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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진 같은 반장’

    “반장인 데다 덩치도 크니까 다들 입을 다물고 당하기만 했죠.” 충남 논산경찰서는 9개월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N고등학교 1학년 반장 A군(16)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6일 불구속 입건했다.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A군을 퇴학처분했다. A군은 지난해 3월 중순 같은 반 친구 B군과 어깨를 부딪친 뒤 사과를 받지 않았다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중에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B군을 쇠파이프로 마구 때렸다. 사소하게 시작된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급우들 앞에서 목을 팔로 감싸 안는 이른바 ‘기절놀이’를 벌였고, 더러는 성기를 발로 차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은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B군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C군에게 학력고사 시험 예상 문제를 뽑아오라고 시킨 뒤 잘못 알려줘서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며 주먹을 휘둘렀다. 주로 교사가 없는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같은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급우 3명을 테이프로 의자에 묶어놓고 손바닥과 허벅지를 때리기도 했다. 대부분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해 9월엔 자신의 폭행사실을 알게 된 담임교사로부터 문자메시지로 훈계를 듣게 되자 ‘밀고자’를 색출한다며 C군을 복도로 끌고 나가 걸레 자루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때렸다. 결국 급우들은 그 뒤 침묵하게 됐고 뒤늦게 C군 가족의 신고로 A군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A군은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뉘우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A군은 지난해 3월부터 그해 12월까지 26차례에 걸쳐 3명을 폭행해 전치 2주의 상처도 입혔다. 시계와 현금 등 42만원어치의 금품까지 빼앗은 것으로 밝혀졌다. 폭행이 점점 심해지면서 피해 학생 친척의 신고로 외부에 알려졌다. 경찰은 A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A군이 반성하고 있고 학생인 점 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현대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관록의 탱크냐, 실력파 영건이냐

    골프대회 주최 측이 가장 염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특정 출발 시간대에 누구와 누구를 묶느냐 하는 이른바 ‘페어링’(pairing)이다. 통상 전날 주최 측이 고객이나 VIP들을 초청해 선수들과 동반 플레이를 하게 하는 프로암 대회와 함께 페어링은 대회 흥행을 좌우하는 잣대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가 별 볼일 없는 선수보다 라이벌 필 미켈슨이나 로리 매킬로이 같은 샛별과 나서도록 하는 것이 더 눈길을 끌 테니까 말이다. 국내 여자골프(KLPGA) 투어는 예외 없이 이전 대회 성적에 따라 첫날 조를 짜지만, 남자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 투어에서의 성적보다 누가 더 갤러리와 TV 시청자의 눈길을 끄느냐를 페어링 잣대로 삼는다. 7일 새벽 하와이 마우이섬의 카팔루아 골프장 플랜테이션 코스(파 73·7711야드) 에서 막이 오르는 미프로골프(PGA) 투어 현대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의 페어링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투어 챔피언 20명만 초청한 대회 페어링을 들여다보면, 2명씩 10개로 짜여진 대다수 조가 ‘노련함 vs 젊은 패기’로 짜여졌다. 새벽 5시 35분 올시즌 개막전 첫 라운드의 테이프를 끊게 될 선수는 지난해 10월 프라이스닷컴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린 브라이스 몰더(33)와 3월 푸에르토리코 오픈에서 2년 만에 투어 4승째를 신고한 마이클 브래들리(46·이상 미국)로 13살 차이다. 가장 나이 차가 많은 건 아침 7시 5분 티오프하게 될 키건 브래들리(27)와 데이비드 톰스(45·이상 미국)다. 19년 차의 나이도 그렇지만, 지난해 PGA 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린 브래들리는 통산 PGA 승수가 2승인데 톰스는 13승이나 된다. 둘에 이어 나서는 게리 우드랜드(28)와 스티브 스트리커(45·이상 미국)도 17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다. 지난해 5월 16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소중한 8승째를 올린 최경주(42·SK텔레콤)도 예외는 아니다. 라운드 동반자는 ‘영건’ 애런 배들리(31·호주).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주최 측이 의도한 대로 ‘최경주 조’에서도 패기가 경험을 압도할 수 있다. 프로 데뷔 12년차인 배들리는 PGA 3승을 포함해 유럽과 호주 투어에서 6승이나 올린 실력파. 특히 지난해 노던트러스트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관록의 비제이 싱(49·피지)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최경주-배들리 조는 아침 7시 25분 시즌 개막전 첫 드라이버샷을 날린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이라면 임진년 2, 6, 11월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 공연이 봇물 터지듯 열리기 때문. 2008년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톱 20’ 중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1위), 영국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4위), 독일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6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14위) 등이 한국 팬을 찾아온다. 포트폴리오를 짜지 않고 ‘질러대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잔인하거나 행복하거나 첫 테이프는 2월 21~22일 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가 끊는다. 브람스 교향곡 2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등을 연주한다. 그라모폰 랭킹이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일 베를린필과 오스트리아 빈필을 제친 ‘넘버 1’이다. 2010년에 이어 2년 만의 방한이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점이 눈에 띈다. 2010년 11월 이후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영국 리즈 콩쿠르의 한국인 첫 우승자 김선욱이 피아노를 맡는다. 같은 달 23일에는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려준다. 1750년 바흐 서거 이후 도서관에서 잠을 자던 악보가 빛을 본 건 1829년 멘델스존에 의해서다. 당시 멘델스존은 거의 2년 동안 예행연습에 매달렸다.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망라한 대작인 만큼 연주시간만 3시간이 필요하다. 2004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무대에 기대가 쏠리는 까닭이다. 런던심포니는 러시아 출신 수석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온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프로코피예프(피아노협주곡 3번), 쇼스타코비치(교향곡 5번·바이올린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교향곡 6번) 등 러시아 레퍼토리의 정수를 들려준다. 깊이와 쇼맨십을 두루 갖춘 게르기예프의 능력을 잘 보여줄 선곡이라는 평가다. 피아노 협연은 러시아 출신 데니스 마추예프, 바이올린은 한국 출신 사라 장이다. 마니아들의 공연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3가지 요인(상임지휘자의 직접 지휘, 가장 자신 있는 프로그램 선곡, 협연자와의 궁합)을 모두 충족하는 셈. 1980년대 후반 개혁과 개방의 물결 속에 옛 소련의 오케스트라들은 재정난에 시달린다. 서방으로 짐보따리를 싸던 레닌그라드필과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의 악장·수석급 연주자들을 붙잡아 설립한 게 1990년 창단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다. 산파를 맡은 사람은 명(名)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프. RNO는 객원지휘자에 대해 낯을 가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여년을 함께한 플레트네프가 3년 만의 내한공연 지휘를 맡는다. 한국 관객은 운이 좋다. ●게르기예프와의 최적 궁합은? 11월에는 게르기예프가 한국을 다시 찾는다. 이번에는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다. 1860년 개관한 마린스키극장은 러시아 황실의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로 황금기를 보냈다. 그렇다고 옛 소련 체제 막바지의 침체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게르기예프가 총감독을 맡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각기 다른 악단을 만나 게르기예프의 지휘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다. RCO 내한 때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한 팬이라면 11월을 노려볼 만하다.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이 얀손스와 함께 온다. 바이에른의 내한은 처음. 1949년 창단 때부터 초대 지휘자 오이겐 요훔의 헌신과 방송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 악단은 동유럽의 유능한 연주자를 대거 영입하면서 급성장했다. 2차대전 이후 작곡가 말러가 재평가를 받는 데 공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 내한공연도 반가운데 베토벤 교향곡(2·3·6·7번)을 들고 온다. 기대치가 한껏 치솟는 까닭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청주공예비엔날레 테이프커팅 한국 최고기록 인증

    충북 청주시는 ‘2011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개막식 테이프커팅이 한국기네스북에 국내 최대 규모 테이프커팅으로 등재된다고 3일 밝혔다.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지난해 9월 21일 개막식장인 옛 청주연초 제조창 광장에서 한지로 만든 600m 길이의 테이프를 활용, 1200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테이프 커팅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를 위해 한지 작가와 일반 주민 등 20명이 일주일간 한지테이프를 만들었고, 공예 수강생, 자율방범대원,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등이 커팅식에 초대됐다. 조직위는 폐공장을 활용한 국내 첫 아트 팩토리형 비엔날레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시민참여형 행사를 만들기 위해 이 같은 이벤트를 마련했었다. 한국기록원 관계자는 “시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있었던 테이프 커팅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해 가장 긴 테이프를 자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면서 “이달 중에 청주시를 방문, 최고기록 인증서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직위는 테이프커팅과 관련, 세계기네스북 등재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기록 도전도 추진할 예정이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등장인물 무영(30대 초반·공무원시험 준비 중) 약희(20대 후반·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방역업체 직원 1(40대·제로버그 팀장) 방역업체 직원 2(20대·제로버그 사원) 집주인(40대·중반 여성) 매니저(소리·화장품 매장 관리인) 무 대 왼쪽에 침실과 작은 거실이 딸린 반지하 공간. 햇살을 느낄 수 없으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이다. 거실 벽면 위로 창이 있으나 방충망은 찢기고 구멍도 뚫려 있다. 거실 한편에는 컴퓨터, 벽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고 밑에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걸려 있다. 침실에는 침대와 화장대, 구석에는 아기 침대와 모빌이 달려있다. 중장비의 굉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중장비 소음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할 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크고 뚜렷하게 들린다. 중장비 소음이 들릴 때마다 무영은 귀를 후비는 습관이 있다. 희미한 침실 조명이 켜져 있고 ‘탁’ 하는 짧은 박수소리 한두 번 들린다. 조명 밝아진다. 무영 저희가 안 나가겠다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아무리 월세를 제때 못 낸다 해도 그렇지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약희의 눈치를 보며)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사모님께서 먼저 계약서대로 모기부터 해결부터 해주세요. (사이)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영은 수화기를 휙 던지며 클렌징을 하는 약희의 눈치를 살핀다. 약희 뭐래? 무영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알았대. 약희 (순간 울컥함을 참고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것 봐, 이것 보라구. 어! 여기도 물렸네. 아이 가려워. 에이 정말, 여름만 되면 이놈의 집구석은 모기가 온통 벽에 온통 도배를 해요, 도배를… 얘네들은 날개를 폼으로 달았나? 날개가 있으면 날아올라야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요 앞 40층짜리 탑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놔두고 (무영을 보며) 바닥보다 낮은 이런 곳으로 기어 들어와서 피곤한 사람, 잠도 못 자게 한담. 무영, 약희를 힐끗 보다 다시 허공에 시선을 응시하며 손뼉을 친다. 약희 잡았어? 무영 어 (씩 웃으며 약희에게 빈 손바닥을 펴 보인다.) 약희(다시 거울을 보며) 그 한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모기를 도대체 언제 다 없애겠어? (사이) 다 없앨 수나 있겠어? 좋아, 설사 집안의 모기를 다 잡았다고 쳐. 그럼 뭐해, 좀 있다가 집 밖에 있는 모기들이 주택청약 대기자처럼 얼씨구나 들이댈 거 아냐? 무영 미안해. (표정을 바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기필코 밤을 새워서라도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약희 허구한 날 또 그 소리 (무영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테이프 같으면 벌써 늘어져서 내~~가 책~임진~다. 책임이 뭔지나 아나? 무영 뭐!? 약희 됐어. 그건 그렇고, 난 정말 못 참겠어. 가뜩이나 모기소리가 나면 불면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이젠 편두통까지, 앵앵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구. 이번 여름, 아니 딱 일주일만이라도 모기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무영 (혼잣말로) 난, 자기 잔소리 없는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 약희 뭐야! 잔소리? 그럼 지금 당장 짐 싸. 무영 아니, 내 말은… 약희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잔소리 안 하게 생겼니? 무영(한참 동안 약희의 눈을 피하며) … 약희 이제 집은 어떡할 거야? 이제 보름도 안 남았어. 무영 … 약희 (울컥 치솟는 것을 참으며) 아이 참, 오늘 밤은 또 왜 이리 덥담. 무영 (약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미안해, 여봉~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약희를 안으며)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자기하고 울 희망이, 내가 밤 새워서라도 모기들한테서 지켜줄게. 약희 (무영을 뿌리친 후) 더워 더워, 끈적거려, 붙지 말래두.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어! 빨리 손 안 치워? 무영 (머쓱한 듯 손을 빼며) … 약희 그리고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라는 말 도대체 몇 번째야.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먼저 모기 다 없애기 전까지 내 몸에 손도 대지 마. 무영 (약희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이놈의 모기들 오늘 밤 다 (목소리를 낮추며) 죽었어. 무영은 약희를 계속 쳐다보다가 ‘앵’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탁’ 하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잠시 광기 어린 무영의 얼굴이 살짝 비친 후 조명 꺼진다. 조명 켜지면 창밖에는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보다 커진 중장비 소음이 들려온다. 반바지 차림에 부스스한 몰골의 무영은 처음에는 귀를 후비다가 나중에는 귀를 막는다. 이후 한참 만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약희 지금까지 잔 거야? 무영 아, 아냐, 진작 일어났지. 지금 기출 문제 동영상 강의 듣고 있어. (사이) 정말이야. 자 들어봐. (아이 젖병을 꺼내면서, 목소리를 바꿔) 네, 지난 5년간의 기출문제 유형을 종합하여 정리한다면, 이번 10월에 있을 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7주차 강의는~ 약희 됐어, 됐어. 소리 좀 줄여. 무영 거봐, 날 뭘로 보구. 흠 약희 잊지는 않았지? 자기가 한 약속,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무영 또 또 시작이다. 알았어요. 남자로 아니 가장으로, 아니 좋다. 울 희망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약희 애는? 무영 엉, 지금 분유 타서 먹이려… 때마침 아이 우는 소리 약희 뭐야, 애 분유는 시간 맞춰 먹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알고 있지? 유아들한테 전자 모기향이나 에프킬라, 절대 안 되는 거. 무영 알아 알아. 약희 그저 말로만… 저기 그런데, 오늘 연락… 왔어? 무영 … 약희 (울컥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아이 진짜, 그보다 먼저 진짜 집에 있는 모기 좀 당장 어떻게 좀 해봐. 나 지금 코끝을 물려서 완전 딸기코야. 며칠째 모기가 앵앵거려 잠을 설치니까, 얼굴이 부어서 화장으로도 안 가려지잖아. 무영 … 약희 (갑자기 너스레를 떨며) 그것 때문에 고객들하고 상담할 때 자꾸 얼굴을 숙이니까 매니저가 자꾸 눈치 주는 거 있지. 내가 말했지? 그 사람 성질 더러운 거. 뭐냐, 뉴월드 백화점의 얼굴인 슈넬화장품 직원 태도가 뭐냐구… (사이) 내말 듣고 있지? 무영 … 어. 약희 그리고 집주인이 많이 삐친 것 같으니까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어떡해서든 집주인 비위 잘 맞추고 우리 사정을 잘 말해봐. 무영 (말없이 잠시 침묵하다가) 저기 자기야, 사실… 약희 어? 무영 사실은, 자기 출근하고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었어. 약희 그래! 뭐라구 해? 아니, 자긴 뭐라고 했어? 무영 먼저 모기를 싹 없애 주겠대. 약희 야! 진짜? … 무영 그리고… 약희 그리고? 무영 이번 달까지… 약희 …나가래? 무영 … 약희 그러‥면, 결국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떡하구. 완전히 길바닥에 나앉아 죽으라는 거잖아. 그래서 자긴 뭐랬어? 무영 … 그, 그래도 우리집 구조상 모기를 싹 없애긴 쉽지 않을 거야. 그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사이) 그럼 작성한 계약서대로 모기를 다 없앨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버텨봐야지 뭐. 약희 (끓어오르는 것을 다스리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리고 집주인이 집안에 있는 모기를 진짜 다 없애면 그땐 어떡할 거야? 무영 그땐, … 사정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약희 당신, 분명히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 그럼 이번에야말로 가장의 책임감이 뭔지 보여줘. 아니면 우리 가족 모두 그냥 확! 무영 … 약희 아 네~ 팀장님. (목소리를 낮추며) 나 오늘 저녁에 늦어. 무영 어! 잠깐 …안 되는데. 전화가 끊기자 무영은 뚜뚜뚜뚜 소리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듣다가 전화를 끊는다. 이후 젖병을 든 채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와 창문 등,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아기 침대 쪽에서 모기 잡는 시늉을 하며 한참 동안 좁은 거실을 서성거린다. 이때 귀를 후비면서도 전화기에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 후 결심한 듯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전화기를 내던진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무영 (조심조심 다가가 전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목소리 이무영씨 댁 맞습니까? 무영 그, 그런데요. 목소리 집주인이 김수영씨 맞으시죠?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제로버그? 그런데… 목소리 이 집 주인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당황한 무영이 문을 열자 방역업체 직원1, 2 등장. 방역업체 직원은 빨간 모자에 동일한 유니폼(모기 박멸 프린팅)과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였고, 직원1은 고글을 쓰고 지시봉을, 직원2는 특이한 가방을 들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제로버그입니다. 고객님,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고객님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타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해충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바퀴벌레, 개미, 진드기, 거미, 모기, 집게벌레, 이, 좀벌레, 파리 등등을 박멸하는 곳이죠. 직원1이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2는 무영을 가볍게 밀치며 돋보기를 들고 분주히 집안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무영은 그런 직원2를 힐끗 보다가 다시 직원1을 다시 본다. 무영 (벙벙한 표정으로)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벌써… 방역업체 직원1 (말을 자르며) 스피듭니다, 저희 팀 모토는 스피드 앤 퍼펙트, 다시 말해서 신속 완벽. (명함을 주며) 저희는 스카~이 파트입니다. 무영 스카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하늘, 다시 말해서 날아다니는 해충 중, 피를 빠는 모기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죠. 무영 모기를요? 방역업체 직원1 (고글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들은 바대로 이곳은 모기들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무영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짧게) 아! 걱정 마십시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 집에는 모기가 23마리, 파리가 12마리, 바퀴벌레가 44마리, 그리고 쥐 4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래, 위치는? 방역업체 직원2 다 파악됐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바로 시작하지. 방역업체 직원1과 2. 가방에서 정체 모를 장비와 파리채를 꺼낸 후, 집안을 돌아다니며 체크한 후 구석구석에 커다란 모기박멸 스티커를 붙인다. 그 후 갑자기 책을 꺼내 천장으로 던지고, 파리채를 마구 휘두른다. 이때 무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과 불안한 몸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무영 어어, 저저, 저걸 (이때 방역업체 직원1과 눈이 딱 마주치자) 저, 저기요… 혹시 살충제 같은 것을 뿌리나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방역업체 직원1 (순간 단호한 표정으로) 걱정 마십시오. 저희 회사는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는 두세 차례 손뼉을 치며,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다. 무영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2 어어, 거기 팀장님. 순간 방역업체 직원1, 재빠른 동작으로 손뼉을 친다. (손뼉을 칠 때의 동작은 전통 무예의 한 동작과 유사하다.) 잠시 후 손바닥을 펴 무영에게 보여주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무영도 마지못해 웃음을 짓는다. 방역업체 직원1 (약간 고압적인 자세를 띠며) 잠깐만요, 이무영씨. 이 집에서 모기를 완전히 뿌리를 뽑고 싶으시죠? 무영 무물, 물론~이겠죠. 방역업체 직원1 음, 현실적으로 이 집의 구조상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영 (화색을 띠며) 그, 그런가요? 방역업체 직원1 하지만, 저희가 누구입니까? 해충박멸의 신화 제로버그의 스카이팀. 괜히 스카이가 아니죠. 저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영 아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먼저 이무영씨에게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첫째, 모기는 우리 가족의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영씨, 지긋지긋한 모기를 박멸하고 싶지 않으시나요? 무영 그, 그렇긴 하지만…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그렇다면 마지막은 복창해 주세요. (굳은 표정으로)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지그시 응시하며) 피 무영 (고개를 순간 돌리며) … 방역업체 직원1 (아주 낮은 저음으로) 피 무영 피, 피 방역업체 직원1 피를 빠는…적이다. 무영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피이…를 빠는 적이다. 방역업체 직원1 (분위기를 바꿔 경쾌하게) 일부 모기가 나와 가족의 피를 머금었다고 해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는 감상적인 생각이나 동정은 금물입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개심만이 필요하죠. (다시 힘 있게 주먹을 조금 치켜들며) 둘째, 모기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강압적인 어투로) 애, 애 무영 애, 애 방역업체 직원1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동작마저 따라하며) 애완동물, 애완동물이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취향이 아주 아주 독특한 일부 사람들 중에는 개와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애완동물에 싫증을 느껴, 모기를 애완용 곤충쯤으로 여기고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영을 보며) 자기 몸으로 말이죠.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하하하. 무영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큰 동작으로 손끝을 하늘로 뻗다가 날갯짓을 하며) 셋째, 모기는 천사가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노려보며 힘을 주며) 천사가… 무영 천, 천사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가끔 자신의 옥탑방을 천당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중에는 모기의 앵~ 하는 소리를 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살짝 무영을 응시하며) 이런 사람의 특징은… 무영 (멈칫하다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에요. 방역업체 직원1 넷째, 모기는 여자가 아니다. 무영 (조금 놀라며) 여자, 여자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알고 계시죠? 흡혈을 하는 것은 모두 암컷들인 거. 무영 (어색한 웃음)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그들의 정신세계는 아주 독특해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암컷들에게만, 그래서 모기를 아내나 애인처럼 생각하죠. (몰입하며) 모기가 자기의 몸에 빨대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을 즐기죠. 무영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1 마지막으로… 모기는 집주인이 아니다. 무영 (침을 삼키며) 모기는 집주인, 이…다. 방역업체 직원1 (가늘게 실눈을 뜨며) 흠… 극히 일부의 세입자 중에는 집안에 모기를 대할 때 당황하거나 조금 심한 경우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마치 집주인을 대하듯 말이죠. 지난달에는 모기에게 안방을 내주고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세입자를 봤습니다. 물론 그와 반대인 상황도 있습니다. (무영을 지그시 응시한 채로 점점 다가가며) 그럴 경우 모기소리와 집주인의 목소리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모기소리만 나면 히스테리를 부리죠. 그간 당했던 설움과 쌓였던 분노를 집주인에게 마구마구 쏟아 내듯 말이죠.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며) 네, 고객님께서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기는 100% 박멸 가능합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제 모기를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무영 벌, 벌써요? 방역업체 직원1 스피드 앤 퍼펙트, OK? 방역업체 직원2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들며) 이게 끝까지 남아 있던 놈으로 23마리째입니다. 방역업체 직원1 음, 좋아. (무영을 보며) 그럼 여기 점검 내역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영 … 무영이 마지못해 받은 내역서를 살피며 서명을 망설이자 방역업체 직원1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무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자, 방역업체 직원들의 태도가 서서히 위압적인 태도로 바뀐다. 이에 무영은 마지못해 서명을 하고, 방역업체 직원1은 뭔가를 해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역업체 직원2에게 서류를 건넨다. 무영 그런데, 저기… 방역업체 직원1 네? 무영 (쭈뼛쭈뼛 머뭇거리다가) 아! 쥐나 바퀴벌레 같은 거는… 방역업체 직원1 음. (단호한 표정으로) 스카이, 아까 말씀드렸죠, 저희는 모기 전문입니다. 무영 아하! 스카이 방역업체 직원1 혹시 다른 해충을 박멸하시려면, 바닥 쪽이나, 구멍 쪽으로 연락주세요. 그 팀들도 프롭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저희 제로버그는 과학적이고 완벽한 서비스를 통해 100%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이) 물론 완벽하겠지만요. 방역업체 직원1, 2 목례 후 바로 퇴장하자 전체 조명이 어둡게 깔린다. 무영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후 잠시 우스꽝스럽게 모기 흉내와 함께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 후 한참 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무영은 갑자기 귀를 후비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게 귀를 후빈다. 이때 오른쪽 조명이 들어오면 백화점 유니폼을 입은 약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약간은 울먹이며 매장 매니저에게 경고를 받고 있다. 매니저 이것 보세요. 김약희씨, 이게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매장에서는 절대 기대거나 의자에 앉으면 안 되는 거, 사적인 통화 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주얼, 비주얼 관리, 잘 아시잖아요. (사이) 그런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술 마신 사람 마냥 코끝이 벌겋게 부풀어 있어요? 약희 그게 모기가… 매니저 그 핑계 그만, 이게 벌써 며칠쨉니까? 고객들이 퉁퉁 부은 코에 억지 웃음을 짓는 당신을 보고 우리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싶겠어요?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사이) 죄송 죄송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해보세요. (사이) 요즘 김약희씨를 보니까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아주, 정말, 매우 필요한 것 같군요. (사이) 계약서 내용은 잘 알고 있죠? 약희 …네 매니저 계약 위반 시에는… 약희 … 매니저 됐어요. (사이) 이만 됐구요, 서로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이만 하죠. 다음 주부터는 서로 볼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약희 네!? 매니저 제 말 뜻 아시죠? 김약희씨. 흐느끼며 털썩 주저앉는 약희,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 그리고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무대가 점점 밝아지면 무영은 헤드셋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 현관 문소리가 나면서 약희가 들어온다. 현관 문소리에 무영은 순간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거실로 나온다. 무영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벽시계를 돌아보며) 어! 뭐야, 오늘 늦는다며 일찍 왔네? 약희 (모든 의욕을 상실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무영 뭔 일 있나? 아님, 땡땡이! 약희 (고개를 떨구며) … 무영 (살짝 건드리며) 내가 보고 싶어서 땡땡이 쳤구나. 그렇구나, 맞지? 약희 (말을 끊고 매섭게 노려보며) 나한테 말 시키지 말랬지. 무영 (움찔하다가 눈치를 보며) 왜 그래? 약희 당신은 도대체 뭐야? 마누라는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데, 가장이란 사람이 1시가 넘도록 잠이나 퍼질러 자고, 그러고도 당신이 우리집 가장이라고 할 수 있어? 울 희망이 아빠냐고? 무영 약희야,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약희 됐어. 오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무영 자기,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일하다 말고 집에 와서 약희 듣고 싶지 않다고 했지. (몸서리를 치며) 당신은 몰라. 아무도 내 맘 모른다구. 무영 (순간 당황하며) 아 참, 낮잠 좀 잤다고 그러는 거야? (약희를 달래며) 오늘 동영상 강의 듣다가 너무 졸려서, 알잖아. 며칠째 밤새 자기랑 울 희망이 옆에서 모기 잡은 거. (사이) 매일 힘들게 고생하는 자기하고 울 희망이한테 남편과 아빠로서 해줄 게 있어야지. (가슴을 두드리며) 나만 믿어.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때 이상한 야릇한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러자 무영과 흐느끼던 약희, 동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영이 컴퓨터 앞으로 뛰어간다. 허둥거리며 마우스를 잡는 무영. 잠시 후 무영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약희. 무영 아니, 그게 말이야. 있잖아. 아이 참 (표정을 바꾸며) 자기야 미안. 약희 (이를 악물고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 하지도 마. 당신, 나한테 아니 우리 희망이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무영 (머뭇거리며) 약희야,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렇잖아, 내 사정이… 내가 자기한테 붙으면 덥다고, 피곤하다고,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석 달은 된 것 같다. 그래서 동영상 강의 듣다가 잠깐, 머리 식히려고… 그냥… (살짝 웃으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러잖아. 약희, 어이없는 표정 후 분을 삭이는 표정을 짓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때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약희는 눈물을 훔치며 젖병을 챙겨 아이에게 물리나 칭얼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약희 아가 아가, 괜찮아, 괜찮아. 무영 (약희에게 다가가며) 그러니까… 약희 가까이 오지 마, 당신 불결해. 무영 약희야, 저기… 약희 말하지도 마. 다, 당신, 말소리, 굶주린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무영 (더 가까이 다가가며) 미안해, 내가 약희 (조금 더 악을 쓰며) 가까이 오지 말랬지. 피를 노리는 굶주린 모기…아니 모기보다도 못한… 무영 (멍한 듯 말을 잇지 못하며) 아무리 그래도… (순간 쓴웃음 지으며) 남편한테 모기는 너무, 너무했다. 약희 (어이없는 표정으로) 너무하다고, 너무하다고, 내가 너무하다고. 김약희 내가? 으흐…흐…흑 난 처음에 당신이 생각이 깊은 줄로만 알았어, 또 누군가를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사이) 생각이 깊어? 흐… (손가락을 흔들며) 오, 노~ 당신은, 당신은 우유부단했던 거야. 다른 사람을 배려, 흐흐, 당신은 원래 당신의 밥그릇조차 지킬 용기나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어. 흐…흐 이젠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햇빛도 안 드는 비좁은 이 집, 매니저와 손님의 비위 맞추느라 짓는 억지웃음, 매일 말뿐이고 책임감도 없는 무기력한 당신, 그런 당신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미래 (팔을 휘젓다가 순간 신경질적으로 신발과 책 등을 벽과 천장에 마구 내던지며) 특히 이놈의 성가신, 성가신 모기들도, 그리고 당신도… (폭발하며) 모두 모두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사라져버리라구. 무영 … 약희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무영이 세차게 흐느끼고 있는 약희를 보며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약희가 무영의 손을 가로막으며 돌아선다. 무영은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때부터 조명은 무영의 행동에 집중되며 중장비 굉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무영은 한동안 심장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짐을 느끼며 전화를 받는다. 무영 여, 여보, 여보세요 집주인 (소리만)마침 집에 있었네. 그쪽이 사인한 것 봤어요. 그럼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제 말뜻 아시죠? 그럼 이만. 무영의 심장박동은 더욱 요동치며 점차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조명이 거의 사라질 무렵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무영에게 조명이 집중된다. 무영 그런데, 그런데,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무조건 정해진 날까지 집을 비워달라니요. 저희 세입자 입장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집주인 (소리만)계약서, 계약서, 몰라요? 무영 그래서, 그래서, 조금만 더 배려를… 배려를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번 가을까지, 아니, 다음 달까지라도… 집주인 (소리만)…… 배려라? 누굴 배려? 내가 당신들을? 난, 여태 배려했어요. 내 집에서 살도록 해줬잖아요? 물론 월세지만, 그리고 집세도 못 내는 당신들이 우긴, 그 말도 안 되는 그 요구, 그래서 이렇게 방역업체까지 불러 모기소리도 싹 없애 줬어요. 이만하면 집주인으로서의 충분한 배려 아닌가? 무영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저도 (침을 삼키며) 몇 년간 여기 살면서 집세를 올려달라면 달라는 대로, 수도세 전기세 밀린 적 한번 없이, 때 맞춰 군말 없이 해드렸습니다. 한겨울에 보일러가 터져도, 장마철에는 방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곰팡이가 온 벽을 뒤덮어도, 한여름에는 방충망이 찢겨져서 온갖 해충들이 득실거려도, 그리고 지금처럼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시달려 귀가 멍멍해져도 아무 불평 없이 지냈습니다. (사이) 작년 겨울 실직만 안 했어도 이런 부탁까지는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번 가을에 치를 시험까지라도, 아니 다음 달 우리 애 돌까지만이라도 (무릎을 꿇으며)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소리만)그래요, 듣고 보니 안타깝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를 어쩌나. 부탁은 내가 해야 되겠는 걸. 지금 공사가 지연된다고 재개발 조합에서 난리네요. 계약서대로 세입자를 내보내 집을 비우라구요. 그쪽이 용안 4동 재개발 구역에 거의 끝까지 남은 세대라는 거, 알고는 있었죠? 당신들이 나가야 우리 구역 철거가 마무리되거든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투자를 한 입장에서 손해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 당신들은 계약서대로 나가주면 되는 거예요. 내 말 알아듣죠? 배려라? 배려라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인 것 같은데 무영이 털썩 주저앉자 바로 조명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귀를 막고 머리를 감싸던 무영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소리를 집요하게 찾고, 약희는 집안을 정리한다. 무대가 점차 밝아지면 무대의 가재도구는 모두 정리가 되고 커다란 박스 두어 개와 여행용 가방이 무대 중앙에 있다. 약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달력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벽에 걸린 달력을 뜯는다. 그러자 다음 달력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보인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 귀를 후비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뭔가를 찾고 있다. 약희 (달력을 보며) 뭐해? 무영 … 약희 뭐하냐구? 무영 찾고 있어. 약희 (심드렁하게) 뭘? 무영 (잠시 머뭇거리다가) 있어, 지금 어딘가에 있어. 약희 그러니까 뭐가 있냐구? 무영 (주변을 계속 살피며) 모기 약희 (힐끗 보며) 모기? 무영 안 들려, 소리? 지금 막 몰려오고 있잖아. 봐, 앵~앵 약희 (무영을 쳐다보다가 잠시 귀를 기울이며) 도대체 무슨 소리? 무영 아, 미치겠네. 에이, 도저히 안 되겠다. 무영은 계속 구석구석 살피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약희가 전화를 바로 받는다. 약희 여보세요? 집주인 아직 있었나보네. 약희 … 네. 집주인 하긴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지금 문 앞에 있어요. 약희 네? 알이 큰 색안경에 명품가방을 든 40대 여성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이때도 무영은 집주인을 본 체 만 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집주인 (무영을 힐끗 본 후,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댁 남편한테 이야기는 들었죠? 약희 … 집주인 (색안경을 벗고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런데 갈 곳은 정해졌~ (손잡이가 쑥 들어가자) 어머! 나? 약희 걱정 마세요. 날짜 되면 알아서 나갈 테니까. 무영 (혼잣말로) 어딨더라. 여깄다. (명함을 보며) 오이제로에 제로제로제로제로.   핸드폰 발신 신호 후 제로버그회사의 경쾌한 컬러링이 들린다. 집주인은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내리깔며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집주인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며) 여기, 이사비용하고 남은 보증금, 다 까먹고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약희가 신경질적으로 봉투를 받자) 거, 세어 봐요. 약희 (눈으로 대충 보며) 맞겠죠. 집주인 그런데 모기, 이제 더 없죠? (팔목과 다리를 긁적이며) 어휴, 그런데 왜 이렇게 간지러워. 하긴 이런 구질구질한 데서 내 피부에 트러블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소리 (경쾌한 소리로) 스피디하게 모시겠습니다.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손짓을 하며) 있어요, 우리 집에 모기가 있어요. 커다란 모기떼가 몰려왔어요. 집주인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모기? 소리 네? 잠시 만요, 고객님. 담당자를 바꿔 드릴게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무영 지금 우리집에 난리가 났어요. 어마어마한 모기떼가 몰려오고 있어요. 집주인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모기떼? 방역업체 직원1 네? 이무영씨 이무영씨, 맞죠? 그런데 모기가 있다구요? 그것도 떼로? 무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네. 아주 어마어마한, 그리고 커다란 방역업체 직원1 그럴 리가요? 그럼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나요? 무영 소리가 들려요. (핸드폰을 공중에 대며)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모기떼 소리가 마구마구 들려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음… 바로 출동하죠.   무영이 잠시 큰 동작으로 모기를 쫓는 시늉을 하다가 귀를 막는다. 약희는 이런 무영의 행동에 당황하나, 그렇다고 무영을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무영의 행동에 많이 놀란 눈치이다. 그러다가 잠시 집주인과 무영의 눈이 마주친다. 이때 둘 사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갑자기 무영이 집주인에게 다가가 집주인의 뒷목을 찰싹 친다.   집주인 아! 뭐야? 무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이, 거기가 집주인 목! 모기요? 무영 그러니까 모기가 모게, 모기가 모게… 집주인 네? 모…모기!   집주인이 목 주변을 문지르며 긁다가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본다. 순간 멈추며 무영을 노려보지만, 무영은 무관심하게 계속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바로 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방역업체직원1, 2가 등장한다.   방역업체 직원2 네, 제로버그입니… 무영 빨리요 빨리. 이 모기들 좀, 정말 미치겠어요. 얘네들 좀 보세요. (손가락으로 허공과 집주인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지금도 막 나한테 달려들잖아요.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응시하다가 직원2를 힐끗 보고) 확인하지.   직원2는 바로 장비를 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무영 이놈의 모기들이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앵앵거리다가 지금은 숨어 있는 놈들까지 몰려나와 날 쫓아오는 거예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본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다고 하셨죠? 무영 그, 그럼요.   방역업체 직원1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집주인과 약희에게 동의하느냐고 묻는 손짓을 취하자 약희는 모른 척 눈길을 피하고 집주인은 계속해서 몸을 긁적이며 모기를 피하는 몸짓을 취한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직원1에게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확인 결과 이곳에는 모기는 물론 날파리 한 마리도 없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역시 (무영을 보며) 들으셨죠? 무영 그럴 리가… 지금 이 소리 안 들려요? 지금 막 앵앵거리잖아요. 와, 미치겠네. 여길 보시라니까요. 여기 여기요, 이곳에서 났다가 아니 저기서… 방역업체 직원1 어디? 여기? 도대체 어디요? 한 마리라도 잡아보세요. 무영 (주변을 마구 돌면서 구석구석을 가리키다가 직원1을 돌아보며) 한…마리? 방역업체 직원1 (검지를 흔들며 단호하게) 한 마리! 우리 제로버그 스카이팀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리콜도 없는 퍼펙~팀입니다. 무영 퍼․펙․트! 방역업체 직원1 (짧게) 네, 퍼펙트. 집주인 그, 그럼 뭐야? 아까 내 목을 내리친 것은, 일부러… 이 사람들 안 되겠네. (뒷목의 부여잡으며) 이젠 폭행까지, 아이고 목이야, 아이고 목이야. 약희 폭행이라니요? 모기 잡을 때처럼 살짝 친 것을 가지고 집주인 살짝? 이게 살짝이야?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거기 젊은 총각, 이걸 보라고, 여기 여기, 보이지? 빨갛게 손자국 난 거. 방역업체 직원2 (집주인의 목 가까이 얼굴을 대고 살펴보다가) 제가 보기에는 그냥… 집주인 그냥? 그냥 뭐? 방역업체 직원2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손톱으로 긁은 자국인데요.   어수선한 와중에 무영은 사람들의 대화에서 벗어나 있고 이러한 무영을 방역업체 직원1이 주의 깊게 살핀다.   방역업체 직원1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시, 잠시만요, 음,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무영씨에게 들리는 모기 소리는 일시적인 환청인 듯합니다. 약희 (놀라며) 화,화, 환청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맞습니다. 환청.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환각 현상이죠. 때에 따라서는 환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약희․집주인 !? 방역업체 직원1 환청은 낮은 단계의 벌레 울음소리나 소음과 같은 단순한 잡음에서부터 단계가 높아질수록 뚜렷한 내용이 있는 특정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까지 합니다. 사람 말소리인 경우에는 불쾌감을 주는 간섭이나 욕, 또는 명령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아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죠. (사이) 음… 제가 보기에는 이무영씨는 아직까지 환청의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만,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높은 단계의 환청을 넘어 마약 중독과 유사한 환각 증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약희 그, 그럼, 지금 애아빠의 귀에 헛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이에요. 방역업체 직원1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요. 약희 (무영의 모습을 멍한 듯 바라보며) 그, 그래서 아까도… 어이구, 세상에 집주인 (다리와 몸을 어색하게 긁다가 무영을 노려보며) 뭐야, 그럼 완전히 미친 거잖아? 어쩐지, 아까부터 눈빛이 퀭한 게 이상했어. 흥, 이제 정신병원에 가야겠네. 약희 (순간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이, 당신이 뭔데 남의 남편한테 미쳤다고 해요. 집주인 아니, 이 여자가 누구한테 당신이래. 그리고, 없는 소리가 난다고 우기면 그게 미친 거지. (사이) 아님 뻔한 거지. 모기 소리를 트집 잡아서 여기에 더 눌러앉으려고 하는 수작이겠지 뭐. 누가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알아. 이래 봬도 나 산전수전 겪으면서 당신들 같은 사람 많이 상대해 봤어. 흥~ 약희 눌러앉는다고? 우리가? 여기에? 아무리 없이 산다고 자존심마저 죽지는 않아요. (단호하게) 걱정 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날짜 되면 이곳에서 나갈 테니까.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래요. (무영을 보며) 당,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 집주인 뭘로 보긴, 내 눈에 보이는 데로 보지. (혼잣말로) 딱 보니,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거지네 뭐. 흥~ 약희 뭐 뭐, 뭐라고, 거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집을 빌린 거지 언제 당신한테 구걸을 했어? 집주인 구걸? 흥, 구걸은 아니어도 (무영을 곁눈질하며) 애걸은 했지. 약희 뭐,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집주인 뭐, 이 여자, 이제 갈 곳도 없는 밑바닥 주제에 집주인한테 감히,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약희 (순간 집주인에게 달려가 악을 쓰며) 그래, 그래, 나 이런 밑바닥에 산다. 이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방역업체 직원1, 2가 맞붙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진정시킨다. 그 와중에도 방역업체 직원1은 집주인 편을 간간이 든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해서 모기를 찾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자자자, 이제 그만, 그만하시고 진정하세요.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집주인 놔놔, 이것 안 놔? 깡패처럼 무조건 힘이나 써서 해결하려고 하고. 흥,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분수를 모르면 교양이라도 있어야지. 약희 (악을 쓰며 다시 집주인에게 달려들며 몸싸움을 하며) 뭐라구? 깡패? 교양? 그래, 나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한동안 엉겨 붙어 있다가 약희가 순간 엉엉 오열하며) 이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구.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들 두세요. 사모님, 사모님이 먼저 참으세요. 새댁도 진정을, 우선 진정부터 해요. (약희를 진정시키며) 그리고 새댁, 남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 괜찮아질 겁니다. (둘 사이가 조금 누그러지자) 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도 집에선 모기소리와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누라가 모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마누라를 보며 모기 때려잡는 생각을 합니다. (모기 잡는 동작을 취하며) 이렇게요. 이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죠. (직원 2를 곁눈질하며) 안, 안 그런가? 방역업체 직원2 아 아, 네. (직원 1을 곁눈질하며) 사실 저도… 가끔 작업할 때 모기소리와 팀장님 목소리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는데요, 그땐 이렇게… 방역업체 직원1 (싸늘한 미소로 직원2를 노려보며) 그래? 그래서 모기를 잡을 때 개잡듯이 후려치나? 방역업체 직원2 (뻘쭘한 표정)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방역업체 직원1 (표정을 확 달리하며) 환청은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죠. 약희 (멍한 무영을 순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기야, 무슨 말이든 말 좀 해봐. 집주인 이분들께서는 이 세상에서 배려와 관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흥~ 약희 (순간 매서운 눈매로 노려보며)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 (절도 있는 자세로) 그럼 이만, 저희 제로버그의 리콜 서비스는 고객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무제한 달려갑니다. 추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집주인 어머나! 내 정신, 어머, 시간 좀 봐. 나도 늦었네. 오늘 계모임이 있었는데… 알죠, 내일 모레까지인 거. 약속이나 지켜요. 약희 맘 푹 놓으세요. 설사 붙잡아도 더러워서 나갑니다. 흥~ 방역업체 직원1, 2 퇴장. 집주인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무영은 계속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없이 모기 잡는 행동을 취한다. 그런 무영을 약희는 흐느끼며 바라본다. 이 와중에도 중장비의 소음은 계속된다. 얼마 후 무영은 축 처진 채로 의자에 앉는다. 약희 (맥이 풀린 듯 울먹이며) 그런데 자기야, 이제 우리, 우리, 어떡하지? 무영 진짜 들렸는데… 지금도, 지금도 분명히 들리는데 약희, 망설이다가 무영의 뒤로 가서 조용히 어깨를 감싸자, 잠시 후 무영은 약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명이 꺼진다. 공사장 착암기 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울린다. 실내조명이 켜지자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고 시간이 갈수록 중장비 소음은 커지면서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약희 (몸을 일으켜 무영을 보며) 소리 들려? 무영 뭐? 약희 이 소리? 잘 들어봐. 무영 … 약희 이거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벌써 가을이 오려나? 무영 (심드렁하게) 나도 알아. 모기소리가 아닌 거, 귀뚜라미 소리인 거. 약희 (사이) 삐쳤어? 무영 뭐가? 약희 아니다. 무영, 약희…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실내 연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영 맞다. 조금 전에 하려던 말, 뭐야? 약희 (망설이다가 잔기침을 하며)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무영 뭐? 약희 (뜸을 들이며) 엊그제… 자기한테 모기 같다고 말하고 확 뛰쳐나간 거. (사이) 그때는 모든 게 자기 탓 같았어. 자기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원망스러워서 울컥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자기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라도 당신 편이 되었어야 했는데… (기침을 하며) 그래서 환청이 들렸나 싶어지구… (속삭이듯) 미안해. 무영 (홱 돌아서 등을 보이며) 스트레스가 확 더 쌓인다. 약희 (의아한 듯) 뭐? 무영 (귀를 파며) 환청이 들려. 예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가 방금 내 귀에 들렸거든. 약희 (무영의 몸을 뒤집으며) 뭐야? 무영, 휙 뒤돌며 약희를 안는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애정이 담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무영이 기침을 하자 약희의 구토가 시작된다. 약희 (구토를 참으며) 나… 나, 괜찮아. 무영 미안해. 약희 … 무영 고마워, 함께해 줘서… 약희 난 편안해. 아무 말 (기침을 하며) 하지 마. 무영, 약희… 약희 아, 덥다. … 우린, 우린 그 약속은 지킬 수 있을까? (사이) 집주인한테 무영 (한참 생각하다가) 아마도 이때 무영과 약희는 한참 동안 기침과 구토를 반복한다. 한참 후 쪼그려 앉아 있던 무영이 무엇에 집중을 하며 귀를 기울인다. 무영 소리 들려? 약희 … 뭐? 무영 그러지 말고 잘 들어봐. 약희 (기침을 하며) … 무영 자자, (기침을 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우리의 처음을 생각해봐. 약희 처음? (사이) 처음이라… (기침 후 구토를 하며) 우리한테도 처음이 있었나? 무영 생각 안 나? 5년 전쯤에, 왜 있잖아, 강촌으로 동아리 MT 갔었을 때, (기침 후 헛구역질을 하며) 전혀? 음… 무영이 한참 헛구역질을 한 후, 엎드려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손가락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자 연기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비눗방울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한다. 무영 그럼 이 소리 좀 들어봐. 약희 소리? 무슨 소리가 나? 무영 잘 들어봐. 약희 (짧지만 심한 구토 후 웃으며) 혹시 자기, 또 환청 아냐? 무영 (진지하게) 지금 장난 아니야, (기침을 하며)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그리고 찾아봐. 약희 (조금 진지하게 살짝 눈을 감으며) 음… 들려. 물 떨어지는 소리랑, 계량기 돌아가는 소리, 음… 위층에서도, 어? 그 사람들, 그거 하나 부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침을 하며) 에이, 부럽당~ 무영 참, 그런 소리 말고. 자, 마음을 편하게 눈을 감아. 그리고 천천히 집중해봐. 약희, 잠시 망설이다가 심호흡 후 진지하게 몰입한다. 점차 몽환적인 음악이 들릴 듯 말듯 울려 퍼지고, 이와 함께 환상적인 조명이 시작된다. 약희 음… 어! 이게 뭐지? 뭔가 들려, 음… 물소리랑, 바람소리 (일어나며) 어어, 잠깐 이건… 무영 들리지? 그럼 좀 더 주위 소리들을 찾아 봐, 그리고 느껴 봐. 약희 (다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 귀뚜라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 어~어, 새소리도 들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순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좀 더 깊이 빠져들며) 이 소리 이 느낌, 왠지 낯설지 않아. 무영 이제 그럼 눈을 감고 소리가 느껴지는 곳을 찾아가 봐. 약희 (무영의 어깨를 짚은 채 천천히 일어나 걸으며)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편안함, 그리고 설렘… 그러면, 그러면, 여기는… 아! 조명이 꺼진다. 환상적인 조명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사라지면서 앳된 약희의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는 희미한 조명이 비춘다. 이때 분위기는 아늑한 꿈결 같은 분위기이다. 그 후 점차 계곡 물소리와 개구리소리, 새소리가 뒤섞인 자연의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다. 새소리는 뻐꾸기 소리이다. 약희 (황홀함과 나른함이 교차한 느낌, 그리고 혀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여, 여, 여긴, 그러고 보니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 새소리도 들리네. 음, 이게 무슨 새더라? 딱따구리 소린가? 아니면… 부엉이? (이때 ‘뻐꾹’ 하는 소리가 들리자 손뼉을 치며) 아, 맞네요. 뻐꾸기. 역시~ 무영 선배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근데… 저기요, 선배님. 자꾸 선배님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그, 그러니까, 저기… 저는, 위로 오빠가 셋인데요, …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요, 그러니까, 저기 (사이) 그냥 오빠라고 하면 안 돼요? … 왜, 왜 말씀이 없으세요? … 네에! 진짜, 진짜루요? (한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하늘을 보며) 무영, 무·영·오·빠. 그런데요, 하늘에 별이, 별이 보여요. 아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영 (소리)약희야! 야, 김약희, 너? 너! 약희 어… 어! 내 속에서 뭔가,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아. 잠깐만 여기서, 여기서 잠시 쉴래요. 약희 가 서서히 쓰러진 채로 눈을 감자 조명이 꺼진다. 잠시 후 급한 소방차의 경적소리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무전소리 오전 02시 18분, 용안 4동 재개발 B-02지구 상황 발생. 도로 사정으로 소방차는 진입 불가능하며, 가스중독으로 인한 일가족 3명은 현재 후송 중, 이상. 조명이 꺼진다.
  • 내년부터 ‘중도 퇴실’ 못한다

    내년부터 ‘중도 퇴실’ 못한다

    내년 국가자격시험 시행일정이 공고됐다. 21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내년도 변리사 시험 원서접수는 1월 9~18일, 1차 시험은 2월 26일, 2차 시험은 7월 21~22일 치러지며 최종합격자 발표는 11월 14일이다. 공인노무사 시험은 5월 7~16일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1차 시험은 6월 9일, 2차 시험은 8월 4~5일, 3차 시험은 10월 13~14일 치러지며, 최종 합격자 발표는 10월 24일이다. 주 5일 수업·근무제 확대에 따라 공인노무사를 비롯해 기술지도사, 경비지도사 등 8개 자격증 시험이 내년부터 토요일에 실시된다. 또 감정평가사 시험은 원서접수 5월 14~23일, 1차 시험 7월 1일, 2차 시험 9월 9일, 최종합격자 발표 12월 12일 순으로 진행된다. 주택관리사보 시험은 원서접수 6월 4~13일, 1차 시험 7월 15일, 2차 시험은 9월 23일에, 최종합격자 발표는 10월 31일로 예정됐다. 주택관리사보는 1~2차 시험에서 일부 과목의 출제비율이 변경됐다. 1차 시험에서는 민법 과목의 세부 출제비율이 일부 조정됐고, 2차 시험에서는 주관식 문항수가 8문제에서 16문제로 늘어난다. 또 주택관리관계법규 과목에서 법령별 출제비율이 이전과 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공단 홈페이지(www.q-net.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공인중개사 시험은 8월 13~22일 원서접수, 10월 28일 1·2차 시험, 11월 28일 최종합격자가 발표된다. 그 밖에도 일부 시험 실시 요령도 바뀌었다. 공단은 “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중도 퇴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배탈, 설사 등 긴급사항 발생 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으나 재입실이 불가능하고 해당 과목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시험본부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객관식 시험에서 수정테이프 사용을 허용하되 불완전한 수정으로 인한 전산 자동기기의 판독불가에 따른 불이익은 수험생이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대학 공부를 하겠다는 아내에게 불만을 가진 방글라데시의 한 남편이 아내의 오른쪽 다섯 손가락 모두를 절단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매체 더 데일리 스타 보도에 의하면 2008년에 결혼한 라피쿨 이슬람(30)은 최근 아내 하와 아크타르(21)가 자신의 허락 없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에서 파견 노동자일을 하는 이슬람은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 “누이의 집으로 선물을 보냈으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4일 오전 8시경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는 누이 집에서 아내를 만난 이슬람은 아내에게 “깜짝 선물이 있다.”며 아내의 눈을 스카프로 가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아내의 입을 테이프로 붙이고, 손을 묶고는 오른쪽 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너의 공부를 끝내 주겠어.” 라고 말을 한 후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잘라냈다. 비명을 듣고 방으로 들어온 그의 누이와 그녀의 남편은 사전에 공모를 한 듯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도 없이 그저 바닥의 피를 닦기만 했다. 이슬람은 잘려진 손가락을 다시 붙일 수 없도록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크타르의 고통 호소에 결국 사건 발생 3시간 만인 11시경 병원으로 데려가던 그들은 심지어 “이 일을 발설하면 차에서 던져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진단 후 절단된 손가락을 찾아오라는 의사의 종용에 쓰레기통에서 4개의 손가락만을 찾아왔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 접합수술이 불가능 했다. 남편을 체포한 방글라데시 경찰은 “8년의 기본 과정만을 마친 남편이 아내가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질투를 느껴 자행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편의 재판정 앞에는 연일 수백 명의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그의 종신형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부모 집에 머물고 있는 아크타르는 “비록 오른쪽 손가락이 없지만 왼손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고학력에 불만을 가진 남편들의 엽기적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다카 대학교에 조교수로 일하는 아내의 한 눈을 파낸 실업자 남편이 검거돼 충격을 던졌다. 사진=The Daily Star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독자의 소리] 미아방지를 위한 부모의 선택/서울강남경찰서 홍보팀장 경위 백대현

    여행을 갔다가 아이를 인파 속에서 놓치거나 밤이 늦도록 자녀가 귀가하지 않을 때 부모 속은 타들어 간다. 그러나 다행히 위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2008년 인천시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자녀 지문 사전 등록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부모의 요청이 있거나 14세가 되면 자동 폐기된다고 하니 인권침해 요소도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경찰청 대행업체 직원들이 어린이 집을 직접 방문해 등록 신청을 받거나 보호자의 사전 동의가 이뤄진 경우 등록해 준다고 한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검정 물감을 손가락에 칠한 뒤 종이에 찍어 두거나 투명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지문을 떠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가까운 경찰서로 가도 된다. 현재 강남경찰서도 견학을 신청한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지문을 채취한 뒤 돌려준다. 내 아이를 위한 길,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울강남경찰서 홍보팀장 경위 백대현
  • [커버스토리-누군가 엿 보고 있다] 넘쳐나는 사생활 동영상

    [커버스토리-누군가 엿 보고 있다] 넘쳐나는 사생활 동영상

    1998년 6월 사회를 들썩이게 한 이른바 ‘O양 비디오 사건’이 터졌다. 상당한 파문을 감안해 서울지검 강력부가 수사에 나섰다. 발단은 당시 잘나가던 탤런트가 자신의 성행위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의 유출 경위를 밝혀 달라고 검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비롯됐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비디오테이프가 손에서 손으로 건네져 복사되고,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파장력은 지금의 인터넷 동영상 유출을 능가했다. 2년 후 ‘제2의 O양 사건’이라는 동영상 유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인기를 누리던 여가수가 연인 관계인 음악 프로듀서와 함께 찍은 성행위 동영상이 유출된 것이다. 성과 관련된 사진물의 제작과 유출은 연예인의 것이 시초였다. 1994년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여배우의 전 매니저가 의문의 피살체로 발견됐는데, 그 매니저가 죽기 전 신인 시절의 여배우를 협박할 용도로 나체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요즘에도 연예인의 사생활을 담은 동영상에 대한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돈다. 동영상의 형태가 디지털 데이터 파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개인의 은밀한 부분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공개하는 게 비단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O양 비디오가 공개되기 2년 전인 1996년 이른바 ‘빨간 마후라’라는 제목의 비디오는 중학교 2학년 학생 3명이 성행위를 찍고, 이를 친구들끼리 돌려 본 것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2000년대 이후 급격히 확산된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실명까지 거론되는 여성들이나 연인들의 성행위 동영상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후 동영상은 젊은 연인끼리 기념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노출증에서 비롯된 제작물도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주부나 홀로 사는 여성이 돈벌이를 위해 동영상을 제작, 판매를 맡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한 청년이 중고로 사들인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복원했다가 젊은 부부의 적나라한 사생활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발견, 이를 인터넷에 공개해 적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단순히 은밀한 생활을 탐닉하려고 찍은 동영상이 자칫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마는 일이 주변에서 종종 발생한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인기 로봇청소기 3개 제품 직접 써보니

    인기 로봇청소기 3개 제품 직접 써보니

    최근 온라인 전문조사기관 패널인사이트가 25~49세 ‘워킹맘’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로 57%가 ‘청소’를 1위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출근 준비나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쁠 때 스스로 알아서 집 안 먼지를 제거하고 걸레질까지 해 놓는 로봇청소기야말로 워킹맘들의 ‘구세주’가 아닐 수 없다.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아이로봇(미국)사가 직접 추천한 자사 청소기 제품들을 빌려 써 봤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전자 ‘탱고’ -먼지 양 측정 ‘스마트 터보’ 인상적 삼성전자 ‘스마트 탱고’(VC-RM84V)는 2개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해 다른 제품들보다 좀 더 빨리 청소를 마칠 수 있다. 바닥에 있는 먼지의 양을 측정해 먼지가 많은 곳에서는 스스로 ‘터보모드’로 전환해 강하게 청소해 주는 ‘스마트 터보’ 기능이 인상적이다. 바닥에 자기테이프를 붙여 문턱이나 현관 등에 제품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도 독창적이다. 다만 소리가 좀 크고, 안내 음성이 다소 길다는 게 아쉽다. 인터넷 최저가 58만원대. ■ LG전자 ‘로보킹 듀얼아이’ -세계 최저 소음·장애물 회피 뛰어나 LG전자의 ‘로보킹 듀얼아이’(VR6173LVM)는 제품들 가운데 소음이 가장 적었다. 세계 최저 소음 수준인 48데시벨(㏈)을 구현했다는 게 업체의 설명. 통상 조용한 사무실의 소음이 50㏈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까지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청소기를 돌리고 동시에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집 안 장애물들을 능수능란하게 피해 청소하는 능력도 다른 제품들보다 나았고, 청소기가 스스로 자신의 고장을 진단하는 ‘스마트 기능’도 인상적이다. 인터넷 최저가 51만원대. ■아이로봇 ‘룸바 780’ -‘가상벽’특허로 세밀한 청소 강점 아이로봇의 최신작 ‘룸바 700시리즈’(룸바 780)는 벽을 따라 주행하며 바닥면을 모서리까지 꼼꼼하고 힘있게 청소하는 게 좋았다. 룸바만의 특허기술인 ‘사이버 월’(가상 벽)을 이용해 집 안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세밀한 청소를 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다만 이 제품은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미국인 가정을 기준으로 만든 제품이라 우리와는 다소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다른 제품들보다 소음이 큰 점도 거슬릴 수 있다. 인터넷 최저가 89만원대. ●해당 제품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기자 블로그(ryu.blog.seoul.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독자의 소리] 미아방지를 위한 부모의 선택/서울강남경찰서 홍보팀장 경위 백대현

    여행을 갔다가 아이를 인파 속에 놓치거나 밤이 늦도록 자녀가 귀가하지 않을 때 부모 속은 타들어 간다. 그러나 다행히 위험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2008년 인천시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자녀 지문 사전등록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부모의 요청이 있거나 14세가 되면 자동 폐기가 된다고 하니 인권침해 요소도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경찰청 대행업체 직원들이 어린이 집을 직접 방문해 등록 신청을 받거나 보호자의 사전 동의가 이뤄진 경우 등록해 준다고 한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검정 물감을 손가락에 칠한 후 종이에 찍어 두거나 투명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지문을 떠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가까운 경찰서로 와도 된다. 현재 우리 강남경찰서도 견학을 신청한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지문을 채취한 뒤 돌려준다. 내 아이를 위한 길,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울강남경찰서 홍보팀장 경위 백대현
  • ‘코끼리 밥솥’ 日 조지루시 전 부사장 사망

    ‘코끼리 밥솥’ 日 조지루시 전 부사장 사망

     한국에서 ‘코끼리밥솥’이라고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주방제품 업체 조지루시(Zojirushi)사의 전 부사장이 자택에서 살해됐다.  일본 언론들은 5일 오자키 소슈(84) 전 조지루시사 부사장이 오사카 사카이시 자택 2층 창고에서 숨진채 발견됐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오자키 전 부사장은 지난 1일 오전 10시20분쯤 비닐 테이프와 랩으로 얼굴이 밀봉된 채 발견됐다. 손발이 묶여있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자키 전 부사장은 발견 당시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었지만 병원에 옮겨진 뒤 산소 결핍으로 결국 사망했다.  신고자는 오자키 전 부사장의 주거래 은행에서 나온 집세 수금원이었다. 그는 전날 오자키 부사장과 통화를 해 이날 오전 9시 25분쯤 집세를 받으러 가기로 약속한 뒤 자택에 방문했다가 인기척이 없자 경비회사에 연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경찰은 오자키 전 부사장이 월말마다 준비하는 집세 80만엔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은 점,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뒷문이 열려 있는 점 등을 들어 돈을 노린 강도의 소행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자키 전 부사장의 얼굴에는 몇 개의 가벼운 멍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밖에 시신에서 특별한 몸싸움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령의 오자키 전 부사장이 이른 아침에 들이닥친 강도에게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제압당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오자키 전 부사장은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산와은행 이사 등을 거쳐 조지루시 부사장을 역임하다 1999년 퇴직했다. 이후 국제장학재단에서 활동하는 등 외국인 유학생 지원에 힘써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어머니가’ 펴낸 박청수 원불교 교무 “어머니 가르침으로 세계인의 엄마 됐죠”

    ‘어머니가’ 펴낸 박청수 원불교 교무 “어머니 가르침으로 세계인의 엄마 됐죠”

    “시집, 그까짓 시집 무엇하러 갈 것이냐? 다른 길이 있는 줄을 모르면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을 안 갈 도리가 없지만, 더 좋은 길이 있는데 무엇하러 시집을 갈 것이냐? 너는 커서 꼭 교무(원불교 교역자)가 되어라. 기왕이면 한평생 많은 사람을 위해 살고 큰 살림을 해라.” ●“침묵·명상속 마침표 잘 찍을 것” 원불교 박청수(74) 교무가 위와 같은 가르침을 남긴 어머니에 대한 책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한길사 펴냄)을 내고 28일 기자들과 만났다. 책에는 그에게 “나는 외손주를 등에 업고 싶지 않다. 사위 절도 받고 싶지 않다.”며 큰일을 하라고 등 떠민 어머니(김창원, 2008년 작고)와 50여년간 55개국을 돌며 무지, 빈곤, 질병 퇴치에 힘쓴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처럼 조근조근 담겨 있다. 박 교무는 “컴퓨터를 할 줄 몰라 직접 쓴 원고 내용이 토씨 한 자도 바뀌면 안 된다고 출판사에 강조했다.”며 “독자는 책 한 권을 설렁설렁 보는 수도 있지만 (올 1월 작고한) 박완서 선생이 말씀하셨듯 필자는 다 피로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서울 원불교 강남교당을 은퇴하고 경기 용인시 사암리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 혼자 머무는 그는 “이번이 마지막 책이다. 앞으로는 침묵과 명상 속에서 인생 마침표를 잘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무의 봉사활동이 빛나는 것은 종교와 정치, 국적 등 모든 경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여년간 봉사와 모금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법정 스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또 천주교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에서 31년간 나환자를 도왔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따지지 않고 많은 종교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종교 협력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노벨상 후보 오른 ‘한국의 테레사’ 캄보디아와 히말라야에 병원을 세우고 탈북청소년을 위해 학교를 만들 때도 원불교의 교리를 알리기보다는 그저 “엄마 같은 마음으로” 달려가서 도왔다. 언제부턴가 이름 앞에 ‘한국의 마더 테레사’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지난해에는 노벨위원회의 유일한 아시아인 선임자문관인 한영우 박사가 스웨덴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좋은 소식이 있다. 한국인 수상 가능 대상자가 한 명 있다.”며 박 교무가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음을 알려줬다. 박 교무의 어머니는 27살에 홀로 되어 자매를 모두 원불교의 정녀(貞女)로 길러냈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딸들이 ‘세계인의 엄마’가 되도록 가르친 여성이었다. 박 교무는 “난 세계적인 사람”이라며 “20년간 ‘민병철 생활영어’ 테이프로 공부해 비록 쓰지는 못하지만 영어로 자유로운 회화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50년을 하루같이 봉사를 일로 삼고 했더니 작은 것이 커지고 숨은 게 드러났다.”는 게 박 교무의 얘기다. 책에는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박완서 작가 등 그의 봉사를 도운 여러 고마운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성큼’

    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성큼’

    20세기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석유였다. 막대한 매장량과 무한에 가까운 용도를 자랑하는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릴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자동차 등 교통수단부터 냉·난방용 연료, 전기 발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은 석유 위에서 이뤄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용해도 줄어들 것 같지 않던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또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등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불명예까지 떠안으며 ‘퇴출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석유의 뒤를 이을 ‘새로운 황금’은 무엇일까.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대상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물질 ‘그래핀’이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이 상용화되면 우리의 생활상이 통째로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연구성과가 쏟아지고,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 각 기업들까지 사활을 걸고 있는 그래핀은 과연 무엇일까. ‘꿈의 신소재’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래핀의 시작은 초라했다. 하지만 기발했다. 2004년 10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의 논문이 게재됐다. “탄소 원자 한층으로 된 막을 얻어냈다.”는 내용보다 더 관심을 모은 것은 이 막을 얻어낸 방법이었다. 이들은 흑연 덩어리를 셀로판테이프에 붙였다 떼어내기를 반복한 후 기판에 문지르는 것만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같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원자현미경이나 복잡한 합성 등을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견될 만한 가임 교수팀의 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도된 이들의 ‘첨단 아날로그’ 실험은 결국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로 보상받았다. 흑연을 뜻하는 ‘그래파이트’(graphite)와 탄소 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 ‘-ene’을 합해 이름지어진 ‘그래핀’(graphene)은 두께가 0.3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할 정도로 얇다. 그러나 그래핀은 단순한 얇은 막이 아니다. 화학적, 물리적 특성이 기존 물질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는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우선, 그래핀은 상온에서 단위면적당 전선으로 널리 쓰이는 구리보다 약 100배나 많은 전류를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이는 그래핀 위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전자의 질량이 0에 가깝게 되면서 저항을 없애 전류의 이동속도가 무한대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강도와 신축성도 탁월하다. 그래핀은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또 탄소가 그물처럼 연결된 벌집 구조를 갖고 있어 공간적 여유가 많다. 그래핀은 빛의 98%를 통과시킬 정도로 투명하고,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플라스틱에 0.1%의 그래핀을 넣으면 내열성이 30% 늘어나고, 1%를 섞으면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이 같은 특성 덕분에 그래핀은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가장 강력한 소재이자 휘는 디스플레이나 전자종이, 입는 컴퓨터, 각종 전극 소자 등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빠른 속도와 더 큰 용량, 더 작은 크기 등 ‘발전’을 의미하는 모든 조건을 그래핀을 통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기존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래핀이지만, ‘꿈의 신소재’라는 꼬리표를 떼고 현실 생활에 진입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 발표된 그래핀의 가능성은 아직 실험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당초 10~20년 후로 예상됐던 상용화 시기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그래핀 상용화 연구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평가된다.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그래핀 관련 연구성과는 올해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종훈 울산과기대 교수는 대면적 그래핀의 결정구조와 입자 배열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물리적 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상용화 장벽을 낮췄고,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와 김근수 세종대 교수 연구팀은 그래핀에 다른 물질이 들어갈 때 성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밝혀냈다. 박장웅 울산과기대 교수는 그래핀을 재료로 전자회로 전체를 한번에 통째로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가 하면, 조병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상용화 공정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핀 전극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조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차세대 20나노급 반도체’ 개발의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상용화의 척도로 볼 수 있는 특허출원 역시 급증세다. 국내 그래핀 관련 특허는 2005년에 3건, 2006년에 6건에 불과했지만 2007년 23건, 2008년 44건에 이어 2009년에는 무려 203건이 출원됐다. 홍병희 서울대 교수는 “그래핀이 가장 많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산업의 강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기초연구와 함께 산업화 연구를 진행한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분마다 부상자 2~3명 밀려와”

    “광장 한쪽에 자리 잡은 임시 진료소에서 의사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주변을 가득 채운 최루탄부터 이겨내야 한다. 의사들은 수술용 마스크를 쓰거나 아예 방독면을 쓰고 있다.” 올해 초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낸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아랍의 봄’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이 다시 시위대로 들끓는 와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간) 현지 르포기사를 통해 시위 도중 다친 이들을 돌보는 임시 진료소와 의사들을 조명했다. 임시 진료소라고 해 봐야 테이프로 빙 둘러서 구역을 표시해 놓고 바닥에 모포를 깔아 놓은 게 전부다. 그래도 기부받은 의료용품이 한가득 쌓여 있을 만큼 호응이 높다. 보안군 집결지 건너편에 자리 잡은 이 진료소에서 10여명의 의사들은 극도로 위험한 환경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느라 잠시도 쉴 겨를이 없다. 1분마다 두세명꼴로 환자가 밀려온다. 60~70%는 최루탄 때문에 호흡 곤란을 겪는 시민들이다. 나머지는 돌이나 총알을 맞아 부상당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몇 분이면 치료가 끝나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하다. 23일 하루 동안 진료소에서 숨진 환자가 4명이나 됐다. 두 명은 질식, 두 명은 총상이 사인이었다. 의사 타레크 살렘은 그동안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의사 3명이 숨졌다고 털어놨다. 살렘은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위한 혁명을 완수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시민들을 돌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성폭행 공소시효 지나도 ‘정신적 후유증’ 첫 인정

    청각장애인학교인 광주 인화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 탓에 불기소됐던 전직 교사와 교직원들이 피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근거로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였다. 정신적 후유증을 처벌의 잣대로 삼기는 처음이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재수사하는 광주지방경찰청은 18일 교내에서 장애인 학생의 손발을 묶고 성폭행한 인화학교와 학교법인 우석법인 관계자 등 모두 14명을 성폭력 특별법 및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추가로 교직원의 성폭행과 교사의 강제 추행사실도 밝혀냈다. 이로써 지난 9월 29일부터 진행된 재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교직원 A씨는 지난 2004년 초순쯤 교내에서 B(당시 17세)양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은 채 성폭행한 뒤 감금했다. 교사 C씨는 2005년 초순쯤 인화원 2층 기숙사에 혼자 있는 B양을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하고 돈을 주겠다며 성매매를 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양이 일관되게 A씨와 C씨를 가해자로 지목해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점, 성폭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 등을 바탕으로 A와 C씨를 강간치상과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입건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들이 2006년 수사 당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지만 지난 6~12일 서울 모의대 소아정신과에서 트라우마 전문가의 정밀 진찰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사법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강간치상의 공소시효는 7년인 탓에 2004년 4월 발생한 사건은 이미 지난 3월로 끝났지만 정신적 후유증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늘린다는 것이다. 경찰은 성폭행 은폐를 주도하고 업무상 횡령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 법인 임원 2명, 영화 ‘도가니’에 등장하는 세탁기 폭행 장면과 관련해 여자 원생을 폭행한 당시 인화학교 학생도 입건했다. 그러나 1985년부터 6년간 학생 4명을 강제 추행한 퇴직 교사 D씨를 비롯해 5건의 성폭력 사건과 1건의 법인 비리는 공소시효 경과로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했다. 한편 광주시는 이날 계획대로 우석법인의 허가를 취소하기로 확정했다. 강운태 광주시장과 장휘국 시교육감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자진 해산이 아닌 법인허가 취소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석법인이 소유한 인화학교와 인화원 등 건물 4개동은 모두 국고에 귀속된다. 시교육청은 인화학교 등의 건물을 직영 특수교육 관련 공공기관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CSI 따라잡을 한국식 정통 수사극

    CSI 따라잡을 한국식 정통 수사극

    ‘슈퍼스타K 3’가 막을 내리면서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금요일 밤의 경쟁이 치열하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특수사건전담반 텐’(이하 ‘텐’). 가장 풀기 어려운 10% 강력 범죄에 맞선 상위 10% 특급 형사들의 악전고투를 그린 9부작 드라마다.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2시에 영화채널 OCN을 통해 방송된다. ‘텐’은 잔악하고 풀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초동 단계부터 특수전담반을 투입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에 서서 ‘어떻게’가 아닌 ‘왜’에 초점을 맞춘다. 단순히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를 밝혀내는 흥미 위주의 수사물이 아니란 얘기다. 출연진도 제법이다. 드라마 ‘자이언트’ ‘파라다이스 목장’ 등을 통해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주상욱이 특수사건전담반 리더 여지훈 역을 맡아 이지적이고 냉철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전직 광역수사대 에이스이자 현직 경찰교육원 교수이기도 한 그는 ‘괴물 형사’란 별명답게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강력 범죄를 뿌리 뽑는다. 주연을 머쓱하게 하는 충무로 최고의 ‘명품 조연’ 김상호는 연기 생활 18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24년차 베테랑 형사 백도식 역인데 한번 문 사건은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다고 해서 ‘백독사’로 불린다. 홍일점 조안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리하는 능력을 지닌 프로파일러(범죄심리 분석관) 남예리 역을 맡았다. 드라마 ‘짝패’에서 주인공 이상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뒤 ‘폼나게 살 거야’ ‘뿌리깊은 나무’에 거푸 발탁된 신인배우 최우식이 신참 형사 박민호로 출연한다. ‘텐’에는 수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 ‘별순검’ 제작진이 참여해 더 눈길을 끈다. 이승영(시즌1·3 연출) 감독과 남상욱(시즌1 기획·시즌3 집필), 이재곤(시즌3 집필)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영화 ‘이끼’(2010) ‘특수본’(2011)의 이태훈 미술감독까지 가담해 음습한 범죄 세계와 심리적으로 뒤틀린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다. 이승영 감독은 “미국 드라마 ‘CSI’의 성공을 보며 시청자들의 한국식 수사물에 대한 열망을 느꼈다.”면서 “‘별순검’ 제작 이후 현대적인 수사물 장르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고 싶어서 ‘텐’을 기획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1화 ‘테이프 살인사건’은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사건을 모티프로 각색했다. 국내 케이블 드라마 사상 처음 120분짜리 영화 버전으로 편성된다. ‘24’ 등 미국의 유명 드라마들이 새 시즌 시작에 앞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려고 종종 쓰는 방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땅에 떨어진 교권 이대로 둘 것인가

    교권 추락 현상이 한계를 넘어섰다. 지난달 19일 광주광역시에서 여중생이 여교사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더니 지난 1일에는 대구의 한 중학생이 담배를 압수하며 꾸짖은 교감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을 차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이 학생은 한 달 전에도 수업시간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려는 여교사에게 욕설을 하며 교실 유리창을 깼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비슷한 때 교사가 학생을 꾸짖자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테이프의 절단부로 이마를 긁어 피를 흘리는 등 자해 소동을 벌인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교권의 참담한 현주소다. 이런 상태에서 학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교권이 이렇게 붕괴된 데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체벌을 전면금지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는 등 교권은 뒷전인 채 학생 인권만 내세운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여기다 툭하면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 학부모의 ‘비뚤어진’ 자식사랑 등도 교권 추락에 한몫했다. 이렇게 되면 교사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학생생활지도 등 교육활동은 위축된다.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한테서 폭행을 당해도 징계를 받을까봐 교육청에 보고하지도 않고 쉬쉬하며 넘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학생한테 폭행당한 교감도 처음에는 교육청에 보고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감인 나도 맞았는데 여교사는 어떻겠는가.”하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교사들이 주눅들면 학생들의 훈육에 소극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뀌게 된다.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교권은 백년대계인 교육의 핵심 요소다. 학습 못지않게 학생의 품성과 인성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교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야 어떻게 학교가 교육의 장소가 될 수 있겠는가. 미래세대가 올바르게 자라고 법질서를 준수하는 민주시민이 되는 데는 학교 현장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권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 지금 학교현장은 체벌이 사라지면서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교사가 따금하게 나무랄 수도 없게 돼 있다. 그래서 일정 부분 간접 체벌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사가 폭행을 당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도 있어야 한다. 교권도 학생 인권 못지않게 적극 보호돼야 한다.
  • 답안 예비 마킹땐 ‘오답 처리’

    답안 예비 마킹땐 ‘오답 처리’

    11일 수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답안지에 연필이나 플러스펜 등으로 예비 답안을 표시(마킹)해서는 안 된다. 올 수능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이미지 스캐너 방식으로 채점이 이뤄져 답안지 위에 남은 예비 답안 표시를 모두 읽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반드시 컴퓨터용 사인펜을 이용해 최종 답안을 표시해야 하고, 예비로 마킹한 답안을 지울 때는 흰색 수정용 테이프를 사용해야 한다. 올해부터 수능시험 채점에 사용되는 이미지 스캐너는 펜의 종류와 상관없이 답안지 위에 그려진 모든 필기 흔적을 읽어낸다. 따라서 연필이나 빨간색 플러스펜을 이용해 예비 마킹을 한 뒤 최종적으로 답안을 바꿀 때 예비 마킹 흔적이 남아 있으면 이를 중복 답안으로 인식해 오답 처리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는 샤프나 빨간색 플러스펜 등을 사용해 예비 마킹을 한 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최종 답안을 표시해도 됐지만, 올해는 반드시 수정테이프로 말끔하게 지워내야 한다. 수정액이나 수정스티커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까지 사용된 OMR 방식은 답안지에 표시된 컴퓨터용 연필이나 컴퓨터용 사인펜의 탄소 성분을 읽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해당 필기구가 아닌 것으로 체크한 답안은 인식하지 못해 별 문제가 없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대입제도과 관계자는 “올해부터 이미지 스캐너 채점 방식을 도입한 것은 선택형 시험문제뿐 아니라 단답형·서술형 답안까지 채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처음 도입되는 만큼 예비 마킹 흔적을 남겨 오답 처리가 되지 않도록 수험생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씨줄날줄] 시각장애인 앵커/최광숙 논설위원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야외 콘서트가 지난 9월 16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렸다. 이날 비가 왔지만 그의 열성팬들은 콘서트장을 끝까지 지켰다. 그와 함께 노래한 셀린 디옹은 “신에게 노래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보첼리처럼 들릴 것이다.”고 극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시각장애를 이긴 그의 천상의 목소리에 반한 팬들이다. 그는 12세 때 축구를 하다 시력을 잃었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성악 레슨을 받아 결국 스타 테너로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던 데이비드 블렁킷 전 영국 교육·내무장관도 시각장애인이다.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안내견과 함께 등원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장관 시절 비서들이 쳐놓은 점자 보고서나 육성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일을 능숙하게 처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원고 없이도 청중들을 바라보며 연설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들 가운데 못 보는 것은 약간의 불편일 뿐 장애가 아니라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중학교 때 축구공에 맞아 실명하고 부모와 누나를 잇따라 여읜 뒤 한때 “왜 이런 재앙이 닥치나” 하는 좌절감에 빠졌으나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장애인 최초로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안과의사가 된 장남과 현재 백악관 선임 법률고문이 된 차남을 둔 그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의 작은 빛이 되고 싶다던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25)씨가 그제 KBS 뉴스를 진행했다. 점자 단말기를 손으로 훑으며 매끄럽게 뉴스를 전달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이 방송사의 고정 진행자로 투입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올해 7월 523대1의 경쟁률을 뚫고 KBS 앵커로 선발됐다. 그는 방송 후 “약간의 실수가 있어 아쉽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떨지 않는 것만큼은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1년 계약직이라고 하는데, 그의 방송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전달하는 뉴스 자체가 ‘희망’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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