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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병기 예술감독·임준희 작곡가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를 말하다

    황병기 예술감독·임준희 작곡가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를 말하다

    사계절 음악을 들으려면 꼭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야만 하나. 옛 한시에 장중한 곡을 붙인 작품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뿐이던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오는 1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는 이 부분을 파고든 창작 작품이다. 포인트는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가 아니라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라는 점이다. ‘어부사시사’는 누구나 어릴 적 교과서에서 한두편 정도는 읽어 봤을 법한 작품. 출세길보다 귀양길이 더 친숙했던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유배지 전남 보길도에서 본 어부들의 모습을 사계절 풍경 속에 담아낸 40수의 연작 시조다. 그래서 더 낯선 것은 국악 칸타타라는 형식이다. 칸타타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성행했던 성악곡이다. 이번 작품을 기획한 황병기(왼쪽·75)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과 곡을 쓴 임준희(오른쪽·52)씨로부터 작품에 대해 들어봤다. 황병기 국악연주자 60여명, 서양악기 연주자 20여명, 합창단 20여명 등 모두 다 합해 130명이 나선다. 국악으로 할 수 있는 사상 최대 규모다. 웅장한 느낌이 들 것이다. 격조를 갖추면서도 대중적인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클래식하게 접근하더라도 낭만주의적으로, 너무 어렵지 않게 멜로디 라인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130명 출연… 국악 연주 사상 최대 규모” 임준희 솔직히 고마운 주문이었다. 이번 작업은 국악, 관현악, 합창, 독창 등 모든 분야가 다 섞여 있다. 이들 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문제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해 보라는 것이 선생님의 방침이었다. 황 제작도 좀 여유롭게 하도록 해 줬다. 공공기관들은 예산 회계가 1년 단위로 끊기기 때문에 통상 작품을 의뢰해도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안 준다. 그런데 이건 2년을 줬다. 임 맞다. 2009년 4월에 전화주셨으니 2년 정도 여유를 주신 셈이다. 원래 황 선생님을 참 좋아했는데, 이번 작업 덕분에 마침내, 처음으로 뵙게 됐다. 개인적으로 1983년 작곡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가져갔던 음반이 황 선생님의 ‘침향무’, ‘숲’ 같은 작품이었다. 서양음악을 전공했지만, 한국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다. 황 ‘어부사시사’는 참 보석 같은 시조다. 이리저리 봐도 가사는 정철, 시조는 단연 윤선도다. 첫 대목이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해 비췬다’(앞 강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로 시작하는데, 난 이 구절부터 가슴이 뛴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시조 한수 한수마다 후렴구처럼 들어가 있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찌그덕 찌그덕 어이야’쯤으로 번역. 노젓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를 실제 노래에서는 다양하게 변주했다. 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임 안 그래도 전주 부분은 안개를 나타내기 위해 낮게 깔았다. 여하간 좋게 봐주시니 고맙다. 서양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수백 가지 버전이 나오지 않나. 우리 옛것도 그럴 필요가 있다. ‘어부사시사’도 이번엔 칸타타로 무대에 올려지지만, 다음에는 관현악으로, 또 다음에는 연가곡으로,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칸타타를 바탕으로 해서 관현악 편곡 작업도 하고 있다. 황 이 자리에서 처음 말하지만, 사실 작곡가를 물색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임 작곡가는 오래전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국악적 테크닉에 익숙하다. 오페라 작곡도 해 봐서인지 웅장한 합창 같은데도 능했다. 그게 당첨된 이유다. 허허. ●“가을 대목에는 남도 뱃소리 넣어” 임 아니다. 황 선생님 덕을 많이 봤다. 가사가 옛 한문투 문장이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황 선생님이 참고 서적들을 주셨다. 또 해남 윤씨 문중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모두 40수 가운데 20여수를 노랫말로 만들었다. 물론 맥락에 따라 뭉치기도 하고 나누기도 했다. 윤선도의 선비적인 멋을 살려야 할 부분은 독창이나 정악적인 느낌을 강조했고, 어부들의 일상이나 자연의 변화를 다룬 부분에서는 합창과 민속악적 요소를 넣었다. 특히 가을 대목에는 남도 뱃소리까지 넣어서 아주 흥겹게 만들었다. 황 안 그래도 관객들에게 앙코르 요청을 받으면 가을 부분이 딱 적당하다 싶었다. 예전에 88서울올림픽 때도 이런저런 우리 노래 가운데 뱃노래가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한 작품 더 준비하고 있다. 이것까지 올해 무대에 올리고 (예술감독) 임기를 마칠 생각이다. 2만~5만원. (02)2280-4115~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춤 인생 80년만에 첫 화보집… 승무·살풀이 ‘國舞’ 
무형문화재 이매방 선생

    춤 인생 80년만에 첫 화보집… 승무·살풀이 ‘國舞’ 무형문화재 이매방 선생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춤을 추다 쓰러질 사람이다. 몹쓸 병에 의사의 집도를 받고는 체중이 헌 짚신짝만큼이나 줄어들었을 때도 무대에 올라서면 굽은 등이 펴지고 까치 걸음이 날렵해지고 어깨춤이 절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못된 제자를 만나 피를 토하는 모욕과 배신과 울분에 사나이 눈물을 깨밀다가도 장단 소리만 나면 생기가 돌았으니 천생 나는 춤을 추다가 갈 사람이다. -우봉 이매방춤 전수관 홈페이지에서 집 안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한복 저고리에 동정을 달고 있었다. 저녁 공연 때 처(妻)가 입을 한복이라고 했다. 그의 바느질은 유명한 얘기이지만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다. “잉. 지금도 이쁜 것(제자)들은 내가 직접 옷 지어 줘.” 처가 예쁜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왜 지금도 무대에 입고 올라갈 옷을 손수 지을까. “의상도 작품이거든. 요샛것들은 바느질 못혀. 바늘귀도 못 꿰는 게 무신 춤꾼이여.” 우봉(宇峰) 이매방(85). 국내 몇 안 되는 두 종목(승무·살풀이춤) 무형문화재다. 평생 춤만 춰 왔다. 그런데 이제서야 생애 첫 책을 갖게 됐다. 제자 부부(이병옥·김영란)가 귀한 사진자료를 곁들여 낸 두툼한 화보집이다. 출판기념회를 하루 앞둔 6일 서울 양재동 자택에서 선생을 만났다. →‘국무’(國舞), 요즘 말로 하면 국민춤꾼이신데 생애 첫 책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잉. 화보집은 첨이여. 그때는 그냥 춤만 췄제. 누가 (자기 자신을) 선전하고 그랬간디. 예술하는 사람들은 머리 굴리면 안 돼. →머리 굴리는 사람도 있다는 지청구로 들립니다. -예술은 정직하고 깨끗해야 혀. 그런데 요즘엔 춤이고 대중가요고 다들 돈 벌어 먹을라고 머리 굴리고 지랄 염병들이여. 언제 나오나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초장부터 터졌다. 선생의 별명은 ‘욕쟁이’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요샛것들이 많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내가 수많은 제자와 문하생을 길러냈지만 맘에 드는 년은 딱 한명이여. 그냥 (기사에는) 재미무용가라고 해 둬. 다른 것들은 지들이 공연할 때면 내 이름 (공연 책자에) 올리려고 앞다퉈 찾아와서 이빨 드러내고 웃으며 온갖 애교를 떨어. 그러고는 그만이지. →제자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습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어. 나는 쬐깐했을 때부터 어머니 경대(거울 달린 화장대) 앞에서 춤을 췄어. 머스마가 초랭이처럼 춤을 잘 춰 옆집 살던 나이든 기생(함국향)에게 춤을 배웠지. 그때 내 나이 일곱살이었어. 그 뒤 초등학교 6년 내내 춤을 배웠지. (춤)냄새를 쪼끔 맡은 거여. 그런데 요샛것들은 춤 쪼깨 배우고는 어디 가서 ‘이매방 춤입네’ 지랄들을 혀. →뭐가 그리 못마땅하신가요. -내 춤을 변형 변질시키니까 하는 말 아니여. 이수증만 따고 나면 (내 춤에) 딴 가락을 넣고 지들 춤을 집어넣어. 내 춤은 멀리 하늘로 보내버려 놓고는 이매방 춤이라고 혀. 한마디로 사기제. 춤추는 사람은 정직하고 마음이 고와야 혀.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와. →선생님 춤의 원형은 무엇인가요. -춤은 무겁게 춰야 혀. 우리 춤의 핵심은 정중동(靜中動)이여. 중심은 배꼽이제. 그라니깬 요염하고 아름다운 건 배꼽 아래에서 나오고, 명랑하고 활발한 건 배꼽 위에서 나와. 물이 들면 다시 나가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음양 이치가 있는 게 바로 우리 춤이여. →한국춤의 매력은 찌르르하고 요염하고 이상야릇하다고 말씀하신 게 이 뜻이군요. -그라제. 발레나 현대무용은 동만 있고 정이 없어. 양복 깃처럼 직선이지. 요즘 사람들은 그런 서양춤에 환장들을 혀. 하지만 한국춤은 정과 동이 다 있어. 버선, 기와, 전부 곡선이잖어. (외국 것만 좋아하는) 국민들도 반성해야 혀. →작고하신 한영숙 선생과도 정중동 논쟁이 있었지요. -1980년대인가, 영국의 세계적인 무용가 마고트 폰테인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이 춤을 췄어. 춤을 보고 나서 폰테인이 말하기를, 한영숙은 개량화된 현대 춤이고 이매방은 흙 냄새 나는 전통춤이다. 이게 기사화됐는데, 한영숙씨가 ‘이매방이 기자들을 구워삶았다’며 난리쳤어. →한영숙 춤은 남성적이고 선생님 춤은 여성적이라고 합니다. -한영숙 춤은 정이 멀어지고 동이 부각된 신무용이야. 한마디로 박력 있지. (요즘 탄생 100년이라고 떠들썩한) 최승희 춤도 마찬가지여. 그에 반해 내 춤은 요염하고 곡선미가 있어. 어찌 보면 징그럽제. 여자 같고…. →여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생님의 성(性) 정체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내가 곱게 화장하고 여자 옷 입고 춤추니까 그라제. 지금도 내가 호모, 그라니깬 동성애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어. 근데 아니여. 곁에서 듣고 있던 부인 김명자(68)씨가 웃는다. 두 사람은 열일곱살 차이가 난다. →(이매방 선생을 향해) 생전에 무형문화재 후계자를 정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암만. 그래도 내 춤을 변형 변질 안 시키고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내 처하고 내 딸밖에 없어. →외람된 말씀이지만 집안끼리 다 해먹는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집안 사람이어도 머리 굴리고 내 춤을 변형시키면 그걸 왜 시켜. 바로 바꿔야제. 김명자씨는 승무와 살풀이춤 전수교육 보조자다. 외동딸 현주(37)씨는 현대무용을 전공(한성여대 무용과)했으나 지금은 한국무용으로 바꿔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주씨는 7일 오후 6시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서 아버지의 살풀이춤을 재연한다. →어려서 아버지한테 많이 맞으셨다던데 춤이 그렇게 좋던가요. -울 아버지가 나이 쉰에 나를 봤는디(낳았다는 뜻) 쉰둥이라고 그렇게 이뻐하셨지. 그런데 가시내처럼 춤을 춰대니 몽둥이 들고 무대까지 쫓아오셨어. 그런데도 그렇게 춤이 좋더라고. 어린 나이에 내가 돈맛을 알았겄어, 춤맛을 알았겄어. 그냥 좋았던 거여. →지금도 무대가 무서우신가요. -그라제. 무대는 정직해야 혀. 옛것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여. 내 맘대로 해도 되면 뭐가 무섭겄어. 그래서 난 지금도 무대가 무서워. →춤인생 80년 기념공연 계획은 없으신지요. -없어. 그래도 올가을이나 겨울쯤 무형문화재 공개 행사는 할 거여. 인자는 기력이 달려 완판(완막 공연)은 힘들어. 부분(춤사위)만 해 보여야제. →건강 관리 비결이 따로 있으신가요. -없어. 소식(小食)하는 것 말고는. 그때 부인이 끼어들었다.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욕을 저렇게 많이 해대는데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느냐.”고. “춤만 성숙해졌지, 지금도 애기 같다.”며 눈치를 준다. 고집이 너무 세서 타협이 잘 안 된다며, 그래서 제자들도 많이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불리한 얘기가 나오니 선생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래도 이 말은 잊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 꼭 와. 박지원(민주당 원내대표)도 온당께. 고향(목포) 사람이거든. 유인촌도 불렀는디 외국 가 있어서 못 온대.”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담 안미현 문화부장 ■ 이매방 선생은 ▲1926년 전남 목포생(호적에는 1927년생) ▲1933년 일곱살 때 목포 권번(기생조합)서 처음 무용 배움 ▲19 34~1939년 큰누나가 있던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당대 유명 경극배우 매란방에게 춤 배움. 매란방에게 매료돼 예명도 ‘매방’(본명 규태)이라 지음 ▲1941년 목포역전 임방울 공연 때 ‘승무’ 맡았던 박봉선 대타로 첫 무대 데뷔 ▲1943 목포공업학교 졸업 ▲1973년 결혼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보유자 지정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지정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수훈 ▲20 08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
  • 日 교과서 역사왜곡, 독도만이 아니다

    日 교과서 역사왜곡, 독도만이 아니다

    대담하게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워낙 자주 분기탱천하다 보니 ‘실효적 지배’ 같은 어려운 단어가 별스럽지 않게 쓰여질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독도만이 아니란 것이다. 때문에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도에 다른 문제가 파묻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출판사는 이쿠호샤와 지유샤. 이 두 출판사는 1997년 출범한 우익단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교과서가 애초부터 주목받은 이유려니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교과서 가운데 하나’쯤으로 치부하기 곤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 여전 기본적으로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는 여전하다. 가령 한사군 이후 2세기에나 들어서야 한국에 고대국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처럼 묘사한다. 고조선은 신화에 불과하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겨우겨우 국가를 세우기 시작한다는, 국내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는 식민사관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도래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했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눈에 띈다. 다른 출판사들은 도래인이 존재했고 이들이 일본으로 넘어와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식으로 서술돼 있는 반면 이쿠호샤는 도래인 대신 ‘귀화인’이란 용어를 앞세웠다. 이는 지유샤의 서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보다 일본이 알아서 이들을 잘 포용했다는 점을 강조한 서술이다. ●임나일본부 기정사실화 여기에다 임나일본부 서술도 강화됐다. 다른 교과서들은 ‘임나 지역에 일본이 진출했다는 주장이 있다.’는 수준에 그친 반면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임나일본부를 기정사실화했을 뿐 아니라 지유샤의 경우 ‘5세기 동아시아’ 지도를 통해 임나가 한반도 남부 전역이라 표시까지 해 뒀다. 왜구의 구성도 논란거리다. 지유샤는 왜구에 대해 “일본인 외에 조선인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서술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왜구는 일본의 잔학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 학계에 통용된다.”면서 “그런 비판적 인식을 피하기 위해 왜구의 활동 책임을 한국으로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조선의 건국을 서술하면서 조선이란 국호 대신 굳이 ‘이씨 왕조’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도 이들 두 교과서다. 임진왜란 서술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과서들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조선인들이 많은 피해를 봤다는 식의 건조한 서술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기충천을 강조한다. 특히 지유샤는 도요토미가 중국을 넘어 인도까지 공략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구상을 품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정한론에 대한 서술도 두 교과서는 유독 편파적이다. 다른 교과서들에는 조선이 일본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조선을 정벌하자는 의견이 대두됐고, 이 의견은 일본 내에서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한론을 주장했던 이들이 실각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유독 이들 두 교과서만큼은 조선의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한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만 서술해 뒀다. 1910년 강제병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이들 두 교과서는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데 강조점을 찍는다. 다른 교과서들은 일본이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권을 틀어쥐어 이 과정에서 많은 저항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반면 이쿠호샤는 “일본도 인접한 조선이 러시아 등 구미열강의 세력에 놓이게 되면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강해졌다.”고 서술했다. 일본으로서는 선택할 카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지유샤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러일전쟁 뒤 일본은 한국통감부를 두고 근대화를 추진했다.”고 썼다. ●3·1운동 폄하… 종군위안부 서술 없애 이는 자연스레 3·1운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다른 교과서들은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로부터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쿠호샤는 시위 사진 1장으로 대체해 버렸고 지유샤는 ‘초기엔 비폭력, 나중엔 충돌로 사상자 발생’ 정도로만 간략히 언급하고 만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도 다른 교과서에는 창씨개명, 황국신민화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교묘하게 이를 비튼다. 가령 종군위안부에 대한 서술은 사라졌고 창씨개명의 강제성과 저항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여기에다 지유샤는 “미혼 여성은 여자정신대로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고까지 해 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역에 백남준이…

    서울역에 백남준이…

    미디어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의 영상 작품이 오는 15~31일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전면의 미디어캔버스에서 상영된다. 상영작 ‘조곡 212 중 패션’(Fashion from Suite 212)은 1975년 미국의 13번 채널에서 방송이 끝난 후 방영되던 5분 정도 길이의 비디오 시리즈 ‘조곡 212’ 30편 중 하나다. 뉴욕의 거리 패션 풍경과 차이나 타운의 잡상인 모습, 패션모델, 화장품 광고 등 뉴욕의 풍경들을 찍은 사진을 연결한 뒤 이를 전자채색(colorization) 기법으로 꾸민 작품이다. 30~40대 독일 미디어아트 작가 4명의 작품도 함께 상영된다. 코리나 슈니트는 손으로 단어나 문장을 쓰는 행위가 반복되는 작품을, 하이케 바라노프스키는 달(月)이 서치라이트의 불빛처럼 미디어 캔버스를 돌아다니는 작품을 각각 선보인다. 전체 작품은 매주 화, 목, 토, 일 오후 8~10시 정각부터 30분간 볼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세대 사진작가 작품, 화가들 무단사용 논란

    1세대 사진작가 작품, 화가들 무단사용 논란

    한국 1세대 사진작가로 꼽히는 임응식(1912∼2001)의 대표작을 화가들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응식 작가의 맏아들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한 임범택(73) 현대사진연구소장은 5일 ‘전쟁고아’(1950년작)를 가져다 쓴 류영도 작가의 ‘비극’(2010년작), ‘아침’(1946년작)을 쓴 김정운 작가의 ‘어 플라워 걸’(2006년작)을 공개했다. 임 소장은 “두 작가가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임의로 아버지 작품을 가져다 쓴 것으로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라면서 “이미 지난해 문제제기를 하고 적당한 해결책을 요구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법적 소송은 너무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이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이런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진 저작권은 사후 50년까지 보장된다. 몽타주나 그래픽으로 처리했을 경우 원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임응식은 한국전쟁 종군 사진작가로 한국 근현대사 격동기를 사실적인 장면으로 생생하게 담아내 ‘리얼리즘 사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12월 20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릴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내가 개성공단에서 북한과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우리 회사는 지금 18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2005년 당시 국내 인건비가 많이 올라 중국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려 했었다. 사업자등록증도 다 받아놓은 상태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 분양소식을 접했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북한에서 사업한 사람 가운데 99.9%가 실패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북한에서 망하면 기계, 설비는 북한에 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북한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지난 7년간 사업을 접을까 말까를 수백번도 더 생각했다. 합작 일본 법인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합작을 취소했고, 북한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거래를 끊은 외국 바이어도 있었다. 개성에 공장을 열었을 때야 남북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처럼 3통(통행·통신·통관)문제가 해결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누구도 남북 간 정치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기업 122개 가운데 어느 한곳도 철수하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60%가 봉제업이다. 한국에서는 봉제업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중국과 비교해서 3분의1 정도, 최대 10분의1까지도 차이가 난다. 단지 인건비만 비교할 것은 아니다. 물류가 당일 가능한 것도 장점이고 관세가 없다. 말도 잘 통하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나 중국 근로자보다 숙련 속도도 훨씬 빠르다. 초창기엔 북측 사람들과 신경전도 있었다. 업무 지시를 내리면 “내가 당신 도우러 왔는 줄 아느냐. 나는 당에서 보내서 왔다.”면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음식 문화도 상당히 달라서 미역국에 고기 대신 식용유를 넣고 끓여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경제인으로서의 역할을 말하고 싶다. 남과 북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문화나 사상, 경제적 격차를 최대한 좁힌 다음에 통일을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본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려줘야 한다. 말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보면서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 개성공단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북측 근로자와는 만나서 일과 관련한 회의만 하고 정치적인 얘기는 절대 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남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고 가난하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고 있다. 야간 수당이 나오는 심야근무도 서로 하려고 하는 걸 보면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2, 3의 개성공단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개성공단 1세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세대에서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후대에서 통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내가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일군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정치문제를 다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만큼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통행을 자유롭게 했으면 한다. 정치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 자르듯이 “폐쇄하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개성공단의 가치는 매우 크다. 통일이 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모른다. 개성공단이 홍콩이나 선전처럼 경제특구가 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단이 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1억명은 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남북한이 합쳐 7000만명이 되면 얼마나 힘 있는 나라가 될까 상상해 본다. 정부도 통일세 대신 차라리 북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주면 어떨까. 7000만 민족이 뭉쳐서 경제를 발전시키면 주변의 어떤 강대국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배해동 회장 ▲53세 ▲1992년 ㈜태성산업 설립 ▲2005년 태성하타 개성공장 준공 ▲2006년 ㈜토니모리 설립 ▲2008년 산업포장 수상(남북관계 발전 기여) ▲2010년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 유명 영화감독·기자가 TV다큐 만든다

    유명 영화감독·기자가 TV다큐 만든다

    MBC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대형 다큐멘터리 기획 준비에 나섰다. 기존 TV 다큐가 PD들의 영역이었다면, 이번엔 현역기자와 유명 영화 감독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PD, 기자, 영화감독 등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하이브리드 다큐’를 내세웠다. 섭외된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짝패’의 류승완 감독,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시라노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 등 4명이다. 충무로의 노하우와 여의도의 제작 스태프 간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전체 시리즈 제목은 ‘타임’으로 정했다.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대한민국 50년사를 녹여내 보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1시간 분량 프로그램을 모두 25편 제작한다. 방영 시점은 6월 초부터 매주 1편씩 방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50년사를 되돌아보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각 다큐들이 내세우고 있는 키워드들은 잔잔하면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선정됐다. 가령 ‘전화’, ‘술’, ‘고양이와 밥상’, ‘소리로 보는 50년’, ‘우리 어머니’ 등이다. 제작 과정을 총괄기획하는 이우호 팀장은 “1961년부터 본격화되는 근대화의 여정과 이에 따른 지난 50년 세월이 한국의 진짜배기 현대사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라면서 “지금의 한국 모습과 모두 이어진 이야기들인 만큼 옛 이야기만 다루는 다큐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까지 함께 다룰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MBC 측은 “방송사는 인적·물적 자원만 제공하고 제작 과정에는 되도록이면 거의 모든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참여시켜 기존 다큐와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제작도 철저하게 열린 방식을 지향한다. 유명 작가, 문화 예술계 인사 등을 자문단과 제작진으로 위촉, 스토리 발굴과 구성 등 제작 전반에 참여토록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낯선 키네틱 세계로 초대

    낯선 키네틱 세계로 초대

    ‘키네틱’(Kinetic)은 말 그대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예술품으로 만든 것이다. 기계성, 규칙성, 반복성이라는 점에서 근대성을 가장 확연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기도 하다. 12일까지 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 2~4층에서 열리는 ‘키네틱아트전-가재는 게편이다’는 그런 면에서 볼 만한 전시다. 박소민 큐레이터는 “키네틱 분야는 역량있는 작가군이 10여명밖에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다.”면서 “그래서 이번 전시는 이런 다양한 작업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전시장 2층에는 최문석, 왕지원 두 작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 키네틱이 가진 근대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통 키네틱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법한 공간인데, 두 작가는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최문석은 ‘노 젓는 사람들’ 같은 작품을 통해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풍자한 근대 집단 육체노동의 풍경을 그려낸다. 왕지원은 불상에서 따온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이보그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컨셉트가 느껴진다. 3층은 키네틱으로서는 특이한 공간이다. 오뚝이처럼 흔들대는 높이 160㎝의 발광 풍선 100개가 빈 공간에 가득 들어차 있다. 사람들이 헤쳐 지나다니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런데 정작 제목은 ‘무브리스’(Moveless)이다. 움직임이 없는데 관람객이 들어서면 움직임이 생성된다. 관람자를 키네틱의 한 요소로 끌어들인 것이다. 다만, 좀 더 조명이 어두웠더라면 작품이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무브리스’를 선보인 노해율 작가는 “소방법 때문에 창문을 완전히 가리지 못해 빛이 들어와 버렸다.”며 웃는다. 4층에서는 김기훈 작가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기다리고 있다. 검은 돌 두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첫 작품 제목은 ‘Sunev’.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 보니 돌 두개가 서로 마주보고 빙글빙글 도는 그 사이 빈 공간에서 비너스 조각상이 또 빙글빙글 돌고 있다. 제목은 비너스 알파벳을 거꾸로 써둔 것. 각국 지폐에 쓰인 인물 도상을 교묘하게 변주한 작품이나, 폐차장에서 구한 3기통 엔진으로 구동되는 ‘모나리자’의 기발한 착상도 돋보인다. (02)735-993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꽃그림 그리면서, 그러니까 참…. 이발소 그림 그리냐는 소리도 듣고, 팔리는 그림만그리느냐, 타락했냐는 소리도 듣고. 참 많은 지청구를 들었죠. 허허. 그런데 이렇게 미술관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시회도 열어주고…. 감개무량하고, 인생 막판에 대단한 영광입니다.” 설악산에 은거하면서 화려한 설악의 자연을 담아내 ‘설악 화가’라 불리는 김종학(74) 회고전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상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생존작가의 회고전이라 국립미술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가장 눈에 띄는 건 뭐니뭐니해도 미술관이 들인 공력이다. 꽃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그래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꽃그림보다 대작 풍경화 위주로 전시작을 골랐다. 그것도 개인 컬렉터, 갤러리 등 30여곳을 발품 팔며 돌아 대표작 70여점을 ‘모셨다’. 1970년대까지의 김 화백 초기 작품들도 함께 전시했다. ●1970년대 초기작 포함 70여점 전시 덕분에 김 화백이 초기 앵포르맬(Informel·비정형) 화법에서 설악산 풍경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 또 화풍은 바뀌었더라도 초기 화법이 어떻게 변형되고 유지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붓을 쓰기보다 튜브째 짜서 캔버스에 바로 바르는 화법이다. 김 화백 표현을 빌자면 “구멍별로 달리한 채색법”이다. 가령 녹색이 필요할 경우 녹색 물감 튜브에다 각기 다른 사이즈로 구멍을 뚫는다. 크게 낸 구멍으로 라인을 그리고 작게 낸 순서대로 채색한다. ●물감 튜브 구멍별 채색… 독특한 화법 물감을 뒤섞는 경우에도 팔레트를 쓰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바로 물감을 바른 뒤 자연스레 물감들끼리 뒤섞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물감을 더덕더덕 붙여둔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두는 서양화 기법이다. 여기에다 유난히 클로즈업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다. “흔히 동양적 풍경 하면 여백과 관조를 강조하는데 제 그림은 꽉 들어찬 그림들이에요. 꽃을 그렸지만, 추상적 구상을 쓴 거지요.” 김 화백은 처음엔 욕 좀 먹었다. 출발점이 서구적 실험 화법이었기에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는 ‘변절’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정말 답답했어요. 무슨 주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도망간 게 설악산이에요. 1979년이었지요.” 꽃그림을 그린 이유와도 상통한다. “처음 설악산에 들어간 게 늦가을이었는데 참 애잔하더군요. 그 다음 해 봄에 꽃들이 막 올라오는데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꽃 같은 건 쳐다본 적도 없거든요.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었는데 꽃들을 그리면서 서서히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남들이 뭐래도 이 그림들을 꼭 그리고야 말겠다 싶더군요.” 이런 심정이 묻어나는 편지 한통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1987년 자식들에게 쓴 편지다. “설악의 밤하늘을 보며 백장의 좋은 그림을 남기고 죽자고 맹세했지.” ●“무슨 주의·이념 떠나 설악산으로 도망”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식도 있다. 1979년 이래 유지해오던 설악산 작업실에 최근 도둑이 들었단다. 약간이 아닌,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 작품을 훔쳐가봤자 어디에 처분하기도 힘들 텐데 몇몇 작품들을 도둑맞았단다. 그래서 설악산 작업실을 완전히 정리하고 서울 부암동 작업실로 짐을 모두 옮길 예정이다. 서울로 이사 오면 조금 작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이번 전시작품들은 웬만하면 가로 3m다. “제가 대작 체질이에요. 뭘 그려도 크게 그려야 속이 시원하더군요. 허허허. 막상 그릴 때는 힘들기도 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고 그랬어요. 이제 힘도 떨어지고 했으니 자그만 거 그리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전시된 걸 보니까 더 크게 그리지 못한 게 안타깝네요. 허허허.” 6월 26일까지. 3000원. (02)2188-622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순환하는 자연을 보여주다

    순환하는 자연을 보여주다

    ‘물’에 집중해온 추인엽(49) 화백의 개인전 ‘물 수(水)’ 전시가 5일까지 서울 관훈동 리더스갤러리 수에서 열린다. 이전까지 집중한 소재가 강과 폭포였다면 이번엔 오아시스다. 추 화백이 물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순환하는 자연의 이미지다. 기체, 고체, 액체를 오가면서 어딘가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존재로서의 물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오아시스 연작이라는 점에서 이런 순환성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듯 하다. 화면 자체도 동그랗고, 그 위 모래나 샘물도 동그랗게 배치됐다. 추 화백은 “첨단 테크놀로지에 빠져 사는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지, 우주의 끝없는 순환을 보고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33-545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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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승진 △대변인실 홍보담당관 전성오△문화예술국 문화여가정책과장 용호성△〃 예술정책〃 유병채△관광산업국 관광진흥〃 이병국△홍보지원국 홍보콘텐츠〃 류정영 ■국토해양부 ◇서기관 승진 △국토해양부 지영호 김원배△대변인실 홍보담당관실 김옥희△감사관실 감찰팀 김을겸△운영지원과 박종원△주택토지실 토지정책과 한종우△건설수자원정책실 하천운영과 김종철△교통정책실 종합교통정책과 고행철△〃 광역도시도로과 강태석△물류항만실 물류정책과 백병호△국토정책국 도시정책과 김용태◇기술서기관 승진△주택토지실 주택정비과 강대진△〃 지적기획과 성윤모△건설수자원정책실 해외건설과 박연진△물류항만실 항만정책과 허명규 장기욱△〃 항만개발과 김태년△국토정책국 건축기획과 김태곤△물류항만실 해양교통시설과 김민철△여수지방해양항만청 이기상△평택지방해양항만청 장세익△국립해양조사원 최신호 진준호△건설수자원정책실 건설인력기재과 권인식◇기술서기관 승진·보임△부산지방해양항만청 해양교통시설과장 공현동 ■우정사업본부 △제주체신청장 정현의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 △기반지원 김한곤 ■전자부품연구원 △경영기획실장 김대희◇사업기획단장△케티파트너스 양승강△디지털홀로그래피 정광모△무선에너지기술 임승옥 ■문화일보 △논설위원 최형두<편집국>△부국장직대 최중홍△편집부장〃 한형민△사진부장〃 김선규△AM7부장〃 오승훈<광고국>△광고관리부장 위건용<기획관리국>△기획부장직대 최성진 ■시티신문 ◇이사 △편집위원 김영만 ■조선매거진 ◇상무이사 △미디어전략실장 김공필◇국장대우△미디어사업본부장 박선이◇부국장대우△여성미디어본부장(여성조선 편집장 겸임) 이상문 ■중부일보 △관리국장(방송추진 부본부장 겸임) 유정희△제2사회부 용인담당 부국장 정찬성△정치부장 한동훈△제2사회부·기동취재부장 동규 ■울산MBC ◇국장 승진 △경영사업국장 안희택◇부국장 승진△경영관리부장 임부택△경영사업국 오원태△기술국장 김승곤△보도〃 한동우△기획특집부장 박치현◇부장승진△경영사업국 서정훈△편성제작국 김현중◇부장대우 승진△광고부장 목주승△보도국 한창완 ■KBS비즈니스 ◇부장 △스포츠사업 박노일△신성장사업 이준재△시설사업 최정호△경영기획 김봉만 ■IS일간스포츠·JES △편집디자인 데스크 서기찬△스포츠데스크 김성원 ■숭실대 △입학처장 김정헌△평생교육센터장 조문수 ■한국산업기술대 △창업지원단장 나보균 ■한밭대 △교무처장 김종섭△산학협력단장 임재학△산학협력단 부단장 이호철△교무과장 손금배△공과대학 행정실장 정회인 ■건양대병원 △제2진료부원장 윤대성◇실장△기획조정 나문준△QI 김지웅△의료정보 이성기△중환자 권선중△감염관리(감염내과장 겸임) 조유미◇센터장△임상시험(가정의학과장 겸임) 유병원△진료협력(소화기내과장 겸임) 김선문◇과장△임상의학 김영진△내분비내과 박근용△마취통증의학 강포순△심장내과 배장호△흉부외과 류한영△신장내과 윤성로△소아청소년 임재우△정형외과 김상범△비뇨기과 장영섭△이비인후과 박병건△피부과 전수영△재활의학과 이영진△핵의학과 김진숙◇부소장△장기이식센터 황원민◇부장△내과 허규찬 ■우리은행 ◇승진 <부행장>△중소기업고객본부 김장학△경영기획본부 김승규△준법감시인 손근선<상무>△U뱅킹사업단 이영태△채널지원단 이동건<영업본부장>△부산경남동부 이동빈△부산중부 곽상일△강남중앙기업 김현수◇이동 <부행장>△개인고객본부 강원△리스크관리본부 김종운△여신지원본부 서만호<영업본부장>△본점영업부 김종완 ■동양종합금융증권 ◇승진 <부장>△금융센터분당정자지점 곽형신△상품전략팀 김상태△금융센터상무지점 김영진△고객지원센터 김정규△금융센터구포지점 김추열△기획팀 남봉진△자금팀 박승배△인사팀 박영훈△기획팀 신동은△금융센터인천본부점 안현미△금융센터강남역지점 오소영△태백지점 우석봉△금융센터월평지점 윤종삼△금융센터계양지점 이강실△금융센터선릉역지점 이동헌△금융센터천안본부점 임동선△결제업무팀 조강수◇승격 <지점장>△금융센터충주지점 장두산△금융센터원주지점 원호연△금융센터평택지점 김현준△금융센터거제지점 전용희△금융센터보령지점 김주식△금융센터압구정본부점 임민수△금융센터구로지점 김영준△평촌지점 황선용△창원시티세븐지점 정성우△금융센터홍대지점 윤석천△금융센터신사지점 신무석△청담지점 채영곤△속초지점 심상우△금융센터칠곡지점 정인수△금융센터의정부지점 김우용◇전보 <지점장>△금융센터강남본부점 장근수△김해지점 김순돌△금융센터은평지점 전영근△금융센터연산지점 김추열△골드센터분당점 이숙철△동래지점 김민재△금융센터센텀지점 최헌승△금융센터구포지점 서도근△진해지점 한근일△금융센터홍제지점 양연하△마산지점 유창열△금융센터삼성역지점 유영렬△금융센터서천안지점 우석봉△금융센터안양지점 최석두△금융센터신림지점 심영진△태백지점 박경식△금융센터김포지점 정동호△금융센터수유지점 이성호△삼척지점 최경상△금융센터창원지점 이승주 ■IBK투자증권 ◇승진 <이사>△분당지점장 구본관△광화문〃 고인준△IPO1팀 배상현<부장>△금융센터 논현본부 AM지점 이영훈△성서공단점 이석용△인천지점 전경주△감사팀 현진길 ■이트레이드증권 ◇이사 승진 △기업금융2팀 이창환△논현PB센터 개설준비위원회 오형록△채권금융팀 이규윤◇신규 선임△컨텐츠팀 팀장 엄기열△채권영업팀 〃 권오덕◇전보 <팀장>△리스크관리 권우석△홍보IR 김동현△인사 최광순△총무 김준철△법인금융 백운복△FX마진 김명권△부동산금융 박성근△캐피탈마켓 황영진△채권인수 안재성△영업부 김종림△테헤란 권욱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신규선임 △대표이사 김준송 ■한양증권 ◇이사대우 승진 △주식파생운용팀장 정경윤△인천지점장 강신규△안산지점 구자현◇전보△영업추진팀장 최경규<지점장>△삼풍 조한규△부평 원중희△안산 이동성△행당 용규만◇부장 승진△삼풍지점 장기태△부평지점 이재진△안산지점 임재수△시화지점 심상한 원중희 권태국△도곡지점 황정현 이연희△인천지점 이종훈△안양지점 서종배△행당지점 박태봉△IB영업팀 박성민△감사팀 배성수△전략기획팀 고명섭 ■푸르덴셜투자증권 ◇승진 △대전지점 한귀석△대치지점 위규범△여의도지점 김행선△이촌지점 조주혁△정보운영팀 박병준△포항지점 오세덕△감사팀 함영만△둔산지점 송요한△명일지점 손정학△법인자산영업팀 남상각△부경법인본부 최시양△산본지점 위민형△수유지점 김태성△인사총무팀 반석원△전주지점 남건욱△정보개발팀 이성기△화곡지점 왕병렬△랩운용팀 남형민 ■한화증권 ◇부장 승진 △감사팀 강승엽△경영기획팀 신충섭△기업금융팀 김재성△기업분석팀 최원균△리스크관리팀 김관순△법인금융2팀 이덕출△선물옵션운용1팀 김동욱△홍보팀 김종술△FICC상품팀 신민식△상하이 사무소 정용석△중국금융사업팀 장병호△광주지점 이계신△문경지점 권재윤△서초지파이브지점 김은정 ■한화손해보험 ◇부장 승진 <지원단장>△제주 고건일△경북 김덕경△중부산 박영이△대전 이승우△강북 한용우<영업부장>△법인영업10부 박정채△법인신규프로젝트 봉필식△방카영업2부 정연중<보상센터장>△대구 김삼기△부산 김태철△경기 홍성권<본사 부서>△경영기획 정진택△경영기획 김희갑△경영관리 최종훈△경영관리 권혁준△경영관리 최기진△인사 김규하△상품개발 이명균△화재특종업무 이재우△자동차보험 정종민△고객서비스 한성수<개인영업본부>△수도사업부지원팀 서준호 ■메리츠화재 ◇임원 전보 △수도권1본부장 정인현△수도권2〃 허준석△수도권3〃 윤여일◇부서장 전보 <팀장>△개인영업교육 박종호△개인영업지원 정유철△기업보험혁신 이용화<부장>△국공영업 조성우△법인영업2 최학용△NewAccount영업 박영준△강북보상서비스센터 김경태<지역단장>△강서 유재문△구미 강학구△노원 변중호△대구 연명흠△동래 서재용△마포 유광일△새서울 조한욱△서광주 권종길△전주 최미남△진주 안용수△포항 임우택△수도권교차 정성원<마케팅팀장>△수도권1본부 이진기△수도권2본부 이봉훈△수도권3본부 이호성 ■동부화재 ◇승진 <부사장>△경영지원실 김영만△신사업부문 이기무<상무>△인사지원팀 정종표△호남사업본부 김석환<본점 팀장>△법인마케팅팀 김진구△일반보험업무팀 김유석△자동차보상본부 박찬선△신채널사업본부 이범욱<부서장>△강북本마케팅팀 정광수△방카마케팅부 손정호△신채널영업1부 정학기△기업보험대리점2부 서정석[파트]△시스템기획 손성구△장기U/W기획 장용준△장기보전 여태훈△SIU모방원△영업전략 현열석△법인영업기획 이진구△재물업무 류석△법률리스크관리 김용준[보상SC]△지방장기 김만순△강북 신승학△강남 소창석△경남 이교승△충청 문병희[사업단]△대구 이종훈△안산 김병철[방카영업부]△경인 강영선△지방 오광진<보상부장>△호남 오남섭◇전보 <상무>△강북사업본부 구본기<본점파트장>△위험관리연구소 김준태[센터]△U/W 김원하△업무지원 김영묵[파트]△자동차업무 박춘근△보상기획 나대두△장기보상지원 김동삼△일반보상 전익주△자동차보상지원 허대회△영업지원 이정환△신사업지원 마종락△업무지원 성백현△기획관리 김창호<본점 부장>△신채널영업2부 박월웅△강북방카영업부 이태호<사업단장>△강동 김인근△강릉 최희근△춘천 박기영△동래 백승훈△동부산 강석천△서부산 박순기△창원 이상규△통영 남견호△서면 임호경△서대구 이화석△동대구 권중수△포항 백평현△서부 김현수△중앙 박성록△북부 유주현△의정부 강경준△일산 박하진△동부 김종년△광화문 안광도△강남 임덕은△인천 도상욱△수원 김순석△안양 최석윤△유성 김명남△제주 최영철△전주 표창종 <보상센터장>△수도권장기 이성근△동서울 조완철△경기 박순범△부산 복진수△대구 손흥락<보상부장>△동서울 김장홍△부산 하동수△글로벌 장기호△강북 김경열<법인부장>△해운보험부 박훈△Agency영업부 차춘호 ■알리안츠생명 ◇승진 △경북영업단장 황재복△재무관리부장 송민용△자산운용지원〃 이은섭 ■두산인프라코어 ◇승진 △전무 장근배 ■대웅제약 ◇이사대우 승진 △마케팅팀 서호영△도매사업팀 여범동<마케팅본부>△소화기팀 진성곤△병원기획실 강종한<글로벌사업본부>△해외사업팀 박영호 ■보령제약 ◇이사대우 승진 <보령제약>△NEPHRO BIZ Unit 오원식△RA팀 박관재<보령메디앙스>△재경지원실 송인택<보령바이오파마>△제대혈사업부 김성구△생명공학제대혈연구실 김태연△마케팅팀 유병규△MR사업부 박명배 ■유한양행 ◇전무 승진 △생활건강사업부장 김해룡△중앙연구소장 이태오△사업지원본부 서상훈 ■모두투어 △이사 공병길△이사대우 서상영 전상석 강경자 ■엔씨소프트 ◇전보 △최고프로듀싱책임자(CTO) 배재현◇승진 <전무>△인사담당 구현범<상무>△아이온개발실장 김형준△사업기획〃 신민균 ■파라다이스 ◇신임 △감사 이창민
  • ‘박근혜·유시민 복지론’ 밑그림 제공 안상훈 서울대 교수 인터뷰

    ‘박근혜·유시민 복지론’ 밑그림 제공 안상훈 서울대 교수 인터뷰

    “오해의 결이 워낙 두껍게 쌓여 있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안상훈(42)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006년 6월 내놓은 대답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중한 인터뷰 거절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당시 스웨덴 집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 멀리 북유럽 국가의 선거 결과를 두고 더 흥분한 것은 한국 언론들이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델로 손꼽히는 스웨덴에서마저 사민당이 패배한 사실을 들어 ‘어쭙잖은 좌파’ 노무현 정권을 향한 맹공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냉소했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에 대해 냉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았다. 그래서 안 교수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복지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의 몇 안 되는 학자다. 하지만 “두터운 오해의 결”을 내세워 거절했다. “그때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 많이 받았지요. 지금도 입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8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시쳇말로 ‘기업 팔을 비틀어대도’ 이념 공세에서는 자유로운 이명박 정권 아닌가.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 ‘부동의 1위’를 달리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현 국회의원)도 ‘사회복지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자신만의 복지구상을 밝혔다. 이른바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출산에서 노후까지 생애 주기를 구분해 소득보다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개념)다. 야당인 민주당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묶어 3무(無) 정책으로 내놨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참여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사회투자국가론’(복지 지출이 성장과 융합하기 위해 성과를 내는 투자 형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외치고 있다. 박근혜·유시민 두 사람의 복지 방안에는 안 교수의 주장이 상당 부분 녹아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내놓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는 안 교수가 10년째 강단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판박이다.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인데도 안 교수는 왜 입 떼기가 여전히 어려울까. 그가 최근 ‘현대 한국복지국가의 제도적 전환’(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낸 것을 명분 삼아 어렵사리 만났다. →스웨덴 모델이 다시 화두다. 소회가 남다를 듯싶은데. -2006년과는 또 다르게 답답하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스웨덴 모델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수준이 스웨덴과 다르다. 비유하자면 초등학생이 대학생 옷을 입고 멋 내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한국은 초등학생이 유치원 옷을 입고 있는 격이다. 이런 마당에 작은 옷이 싫다고 갑자기 너무 큰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짚어 달라. -스웨덴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스웨덴을 다룬 대중서들이 참 많이 나왔다. 나도 가끔 보는데 결국 각자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나서 일방적으로 얘기한다. 스웨덴을 천국처럼 묘사하는 이들은 주로 1970년대, 그러니까 스웨덴 모델의 최전성기 때까지만 얘기한다. 1990년대 들어서 사민당마저 복지 다이어트에 나서면서 스웨덴 모델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세밀하게 접근하기보다 한때 유행했던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식의 논쟁만 남았다. 글쓰기 내공이 더 쌓이면 스웨덴 모델에 대한 대중서를 내가 직접 쓰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 (스웨덴에서) 어떤 부분을 배워야 하나.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복지 그 자체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속 가능한 복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이다. →‘사회서비스’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무슨 얘기인가. -복지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현금을 주는 것과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현금을 쥐여 주는 것은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지만 ‘근로 동기 침해’라는 문제점도 있다. 반면, 사회 서비스는 근로 동기 침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컨대 실업자에게 실업수당 명목으로 150만원을 준다면 일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육비나 교육비로 150만원 지원하면 그 이유로 놀지는 않는다. 서구의 복지 선진국들은 사회 서비스 대 현금 서비스 비율이 1대2 정도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대4, 1대5 정도 된다. 사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서비스가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워크페어=Work+Welfare)나 노무현 정권의 ‘참여형 복지’(사회투자국가론)와 어떤 차이가 있나. -이전 정권에서 거론한 사회 서비스 강화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제3의 길’ 저자)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너무 부분만 얘기했다. 생산적 복지는 일하면 돈을 더 주겠다는 것, 즉 자활 개념이 들어가 있다. 복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복지를 자꾸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개념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복지를 받아들이면 결국 현금 중심 지원에 머물게 되고, 그 결과는 ‘복지병’에서 보듯 근로 의욕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국가 재정 문제를 낳게 된다. 우리나라도 각종 연기금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지 않은가. →그래도 노무현 정권이나 유시민 대표의 사회투자국가론은 사회 서비스를 내세우지 않았나.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가 현금 지원에 자활을 합친 것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사회투자론은 사회 서비스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발 전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유 대표의 주장을 보면 여전히 복지를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건 민주당과 마찰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 정말 사회 서비스를 통한 보편적 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것저것 건드리지 말고 교육이면 교육, 보육이면 보육 딱 한 부분만 골라서 일단 시행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 시리즈는 어떤가. -조금 더 차근차근 제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무상 대상으로) 급식, 의료, 교육을 내세웠는데 그 세 가지를 왜 고르고, 왜 정책적 우선순위를 뒀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 무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설명도 충분치 않다. 복지 정책의 정치적 기대치를 너무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와, 공짜다.” 하다가 “에이, 이게 뭐야.”로 가게 된다. 그런 실망감이 누적되면 다음 정책 추진 때 어려워진다. 정권만 잡으면 전부 다 해 줄 것처럼 얘기하지 말고 왜 이 항목을 골랐고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 좀 더 깊은 고민과 논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안은. -내가 보기엔 가장 진보적이다. 아무래도 박 전 대표는 아버지(고 박정희 대통령) 영향 때문인지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개량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유시민 대표가 영미식 제한적 복지에 그쳤다면, 박 전 대표는 좀 더 전폭적이고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복지 정책을 연구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대목은 우리나라 복지 프로그램에 없는 건 없다는 거다. 있을 건 다 있는데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찔끔찔끔 백화점식으로 늘어만 놓지 말고 핵심을 정해 국민을 설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복지 제도에 대한 전면적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내 주장이었고 박 전 대표가 이를 많이 받아들였다. →학자로서 이론 전파에 일정 부분 성공한 셈인데 어떻게 (정치권과) 인연이 닿았나. -정치권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강단에서 늘 해 왔던 주장들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 때 복지부 정책평가위원으로 일한 적은 있다. 이때 논의한 내용들이 유 대표에게 전달된 것 같다. 박 전 대표 경우는, 대학 은사(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께서 우리나라 복지 정책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며 (박 전 대표의 정책) 브레인으로 참여하셨는데 제자된 도리로 옆에서 조금 거들어 드렸다. →결국 복지 정책에 있어서 ‘빨갱이’ 취급을 당하기 쉬운 진보보다 공동체 복원을 내세운 보수가 더 유리한 셈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진보가 없으면 복지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도 없다. 진보의 역할이 크다. →진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강남 좌파’니 ‘분당 우파’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말 장난이다. 언론이나 정치계가 자꾸 그런 말을 만들어 내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의 정교함이나 어느 게 국민에게 이로운가를 따져야지…. 언론은 그렇다 치고 대학 교수들까지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말씀을 들어보니 강남에 안 사나 보다. -하하. 굳이 따지자면 강남에 전세 사는 중도파다. →박 전 대표의 보수적 색채 때문에 집권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당장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그의 공약은(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법 질서를 ‘세’우자는) ‘줄푸세’였다. -박 전 대표의 구상 자체는 진보신당 대표를 지낸 노회찬 의원이나 참여정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익 서울대 교수 등 반대 진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남는 것은 진정성인데, 그건 학자인 내가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 학자로서 얘기하자면 가능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봐라. 이명박 정부가 잘해서 그 위기를 넘겼느냐, 그건 아니다. 1998년 이후 뒷정리를 잘 해둔 김대중 정부의 공덕이 크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서 세팅을 잘해야 한다. 어느 누구 하나의 공으로 될 일이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스웨덴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스웨덴의 특수성, 예컨대 이웃 소련의 압박, 적은 인구, 유럽이라는 거대 단일 시장 등이 있었기에 (스웨덴 복지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 -맞다. 스웨덴은 1·2차 세계대전 때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초토화된 유럽을 상대로 전후(戰後) 보급기지 역할을 맡았다. 인구도 1000만명이 채 안 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본인들처럼 남에게 욕먹고는 못 산다. 스웨덴 모델이 안 된다는 사람들은 은근히 미국을 내세운다. 미국이 복지 후진국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인종 문제(흑백 갈등)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인종 문제가 있나? 아니다. 심지어 평등 지향적 의식이 엄청 강하다. 그렇기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를 구상할 수 있고, 해낼 수도 있다. →그럼 무엇부터 손대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빨리’다. 지금 안 바꾸면 나중에 큰 골칫덩이가 된다. 프랑스를 봐라. 연금 체계가 굳어버린 뒤 뒤늦게 손대려 하니까 총파업이 터져나오는 고통을 겪지 않나. 우리는 갖춰진 게 없다. 그나마 이 점이 다행이다. 정해진 틀이 없으니까 이제부터 잘하면 더 좋은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스웨덴 모델 성립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노동운동, 즉 조직화된 노조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건 산업화 시대의 모델이다. 지금 같은 탈산업시대에는 지식이나 교육 분야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늘려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쉽게 말해 아이가 있는 젊은 여성과 그 여성에 연계된 젊은 남성의 표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가, 하는 거다. 내 꿈은 한국이 이 과정을 잘 설계해서 스웨덴이 한국 모델을 배우기 위해 역방문하는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복지부 장관이나 국무총리로 입각하는 것 아닌가. -하하. 나는 학자로서 복지국가 논의의 물길을 트는 데 관심 있다. 5년 단임정부에 들어가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100살까지 서울대 교수하면서 복지국가를 연구하고 싶다. 스웨덴은 학비가 공짜라 유학생을 잘 안 받아 준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에 관심 있는 학자들도 방문연구원 형식으로 몇 년 머무는 정도가 전부다. 내가 (스웨덴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1992년 사회복지학회 주최로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에스핑 앤더슨(복지국가유형론으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복지정책학자) 등 유명 학자들의 ‘시중’을 들었다. 관련 논문도 번역해 주고 길 안내도 하고…. 그게 인연이 돼 공부의 길로 이어진 만큼 배우고 익힌 이론을 제대로 전달해 보고 싶다. →입각보다 100살까지 교수하는 게 더 어려운 것 아닌가. -하하하. 그건 쓰지 마라. 나 잘릴지도 모른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92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6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비교사회정책 석사 ▲2000년 스웨덴 웁살라대학 비교사회정책 박사 ▲2001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5~2007년 보건복지부 정책자문위원 ▲2006~2008년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9년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장
  • 국내 첫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한국 첫 프로 마술사인 이흥선씨가 31일 오후 5시 10분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26살 때 마술에 처음 입문한 고인은 비둘기 마술에서부터 공중부양 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마술을 한국에 도입했고 1964년부터 각종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마술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1996년에는 한국 최초의 마술 상설 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를 열고 후배들을 양성했다. 2004년 한국마술협회 공로상을 받고, 2005년 서울랜드마술대회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 딸 영숙, 영희, 영애씨가 있으며 외손자인 김정우(41)씨가 뒤를 이어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발인 4월 2일. (02)2227-840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일본은 결국 변한 게 없다”

    “일본은 결국 변한 게 없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의 결과가 나와버렸습니다.” 31일 서울 통일로 동북아역사재단 소회의실에서 만난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유감 표명에 이어 양국 학자 간 논의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지진 사태’마저 터져 그 어느 때보다 양국 관계가 돈독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어제 결과 발표를 본 뒤 심정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면서 “그것은 바로 유감, 실망, 우려, 각성”이라고 소회를 풀어놨다. 이번 사태는 2006년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작업에 이어 2008년 교과서 편찬 기준이 되는 학습지도요령이 개편되면서 이미 예견됐다. 정 이사장은 “이후 2~3년간 일본 당국과 지속적으로 물밑 교섭을 벌여 왔고 그때마다 결국 일본에도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왔다.”면서 “침략사관에 젖어 있는 정치인, 관료 집단의 영향으로 이런 서술이 나와버렸다는 점에서 무척 유감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서술 때 주변국들의 이해를 구하겠다던 근린제국 조항을 일본 정부 스스로 짓밟았다는 점에서 동북아 전반에 대해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각성’에 대해서는 “한류니 일류니 문화 교류가 증대되면서 한·일 간 훈풍이 돌았지만, 결국 일본은 변한 게 없다는 깨우침을 줬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재단은 기존에 진행하던 학술연구 작업을 진전시키고, 초등학생용 독도 부교재 자료를 배포키로 했다. 특히 ‘실효적 지배’를 재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독도 관련 독립영화를 제작했고 앞으로는 관련된 관광사업을 벌이는 등 독도가 어디 저 멀리 있는 섬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독도문제에 너무 몰입하면 민족주의 광풍에 휩쓸릴 것…日 학습지도요령 깨부숴야”

    “독도문제에 너무 몰입하면 민족주의 광풍에 휩쓸릴 것…日 학습지도요령 깨부숴야”

    일본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바빠진 곳이 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지자 학계·시민단체 전문가들이 2001년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로 출범시킨 단체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까지 터지자 지금의 형태로 확대 개편됐다. 이번에도 민간 차원에서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한 심층 분석과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교과서 분석 작업을 총괄지휘하는 이신철(46) 공동운영위원장(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을 30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일본 교과서 왜곡의 대명사는 후소샤(扶桑社) 출판사였다. 이번엔 지유샤(自由社)와 이쿠호샤(育鵬社)다. 어떤 차이가 있나. -일란성 쌍둥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서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1997년 출범한 극우단체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었다. 이들은 2001년 후소샤를 통해 교과서를 냈다. 그 뒤 계속 교과서를 냈지만 채택률이 1%에도 못 미치는 등 지리멸렬하자 내분이 일어나면서 새역모가 두개로 쪼개졌다. 이때 생겨난 ‘교육재생기구’라는 단체가 후소샤의 자회사인 이쿠호샤와 손잡았다. →이쿠호샤는 후소샤의 실패가 투박한 서술 때문이었다면서 조금 더 세련되게 접근하겠다고 공언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롯해 서술이 개악된 이유가 뭔가.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다. 후소샤는 자신들이 교과서 문제로 너무 표적이 되어 있으니 자회사로 이쿠호샤를 만들었고, 이게 교육재생기구와 손잡았다. 기존의 새역모는 지유샤로 갈아탔다. 지유샤의 경우 일본 국내법적으로 교과서를 낼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 자격 요건 가운데 전문가를 5명 이상 보유하고 교과서 출간 6개월 전에 회사가 설립되어야 한다는 등의 제한 규정이 있다. 그런데 지유샤는 고작 사장 1명과 직원 3명에 불과한 급조된 회사다. 그런데도 교과서 검정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졌다는 게 무척 의외다. 이쿠호샤의 세련된 서술이란 것도 잘못 알려진 대목이다. 2006년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일본내 반대 운동 진영이 쓴 전술 가운데 하나가 끊임없이 흠집 잡기였다. 요코하마에서 이 전술이 특히 먹혀들었다. 후소샤 교과서를 갖다놓고 일본사 서술이 잘못된 부분을 집요하게 문제제기했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에서 수정 공문을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이게 쌓이다 보니 결국 후소샤에서 틀린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는 삽지 작업까지 했다. 이쿠호샤가 세련되게 서술하겠다고 한 것은 이렇게 꼬투리 잡힐 짓을 안 하겠다는 뜻이지, 극우 논리를 완화하거나 정교하게 다듬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 교과서에 등장한 독도 문제 왜곡이 어느 정도인가. -예전에도 독도 문제를 거론한 교과서들이 있었다. 차이라면 예전에는 한·일 양국 간 영유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교적 건조한 서술방식이었던 데 반해 지금은 아예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못 박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안 나온다. 아예 한국땅이라고 인정하거나, 우익쪽 학자라 해도 양국 간 다툼이 있다는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교과서에 ‘불법점거’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일본 문부성의 요구사항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독도 문제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지면 한·일 양국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만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독도 문제에 너무 몰입하면 일본 우익의 손에 놀아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같은 주장이 전형적인 한국 외교관료들의 논리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교과서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는 게 우리 태도다. 독도 문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고, 강력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면 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릴 수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내셔널리즘 광풍이 불어닥치면 그 다음 행보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본질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는 아베 정권 당시 만들어진 학습지도 요령을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전반적인 역사 인식 자체를 문제삼아야 하고, 그래야 다른 나라들과 연대해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 →독도 외에 다른 대목은 어떻게 교과서에 서술됐는가. -가장 중요한 게 사실 그 부분이다. 식민지, 전쟁 미화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됐고, 위안부 문제는 아예 취업을 위해 공장에 간 것처럼 쓰여져 있다. 대동아전쟁은 아시아해방전쟁으로 미화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치른 오키나와 전쟁에 대해 자신들의 침략전쟁은 쏙 빼버리고 미군이 침범해와서 많은 일본인들이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서술했다. 결국 무라야마 담화, 간 나오토 담화 등 한·일 우호적인 내용의 담화를 깡그리 무시해버린 것이다. 이는 아시아 평화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독도 영유권 문제보다 장기적으로 더 위험한 대목들이다. 한마디로 애국심 고취를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대목은 전부 빼버렸다. →그 대목에서는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2008년 뉴라이트 진영의 대공세로 금성사 교과서가 문제되면서 집필자였던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교육과학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옳은 지적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8년 교육안을 다시 만들었고, 교과서도 수정됐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대목이 강화됐고 북한 인권 문제도 거론했다. (교과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기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다. →교과서가 나오기 직전 일본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까지 우리는 (교과서) 검정채택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춰 대응했다. 그런데 검정 과정에 이미 일본 정부가 깊숙히 개입한 이상 결과가 나온 뒤에 대응하면 늦다는 반성이 나왔다. 그래서 관련 일본 단체들과 힘을 합쳐 미리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두루 만나고 왔다. →일본 시민단체들의 분위기는. -2001년에는 왜곡 교과서 채택률이 0.039%에 그쳤다. 그런데 최근에는 1.7%까지 올라갔다. 미미하지만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채택률 상승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은 이런 왜곡 교과서들이 다른 출판사의 서술방향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의 위기의식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은 어디에 집중되나. -아무래도 교토와 요코하마다. 도쿄의 경우 우리로 치자면 구(區) 단위로 교과서가 채택된다. 그런데 교토와 요코하마처럼 우익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큰 곳은 좀 더 광역화돼 시(市) 단위로 채택된다. 그래서 이들 지역을 우선 타깃으로 삼았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 구겐하임 이우환 개인전

    일본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술가 이우환(75)이 오는 6~9월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고 구겐하임미술관이 29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구겐하임이 한국 작가 개인전을 여는 것은 2000년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이후 두 번째다. 전시는 6월 24일부터 9월 28일까지며, ‘이우환: 무한의 제시’(Lee Ufan: Making Infinity)라는 제목이 붙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미국 철강업계 거물인 솔로몬 구겐하임이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기반으로 1937년 설립된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구겐하임의 리처드 암스트롱 디렉터는 “이우환은 지난 40여년간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활동해온 뛰어난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저술가”라고 소개한 뒤 “이번 전시는 이우환을 역사적 인물이자 동시대 거장의 자리에 놓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우환이 많은 나라에서 존경을 넘어 숭배를 받고 있지만, 뜻밖에도 북미에서는 덜 알려졌다.”며 “이번 전시는 때늦은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회화, 조각, 드로잉, 설치작품 등 출품작 90여점은 대부분 미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재벌그룹 안주인들 미술관장 속속 컴백

    재벌그룹 안주인들 미술관장 속속 컴백

    이런저런 이유로 미술관장직에서 물러났던 재벌 그룹 안주인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왼쪽)씨는 지난 16일 자로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으로 복귀했다. 2008년 6월 ‘삼성 비자금 사태’로 이 회장과 함께 동반 퇴진한 지 2년 9개월 만이다. 이후 리움은 관장직을 공석으로 놔둔 채 홍씨의 동생인 홍라영 총괄부관장 체제로 운영해 왔다. 홍 관장은 관장직에 복귀하자마자 리움에서 주최한 ‘코리안 랩소디’ 기획전 개막 행사에 참석했다. 리움 측은 29일 “일본 대지진 참사 등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별 다른 취임 행사 없이 복귀했다.”고 전했다. 앞서 ‘신정아 사건’에 휘말려 성곡미술관장직에서 물러났던 박문순(오른쪽)씨도 지난 1일 자로 복귀했다. 박 관장은 김석원 전 쌍용 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2007년 11월 ‘신정아 사건’ 여파로 관장에서 물러났다가 3년 3개월 만에 복귀했다. 이후 성곡미술관은 김 전 회장의 누나인 김인숙 전 국민대 교수가 관장을 맡아 왔다. 하지만 최근 신정아씨가 자전 에세이 ‘4001’을 발표해 다시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리면서 박 관장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에 머물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 비자금 사태’ 때 연루됐던 서미갤러리가 최근 오리온 그룹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과거사’가 다시 거론되는 바람에 홍라희 관장의 복귀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혈압 치료제 ‘엑스포지’ 임상 동양인 혈압강하효과 우수

    ARB(안지오텐신 수용체차단제)와 CCB(칼슘채널 차단제) 복합 고혈압치료제인 엑스포지의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첫 임상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 결과, 엑스포지는 암로디핀 단독요법에 비해 우수한 혈압 강하효과 및 활동혈압 조절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계에 따르면 이번 임상 연구는 한국을 비롯, 중국·싱가폴의 20개 센터에서 경증 및 중등도 본태성 고혈압 환자(18∼86세)를 대상으로 했다. 총 919명의 환자들에게 4주간 암로디핀(5㎎)을 단독 투여한 후, 여기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 698명을 추려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암로디핀과 엑스포지(80㎎)를 8주간 투여했다. 그 결과, 엑스포지 투여군에서 8주 후 이완기 및 수축기 혈압이 유의하게 감소했으며, 반응률과 혈압조절율에서도 엑스포지 투여군이 암로디핀 단독 투여군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8주 후 24시간 활동혈압을 평가한 결과, 엑스포지군은 수축기·이완기 혈압이 각각 -7.3/-6.3㎜Hg인 반면, 암로디핀군은 -0.2/+0.3㎜Hg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퇴출 위기’ 상장사 대표 승용차서 숨진 채 발견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코스닥 상장사 씨모텍의 김태성(48) 대표이사가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6일 오후 8시 25분쯤 경기 과천시 길에 세워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는 27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발견됐을 당시 정황 등으로 미뤄 김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이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휴대전화 위치추적 요청을 해 와서 찾던 중 순찰차가 먼저 김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씨모텍은 지난 24일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공시했으며,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씨모텍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거래를 정지시켰다. 2007년 상장한 씨모텍은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때 쓰는 데이터모뎀을 제조하는 업체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인물사진의 거장이 돌아왔다

    인물사진의 거장이 돌아왔다

    유명인 인물 사진의 대가 유섭 카쉬(1908~2002)의 작품이 돌아왔다. 2009년 한 차례 전시돼 개막 한달여 만에 1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전시다. 이번에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은 몇 가지 다른 포인트를 잡았다. 우선 캐나다의 유섭 카쉬재단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디지털프린팅이 아니라 카쉬가 직접 찍고 인화한 오리지널 필름이 전시된다. 또 지난번 전시가 워낙에 잘 알려졌던 작품들 위주로 선정됐다면,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모두 100여점이 전시되는데 이 가운데 80%가 새로운 작품이다. 넬슨 만델라, 크리스티앙 디오르, 엘리자베스 테일러, 앤디 워홀, 무하마드 알리, 샤갈 등이 새로 공개된다. 가령, 1941년 라이프지 표지에 실려 카쉬를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게 했던 윈스턴 처칠 사진의 경우 이제까지 알려진 것은 시가(cigar)를 빼앗겨서 불퉁하니 고집스러운 얼굴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뒤 처칠이 웃으며 말하는 사진도 공개된다. 2차대전의 영웅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적으로는 불퉁한 사진이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처칠 가족들은 웃는 얼굴 사진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또 동갑내기 배우로 미모와 우아함을 두고 한판 대결을 벌였던 그레이스 켈리와 오드리 헵번 사진도 함께 공개된다. 콘서트 대신 스튜디오 작업에만 집중할 정도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록 꺼렸던 바흐 전문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가 미친 듯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각 인물 사진 밑에는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지기 때문에 사진 찍을 당시의 분위기, 카쉬와 인물 간 사진에 대한 의견 조율 과정 등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여기에다 카쉬가 찍은 ‘손’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카쉬는 손에 인물의 성격과 직업에 따른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보고 인물 사진들 못지않고 무척이나 손 사진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5월 22일까지. 6000~9000원. 1544-168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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