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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좌우로 찢긴 8·15

    또 좌우로 찢긴 8·15

    광복절이 또 둘로 찢겼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주최한 광복절 기념행사가 서울 도심 곳곳에서 따로 열렸다. 우려했던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광화문 일대 교통이 통제되면서 큰 혼잡이 빚어지는 등 시민 불편이 이어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진보진영의 80여개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야 5당은 15일 오전 11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광복 66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전날 여의도 문화광장 문화제에 이어 개최된 이날 집회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대표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시민 등 50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에 남북대화 등 대북정책의 전환을 촉구한 데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오후 4시 청계광장에서는 전국등록금네트워크(등록금넷)와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등이 주최한 ‘8·15 등록금해방 결의대회’가 열렸다. 대학생 등 1500여명의 참가자들은 하반기 대정부 투쟁 돌입을 선언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광장에서는 보수단체들이 모인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라이트코리아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등 100여개 보수단체는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종북세력 척결 및 교육 바로 세우기 국민대회’를 가졌다. 5000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각 단체들은 “진보를 가장한 종북세력은 북한 세습독재에는 한마디 비판도 못 하면서 ‘희망버스’ 운운하며 국민들 편가르기만 하고 있다.”며 ‘복지포퓰리즘 심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 통제에 나선 경찰은 7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허가받지 않은 거리시위 차단에 나서는 한편 보수·진보단체 간 충돌을 막기 위해 광화문 광장 등에 경찰력을 집중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시민 불편도 잇따랐다. 오전 11시 10분부터 낮 12시 55분까지 대한문~광화문광장 태평로 구간의 양방향 교통이 통제돼 큰 혼잡이 빚어졌다. 이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한때 1, 2호선 시청역과 5호선 광화문역이 크게 붐볐다. ‘이념 대결의 장’이 되어 버린 기념행사와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는 네티즌들이 마음을 모아 ‘나라사랑’의 의지를 다졌다. 누리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태극기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에 추가하는가 하면 “국경일을 뜻깊게 기념하자.”는 글을 속속 올리면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일본의 침탈에 맞선 ‘독도사랑’ 오프라인 플래시몹(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일제히 약속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행위)도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백민경·신진호기자 white@seoul.co.kr
  • [광복 66주년] “日 보상전에는 눈을 못감겠다”

    [광복 66주년] “日 보상전에는 눈을 못감겠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각각 일본과 태국에서 살아 온 할머니 두 명이 광복 66주년을 맞이해 귀국했다. 우리말을 잊어 통역이 있어야 대화가 됐지만 일본의 만행을 지적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1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송신도(오른쪽·89), 노수복(왼쪽·90) 할머니를 초청했다. 일본에서 유일한 군위안부 생존자인 송 할머니는 광복 후 두 번째로 고국을 방문했다. 꽃다운 열 여섯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고, 광복 후 재일교포를 만나 일본에 정착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송 할머니의 10년간 법적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2007년 제작,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무관심한 일본 정부를 고발하고자 한국에 왔다.”는 송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는 마음과 관심의 문제이며 일본 정부의 합당한 보상이 있기 전까진 눈을 못 감겠다.”고 토로했다. 노수복 할머니는 스물한 살이던 1942년 부산 영도다리 근처 우물가에서 빨래하다 일본군에 끌려갔다. 싱가포르, 태국 등을 옮겨다니며 3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다 광복과 함께 태국 유엔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으나 탈출해 태국에 정착했다. 모진 풍파 속에 우리말과 자신의 생일마저 잊어버린 노 할머니는 고향과 조국에 대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었다. 그는 “공항에 내려 태극기를 봤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하는 게 가슴 아프다.”면서 “광복절인 8월 15일을 새로운 생일로 정했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17일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 각각 태국과 일본으로 출국한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은행권 ‘애국 마케팅’ 열풍

    은행권 ‘애국 마케팅’ 열풍

    시중은행들이 광복절을 맞아 다양한 ‘애국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애국을 주제로 한 금융상품 2개를 새로 내놨다. ‘독도사랑 키위정기예금’은 만기 1년짜리 저금통장으로 판매 수익의 1%를 독도 및 광복 관련 단체에 기부한다. 금리는 최고 연 4.3%이다. ‘대한민국 815카드’도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신용카드 상품이다. 이 카드는 매년 8월 한달 동안 전국 모든 가맹점에서 최대 8개월까지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고 매달 15일에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에서 영화 관람 시 현장에서 8000원을 할인해주는 ‘815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은행은 2005년 출시한 ‘독도는우리땅 통장’의 디자인을 바꿨다. 통장 표지와 속지에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 등을 사진과 함께 실어 ‘독도 교과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는 11월 말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도수호 이벤트를 실시해 최고 연 5.0%(만기 3년 기준)의 적금 금리를 준다. 대구은행은 ‘사이버독도지점(dokdo.dgb.co.kr)’ 개점 10주년을 기념해 이달 말까지 인터넷전용예금인 ‘e-편한정기예금’을 특별판매한다. 최고 연 4.55%(만기 1년 기준)의 금리가 제공된다. 이 은행은 2001년 광복절에 사이버독도지점을 열고 독도 관련 예금, 대출 상품 등을 취급하고 수익의 일부를 관련 단체에 기부해 왔다. 거래 고객이 31만명, 총 수신은 245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은행 측 설명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호국정기예금’을 출시하고 판매 수익금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 등에서 시민들에게 태극기 4000개를 나눠주는 행사를 실시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촌철살인 만평’ 백무현 화백을 만나다

    ‘촌철살인 만평’ 백무현 화백을 만나다

    “정곡. 재미있는데, 웃을 수 없는…. ‘여보’라고 부르신 분들. 대답 좀 해보세요.” ‘@laein1224’이 10일 오전 트위터에 올린 촌평이다. 이날 아침 서울신문 2면의 ‘서울만평’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침대에서 일본 여인을 껴안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런데 가슴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여인이 침실 문을 열며 “여보!”라고 외치자 오바마는 “누구예요?”라고 묻는 품 안의 여인에게 “모르는 여자야. 신경 꺼!”라고 말한다. 만평을 그린 백무현(48) 화백이나 트위터 이용자나 기지와 재치에서 막상막하인 셈이다. 1998년부터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세상사의 한 단면을 펼쳐 보이는 백 화백이 12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을 통해 민낯(?)을 공개했다. 짙은 눈썹의 호남형 외모를 지닌 백 화백은 매일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사이에 3.3㎡도 안 되는 자리에서 피말리는 마감 전쟁을 치른다. 손목시계를 10분 당겨놓고 마감시간과 씨름한다.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히 젖기도 하고 맨 정신으로 귀가할 수 없어 술에 의지하기도 한다. 소주잔 기울이는 서민들 얘기에 귀 기울이면서 소재를 찾는 것은 물론, 이를 비틀어 해학이란 양념을 치는 것도 선술집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했다. 백 화백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때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던 일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사건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것들을 발빠르게 포착해야 하는 데 나도 인간이니까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본의 아니게 이해 당사자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있는 데 잘못을 인정한 뒤 다음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죽이겠다.’ ‘사장에게 얘기해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은 부지기수이고 총리나 장관들도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하곤 한다.”고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만화 전두환-화려한 휴가’ ‘만화 박정희’를 내놓은 백 화백은 매일 만평을 채우느라 지칠 법도 한데 ‘만화 정주영’을 목하 작업 중이다. 11월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위에선 ‘좌파’라고 눈총을 보내는데 그런 그가 재벌 회장을 만화로 그리는 이유도 털어놓는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침수된 수입차 주의보, 여름철 피부 지키는 방법, 자장면값 1500원 말 돼?, 신문이 재래시장 바꾼다, 스튜디오 초대-오일만 경제부 차장의 세계경제 진단, 건강몸매 만들기 5 등이 방영된다. 글 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서울플러스] 초등생 손도장 ‘이색 태극기’ 게양

    강남구(구청장 신연희)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관내 초등학교 16곳 학생 1600여명이 손도장을 찍어 만든 이색 태극기를 구청사 정면에 내건다. 태극기는 각 학교에서 온 16개를 하나로 모아 가로 12m, 세로 9m의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해 11~15일 내건다. 자치행정과 2104-1235.
  • [부고] 영화음악 작곡가 이철혁씨

    이철혁(본명 이경수)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 회장이 8일 오전 5시 25분 별세했다. 77세. 전남 영암 출생인 고인은 1971년 영화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푸른교실’(1976), ‘감자’(1987), ‘싸울아비’(2001) 등 40년간 400여편에 이르는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1992년에는 317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해 기네스북 예술장르 부문 영화음악 편에 ‘최다 작곡 기록 보유자’로 등재됐다. 대중가요도 많이 남겼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편곡한 것을 비롯해 최정자의 ‘처녀농군’, 김상희의 ‘빗속의 연가’, 패티김의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정훈희의 ‘풀꽃반지’ 등을 작곡했다. 유족은 부인 김희자씨와 2남 1녀. 차남 태규씨는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대종상영화제 음향상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5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양평군 팔당공원묘지. (02)923-444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수상한 파라다이스’…DMZ의 ‘모순’ 몸으로 형상화

    ‘수상한 파라다이스’…DMZ의 ‘모순’ 몸으로 형상화

    헨리크 구레츠키,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 깔린다. 종교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현대작곡가들이다. 띄엄띄엄 한 음표씩 천천히 밟아나가는 이들의 음악은 깊은 성당에서 울리는 장엄함과 ‘역사에 생략은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법하다.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비무장지대(DMZ)를 형상화하는 몸짓을 뒷받침해주기에는 딱이다. 다음 달 5~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수상한 파라다이스’ 얘기다. 지난해 8월 창단된 국립현대무용단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창작극이다. ‘수상한 파라다이스’라는 제목 자체가 직접적으로 DMZ를 뜻한다. 인간의 손이 금지된 뒤 자연생태의 보고로 떠오른 DMZ지만 휴전상태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도입부와 마지막은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해진 맘보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흥겹게 춤추는 장면으로 여닫힌다. 그 사이 작품은 크게 7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진혼, 업보, 순응, 불편한 조화, 전쟁, 연민, 기록의 순서다. 모두 DMZ에서 보고 느낀 것에서 뽑아올린 키워드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다기보다 DMZ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이 모자이크처럼 교차한다. 때문에 무용수들은 구름, 사슴, 토끼 같은 자연으로 변했다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백병전 장면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뒹굴기도 한다. 첫 창작 공연이니만큼 조금 밝고 경쾌한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홍승엽(49) 예술감독은 “첫 작품이라 뭔가 대단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가 DMZ를 떠올렸고, 싸움을 전제로 한 진공상태라는 모순적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무용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의외로 작품은 이해하기 쉽다. 한눈에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임을, 뭔가에 맹목적으로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대목에서 홍 감독은 울컥했다. “한국의 현대무용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어요. 접해보지 않은 이들만 막연하게 서양 현대무용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 사대주의의 실체입니다.” 한 박자 쉬고 덧붙인다. “제가 발언이 좀 세지요? 하하하.” 오디션으로 선발된 17명의 무용수가 75분간 공연한다. 1만~1만 6000원. (02)3472-14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태종 ‘어머니의 나라’서 태극마크 달고 훈련하던 날 “아이 앰 해피”

    문태종 ‘어머니의 나라’서 태극마크 달고 훈련하던 날 “아이 앰 해피”

    “대.한.민.국.국.가.대.표…. 아이 앰 해피(I’m happy).” 감색 유니폼의 왼쪽 가슴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까만 피부의 문태종(36·전자랜드)은 농구대표팀에 뽑힌 소감을 한국말로 해달라는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더듬더듬 내뱉은 말. 문태종은 그저 “행복하다. 영광이다.”라고 했다. 제로드 스티븐슨으로 35년을 넘게 살던 그는 지난해 ‘어머니의 나라’ 한국땅을 밟았다. 그리고 문태종이 됐다. 한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처음 밟은 고향땅. 인생을 뒤흔든 대사건이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문태종에게 한국은 그저 먼 나라였다.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쁜 어머니와는 얼굴 마주칠 시간이 별로 없었고, 한국말은 당연히 안 해봤다. ●농구공 하나만 믿고 한국행 문태종은 농구공 하나만 믿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연봉 30만 달러(약 3억 1656만원)를 거절하고 1억원을 받는 KBL을 선택했다. 많은 나이에 안정적인 계약(최소 3년)도 끌렸지만,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컸다. 게다가 2009년 동생 문태영(33·LG)이 귀화혼혈드래프트를 통해 먼저 KBL에 뛰어들어 터를 닦아놓은 상태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세르비아 등 유럽 명문리그에서 10년 이상 주전으로 뛰었던 문태종은 ‘득점왕’ 동생을 뛰어넘는 실력으로 단숨에 리그를 접수했다. 정확한 외곽포와 돋보이는 클러치 능력으로 ‘4쿼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장훈, 허버트 힐과 함께 ‘서태힐 트리오’로 불리며 전자랜드를 2010~11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말도 서툴렀던 ‘이방인’은 매 경기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란 글귀가 새겨진 헤어밴드를 차고 팬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놨다. 쓸만한 슈터가 없다고 한숨짓던 KBL 감독들은 너도나도 문태종 칭찬에 열을 올렸다. ●감독들 탐내는 ‘4쿼터 사나이’로 1996년 애틀랜타대회 이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농구대표팀이 탐내는 것도 당연했다. 한국땅을 밟으며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던 문태종은 지난 21일 바야흐로(!) 정식 한국인이 됐다. 법무부가 주관한 체육분야 우수인재 복수국적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 그리고 바로 국가대표팀에 뽑혀 25일 훈련에 합류했다. 동생은 물론, 이승준(삼성), 전태풍(KCC), 이동준(오리온스) 등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상 딱 한자리인 귀화(이중국적)선수 자리를 꿰찬 것이다. 대표팀을 맡은 허재 KCC감독은 “문태종은 기복이 없고 성공률이 높은 훌륭한 슈터다.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문태종도 관심과 기대를 잘 알고 있다. 의사소통도 어렵고, 신나게(?) 비시즌 휴가를 보낸 터라 체력도 바닥났지만 눈빛은 의욕과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는 “한국이 올림픽에 오랫동안 나가지 못한 걸 알고 있다. 어머니가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사놨으니 꼭 올림픽에 가라고 하셨다.”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오는 9월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야만 내년 런던에 초대받는다. 문태종의 ‘코리안 드림’이자 코리안의 ‘드림’이 함께 영글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에비앙 마스터스] ‘물꼬’ 튼 유소연 2연승 몰아칠까

    US여자오픈 역전승의 주인공 유소연(21·한화)이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에비앙 마스터스(총상금 325만 달러)에 도전한다. 한번 물꼬를 트면 무섭게 몰아치는 유소연만의 스타일로 2연승을 거둘지 관심이 쏠린다.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가 LPGA 투어와 공동 개최하는 에비앙 마스터스는 21일부터 나흘간 프랑스 에비앙-르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장(파72·6334야드)에서 열린다. 유소연은 US여자오픈이 끝난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고 지난 18일 대회가 열리는 프랑스에 도착했다. 유럽 대회는 처음이지만 국가대표 시절 다양한 코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적응에는 문제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또 대회장이 알프스 산자락에 걸쳐져 있어 한국의 ‘산악형’ 골프코스와 비슷한 것도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유소연은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경기를 즐기면서 풀어가겠다.”며 “코스를 잘 모르지만 연습 라운드를 통해 치밀하게 코스 공략법을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일단 우승을 하면 계속 감을 유지하는 유소연은 ‘몰아치기의 명수’로 유명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냈던 2009년에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그해에만 총 4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만만치 않다. 호적수들이 많다. US여자오픈에서 공동 15위로 밀리는 바람에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한 청야니(22·타이완)가 벼르고 있다. 유소연과 청야니는 같은 조에 편성돼 21일 오후 8시 티오프를 한다. US여자오픈에서 유소연에게 아쉽게 역전을 허용한 ‘라이벌’ 서희경(25·하이트)도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신지애(23·미래에셋), 지난해 준우승한 최나연(24·SK텔레콤)도 오랜 부진을 털고 올 시즌 첫 승 수확을 노리고 있다. 신지애는 지난해 모건 프레셀(미국)과 접전을 펼친 끝에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스카이다이버가 대형 태극기를 달고 신지애의 시상식장에 착륙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이 대회 전까지 우승이 없었던 신지애는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을 계기로 하반기에 1승을 추가했다. 한편 에비앙 마스터스는 여러모로 한국 선수들에게 뜻깊은 대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면 1988년 구옥희가 일본에서 열린 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첫 우승을 거둔 뒤 통산 100승째를 달성하기 때문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장훈 감독 “죽여야 사는 보통 사람들 숨소리 담았다”

    장훈 감독 “죽여야 사는 보통 사람들 숨소리 담았다”

    올 여름 기대작 중 하나인 ‘고지전’(20일 개봉)이 베일을 벗었다. 6·25전쟁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유도 모른 채 최전방 고지 위에서 죽어가야했던 300만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를 잇따라 히트시킨 장훈(36)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전쟁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식상할 수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한번쯤 전쟁영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세 번째 선택작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처음 ‘고지전’ 연출 제안을 받고서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의형제’ 개봉을 앞두고 많이 지쳐 있었던 데다 전쟁영화는 좀 더 경력이 쌓인 뒤에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두 시간 만에 마음이 바뀌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전쟁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든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인물 캐릭터와 상황 묘사가 뛰어났다. →그래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이미 수많은 전쟁 블록버스터가 있지 않은가. -솔직히 나도 6·25전쟁 60주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왜 전쟁영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에 관한 영화도 한 편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 찍은 전쟁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고지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는 별로 없지 않은가. →스토리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휴전 회담 와중에 수십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다 보면 분명히 드라마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영화이지만 그 안의 인물들의 정서에 가장 주목했다. 끈끈한 혈연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한 것도 아닌데, 최전선에 모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로 죽일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남북한 군인들 모두 비슷한 정서의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성마저 변해버린 악어중대 김수혁(고수) 중위의 캐릭터가 감독의 의도를 잘 대변하는 것 같은데. -전쟁을 겪으면 사람이 변한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쏴야 하고, 선과 악의 기준도 사라진다. 광적인 전쟁 기계로 변한 수혁의 단선적인 모습보다는 변하기 전의 순수한 모습도 담고 싶었다. 고수씨가 시나리오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를 준비해 왔다. 얌전하고 예의 바른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는 뚝심 있는 배우다. →젊은 감각의 전쟁 영화라는 느낌이다. 생생한 전투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전투 장면을 찍을 때는 장비가 가까이 못 들어가기 때문에 카메라가 뒤로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물들에게 최대한 밀착해 숨소리까지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십자 형태로 교차시킨 장대 밑에 카메라를 매달아(일명 ‘가마캠’) 협곡의 구석을 담아냈다. 고지 정상과 아래에 기둥을 박고 줄을 연결해 만든 와이어캠도 활용했다. 덕분에 인물들과의 거리감을 최대한 줄이고 전투 상황을 생생하게 찍을 수 있었다. →군대 다녀오는 심정으로 찍었다던데. -앉아 있기도 힘든 비탈진 산이라 촬영하는 데 애를 먹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면 경사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가파른 경사면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기도(‘핸드헬드’)도 쉽지 않았다. →제작비만 100억원이 넘게 들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안 그래도 찍고 나니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썼나 싶다. 영화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을 통해 보여지는 전쟁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관객층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고수, 신하균, 이제훈, 이다윗 등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의 힘만 믿고 있다(웃음). →주로 남자들의 거친 이야기를 다뤄왔는데 멜로에는 관심이 없나. -무슨 말씀. 나도 허진호 감독 영화처럼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를 좋아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찍어보고 싶다. 하지만 ‘고지전’에는 멜로를 넣고 싶지 않았다. 전쟁 상황에서의 멜로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원래 미술학도(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인데. -대학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일반 직장을 다니면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다 얻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영화를 만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스승인 김기덕 감독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솔직히 많이 힘들다.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가족에게도 섭섭할 때가 있는데, 오랜 시간 스승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감독님에게 왜 섭섭하지 않겠나. 하지만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감독님이 (자신의 작품) ‘아리랑’을 통해 마음이 편해지셨으면 좋겠다. 외유내강. 인터뷰 내내 머릿속을 맴돈 단어였다. 촬영장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는 ‘순한 감독’으로 통하는 장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짜내기보다는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단 두 작품만에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른 그의 성공 비결이 손에 잡힐 듯했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워싱턴포스트 1면 대서특필

    [평창, 꿈을 이루다] 워싱턴포스트 1면 대서특필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7일 자 1면 머리기사로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사진을 실었다. 사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 도시로 발표되는 순간 이명박 대통령과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대표단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신문은 세 번째 도전 끝에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점을 염두에 두고 ‘올림픽을 향한 한국의 집념이 보상받았다’라는 제목과 함께 가로 5단에 걸치는 통단에 가까운 사진으로 이 뉴스를 보도했다. 신문은 사진 설명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 대표단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도시로 선정되자 감격해 환호하고 있다.”면서 사진에 등장하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조양호 평창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피겨 여왕 김연아, 한국계 미국 올림픽 스키 대표 선수 토비 도슨 등의 이름을 일일이 소개했다. 신문은 1면 사진 기사에 이어 스포츠 면에 ‘2018년의 매력-한국이 올림픽을 얻어냈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특히 그래픽으로 북한까지 포함한 한반도 지도를 그려놓고 ‘평창’(Pyeongchang)과 ‘평양’(Pyeongyang)을 적시함으로써 미국인 독자들이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신문은 “결과가 발표된 순간 한국 대표단은 펄쩍펄쩍 뛰고, 태극기를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면서 “평창의 두 차례 실패에 이은 세 번째 연속 도전은 (올림픽의) 관습을 벗어난 것이었다.”고 했다. 또 뉴욕타임스도 “참을성과 인내가 승리했다.”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발언 등을 토대로 “평창이 인내한 덕에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한편, 독일의 ‘히든카드’로 나서 뮌헨의 동계 올림픽 유치를 도왔다가 실패한 ‘축구 영웅’ 프란츠 베켄바워는 “유럽국들이 이기심 탓에 뮌헨과 (프랑스) 안시에 표를 주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유럽국 출신 IOC 위원들이 훗날 자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려면 비유럽국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평창에 몰표를 줬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우리가 해냈다… 12년 마음고생 끝나”

    “우와~ 우리가 해냈다. 생전에 이렇게 기쁜 날이 올 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전해오는 생방송에 눈과 귀를 모으고 가슴 졸이던 강원도민들은 일순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는 순간 강원도는 모두가 하나였다.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중계를 보던 사람들도,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도심과 시골의 구분없이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거리를 지나던 자동차들도 경적을 울려대며 기쁨에 동참했다. 새벽시간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월드컵 응원 때 입었던 붉은악마 티셔츠를 다시 입고 태극기까지 꺼내 들고 거리를 달렸다. 무엇보다 동계올림픽 메인경기가 펼쳐질 평창군 대관령면 주민들은 벅차오르는 감동 속에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며 기쁨을 만끽했다. 5940여명의 주민이 모여사는 대관령면은 이날 밤 마을 중심지 횡계로터리에서 자축 고기·술파티를 열었다. 고향 평창에서 평생을 토박이로 살아왔다는 김진광(54·농업) 대관령면 횡계5리 이장은 “대대로 화전밭을 일구며 가난하게 살아온 고향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니 꿈만 같다.”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고 후손들이 세계속의 평창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벅차다.”고 울먹였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대관령면의 홍보단을 이끌고 앞장섰던 염돈설씨는 “12년동안 2번 실패를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마침내 3차례만에 유치에 성공해 이제는 온 국민과 함께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동계스포츠 꿈나무 선수들과 감독들도 희망에 부풀었다. 전국동계체전 알파인 3관왕 김소희(17·여·고3)양은 “우리 고장에서 동계올림픽 열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2018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저의 꿈인 IOC 위원이 되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알리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릉·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평창 만세” 대표단 100여명 태극기 휘날리며 눈물

    [평창, 꿈을 이루다] “평창 만세” 대표단 100여명 태극기 휘날리며 눈물

    6일 오후 5시(한국시간 밤 12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발표장인 더반 국제컨벤션센터(ICC) 오디토리엄. 화동이 개최 도시 명단이 담긴 봉투를 들고 발표장으로 들어선다. 세 후보 도시 관계자 등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봉투가 건네진다. 위원장은 봉투를 열고 개최지를 호명했다. “평창” 순간, 단상 하단에 있던 100여명의 평창 대표단은 자리를 박차고 모두 일어서 소리 높이 외쳤다. “평창 만세” 대표단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김진선 특임 대사 등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서로 진한 악수를 나눴다. 경쟁 도시인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의 유치위 관계자들도 악수를 청하며 오래 준비한 평창의 승리를 축하했다. ICC 인근에서도 “평창 만세”가 울려퍼졌다. 가슴 졸이며 주변에서 기다리다 결과를 전해들은, 한국에서 온 20여명의 응원단은 “평창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북을 울렸다. 흥겨운 시간은 늦게까지 이어졌다. 앞서 평창은 안시, 뮌헨에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8명의 발표자가 3~4분씩 나눠 쓰며 45분간 평창 유치의 당위성을 진한 감동과 함께 선사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을 시작으로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피겨퀸’ 김연아, 문대성 IOC 선수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한국계 미국 스키 선수 출신인 토비 도슨, 나승연 대변인 순으로 단상에 올랐다. 먼저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우리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우리가 준비됐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우리의 꾸준한 열정과 유치 수준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8년 평창은 대한민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이며 대통령으로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보증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선 특임대사는 “우리는 두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도전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열정이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해졌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인 꿈, 강원도민의 소망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국민의 꿈이 됐다.”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연아는 “과거 한국의 많은 동계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 드림을 위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드라이브 더 드림’ 프로그램을 통해 시설을 지원해 내게도 행운이었다.”면서 “우리의 승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성공과 성취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했다. 문대성 IOC 위원은 “올림픽 선수들은 이동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콤팩트한 경기장을 설계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위해 집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성 체육회장은 “지난 몇달 IOC 동료들로부터 ‘올림픽 기간 중 평창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쇼핑이나 엔터테인먼트 장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서 “우리는 ‘베스트 오브 보스 월드’라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동양의 독특한 진미에서부터 세계 곳곳의 문화 시설까지, 손님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평창에서 제공될 것”이라며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토비 도슨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로스타일스키 미국 선수다. 양부모를 통해 스키를 배웠고 스키는 나 자신을 변화시켰다.”면서 “유치 노력의 핵심은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더반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최호성은 사진을 찍자고 하니 대뜸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이래야 태극기가 잘 보이죠.”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 단 태극 마크다.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골프판에서 화제가 된 요즘의 그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잡초 골퍼’라는 소리를 줄곧 들어온 최호성. 잡초가 10년 만에 꽃을 피웠다. 지난 1~3일 열린 한·일 골프대항전 KB금융 밀리언야드컵에서 최호성은 ‘왕자님’ 이시카와 료(20)만큼이나 갤러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축구선수 김병지를 연상시키는 갈기머리, 예쁜 곳 하나 없이 거칠고 투박한 스윙폼 때문만은 아니다. 곡절 많은 삶을 살아내며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적 면모가 최호성을 특별하게 한다. 그는 지금 골프계를 주름잡는 20대 초반의 골퍼들과는 한참 다른 삶을 살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잡은 것은 골프장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25세 때. ‘영업사원도 골프를 알아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20세 때 선반공으로 일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골퍼에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방향타와 같아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쯤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오는데, 그에게는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 나이 먹을 동안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어요. 무엇이 내 길인지 몰라 헤매고 있었죠. 그때 골프를 만났어요. 이게 내 운명이고 내 삶을 발전시켜 줄 수 있는 거라면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골프만큼은 달랐다. 그를 하염없이 잡아끌었다. “마력이었어요.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골프 코스가 펼쳐지면서 낮에 범했던 더블보기도 생각나고…. 제 승부 근성을 제대로 자극했어요.” 28세에 한국프로골프투어(KGT)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프로가 됐다. 그해 2부 투어에서 상금 1위를 차지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8년 11월에야 첫 우승컵(SBS 하나투어 챔피언십 대회)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로 준우승만 세 번 했다. 그동안 그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겼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운명같이 만나 결혼한 8세 연하 아내와 아내를 꼭 닮은 두 아이였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우승이 간절했지만 그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믿었어요. 저는 화초가 아니라 잡초처럼 살아 왔으니까 어떤 상황이 와도 헤쳐 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의 자신감은 생활에서 나온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대회가 없으면 한국보다 연습 여건이 나은 중국 선양에 처박혀 훈련만 한다. 밭을 우직하게 일구는 농부처럼 그는 골프를 쳤고 수확을 거뒀다.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 등 올 시즌 선전에 힘입어 밀리언야드컵 출전 기회도 뒤늦게 얻었다. 승패가 걸린 마지막날 3라운드 싱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1조로 나서 승리를 거두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1조가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니까 엄청 중요했죠. 아무도 손을 안 들길래 내가 하겠다고 총대를 멨는데, 나라를 대표해 하는 경기라 그런지 상금 대회보다 세 배는 힘이 드네요.” 지난 3일 대회가 열렸던 김해 정산골프장에서 경기 직후 만나 그가 처음 한 말이었다. 지금이 ‘제2의 전성기’냐고 물으니 그는 손사래를 친다.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 뿐 아직 정점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하지만,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진화하는 것 같아요. 저더러 불혹 운운하는 말들도 그래서 듣기 싫어요.” 자연스럽게 그의 목표가 궁금해졌다. 뻔한 질문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골퍼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해요. 딸린 식구들을 책임지는 게 가장 큰 임무죠. 일을 소홀히 하면 밥을 굶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연습을 하고 대회에 나가는 거죠.” 애초에 화려해 보이자고 시작한 골프가 아니었다. 그에게 골프는 생활이었다. 세상의 어떤 신념보다 ‘먹고사니즘’보다 강한 것은 없다. 최호성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7일부터 나흘간 강원 정선에서 펼쳐지는 원아시아투어 2011 더 채리티 하이원리조트 오픈(총상금 10억원)에 출전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최호성은 누구 ▲ 생년월일 1973년 9월 23일 경북 포항 출생 ▲ 체격 172㎝, 72㎏ ▲ 경력 2001년 10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입회/2001년 KPGA 2부 투어 상금 1위/2008년 11월 SBS 하나투어 챔피언십/2011년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통산 2승)
  • 더반 출격! 이번엔 태극기 휘날린다

    더반 출격! 이번엔 태극기 휘날린다

    “세 번은 울지 않겠다.”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표단이 드디어 ‘결전의 땅’으로 떠난다. 대표단은 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개최지를 결정짓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장소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향한다. 대표단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진선 유치 특임대사 등 IOC가 정한 공식 대표 100명과 지원단 80명이다. 토고의 수도 로메에서 열린 아프리카올림픽위원회(ANOCA) 총회 참석차 먼저 출국한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은 2일 현지에서 합류한다. 유치전의 최전방에서 활약했던 이들은 “반드시 유치해 돌아오겠다.”며 결연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조양호 유치위원장 2년 전 평창유치위원장을 맡을 당시 어깨가 무척 무거웠다. 평창은 이미 2010년과 2014년 두 차례 도전에서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이 될 세 번째 도전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번 도전마저 실패로 끝난다면 강원도민을 포함한 국민이 받을 충격에 부담이 컸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지난 2년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종착역에 다다른 지금까지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에 견줘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남은 기간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 마지막 2시간, 마지막 2분 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정병국 문화부 장관 지금까지 정부는 평창 유치를 위해 대한체육회, 강원도, 민간 등과 합심해 IOC 평창 실사, 국제 행사 프레젠테이션(PT) 등 모든 유치 과정을 실수 없이 치러왔다. 무엇보다 남은 기간 실수하지 않고 치밀하고 신중하게 유치 활동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은 물론이며 우리 스포츠 외교력을 총동원한 최적의 대표단을 구성해 현지에서 총력전을 펼 것이다. 또한 투표 당일 최종 PT를 통해 아시아 및 세계 동계스포츠 확산이라는 평창의 유치 명분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IOC 위원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이제는 평창’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겠다. 정부는 현지에서 꼭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 ●박용성 체육회장 2018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평창 유치를 위해 그동안 대한체육회는 유치위원회는 물론 정부와 국회, 기업 등과 열심히 뛰어왔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민을 포함한 우리 모든 국민들도 뜨거운 유치 열망 속에 함께 뛰어왔다. 결전의 장소 남아공 더반으로 떠나면서 본인을 비롯한 모든 유치 관계자 일동은 동계올림픽을 기필코 평창으로 유치해 1988년 서울올림픽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제는 평창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은 7월 6일 더반에서 우리 대표단의 함성이 이곳 대한민국까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간절히 기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진선 특임대사 대학 입시를 치르고 합격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더반 총회에 참석한다. 특히 지난 두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더욱 초조하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평창은 지난 수년간 IOC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 시설 등을 대폭 보강한 데다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 강력한 정부 지원, 아시아의 동계스포츠 확산이라는 명분 등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유치 후보 도시다. 이번엔 IOC 위원들이 표를 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처음 제안했고, 세 번째 유치 활동에 나선 만큼 그간 꼬인 매듭을 시원스레 풀겠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임하겠다.
  • [22일 TV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KBS1 밤 10시) 지구의 생물들은 자신들이 사는 환경에 맞게 경쟁하면서 때로는 공존하면서 생존해 왔다. 생존의 본능은 경험과 결합하면서 진화해 왔다. 이에 따라 생태계의 질서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독특한 동식물들의 생존 방식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지구 생태계의 소중함을 알아본다. ●로맨스타운(KBS2 밤 9시 55분) 다겸은 엄수정 방에 걸려 있던 그림을 챙겨 영희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순금은 엄수정이 챙겨간 5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캐리어에 담아 1번가로 들어오다 건우(정겨운)를 만난다. 건우는 캐리어 속에 뭐가 들었느냐고 순금에게 묻는다. 한편 영희는 위작 손해배상을 위해 집들을 돌며 돈을 꾸러 다닌다. ●수목 미니시리즈 최고의 사랑(MBC 밤 9시 55분)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독고진은 해외 모처에서 절대 안정을 취한 후 귀국길에 오른다. 그렇게 독고진은 업그레이드된 후 더욱 특별한 인간으로 변모한다. 한편 약재 시장을 찾은 필주는 장금이 분장을 하고 촬영 중인 애정과 오랜만에 만나게 되고, 그 시간 독고진은 애정의 집으로 가 반갑게 형규와 재회한다. ●특집다큐(SBS 밤 12시 35분) 산악인 박영석은 산악 그랜드슬램에 이어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를 개척해 왔다. 지구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멀고 험한 곳에 그 누구보다 많은 태극기를 꽂은 산악인이다. 그러나 이제껏 박영석이라는 이름은 늘 ‘산악그랜드슬램’, ‘세계 최초’라는 키워드에 가려져 왔다. 이제 인간 박영석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다큐프라임(EBS 밤 9시 50분) 몽골 남고비 사막의 가르빈 고비 지역은 붉은 털을 가진 쌍봉낙타가 유명하다. 몽골 전역에서도 낙타가 많아 ‘낙타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다. 새끼를 밴 어미낙타 공지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첫 새끼를 낳기 위해 며칠째 사막을 떠돌고 있다. 그렇게 난산 끝에 태어난 새끼는 몸이 약해 젖을 빨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노래 한 곡으로 국민가수가 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5000만 국민이 모두 다 아는 애창곡의 주인공들이다. ‘동물농장’의 서수남, ‘타타타’의 김국환, ‘촛불잔치’의 이재성, 1970~90년대를 주름잡아 왔던 이들. ‘나는 전설이다’의 MC 이봉원·최양락의 진행으로 그들의 무명시절부터 최고의 전성기,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전격 공개한다.
  •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태극기를 밟고 찍은 사진이 한국에서 논란이 된 모양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둘로 갈려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태극기를 짓밟다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는 비난과 “별걸 다 트집 잡는다. 그럼 태극기를 엉덩이에 두르는 것은 괜찮으냐.”라는 두둔이 드잡이하고 있었다. 내 알량한 분석력을 총동원해 판단하건대, 한 전 총리가 고의로 태극기를 밟은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아마도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느라,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석에 헌화하느라 태극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다. 정말 작심하고 모독하고 싶었다면 굳이 신발을 벗고 태극기 위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적어도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그가 태극기를 무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태극기를 밟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았더라도 실수로 봐줄 수 있지만,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전력으로 미뤄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의 잠재의식 속에 정말 ‘태극기 무시’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모습에서 태극기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극진한’이라 함은 부모님 영정만큼, 아니면 자신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의 영정만큼 끔찍이 위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태극기에 발을 올려놓는 일은 저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고백하건대, 나 역시 태극기를 극진히 예우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경일에는 ‘애국심을 꼭 표현해야 맛인가.’라는 자의적 논리로 국기 게양의 귀찮음을 합리화했고, 평소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월드컵 응원할 때나 돼서야 맘 떠난 애인 손잡듯 찾는 게 태극기였다. 왜 그랬을까 ‘분석’해 보니 과거 군사정부 시절 강요된 애국심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심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 애국가가 울리면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를 웅얼거리던 시대였다. 민주주의도 자라고 나도 자랐지만, 태극기에 대한 나의 정서는 유년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미국에 와서 ‘개과천선’했다. 미국 국민의 성조기 사랑은 가히 설화적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공사장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아놓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중고차 판매장에 진열된 수백대의 차 하나하나에 성조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봤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따로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라고 계도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의 이런 태도는 세계 최강대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류대학, 일류직장에 다니면 자랑하고 싶은 심리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성조기 사랑은 불온한 파시즘이나 유치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끌어올림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유쾌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삼류대학, 삼류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것처럼 삼류국가 국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국기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성조기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공사장 노동자가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한국의 화이트칼라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국기 홀대는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고 국기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약 북한 인공기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태극기에 정이 안 가는 분이 정말 있다면, 그 마음 씀이 너무 박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태극기는 남북이 분단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와 가시밭길을 함께한 ‘겨레의 조강지처’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혈서를 받은 것도 태극기였고, 유관순 누나가 아우내장터에서 손에 들었던 것도 태극기였다. 지난주에는 프랑스의 한류팬들이 우리보다 더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carlos@seoul.co.kr
  • [관가 포커스] 우주 이야기에 흠뻑 빠진 공무원들

    [관가 포커스] 우주 이야기에 흠뻑 빠진 공무원들

    “태극기는 우주 원리를 바탕에 둔 세계 유일의 국기이고, 동아시아 전설 속 ‘삼족오’는 해를 상징하는 영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종합청사 ‘수요세미나’ 인기 8일 오후 5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별관3층 국제회의장에 모여 앉은 100여명의 공무원들이 ‘말랑말랑한’ 우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려운 천문 상식을 딱딱하지 않게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박석재 전 한국천문연구원장의 말솜씨에 공무원들은 감탄했다. 행정안전부가 ‘자기계발의 날’인 수요일마다 매주 혹은 격주로 과학·인문학에서 주제를 정해 분야별 권위자로부터 강의를 듣는 ‘수요 세미나’ 첫 시간이었다. 행안부는 정부 정책을 다루며 자칫 감성이 메마를 수 있는 공무원들에게 창의성과 감수성을 키워 주기 위해 이 시간을 마련했다. 강의는 원하는 청사 직원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강사진은 직원들이 원하는 분야별 베스트 강사진을 직접 추천받아 섭외하고 있다. 세미나 시간은 업무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오후 5시부터 1시간가량. 첫날인 이날 ‘우주에 길을 묻다’를 시작으로, 15일엔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가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성’을, 7월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정보격차 해소’를 주제로 강의한다. ●명사 초청… 과학·인문학 강의 강의를 들은 직원들은 다소 낯설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눈길로 경청했다. 교과부 오모(35) 주무관은 “굳이 외부강의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청사 안에서 편하게 교양을 쌓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행안부는 3개월간 시범운영한 뒤 호응이 높으면 대상 분야를 넓혀 세미나를 계속할 계획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대구 사이버 국기게양 운동

    대구시가 ‘사이버 공간에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인다. 시는 오는 6일 제56회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운동을 벌인다고 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이날부터 현충일까지 사이버 태극기달기 기간으로 정하고 직원들에게 태극기 이미지를 PC 바탕화면의 배경으로 깔도록 했다. 이와 함께 젊은 층을 상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태극기 달기 홍보를 강화하고 태극기 이미지를 PC 및 휴대전화 바탕화면 배경에 지정하도록 적극 유도키로 했다. 시는 또 지난해 처음 개설한 대구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4000여명의 친구에게 태극기 달기 운동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이들과 휴대전화와 PC에도 태극기 이미지를 게양하자는 운동을 함께 벌일 예정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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