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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플러스] “태백산맥은 허위” 양동안 교수 주장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정치학) 교수가 최근 발간된 계간 ‘한국사시민강좌’ 41호에서 소설가 조정래의 대표작 ‘태백산맥’을 “허위의 기록”이라고 혹평하고 나섰다. 양 교수는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관한 ‘태백산맥’의 서술내용은 실제상황과 일치하지 않거나 정반대되는 거짓말들”이라면서 “북한공산군의 침공을 받아 사멸해가는 대한민국을 구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도 마치 악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고 주장했다.
  • ‘하늘 정원’ 강원도 정선 함백산 만항재

    ‘하늘 정원’ 강원도 정선 함백산 만항재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1573m)은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태백산(1567m)보다 더 높은 태백의 진산이지요. 함백산 주변 지역은 높이와 관련된 몇가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함백산이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정상 바로 밑까지 도로가 뚫려 있지요. 가장 높은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414번 도로가 만항재(1330m)에서 최고 높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월과 정선, 그리고 태백이 모두 이 지역에서 만나,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삼거리를 이룹니다. 국도 중에서는 38번 국도가 두문동재에서 해발 1268m로 최고 높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원이라는 기록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름보다 높은 이 지역에 지금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야생화는 피고 지지만, 산마루에 피는 꽃들은 들녘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영산의 기운을 받아 신비롭고, 별처럼 곱습니다. 들꽃들을 찾아 발걸음은 어느새 강원도 정선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정선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만항재~함백산 ‘들꽃들의 향연´ 영월에서 정선까지 이어진 31·38번 국도는 강원도 산길의 정수라 할 만하다. 물길, 철길과 함께 구절양장처럼 돌아간다. 머지않아 이 길도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연하에서 신동을 거쳐 가사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국도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부러진 길을 다림질하듯 쭈욱 펴놓는 현대판 ‘축지법’ 덕분에 사람들은 ‘빠름의 미학’을 만끽하게 될 게다. 하지만 적요한 산골마을의 주민들은 그나마 사람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테고, 도시인들은 ‘아리랑 길’에서 얻는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힘에 겨운 자동차가 거친 엔진소리를 낼 때쯤 만항재에 도착했다. 때는 한낮. 햇살은 따갑지만 고원지대 특유의 상큼하고 청량한 공기가 폐부를 씻어냈다. 건물이라고는 달랑 작은 매점 하나가 전부. 이곳에 차를 대고 몇 발짝만 걸으면 들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쪽 저쪽 산비탈마다 둥근 이질풀을 비롯해 산솜방망이, 노루오줌, 어수리, 도라지 모시대, 말나리, 오이풀꽃 등이 만개해 있다.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다. 횡재를 만난 벌과 나비는 이꽃 저꽃 넘나들며 만찬을 즐기고 있다.‘게릴라성 폭우’를 몰고다니는 구름들이 머리 위를 지나는 가운데, 간간이 비추는 햇살에 보석같은 몸을 드러낸 꽃들이 천상의 정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동자꽃, 말나리처럼 크고 화려한 꽃술을 가진 꽃부터 참나물, 물양지꽃 등 작고 앙증맞은 꽃술을 가진 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함초롬히 피어난 마타리 한송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망울을 터뜨린 모습이 여간 신기하지 않다. 함백(咸白)이 ‘크게 밝다’는 뜻이라더니, 이런 들꽃들이 있어 더욱 밝고 환하게 빛나는 것일 게다. 꽃이라고 모두 화려하지는 않을 터. 우리네 들꽃이 그렇다. 맑은 물에 잉크 한두방울 떨어뜨려 놓은 듯 은은하고 소박하다. 애써 분단장하지 않아도 은연 중 청초한 아름다움이 스며나오는 시골처녀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의 자연과 야생화를 알리는 작업을 수년째 계속해 오고 있는 전제근(44)씨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벌과 나비 등 자연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해안기후와 고산기후가 병존해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분포하고, 남방계와 북방계 꽃들의 경계가 이곳에서 그어지죠. 여름꽃들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투구꽃, 물매화, 수리취 등이 다투어 피어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곳 야생화의 아리따운 자태는 전씨의 홈페이지(www.arari.or.kr)나 함백산 야생화축제위원회 홈페이지(gogohan.or.kr)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길에도 들꽃들은 활짝 피어있다. 정암사 방향으로 내려가다 찻길 옆으로 나있는 등산로가 산행의 들머리다. 경사가 완만해 별 어려움이 없는데다, 시야가 틔어 있어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야생화 군락을 음미하며 1㎞정도 오르면 곧 정상이다. #두문동재∼금대봉 ‘야생화 군락지´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인 두문동재(싸리재)에서 금대봉까지 구간에서는 여느 시골마을 뒷산을 보듯, 소박함이 느껴진다. 백두대간 줄기라고는 하나, 기암괴석과 폭포수 등이 절경을 이루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명산에 비길 수 없는 자랑거리를 품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백종의 들꽃들이 아름다움을 뿜어 내는 것.4월초 복수초를 시작으로 5∼6월에는 홀아비바람꽃,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붓꽃, 현호색, 동자꽃, 털쥐손이, 범꼬리 등이 이어진다. 이맘때엔 희귀식물인 기린초, 노랑갈퀴와 일월비비추 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가을엔 물봉선, 질경이, 곤드레나물 등이 무시로 피어난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의 야생화 군락지로 첫손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구름이 발 아래로 지나갈 정도로 높은 국도 38호선 옛 길, 두문동재에서 시작되는 들꽃 탐방로는 불바래기능선, 금대봉, 고목나무샘, 분주령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진다. 야생화와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지경. 들꽃 감상만을 위해서라면 금대봉 아래 1,2헬기장까지만 다녀오는 것이 좋다. 이 구간에 야생화 군락지가 밀집해 있는데다, 금대봉 인근에 생태계 보전지역 등 출입제한 지역으로 묶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백두대간을 종주하고자 하는 자’에 한해, 두문동재 감시초소에서 금대봉 바로 아래 분주령·검룡소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금대봉 정상에서 2,3 이정표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제한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카메라 등 촬영장비의 반입도 통제된다. 감시초소 관계자는 “등산객들 스스로가 산나물과 야생화 등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단지 보고 감상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jstour.jeongseon.go.kr,(033)560-2361∼3, 고한읍사무소 560-2615.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국도→석항→31번국도→화방재(어평재)→414번 지방도→만항재 #맛집 38번 국도 예미 입구의 ‘정원광장’은 향긋한 곤드레나물밥이 일품인 음식점.5000원.(033)378-5100.31번 국도 영월 상동읍의 ‘승량이’ 버스정류장 앞 맷돌촌두부식당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두부가 고소하다.(033)378-5845. 정선군 사북읍 사북농협 뒤 ‘아리랑회관’은 고원돼지의 쫄깃한 육질로 인기를 끌고 있다.(033)592-2600.
  • “정상회담서 북한강 문제 해결을”

    북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20일 금강산댐이 있는 북한강 상류에서 평화의 댐으로 초당 900t의 흙탕물이 유입되고 있어 지난해에 이어 ‘흙탕물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이러한 가운데 정갑철 강원도 화천군수가 최근 “남북 공동으로 수자원을 관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이메일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정갑철 화천 군수는 최근 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강산댐 건설 이전에는 북한강 상류에 초당 13∼15t의 물이 유입됐으나 금강산댐 건설로 3t이하로 급감했으며, 이로 인해 이 지역의 연평균 총 강수량 18억t가운데 17억 7000만t의 물이 사라져버렸다.”고 설명했다. 정 군수는 이어 “이는 연간 한강으로 유입되는 150억t중 12%에 해당되는 것으로,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고 태백산맥 밑으로 물을 동해안의 안변수력발전소로 보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그는 특히 “북한강의 물 문제는 안보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권 문제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금강산댐-DMZ-평화의 댐’에 이르는 북한강 24㎞수역은 물이 흐르지 않아 파로호는 부패한 호수가 되어가고 있으며,(북한강이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이기 때문에)앞으로 수도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남북 공동으로 수자원을 관리하는 방안을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북한에서는 금강산댐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물을 원래대로 남쪽으로 흘러보내 죽어가는 생태계를 다시 살려야 하며, 북한이 전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이 민간신앙과 신흥종교의 성지라지만 대전 쪽에서 동학사를 거치거나, 충남 공주에서 갑사로 오르는 일반적인 방문코스에서 이 산이 지닌 신령스러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주에서 갑사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계룡산 중턱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굿당이나 암자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기독교와 천주교의 기도원도 보이는데, 계룡산이 발산하는 영적인 기운이 무속이나 불교, 신흥종교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다 계룡산 기슭으로 난 왼쪽길로 접어들면 곧 신원사가 멀리 보입니다. 신원사는 눈 푸른 납자들이 수행하는 국제선원이 있는 절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신원사를 기억해야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이곳에 중악단(中嶽壇)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845m의 천황봉을 등지고 있는 중악단은 조선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며 끊어졌던 계룡산 산신제는 1998년부터 민간차원에서 되살려 해마다 모셔지고 있지요. 조선은 묘향산을 상악(上嶽), 계룡산을 중악(中嶽), 지리산을 하악(下嶽)으로 삼아 각각 상악단과 중악단, 하악단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묘향산과 지리산의 제사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중악단이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1959년 발간된 ‘공주군지’는 1879년(고종 16년) 계룡산사(鷄龍山祠)라는 이름을 중악단으로 바꾸며 건물도 중수한 것으로 전하지요. 일본인 인류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1931년 ‘조선의 풍수’에서 대한제국 수립 이후 고종이 1898년(광무 2년) 중악단을 위엄있게 짓고,神院寺(신원사)였던 절 이름도 제국의 기원을 연다는 뜻에서 新元寺(신원사)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신원사의 역사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내에서는 백제시대 와당(기와)이 발견되었다고 하지요.神院(신원)이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뜻하는데,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제사터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백제시대 계룡산 제사터의 위상은 확실하지 않지만, 통일신라는 전국의 5대 명산을 5악(五嶽)으로 지정하고 국가적 제사터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합니다. 토함산이 동악, 지리산이 남악, 계룡산이 서악, 태백산이 북악, 팔공산이 중악이었지요.5악신앙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태조는 계룡산신에게 호국백(護國伯)이라는 작호(爵號)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태조가 계룡산의 산세를 높이 평가하여 새로운 왕조의 도읍으로 삼고자 한동안 공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17세기 들어서면서는 계룡산 신도안이 이씨 왕조의 400년 수도 한양에 이어 새로운 왕조가 800년 동안 도읍할 땅이라는 ‘정감록’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말에 이르러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계룡산이라는 존재는 왕실에 적지않은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종이 중악단의 격을 올리고 건물도 새로 지은 것도 새 왕조의 도읍으로 공공연히 일컬어지는 계룡산의 땅기운을 억누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지요.‘정감록’의 예언이나 왕실의 중악단 중건이 모두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고도의 정치행위였던 셈입니다. dcsuh@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제주도 상록수림 ‘솔잎난’의 고향은 아열대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제주도 상록수림 ‘솔잎난’의 고향은 아열대

    한반도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바다, 고산 등 특별한 환경조건을 갖춘 곳이 많아서 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일컬어진다. 온대지방 식물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제주도와 남해안에는 아열대식물들이 분포하고 북부지방과 고산에는 한대식물들이 살고 있다. 아열대와 한대를 이어주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식물분포에도 반영되는 셈인데, 아열대식물과 한대식물들이 기후변화에 따라 영역을 넓히거나 좁혀가며 생육하고 있다. 아열대 등 남쪽에 고향을 둔 남방계 식물과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식물이 한반도에서 어떤 분포양상을 보이는지, 또 그런 분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의 분포도를 그려보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 어떤 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현장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식물학자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연구가들의 동참도 필요하다.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함께 사는 장소들은 곧잘 관심거리가 된다. 높은 산의 정상 부근은 북방계 식물이 남으로 내려와 살 수 있는 곳이고, 해양성 기후를 보이는 해안지역과 섬은 남방계 식물이 북상하기 좋은 곳이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저위도 지방에 자리잡은 높은 산은, 정상에는 북방계 식물이 살고 산자락에는 남방계 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지리산에는 닭의난초, 대반하 등 남방계 식물과 함께 기생꽃, 만병초, 땃두릅나무, 두루미꽃 같은 북방계 식물이 살고 있다. 한라산 정상부의 손바닥난초, 암매, 달구지풀, 꽃장포, 들쭉나무 등은 북방계 식물이고, 산자락의 후피향나무, 무주나무, 굴거리나무 등은 남방계 식물이다. 설악산의 경우에도 때죽나무, 설설고사리 같은 남방계 식물들이 동쪽 산자락에 자라는가 하면, 높은 능선에는 홍월귤, 노랑만병초,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바람꽃 등의 북방계 식물이 자라고 있다. 울릉도도 남북의 식물들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인데, 동백나무, 자금우, 섬사철란, 털머위 등의 남방계 식물과 함께 콩팥노루발, 큰두루미꽃, 큰연령초, 두메오리나무 등 매우 많은 북방계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종(種) 차원에서도 분포상 흥미로운 것이 많다. 북한에도 없는 북방계 식물이 북한을 훌쩍 뛰어넘어 남한에만 분포하는 것도 있는데, 한라산의 암매와 태백의 대성쓴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빙하기 때 남하했다가 기온이 올라가자 고산 같은 특수한 환경에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빙하기 잔존식물이자 북방계 식물들이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한라산 같은 높은 산정에 분포하고 있다. 노랑만병초, 홍월귤, 여우꼬리풀, 벌깨풀, 나도여로, 넓은잎제비꽃, 바이칼꿩의다리, 산마늘, 한계령풀 등이 그런 식물에 속한다. 남방계 식물 가운데도 북쪽으로 분포범위를 넓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굴거리나무가 내장산까지 올라오고, 동백나무가 대청도까지 올라와 자란다. 보춘화는 동해시 두타산까지 올라오며, 변산반도에는 꽝꽝나무 군락지가 있다. 아열대식물인 선인장, 풍란, 나도풍란은 남해안 섬 지역까지 올라와 자라고 있다.(제주도 섭섬의 파초일엽, 제주도 상록수림의 솔잎난, 제주도 토끼섬의 문주란도 아열대가 고향이다. 그밖에도 많은 상록수가 아열대에서 우리나라 남부지방까지 분포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식생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참나무숲, 소나무숲처럼 식물들이 모여 있는 상태가 식생이라면 이의 변화는 아주 더디게 일어난다. 온난화의 영향을 살피는 일에는 식생변화보다는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의 분포지역 확대 또는 축소라는 잣대가 더 유용하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 신문 연재소설로 본 시대상 신문 연재소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열망과 한숨이 배어 있다. 이것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해 나가는 신문이 그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지면에 이끌어 들이고자 만들어 내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연재소설을 써나가는 주체란 단순히 작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독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대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가 숨쉬던 구한말에서 애달픈 식민지 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긴 독재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목록의 신문 연재소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아파했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신문 연재소설은 우리에게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당대의 문화키워드를 살펴본다. 구한말의 문화적 키워드는 단연 나라 지키기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을 표방한 신문 ‘대한매일신보’에는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11.17∼12.3),‘거부오해’(1906.2.20∼3.7)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이 과도기적 ‘소설’들에는 어떻게 기울어가는 나라를 개혁할 것인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권을 침탈당한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여전히 유학과 교육과 계몽에서 찾았다. 문단으로 보면 이때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시대였다. 이광수의 ‘무정’(‘매일신보’,1917.1.1∼6.14)은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기생 영채의 사랑의 엇갈림을 그리면서 그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로운 학문을 위한 유학에서 찾았다. 여기서 이광수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했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좌절이 가져다 준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고독한 자아의 구원을 열망하는 흐름과 절망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희망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나뉘었다. 어머니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혜숙의 가련한 운명을 그린 나도향의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는 전자의 흐름을,3·1운동의 좌절을 배경으로 순영과 봉구의 사랑과 죽음, 기약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은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1930년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식민지 근대의 성숙 과정에서 배태된 대중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다. 한 예로 염상섭의 ‘삼대’(‘조선일보’,1931.1.1∼9.17)는 타락한 윗세대와 사회주의 운동이 풍미한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1940년 8월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신문 연재소설의 현장은 다시 ‘매일신보’로 넘겨졌다. 이태준, 채만식, 박태원, 이효석 같은 대작가들은 가혹한 천황제 파시즘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의 강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들의 소설들에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이효석의 ‘창공’(‘매일신보’,1940.1.25∼7.28)은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 하얼빈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나아자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의 문화를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천황제 파시즘의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잠시 침체한 양상을 보였던 신문 연재소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논쟁에까지 휩쓸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서울신문’,1954.1.1∼8.9)은 대학의 국문학 교수 장태연과 그 부인 오선영의 뒤얽힌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문화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 체제, 산업화, 타락과 부패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손창섭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이성연구’(‘서울신문’,1965.12.1∼1966.12.30)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동아일보’,1966.2.8∼10.31) 같은 작품들은 대도시화한 서울을 배경으로 간척사업, 공공사업 등과 같은 당대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물신주의가 팽배한 1960년대 사회의 기묘한 위선, 타락, 무질서, 음모를 그려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중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군사독재와 산업화 속에서 짓눌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낳았던바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것은 대하소설이라는 문제적인 양식과 접맥된다.‘서울신문’에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약 4년에 가깝게 연재된 김주영의 ‘객주’는 보부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역사적 상황과 생생한 민중생활 양상을 풍부하게 재현한 문제작이다.‘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씩이나 연재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단 몇 줄의 역사기록밖에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신문 연재소설의 주된 테마를 이룬 것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었다.1983년부터 잡지에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태백산맥’에 이어 1998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 연속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여러 곳에 나뉘어 연재되면서 1994년에 완간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거작이다. 200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원리로 정착해 나가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물질적 독점력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다. 고도로 국가화·독점화한 자본주의가 과거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하여 새로운 권력적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바로 2000년대다. 경제적 갈등, 반목과 생존 경쟁, 물신주의가 이처럼 일상을 확고히 지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낳은 정신적 타락 및 비속화·비소화한 시민들의 삶은 새롭고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헤맨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5일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연재됐던 최인호의 ‘유림’은 그러한 숭고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소설이라고 하겠다.‘상도’에서 ‘유림’에 이르는 최인호의 집필과정은 시대의 추이를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소설은 한국사회 및 대중의 관심사와 그 문화적 추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촉진한 시대의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연재소설 소개 ▶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신소설로 신문에 실린 최초의 소설 형태의 글이다. 개화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복술가 소경과 망건장수 앉은뱅이의 대화가 전개되는 문답체로 자주적 국권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 무정 1917년 1월부터 6월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 사상, 자유연애 찬양, 남녀 평등 사상 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대중계몽 역할을 꾀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현대문학 사상 가장 많이 읽혀지고 연구되어온 이광수의 대표작이다. ▶ 자유부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한국 신문 연재 소설 사상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을 비롯, 갖가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비석의 화제작.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일탈’를 통해 6·25전쟁 직후 만연한 퇴폐적인 사회 풍조와 전쟁 미망인들의 취업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 객주 1979년 6월6일부터 1983년 2월29일까지 서울신문에 1465회 연재돼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 김주영의 역작.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후기 보부상과 노비, 관료, 농민들의 갈등과 유착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변동상을 그려냈다.19세기 말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평민층의 입말을 잘 살려내 사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림 1977년 서울신문에 소설 ‘파란 꽃’을 첫 연재한 최인호가 2004년 1월5일부터 2006년 12월30일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유교가 흘러온 2500년의 역사를 조망한 작품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광조와 이상국가를 꿈꿨던 공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학자들의 삶을 엮었다.‘유림’은 유교와 유학자들을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론티어 5인이 말하는 미래 문화키워드 서울신문은 창간 103주년을 맞아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끌 화두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학·영화·방송·음악·미술 방면의 전문가 5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명징한 키워드로 향후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예술가 사회’‘글로벌’‘탈경계’‘다양화’‘탈장르’ 등으로 요약되는 이 문화 핵심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장르파괴 가속화” 최완규 ‘주몽’ 드라마 작가 “앞으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 감독을 맡거나 영화제작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다할 성공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작인력의 양분화가 점차 미미해지고 두 장르간 벽을 허무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43) 작가는 미래 방송계의 키워드를 이처럼 ‘탈경계’란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종합병원’‘허준’‘올인’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인상깊은 작품들을 남겨온 그는 현재 그 자신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도 새삼스럽게 미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우수한 영화 제작인력과 기획력이 드라마로 대거 투입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이같은 탈경계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아직까지 그리 여의치 않다. 최 작가는 “현재 방송사·외주제작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십중팔구는 제작비를 맞추지 못해 적자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왔지만, 그 수혜가 몇몇 연기자와 작가들에게 집중되는 등 문제점도 함께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는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작가 한명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사전제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물이 일반화돼야 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위한 집단창작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권고도 잊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해외 마케팅에 신경쓰기 앞서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 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아마 벽 무너져” 김영하 소설가 “미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입니다.‘예술가 사회’라 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영하(39)는 20세기 후반, 자본가가 된 우리 모두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예술가가 될 거라 장담했다. “요즘 삼청동에 가보면 사진기자들이 쓸 만한 장비를 들고 수백명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예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그는 프로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아마추어가 ‘후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경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문학이야말로 아마추어가 하는 겁니다. 뭐든 쓸 수 있죠. 랭보와 카뮈도 아마추어였어요. 문학사는 아마추어가 쓴 엄청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개인’도 미래의 문화 키워드로 꼽았다. 사람들간에 공통적인 경험이 줄어들고 다른 처지에서 세상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60년대 문학과 같은 트렌드는 사라지고 작가 개인의 문체 특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문학도 이제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김영하 다르고, 박민규 다르죠. 공통분모를 찾는 건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서구 비평가들이 하듯 한 작가에 천착하게 되고 작가는 우주의 별처럼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믿으면서도 최근 출판사와 일부 언론에서 일고 있는 ‘장사 논리’는 경계했다.“문학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장편소설을 내라는 건 박정희 시대의 논리죠. 요즘 일부 언론에서 만든 문학상이나 출판사들은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작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는 수요를 창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독자들이 원하는 거죠. 잘 된 장편은 독자를 일주일간 기쁘게 해줍니다.” 김영하는 ‘예술가 사회’에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다봤다.“미래에 나쁜 일만 생길 거라 보는 문화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습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어제작으로 월드마켓 공략” 이승재 LJ필름 대표 “향후 한국영화 산업을 지배할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이승재(43) LJ필름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 산업은 현재 한계점에 다다랐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유통 등 성장을 담보하는 제반 여건이 다 갖춰진 한국영화 내수시장은 더이상 ‘파이’를 늘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출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제작해 알리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해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괴물’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자국 언어로 제작되면 ‘월드 마켓’에서 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을 대변하듯 올들어 충무로에서는 해외 합작이 심심찮게 추진되고 있다. 나우필름이 미국 영화사 VOX3과 손잡고 만든 첫번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이 얼마 전 한국 관객과 만났고, LJ필름 또한 ‘프린세스 줄리아’를 한·미합작으로 제작한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와호장룡’ 등을 제작한 미국 유니버셜 포커스와 손잡은 이 영화는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그리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크로스컬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대가보다 다수 결집 창작 증가” 김현철 작곡가 겸 가수 가수 김현철(39)은 미래 대중음악의 키워드로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와 이전의 대중음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00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쯤 전입니다. 대중에게 대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란 형태의 ‘디바이스(도구)’가 등장한 덕분이죠. 현재도 CD를 거쳐 MP3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고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급격한 음악시장의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소수의 대가가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방송과 몇몇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UCC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대중이 음악을 접하는 도구 또한 공중파 방송 일변도에서 모바일, 케이블 음악방송, 인터넷 음악전문 사이트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음악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도구의 확대는 음악가들에게 더욱 다양한 음악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융합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제 모바일에 적합한 음원은 물론, 데커레이션 음악(장난감에 사용되는 음악)까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이 양질의 음악 생산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공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또한 음악가와 다양한 ‘디바이스’를 연결해주는 기획·프로모션 부문에 현재보다 한층 진보된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표현도구 다양화” 정연두 최연소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고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질에 비해 저평가돼 왔죠.” 회화, 조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현대미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작가 정연두(38) 역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탈장르’로 규정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작업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95년부터 매년 뽑는 ‘올해의 작가’에 30대로는 처음 선정된 정연두는 현대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잘 보여주고 대처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형에 의해 지배되는 유형’처럼 현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표현매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지만 요즘 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은 사진과 비디오다. 정연두는 앞으로 그처럼 작품활동만 하는 한국의 전업작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업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작가를 공부하고, 응원하는 팬이자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의 겨우 1%가 컬렉터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전업작가 시스템도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작업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컬렉터층도 극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개미군단으로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CEO칼럼] 기업문화를 싹틔운 백두대간 종주/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CEO칼럼] 기업문화를 싹틔운 백두대간 종주/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회사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다. 새들이 둥지에 알을 낳고 새 생명을 키우듯 회사는 기업문화 속에서 인재를 키우고 기업정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9년 전 취임 당시부터 긍정적, 적극적, 도전적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도를 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 혁신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기업문화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의문부호를 달던 습관이 사라지고 “해보자, 하면 되겠지.”라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그 감동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서였다. 백두대간 종주를 처음 계획할 때만 해도 ‘전 임직원이 전 구간을 종주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적 반응이 많았다. 몇 구간만 간단히 다녀오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적당히 홍보용 ‘이벤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들이 삼아 다녀오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신과 신체를 기초부터 다시 다지기 위한 회사의 야심적 교육훈련 프로젝트였다. 어차피 고생을 각오하고 세운 계획이었다. 2004년 지리산 종주부터 시작했다. 비교적 평탄한 31㎞ 구간이었지만 장거리 산행이 처음이라 직원들이 많이 긴장했다. 평소 주말마다 가까운 산에서 연습한 결과 단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성공했고, 그 감동은 남달랐다. 이듬해 덕유산은 훨씬 힘들었다.39㎞ 코스가 돌과 바위로 뒤섞여 끝없이 오르내렸고, 인적도 드물어 한 발 더 자연의 품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지난해에는 소백산 49㎞를 종주하면서 난생 처음 탈진을 경험한 직원들도 있었다. 야영지에서 폭우를 맞이했는데 젊은 남자 직원들이 어둠 속에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장대 같은 빗줄기에 몸을 맡기고 자연샤워를 하는 모습은 부럽고도 재미있었다. 갈수록 산행 거리도 늘어 처음엔 북한산에서도 헉헉대던 직원들이 이제 아마추어 산악인 수준까지 올라왔다. 무엇보다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한번 종주에 나서면 2박3일간 30시간 이상 걷는다. 밥은 직접 해먹고 잠은 텐트나 대피소에서 웅크리고 잔다.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같은 조건에서 같이 움직인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중독된 것처럼 매년 종주에 나서 산 기운에 흠뻑 젖는다. 그렇게 산에서 받은 정기는 몇 달간 지속된다. 자연 속에서 체력적 한계에 닥치면 사람의 심성이 드러난다. 무릎이 아파 절뚝이면서도 끝까지 완주하고, 동료에게 자기 물을 나눠주고, 어떤 직원은 지친 몸을 끌고 야영지에 먼저 뛰어가 동료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어쩔 수 없이 낙오한 직원은 다음 코스로 이동해 숙식을 준비하여 동료를 맞이한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본성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혹자는 가볍고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인 신세대 문화를 걱정하지만 나는 반대로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젊은 직원들의 야성을 확인했고, 그것을 조직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동료를 위한 희생정신, 겁없는 도전정신, 승부근성…. 그러한 것이 조직에서 절제된 야성으로 자리잡을 때 조직은 젊어지고 미래의 도전을 이겨내는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을 거쳐 2010년에 백두산 천지에 오를 때까지, 백두대간 종주는 계속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지루하고 힘든 산길을 넘으며 삶과 일의 의미를 되새기고, 정신적, 육체적 한계와 무아지경을 느끼면서 내면의 자아와 만나는 것이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의 성과로 이룩한 최소한의 민주화가 지체되고 악화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일상 생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범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이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기획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치면서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6월 항쟁의 평가와 우리 사회가 6월 항쟁을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20일 서울신문 4층 편집국에서 열린 좌담회는 지역 ‘풀뿌리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하승수(39·변호사) 제주대 법학부 교수의 사회로 정해구(53)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인권운동가인 오창익(39)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노동문제 전문가인 은수미(44·노동사회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하승수 교수 많은 언론 매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6월 항쟁과 관련해 다양한 평가를 했다. 물론 올해가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해구 교수 절차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있고 인권보장이 안 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참여라는 틀로 보면 형식적 참여는 늘었지만 실질적 참여는 미흡하다.1997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평등은 지체됐고 악화되는 측면도 있다. -은수미 연구원 많게는 800만명, 적게는 24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들이 느끼는 6월 항쟁 20년이 바로 민주화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6월 항쟁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구(舊)질서에 정당성을 쥐어 줬다.6월 항쟁 이전에 권위를 가졌던 사람들은 형식적인 정당성에 입각해서 지금도 여전히 그런 권위를 누린다. ●‘박제가 돼 버린’ 6월 항쟁 기념 -오창익 사무국장 각종 기념행사들이 별 감흥을 못준다. 올해부터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6월 항쟁도 이제 ‘박제(剝製)’가 돼버린다는 느낌도 받는다.‘절차적 민주화는 많이 이뤘지만 실질적 민주화는 미흡했다.’는 평가에 반대한다.6월 항쟁을 계기로 우리는 야만에서 벗어났다. 그걸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 연속으로 집회 금지 통보를 한 것에서 보듯 국민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집회시위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이제 고문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20년 전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졌던 남영동 보안분실을 빼고는 지금도 보안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 교수 그 부분은 나도 고민이 있다. 자유권(시민적·정치적 권리)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것도 아니고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은 더 열악해졌다. 최근 사회경제적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체시키는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보나. -정 교수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연결돼야 하는데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이 실생활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내용없는 뼈대)화’되고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일정한 회의를 가진다.‘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은 굉장히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 20년이라는 지금 시점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문제다. -오 사무국장 ‘자유는 진전, 평등은 부족’이라는 이분법으로 평가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미 구질서에 편입됐고 집회나 시위를 할 필요가 없어진 ‘전직 민주화 운동가’들은 후일담 소설을 쓰듯이 굉장히 편하게 말한다.6월 항쟁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남은 과제를 제대로 보려면 ‘빵과 장미’를 분리해서 보면 안 된다. -은 연구원 80년대와 똑같은 풍경을 지금도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어떤 장치도 없다. 곧바로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식으로 ‘불법저항’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더 심한 경우 분신 자살을 한다. 더 슬픈 건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별 관심을 안 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다같이 고생했으니까 공감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먹고 사는 수준이 양극화되듯 자유나 권리도 양극화되고 있다. ●‘기억과 계승’인가 ‘단절’인가 -정 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6월 항쟁 20년 기업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6월 항쟁을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기억시키고 그걸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기억과 기념을 민주시민교육과 연결시켜야 한다. 현재 문제도 중요하지만 과거 기억과 단절되면 안 된다.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기억하고 의미를 새기고 문화나 교육으로 남겨야 한다. -오 사무국장 지금 필요한 건 공공성과 연대성을 회복하는 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양극화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소위 ‘전직 민주세력’이 주도한다는 게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들이 대중에게 민주주의와 운동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 민주화운동세력이었지만 지금은 요직을 차지하거나 운동 기득권층이 된 사람들과 지금 민주화운동세력을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기념과 계승이 아니라 단절이 더 급하다. -하 교수 경험을 공유하고 의미도 되새겨야 하지만 현재 부딪치는 문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6월 항쟁의 의미가 퇴색해지고 박제화된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제주에선 해군기지 문제와 6월 항쟁을 연결시킨 행사를 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 고민하게 하는 기획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평가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보자. -은 연구원 87년 민주화 이후 10년 만에 외환 위기가 있었다. 그로 인한 구조조정은 대규모 실업 사태를 뜻했다. 당시 실업을 경험한 사람과 그걸 지켜본 사람의 경험은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상처가 지금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노동시간과 급여를 줄이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 노동계조차 ‘같이 죽고 같이 살자.’를 택하지 않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자.’를 택했다. 밀려난 사람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노숙자가 됐고 남은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눈 앞에 있는 임금만 신경 쓰게 된 10년이었다.87년에 함께 길거리에 모이면서 작게나마 형성됐던 연대의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 교수 누적된 모순이 6월 항쟁으로 폭발했듯이 97년 체제가 만들어낸 양극화 압력도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동보다 오히려 정치가 더 중요하다. 과거 운동이 맡았던 역할을 이제는 정당이 해야 한다.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 정당들이 서구의 사회민주당 같은 구실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서구의 보수당 구실을 하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구별이 없어졌다. 특히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세력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치권을 재정립해야 한다. -오 사무국장 중도개혁세력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정권이 무슨 개혁 성과가 있는가. 과거사정리를 예로 들어 보자.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같은 과거사정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보안분실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안분실을 없애고 보안경찰을 민생경찰로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민주 대통령이니까 오용하지 않는다.’는 말로 실질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2004년엔 20만명이 현행법상 불법인데도 야간에 아무 제약 없이 탄핵반대집회를 했다. 참석 인원이 5000명도 안 되는 한·미 FTA 반대집회는 계속 금지당한다. 대통령지지 집회는 되고 대통령 반대 집회는 못하게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데 뭐가 개혁인가. 개혁이 아니라 ‘개혁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지금 정권 핵심부가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는 세력인가? 범여권에서 이른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실제로는 구체제 관료들, 전문 집단들, 상공인들이 주도한다. -정 교수 큰 흐름을 봐야 한다. 민주화 이후 흐름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중도개혁세력이라고 본다. 중도개혁세력은 자유, 인권, 더 나아가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 특히 평화라는 측면에선 헤게모니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런 측면과 경제적 측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도개혁세력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다.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오 사무국장 인권 상황이 좋아졌다는 건 착시 효과다. 그 착시를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부추긴다. 평화정착과 인권·개혁을 위해 중도개혁세력이 중요하고, 그러니까 한나라당 집권을 반대한다? 그건 난센스다.6월 항쟁 이후 문제는 민주화운동세력이 정책을 견인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투항하면서 전선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 진전은 박제화된 민주화일 뿐이다. 가령 보안경찰은 이제 아무나 잡아들이지 않는다. 교보문고에서 ‘태백산맥’을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사고 파는 사람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 사실 내가 일하는 인권연대만 해도 집회·시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려 하면 집회 신고조차 안 받아 준다. -하 교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모습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 진전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마무리해 보자. ●“더 많은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 -은 연구원 비정규직 관련 입법이라는 정치 과정을 보면 2.8%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 조직률을 그대로 반영한다.‘비정규직이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87년 이후 20년간 운동에서 정치로 너무 많이 간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운동과 정치가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전직 민주화세력’은 ‘국가와 민족’ 같은 정치적 문제만 생각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생활에서 묻어난 고민들을 모으지 못하고 추상적인 고민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중도개혁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운동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개방해야 한다. 국가도 집회시위를 다 보장해 줘야 하고 시민들도 눈 앞의 불편을 참아 줘야 한다. -오 사무국장 운동이 종횡(縱橫)으로 훨씬 더 활성화돼야 한다. 이제는 절박하게 밑바닥부터 다지는 ‘진지전’을 해야 한다. 자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통학로에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운동도 학부모와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면 가능하다.‘현실적인 힘’이 되도록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아파트 주민이건, 비정규직이건, 학부형이건 자기에게 필요한 운동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좋다. 우리에겐 훨씬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게 돼있다. 시위를 해야 할 절박한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은 시위를 안 한다. 나이에 따른 세대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새로운 운동 주체가 된다. 운동은 계속 이어진다. -정 교수 운동도 중요하고 공론장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중요하다. 운동이나 공론장에서 나온 얘기를 정치가 정책으로 다듬고 그걸 다시 토론하는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정당이 사회와 단절돼 있다. 운동과 공론장, 정치가 다 단절돼 있다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이 고장나 있다는 걸 뜻한다.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이 한국사회의 과제다. 과거에는 독재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정부가 됐다. 그런데 자기 지지 기반에 반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야 어떻게 민주정부라고 하겠나. 한·미 FTA가 대표적이다. ●“노동·시민운동 등 분야별 힘 모아야” -은 연구원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회가 양산하고 있다. 지원은 안할지언정 그들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운동간 소통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시민단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내 발표에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사회적 양극화는 시민·노동운동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인데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다른 길을 너무 오랫동안 걸어 왔다. -하 교수 동시에 변하면 더 좋겠지만 나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둔다. 요즘은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의 논리만 있고,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논리만 있고, 정치는 정치논리만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오고 가면서 하나로 모여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다양한 운동이 서로 힘을 모으지 못하면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6월항쟁 세력 평가’ 엇갈린 시각 서울신문이 마련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회에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하자는 주장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좌담회에서는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먼저 이 문제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오 사무국장은 “한때 민주화운동 세력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요직을 차지한 채 ‘과거운동’을 회고하고 찬양하지만 현재의 운동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저해와 시민불편, 교통체증, 사회불안이란 이유로 폄하하고 있다.”면서 “6월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지체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이후 국민의 의지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공했다고 본다.”면서 “중도 개혁세력은 평등이란 관점에서는 부족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6·15회담 등 자유와 인권, 평화 정착에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다소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오 국장은 “자유가 진전됐다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현재 집회·시위에 대한 중도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오 국장은 “2004년 탄핵 반대집회를 야간에 20만명이 했는데도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지만 현재 20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하면 사전에 봉쇄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민주화 흐름 속에서 한국 민주화 세력이 다 진보 세력은 아니지만 중도 개혁 세력으로는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재반박했다. 오 국장도 “운동 진영에서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과잉 대표성을 띠면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더 이상 집회·시위를 할 필요가 없는 ‘전직 민주화운동가들’과 단절을 명확히 하지 않는 한 6월 항쟁의 정신은 기억과 계승이 아닌 박제화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좌담 참석자 하승수 제주대 교수(사회자) 정해구 성공회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Local] 태백, 농산물 공동브랜드 개발

    강원 태백시가 태백지역 고랭지 농산물인 ‘하늘다음 태백’ 공동 브랜드를 개발, 배추와 곰취, 토종꿀 등 고랭지 농산물에 적용한다. 고랭지 김치의 KS규격화 등 고랭지 농산물의 국제기준도 마련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한다.8월에는 태백산도립공원에서 고랭지 농산물을 주제로 하는 하늘다음-태백농특산물축제를 연다.
  • [신나는 과학이야기] 초속 25m 이상 바람은 전기 안돼요

    6월인데 마치 8월의 무더운 여름 같은 날씨이다. 시원한 바람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은 햇빛과 더불어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암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하늘공원으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흰색의 날개가 높은 기둥 위에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풍력발전기이다. 하늘공원 주변에서 부는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밤에는 공원의 가로등을 켤 수 있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적합한 세기는 초속 15∼25m 바람이 불면 풍력발전기의 날개들이 회전하고 동력전달장치를 통해 발전기에서 전기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후 전력이 직류에서 교류로 전환돼 우리가 쓸 수 있는 전기가 만들어진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멈춰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나 바람의 세기가 초속 25m보다 강하면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자동으로 회전을 멈춘다. 왜냐하면 소음발생과 더불어 자칫 과열돼 부속품이 타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발전은 초속 3m로부터 시작하며, 전기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바람의 세기는 초속 15∼25m 정도이다. ●풍력발전이 필요한 까닭 풍력발전은 단순히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주종을 이루는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억제한다. 우리나라 강원도 대관령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80m 길이, 기둥의 높이는 20층 아파트 높이인 60m로서 발전용량이 연간 24만 4400MWh 정도이다. 강원도 강릉시 전체가구 중 절반인 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구상의 풍력에너지 가운데 1%만 이용하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풍력발전기는 어떤 곳에 세워지나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바람의 세기가 초속 4m 이상이면 가능하다. 바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강하게 불기 때문에 대형 풍력발전기일수록 기둥을 높게 세워야만 보다 많은 전기를 얻을 수 있다. 바람은 보통 내륙보다는 해안이 더 강하고, 육지보다는 바다가 더 강하다. 그래서 풍력발전기는 해안가에 많이 세워지고, 어떤 경우는 얕은 바다에 세워지기도 한다. 주로 풍력발전기의 몸체는 강철, 날개는 복합탄소 합금으로 이뤄져 있다. ●풍력발전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해안선이 길고 산악지대가 많아 풍력발전기를 움직이기에 효율적인 초속 3m 이상의 바람이 부는 지역이 많다. 풍력발전의 새로운 메카로 주목받고 있는 곳은 강원도 대관령이다. 또한 태백산 일대를 비롯해 동해바다와 접한 영덕에도 이미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또 장애물이 없는 바다에 세워진 방조제 위에서는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하기 때문에 새만금과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 등에서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다. 특히 대관령은 세계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연평균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풍력발전에 대한 동영상과 전시물 신재생에너지전시관(033-336-5008), 강원도 평창 양떼목장 근처에 있음. 영동고속도로 강릉방면→횡계IC에서 우회전→‘구대관령 휴게소’에 위치. 한은주 숭인중학교 교사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모데미풀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모데미풀

    일정한 영역 안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고유(固有)식물 또는 특산(特産)식물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만 살면 한국특산이 되는 것인데, 그게 종(種) 수준이면 한국특산종, 속(屬) 수준이면 한국특산속이라 한다. 종들이 모여서 속을 이루므로 한국특산속은 한국특산종에 비해 학술적으로 의미가 더욱 크다. 이러한 한국특산속은, 학자에 따라서 견해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느삼속, 금강인가목속, 금강초롱꽃속, 모데미풀속, 미선나무속, 제주고사리삼속 등 6가지로 일컬어진다. 금강산 일대에서만 자라는 금강인가목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한에서 볼 수 있다. 한국특산종은 400여 종류로 알려져 있고, 한국특산과(科)는 없다. 모데미풀은 한국특산속인 모데미풀속을 이루는 유일한 종이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지리산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남원시 운봉면의 모데미마을에서 발견되어 모데미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모데미마을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운봉마을 근처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모데미의 어원은 어떤 마을의 이름이 아니라 ‘무넘이’나 ‘무덤’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라산부터 금강산까지 분포하여 한반도 중부와 남부의 꽤 넓은 범위에서 자라고 있지만 아무데서나 자라지는 않는다. 높은 산의 습윤한 곳에서만 자라는데 덕유산, 오대산, 광덕산, 태백산, 점봉산 등지에서 발견된다. 뿌리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로서 4월 초순부터 눈 속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 5월 초순에 절정기를 맞는다. 꽃잎처럼 보이는 크고 하얀 꽃받침이 꽃의 바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안쪽에는 노란 꿀샘으로 변한 꽃잎과 수술, 그리고 암술이 자리잡고 있다. 꽃이 매우 예쁘므로 원예적인 가치가 높은 데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토종식물이므로 그 가치는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다. 소백산에서는 해발 1300m 이상의 계곡 주변과 능선의 활엽수림 밑에서 큰 무리를 지어 자란다. 소백산에 가장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히 소백산의 꽃이라 할 만하고, 소백산국립공원을 대표할 만한 꽃으로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에도 충분하므로 소백산의 깃대종 가운데 하나로 삼을 만하다. 소백산에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데미풀을 귀중한 한국특산속 식물로서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맘때쯤 수학여행으로 소백산을 찾는 학생들이 많은데, 교사나 산행안내자가 이 특산속 식물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모데미풀은 소백산 등 몇몇 산에서는 흐드러지게 많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한반도 일부 지역에만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희귀식물이다. 지구상에서 보전가치가 높음은 물론이다. 특산종 모데미풀은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멸종하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보전책임이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예산 부족에… 반대 여론에… 조선왕조실록 史庫복원 난항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복원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다. 실록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 유산이지만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는 반대 여론, 예산 부족 등 이유가 다양하다. 30일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태백산 사고’ 복원을 마무리한다는 구상이다. 예산 78억원도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각화사 측이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해 제동이 걸렸다. 부지를 이전해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예산을 지원한 문화재청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업이 지연될 경우 확보해놓은 예산도 다른 사업에 빼앗길 형편이다. 또 실록을 보관했던 ‘5대 사고’ 중 태백산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복원됐다. 그러나 건물 외형만 되살렸을 뿐, 실록을 복제한 영인본 등 내용물은 빠져 있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848권에 달하는 실록 전체에 대한 영인본을 만들려면 수십억원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없는 상황이다.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유일하게 전주 사고본만 남았다. 하지만 신인본을 만들어 춘추관·정족산·태백산·오대산·적상산 등 5대 사고에 보관했다. 이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실록은 기록원이 보유하고 있는 태백산 사고본,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정족산 사고본 등 2개다. 다만 정족산 사고본은 밀봉돼 있어 태백산 사고본을 통해서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임권택 영화 ‘천년학’ 개봉

    임권택 영화 ‘천년학’ 개봉

    “나는 영화속에 리얼리티가 담겨야 한다고 고집하는 감독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리얼리티란 내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좀더 넓은 의미의 것으로, 다양한 우리들 삶의 경험에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일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영화란 우리의 삶에 대한 창조와 지혜의 예술양식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 자체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서 영화가 우리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장 임권택. 오는 12일 개봉하는 100번째 영화 ‘천년학’(오정해·조재현 주연)으로 한국 영화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임권택(71)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천년학은 어려서 소리를 위해 남매 아닌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가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임 감독은 젊은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슬픔’의 정서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천년학’은 남도소리를 입힌 사랑 이야기 ▶감독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초등학교 때 ‘씨받이’(강수연 주연·1987년 개봉)를 보고 감독님의 작품세계를 처음 접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때인데 씨받이를 왜 보고 그러나. 허허. ▶100번째 작품으로 천년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천년학은 이청준의 연작소설 ‘남도사람’ 중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거야. 애초 ‘서편제’(1993년 개봉)때 시나리오로 쓰려던 것인데, 당시 기술로는 소설 속 배경인 바닷물이 드나드는 선학동(전라남도 장흥군 소재)을 만들 수가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어.(원래 이 지역은 바닷물이 드나들었지만 개간사업으로 농토로 바뀐 상태다.) 그러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발전해 이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된 거야. 그래서 100번째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한 거야. ▶천년학을 ‘서편제’의 후일담으로 봐도 될까요? -영화의 기본구조는 비슷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남도소리의 역할이 서로 달라. 서편제가 ‘소리에 사랑 이야기를 입힌 영화’라면 ‘천년학’은 거꾸로 ‘사랑 이야기에 소리를 넣은 작품’이야. 서편제가 소리 자체를 중시했다면 천년학은 이야기 구조에 좀더 비중을 뒀어. ●100편의 영광,100번의 고뇌 ▶100편이나 영화를 만들었는데 기분이 어떠신지요? -한편 한편 찍을 때마다 정말 피가 마르는 심정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야.100편을 찍은 보람보다는 이제 간신히 영화를 끝냈다는 생각 뿐이야. ▶100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요? -부모가 어찌 예뻐하는 자식을 남들에게 대놓고 말하겠는가. 다른 자식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것 아냐. 하지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있어.‘태백산맥’(1994년 개봉)이 그래. 원래 노태우 정권 때 만들려던 것인데 주변에서 워낙 만류가 심해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렸지. 영화를 만들 때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어.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 자신이 ‘내 사상의 검열관’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야. 워낙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살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알아서 자신을 통제하던 거지. 만약 좀더 ‘열린시대’에 살았다면 태백산맥이 더 좋은 작품이 됐을 텐데…. ▶101번째 작품으로는 뭘 해보고 싶으세요? -솔직히 그동안은 작품을 고를 때 남들의 기대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작품을 한번 해볼 테야. 그게 현대물일 수도 있고 애정물이 될 수도 있겠지. 이제부터는 남들에 대한 부담에서 좀 홀가분해지고 싶어. ●스크린쿼터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한·미 FTA가 타결돼 스크린쿼터가 73일로 완전히 확정됐는데요. -(담배를 꺼내 긴 연기를 내뿜으며)한국 영화산업이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사실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나처럼 흥행과 관계가 없는 감독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야. ▶한국 영화들을 보면 조폭영화나 코미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래도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그런 상황을 부인하지는 않아.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줄어들면 미래 한국영화는 그런 종류의 영화들만 남아 있게 될지도 몰라. 한국 영화가 더더욱 경제논리에 내몰릴 테니까 말야. ▶그렇다면 최근 본 한국영화 중 ‘제대로 된 한국영화답다.’고 느낀 작품이 있었는지요? -지난해 개봉한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유지태·김지수 주연)가 꽤 인상 깊었어. 감정의 절제를 통해 흥행보다 영화적 완성도를 택한 감독의 고집을 읽을 수 있었지. ▶위기의 한국 영화계에 한마디 하신다면요? -앞으로 우리 영화산업에 커다란 회오리가 몰아치겠지만 우리 영화계에도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감독들이 여럿 있다는 것이 위안 거리지. 앞으로 상황이 어려워져도 지금까지 그랬듯 늘 최선을 다해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앞으로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고 부탁드립니다. -류 기자는 자식 관리 잘해야겠어. 자네 아들도 아빠 닮아서 어려서부터 ‘씨받이’ 같은 거 보러 다니면 어쩌려고 그러나. 허허허.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2)오대산 史庫 유감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2)오대산 史庫 유감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에는 후세에 넘겨주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인천 강화 정족산과 강원 평창 오대산, 경북 봉화 태백산, 전북 무주 적상산 등 4곳의 사고(史庫)에서 보관됐습니다. 모두 외적의 침입이 어려운 섬이나, 깊은 산골짜기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방대한 기록유산으로 각광받는 동안 사고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1905∼1944)은 1934년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로 가는 길에 오대산사고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사람 없는 곳에 담 벽은 흩어지고 기와도 떨어진 소름끼치는 건물이 있을 뿐”이라고 스산하기만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월정사 사적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원들이 사고(史庫)와 선원보각(璿源寶閣)에 있던 사책 150짐을 동민들을 동원하여 주문진항으로 옮긴 것이 1914년 3월이라고 씌어있으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20년 동안 크게 쇠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포쇄를 하러 오대산에 오르다(曝登五臺山)’는 시에서 ‘법운(法雲·부처)이 지켜주고, 선(仙·산신령)이 밝게 빛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당시 추사는 3년마다 임명되었다는 포쇄관(曝官)으로 오대산사고를 찾았습니다. 책을 꺼내 볕에 말리고, 바람을 쐬어주는 소임입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오대산사고는 우현이 지나친 이후 언제인지도 모르게 주저앉고 맙니다. 오대산사고 뿐만이 아닙니다. 정족산사고는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이 프랑스군에 약탈당하는 동안에도 건재했지만 1930년대에는 흔적만 남았습니다. 태백산사고는 해방을 전후해 불타고 집터는 산사태에 묻혀버렸습니다. 적상산사고 역시 황폐화했습니다. 사고는 1990년대 들어서야 다시 존재가 부각됩니다.1992년 오대산사고가 복원됐고,1999년에는 정족산사고가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적상산사고는 1992년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수몰됐지만, 자리를 옮겨 1999년 다시 지었습니다. 태백산사고도 1988년 발굴작업이 이루어진 데 이어 2008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건물만 다시짓는 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장서가 없는 도서관이 도서관이 아니듯, 사서(史書)없는 사고는 빈 창고에 불과합니다. 마침 전북 무주군청이 올해 조선왕조실록을 복제해 적상산사고에 비치하고, 사고를 지키는 장면 등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등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 같아 반갑습니다. 하지만 사고 4곳의 복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기보다 정부 차원에서 보다 일관성있게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고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현장이 되어야지, 실망만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dcsuh@seoul.co.kr
  • ‘거장’ 조정래·김원일 다시 묻는다

    한 남자가 있다. 일제 때 군대에 끌려가 일본 관동군에서 복무하다 몽골전투에 참가한 이 남자는 동료 ‘조센징’들과 함께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련군으로 ‘전향’한 이들은 서부전선으로 이동해 독일군과 전투를 하다 또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수용소에서의 간단없는 삶 끝에 독일군 ‘동방대대’에 편입된 이들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의 ‘대서양 방어선’ 건설에 투입됐다가 미군의 포로가 된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이 된 이들의 ‘기막힌’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인간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전락할 수 있을까. 다른 한 남자가 있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사-관동군 731부대 보초-빨치산’이라는 특이한 경력이 있고, 아버지는 ‘산업화의 주역’으로 현장에서 오른쪽 팔목 밑을 프레스에 잃은 뒤 가정폭력을 일삼고, 행패나 부리며 살더니 결국 ‘개백정’으로 전락했다. 공교롭게도 부자가 다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조용하게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다 죽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거구 유전자를 물려받아 신장 190㎝인 ‘그 남자’는 또 어떤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개백정 짓에 이골이 난 그는 중학생 때부터 이름난 깡패짓을 하더니 고등학교 문턱도 못가고 교도소만 들락거렸다. 가출했던 누이는 ‘YH사태’때 투신했다가 장애인이 됐다. 아버지한테 강간을 당해 억지로 결혼한 어미는 정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기막힌’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피’의 그림자가 이렇게 짙을 수 있을까. 문단의 두 거두인 소설가 조정래(64)씨와 김원일(65)씨가 ‘인간’에 천착한 문제작 ‘오 하느님’(문학동네 펴냄)과 ‘전갈’(실천문학사 펴냄)을 최근 각각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각각 장대한 ‘공간’과 ‘시간’을 다루고 있다. ‘오 하느님’이 아시아, 유럽, 미주를 아우르는 거대공간을 갖고 있다면,‘전갈’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대다. 두 작품 모두 ‘의도적으로 잊혀진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노르망디 해변에서 붙잡힌 동양인 독일군의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오 하느님’이나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일제 부역자’ ‘산업화 역군’ ‘조폭’ 등 3대를 그린 ‘전갈’은 모두 우리들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올해 조씨는 등단 37년, 김씨는 41년째를 맞았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양감 넘치는 대하소설을 주로 발표해온 조씨이기에 사실 이번 작품은 의외다. 계간지 문학동네에 겨우 두 차례 연재한 경장편이다. 하지만 소재나 주제는 이전 작품에 견줘 전혀 가볍지 않다. 결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씨는 “‘도대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하는 범인류적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장편의 제목은 ‘맙소사’라는 뜻이 강한 ‘오마이갓(Oh my God)’과 다르지 않는 ‘절망적 절규’를 담고 있는 셈이다. 조씨는 “역사가 바뀌어도 강대국은 끊임없이 약소국을 억압할 것”이라면서 “이는 결국 인류공통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며 작가는 이런 문제를 계속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5∼6편 정도 이같은 범인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갈’은 김씨의 13번째 장편이다. 지난해말 갑자기 찾아온 병마(뇌경색)를 딛고 난산한 작품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김씨는 “처음부터 지독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작정하고 썼다.”면서 “당대에는 소수집단으로 분류될지라도 그들의 발자취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3대 가운데 아버지인 ‘강천동’은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일 뿐이지만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형이고, 아들과 꼭 닮았다. 아직 온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작가는 가을에 또다시 중단편집을 한권 더 낼 작정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종성 소설집 ‘연리지가 … ’

    1986년 중편 ‘검은 땅 비탈 위’로 등단한 소설가 김종성(55)은 환경·생태 문제를 화두로 작품 활동을 해온 중견 작가다. 소설가 박태순이 “태백산 탄광촌에서 ‘평지돌출’해 문학광원으로 일어선 입지전적인 작가”라고 평했듯, 그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현실을 채굴하는 ‘문학지질학’적 탐사작업을 벌여왔다. 작가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다. 경기도 용인의 전원아파트에 입주했는데,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각종 환경 문제를 보고 직접 마을의 환경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 그렇게 사회생태론에 천착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써낸 환경·생태 소설만도 10편이 넘는다. 김종성의 환경생태 소설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문이당 펴냄)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6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연리지가 있는 풍경’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작품. 작가는 자기 이익에만 골몰하는 현대인의 이기적인 행태를 두 나무 가지가 하나로 이어져 자라는 연리지(連理枝)의 ‘협력의 미덕’에 빗대어 고발한다. 이윤 창출을 위해선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자행하는 기업의 만행을 폭로한 ‘일요일은 지킵니다’, 오염된 폐광촌을 놓고 벌이는 종교단체와 기업의 비리와 위선을 꼬집은 ‘열목어’ 등 6편의 작품에는 작가의 사회의식이 오롯이 녹아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국·도립공원 층고 완화 동계올림픽 유치 ‘숨통’

    국·도립공원 등 자연공원 내 집단시설지구의 건축물 높이 규제 완화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청신호가 켜졌다. 13일 강원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국립·도립공원 등 자연공원 내 집단시설지구 건축물 높이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자연공원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자연공원 집단시설지구 내 상업시설과 숙박시설의 높이를 자연경관적인 요소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완화하되, 자연공원을 위치에 따라 내륙형과 해안·해상형으로 나누고, 해안·해상형 공원 중 집단시설지구를 다시 배후산지가 있는 지구와 없는 지구로 구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설악산·오대산·치악산·태백산 등 내륙형 집단시설지구의 경우 상업시설과 숙박시설은 현행 3층(내륙형)에서 최고 15m(5층 규모)로 완화되게 된다. 또 경포·낙산도립공원 등 배후산지가 없는 집단시설지구의 상업시설과 숙박시설은 5층에서 최고 21m(7층 규모)로 완화될 전망이다. 관광숙박시설의 경우 내륙형 집단시설지구는 현행 5층에서 최고 24m(7층 규모)로, 경포·낙산 지역은 현행 5층에서 최고 30m(9층 규모)로 조정될 예정이다. 이같은 정부의 자연공원법 하위 법령에 대한 개정안과 관련, 강원도는 침체된 관광산업 활성화와 2014동계올림픽 유치에 필요한 고급 숙박시설 확충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반기고 있다. 경포도립공원을 끼고 있는 강릉시는 이번 개정안 마련으로 승산콘도, 코리아나호텔 등 관광숙박시설 신축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체를 포함해 10여개 호텔·콘도와 진안상가 등 4개 상업시설,30여개에 이르는 숙박시설지의 신축 또는 리모델링 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재 1,2층 정도의 건축물 형태로 영업 중인 강문 횟집 단지와, 재개발 시행사를 선정하지 못해 노후상태로 방치된 진안상가 등의 투자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특허정책 2題] ‘명품 특산물’ 옷 입는다

    ‘춘천 막국수, 주문진 오징어, 원주 한지….’지역 특산품들이 등록상표로 되면 ‘지리적 표시 상표’라고 부른다. 지리적 표시 상표제는 2005년 7월 도입됐다.1년 반이 지난 현재 등록된 상표는 ‘장흥표고버섯’이 유일하다. 그래서 특허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특산물의 명품화 전략에 손을 잡았다. 지리적 표시 상표제는 생산자와 가공자 단체만 등록 가능하다. 물론 1개 지역에 1개 단체표장만 등록할 수 있다. 때문에 대표성 논란도 제기된다. 특허청은 올해 지자체로부터 올해 신청된 21개 지역 특산품 중 17개 품목을 권리화 지원대상으로 선정했다. 상표로 등록할 수 있도록 디자인 개발과 홍보 마케팅도 지원한다. 지자체는 등록상표의 주체가 될 단체 설립과 판로 지원 등에 나선다. 봉평 메밀, 태백산 한우, 당진초락도 약쑥, 서산 생강, 증편 인삼, 부산 대저토마토, 안동 사과, 함양 옻, 창원 단감, 제주 당근, 제주 녹차 등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작가가 부화뇌동하는건 문학에 대한 배반”

    소설가 조정래(64)씨가 작심한 듯 얘기를 꺼냈다. 비록 질문에 대한 답변 형태였지만 ‘민족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부 문인들의 보수화 등을 꼬집었다. 2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소설 ‘아리랑’(해냄 펴냄·전 12권) 100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작가가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오류를 범하는 정치세력에 들어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자기파멸의 길이자 문학에 대한 배반입니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신작 ‘호모 엑세쿠탄스’에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고 황석영씨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과 관련,“작가와 지식인은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이같은 원칙론을 들고 나왔다. 작가가 현실정치에 대해 발언한다면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내용이 옳고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에게는 ‘사회의 산소’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치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정직성’을 꼽고, 우리 정치에 가장 필요한 것은 ‘타협’이라고 주장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변경 움직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세계화시대라 해도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버릴 수는 없다.”면서 “지켜야 할 가치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신사대주의나 다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남북이 통일하려는 이유도 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면서 “민족 문제를 폐기처분하는 시기는 통일 이후여도 된다.”고 덧붙였다. 대하소설을 읽지 않는 세태나 ‘문학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역사를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쓰는데 어떻게 독자들이 읽지 않겠느냐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팔리고 안팔리고는 나중 문제로 작가가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쓰면 된다.”고 단언했다. 작가는 또 “15년만 젊었어도 대하소설 2편을 더 쓸 소재가 있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썼으면 좋겠다.”면서 “‘한강’을 끝으로 더 이상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앞으로 신채호, 한용운, 안중근 등 국내 근현대사 인물 15명과 마더 테레사, 퀴리 부인 등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해외인물 15명 등 총 30명의 위인전을 권당 400쪽으로 펴내 청소년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여기에 우리 전래동화 20권을 보태 총 50권의 아동물을 쓰기로 했다. 그는 오는 9월 일반인에게 개방할 전남 보성군의 ‘태백산맥 문학관’에 마련되는 집필실에 한달에 1주일 가량씩 머무를 예정이다. 국내에서 100쇄를 넘긴 작품을 쓴 작가들은 이청춘, 최인훈, 조세희, 이문열씨 등이 있지만 순수 문학작품으로, 그것도 장편소설로 100쇄를 넘긴 작가는 조정래씨가 유일하다. 조씨는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부터 ‘100쇄 기념패’를 받았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자연은 강원의 ‘힘→돈’

    자연은 강원의 ‘힘→돈’

    강원도가 풍력·태양광·지열·나무·가축분뇨·수소 등 자연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생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광활한 자연속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팔면 반영구적으로 짭짤한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바람은 돈바람 강원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 대관령일대의 바람은 곧 돈이다. 강원도에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것은 지난 2001년 대관령 삼양축산단지가 처음이다. 국비 등 60억원을 들여 이곳에 4기의 풍력단지를 설치한 뒤 2004년부터 연간 2640㎾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된 전기는 정부의 발전차익지원제도에 의해 고스란히 한국전력에 납품되면서 해마다 2억 7000∼3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시설을 한번 설치하면 15년간은 고정 수입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투자재원으로 뜨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도 설치비의 80∼90%를 저리(3.6%)로 융자지원해 주고 있다. 대관령외에도 태백산 매봉산에도 국비 등의 지원으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지난해부터 발전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8기의 풍력발전 가운데 5기가 우선 설치돼 연간 8억원의 수입이 창출되고 있다. 이곳의 바람은 질이 좋아 3기가 더 설치되면 10억원까지 수입이 예상되고 있다. ●민간자본 투자도 활발 풍력에 대한 민간자본 투자도 활발하다. 양양 진동리일대(발전기 2기)와 대관령 강원풍력발전 등에도 외국자본과 한국전력 등이 컨소시엄으로 풍력발전단지를 설치해 지난해부터 각각 3000㎾와 1만㎾의 전력을 생산해 내고 있다. 또 양구 돌산령, 횡성 태기산, 강릉 대기리, 태백 귀내미골 등은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민간자본으로 풍력단지가 추진 중이고 고성 명파리, 미시령, 진부령일대 등 11곳도 풍력 타당성 조사 중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강원도 어디든 풍력발전단지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태양광으로도 대박 꿈꾼다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설비 추진도 풍력에 못지 않다. 춘천시 의암호내의 붕어섬에 친환경적으로 태양광발전소가 추진된다. 춘천시민 가정용 전력의 3분의1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붕어섬 태양광발전소는 민자를 유치해 1만㎾p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규모로 건설된다. 이에 앞서 태양광은 이미 지난 2002년 삼척동굴엑스포때 설치돼 657㎾p를 생산해 내고 있다. 국내최대 규모인 동해 화력발전소도 지난해 6월부터 순수 태양광으로 연간 1000㎾p의 전기를 생산해 ㎾p당 706원씩 받고 한전에 납품하고 있다. 강원도청에서도 청내 사용을 위해 올 6월 중에 120㎾p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으로 설비공사가 한창이다. ●지열(地熱)도 새로운 에너지 강원도는 또 땅속의 열기를 이용한 지역도입에도 한발짝 앞서나가고 있다. 최근 강원도 아산관에 한국지열에너지기술지원센터 개소식을 갖고 전국 처음 지열의 에너지 사용에 시동을 걸었다. 지열은 초기 투자비용이 높지만 투자비 회수기간이 짧은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이밖에 버려지는 나무와 가축분뇨, 수소를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도 본격 개발에 나선다. 강원도는 오는 2015년까지 7000억원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소음 공해와 함께 새나 야생동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도 있어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김상표 강원도 산업경제국장은 “강원도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살려 지열과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분야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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