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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시대회서 나타난 초·중·고 한자실력

    ◎쓰기 약하고 같은소리 글자 뜻구별 못해/학교 교육관심도 따라 성적 천차만별 단군,애국가,태극기,무궁화,한반도,홍익인간,배달민족.중학교 1학년 한문교과서 맨 앞부분에 나오지만 제대로 쓰기란 쉽지 않은 한자들이다. 성균관대는 지난달 26일 개최한 ‘제2회 전국 초·중·고생 한자·한문 경시대회’에 참가한 2천389명에 대한 채점을 마친 결과,이들 한자를 전부 쓴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12일 밝혔다.특히 배달민족과 단군 등에서 많이 틀렸다. 대회는 초등학생 초급(1∼3학년)과 상급(4∼6학년),중학생,고등학생 등 4분야로 나눠 전국 477개 학교에서 분야별로 3명씩 추천받은 학생들과 한문학습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문제는 한자 독음달기,쓰기,문장 이해력 등으로 분류돼 60∼68문항이 출제됐다. 채점결과 학생들은 쓰기에 약했다.주경야독의 낮 주자를 책 서로,백두산의 흰 백자를 일백 백으로 쓰는 식이었다. 학생들은 한자의 뜻을 구별하는 것도 어려워했다.많은 학생들이 ‘기술을 습득하다’에서 익힐 습자 대신 주울 습자를,학문의 문자를 글월 문이나 문 문으로 선택했다. 채점 결과,양극화 현상이 뚜렸했다.고교생 분야에서 1등이 150점 만점에 126점을 얻은데 비해 대표학생 3명의 점수를 모두 합해도 100점이 못되는 학교도 있었다.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7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10%정도였으나 40점 이하도 57%나 됐다. 대회를 주관한 한문교육과의 이명학 학과장(43)은 “채점 결과 학교장 등이 한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킨 학교들이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고 밝히고 “한문을 어려서부터 조금씩 공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14일 시상식을 갖는다.
  • 붉은 악마 초상권(외언내언)

    러시아의 소설가 고리키는 “가난한 사람이 신문에 나오는 것은 범죄를 저질렀을때뿐”이라고 못박는다.‘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비록 성인의 사진이라도 언제나 지상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성당에서도 성인의 화상(Icon)으로 쓰일수 없다’고 쓰고 있다.남의 사진을 사용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그러나 유명인이 되면 유명세를 내게된다.매스컴의 관심을 끌거나 CF에 나가고 신문광고에도 실린다.그러나 이 모든 절차는 정확한 계약에 의해 엄밀하게 이루어진다. 98프랑스월드컵 축구예선전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급부상한 ‘붉은 악마’가 자신들의 이미지를 사전동의없이 상품광고에 무단사용하고 있는 10여개 기업들을 상대로 ‘이미지사용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고 한다.‘붉은 악마’의 응원은 여일하게 일사불란하면서도 함성을 울리고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어디서나 선수들을 독려하여 힘을 주고 있다.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축구의 곁에 ‘붉은 악마’가 있음을 든든하게 여길 정도다.그들이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래서 유명해졌다. 그런 ‘붉은 악마’의 ‘Red Devils’를 캔음료에 써넣는가 하면 응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마구 사용한다면 그것은 초상권 침해에 틀림없다.승락없이 자기의 초상이 전시되거나 무단사용됐다면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더구나 5만여명이 한결같은 질서와 화합을 보이기위해선 그만한 약속과 훈련이 따랐을 것이다.당연히 허락을 받고 정식절차를 밟았어야 한다. 인기댄스그룹 H.O.T는 자신들의 사진을 무단게재한 연예잡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1억5천7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무명시절에 찍은 사진을 유명해진 다음에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한 탤런트는 5천8백만원을 배상받기도 했다.적금을 부어서까지 내년 프랑스월드컵 응원에도 갈 정도로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하는 ‘붉은 악마’는 월드컵축구 한국대표팀 공식응원단이 될만큼 어느새 유명해져 버렸다.그런 그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얍삽한 상혼에 이용하려 했다는건 어딘지 낯부끄러운 노릇일 것 같다.
  • 김부자 초상 배지/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배지(Badge)는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옷이나 모자 등에 붙이는 표장이다.학생이나 회사원의 옷깃에 붙은 배지를 보면 그가 어느 학교,어떤 회사에 다니는 걸 알 수 있고 ‘국’자가 새겨진 번쩍거리는 금배지는 그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임을 알게 해준다.이처럼 배지는 착용한 사람의 소속이나 신분을 나타내준다.그렇지만 서울시민이라고 해서 서울시 배지를 착용하진 않는다.대한민국 국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태극기나 나라문장 배지를 착용하는 사람도 없다.외국도 마찬가지다.그러니 옷깃에 착용한 배지를 보고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알 도리는 없다.다만 예외적인 곳이 한군데 있다.북한이 그렇다.그들은 왼쪽 가슴께나 옷깃에 대부분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다.그걸 보면 북한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북한인들이 지구상에선 유일하게 그들만의 표지를 달고 다니는 까닭은 무엇일까.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자신들이 ‘김일성 나라’사람임을 밝히고 김일성의 초상을 살아 있는 수령처럼 모신다는 뜻이라고 한다.보통 평균인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했을때 사람들은 북한인들의 옷깃에 붙어있는 배지의 모양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 했었다.예상했던 대로 곧 김일성 대신 김정일의 초상이 새겨진 배지가 등장했다.그렇지만 김정일 배지는 일부 간부들만 착용하고 다녔을 뿐 일반 주민들은 여전히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녔다.그런데 최근들어 왼쪽 가슴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함께 들어 있는 새로운 배지를 착용한 북한 여성이 북경에서 목격됐다.이 배지를 단 여인은 마중나온 벤츠를 타고 사라졌다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미루어 고위층 여자로 보였고 따라서 이 배지는 아직은 상층부에서만 통용되고 있는듯 하다는 분석도 나왔다.어찌됐든 김일성 부자 초상이 나란히 담긴 새 배지는 “김정일에 의해 수령의 위업이 100% 계승되고 있다”는 ‘김일성=김정일’동격화 선전책동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이 배지에 대해 북측은 필시 김정일의 효심에서 비롯된 것인양 선전할 것이다.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아직도 김정일은 아버지의후광없이는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새 배지도 김일성의 후광을 염두에 둔 얄팍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 잠실벌 한·일 프로야구·월드컵축구 열리던 날

    ◎아쉬운 승부… 돋보인 시민의식/깨끗한 응원대결… 경기후엔 자발적 청소/대부분 대중교통 이용해 주변체증 없어/일 국민들 “본선진출 희망있다” 환호성 월드컵 축구 한·일전에서 한국팀이 반드시 이길 것으로 믿었던 시민들은 1일 선수들이 시종 졸전을 벌인 끝에 일본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정신력에서 진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이날 잠실벌에는 축구경기와 함께 서울신문사와 주니치신문사가 공동주최한 한·일 프로야구 골든볼시리즈가 열려 10만여명의 관객이 몰려 승리를 기원하며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많은 시민들은 2분만에 1골을 허용할 때만해도 곧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졌으나 37분 다시 한 골을 내주자 패배를 예상한듯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서울역 구내에 마련된 5개의 TV화면 앞에는 각각 4백∼5백여명씩의 시민들이 모여 열띤 응원을 폈다.후반 들어 한때 한국팀의 공격이 이어지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이미 사놓은 버스표의 시간을 미뤄가며 우리 선수들의 슈팅 장면 하나하나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상오 7시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위해 몰려든 열성 관중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줄을 서기 시작,상오 10시가 넘으면서 3천여명이 3개의 줄로 3백여m를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아예 가정용 쓰레기봉투를 들고온 입장객도 눈에 띄었다. ○…응원단 ‘붉은악마들’을 비롯한 7만여 관중들은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한층 경기분위기를 고조시켰다.관중들은 우리선수들의 절묘한 슈팅이나 패스가 나올때마다 탄성과 함께 파도타기와 종이가루를 뿌리는 등 폭발적인 응원을 보냈다. ○…경기가 끝난뒤 1시간여 동안 양국 응원단은 응원전을 펼쳤다.일본응원단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울트라 니폰’을 연호했고 우리 응원단은 패배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일반 관중들은 경찰과 함께 주위에 흩어진 쓰레기를 주워 미리 준비한 봉투에 담아 나오는 등 지난 경기들과는 다른 선진적 관전태도를 보였다. ○…경기가 끝난뒤 8만여 관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지하철역과 인도가 심한 혼잡을 빚었다. 올림픽대로 진입로 등 주변 도로도 주차장에 있던 차량이 몰려 일시적 정체를 빚었다. 그러나 시민 대부분이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경기장 주변의 혼잡은 곧 풀렸다. ○…일본이 한국과의 원정경기에서 승리,내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이 살아나자 TV를 지켜본 일본의 축구팬들과 국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선수들의 선전을 자축. 이날 경기를 위성으로 생중계한 후지TV와 NHK 위성채널을 비롯한 방송 등 언론들도 한국전 승리로 본선진출 가능성이 다시 부활됐다고 중요뉴스로 보도하면서 특히 84년 이후 한·일 라이벌전 적지경기에서 13년만에 첫 승리한데도 큰 의미를 부여.
  • 태극기 표준색도 지정 고시

    ◎50년만에 첫 국제 통용색표기 방식으로/총무처,견본 5만여장 이달중에 보급 [박정현 기자] 정부는 24일 50년만에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색표기방식으로 태극기의 통일된 표준색도를 지정·고시했다. 총무처는 표준색도협의회 등 전문가들의 자문과 학생·시민등의 의견수렵을 거쳐 국제조명위원회(CIE) 등 3가지 방식의 표준색도를 지정했다. 총무처는 태극기 표준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 중 태극기견본 약 5만장을 제작해 정부기관·각급학겨·언론·출판사·국기제작업체·재외공관등에 보급할 방침이다. 총무처 최석충 의정국장은 “학생 등이 태극기를 쉽게 그릴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용 크레파스,물감을 개발해 보급할 방침”이라며 “태극기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태극기 사랑운동이 한층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남북 서로 다른 한글날/유만근 성균관대 교수(굄돌)

    한글날이 남한에서는 10월9일,북한에서는 1월15일이다.10월9일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완성된 때를 무심코 문자 반포시기로 여겨 양력을 환산해서 쓰는 것이고,1월15일은 문자 자체가 완성된 날짜를 염두에 두고 북한에서 다소 조정해서 정한 것이다.그런데 ‘문자 완성시기’를 염두에 둔 것까지는 좋지만,어차피 정확하지도 않은 날짜를 공연히 너무 뒤로 잡아,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1443년 대신 그 다음해 1월로 정한 것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니었을까? 왕조실록 작성 당시,사건시기가 어느 달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대체로 연말에 기록한데다가,오늘날에도 옛 기록상 불분명한 날짜를 처리할 때 월말로 잡는 방식에 따라 문자완성 추정 날짜가 뒤로,뒤로 이중으로 내리밀려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 당시에 새 문자 창제에 만만치 않게 반대한 세력이 있어,그 사업은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훈민정음 문자완성은 사관들이 어림쳐서 기록한 시기보다 훨씬 먼저 되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문헌상 가장 확실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정인지의 기록 ‘계해동’(계해년 겨울)을 무엇보다도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계해동’을 그해 겨울 극점인 동지절쯤으로 짚으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한다.즉 1443년 12월23일을 훈민정음 문자창제 완성일로 보자는 것이다.12월23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라 서양사람들도 좀처럼 안 잊어버릴 날이고,1443.12.23은 또한 공교롭게 재미있는 수열을 이루어 기억하기 좋은 숫자구성이다. 역사 연표를 보면 1663년에는 J 밀턴의 유명한 서사시 ‘실낙원’원고가 완성되었고,1883년은 태극기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국기로 제정된 것이다. 어쨌든,늦어도 21세기부터는 남북한이 부디 같은 날에 한글날 기념식을 가지도록 우리 모두 성찰하고 노력했으면 한다.
  • 훈 할머니 국적 찾았다/55년만에 ‘이남이’ 입적

    ‘훈’할머니 이남이씨(73)가 일본군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지 55년만에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았다. 김종구 법무장관은 6일 훈할머니가 지난달 낸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들여 한국 국적회복 허가증서를 수여하고 국적회복 기념으로 태극기와 한복지 한감을 선물했다. ‘렁훈(LENG HUN)’이라는 캄보디아 이름 대신 이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훈할머니는 예전 호적이 남아있지 않아 장조카 이상윤씨의 호적에 고모로 입적됐다.본인과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생년월일은 1924년 3월2일,본적과 주소는 상윤씨와 같은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1160와 경북 경산시 계양동 계양아파트 108동 205호로 게재됐다. 훈할머니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대상자로 판명받으면 5백만원과 매달 50만원씩의 생활안정 지원금을 받게 된다.생활보호대상자에게 다달이 10∼13만원씩 지급되는 생계보호비와 의료보호 혜택도 주어진다.
  • 월드컵축구예선 한국 UAE 꺾던 날

    ◎“또 이겼다”… 온국민 환호·열광/역·터미널TV앞 시민몰려 골순간 “만세” 함성/“새벽부터 기다린 보람”… 밤늦도록 승리 자축 한국 축구가 지난달 28일 일본 열도를 뒤흔든데 이어 1주일만에 서울 잠실벌에서 또다시 승전보를 울려,온나라를 승리의 환호로 몰아넣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4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국민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화답하듯 3대 0으로 대승을 거둬온 국민을 토요일밤의 뜨거운 환희속에 빠져들게 했다. 잠실 경기장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 관중들은 물론 TV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채 태극 전사들의 활약을 지켜본 국민들은 우리 팀이 골을 터뜨릴 때마다 “만세”를 외쳐 기쁨의 함성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평소같으면 주말을 맞아 시민들로 붐볐을 신촌과 강남 등의 유흥가는 축구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썰렁할 정도로 조용했으며 역·터미널·공항의 TV 앞에는 축구를 보려는 시민들로 붐볐다. 경기가 끝난뒤 술집 등 유흥가는 승리를 자축하려는 시민들이 몰려 축구 이야기로 밤늦게까지 시간가는줄 몰랐다. 이날 잠실주경기장에는 새벽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입장 시간인 하오 3시에는 경기장 입구에서 2호선 종합운동장 역까지 1㎞를 빽빽하게 늘어서 장사진을 이뤘다. 상당수 관객들은 우리 축구 선수단의 유니폼과 똑같은 빨간 T셔츠를 입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채 입장,경기시간 내내 열화같은 응원을 펼쳤다. 특히 이번 월드컵 예선을 거치면서 한국의 ‘공식 응원단’으로 자리잡은 ‘붉은 악마들’(RED DEVILS)회원은 한일전 때보다 10배나 늘어난 3천여명이 나와 응원석을 가득 메웠다. 암표도 날개돋힌 듯이 팔려 1만원짜리 일반석표가 3배가 넘는 3만원,2만원권 지정석은 4,5만원을 호가했다. 맨 앞줄에서 경기장에 입장한 구자경씨(49·회사원·서울 송파구 삼전동)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어제밤부터 나와 텐트를 치고 밖에서 기다렸다”면서 “경기 내내 있는 힘껏 소리높여 응원했지만 한국팀의 승리로 피곤한 줄 모르겠다”면서 즐거워했다. 인천해사고 1년 김대원군(17)도 “한편의 드라마였던 일본 원정경기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태극전사들이 거둔 쾌승으로 너무 기쁘다”면서 “우리 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우리나라가 일본을 꺾자 손님들에게 공짜 맥주를 제공했던 서울 신촌의 대형 K생맥주집에서는 이날도 모든 손님들에게 맥주 1병씩을 무료로 제공했다.주인 정전촌씨(56)는 “오늘 같은 승리의 신바람을 우리의 저력으로 결집시켜 프랑스로까지 이어가자”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경기장내 질서유지와 안전사고에 대비,17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경기장 주변에 배치했다.
  • 방콕사 ‘코리아위크’ 행사/개천절을 ‘한국의 날’ 선포

    ◎한·태 수교 39주년 기념 【방콕 연합】 주태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코리아위크 97”행사가 3일 개천절을 기해 개회식을 갖고 본격 일정에 들어갔다. 김내성 주태대사 등의 안내로 방콕시내 힐튼 호텔서 열린 개회식에 참석한 피칫랏타쿤 방콕시장은 한태수교 39주년을 맞아 양국관계가 한층 돈독해지기 바란다며 이날을 “‘한국의 날’로 선포한다”고 말함으로써 코리아위크 행사와 개천절을 더욱 뜻깊게 만들어 주었다. 피칫 시장은 ‘한국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행사 개회식장인 힐튼 호텔과 방콕시청,한국대사관 등에 태극기와 태국 국기를 나란히 게양토록 했다고 설명했다.방콕시가 외국을 위한 날을 선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작품/금주발매 뉴스피플 단독보도

    ◎중국지시 거부 독자구상… 제작 명령 지금까지 박영효가 만든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 최초의 태극기는 중국이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요구한 내용에 반발한 고종 황제가 직접 독자적으로 구상,만들 것을 지시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자매지인 ‘뉴스피플’ 취재팀이 단독입수한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 ‘시사신보’ 축쇄판 기사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고종의 태극기 제작과정을 처음 보여주는 자료여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청 총무과 송명호씨(46)가 도쿄중앙도서관에서 발굴해 ‘뉴스피플’(9일자,1일부터 발매)에 공개한 이날자 시사신보는 당시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들어간 수신사 일행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게재한 잡보란에 ‘조선국기’라는 설명이 붙은 태극기와 함께 국기의 제작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지난달 28일(1882년 9월28일) 하나부사 공사와 함께 도쿄에 도착한 한 조선인의 이야기에 의하면”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당시 중국측이 조선에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바탕에 용을 그려넣을 것을 지시했으나 고종이 이에 격분해 중국국기를 흉내내지 않을 것을 고집,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원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했다고 한다”라고 작성돼 있다.따라서 박영효는 1882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고종의 지시내용에 따라 일행과 숙의해 태극기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국대 김원모 교수는 “이번 기사는 고종이 태극기 제작과정에서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독자성을 유지한 사실을 보여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기록으로 태극기 연구에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최고태극기(외언내언)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의 원형은 1882년 박영효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임오군란의 뒷수습을 위한 수신사로 일본에 가는 배안에서 제작했다는 것이다. 수신사 일행은 일본에 도착한 후 숙소에 태극기를 내걸고 한 개를 본국에 보낸다.그 자초지종을 담은 기록이 박영효의 수기 ‘사화기략’이다.“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기는 흰바탕에 네모졌는데 세로는 가로의 5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중앙에 태극을 그려 청·홍색으로 칠하고 네모서리에 4괘를 그렸는데 이는 이전에 위로부터 명을 받은바 있다.국기를 새로 만드는 일은 이미 처분이 있으셨기에 지금 대·중·소 3본을 만들어 그중 소기 1본을 임금께 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영효의 태극기 제작 사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바 있지만 실물은 전하지 않았던 터에 그 태극기의 도안과 제작과정이 기사로 실린 당시의 일본신문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지지신보(시사신보)’ 1882년 10월2일자다. 이 신문에 실린 태극기 모습은 오늘의 태극기와 다르다.옥색바탕에 태극이좌우로 갈라져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형태다.4괘도 다르다.태극기의 원형을 둘러 싼 관계자들의 오랜 논란에 또 하나의 불씨가 될 듯 싶다. 제작경위에 대한 기사 내용도 흥미롭다.대체로 이미 알려진 사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태극기의 창안 및 사용이 자주적이고 계획적이었던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청국의 용기 사용 권유에 대해 고종이 분노하고 태극기 제작을 지시했음을 밝힌 것이 그것이다. 태극기가 한 개인에 의해 임시방편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일부의 잘못된 인식을 시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듯 싶다.‘사화기략’은 태극기 제작이 고종에 의해 구체적인 모양까지 지시되어 이루어 졌음을 시사하면서도 박영효가 타고 가던 배의 영국인 선장과 영국 영사의 도움말을 들은 것으로 기록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광복 52주년에 태극기 원형을 찾아 낸 이의 태극기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 최고태극기 그림 발견/박영효 제작… 1882년 일 신문 게재

    가장 오래된 태극기 모양으로 보이는 도안이 발견됐다. 서울시 총무과 주임 송명호씨(47·7급)는 14일 지난 1882년 10월2일자 일본 「지지신보」(시사신보 1936년 폐간)에 ‘조선의 유신’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실린 태극기 도안을 공개했다. 이 태극기는 4괘의 모습이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손 간 진 이로 돼 있어 현재 태극기의 건 곤 감 이와 다르며 중앙의 태극무늬도 현재와 달리 좌우로 갈라져 있다. 지지신보의 기사는 1882년 9월20일 인천항을 떠난 전권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행 메이지마루(명치환)호 선상에서 시사신보에 실린 태극기를 그렸으며 이어 25일 고베(신호)항에 도착,수신사 숙소인 니시무라(서촌옥)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박찬호 10승” 폭염도 날렸다

    ◎미 메이저리그서 연승행진… 전국민 환호/역·터미널·피서지 등서 더위 잊고 열띤 응원/청소년에 ‘찬호 신드롬’… T셔츠·모자 등 불티/국위선양 큰몫… 고향집엔격려전화 잇따라 태평양을 건너온 ‘코리아 특급’의 승전보가 한여름 무더위를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 선수(24)의 무적 연승행진으로 비롯된 ‘박찬호 열풍’은 어린이와 청소년에서부터 40∼50대 중년층과 가정주부,할아버지,할머니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찬호불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박선수의 투구폼을 흉내낸 춤까지 등장했다.또 박찬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직장인들의 출근길 발걸음은 설레임속에 더욱 바빠질 정도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박찬호 상품’이 대인기다.그의 등번호인 61번과 영문표기인 ‘PARK’가 적힌 모자와 T셔츠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박찬호의 전속 모델계약사인 N스포츠용품사 의류영업팀 남기흥 과장(38)은 “박찬호 투수에 대비해 T셔츠와 모자를 각각 1만6천장과 8천개씩 만들었지만 주문이 밀려 소매점에 제때 공급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스포츠용품점 직원 김미란씨(28·여)는 “박찬호가 5승에서 맴돌때만해도 박찬호 관련상품이 하루에 5점 정도만이 판매됐지만 내리 승리를 따내고 있는 후반기 들어서는 3∼4배에 이르는 15∼20점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최근들어 공항과 시내 백화점 등에서는 응원용·장식용 태극기가 외국인들에게 날개돋친듯 팔려나가고 있다.‘민간 외교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박찬호가 10승을 따낸 1일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에서는 태극기 50개가 모두 동이 났다.직원 김귀순씨(23·여)는 “박찬호가 올들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내외국인 상대로 한 태극기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시카고 커브스팀을 상대로 대망의 10승째를 따내자 TV를 통해 이를 지켜본 대부분의 시민들은 올여름 더위를 식혀준 최고의 청량제라며 환호했다. 박찬호가 2회말부터‘퍼펙트게임’에 가까운 완봉 행진을 계속하는 동안 TV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해 직장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의 화제도 단연 ‘박찬호’였다.언론사에는 박찬호의 현재 성적과 순위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김포공항 대합실의 TV앞은 박찬호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탑승시간보다 2∼3시간씩 서둘러 나온 여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전국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의 대합실은 물론,해수욕장과 각종 유원지에서도 피서객들의 눈과 귀가 시합에 집중됐다. 한편 충남 공주시 산성동 박찬호의 고향 집은 잇따라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아버지 박재근씨(54)는 경기가 끝난뒤 “승수와 관계없이 찬호가 경기를 잘 치뤄 기쁘고 한없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 그림외교/장윤우 성신여대 교수·공예가(굄돌)

    한국미술창작협회라는 작은 미술단체를 이끌면서 그간에 국내 공모전만이 아니라 해외로 시선을 돌려 심수년간에 걸친 전시행사를 가져오고 있다.공공전으로서는 가뭄에 콩나듯이 하는 문예진흥원 해외순회전,국제 문화규재단 지원등에 목나른 미술인들이 자구의 일환으로 기획,실행함에는 예산,정보부재등의 난제가 걸림돌로서,아예 기대조차 않는 터이기에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보름전에 이스탄불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터키는 아시다시피 동·서양문명의 만남이며 역사적으로도 메소포타미아의 4대문명 발상지로서 한국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미국 다음으로 한국전쟁에 많은 병사를 참가시켜 숱한 사상자를 내었으며 한국전에 참전한 노병들은 영웅시된다.한국화·서양화·서예·공예·디자인 등 170여점을 터키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하여 우의를 다지고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확인시키고자 했다. 교포뿐 아니라 터키주재 대사관에서도 환영해 주었다.권영사의 당부가 잊혀지지 않는다.주재대사관들에는 저마다 미술작품이 걸려,행사때마다 자랑삼는데 비해 한국대사관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본국의 한국미술협회에 의뢰하여 재료값에 지나지 않는 예산이지만 회원들에게 지급하여 순회전을 가지면서 해당국 대사관에 배정하는데 미흡하다면서 우리 회원작품의 자진 희사가 너무 고맙다는 거였다.그렇다. 당국의 협조없이도 우리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몽골대사관,우즈베키스탄 문화성 및 한국대사관,요르단 문화성및 한국대사관,중국사천성장,인도 델리대사관에 우리 작품을 기증하였다.현지 참가한 선시를 통해서 양국의 미술문화교류의 자리도 굳혔다.외무부와 한국미술협회 등의 요청이나 협조없이도 스스로 해내고 있는 터이다.전시장에서는 태극기를 내걸고,한복을 곱게 차려 입는 등 모두 애국자가 되었다. 남이 알아주건,모르건간에 경제대국보다는 신생국 등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찾아가고 있다.거창한 구호도 없이­.매스컴의 소개가 없어도 회원들은 뿌듯하다.주재국들에서 받은 감사장만으로도 우리는 보람에 취한다.한사람,한작가가 그림외교사절이니까.다음에는 어디로 정할까에 가슴을설레이면서.
  • 태극기 단 바지선 오늘 북으로

    ◎경수로 지원선 울산∼북 신포 시험운항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 사업에 투입되는 중장비와 물자수송용 바지선 항로 시험운항을 15일부터 20일까지 울산과 북한 신포지역 양화항간에 실시한다고 경수로기획단이 14일 밝혔다. 시험운항 선박은 북측해역 진입시부터 양화항 도착시까지 북한 선박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영해내인 도선구역 도착시까지 태극기와 KEDO깃발을 함께 게양하되 도선구역에서 양화항까지는 아무 깃발도 게양하지 않게 된다. 경수로 기획단의 관계자는 “이번 시험운항에 참가하는 바지선은 KEDO와 북한간 합의에 따라 태극기를 게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시험운항은 울산을 출발,속초∼원산∼흥남 앞바다를 거쳐 신포 양화항에 도착하게 되며 지금까지 공해상으로 빠져 나갔다가 신포 앞바다로 진입하는 것과는 달리 북한 해안선과 15마일정도 떨어져 운항하게 된다.우리 국적선이 태극기를 달고 북한 영해내를 운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88년이후 남북교역이 시작된 이후 선박들이 남북한을 왕래했으나 북한영해내에서 태극기를 달고 운항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험운항에 나서는 선박은 대한통운소속 코렉스 챔프호(예인선,287t급)와 챔프 B호(부선,2천242t급)로,운항거리 3백마일,운항속도 평균 7.5노트이며 항로는 작년 7월 발효된 통행의정서상의 바지선항로(속초기점 양화항까지 1백13마일)이다. 이번 시험운항에는 11명의 선원이외에 KEDO사무국,경수로기획단,한전,한국중공업 관계자가 각각 1명씩 동승한다.
  • 태극기 게양한 국적선/분단후 첫 북 영해 운항

    ◎주내 경수로장비 시험수송 남북분단이후 처음으로 다음주중 우리 국적선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북한 영해내를 운항하게 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내달초로 예상되는 대북경수로사업 착공을 앞두고 경수로 장비를 실어나를 바지선의 안전항해를 위해 다음주중 시험운행을 실시할 방침인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빠르면 15일,늦어도 17일께 경수로 장비수송을 위한 바지선 시험운항이 이뤄질 것”이라며 “이번 시험운항에 참가하는 대한통운소속 바지선은 KEDO와 북한간 합의에 따라 태극기를 게양하게 된다”고 말했다.
  • 인터넷 교역 사이트 코리아센터 첫 개설/영어·한국어로 소개

    【워싱턴 연합】 인터넷을 통해 영어와 각국어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 소비자들에게 각국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매매할 수 있는 인터넷 교역 국별 사이트가 8일 코리아센터를 시발로 개설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인터넷 교역망 구축을 추진중인 미국 이몰(imall)사는 최초의 국별 사이트로 코리아센터를 영어와 한국어로 이날 개설했다. 코리아센터는 금융센터,테크널러지,마켓플레이스,오락센터,여행센터,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나눠 한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는데 첫날에는 액세서리 골동품 영화 자동차 부품 등의 마켓플레이스만 문을 열었다. 주소는 http//www.imall.com,인터내셔녈센터의 태극기를 찾아 들어가면 된다.
  • 남의 동포애와 북의 화답(사설)

    극심한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는 북한주민을 돕기위한 민간차원의 지원 곡물이 북에 도착하기 시작했다.처음으로 한적요원이 입북,직접 전달한 옥수수 등 남측의 동포애가 담긴 지원 곡물을 수령하며 북한측은 가식없는 감사의 말로 화답함으로써 남북간에 모처럼 따스한 동포의 체온이 교환됐다. 이처럼 실현되고 나면 간단해 보이고 또 당연히 실현됐어야만 할 일이 왜 이토록 먼길을 돌아왔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다.지난 일을 탓하자는 뜻이 아니다.이번 남북적십자간 곡물지원협상과 그 실천과정에서 보여준 북측 태도가 2년전 15만톤의 쌀을 받으며 벌였던 어처구니 없는 작태와는 대조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을 주목한다는 의미다. 그 당시 북측은 한 핏줄을 돕자고 내민 동포애의 손길에 수송선의 태극기를 끌어내리고 항구 사진을 찍은 선원을 간첩으로 몰아 억류하는 등 패악으로 답했던 것이다.그들은 지원은 받되 그것이 남쪽 동포로부터의 도움임은 결코 공개할 수 없다는 편협한 자세를 보였고 식량난의 실상은 전혀 설명치 않으면서 무조건많은 지원 약속만을 받으려 했었다. 북측이 이같은 과거의 태도를 바꿔 남측 지원품임을 표시하고 한적관계자가 북한에 와 전달과정을 확인케 하는 등 유연성을 보이고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속뜻은 알 수 없다.식량사정이 더 어려워진 것인지 또는 군이나 다른 강경파의 개입없이 일이 처리되고 있기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량난과 관련,북측이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나올수록 남쪽의 동포애를 더욱 뜨겁게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이다.북측은 남측과 합의한대로 지원식량을 굶주리는 주민들에 제대로 전달하는 등 신뢰를 쌓아야 한다.또 이번 식량지원이 남북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재회,그리고 남북대화와 교류로 이어질수 있도록 계속 합리적이고 일관성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기대한다.
  • 북한 농업을 지원하자면/임춘웅 논설위원(서울논단)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농업기반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에서 「북한농업 재건을 위한 장·단기 계획」이란 이름의 마스터 플랜이 정부 일각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안은 아직은 통일원에서 조차 공식적으로 논의된 일이 없다고한다.따라서이 프로젝트는 정부 어느 한쪽에서 검토 해보고있는 아이디어 수준이기는 하나 계획이 방대하고 이상이 원대해 아이디어로서는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을만 하다. 때마침 유엔개발계획(UNDP)에서도북한 농지복구사업을 추진해보자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북한의 식량문제가 이제는 단기간 현물지원으로 되는게 아니라 북한의 농업생산 기반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도된 마스터 플랜은 단기적으로 처음 1∼2년은 ▲식량과 농자재 현물지원 ▲농지기반 시설과 산림황폐지역 복구 ▲농산물 가공및 저장시설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돼있다.이어 2단계 3∼5년 동안에는▲생산기반 시설의 재정비 ▲농업생산 기술 지원 ▲농자재 사업의 시설현대화 ▲북한 5대강유역 종합개발 사업등을 벌이는 것으로 돼있다. ○총비용 24조7천여억원 이 사업에 들어갈 총비용은 자그마치24조7천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처럼 방대한 사업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북한에 경수로지원을 위해 미국 일본 등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라는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했듯이 한국 일본 미국 중국4개국으로 가칭 한반도농업개발단(KADO,Korean Peninsula Agricultural Development Organization)을 구성하자는 안도 포함돼 있다. 북한에 대한 농업지원은 지난해 8·15경축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제안된 일이 있다.멀리보면 황폐해진 북한의 농업기반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그러나 우리국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지원할 마음의 준비,다시 말해 북한지원에 대한 확신이 서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통일원이 최근 20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전체의 73%가 『남북관계 현실을 봐가며 지원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다시 말하면 북한이 고분고분 해지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도울 필요가 없다는 쪽이 지배적이다.이런 국민정서에서 그런 방대한 사업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것이다. 우리는 대북문제에서 항상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오고 있다.한핏줄인 동포를 도와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적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이 항상 내재해 있는 것이다.그 책임은 물론 전적으로 북한측에 있다. 95년 북한에대한 15만t 식량지원때만해도 보낼때까지는 동포애를 발휘한 자부심으로 부풀어있다가 북한에서 수송선에서 태극기를 끌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을때 국민감정은 일시에 적대적으로 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6∼7년의 장기간에 걸친 농업지원 사업이 과연 도중에 돌출사건 없이 진행되리란 보장이 없다.사업진행중에 우리가 항용 봐온 북한의 엉뚱한 트집이나 기이한 행동을 이겨내자면 우리들 내부에 대북지원에 대한 확신이 서있어야가능한 것이다.아직은 우리에게 그러한 확신이 있는것 같지 않다. ○북한 태도 아직 불확실 다음으로는 북한이 이런 계획을 받아들일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북한은 지난번 북경 남북적십자회담때도 구호품을우리가 직접 전달하는 문제에 이런저런 꼬리를 달아 놓았었다.지정기탁제라는 것도 형식적으로는 허용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게 해놓았다.북한은 아직도 자신의 참 모습을 외부에 노출할 형편이 아닌 것이다.이런 상황의 북한에서 엄청난 물자와 인적 교류가 불가피한 이런 사업을 과연 받아들일수 있을까는 의문이 아닐수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KEDO에서도 미국은 실제로 돈을 내는 것이 거의 없다.60억∼70억달러의 총비용 대부분은 우리가 부담해야 된다.이런 형편에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중국을 기대하고 KADO를 추진한다는 것은 무리다.KEDO에서 처럼 이름만 국제 컨소시엄이지 실제는 우리가 다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낭패일 것이다. 식량지원은 당장 굶주리는 이웃을 돕는다는 인도적 명분이 뚜렷하지만 일국의 농업기반을 재건하는 문제는인도적 차원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 북은 식량지원 의미살려야(사설)

    남북 적십자대표단이 26일 북경에서 공동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민간차원의 식량지원이 본격화하게 됐다. 굶주리는 북녘의 동포들에게 지원의 손길이 미치게 된것은 다행한 일이다.그러나 이번 북경 회담에서도 북한측은 예외없이 억지를 쓰고 이미 합의한 사항까지 뒤집으며 막판까지 진통을 겪게했다.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같은 핏줄을 나눈 한 민족으로서 다시 한번 좌절과 회의를 갖게 된다.지원은 어디까지나 선의이다.호의가 어떻게 흥정의 대상이 되는가. 95년 식량지원때도 쌀을 싣고간 우리 배에서 태극기가 끌어내려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세계 주요신문들의 논조도 부정적인 쪽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지금 당장 국내 여론조사를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아프리카의 난민에게 구호 식량을 보내는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왜 북한에 대한 지원은 이리 말이 많은가.이런 현상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려는 것은 그곳 주민에 대해 같은동포로서 갖는 연민때문이고 인도정신 때문이다.앞으로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북한이 지금 직면한 식량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기본적으로는 체제 자체의 문제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도 북한은 대외적으로 좀더 진솔한 태도를 보이고 안으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번 북경 합의는 시작일 뿐이다.2차,3차 민간지원도 있고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지원도 남아있다.모든것은 북한이 하기 나름이다.무엇보다 이번 한적이 보내는 구호식량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바로 돌아가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남쪽의 이런 노력과 마음이 북한 주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되고 나아가서는 이런 정성들이 모아져 남북 화해와 본격적인 남북대화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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