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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홍천의 ‘깡촌 마을’ 삼둔

    강원도 홍천의 ‘깡촌 마을’ 삼둔

    삼둔(三屯)을 찾아갑니다. 살둔(생둔·生屯)과 달둔(達屯), 월둔(月屯) 등 강원도 홍천의 세 ‘깡촌’ 마을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입니다.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남짓한 곳에 이런 은둔의 땅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봄은 늘 더딘 걸음으로 강원도를 찾지요. 아랫녘에선 벌써 꽃잎을 떨어뜨린 배꽃이 삼둔에서는 지금 피어납니다. 들꽃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봄을 놓친 분들, 당장이라도 행장 꾸려 삼둔으로 향할 일입니다. 그 길에 신록이, 들꽃이, 그리고 고요가 함께합니다. ●이름 만큼 예쁜 미산(美山)계곡 홍천의 북쪽 끝자락에서 너른 국도를 버리고 좁은 지방도로 갈아탄다. 내촌면이다. 마을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이름 모를, 그래서 더 신비로운 들꽃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무시로 피었다. 들꽃들이 뿜어내는 봄의 향기를 그 어떤 향수가 필적하랴. 속된 말로, 너무 예뻐 ‘환장’할 지경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미산계곡이 길을 막아선다. 오대산 깊은 골에서 발원한 내린천이 계방천, 자운천 등과 만나 폭을 키운 계곡이다. 홍천과 인제를 아우르며 흘러간다. 미산계곡을 두고 산자락 사이로 실 같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상상하지는 말길. 미산계곡은 어지간한 강과 견줄 만큼 넓고, 또 깊다. 여름이면 리버 버깅 등 각종 레포츠가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미산계곡에 들면 운전자는 오로지 앞만 보시라. 간단없이 펼쳐지는 비경에 한눈팔면 곤란하다. ‘아름다운 뫼’(美山)란 뜻의 이름처럼 계곡을 따라가는 산이 아름답다. 나무 빼곡한 산자락마다 연둣빛 신록이 착색돼 있다. 그 아래로 철쭉 등 들꽃들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지며 선경을 펼쳐낸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우람한 근육질의 계곡을 휘돌아가는 드라이브 코스도 일품. 속까지 드러낼 만큼 맑은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쳐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흘러 간다. 길은 상남삼거리에서부터 미산리를 거쳐 양양까지 이어진다. ●연둣빛 새 잎의 매혹 미산계곡을 지나 삼둔으로 향한다. 주변 50㎞ 안에 1000m 넘는 봉우리만 30여개에 이른다는, 홍천의 대표적 오지다. 병풍처럼 둘러친 험산 아래 평평한 둔덕 셋이 모여 있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삼둔에 이르는 산길의 심기가 영 불편해 보인다. 필경 오지를 찾은 외지인의 발길이 탐탁지 않은 게다. 구절양장 산길을 10분 남짓 오르니 오른편에서 느닷없이 평탄한 들판이 튀어 나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 곳에 강이 흐르고,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삼둔 가운데 첫 번째 마을, 살만한 곳 살둔(생둔·生屯)이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우람한 산들 사이로 내린천이 돌아 나간다. 마을 곳곳의 키 큰 돌배나무에는 이제야 꽃이 맺혔다. 멀리 연둣빛 산 그늘 아래 기이한 집이 하나 보인다. 살둔의 명물, 살둔산장이다. 1985년 지어진 2층짜리 귀틀집. 한때 ‘한국에서 살고 싶은 집 100선’에까지 올랐던 집이다. 바람을 베고 눕는다 해서 ‘침풍루(寢風樓)’, 산이 반 물이 반이라는 뜻에서 ‘산반수반정’(山半水半亭)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살둔산장은 더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 문을 닫아 건 정도가 아니라 접근 조차 못하게 집 주변에 빙둘러 철조망까지 쳐놨다. 한때는 ‘산장에 묵는 사람은 모두가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산장지기의 뜻에 따라 야영객과 숙박객이 함께 밥을 짓고 나눠 먹었던 곳이다. 어떤 사연이 집 주인에게서 세상으로 향한 문을 앗아간 걸까. 살둔산장 앞에는 오래된 목조 ‘국민학교’가 서 있다. 1993년 문을 닫은 원당초등학교 생둔분교다. 녹슨 ‘반공’ ‘방첩’ 구호부터 잣나무와 벚나무까지, 폐교는 세월을 잊고 멈춰 있는 듯하다. 폐교에 활기를 주는 건 캠핑족들이다. 주말이면 생둔분교 운동장은 물론 내린천 둔치 언저리까지 캠퍼들로 가득 찬다. 폐교 당시 멈췄던 시간도 그제야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원시림과 함께 걷는 산길 살둔산장 맞은편, 그러니까 살둔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 아래 멋진 트레킹코스가 숨겨져 있다.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넘어가는 임도다. 거리는 편도 5㎞ 남짓. 살둔마을에서 호랑소를 지나 시멘트포장도로가 끝나면 문암마을 삼거리까지 자갈길과 흙길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가 시작된다. 산길을 자박자박 걷다 보면 어느새 집들은 사라지고, 발 아래 내린천이 따라붙어 ‘살 만한 둔덕’의 진수를 선보인다. 생둔분교 뒤편의 마을안길도 좋다. 내린천을 따라 광원리쪽으로 난 산길로, 편도 2㎞쯤 된다. 길은 유순한 편. 폭 10m 안팎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싱싱한 자연 그대로다. 연둣빛 신록은 짙은 산그늘을 만들고, 수정 같은 계곡물은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스러진다. 휴대전화기를 ‘딱’ 꺼두고 싶은 순간이다. 살둔마을에선 걷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생둔분교 캠퍼에 한해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월둔은 광원리에서 아침가리로 들어가는 구룡덕봉 자락에 있다. 살둔에서 월둔 입구까지는 차로 5분 거리. 하지만 월둔까지는 비포장길이어서 4륜구동 지프차가 아니면 가기 힘들다. 달둔은 월둔 이정표를 지나 양양쪽으로 더 가다 다리골에서 도보로 3㎞ 가량 더 들어가야 한다. 계방산 쪽에 붙어 있다. 계곡이 ‘을’(乙)자 모양이라는 을수골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인적은 찾기 힘들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계곡으로 맑은 계곡수만 쉼 없이 흘러갈 뿐이다. 역시 비포장 험로여서 승용차로는 어렵다. 글 사진 인제·홍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길은 두 가지다. 빠르게 가려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낫다. 동홍천 나들목→44번 국도→철정검문소 우회전→451번 지방도→31번 국도→상남면 소재지 우회전→446번 지방도→미산계곡→살둔마을 순으로 간다.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거쳐 홍천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월둔은 살둔에서 나와 양양쪽으로 가다 첫 번째 270도 급회전길 직전 왼편에 이정표가 있다. 특별히 볼 것은 없다. 달둔은 월둔을 지나 5㎞쯤 직진하면 나온다. 펜션단지 오른쪽의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은행나무숲, 오른쪽은 달둔계곡이다. ▲맛집 부린촌(463-0127)은 냉동 옥돌 위에 내놓는 송어회와 매운탕이 일품이다. 미산마을에 있다. 오대산 내고향 쉼터(435-7787)는 산채정식(1만원, 예약 필수)과 산채비빔밥(7000원)을 잘한다. 달둔계곡에서 양양쪽으로 5분 거리에 있다. ▲잘 곳 살둔마을 생둔분교는 사계절야영캠프(saldun.invil.org)로 활용된다. 7~8월 텐트 1동 당 2만 5000원, 그 외 2만원을 받는다. 여름 성수기에도 30동으로 예약을 제한한다. 전기와 온수, 무선 인터넷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434-3798. 달둔의 티롤(435-5470), 미산계곡민박(463-3049) 등도 깨끗한 편.
  • 문경 ‘십자가시신’ 미스터리

    경북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지방경찰청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4일 “택시기사 출신 김모(58·경남 창원시)씨의 사망 경위를 두고 자살과 특정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의 자살 방조, 혹은 타살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100m쯤 떨어진 김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김씨가 이달 초 자신의 휴대전화로 텐트를 주문해 택배로 배달받았고, 지난 13일엔 경남 김해의 M제재소와 통화한 기록을 확보해 사건과의 연관성을 캐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각목으로 만들어진 높이 187㎝, 가로 180㎝ 크기의 십자가 등 각종 도구들을 김씨가 혼자 제작하고 사용했는지 등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이와 함께 김씨가 2년여 전 가입한 인터넷 종교 관련 카페 운영자가 김씨가 숨진 폐광산에서 4㎞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에 사는 A(53·양봉업자)씨인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의 발등에는 못대가리가 있는 못이 박혀 있는 반면 손등에는 뾰족한 못을 박아 손을 움직이기 쉽게 한 점 등을 감안하면 자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충남 올 오토캠핑장 3곳 조성

    충남 지역에서 오토캠핑장 조성 붐이 일고 있다. 4일 충남도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도내 기초단체들이 건립 중인 오토캠핑장 세 곳이 잇따라 문을 연다. 우선 공주시가 2009년부터 20억 원을 들여 웅진동 고마나루 유원지 일원 3만 1310㎡에 조성해 온 ‘웅진오토캠핑장’이 다음 달 개장한다. 이곳은 캠핑카 주차장과 텐트촌, 취사 시설,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예산군도 오는 12월까지 응봉면 예당관광단지 내 6만 7033㎡에 20억 원을 들여‘예당관광지 오토캠핑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청양군 역시 연말까지 20억 원을 투입해 도내 대표적인 청정 지역인 대치면 작천리 까치내유원지 일원 1만 824㎡에 ‘칠갑산 오토캠핑장’을 조성키로 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동화같은 잔치’에 런던이 들썩인다

    ‘동화같은 잔치’에 런던이 들썩인다

    영국 왕실의 ‘30년 만의 혼례’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영국 사회는 물론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휴가를 낸 영국인들은 세기의 축제를 직접 목도하려고 결혼식장인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 근처로 일찌감치 몰려들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장삼이사부터 총리까지 모두 축제 무드에 흠뻑 빠져든 가운데 영국 경찰만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겠다.”며 위협하는 시위세력 탓에 골머리를 앓는다. ●시내 전망좋은 곳 자리 쟁탈전 치열 결혼식을 이틀 앞둔 27일 런던 시내 곳곳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이 일제히 걸렸고 시민들이 쇼핑가인 리젠트 스트리트 등 도심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부활절 연휴(지난 22~25일)와 공휴일로 지정된 혼례일(29일) 사이에 휴가를 채워넣어 연휴를 만끽하며 축제를 즐길 채비를 했다. 결혼식 당일에는 전국 5500여곳의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 가운데 거리축제가 벌어진다. 오후 11시까지로 제한된 펍(술집)의 주류 판매시간은 2시간 연장한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의 도심 퍼레이드 장면을 또렷하게 지켜볼 수 있는 목 좋은 지역에서는 ‘자리 쟁탈전’까지 불붙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 텐트를 치고 야영 중인 존 라우리(56)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5일 밤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서 “이벤트를 지켜볼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주일쯤 고생하는 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웨스트민스터 성당 안에서는 행사 관계자들이 막바지 준비 작업으로 분주했다. 진행을 맡는 군 요원들은 결혼식에 쓰일 음악과 왕자 커플의 이동경로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주인공인 미들턴도 이틀 뒤 자신의 ‘신데렐라 스토리 1막’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윌리엄 왕자와 함께 치밀하게 리허설을 했다. 세계 20억명에게 결혼식 장면을 중계할 방송매체 등 취재진도 속속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몰려드는 등 분위기가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英경찰 시위세력 차단에 고심 윌리엄 왕자와 평소 친분을 과시해 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새신랑에게 ‘훈수’를 두며 흥을 돋우었다. 캐머런은 윌리엄 왕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조언을 구해오자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모인 캐럴 미들턴과 절대 말다툼을 벌이지 말라.”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한편 결혼식 경비를 맡은 런던 경찰 측은 “왕실 결혼을 방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또 최근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참가자 등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관리되고 있는 트러블메이커 60명에 대해 결혼식 당일 런던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결혼식 경비 총책임자인 크리스틴 존스는 “아직 결혼식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위협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이슬람 강경세력과 입헌군주제 폐지 단체 등이 웨스트민스터 성당 인근에서 집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친절한 한국인에 감동… 평양도 가보고 싶어”

    “친절한 한국인에 감동… 평양도 가보고 싶어”

    “한국은 아직 춥다. 아침 기온 영상 4도의 날씨에 캠핑을 했다.” 자전거로 세계일주 중인 일본인 오구치 료헤이(31)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국에서의 여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일본 하카타항을 출발한 것은 지난 18일. 부산항에 도착해 550㎞를 달린 지 7일 만인 지난 24일 서울에 도착했다. ●삼성·LG 등 제품 보며 한국 영향력 실감 그는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를 다니다 세계 사람들과 만나 문화를 접하고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에 3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자전거로 세계를 달리는 여행은 벌써 세 번째. 2007년 일본과 타이완을 1년간 일주한 데 이어 2009년부터 약 2년간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15개국을 돌았다. 이번에는 4년 동안 아시아·유럽 등의 100개 국가 총 10만㎞를 달릴 계획으로 장도에 올랐다. 바로 옆 나라인 한국을 먼저 오고 싶었지만 출발할 때마다 겨울이어서 자전거로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그는 “이렇게 영향력이 큰 나라가 일본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이제서야 왔다.”면서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제품을 보면서 한국은 늘 궁금한 나라였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축구는 물론이고 도요타 vs 현대차, 파나소닉 vs 삼성 등 한국과 일본은 늘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 보니 일본인에게 매우 친절한 한국 국민들에게 적잖이 감동했다. 서울에서는 올림픽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지냈는데, 물과 주스를 가져다 준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 중이라고 하니까 커피를 주거나 먹을 것을 주더라고요. 특히 식당에서 냉면을 먹을 때 가위를 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더니 친절하게 잘라 주고 설명해 줘서 내심 놀랐어요.” ●“남·북한 모두 평등하게 잘 살았으면” 그는 가고 싶은 곳으로 북한의 평양을 꼽았다. 북한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가 되어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만 북한에 갈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해서 백두산에 꼭 오르고 싶다고도 했다. “TV에서는 늘 미사일이나 김정일 독재정권 등 안 좋은 뉴스만 들었습니다. 직접 그곳에 가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 보면 다르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느꼈어요. 북한도 사람들을 만나 보면 다르지 않을까요?” 그는 남한과 북한이 갈린 것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원래 한 나라였는데 38도선으로 나뉘었다고 들었다.”면서 “같은 문화, 같은 언어인데 왜 분단이 됐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깊은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였는데 남한은 풍족하고, 북한은 빈곤한 모습을 보면서 (통일이 돼서) 평등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구치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에 일시 귀국했다가 이번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비록 큰 피해가 없는 나가노현에 살고 있지만 진도 4 규모의 지진을 느꼈고, 식료품이나 물 등을 사재기하는 모습도 봤다. 그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이 지원물자를 보내준 것에 감동받았다.”면서 “특히 독도,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려울 때도 힘이 돼준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지진 피해와 경제불황에서 이제 겨우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많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 여행부터 자전거 뒷바퀴에 ‘Around the world, Thank you for disaster of japan’(일본 지진에 도와준 전 세계에 감사드린다)라고 쓰인 팻말을 하나 달았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세계가 힘을 모으고 도울 수 있는 계기가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글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악몽이 된 영국 왕실 결혼식 참석 소녀의 꿈

    악몽이 된 영국 왕실 결혼식 참석 소녀의 꿈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며 단식투쟁까지 벌인 소녀가 우여곡절 끝에 유럽까지 건너갔지만 결국 결혼식을 보지 못하게 됐다. 멕시코 출신 에스티발리스 차베스(19)가 영국 입국을 거부 당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국제미아(?) 신세가 됐다고 스페인 현지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소녀의 꿈이 악몽으로 변한 셈이다. 소녀는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지난 21일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스페인을 경유해 영국으로 들어가려던 소녀는 “체류에 필요한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됐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그가 갖고 있던 돈은 760달러(약 80만원) 정도였다. 그에게 유럽행 티켓요금을 대준 멕시코의 로비스트는 “(경비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아)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소녀가 이미 알고 있었다.” 면서 “위험을 불사하고 런던으로 건너갔었다.”고 전했다. 어릴 때부터 영국 왕실을 동경했다는 소녀는 29일 열리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 초청해 달라며 지난 2월 멕시코 주재 영국 대사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16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멕시코의 한 로비스트가 비행기티켓을 지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33년 집권 예멘 대통령도 물러난다

    33년 집권 예멘 대통령도 물러난다

    예멘을 33년째 장기 통치해 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30일 내 조기 퇴진’ 과 ‘연립정부 구성 및 60일 내 대선실시’를 골자로 한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을 전격 수용했다. 야권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조건을 달았다. 집권당이 연립정부의 주도권을 잡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연맹 등 현장에서 시위를 주도해 온 젊은이들은 대통령의 즉각 퇴진 및 집권당 핵심 인사들의 동반 사퇴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협상안을 둘러싼 집권당과 정당들 간의 물밑 접촉 및 힘겨루기가 본격화되는 등 예멘 사태가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또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중동의 재스민 혁명은 다시 활력을 얻게 됐다.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시리아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살레 대통령이 퇴진하면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 이어 중동 및 북아프리카 반정부 시위로 물러나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된다.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GCC가 제시한 중재안에는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측근들에 대한 사후 처벌 면제 방침이 포함돼 있다. 살레 대통령은 30일 안에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 또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통합정부가 퇴진 60일 안에 대통령선거를 실시, 새 대통령을 뽑도록 했다. 야권연합체 공동회합당(JMP)의 야신 노만 의장은 “살레의 집권당이 주도권을 갖는 통합정부 구성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재안은 살레가 지명한 야권 지도자가 통합정부 구성권한을 가지며, 통합정부 내각은 집권당 50%, 야당 40% 및 기타 정당 10%로 구성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주말까지도 중재안에 냉담했던 살레 대통령은 주요 군사령관 등 일부 측근과 주요 부족들이 잇따라 등을 돌리자 집권 국민의회당(GPC)을 통해 중재안을 전격 수용했다.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퇴진 압박을 강화한 것도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예멘에서는 지난 3개월 동안 정권퇴진 시위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만 120명을 넘어선 상태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살레 대통령이 퇴진 입장을 밝히자 성명을 통해 “우리는 GCC의 최근 방안을 환영한다.”면서 “살레 대통령의 권력이양의 시기와 형태가 확인돼야 하며, 이양이 즉각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나 ‘변화의 광장’에서 텐트를 친 채 모여 있는 반정부 시위대는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24일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또 예멘 남부 라히즈에서는 무장한 부족세력과 정부 보안 요원 간 무력 충돌이 불거져 군인과 경찰 4명 등 모두 5명이 숨지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한편 뉴욕타임스 등은 살레를 테러단체 알 카에다 활동에 맞서는 보루로 삼아 왔던 미국이 사회불안이 확대되자 입장을 바꿔 ‘살레 버리기’를 택했다고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시리아 48년만에 비상사태 해제

    시리아 정부가 48년만에 비상사태 해제를 승인했다고 현지 관영 뉴스통신 사나(SANA)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치범 재판을 담당했던 국가보안법정을 철폐하고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하는 새 법안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도 ‘무장봉기’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강온 병행 전략인 셈이다. 시리아 시민들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민주화 시위에서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광범위한 개혁 조치를 시행하라고 요구해 왔다. 집권 바스당이 1963년에 만들어 발령한 비상사태법은 법관의 영장 없이 보안사범을 구속하고 통신망에 대한 감청과 언론매체 통제를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집권 세력은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기 때문에 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시민들은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고 비난해왔다. 유화책과 별도로 내무부는 이날 이슬람 과격단체의 ‘무장봉기’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비상사태 해제라는 시위대의 주요 요구가 받아들여졌으니 시민들이 추가 시위에 나설 경우 강경하게 진압할 것임을 현 체제가 경고한 것이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현 체제는 지난달 15일 남부의 소도시 다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한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해 200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고 인권단체들은 추산하고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1970년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쥔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이 2000년에 사망하자 권력을 승계해 11년째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8일 군경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홈스 시계광장에서 밤샘 시위를 하던 시위대 수백명이 해산명령을 듣지 않자 발포,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현장에 있던 인권운동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AP통신은 시계광장에 모인 시위대 규모는 5000명을 넘었으며 이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가져온 것처럼 알아사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연좌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시위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시위대가 텐트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 시민들은 이들을 위해 음식과 식수를 나눠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외지인 방문 늘면서 약초 씨 말랐어요”

    “외지인 방문 늘면서 약초 씨 말랐어요”

    “외지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지천으로 널려 있던 더덕, 잔대를 비롯한 약초의 씨가 말랐어요.” 태안 해안국립공원 구역에 있는 작은 섬 가의도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가의도는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 서쪽 5㎞에 위치한 면적 2.1㎢의 작은 섬이다. 올해 초 국립공원 구역조정이 되면서 주거시설은 모두 공원구역에서 해제됐다. 이곳에는 33가구 6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달 초부터 해상·해안 국립공원 도서지역의 자연훼손 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 터라 공단 직원과 함께 가의도를 찾았다. 가의도 주민 주만성(71)씨는 “해안 국립공원의 섬 지역은 순찰활동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희귀식물이나 몽돌(수석)을 몰래 반출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가의도 해안은 직격탄을 맞았다. 가의도를 청정구역으로 회복시킨 것은 자원봉사들의 노력이 컸다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서 희귀식물이 많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가의도가 청정구역으로 알려지자 방문객이 늘면서 약초를 비롯한 희귀식물과 몽돌 반출이 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변가 수석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부표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힌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배를 빌려 실어 가는 것도 목격했다고 전해줬다. 가의도엔 민박 외에 별도의 숙박시설이 없다. 따라서 아예 산속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약초를 캐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해안은 밀물 때 반쯤 가려지고, 물이 빠지면 전체가 다 보이는 독립문 바위를 비롯, 기암괴석들이 산재해 있다. 섬은 육쪽 마늘의 원산지로 밭에는 온통 마늘뿐이다. 주민들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은 좋지만 자연자원을 반출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며 공단에서도 순찰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특별 단속팀을 구성해 지역별로 20~30명씩 투입됐고, 경찰과 협조해 현장 단속과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인사]

    ■교육과학기술부 ◇발령 △교육과학기술부(미국 플로리다주립대 파견) 김화진◇승진△장관비서관 노경원△기획담당관 김영곤<과장>△영어교육정책 오석환△평생학습정책 김재금△직업교육지원 김환식△교육정보화 김두연△과기인재기반 박진선△전문대학 박준 ■한국거래소 ◇본부장보 신임 △경영지원 신평호△파생상품시장 김재준◇본부장보 전보△경영지원 조재두△유가증권시장 황성윤△코스닥시장 최홍식 이철재△시장감시 심재승◇파견△KRX국민행복재단 사무국장 강홍기 ■한국건강증진재단 △사무총장 허용 ■한나라당 △정책위 국토해양위 수석전문위원 김병수 ■동부증권 ◇임원 승진 <부사장>△경영지원실장 박무열△Trading사업부장 강석호<상무>△Coverage본부장 신명호△파생〃 김재홍△영남지역〃 강석윤◇사업부장 선임△Wholesale사업부장 허병문◇본부장 전보△영업추진 황봉구△재경2지역 전태웅△재경3지역 김희동△전략점포 서배수△기획관리 김홍곤△인사홍보 이근갑◇팀장 전보△리스크관리팀 장현일△상품전략팀 장석진△마케팅팀 신종현△점포전략팀 김찬구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직속 △미래경영실장 송현종◇네트워크 CIC△C&S사업단장 이형희△스마트 인프라 사업본부장 하호성◇플랫폼 비즈니스△서비스 플랫폼 부문장 이주식△엠-서비스 사업본부장 이한상△플랫폼 전략실장(직무대행) 임종혁△커머스 사업본부장 김수일△뉴미디어 전략본부장(직무대행) 이재환△콘텐트 전략실장 최준◇GMS CIC△경영기획실장 안승윤△경영관리〃 이재호△대외협력〃 정태철△CR〃 하성호 ■르노삼성 ◇임원 승진 △영업본부장 프레데릭 아르토
  •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존자를 한명이라도 구조했어야 했는데….”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가장 늦게 빠져나온 정부 긴급 구조단의 일원으로 지난 23일 귀국한 최종춘(43) 소방장<서울신문 3월 19일 자 3면>은 진한 아쉬움이 남은 듯했다. 이번에 파견된 105명의 구조대원 중 가장 많은 65명을 파견한 중앙119구조대 소속인 최 소방장은 25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했다. 그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시신 18구밖에 수습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나라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의 노력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5년 소방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최 소방장은 지난해 한 정유사가 주관한 최고 영웅 소방관으로 선정돼 ‘제야의 종’ 타종에 나서기도 했다. →23일 귀국해서도 집에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데.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 이후 매뉴얼 얘기가 많았다. 성남공항에 도착해 방사선 검사를 받았지만 국립의료원으로 직행해 종합검진을 한 결과 괜찮다는 판정을 받고 밤 10시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3대의 군 수송기를 이용하느라 시간은 더 걸렸지만 많은 장비, 특히 현지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던 기름 등을 싣고 갈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샤워는 물론 세수도 제대로 못 했다고 들었다. -13일 출국 허가가 떨어졌지만 14일 새벽에야 떠나 실제론 9박 10일을 머물렀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점심은 현장에서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 식량으로 해결했고 아침, 저녁은 컵라면과 햇반으로 때웠다. 주민들이 세수할 물도 아끼는 것을 보고 차마 얼굴을 씻을 수 없어 가져간 물티슈 등으로 닦았고 양치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니가타 소방학교로 옮겨 간 7일째에야 처음 샤워를 했다. 10m가 넘는 쓰나미가 시속 600㎞ 속도로 휩쓴 지역이라 생존자가 버틸 최소한의 공간마저 없어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시신 18구를 수습하는 데 그쳤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그것밖에 못 했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국민들에게 면목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서울, 경기, 강원 등 지방 구조대 대원 40명 중 상당수가 해외 원정이 첫 경험이었는데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아이티 등 재난 현장을 많이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할 때 일본은. -지금까지 중국, 인도, 터키 등 우리보다 발전이 더딘 나라들을 다녀왔는데 처음으로 선진국을 경험했다. 그리고 105명이란 대규모 인원을 파견한 것도 처음이라 낯설었다. 이만한 인력과 장비, 물자를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일본은 사유재산 개념이 확고해 폐허가 된 집이라도 주인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 작업할 수 없었다. 차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입로를 열지 못해 복구가 더뎌지기도 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차츰 ‘일본 문화가 이렇구나.’ 인정하면서 경찰에 입회해 달라고 요청해 잔해를 수색하곤 했다. →일본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데. -시신 발굴 건수를 일절 알리지 말라고 외무성에서 심하게 압박했다. 국민들이 동요한다는 이유였다. 우리도 이를 유념하고 작업했다. 경찰이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한 센다이시 가모지구에서 가끔 마주친 일본인마다 우리를 보곤 두손을 모으며 ‘아리가토!’라고 인사했다. 정말 이따금 서투른 우리말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시신을 인계하면서 경례하거나 일본식으로 두손 모아 예를 갖춰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귀국길에 들른 니가타 공항의 청사 창문에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쇄된 A4용지 여러 장이 붙어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성남공항에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가 영접하러 나와 깜짝 놀랐고 자부심도 느꼈다. →26일 돌아올 예정이었다가 앞당긴 건 일본 요청에 따른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현지에서 하려던 일은 시신 수색보다 생존자 구조였다. 출발이 지연돼 적기를 놓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쓰나미 위력이 워낙 대단했던 터라 더 이상 구조에 희망을 걸 수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일본 정부와 협의해 돌아왔다. →가족들 걱정이 많았겠다. -첫날은 전화가 터지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 전화가 터져 하루 한번, 저녁에 아내(김종희·40), 두 딸과 통화했다. 국내 언론이 일본보다 더 떠들썩했던 것 같다. 아내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시골 부모님들은 대단하셨다. 귀국 후 안부 전화만 드려 죄송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카다피 “美로켓 안 무서워… 나는 건재하다”

    ‘나는 건재하다.’ 지난 16일 이후 4차례에 걸친 다국적군의 공습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2일(현지시간) TV 생중계 연설로 존재를 과시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출구전략을 모색하며 전형적인 양면 전술을 펼치는 양상이다. 카다피는 리비아 국영TV에 모습을 드러내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들(다국적군과 반군)을 물리칠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거듭 나타냈다. 공습 이후 자신이 대피 중이라는 서방 보도를 의식한 듯 그는 “나는 여기 남아있다. 내 집은 여기다. 내 텐트에 머무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장한 표정으로 등장한 그는 특유의 과장된 제스처를 섞어 가며 “우리는 그들의 로켓을 비웃는다.”면서 “그들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수를 쓰든 간에 그들을 무찌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연설한 장소는 다국적군이 20일 공습을 퍼부었던 수도 트리폴리의 관저 겸 기지인 밥 알아지지야였다. 인간방패로 나선 지지자들이 리비아 국기를 들고 그를 맞았다고 국영TV는 전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항전의지와 달리 카다피의 측근들은 출구 찾기에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 abc방송에 출연해 “카다피 측근들이 세계 각국의 리비아 동맹들이 제시한 선택사항을 살펴보고 있다. 카다피 정권이 현 상황에서 벗어날 출구 전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개인적으로 접촉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대신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카다피가 출구전략을 검토한다면 망명카드가 여전히 가능한 방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망명카드는 위험부담이 높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처럼 국제전범재판소행을 맞거나 암살당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차라리 끝까지 항전을 택할 수도 있다고 미 중앙정보부(CIA) 프로파일러 출신인 제로드 포스트는 내다봤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日 정부 각료 1명도 현장 가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어”

    “日 정부 각료 1명도 현장 가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어”

    “지금 일본 정부의 대응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요. 총리 등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됩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직후 재해 현장에 들어가 이재민과 8개월간 고락을 함께 한 오자토 사다토시 당시 재해대책담당상은 각료 한명 현장에 보내지 않는 간 나오토 정부의 대응에 불신을 드러냈다. 22일 오자토 전 재해대책담당상을 중의원 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나. -대재앙이 발생했는데 간 총리 내각의 대신 가운데 1명도 아직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총리 관저가 땀을 흘리지만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대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총리는 전체 상황을 가능한 한 자기가 집약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본래의 총리, 즉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정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총리, 즉 사령탑 아래에 각 분야를 통괄하는 책임자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 문제가 중요하니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맡고, 긴급 지원 물자 수송도 중요하니 그건 다른 대신이 맡아야 한다. →서둘러야 할 대책은. -긴급 의료 대책이 중요하다. 또 물자 수송도 정말 중요하다. 고베 때와 비교해서 재해 지역이 5배다. 게다가 복잡한 피해가 났다. 각 재해 지역, 피난소의 인원과 피해 규모를 파악해서 거기에 어떤 방법으로 긴급 물자를 나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바다로 나를 것인지, 육로로 나를 것인지, 어떤 방법이든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배송 계획을 세우고 경찰에든, 자위대에든, 소방에든 부탁하는 것이다. 보다 빨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물과 가솔린이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 사령탑이 종합 조정을 하고 수요가 있는 부서는 계획을 세워서 일제히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그저께 미군 군함으로 물자를 날라 와서 소방서의 창고에 넣은 뒤 다시 배송하던데 이렇게 하면 2~3일 늦어진다. 중요한 것은 물자를 빨리 재해 지역과 피난민에게 보내는 것이다. →총리의 현지 시찰이 무산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총리는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하고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한다. 도쿄전력에 간다든가, 극히 일부 지역에 간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비중이 낮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재해 담당 대신은 현지에 가지 않고 있는데. -이 시대는 휴대전화가 있어 그 자리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현지에 가야 한다). →오자토 대신은 고베 대지진 사흘 후 담당상에 기용됐다. 그 경위는. -1995년 1월 17일 지진이 발생하고 이틀 동안 국토청 장관이 지진 대책 업무를 겸무하고 있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 무라야마 총리로부터 맡아 달라는 특명이 내려왔다. 남자로서 ‘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언제 현장에 갔나? -총리는 지진 발생 이틀 후 현장을 다녀왔다. 난 그 다음 날 명을 받고 당일 저녁 현지에 들어갔다. 눈으로 보고 직접 겪고, 기민하고 대담하게 손을 써야 하는 게 재해 대책이다. →현장의 재해대책본부는 어떻게 꾸려졌나. -효고현 지사, 고베시장, 현지 국회의원 등 10명 정도와 함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각급 자치단체에 정부 지침을 전달하는 한편 그들의 요청을 청취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사람,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한 각 부처의 우수하고 행동력 있는 인재를 발탁해 내 아래에 모아 줬다. 이런 관료들이 열심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협력했다. 그 인원이 대략 100명이고 여타 부서에서도 지원을 나와 한마음이 돼 일했다. →며칠 정도 현장에 있었나. -그해 9월까지 18회 고베를 왔다 갔다 했다. →어떤 현장 활동을 했나. -행정과 절충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 소방관, 자위대원 등을 격려하고 상담했다. 이른바 구조·복구 작업의 기획 및 감독 역할이었다. →지금은 방위성이 됐지만 당시 방위청 조직에서 자위대를 움직이는 게 힘들었을 텐데. -자위대와 거리를 두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현지에 가 보니 재해 출동 요청이 없었는데도 자위대가 솔선해서 사전 조사라는 명목으로 현지에서 열심히 활동을 펴고 있었다. →주일 미군은 어떤 지원을 했나. -내가 총리에게 명령을 받기 전 미국 측으로부터 “뭐든지 협력하겠다. 항공모함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일본 정부 관료가 (미군 지원과 관련된) 장벽과 절차를 고려해 거절했다. 그렇지만 난 “(우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겠다는 세계인 모두를 환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이틀 전에 미국 제안을 거절한 터라 항공모함은 일본을 떠난 상태였다. 현장에 가 보니 여진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오키나와 미군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그들은 (난민이 생활할) 200인 규모의 텐트 등을 지원해 줬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직접 와 줬다.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선배들이 나에게 조언한 것은 (고베 등이) 종교가 많은 곳인 데다 여러 민족이 혼재해 있는 곳이란 점을 유의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효고현 지사와 고베시장이 별로 사이가 안 좋다는 점도 주의하라고 했다.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하던데. -그렇다. “지휘관이 사소한 걸 얘기하면 부하들이 정신적으로 지친다. 지휘관은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고베 대지진 당시 각 부처 간 알력은 없었나. -정치와 관료가 일체감을 갖는 게 소중하다. 정치인이 “내가 책임을 진다.”고 하면 관료들도 혼란을 느끼지 않고 따라온다. →간 총리가 대연립 구상의 하나로 자민당 총재의 입각을 제의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다. 정당과 정당이 제휴하게 되면 정계 재편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지진과 관련해 한국이 얻을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나. -상대적으로 한국에선 지진이 적다. 이웃 나라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이니 서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쿄에서도 지진이 올 가능성에 대해 어떤 대비가 있어야 할까. -수도를 옮기는 천도론이란 말을 쓰는데, 내가 그 연구회를 국회의원 재직 중에 만들었다. 식료, 모포 등을 축적하는 것도 상당히 위력을 발휘한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기자 @seoul.co.kr ●오자토 사다토시는 누구… 1930년 가고시마현 출생으로, 중의원 9선을 지낸 노() 정치인이다. 1995년 무라야마 내각 당시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재해대책담당상에 전격 기용돼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작업복 차림에 작업모를 쓰고 재해 현장을 누비던 그의 모습은 일본인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줬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느 장관도 현장에 가지 않은 것과 비교해 오자토 당시 재해담당상의 모습이 부각됐다. 집권 자민당 시절 총무처 장관, 홋카이도개발청 장관, 오키나와 개발청장관, 노동대신 등을 지냈다. 당에서는 총무회장, 국회대책위원장 등의 중역을 맡았다. 2002년 자민당의 실력자 가토 고이치가 의원직을 사퇴한 뒤로 파벌을 물려받아 오자토파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오토바이 마니아.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 고향인 규슈에서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일화도 있다. 1997년 하시모토 총리가 록히드 사건으로 사임한 총무처 장관 후임자로 오자토 의원을 지명하면서 오자토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오자토 의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교외를 달리는 중이었다. 결국 한참 뒤에나 전화를 받았고, 곧바로 청바지 차림 그대로 총리 관저로 직행했다. 2005년 정계를 은퇴하고는 지역구를 장남 오자토 야스히로에게 물려줬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카다피 관저 25년만에 또 파괴… 카타르·UAE軍도 동참

    카다피 관저 25년만에 또 파괴… 카타르·UAE軍도 동참

    다국적군의 2차 공습으로 카다피의 관저가 파괴됐지만 다국적군의 대(對)리비아 군사작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러시아와 중국, 아랍연맹 등의 비난 속에서도 1차 공습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에 더해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몇몇 아랍국가들이 공습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리비아 국영TV는 20일(현지시간) 파괴된 카다피의 관저를 공개했다. 관저는 3층짜리 건물로, 카다피가 주로 손님을 맞을 때 사용하는 텐트에서 350m 떨어진 곳이다. 방송은 “폭격으로 관저 인근에서 회색 연기가 계속 솟아올랐고 미사일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아즈다비야 카다피 부대도 폭격 카다피의 관저가 공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1986년 베를린 주둔 미군 테러의 배후로 카다피 정권을 지목하고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이 공습으로 카다피의 한살배기 수양딸이 즉사했고, 관계자 4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카다피는 반미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파손된 관저 건물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지난달 국영TV 연설에서 퇴진 거부 의사를 밝힐 당시 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용한 것도 일종의 ‘저항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란 분석도 있다. 카다피는 리비아 국민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하기 위해 관저 문을 개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다국적군은 2차 공습 때에도 동부의 교통 요충지 아즈다비야 외곽까지 후퇴한 카다피 부대에 추가로 폭탄을 투하했다. 로이터통신은 반군의 말을 인용, “카다피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즈다비야 외곽 지역에 대한 서방 전투기들의 폭격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다국적군, 리비아 추가 공습 준비 다국적군은 리비아에 대한 추가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피터 매케이 캐나다 국방부 장관은 이날 “공군 전투기 6대가 현재 이탈리아 공군기지에 배치돼 있으며 23일까지 리비아 공습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벨기에와 덴마크,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은 전투기와 구축함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카타르와 UAE는 아랍권에서는 최초로 서방의 군사작전 대오에 합류했다. 다국적군은 1차 공격에 참여한 5개국을 포함, 총 13개국으로 구성됐다. 한편 카다피는 반군이 장악한 벵가지 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평화행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관영 뉴스통신사인 자나(JANA)는 “벵가지에서 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위원회가 카다피와 만났다. 이 행사에는 수천명의 민간인 지지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라면서 “이는 리비아의 통합을 방해하고 석유를 약탈하려는 외세의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녹색 행진’으로 이름이 붙은 이번 행사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든 의회주의자들을 포함, 비무장 민간인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통신은 “벵가지를 장악한 반군이 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평화행진 참가자는 일부 무장한 시민들에 의해 보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카다피, 어디에 있나

    카다피, 어디에 있나

    20일 재개된 다국적군의 2차 공습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트리폴리 관저가 파괴되면서 그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거듭된 공습에도 불구하고 외국보다는 보호시설을 갖춘 국내 은거지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추측이다. 리비아 국영TV는 이날 수도 트리폴리 외곽 남쪽에 있는 관저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 건물은 카다피가 평소 국내외 사절을 접견하는 텐트와 불과 50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텐트 역시 심각하게 파손됐다. 카다피가 관저와 함께 사용하는 밥 알아지지아 요새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요새는 1986년 4월 미군 집중공습으로 무너진 후 복구돼 카다피와 가족이 실제 거주해 왔다. 카다피가 폭격 당시 관저 안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동안 카다피는 세력이 확장된 반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줄곧 트리폴리에 머문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이번 폭격을 앞두고 그와 측근들은 이미 모처의 지하 벙커로 피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가 이날 새벽 카다피가 국영TV와의 전화 통화 형식으로 공개한 육성 메시지다. 최근 국영TV 화면에 직접 등장해 항전을 촉구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 카다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육성으로만 등장했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카다피의 전화 메시지가 발표되자 그가 벙커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카다피 벙커가 리비아 내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타임은 카다피가 은신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밥 알아지지아 기지 지하 벙커를 꼽았다. 앞서 1986년 미국 레이건 정부가 트리폴리 관저를 공습했을 때에도 15개월된 카다피의 수양딸은 숨졌지만 그는 살아 남았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방사능 유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은 물론 외국 구조대원들마저 서둘러 귀국하는 가운데 쓰나미가 휩쓸고 간 피해현장에 남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부터 센다이에서 구조 활동을 벌여온 이들은 19일부터 니가타현으로 옮겨 2단계 구조 활동에 나선다. 18일 이동성(53) 긴급구조단장, 최종춘(44) 소방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지 구조 상황을 알아봤다. →센다이에서 구조대원들이 니가타현으로 철수하는데. -이 단장 19일부터 구조작업이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간다. 구조대원 105명 중 3분의1인 35명만 센다이에 남고, 나머지 70명은 니가타로 이동한다. 구조작업에서 복구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타이완 구조대원은 서둘러 귀국했지만 최대한 오래 일본에 남아 이재민들의 재활까지 도울 생각이다. →현재까지 구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해 왔나. -최 소방장 미야기현 시아가마시 니하마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오전 6시에 현장에 와 오후 5시 야영 텐트로 돌아갈 때까지 일본 자위대가 1차로 수색을 마친 지역을 현지 경찰과 함께 돌고 있다. 대부분 출입이 완전히 통제돼 있어 일반인들을 만날 수 없지만 만나는 분들은 깊은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건넨다. →구조 작업 중 어려웠던 점은. -이 단장 구조 작업보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국내의 과도한 관심이 더욱 힘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우리들은 대원들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작은 힘을 보탠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를 영웅시하면 귀국하지 못한다. -최 소방장 쓰나미가 완전히 휩쓸고 지나가서 진흙이 10㎝씩 쌓여 있다. 걸어다니는 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가모지구는 예전의 지형이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수색하느라 힘이 배로 든다. →점심은 제때 챙기나. -최 소방장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식량을 12일치 가져와 점심 때 먹고 아침에는 컵라면 등으로 때우고 있다. 어제(17일) 5일치를 더 공수해 왔다. →국내에서는 구조단 대원들을 많이 걱정한다. -최 소방장 매일 방사능 수치를 점검하고 있다. 0.2~0.3μ㏜가 나온다. 일상생활 수준이어서 계속 남기로 했다.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보호복을 준비해 왔다. 보호복은 피폭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작업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탈출용으로 입겠다는 것이다. 충분히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임병선기자·도쿄 이종락특파원 bsnim@seoul.co.kr
  • 모두 떠났다, 그러나 한국 구조대는…

    영국, 프랑스가 떠났다. 러시아와 타이완도 짐을 쌌다. 10여명으로 구성된 몽골 구조대도 18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각국 구조대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 여전히 일본 동부의 수많은 마을이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에 신음하고 있건만 후쿠시마 공항에 착륙했던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뉴질랜드와 호주의 구조 대원 4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국 구조대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생존자 수색에 여념이 없는 구조대가 있다. 바로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과 14일 잇따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파견된 한국 긴급 구조단 105명.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지고 진흙 속을 헤치며 그 어딘가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생존자를 찾아 지금도 센다이시 아라하마와 다가조시 등을 훑고 있다. 방사능 보호복과 제독약도 다 가져왔다. 시간에 맞춰 방사능 측정도 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현장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외국 구조대를 쳐다보면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이 불쑥불쑥 솟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연일 애를 태우고 있는 가족들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서 생존자 구출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수록 함께 줄어드는 게 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다. “일본을 돕기로 했으면 실제로 돕고 가야 한다.” “이재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구 활동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떳떳하게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동성(53) 단장의 말이다. 긴급 구조단이 일본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인명구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한국의 구조대는 일본의 소방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번에 그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구조 활동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이재민 수송에 이용하는 45인승 버스 2대 비용 90만엔(약 1240만원)도 우리 돈으로 지불했다. 차량에 들어갈 경유 3000ℓ와 휘발유 1000ℓ도 한국에서 공수했다. 파손된 차량과 건물 안, 맨홀 아래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이들은 진흙 범벅인 작업복의 매무시를 고친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이 모두 모여 거수 경례를 하고 묵념을 드린다. 일본의 관습에 따라 손을 모아 명복을 빌기도 한다. 구조 대원들의 정성스러운 시신 수습 모습에 이재민들도 울먹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며느리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회사 동료가 휩쓸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느새 배웠는지 또박또박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해 오는 주민도 생겨났다. 숙소는 재해 현장과 가까운 미야기현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보조운동장에 설치한 텐트다. 며칠 새 강한 눈바람이 날려 텐트 안까지 눈이 불어닥쳤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라고 전한다. 세수도 한국에서 가져간 물티슈로 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자 신문에서 한국 긴급 구조단원들의 구조 활동을 ‘비통의 수색’이라는 제목으로 소상하게 소개했다. 경술국치 101년.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재난 현장에서 두 나라의 새 역사를 조용히 쓰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이색 패션쇼 눈길

    이색 패션쇼 눈길

    지난 9일 서울 한남동에서 열린 등산복 브랜드 ‘몽벨’의 패션쇼에서는 흔히 패션쇼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연출됐다. 등산 재킷의 100% 완전 방수 기능을 자랑하려고 무대 위에서 모델들이 서로 옷에 물을 부은 것. 1.65㎏밖에 나가지 않는 초경량 텐트를 어린이 모델이 들고 무대 위에 직접 설치하기도 했다. 침낭의 가벼움을 강조하기 위해 침낭을 입은 모델은 패션쇼 무대를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여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우종완씨의 아이디어가 담긴 무대였다. 지난달 서울 명동에서는 한겨울에 비키니 수영복 패션쇼가 펼쳐졌다. 호주에서 개발되어 세계적인 유행을 낳은 양털부츠 브랜드인 ‘베어파우’ 패션쇼였다. 양털 부츠는 원래 파도타기를 즐기는 호주인이 개발한 것이다. 쌀쌀한 날씨에 막 바다에서 나온 서퍼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같은 기원을 알리고자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델들이 양털 부츠를 신고 나온 것. 제일모직의 ‘헥사 바이 구호’ 모델들은 패션쇼 도중에 옷을 뒤집어 입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빙의’를 주제로 쇼를 연 ‘헥사 바이 구호’의 옷은 처음에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모델들이 한꺼번에 무대에서 옷을 뒤집어 입자 분홍, 노랑, 초록, 보라 등 형형색색 옷으로 변해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김영환 몽벨 대표는 “연예인 모델을 앞세운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기술력에 초점을 맞춘 이색 패션쇼 무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물·식량·추위와 ‘또다른 싸움’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잃은 이재민 수십만명이 이제는 물과 식량, 추위와 또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야기현의 이재민 32만명은 지진과 쓰나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기쁨도 잠시, 음료와 의약품, 방한복, 모포 등이 턱없이 부족해 체육관 등에서 밤을 지새우며 추위와 고통에 떨고 있다. 이들은 그마나 나은 편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이재민이 고지대와 폐허 더미 위에서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피해 정도가 워낙 심해 구조의 손길이 언제 미칠지 기약할 수도 없다. 나토리 시내 41개 임시 대피소에는 현재 8340여명의 이재민이 수용돼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위치한 후쿠시마현 가와마타에는 3000명이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식량은 이재민의 30% 정도에게만 돌아갈 수 있는 정도여서 어린이와 노인에게 우선적으로 배급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후쿠시마 시내의 주유소와 식료품점,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편의점에도 먹을 것과 식수가 바닥이 났다. 적십자사가 식수탱크를 동원해 임시방편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현재 14개현의 140만 가구에 식수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수도 및 식수공급 회사들은 급한 대로 규슈와 간사이 지방에서 식수를 실은 트럭 210대를 피해 지역으로 보내 이재민에게 먹을 물을 공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구호품의 신속한 운송을 위해 닛폰익스프레스와 야마토운송, 사가와 익스프레스 등 주요 화물회사들을 총동원해 육상으로 식수와 쌀, 라면, 손전등, 기저귀 등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 등 수도권 등지에서 사재기 현상이 심해지면 피해지역에 생필품 등을 우선 공급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복구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한 종합대책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일본 재해당국은 전국에 3만개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텐트 재료를 확보하고 있다. 전염병이 발생할 것에 대비한 방역·위생 대책도 함께 세우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Weekly Healthy Issue] (53) 증상없는 치명적 질환 ‘복부대동맥류’

    [Weekly Healthy Issue] (53) 증상없는 치명적 질환 ‘복부대동맥류’

    생소하지만 치명적인 질환 가운데 복부대동맥류가 있다. 인체의 모든 혈관은 이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특히 이 복부대동맥류가 주목받는 것은 증상이 없고 치명적이어서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열명 중 여섯명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지고, 수술을 받는 나머지 네명도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1세대 영화배우 조지 스캇의 목숨을 앗아간 복부대동맥류는 그 위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유병률이 크게 늘고 있는 복부대동맥류에 대해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센터 조진현 교수로부터 듣는다. ●복부대동맥류란 어떤 질환인가. 동맥류란 정상 동맥보다 직경이 50% 이상 증가하는 상태를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뱃속에 있으면서, 인체에서 가장 큰 동맥인 복부대동맥의 정상 직경은 약 2㎝다. 그런데 이 복부대동맥이 50% 이상 굵어져 3㎝ 이상이 되면 복부대동맥류로 본다. ●복부대동맥류가 왜 문제가 되는가. 복부대동맥류는 특이 증상이 없어 대부분 자신에게 그런 병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그러다가 대동맥류의 크기가 더 커지면 파열되는데, 이 경우 60% 정도가 병원 도착 전에 사망한다. 또 병원에 도착해 수술적 치료가 이뤄지는 나머지 40%도 사망률이 30∼90%에 이른다. ●국내 유병률과 특징적인 발병 추이는. 전체적인 복부대동맥류의 빈도를 조사한 보고는 현재까지 없다. 유사한 사례를 다룬 영국의 부검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병률이 1.3%에서 많게는 12.7%까지 보고되고 있다. 증상이 없는 복부대동맥류의 유병률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연인원 10만명당 3명에서 많게는 117명까지 보고되고 있다. 이런 복부대동맥류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5배나 많은데, 남성의 경우 50세부터 급증해 80세에 가장 많다가 이후 빈도가 낮아진다. 여성은 발병 빈도가 남성보다 10여년이 늦은 60세 이후에 급증한다. 남녀 공히 60세 이상인 사람의 5%가 복부대동맥류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하다. 최근 강동경희대병원이 50세 이상 성인 남녀와 복부대동맥류 가족력을 가진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복부대동맥류 유병률은 1.1%로 나타났다. 특히 복부대동맥류 고위험군인 흡연력이 있는 65세 이상 남성의 경우 유병률이 4.9%로 무척 높았다. 발병 추이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심평원에 의뢰해 2004년 이후 5년간 복부대동맥류를 포함한 동맥류로 치료받은 환자를 조사한 결과 2004년 1872명, 2006년 2489명, 2008년에 3658명 등으로 5년 사이 2배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원인은 무엇인가. 동맥류는 인체의 혈류역학적 문제와 생화학적 변화, 유전성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혈류역학적 원인이란 심장 박동에 따른 스트레스가 동맥벽에 지속적으로 전달돼 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동맥류가 형성되는 경우로, 젊은 층보다 60세 이상의 고령층에 많다. 또 동맥벽을 구성하는 결체조직을 분해하는 효소인 ‘기질단백분해효소(matrix metalloproteinase)’가 증가해 동맥류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인체에는 이런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이 있지만, 그 양이 부족하면 적절하게 분해효소를 통제하지 못해 동맥류가 발생하게 된다. 유전성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 구성원 중에 동맥류 환자가 있으면 다른 가족에게서 동맥류 발생 확률이 무려 18배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과 자가검진은 어떻게. 복부대동맥류는 거의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증상을 보일 때면 상당한 병증의 진행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일부 환자는 배에서 박동성 종괴(덩어리)가 만져지기도 한다. 또 간혹 경미한 복통 또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동맥류 후벽의 침식에 의한 증상으로, 반드시 파열 가능성을 확인해 봐야 한다. 복부대동맥류가 파열되면 혈압이 떨어지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심한 불안감과 함께 점차 의식을 잃는다. 복부대동맥류를 가진 사람에게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 자가검진을 위해서는 편안히 누운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고 명치 끝과 배꼽 사이를 손으로 가볍게 만졌을 때, 심장처럼 박동하는 멍울이 만져지면 복부대동맥류를 의심해 볼 수 있다. ●검사 및 진단방법은. 동맥류는 대부분 건강검진 등 다른 검사 중에 우연히 발견된다. 동맥류를 검사하는 방법으로는 비침습적인 초음파검사가 우선이며, 여기에서 동맥류가 관찰되면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검사를 시행한다. ●치료는 어떻게… 치료법 효용과 한계는. 치료는 개복해 동맥류 발생 부위를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고전적 방법과 방사선으로 투시하면서 스텐트·도관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개복복원술은 개복에 따른 복강 및 폐·심혈관계 합병증이 스텐트·도관삽입술보다 높지만, 안정적인 수술이 이뤄지면 이후 5년 내에 CT검사를 통한 주위 대동맥의 변화를 관찰만 하면 된다. 스텐트·도관삽입술은 개복복원술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조기회복·조기퇴원이 가능하고, 수술에 따른 합병증이 거의 없다. 그러나 시술 후 6∼12개월 간격으로 초음파나 CT를 통한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위해성과 정책적 대안은.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건강은 국가사회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당연히 노인들의 건강관리 비용뿐 아니라 그들의 노동력을 사회에 환원시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복부대동맥류로 인한 노동력 및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전수조사를 통해 유병률과 발병 패턴, 치료 및 예방법을 개발·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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