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태극기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노벨 평화상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애니메이션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60
  •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유관순, 서대문형무소, 제암리 학살사건.3·1운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과 사건들이다. 하지만 3·1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봉황각은 그 중요성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다. 봉황각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운동 지도자들을 키워낸 곳이다. 지난달 28일 강북구 우이동 산 자락에 있는 봉황각을 찾았다. 봉황각은 삼각산 도선사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다. 이곳은 현재 도로가 나 있지만 과거엔 인적이 뜸한 산 속이었다고 한다. 의암 선생은 이 비밀 장소에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처음 본 봉황각에서는 의연함이 느껴졌다. 큰 처마와 단단해 보이는 문살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봉황각은 ‘乙’모양으로 동학에서 하늘과 땅을 뜻하는 ‘弓乙’(궁을)의 ‘乙’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을 열자 의암 선생이 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 있다. 요즘도 천도교 교인들이 여기서 수련을 한다고 한다. 과거에 손병희 선생이 교회 간부들과 했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손병희선생이 1912년 세워 의암은 먼저 경술국치일에 교인들 앞에서 “10년 뒤 주권을 되찾겠다.”면서 “계획이 있으니 나를 따라달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토목공 21명을 모아 1912년 봉황각을 세운다. 여기서 보국안민(報國安民)을 내세우고 거사를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을 교육시킨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가 있었지만 봉황각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천도교가 종교단체이기 때문이다. 의암은 독립운동은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자살 폭탄 테러와 베트남 전쟁 때 지도층에 항거하며 스스로 화형을 감행한 승려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3·1운동 당시 봉황각에서 교육받은 천도교 지도자들은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평북 정주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제일은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은 그의 오른팔을 잘랐고, 그가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자 또 왼팔을 자르고, 다시 입에 태극기를 물자 목을 쳤다고 한다. 교회에 갇힌 채 총격을 당하고 불에 타 죽은 제암리 희생자의 상당수도 천도교인이었다고 한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도 전달 의암 선생도 3·1운동으로 일본 군경한테 갖은 고초를 당했다.1920년 병 보석으로 나왔을 때 폐인으로 쓰러진 채 들것에 실려나왔다고 한다.1922년 5월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하고 세상을 뜨기 전까지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현재 봉황각 바로 옆 언덕에 묻혀 있다. 처음에는 일본의 감시로 형편없는 묘소였는데 광복 후 생전에 학교를 설립하는 데 의암 선생한테 큰 도움을 받은 고 조동식 박사가 은혜를 잊지 못 하고 현재와 같은 큰 묘로 개장하고 탑골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또 백범 김구 선생도 광복 후 귀국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백범은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이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버텼겠느냐.”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강북구청은 봉황각의 의미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2004년부터 봉황각 3·1독립운동 재현 행사 때 관내 인사와 학생들과 함께 ‘3·1절 만세 운동 재현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거리 주변 음식점 주인들에게 봉황각이 꽤 알려졌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은 도선사는 알아도 봉황각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동안 봉황각이 역사적 의미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다행히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 봉황각 자리와 의암 손병희의 묘소는 명당이라고 한다. 주변이 삼각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그 분들의 힘찬 기운이 흘러나와 나라에 도움이 되길 기원해 본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마무리단계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마무리단계

    ‘단군에서 붉은악마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이 거의 마무리됐다. 2일 서울신문이 단독입수한 문화관광부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및 활용계획안’에 따르면 태극기와 무궁화, 독도, 진돗개, 한우, 오일장, 잠녀(해녀), 라면,IT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부문의 유·무형 상징들이 100대 상징에 포함됐다. 부문별로 보면 민족상징에는 태극기와 무궁화 등이, 강역(彊域·강토의 구역)과 자연상징에는 독도 백두대간 금강산 소나무 진돗개 거북선 해시계 등이 들어 있다. 역사상징에는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 DMZ(비무장지대) 경주(서라벌) 서울(한양) 단군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등이, 사회와 생활상징에는 오일장 상여 소주 막걸리 온돌 IT 라면 등이 들어 있다. 선(禪) 미륵 선비 금줄 삼산할매 등 신앙 및 사고의 상징, 한글 탈춤 막사발 판소리 춘향전 등 언어와 예술상징도 선정됐다. 문화부가 추진해온 100대 문화상징 선정 사업은 우리 민족의 ‘문화 유전자’를 찾아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전통문화에 기반한 부가가치 창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것. 또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호의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이를 홍보하려는 목적도 있다. 문화부는 지난해 2월 7명의 선정위원을 위촉, 민족문화상징 발굴 연구과제 공모, 상징물 발굴과 개발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렇게 마련된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안을 놓고 최근 자문회의를 열어 몇가지를 교체하는 등 막바지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얼마 전 열린 자문회의에서는 한반도기와 백두산천지, 한우, 촛불시위, 고3, 무당, 노래방 등이 제외되고, 동의보감, 수원화성, 종묘와 종묘대제, 효, 한옥, 라면 등이 추가됐다. 이밖에 천연염색, 식혜, 새마을운동, 자장면 등은 추후 검토후 선정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하지만 라면의 경우 일본 원조설이 있고, 인물상징 중 여성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 등 일부 논란이 있어 추가 교체의 가능성도 있다. 문화부는 한두차례의 자문회의와 인터넷 설문조사를 거쳐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최종 확정, 이달 말쯤 이를 발표하고, 지자체나 기업, 각종 축제 등과 연계한 다양한 활용방안 사업을 공모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주말탐구] 컴퓨터 그래픽

    [주말탐구] 컴퓨터 그래픽

    요즘 한국 영화의 영상은 매우 뛰어나다. 연출과 촬영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컴퓨터 그래픽(CG)의 공도 크다. 카메라 워킹만으로 불가능한 세상을 실제처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10여년이라는 은 기간에 영화의 모든 분야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해 왔다는 CG기술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어디에 CG가 숨었을까 영화에서 CG의 용도는 사실상 무한대다. 지금 막 개봉하기 시작한 한국 영화를 볼 때 저런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혹 CG가 아닐까 하고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람 포인트다. 지금 잇따라 개봉하고 있는 한국영화 가운데 대작은 없다. 대작이 없다 해서 CG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작이 아닐수록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 외려 더 지능적으로 쓰인다. 조승우·강혜정 주연의 ‘도마뱀’에서 도마뱀은 계속 도망가는 강혜정을 상징하는 동물. 귀엽고 앙증맞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3D작업으로 도마뱀을 만들어 냈다. 신현준의 변신이 화제인 ‘맨발의 기봉이’에서 어릴 적 기봉이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 맨발로 달리던 신작로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눈사람, 고드름도 모두 CG다. 작은 액션 영화에서도 위험한 신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CG가 쓰인다. 이문식이 주연을 맡은 ‘공필두’는 금괴를 둘러싼 해프닝을 다룬 만큼, 금괴나 이를 실은 자동차를 극한상황에 밀어 넣는데 이 장면들이 모두 CG다. 액션감독 류승완, 무술감독 정두홍이 직접 액션 연기를 펼쳐 보여 관심을 끌고 있는 ‘짝패’에서도 자동차 충돌신과 같은 위험한 장면 대부분은 CG라고 보면 된다. 예전 영화를 돌이켜 봐도 그렇다. 최배달을 그린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배달과 소의 1대1 다툼도 모형 소를 쓴 뒤 CG를 입혔다.‘홀리데이’에서 거꾸로 매단 이성재의 머리를 최민수가 골프채로 때리는 장면에서 골프채 역시 CG다.‘역도산’에서도 역동적인 링 위의 장면이나 일제시대 풍경 등은 모두 CG다. ●한국CG의 승부처는 기술력보다 연출력 CG의 기술력은 뭐라 해도 미국이 제일 앞서 있다.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적용하는데, 이 소프트웨어 내용은 물론 비밀.4∼5년 정도 지나야 공개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영화 CG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기본적으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투입 대비 결과’로 보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굳이 자본과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할리우드 방식을 한국에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있다. 영화 시장 규모가 다른 상황에서 무리하게 따라하다가는 가랑이만 찢어진다는 얘기다. 문필용 모비딕 대표는 “회사 규모를 키운다고, 최첨단 장비를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CG가 들어가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표는 영화 ‘킹콩’에서 재현된 1930년대 뉴욕 시가지 같은 장면에 도전해 보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한 스케일의 영화가 먹혀들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용가리’와 ‘D-WAR’ 등으로 디지털제작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심형래 감독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중요한 건 영화적 완성도지 CG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콘텐츠 제작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수십억원의 디지털 장비들을 사들이는데 대한 우려도 많다. 한 CG제작사 관계자는 “그런 고가의 장비 대부분이 사장되고 있다.”면서 “그런 장비를 사주는 것보다 차라리 이제까지 쓰여졌던 기술과 영화를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아카이브(정보창고)를 구축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골룸’을 뛰어 넘겠다 그러나 기술력이 어느 수준에 올랐기에 새로운 시도도 선보이고 있다. 올 연말 개봉 예정으로 후반작업이 한창인 정우성·김태희 주연의 ‘중천’은 ‘디지털 배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원래 디지털 배우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처음 시도됐다. 침몰하는 배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인물들을 CG로 그려 넣었던 것. 우리 영화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대규모 군중신에서 쓰였다. 그러나 ‘중천’은 군중신에 쓰는 게 아니라 정우성의 얼굴과 피부를 따와, 정우성이라는 인물 자체를 디지털화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시도된 적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처음이다.‘중천’의 CG을 맡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인호 팀장은 “기술력과 자본의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디지털 배우가 본격화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중천을 통해 ‘반지의 제왕’의 ‘골룸’에 맞먹는 수준의 디지털배우를 선보이겠다.”고 장담했다. 또 하나 CG로 관심을 끄는 영화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 한강변에 매점을 운영하는 한 가족이 어디선가 나타난 괴물을 만나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이 괴물은 천상 CG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해리포터와 불의 잔’,‘슈퍼맨 리턴즈’에 참가한 미국의 오퍼니지팀을 중심으로 ‘반지의 제왕’,‘킹콩’ 등을 만든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팀까지 합류해 있다. 아직 ‘괴물’의 정체는 비밀에 가려져 있지만,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CF·게임에 CG적용할땐 매출 10배 올릴 수 있어 “분명한 건 영화CG를 하려면 CG보다 영화를 더 이해해야 합니다.” 모팩 스튜디오 장성호 대표는 CG의 효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10년 이상 영화CG계에서 일해왔고 지금도 톱클래스로 꼽히는 CG업체 사장임에도 CG가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CG 100개보다 영화에 녹아든 CG 1개가 낫다는 설명이다. 다른 예를 들었다.“영화 ‘하나비’에 야쿠자가 상대방 눈을 젓가락으로 찌르는, 제일 잔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편집으로 해결해요.‘젓가락-휘두르는 팔-쓰러지는 남자-그릇에 떨어지는 피’를 보여줘서 눈을 찔렀구나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장면을 어설프게 CG로 찍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만큼 영화는 편집의 예술인 거예요.” 그래서 영화CG를 하고 싶다면 기술적인 부분보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이는 장 대표의 경험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장 대표가 CG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94년.“처음에는 나이도 어린데다, 들어보지도 못한 CG라는 것을 하겠다고 얼쩡거리니까 촬영현장에서 누구 하나 같이 밥 먹자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악물고 더 영화 공부를 했다. 그 때 뒤져본 영화 이론서가 수백권은 넘어간다.“한 신을 두고 연출·촬영·조명 이런 모든 요소들을 놓고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완성도 높은 장면이 나올 수 없어요.” 그래서 그는 아직도 ‘화산고’(2001년) 같은 영화에 다시 도전하는 꿈을 꾼다.2000여컷 분량의 영화에서 1800여컷이 CG였다. 처음엔 무모한 시도라고 생각해 제작사는 물론, 장 대표도 반대했단다.“김태균 감독님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안된다 해도, 너는 할 수 있다 해야 하지 않으냐.’고 야단맞고 나서 미친 듯이 작업한 거예요.” 모든 신에 CG가 들어가다보니 연출·촬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감독과 의논하고 토론한 끝에 만들어낸 영화다.“그런데 흥행은 잘 안돼서 한동안 패닉상태였어요. 지금은 웃지만.” 사실 CG는 게임쪽이 더 활발하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게임 CG는 일본에 하청을 줄 정도다. 돈도 인력도 그쪽으로 쏠리는 게 사실이다. 장 대표 역시 “사실 영화가 아니라 CF나 게임쪽으로 작업하면 지금 매출의 10배는 올릴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영화광이었던 그에게 영화작업은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이었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구미호’에 첫 등장… ‘유령’ 기술 한단계 Up 한국 영화에 CG가 등장한 것은 ‘구미호’(94년)에서부터다.‘어비스’(89년)에서부터 시작해 ‘터미네이터2’(91년),‘쥬라기공원’(93년) 등 할리우드가 뛰어난 CG 영화를 선보인데 자극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역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인력·장비·기술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나무침대’(96년)가 히트치면서 CG는 기사회생, 잇따라 작품을 냈다. 그럼에도 영화와 CG가 따로 논다는 지적은 계속됐다. 기술적으로 한 단계 올라선 작품으로는 ‘유령’(99년)이 꼽힌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서 마치 심해 잠수함인 것처럼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 그 뒤 모험적인 시도들이 줄이었다.‘화산고’(2001년)는 영화 전체를 CG로 채웠고,‘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년)·‘내추럴시티’(2003년) 등 CG는 물론, 디지털 캐릭터까지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흥행이 기술적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영화는 아무래도 생생한 사실감이 중요한데 CG를 지나치게 쓰다 보면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 그래서 지금은 CG 자체보다는 스토리 구조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다. 작품이 돼야 CG도 산다는 것. 그래서 ‘은근슬쩍’ CG를 쓴다. 작품당 몇억 정도는 기본이고,CG와는 영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멜로물에도 5000∼6000만원 정도는 CG비용으로 예산이 짜일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기 새긴 축구화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6일 뒤꿈치에 잉글랜드 기가 새겨져 있는 새 축구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 용품업체 나이키는 이날 독일월드컵에서 각국 선수들이 신을 축구화 ‘토털90 수프리머시’를 발표했다. 한국대표팀에서는 이영표(토트넘)와 이운재(수원)가 태극기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는다.맨체스터(잉글랜드) AP 연합뉴스
  • 박지성, FIFA 가이드북 ‘스타 6인’에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독일월드컵 아시아 공식 가이드북이 선정한 ‘6인의 스타’에 선정됐다. 박지성은 일본 출판사인 고단샤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아시아 판권을 획득해 최근 발행한 ‘FIFA 독일월드컵 가이드북’의 특집기획 ‘2006년의 초상화’에서 미하엘 발라크(독일·바이에른 뮌헨) 호나우디뉴(브라질·FC바르셀로나) 안드리 세브첸코(우크라이나·AC밀란) 스티븐 제라드(잉글랜드·리버풀) 나카타 히데토시(일본·볼턴)와 함께 월드컵을 빛낼 스타로 뽑혔다. 가이드북은 태극기 앞에서 찍은 박지성의 모습과 함께 6페이지에 걸쳐 관련기사를 실었다. 이들은 FIFA가 선정한 것이 아니라 고단샤가 자체 회의를 통해 뽑은 것.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한나라 경기지사후보 김문수

    한나라 경기지사후보 김문수

    ‘이변은 없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려온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21일 ‘최초의 여성 도백’에 도전한 두 여성 의원을 제치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됐다. 김 의원이 이날 경기지사를 향한 ‘1차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경기지사 선거는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을 포함,3파전이 됐다. 특히 김 의원은 경북중 동기 동창인 데다가 서울대에서 동문수학한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와 숙명적인 한판이 불가피해졌다.‘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라이벌’이 된 셈이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는 김 후보가 15% 안팎의 차이로 진 후보를 앞서고 있다. 그러나 진 후보도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며 역전을 벼르고 있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가 vs IT(정보기술)전문가’라는 대조적인 삶의 여정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후보는 운동권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해 중진 반열에 오른 3선 의원이고, 진 후보는 ‘반도체 신화’를 창출한 IT(정보통신)업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런 인연으로 김 후보는 진 후보가 정통부 장관 취임 당시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한나라당의 공세를 받자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경기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후보 경선에서 1544표, 득표율 57.50%이라는 과반수 지지를 얻어 여유 있게 선출됐다. 투표에는 대의원·당원·국민경선참여단 8486명 중 2153명(투표율 25.4%)이 참여했다. 김영선 의원과 전재희 의원은 각각 677표(25.10%),464표(17.28%)로 2,3위를 차지했다. 이날 경선은 김문수 의원의 ‘굳히기’냐 두 여성 의원의 ‘극적 역전극’이냐로 관심을 모았다. 개표 결과 경기도 당심의 과반이 ‘정권 심판, 정권 교체’를 내건 김문수 의원을 선택했다. 세 후보는 ‘준비된 후보’임을 내세워 막판까지 당심에 호소하면서 경선 분위기를 달구었다. 김영선 후보는 지난 2004년 전당대회의 ‘3위 이변’을 재연하려는 듯 태극기와 당기를 들고 단상에 올랐다. 그는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는 IT 전문가인데 그를 넘어설 상대로 IT·BT(바이오기술)·NT(나노기술) 전문가인 김영선을 선택해 달라.”고 외쳤다. ‘도지사=머슴론’을 내건 김문수 후보는 큰 절로 인사를 한 뒤 현 정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며 ‘김문수 대안’을 설파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3년 동안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어서 중산층은 무너졌고 서민은 빈민이 됐다.”며 “여론조사가 입증했듯이 김문수가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호소했다. 전재희 후보는 최초의 관선·민선 시장 등 24년간의 공무원 경험을 앞세우며 경기도 발전의 ‘주역’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행정을 아는 도지사가 될 수 있는 이는 전재희다.”며 “경기도가 대한민국 3만달러 시대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호소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15년 진통끝 지도가 달라졌다”

    “15년 진통끝 지도가 달라졌다”

    21일 오후 전북 부안군 가력도 앞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속에 때아닌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다 위 길게 뻗은 두 거대한 ‘돌담 벽’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엔 경찰 헬기가 선회하고, 바다 위엔 10여척의 경비정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말 많고 탈 많던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마침내 대역사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개발’과 ‘보존’이란 명분 아래 환경단체와의 2차례 소송 등 우여곡절을 겪은 지 15년 만이다. 이날 공사는 가력도 부근 1.6㎞ 가운데 마지막 남은 미연결 구간 20m를 메우는 작업으로 세계 최대의 난공사로 진행됐다. 방조제 틈새로는 초속 7m의 물살이 내달렸다. 수심이 30m가 넘었고, 파도는 2m 가까이 넘실거렸다.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방조제의 상당부분이 유실돼 공사 차질은 물론 큰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오후 1시쯤. 양쪽 방조제 끝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35t 덤프 트럭 2대가 마지막으로 돌망태와 돌덩이를 쏟아 붓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더 이상 포말이 일지 않았다. 방조제 틈이 완전히 메워졌다. 순간 이 광경을 지켜 보던 공사 관계자와 지역 주민 등 200여명은 터질 듯한 환호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외쳤다. 방조제 양쪽에서 마주보고 있던 박홍수 농림부장관과 강현욱 전북도지사도 연결 지점에서 만나 뜨겁게 악수를 청했다. 공사 기술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방조제 기술자 6명도 연신 ‘원더풀’을 외쳤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김용애(59·여·전북 김제시)씨는 “지도가 바뀌는 역사적인 현장 앞에서 터질 듯한 감격을 느낀다.”면서 “15년 동안 어민들의 가슴을 후벼 판 ‘괴물’이 이젠 고장의 ‘영물’이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공사를 무사히 마친 현대건설 양기종 상무는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로 사회갈등까지 시원하게 끝막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33㎞ 길이의 새만금 방조제는 기존 세계 최고의 네덜란드 압슬루트 방조제보다 500m나 길다. 공사엔 3t짜리 돌망태 70만개 등 모두 15t트럭 17만대 분량의 돌덩이가 사용됐다. 계획대로 오는 2012년 내부 간척지 조성 공사가 끝나면 4만㏊ 크기의 새 육지가 생긴다.1억 2000만평 넓이로 여의도 크기의 140배, 서울시 면적의 3분의2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농촌공사 안종운 사장은 “2007년 방조제 보강 작업 등을 마무리한 뒤 해수유통, 도로포장, 조경 등 추가 공사를 거쳐 2008년부터 간척지 개발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6월 나올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를 기초로 여론과 지자체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익과 지역발전을 감안한 토지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부안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장애인 주간’ 2제] 폐품 10만개 활용 설치작품전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서 17일 장애우들이 참여한 폐품활용 설치작품전이 열려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장애우와 비장애인이 함께 만든 작품에는 ‘태극기’와 ‘얼씨구 절씨구’ ‘미래도시’ ‘요정나라’ ‘병풍’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컵라면 용기와 계란판, 우유곽 등 폐품 10만여개로 2년 동안이나 걸려 완성했다. 작품을 설치하는 데도 1.5t 트럭 7대가 동원됐다. 이번 전시회는 대전지역 노인복지관과 어린이집, 성인재활센터, 특수학교 등이 참여해 성사될 수 있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이도운특파원 反테러 기지 美 중부사령부 가다

    이도운특파원 反테러 기지 美 중부사령부 가다

    |탬파(미국 플로리다주) 이도운특파원|작열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백금가루 같은 백사장과 쭉쭉 뻗은 야자수….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남쪽에 자리잡은 맥딜 공군기지는 군 시설이라기보다는 휴양지에 가까웠다. 이 기지 안에 63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군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총지휘하는 미 중부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다. 미 중부사는 6일(현지시간) 미국에 주재하는 30개 언론사를 초청, 이라크전과 연합군의 현황을 브리핑하는 특별행사를 가졌다. 행사에는 영국의 BBC, 프랑스의 르몽드, 일본의 NHK 등이 초청됐다. 한국 언론사로는 서울신문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기자들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이날 아침 9시에 중부사의 데이비스 콘퍼런스 센터에 도착했다. 기지 안에서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제한됐고, 화장실을 갈 때도 안내요원이 따라다녔다. 15분뒤 이라크 주둔 미군의 대변인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마크 키미트 기획처장(준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의 제목은 ‘장기전(Long War)’.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바로 중부사가 외신 기자들을 불러들인 이유였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키미트 준장은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알 카에다의 뿌리를 뽑아야만 한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매우 오랜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미트 준장은 “대(對) 테러전에 참가한 나라들의 크고 작은 모든 협력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도 재건 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협력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부사 관계자는 키미트 준장이 이날 브리핑한 장기전이 지난해 말 미 국방부내에서 ‘냉전(Cold War)’을 이어받는 개념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라크전 장기화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피해보려는 의도도 담겨있는 것 같다. 키미트 준장의 브리핑에 이어 ‘연합군 협력 센터’에서 열린 연합군 고위 관계자들의 브리핑에서 미국이 장기전이라는 기치를 내건 이유가 좀더 명확해졌다.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63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어떤 ‘기구’로 변화시키는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합군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중부사 소속인 연합군을 국방부 소속으로 바꿔 중동지역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계속될 테러와의 전쟁 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고 전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기구화’에 대해 각국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의 내용은 기자들이 소속된 국가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했는가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달랐다. 유럽과 아시아 기자들은 연합군의 동맹화 또는 나토화 가능성을 물었다. 아랍국 기자들은 장기전의 개념과 연합군 성격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연합군 관계자들의 답변도 눈길을 끌었다. 이라크전에 강하게 반대했던 유럽 국가의 고위관계자는 “미국과 테러전의 시각을 공유한다.”며 적극적으로 미국측을 두둔하다가 일부 기자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뒷자리에서 참관하던 미국측 최고위관계자가 직접 앞으로 나와 붉어진 얼굴로 기자들과 논전을 벌이기도 했다. 연합군 내의 정보 공유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연합군 고위 관계자는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만이 미국과 최고급 정보를 공유한다.”면서 이들을 ‘다섯 눈(Five Eye)’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특작사의 공보담당관인 켄 맥그로는 “지난 2월 현재 한국을 포함한 세계 83개 국가 및 지역에 8653명의 특수부대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는 중국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맥그로는 그러나 “북한에는 특작사 요원이 없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파견근무 중인 한국군 5명 |탬파(미국 플로리다주) 이도운특파원|“길에서 마주치는 미군과 연합군 장교들이 태극기 견장을 보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해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 중부사령부에 파견된 한국군 대표단의 단장인 김동욱 준장은 6일(현지시간) 현지를 방문한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연합군 내에서 자이툰 부대의 위상이 대단하다.”면서 “민사업무는 한국군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이라크에 머물고 있는 존 아비자이드 중부사령관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 지난달 말 일시 탬파로 돌아왔을 때는 김 준장에게 “한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매우 잘했다.”고 축하인사를 하기도 했다. 김 준장은 연합군들로부터 한국군이 높이 평가를 받게 된 비결에 대해 “사병은 지휘관에 복종하고 소대장, 중대장은 웃통을 벗어던지며 솔선수범을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준장은 63개국이 중부사에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미국과의 관계나 국력 등에 따라 위상과 활동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독일이나 프랑스도 미군과의 협조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김 준장은 전했다. 현재 중부사에 파견된 한국군 장교는 김 준장과 이라크 업무를 담당하는 최철환 육군 중령, 아프가니스탄 업무를 맡은 이현모 육군 중령, 아프리카 북부 지역 담당인 김부국 공군 중령, 연합기획팀에 별도로 파견된 최재협 육군 중령 등 모두 다섯명이다. ‘최근 한·미 관계가 껄끄러워 업무 협조에 영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준장은 “군과 군 사이에는 끈끈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dawn@seoul.co.kr
  • [정보뱅크] 쪽지 통신

    ●메가스터디(www.megastudy.net)는 최근 서울 강남, 서초 메가스터디 학원 등 직영학원 두 곳에 주말 반수반을 개설하고 4월1일 개강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대입에 다시 도전하는 ‘반수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 일요일 이틀만 집중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대상은 서울대 및 법대, 의대 지망생 가운데 최상위권 학생이며, 주당 21시간씩 수능 전 영역에 걸쳐 종합 강의를 실시한다. 강남은 인문계열, 서초는 자연계열로 특화해 운영한다.(02)521-8625. ●비타에듀(www.vitaedu.com)는 2006독일월드컵을 앞두고 4월 초부터 ‘월드컵 특강 무료 동영상’을 제공한다.‘월드컵으로 사탐을 읽는다.’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강의는 수시와 정시모집 대학별고사에 대비해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선보인다. 월드컵의 역사와 경제적 효과에서부터 붉은악마와 관련된 레드콤플렉스 현상과 태극기 신드롬, 축구의 사회, 정치적 의미, 한국의 상대국이 될 프랑스와 스위스, 토고의 지리, 인문적 특징 등 올해 월드컵과 관련한 내용을 총정리할 수 있다.(02)817-8877. ●와이즈멘토(www.wisementor.net)는 최근 전국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자향한의원(www.jahyang.net)과 공동으로 수험생의 건강 및 성적관리, 학습동기 고취를 위한 종합관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와이즈멘토는 수험생의 상담과 성적관리에서부터 학습전략과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자향한의원은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건강 진단과 검사, 체질에 맞는 한약치료 등을 1년 동안 제공한다.
  • 1967~1975 외교문서 공개

    외교통상부는 30일 1967∼1970년대 중반까지 발생한 동백림 사건, 요도호 납북 사건, 주한미군 철수 논란 등과 관련한 외교문서 11만 7000여쪽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서 동백림 사건 마무리 시점인 1969년 1월 하인리히 뤼브케 서독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특사파견을 통해 재독 음악가 윤이상씨 등 사건 관련자 6명을 석방 또는 감형한다는 비밀 합의를 했음이 밝혀졌다. 문서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람할 수 있다. 1. 동백림 사건1967년 중앙정보부가 독일에서 활동 중인 지식인들을 간첩으로 지명, 납치한 ‘동백림’사건 당시 한국 정부는 시종 군색한 외교로 일관해야 했다. 서독 정부와 시민들의 비난·압박이 심해지자 최덕신(77년 미국 망명후 86년 월북) 당시 주독 대사는 7월1일 사표를 내고 최규하 외교장관에게 “특명전권대사로서 사태만 악화시키므로 귀국 하명 있기를 앙망한다. 인책 소환이나 면직시켜 단시일 내 국토를 떠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장관은 “지금 떠나면 오해가 발생하니 더 머물라.”고 지시했다. 두 달 뒤 김영주 신임 대사가 부임했으나 빌리 브란트 외상은 한달 반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을 기피하는 수모를 주기도 했다. 서독 정부는 ‘원조 지연’카드로도 압박했다. 68년 12월5일 밤 40여명의 독일 학생 시위대가 ‘동백림 사건’연루자 석방을 요구하며 한국대사관을 점거했고, 앞서 8월 김 대사가 슈레스비히-홀스타인주를 방문했을 땐 태극기가 나치 표식으로 칠해지는 사건도 있었다. 2. 주한미군정책 최근 한·미간 논란이 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개념이 31년전 미 행정부와 의회의 주한미군 철수 논란속에서도 제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몬드, 스콧 상원의원 등은 1974년 12월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9개국을 순방한 뒤 작성한 ‘아태지역의 병력과 정책’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타 지역에 배치한다는 점과 한국에 영구 주둔시킬 수 없음을 한국인에게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 2사단을 태평양군사령부의 비상 대기병력으로 지명하고 ‘때때로’ 사단 병력 일부를 훈련을 위해 타 태평양지역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개념은 1974년 미 행정부에서 이미 제기됐다. 당시 우리 정부는 “한국을 동북아의 전진기지로 삼고 최소한의 거점을 확보, 주한미군을 기동예비군화한다는 의미”로 분석했다.75년 2월 민주당의 맨스필드 의원은 “미국의 대 중공 화해정책은 계속돼야 한다.”면서 미군의 과도한 한국주둔 등 ‘시대착오적’정책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3. 요도호사건 “일본항공(JAL)기가 북괴로부터 돌아온 후 일본인들이 북괴에 감사하다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데 어불성설이다. 제3자인 미국이 일본에 충고해 달라.”(윤석헌 외무차관이 라스람 주한 미 공사에게) 1970년 일본 적군파 요원들의 항공기 납치 사건인 ‘요도호 사건’과 관련, 곤욕을 치렀던 우리 정부는 사건 해결의 ‘공’(功)이 북한에 넘어가자 극도로 경계했다.3월30일 하네다 공항을 출발, 후쿠오카로 향하던 요도호 여객기를 납치한 적군파 요원들이 김포공항에 착륙한 뒤 79시간을 대치하다 승객들을 풀어 주고는 승객들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당시 일본 운수성 차관을 싣고 4월3일 평양으로 떠난 것이 이 사건의 개요. 북한이 납치범 일행만 받아들이고 비행기와 승무원, 운수성 차관은 일본으로 돌려보내자 일 정부는 북한에 수차례 사의를 표했고 이에 정부는 일측에 강력 항의했다. 정부의 득실분석 자료에는 “일본의 대 북괴 접근 무드가 대두되고, 대북한 자세완화 가능성이 증대됐다.”고 돼있다. 4. 70년대 인권문제 70년대 중반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미국의 공세, 특히 미 의회 ‘자유주의’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비판은 후반기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와 인권문제 연계의 토대를 마련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1975년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은 집권자의 압제정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회내에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국가가 미국의 정치철학과 역행하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을 때엔 이를 시정시키기 위해 직간접 압력을 행사해야 하고 이는 조용한 외교적 언사를 초월해야 한다.”는 주장도 쏟아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한국 순례객들 태극기 흔들며 정추기경 연호

    한국 순례객들 태극기 흔들며 정추기경 연호

    정진석(74) 추기경이 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서임 예식에서 한국인 두번째로 가톨릭 추기경에 공식 임명됐다. 추기경을 배출한 65개국 가운데 2명 이상의 추기경이 나온 곳은 30개국뿐이다. 정 추기경은 이날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주케토(성직자가 쓰는 작은 모자)와 비레타(주케토 위에 쓴 세 개의 각이 있는 모자)를 수여받았다. 추기경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서임식은 교황이 15명의 신임 추기경 임명장을 낭독하면서 시작됐다. 새 추기경들의 이름이 차례로 선포됐고 대표자가 감사 인사를 올렸다. 교황은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은 추기경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평화,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론했다. 새 추기경들은 교황의 강론 후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다. 정 추기경은 25일 교황과 함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서임 축하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추기경 반지를 받는다.27일 교황을 다시 알현한 뒤 30일 서임 축하 순례단과 귀국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정 추기경의 이름을 8번째로 선포했다. 교황이 ‘니콜라스 정진석’을 부르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 추기경은 주케토와 비레타를 수여받기 위해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추기경의 상징 복제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성 베드로 광장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평신도협의회 한홍순 회장 등 한국 순례객 300여명이 단상 우측 아래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정 추기경의 이름을 불렀다. 일부 순례객은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정 추기경은 23일 한국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이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는 표지이며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국민 전체가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모두가 생명을 존중하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생명 존중이야말로 인권의 첫째”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와 저출산을 주요 문제로 들었다. 평양 교구장을 겸직하고 있는 정 추기경은 또 “남북한이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이 열려야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북한 방문과 관련,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정 추기경은 “해방 후 공산주의 치하에서 천주교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행방불명돼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면서 “북한에 성직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티칸 연합뉴스
  • [WBC] ‘하나된 대 한민국’ 행복했다

    [WBC] ‘하나된 대 한민국’ 행복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이 열린 19일. 비록 한국이 숙적 일본에 0 - 6으로 졌지만 전국에서 울린 ‘대∼한민국’의 함성 속에 우리 모두 하나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날이었다.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더라도 국민들은 최선을 다 해준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때 선보였던 길거리 응원이 4년 만에 부활해 전국이 푸른 물결로 넘실거렸다. 2002월드컵 응원의 메카였던 서울시청앞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과 특설무대가 마련된 가운데 시민들이 오전 9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집한 3만여명의 시민들은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기휴가를 나온 이정현(22) 상병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야 하지만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함께 해 보고 싶어 귀향을 미루고 있다. 승패와 관계 없이 멋진 응원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처럼 파란색 티셔츠를 갖춰 입은 오경수(62·서울 종로구 효자동)씨는 “서울광장에 와서 즉석에서 구입해 입었다.4년 전에도 시청앞이나 광화문 일대에서 응원을 빼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야구장도 2만여명의 응원단이 전광판 좌우측 외야 관중석을 제외하고는 통로까지 꽉 들어차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인근 주차장은 이미 아침에 가득찼고 시민들은 탄천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다. 경기도 광명에서 가족과 함께 나온 김시영(45)씨는 “경기에서는 졌지만 최선을 다해 미국·일본을 연파하고 오랜만에 한껏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우리 야구 선수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외야석 부근에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연인과 함께 온 박선영(27·여)씨는 “일본에 져 결승 진출이 좌절돼 너무 아쉽다.”면서 “7회 우리나라가 점수를 내주자 적지않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는데 끝까지 지켜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무료개방돼 집단 응원장으로 바뀐 부산과 대구·광주·대전·인천 등 대도시의 야구장과 축구장에서도 대규모 응원이 펼쳐졌다. 부산 사직야구장을 가득 메운 3만여명의 관중들은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합동 응원전을 펼쳤다. 김기용 김준석기자 kiyong@seoul.co.kr
  • [WBC] 남은 건 울분… 무너진 이치로

    일본이 자랑하던 ‘천재타자’ 스즈키 이치로(33·시애틀)가 고개를 떨궜다. 이치로는 16일 한국전에서 패한 뒤 “오늘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라운드를 앞두고 “향후 30년동안 일본을 넘볼 생각을 못하게 해주겠다.”던 호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분을 못이겨 더그아웃에서 욕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삼키며 한국선수들이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광경을 그저 바라만봐야 했다.8회 수비에서도 관중석에 떨어진 파울플라이를 잡지 못한 뒤 “관중때문에 잡지 못했다.”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치로는 일본야구의 상징이다.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통산 타율 .332를 기록했고 2004년에는 262안타로 한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대회를 앞두고 사망한 ‘영원한 스승’ 오기 아키라 전 오릭스 감독을 위해 대회 출전을 결정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은 그를 오만으로 빠트렸고, 결국 한국에 두번이나 연속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293의 타율로 3할을 넘기지 못했지만 팀 내에서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16일 경기에서도 1회 첫 타석에서 박찬호로부터 안타를 뽑아냈지만 후속타자의 도움이 부족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왕의남자 관객 1200만 돌파

    한국영화사상 잇단 진기록을 세우며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씨네월드)가 11일 전국관객 1200만명을 넘어섰다. `왕의 남자´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12일 “토요일인 지난 11일 7만 3070명을 추가동원해 이날까지 전국 누계 관객 1201만 5420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현재 전국에서 상영중인 스크린 수도 206개를 유지해 당분간 흥행을 이어갈 전망이다.`왕의 남자´는 지난 5일 `태극기 휘날리며´가 보유했던 최다관객 기록인 1174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KBS 드라마 ‘서울 1945’ 촬영장을 가다

    KBS 드라마 ‘서울 1945’ 촬영장을 가다

    “나는 내 꿈대로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다시 그 시대가 오더라도 그렇게 살 것이다. 실체 없는 조국이 밥 한술, 누울 자리라도 줬단 말이더냐.” 8일 오후 KBS 수원 드라마센터 스튜디오. 주말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연출 윤창범·유현기, 극본 이한호·정성희)의 촬영이 한창이다. 극중 친일파 문정관 역의 김영철이 할복에 앞서 내뱉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무릎을 꿇고 할복해 쓰러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남짓. 그러나 수차례 촬영에 임하는 그의 눈에서 친일파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1930년대 광복 전부터 1945년 해방,1950년 한국전쟁 등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18일 방송되는 21회에서 ‘해방’을 맞이하며 전환기에 접어든다.20회까지 주 무대를 이룬 일제강점기가 마무리되면서 해방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념의 주인공들의 격정적인 인생과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윤창범 PD는 “당시 좌파 지식인들을 다루게 되지만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 시대 젊은이들의 생각과 소망을 말하고자 한다.”면서 “해방 이후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을 활기차게 그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촬영현장에서 할복을 택한 문정관은 주인공 문석경(소유진 분)의 아버지로, 일왕으로부터 자작 칭호까지 받은 친일파의 거두. 해방이 되자 사회주의자인 동생 문동기(홍요섭 분)로부터 대국민 사죄를 요구받지만 일본의 패망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자결한다. 앞서 이뤄진 해방 신 촬영은 드라마센터 오픈세트에서 대규모 군중 신으로 이뤄졌다. 주인공 김해경(한은정 분)은 태극기를 들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며, 민족주의자 최운혁(류수영 분)은 소련군과 함께 함흥으로 들어온다. 그들을 맞이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군중 속에 오랫동안 아들을 기다려온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소련군의 함흥 진주장면은 미군보다 먼저 들어온 소련군을 환영하는, 당시 혼란스런 시대상을 보여준다. 제작진이 밝혔듯이 드라마가 해방 이후에 초점을 둔 만큼 주인공들의 앞날에 관심이 쏠린다. 아버지의 자살로 몰락하는 문석경과 그녀가 사랑하는 최운혁, 김해경을 동시에 사랑하는 최운혁과 이동우(김호진 분) 등이 엮어갈 갈등과 사랑이, 시대적 아픔과 함께 어떻게 녹아들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좌파 등에 대해 자칫 치우쳐 보일 수 있는 설정이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박성인(68) 대한빙상연맹회장. 그가 행복해하는 건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지금, 한 평생을 바친 스포츠가 그에게 돌려준 선물 때문이다. 쇼트트랙을 비롯한 한국 빙상이 동계올림픽 역대 최다의 메달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파라벨라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그는 태극기 물결을 바라보며 지난 10년을 되짚었다.1997년 빙상연맹과 삼성스포츠단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쇼트트랙의도약을 약속했다. 스포츠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선택과 집중’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과 그 4년 뒤 솔트레이크대회에서 각각 금메달 3개,2개에 그쳤던 한국 쇼트트랙은 토리노에서 역대 최다인 6개의 금메달을 그에게 안기며 10년의 투자를 보상했다. 지금 경영인이나 다름없는 그는 “국제대회 성적은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시키는 외교 첨병”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이어 “쇼트트랙의 파벌 싸움과 동계종목 편식 등 부작용에 대한 치유책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직함은 꽤 많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도하아시안게임·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협상 남측 수석대표 등 하나같이 굵직굵직하다. 또 매년 수백억원의 밑돈으로 한국 스포츠를 움직이는 삼성스포츠단의 단장이다. 한국전쟁 이듬해 스포츠맨이 된 이후 55년간 그는 한국 스포츠의 희비와 궤를 같이했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다. 평양사범대 부속초등학교를 다니다 1·4후퇴 때 월남, 대구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대륜중 1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탁구 라켓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학교 대표선수로 출발, 대륜고를 거쳐 영남대 재학당시 태극마크를 달고 58년 도쿄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65년부터는 계성여중·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한일은행 감독을 거쳐 70년엔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82년 총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녹색테이블에 바친 세월은 꼭 31년이다. 그 기간 평생 잊지 못할 대사건은 91년 지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단일팀 출전이었다. 그는 대회를 두 달 남기고 협상 대표로 대한해협을 건넌 뒤 단 두 차례의 실무회담 끝에 최초의 남북단일팀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15년만에 그는 똑같은 숙제를 또 떠안았다. 올해 말 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의 두번째 남북단일팀 성사다. 당시 지바 단일팀을 함께 만들어낸 현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동갑내기인 장웅과의 협상은 국내외의 정치적 배려에 탄력을 받아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여건은 좋지 않다. 북측의 ‘포괄적 요구’라는 걸림돌에 지난해 11월 첫 실무협상이 무위로 돌아갔고, 그는 지금 재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10년을 기다려 쇼트트랙의 올림픽 최강을 일궈냈는데 그깟 2∼3개월이야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 최초의 국제종합대회 단일팀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바위처럼 굳기만 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가슴이 탁 트인다. 서울이 오색찬란한 빛을 한껏 뽐낸다. 상큼한 봄바람이 소곤거린다. 소나무 향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나그네의 발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른다. 서울성곽 야경은 오감을 즐겁게 한다. 덕분에 직장과 일상사에서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고단한 삶의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밤나들이를 떠나보자.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친 오늘을 위로받고, 내일을 설계하다 보면 어느새 성곽 끝자락에 닿는다. 이끼와 넝쿨에 뒤덮여도 어느 한 곳의 기초가 내려앉지 않았다.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옛 조상의 발자취와 닮았다. 조선 600년 세월을 지켜온 성곽이 일제침략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무너지고, 찢겨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2008년까지 성곽을 복원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역사의 숨결을 다시 느낄 날을 기대해본다. 최근 성북구가 밝힌 성곽의 야간 조명은 또 다른 볼거리다. 길이 1㎞짜리 금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서울성곽 아래 놓인 조명이 기지개를 켠다. 성곽과 그 사이로 뻗은 나무줄기가 황금 빛으로 태어난다. 나무는 눈꽃처럼 반짝인다. 밤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서울성곽 9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 빛을 밝혔다. 성북초교에서 삼청터널까지 1095m. 서울시는 총 연장 1만 8127m 중 복원된 1만 566m에 2008년까지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할 예정이다. 점등한 서울성곽 성북지구를 토박이 하두호(78)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봤다. 할아버지는 1952년부터 54년 동안 성북 2동에서 살고 있다.6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아들과 며느리와 지금도 살고 있다. 건축 일을 해온 터라 주변 환경과 건물에 조예가 깊다. ●오후 4시 한성대 입구역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빠져 나온다. 길을 건너 마을버스 3을 타고 서울성곽 입구까지 올라간다. 마을버스는 낡은 집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힘겹게 달린다. 성곽이 마주보이는 공터에 버스가 멈춘다. 종점이다. 중앙에 자리한 공중화장실 뒤로 북정노인정이 보인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오후 4시20분 출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을 걸으며 성북동을 ‘양과 음이 만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높은 담을 쌓아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호화 주택에 살고있는 부유한 사람과,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숟가락 수까지 공유하는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동네란다. 성곽과 맞닿은 가난한 동네는 일제시대부터 초가집이 하나둘씩 들어선 곳이다. 사적지여서 개발이 제한된 탓에 집이 많이 낡았다. 반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개발된 성북초교 뒤편에는 호화주택이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없이 잘려나간 뒤였다. ●오후 4시30분 성곽 도착 성곽이다. 돌로 만든 성곽은 단단해 보인다. 일제침략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가 1970년대 복원됐다. 성곽 바닥에는 1m 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해가 지면 켜졌다가 밤 12시쯤 꺼진다. “은은한 불빛이라 잠잘 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성곽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눈·비가 많이 오면 질퍽해져 산책이 힘들단다. 3분쯤 걸어가자 성곽을 뚫은 문이 보인다. 성곽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와 성북구로 나뉘는데 이 문이 통로 역할을 한다. ●오후 4시35분 와룡공원 종로구로 들어서자 와룡공원이 펼쳐진다. 돌과 시멘트로 닦은 길이 탄탄하다. 종로구 쪽으론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북구 쪽엔 북한산이 뻗어 있다. 봄이 오면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해 절경을 이룬다.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돌계단을 올라가자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공원 정자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정겹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찾았다지. 저 정자에 앉아서 찍은 사진도 있더구만.” ●오후 4시50분 전망대 2년여 공사끝에 만들어진 계동산길. 이 곳은 전망대와 같다. 좌우로 서울이 한 눈에 보이고, 성곽이 낮아 아기자기하다. 종로구쪽을 바라보면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 길로 내려가면 감사원과 만난다. 중간에 종묘의 녹지를 감상할 수 있다. 성북구로 향하면 출발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위쪽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 군부대가 주둔한 탓이다. 부대 뒤로는 청와대가 있고, 그 청와대를 인왕상과 북한산이 감싸고 있다. ●오후 5시20분 명륜지구로 내려가기 서울을 내려다 보며 올라오던 길을 내려간다. 한결 여유롭다. 사진을 찍는 연인이 눈에 띈다. 꽃밭에선 푸른 새싹이 고개를 빼들었다. 곳곳에 긴 의자가 있어 한숨 돌리기 좋다. 노부부가 다정히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쉬운 점은 성곽에 적혀 있는 낙서들이다. 누군가의 이름도, 욕설도 있다. ●오후 5시30분 선잠담지 과학 고등학교 뒤에서 성곽은 끊어진다. 성북지구가 끝나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둑해져 성곽 조명이 켜질 때까지 이웃한 문화재를 구경하면 된다. 성북초교 앞 교차로를 건너면 큰 길가에 선잠단지가 나온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뽕나무가 한가득 심어져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오후 5시50분 성락원 성북초교와 선잠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성락원이 보인다. 조선말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만들어진 별서(別墅)정원이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심속의 청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구청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6000평이 넘는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낮은 담장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오후 6시 ‘성북동 비둘기’를 찾아 오르다 보면 호화로운 주택단지가 나온다. 대사관 관저가 모여있는 ‘꿩의 바다마을’이다. 이 일대는 북한산 줄기로 수목이 울창하고 바위가 늘어서 있어 산새, 까치, 비둘기, 꿩들이 많이 살았단다. 시인 김광섭이 이곳 풍경을 주제로 ‘성북동 비둘기’를 지었다. 대사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스웨덴·칠레·슬로바키아 대사관이 곳곳에 숨어있다. 상당히 넓은 곳이라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와야 힘들지 않다. ●오후 6시30분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고 전형필 선생이 1938년,33세 때 세웠다. 대지가 4000평이라 도시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하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모은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속기관으로 발족했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곳이라 일년에 두 차례,5월과 10월에만 박물관을 개방한다. 국보급 문화재도 10여 점 소장하고 있다. 허 할아버지는 “경기 광주 부자였던 간송 선생이 한국전쟁 때 가난한 주민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이태준가 성북동길로 내려오면 ‘쌍문다리’를 만난다. 이 길은 예전에 다리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냇가였다. 냇가는 차도로 바뀌었지만 쌍문다리라는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북2동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붙은 찻집이 보인다. 바로 이태준가다. 이 집은 1900년대 지어진 건평 23.2평의 건물로 개량 한옥의 요소를 잘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되는데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집약시킨 형태다. 감나무, 사철나무로 꾸민 정원은 아담하다. 찻값은 7000원 안팎. ●오후 7시5분 이재준가 성북동 길을 횡단하면 덕수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으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이재준가를 만난다. 이 곳도 199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바깥마당의 우물가 등 집터 주위에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울려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교회가 관리하는 터라 주로 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오후 7시30분 야간 성곽나들이 어둑해지자 조명이 성곽을 은은하게 비춘다. 성곽에서 1m 떨어진 지점 바닥에서 성곽 위쪽으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이다.3억원을 들였다. 출발점에 다시 오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의 모든 빛이 성곽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가로등 역할도 해 산책하기 좋다. 성곽을 가로질러 종로구로 넘어가자 서울 야경이 펼쳐진다.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집으로 향한다. 종로구쪽 성곽은 조명이 없지만, 가로등이 많다. 허 할아버지가 꿩의 바다마을에서 성곽을 내려다 보라고 추천했다. 승용차를 타고 주택단지 위쪽으로 단숨에 올랐다. 길이 1㎞짜리 금 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마디와 닮았다. 금빛 성곽이 성북동의 음과 양을 조용히 비춘다. ●서울성곽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석축 건축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대문과 홍화문(동소문·혜화문), 소덕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자하문) 등 4소문으로 이어져 있는 서울의 울타리다.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고 있다. 형태는 타원형. 조선 6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한 곳의 기초 부문도 내려앉지 않아 우리 조상의 건축 기술을 증명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끼와 넝쿨이 뒤덮인 성곽은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견뎌온 옛 조상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농촌문제 강건너 불 아니다/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고속철(KTX)이 선보이기 전 가장 빠른 기차는 새마을호였다. 요즘도 태극기와 나란히 새마을기가 게양된 곳이 많고 새마을금고들도 성업 중이다.1970년대를 풍미한 새마을운동의 흔적들이다. 국내 여러 언론에 ‘중국이 새마을운동을 채택했다.’라거나 ‘새마을운동이 중국의 1호 문건’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의 ‘1호 문건’은 매년 초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행정부인 국무원이 공동으로 발표하는 국정의 지침서이다. 문건의 제목이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인 데다가 작년에 중국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신농촌’과 ‘새마을’ 사이에 자연스럽게 등식을 설정한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은 중국에서 1950년대 중반부터 반복해서 제안된 정책 방향이다. 따라서 금년에 중국이 농촌문제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참조한다고 해야 사실과 가깝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중국공산당과 행정부가 2004년부터 내리 3년 동안 농촌문제를 1호 문건의 주제로 삼은 점이다. 이는 중국 당국이 농촌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1978년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개혁개방 정책을 꾸준히 펼친 결과 중국 경제는 고도성장을 달성했다.‘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면서 제조업 부문이 급성장하는 동안 도·농간 격차는 커졌다. 최근 10년간 중국 도시와 농촌거주자의 1인당 소득 격차는 2.7배에서 3.2배로 커졌다.‘도농 격차’는 ‘동서 격차’ 및 ‘빈부 격차’와 함께 중국의 3대 격차로 등장하였다. 그 결과 농촌에서 소요사태가 빈발하게 되고 중국 당국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가 된 것이다. 금년도 중국 1호 문건의 또 다른 특징은 중앙과 지방의 당·정·군 주요 간부 200여명이 2월14일부터 1주일간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 토론회’에 참가한 다음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토론회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각각 기조연설을 할 정도로 당·정의 관심이 뜨거웠다. 농업정책 교과서에 ‘개도국은 농업에 세금을 매기고 선진국은 농업을 보조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 당국은 2006년 1호 문건에서 스스로 밝힌 대로 경제가 ‘농업자본 제공으로 공업이 발전’하는 단계를 벗어나 ‘공업이 농업을 살리고 도시가 농촌을 지지’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농업직불금을 50% 인상하고 농업세를 전면 폐지하며 농촌 기반시설 투자를 대폭 증가한다는 것이 1호 문건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농업의 현대화와 농민의 소득증대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농업과 농촌문제 해결 노력이 실현되어 농업기반을 정비하고 생산성을 높이게 되면 바로 이웃인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간단하지 않다. 소득작목이 중국 국내소비를 충족하고 국제시장을 넘볼 때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시장이다. 교역이 확대된다면 우리나라의 소비자 후생은 증가하겠지만 농업인 소득은 감소가 우려된다. 우리 경제가 국제분업 체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농산물 시장은 더욱 열리고 국내외에서의 경쟁은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농정은 경쟁이 심화한다는 전제 아래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이원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즉, 국제경쟁을 해볼 만한 젊은 농업 경영인들에게는 시장차별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반면에 경쟁력을 키워나가기 어려운 고령농에 대해서는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왕의 남자’ 67일만에 1175만명

    ‘왕의 남자’ 67일만에 1175만명

    감우성, 이준기 등이 출연한 사극영화 ‘왕의 남자’가 드디어 한국영화의 왕에 등극했다.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5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왕의 남자’를 본 관객수가 1175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는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역대 최대 관객 동원 기록인 1174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래 67일만의 대기록이다. 이에따라 이제부터 하루하루 새롭게 쓰여질 기록이 어디까지 계속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급사측은 일단 1200만명 고지는 가뿐하게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00만명 동원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가 61일만에 1174만명에 도달한 데 비해 ‘왕의 남자’는 22일만에 이 기록을 넘어서는 등 뒷심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네마서비스 관계자는 “최고흥행 기록을 세운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5만명 정도 되던 하루평균 관객수가 되레 6만명대로 높아진데다 극장주들도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