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태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생명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000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호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재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56
  • [이슬람 문명과 도시] (7) 레바논 베이루트

    [이슬람 문명과 도시] (7) 레바논 베이루트

    내전의 총상으로 곰보가 되었거나 불구가 되었던 건물들이 이젠 꽤나 많이 단장되고 치워졌다. 막상 복구는 해놨지만 입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과 4∼5년 전만 해도 유령마을 같았던 시내 중심가도 이젠 저녁 마실 나온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베이루트를 자주 찾았던 어느 사진작가는 “최신 유행으로 치장한 베이루트의 멋진 청년들 틈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가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들을 보면 지금도 온전히 들어맞는 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랍 남성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연애는 베이루트 여인과’라는 게 있는 터이고 아랍세계 연예계를 주름잡는 미남미녀들의 태반이 레바논 출신이니 말이다. 내전 끝나고 지금까지 16년이 지나며 베이루트 시민들의 마음도 도시의 겉모습이 단장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아직도 고통스럽게 남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 수년전 유령같던 도심 시민들 북적 베이루트 중심가 사하트 슈하다(순교자광장) 한쪽, 지중해를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인터콘티넨탈 페니시아 호텔 앞 바닷가 길을 지나는 것이 이제 나에겐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내가 이 길을 거닐며 남긴 추억이 참 많았다. 마땅히 찾아갈 만한 공원이 없는 베이루트에서 바닷가 길(코르니시)은 모든 시민들이 찾아드는 휴식의 공간이다. 산보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빠져 지나는 젊은이들, 정겨운 연인들…. 그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을 이곳에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두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폭탄테러로 온통 망가져버린 빌딩들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그 아래 요트장에선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풍성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고작 1년 전 저 건물들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와 수행원들 그리고 길을 가던 시민들이 죽어가지 않았던가. 그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 하루를 빼놓지 않고 벌어진 규탄시위,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나. 그뿐인가 하리리 총리 암살 이후 이어진 폭탄테러가 몇 번이고 그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이곳에서 희희낙락 음악과 햇볕을 즐기고 있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건가. 그러나 이들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불안감은 쉽게 드러나고야 만다. 어느 점성술사의 말 한마디에 레바논이 들썩였던 거다. 이 점성술사가 한 말은 ‘크리스마스날 300명을 겨냥한 테러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이 말이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지자 점성술사 스스로가 놀라 일간신문에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밝혀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다녀온 한 한국인 친구가 전해준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 친구가 겪은 일은 이런 거다.“예루살렘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서 주스 한 잔 마신 다음 빨대를 갖고 놀고 있었지요. 빨대 끝을 잡고 둥글게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감은 다음에 손가락으로 탁 튕겨 ‘딱’ 소리가 나게 하는 거요. 그런데 주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던지….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런 장난을 하느냐는 타박을 받았답니다.” # 하리리 총리 암살이후 테러공포 몸살 어느 날 저녁 베이루트 시민들이 많이 모인 상품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다.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커다란 소리가 전시장 입구 쪽에서 들려왔고 곧 주변의 시민들이 혼비백산해서는 마구 뛰어 달아나는 거였다. 한순간 입구 쪽을 바라봤지만 어떤 연기나 먼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잠시 뒤 그저 트럭의 타이어가 터진 소리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얼굴엔 약간 민망해하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는데 이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16∼17년에 걸친 내전을 가까스로 끝낸 지 이제 겨우 16년, 아직도 피냄새 나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저 가슴 아플 뿐인데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 와서 그런가 어디에서 폭탄이 터지고 폭격이 일어나도 바로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친절하면서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 베이루트 시민을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편안한 일이다. 아랍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베이루트지만 평범한 우리나라 사람이 살아가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생활환경은 아랍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가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라도 다녀올라치면 베이루트의 비할 데 없이 자유로운 공기를 새삼 느끼곤 한다. 다마스쿠스가 답답하다기보다는 베이루트가 너무나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민소매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베이루트에서 첫 여름을 보낼 때였고 나는 서울에서 늘 그러했듯 샌들에 반바지차림을 줄곧 고수했다. 아무런 부담없이 공공연하게 대통령이니 총리의 욕을 해대는 것을 보면 아랍세계에서 언론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는 말이 분명한 사실이지 싶다. 다마스쿠스의 개가 마음껏 짖고 싶어 레바논으로 넘어왔다는 우스개까지 있으니 말이다. # 기독교인들 영화 ‘그리스도…´ 에 열광 근래 영화 두편을 통해 베이루트 시민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고 또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베이루트 극장가에 개봉된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다양한 종교종파가 공존하는 베이루트는 한때 다원주의의 성공모델이었고 한순간 그 균형이 깨지며 모자이크사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베이루트 시민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인이 차지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수난’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라 꼭 보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좌석을 예매하지 않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자리가 남아돌던 베이루트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에서 찾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이 영화를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는 베이루트 시민들 마음 속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전의 상처를 감싸주기에 너무나 적절한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자 터져 나온 벅찬 감동의 박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배경은 세계 제1차대전이 발발한 해인 1914년의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실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한 영화다. 참혹한 살육전을 펼치며 대치하던 프랑스군, 독일군, 스코틀랜드군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찬송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연주하게 되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나름의 휴전을 선언하고 적이 아닌 친구의 정을 쌓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애초에 적이 아닌 친구였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적이 되어 만나게 되었음을 베이루트 시민들은 온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해하고 상생하는 다원의 문화를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베이루트에는 폭탄이 터지고 있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럴 때마다 분기에 찬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친다.“빗담 비루흐 아프디카 야 루브난(레바논아, 너를 위해 피와 영혼으로 나를 희생하리).”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구호를 듣고 싶지 않다. 안정국 명지대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 [서울광장] 지방선거와 도덕적 양심/오풍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방선거와 도덕적 양심/오풍연 논설위원

    5·31지방선거가 꼭 두 달 남았다. 각 당은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후보들도 최종 ‘낙점’을 받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보간 비방전 역시 점입가경이다. 우선 공천을 받고 보자는 심산에서다. 그런 만큼 정작 유권자는 안중에 있을 리 없다. 민선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11년째 접어들었는데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들만의 잔치로 또다시 변질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방자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표를 행사하는 국민이 달라져야 한다.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참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자치단체장은 지역 발전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잘 골라야 한다. 그동안 지방자치의 발자국을 되돌아보더라도 그렇다. 유능한 장(長)을 선택한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빨랐다. 우선 광역단체인 16개 시·도의 변화상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따로 예를 들 필요없이 지역민들은 광역단체장들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체장의 임기는 4년이다. 결코 짧은 기간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이 얼마만큼 열심히 뛰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달라진다.“영남지역 한 광역단체장은 서울에 수시로 올라와 도와 달라며 우는 소리를 합니다. 대통령이 행사차 지역에 내려가면 어떻게든 그 곁으로 다가와 같은 소리를 해 반쯤 약속을 받아내지요. 반면에 호남지역 광역단체장은 도와 주려고 해도 감감무소식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국민의 정부 당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의 회고담이다. 지금까지 자치단체장의 기소현황을 보면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무려 140여명이나 기소됐다.1기 23명,2기 59명,3기(2002년 7월∼현재) 60여명이다. 이 중 뇌물수수만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인사권을 틀어쥔 단체장의 무소불위 권력은 직원들을 비리의 공범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국민의 혈세만 날린 민·관 합작의 제3섹터 사업도 문제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수십억∼수백억원을 쏟아붓고 망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같은 폐단은 지방행정의 감시자인 주민이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을 골라야 할까.‘비전’과 ‘열정’을 가진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리더십의 핵심요소다. 리더십은 타협성격을 띤 거래(去來)적 리더십과 변혁(變革)적 리더십으로 나눌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은 창의적 행태의 개발과 조직의 혁신을 유도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행자부가 교수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데 따르면 현 민선 단체장의 변혁적 리더십 수준은 보통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다.5점 기준으로 평균 3.16점,100점 기준으로는 53.97점에 불과했다. 리더십에 관한 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후보들의 리더십을 선택기준으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여기에 양심(良心)도 곁들이면 그만일 것 같다. 히틀러는 비전과 열정을 가졌다. 하지만 양심의 결여는 그의 몰락을 가져왔다. 반면 간디의 비전과 열정은 양심의 지배를 받았고, 그는 국부로 추앙받게 된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두 가지가 나를 경외감으로 충만케 한다. 하나는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양심은 내면의 도덕률이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후보들의 속내까지 들여다보는 혜안을 키우자.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아침을 먹자] 사랑과 감동으로 버무린 따뜻한 밥상

    지난해 10월 첫 발을 내디뎠던 서울신문과 CJ의 건강 캠페인 ‘아침을 먹자’가 막을 내립니다. 5개월동안 300명이 넘는 독자분들께서 사연을 신청해 주셨습니다. 매주 3∼5개의 사연을 뽑아 30인분의 아침 도시락을 배달해 드렸습니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글들이 늘 ‘아침을 먹자’ 게시판을 훈훈하게 달궜습니다. 지난해 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배달한 아침 도시락은 인상적인 감동을 줬습니다. 대학수학능력을 앞두고 구리 인창고 3학년 13반 한세영 선생님은 “올해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은 서툰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한 선생님은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어미가 따뜻한 밥 한끼를 먹여 보내듯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싶다.”며 학생 32명의 특징과 이름을 나지막이 되뇌었답니다. 깜짝 선물을 받은 학생들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기뻐했던 모습이 선합니다. 이어 12월에는 경기도 안산 성포중학교 3학년 10반 담임 윤종일(33) 선생님이 “아침을 거르고 오는 아이들이 태반인 교실에 들렀다가도 뭐가 그리 바쁜지 허겁지겁 종례를 마칩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라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며 도시락을 신청하셨습니다. 신청자가 많아 도시락을 15개 밖에 보내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햇반을 준비해와 나눠먹었답니다. 특히 어머니에게 도시락을 선물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지난 설 무렵에는 직업군인 조윤기(30)씨의 사모곡이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어머니는 ‘선우회’라는 봉사 단체를 조직해 무려 21년째 이웃을 돕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주인공 서정희(63)씨는 “봉사 활동을 곧잘 따라다니던 아들이 날 위해 도시락을 두 번이나 신청했다니 뿌듯하다.”면서 “배달된 아침 도시락도 이웃과 함께 나눠먹어야 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좋은 사연 올려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 좋은 캠페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정은주 서재희기자 ejung@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지나온 세월동안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인식을 위한 세미나들이 과거에 종종 있었다. 나도 거기에 참석해 본 적이 있었다. 보편성의 실재를 강력히 주장하는 분들은 보편성이 문화적 선진국들에서 전파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반대의견을 개진하면, 특수성을 보호막처럼 고집하는 국수주의자인 양 취급하려는 사고관행을 보았다. 그 경우에 내가 가장 자주 언급한 철학사상이 율곡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보편적인 理는 특수적인 氣의 제약과 같이 실존함)이었다. 나는 유가적인 율곡의 저 말이 진리를 하나로 회통시키는 본질사상과 다양한 사실들을 살리려는 실존사상을 아울러 융합시킨 이사상자(理事相資=진리와 사실이 서로 의지함)나 이사무애(理事無碍=진리와 사실이 서로 장애없이 교환됨)라는 불가적인 화엄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나는 사상의 보편성을 늘 선진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사고방식을 관행으로 여기는 한, 우리가 세계사에 우뚝 솟은 좋은 나라의 성공사례를 역사에 결코 남길 수 없고, 늘 아류국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한다. 옛날에 보편성이 중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지금 그것이 서양 선진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중국 본토와의 교류가 터진 이후 별로 사상적으로 대단찮은 현대 중국의 책들이 번역되어 인기물이 되고, 그 주인공들을 불러 엄청나게 후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옛 사대주의의 업보를 언제 벗게될지 절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율곡의 ‘이통기국론’이나 화엄의 ‘이사무애론’이나 다 보편적인 진리는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여기와 지금’의 특수한 사실이나 기질의 제약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산 정약용이 우리 조선을 늘 동국이라 칭하는 관행을 비웃으면서, 조선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중국이고 중국은 서국이라는 말을 개진했다. 이런 생각을 국수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국수주의는 자존망대의 배타적인 사고관행이다. 이것은 황당한 코미디다. 모든 문화는 잡종의 만남이다. 문화적 순종을 찬양하는 일은 근친교배처럼 문화적 허약체질을 만들고 시들어 죽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잡종의 만남에 어떤 중심이 따로 없고, 다양한 기국(氣局)의 사실들이 곧 중심이 될 뿐이다. 보편성의 중심은 사실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기국의 사실에 보편성이 이미 녹아 있다는 것이다. 보편성은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본성이 좋아하는 기호일 뿐이다. 그런데 그 본성이 사람들에게 개성과 함께 동거해 있다. 개성과 본성은 이원적인 것이 아니고,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둘도 아님)나 부잡불리(不雜不離=섞인 것도 분리된 것도 아님)의 방식으로 실존할 뿐이다. 원효나 율곡이 다 이 점을 아주 강조했다. 이것을 우리는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 김치나 비빔밥이나 된장찌개는 다 한국음식이다. 이 음식이 동시에 국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맛있는 한국음식을 개발하는 길 이외에 우리가 음식문화에서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을 것인가? 누구나 다 외국음식들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보편성이 그들의 특수성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음식을 수구적으로만 지키려는 순수주의적 자세는 경쟁력에서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氣)의 특수성 속에 이(理)의 보편성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하여도, 그 기의 특수성도 역시 고착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습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어떤 일정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혀의 미각은 인간의 오감의 느낌 가운데 가장 변화에 둔감하다. 그러나 그것도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기국의 제약성은 기국의 독자적인 폐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미각의 기가 다른 나라의 미각의 기와의 차이의 변별성에 불과하다. 문화는 본디 잡종의 혼융이므로 순수한 것의 독존은 성립안된다. 한국인의 미각도 다른 나라의 것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섞이는 혼융이다. 그런 한에서 관계의 차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관적 관계의 함수가 다르면, 자기의 맛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기국은 자기문화의 어떤 습관화된 기호를 말하지만, 그 기호가 다른 문화와 맺는 상관관계의 함수에 따라 늘 변화를 빚는다. 기국도 시대의 인연에 따라 변한다. 김치도 임란 이후에 고추가 들어와서 맵게 변했다 한다. 그러나 기국은 늘 우리가 살아가는 실존적 살(肉)이다. 이 살을 떠나서 한국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살의 의미를 철학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다. 살을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한다. 사실상 살이란 객관적 도구를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이 느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나의 느낌과 생각이 살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살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살은 주관적인 것인가? 그것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상호주관적인 공통성을 띠고 있다. 살은 물론 내 몸이지만, 그 몸의 영역이 고착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다 살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만 살일 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현상과 사건도 다 살로서 연장된다. 살은 생활세계의 분위기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세계의 분위기와 함께 느끼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가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속에서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기국으로서의 한국문화는 한국인을 낳고 자라게 하는 집단습관의 태반과 같다. 이 집단습관의 태반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의 공동업(共同業)이다. 모든 인간은 다 살로서 생활하고 실존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놀지 않아야 살이 건강하고 행복을 노래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헛도는 경우에, 살은 자신의 공동업이 인간본성의 본질에로 접근되는 해방과 행복의 길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하고싶은 말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로 천대받는다. 그것은 삼국시대의 무속신앙이 외래 관념사상의 권위에 밀려 천대받아 온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살의 실존은 무의식적 공동업의 생활인데, 그 생활이 보편적 의미로 향하여 접목되려는 욕망을 가진다. 그 욕망의 표현이 곧 각 문화권의 관념적 사상이다. 기국이라는 무의식의 공동업은 율곡의 생각처럼 내용을 담는 특수한 기질(氣質)이기도 하고, 또 발현하는 기운(氣運)이기도 하다. 기질과 기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같은 의미를 달리 전하는 것이다. 몸은 제약의 기질이지만, 동시에 그 기질을 통하여 우리가 기운을 낸다. 기질이 머금고 있는 특수한 기운이 보편적 의미의 옷을 입고 솟아야 우리의 마음이 유의미해진다. 보편적 의미의 옷이 바로 율곡이 말한 이통(理通)이겠다. 그 의미의 보편적 옷이 다른 곳에서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인간의 본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율곡의 이통기국론은 보편적 이(理)가 기국의 살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의 기질과 기운 속에 함께 동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엄학처럼 해석하면,개성의 사실 속에 진여의 진리가 함께 동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하겠다. 개성이 곧 진여인 것은 아니지만, 개성의 발현을 떠나서 진여의 꽃이 피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은 개성의 업(業) 속에 진여의 출현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좀 더 확대하면, 한국인의 상호주관적 공동업의 살 속에 본성인 보편성의 출현을 방해하는 악업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같다. 한국적 관념의 사상이 한국의 정신문화인데, 이 정신문화가 실존적 살의 분위기와 어긋나 헛돌지 않으려면, 실존의 살이 안고 있는 업장의 병을 고치려는 구원의 사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관념의 사상이 살이 아파하는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되면, 그 살은 자신의 의미를 말하는 통로를 얻어 세상을 향하여 풍요하고 다양한 삶의 잔치에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음식이 자신의 기국을 통하여 세상이 다 좋아하는 세계적 음식으로 통하게 되는 것과 같겠다. 그러기 위하여 좋은 요리사의 창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의 업은 장애이기도 하고, 동시에 물결이나 나무결과 같은 결이기도 하다. 장애와 결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활용(11회 글)에 따라 구분된다. 즉 마음의 활용에 따라 우리를 방해하던 그 업이 오히려 우리를 생기나게 하는 결로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신문화는 우리의 공통적인 마음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이치와 다르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속에 깃든 특수성이 본성의 보편성과 접목하여 각자가 자기의 타고난 결대로 꽃을 피워 이타행을 하며 즐거워하는 찬란한 정신문화의 금물결을 세상에 반짝이게 하리라. 보편성은 밖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본성인데, 이것이 특수성과 함께 살아나는 길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왜 외국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외국을 공부해야 한국의 병과 결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 자기를 떠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자기는 타자와의 인연에서 생기지, 홀로 독생(獨生)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성이 선진국에 있는 것이 아니듯, 특수성도 자기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독일에서만 나오고, 베르그송도 프랑스에서만 생긴다. 듀이는 미국에서만 탄생되며,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적 신비를 풍긴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이통기국의 비밀이 있겠다. 성철스님, 청화스님, 숭산스님 등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고승들이다. 이 고승들의 실존을 한국문화의 이념형(Ideal type=사회문화의 특수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경험적 현상들을 개념적 준거의 틀로 유형화하는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론)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데스크시각] 주택정책과 양치기 소년/류찬희 산업부 차장

    요즘 서울 강남 부동산가에는 ‘생뚱맞은’ 말이 유행하고 있다.“중산층 이상의 강남 주민들은 오히려 참여정부를 지지한다. 참여정부가 강남 주민들을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끌어 올려줬다.”는 말이 나돈다. 또 정부의 강도 높은 투기억제 정책에 대해서도 “2년만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런 말에 굳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비꼬고 싶지는 않다. 무거운 세금을 물게 될 주민들이 불만을 터뜨리다 지쳐 집값 폭등을 잡지 못하는 현 정부의 무능력을 역설적으로 탓하는 말로 들린다. 주택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서민층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내놓은 집값 안정 애드벌룬만 믿다가 그만 저 멀리 달아난 집값을 따라잡기에 힘에 부치기 때문일 게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정책의 생명은 신뢰다. 국민이 믿고 따라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주택 정책 가운데는 분명 투기를 억제하고 무주택자의 내집마련을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내용도 많다. 실거래가 확보 정책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다.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평과세를 위해 오래전에 도입했어야 했던 정책이었지만 늦게나마 실시한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중소형 임대 아파트 공급 물량을 늘리는 정책 역시 서민들의 내집마련에 분명 도움이 된다. 몇몇 정책은 서민주거 안정을 내세운 나머지 시장경제와 거꾸로 간다는 지적과 함께 위헌 요소를 지녔다는 지적까지 받으면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 정도면 집값이 떨어질 만한데 쉽게 잡히지 않는다. 정부도 답답할 노릇이다. 백가쟁명식으로 집값 잡기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집값 기울기가 늘 오른쪽 위 방향으로만 향하는 까닭은 국민들이 더이상 정책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대책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수없이 많은 정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은 먹혀들지 않는다. 아직도 신뢰성을 잃은 정책이 태반이다. 그러니 찔끔찔금 내놓는 누더기 주택정책이 투기 면역만 길러줬다는 지적이 틀린 것만도 아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시지가만 해도 그렇다. 실거래가에 근접하게 현실화하겠다고 밝힌 것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공시지가를 발표하면서 시세에 근접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했다. 발표할 때마다 시세의 70∼80%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예 시세에 어느 정도 접근했는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집값도 예외는 아니다. 오는 17일 공개될 올 잠정 공시지가를 들여다보면 왜 집값 조사를 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1평형 시세는 최고 8억원을 넘는다. 그런데 공시지가는 이보다 한참 뒤떨어진다.2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34평형은 공시지가는 5억 4000만원 정도지만 시가는 8억원 가까이 나간다. 공시(公示)가격이 아닌 ‘공시(空示)가격’이다. 실거래정책하고는 거리가 한참 벗어난 정책이니 누가 주택정책을 믿겠는가. 분양가도 그렇다. 한동안 시민단체가 서울시 동시분양 아파트 분양가를 검증해 발표한 적이 있다. 치솟는 분양가를 잡아보자는 의도였지만 사업 인허가 주체인 지자체는 그저 참고용으로 치부하고 업체의 편만 들어 고분양가를 묵인해줬다. 정부와 여당이 분양가 검증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형식적인 운영으로 그치면 오히려 고분양가를 묵인해주는 들러리 기구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택정책은 실험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100% 완벽한 대책이 불가능할지 몰라도, 일단 한번 해보고 안 되면 또 다른 대책을 내밀어 보자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동산 투기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이상 국민이 믿지 않는 ‘○○대책’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찬희 산업부 차장 chani@seoul.co.kr
  • [심각한 의료기관 과대광고] 태반주사 ‘만병통치약’ 둔갑…환자들 현혹

    [심각한 의료기관 과대광고] 태반주사 ‘만병통치약’ 둔갑…환자들 현혹

    태반주사가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병·의원의 무분별한 태반주사 사용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병·의원들은 태반주사의 효능을 부풀리면서까지 태반요법을 권하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고의 자연요법으로 포장 의료기관의 태반주사 효능 부풀리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이 허가한 태반주사의 효능은 갱년기 장애 치료와 간기능 개선 단 두 가지다. 하지만 전국의 병·의원들은 전공 진료과목에 관계없이 태반주사 요법을 과대 선전하며 태반치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A산부인과는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갱년기 장애 치료, 항노화작용, 통증 개선, 피로회복, 아토피성 피부염 등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며 태반주사를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선전하고 있다. 서울의 B성형외과 역시 “류머티즘, 간염, 피부염, 만성피로, 기미까지 태반 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며 최고의 자연요법으로 포장 광고하고 있다. 대구의 C의원은 관절염과 골다공증 등을 전문으로 하면서 “태반주사가 기미나 잡티를 개선해 투명한 피부로 만들어준다.”며 태반치료를 권한다. 또 부산의 D비뇨기과는 “난치성 비뇨기과 질환에도 효과가 있어 발기부전, 성욕감퇴 등의 성기능 개선에도 효능을 보인다.”고 설명하는 등 병·의원을 막론하고 태반치료를 부추기고 있다. ●의사가 태반주사 직접 권하기도 이들 병·의원에서는 홈페이지에서뿐만 아니라 직접 환자를 상대로 태반주사를 권하기도 한다. 서울 서초동의 김모(48) 주부는 “갑상선에 이상이 있어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갑상선 질환 때문인지 쉽게 피로감을 느껴 다니던 병원에 얘기를 했더니 태반주사가 피로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권해 맞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주사를 맞고 오히려 얼굴에 열이 오르고 몸이 붓는 등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실에 사는 박모(38)씨도 병원의 권유로 태반주사를 맞았다. 박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이 고민이어서 피부과를 갔더니 태반주사가 주름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 동안 맞았다. 돈이 100만원 가까이 들었는데 피부는 확실히 좋아졌지만 주름이 펴진 건 잘 모르겠다.”며 비용대비 효과에 불만을 나타냈다. ●안전성 미검증 주사제도 활개 보건당국에서는 우후죽순 확산되는 태반주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안전성과 윤리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반주사가 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지방식약청은 요즘 태반주사제를 생산하는 A제약업체와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최근 태반주사제를 수거해 안전성 검사를 실시했는데,A업체의 태반주사제의 경우 실험쥐에 투약한 결과 그 쥐가 죽어 회수·폐기명령을 내렸지만 업체에서 불복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또 “1심에서는 업체의 신청이 기각됐지만, 고등법원에서 최종 판결때까지 회수명령을 정지하라고 결정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해당 태반주사제는 시중에 유통돼 병·의원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태반주사제는 태반의 바이러스 오염 가능성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와 태반 수집시 산모의 동의절차를 받지 않은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관련, 식약청은 ‘원료의약품신고지침’을 개정해 인태반의 바이러스를 없애는 불황화 공정과 산모의 바이러스 미감염 여부를 확인한 서류를 갖추도록 의무화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태반주사의 안전성 문제는 올 하반기에나 해결될 전망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심각한 의료기관 과대광고] ‘진료권 보장’ 내세워 보건당국선 뒷짐

    최근의 태반주사 열풍에는 병·의원의 허위·과대 광고가 한 몫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재조치를 취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병·의원에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할지조차 합의안 돼 법령해석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의사의 진료권 보장?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고유영역인 진료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사의 진료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치료법을 사용하거나 광고한다 해서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의료기술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약을 특정 질병에만 쓰고 그 외에는 못 쓰도록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의사가 직접 태반주사를 권유한 경우라 할지라도 선택은 환자의 몫이다. 다만 환자입장에서는 정보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의사의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는 의료진들의 직업윤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식약청도 최근 시중에 유통되는 태반 의약품의 과대·허위 광고에 대해 단속을 펼쳐 주름 개선, 아토피 치료 등의 효과를 과대 광고한 제약업체 4곳을 적발했지만, 의료기관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과대광고를 하더라도 병·의원의 고유권한인 진료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제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의료기관은 약사법이 아닌 의료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식약청이 단속할 권한이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의료법이냐 약사법이냐 식약청은 다만 “의료기관들이 홈페이지에 특정 태반 의약품을 거론하면서 아토피, 성기능 개선, 만성피로 등 허가되지 않은 효과를 표시한 내용을 해당 지자체에 통보해 의료법 위반사항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에서 학술목적 외에 특정업체의 의약품을 광고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약청 공문을 받은 지자체에서는 식약청이 약사법으로 단속할 수 있는 내용을 무턱대고 지자체로 내려보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자체의 보건팀 관계자는 “의약품의 제조방법·효능·성능에 관한 허위 또는 과대 광고를 하지 못한다는 약사법 63조를 위반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같은 법령 적용은 복지부를 통해서도 확인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사안별로 다를 수 있지만 특정 의약품의 이름을 명시한 경우라면 약사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복지부 내에서도 팀별로 법령해석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하지만, 약사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더라도 해당 지자체에서 단속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 (2) 실직 신불자 노총각의 눈물

    [마이너리티 리포트] (2) 실직 신불자 노총각의 눈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런, 아직 제 명함이 없으니 소개를 따로 해야겠네요. 제 이름은 주영길(가명)입니다. 올해 38살입니다.‘이태백’은 훨씬 지난 나이죠. 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전 3살 때 서울로 올라온 뒤 지금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세어봤더니 22번이더군요.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와 아파트 경비원을 하시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네요. 1994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교수님이 소개해준 중소기업에 다니게 됐죠. 가난이 싫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월급만으로는 가난을 떨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주식을 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직장도 H철강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주식도 호황이라 용돈 정도는 나오더라고요. 그 재미에 빠져 점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인생역전’을 노린 거죠. 그럴 즈음,‘IMF사태’가 닥쳤습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가가 폭락했고 회사마저 부도가 났습니다. 돈과 직장을 다 날리고 남은 것은 빚 5000만원뿐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취업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직장도 없고 빚만 있으니까 어느날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조금씩 갚아도 나이 50살까지 빚을 다 갚기도 어렵겠더라고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그렇게 3년을 보내다가 파산제도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2005년 5월 파산 신청을 해 12월에 면책을 받았습니다. 일단 마음은 홀가분해졌지만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창업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밑천도 없고 제 살아온 인생이 장애물이 되어서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얻기가 어렵더군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요? 당신은 내일 당장 회사가 망하든, 쫓겨나든 해서 실업자가 됐다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처음에야 여기저기 원서도 내보고 하겠지만 실패한 횟수가 늘어날수록 몸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다 포기하게 되는 거죠. 하루하루가 밝아와도 방안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좋은 정보가 없는지 쳐다보고 있는 게 요즘 생활입니다. 괜히 돌아다니면 돈만 들고, 또 오라는 곳도 없지요. 친구들과 약속도 잘 하지 않습니다. 한심할지 몰라도 어쩝니까, 움직이면 다 돈인데. 저 말고도 실업자들이 많겠지만 이렇게 되기 하루 아침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란 겁니다. 사실 제게 여자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가슴만 아픕니다. 나를 믿어주는 여자친구에게 행복한 미래를 선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02년 어느날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한달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때 잠시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입원한 사이 대체인력이 들어와 제 자리가 없어졌더군요. 무언가 착실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하루 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가 없어 우연히 지체아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제가 ‘신불자’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렸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여자친구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커피 한 잔 사줄 돈도 궁해서 만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창업을 하겠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지만 적더라도 일정한 월급을 받고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라는 눈칩니다. 제 나이 내일 모레면 40살입니다. 인생이 답답할 뿐입니다. 실업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는데, 예를 들어 제가 전공한 건축만 해도 인력이 100만입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25만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좋아서 백수로 지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수생은 대학이 학생들보다 적어서 생기는 것이죠. 일자리보다 회사가 적으니 당연히 실업자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디 개인 탓입니까. 당신도 날 그렇게 보고 있지 않나요. 당신과 내가 뭐가 다르죠. 오늘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일자리가 있고 나는 없을 뿐입니다. 당신도 당장 내일, 아니 일정기간 동안 회사를 다녀도 그만두면 그 다음날 실업자가 되는 겁니다. 당신은 나와 정말 다를까요.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황신혜 밴드’ 보컬 김형태 고언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동정하기보다 야단치는 사람이 있다. 미술가이면서 ‘황신혜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는 등 ‘팔방예술인’인 김형태씨. 그는 청년실업자들에게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그의 사이트(www.thegim.com)에 들러 동정이나 위로를 바랐다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김씨는 취업에 실패한 20대가 자신에게 더 깊은 동정을 갖고 처지를 탓하는 것을 꼬집는다. 그는 “취직을 못한 것은 특별히 할 줄 아는 일도, 간절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벌, 나이, 지연 등을 탓하며 취업에 실패했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에게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가 원하는 실력이 없어서”라며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김씨는 청년실업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무언가 얻으려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해서는 안된다. 일단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태백들에게 드는 회초리에는 질타만 담긴 것이 아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美 역대 대통령 절반 ‘우울증’

    에이브러햄 링컨은 절망감이 너무 심해 친구들은 그가 자살할지 모른다고 늘 걱정했다. 듀크대 메디컬 센터의 정신과 의사들은 14일(현지시간) 신경정신질환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링컨을 비롯한 미국 전직 대통령의 절반이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우울증이 태반인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주장했다.1789년부터 1974년까지 재임했던 역대 대통령 37명의 전기와 문서를 분석해 증상을 분류한 결과 얻어낸 결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웨스트 윙(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곳) 블루스’라 일컬으며 최고의 자리는 외로운 것이라고 보도했다. 링컨 대통령 밑에서 장군으로 있다가 뒤에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사교 모임을 피한 채 술독에 빠져 살았다.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태프트는 잠잘 때 숨쉬기에 곤란을 겪는 수면 무호흡증에 시달렸으며, 중요한 회의 중간에 잠이 드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조울증에 시달렸으며,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자 폭음을 일삼았다.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은 10대였던 아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우울증에 빠졌다. 조너선 데이비슨 박사는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시달리던 이들도 최상은 아니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신연숙칼럼] 사학, 숫자부터 줄여야 한다

    [신연숙칼럼] 사학, 숫자부터 줄여야 한다

    엄동설한에 야당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 겉돌고 중·고교 신입생 배정을 받느니 안 받느니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사학법 사태를 보면서 의아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학교가 사유재산이라는 사학 관계자들의 발언이 우선 놀랍다. 학교 이사회 개방이 사유재산침해라면 교육사업을 개인기업쯤으로 알았던 것 아닌가 한다. 비리사학을 감사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자 몇시간 만에 신입생배정 거부를 철회한 것도 그렇다. 사학 속을 알길없는 일반인들로서는 구린 게 많긴 많은가보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학생을 안 받겠다는 사학들의 엄포도 황당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특정 사학에 강제로 특정 학생들을 받으라고 떠다미는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닌 듯싶다. 무엇이 문제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혼란스러운 느낌과 함께 몇년 전 미국에서 사립중·고교 6곳을 차례로 돌아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사학이 너무 많고, 사학다운 사학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사학에도 잘못이 있지만 국가에도 책임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맡아야 할 보편교육의 태반을 사학에 떠다미는 양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사립의존율은 2005년 학생수 기준으로 중학교 18.9%, 고등학교 49.3%에 이른다. 전문대는 96.2%, 대학은 77.4%다. 대학까지가 국공립 체제인 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예외라 치고, 중·고교 교육의 사립 의존율은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상적으로 크다. 사학은 기원으로 볼 때 공교육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지만 근대국가 형성 이후 선진국들은 공교육체제 완성과 함께 중·고교 학생의 90% 이상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미국 사립학교들의 경우 오랜 역사의 학교들도 공교육이 좋아지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여학교는 기숙학생과 일반학생을 혼합해 운영하다 최근에는 남녀공학으로 형태를 변경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한 학급당 10명 내외의 밀착식 수업, 다양한 체육·과외·봉사활동 기회부여, 종교교육 등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버금가는 비싼 등록금과 공교육 품질의 향상으로 학생수가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물론 동북부의 최상급학교와 최근 한국 등 아시아권 조기유학생들이 몰려드는 학교는 다르지만 적어도 중고교 공교육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있는 게 선진국의 교육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학에 보편교육을 떠맡기고 있는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사학은 1969년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1974년 고교평준화제도 도입, 유별난 교육열로 인한 교육수요 폭발에 맞추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비정상적인 팽창을 가져왔다. 정부지원금을 바라보며 너도나도 학교를 만들다 보니 운영은 부실해지고 정부의 규제로 건학이념이라곤 온데간데 없는 사학의 공립화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공교육체제의 강화와 사학의 정비를 권고하고 싶다. 사학들이 원하는 대로 전면감사를 실시하여 부실사학은 정부가 과감히 인수하자. 정부지원을 받으며 투명하게 운영할 사학은 그것대로 키우되 다양한 교육 욕구에 부응해 특색있는 교육을 할 자립형 사립고도 과감하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 혁신형 국공립이든, 자립형 사립고든 특성화 교육을 한다며 성적순 선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단서다. 입시교육, 학벌폐해가 심각한 한국적 현실과 우수학생과 우수교사 등이 모두 빠져 나가는 공교육 공동화 현상을 고려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yshin@seoul.co.kr
  • [데스크시각]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 이대론 안된다/오승호 경제부장

    얼마전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면서 또 한번 씁쓸함을 느꼈다.‘학원비 지로납부’ 사용액을 빈칸으로 놔둬야 했기 때문이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자녀들의 학원비를 지로영수증으로 내면 연말정산때 신용카드소득공제 혜택을 받게 돼 있다. 학원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말정산때 학원비를 지로나 신용카드로 내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학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학원비를 지로나 신용카드로 내기란 쉽지 않다. 학원들이 꺼려하기 때문에 현금으로 내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학부모들이 태반이다. 사업자들의 탈세를 막고 근로자들에겐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착수금이나 성공보수금 등 변호사 수임료나 치료비를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정착되는 것은 요원한 실정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전체 신용카드 결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6%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변호사나 법무사 등 법률사무소에서 결제된 카드 소비액은 되레 15.7% 감소했다. 몇 해전 국세청을 출입할 때 겪은 일이다. 소득세 신고액을 기준으로 변리사나 관세사의 수입이 의사나 변호사보다 훨씬 많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변리사나 관세사들이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소득을 성실히 신고하면서 빚어지는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 소득이 더 많지는 않다는 요지였다. ‘유리알 지갑’으로 비유되는 평범한 봉급생활자들은 세금 측면에서만 보면 내년 생활이 올해보다 팍팍해질 수 있다. 올해 1%포인트 인하된 소득세율이 내년에 그대로 적용되지만, 세금감면이나 비과세 혜택이 줄어든다. 정부는 돈을 많이 벌고도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는 이들 때문에 봉급생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매월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샐러리맨들은 재벌들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 문제가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국세청이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을 대상으로 지난 22일부터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소득을 축소 신고해 탈세한 사실이 포착된 사람들이어서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세무조사만으로 탈세가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세무조사가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법 행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당국은 고민해야 한다. 세무조사가 전가보도(傳家寶刀)는 아니지만, 탈세를 막는 하나의 방법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럭저럭 넘기면 그만이라고 여길 수준의 세무조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 면역만 생겨 인력투입에 비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세무조사할 때만 바짝 엎드렸다가 당국과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내 고개를 드는 게 투기꾼이나 탈세자들의 속성이다. 따라서 이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을 지금보다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소득 자영업자를 포함한 개인사업자의 세무조사 비율이 얼마인지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작성하지는 않지만, 법인의 1.7%보다는 낮을 것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1년에 세무조사를 받는 이가 100명중 한 명 정도일 것이라는 얘기다. 인력이 모자라 여의치 않으면 탈세를 한 시점과 상관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보완책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세청이 탈세자의 고의성을 입증하지 않는 한,5년이 지나면 세금을 물리지 못하게 돼 있는 제도(국세부과 제척기간)를 손질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국세청은 영화 ‘MASH’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의 탈세를 적발해 세금추징은 물론 낮에는 배우 활동을 하게 하고, 밤에는 교도소에서 지내게 하는 아이디어로 탈세 방지 효과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가혹하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새해 화두로 던진 ‘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오승호 경제부장 osh@seoul.co.kr
  • [줄기세포 ‘진실게임’] 배아줄기세포 어떻게 만드나

    [줄기세포 ‘진실게임’] 배아줄기세포 어떻게 만드나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검증하기까지는 4∼5개월이 걸린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올해 만들었다고 밝힌 줄기세포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기간 때문이다. 노 이사장은 “줄기세포가 오염된 게 올 1월9일이라는 황 교수의 말을 인정해도 이후 줄기세포를 새로 만들어 3월15일 논문을 제출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황 교수팀은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우선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난치병 환자에게서 채취한 체세포 핵을 난자에 주입했다. 핵이식 난자를 만든 다음에는 전기자극을 통해 세포 융합을 유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배아줄기세포에 전기충격을 주는 이유는 핵이 없는 난자에 체세포 유전자가 들어가서 난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즉, 정자가 들어와서 수정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치다. 이어 핵이식 난자를 배반포(복제배아, 수정 후 4∼5일) 단계까지 발육시키게 된다. 이때 난자는 치료용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공 모양의 세포덩어리’(내부세포덩어리)와 태반으로 발전하는 ‘영양배엽세포’로 갈라진다. 여기서 내부세포덩어리만 분리,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할 수 있는 배반포 단계까지를 ‘치료용 복제’라고 한다. 배반포 단계의 난자를 여성의 자궁에 이식시키면 이는 ‘생식을 위한 인간 개체 복제’에 해당된다. 이후 분리된 내부세포덩어리는 다른 신체조직 등으로의 분화는 억제되고, 세포 개체수만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에서 배양이 시작된다. 이처럼 세포의 증식이 진행돼 적당한 크기와 밀도를 갖는 집합체가 형성되면 다시 좀 더 작은 세포 집합체들로 분리를 한다. 작은 집합체들은 다시 같은 조건의 새로운 배양접시로 옮겨져 배양된다. 세포를 떼어낸 다음 1차,2차,3차 등의 단계별 배양과정이 이뤄지는데, 이를 ‘계대배양’이라고 한다. 계대배양을 계속 반복하면 많은 양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황 교수팀의 경우 5∼6일마다 계대배양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배아줄기세포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계대배양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죽지 않는 ‘세포주’(Cell line)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일반 세포는 최대 50∼60회의 분열을 거치는 과정에서 염색체 말단의 노화 현상 때문에 죽는다. 반면 줄기세포는 염색체의 말단을 자꾸 복구시켜 줌으로써 ‘죽지 않는’ 세포주 형태로 배양된다. 이처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첫 단계부터 세포주 형태를 만들기까지는 일반적으로 4∼6주가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줄기세포는 제대로 발현이 되는지,46개의 염색체가 있는지, 테라토마가 나타나는지 등 검증을 거친다. 예컨대 면역결핍증상을 유발한 쥐에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하면 테라토마가 만들어져야 정상이다. 이같은 검증작업에는 보통 12주 정도가 걸린다. 따라서 체세포 복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검증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4∼5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후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이 확인된 세포들은 동결 보존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예상보다 하락” 중하위권 울상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16일 상위권과 중위권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수리·외국어영역 등에 어려운 문제들이 일부 출제되면서, 상위권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반면 중위권은 격차가 크게 벌어진 탓이다. 탐구영역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는 여전히 지적됐지만, 소위 ‘로또 수능’으로 불렸던 지난해와 같은 혼란은 없었다.●중위권 ‘울상’ 상위권 ‘담담’ 중위권 학생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외국어영역 등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점수가 나왔다며 “문제가 쉬워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고 울상을 짓기도 했다. 풍문여고 채유라(18)양은 “수리가 특히 점수가 낮았고, 다른 영역들도 예상보다 등급들이 떨어졌다. 서울 중위권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려울 것 같아 재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구정고 최혜정(18)양도 “언어와 외국어 등급이 예상보다 1∼2등급 떨어졌다. 한 문제로 등급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풍문여고 장미림(18)양은 “중상위권은 막판 스퍼트로 수능점수를 올리는 학생들이 많은데, 문제가 어려워져 버리니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막상 점수가 나오니 더 감을 못 잡겠다.”고 막막해했다. 반면 상위권 학생들은 “예상했던 점수 그대로”라는 반응이었다. 대일외고 이유미(18)양은 “예상했던 만큼, 실력껏 점수가 나와 불만은 없다. 탐구영역도 난이도가 높은 과목과 낮은 과목을 함께 선택해 손해도, 이익도 보지 않았다.”고 담담해했다.경복고 오택(18)군은 “언어가 3등급이 나와 좀 충격인 것 빼고는 괜찮게 나왔다.”면서 “수리·외국어에서 작년보다 어려워서 중위권이 손해를 많이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언어 1문제 틀리면 2등급” 원성 난이도에 대해서는 특히 언어영역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교사들도 “언어영역 변별력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고 박모(18)양은 “100점 만점에 97점인데 2등급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라면서 “점수는 20점씩 올랐는데도 등급은 오히려 떨어진 친구들이 태반”이라고 당황해했다. 풍문여고 김예지(18)양도 “언어는 1개를 틀렸을 뿐인데 2등급”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어려웠던 수리 ‘가’형은 상위권과 중위권의 반응이 엇갈렸다. 풍문여고 김소영(18)양은 “수리 ‘가’형이 생각보다 표준점수가 높아 다행”이라고 한 반면, 경복고 이지훈(18)군은 “수리 ‘가’형은 입시기관 분석보다도 등급이 안 나와 여전히 손해를 본 느낌”이라면서 “최상위권 빼고는 못 풀 문제가 꽤 있어 중위권은 점수를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탐구·수리영역이 당락 가를 것” 입시 전문가들은 탐구·수리영역이 당락을 가를 것이며, 상위권 합격선은 다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복고 이강수 3학년 부장은 “상위권과 중위권의 격차가 벌어진 것은 결국 변별력이 높아졌다는 뜻”이라면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언어는 일단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결국 이과는 수리와 과탐, 문과는 사탐이 당락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은 “사회탐구에서는 한국지리·법과사회·사회문화, 과학탐구에서는 화학·생물을 선택한 수험생이 유리하며, 한국근현대사·세계사·물리·지구과학 응시자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은 “외국어영역의 고득점 여부가 당락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며, 수리 가·나형의 점수차가 줄어 교차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효용 이효연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독자의 소리] 케이블방송 음란기준 강화해야/김주현

    최근 케이블TV가 대중화됨에 따라 선정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케이블TV를 보다 보면 가족들이 도저히 같이 볼 수 없는 장면이 속출한다. 예를 들어 에로 영화의 경우도 에로물 수준이 아니라 아예 포르노다. 성기와 음모가 노출되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포르노 전용 영화관에나 걸어야 할 영화가 태반이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영화도 많다. 대낮에 방송하는 속옷 광고도 어른인 내가 봐도 낯이 뜨거울 때가 많다. 특별히 따로 요금을 내는 유료 채널은 특히 심하다. 케이블에 가입만 하면 공통으로 나오는 채널의 경우도 선정·폭력성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청소년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케이블 방송사들은 가입자를 늘리려는 노력도 좋지만 지상파 방송 못지않은 공익성이 요구되는 만큼 대오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방송위원회도 지상파 방송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에 대해 음란물 기준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주현<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 [아침을 먹자] 입시 앞둔 제자들에 격려의 선물

    [아침을 먹자] 입시 앞둔 제자들에 격려의 선물

    “초보딱지를 떼지 못한 신출내기 교사입니다. 우리반 아이들이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네요. 손수 챙겨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총각선생이라 솜씨가 미천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파동 성포중학교 3학년 10반 담임 윤종일(33) 선생님이 서울신문과 ㈜CJ가 진행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에 사연을 보내왔다. 비평준화 지역인 안산시에서 9일 고교 입학시험을 치를 제자들에게 겨울철 별미인 백설 ‘다담 바지락 순두부찌개용’으로 만든 아침도시락을 선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오는 아이들이 태반인 교실에 들렀다가도 뭐가 그리 바쁜지 허겁지겁 종례를 마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라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3년 전 국어교사로 발령받은 윤 선생님은 중3학생을 처음 맡아서인지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행운이 주어진다면 10개라도 좋습니다.” 학생 43명이 다 먹기에는 부족하지만 7일 다담 도시락 15개를 보냈다.‘햇반’ 밥과 더불어 김장독 시스템으로 발효, 독에서 갓 꺼낸 듯한 숙성김치 ‘햇김치’와 위생적인 간편반찬 ‘햇찬’ 소고기 장조림, 무말랭이를 밑반찬으로 넣었다. 당첨 소식을 하루 전에 확인한 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아침에 먹을 햇반을 갖고 오라고 얘기했다.20여명의 학생들이 챙겨왔다. 이날 오전 8시30분, 순두부와 밥이 도착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배달된 거라 뜨겁진 않고, 따끈했다. 책상을 붙이고 마주 앉은 아이들은 반찬과 밥을 나누더니 신나게 먹었다. 소식을 들은 방송반 학생들은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포즈를 취하느라, 밥을 먹느라 아이들은 분주했다. 바지락 순두부찌개와 함께 온 양념을 다 넣은 아이들은 “너무 짜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맛을 보며 조금씩 더하는 게 노하우다.10여분 만에 밥과 반찬을 뚝딱 해치웠다. 윤 선생님은 아이들 주변을 돌며 어깨를 토닥거렸다. “안산지역은 결손가정이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형이나 삼촌으로, 학교를 집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그 노릇을 조금 한 것 같네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시네드라이브] 충무로 ‘정자’ 전성시대

    황정민, 정재영이 각각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 흥행작 ‘너는 내 운명’과 ‘나의 결혼원정기’. 스크린을 텍스트로 뜯어보는 기자의 머릿속엔 이들 영화 속의 다음 장면들이 유독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너는 내 운명’의 장면1-짝사랑하는 여자를 맘에 품고 자위를 하다 노모에게 들켜버린 시골 노총각. 마흔이 다 되도록 장가 못간 그 아들의 팬티를 빨며 늘어놓는 노모의 잔소리,“세상에∼암만 빨아도 앞이 누렇네∼.” #‘나의 결혼원정기’의 장면1-번번이 몽정을 해서 난감한 서른여덟살의 시골 노총각. 세수간에서 몰래 팬티를 빨아야 하는 그의 신세타령,“차라리 여자들처럼 폐경기라도 왔으면….” 순박한 캐릭터들이라 둘 모두 폭소를 이끌어낸 단순 코믹 시퀀스였다. 하지만 이면을 곱씹었을 때 문득 고개드는 생각. 충무로가 ‘수컷의 욕망’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다기하게 드러낸 적이 또 있었나? 그러고 보니 또 있다. 아랫방에 세든 누나를 상대로 몽정하는 14세 주인공이 ‘사랑해 말순씨’에도 나왔다. 중학생 주인공의 그 몽정의 기억은, 성장통 드라마의 더없이 상징적인 언표가 되어 스크린을 활개쳤다. 장면장면들을 시시콜콜 헤집을 것까지도 없다. 최근 선보였거나 개봉할 영화들 가운데는 ‘남성성’ 자체를 무기로 앞세운 것들이 태반이다. 남 주인공의 ‘쎈’ 캐릭터가 매력포인트로 찍힌 ‘태풍’‘야수’같은 영화에, 심지어 연애방정식을 풀어가는 주인공이 남자들뿐인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작품도 흥행 중이다.노골적 남성지향형의 한국영화 트렌드는 제목만 일별해도 감잡힌다.‘흡혈형사 나도열’‘맨발의 기봉씨’ 등 남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뽑아올리고,‘음란서생’‘싸움의 기술’‘투사부일체’ 등 남성 대명사 같은 단어를 조합하는가 하면, 아예 ‘열혈남아’라 못박는 선언적 제목까지 등장했다. 조폭액션물에 제한되지 않고 전방위 장르에서 남성미가 키워드로 부각되는 현상은 틀림없이 전에 없었다. “영화의 주요 소비자층이 20대 여성이니 남성 캐릭터 우위의 영화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게 영화 기획자들의 얘기다. 해석인즉 ‘수요가 있어 공급이 있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겠지만, 황우석 난자 논란 현실 쪽을 반사적으로 곁눈질하게 되는 건 왜일까.‘난자 수난시대’에 충무로는 ‘정자의 전성시대’라…. 영화는 현실의 신랄한 반영이라 했다. 그 정의가 과연 이런 경우에도 성립되는 걸까?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학력과잉/육철수 논설위원

    공자님은 말씀하셨다.“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그 시대야 많이 배우면 넘치는 지식을 주체 못해서 제자를 가르치기라도 했을 것이다. 배워서 남 줄 것도 아니고 식자우환만 피하면 인생이 편안했을 터이니 학문이 어찌 즐겁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배워도 써먹을 데가 마땅찮아 박학다식도 때로는 거추장스럽다. 너도나도 대학을 나오는 통에, 또 그래야 ‘사람행세’를 할 수 있는 세태여서 그에 걸맞은 직업 구하기도 여간 쉽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선임연구위원의 ‘청년층 학력과잉 실태’ 연구를 보면 많이 배워서 서글프고 기막힌 한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15∼30세 청년층 가운데 29.1%가 해당 직업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학력이라고 한다. 어느 취업사이트에 따르면 연령구분 없이 구직자의 68%가 하향취업을 한다니 국민의 상당수가 고학력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튼튼한 체력과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마음자세, 그리고 직업정신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족할 환경미화원 모집에 대졸자가 구름처럼 몰리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구직 현주소다. 한국노동연구원(1983∼2003년 통계)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인당 공·사교육비가 1억 1190만∼1억 3071만원 든다고 한다. 대학까지 기껏 가르쳐 놔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직무교육에 1인당 1억원이 넘게 든다니 죽어나는 건 돈이다. 대졸자가 21세부터 60세까지 직장생활을 한다면 평균 2억 5853만원을 번다는데, 대졸자의 상당수는 본전 찾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1975년 28만명이던 대학생 수가 2004년엔 275만명으로 30여년만에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일자리는 턱없이 모자라고 대졸자는 넘쳐나니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나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이라는 달갑잖은 말이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 쓸데없는 학력 인플레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돈만 주고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보결석사’와 ‘보결박사’도 모르긴 몰라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남아도는 고학력자는 정말 처치 곤란이다. 인적자본(휴먼캐피털)이 풍부한 건 좋으나, 능력에 딱맞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회는 그저 낭비일 뿐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 고용안정센터 희망찾기 르포

    [안동환기자의 현장+] 고용안정센터 희망찾기 르포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7개월.”외식업체 점장이었던 이모씨가 지난 20일 대기표를 구겨쥔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고용안정센터에 실업급여 85만원을 타러 왔다. 집에 있는 날이 늘어갈수록 초조하다. 서른이면 ‘청춘’인데도 말이다. 석달 동안 30곳에 이력서를 내고 6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소식이 없다. 이씨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 보기가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 다음 달이면 이마저 끊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고용불안의 시대. 어느날 사무실 입구에 붙은 정리해고 명단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한다면…. 기자는 서울·강남·북부 등 세 곳의 종합고용안정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을 만났다. 좌절과 희망의 교차로에서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패자 부활전’. 용기있는 당신이라면 실직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되지 않을까. ●희망아, 희망아 어디에 있니? 지난 25일 오전 서울 수송동 서울센터.20대부터 40대까지 10명의 실직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흘 동안 집단상담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도록 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날마다 6시간을 하루씩 번갈아가며 ‘나를 만나는 날’‘너를 만나는 날’‘희망으로 가는 날’을 경험한다. 나에게서, 우리에게서 취업의 해답을 발견해보자는 취지다. 강사 유명희(35·여)씨가 “여러분 모두 이 프로그램의 18기 동기”라고 소개한다. 어느새 동기가 된 참석자들. 짝을 이뤄 서로를 소개하고 즉석에서 자기만의 대화명을 만들자 서먹했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캐나다로 이민 갔다가 쓰라린 실패만 겪고 돌아온 엔지니어 출신 ‘진짜산’(43), 체불임금도 못받고 해고된 ‘프리덤’(35·여), 주차관리직에서 밀려난 두 아이의 아빠 ‘반석’(34), 실업급여 기간이 끝난 ‘파란’(32),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목마름’(32·여), 취업재수생 ‘파이팅’(24·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취업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맛봤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장 버리고 싶은 것과 가장 갖고 싶은 것 한가지씩을 정해 교환하는 요술상점 시간이다.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아픔과 고민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씨는 각자 적어낸 것을 벽에 붙인다.‘경제적 안정’‘비전’‘용기’‘희망’‘지혜’. 이제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을 들고 나와 유씨와 대화를 나눈다. 진짜산은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자기의 ‘분노’를 ‘경제적 안정’과 바꾸고 싶다고 소망한다. 새 출발을 위해 이민을 선택했지만 가족들만 고생시켰다는 자책감이 그를 괴롭혀 왔다. 목마름은 ‘두려움’을 ‘희망’으로 교환한 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군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면접관 앞에만 서면 얼어붙는다는 파이팅은 ‘소심함’을 ‘용기’로, 파란은 거듭된 실패로 인한 ‘자책감’을 ‘지혜’로 바꿨다. 박수를 치며 서로를 격려한다. 사흘 뒤 기자는 이들과 함께 ‘희망 2005-145호’라고 적힌 수료증을 받았다. 상장이라도 받은 듯 모두들 밝은 웃음이 넘친다. 혼자만의 희망이 아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희망. 그래서 더욱 힘이 나는 희망이 아닐까. ●실직자 하루 300~500명 몰려 서울 역삼동 강남센터 교육장.33명의 신참 실업급여 수급자들이 좌석을 꽉 채웠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 등 천차만별이다. 출산이 얼마 안 남은 임신부를 포함, 여성도 절반이나 된다. 홍보 비디오를 시청하는 분위기는 흡사 예비군 훈련장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지루함마저 묻어난다. 생계가 급한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실업급여 액수다. 서울 제기동의 북부센터. 매일 300∼500명의 실직자가 밀려든다. 영세민 밀집지역이라 다른 곳의 2∼3배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하루 500명 정도가 찾으면 2억원이 집행된다.”면서 “수급자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젊은 애들이 많은 게야.” 구직을 위해 온 노인들이 혀를 찬다. 센터에는 40∼50대보다 20∼30대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지난해 20대 실업급여 수급자는 13만 6213명.2002년 8만 7323명,2003년 10만 7791명 등 꾸준한 증가세다.30대는 2002년 8만 9173명,2003년 11만 1787명,2004년 14만 1620명이다. 실업급여에 의지한 자발적 실직자도 많다. 센터에서 만난 정모(26·여)씨. 그는 첫 직장에서 3년 만에 해고당했다. 지난달 다른 회사에 입사가 결정됐지만 포기했다. 임금이 낮아 실업급여를 받는 게 더 나았다. 통신회사의 고객센터 상담원이었던 28세 여성도 내년 봄까지 실업급여로 버틸 참이다. ●억대 연봉자도 실업급여는 내 돈 피보험자가 55만명으로 국내 최대인 강남센터는 부유층 실직자도 많다.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외국계 금융회사의 전직 사장부터 명예퇴직한 대기업 이사까지 실업급여는 어쨌든 ‘받아야 할 내 돈’으로 인식된다. 상담창구에서 만난 박상호(59·가명)씨. 그는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정부부처 국장을 하다 2002년 대기업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계약기간 3년이 만료된 지난달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에게 책정된 실업급여는 최고액인 105만원. 법률로 인정된 일일 실업급여 최고액 3만 5000원이 적용된 것이다. 박씨는 “당장 수입이 끊어진 마당에 많고 적고를 떠나 안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실직자 신세가 돼 보니 이제야 그 심정을 알 것 같다.”고 동감한다. 박씨는 “계약만료 전부터 중소기업의 재무이사나 감사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면서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꼭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퇴직금이 4억원이 넘는 수급자도 2주에 한번씩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구직활동 증명을 하러 온다. 센터 관계자는 “재취업이 되면 지급이 중단되지만 대부분은 인정된 기간 동안 끝까지 돈을 받는다.”면서 “재취업 때 받는 취업촉진 수당까지도 더 꼼꼼하게 챙긴다.”고 말한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는 이렇게 독백한다.“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그의 독백은 세상으로부터 감금당한 실직자의 심정과 닮아 있다. 센터 한 구석에서 생활정보지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던 김모(45)씨.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울고 싶은 심정이란다. 지난 5월까지 작은 광고회사의 관리부장이었던 그는 하루아침에 250만원 월급쟁이에서 97만원짜리 실업급여 수급자가 됐다. 동그라미 표시를 해도 큰 기대는 없다. 다단계판매원 아니면 단순노무직이다. 백수생활 넉달 동안 생긴 깨달음이랄까. 그는 “야멸차게 밀어낸 회사에 울분을 느껴봐야 내 몸만 상할 뿐”이라며 “빨리 털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거래처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선뜻 받아준다는 곳은 없다. 김씨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밀려나고, 관리직 경력을 살리고 싶지만 4대 보험도 적용 안 되고 봉급이 터무니없이 적다.”면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게 괴롭다.”고 긴 한숨을 내쉰다. 김씨의 가슴에 내려앉은 서릿발을 녹여줄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sunstory@seoul.co.kr
  •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허수경 지음

    독일 뮌스터대에서 고고학을 공부중인 시인 허수경(41)이 네번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이후 4년 만이다. 시집에 실린 시의 태반은 ‘반(反)전쟁시’들이다. 중동 고대유적 발굴현장에서 아득한 시간의 지층을 파내려 갈수록 시인의 의식은 오히려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는 지상의 현실로 향했던가 보다.‘엄마/대포 소리가 저리도 가까운데/꽃피는 소리가 들려요.’(‘엄마’중)라거나 ‘낯선 이들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퍼런 큰 새를 타고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폭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그렇게 웃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중) 등의 시구는 전쟁과 파괴의 역사를 반복해온 인류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표제작격인 ‘물 좀 가져다 주어요’에서 ‘아이들 자라는 시간 청동으로 된 시간/차가운 시간 속 뜨겁게 자라는 군인들//아이들이 앉아 있는 땅속에서 감자는/아직 감자의 시간을 사네.’라고 노래하던 시인은 ‘물 좀 가져다 주어요/물은 별보다 멀리 있으므로/별보다 먼 곳에 도달해서/물을 마시기에는/아이들의 다리는 아직 작아요.’라며 연민과 사랑을 호소한다. 현실인식은 냉철하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시집 말미에 ‘이런 비관적인 세계 전망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나지막한 희망, 그 희망을 그대에게 보낸다.’고 썼다. 문학평론가 성민엽은 “고고학적 상상력의 비관주의가 여성성과 결합하여 빚어낸 희망의 언어”라고 평했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집’ 등을 낸 시인은 지난 92년부터 독일에 머물고 있다.6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Doctor & Disease] ‘태교전도사’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

    [Doctor & Disease] ‘태교전도사’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

    “흔히 깜짝 놀랄 상황에서 ‘애 떨어지겠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닙니다. 습관성 유산의 30∼40%는 원인이 드러나지 않는 스트레스성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좀 극단적으로 말해 임산부는 태교를 몰라도 주변 사람들은 반드시 태교를 알아야 합니다.” 국내외에서 습관성 유산과 고위험 임신 부문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박사의 태교론은 이렇듯 일반적인 상식과는 전혀 다른 곳에다 방점을 찍고 있다. 안팎에서 ‘태교 전도사’로 통하는 그를 만나 ‘좋은 태교’를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박 박사께서는 ‘태교는 과학’이라고 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태교가 비과학적이라는 시각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현대 과학의 근간인 뉴턴의 에너지론은 눈에 안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태동한 학문이 양자물리학인데, 태교를 포함한 심신의학(心身醫學)은 이 이론으로 비로소 설명이 가능하게 됐다. 또 다른 측면은, 과학은 실용성 관점에서도 평가되는데, 수천년 동안 효용이 인정돼 온 태교의 실용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 과학성은 동·서양의학 중 어디에 근거한 개념인가. -사람을 세분화된 장기로 보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시각은 동양의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아플 경우 심장 뿐 아니라 간 등 다른 장기와의 연관성, 나아가서 인체와 마음의 상태까지도 살피는 것이 참 의사가 추구해야 할 길 아니겠는가. ▶의학자가 다분히 동양적 태교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이유가 궁금한데….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습관성 유산을 다루다 보면 원인불명의 환자들이 많은데, 그들 대부분이 몸보다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의학용어가 바로 ‘TLC(Tender Loving Care:사랑으로 감싸는 것)´인데, 실제로 ‘임산부를 이해하고 사랑하면’ 습관성 유산이 대부분 치료된다. 알고 보니 이 TLC가 우리의 전통 태교방식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이후 관심있는 교수 50명이 모여 지난 99년에 대한태교연구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한 인간의 품성이나 능력, 자질이 얼마나 태교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가. -당연히 전인적인 영향을 받는다.97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의 ‘인간의 IQ는 부모의 유전자보다, 임신 중 자궁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인간의 IQ는 부모의 유전자 영향이 가장 크다.’는 기존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이론을 뒤집고 지금까지도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태교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상황도 연출되곤 한다. 이런 작위적 태교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천재를 만들겠다는 등 임산부의 과욕이 앞서 웃지못할 일들이 빚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임산부의 욕심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태반 혈관을 수축시켜 저체중아를 만들며, 저체중아는 정상인에 비해 훨씬 많은 질병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보면 된다. ▶일부에서는 태교의 기능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태교의 효능은 무엇인가. 예컨대 태아가 영어 음악 미술 등의 잠재적 자질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태교는 효험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임산부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처럼 원초적 사랑이고 자연스러운 관심의 발현이다. 특정 분야의 천재를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이미 태교가 아니다. ▶그러면 좋은 태교란 무엇인가. -좋은 태교란 한마디로 ‘아기의 마음, 아기의 모습으로 10개월을 사는 것’이다. 이밖에 의도를 가진 잡다한 방법론은 모두 바른 태교가 아니다. ▶좋은 태교와 나쁜 태교를 어떻게 가르는가. -태교의 과학성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우선이다. 부담을 느끼거나 강요된 태교를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태교를 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이다. 우리의 환경은 대부분 임산부에게 적절하지 않다.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와 직장 동료들은 소음과 스트레스 등으로부터 임산부가 보호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의 태교 실태는 어떤가. -결코 임산부를 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IMF때도 임산부가 직장에서 가장 먼저 쫓겨났지 않았나. ▶이런 일이 왜 나타났다고 보는가. -배려심의 결핍이다. 국민 모두가 임산부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의 저출산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그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태교는 국민교육이 되어야 한다. 태교를 임산부와 가족만을 위한 일로 보는 건 소아적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될 아기에 대한 책임은 사회와 국가 모두에 있는 만큼 성장기부터 이런 점을 교육해야 옳다. 그때가 아니면 정말 할 수 없는 것이 태교 아닌가. ▶좋은 태교를 위한 제언을 달라. -다시 말하지만 태교는 ‘본인이 원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10개월을 사는 것’이다. 임산부를 욕심이나 부담, 강요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 또 환경이 좋은 태교의 기본임을 인식해 생활환경은 물론 제도개선 등을 통해 모두가 태교에 동참해야 한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있는 투자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박문일 박사는 ▲한양대의대 및 대학원(박사) ▲미국 유타대의대에서 생식면역학 연구 ▲영국 옥스퍼드의대에서 태아심박동 연구 ▲한국모자보건학회 부회장 ▲대한성의학회 정보위원장 ▲대한태교연구회 회장 ▲대한민국 과학기술우수논문상(1990,1991)·세계주산의학회 우수논문상·대한의용생체공학회 의공학상·대한주산의학회 최우수논문상·세계산부인과학회 최우수 임상연구논문상 등 수상 ▲‘태교는 과학이다’‘엄마와 아이를 위한 출산혁명’‘산과학 전자교과서’등 저술 ▲현, 한양대의대 부학장·한양대 의생명과학연구원장 ■ 산모에 스트레스는 유산·저체중아등 고위험 임신 요인 박 박사는 “태교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임산부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아를 포함한 인체가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혈관이 수축돼 혈압을 올리며, 호흡수 증가, 체온 상승, 전신의 근육 긴장과 함께 혈액의 산성화를 초래한다. 산성 혈액은 ‘태아곤란증’을 초래, 자연분만을 어렵게 하며, 기형 등 갖가지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임산부의 스트레스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해 태아의 뇌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동물실험 결과 강한 스트레스가 유산·사산·조산과 저체중아 등 고위험 임신의 직접적인 요인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태교의 완성이라는 출산에 이르기까지 임산부가 우선 배려받고, 보호되는 문화를 갖지 못했다. 박 박사는 “이런 거친 문화는 필연적으로 세계 최고의 저출산과 제왕절개 수술, 세계 최저의 모유수유로 이어지게 됐다.”며 “중요한 것은 임산부보다 주변 사람들이 임신의 신성함과 태교의 중요성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며, 이런 차원에서 태교 및 출산문화의 기틀을 새로 세우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펴오고 있는 ‘임산부 사랑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