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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이 1.5m·길이 70m 돌에 옮겨진 ‘법화경’

    높이 1.5m·길이 70m 돌에 옮겨진 ‘법화경’

    들어간 돌을 무게로 따지자면 5t 이라 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돌값만 4억원이다. 그걸 부여잡고 6년 동안 씨름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법화경’(法華經·묘법연화경) 전문 7만여자를 새긴 ‘불광’(佛光) 시리즈다.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조성주(61)는 불광 시리즈 10여점 등 다양한 작품을 24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전시한다. 출발은 약간 슬프다. 잘못된 빚보증 때문에 돈 잃고 사람을 잃었을 무렵, 불교무용가 전수향이 건네준 법화경을 읽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그 때 이걸 작품으로 만들겠다 결심했다. 이미 한 번 해본 경험도 있다. 1997년 금강경(剛經) 전문 5400여자를 전각 작품으로 완성해 한국기네스북에 오른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분량으로 보면그때 금강경 작품의 10배 정도에 달합니다. 돌에다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이걸 퍼즐과 모자이크 방식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설치미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세계기네스북에 등재하기 위한 절차도 밟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작품을 한데 늘어놓으면 최소한 높이 1.5m, 길이 70m에 달한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다. (02)720-116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작품서 좋은 기운이 나온다?

    작품서 좋은 기운이 나온다?

    “아, 그럼요. 그 부분에서 저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니까요.” 23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초대전을 여는 이두식(65) 홍익대 교수. 오방색을 이용한 화려한 추상을 선보이는 그는 유리판으로 그림을 덮지 않는다. 그게 까닭이 있다 했다. 1981년 미국 LA 전시 때 친구인 가수 이장희를 따라 뉴욕으로 놀러가 이장희의 친구집에 갔는데 그곳에 자기 그림이 유리판 없이 걸려 있더란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인 줄도 모르고 집 주인은 어느날 유명한 기치료사가 와서 그림을 보고는 ‘그림 자체에서 좋은 기운이 흘러나오는데 유리판으로 왜 막았느냐. 유리판을 떼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그때부터 자기 작품에서 유리판을 영원히 없앴다. 최근 일이라며 한 사업가 얘기도 들려줬다. 한 사업가 부인이 전화를 해왔는데 그림 한점 꼭 그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잘나가는 사업가인 남편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통 웃거나 대화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 들렀다 로비에 걸린 그림을 보고서는 환하게 웃더란다. 그걸 보고 작가 이름을 수소문한 끝에 전화한 것이다. 그림을 그려준 뒤 병원에서 회복세가 뚜렷하다는 진단결과가 나왔고 감사의 전화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작가를 마주 대해 보면 그림에서 기운이 나온다는 소리가 왜 있는지 짐작할 법하다. 큰 덩치에 서글서글한 인상에다 활달한 성격에 입담까지 갖췄다. 자서전 격인 책 제목이 ‘고릴라, 로마역에 서다’인 거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예술가가 대놓고 스스로를 고릴라라 부르겠는가. 작품에서 좋은 기운이 나온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그의 작품은 호텔이나 큰 식당 같은 곳에 많이 걸려 있다. 작가 말이 더 웃긴다. “아이고, 누구는 그래요. 이두식이는 짜장면 화가라고. 소문난 큰 중국집엘 가면 제 그림이 늘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냥 웃고 말죠.” 이번 전시는 선화랑과의 의리로 성사됐다. “제가 사실 최근 들어 중국 쪽 전시에 집중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거의 전시를 안 했어요.” 그걸 안타까워했던 이가 인사동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김창실 선화랑 회장이었다. 자꾸 바깥으로 나돌지 말고 한국에서 한번 전시하자 약속했는데 김 회장이 지난해 그만 숨졌다. 그 약속을 이번 전시로 지킨 것이다. 이번에 내놓는 작품에서는 여백이 특히 눈에 띈다. 추상적인 서양화를 했지만, 동양적 정신세계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다. (02)734-045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학·철학에 종말이 온다고? 읽고 쓸게 얼마나 많은데 감히!

    문학·철학에 종말이 온다고? 읽고 쓸게 얼마나 많은데 감히!

    사심 듬뿍 담아 감히 평하자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잇달아 내놓은 재독철학자 한병철과 함께 올 상반기 철학 교양서 저자 가운데 최고의 뉴 페이스로 꼽을 수 있겠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을 내놓은 사사키 아타루다. 한병철과 저자의 가장 큰 공통점은 스타일이다. 본인이 정말 꼭꼭 씹어 소화해 낸 것만 내놓는다. 자신만의 독해법을 드러내 보일 뿐 그걸 번드르르한 인용으로 애써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비평가나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 따위는 정보통이 되겠다는 헛된 욕망이라고 비판한다. 라캉의 말을 빌려 그것은 “향락 가운데 가장 비참한 팔루스(남근)적 향락”, 그러니까 홀로 우뚝 서겠다는 허세라는 것이다. 한병철은 똑같은 내용을 “(잡다한) 정보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이론을 내놓겠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두 저자의 문장은 대단히 쉽다. 어려운 단어에다 말장난까지 섞어 두세번 꼬아 놓는 바람에 몇번을 봐도 헷갈리게 써 놓은 게 아니라, 누구나 알 만한 쉬운 단어로 문장을 구성했는데 읽는 사람은 오히려 멈칫멈칫 두세번 곱씹게 만든다. ‘아포리즘’이라는 표현에 딱 맞아떨어진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침이 꿀떡꿀떡 넘어갈 법하다. 저자가 이론을 제시하고 싶은 대상은 문학이다. 문학(Literature)을 넘어 문학(Literacy)이다. 시와 소설 같은 개별 문학작품을 넘어 종교, 철학, 역사에까지 확장된, 총체적으로 세상을 읽고 쓰는 행위로서의 문학이다. 모든 것을 텍스트화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모든 문제를 문학화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의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사무엘 베케트·폴 발레리·버지니아 울프 같은 문학가들, 니체·라캉·푸코·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포스트모던의 이름으로 모던의 종언을 얘기하는 모든 종말론에 대한 투쟁’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으로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을 잘근잘근 씹는 대목이나 현대 프랑스 철학이 종말론적으로 이해되는 상황에 대해 어느 데마고그가 그런 헛소리를 퍼트렸느냐는 대목에서 웃음이 난다. 일본인인 저자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퍼뜩 ‘근대 문학의 종언’을 말한 가라타니 고진, ‘역사의 종언’을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떠오른다. 저자는 “프랑스어로 된 책을 멋대로 읽고, 멋대로 쓰고, 멋대로 여기저기 가져가고” 했을 뿐 “그 사람들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뚝 잡아뗀다. 그럼에도 “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고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에 대해 “가소롭기 짝이 없다.”고 명백히 말해 둔다. 한 술 더 떠 “철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철학과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문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문학에 종사하는 걸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한다. 무슨 근거로 문학, 종교, 철학, 역사의 종말을 부인하는가. 좁게는 문학작품, 넓게는 이 온 우주를 다 포괄하는 텍스트를 읽고, 다시 읽고, 제대로 읽어버린 이상 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쓰고, 고쳐 써야 하니까, 그래서 읽고 쓰는 과정 자체가 늘 혁명일 수밖에 없으니까 종말 따윈 있을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대답이다. 얼마나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 할 것들이 많은데 감히 문학의, 종교의, 철학의, 역사의 종언을 말하느냐는 되물음이다. 해서 책 제목은 종말론을 떠벌림으로써 은근슬쩍 자신을 구세주로 포장하는 이들에게 혹해서 구원의 기도를 올리려는 그 손을 잘라야 한다는, 저자의 단호한 외침이다. 저자는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고쳐 쓰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증명하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본다.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 4개 혁명 이전 혁명의 원형질이랄 수 있는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12세기 중세해석자혁명을 다룬다. 오늘날 루터에 대한 평가는 조금 각박해졌다. 라스카사스나 후스 같은 다른 개혁가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저자는 문헌을 읽을수록 오히려 루터의 위대함에 반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직접 읽는 게 좋겠다. 다만, 저자의 강조점은 루터가 성서를 직접 읽어 봤고, 읽은 이상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쓴 이상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 꽂혀 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12세기 중세해석자혁명이다. 저자는 서구의 ‘근대’라는 것이 이때 발생했다고 본다. 아날학파의 ‘장기 16세기’라는 표현에 빗대자면 ‘초장기 12세기’라 부를 만한 것인데, 물적토대라기보다 일종의 사상,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저자가 12세기에 주목하는 까닭은 교회법 정비다. 교회법은 오늘날 민법으로, 교황권은 주권(Sovereignty)으로, 공의회는 의회 개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세란 근대 계몽의 빛이 들이치기 이전의 암흑동굴이었다는 이분법을 완전히 깨부순다. 어쨌든 여기서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연히 발견한 로마법대전을 읽었고, 다시 읽었고, 읽은 이상 쓰지 않을 도리가 없어 교회법을 새로 쓰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하디자 부부 얘기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들이 천사를 통해 받은 신의 첫 계시는, 이쯤이면 짐작하다시피 “읽으라.”였다. 읽는다는 것은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개념의 이해란 생각을 임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반여성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슬람교가 실은 가장 여성적이었다고 논증한다. 이렇게 보면 복음주의 기독교건 이슬람교건, 종말론적 철학이건, 그 모든 원리주의의 문제점은 열렬히 믿어서가 아니라 읽지 않아서다. 읽지 않아서, 읽더라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정직하게 읽어낼 용기가 없어서 생긴 일이다. 겉으로는 가장 선명하고 도덕적이고 용맹해 보이지만, 속은 가장 비겁하고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2008년 ‘전장과 영원’이라는 책으로 일본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깊은 사유와 독특한 문체가 눈길을 끌면서 온갖 대중강연, 토론 자리에 불려다녔는데 이때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당신은 홀연히 나타났는데 지금까지 어디서 뭘하고 있었느냐.”였다고 한다. 그 뒤 각종 출판 제의를 거절하다 출판사 편집진들과 대화한 내용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실제 책도 5일밤 독자들과 나누는 대화체로 꾸며져 있다. 이 책 역시 지난해 일본에서 인문서 최대 화제작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저자는 논의가 조금만 더 깊어지려면 “이 부분은 이미 ‘전장과 영원’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는 언급을 반복한다. 아무래도 ‘전장과 영원’ 번역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그 책이 600쪽에 이른다는 사실. 번역자는 의욕을 보이지만, 출판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낙관은 이르다. 참고로 번역자는 이 책의 저자가 안 그런 척하면서 때려대는 가라타니 고진을 한국에 많이 소개해 온 번역자다. 묘한 인연이다. 1만 35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직열전 2012] (4) 총리실(상)

    [공직열전 2012] (4) 총리실(상)

    총리실 사람들은 샌님 같다. 부처 간 정책 조정과 총리 보좌가 주 업무이다 보니 앞에 나서기보다는 막후에서 조용하게 일을 풀어 나가려 한다. 정부 정책 전반을 조율하고 통괄하기 때문에 상반된 입장과 뒤엉킨 정책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몸에 배어 있다. 정책을 만들고 이를 관철시키려 나서는 다른 부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전체 정원의 40%가량이 다른 부처로부터 파견 나온 직원들인 것도 이런 조직의 특성 때문이다. 임종룡 총리실장(장관급)은 기획재정부 출신의 금융통으로 국정 전반의 조정 업무에 정통하다. 육동한 국무차관은 과장 때 총리실로 전입, 정부 부처 심사·평가를 맡았다. ‘친정’ 기획재정부로 돌아갔다가 실장급으로 재입성해 ‘정책 차관’에 올라 각 부처 조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조정업무 경험과 경제관료의 안목 등 종합적인 시각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총리 보좌 기능을 총괄하는 김석민 사무차관은 몇 안 되는 ‘토종’ 총리실맨. 직원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스킨십이 두텁다. 정책과 총리 보좌 업무를 두루 거쳤고, 프랑스 유학파로 의전에도 정통하다. 총리실장과 두 차관은 행시 동기(24회), 부드럽고 원만한 성격, 꼼꼼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이라는 점도 같다. 홍윤식 국정운영1실장은 정책·기획통으로 외교·안보 조정 업무로 잔뼈가 굵었다. 각종 문화재 반환 등에 기여했다. ‘건강사회·공정사회 만들기’ 사업과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기틀을 세우는 등 큰 가닥을 잡아 가는 능력을 보였다. 이호영 국정운영2실장은 최근까지 사회통합정책실장을 맡으며 친서민대책, 무상보육 등 사회갈등현안 조정에 솜씨를 보였다. 일에 열정적이고 좋은 대인관계에 정무 능력이 빼어난 마당발이다. 넓은 시야에 종합적인 판단력을 갖췄다. 심오택 사회통합정책실장은 규제, 평가 등 총리실 고유 업무들을 다뤄 온 전문가다. 직원들 사이에서 푸근하고 자상한 선배로서 덕망이 두텁다. 부처 간 첨예한 정책적 대립을 합리적인 설득력으로 조율해 관련부처 직원들로부터 평가가 높다. 이병국 규제개혁실장은 공보과장 출신에 입담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른 쾌남 스타일. 한승수 전 총리 때 ‘기후변화기획단’ 국장으로 일하며 높은 점수를 받아 동기들보다 앞서 실장 자리를 꿰찼다. 싱글 핸디의 골프 실력, 뛰어난 순발력의 재주꾼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강은봉 정책분석평가실장은 한 전 총리의 의전관으로 신임을 얻어 1급 반열에 진입했고, 비서실 등 지원 파트에 오래 있었다. 규제개혁실장을 거치며 업무 능력을 발휘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단장을 17일부터 새로 맡게 된 권태성 총무비서관은 총리실 내 대표적인 경제통. 총무비서관을 지내며 ‘예측가능한 인사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였다. 새만금과는 과장, 국장에 이르는 4차례 보직과 인연을 갖고 있다. 김대현 정무실장은 옛 한나라당 사무처에 오래 근무해 여권 정치인들과 두루 가까우면서도 호남 출신으로서 민주당 의원들과도 소통 창구를 연결하는 대의회 창구다. 최형두 공보실장은 임 총리실장의 권유로 지난 2월 말 총리실에 합류한 신문 기자 출신. 진중하면서도 추진력이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인사]

    ■국무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장 권태성△규제총괄정책관 최병환△평가총괄정책관 박장호△의전관 김성환△총무비서관 이철우 ■특허청 △청장 비서관 김명섭△대변인 김시형△운영지원과장 백흠덕△기획조정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최대순△산업재산정책국 산업재산인력과장 박주연△상표디자인심사국 상표3심사팀장 어용호△〃 디자인2심사팀장 송병주△특허심판원 심판관 박진환△서울사무소장 오영덕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감사 이병용 ■대한상의 인력개발사업단 ◇신규 임용 △충남인력개발원장 박종남 ■서울대치과병원 △관리부장 원광연 ■KT 스카이라이프 △부사장 이성수
  • 김호정 교수가 들려주는 브람스의 매력

    김호정 교수가 들려주는 브람스의 매력

    16일 밤 12시 35분 KBS1 TV에서 방영되는 ‘클래식오디세이’에서는 첼리스트 김호정을 소개한다. 김호정은 서울대 음대, 잘츠부르크 국립음대, 쾰른 국립음대를 거쳐 코리안심포니 첼로 수석으로 활동하고서 경북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첼리스트. 그는 특별히 브람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브람스가 쓴 첼로 소나타는 평생 딱 두 곡이다. 32세에 첫 번째, 53세에 두 번째 소나타를 썼다. 한창 젊었을 때와 이제 웬만큼 해볼 것은 다 해본 나이에 각각 쓴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곡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경우가 많다. 김호정은 올해 연주 테마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정했다. 4월에 1번을 연주했고, 11월에 2번을 연주한다. 김호정은 첼로의 매력에 대해 “일단 들고 다닐 때 폼이 난다.”는 재미난 대답을 들려준다. 브람스 곡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이해와 감상까지 함께 덧붙였다. ‘내 인생의 클래식’ 코너에는 발라드 가수 최성수가 나온다. 최성수는 최근 한 방송의 오페라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할 정도로 원래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좋아하는 가수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꼽고, 인생에 늘 동행하고 싶은 것으로 오디오와 클래식을 꼽는 이유도 여기 있다.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서 주목받는 소프라노 한경미의 얘기도 들려준다. 성악 하면 목소리를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한경미는 엄청난 노력으로 한계를 이겨낸 경우다. 매혹적인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으나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에서 오페라 리트과를 수석 졸업하고, 그 뒤 정식 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기울여 온 노력은 유명하다. ‘세계음악여행’ 코너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흐르는 가운데 오스트리아 빈을 찾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셀카 찍은 지인 사진 특징만 잡아 그렸죠”

    “셀카 찍은 지인 사진 특징만 잡아 그렸죠”

    “누가 묻더군요. 리히텐슈타인을 아느냐고. 또 누가 묻더군요. 앤디 워홀을 아느냐고. 제가 되물었어요. 그걸 제가 알아야 하느냐고요. 제가 그걸 봤어야 했냐고요.” 19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친구 - 셀프 카메라’전을 여는 윤기원(39) 작가는 당당했다. 굵은 선에다 화려하고 단순한 원색으로 그린 그림은 여느 팝아트 작품처럼 보여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런데 작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원래 자신이 추진해 왔던 방향이라 그런 얘기를 들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 때는 원래 극사실화를 했어요. 그게 주변에서 ‘와~ 너 그림 정말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에 이르고 나니까 바꾸고 싶어졌어요.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집중해 보고 싶었어요.” 인물을 택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인물은, 쉽게 말해 잘 그려야 본전이거든요. 또 너무 흔한 소재이기도 하고. 그래서 작가들이 꺼려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남들이 꺼리는 것을 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다다랐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번 전시주제는 셀프 카메라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셀카를 찍어 보내 달라고 요청한 뒤 그 셀카를 보고 그렸다. 디테일한 분위기나 배경은 확 버리고 특징만 잡아냈다. 모델로 요청했을 때 나오는 인위적인 것 대신 스스로를 찍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를 전달하고파서 정한 방식이다. 그래서 낸시 랭을 제외하고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고사리, 김용석, 문보영, 박래엽, 장지희 같은 친구 이름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을 그려냈기 때문에 대중의 호응도 받았지만, 컬렉터들은 그런 이름을 불편해하거나 싫어하지 않을까. “그 반대 현상이 있어요. 친구들이다 보니 대개 작가들인데, 컬렉터 가운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궁금해서 그 작가에게 가서 작품을 사는 경우도 있어요. 친구들을 그리고 도움도 되고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02)544-848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출발 전혀 다른데 결과는 흡사” 아크릴 겹바른 두 작품전 눈길

    “출발 전혀 다른데 결과는 흡사” 아크릴 겹바른 두 작품전 눈길

    참 묘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과물은 엇비슷하다. 아크릴 물감을, 적게는 수십번, 많게는 수백번 겹쳐 올린다. 단순해 뵈지만 제작하는 데는 품이 제법 든다.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얇게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바르기를 반복해야 한다. 시간에다 재료비가 만만찮다. 한 작가는 “마누라가 비싼 물감 이렇게 많이 들이는 작업을 왜 하느냐고 해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작가는 “남편이 산업디자인을 하느라 쇳가루와 나무가루를 풀풀 날려대서 작품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며 투덜거리는 이유다. 수십, 수백개의 얇은 색깔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위치나 주변 사물, 조명 같은 조건에 따라 색깔이 미묘하게 변한다. 해서 실제 눈 앞에 두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결과물은 이처럼 엇비슷한데,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거창하게 동·서양이라 해도 되고, 망원경과 현미경이라 해도 되고, 관조와 분석이라 해도 되고, 명상과 과학의 차이라 해도 된다. 6월 3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학고재갤러리 두 곳에서 ‘스케이프 드로잉’전을 여는 김태호(59) 작가의 출발점은 경기 파주시 법흥리 경모공원이다. 실향민들이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이 묻히기 위해 조성된 묘역이다. 작가도 장인이 묻혀 있어서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보겠다고 모였는데, 정작 보이는 건 묘역 뒤 푸른 하늘뿐이다. 실향민들의 수많은 생각이 겹쳐지면 결국 하늘빛이 될까. 해서 작가는 그 모든 풍경들을 겹쳐서 그리기 시작했다. 한 캔버스 위에다 이 색으로 바람도 그리고, 저 색으로 나무도 그리고, 다른 색으로 강도 그렸다. 그리고 최종은 녹색톤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녹색빛이 감도는 가운데 밑에서는 다양한 색이 우러난다. 15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전을 여는 최선명 작가의 출발점은 빛은 파동이라는 과학적 사실, 그리고 인상파화가 클로드 모네다. 인상파는 빛에 민감했던 화가들이다. 모네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일과에 따라 변하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들을 화폭에다 담았다. 작가는 그게 그 시절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그 변화하는 모습을 모두 하나의 화면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해서 그리는 대상은 노을지는 하늘 같은 풍경들인데 어슴프레한 것이 약간 헷갈린다. 작가는 색이 내는 파장을 고려해 가면서 일일이 단계별로 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차츰 저물어 가는 시간을 한 화면에 담아 버린 것이다. 미니멀, 모노크롬 화풍에 대한 일종의 변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접근법의 차이는 다음 발걸음에도 이어진다. 김태호 작가는 그렇게 제작한 작품들을 빈 공간에 여유롭게 툭툭 던져 두는 방식을 택했다. 하얀 전시공간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중간중간 널찍한 나무 평상까지 배치해 뒀다. 영문도 모른 채 들어서면 ‘어, 뭐가 전시된 거지. 이거랑 저거는 뭐가 다르지.’ 싶을 정도다. 김 작가는 “전시 제목을 ‘멍 때림’이라고 하려다 말았다.”며 웃었다. 복잡한 깊이가 담긴 그림이지만, 그런 것일랑 신경쓰지 말고 멍하니 보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3층 전시장에는 아예 물을 채워 넣고, 꽃이나 나무까지 배치하려고 했는데 너무 연극적으로 보일까 봐 그만뒀다고 한다. 최선명 작가는 1층에다 영상작품을 걸어 뒀다. 쌓아지다가 멈춘, 미완성의 바벨탑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라틴어·히브리어·영어·아랍어가 네 방향으로 갈라지는 장면을 담았다. 이 작품 역시 수학적 계산을 하느라 제작에만 3~4년 걸렸다고 한다. 지금 인간이 보는 것은 모든 민족과 언어로 갈라지는 상황이지만, 신의 눈에 이것은 찰나의 순간일 것이고 언젠가는 한데 모일 것이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빛 속에 숨은 파장을 분석한 뒤 이를 재배치해서 흐르는 시간을 한 공간에 담아내듯, 최초의 분열에서 최후의 통합을 읽어내는 것이다. 소설에 비하자면 일종의 전지적 작가시점인 셈이다. 작가는 성경 말씀까지 인용해 가며 시공간의 응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김 작가는 세상만사 복잡한 일을 한데 뭉뚱그려 지워버리는 쪽으로 걸어갔다면, 최 작가는 그 뭉뚱그려 지워버린 것 사이에 세상만사 복잡한 일을 치밀하게 배열해 둔 쪽이다. 그러고 보니 금호미술관과 갤러리시몬은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앉아 있다. 이것도 묘하다면 묘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제국주의도 생존 위한 것” G2 속 한국의 살 길은?

    ‘중국의 서진’(피터 퍼듀 지음, 공원국 옮김, 길 펴냄)은 청나라의 서부 개척사를 다루면서 자연스레 현대 중국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미국 학자의 저작이다. 본문만 720여쪽에 이르지만 몽골·신장·티베트·위구르 등 소수민족 분쟁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중국 서북부 유목민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주말 한나절 정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는 청나라가 한화(漢化)와 무관한 만주족의 국가였다는 신(新)청사의 맥락 위에 서 있다. 빛나는 중국 문명에 주변 야만족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지금의 중국이 형성됐다기보다 민족대학살까지 무릅쓴 청나라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 때문에 지금의 영역을 겨우겨우 확보했다고 본다. 해서 저자는 17~18세기 청나라의 준가르 정벌을 촘촘하게 추적한 뒤 이를 ‘세계사적 전환’이라 결론 짓는다. “농경사회의 가장 강력한 대안”이었던 유목 목축민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주요 행위자의 지위를 영원히 박탈당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한문기록의 성격이다. 저자는 만주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 기록 가운데 한문이 가장 심하게 왜곡됐다고 본다. 피지배층인 한족을 회유하기 위해 그들 입맛에 적당히 맞춰줬다는 뜻이다. 청나라가 단순히 중국 왕조를 계승했다는 오해는 여기서 생긴다. 두 번째는 서구학계의 역사 발전단계론에 뚜렷이 각인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 서구의 성취는 역사적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책 전반에 걸쳐 있는 제국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 태도다. ‘일제’ 덕분에 한국인에게 제국주의는 무조건 악이다. 그런데 저자는 제국주의도 먹고살려다 보니 그리된 것일 뿐 원래부터 악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제 나름의 살 길을 찾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살 길은 어디 있을까. 번역자는 책에 서술된 몽골사를 음미해보라 제안한다. 이건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4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내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번역 등을 통해 영국 정치 경제사에 대한 수준 높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두 사람을 더 다루고 싶다 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만 영국 노동당의 핵심 이론가인 리처드 토니(1880~1962)다. 케인스가 현대 세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명의 삶은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가 먼저 나왔다. 타이밍도 기막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이라서다. 오웰은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동물농장’의 인세가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마지막 소설인 ‘1984’가 거둘 놀라울 성공을 미처 누리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외롭고 가난한 것보다 오웰을 더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을 반공 우화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슬퍼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을 비판한 것은 맞다. 2차대전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패악에 눈감고 심지어 아첨까지 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못 견뎌 했다.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정치적 대의를 진전시키는 길이라는 사고”와 “독재 방식, 비밀경찰, 역사의 체계적 조작을, 자기 편인 한 수용할 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가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유럽 위기의 뿌리라 봤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웠다면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는 엄연한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오웰이 보기에 “좌파 지식인이 스탈린을 숭앙”하는 꼴은 “글래스고 빈민가 아이들이 알 카포네를 숭배”하는 것과 똑같다. 1943년 11월부터 영국 노동당 내 좌파그룹 기관지 ‘트리뷴’에 소련 공산당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가 하면 소련에 아첨한 지식인들에게 아예 대놓고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소련 공산당의 선전 공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외무부의 정보조사처(IRD)에다 영국 내 공산당 비밀 당원과 동조자들 35명의 명단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 때문에 오웰은 좌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노동계급을 동경했으나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반할 수 없어 결국 중간계층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비뚤어진 선입관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받쳐주지 않을 때면 그의 글과 책은 늘 인쇄가 미뤄지거나 거부당했다. 후대 좌파에게도 비판 대상이었다. 문화 연구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오웰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웰이 ‘비판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더 뿌리 깊은 신념을 지닌 사회주의자’였다고 본다. 실제 오웰은 평생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반(反)파쇼’를 위해 트로츠키 민병대원으로 스페인내전(1936~1939)에 참가, 목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전간기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오웰은 영국 노동자들이 식민지 보유로 인한 이득을 포기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 산업국가의 모든 좌파 정당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질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서구 좌파들에게 ‘노동자 국제 연대 운운하면서 잘난 척 그만하고 식민지부터 먼저 포기해 보시지.’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오웰을 두고 “사회주의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려 했던, 제국주의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직한 우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라면 오웰의 내부 고발 행위에 함부로 박수를 쳐댈 수 없을 것”이라 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영국 전통에 뿌리 박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들이다. 오웰은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남을 깔보는 중간 계급적 우월감이라는 최악의 흔적”을 지닌 좌파 엘리트 지식인들을 경멸했기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좌파 애국주의’로 이어진다. 애국주의, 하면 벌써 좌파들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단어는 극우 맹동 세력, 반동분자나 쓰는 말 아니던가. 해서 애국가를 그토록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웰은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답답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6장 ‘좌파 애국주의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늙은 보수주의자의 뼈 위에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묵직한 표현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49년 영국 정부에 공산당 동조자 35명의 명단을 넘긴 사건은 ‘세작질’이 아니다. 오웰은 명단만 넘긴 게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정부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전후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은 것은 오웰의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는 평가는 거기서 나온다. 이 평을 누가 했을까. 바로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다. 추악한 독재자들과 거래했다며 마더 테레사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희화화되곤 하는 바로 그 다혈질 좌파 히친스 말이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안 갯벌 봄 조개로 차린 향토음식

    부안 갯벌 봄 조개로 차린 향토음식

    10일 오후 7시 30분 방영되는 KBS1TV 한국인의 밥상은 ‘봄갯벌의 짭조름한 유혹-부안 조개’편을 방영한다. 우리에게 갯벌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별스럽지 않은 풍경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갯벌을 품은 해안은 5%에 불과하다. 그만큼 희귀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지구상 5대 갯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북 부안은 이 갯벌이 주는 보물, 조개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부안은 예부터 어염시초(魚鹽柴草)해서 생거부안(生巨扶安)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물고기, 소금 같은 물산이 풍부해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부안의 갯벌은 강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염분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먹이 생물이 풍부하다 보니 다양한 조개가 살고 있다. 취재진은 1회 부안마을 축제가 열린 변산반도 갯벌을 찾아갔다. 갯벌에서 조개 캐는 체험 프로그램과 다양한 조개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넘쳐난다. 두포부녀회에서는 바지락탕을 무료로 나눠 주고, 백합죽 할머니라 불리는 토박이 이화자씨는 향토음식 백합죽을 선보인다. 소격마을 송형섭 이장에게 바다는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어업이 주업은 아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언제나 농사일이 끝나면 호미와 삽을 들고 바다로 나섰다. 조개와 낙지를 부지런히 잡아다 팔아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송 이장의 아들은 이제 맛조개를 캐는 데 도가 텄다. 맛소금을 뿌려 캐는 보통 방식 대신 철사를 화살표 모양으로 만든 써개라는 도구를 이용해 맛조개를 캔다. 이들 부자가 선보이는 맛조개구이, 해방조개무침, 바지락칼국수 같은 음식들을 만나 본다. 합구마을에 사는 김효곤씨네 부부는 어전(漁箭) 방식을 고수한다. 어전이란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 놓고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대나무 울타리 안에 가둬 잡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최고의 반찬은 백합조개다. 백합조개찜, 백합전통찜, 학꽁치구이, 졸복매운탕처럼 이름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바다의 밥상을 선보인다. 갯벌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바지락. 격포리의 할머니들은 갯벌로 바지락을 캐러 나선다. 격포의 갯벌이 특히 좋은 점은 갯벌에 돌이 많이 섞여 있다는 것. 반대로 개흙은 적게 들어가 있어 격포 갯벌에서 캐는 바지락은 부드럽고 깨끗하다. 이 바지락으로 만든 바지락잡채, 바지락죽, 바지락부침에서는 비릿한 삶의 체취마저 느껴진다. 고단한 삶을 살아왔을 것만 같은데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호미하고 바구니만 있으면 돈이 생겨. 여기 사람들은 돈 걱정할 일 없어.” “바다가 생금(生)밭이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대부 부인들, 춘화에 등장한 이유는

    ‘꿀벅지’와 ‘베이글’의 시대라 해서 너무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일부종사의 법도가 그토록 엄격했다던 조선시대에도 “규방의 부인들이 갖가지 기생 차림을 하니 부인네들은 빨리 그것을 고쳐야 할 것이다.”라는 한탄이 줄 이었으니 말이다. 증거물도 있다.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대표적이다. 신윤복을 포함해 18세기 미인도를 쭉 훑어 보면 머리에 쓴 큰 가체, 좁은 저고리, 길고 풍성한 치마가 특징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여성의 육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휴머니스트 펴냄)는 옛 시절 풍속에 대한 대중적인 책들을 잇따라 내 왔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최근작이다. 제목 그대로 각종 그림에 나타난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처음에는 간단히 고려 문제를 다룬다. 자료가 워낙 드물어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저자는 “고려 여성이 조선 여성에 비해 지위가 높았다.”고 추론한다. 여성 초상화가 따로 있었을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한 화면에 그려졌고 그 모습도 서로 대등하게 바라보는 형태라서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초상화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조선시대 들어 차츰 사라진다. 여성 초상화가 고려 때의 불교적인 풍습이란 공격도 한몫했다. 저자는 또 숙종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언제부터인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릴 줄 아는 ‘여자’가 없다는 이유로 왕가에서 왕비의 초상화가 사라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자 그림을 남자가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녀유별이 한층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왕실에서 이는 중대한 사유로 작용했다. 사대부나 민가에서는 그나마 일부 제작되지만 제사 지낼 때 초상화 대신 신주를 모시는 유교적 풍습이 일반화되면서 사라져 간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는 아예 여성의 존재 자체가 말소된 해괴한 그림들이 나타난다. 가령 임금이 연회를 베푼 것을 기념하는 그림에서 남자들은 존재하지만 여자 자리는-그들이 아주 지체 높은 가문의 고귀한 마나님들이었음에도-아예 비워져 있다. 등장도 하지만 나서 자라서 출세하는 남성을 빛내기 위한 액세서리 정도다. 그것도 아니면 일하거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는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여자라고 당하고만 있을 턱이 없다. 3장 ‘길들여지지 않은 여성 주체’는 흥미롭게 읽힌다. 지식과 교양에서 축출된 여성들은 불교와 무속과 점집으로 향했다. 동시에 노골적인 춘화도 빠질 수 없다. 신윤복, 김홍도의 풍속화와 춘화가 등장한 맥락도 여기에 있다. 이 그림들에서 남자의 지아비로서의 근엄함 따윈 없다. 2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역사적인 사건들 온전히 기억될까

    역사적인 사건들 온전히 기억될까

    5·18 광주항쟁 같은 역사적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이 파안대소했네,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부르게 했네,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화려한 축하용 화환을 전달했네 따위의 저질 해프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상적 사건이야 관련된 몇몇 사람의 문제에 그친다.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사건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걸려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의 후손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해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다. ‘그것이 과연 온전한 기억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6월 1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순택 작가의 ‘망각기계’ 전은 이 문제를 다룬다. 작가는 웅장한 운정동의 신묘역 대신 신묘역의 등장으로 방치된 망월동 구묘역의 풍경들,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스레 훼손돼 가고 있는 영정 사진들, 그럼에도 그들을 잊지 않겠다며 벌이는 광주항쟁 재현 퍼포먼스 현장 등을 꼼꼼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 가운데서도 지하 2층에 전시된 전남 화순 운주사의 석불들 풍경이 눈길을 끈다. “처음엔 저도 그냥 들렀던 곳이에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 광주항쟁 이후 수많은 유족, 친구들이 와서 위로를 받고 갔다고 해요. 세월의 흔적 때문에 자연스레 훼손되고 있는 그 불상들이 바로 광주항쟁의 영정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함께 담아 봤습니다.” 온전한 기억을 회의하면서도 그 스스로는 기억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심정이 궁금했다. “글쎄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신의 존재나 은총에 대해 계속 못 미더워하고 의심하면서도 목회를 지속하는 목회자 같은 거라고 할까요.” 하기야 망각보다 무서운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확신일는지 모른다. 다시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질문은 반복된다. 과연 우리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걸까. (02)720-152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추상, 순수하지 않다

    추상, 순수하지 않다

    남의 이름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라지만, 처음엔 이름 듣고 쿡쿡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얌전하고 차분해 보이는 여성 작가인데, 이름이 ‘정직성’(36)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인 블로그 이름도 ‘Honesty’다. 한국어로 바꾼 빌리 조엘의 노래 ‘Honesty’를 듣고 정했단다.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거창한 말을 쓰자면 ‘서울 하늘 아래 디아스포라 아닌 이 그 누가 있겠느냐.’는 얘기쯤 되겠다. 어디든 흘러다니는 디아스포라라 늘 경계선에 놓였기에 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게 됐다고, 다시 한번 아니나 다를까 할 뻔했다. 유동하는 세상이 불러오는 현기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어디 기둥 같은 것을 붙들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다. 작가는 붓을 부여잡고 가만히 그려 보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런 면에서 풍부한 감수성보다는 정직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름 듣고서는 다들 50대 남성 작가인 줄 안다.”면서도, “촌스럽지만 그 이름이 좋다.”는 말에서 10여년 전 정혜정이 왜 정직성이란 이름을 택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오피스텔들이다. 사람은 물론 어느 한 구석에도 생물의 느낌은 전혀 없다. 우울한 단색 톤으로 칠해진 작품들은 안 그래도 집적도를 한껏 높인 그 건물들을 캔버스에다 빽빽하게 채워 놨다. 마치 내가 느낀 현기증을 너도 느껴 보라는 듯.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부동산 경기의 부침에 따라 떠밀리듯, 떠다니듯 그렇게 참 많은 이사를 했다 한다. 대학 때 다큐사진 동아리 활동 때 겪었던 서울 봉천동 재개발 현장에 대한 기억도 함께 눌러 놨다. 금리에 따라 갈아타다 보니 이제는 서랍 속에서나 뒹구는 적금통장들처럼 부동산 경기는 아찔할 정도로 서울의 풍경을 다 갈아치운다. “연구 작업이었다기보다 그런 경험으로 그린 겁니다. 전 오히려 궁금했었어요. 회고조로 옛날에 한때 이랬지라는 거 말고 왜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가가 없을까 한 거죠.” 작가는 그 현기증이 자신만의 경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느끼는 감정임을 확인했다. 최근 작들은 완전한 반전이다. 빽빽한 단색 톤의 그림들이 화려한 색채에 대담한 필획으로 변신했다. 재개발 공사현장 같은 풍경들을 세밀하게 추적해 쌓아 올리기보다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내려친 듯 해체해 놨다. 스스로도 “지우고 뿌리고 흔들고 섞었다.”고 했다. 인기 끌던 그림풍을 확 바꿔 버린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조화된 그림이 정치적으로 올바를까 싶었어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말도 하나 덧붙였다. “회화에서 추상도 정치적일 수 있다고 봐요. 공간의 유토피아라는 점에서요. 그리고 그 부분이 제가 앞으로 계속 도전해 봐야 할 지향점이 아닌가, 남은 작가 생활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상 하면 대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적극 후원한 미술운동으로 간주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만족적인, 심미적인 화풍을 떠올려 보면 된다. 작가는 그 한계를 깨보고 싶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진영과 순수미술 진영 간의 갈등 때문에 추상은 비정치적이고 순수하다는 고정관념이랄까 이분법이랄까, 그런 것이 명확하게 박혀 버렸어요. 그 부분을 한 번 건드려 보고 싶어요.” 전시는 6월 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미술관은 매년 ‘오늘의 작가’를 선정하고 있는데 지난해 조각가 중심에서 미술 전반으로 확장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순수회화 작가로는 처음 정직성을 오늘의 작가로 선정했다. (02)3217-648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항 속 물고기에 투영된 우리 모습

    어항 속 물고기에 투영된 우리 모습

    척 봤을 때 실러캔스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화석어(化石魚)라 불리는 물고기다. 다른 쪽에는 사물(四物) 가운데 하나로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어를 그려 둔 것도 있다. 둘 다 뭔가 변화를 말하는 듯하다. 실러캔스는 어류에서 양서류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의 물고기다. 목어는 몸은 물고기지만, 머리는 용에서 따왔다. 8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2관에서 열리는 유영미 작가의 개인전 ‘자폐아’에 나온 작품들이다. 작가는 어항 속 물고기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이야 손쉽게 말할 수 있다. 어항 속 물고기라고. 그런데 그 물고기는 그 어항이 전부다. 우리도 결국 어항 속 물고기가 아닐까. 용으로 변해 하늘을 날고, 양서류로 진화해 뭍으로 올라가려는 물고기 말이다. 그런데 전시 제목은 묘하게도 자폐아다. 그것도 ‘Autism我’라 표기해 뒀다. 아(兒)가 아니라 아(我)다. 창 과(戈)가 들어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아(我)는 굉장히 까칠한 글자다. 자폐라는 단어의 느낌과 맞아떨어진다. 그래선지 작가가 철망을 일일이 긁어내어 형상화한 물고기 비늘이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날카로워 보인다. 어두컴컴한 세계 속에서 속으로는 변화의 욕망을 안고 있으나 밖으로는 가시를 세운 채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작가는 대학원까지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은은하게 숨어드는 것보다 도드라지는 질감을 선호하다 보니 이런 작업을 했다. 성격이 급한 탓도 있다. 생각이 떠오르면 번개처럼 해치워야 하는데, 동양화는 시동을 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부담스러웠단다. 그럼에도 동양화적인 붓질이 어디 도망갈 리는 없다. 철망을 긁어낼 때 그냥 긁어내면 너무 기계적인 느낌일까봐 리듬감을 주느라 어깨 근육이 꽤나 아프다 한다. 작가는 아프다 하나, 관람객에겐 그 세세한 생채기가 들여다볼 묘미다. (02)730-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못난 수컷들…“원시인보다 힘·미모·성적 능력 못한데… 솔직하지도 못해”

    못난 수컷들…“원시인보다 힘·미모·성적 능력 못한데… 솔직하지도 못해”

    “지금 이 책을 읽는 남자나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남자는 역사상 가장 ‘못난’ 남자다. 아, 토 달지 말라. 당신은 못난 남자다. 이상.” 이렇게 포문을 여는 ‘남성퇴화보고서’(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읽는 내내 배꼽을 잡게 만든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오늘날 남성이 옛 시절 원시인 남자만도 못한데다, 그럼에도 감히 옛 조상보다 진화했다고 잘난 척해대고 있다고 논증하는 호주의 고고인류학자다. 첫 포문에서 짐작하듯 저자의 입담은 보통 아니다. 마지막 결론도 이런 식이다. 호모 에렉투스를 현대 세계에 데려와 마이크를 쥐어준다면 예수의 목소리를 비틀어 “아들들아, 아들들아, 어찌하여 나를 버리느냐.”라고 할 것이라 해뒀다. 그렇다면 각론으로 들어가서, 어떤 분야로 비교해볼까. 저자는 두운도 맞췄다. Brawn(힘), Bravado(허세), Battle(싸움), Balls(운동능력), Bards(말재주), Beauty(미모), Bairns(육아), Babes(성적 능력) 등 8개 분야다. 힘, 허세, 싸움, 운동능력이야 그럴 만도 하다. 영화 ‘300’,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리면 된다. 근육이 너무 현대적이고 인위적으로 부각됐고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들 늘씬 쭉쭉빵빵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옛 남자들이 현대 남자에 비해 육체적 힘에서는 월등할 것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생존이 달렸으니 말이다. 다만, 저자가 풀어놓은 다양한 사례들을 쭉 읽은 뒤 다시 ‘300’과 ‘스파르타쿠스’를 본다면, 잔혹하고 야한 장면들이 흥행을 위해 적당히 과장을 섞어넣은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재주, 미모, 육아, 성적 능력 분야다. “그래 원시인이라면 힘은 강할 테지. 그러나 우리 문명화된 남자들은 그런 거 가지고 으스대는 유치한 짓 따윈 안 한다구.”라면서 거듭 자기위안해왔던 남자들을 처절하게 짓밟아 나간다. 아니, 철따라 유행따라 옷 맞춰 입고 화장품 바꿔가며 피부관리하고, 여자 앞에만 서면 목소리 톤을 바꾸고 부드럽게 배려하는 태도로 환심사려고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결혼 뒤엔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낮에는 짐승들 쫓아다니다가 밤에는 툭하면 강간하듯 여자를 취하던 원시인들만 못하다고? 이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 두가지만 뽑자면, 하나는 미모. 저자는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을 불러낸다. 베컴은 10년간 89가지 헤어스타일을 갈아치웠을 정도로 멋을 부린 남자다. 여성스럽다는 비난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하고, 동성애 잡지 기자로부터 당신이 동성애자의 우상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찬사를 많이 받아서 좋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니제르의 우다베족이 치르는 게레올축제에 비하자면 베컴의 치장은 새발의 피다. 게레올 축제는 3명의 미녀가 최고의 남자를 뽑는 행사다. 이를 위해 우다베족 남자는 화장을 하고, 구슬로 만든 의상과 벨트를 차고, 깃털머리장식을 한다. 남성적 아름다움을 이으려 잘생긴 아들을 얻기 위해 아내가 잘생긴 남성과 동침하는 것도 허락한다. 아프리카 중부 투아레그족은 아예 남자들이 온몸을 베일로 감싸고 다닌다. 여자가 남자의 아름다움에 충격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고대 타히티족 남자는 백옥 같은 피부를 위해 사춘기가 지나면 아예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아닌 남자가. 다른 한 가지는 성적 능력. 저자가 이번에 불러오는 인물은 LA레이커스 센터로 활약하면서 한 경기당 100 득점 등 NBA 기록만 72개를 보유하고 있는 농구선수 월트 체임벌린이다. 체임벌린은 농구실력 못지 않게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실력이 유명했고, 스스로도 2만명의 여자와 즐겼다고 떠벌렸던 사람이다. 늘 그랬듯, 저자는 체임벌린 따윈 상대가 안 된다는 이런저런 사례를 제시하는데, 이건 직접 읽는 게 좋겠다. 저자가 이 같은 얘기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빨리 포기하라는 거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 속(屬) 가운데 ‘몸집이 작은 수컷’에 속한다. 다만, 오랑우탄처럼 솔직하지는 못하다. ‘몸집이 작은 수컷’ 오랑우탄은 적어도 자신의 2등급 지위를 인정하고 활용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덩치 큰 수컷’의 가면만 쓰려고 한다.” 인간, 그것도 선조에 비하자면 힘쓰는 일은 물론, 아이 돌보기와 여성 만족시키기 등에서 선배들에게 한참을 못 미치는 주제에 킹콩 가면 쓰고 으스대며 돌아다니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실체를 홀라당 벗긴 김정운 교수가 떠오른다. 모였다면 정치 얘기에 핏대 올리다가, 밤이면 룸살롱에 가서 폭탄주나 돌려돌려 하다가, 어쩌다 쉬는 날엔 우르르 산에 몰려다니면서 막걸리나 퍼마시다보니, 은퇴해서 명함 떨어지고 나면 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그러고보니 김 교수의 주장도 결국 한시 바삐 덩치 큰 킹콩 수컷의 가면을 벗어던지라는 제안이다. 그게 씁쓸한 일인지, 아니면 바람직한 일인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샌델교수 새달 1일 연세대 강의

    샌델교수 새달 1일 연세대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로 2010년 한국 출판계를 강타했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6월 1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공개 강연에 나선다.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 당시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청중 4500명을 상대로 공개 강연을 진행한 바 있는 샌델은 이번에는 1만명의 청중 앞에 선다. 이번 강의 주제는 ‘시장과 도덕’(Markets & Morals).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샌델은 올해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하버드대에 개설했고 이 내용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란 책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샌델은 자유주의의 한계에 주목하면서 도덕과 종교의 역할에 주목하는 공동체주의를 주장했다.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인기를 모았을 때 보수 언론들은 왜 우파의 주장에 좌파들이 열광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거꾸로 샌델 자신은 우파들이 보는 그런 의미의 공동체주의자가 아니라면서 공동체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해 버렸다. 강연회는 연세대 경영대와 아산정책연구원의 공동 주최로 열리며 출판사인 와이즈베리 블로그(blog.naver.com/wise_berry)에 신청한 뒤 초대권을 받으면 참석할 수 있다. 무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바다 생물들의 기상천외한 사냥법

    바다 생물들의 기상천외한 사냥법

    KBS 2TV 환경스페셜은 2일 밤 10시 ‘바다의 사냥꾼’을 방영한다. 바다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한다. 이곳에 사는 생물들은 어떤 전략으로 살아나갈까.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갑오징어는 최면술의 대가다. 갑오징어는 반사나 굴절을 통해 빛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홍채세포, 백색·은색 소포가 있다. 갑오징어는 이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을 내는 방식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현란한 조명과도 같은 발광에 정신이 몽롱해진 상대를 잽싸게 촉수로 낚아챈다. 씬벵이는 다른 물고기를 낚시하는 물고기다. 등지느러미가 발달, 변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촉수가 이마에 달려 있다. 이 촉수를 살살 흔들면서 다른 물고기들을 유인하고, 혹해서 다가오는 물고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매복과 수색의 명수도 있다. 넙치는 평평한 몸을 모래 바닥에 눕혀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지나면 잽싸게 덮친다. 반대로 성게는 모래 사이에 숨는다. 천적을 피하기 위함이다. 번식기에도 모래 속에 정자를 뿌려 알의 안전을 지킨다. 그렇다고 아예 못 찾을 리는 없다. 바로 헬맷고동. 모래 사이에 꼭꼭 숨어 있는 성게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보통 아니다. 우주뿐 아니라 바다에도 블랙홀이 있다. 정식 이름은 블루홀. 심해의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미로와도 같아서 수많은 다이버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공간이다. 대왕 말미잘은 살아 있는 블루홀이라 불린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주변을 통째로 빨아당긴다. 작전을 짜는 지략가도 있다. 놀래기는 자그마한 덩치의 물고기다. 쉽게 남에게 잡아먹히기 좋다. 그런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6m길이에 1.5t 무게를 자랑하는 만타가오리다. 놀래기는 이 위에서 살면서 기생충을 제거해주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대신, 생존을 보장받는다. 바닷속에서도 가끔 혁명은 일어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포식자에게 겁없이 달려드는 게 부모 마음이다. 알을 보호하고 있던 쥐노래미는 성게가 침입하자마자 마구 물어뜯는다. 가시가 입에 박혀 너덜해질 정도로 찢어져도 어쩔 수 없다. 이 필사적인 공격에 성게는 어쩔 수 없이 물러선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용산참사·쌍용차 노조원 특별사면하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1일 용산참사와 쌍용차노조 관계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청하는 공문을 법무부장관에게 보냈다. 28일 부처님오신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자승 스님은 공문에서 “현 정부 마지막 부처님오신날 특별사면은 2000만 불자 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사회갈등으로 구속된 이들에게 부처님의 관용과 화해의 자비심을 깨닫게 하고, 참된 행복을 되찾아주면 국가와 사회의 통합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충연 위원장 등 용산참사 관련 구속자와 쌍용자동차 한상균 노조 지부장은 사회갈등 해소의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 특별사면에 반드시 포함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자승 스님은 지난 2월 용산참사 구속자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지난 4월 5일 쌍용차 노조 관계자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특별사면 노력과 희생노동자 천도재 개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유감/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시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유감/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과 영어 말하기에 관한 사교육 열풍이 심상치 않다. 외고 입시 변화로 한풀 꺾인 ‘시장 수요’는 NEAT를 통해 판세가 역전되었고 많은 학부모들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선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강조하지만, 수년 전 토플 대란이 일어났을 때 2년 만에 토플 수준의 국제적인 시험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교과부를 쉽사리 믿을 순 없다. 단순히 시험에서 끝날 일이 아니란 걸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지필 시험에서 50점 맞는 것과 영어로 한마디도 못하고 바보처럼 앉아 있는 것과는 걱정의 차원이 다르다. 말하기 교육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니 부모는 학원교육에 의지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 NEAT의 의사결정력을 높인다면 이미 시작된 사교육 대란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교육기업이 욕심을 줄였다면 국가가 시험판에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품화시킬 수 있는 모든 공학적 매체를 동원하여 언어와 교육의 성취단위를 잘게 쪼개고, 측정하고, 관리하고, 좀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칠 때 효율성은 높아지고 수익은 더욱 확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니 알아서 몸집을 줄이고, 시간당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 가치, 언어적 생태성, 협력공동체, 혹은 분리된 지식보다는 통합적 사고를 고민하겠다는 사교육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NEAT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 교과서, 일제시험, 교사 선발 등에 우린 매우 잘 길들여져 있지만 과연 5년 뒤, 10년 뒤도 영어를 배우고 시험 치르는 일을 국가가 주도하는 틀 안에서 반복하고 있을까? 만약 국가가 만든 시험이 시원치 않으면 어찌할 건가? 애국주의에 호소할 것인가? 만약 그것이 통한다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된 세계화, 자유무역, 다문화, 글로벌 기업은 또 뭔가? 무엇보다도 국가가 개입해서 새로운 일을 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지금까지 보상받아 온 일과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니 한동안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대안은 뭔가. 최선의 실천은 권한위임형, 민주주의 기반의 교육문화운동밖에 없다. 누구든지 서로 맞서서 이긴 쪽으로 권한을 이양만 하면 새로운 지배질서만 만들어질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든 시간을 두고 서로 배우고 협력하면서 권한의 위임망을 확장하면서 국가와 시장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하고 있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해서야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배울 수 없다. 엄한 영어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에선 즉흥적이고 의미협상적인 구술언어를 배울 수 없듯이, 큰 시험 몇 개를 전 국민이 끙끙대며 준비하는 문화에서는 언어와 교육을 통한 다양성을 익힐 수 없다. 민주적 시험문화를 감당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꼭 필요하다. 우선 큰 시험의 힘을 더 빼야 한다. 수능 시험 때 기독인들이 교회에 모여 온종일 기도하게끔 하면 안 된다. 얼마나 초조한 시험이면 시험 끝날 때까지 기도하는가? 한 번의 시험에 힘을 실어주고 그것만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시험 전통에 계속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또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목적에 맞게 꼭 필요한 작은 시험을 자치적으로 만들어 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지만, 민주적 실천은 효율성과 비용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이 일에 좀 더 헌신할 수 있는 정직한 전문가, 시민단체의 참여가 절실하다. 새로운 시험문화를 만들자고 하면 행정적으로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기득권은 싫을 것이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사회적 가치로서의 교육, 언어의 공공성, 학습을 통한 공생의 사회를 꿈꾸자고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시장과 국가의 단순한 구호에 편승해서는 사교육 대란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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