 상점 안에는 대량의 구호물자가 쌓여 있었으며 이에 격분한 주민들은 시위대 해산을 설득하러 나온 옌충핑(嚴崇平) 공안국 부국장 등 공무원과 경찰을 구타하고 경찰 차량을 부수기도 했다. 특히 사고 수습 과정에서 번호판이 없는 군용 지프가 나타났으며 군 부대 관계자라는 신분증을 보여준 군인들이 상점 앞에 내놓았던 구호물품을 실어가려 했던 것이 주민들을 더욱 자극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주민들은 상점과 군용 차량을 에워싸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출동한 수백명의 공안 및 무장경찰과 대치하다 현지 당국이 진상 규명을 약속한 뒤에야 해산했다. 일간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도 이날 재난이 극심한 지역이 아니어서 배포되지 않는 ‘구호전용 천막’이 청두(成都) 시내 곳곳에서 발견됐다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앞서 구호물품의 수급과 배분을 맡고 있는 중국 적십자회가 이재민용 천막 하나를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1만위안(150만원)에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에서 4∼6인용 텐트의 시가는 개당 1800위안(27만원) 정도다. 블룸버그 통신의 2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재민에게 필요한 텐트는 모두 330만개이지만 40만개만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jj@seoul.co.kr
  • “들썩이는 민심 다독여라”

    중국 지도부가 다시 쓰촨으로 달려갔다. 대지진 수습 과정에서 민중들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22일 오후 서둘러 진앙지인 지진피해가 가장 큰 베이촨으로 달려갔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지 불과 6일만이다. 구호 물자의 전용 의혹과 늑장 구호로 일부 집단 행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더양(德陽)시에선 군중과 군·경찰사이에 유혈충돌이 발생한 탓이라고 홍콩 명보(明報) 등은 전했다. 또 참사 어린이 부모 등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민중들의 동요로 지도부가 다급해진 까닭이다.지진 발생 당일인 12일 쓰촨으로 달려가 구조·복구작업을 진두지휘하며 눈물로 민심을 달랬던 원 총리는 22일 양(綿陽) 공항에 도착한 뒤 헬기를 타고 최고 피해지역중 한 곳인 베이촨으로 가 붕괴 위험이 있는 언색호(堰塞湖·산사태 등으로 생긴 지연호수) 등을 둘러봤다. 다음날인 23일 양 병원을 찾아가 부상자와 가족으로부터 애로사항을 들었으며 임시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는 등 민중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22일 동부 저장(浙江)성 텐트 제조공장들을 찾아가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쓸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많은 텐트를 생산해달라고 주문했다.외신종합
  • 랭보의 숨겨진 시 ‘비스마르크의 꿈’을 보니

    랭보의 숨겨진 시 ‘비스마르크의 꿈’을 보니

    “밤이다. 침묵과 꿈으로 가득 찬 텐트 속에서, 비스마르크가 명상에 잠긴다. 손가락으로 지도 위 프랑스를 가리킨 채.” 138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랭보의 시 ‘비스마르크의 꿈’(Le reve de Bismarck)은 이렇게 시작한다. 랭보가 16살이던 1870년에 쓴 ‘비스마르크의 꿈’은 당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바탕으로 쓴 시로 ‘환상’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이 시는 “비스마르크가 텐트 안에서 프랑스 지도를 보며 명상에 잠기다가 일어나보니 파이프에 코가 탔다.”는 내용으로 ‘비스마르크는 명상한다’(Bismarck medite)라는 구절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랭보는 이 시를 장 보드리 (Jean Baudry)라는 이름으로 게재했는데 이는 랭보가 자주 쓰던 필명중의 하나다. 뒤늦게 빛을 본 ‘비스마르크의 꿈’은 랭보가 살던 지역 신문인 ‘르 프로그레 데 아덴느’(Le Progres des Ardennes)지에 게재된 것으로 프로이센의 공격을 받는 프랑스의 상황 아래 쓴 반 비스마르크 정서의 애국주의 시로 분석된다. 한편 ‘비스마르크의 꿈’은 랭보의 고향 샤를르빌 메지에르의 책방 주인이 가지고 있던 옛 신문 더미 속에서 발견돼 지난 22일 각 해외 언론에 보도됐다. 1854년에 태어난 랭보는 그가 10대일 때 ‘취한 배’, ‘일뤼미나시옹’,’지옥에서의 한 철’등의 대표작품을 썼다. 21살에 집필을 중단한 이 천재소년은 베를렌느의 연인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37살의 짧은 나이로 인생을 마감했다. 사진= france 3 방송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언제 굶어죽을지 모를 상황 제발 사이클론 피해 구호를”

    “제발 구호품을 보내달라. 정부에서 주는 식량만으론 굶어죽기 직전이다.” 미얀마를 휩쓴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최대 피해지역 중 한 곳인 보걸레군 이재민 천막수용소는 20일 굶주림에 지쳐 힘겹게 누운 이재민들로 북적였다. 사이클론으로 아내와 두 딸을 잃었다는 한 가장은 “정부지원이 턱없이 모자라 어린 두 아들이 언제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떨궜다. 양곤에서 5시간 떨어진 해안지대의 보걸레군 생존자는 주민 3000여명 중 2000여명이 채 안 된다. 무엇보다 당장 부족한 먹거리가 이재민들을 울리고 있다. 이재민들은 “정부에서 배급하는 것이라곤 매일 쌀 한줌, 감자 한두알이 전부”라면서 “세 식구 한끼 식사로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아이들에겐 감자를 넣은 쌀죽이라도 먹이지만 어른들이 차지할 몫은 없다. 임시로 판 우물물로 허기를 때우는 형편이다. 끼니 때도 점심을 준비하는 수용민들은 눈에 그리 띄지 않았다. 마을 빈터에 임시로 지어진 텐트촌 주변은 온통 흙탕물 천지다. 이재민들은 좁다란 텐트 안 바닥에 작은 나무판을 깔고 비닐을 덮어 임시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나마 물에 젖어 편히 누울 수조차 없다. 수용소 내 보건소 간호사는 “설사환자가 많아 콜레라 등 전염병도 우려되지만 약품도 태부족”이라면서 “정부는 구호품이 오면 보급을 늘리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곤 연합뉴스
  • [中 쓰촨성 대지진] 이젠 이재민 구호로

    생존자 구출에서 이재민 구호로. 중국 당국이 쓰촨(四川)대지진 부상자 22만여명을 포함해 수백만명의 이재민 구호에 집중하고 있다. 지진 발생 일주일을 넘김에 따라 생존자 구출 가능성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19일 청두(成都) 북동쪽 양(綿陽)시 주저우(九州) 체육관은 이재민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상당수가 갓난아이들과 유아들이다. 그러나 체육관 밖에 이동식 화장실이 마련되고 급수대, 무료 전화,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등이 설치됐다. 이재민들이 당장 연명할 수 있는 생활설비가 갖춰졌다. 심리 상담도 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이날 전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이재민 1000만명에게 1인당 하루 500g의 곡물과 현금 10위안(약 1400원)을 3개월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쓰촨성 당국은 18일 이재민과 구호요원들이 몸을 누일 텐트 260만개가 당장 필요하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미군 수송기가 이날 1만 5000명분의 식량 및 텐트 655개, 랜턴 2592개 등을 쓰촨지역에 제공하는 등 국제사회의 구호노력도 줄을 이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19일 “지진 피해 지역에서 가장 절실한 구호물품은 텐트”라면서 국제 사회에 지원 요청을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날까지 11만 3080명이 투입돼 2만 1566명을 구조하고 이재민 20만 5370명을 대피시켰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탈출 유학생 “맨발로 하루 15㎞ 걸어”

    |스팡(쓰촨성)이지운특파원·서울 송한수기자|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다른 톈진(天津)외대 유학생 4명과 배낭 여행에 나섰다가 사지(死地)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백준호(25)씨는 18일 “유일한 희망은 다리를 쭉 뻗고 자는 것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상처 투성이도 어디에서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강행군 속에서도 동생뻘 여학생들이 잘 따라줘 고맙다.”고 말했다. 유학생 5명은 지난 12일 워룽(臥龍)에서 판다 관광을 마치고 나오다가 대지진을 만났다. 오후 2시30분쯤 해발 6250m의 스구냥(四姑娘)산이 흔들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굴러내린 돌덩이에 렌터카가 계곡으로 처박혔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무작정 도망치자는 생각이 스쳤다. 젖은 신발을 차량에 벗어둔 탓에 맨발로 내달렸다. 계곡으로 피신하려고 저마다 옷을 묶어 구명용 끈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천 물길이 워낙 거세 포기했다. 대신 렌터카 운전기사를 찾으러 올라갔다. 기사는 머리와 옆구리, 팔에서 피를 흘린 채 차량에 끼여 있었다. 몸을 빼내려 2시간여 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돌더미 세례를 피해 산 위로 올라간 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죽을 끓여 주고 옷가지를 나눠 줬다. 여진이 폐가를 덮치자 뛰쳐 나와 나무로 텐트를 만들고 각자 지녔던 지폐, 학생증, 옷가지 등을 모두 태워 불을 피우며 노숙을 이어갔다. 사흘째인 14일 아침 댐 수위가 높아지면서 동네 앞까지 물이 차오르자 다시 산을 올랐다.15㎞를 기다시피 해 산장을 발견했다.16일 또 발길을 옮겨 6시간30분이나 걸었다.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에 도착했다. 중국군 구조대를 만났다.“이제 살았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강력한 여진 속에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17일 아침 비바람이 몰아쳐 청두를 오가는 헬기 이착륙이 막히는 바람에 탈출계획은 틀어졌다.10㎞를 걸어 민(岷)강 하류에서 뱃길을 이용했다.17일 오후 9시 쯔핑푸(紫坪鋪)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놓였다. jj@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지진발생 96시간만에 간호사 구조

    지난 12일 쓰촨(四川)성 대지진 발생 후 생존한계로 일컬어지는 72시간이 지나면서 16일에도 구조와 생존을 위한 사투가 이어졌다. 사망자가 5만명을 넘을 것이란 예측 속에 이날까지 생존자는 원촨(汶川) 지역 1만 4500여명 등 6만여명. 삶의 의지로 죽음을 이긴 기적의 생존자들도 속속 나왔다. 이날 베이촨(北川)현 한 중학교 붕괴현장에서는 지진 발생후 80시간만에 학생 한 명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구조요원들이 잔해더미 속에서 “살려달라.”는 희미한 외침을 간신히 듣고 달려든 덕분이었다.96시간 동안 건물 더미에 갇혀 있던 간호사도 구출됐다. 700여명을 구해낸 한 자원봉사자가 정작 자신의 아내는 구하지 못한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베이촨의 차 판매원인 리우 웬보(34)는 지진 발생 직후 자원봉사에 가세, 이웃 구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가 속한 구조팀은 700명이 넘는 생존자들을 구했다. 그러나 그 중엔 그의 아내도, 부모도 끼어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맘에 아내의 휴대전화로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저 안에 있다.”면서 폐허가 된 건물더미만 넋을 잃고 바라봤다. 자원봉사자들은 길이 끊긴 피해현장까지 진흙탕길 도보도 마다않고 속속 도착했다. 탕준(28)은 양(綿陽)에서 베이촨까지 80㎞를 꼬박 걸었다. 자신도 겨우 살아나왔지만 생존자를 구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16일 오전에만 4명을 구조했다. 땀방울어린 현장복구 손길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원촨, 베이촨, 주(綿竹) 지역의 두절됐던 통신도 서서히 정상화됐다. 이날까지 손상된 유선전화 교환국 616개 중 336개, 무선교환국 1만 6507개 중 6500개가 복구됐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양시 읍내는 주택 70% 이상이 완파된 속에서도 이재민들의 임시 텐트촌에선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 살기 위한 질긴 노력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촛불 릴레이도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15일부터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참여 호소 여론이 번져나갔다. 윈난(雲南)성 구이양(貴陽)시 다스쯔(大十子)광장, 광저우(廣州) 난양(南洋)대학 등지에서 자발적인 추모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생필품값 폭리를 취하는 등 재난상황을 악용한 상술도 횡행하고 있다. 빈 상점, 집을 터는 좀도둑과 3∼4배 뛴 바가지 요금을 부르는 택시기사들도 부쩍 늘었다. 피해자를 사칭해 중국 전역에 “입원비를 보내달라.”는 사기꾼들도 극성이라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중국 공군 낙하산부대는 육로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의 생존자 구출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천m의 계곡을 뛰어내렸다. 남방도시보는 16일 “낙하산 부대원들이 유서를 쓰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고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매몰자들의 수호신 인민해방군

    32년만에 발생한 최악의 대지진에 군대가 톡톡히 활용되고 있다. 민간 구조요원들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고립 지역에도 먼저 들어간다. 걸어서 갈 수 없으면 낙하산, 헬기, 수송기를 이용해서도 들어가고 있다. 오랜 훈련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특수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와 공병대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해 지진 재앙에 빠진 이들을 구해내는 데 일등 공신이 되고 있다. 이번 대지진 복구를 위해 15일까지 13만명의 군병력이 투입됐다.4000명의 공수부대와 2560명의 해군 육전대를 포함해서다.70개 군 의료대는 피해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다. 군용 헬기 93대도 구호작전에 참여했다. 텐트 12만여개와 담요 22만여개, 코트 12만벌 등을 포함한 12.5t의 구호품을 투하했다. 대지진의 진앙지로 주민 7만명의 생사가 기로에 놓인 원촨(汶川)현이 폐허로 변해 도로와 다리가 끊긴데다 산사태가 발생해 차량 접근이 어렵게 되자 군인들은 90㎞의 진흙탕 산길과 험준한 산줄기를 밤새 걸어서 넘어갔다. 이들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쓰촨성 지진 피해 현장에서 어김없이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군인들은 콘크리트더미와 진흙 아래에 파묻힌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학교와 병원, 가옥을 샅샅이 뒤지며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포클레인 등 중장비의 동원이 어려울 때는 맨손으로 건물의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를 구해내고 있다. 두장옌시에서만 300명의 부상자를 구했다. 두장옌 상류댐에 아주 심각한 균열이 발생해 인구 60만명의 두장옌시가 수몰위기에 처하자 군이 긴급 투입돼 대참사를 막기도 했다. 또한 잉슈 등 고립지역에는 헬기 등으로 물과 식량 등 구호품을 공중 투하해 생존자들의 목숨을 연장시키고 있다. 지진이나 홍수 등 대규모 자연재난 때마다 구조에 앞장서온 군인들이 이번에도 중국 국민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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