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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 순례자 수십명 터널속서 질식사

    【리야드ㆍ니코시아 AFP 로이터 연합】 성도 메카 부근의 회교성지를 순례중이던 순례자들이 2일 메카 동부 미나에 있는 한 터널속을 지나다 섭씨 43도에 달하는 터널내의 무더위속에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는 혼잡으로 인해 수십명이 질식사한 것으로 믿어진다고 목격자들이 밝혔다. 현지 목격자들은 이번 사고가 이날 순례자들이 연례성지순례(하지)마지막 행사인 에이드 알아다(희생의 축일)를 지내기 위해 상오 10시경(현지시간)아라피트 산으로 가던 도중 수천명이 한꺼번에 폭 20m 길이 5백m의 이 터널을 지나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다 발생한 혼잡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회교도들은 성지순례의 마지막 행사이자 순례의 절정기간이기도한 희생의 축일을 보내기 위해 금년에도 1백50여만명이 운집했으며 이들중 약 절반은 외국인들이고 나머지는 사우디인들이다.
  • 49개역중 갈아타는 역 11곳/착공된 지하철5호선 어떻게 건설되나

    ◎역마다 장애자 에스컬레이터 설치/공항역∼공항청사엔 수평이동 보도/주변상가와 연결,역세권으로 개발 27일 착공된 지하철 5호선은 서울의 동서를 관통하는 간선교통축으로 기존 1∼4호선은 물론 앞으로 건설될 6,7,8호선과 함께 서울의 방사형 지하철시대를 여는 시발점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1∼4호선에 이어 지하철 2기시대의 서막이 될 지하철 5호선은 강서구 방화동에서 강동구 고덕동에 이르는 총연장 52㎞로 49개의 역사중 11개역이 갈아타는 역으로 건설돼 오는 93년말 공사가 완공되면 지하철수송 효율을 극대화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5호선은 역마다 장애자용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세종로역등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공항역은 역에서 공항청사까지의 거리가 2백∼3백여m에 이르는 점등을 감안해 국제선 1청사,국내선 청사,국제선 2청사간에 3개의 수평이동 에스컬레이터(Moving Way)를 설치하게 된다. 공항까지의 시설에 따른 공사비 약 1백억원은 교통부가 부담하며 시공은 서울시가 맡을 예정이다. 또 2호선 영등포구청역과 환승될 5호선 영등포구청역에도 이같은 수평이동 에스컬레이터 시설을 할 계획이다. 지하철 5호선이 오는 93년말 완공되면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현재의 18.8%에서 32%로 높아져 하루수송인원도 3백10만명에서 6백94만명으로 2배이상 늘어나게 된다. 특히 공항·화곡 등 서부지역과 고덕·천호 등 동부지역에서 도심까지의 출퇴근시간이 1시간대에서 30분대로 대폭 단축된다. 이와함께 지하철역 반경 5백m이내를 수용,상가등 근린생활시설과 주차장등 각종 시민편익시설을 유치해 역세권으로 개발함으로써 도시균형발전을 유도하고 도심기능 분산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따라 왕십리·천호·영등포로터리역 등 11개 환승역은 도심 또는 부도심 중심상권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5호선은 그동안 1∼4호선 건설에서 쌓은 경험을 밑바탕으로 최신공법을 도입,여의도∼마포,천호동∼광장동 등 한강을 가로지르는 2개구간은 한강경관 보호와 주택가 소음방지,교통소통 원활을 위해 공사비는 더 들더라도 기존의 교량방식이 아닌 하저터널방식을 채택했다. 또 교통량이 많은 기존도로와 건물밀집지역엔 터널공법을 시행하되 역사설치나 지반이 약한 곳은 땅위에서 파 나가는 개착식공법을 택했다. 차량운행도 무인완전자동 운전방식(ATO)을 도입한다. 차량의 높이도 현재보다 50㎝를 낮춰 지하구조물의 높이를 그만큼 줄일 수 있게 돼 건설비를 4백억원가량 절감하는 한편 레일하부 공법도 자갈을 까는 기존방식에서 콘크리트 도상방식을 채택,유지관리비를 줄일 수 있게 했다. 시는 이날 착공한 지하철 5호선을 비롯,오는 97년까지 총연장 1백50㎞의 제2기 지하철건설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에따라 지난해말 이미 착공한 2∼4호선 연장구간 15㎞와 이날 착공한 5호선외에 7,8호선을 올 연말에 부분착공하고 오는 93년까지는 6호선과 7,8호선 잔여구간 61.5㎞를 모두 착공할 예정이다. 시는 지하철 5호선 건설사업에 1조4천1백80억원등 제2기 지하철건설에 총 3조9천5백70억원의 막대한 재원이 소요돼 이의 조달여부에 따라 건설일정에 다소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국무총리주관으로 설치된 대도시 교통종합대책에 따라 정부·서울시·차입자금 비율을 3대3대4로 계획했으나 최종 협의과정에서 정부가 5호선 정부지원액중 무상비율을 50%만 지원키로 수정합의하는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조명환기자〉
  • “거미줄” 고속전철,유럽을 달린다(특파원 코너)

    ◎14개국,철도공동건설 합의/“런던∼나폴리 10시간” 하루생활권에/알프스에 새 터널… 7개노선을 확정/기종선택 이견ㆍ전압 달라 매듭까진 난관 곳곳에 유럽대륙이 1일 생활권으로 묶이게 될날이 멀지 않았다. 그 주역은 고속전철.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 및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14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럽철도협회(CCFF)는 최근 브뤼셀에서 모임을 갖고 전유럽고속전철연계건설을 위한 공동계획을 확정했다. 동구국가들의 철도관계자들까지 참석시킨 가운데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유럽통합에 따른 가장 시급한 공동의 과제는 대량운송수단의 확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이를 위해 동서유럽을 종ㆍ횡으로 잇는 고속전철망을 구축하기로 의결했다. 유럽의회의 교통ㆍ관광위원회에 제출되어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전유럽고속전철연계건설계획은 3개의 유럽횡단노선을 기본축으로 하고 여기에 4개의 종단노선을 두는 등 모두 7개 노선의 고속전철망을 2천년초까지 구축한다는 것이다. 동서축의 1번선은 런던(파리)을 출발하여 브뤼셀∼쾰른∼하노버∼베를린을 경유하여 바르샤바까지 내닫는다. 파리를 서쪽 시발역으로 하는 중부선은 스트라스부르∼뮌헨∼빈∼부다페스트를 차례로 지나 부쿠레슈티에 이르게 된다. 또 남부선은 이베리아반도 남쪽의 카타론뉴(스페인)에서 떠나 리용∼밀라노∼자그레브를 경유하여 베오그라드에 닿게 되며 소피아까지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종단노선은 바르셀로나를 출발하여 북상하는 1번선이 가장 길며 리용∼파리∼런던을 지나 에든버러까지 올라간다. 두번째 선은 밀라노에서 떠나 취리히∼스트라스부르∼하노버∼함부르크를 경유,코펜하겐을 북쪽 종착역으로 삼았다. 이탈리아반도를 종단하게 될 3번선은 나폴리가 남쪽 종점으로 로마∼피렌체∼볼로냐∼뮌헨 등지를 지나 베를린까지 간다. 또 발칸반도의 살로니카(그리스)를 출발하는 4번노선은 베오그라드∼부다페스트∼빈 등을 거쳐 바르샤바에 이르게 된다. 이같은 방대한 계획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고속전철의 속도개선이 한몫을 크게 했다. 지난달 시속 5백15.3㎞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프랑스 TGV를기준으로 볼때 파리에서 유럽 어디든지 10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TGV의 최고속력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시속 3백50㎞정도의 상업속도를 기준한 것이다. 파리에서 리스본까지 10시간15분,나폴리까지 8시간30분,마드리드가 6시간45분,함부르크는 6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도버터널이뚫린뒤 런던은 2시간10분만에 갈 수 있으며 암스테르담까지도 2시간50분이면 넉넉하다. 런던에서 바르셀로나 까지는 현재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의 소요시간인 7시간 정도밖에 안걸린다는 얘기이다. 현재 파리 르망간의 대서양노선의 TGV가 최고 3백20㎞의 시속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상업속도 역시 계속 개선되어 나가고 있어 유럽 각 도시간 운행시간도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유럽고속전철 연계건설작업은 아직 계획단계이지만 각국별로 보면 이미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선 프랑스의경우는 이미 10년전부터 TGV를 운행하기 시작,파리에서 리용ㆍ제네바ㆍ낭트를 각각 잇는 3개 노선이 열려 있으며 계속 확장해 나가고있는 중이다. 프랑스는 특히 오는 98년까지는 암스테르담ㆍ브뤼셀ㆍ프랑크푸르트ㆍ쾰른까지 TGV노선을 연장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통독을 전제로 하여 동서독간에는 현재 하노버∼베를린간에 고속전철을 위한 새 철길을 깔기로 협의중에 있으며 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베를린을 잇는 전철선 신설계획도 진행중이다. 스위스는 유럽전철망의 도입을 위해 알프스에 새로운 터널을 뚫을 계획이며 이탈리아는 밀라노∼로마∼나폴리 선과 토리노∼밀라노∼베내치아선이 포함된 고속전철 10개년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같은 계획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유럽의 고속전철 총연장은 현재의 1천1백㎞에서 95년까지는 7천㎞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유럽고속전철연계 건설계획은 극복해야할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국간의 이해관계 대립의 해소문제다. 고속열차의 기종선택ㆍ운행시스템ㆍ조정ㆍ연계방법의 차이 등 이해대립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발 앞서가고 있는 프랑스는 TGV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전유럽노선에TGV가 달릴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TGV의 맞수인 서독의 ICE는 쉽사리 양보할 기미가 없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도 TGV가 런던시내까지 파고드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어 런던을 우회 해야할 입장이다. 각국이 서로 다른 기종을 선택할 경우에는 또다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사용전기의 전압만 보더라도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은 2만5천V를 사용하지만 벨기에 이탈리아 폴란드는 3천V를,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1만5천V를 사용한다. 미래 고속열차에 필수적인 전화도 각 나라마다 기기시스템이 다르며 객차의 연결방식도 제각각이다. 서로 양보하기도 힘들고 기술적으로 통일시키기에도 어려운 문제점들은 이밖에도 많다. 동구 각국의 궁핍한 재정형편도 장애요인의 하나. 이같은 문제점들을 헤쳐나가면서 전유럽대륙이 고속전철망으로 묶여질때 그동안 비행기에 밀리고 자동차에 괄시받던 철마는 과거의 영광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미 종군기자 「6ㆍ25 40년」 기고/맥스 데스포

    ◎당시 AP통신 종군기자/“대동강교 넘던 「자유정신」 서울에 생동”/남하행렬 의미 이제야 이해 나는 1950년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적으로부터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시가전을 벌이는 미군과 함께 걷거나 차를 타고 서울을 들어오게 됐는데 그 방문은 나에게 우울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제 40년이 흘러 다시 방문한 서울은 나를 사로 잡을 만큼 황홀하다. 이처럼 변한 서울을 보니 40년전에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간다. ○개전 2주에 서울 특파 1950년,나는 로마주재 AP통신기자로 일하다 귀국명령을 받았다. 6월 중순 뉴욕에 도착한 나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일하도록 전보됐다.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었고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즉각 본사로 달려가 종군취재를 자원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며칠후 본사는 나를 소환해서는 『아직도 종군취재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즉각 「그렇다」고 대답했고 15분뒤에 내 여권은 군허가를 받기 위해 워싱턴으로 보내졌다. 여권을 받고 이틀뒤 나는 도쿄로 향발했다. 도쿄에서 종군취제에 필요한 승인절차와 군복지급을 받기 위해 오래 기다렸다. 이윽고 전쟁발발 2주만에 나는 한국에 도착,서울에서 후퇴하는 군대와 합류했다. 그뒤 나는 3년동안 진퇴를 거듭하는 유엔군을 따라서 전장을 누비벼 수많은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전투를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미군 제24사단 34연대의 대전전투였다. 대전에서는 시가전이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좁은 가로에서는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저격탄이 날아다녔다. 가장 치열한 시가전은 인천상륙작전후 서울에서였다. 서울로 진격하는 곳곳에서,그리고 서울시내에서는 한걸음을 진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비극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화선이 교차하는 주택가의 길가운데 한 가족이 갇힌 채 전투지역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물건들은 길위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한 늙수그레한 남정네가 당황한 표정으로 길가운데 있었고 그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아들을 어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 ○철교사진으로 퓰리처상 미 해병들은 간선도로에서 조차 터널 방공호 참호 등을 폭파시키면서 진격해야 했다. 어떤 도로에서였다. 저격탄에 해병대원이 쓰러지면서 진격이 멈췄다. 처음에는 어디서 저격탄이 날아왔는지 몰랐으나 곧 나무등걸뒤에 숨어있는 군인의 어깨와 머리가 발견됐다. 그는 재빨리 총을 쏘고 나무 뒤로 숨는 것이었다. 그를 향해 집중사격이 가해졌고 마침내 그가 갖고 있던 탄약대가 폭발하면서 그는 끝장났다. 내가 서부전선에서 영국군대와 함께 있을 때였다. 공륜작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급히 지프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도착하자마자 제187전투연대 본부에 종군취재를 신청했다. 새벽 5시 정각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0630기에 올랐다. 출발하기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카메라등 장비를 안전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보관할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비행기에 오르자 곧 공수부대원들을 인터뷰했다. 나는 취재수첩을 조종사에게 주면서 가까운 AP특파원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 내 옆자리의 젊은 대원으로부터 낙하방법을 배웠다. 그는 나에게 점프한 뒤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고공 7백피트 상공에서 적후방으로 낙하했다. 낙하에는 30초가 걸렸다. 나는 이전에 단 한번도 점프한 적이 없었지만 안전하게 내렸다. 임무는 북한군이 북송하는 한국군및 미군포로를 실은 기차를 가로채는 것이었으나 기차는 예정보다 일찍 통과해 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대규모 적들을 만나 전투를 치렀다. 1주일동안 버틴 끝에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미군을 만나 구조되기도 했다. 승리하는 쪽에 있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내가 3사단을 따라 동해안을 북진할 때 그랬다. 3군은 평양에 입성한 뒤 안주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중국군이 몰라닥쳐 공격해 왔다. 미군과 한국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모든 군수송차량은 부교를 이용,대동강을 건넜다. 나도 3명의 특파원과 지프를 타고 건넜다. 얼마뒤 강하류에 수많은 피란민이 밀려 들었다. 이들이 그곳을 피할 수 있는 길을 폭격으로 교판이 부서진 대동교의 아치를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아치를 기어오르내리며 폭격으로 뒤틀어진 아치를 따라 건너기 시작했다. 당시는 지독하게 추웠다. 나는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곱아 카메라는 겨우 겨우 작동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 처절한 피란행력의 뜻이 새삼스럽게 이해된다. 지금 남한에는 그들의 땅도 재산도 친척도 남겨두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많은 이북사람들이 살고 있다. 부서진 대동강 철교난간을 타고 피란길에 오른 그 사진으로 나는 나중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제 나는 그 사진이 다른 사진들과 함께 한국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인에게 낮익은 것이 된 것을 알게 돼 더욱 영광스럽다. ○활기와 확신의 한국으로 나는 53년 상처로 가득한 한국을 떠났다. 나는 77년 다시 한국을 방문,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보았다. 건축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고 거리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 다시 한국을 보니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나는 한국의 또다른 면모를 보고 있다. 새빌딩들의 모습은 정말 멋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교통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거리에는 차량의 홍수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는 생동감과 활기로 넘치고 있다. 이번에 관공서와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나는 특히 관리들과 군장교들의 당당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노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눌 때나 민간기업,혹은 정부의 관리들을 만났을 때 확신에 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월남하도록 만든 그 정신과 원칙이 남쪽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40년전 겪어야 했던 역경을 극복하는 밑거름이었음이 분명하다.
  • 산업구조 “조로”에 「고성장」주춤(우리경제의 「허와 실」:상)

    ◎서비스 비대… 제조업 공동화의 파행현상/과열 지수속 경기 침체… 소비지향의 투자패턴 고쳐야 경제의 겉모양과 속내용이 너무나 다르다. 포장은 그럴싸한데 속은 비어가고 있다. 경제의 성적표라 할 수 있는 지수경제 자체는 우등생이다. 그러나 성적표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물들은 건전치 못할 뿐 아니라 장래경제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쪽에서 성장을 지탱하고 있으며 근로자들도 힘든일보다는 땀흘리지 않는 쪽으로 일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기업들도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부동산이나 재테크로 보다 많은 돈을 벌려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소득은 생각지 않고 소비에 더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사이에 물가는 봇물터지듯 솟구치고 장차 외국에 팔 물건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다. 경제전반이 무의식화ㆍ공동화의 길을 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염려가 대단하다. 경제의 속과 겉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짚어본다. 경제의 밑바탕이 건전하지 못한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올 1ㆍ4분기중에 예상보다 높은 두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견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의 궤도에 재진입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양적 성장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학계나 연구기관의 경제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경제기획원마저도 우리 경제의 장래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총량적인 지표들은 증가하고 있지만 양적 성장이 갖는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심각하게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3년간의 고도성장에 이은 한차례의 불황을 겪으면서 구조적인 측면에서 몇가지 파행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산업구조면에서 서비스부문은 눈덩이처럼 체중이 불어 나고 있는데 반해 제조업부문은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고 있다. 생산활동의 기본요소인 자본과 노동력이 과다하게 서비스부문으로 몰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조업 쪽은 자본과 노동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1ㆍ4분기중 우리나라의 전체 취업자 수는 대략 1천6백84만6천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부문 취업자는 9백1만5천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6.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부문의 취업자는 전체의 28%인 4백71만9천명에 불과하다. 서비스부문 취업자수가 제조업부문의 두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를 1년전과 비교하면 서비스부문의 노동력 집중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89년 1ㆍ4분기중 전체 취업자 수는 1천6백22만4천명으로 이 가운데 서비스부문 취업자는 전체의 54.3%인 8백80만4천명이고 제조업부문 취업자는 전체의 29.8%인 4백84만2천명이었다. 1년만에 서비스부문 취업이 절대수로 71만1천명 비율로는 2.2%가 늘어난 반면,제조업부문 취업은 절대수로 12만3천명 비율로는 1.8%가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동인구의 「이제조업 향서비스」행렬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과 비례해 전체 산업생산중 서비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88년부터 90년까지 3년동안 1ㆍ4분기의 국내총생산(GDP)에대한 산업별 구성비를 보면 서비스부문은 88년 58.4%,89년 59.7%,90년 60.9%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제조업 부문은 88년 38.3%,89년 37%,90년 36.2%로 구성비가 매년 낮아지고 있다. GDP에 대한 산업별 구성비는 분기별로 농림ㆍ어업 부문이 계절적 요인에 따라 큰 변동을 보이기 때문에 구성비의 절대수치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89년의 경우 농림ㆍ어업부문의 GDP 구성비는 1ㆍ4분기 2.6%,2ㆍ4분기 5.1%,3ㆍ4분기 7.7%,4ㆍ4분기 17.8%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각 연도별 동일분기의 GDP 구성비 변화추이는 일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변화패턴을 읽을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따라서 지난 2년동안에 전체 GDP에서 서비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증가한 반면에 제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1%가 감소했다는 계산이다. 또 농림ㆍ어업부문의 계절변동요인(89년의 경우 1ㆍ4분기 구성비는 연간평균치보다 6.4%가 적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서비스부문의 GDP구성비(연간평균)는 55%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산업 가운데 서비스부문의 비중이 커지는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해석할필요는 없다. 미ㆍ일 등 선진국의 경우에도 서비스부문의 팽창은 일반화한 현상이다. 문제는 선진국의 경우 먼저 제조업부문이 충분히 성숙된 연후에 노동 및 자본절약적이고 두뇌집약적인 고부가가치산업을 중심으로 서비스 팽창이 이루어진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산업연관 분석에 따르면 국내서비스산업은 연구 및 기술개발ㆍ금융ㆍ통신ㆍ운송 등 생산과 직결되는 서비스부문의 발전은 미약하고 오락ㆍ음식업 등 소비성 서비스산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소비성 서비스산업의 비대화가 미성숙 단계에 있는 제조업부문의 공동화를 수반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해 산업구조의 조로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서비스 비대화와 제조업 공동화로 요약되는 불건전한 산업구조는 경기면에서 「과열」과 「바닥권」이 혼재하는 극단적인 양분화를 초래하고 있다. 1ㆍ4분기중 GNP 성장률은 10.3%로 국내경기가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88년 수준에 육박하는 「과열」양상을 보이고있다. 제조업 가동률이 80%를 넘어섰고 실업률이 2.7%에 기능인력의 구인ㆍ구직비율이 3대1을 보이고 있는 것도 경기과열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경기지수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3월중 96.4(1백이면 보통수준의 경기를 의미한다)로 최저점에서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다. 수출과 제조업생산도 극도의 불황에 허덕였던 작년 수준을 밑돌거나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성장률ㆍ가동률ㆍ실업률 등의 지표는 경기과열 신호를 나타내고 있는데도 경기지수ㆍ수출ㆍ제조업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파행적인 기현상을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을 『성장이 경제의 확대재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즉 민간부문의 투자재원은 투자의 회임기간이 짧은 서비스부문에 집중되고 있고 정부부문의 투자재원도 대규모 산업기반시설 투자보다는 소외계층에 대한 소득보상적 이전지출에 투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치의 민주화에 따라 과거에 소외됐던 계층에 보다많은 재원이 배분되도록 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점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지향적인 재원배분 구조를 생산지향적인 것으로 바꿔 약화된 경제의 확대재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염주영기자〉
  • 차우셰스쿠 처형이후 “재활용” 모색 한창(세계의 사회면)

    ◎루마니아 「인민궁전」 관광명소로 탈바꿈/베르사이유궁의 3배… 초호화판/“카지노ㆍ박물관 만들자”제안 쏟아져/줄이은 관광객… 하루 7천명 찾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백성들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사스럽게 지어 올려 원망의 대상이 됐던 꿈의 궁전 「공화국궁전」이 이제는 국민의 사랑속에 재활용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인민궁전」으로 바뀐 이 궁전의 활용방안을 놓고 루마니아 신정부는 널리 의견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 궁전은 차우셰스쿠가 생전에 토요일마다 들러 「현장지도」를 할만큼 몹시 애착을 가졌던 곳. 부쿠레슈티를 굽어보는 곳에 차우셰스쿠는 인공으로 높은 언덕을 쌓고 그 위에 초호화판 맘모스 궁전을 세웠다.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된 이 궁전은 크기가 베르사이유궁전의 3배나 되며 루마니아와 전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온갖 고급치장재로 장식됐다. 지난해 12월 유혈 혁명후 루마니아정부는 이 궁전을 인민궁전으로 개명하는 한편,이 궁전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방안을 공모하고 있다. 루마니아정부는 이 궁전으로 이주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지난 1월에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뜻을 비추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묘안이 쏟아졌다. 미국 최대의 카지노 「트럼프 타지마할」보다 큰 카지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1천여개의 상영실을 갖춘 세계 최대의 복합영화관을 만들자는 제안,심지어는 무도장ㆍ전시실ㆍ유엔본부로 삼자는 안 등등. 현재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저명한 관광명소로 탈바꿈,하루 7천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 궁전의 입장료는 미화 50센트. 관광안내책자에 조차 궁전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광고가 들어 있다. 아직도 30만달러는 더 들여야 완공될 이 궁전의 사용방법에 대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자는 노인,외화 가득을 위해 외국인에게 팔자는 화가도 있다. 또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한 여학생은 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 미치광이가 광몽을 이루려고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의 아들들,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들에게 이르기까지 알 수 있도록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그녀의 주장. 이 궁전은 루마니아가 절대 빈곤에 빠져 있을때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도 부러워할 만큼 호사스럽게 지어졌다. 인도의 마호가니,이탈리아의 금세공품,희고 분홍빛나는 대리석 등등 온갖 호사품이 아낌없이 들어갔다. 3백명의 건축가와 노동자 2만7천여명이 궁전건축에 동원됐다. 이 궁전지하 1백m에 국방부와 지하철로 연결되는 비밀터널과 방공호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12층 높이에 복도 면적만 3백90만평방피트. 이 궁전에 몇개의 방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한 원형 응접실에는 9백개의 전구가 박혀 있는 2t짜리 수정 샹들리에가 유럽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차우셰스쿠 24년 독재에 고초를 겪으며 궁전건축에 동원했던 루마니아국민들은 그러나 이제 자부심속에 궁전을 되찾았다. 차우셰스쿠재임시절 건축공학도로서 천장장식에 징발됐던 투크쿠 코르네일라양은 요즘 궁전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들은 이 궁전이 루마니아 국민에 의해 건축됐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나는 비록 이용당했지만 내가 일했던 곳을 보노라면 기쁨을 느낀다』고 궁전을 되찾은 즐거움을 말한다. 한때 원성의 대상이었던 「공화국 궁전」이 이제는 루마니아인 모두의 자랑거리가 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역사의 아이러니다.
  • 4계파,오늘 동경서 평화회담

    ◎캄보디아 「11년 분쟁」 종식에 “청신호”/신 데탕트 여파로 내전 지속 명분 상실/휴전협정 체결… 연내 총선ㆍ연정 가능성 11년간 계속된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4,5일 이틀간 일본 도쿄(동경)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현 프놈펜정권(헹삼린정권)을 이끄는 훈센총리와 전 국가원수인 시아누크공,크메르 루주(구폴포트정권)의 큐삼판의장,구론놀정권의 손산 전총리 등 연합국민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대 무장반군세력 등 4대파벌의 수뇌들이 전원 참석,휴전협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희망적 관측은 그동안 분쟁해결을 막아왔던 외부지원세력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고 더 이상의 내전지속이 어느 파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교전당사자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데서 도출된 것이다. 현 프놈펜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베트남과 소련,반군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과 크메르 루주를 제외한 2개파를 지원하는 미국은 모두 국제사회의 데탕트분위기 확산에 따라 내전종식을 지연시킬 명분을 잃어버린 상태다. 지난 79년 캄보디아침공으로 크메르 루주정권을 타도한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 지원세력인 중국과 최근들어 외무차관접촉을 갖고 내전종식과 민족통일을 상징하는 최고국민평의회 구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양국관계가 빠른 속도로 정상화 되고 있다. 미국과 소련도 이번 워싱턴정상회담에서 지역분쟁 해결노력을 거듭 다짐하는 등 내전종식쪽으로 견해차를 좁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휴전협정이 예정대로 조인된다면 연내에 파리회의를 소집,협정내용을 보장할 국제감시기구를 구성하고 유엔평화유지군파견과 휴전감시,4개정파가 참여하는 자유총선,새정부 구성의 정치일정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프놈펜정권과 반군세력간의 이견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우선 반군세력을 지원하는 미국과 캄보디아국토의 90%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현 프놈펜정권은 내전 종결후 세워질 연립정부에서 크메르 루주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반군세력들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는 크메르 루주를 배제시켜서는 휴전이 성립될 수 없으며 계속 외세에 이용당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특히 크메르 루주측은 프놈펜정권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또 유엔휴전감시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훈센정권은 권한을 최소화해 즉각 휴전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반군세력들은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시아누크공이 집권하다 70년 외유중 론놀에 의해 추방됐고 75년 폴포트정권이 무력으로 론놀정권을 진압한 뒤 79년 베트남군을 앞세운 헹삼린정권에 의해 타도되는 등 숱한 정변을 겪은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제 지리한 내전의 터널끝을 바라보며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 캄보디아 휴전협정 타결 임박/4개파,11년내전 종식 합의

    ◎태 총리 6월4일 도쿄서 평화회담 【방콕 AP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캄보디아의 교전당사자인 프놈펜정권 등 4개 파벌은 휴전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태국 라디오방송이 23일 차티차이 춘하반 태국총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차티차이 춘하반 태국총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차티차이총리가 오는 6월4일부터 이틀간 도쿄에서 캄보디아내전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차티차이 총리는 『4개 파벌이 곧 휴전협정에 서명키로 합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차티차이총리는 캄보디아휴전협상의 주요 중재자로 활약해 왔다. 휴전협정이 서명될 경우 이는 11년동안 계속돼온 캄보디아 내전을 종식시키는 주요한 첫 정치협정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방송은 차티차이총리가 방콕을 방문중인 구엔 코 탁 베트남외무장관과의 회담뒤에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구엔 코 탁 베트남외무장관은 22일 캄보디아 내전문제가 「터널의 끝에 이르러 빛이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해 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 터널안서 열차탈선/무궁화호 금릉서/승객 24명 중경상

    ◎하행선만 통행… 잇단 연착소동 【김천=김동진기자】 12일 하오1시25분쯤 경북 금릉군 대항면 복전동 경부선 상행선 서울기점 2백43.5㎞지점인 태평터널안(길이 6백3m)에서 부산열차사무소소속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제62열차(기관사 김옥용ㆍ50)의 객차7량중 6량이 탈선,열차에 타고 있던 강순식씨(여ㆍ25ㆍ충남 서산군 대산면 동리 193)등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기관차와 객차 1량은 탈선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자 김천경찰서는 김천시내 앰뷸런스 3대 봉고 4대등을 동원,중상자 강씨등 5명을 구미시 순천향병원으로,나머지 19명은 김천시립병원으로 후송했다. 이 사고로 경부선 상행선 통행이 불통돼 모든 열차가 하행선만을 이용하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각급 열차가 연착되고 있다.
  • “파국막자” 방향선회… 「재가동」불댕겨/현대계열사 조업재개의 의미

    ◎“더이상 이익없다” 자동차등 조업 참여/크레인 농성ㆍ강성근로자 반발 “불씨”로 현대중공업사태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달 28일 현대중공업 공권력투입이후 계열사의 동조파업으로 이어졌던 이번 울산지역 현대사태는 7일 현대자동차등 대부분의 계열사가 정상조업에 들어감으로써 일단락됐다. 장기파업위기를 맞았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등 계열사들이 예상과는 달리 이처럼 빠른 시일안에 정상궤도에 진입하게된 것은 노ㆍ사양측이 「총체적 위기」로 표현되는 현정국의 상황속에 일단 「선조업ㆍ후협상」의 길을 택해 파국만은 면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정상조업은 그동안 계열사들의 동조파업을 사실상 주도해온 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상범)가 「더이상의 파업은 앞으로 있을 올 단체협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해 가속화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회사가 「전노협」의 중심세력으로서 뿐아니라 「현총련」(현대그룹노조 총연합회)을주도해온 핵심기업이라는 점 등으로 미뤄 경제계나 노동계는 물론 온국민의 관심을 모아온게 사실이었다. 노조위원장 이씨가 회장인 「현총련」은 지난달 28일 현대중공업파업즉시 있은 공권력투입에 맞서 일제히 동조파업에 돌입했었다. 이에따라 울산지역 12개 현대계열사 가운데 현대자동차ㆍ현대종합목재ㆍ현대중전기 등 9개 계열사가 파업을 하거나 휴업 또는 조업을 단축하고 연일 가두시위를 하는 등 최악의 상태로 이끌어졌다. 그러나 극한상황에서 얻어진 것은 현대중공업 구속근로자들에 대한 고소ㆍ고발취하등 현안문제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시위현장에서 6백여명의 근로자가 연행되고 끝내는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골리앗크레인을 점거,농성을 벌이는 묘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현대자동차노조는 「더이상의 파업은 아무런 실속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앙비상대책위의 결정과 조합원총회의 결의에 따라 「선조업ㆍ후협상」쪽으로 방향선회를 한것이다. 더욱이 노조측은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이 투입된 지난달 28일 ▲주46시간 근무제 ▲퇴직금 누진제 ▲상여금 6백50%지급문제 등 35개조항에 대한 올 단체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신고를 내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번 현대중공업사태로 빚어진 파문은 완전수습까지는 아직은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협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7일현재 10일째 현대중공업 골리앗크레인에서 근로자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는데다 현대자동차도 앞서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에 제출했던 쟁의행위발생신고가 중앙노동위로부터 「적법쟁의가 아니다」는 이유로 반려됐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현대중장비등 일부 계열사들도 조업은 하고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일부강성근로자들의 반발로 사태가 유동적인 상태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파업사태로 6백30여억원의 매출손실을 입었으며 현대중공업도 지난달 23,24일의 태업과 10일간의 파업으로 7일 현재 6백20억원의 매출손실과 1백85억여원의 고정비손실을 입은 것으로 회사측은 밝히고 있다. 어쨌든 이번 현대그룹 계열사의 연대파업은 같은계열,동일지역업체 노조끼리 「의리」를 지켰고 한때나마 공감대를 형성,막강한 힘을 가진 공권력과 회사를 상대로 연대투쟁을 벌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법적인 절차를 무시한채 노사문제가 아닌 정치적 쟁점으로 불법파업을 벌였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남겨놓고 있다.
  • 심야 경제장관회의 소집이 뜻하는 것

    ◎“경제 꼭 회생시킨다” 정책의지 표명/증시ㆍ분규 맞물린 불안의 심각성 인식/“이대론 안둔다” 투기등 원인처방 모색 월요일밤의 긴급경제장관회의는 논의된 대책이상의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이날 갑작스럽게 소집된 경제장관회의에서 논의된 것은 최근의 증시붕괴문제와 격화된 노사분규문제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주제도 아니거니와 딱 부러지는 대책이 확정되어 나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서 정부가 확고하고도 강경한 입장을 표명,심야회의를 열어서라도 팽배해 있는 국민의 불안심리를 화급히 잡아주자는데 의미가 있다. 경제장관회의가 긴급소집되기까지 이날 정부관계부처의 움직임은 숨가빴다. 증권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대폭락을 감지한 재무부는 상ㆍ하오에 걸쳐 마라톤회의를 계속했고 드디어 사상최대 폭락으로 최종종합주가지수가 확인되자 진념 재무부차관은 증시현상을 분석한 자료를 들고 청와대로 직행,김종인경제수석과 숙의를 거듭했다. 그후 대통령의 긴급지시가 내려지고 ADB(아시아개발은행)총회 참석차 방콕에서 막 뉴델리로 떠나려던 정영의재무장관에게 비행기탑승직전 급거 귀국명령을 내린데 뒤이어 이날 야간경제장관회의를 소집케 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결정된 대책의 주요골자는 「돈 안푸는 증시활성화 방안」과 「노사분규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통한 적극 대처」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12ㆍ12증시부양조치 등을 포함,주가폭락사태를 막기위해 온갖 정책수단들을 동원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증시개입에도 불구하고 증시의 폭락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30일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주가지수 7백선마저 무너지는등 증시붕괴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30일 밤 긴급경제장관회의에서 증시안정문제가 비중있게 논의된 것도 증시붕괴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정부의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증시활성화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이미 거의 대부분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최근 폭등추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에 미칠 악영향 등을 감안할 때 돈을 풀어 증시를 살리는 방식은 위험부담이 크고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는 통화량의 증가를 초해하지 않고 증시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방안들이 집중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출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내수업종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나마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책 및 민간경제연구기관에서도 이같은 추세라면 늦어도 올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을 제시하는등 지난 2년반 동안의 긴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케했다. 그러나 작년을 고비로 진정되는 조짐을 보이던 노사분규는 최근 KBS사태를 기점으로 현대중공업파업,공권력투입에 의한 강제해산,현대계열사의 잇단 파업 등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시기적으로 「메이데이」와 맞물려 전노협등 일부과격 노동운동단체들이 전면적인 연대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하는등 노사현장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날 밤 철야 경제장관회의 끝에 공권력을 통한 강경대처방침을 천명하게 된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의 폭락국면속에서도 증권시장의 자생력을 키우고 투자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풍토를 조성,증시의 건전육성을 도모해 나간다는 정책을 유지하려고 애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 계속됐던 증시부양책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데다 「12ㆍ12부양조치」로 증시에 지원된 2조8천억원의 자금이 결과적으로 증시를 부양하지도 못한채 통화관리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자성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27일 청와대 경제장관회의에서 이같은 원칙확인이 또 다시 정부의 증시에 대한 무관심으로 확대되면서 이후 연이틀 대폭락장세를 보이며 바닥모를 심연으로 빠져듦에 따라 더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국면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의 주가폭락사태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자자들의 시위ㆍ항의소동이 자칫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될 경우 산업현장에서 빚어지는 노사갈등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사회ㆍ정치적 불안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취해진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우리 경제의 현실은 성장을 떠받쳐왔던 수출이 4월들어 지난 27일 현재 40억8천1백만달러(통관기준)로 전년 동기대비 6.4% 증가에 그쳤고 지금까지의 연간누계도 1백79억8천4백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0.5% 증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무역적자는 28억달러에 달하는등 수출부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물가는 올들어 4개월동안 소비자물가지수가 연간 억제목표선에 육박하는 4.7%를 기록하는등 안정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부동산투기 과열과 이로 인한 집값,전월세폭등은 서민생활기반을 위협,또는 노사분규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긴급지시가 나오고 경제장관회의가 열린 것이나 이같은 정부의 의지와 관심표명이 폭락증시를 얼마나 회복시킬지는 미지수다. 우선 증시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웬만큼 충격적인 조치가 아니고서는 떠나버린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논의된 내용도 인위적인 증시부양책보다는 간접적인 증시안정유도에 모아져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느긋한 정책대안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증권ㆍ보험사의 부동산처분 역시 약효가 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데다 대부분 업무용ㆍ투자용으로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어서 정부의 처분지시가 얼마만큼 먹혀들지도 의문이다. 증권ㆍ보험사 사장단이 1일 상오 사장단회의를 열어 정부의 부동산처분지시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현된다해도 부동산처분을 통한 주식매입은 시차가 있는데다 이들 기업의 보유부동산이 대부분 점포 신ㆍ증설에 따른 것이어서 처분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이날 긴급경제장관대책회의는 증시회생의 즉효를 노렸다기보다는 부동산투기근절을 통해 흔들리는 물가를 잡고 장기적으로 증시의 회복을 겨냥한 다목적조치로 볼 수 있다. 특히 5월1일 메이데이를 기점으로 폭발될 수 있는 노사분규의 불씨를 잠재우고 증시폭락으로 흐트러지기 쉬운 민심을 바로잡고자 하는데 의미를 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비업무용판정기준을 강화하고 비업무용부동산의 처분을 강력,추진키로 한 것은 부동산투기가 경제를 좀먹고 물가와 증시 등에 치명적인 폐혜를 가져오고 있다는 분명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관련 은행감독원이 여신관리대상 49개 계열기업군에 대해 특별시나 도심권내에서 체육 및 휴양시설,연수원등 용도의 부동산취득을 금지토록 한 것이나 국세청과 은행감독원이 금명간 기업의 비업무용부동산 실태조사에 전면나서기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수자원 공사직원 5명/농민들이 21시간 감금

    ◎“댐 터널공사로 피해”보상 요구 【승주=임정용기자】 12일 하오 2시쯤 한국수자원 개발공사 기술부장 윤국길(50)·기술과장 정구언(50)·시험기사 최윤명씨(33)등 주암댐 건설공사 관련자 5명이 주암댐 도수로 터널공사를 반대하는 전남 승주군 송광면 봉산리 산척마을 주민 50여명에 의해 송광면 단위농협 2층 회의실에 감금됐다가 21시간뒤인 13일 낮12시쯤 풀려났다. 이들 주민들은 이날 윤부장등을 감금한 뒤 『주암댐 도수터널공사로 인한 주민피해 사항에 대한 보상각서를 써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승주군과 순천경찰서 관계자들의 중재로 농성을 풀었다.
  • “근로자 주택 확대 공급”/노대통령,안산복지 주택 기공식 치사

    【안산=이경형기자】 노태우대통령은 22일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여는 과정에서 전환기의 긴 터널을 벗어나 90년대를 힘차게 개척해나갈 태세를 갖추었다』고 말하고 『기업인은 기술과 경영을 혁신하고 근로자는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해야 하며 노사가 합심하여 산업평화를 뿌리내려 생산과 수출을 더 많이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경기도 안산시 군자동 택지개발사업지구내에 있은 근로복지주택 건설기공식에 참석,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정부는 기업 스스로가 많은 근로자 주택을 짓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며 기업의 이같은 투자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택지를 싼값에 공급하고 금융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북한,땅굴굴착 첫 시인/휴전선서 2차례 대남방송

    ◎“남침용아닌 장벽대응용” 강변/북측,정전위서 공동조사 제의 【판문점=김원홍기자】 정부는 14일 북한측이 지난 3일 발견된 제4땅굴을 판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상오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판문점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측이 지난 9일 상오 8시20분부터 30분사이에 한국군 28사단 520GP전방의 북한인민군 5사단 503GP에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자신들이 굴착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측은 지난 9일의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땅굴은 남침을 하기 위해 판 것이 아님을 남조선이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말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부터 없애야 하며 우리의 제4땅굴은 절대로 남침을 위해 판 것이 아님을 재삼 강조한다」고 밝힘으로써 땅굴굴착사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9일 하오 1시47분부터 2시10분 사이에 북한은 휴전선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남침용이 아니라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는 콘크리트 장벽의 대치용이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땅굴』이라고 강변하고 『땅굴의 길이는 2천5백m에 달하지만 콘크리트 장벽은 몇배 이상이나 되면서도 남조선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파놓은 땅굴을 비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상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서 공산측 요청으로 열린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산측수석대표 최의웅소장은 『북침을 위한 공격훈련인 팀스피리트 90훈련을 즉각 중지하라』면서 『한국이 주장하는 제4땅굴은 북침을 위해 남한측이 판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최소장은 『제4땅굴을 확인하기 위해 본인과 북한측의 터널전문가및 기자 등 60여명으로 구성된 공동감시소조가 4대의 헬리콥터에 분승,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비무장지대에 가겠으니 북한측 조사단이 남쪽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안전담보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 기대와 불안… 「통독」움직임의 반향

    ◎무너지는 동독… 일어서는 「거대 독일」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에 힘입은 통독논의는 오는 18일 동독의 자유총선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단계로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들,특히 독일과 인접한 유럽각국은 거대독일의 출현을 우려,통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분단극복이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판단,벙어리 냉가슴앓이를 간직한채 통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통독 움직임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배경및 전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시각/초강대국화 우려,나토잔류 강력 희망/고르비 실각땐 통일행보 지연 가능성/국민열망이 원동력… “올해가 재결합 완성의 해”인식 지난2월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돌며 통독외교를 벌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양독의 신속한 통일만이 동독의 경제적ㆍ정치적 붕괴와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사태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콜총리의 「동독붕괴」발언은 서독측의 정치적 주장이기보다는 객관적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동독은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독 경제위기감 팽배 동독의 미래에 대한 동독인들의 불안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작년에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올들어 지난 두달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11만5천명에 달한다. 1월의 하루 1천8백명에서 2월엔 하루 2천2백5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독일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내년엔 다소 고개를 숙이겠지만 앞으로도 동독 인구 1천6백만명 가운데 1백80만명 이상이 더 빠져 나가 동독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독 사회의 공동화 실상은 작년 11월10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동독군이 잘 대변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동독군은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져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나토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나토측 추정에 따르면 동독국가인민군(NPA)의 병력 수는 작년의 17만3천명에서 지금은 9만명에 불과하다. 동독경제는 지금 파국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숙련 노동 인력의 엑소더스로 사회 각 분야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살쾡이 파업(노동조합의 일부가 본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멋대로 벌이는 파업)ㆍ작업정지ㆍ태업 등의 만연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마르크화간의 공정 환율은 1대1이나 서베를린 암시장에선 10대1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독경제에 절망과 무질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콜 총리가 지난 2월 제의한 「양독의 통화 단일화」는 1차적으로 동독인 엑소더스의 저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날로 시세가 떨어지는 동독의 「장난감」 돈을 서독의 안정되고 태환성 있는 통화로 바꿔주면,그것도 1대1의 공정 환율로 바꿔주면 동독인들이 동독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돼 엑소더스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통화 단일화」의 논리라고 타임지는 풀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3분의2와 서독인의 4분의3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분단된 독일 국민의 이같은 통일 열망이 통독의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동독을 붕괴의 위기로 몰아가고 서독의 사회복지에 중압감을 안겨주고 있는 동독 주민의 끊임없는 엑소더스야말로 현실적으로 양독의 신속한 통일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풀이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얼마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통일이 1990년에 완성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년내 통일을 예견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통합과 통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을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독일통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당초 금년 5월로 예정됐던 동독 총선때까지는 진지한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동독정부가 총선일을 3월18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자 사태의 급박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동독지도부가 5월까지 나라를 지탱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총선일을 당긴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3월 동독 총선에선 통일 지지 정당들이 압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제 독일통일은 가능성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로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부시 정부는 국제적인 통독 협상방안을 서둘러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13일 오타와 회담에서 두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 영 불 소 4개국간에 합의된 통독협상의 틀 「2+4」가 그것이다. 「2+4」방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이 통일의 경제적 정치적 법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 다음에 두 독일과 4강이 만나서 통일된 독일의 병력 규모라든가 나토와의 관계등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 금년 초까지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나치와의 전쟁에서 2천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소련이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인 7천7백만명의 재결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르바초프는지난 2월초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브의 독일 중립화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서독 총리 콜의 방소를 받아들여 『통독은 독일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의 비대한 힘과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나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 독일의 나토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는 「경제거인」 독일을 고립시켜 강대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어 고르바초프도 결국 독일의 나토 잔류를 받아 들일것으로 워싱턴은 내다보고 있다. ○통독협상 방안 마련중 콜이 이끄는 서독의 기민당 정권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와 독일 통일을 확정시켜야 한다는 방침 아래 서독의 온 체중을 실어 통독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콜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 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이 주둔해서는 안된다는 방안을내놓고 있다. 서독은 또 과도기간중 독일 동부에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인종분규 등에 직면한 고르바초프가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만일 그가 실각할 경우 그의 대담한 동서긴장완화정책에 따라 급격히 빨라진 통독 행보도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시각/동독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통독」불변/국제적 지위ㆍ국경ㆍEC와의 관계 촉각/양독의 경제격차가 기폭제… “민족주의 망령 부활”긴장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독 통일 작업을 바라보는 서유럽 나라들의 요즈음 모습은 엉거주춤한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묘책도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질 않는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민족의 소리를 외면할 처지가 못되며,자국의 이해에 관련된다 하여 민족자결의 명분에 반하는 처신을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 변화가 촉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독에심한 거부감을 가져오던 서유럽나라들이 어느새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독총선이 끝난 뒤에 곧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든지,오는 7월1일부터는 서독 돈이 동독에서도 통용되는 등 통화 통합과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성급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가능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통독작업이 급진전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말할것도 없이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 대전의 결과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두쪽으로 갈라졌으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신호였습니다. 이러한 대결 구조가 존속되는 한 독일의 분단상황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반대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분단국의 재통일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런던 국제관계연구소의 토머스 펠러만 박사는 독일의 재통일 문제를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동서간 대립과 대결구조의 해소는 분단민족의 통합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반도라 해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흐름이 외면해 지나칠 이유가 없으며 당사자들(남북한 지칭)이 이같은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할때 분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같이 분단국 재통일 문제의 부각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의 견해이지만 이에 곁들여 『동독의 소멸』현상을 중요한 모멘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호네커정권이 무너지면서 동독의 공산당은 물론 과거의 동독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독은 책임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구체적인 통일 논의는 오는 18일의 동독 총선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총선뒤 동독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첫 과제는 서독의 통일 스케줄에 자신들의 일정표를 짜맞추는 일이 될것입니다』 파리사회과학연구소의 코르넬리우스 교수는 줄곧 두개의 독일을 고집해 오던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통일논의의 최대 장애가 제거된 셈이며 이로인해 국민들의 통일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서독이 대화할 책임있는 상대가 없는 때를 역으로 통일논의의 최적기로 삼아 기회를 놓칠세라 안팎으로 뛰어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붕괴로 새 국면 이와함께 동서독간에 빚어진 경제ㆍ사회적 격차가 통일작업을 재촉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헝가리가 국경철조망을 걷어 치운 뒤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 현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되어 요즈음도 하루 2천∼3천명이 서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들은 체제나 이념문제를 떠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보다 잘사는 형제들 곁으로 향하는 대열이다. 『서독으로의 탈출 대열이 보여주듯 파탄지경에 이른 동독경제는 서독경제의 도움이 절실하며 칼자루를 쥔 서독의 통일논의에 응할수 밖에 없는 상황』(불 리베라시옹지)이 통독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그동안 동서독이 꾸준히 힘기울여온 통일기반 조성 작업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 의한 대동독 경제원조,인적교류,문화ㆍ체육교류등을 통한 민족동질성의 고취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통일논의가 동서독 국민들에게 다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와같은 통독논의의 가속화에 대한 원인분석 뒤에 따르는 관심은 자연히 통일독일의 지위와 국경보장문제, EC(구주공동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독 페이스 불가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날 곡괭이를 들고 장벽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신문을 통해 보면서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알랭 투랜박사(파리 국제전략연구소)는 많은 유럽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한맺힌 통일염원의 표출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망령의 부활」을 느꼈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거나 중부유럽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싸여있다. 이같은 통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연유하는 것이 요즈음 초점이 되고 있는 오데르­나이세국경선 선보장문제이며 헬싱키협약 준수의무 요구나 EC통합범위 안에서의 통독작업 진행 주장 등이다. 콜총리가 6일 오데르­나이세 국경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통독을 보는 유럽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씻은듯 가셔질리는 없는 것이다.
  • 제4땅굴 봉쇄 검토/국방부 발표/재폭발ㆍ붕괴위험 커져 수색 중단

    ◎72년부터 굴착… 전체길이 2천2m 국방부는 6일 제4땅굴에 들어가 7백m쯤 전진했던 아군 특공수색대가 지난 4일의 지뢰폭발사고뒤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군사분계선까지 약 3백m를 앞둔 지점에 마대 등으로 방호시설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뢰폭발 지점에 지하수가 계속 흘러들어와 수색작업을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지하수로 붕괴될 위험이 있는 지점에는 붕괴방지를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고 밝혔다. 제4땅굴은 전체길이가 2천2m로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9백50m,남쪽으로 1천52m이며 아군측의 역갱도 3백31m는 땅굴의 남쪽끝막장으로부터 22m지점을 관통했다. 국방부는 제4땅굴이 72년부터 80년대 중반까지 13명이 한조가 되어 하루 3교대로 약3m씩 판것으로 추정했다.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땅굴관통용 터널굴착기(TBM)를 빼내고 물을 뺀 뒤 군사분계선까지의 나머지 구간에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 등을 제거하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일 계획이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7백m 지점을 아군측이 봉쇄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12월에 터널침목 첫 확인/「제4땅굴」을 찾기까지

    ◎「3호」 이후 12년간 수백개 공 굴착/자연동굴 많아 작업 애로… 내시경까지 사용 ○…『동부전선에서 제4땅굴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로 국방부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동부전선에서 무슨 소식이 있을것 같다』는 풍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78년 이후 12년동안 한미합동 땅굴탐색반이 10여차례의 탐색시추를 했으나 7∼8개가 자연동굴로 밝혀진 예가있어 이번에도 자연동굴이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미국의 지질학자ㆍ탐사전문가ㆍ석유시추전문가 등 20여명을 동원,극비리에 확인 작업을 계속해 왔다. 현장을 조사한 미국의 지질학자들은 『화강암에 자연동굴이 있을 가능성은 1백만분의 1정도 밖에 없으니 남침용 땅굴이 틀림없다』고 우리측을 격려했다. 이에 힘입어 군당국은 미국에서 제작된 최신 굴착기를 도입,굴착을 시작했으나 기계가 미국 지형에는 맞으나 우리지형에는 잘 맞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는 등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확인이 다소 늦어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방부는 지난 20일 동부전선 양구지방에 제4땅굴이 발견되었다는 워싱턴 타임스의 보도가 나가자 과거 북한측의 공격으로 장병들이 사상된 점과 자연동굴일 경우 북한측의 역공세에 말릴 위험성 때문에 이를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냈었다. 그러나 제4땅굴이 발견된 을지부대와 백두산부대 장병들 및 2개의 민간 건설업체 종사자들에 대한 보안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게 되자 지난 1일 메네트리 유엔군사령관에게 보고를 하고 역터널을 뚫게 됐다. 더욱이 올해초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우리측이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콘크리트 장벽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등 대남 심리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땅굴 발견 소문이 사실과 다를 때 북한측이 이를 역이용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제3땅굴이 발견된 78년 이후 한ㆍ미 양국은 전문탐색팀을 구성,미국의 석유시추 전문가 20여명을 초청,휴전선 일대의 지형지물에 대해 대대적인 지질조사에 나서는 등 북한의 땅굴을 찾아내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 작업에는 미국의 석유 시추 기계와 독일제 착암기,스웨덴제 굴착기 등이 동원됐다. ○…땅굴 1개의 구멍을 시추하는데 드는 예산은 약 1천만원으로 추산되며 지난 10년동안 뚫은 구멍만도 수백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역갱도 공사에는 약 1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한 제4땅굴은 지난해 12월 땅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에 땅굴 천장용 침목이 잡히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군당국은 이를 단서로 국내 굴지의 토건회사 전문가들과 군장병들을 동원,본격적인 탐색작업을 벌인끝에 3일 하오 1시28분 굴착에 성공한 것이다. □1ㆍ2ㆍ3ㆍ4땅굴 비교 ●1호 〈1〉발견일시:1974년11월15일 〈2〉위 치:고랑포 동북방 8㎞ 〈3〉크 기:높이 1.2m,폭 90㎝ 〈4〉깊 이:지하 45m 〈5〉총 길이:3.5㎞ 〈6〉침투길이:1000m 〈7〉구 조:콘크리트 구조물 〈8〉전술능력:1개연대 병력침투 〈9〉예상기습:고랑포∼의정부∼서울 〈10〉방 향:(65㎞) 〈11〉특 징:운반차량 사용,전기가설●2호 〈1〉발견일시:1975년3월19일 〈2〉위 치:철원 북방 13㎞ 〈3〉크 기:높이 2m,폭 2.1m 〈4〉깊 이:지하 50∼160m 〈5〉총 길이:3.5㎞ 〈6〉침투길이:1,100m 〈7〉구 조:암석층 굴진 아치형 〈8〉전술능력:시간당 3만 병력과 야포통과 〈9〉예상기습:철원∼포천∼서울 〈10〉방 향:(101㎞) 〈11〉특 징:출구를 여러개 만들어 유사시 병력을 산개 ●3호 〈1〉발견일시:1978년10월17일 〈2〉위 치:판문점 남방 4㎞ 〈3〉크 기:높이 2m,폭 2m 〈4〉깊 이:지하 73m 〈5〉총 길이:1.635㎞ 〈6〉침투길이:435m 〈7〉구 조:암석층굴진 아치형 〈8〉전술능력:시간당 3만 병력과 야포통과 〈9〉예상기습:문산∼서울(44㎞) 〈10〉방 향: 〈11〉특 징: 〃 ●4호 〈1〉발견일시:1990년3월3일 〈2〉위 치:양구 〈3〉크 기:높이 2m,폭 2m 〈4〉깊 이:지하 145m 〈5〉총 길이:2㎞ 〈6〉침투길이:미확인 〈7〉구 조:아치형 〈8〉전술능력:미확인 〈9〉예상기습 :오대산ㆍ태백한일대에서 유격활동,제2전선 형성 〈10〉방 향 : 〈11〉특 징:영동고속도로 장악,병력 이동및 병참선 차단
  • 교통표지판 엉망… “체증” 부채질

    ◎내용 틀리고 위치선정 잘못도 수두룩/지시방향 가면 엉뚱한 곳에/낡은 안내판 수리 안해 운전자 큰 불편 전국의 자동차 대수가 1백70만대를 넘어서고 서울만도 1백만대를 돌파하는 등 도시 교통난이 극심한 가운데 서울을 비롯한 전국주요간선도로의 교통표지판과 도로표지판이 잘못돼 있어 혼잡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해마다 늘어나는 외국관광객들이 안내지도만 가지고 손수운전으로 관광을 하기는 불가능한 실정인 것을 물론,다른 지방에서 온 운전자나 심지어 그 도시에 사는 운전자들까지 잘못된 표지판을 보며 길을 찾느라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교통사고까지 일으키기 일쑤다. 가장 극심한 교통난을 겪고 있는 서울의 경우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2천10개,차량의 진행방향ㆍ진행방법 및 보조기능을 맡은 교통표지판이 2천4백38개,주의ㆍ규제ㆍ지시ㆍ경고ㆍ위험ㆍ금지 등을 알리는 교통안전표지판이 5만5천7백25개 등 6만여개의 각종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표지판 가운데 상당수가 적절한 위치에 세워져 있지않거나 표기가부실하여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며 관리 소홀로 망가졌거나 훼손된 표지판이 한달평균 1천5백여개에 이르고 있고 제때에 수리ㆍ보수가 되지않아 운전자들에게 더욱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번잡한 광화문 네거리의 경우 종로쪽에서 서울역으로 가려할때 서울역쪽으로 좌회전을 금지하는 표지판만 있을뿐 우회전한 뒤 종합청사앞에서 되돌아 시청앞∼남대문을 거쳐 서울역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이곳에서 우회전을 하더라도 으레 바깥쪽 차선을 따라가다 세종문화회관앞 지하차도를 통해 U턴하기 일쑤이나 지하차도로 나온 차량은 시청쪽으로 직전이 금지돼 있다. 이곳의 경우 지하차도가 나오기 전에 중앙차선쪽으로 길을 잡아 종합청사 앞 1,2차선으로 U턴해야 하나 맨끝선인 8차선에서 우회전한 차가 1,2차선으로 차선을 바꾸려면 직진차량들의 통행을 가로막아야하고 사고의 위험도 크다. 병목현상이 심한 서울시내 한강다리가운데 교통안내 표지가 가장 허술한 곳이 한남대교 남쪽끝의 경부고속도로와 신사동 네거리로 갈라지는 부분이다. 이곳은 원래 왕복 6차선이었던 길을 가변차선을 운용하면서 각각 3차선과 4차선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가변차선이 끝나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어 항상 교통체증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시내쪽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려면 4차선만을 따라가야만 하는데도 이를 알려주는 표지가 전혀없어 고속도로 입구에서 차량이 엉켜 혼잡을 더하고 있다. 운전자가 교통표지판을 보면서 진행하는 동안 갑자기 처음 목표했던 지명이 없어지고 엉뚱하게 중간지명이 튀어나와 당황하는 일도 적지않다. 동대문에서 광화문쪽으로 갈때 교통표지판에는 마포ㆍ서대문ㆍ광화문 등의 이름이 순서없이 표기되어 있다. 3호터널에서 신세계백화점쪽으로 가다보면 우회전표지판에 퇴계로라고 적혀있으나 반대쪽에서 올때는 좌회전 표지판에 왕십리라고 서로 다른 지명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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