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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결 앞두고 치열한 공방전/여야 의원 4명 찬반토론

    ◎여­국정공백 해소 위해 자유투표 당부/야­JP 총리 불가… 부결처리 강한 의지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는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자유발언을 통해 찬반토론을 벌였다.표결에 앞선 토론에는 국민회의 정희경,자민련 함석재 의원이 ‘연합여당’의 대표로 나섰고,한나라당에서는 김찬진·김재천 의원이 나서 공방을 벌였다. 먼저 등단한 한나라당 김찬진 의원은 “여당은 백지투표가 국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나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88년 평민당 총재시절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처리때 태연히 백지투표를 했다”며 국민회의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김재천 의원은 “여당은 김총리 임명이 지난 대선에서의 합의사항으로서 국민들이 인정했다고 주장하나,그런 논리대로라면 이는 명백히 선거법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정희경,자민련 함석재 등 여당의원들은 애써 부드러운 어조로 한나라당을 한껏 치켜 세우며 소신투표를 당부하는 등 한나라당의 찬성표를 끌어 내는데 안간힘을 쏟았다. 정의원은 “한나라당이 무기명 투표에 응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면서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우리 국회도 이제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처럼 의원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 투표하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자유투표를 호소했다.함의원도 “김총리지명자는 지난 71년부터 75년까지 4년6개월간 총리로 재직하며 냉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끈 훌륭한 지도자”라며 가결처리를 호소했다.
  • 막힌 정국 대화로 뚫는다/김 대통령 영수회담 제의 안팎

    ◎“야는 국정 파트너” 통치철학 반영/우군여론 활용 거야 극복 포석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틀만에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은 무엇보다 정치권,즉 대야 관계의 향후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단초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25일 취임사와 그동안 그의 현실정치 역정에서도 드러나듯이 김대통령의 기본 철학은 균형을 중시하는 등권주의로 요약된다.즉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아 꾸준히 협력을 요청하겠다는 구상이다. 따라서 이번 영수회담도 일단 국정표류를 ‘대화정치’로 해결해 보겠다는 첫 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김대통령의 이러한 시각은 “여야는 수레의 두바퀴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경쟁할 것은 경쟁하는 것”이라며 4당체제 때의 여소야대 정국을 즐겨 인용한 데서도 읽혀진다.박지원 대변인도 여야 영수회담 추진 사실을 공개하면서 “김대통령은 앞으로도 (대화를)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이처럼 김대통령에게 있어 영수회담은 특혜나 시혜가 아닌 일상적인 통치행위의 연장으로 봐야한다.처음 한나라당이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조찬회동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을 때 청와대 기류가 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야당이 김대통령 일정에 맞춰야 하지만,굳이 강요하지 않겠다는 자세다.여기에는 여론으로 거야를 극복하려 전략적 실리추구도 함축되어 있다.정부 출범때부터 ‘딴지’를 거는 야당의 태도에 대한 비난여론을 우군으로 활용,압박하려는 김대통령의 정밀한 계산법으로 볼 수 있다.이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다수의석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토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소여가 안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영수회담이 국정공백의 물꼬를 터줄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아직은 여야의 정국 전개방향을 읽는 독해가 다른 데다 총리인준에 대한 인식 차이가 확연한 까닭이다.한나라당이 “우리 당의 기본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며 총리인준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원칙의 문제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전격 선회할 명분축적이 이뤄지겠느냐는 관측이다.나아가 그동안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인 여러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조총재가 전권을 행사할 ‘대표성’을 갖추고 있느냐도 역시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 미·영·불의 성추문/최철호 국제부 기자(오늘의 눈)

    세계가 온통 성추문으로 뒤흔들리고 있다. 클린턴이 새해초부터 백악관내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추문이 터져나와 신세를 망칠 판인데,이에 질세라 이번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전현직 장관들이 성추문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선진국 3국이 ‘나란히’성추문에 정부가 놀아나고 있다. 이들 추문은 신빙성 있는 증거와 함께 구체적으로 나타나 관계자들에게 결정타를 가하려 하고 있다.관계된 사람들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애써 태연해하는 척 하고 있어 안쓰럽게 보인다. 유럽의 당사자는 영국의 쿡 외무장관과 프랑스의 롤랑 뒤마 전 외무장관이다.쿡장관은 정부를 향한 사랑이 너무 커 아내를 버린 철저한 애정행각인데 비해,프랑스 뒤마 장관은 권력을 이용한 부패속에서 돈과 연루된 애정행각이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스캔들의 강도는 서로 비슷하게 다가온다. 자고로 권력과 돈,그리고 성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옛성현들은 누누히 말하면서 자기를 다스리라고 갖가지 격언들을 남겼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나라의 흥망성쇠에서 초기건국기를 지나 성장기를 구가하다 망조가 들려고 하면 어김없이 권력비리와 여자문제가 드러나 국가 기강이 흔들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 나라들은 2차대전을 겪은 뒤 이제 성장기를 누린다고 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영국병과 실업문제 등 문제는 있으나 민주주의가 정착기에 접어들고,경제수준도 세계의 수위를 달리고 있다. 이같은 단계에서 터져나오는 성추문은 그래서 ‘성장기를 지난 나라에서 혼돈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명비평가의 말이 설득력 있다. 여성과 관련된 추문은 아마도 인류역사 이래 반복돼온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이를 보는 시각이 성장기를 구가하던 국민들에게 순정어린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도덕성과 규범이 결여된 범죄행위로 비쳐지고 있다는데 있다. 국민들의 행태에는 단호한 면과 함께 외도를 부러워하고(?)어느정도 인정하는 2중 인격적인 모습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번은 이들에 대한 단죄의 강도는 매우 높다.척결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클린턴은 존스양과의 관계에서 이미 거짓말을 한번 했다. 이제 거짓말 시대의 시작,아니 문명퇴조의 시작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얼룩진 헌정(대한민국 50년:4)

    ◎52년 첫 개헌… 87년까지 9차례 뜯어 고쳐/이승만 이어 박정희도 종신집권 노려 헌법손질/69년 3선 개헌­72년 유신 선포… 대통령 간선 고착/전두환 쿠데타 집권… 87년 6월 항쟁 직선제 확립 이승만은 1954년 2차개헌으로 종신집권에의 길을 텄다.그러나 이는 몰락을 재촉했다.1960년 4·19혁명은 마침내 이정권의 무한권력 추구를 좌절시켰고 6월15일 3차 개헌을 가져왔다.큰 골격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다.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률유보조항을 손질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정리하는데 촛점을 맞췄다.그러나 내각제 도입으로 3·5부정선거범 등에 대한 처벌근거인 정·부통령선거법이 소멸되자 혁명 주체세력들은 거세게 반발했다.학생들의 의사당 난입 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집권민주당은 11월29일 이승만 정권하의 반민주행위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 근거규정을 헌법 부칙에 설치하는 4차개헌을 단행했다. 헌법의 수난은 갈수록 심화됐다.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군사쿠데타는 헌정파괴라는 극단적사태를 몰고왔다.국회는 즉각 해산됐다.이듬해 12월16일엔 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5차 개헌이 단행했다.이 개헌안은 인권규정을 보강하고 미국식 사법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3권분립을 강화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핵심 골자는 부통령제 폐지와 정당설립 규제 등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6차 3선개헌 날치기 처리 박정희는 5차개헌으로 부활된 새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중임제한 규정에 부닥치자 전에 이승만이 걸었던 전철을 답습했다.영구집권의 획책한 것이다.중임제한 폐지 개헌안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디ㅊ치자 1969년 10월21일 새벽 국회 제3별관에서 야당의원들을 따돌린채 여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만으로 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3선개헌으로 불리는 6차개헌이 그것이다. 개헌뒤 실시된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에 성공했다.그러나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박정희 634만표,김대중 539만표로 나타난 개표결과는 영구집권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그래서 영구집권을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이것이 바로 헌정 수난의 절정판인 이른바 유신헌법이다. 유신은 1972년 7월17일에 선포됐다.이날은 아침나절 약간 흐렸으나 낮부터는 전국적으로 맑았다.시민들의 생활은 평온했으며 각 관청들만 막바지에이른 국정감사로 다소 부산했다.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국체변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물밑에서는 이를 위한 시나리오가 극비리에 착착 진행됐다.상오9시 국무총리 김종필은 우시로쿠(후궁호랑)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약 20분간 요담한데 이어 10시 15분부터는 필립 하비브 미국대사와 40분간 요담을 가졌다. 유신을 통보한 자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하오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서울 소공세무서에 대한 국정감사를 행하던 재무위에서는 “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회가 해산될지 모른다”는 협박투의 발언이 여당의원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날 상오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박정희 주재로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박정희는 둘러앉은 보좌관과 비서관들을 응시하다가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모두 한번씩 읽어보고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하오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헌법 정지,국회 해산,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개헌,….’달리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너무도 엄청난 일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이어 외무장관 김용식은 하오5시 주한외교사절 23명을 불러 유신단행을 설명했다. 계엄선포 H아워를 1시간 앞둔 하오6시 청와대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소집돼온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령을 의결했고 같은 시간 시내 전역의 주요 공공건물에는 계엄군이 포진하기 시작했다.중대뉴스가 예고된 하오7시,라디오에서는 헌법의 효력을 2개월간 중지시키겠다는 박정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유신이 일단 선포되자 개헌작업은 미리 짜인 각본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작업은 신직수 법무·이경호 보사·서일교 총무처장관과 유민상 법제처장,헌법학자 한태연·갈봉근 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회에서 맡았다.하지만 실상은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팀으로 구성된 일명 ‘기획소위’가 건네준 골자를조문화하는 것에 불과했다.이때 심의회의 역할이 어땠는지는 “이 헌법의 기본골격은 이미 고위층에서 만든 것이므로 골격 자체에는 일체 손을댈 수 없습니다”고 한 신직수의 발언이 입증하고 있다. 개헌안은 유신선포 25일만인 11월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과 대통령의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국회의원 3분의1과 대법원장 등 전법관 임명권 보유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의 무한권력 창출이었다. 박정희에게 유신헌법은 종신집권을 담보해주는 안전판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종말로 향하는 단초이기도 했다.국내 상황은 팽팽한 긴장으로 치달았고 최대우방 미국과도 갈등이 깊어갔다. ○80년 8차개헌 간선제 유지 서울신문이 최근 입수한 미국 국무부의 ‘한미관계의 조사’라는 보고서는 당시 한미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돼 갔음을 보여준다.유신 직후인 73년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를 토대로 국무부가 작성한 이 문건에서 이미 미국이 경제원조 중단과 미군철수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안팎으로 시련을 겪던 유신은 끝내는 1979년 박정희의 피살과 함께 또한번의 헌정중단 및 개헌을 초래했다.공백상태의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1980년 10월27일 복지규정 보강 등으로 위장한 8차 개헌을 실시하지만 권력획득의 핵심인 대통령 간접선거는 그대로 유지했다.전두환 군사정권은 강압적 통치로 일관하다 직선제 개헌 요구로 상징되는 전국민적 저항에 굴복하고 말았다.그래서 87년 6월29일 개헌을 수용하기에 이른다.이 9차 개헌의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헌정 50년을 맞는 올해는 그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정권을 인수인계하는 뜻깊은 해다.하지만 헌법은 또다시 개정의 고비를 맞고 있다.내각제 공약을 내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정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미,73년부터 “유신철회” 압박/본사특별취재반,미 하원보고서 입수 확인/“주한미국 철수” 일방선언­‘코리아게이트’ 돌출 유신이 절정을 이뤘던 197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7년 3월9일 주한 미지상군의 철수를 일방선언했고 6월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사건이 불거졌다.한국내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한국정부의 항의가 거세자 미국은 박동선 사건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코리아게이트를 돌출시켜 한국정부를 더욱 옥죄었다. 모두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철회를 겨냥한 미국정부의 압박전술이었다.그런데 미국은 이처럼 유신에 대해 명백하게 거부태도를 보이기 훨씬 전부터 유신의 몰락을 예견한 교포들의 지적들을 주목했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수단도 강구했었음이 최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문건에서 확인됐다. 이 문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작성한 ‘한미관계의 조사’(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라는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1973년 9월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하고 있다. 문건은 김대중 등 미국내에서 반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과 교포들의 증언을 인용한 것이다.문건은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성으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점차고립되는 상황이고 대미관계에서도 원조와 군사지원을 둘러싸고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문건은 이어 “한국인들은 만약 미국이 일본과의 공조아래 경제원조 및 권사지원 철회로 압력을 가할 경우 박정희 정권은 급격히 붕괴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부터 미국내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FBI의 사찰이 강화됐다.이와 더불어 한미 정부간에 인권침해와 내정간섭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됐던 사실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가을에 만난 ‘쿠바혁명의 신화’/전세계 서점가 ‘체 게바라’열풍

    ◎전설처럼 살다간 서른아홉 투사인생 추모/사망 30주년 맞아 전기·편지·일기 등 출간붐 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1967).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를 창조한 혁명가 체 게바라가 사망한 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지난 6월 볼리비아 바예그란데 마을 인근에서 그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전세계는 지금 체 게바라 열풍에 휩싸여 있다.체 게바라가 ‘혁명의 고향’으로 삼았던 쿠바의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체 게바라 기록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며,체 게바라의 마지막 전장이었던 볼리비아에는 ‘게바라 순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대학에는 체 게바라학까지 생겼다.영웅이 없는 90년대의 체 게바라 바람은 그가 맞서 싸웠던 제국주의 미국과 유럽이라고 그냥 비켜가지 않는다. 올 들어 ‘체 게바라­그 혁명적 삶’‘붉은 삶’ 등 체 게바라에 관한 전기가 영어와 스페인어 등으로 출간됐으며,편지모음이나 추모집 등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국내에서도 최근 체 게바라의 삶과 투쟁을 다룬 전기소설 ‘체 게바라’(유현숙 지음,자음과모음)와 10월9일 처형되기 이틀전까지 쓴 일기를 모은 ‘체의 일기’(유재운 등 옮김,거리문학제)가 나와 관심을 모은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가정의 5남매중 맏아들로 태어났다.20대 초반까지 의학을 공부하고 문학가로도 알려질 만큼 엘리트코스를 밟았다.그러나 그는 질병치료보다는 세계의 모순을 치료하는게 급하다고 판단,안정된 의사직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에 들어섰다.체 게바라는 마침내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켰다.쿠바혁명이 성공하자 그는 이론가로 변신,카스트로와 함께 정부를 세우고 국립은행 총재·산업 부흥상·전권대사를 지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자신은 결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라고 믿었던 체 게바라는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혁명의 전장으로 떠난다.그는 콩고혁명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리엔토스 독재정권 아래 있던 볼리비아로 들어가 게릴라활동을 계속하지만 끝내 죽음을 맞는다.이 열정적인 투사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소설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서의 체 게바라 보다는 인간 체 게바라의 모습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혁명가란 인간적인 존재로 머무는 사람’이라는 체 게바라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그의 감긴 눈에 순간 환한 등꽃처럼 서른 아홉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갔다.축구공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어린 체가 잔디정원 위에서 놀고있는 모습,정원의 보로나무에 몸을 기댄채 책을 읽고 있는 소년 체의 모습….그의 서른아홉 인생은 신화가 되었고 전설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또다른 개인사를 엿보게 하는 대목은 변장을 하고 쿠바로 몰래 들어온 체 게바라와 딸 일디타의 짧은 만남·긴 이별 장면.“아저씨! 와인에 물을 조금 부어 드릴까요? 일디타의 말에 놀란 체는 하마터면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하지만 곧 태연하게 되물었다” 와인에 물을 타 마시는 체 게바라의 음주습관을 알고있는 딸이 그의 혁명정신을 이해하고 짐짓 타인처럼 대하는 장면이다.한편 ‘체의 일기’는 체 게바라가 밀림과 산속에 고립된 채 볼리비아 정부군과 투쟁하면서 체포되기 전날까지 11개월동안 쓴 내면의 기록이다.매달 말일에는 그 달의 일기 내용을 분석·정리해 놓아 눈길을 끈다.
  • “임용고사 결과 두렵다”/여대생 유서남기고 목매

    6일 하오 6시30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아파트 411동 402호에서 이 집에 사는 김태연씨(23·여·I대 영어교육4)가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김씨의 어머니(50)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 “다음달 있을 교원임용고사에 떨어질 것 같아 두렵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는 가족들의 진술과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내용의 자필메모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시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지하 케이블공동구 또 불/청담동 진흥아파트

    ◎한전보수 늦어 밤새 정전 27일 하오 5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진흥아파트 지하 케이블공동구에서 불이 나면서 이 아파트 5동과 6동 225세대의 전기가 중단돼 1천여명의 주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불은 관리사무소측의 하청을 받은 (주)삼민엔지니어링이 난방배관공사를 하던 중 용접 불꽃이 전기케이블로 옮겨 붙으면서 일어났다.다행히 관리실직원 정태연씨(40)가 소화기를 즉시 작동,5분만에 꺼졌으나 한전측의 늑장 보수로 전기 공급이 밤새 중단됐다.
  • “식량·전력난에 인심 흉흉”/일 아사히 신문기자 방북기

    ◎도둑 들끓고 장례식은 야간에 치러/김일성 호화 영생탑 방문객 줄이어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에서는 최근 식량을 태연하게 훔치는 등 인심도 사나워지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기자와 재일동포 방북자들의 견문을 종합해 보도하고 있다.아사히신문은 또 나진 선봉지구에서는 1평 정도의 매점이 등장하고 있다고 사진을 곁들여 전하면서 매점은 가족 경영에 한해 지난 6월부터 허가되고 있다고 전했다.다음은 기사 전문. 올 가을 김정일 비서의 권력승계가 예상되는 북한은 대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에 합의하는 등 대외관계에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하지만 식량난에 시달리는 국내의 분위기는 어둡고 인심도 점점 황폐해지고 있는 듯하다. 평양 교외에 있는 고 김일성 주석의 유체를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에는 만3년 탈상에 맞춰 높이 90여m의 ‘영생탑’이 세워졌다.궁전을 방문한 한 재일조선인(북한 국적의 재일동포)은 터미널 주차장에 이르는 2㎞ 남짓한 도로 가운데 1.5㎞정도의 지하도부분에 들어서서 몹시 놀랐다.너비 10m 높이 6m정도의 터널은 대리석이 사용됐으며 움직이는 보도가 길게 길게 연결되는 등 대단히 호화로왔다.터널과 영생탑을 포함한 금수산 지구 정비에 2억달러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고 한다.방문한 사람들은 ‘충성심은 이해되지만 이 자금을 식량 구입에 돌리지 않았단 말인가’라면서 한탄했다. 북한의 농업부진은 홍수와 가뭄이라는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화학비료의 부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전력난으로 비료공장이 마비되고 있다.발전소로서 풀 가동되고 있는 것은 자유무역지구안 선봉에 있는 중유발전소 정도다. 주민의 자위책은 주택의 빈 터에 작물을 심어 농민시장 등을 이용해 파는 것이다.나진 선봉 시내에는 농가의 부인 등 십수명이 노상에 작물을 늘어 놓고 팔고 있었다.일본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사람은 돈과 물자를 받아 어떻게든 견디고 있다. 영양실조에 따른 사망은 확실히 늘어나는 듯하다.지난해까지는 ‘사람이 죽어도 소리를 내 울지마라’라는 고시가 있었지만 지금은 ‘장례는 야간에,조용히 치를 것.친척도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받고 있다고 한다.
  • 인공 생물서식공간 첫 조성/서울 대방동/도심 연못을 습지로 바꿔

    조경을 위해 조성된 도심지역의 연못을 습지상태로 바꿔 곤충과 조류 어류 등의 서식처나 피난처로 이용하는 인공 생물서식공간(일명 비오토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성된다. 환경부는 1일 전국의 주요 산지와 공원을 생태적으로 연결하는 인공 생물서식공간을 조성키로 하고 먼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공고내 182평 규모의 연못을 자연상태의 습지로 전환키로 했다고 밝혔다. ‘비오토프’란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이동하는데 도움을 주는 작은 생물서식공간으로,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습지 숲 가로수 하천 화단 등을 비오토프로 활용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달말까지 자연습지 조성공사를 한 뒤 다음 달부터 생태연못 조성후의 생물 변화를 조사하기로 했다.
  • 한총련 폭력시위 근절… 법원도 나섰다

    ◎재판부,피고인에 이례적 질문서/입학후 영향준 인물­고민때 대화상대 등 파악/“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제시 자료될 것” 기대 “보다 근본적인 치유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이러한 사태는 반복될 것입니다” 한총련의 폭력시위 근절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담당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팔을 걷어 부쳤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 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29일 지난 5월 한총련 시위 사태로 구속기소된 대학생 피고인 30여명에게 10개 항의 질문서를 배부,‘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토록 했다. 진술서는 피고인의 반성 여부 등을 간단히 물었던 과거의 양식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으로 묻고 있다. 질문은 ‘대학진학 이후 사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물과 사건은’ ‘고민이 있을때 누구와 대화하는가’등으로 시작,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된 원인부터 파고 들어간다. 이어 ‘사회에 대해 지니는 비판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사회발전을 위한 젊은이의 진정한 역할에 관해 진지하게 검토할 기회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대학생들이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구체적인 문제의식도 없이 막연하게 시위에 참여하는 것인지 여부를 가리고 있다. ‘대학사회에서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와 행동이 수용되는지 여부’‘사회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한총련 출범식을 강행하는 이유’ 등의 질문은 학생들이 편협한 사고와 시각을 갖고 한총련의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연세대 한총련 사태와 관련한 처벌에 대한 의견’은 관대한 처벌이 사태를 반복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민부장판사는 “올해 재판에서도 지난해 처럼 선배를 따라 우연히 시위에 참가했다고 태연하게 진술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이대로 가다간 내년에도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됐다”면서 “진술서를 종합분석한 결과는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 뿐만 아니라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진술서를 받은 학생들은 1주일안에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기재,재판부에 제출해야 한다.
  • 어른들이 망친 10대/최홍운 논설위원(서울논단)

    충격이다.이 참담하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또 있었을까.우리의 10대들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놀랍고 슬프다. 처음 서울 강남일대 중·고교에 10대 청소년들이 출연한 음란비디오 테이프가 나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설마’하는 한가닥 기대를 가졌다.비록 청소년들이 그 난잡한 행위를 했다하더라도 돈벌이에 눈이 먼 어른들의 강압에 못이겨 했겠거니 하는 것이었다.그런 기대들이 어서빨리 경찰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길 바랐다.경찰이 14일 밝힌 수사내용은 이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15살난 여중생을 오빠뻘되는 고교생 3명이 번갈아 가며 농락하고 그 장면을 장난삼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다고 태연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지난해 4월 처음 촬영한 뒤 8월에 다시 찍을때는 더욱 대담하게 퇴폐적이며 심지어 동물적인 동작을 연출해 보였다고 하니 차마 그 소식을 더이상 자세하게 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이 테이프를 촬영할 당시 출연한 남학생들은 모두 고1의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우리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하나,무관심한 부모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나.그 해답은 너무나 자명하다.어른들의 잘못이 절대적이다.첫번 째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부모다.부모의 무관심과 방치가 주범이다.이번에 구속된 학생들의 아버지는 소규모 옷공장 사장과 벽지 도매상 주인,중앙부처 고위공무원,전역장교 들이다.이른바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산층이다.자신의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루를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일부이긴 하지만 부부간의 불화로 아이가 방탕의 길로 들어선 경우도 있다.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전교에서 1·2등을 하며 모범생이던 그 여중생의 경우는 너무 안타깝다.이 테이프를 유통시킨 공고 3년생 이모군의 경우는 부모가 보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일본제 음란비디오 테이프를 자주 보면서 성에 관해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이번 사건의 주역 김모군은 부모가 모두 직장일로 바쁜 틈을 타 자기집을 음란물 촬영무대로삼았고 중학생 동생에게까지 테이프를 보여주기도 했다.모두 명백한 부모의 잘못이다. ○둘,무책임한 학교 학교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이 테이프가 지난 3월 새학기 시작과 동시 서울시내 중·고교에 독버섯처럼 번져나갔는데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 되는 소린가.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일부 학교에서 이를 알고도 학교명예 실추를 우려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또 그 여중생이 복교이후 일주일에 1∼2차례씩 결석했으나 학교측은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테이프 유통에 가담한 또 다른 김모군이 다니는 공고에서는 14일 전체학생 2천8백1명 가운데 97명이나 결석했다.이들이 학교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알턱이 없다.학교교육이 과연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수 없는 대목이다. 모순 덩어리인 이 사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수 없다.이 사건이 표면화된뒤 서울 세운상가 일대에는 이들 10대들의 퇴폐장면을 담은 테이프를 사겠다는 어른들의 행렬이 끝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겉으론 청소년 문제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 흥미위주로 이를 구해 보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이곳에는 이 테이프외에 ‘흑장미’‘19세의 유혹’‘상록수’ 등 10대들이 출연한 또 다른 음란비디오 테이프가 10여종 있으며 물건이 없어 팔지 못한다고 상인들은 전하고 있다.이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모두 그만한 동생이나 자식을 두었을 어른들이 아닌가.이들이 만들어내는 향락적이며 방탕한 사회환경은 우리 청소년들을 그냥 착실하게 자라도록 두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셋,방탕한 사회환경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탄만 하고 있어선 안된다.대책은 수없이 나왔다.실천이 요구되는 때다.청소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참사랑과 관심을 쏟는 일일 것이다.어른들의 맹성이 촉구된다.
  • 밥그릇이나 씻어라/이은윤 지음(화제의 책)

    ◎중국 대선사들의 일화·선문답 풀이 언론인인 저자가 3개월간 중국 11개성의 선종사찰 86곳을 답사,그곳에 주석했던 대선사들이 남긴 선문답을 풀이했다.전4권으로 기획되어 이번에 출간한 제1권은 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불법을 전한 최초의 선종 사찰인 숭산 소림사를 비롯해 조주 백림선사,진주 임제선사 등 하북 하남성내의 주요 사찰과 유적,그와 관련된 거물 선사들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달마대사는 서기 520년 소림사에서 9년동안 벽면수행을 하며 선불교를 전하고 죽은뒤 3년만에 부활,다시 인도로 돌아 갔다는 전설때문에 중국과 한국 일본에 신비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달마대사에게 불법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자르기도한 혜가조사는 70세가 넘어 아예 환속,세속이 곧 극락이라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직접 몸으로 실천했다.또 나체의 궁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히 목욕함으로써 측천무후를 감탄시킨 숭산 혜안선사,목불을 태워 몸을 녹이고 불상에 올라타는 기행을 하던 단하 천연선사 등의 일화와 그들이 남긴 화두를 재미있게 해설하고 있다.불교 신자뿐 아니라 중국 여행을 계획하거나 중국문화에 관심있는 이들도 흥미롭게 읽을수 있도록 쉽게 썼다.자작나무.8천500원.
  • 정발협 무게이동… 벌집쑤신 여/이수성 지지 서명파문

    ◎“불공정·세력판도 균열” 타진영 강력반발/내부서도 끝까지 행동통일 될지 미지수 신한국당 정치발전협의회 핵심인사 12명이 이수성 후보 지지에 서명한 것으로 확인되자 당이 갑자기 뒤숭숭해졌다.주자간 치열한 대립이 예고된다. 이회창 후보측은 심야 대책회의를 열고 ‘김심은 중립’임을 거듭 확인하고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김덕룡 박찬종 이한동 후보 등 ‘3인연대’측도 “불공정 행동”이라며 김영삼 대통령의 공정한 경선관리를 촉구했다. 당내 다른 주자진영이 발끈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당내 경선판도의 변화를 우려한 때문이다.그만큼 정발협 핵심인사의 지지는 당내 세력균형의 균열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물론 이수성 후보쪽으로의 ‘쏠림’ 현상이다.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감지된다. 그러나 워낙 미묘한 문제인 만큼 핵심인사들이 ‘이수성 고문 지지 모임’에 서명은 했다고 하지만 완벽한 행동통일은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이수성,이인제 두 후보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기 때문인데,회의의분위기는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영남 출신인 이수성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것이다.7일 정발협 확대간부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발협 원내외 위원장 가운데 이수성 후보쪽으로 50∼70여명,이인제 후보쪽으로 30∼40여명이 합류할 것 같다. 이수성 후보를 지지하는 그룹은 “이수성 후보가 경선 경쟁력은 다소 떨어지나 힘을 모아주면 이회창 후보와 겨룰만 한데다,지역대결구도의 대선에서 영남출신이라는 안전판 때문에 결국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반면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쪽은 경선과 대선 경쟁력에서 모두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다 지지율 하위권의 이수성 후보를 단일후보로 밀기에는 너무 실기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정발협의 급박한 분위기와 관련,이수성 후보측은 이번주안에 서석재·서청원·김정수 의원 등 민주계 중진을 중심으로 경선대책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정발협과 이후보 사무실을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금주말까지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김운환의원 등을 끌어안아 범민주계 의원 70명 정도를 흡수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인제 후보 진영은 범민주계의 심상찮은 기류에 대해 애써 태연한 채 하면서도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의사결정을 열쇠를 쥔 민주계 인사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 ‘홍루몽’ 저자 조설근의 남경(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2)

    ◎당·명대의 도읍지… 양자강이 허리를 감싸고…/시내복판에 청량산과 석두성 우뚝 서있고/대관원의 풍운화월 사라지고 홍루산장의 상혼만… 남경은 글자 그대로 남쪽 서울이다.동오·동진·남조·남당·명대의 서울은 그만 두고라도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신 ‘중화민국’의 서울이었다. 거기다 산수가 뛰어났다.양자강이 허리를 안고 종산이 머리를 치켜세운다.호소와 구릉들이 마치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라서 용반호거의 고도라 불린다. 역대 고도의 역사에 산령지기의 지리가 만나면 시가 쏟아지는 법이다. 지금은 시내 복판에 청량산 석두성이 깡마른 벼랑으로 남아 있지만 당나라때만도 그 아래로 양자강이 파도를 몰고와 두들겼기로 당나라 시인 유우석(772∼842)은 ‘석두성’에서 ‘산은 옛땅을 에워싸고 둘레를 치고,썰물은 빈 성을 치다가 쓸쓸히 돌아간다(산위고국개조재,조타공성적황회)’했고,또 지금도 남경시 남문밖 진회강가에 있는 ‘오의항’에서 ‘주작교 다리가에 잡초만 무성하고 오의항 어구로 석양이 비꼈다(주작교변야초화,오의항구석양사)’란 명구를 남겼다.시선 이백(701∼762)은 지금도 남경시 남교에 있는 백로주를 그의 ‘남경 봉황대에 올라(등금릉봉황태)’에서 ‘세 산봉우리는 절반쯤 푸른 하늘밖에 잠겼고 백로주는 양자강 두 물줄기에 가로 누웠다(삼산반락청천외,이수중분백로주)’는 명구를,역시 당나라의 낭만시인 두목(두목·803∼852)은 당시 남경의 세정 산수와 남조 사찰을 스케치한 명시를 이렇게 남겼다. ‘천리에 꾀꼴 꾀꼴할 때,붉은 꽃에 푸른 잎/물 말 두메마다 펄럭이는 주막집/남조때 480절간들/자욱한 안개 빗속에 저토록 많은 누대들’ (천리앵제록영홍,수촌산곽주기풍.남조사백팔십사,다소루태연우중.) ‘강남춘’ 금릉을 노래한 시는 수천편에 이른다.남경의 일산일수,일초일목이 모두 역사여서 더욱 그렇다.그럼에도 금릉(남경의 옛 이름)의 흙이 빚은 문인은 많지않다.그러나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1715?­1764?)단 한사람이면 족히 일당백이요 일당천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읽히고 있는 120회본 그 전체가 조설근의 저작이 아니라는 이설에 관계없이 ‘홍루몽’의 탁월성은 요지부동이다.그것은 겉으로 가보옥·임대옥·설보차 등 세사람 사이의 비극적 삼각연애로 줄거리를 삼았지만 그 속에는 가씨네 영국공과 영국공,두 세가를 무대로 그 흥망성쇠를 그림으로써 봉건사회의 몰락이라는 역사적인 운명과 ‘색즉공’이라는 철학적인 교훈을 남겼다. 중국소설의 첫손에 꼽히는 ‘홍루몽’은 비록 조설근의 만년,가난과 신병에 겹친 채 북경 근교에서 탈고했지만,그의 무대와 체험은 남경을 중심한 호주·양주·소주 등의 강남에서 시작된 것이다.그는 귀족세가의 후예로 태어나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렸다.그의 증조로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강령(지금의 남경)의 직조서를 세습받은 망족이었다.그때 강희황제가 다섯차례나 강남지역을 순시하는 소위 ‘남순’때마다 거의 그 집을 행궁으로 삼았다는 데서도 짐작이 갔다. ○남경 옛이름은 금릉 조설근은 1715(?)년 강령직조서의 안채에서 태어났다.직조서는 청나라 강령부 상원현 이제항에 소재했다.지금은 남경시 태평북로에 위치한 대행궁 초등학교자리.그 이름으로 보아도 옛날 행궁자리,공교롭게도 ‘중화민국총통부’자리에서 멀지않은 곳이다. 직조서의 안채를 ‘서원’으로 불렀다.그것은 또 하나의 별장식 주택인 ‘조원’과의 차별을 위한 칭호였다.조원은 소창산에 지어진 원림속의 주택이었다.그 범위가 넓어서 오늘의 오룡담 공원과 오대산 체육관 및 남경인민병원 일대를 통칭했다. ○호주·장주서도 활동 그는 열네살때,그의 아버지가 정쟁에 휘말려 면직되고 재산이 몰수당하면서 빈털터리로 북경에 이사하기까지 이 두군데서 살았다.그냥 골목을 굴러다니는 촌동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일찍이 ‘4서5경’에 ‘시’와 ‘서’를 배우면서 100명이 넘는 대가족의 훈훈한 보살핌속에서 귀한 도련님으로 화려하게 자랐다. ‘조원’은 그 뒤로 역시 강령 직조서의 서장이었던 수혁덕이란 사람에게 넘어가 ‘수원’으로 버티다가 20여년뒤 다시 당시 강령지사였던 원매(1716∼1798)에게 팔려 그 이름을 다시 ‘수원’으로 고치기에 이르렀다.비록 주인은 자주 바뀌었지만 탁월한소설가의 꿈을 길러주었던 원림이 천재적인 시인에게 팔린 것은 절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성령시인 원매 지사로 재기발랄한 시 4천500편을 쓰고,시의 ‘성령’을 주창하여 ‘성령시인’으로 불리던 원매는 건융10년(1745)에 강령지사로 부임했는데 때마침 황폐일로에 있던 ‘수원’을 건륭14년(1749)에 월봉 3백량으로 사들여 이를 개수했다.그의 ‘수원기’대로 ‘그 높은 곳엔 누각을,그 낮은 땅엔 시내 정자를,그 좁은 골짜기엔 다리를,그 여울에는 배를 띄운다’고 자연의 형세를 따라 짓고 놀았노라는 뜻에서 ‘수원’이라 이름하였다. 원매는 물론 그의 ‘수원시화’에서 자기가 조경한 ‘수원’의 전신은 바로 ‘홍루몽’속의 대관원이라 밝힌바 있다. 필자가 오늘 남경에 당도한 것은 조설근의 동년시절 그 발자취와 원매의 강령지사시절 그 로맨틱한 자취를 찾으러 온 것이다.보다 정확한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강소성홍루몽학회 회장인 요북화님의 안내를 받았는데 강령직조서 옛터에는 대행궁초등학교,그 운동장 남쪽 구석에는 가산의 뼈다귀가아직도 불거져 나온다고.다시 ‘조원’과 ‘수원’이 자리했던 오룡담공원 일대는 지금 ‘조설근기념관’을 마무리하느라 개관 준비에 한창이고.그 건너편 오대산체육관자리에는 일찍이 원매의 무덤이 있었다는 증언을 수집했지만 아! 여기 300년전 ‘대관원’의 풍운화월은 사라진 채 20세기 관광객을 호객하는 ‘홍루산장’의 상혼만 득실거리고 있었다.
  • 서울신문사 초청 모범용사들 5박6일 산업시찰을 마치고

    ◎“군에 대한 변함없는 국민사랑 확인”/산업역군 모습보며 국방에 전념 새각오/단체장 융숭한 대접 사기진작에 큰도움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제34회 국군 모범용사 초청 행사(6월23∼28일)에 참석한 각 군 대표들은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초석이 되고 있다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모범용사 61명과 그 배우자들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주요 산업현장과 관광지를 둘러 보았으며 정부 주요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들을 따뜻이 맞았다.인솔장교와 육·해·공군 등 각 군 대표 6명의 소감을 정리했다. ▲박동신 육군소령(인솔장교)=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도시를 방문,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지극한 환대와 격려를 받으며 모든 분들이 우리 군을 아낀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조국의 자랑스런 발전상도 재확인했다.특히 포항제철소를 방문했을때 찜통같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산업역군들의 모습을 보고 국토방위 임무에 전념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점을 전방의 155마일 전선에서 묵묵히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장병들에게 알려 북한의 침략에 대비한 유비무환의 굳은 의지를 다지는 데 일조하겠다. ▲박청광 원사(육군 군수사령부)=서울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모범용사에 선발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다.결혼 생활 27년 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부부 동반 여행 초청에 뛸듯이 기뻤다.특히 행복에 젖은 얼굴로 여행준비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36년의 하사관 생활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주요 도시를 방문할 당시 주요 기관장과 단체장들이 베푼 융숭한 대접과 격려가 군의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을 방문해 전시된 자료를 관람할 때는 일제의 잔인함에 울분을 삼킬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철저한 교육·훈련과 철통같은 경계로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장복두 원사(해군 제2함대 기관 선임하사관)=국군 위문 행사로는 가장 큰 행사에 선발돼 주요 도시를 돌아보았다.이 행사가 군과 민의 유대강화와 국민 안보의식 고취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5박6일의 다소 바쁜 일정에 힘들기도 했지만 국가관 정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20년간 군대생활을 하면서 ‘이것이 바로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인만이 느낄수 있는 보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됐다. 앞으로 근무지에서 새로운 각오와 국가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구선회 원사(제6해병여단 도서파견대장)=35년 외길을 걸어 온 나에게 이번 행사는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알찬 생을 설계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27년전 결혼한 뒤부터 이런 기회가 없었던 나도 기대가 컸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도 잠을 설치는 집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방문 가운데 서울신문사가 연중 캠페인으로 벌이고 있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음식물 줄이기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우리 음식문화가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또 깨끗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온국민의 책임이라는 점도 통감했다. 방문하는 곳마다 북한이 식량난 등으로 혹시 도발을 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내가 먼저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지켜낸다는 의지를 다졌다. ▲박덕환 주임원사(공군 사관학교)=하사관 생활 27년만에 명예스러운 국군 모범용사에 초청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결혼한 뒤 가족과 함께 한번도 여행을 가 볼 여유없이 숨가쁘게 생활했는데 1주일간의 여행이라니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포항제철을 방문했을때다.거대한 철강 생산 현장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또한 국가의 발전은 튼튼한 국방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해보고 한사람의 군인으로서 뿌듯함을 느끼면서 더욱 내 직분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송정복 상사(특전사 여군중대 행정보급관)=첫날 국립묘지 참배 행사에서 내가 오늘 모범용사라는 영광을 얻게 된 것도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전·광주·포항 등을 둘러보면서 ‘모두가 하나같이 경제위기’라며 온 국민이 절약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때 군인으로서 본분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다짐해 보았다. 안기부 방문때 최근 북한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 안보불감증에 대해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부대 전우들에게 전해 나라 발전에 미력이나마 보태는 것이 이번 초청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 경선기탁금 준비 ‘4강3약’

    ◎이회창·이한동·김덕룡·최병렬­후원회 있어 든든/이수성·박찬종·이인제­후견인·주변에 손 벌릴판 신한국당 경선에 기탁금제가 새로 선보였다.각 대선주자들은 2일까지 대의원추천 명부와 함께 1억원을 내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다.선거공영제 실시에 맞춰 선거홍보물 발송 등의 경비를 마련하는 한편 후보난립을 막자는 취지다. 1억원은 보기에 따라 적지 않은 액수다.한보사태 여파로 업계의 ‘보험금’이 크게 줄은데다 경선판도가 혼전양상을 띄면서 자금마련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더구나 결선투표에 오른 2명을 빼고는 이를 돌려받지도 못한다.결선에 올라도 당의 경선비용을 제하게 돼 별로 남을게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 때문에 각 주자들은 짐짓 태연해 하면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직접 모금에 나서는 등 기탁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원내주자인 이회창 대표와 이한동 고문,김덕룡·최병렬 의원은 그나마 ‘후원금’이 있어 사정이 낫다.이대표측은 “후원금에다 사재를 더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의원도 “연초에 모금한 3억원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비해 후원금 모금이 불가능한 원외의 이수성·박찬종 고문,이인제 경기지사는 주변의 ‘돈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박고문측은 “몇몇 후견인과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갹출한 돈으로 충당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이 대표 「나대로 행보」 가속화

    ◎반이진영 공세에 「사퇴」카드로 역공 시도/내주 경기·호남·TK지역 「대심잡기」 순회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대표직 사퇴 결정」으로 이대표의 대세론이 중요한 고비를 맞게 됐다.특히 「반이진영」이 대공세를 주도한 직후 대표직 사퇴 방침이 발표됐다는 점은 이대표에게는 아픈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대표 측근들의 반응도 한때 혼선을 빚었다.하순봉 대표비서실장은 『당초 후보등록 직후 대표직을 내놓으려 했다』면서 『이대표의 의중대로 처리됐다』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사퇴 시기도 김대통령 귀국 다음날인 7월1일쯤으로 시사했다. 그러나 30분쯤뒤 황급히 기자실에 들른 고흥길 대표 특보는 『이대표와 직접 통화를 했는데 대통령 귀국후 그때가서 사퇴여부를 논의하자는 것이지 7월초에 사퇴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정정했다. 어쨌든 이날 주례보고 내용이 당초 이대표측 예상 시나리오와 달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이대표도 이날 상오 구기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났을 때만 해도 대표직 사퇴 문제에 대해 『당초 생각에 변함이없다』고 말했다. 대표직 사퇴 문제가 가닥이 잡힘에 따라 이대표의 전략은 강공으로 흐를수 밖에 없게 됐다.다음주로 예정된 지방순회에서 이대표의 대의원 공략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23일 경기에 이어 25일과 26일에는 1박2일 일정으로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지역을 돌며 바닥을 훑는다. 그러나 이날로 예정된 경남지역 지지자 모임은 김대통령의 분파행동 자제 지시와 일부 참석자들의 개인사정에 따라 전격 취소됐다.
  • 공영버스 최저보조금 입찰제로/이중한 사빈논설위원(서울논단)

    서울의 난제인 시내버스 운행체제 개혁안이 발표됐다.적자노선에 공영버스 도입,노선개편,버스사업규제 폐지 등 그동안의 단편적 처방을 뛰어넘어 구조적 개선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자못 강한 개혁의지를 느끼게 한다. 잘될까라는 의문도 뒤따르고 있다.무엇보다 공영제 재원확보책이 애매하다.민간노선과 공영노선의 불균형 문제도 생길수 있다.그간 버스업계는 「돈되는 노선」에만 매달리고「한계노선」은 임의로 폐지하는 무리를 태연히 범해왔다.그러니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노선도 다 버리겠다고 나설수 있고 이렇게 되면 또 공영노선 부담만 급격히 커질수 있다. 개혁안대로라면 공영버스·간선버스·순환버스·마을버스·시외계버스들이 다양한 운행을 하게 될 터인데 이 각각 다른 형식들이 또 어떤 비리와 부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걱정도 된다.그렇다해도 더이상 오늘과 같은 시내버스 행패와 부조리를 끌고 갈수 없으므로 개혁안을 지지하여 새 질서를 만드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따라서 이 계기에 오히려 더 적극적 방법을 추구할 필요가있다고 본다. ○수송분담률 계속 하락 영국은 1985년 교통법 제정을 통해「노선입찰제」라는 아이디어를 성립시켰다.어느 도시에나 피할 수없이 적자노선은 있으므로 보조금을 주게 되는데 「최저보조금입찰제」를 통해 버스운송업의 경쟁체제를 만든 것이다.이 제도는 신규사업 희망자들의 경쟁 압력으로 기존업체의 생산성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동기도 부여하여 버스서비스까지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더 나아가「총비용입찰제」도 시행했다.노선운행에 소요되는 총비용을 입찰에 부쳐 가장 최저액을 제시하는 업체에게 운행관리를 위탁하는 방식이다.우리도 12월부터 100대분 공영버스를 운행하게 될 것인데 이것부터 입찰제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지하철·도시철도망의 확충으로 결국 버스의 수송부담률이 계속 적어질 것이란 사실이다.지난 80년 66.6%였던 서울시내버스 수송부담률은 현재 34.9%이고 2001년에는 20%수준이 된다는 추정이 나와 있다.이렇게 되면 오늘의 흑자노선도 어느날 적자노선이 될 수 있다.이것이 불과몇년뒤 사태라면 개혁에 나선 이 시점에 더 포괄적 정책의 선택을 해야할지 모른다.대중교통간의 분업을 확실히 정해 간선기능은 도시철도가,지선기능은 버스가 담당토록 하고 아예 버스의 몫을 확정해 놓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확실한 지선 역할을 하려면 또 버스이용계층을 지금처럼 저소득 계층 중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서비스 극대화를 통해 고소득층까지 버스 상용자로 고정시킨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이는 도시 대기오염 해소를 위해 어차피 억제해야할 자가용승용차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안내시스템 정착시켜야 지금 당장 개선해야할 또 하나의 숙제는 버스안내서비스시스템이다.독일·영국·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 한결같이 실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버스정류장마다 목적지까지의 최적노선안내,노선별 운행시간표,대기예측시간들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영국에는 앞으로 도착할 5대의 버스 도착예정시간까지 서비스하는 도시가 있다.파리에도 다음버스 대기시간이 매30초마다 표시된다.이런 시스템은 전자식정보망을 구축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만들수 없는 후진국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본질적으로 개선의지가 있고 무엇인가 발전하겠다는 결의가 있다면 곧 시작할 수 있는 작업에 불과하다. 서울버스 개혁이 50년만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다.50년만에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명예를 걸고 아이디어도 더 찾고 연구도 더해서 이번만은 제대로 된 서울버스의 미래를 창조하기 바란다.
  • 국제사법공조 넓혀 나가야(사설)

    한국과 미국간 형사사법공조조약이 23일 발효됐다.이로써 한·미 두나라는 양국을 배경으로 한 각종 범죄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를 갖게됐다.이 조약은 범죄 진압은 물론 범죄 예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약이 발효되면 그동안 커다란 골칫거리중 하나였던,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날아가 태연스럽게 골프나 치고 지내는 사태는 어렵게 된다.한국정부는 피의자의 소재파악및 한국으로의 이송을 미국정부에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범죄용의자의 증언이나 관계인의 진술을 받아낼 수 있고 필요한 관련서류나 기록,증거물 제공도 요청할 수 있다.그밖에 피요청국이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한 수사에 협조하게 됨으로써 양국이 잘만 협력하면 범죄진압에 커다란 역할을 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조약이 모든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사법공조체제를 보다 확실히 하자면 별도의 범인인도협정체결을 서둘러야 할것으로 안다.두나라간에는 인도협정도 원칙적으로는 양해가 돼있는 상태다.하루빨리 인도협정 체결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지난 19일 중국과도 사법공조조약 체결 원칙에 합의했고 러시아와는 가서명을 해놓은 상태여서 인접국및 주요 관계국들과 사법공조망이 갖춰져 가고 있는 셈이다.일본과만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는데 유감이다. 한국은 지난 88년과 91년에 걸쳐국제 사법공조를 위한 국내법 정비를 마친바 있다.이후 지금까지 모두 7개국과 공조조약 내지 인도협정을 체결하고 있는데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세계의 모든 나라와 공조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범죄를 저지르면 세계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세계가 돼야 한다.
  • 한보청문회 증인의 자살(사설)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불려나갔던 한 은행임원의 자살은 우리에게 개인적 비극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온다.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패의 탁류에 목졸린 나약한 한 개인의 희생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자살은 미화될 수 없다.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석태 전제일은행상무는 생전의 행적이나 주위의 평을 보건대 양심적으로 살려 애쓴 고지식한 은행간부였던 것으로 파악돼 안쓰럽다.그가 한보비리의 비밀을 감추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죽음은 중인환시리에 수모를 당한 셈인 청문회 증인출석과 무관하달 수는 없다.그러나 이를 오직 「청문회 살인」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국회라는 거대한 공조직앞에 심약한 개인은 무력감에 빠질수 있다.증거에 입각한 합리적 사실규명보다 일부 감정적 발언에 치우쳤던 문제점들이 지적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죽음에 대한 근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과거 상사들에 불리한 증언을 할 수 밖에 없는 등 청문회 출석이 자괴심과 생에 대한 회의를 촉발한 하나의계기가 됐을수 있다.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평소 죄의식없이 해온 일이 어느날 돌연 부정으로 판명되는 부패의 일상화현상,기업·공직사회,일반시민 가릴것 없이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온 부패불감증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수 없다.그 치유가 근본해답이자 처방이다.나름대로 직장과 상사를 위해 성실히 일하며 살아온 그가 어느날 엄청난 국가적 죄인으로 비쳐지자 그 수모를 견뎌내지 못해 자기파괴의 길을 택한 것이다. 태연히 부정과 타협하는 자가 부와 명예를 누리고,양심껏 살려 애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상처받는 사회가 아닌지 각자 깊이 성찰하고 사회기풍을 바로잡아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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