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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대선 승리의 정치로 돌아가라/김인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선 승리의 정치로 돌아가라/김인철 논설위원

    이게 아닌데/사는 게 이게 아닌데/이러는 동안/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중략)/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김용택의 ‘그랬다지요’) 그렇다. 개인사라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팔자니 운명이니 하면서 그저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러나 국가지대사는 그게 아니다.‘이게 아닌데’라는 국민들에게 그저 참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또 참지도 않는다. 대통령 지지도는 곧 민심이다.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돼 20%대로 추락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많은 국민들이 ‘이게 아닌데’라며 고개를 외로 젓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치의 요체는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배 부르고 등 따스하니 임금이 누군지 내 알 바 아니라던 요순시대가 최고의 태평성대였다지 않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니 광우병위험물질(SRM)이니 하는 낯선 말들을 어린 학생들이, 아이 업은 주부들이 입에 올리는 현실은 아무래도 ‘이게 아닌데’다. 왜일까. 미덥지가 않아서다.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던 기대,‘잃어버린 10년’보다는 나은 세월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실망과 불만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청와대와 내각의 무능력과 무책임, 무소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자리잡고 있다. 새 정부는 지난 3개월여동안 경제는 물론 정치, 외교, 통일, 교육 등 제반 분야에서 정부와 국민간, 당·정·청간,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고 통합해 강력하고 일관성있게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는 믿음을 주는 데 실패했다. 경쟁 국가들의 맹추격과 고령화로 인해 이번 5년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진단한 것은 옳았지만 현행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견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역부족이었다. 미 쇠고기 파동과 유가 급등의 회오리 속에 국무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 그 누구도 조정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0교시 부활에 국민 모두 환영할 줄 알았다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특별보조금 파문’으로 국민을 한번 더 분노케 했을 뿐이다. 북한 식량지원을 둘러싼 부처간 엇박자 역시 통일외교안보분야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엿보게 했다. 인적 쇄신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사건건 타이밍도 놓쳤다. 쇠고기협상을 한·미정상회담 직전 타결한 것은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둘러 양보하고 부실협상을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쇠고기 관련, 대통령 담화도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미흡했다. 청와대나 내각의 정무적 판단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 정치는 타이밍이다. 새 정부 역시 ‘잃어버린 5년’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내달 3일 출범 100일을 심기일전의 전기로 삼야야 한다. 인적 쇄신, 특히 국민과 소통하고 민심을 헤아릴 줄 아는 인사들의 중용이 그 출발점이다. 대통령이 진정 국민과 소통하겠다면, 탈여의도정치에 집착한 결과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과의 불화가 빚어졌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대선 주역들을 국정운영의 전면에 내세울 때가 됐다고 본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알고 공감하며, 충성심을 갖춘 그들은 멀리해야 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의 짐이 아니라 정치적 자산일 수 있다.5개월전 531만표라는 역대 최다표차로 승리를 안겼던 그들에겐 민심과 여론을 읽고 대처할 힘이 있지 않겠는가.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2) 절체절명의 시간들

    [병자호란 다시 읽기] (72) 절체절명의 시간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인조는 나름대로 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자책하는 내용을 담은 교서를 반포하여 실책을 사과하고, 내외 신료들에게 구국의 방책 마련을 위해 협조를 당부했다. 신료들도 인조의 호소에 답하여 이런저런 개혁안과 방책들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는 노비의 수를 줄여 군역에 충당해야 한다는 등의 근본적인 개혁안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청과의 관계에 못을 박다 1636년 5월26일, 인조는 다시 교서를 내렸다. 나름대로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우리는 수천 리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어찌 움츠리고만 있을 것인가? 지난 번 용골대를 보니 겁 많고 꾀가 없는 것이 우리보다 더하더라.’ 인조는 이어 수령들에게 안민(安民)의 정치를 펼 것과 변방의 장수들에게 군졸들을 무휼(撫恤)하라고 촉구했다. 청렴하고 능력 있는 수령과 장수들은 상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어 내탕(內帑, 왕의 개인 금고)에서 목면 1000필을 풀어 평안도에서 장졸들을 선발하는 비용으로 쓰라고 지시했다. 평소 내수사(內需司)와 관련된 비판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던 그가 스스로 내탕을 푼 것은 이례적이었다. 6월17일 홍타이지의 국서에 답하는 글을 의주로 보냈다. 격문(檄文) 형식이었다. 정묘년에 맺은 맹약이 깨지게 된 것은 조선 탓이 아니라 청나라 탓임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귀국은 군사강국이지만 우리는 궁벽진 곳에 위치한 농업국가일 뿐이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귀국을 능멸하고 스스로 맹약을 깨겠는가?’라는 반문으로 시작되는 국서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먼저 조선이 명을 섬겨 배신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묘 당시 합의된 약속임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조선이 한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문제삼는 청의 태도는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은 이어 변방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청 영내로 몰래 들어가 산삼을 캔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마지막으로 차하르(察哈爾) 버일러들은 이미 망한 나라의 포로들이니 청과 똑같이 예우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선은 ‘명나라의 동번(東藩)’으로서 강약(强弱)과 성패(成敗) 때문에 신하의 절개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지막 내용이 흥미롭다.‘군사도, 재물도 없는 우리는 오로지 대의와 하늘만을 믿는다. 과거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말로를 보라. 자중지란이 일어나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조선을 침략했던 그의 부하들은 다 죽었다. 반면 우리와 우호를 유지한 도쿠가와씨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청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황손무의 충고 방어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던 7월, 가도에서 명군 부총병(副摠兵) 백등용(白登庸)이 서울로 들어왔다.7월27일 인조는 남별궁(南別宮)으로 직접 거둥하여 그를 만났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명나라 관원이라도 부총병 급의 인물을 국왕이 숙소까지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답답한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침략은 예고되어 있는데 신료들의 의견은 분분하고, 대책 마련은 여의치 않았다. 백등용은 인조에게 조선이 비록 오랑캐와 절교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들을 기미(羈)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면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조선의 사정이 딱하게 보였던 것일까? 사실 조선은 청에 대해 공식적으로 절화(絶和)를 선언했지만 일각에서는 다시 화친을 도모하는 것에 미련이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실마리를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8월27일 주강(晝講)이 끝난 직후, 지경연(知經筵)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병법에는 권모술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추신사(秋信使)는 보내지 않더라도 우선 역관을 들여보내 청 내부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단 역관이라도 보내 대화 재개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시독관(侍讀官) 조빈이 당장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정묘호란을 겪은 뒤 자강(自强)하지 못한 것은 화의(和議)가 병이 되었기 때문이며, 강화를 하더라도 어차피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대의를 밝히고 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명길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9월1일, 명의 감군(監軍) 황손무(黃孫茂)가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입경했다. 인조는 인정전(仁政殿)에서 황제의 칙서에 절을 올렸다. 칙서는 조선이 청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것을 찬양한 뒤, 속히 명과 협력하여 오랑캐를 토벌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틀 뒤 황손무는 인조에게 글을 보내 이런저런 훈수와 요구를 늘어놓았다. 그는 조선이 청과 가까운 몽골 세력을 회유할 것과 간첩을 보내 청의 내부 사정을 정탐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또 조선은 수천 리나 되는 큰 나라라고 강조한 뒤, 의주의 옛 성을 다시 쌓고 가도의 동강진과 협조하는 태세를 유지하면 오랑캐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슬쩍 청에서 귀순해 오는 한인들을 조선이 받아줄 것과 명에 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인조는 황손무에게 조선이 군사력이 약해 오랑캐를 막기 어려우니 ‘부모의 나라’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황손무는 조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선이 지독한 숭문주의(崇文主義)에 빠져 무비(武備)를 갖추는 데 소홀했고, 병농(兵農)이 구별되지 않아 군사력이 약해졌다고 진단한 뒤,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힘쓰라고 촉구했다. ●최명길, 평안도에 지휘본부 설치를 촉구 9월5일, 최명길이 차자를 올렸다. 그는 사간원 관원들이 ‘청과 척화하되 직접 나가서 싸워 이길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인조에게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쟁을 피할 계책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사간원 신료들의 주장대로 직접 나가서 싸울 계책을 마련하든지 속히 택일(擇一)하라고 촉구했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면서 적의 침략을 맞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경고했다. ‘하루아침에 적의 기마병이 휘몰아오면 체찰사는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고, 원수는 황주(黃州)의 정방산성(正方山城)으로 물러날 것이니 청천강 이북의 모든 고을은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안주성도 온전할 수 없으니 생령(生靈)은 어육이 되고, 종사는 파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명길의 예측이었다. 당시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적의 진격 루트 가운데 방어 준비를 그나마 갖추고 있는 곳이 안주성이었다. 하지만 전쟁 지휘부가 강화도로 들어가고, 도원수가 산성으로 들어갈 경우 안주성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명길의 생각이었다. 실제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최명길의 예언은 거의 그대로 들어맞았다. 최명길은 이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마지막 계책을 진언했다. 먼저 도체찰사와 도원수를 평안도로 보내 지휘 본부를 설치하고, 평안병사를 의주로 들여보내 장졸들에게 오로지 진격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는 결의를 보여주라고 촉구했다. 그런 다음 심양에 국서를 보내 군신의 대의를 밝히고, 추신사를 파견하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고, 청 내부의 정황을 탐지하라고 건의했다. 만일 그들이 혹시라도 답장을 보내오면 그 내용을 살핀 다음 우리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자고 했다. 청이 우리의 충심을 받아주면 관계를 계속 유지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국경에서 결전을 벌여 승부를 내자는 주장이었다. 인조는 답하지 않았다. 전진하여 승부를 내는 것이 겁났던 것일까? 인조는 입을 다물었고, 삼사 관원들이 들고일어났다. 절체절명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MB의 제2코드, 문화 실용주의?

    MB의 제2코드, 문화 실용주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31일 국립중앙박물관 내 한 음식점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만나 새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문화예술계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가늠하는 자리였다는 분석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화연대 등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주류로 부상한 단체의 인사들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석좌교수 등 원로급 인사들만 참석했다. 이 당선인은 인사말에서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돼서 봉합을 하는 게 제일 급한 것 같다.”면서 “너무 많은 곳이 찢어지고 흩어져서 걱정스러운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한국민의 장점을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문화예술계에서 진행된 이념적 코드에 따른 분할과 갈등을 지적한 대목이다. 이날 사회를 본 유인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은 “예총회장, 민예총 회장은 오시지 않았다.”면서 “각 분야의 선생을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는 원로들을 모셨다.”고 설명했다. 이 당선인은 임기 내내 정책적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향후 5년을 태평성대로 만들려면 문화예술이 가장 꽃피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에 일주일 내내 있지 않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나와서 살다가 일요일 밤늦게 들어가려고 한다.”면서 “1년에 한번씩은 (문화예술인들과)볼 것이고, 중간점검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강숙 한예종 석좌교수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예술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횡포가 있다.”며 예술계에도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이 당선인이 5년 후 퇴임할 때 2만원씩 걷어 ‘소주 파티’를 열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 원로들과의 만남에 앞서 이 당선인은 오전 알 타이피 이집트 대사를 비롯한 주한 아랍지역 공관장 13명을 만났다. 이 당선인은 “우리나라가 아랍국가들과 경제적으로 관계가 많으면서도 외교적으로는 그만큼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중동의 국가 최고지도자들과 서로 자주 방문하면서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랍지역은 자원외교의 주요 파트너이자, 오일 달러를 보유한 ‘큰 손’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아랍 국가들의 안정적 에너지자원 공급과 건설플랜트 수주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면서 “협력분야가 IT, 관광, 문화, 인력연수 등 다른 분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와 상담 중인 우리나라의 T-50 고등 훈련기 수출과 관련,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특별히 배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당선인은 한국과 아랍지역의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을 추진할 민·관합동 단체인 ‘중동 소사이어티’의 설립을 강력히 추진해 오고 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대통령 취임식 엠블럼 ‘태평고’

    대통령 취임식 엠블럼 ‘태평고’

    새달 25일 열리는 제17대 대통령취임식에는 봉황문양 대신 ‘태평고(太平鼓)’를 엠블럼으로 사용한다. 태평고는 태평소와 북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위원장 박범훈)는 “태평고는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희망의 울림소리가 미래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당선인의 신년 화두인 시화연풍(時和年豊)의 의미를 포함함은 물론, 취임식장에서 선포할 대한민국의 비전에도 부합한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취임식 무대는 “권위적인 모습을 없애고 국민과 함께 하는 취임식이 되게 하라.”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요청에 따라 단상의 높이를 대폭 낮췄다. 준비위는 단상을 일반 참석자들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배치할 계획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드라마 성공? 결론은 캐릭터!

    드라마 성공? 결론은 캐릭터!

    결국은 캐릭터다. 드라마가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 시청자 뇌리에 오래 남느냐 못 남느냐는 결국 등장인물의 캐릭터 설정에 달려 있다.2008년 드라마 라인업을 보고 어렵잖게 성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에서부터 이미 그 징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새달 2일부터 방영되는 새 수목드라마 SBS ‘불한당’과 KBS2 ‘쾌도 홍길동’ 은 주인공 캐릭터가 시청자의 구미를 확 잡아끈다.‘불한당’에서는 여자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프리랜서 작업남’ 권오준(장혁)이 등장한다. 삐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 캐릭터에 대해 유인식 PD는 “위악적인 인간이 개과천선했을 때 그 낙차가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준 역을 맡은 장혁도 “환경적으로 나쁜 놈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천하의 불한당이 좋은 놈으로 변해가는 터닝포인트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쾌걸 춘향’의 홍미란·홍정은 자매가 대본을 맡은 퓨전사극 ‘쾌도 홍길동’도 주인공 길동에 대한 ‘고전 비틀기’로 시선을 모은다. 홍길동 역을 맡은 강지환은 “허균 원작에 나오는 바른생활 사나이 홍길동은 잊어주길 바란다.”는 말로 배역을 설명했다. 이렇듯 ‘쾌도 홍길동’은 아픈 성장 배경으로 인해 매사에 까칠하기 그지없는 악명 높은 날건달로 그려질 예정이다. 이처럼 ‘주인공은 완벽한 인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 설정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최근 들어 대중예술에서도 입체적 인물(라운드 캐릭터)이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착하기만 한 성격은 가식 혹은 위선으로 받아들여지는 등 시대상과 인간상이 더 복잡해진 데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범적인 캐릭터도 무시할 수 없다. 내년 1월5일 첫방송되는 KBS1 대하드라마 ‘대왕세종’은 반듯한 캐릭터로 시선을 끄는 경우다. 태평성대를 구가한 세종의 이면에 숨겨진 눈물과 한숨을 그려 올바른 리더십을 제시하겠다는 게 기획의도다. 이처럼 사극의 주인공이 훌륭하게 묘사되는 것에 대해 이영미씨는 “사극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인물의 이야기를 담는 것인 만큼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법”이라며 “패러디나 희극의 경우 캐릭터가 보다 더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캐릭터 설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설득력 있으면서도 입체적으로 그려내느냐 하는 것이다. 종영한 SBS ‘로비스트’의 경우 마리아에 대한 해리(송일국)의 맹목적인 일편단심 등이 공감을 얻지 못했다.KBS1 ‘대조영’의 경우도 대조영을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일관해 극을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야 했고, 책을 편집·출판할 비용이 마련되어야 했다. 상업 출판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모두 자비 출판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중인들은 개인 시집을 낼 여유가 없었다. 직하시사 동인들은 수백명 선배들의 시를 모아서 시선집을 출판해주고, 그들의 전기도 지어 주었다. 그러한 문화활동 중심에 조희룡이 있었다. ●잡류 6명이 함께 시선집을 출판하다 위항시인 가운데 최초로 문집을 낸 사람은 유희경(劉希慶·1545∼1636)인데, 그는 노예 출신이다.13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인부도 구하지 못하고 직접 무덤을 만든 뒤에 흙을 져다가 계단을 만들었는데, 수락산 선영을 왕래하던 양명학자 남언경이 기특하게 여겨 한문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로 불렸던 백대붕(白大鵬)도 전함사의 노예였으니, 임진왜란 전후에는 아직 중인이라는 계층이 확립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즈음에 태어난 중인들은 주로 삼청동에 모여 한시를 지었다. 이 모임의 주역도 노예 출신의 최기남인데, 그는 집이 가난해서 선조의 부마 신익성의 집에 궁노(宮奴)로 들어갔다. 서리(書吏) 일을 보는 틈틈이 경전을 연구했으며, 서당을 열어 위항 자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시를 지었던 친구나 후배들은 의원 정남수, 의원 남응침, 의원 정예남, 금루관(禁漏官) 김효일, 역관 최대립 등인데, 모두 직업상 한문에 능통했다. 이들은 궁에서 숙직하는 날에 모여 시를 짓기도 했고, 날씨가 좋은 날 악공을 불러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기도 했다. 자신들이 놀던 모습까지 그림으로 그렸지만, 현재 확인된 것은 없다. 김효일과 최대립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들은 1658년쯤에 자신들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다. 각자 개인 시집을 내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여섯 사람의 시를 함께 묶었다. 정남수 52편, 최기남 53편, 남응침 43편, 정예남 21편, 김효일 41편, 최대립 51편 등 모두 261편을 편집한 뒤에, 의원 남응침이 어릴 적 친구였던 영의정 이경석을 찾아가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천대받던 중인들의 시선집이 출판된 적이 없으므로, 영의정의 서문을 받아 문단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했던 것이다. 시선집의 제목인 ‘육가잡영(六家雜詠)’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육가(六家)는 여섯 사람의 시인이라는 뜻이니 별 문제가 없지만, 잡(雜)이라는 글자는 뒤섞였다는 뜻도 있고, 잡스럽다는 뜻도 있으며, 잡놈이라는 뜻도 있다. 대제학을 지낸 남용익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대표작을 모아 ‘기아(箕雅)’라는 시선집을 간행했는데,451명의 양반 사대부 시인들 뒤에 우사(羽士·도사) 3명, 납자(衲子·승려) 19인, 잡류(雜流) 6명, 규수 7명, 불성씨(不姓氏) 3명의 시를 편집했다. 불가의 스님은 조선시대 팔천(八賤) 가운데 하나로 천대받았지만, 남용익의 분류기준에 의하면 중인들은 도가의 도사나 불가의 스님보다도 낮고 천했다. 그가 뽑은 잡류는 풍월향도의 유희경과 백대붕,‘육가잡영’의 최기남, 김효일, 최대립 등이었다. 잡류 뒤에는 여성이 있고, 그 뒤에는 역적이어서 성을 삭제한 허균·박정길·이계가 있을 뿐이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중인들은 팔천 가운데 하나인 스님보다는 못하지만, 여성이나 역적보다는 조금 나은 잡놈일 뿐이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육가잡영’은 ‘여섯 잡놈이 읊은 시’라는 뜻이 된다. 이 책에 서문을 쓴 이경석은 “절구(絶句)와 고시(古詩), 장단율(長短律)이 뒤섞여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은 사대부들이 흔히 짓던 5언·7언의 절구나 율시뿐만 아니라,3·5·7언,6언율시,3언절구, 집구(集句), 회문(回文) 등의 다양한 시체(詩體)를 실험적으로 지었다. 그렇다면 ‘육가잡영’은 “여섯 시인이 다양한 형식으로 읊은 시집” 정도의 뜻이 된다. 여섯 시인은 영의정 이경석의 서문을 받아 자랑스럽게 시선집을 출판했지만, 정작 이경석은 이 글을 별 생각없이 써준 듯하다. 그의 문집인 ‘백헌집’ 권30에 그가 지은 서문 26편이 실려 있지만, 이 글은 빠져 버렸다. ●사대부에게 버림받은 주옥 같은 시를 꿰다 ‘육가잡영’이 간행되고 60년 한 갑자쯤 지나자, 역관 시인 홍세태(1653∼1725)가 다시 위항시인들의 대표적인 한시를 뽑아 ‘해동유주’라는 시선집을 편찬했다. 대제학 김창협은 “천기(天機)가 깊은 자만이 진시(眞詩)를 쓸 수 있다.”는 이론을 내세워 중인들을 격려했는데, 신분을 초월해 그와 사귀던 친구 홍세태는 그 이론을 발전시켜 최기남의 아들인 경아전 최승태의 ‘설초시집’에 서문을 썼다.“시는 하나의 소기(小技)이다. 그러나 명예와 이욕에서 벗어나 마음에 얽매인 바가 없지 않고는 잘 지을 수가 없다. 장자(莊子)가 말하길 ‘욕심이 많은 자는 천기(天機)가 얕다.’고 했다. 예로부터 살펴보면 시를 잘하는 사람은 산림(山林) 초택(草澤) 사이에서 많이 나왔다. 부귀하고 세력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로 미루어보면, 시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사람됨까지도 또한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를 통해 그 사람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개성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개성은 빈부 귀천에 달린 것이 아니라 타고난 천기에 달렸다고 하면서, 시에 있어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음을 내세웠다. 오히려 태어날 때부터 권력에 욕심을 가질 수 없었던 중인이나 평민 시인들이 양반 사대부들보다 천기를 더 깊이 지녀, 더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창협이 그에게 위항시인들의 시선집을 편집해 보라고 권했다.“우리나라의 시가 채집되어 세상에 간행된 것이 많지만, 여항인의 시만은 빠져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으니 안타깝다. 그대가 채집해보라.” 홍세태는 10년 동안 위항시인 48명의 시 235편을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시선집을 간행했다. 머리말에서 “시에는 귀하고 천하고가 없이 하나같다.”고 하며 편집 동기를 밝혔는데, 유주(遺珠)란 ‘잃어버린 구슬’, 또는 ‘버림받은 구슬’이란 뜻이다. 사대부들이 버린 우리나라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그가 주워 모았다고 자부한 셈인데, 교서관 활자로 간행했다. ●육십년마다 중인 선배들의 시선집을 간행하다 ‘육가잡영’의 중심인물인 최기남의 서당 제자인 임준원을 비롯해, 최기남의 아들인 최승태·최승윤 및 손자 최세연, 외손자 김부현 등이 주동하여 낙사(洛社)를 구성했다. 이들은 백악·필운대·옥류동 등지에서 모였는데,‘낙사’는 ‘서울(낙양) 시인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이들은 중인들이 개인 시집을 출판하지 못해 이름도 없이 묻혀버리는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1737년에 임준원과 역관 고시언이 주동하여 161명의 시 685수를 편집해 ‘소대풍요(昭代風謠)’라는 9권 2책 분량의 시선집을 간행했다.‘소대’는 밝은 시대, 태평성대라는 뜻이고,‘기아(箕雅)’의 ‘아(雅)’가 사대부의 시임에 비해 ‘풍요’는 민중들의 노래라는 뜻이다. 목록에는 간단한 약력을 밝혔는데, 한문을 많이 쓰는 역관과 의원이 가장 많고, 내수사 별좌, 금루관, 사자관(寫字官), 주부(主簿), 녹사(錄事), 봉사(奉事) 등의 기술직 관원이 눈에 띈다. 잡과 이외에 생원 1명, 진사 4명이 있지만, 문과 급제자는 없다. 18세기에는 중인 집단이 커져서, 시인의 숫자도 늘어났다.‘소대풍요’가 나온 지 한 갑자가 지나자, 시선집을 다시 편찬할 필요성이 생겼다.‘소대풍요’는 임진왜란 전부터 1737년까지 150년간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60년간의 시인만 대상으로 해도 340명 723수로 늘어났다. 이 책을 편집한 송석원시사의 동인들은 ‘소대풍요’를 잇는다는 뜻에서 책 이름을 ‘풍요속선(風謠續選)’이라 했는데, 잡과 이외의 합격자가 진사 5명, 문과 1명, 무과 8명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성중같이 향시에 10회나 합격하고도 늙도록 급제하지 못해 임금의 동정을 받은 것이 중인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시 60년이 지난 1857년에는 직하시사의 동인인 유재건과 최경흠이 ‘풍요삼선’을 엮었는데,305명의 시 886수를 7권 3책으로 편집해 300부 간행했다. 이들은 ‘소대풍요’ 초판이 간행된 지 120년이 지나 구할 수 없게 되자,100부를 다시 인쇄했다. 선배 중인들의 문학활동을 후세에 전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선배 중인들의 전기도 본격적으로 저술했다. 조희룡이 먼저 ‘호산외기’를 저술하자, 이어서 유재건이 ‘이향견문록’을 엮고, 최경흠이 ‘희조질사’를 엮었다. 직하시사 동인들에 의해 조선후기의 중인문화가 19세기 후반에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인 전기집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위기의 재계 새 먹거리를 찾아라] (4·끝) SK그룹

    [위기의 재계 새 먹거리를 찾아라] (4·끝) SK그룹

    지난 5월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 마주 앉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사업자회사(옛 계열사) 임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잠시 뒤 최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국내 기업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들의 경쟁상대는 해외시장에 있다.” 누누이 강조한 글로벌 사업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호된 ‘질책성’ 발언이었다.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 40%대 못 넘어 SK그룹은 자산순위로 보면 삼성, 현대·기아차그룹에 이어 재계서열 3위다. 지난해 매출액은 70조원. 잘나가는 SK도 오너 입장에선 태평성대가 아닌 듯싶다. 이런 분위기는 신년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위기의식이 잔뜩 묻어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임직원들에게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라.”고 촉구했다.“SK가 살아남는 길은 그 길뿐”이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올해는 한발짝 더 나아갔다.“마인드만으로는 안 된다. 성과를 내야 한다.”고 고삐를 바짝 조였다. 최 회장의 지적대로 SK가 사는 길은 얼마나 빨리, 그리고 구체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뿌리를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SK는 이를 ‘글로벌리티(Globality:세계화 정도, 세계화 능력)’의 제고라고 한다. 신성장동력은 다름아닌 글로벌 사업인 셈이다. 글로벌경영의 성과가 미미할 경우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룹 내부의 인식이다.‘내수중심기업’이라는 한계를 빨리 벗지 않으면 안 된다. SK의 지난해 매출액 70조원 가운데 수출 비중은 35.7%에 불과했다.2002년 이후 지금까지 40%대를 돌파한 적이 한번도 없다.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 최고 기록은 2005년 37.8%가 고작이었다. 글로벌기업이나 글로벌경영 등 구호만 요란했지, 실제 수출비중은 높지 않았다. ●SK에너지, 해외 자원개발 박차 이에 따라 SK는 올해 초부터 모든 조직을 글로벌 체제로 바꿨다.SK에너지와 SK텔레콤이 변화를 이끌도록 했다. 이 두 회사는 그룹의 앞날을 가늠할 방향타이자 ‘쌍포(雙砲)’다. SK에너지는 ‘자원개발’이라는 특명을 부여받았다.SK의 첫번째 신성장동력이다. 이를 위해 SKI(SK International)를 설립했다. SKI 대표는 SK에너지의 R&I 부문장을 맡고 있는 유정준 부사장이 맡도록 했다. 유 부사장은 최 회장의 글로벌 경영 전도사이자, 복심으로 통한다. 해외자원개발은 물론 중국 베이징·상하이, 미국 휴스턴, 영국 런던, 페루 리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14개 해외지사 운영을 모두 유 부사장에게 맡겼다. SK에너지는 최근 페루 해상광구의 탐사권을 따냈다. 입찰 성공으로 SK에너지의 광구 수는 세계 14개국 26개 광구로 늘어났다. 올 상반기에 참여한 베트남 15-1/05 광구에서도 베트남 정부의 최종 투자승인이 떨어졌다.SK에너지는 중국을 발판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메이저로 도약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액과 현지법인 매출액은 3조원을 넘었다.2010년까지 5조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SKT도 中 투자 본격화 SKT도 해외사업 선봉에 섰다. 두번째 신성장동력이 바로 SKT에 맡겨진 해외 통신사업이다.SKT는 중국 현지에 자본금 3000만달러의 지주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지주회사가 중국 사업을 총괄한다. 중국 내 합작·자회사 형태의 현지법인 지분을 모두 보유하게 된다. 중국 차이나유니콤 지분 투자에 이어 본격화된 중국 사업의 신호탄이다. 정보기술(IT) 사업 자회사들도 어깨를 결었다. 기술력과 콘텐츠를 앞세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SK 관계자는 26일 “SKT의 강점이 세계 최초의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상용화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술력이라면 SK커뮤니케이션즈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무기”라면서 “이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해외진출을 한층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신적(神笛)이다.‘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신라의 소리’라고 했다. ‘만파식적’ 설화에 등장한다. 제31대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그러자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그런데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하루는 현장에 나갔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었다. 용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피리를 국보로 삼고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이름지었다.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 있던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3죽(竹)이라고 해서 대금·중금·소금 등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笛(적)’은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시인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내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속에/터질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흰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거나∼/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어둠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0·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 다섯살 때부터 소금(小)을 배웠으니 사실상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를 맞은 셈. 그 세월만큼이나 대나무 악기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지난 4월5일 북악산 개방행사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감동적인 대금산조를 연주,39년 동안 잠자던 북악산의 정기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획을 하나 더 그었다.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본인의 평생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이 전집에는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번을 시작으로 나머지 350장(최종목표 400장)의 음반을 더 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2∼3년 안에 완결짓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구실(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괄괄한 목소리에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우리나라의 난다긴다는 예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인데 그곳에 가서 대금을 배울 때 경상도 사투리를 함부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누가 말을 시키면 “그저 대금을 입에 대고 소리만 냈다.”며 웃는다. 얼굴이 50대로 젊어 보인다고 하자 “대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며 나름대로의 비결을 귀띔했다. 20여평 남짓한 연구실 벽면에는 온갖 상장이며 지나온 발자취의 업적이 쭉 내걸려 있었다. 아들 이광훈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 국악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뒤를 잇고 있다면서 “저기봐, 대통령상도 받았어, 아주 잘해.”라며 잠시 자랑끼를 발동한다. 친손자와 외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금과 가야금 등에 소질이 많다고 부연했다. “11세 되던 1947년, 전주에 계신 스승(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판소리든 민요든 한국의 전통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것이 중단되고, 또 6·25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 서양음악이 거칠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국악공부에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6·25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일곱분의 스승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켜가면서 ‘대니 보이’‘엘 콘도 파사’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그랬더니 얼마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다섯살 때 선친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11세 때 한주환 선생을 비롯,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 즉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숙원사업 그의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이때 단원의 악사로 참가했으나 춘향역을 맡은 주연 무용수 안나영씨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13분 동안 최초의 대금독주로 시간을 때운 것. 이때 객석에서는 동양적 음향에 반했다며 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40여개국 순회공연까지 가졌다. “군대생활요? 27사단 정훈부 군예대에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같이 근무했어요. 나중에는 피리명인 정재국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서로 ‘정악’(피리)과 ‘민속악’(대금산조)을 가르쳐주며 생활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정씨가 먼저 됐지요.” 나이 70을 넘기면서 그에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하루속히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서울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 강의)이고 각종 공연활동과 음악강연을 틈틈이 하면서도 ‘춤의 소리’ 백과사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 사업이야말로 먼저 가신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후배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명감이다. 오래전부터 단소와 단소교본을 만들어 왔는데 ‘국민1인 1국악기 갖기’운동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또한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숙원사업.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그러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화합번영과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민속악의 대금소리는 계속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강조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해방후 부산 정착.▲42∼60년 이덕희·지영희·전추산·오진석·방태진·한주환 등에게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힘.▲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음악반주.▲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77년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 이후 16차례 개인발표회.▲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지정. ▲2005년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세종문화회관). ▲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 제작.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 수상경력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78년), 신라문화재 대통령상(84년),KBS국악대상(84년), 한국국악대상(02년), 서울시 자랑스런 시민상(94년), 대한민국 국민상(97년) # 주요 작품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07년, 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 외에 400여 종의 앨범제작.
  • [열린세상] 민주공화국과 재벌왕국/문인철 정치경제평론가

    재벌은 선망의 대상이다. 가족 중 한명이라도 재벌그룹에 근무하면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안의 자랑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코리아는 모르더라도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 등은 알고 있다. 가문의 자랑을 넘어 국가의 자랑거리다. 재벌 계열기업이 소재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간 지역경제의 체감온도 차이는 크다. 지역경제의 근간도 재벌이라 하겠다. 정치권력이 경제권력보다 우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권력은 한때이지만 경제권력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짧은 정치권력보다는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무한한 경제권력을 더 선망한다. 경제권력의 대명사는 의문의 여지없이 바로 ‘재벌’이다. 재벌가문의 부도덕성, 재벌경영의 전근대성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별일 아니다. 검찰이 여론에 떠밀려 겨우 기소해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판사가 풀어준다. 판사가 해결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사면시켜준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이다. 요즘에는 한 재벌총수의 사적인 보복폭행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그야말로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재벌총수가 하는 말은 시대의 화두이다.‘다 바꿔라’ 하면 다 바꿔야 한다.‘우리나라는 샌드위치 신세이다.’라고 한마디 하면 오피니언 리더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옹호한다. 정치적 리더의 한마디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재벌총수의 말은 밑줄 긋고 암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최근 재벌의 힘을 재확인시켜준 일이 있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고 정권말마다 보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날,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안 통과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대폭 완화되었다. 출총제란 자산 6조원 이상의 재벌이 다른 계열사로 출자하는 것을 순자산 2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도입배경은 매우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에 출자한 가공자본을 통해 전체 계열사를 개인회사처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간단히 말하면,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총수 마음대로 하고 자손대대로 상속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이다. 이러한 취지의 출총제가 폐지 수준에 이르렀다. 적용 대상기업은 자산총액 6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축소되고 그 중에서도 자산 2조원 미만인 기업은 제외되었다. 출자총액 한도도 40%로 상향되었다. 여전히 40%이기 때문에 전면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얼굴 두꺼운 사람도 있지만 예외조항까지 따지면 출총제는 이제 제도로서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어떤 대선주자는 출총제 폐지를 경제공약으로까지 내고 있다. 일부러 그런 건지, 무지해서인지 두고 볼 일이다. 그동안 재벌들과 전경련은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고 아우성이었고, 출총제를 완화해주면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공언하였다. 이제 지켜보자. 어차피 사내유보금이 쌓일 대로 쌓여있어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약속대로 투자가 대폭 늘어나는지. 기업가 정신이 있다면 아무리 샌드위치 상황이라 하더라도 신세타령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언제 우리 경제가 태평성대인 적이 있는가. 항상 위기이고 긴장이었다. 재벌은 출총제 대폭 후퇴를 과거처럼 재벌가의 편법상속이나 지배력 강화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 향후 출총제가 다시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느냐 못 얻느냐는 이제 재벌의 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 재벌왕국이 아님을 재벌들이 염두에 뒀으면 한다. 그런데 이 말을 해놓고 힘이 빠지는 것은 왜일까. 문인철 정치경제평론가
  • 24일 삼성-현대 챔프전 ‘우정은 잠시 접고 제대로 붙어보자’

    친구들의 3막3장. 한번은 신치용 감독(삼성화재)이 이겼고, 또 한번은 김호철 감독(현대캐피탈)이 이겼다. 이제 세 번째다.24일부터 벌어지는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에선 ‘40년지기’ 신 감독과 김 감독(이상 52)이 또 만났다. 겨울리그 10연패의 문턱에서 무너지기 전까지 신 감독은 삼성의 태평성대를 일궈냈다. 양이나 질에서 모자람 없는 선수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노기보다는 ‘덕’으로 융단처럼 팀을 감싸안는 ‘배구 철학’이 11년째의 그를 ‘덕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승부욕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챔프전 직행을 가늠하던 대한항공과의 최종전 3세트. 바닥난 체력을 호소하며 교체의 눈빛을 보내던 신진식을 신 감독은 차디찬 표정으로 외면했다. 경기 뒤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됐을 때에도 그는 선수들의 헹가래를 마다했다. 돌아서며 던진 한 마디는 “챔프전에서 이긴 뒤 하자.”였다. 김호철 감독이 ‘불’이었던 건 순전히 ‘성깔’ 때문만이 아니다. 친정팀에 사령탑으로 복귀한 뒤 그가 목도한 건 모래알 같은 선수들과 넘어가기 직전의 팀이었다. 선수들과 절치부심했고 3년 만에 삼성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반짝 챔피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지난 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우정은 이미 빛이 바랬다. 이젠 그마저도 접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두 감독의 대리전 주역은 숀 루니(현대)와 레안드로 다 실바(삼성)다. 정규리그 30경기를 치르는 동안 기록에서는 레안드로가 앞선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유력한 후보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루니는 한국코트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었다. 우직하게 때려치던 지난 시즌에 견줘 이제는 여우 같이 잔재주를 피울 줄도 안다. “김 감독이 나를 키웠다.”고 스스럼없이 밝힌다.‘두 용병이 치르는 두 감독의 대리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전세계에 한국인이 단 한명도 살지 않으면서 동네 이름에 ‘코리아’가 붙은 그런 곳이 있다. 현지에서는 일명 ‘코리아 사파르(Korea Sefer)’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파르는 현지어로 ‘지역’ 정도의 의미.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아라트 키로라는 곳에서 벨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케벨레(Kebele) 5’에서 내리면 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케벨레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상의 ‘동(洞)’에 해당된다. 코리아 사파르는 케벨레 5에서 케벨레 6에 걸쳐 있다. 마을은 아주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양철지붕에 우리나라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이 끝나 본국으로 귀환한 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약 3만명 정도가 살고 있고 이 중에 참전용사 가족들은 약 6천명 정도다. 197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돌입으로 한국전 당시 북한을 상대로 싸웠던 이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안에 모스크가 하나 있지만 이슬람교(에티오피아 전체 인구 절반이 믿고 있다.) 신자는 약 5% 정도고, 90% 이상이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정교회 교리 때문인지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아주 가난하다. 마을 안에 공공 시설이라고는 한국 정부가 지어 준 Hibret Firre 초등학교가 전부이다. 학령기의 아이들 중 13.4%만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우리한테도 원조를 받고 있는 에티오피아지만 1950년대만 해도 황제시대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가 파견한 참전용사들은 ‘깍뉴(Kagnew)’라고 불리던 황제의 근위병들이었다. 당시 총 6,037명이 파병되었으며, 253개의 주요 전장에서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총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치료시설이 열악해 부상자들은 대부분 유엔의 군용헬기에 실려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51년 4월 13일 제 1차 깍뉴부대(깍뉴부대는 1965년 3월 1일 본국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총 5차에 나누어 파병되었다.)를 싣고 에티오피아를 출발한 배는 중간에 그리스, 태국, 필리핀 병사들을 태운 후, 같은 해 5월 6일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간단한 훈련을 마치고 이들은 바로 그 해 8월부터 전장에 투입되어 크고 작은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며 혁혁한 공훈을 세운다. 이례적인 것은 전시 중에 깍뉴부대원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전쟁 중일 때는 고아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면서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이다. 휴전 후 돌보던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들을 해외로 입양하는 일도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리스나 다른 참전국에는 군인들을 따라간 고아들이 많았는데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따라간 고아들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깍뉴부대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는데 참전용사와 결혼까지 간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차 혹은 휴가를 즐기러 일본을 방문했던 병사들과 일본여인들과의 로맨스는 지금도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이 노래는 같은 리듬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암하릭어로 불려지고 있다. 제목은 Japanwan Wodije. 한국전 참전용사들 중에 전쟁이 끝난 후 콩고 내전에 참가했던 병사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콩고 빌리지’는 남아있지 않고 에티오피아에는 ‘코리안 빌리지’만 남아 있다. 현재 한국의 월드비전을 비롯해 몇 개의 NGO 단체가 유아 혹은 여성을 위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 국제협력단(KOICA)에서 초등학교를 지어준 후 이 곳에 3명의 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가 아디스 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 똑 같은 모양의 참전용사회관을 춘천과 아디스 아바바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디스 아바바의 경우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총장이 이 곳에 관심을 표명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       <윤오순>
  • 儒林(756)-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儒林(756)-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사마천은 공자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공자는 사람을 가르칠 때에도 상대가 스스로 분발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굳이 계발(啓發)해주지 않았고, 사우(四隅:동서남북의 네 방향) 중에서 일우(一隅)를 들어 깨우쳐 주었을 때 나머지 삼우를 깨닫고 반문해 오지 않았을 때에도 더 이상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도 수제자 안연과 애제자 자로가 죽자 곧 꺼져 버린 듯 보인다. 그리고 거듭되는 불행과 절망으로 마침내 병이 난 듯 보인다. 논어에는 공자의 병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공자께서 병이 심하게 나시자 자로가 문인으로 하여금 공자의 가신(家臣)노릇을 하게 하였다. 병이 약간 차도를 보이자 이를 알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자로가 나를 속여 왔구나. 가신이 없는데도 가신이 있는 것처럼 꾸몄지만 내가 누구를 속이겠는가. 하늘을 속이겠는가. 또한 나는 가신들 손에 장사 지내지기보다는 차라리 자네들 손에서 장사지내지고 싶다. 또 내가 비록 성대히 장사지내지 못한다고 해도 설마 길거리에서 죽게 되기야 하겠는가.” 그 무렵 공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심히 내가 노쇠하였구나. 오랫동안 나는 주공을 다시는 꿈속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탄식하기도 하고,‘봉황새도 날아오지 않고 하도(河圖)도 나타나지 않으니, 나는 끝장이로구나.’라고도 말하였던 것이다. 주공은 공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주나라초기의 예의 제도를 제정했던 어진 인물. 실질적으로 공자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것이다. 또한 봉황새는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새이며, 하도는 황하에서 용마가 지고 나타났다는 중국의 고대문물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도문(圖文)인 것이다. 그러므로 ‘봉황새도 날아오지 않고 하도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공자의 탄식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옛 문물제도도 부흥시켜 놓지도 못하고, 자신의 생애가 끝장에 이르렀음을 절망적으로 나타낸 탄식이었던 것이다. 안연과 자로가 죽은 후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는 바로 자공. 나는 스승의 묘를 6년간이나 지키면서 심었다는 벼락 맞은 나무 곁에 세워진 비석을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비석은 원래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공의 눈물로, 비석이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그런 전설 때문일까.‘자공수식해(子貢手植楷)’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자공은 비록 스승의 임종은 지키지 못하였으나 스승의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제자. 공자가 죽기 일주일 전 자공은 깊은 병에 들어있는 스승을 찾아 병문안을 한다. 이 장면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병이 들었다. 자공이 병문안을 갔더니 때마침 공자는 지팡이를 짚고서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자공을 보자 말하였다. ‘사(賜:자공)야, 어째서 이토록 늦게야 왔느냐.’”
  • 한나라 ‘안주하면 또 실패’ 자성론 확산

    참여정부의 잇단 정책 실패와 열린우리당의 분열상으로 인해 요즘 반사적 ‘태평성대’를 누리는 한나라당에도 전례없이 자성론이 일고 있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지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뒤 “다음에 한나라당이 집권하지 못한다면 아마 한나라당사는 불타 없어질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유력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회창 전 총재까지 당의 각성과 혁신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자성론은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같은 자성론은 여권이 정계 개편을 둘러싼 당·청 갈등과 당내 사수파-통합신당파간 극한 대립으로 자멸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은 지난 5·31 지방선거 직전 ‘박근혜 대표 테러사건’을 계기로 50%대로 솟구친 데 이어 최근까지도 45∼50%의 박스권을 형성한 상황이다. 이는 지난 대선 1년 전인 2001년 12월 30% 안팎의 정당지지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위기감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두 번의 대선 패배에서 얻은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현재의 분위기에 안주했다가는 또다시 정권 탈환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국민들 가운데 30%는 어떤 경우든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지금은 구심점이 없어 흩어져 있지만 대선 국면에선 여권의 단일 후보를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높다.”며 “여야 어느 쪽도 내년 대선에서 압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당 일각에선 벌써부터 ‘대선 승리’에 도취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는 6일 내년 대선 때(12월19일)까지 매달 19일이 포함된 한 주를 ‘봉사주간’으로 정해 각 지역 당원협의회별로 봉사활동을 벌이도록 결정했다. 내부적으로는 해이해진 기강을 다잡아 대권 창출 의지를 다지는 한편 외부에는 ‘웰빙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Seoul in] 김광자 민속예술단 초청 공연

    서초구(구청장 박성중) 서초구는 1일 오후 7시30분 서초구민회관에서 김광자 민속 예술단을 초청해 우리춤 공연을 개최한다. 공연은 태평무를 모태로 한 ‘태평성대’, 타악 합주공연인 ‘타악 두드림’, 경기도 남도민요 등으로 이어진다. 문화행정과 570-6628
  • [토요영화]

    ●모두들, 괜찮아요(KBS2 밤12시25분) 툭하면 가출하는 치매걸린 아버지 원조(이순재), 영화감독을 10년째 지망만 하고 있는 남편 상훈(김유석), 속에다 능구렁이 한 마리 키우는 애늙은이 아들 병국(강산). 딸·아내·엄마 노릇을 무난히 소화해내는 동네 무용학원 원장 민경(김호정) 덕 에 그래도 산다. 그러나 상훈의 바람끼에 민경이 폭발하면서 태평성대는 깨진다. 정말 이들 모두 괜찮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 모든 가정에 던지는 질문이다. 별 다른 장식 없이 기본에 충실한 드라마, 그리고 김호정의 연기력이 돋보인다.2006년작,104분.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EBS 오후11시) 태국 감독 펜엑 라타나루앙이 일본 자본으로 찍은 영화. 방콕을 배경으로 일본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가 남자주연을 맡았다. 한때 ‘태국의 쿠엔틴 타린티노’로 불렸던 펜엑 감독은 이 영화를 계기로 재기발랄한 연출에서 진중하고 느린 연출로 스타일이 바뀌었다. 이 영화 뒤 지난해에는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과 함께 ‘보이지 않는 강’을 찍기도 했다.‘화양연화’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감독을 맡았다. 도서관 사서 켄지는 지나칠 정도로 깔끔을 떨어대는 인물이다. 어느 날 형이 친구라며 야쿠자를 집으로 끌어들이고, 우연히 야쿠자가 형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야쿠자를 살해하고 만다. 어느새 선명한 핏자국 위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 두 구. 또다시 자살충동에 휩싸인 켄지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여기서 교통사고로 여동생을 잃은 태국 여자 노이를 만난다. 기댈 만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듯 점점 더 땅 속으로 꺼져들어가는 인생 앞에서 이들은 금세 뜻이 통하고 그래서 함께 지내게 된다. 물론 뜻만 통했을 뿐이다. 서로 일본어와 태국어를 못하니 익숙지도 않는 영어로 더듬더듬 얘기를 나눈다. 결벽증 켄지는 정리정돈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은 노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다 이들은 차츰 사랑에 빠진다. 두 인물 모두 겉으로는 자유분방하게 거칠게 없이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함이 가득하다. 조용하면서도 물기 하나 없을 정도로 건조한 화면과 가끔씩 등장하는 어이없는 컷, 그리고 도마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영화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작품이다.2003년작,108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은행 ‘호시절’ 막 내리나

    은행 ‘호시절’ 막 내리나

    은행들의 ‘태평성대’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서는 양호한 실적을 보였지만 분기별 실적 지표가 대부분 하향세를 타고 있다.‘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가능케 했던 은행의 고유 업무가 제2금융권으로 대거 이동할 조짐까지 보인다. 이익이 줄면 은행들은 수익지표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외형 경쟁을 자제하고 자산 건전성 및 수익성 강화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 외형 경쟁을 위해 소비자들에게 베풀었던 금리 및 수수료 혜택을 거둬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대출도 위축돼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올해 들어 실적 계속 악화 국민은행의 3·4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2조 258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5% 증가했다. 그러나 3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기대 이하다.3분기 수익 6781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8%, 직전 분기 대비 12.7% 감소한 수치다. 이자이익과 순이자마진(NIM), 비이자이익, 총자산순이익률(ROA), 자기자본순이익률(ROE) 등 대부분의 수익성 지표가 올 들어 악화 추세다. 하나은행 역시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작년 대비 1028억원(14.6%) 증가한 8043억원이었지만, 분기별로는 1분기 3068억원,2분기 2512억원,3분기 2463억원으로 계속 하락했다.NIM 등 핵심지표도 물론 줄줄이 떨어졌다.1일 실적을 발표한 우리은행도 3분기까지 누적으로 1조 244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3분기 순익은 3963억원으로 전분기보다 1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은행의 고유영역이 사라진다 은행이 독점하던 금융시스템도 격변기를 맞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면 증권사들도 수표결제, 계좌이체, 신용카드결제와 같은 지급결제 기능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은행은 ‘계좌’를 무기로 누렸던 급여이체 등의 영역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또 금융감독 당국은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들도 수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는 보험사에서 예금과 적금 등 은행 상품을 파는 어슈어뱅킹이 도입될 전망이다. 은행은 상품 판매창구를 놓고 보험사와 대결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인터넷뱅킹 등 전자금융거래의 사고 입증 책임을 전적으로 은행이 져야 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형 시중은행의 대주주가 대부분 외국인들인 마당에 굳이 은행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지켜줄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 부담 가중 가능성 국민은행 신현갑 부행장은 지난달 30일 실적발표에서 “아파트 집단대출과 중소기업대출에서의 경쟁 격화로 이자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면서 “시장금리가 오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자마진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언제까지 예금금리를 후하게 주고,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경쟁을 할 수 있느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역마진을 보면서 은행업을 할 수는 없다.”면서 “향후 예대마진 확대와 금융상품 판매에 대한 수수료 인상, 엄격한 기업대출 등을 통해 적정 수익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일부 시중은행들은 예금금리 인하에 나섰으며, 외형 확장에서 수익성 강화로 영업전략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내년 은행권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과 성장 한계라는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자산확대 경쟁에 따른 고성장 후유증과 경기둔화로 인한 대출수요 감소로 여신증가율이 한자릿수에 그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성종,조선의 태평을 누리다/이한우 지음

    우리는 흔히 조선의 왕을 이야기할 때 세종 다음의 성군으로 성종을 꼽는다. 조선의 기본법전 ‘경국대전’을 완성했고 활발한 친경(親耕)활동으로 농사에 모범을 보였으며 독서당 등을 설치해 문운을 진작시킨 뛰어난 임금…. 그러나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이한우 지음, 해냄 펴냄)는 이런 평가에 정면으로 맞서 반론을 제기한다. 성종의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이 책은 성종을 국력생산자가 아니라 국력소비자로 규정한다. 조선 군주의 리더십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는 성종의 재위 시기가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성종의 작품이 아니라 세종에서 세조에 이르기까지 선대가 이룩한 절정의 업적을 성종이 단지 누렸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훈구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신진세력을 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조선 최초의 폐비사건은 연산의 비극을 낳았으며, 중종 이후 펼쳐진 사림의 득세가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조선은 결국 몰락의 길을 가게 됐다는 것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은행 호시절 내년엔 끝난다”

    “은행 호시절 내년엔 끝난다”

    “은행들이 영업외수익 덕택에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내는 호시절은 내년이면 모두 끝난다. 이젠 영업으로 순익 규모를 이어가야 하는데 ‘블루오션’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발군의 영업력으로 행원에서 행장까지 오른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은 최근 사석에서 “은행들의 태평성대가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수익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2%대에서 정체되고, 이자수익을 대체할 만한 수수료수익도 여론 때문에 은행 맘대로 늘릴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은행들이 영업외수익 덕택에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내는 호시절은 내년이면 모두 끝난다. 이젠 영업으로 순익 규모를 이어가야 하는데 ‘블루오션’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발군의 영업력으로 행원에서 행장까지 오른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은 최근 사석에서 “은행들의 태평성대가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수익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2%대에서 정체되고, 이자수익을 대체할 만한 수수료수익도 여론 때문에 은행 맘대로 늘릴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너나없이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신 행장은 “중국은 언제 제도가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투자처이고, 미국에서는 국내 은행끼리 스카우트전을 치르는 등 출혈경쟁 조짐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은행 태평성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13조 6000억원, 올해 상반기에만 8조 1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익이 급증하면서 은행원의 임금도 크게 올라 지난해 11개 시중은행의 억대 연봉자는 4914명으로 2004년(2430명)보다 배 이상 늘었다. 직원 평균연봉은 1998년 2982만원에서 지난해 7705만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신 행장의 지적처럼 태평성대가 저물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상 최대 순이익 신기록 행진은 부실기업 채권의 정상화로 인한 대손충당금전입액 감소와 유가증권 매각 등으로 인한 특별이익에 기인한 것으로, 수익기반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12일 발표한 ‘은행, 잔치는 계속될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지난해와 올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 중 30%가 영업능력과 관계없는 영업외이익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비이자이익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국내은행의 총이익 대비 비이자이익 비중은 미국 상업은행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13일 펴낸 ‘주요 은행 영업실적 분석’ 보고서도 “본질적인 수익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총자산을 충당금적립전 이익으로 나눈 비율)은 2004년 1.87%에서 올 상반기 1.52%로 낮아졌다.”고 경고했다. 또 점포당·직원 1인당 자산규모는 커졌지만 자산 증가가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아 단위당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국내 은행의 점포당 영업이익은 2004년 30억 5000만원이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25억 7000만원이다. ●현실 안주가 가장 큰 적 삼성경제연구소도 “한국의 은행산업은 성장과 퇴보의 기로에 섰다.”면서 “글로벌 경쟁이 심화돼 국내 은행들은 국내 금융 시장에서의 우위마저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외국의 선진 금융상품이 물밀듯이 들어와 국내 개인 금융소비자들을 유혹할 것이고, 기업들도 외국 투자은행(IB)과 더 활발하게 거래할 전망이다. 또 증권·보험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도 소액결제 기능을 허가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입법 예고된 상태여서 그동안 결제기능 독점으로 ‘땅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영업을 해온 은행의 영역이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은행의 해외지점들은 여전히 교포나 한국기업을 상대로만 영업하고 있다. 새로운 수익원은 딱히 없는데 은행원의 임금은 치솟고 있고, 과장급 이상 책임자가 일반 행원보다 많은 인력의 가분수 구조가 가속화되고 있다. 수익증대에 따른 ‘승진 잔치’로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은행의 책임자 수는 지난해 말 3만 2031명에서 올 8월 3만 4022명으로 증가했다. 성과급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한해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투자은행 담당 직원이나 개인고객 담당 직원의 임금이 똑같다. 시중은행의 IB사업단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임금 체계가 계속된다면 그동안 애써 키운 IB 인력들이 대거 외국계로 이탈할 것”이라면서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눈 감은 채 호시절의 혜택만 누리려는 무감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행복날개 SK “요즘만 같아라”

    행복날개 SK “요즘만 같아라”

    SK그룹의 새 로고는 ‘행복 날개’다. 요즘 재계에서는 “날개까지는 아니어도 SK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그룹이 각각의 대형 악재로 속앓이가 심한 것과 달리, 유독 SK는 이렇다할 악재가 없기 때문이다.SK측은 “나름대로 고민이 적지 않다.”며 애써 표정관리 중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문제로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 위기에 처했다. 현대차그룹은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정몽구(MK)회장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오는 등 살얼음판이다.LG는 그룹의 주력사인 LG전자의 수익 악화로 비상등이 켜졌다. 반면 SK는 당장 발목 잡힌 현안이 없다. 상반기 실적도 좋아졌다. 세금을 떼기 전의 순익(상장사 기준)이 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늘었다. 주요 재무지표인 영업이익률(8.55%), 자기자본이익률(10.21%),1인당 영업이익(1억 4681만원원)에서도 10대 그룹 가운데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통계상의 허점이 있긴 하지만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기업 보고서 분석 결과, 직원 1인당 평균 월급도 SK㈜가 523만원으로 10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높다. 롯데쇼핑(168만원)의 3배다. 이같은 자신감을 반영하듯 인재 채용도 대폭 늘렸다. 올 하반기에만 800여명을 새로 뽑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어난 수치다. 외국자본 소버린과 경영권 전쟁을 치르면서 기업지배구조도 상당폭 개선돼 정부당국의 ‘순환출자’ 칼날에서도 어느 정도 비켜나 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순환출자 해소 방안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최근 몇년새 마음고생이 심했던 SK가 요즘에는 가장 태평성대여서 전화위복이란 말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그룹 내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는 게 SK 직원들의 얘기다. 한 직원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한차례 큰 시련을 겪고 나니 직원들간 결속력이 끈끈해지고 위기 대처능력도 좋아졌다.”고 전했다. 한때 ‘심각한’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탓인지 “최태원 회장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는 “주력사인 SK텔레콤이 5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맞은 데다 해외 성장동력도 확보되지 않아 고민이 적지 않다.”면서 ‘SK 행복론’을 경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매물 금융권 노조 ‘두모습’

    은행과 카드사들이 사상 최대의 순익을 내면서 해당 노동조합들도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곧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될 외환은행 노조와 LG카드 노조는 노조원들의 생존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1주일 동안 계속했던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22일 일단 접었다. 그러나 LG카드 노조는 회사 경영진이 입찰적격업체를 대상으로 본사에서 실시하려고 했던 회사 설명회를 가로막았다. 이에 따라 설명회는 매각 주간사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서 열렸다. 외환 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 을지로 본점 앞에서 리처드 웨커 행장과 노상 대화를 가진 뒤 그동안 유지해 온 출근 저지를 풀었다. 웨커 행장은 “대치 국면을 통해 직원들의 정서를 명확하게 이해했다.”면서 “앞으로 고용안정과 브랜드 유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론스타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최종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한 가운데 외환 노조가 행장의 출근을 허용한 것은 매각 저지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고 고용보장 등 실리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편 LG카드는 이날 오전 서울 남대문로 본사에서 설명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노조의 저지로 산은으로 장소를 옮겼다. 설명회는 오는 24일까지 진행되며 이날 설명회에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과 MBK파트너스가 참석했다.LG카드 노조는 “입찰적격업체로 거론되는 업체들에 공개질의서를 보낸 결과 답변이 불만족스러웠다.”면서 “매각 참여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그에 상응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대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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