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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인륜범죄 심각” 한목소리(정가 초점)

    ◎유해업소 규제 정책혼선 추궁/도덕 회복위한 정부대책 촉구 20일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최근 잇따른 성폭행 등 반인륜범죄와 학교주변 유해환경에 대한 추궁이 드셌다.여야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공동체 가치관의 실추를 개탄하고 도덕성과 윤리회복을 위한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자민련 정상천 의원은 『성폭행 당한 여중생이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하고 초등학생 소녀가장이 이웃 주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뒤 자살을 기도해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정신질환에 걸린 사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홍일점인 국민회의 정희경 의원은 『학교폭력과 청소년 비행은 몇해 전만 해도 학교교육의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로 참으로 참담한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신한국당 황성균 의원은 『학원폭력은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은폐된다』며 『95년 11월부터 96년 1월까지 학원폭력 단속으로 구속된 9천6백44명 가운데 환각제 흡입과 성폭력 사범이 각각 1천3백10명과 5백10명으로 집계됐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자민련 김종학 의원은 『교육부는 비디오방 등을 학교주변 유해업소에 포함,규제를 강화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청와대 고충처리위는 유해업소의 범위를 축소하라고 교육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정책혼선을 비난했다. 신한국당 이강희·김문수 의원은 『청소년들이 경마에 학비와 용돈을 탕진,경마장이 불량청소년의 아지트·온실역할을 하고 있다』『부천·의정부·안양 등 서울주변에는 학교가 부족해 다른 지역으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본드를 마시며 비행의 길로 빠진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같은 당 강용식 의원은 『불량비디오와 퇴폐 출판물,무책임한 TV방송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뒤 『교육개혁의 중점을 인성교육에 두고 유아·초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수성 총리는 『유효적절한 대책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어 송구스럽고 안타깝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은뒤 『인간존중 정책을 실천하겠지만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의식 전환에 기대할 수 밖에 없으며 다만 사회지도층과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범국민적 의식개혁운동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박찬구 기자〉
  • 호화분묘/백홍기 강릉대 박물관장(굄돌)

    요즈음 중국에 다녀오는 여행객수가 무척 많아졌다.그래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 조사단이 신라고분군을 발굴,조사하던 어느날 중국에 다녀온 몇 분이 찾아와 이 신라고분이 당시 귀족의 무덤이냐 아니면 서민의 것이냐고 물어보면서 중국 서안에서 본 진시황의 여산릉에 관한 견문담을 늘어놓았다.『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의 웅장함이나 대만 고궁박물관의 화려한 유물에 비해서 우리나라 역사유적이나 유물은 너무 초라하고 빈약하다』는 것이었다.그 규모의 웅장함이나 호화찬란하다는 점에서 이 분의 말에 수긍이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그러한 역사기념물의 생성배경도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사기에는 진시황의 여산릉 축조에 70만명의 죄수가 동원되었다고 하며,한 무제의 묘인 무릉의 축조에는 국가 공부의 3분의 1이 탕진되었다고 한다.또 한 경제의 묘인 양릉에서는 능축조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죄수가 목과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묻혀 있는 1만여기에 달하는 무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신라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그 재를 동해에 뿌려달라,그러면 나는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했다고 하며,그 유언에 따라 경북 봉길리 앞 동해에 있는 대왕암의 해중릉침이 조성되었다고 한다.이 어찌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있겠는가.우리의 황남대총도 결코 작은 규모의 왕릉은 아니지만 수많은 죄수와 백성의 희생이나 착취의 소산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에도 초호화분묘가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되는데,현대의 초호화분묘는 먼 훗날 우리 후손에게 과연 어떠한 감회를 줄 것인가 궁금하다.
  • 개발로 파괴되는 자연/백홍기 강릉대 박물관장(굄돌)

    『자연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루소는 말하였다.「논어」에도 「지자는 요수하고 인자는 요산한다」고 하였다.높은 산정에 오르면 몸만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고고함을 느낀다.옛 구도자들이 한결같이 산을 택했던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한광대한 대자연은 인간의 정신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을 포함한 인간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의 공급원이기도 하였다.우리 인류는 홍적세의 수백년동안 풍요로운 자연에 의지하고 순응하면서 살아왔으며,자연을 장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그러나 흔히 「신석기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농경과 가축을 시작한 충적세 이후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적용보다는 이용이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특히 근대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은 자연자원의 고갈과 생태계의 전반적 오염,파괴라는 위기국면을 맞기에 이르렀다.21세기에는 물의 고갈이라는 심각한 전망이 점쳐지기도 한다.신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빠른 속도로 탕진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물 맑고 공기가 좋아서 쾌적한 환경을 지탱해오고 있는 강원 영동지방에도 요즘 개발의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도처에서 산이 없어지고 물이 막히고 도로가 확장되고 새로운 건조물이 세워지고 있다.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되고 주변의 오염이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보호쪽보다는 개발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오랫동안 자연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오면서도 좀처럼 그 고마움과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버릇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끼리끼리 모여 놀고 먹고 마시고…/대학가 「퇴폐 사교클럽」 기승

    ◎부유층자녀 등 자격제한… 1백개 넘어/호텔 등서 파티·수백만원대 포커판도 대학가에 향락지향적인 비밀 사교클럽이 늘고 있다.이념서클이 퇴조하던 9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놀고 먹고 마시는」 것만 추구하는 동아리들이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상류 사교클럽」은 명우회 팍스(FOX) 센추리(CENTURY) 이스라(ISRA) 스플래쉬(SPLASH) 스플렉스(SPLEX) 씨네필(CINEPHIL) 서현회 아이섹(AISEC) 유니트(UNIT) CISV 등 10여개.잘 알려지지 않은 모임까지 합하면 1백개도 넘는다. 이들은 철저하게 끼리끼리만 모인다.물론 아무나 가입할 수도 없다.부모가 상당 수준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며 보통 선배 회원의 추천으로 가입할 수 있다. 일부 명문대생 클럽,서울 강남의 일부 고교나 예술고교 출신자 그룹,특정 사립국교 출신 모임,외국에서 귀국한 명문대 재학생들의 그룹 등이다. 이들은 스키·볼링·요트·스킨 스쿠버 등 취미활동의 모임이라고 내세우지만 대부분은 향락을 추구하는 「노는 모임」이다. 회원들만 드나드는 멤버십 카페를 정해 놓고 모여 술을 마시거나 나이트클럽을 하룻밤 통째로 빌려 생일파티를 한다.화려한 드레스나 정장 차림으로 특급호텔에서 테마파티도 갖는다. 이들과는 다르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복학생들 중심으로 밤새워 수십만∼수백만원대의 포커판을 벌여 등록금과 하숙비를 탕진하거나 터키탕과 안마시술소 등 퇴폐 유흥업소도 드나든다.
  • 10대 부모통장 훔쳐 가출 한달동안 9백만원 탕진(조약돌)

    ○…제주도 서귀포 경찰서는 29일 큰돈이 입금된 부모 통장을 갖고 가출한뒤 제주로 여행을 온 김모군(18·무직·전북 군산시 해방동) 등 10대 8명을 붙잡아 부모에게 인계. 김군은 지난해 12월 26일 1천만원이 들어 있는 부모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가출한뒤 서울·이리 등 전국을 돌아다니다 유모군(16·고교생·전북 군산시 소룡동)과 박모양(14·중학생·부산 영도구 청학동) 등 가출한 남녀 10대 8명을 만나 『내가 여행경비를 모두 부담할테니 제주 여행을 하자』고 제의,지난 24일 제주에 도착해 남제주군 성산포 인근 민박집에서 혼숙을 하면서 지내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검거. 김군이 한달여 사이 인출한 돈은 모두 9백만원으로 밝혀졌다.
  • 6차례 금품 갈취 폭력서클 15명 구속

    서울 종로경찰서는 6일 중·고생을 상대로 폭력과 금품갈취를 일삼아온 일당 29명을 적발,박모군(17·H공고 2년) 등 15명을 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최모군(17·D고 2년)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정모군(17·무직) 등 12명을 수배했다.중학교 동창 사이인 이들은 지난 93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뜻의 폭력서클 「전압선파」를 결성하고 폭력과 금품갈취는 물론 유흥업소 주변에서 속칭 「삐끼」 노릇을 하며 취객에게 바가지 술값을 씌워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4월22일 서울 강북구 제일은행 미아동 지점 앞길에서 조모군(17·고교 2년) 등 4명을 집단폭행하고 8천원을 빼앗는 등 지금까지 6백여차례에 걸쳐 1백여명을 상대로 1천여만원어치의 금품을 갈취해온 혐의다. 경찰은 『이들이 최근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종로까지 진출을 꾀했으며 갈취한 돈은 유흥비로 모두 탕진했다』고 밝혔다.
  • 여성 18명 농락 1억 사취/가짜 서울법대생 쇠고랑(조약돌)

    ○…서울 관악경찰서는 27일 이인중(28·관악구 봉천4동)씨를 혼인빙자간음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이씨는 지난 92년 10월 문모씨(24·여·D정밀 경리사원)에게 서울대 법대생이라고 속여 성관계를 맺고 결혼을 약속한 뒤 『등록금이 없다』면서 1천2백만원을 받아 가로채는 등 지난 89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8명의 여성으로부터 같은 수법으로 1억여원을 뜯어낸 혐의. 청주 S고 중퇴생인 이씨는 훔친 서울대 학생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서울대생 행세를 했으며 피해여성들로부터 받은 돈은 대부분 포커 도박으로 탕진했다는 것.
  • 조카 납치 금품 요구/30대 구속/도박으로 가산 탕진… 범행

    【인천=김학준 기자】 인천 남부경찰서는 16일 친조카를 납치한 뒤 형에게 금품을 요구한 양성수(35·무직·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약취강도미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지난 14일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S중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조카 영수군(12·중1·인천시 부평구 산곡동)을 유인,만화가게와 다방으로 옮겨다니며 형 성태씨(39)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조카를 풀어주는 대가로 현금 2천만원을 요구한 혐의다.양씨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 김일성 1인체제 구축(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4)

    ◎전후 복구­외교정책 싸고 소련파­연안파 대립/56년 「8월 종파사건」 계기 본격 숙청… 59년 완료 북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내 경쟁 파벌들을 차례대로 숙청,50년대 말쯤에는 일인 집권체제를 구축했다.주체이론으로 무장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는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독재 국가로 만들었다.이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계승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는 원래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파를 비롯,국내파(남로당계)·소련파·연안파 등 주요 파벌이 넷 있었다.이 가운데 박헌영·이승엽 등으로 구성된 국내파는 한국전쟁 말기 이미 숙청돼 휴전 직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따라서 전후 김일성이 권력강화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남았다. 노동당내 권력투쟁은 1955년에 접어들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여기에는 김일성의 권력욕이 물론 주요 동기였지만 전후 경제복구와 외교정책을 둘러싼 파벌간 노선 갈등도 적잖게 작용했다.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자 먼저 경제건설에 주력했다.김일성은 휴전협정 조인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라디오방송에서 『전쟁은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다음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중공업 우선의 「3개년 경제 계획」과 농업 집단화 등 경제개발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또 소련·중국·몽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 형제국」들을 순방하며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연안파와 소련파는 중공업 우선,농업집단화를 앞세운 경제복구가 북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소련은 또 농업집단화가 중국의 인민공사제도를 흉내낸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 스탈린 사망­흐루시초프 등장에 따라 기존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일어난 점도 파벌 대립을 재촉했다.중국에 등을 대고 있는 연안파는 연안파대로,소련과 밀접한 소련파는 소련파대로 변화를 자기 파벌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김일성과 반대파 사이에는 어느쪽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따르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김일성은 이즈음 방어논리로 주체이론을 새로 내놓는다.1955년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상황에 연결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계적 수용과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은 『주체이론의 싹을 1940년대 말에 찾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이 때 김일성 연설에서는 충분히 발견된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했다. ○스탈린 사후 위기몰려 김일성은 이같은 이론을 무기로 먼저 연안파인 박일우(초대 내무상이자 당시 체신상)와 방호산(한국전 때 군단장)을 숙청했다.그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인 소련파 김열의 죄상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같은 파 지도자인 박창옥(부수상겸 국가계획 위원장)에게도 칼날을 겨누었다.김열은 비록 황해도당위원장 재직시 비리가 문제됐지만 결국은 개인비리를 숙청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19 56년 김일성은 중대한 도전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2월 14∼25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격하운동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더불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제창하고 나섰다.이는 일인독재를 추구하면서 그 바탕을 「반미」에 두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흐름이었다. 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가 열렸다.이 자리에 소련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이자 서기국 서기인 브레즈네프가 참석,흐루시초프가 제시한 새 노선을 북한이 충실하게 따를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도,그렇다고 소련의 비위를 거슬리지도 않은 어중간한 연설을 했다. 그해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는 힘을 합쳐 김일성에게 도전했다.연안파 최창익(부수상겸 재무상)이 중공업우선 정책은 주민에게 고통만을 준다며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연데 이어 상업상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난했다.박창옥 등 소련파들도 나서 김일성 1인독재를 비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봉 57년 직위박탈 그러나 북한 노동당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태는 김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김일성이 노동당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대부분을 이미 친위세력으로 바꾼 상황에서 윤공흠 등 연안파는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됐다.사건은 곧 국제문제로 비화한다.윤공흠 등이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중국과 소련은 즉각 개입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했다.김일성은 죄지은 연안파·소련파 지도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일단 굽히고 들어가 원래 직책에 복귀시켰다.그러나 김일성은 이들을 끝내 숙청하고 말았다. 「8월 종파사건」은 아직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일부 연구자들은 연안파가 김일성제거 계획을 조직적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무혈쿠데타를 노렸다는 것이다.윤공흠 등이 김일성을 전원회의에서 비판한 뒤 그 죄과를 들어 기소하기로 했지만 김일성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힘을 잃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일은 절차만 남았을 뿐이었다.연안파의 우두머리 김두봉은 북한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19 57년 9월 박탈당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김두봉은 쫓겨날 때 68세였다.1년가량 사상개조 교육을 받았지만 「개전의 정이 없어」다시 산골 협동농장으로 추방된 그는 1960년 또는 61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인은 병사와 피살설이 있다. 김일성은 이어 공산당원 한집이 네집을 감시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를 1958년 7월부터 실시했다.곧이어 12월부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또 김일성의 빨치산운동을 항일독립운동에서 유일한 정통으로 내세운 역사조작에 손댄 것은 1959년의 일이다.이로써 30년 넘게 계속돼온 김일성독재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노동당 중앙위회의 결정서/소련파 거물 김열 부패로 몰아 숙청/김일성의 정적 제거하는과정 보여줘/북 노동당 간부… 6·25때 대민착취 극심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후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한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입수했다.1955년 12월에 열린 이 회의 결정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문서는 12월 2∼3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임해의 보고와 이에 따른 토론에서 내린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가 「절대비밀」로 분류,그달 25일 고위직 인사들에게 한정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내용은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낸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 김열의 부패한 생활상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김열은 김일성에 맞선 소련파의 유력한 인물이다.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내면서 직위를 이용,방탕과 사치가 극에 이를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그는 강제·억압·기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 3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것으로 기록됐다.그 가운데는 여중생까지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갖은 명목으로 크고작은 잔치를 벌였던 김열은 당의 시설물들을 향락에 이용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이를 위해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덧붙였다.그는 후방에서 거둬 전선으로 보내는 성금 2백53만여원을 비롯 1천여만원을 불법 조성해 모두 탕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김열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를 비판하는 당 간부들에게 구실을 붙여 강등시키거나 쫓아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했다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비판했다. 김열에 대한 노동당의 단죄에 정적 숙청의 의미가 없지 않더라도 자료에서 드러난 노동당 간부의 부패상은 북한 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여줬다.한국전 당시 남한에서도 후방의 퇴폐 분위기가 문제된 것처럼 북한의 권력층도 전쟁을 틈타 백성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북한이 남한보다 더욱 획일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역시 훨씬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사법개혁의 당위(사설)

    사법개혁 문제를 놓고 행정부와 사법부간에 보인 견해차이는 극복되어야 한다.감정대립의 양상으로만 비쳐서는 안될뿐 아니라 이미 사법부와 행정부가 사법개혁이라는 큰 원칙에 합의하여 함께 추진해 왔기 때문에 방법론의 차이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홍구 국무총리의 발언도 사법개혁의 적극적인 추진을 다짐하는데 뜻이 있으며 사법부와의 협조를 통해 그동안 방향을 잡아온 사법전문대학원설립을 둘러싼 합의를 촉구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국무총리발언에 대한 대법원의 반응은 사법개혁의 발걸음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개혁당위의 전제를 깔고 있다고 믿는다.우리는 오히려 대법원의 반박문이 사법개혁을 위한 상호 의견존중과 꾸준한 제도개혁을 다짐하고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그러한 사법개혁은 사법부와 행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해온 국민에 대한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미 이총리는 사법부에 대해 물의가 있었던 데 대한 해명을 했으므로 이를 계기로 행정·사법부가 서로 이해와 협력을 하면서 개혁에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 행정부와 사법부간의 사법개혁에 대한 입장차이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사법전문대학원 설치에 방향을 잡았으며 관할권에 대한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선진국의 3배나 되는 과다한 수임료를 물고도 변호사의 얼굴조차 보기 어렵고 몇년씩 걸리는 재판에 이겨도 가산을 탕진하게 되어있는 법률서비스부재와 국제화시대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법률서비스에 대한 수요증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낡은 제도와 관행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사법부와 행정부가 이번 갈등의 표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국민들이 바라는 사법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사법전문대학원 관할권문제도 원만히 매듭지음으로써 직역 이기주의라는 의혹을 불식해야할 것이다.법률서비스의 전문화와 확대강화라는 개혁목표에 충실하기 바란다.
  • 의원들의 잇단 불출마 선언/서동철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한 중진의원은 요즘도 스스럼없이 『국회의원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 공언한다.『예전보다 못해지긴 했지만』‘『당선된다는 보장만 있으면』이라는 두가지 단서가 따르지만….국회의원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국회의원으로 누리는 「재미」가 보통이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좋다는 국회의원을 스스로 더이상 하지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민자당의 박경수·안찬희·나웅배 의원에 이어 자민련의 유수호의원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선언」을 정확히 옮기면 지금 당장 의원직을 내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따라서 이들의 불출마 공언은 다음 총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을 때라야 가치나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출마해봐야 결과가 뻔하다는 상황이라면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거나 다른 계산이 있어 취하는 일종의 제스처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때문에 현시점에서 이들의 「선언」을 보는 정가의 시선은 솔직히 냉소적인 쪽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정치판에는『정치인은 착각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는 말이 있다.주위에서 가족 친지 친구할 것 없이 모두가 말려도 막상 본인은 꼭 당선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출마를 하고 만다는 것이다.그래서 정치판에는 선거때만 되면 피가 끓어올라 출마하고 그래서 가산을 탕진,폐인이 되버린 「환자」얘기가 드물지 않게 돌아 다닌다. 또 우리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당선 가능성이 없을수록 큰소리를 쳤으면 쳤지 물러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것이 상례였다.그래서 당락 가능성은 차치하고 이번 이들의 불출마선언을 일단 의미있는 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사회활동에서 은퇴하는 안의원을 제외하면 농사(박의원),행정부 업무(나의원),변호사 일(유의원)등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어쩌면 돌아갈 곳이 있기에 정치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결심 한구석에 국회의원직이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배어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특권층으로서 국회의원이 좋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이다.이들의 은퇴선언이 특권의 시대가 가고 국민에 봉사하는 합리적 정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면 내년 4월 총선의 세대교체 태풍 규모를 미리 점칠 수 있게 해준다.
  • 어느 귀순용사의 비애/김동진 전국부기자(현장)

    ◎자본주의 매력에 돈 탕진… 범죄의 길로 데이트중인 남녀에게 공기총을 쏘고 금품을 빼앗으려던 귀순용사 신광호씨(27·충북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범행은 적지 않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사건 이후 충주경찰서에 그를 비난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심지어 얼굴을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까지 있다. 그러나 평생을 공산주의체제에서 살아온 신씨가 짧은 기간에 자본주의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연민의 정을 감추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난 90년10월 귀순한 신씨는 북에서 누리지 못한 자유와 사치를 마음껏 누리며 그에 따르는 책임에는 소홀했다. 정착금으로 받은 7천7백여만원과 각종 성금 등 억대의 돈과 기아자동차서비스 홍보요원으로 매월 60만원 정도의 월급에 잦은 반공강연으로 연 6백여만원이상의 강사료를 받으면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한 신씨는 자본주의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처가가 있는 음성에 31평형 아파트를 마련하면서 2천5백여만원의 빚을 졌다.올 1월 기아에서 해고된데다 최근 귀순자가 늘어나며 강연횟수가줄어 수입이 크게 줄었다. 자본주의의 생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말대로 「1백만원으로 하루아침에 1천만원을 만드는 기술」을 지닌 남한 국민을 흉내내기 위해 비디오가게를 냈지만 1년도 안돼 적자로 문을 닫았다. 지난 7월 신문에 난 사원모집공고를 보고 생산직 사원으로 취업했으나 77만원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오는 10월말까지 아파트잔금 1천5백만원을 마련할 길도 없었다.평소 알고 지내던 귀순용사들을 찾았으나 별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다수 국민은 사선을 넘어온 귀순용사가 공기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어린 여학생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데 분개한다.어려운 여건이지만 가장 나쁜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자와 아무 차이가 없다.언젠가 본 TV프로가 범행의 힌트였다고 한다. 충주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범죄의 질은 더할 나위 없이 나쁘지만 그가 귀순용사라는 점에서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며 『정부는 귀순자에게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보이는 연민도 그가 우리 체제에적응하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느끼는 자책감 때문인 듯하다.
  • 전환기 맞은 조선족(두만강 7백리:21)

    ◎「경제특구」로 변신한 하구… “산업화 몸살”/방천지구에 연40만톤 처리 부두 건설/우수노동력 대도시 몰려 연변은 인력난/목돈쥔 교포들 흥청망청… 기업투자 외면 새 바람의 경제 훈춘시 경신향에서 두만강 하구를 바라보노라면 변화의 바람을 체감할 수 있다.이 두만강 하류 삼각지대는 다국 경제기술합작개발구다.오는 20 10년까지 50만 인구를 포용한 국제화 도시가 들어설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연변의 조선족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조선족이 도약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에서 반갑기는 하다.그러나 민족문화가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남과 북이 다 교포라고 불러주는 조선족이 이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전통사회가 현대사회로 탈바꿈하는 시대를 맞이한 조선족들은 분명히 어떤 숙제를 안고 있다. ○주인의식 갖는게 중요 최근 북경에서 조선족 청년들이 참가한 가운데 「21세기를 대비한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열린 학술토론회는 이 숙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아닌가 한다.흑룡강신문사 박문봉기자의 주제발표는 우리 조선족들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맨주먹으로 동북땅을 개척 했습니다.그리고 항일전쟁에서 이룩한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위치를 확립한 것도 사실입니다.우리는 한국인과 조선인,한족과도 구별됩니다.우리는 또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서의 현실적인 존재와 고국이 있는 코리안의 일부분이라는 본체적인 존재를 동시에 지닌 모순체이기도 합니다.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2만여 조선족들은 불법으로 낙인 찍혀 있으며 앞으로 통일이 되더라도 2백만 조선족은 절대 받아줄 수 없을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주인의식을 갖는 독립적 존재로 부상해야 됩니다』 연변은 중국 조선족의 본거지다.두만강 연안의 농촌은 조선족이 집중되었고 우리 문화를 집약적으로 대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그런데 연변 조선족 이민1세들은 떠돌이 품팔이꾼 의식에 젖어있다.밀수에서 목돈을 쥔 사람들은 장구책 보다 하루살이식으로 돈을 물쓰듯 하는 경향을 종종 본다.농촌 청년들 조차 배가 불러지면서 하찮은 일까지도 한족을 고용해서 맡긴다.조선족은 돈을 쓰기 위해서 벌고 한족은 모으려고 번다는 말도 생겼다.어떻든 조선족은 씀씀이가 헤프다. 도문시 한옥희씨는 우진공업무역총공사를 경영했던 인물이다.연간 연인원 2만3천명을 고용하고 3억6천2백64만원의 매출실적을 올릴 정도였다.그래서 살기를 황제처럼 살았다.기업경영 보다는 부화한 생활을 즐겼기 때문에 결국은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렸다.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혼신을 다해 운영하는 한족들의 근면성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따라서 연변의 조선족들은 다가오는 시대에는 생산적 기풍을 추구하는 가치관 확립이라는 과제를 안고있는 것이다. 연변대 박승헌교수가 제시하는 경제개발 모델은 설득력이 있다.그리고 그가 평가하는 오늘날 연변의 실정을 들어보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학기술인재 태불황 『연변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약하는 요소들이 많았디요.냉전시기 연변은 제국주의와 수정주의를 반대하는 전초진지로 군사변방 또는 정치변방의 측면이 강조되었을뿐이었댔습네다.이제 동북아경제권의 중심지역으로 부상되어 민족경제 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했어도 동해로 진출하는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다면,지리적 이점을 발휘할 수 없을 거입네다.그리고 연변의 경제발전 모델은 자원집약형이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원개발과 수출가공업이 서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디요.더구나 우리는 과학기술 인재의 부족은 물론 첨단기술 영역은 공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네다』 대학입시가 부활된 이후 조선족 학생들 중에서 특수한 인재들이 속출했다.그래서 전국 일류대학으로 진학했고,더러는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경우도 있다.하지만 유학을 갔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여건도 사실상 갖추지 못했다.그리고 대도시에서 일류대학을 나왔다.돌아온 인재는 물론 연변에서 길러놓은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북경과 같은 대도시로 떠나버렸다.게다가 근래에는 연해주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연변지역 우수 노동력을 싹 쓸어가고 있다.자그마치 2만명이나 되는 우수노동인력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오늘 날 연변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그것은 이민시기에 이루어진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조합이 아니라 동북아 경제권을 향한,또 세계를 향한 문화의 조합이다.특히 두만강 삼각주 개발을 계기로 중국 각지의 인재들이 흡인될 것이다.그 때의 연변문화는 조선족문화가 주체일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조합은 필연적이다.그러니까 주체성을 얼마만큼 지니고 문화를 가꾸어 나갈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문화 관심가져야 이 시대는 문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는지도 모른다.합리주의라는 미명 아래서….중국사회과학원 장춘식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연변의 조선족문화는 틀림없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문화를 끌어안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됩네다.공업화 내지 사회분화의 가족화가 이루어낸 오늘의 현대사회를 합리주의 사회라고 하는 모양입네다 만은 나는 그런 합리주의에 의문을 갖디요.한국의 경우를 보면 물질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을 추구하는 쪽으로 서서히 회귀하고 있다고 기래요.뒤는 돌아다 보지 않고 앞만을 향해 뛰어온 세월을 반성한다고나 할까….우리가 한국 사람들을 대하면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습네다.이를테면 야비함과 인색함,또 기회주의적 사고방식 등등….그러나 이해하고 깊이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치른 대가라는 생각이 들디요.우리 조선족들은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선진문화를 접목시키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입네다』 연변의 경제발전은 의외로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심천이나 해남도 못지 않게 인구유입이 급증할 것이다.두만강 하구 방천에 연간 40만톤의 화물을 수송할 부두가 건설된다고 한다.또 4백톤급 선박이 접안하는 항구로 발돋움한다는 것이다.그 배의 키는 누가 잡을 것인가.한 여름이 되면서 무산으로 흘러 내려오는 뗏목은 뜨고 있지만 이민 1세들을 실어나르던 눈물 젖은 두만강의 쪽배는 없다.이제 연변의 조선족들은 그 쪽배 대신 두만강 하구를 빠져 동해로 나가는 화물선을 부려야 할 때가 되었다.
  • 못믿을 심야 “총알택시”/승객 잠든새 기사가 금품털어

    ◎서울경찰청,8명 영장 서울경찰청 도범계는 27일 술취한 승객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금품을 턴 정지대(31·경기 남양주군 별내면 청학리) 등 서울과 의정부를 오가는 이른바 「총알택시」 기사 8명에 대해 상습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씨는 지난 7일 상오 2시40분쯤 경기 의정부시 중앙로에서 술취한 이모씨가 경기 1자 2173호 영업용 택시에 승차한 뒤 잠들자 목적지인 종로1가 부근에 도착,이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현금 1만원과 신용카드 4장을 훔친 혐의를 받고있다. 정씨는 또 훔친 신용카드를 친구 전홍준씨(34)가 운영하는 흑염소 가공업소에서 현금 3백40만원으로 할인받아 이를 유흥비로 탕진한 혐의이다. 경찰조사결과 의정부와 서울 종로를 오가는 이들 기사들은 심야에 주로 술취한 손님을 골라 차에 태운뒤 잠이 들면 금품을 털어 대마초를 구입하거나 상습적으로 도박판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 증권사 영업사원/빚더미속 「자포자기」 속출/증시침체 여파

    ◎부채 평균 5천만원대… 집날리고 난직 일쑤/택시운전·과외교사에 유흥업소까지 부업 『낮에는 증권영업,밤에는 택시운전사』.요즘 증권사 영업사원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지난해 11월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7개월 이상 주식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자 증권사 일선 영업직원들의 횡령사고가 잇따르고 있다.자포자기다.영업직원들의 드러나지 않는 상황은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L증권사의 J대리는 『현재 증권사 영업직원은 7천∼8천여명인데 이들의 평균 부채액이 5천만원에 이른다』며 『S사의 강남 모지점은 10명의 영업사원 평균 부채가 1억3천만원이나 된다』고 전했다.D사의 L부장은 『최근들어 영업사원 10명중 2∼3명을 제외하고는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겼다』며 『D사 모지점의 K과장(34)은 빚을 갚기 위해 퇴근후에 4∼5시간씩 영업용 택시운전사로 일한다』고 말했다. 남자들이 빚을 갚으려고 택시운전이나 과외교사로 일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극소수 영업 여사원의 경우 퇴근후 야간 유흥업소를 나가거나심지어 주식대량매입을 위탁한 고객에게 못할 짓을 당하기도 한다. L사의 L과장은 『모증권사 지점의 한 영업 여사원(25)은 손해보상을 끈질기게 요구하던 남자고객이 술이나 한잔하면서 조용히 얘기하자고 해 따라 나갔다가 강요에 못이겨 엉뚱한 일을 당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처지를 겪는 영업사원들의 대부분은 지난해 8월부터 일부 개별종목들의 수익률이 단기간에 수백 %씩 오르자 고리사채나 은행·보험사 등에서 대출금을 받아 무리하게 신용매수에 뛰어들었다.그러나 단기간에 종합주가지수의 급락으로 팔 기회를 놓치고 담보부족 사태로 이어졌다.그 결과 친지들의 일임성 계좌와 자기매매계좌의 손실폭이 커져 일부 직원은 불과 몇달 사이에 2억∼3억원의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대개의 영업직원들은 돈을 빌릴때 동료들과 맞보증을 서 한명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피해를 당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업업직원 가운데는 아예 증권가를 떠나 전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명문대 대학원을 나와 D사에서 7년간 근무한 고참대리 H씨(34)는 지난해주식투자로 원금의 3배를 벌었다가 올들어 5개월만에 탕진하고 빚마저 늘어나자 아예 증권가를 떠났다. 그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월급이 적어 막걸리와 싼 담배를 피워야 할 처지지만 마음은 너무 평온하다』고 털어 놓았다.
  • 마약과의 전쟁(외언내언)

    해방 직후에는 마약상용자를 「아편쟁이」라고 불렀다.퀭한 눈에 피골이 상접한 아편쟁이는 그야말로 폐인의 몰골,가산을 다 탕진하고 결국 길에서 객사하는 말로를 걸었다.본인과 가문을 함께 파멸시키는 패가망신의 본보기다.나아가 사회를 병들게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마약이다.그래서 「망국병」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백색의 공포」라 해서 온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1840년 중국 광주에서 일어난 아편전쟁은 중국인에게 아편을 풀어 엄청난 국부를 챙겼던 영국인에 대한 중국민족주의의 저항이었다.아편전쟁은 역사책에만 있는게 아니라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엔이 마약퇴치를 위해 힘쓰고 있을뿐 아니라 마약왕국인 남미 콜롬비아는 수년전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마약조직 소탕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미국도 마약의 심각한 폐해를 우려,레이건 행정부때 마약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마약사범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최근에는 마약밀수 중계국에서 최종소비국으로 바뀌고 있다.통계로 봐도 93년 마약사범 적발이 3천명이었으나 94년엔 배가 넘는 6천7백여명.올해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연예인들의 고질적인 대마초·히로뽕 복용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요즘에는 농촌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대마초흡연의 42%가 청소년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순진하고 감수성 강한 농민과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고있는 것이다. 어제 올림픽공원에서는 서울신문사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공동 주최로 마약퇴치국민대회가 열렸다.마약퇴치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과 포스터 공모전도 열려 일반의 관심을 끌었다.「마약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참석자들의 열망이 뜨겁게 분출된 현장이었다.국민들이 외치는 마약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 흥청망청병(외언내언)

    먹고 마시고 질주하고 노름하는 증세가 도지고 있다고 한다.그래서 경제안정 기조가 흔들릴까 걱정이라고 한다.재정경제원의 소비동향 분석이 그렇게 입증하고 있다. 자고로 먹고 마시고 유흥에 흥청거리는 일로 망하지 않고 결딴나지 않은 집단이나 개인이 없다.삶의 질을 고상하게 유지하고 국민소득이 높은 이른바 선진국은 하나같이 국민들이 인색할만큼 절제의 체질을 지니고 있다.작고 사소한 일에 근검하고 크고 좋은 일에 쓸 줄 안다.그러기위해 얼마든지 「째째해지는」것이 특징이다.페니를 쓸 줄 알아야 뉴요커가 되고 실링을 아끼는 것이 런던의 신사다. 거기 비하면 우리는 하루만 살고 도망갈 사람들처럼 희떱고 무분별한 기질을 유전인자처럼 지니고 있다.끊이지않는 외세침략과 식민지통치,분단과 전쟁등 지속적인 「난리의 공포」에 지배당해온 경험들이 만든 인자일 것이다.「내몫」이 늘 불안했으므로 『먹는 게 남는 것』이고 『쓰는 게 내 것』이라는 생각에 인박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런 나라가 아니다.스스로 절제하며 성숙해가야 할 선진의 문턱에 와 있다.날림 체질을 극복하고 이 문턱을 넘어야 한다.이 문턱은 흥청거릴 여유는 커녕 옛날의 어려움보다 멀리 굴러떨어질 불안이 더 크게 남아있는 높이의 것이다. 과소비의 도짐은 「실명제 파동」같은 것을 겪느라고 감춰놓았던 재산을 들킨 일부 사람들에게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사치병이란 것은 한번 걸리면 낫기가 쉽지 않고 매우 전염력이 빠른 증세다.특히 유흥병은 마약중독과 같다.탕진의 끝이 범죄유혹과 연결되는 점까지 유사하다. 특히 유혹의 변수가 너무도 많은 오늘과 같은 세월에는 부모들의 절제가 가장 효험있는 자녀의 약이다.다소 흥청거려도 끄떡없는 힘을 축적한 사회가 못되는 우리에게는 그것만이 또한 살아남는 지혜다.
  • “김정일,등소평을 배워라”/이재근(서울광장)

    이제는 역사의 유물이 돼버린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기본적으로 노동 집약적인 집단생산과 균등분배의 개념전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구소련의 국영집단농장(소포스),마오쩌뚱(모택동)중공의 인민공사,북한의 「새벽별 보기」 천리마운동이 각기 형태와 내용은 같지 않지만 요컨대 인민들의 집단적 「먹거리 해결방책」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경세제민(경세제민)하는 정치 경제라는 것도 결국은 백성들의 입을 옷과 살 집,먹을 입을 해결해주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집단조직이나 집체구조는 일시적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그러나 갈수록 자체의 무게에 눌려 지속적인 힘과 활력을 잃게 된다.집단농장,인민공사,천리마운동은 진작 실패로 끝났고 사회주의는 몰락했다.소련은 망했고 중공은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중국으로 탈바꿈했다.북한만이 「우리식 사회주의」로 남아 있지만 굶주리는 주민들의 식량문제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의 김정일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권력승계작업의 마무리라거나 핵놀음,명예박사를 탐내는 일,자기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하는 따위가 아니다.굶주리고 헐벗어 지친 나머지 『싸우다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심정으로 반사적인 대남 적개심만 불태우는 주민들의 먹거리를 해결해줘야 한다.정말 한날 한시가 급한 일 아니겠는가. 집단을 조직하고 집체를 꾸미다가 결딴난 데가 또한 북한이다.6년전인가.89년7월 평양에서 열렸던 「세계 청소년학생축전」(평축)은 여러 의미에서 90년대 북한에 변화를 몰고 왔다.6·25이후 북한에 2만여명 이상의 외국인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이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평양당국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분에 넘치게 물쓰듯 돈을 썼다.한풀이 같은 집체의 한판 굿거리가 바로 국고를 탕진하고 경제를 수렁에 빠지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평축」이 끝나면 「이밥」에 「고깃국」먹는 새세상이 온다고 주민들을 달랬지만 결과는 허망했다.약속했던 새세상은 커녕 이 때부터 북한경제는 회복불능의 늪에 젖어들었다.집단을 좋아하고 집체를 과시한 결과였다. 그 무렵 덩샤오핑(등소평)의 중국은 달랐다.덩샤오핑은 개방과 개혁에 속도를 가하면서 우선 주민들의 먹거리해결에 모든 정책을 집중했다.당대 제일의 실용주의자답게 그는 개방문제가 초래하는 부작용과 정치적 소요 우려에 대해 『창문을 열면 모기가 날아 들어오기 마련』이라며 일축했다.덩샤오핑식 실용주의의 등록상표인 「흑묘 백묘론」의 실천이었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인 것이다. 개방과 더불어 중국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자 덩샤오핑은 79년 전국인민대표자회의 대표연설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못산다.이런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은 모두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다.그들은 잘 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돈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돈을 더 받을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씀」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그 이후 지금껏 중국이 외국인들에게 씌우는 공식 바가지의 합법적 근거로 되었다.모든 공공요금,즉 교통료와 우편료·숙박료·관광지입장료 그리고 물건값까지 외국인에게는 자기들 내국인의 3배 내지 6배를 받는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이식위천)고 했다.국민은 먹어야 하고 지도자는 어떤 경우건 백성을 잘 먹여야 한다.내일 먹을 양식이 충분히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정치환경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어떻든 12억 인구의 먹거리를 해결한 덩샤오핑은 대단한 인물이다.그 점에서 그는 42년동안 권좌에 앉았던 마오쩌뚱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 북한은 요즘 「평화를 위한 국제체육 문화축전」이라는 또하나의 「평축」을 벌이려 하고 있다.그러나 김정일은 덩샤오핑에게서 배워야 한다.이제 그런 쓸데없는 「평축」들은 그만두고 주민들 식량난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북한주민들의 굶주림 실상은 지금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남쪽의 대화제의를 받아들이고 동포애가 실린 이쪽의 양곡제의도 받아들여야 한다. 남한 쌀에 대한 보답으로 그쪽의 샘물과 목재를 보낸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 멕시코/6년주기로 경제위기/작년 「성탄절악몽」계기로 본 실태

    ◎76·82·88에도 페소화 가치 폭락/매번 대통령 교체현상과 맞물려 페소화의 폭락으로 대변되는 멕시코의 현 경제위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재정혼란과 화폐가치의 붕괴는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매 6년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때마다 대통령의 교체현상을 빚어왔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멕시코의 수백만 빈곤층은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더욱더 빈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제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다. 「성탄절의 악몽」이라 불리는 이번 경제위기는 에르네스토 세디요 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은지 약 3주일 뒤인 구랍 20일 터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의 재정당국은 정부재정상태를 국민들에게 속였고 페소화의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하루에 수백만달러를 풀었으나 결국 아무 성과없이 외환만 탕진하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세디요대통령은 과거 행정부의 고전적인 수법을 답습,외부요인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번에는 정치적 폭력과 미국금리의 상승이 그 외부요인으로 내세워졌다.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없었다. 마침내 정부는 국가경제가 잘못 관리돼왔음을 시인했으며 페소화는 달러화에 대해 3분의 1이나 하락했다. 세디요대통령은 초긴축정책을 추진,올해 임금인상률을 7%로 제한했다. 멕시코는 지난 60년대 이후 거의 주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맞았다.민주화 요구 학생들의 집회에 군대가 총을 난사,수백명을 숨지게한 사건이 터졌던 지난 68년,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대통령은 이때부터 시작된 경제침체와 싸워야했으며 지난 76년에는 루이스 에체베리아 대통령이 대중중심적인 정책을 취하자 은행가와 부유층이 이를 개탄,페소화대신 달러화를 끌어들이면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는 급감하고 페소화의 가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82년까지 집권했던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 대통령당시에는 석유시장의 침체로 차관이 들어오면서 페소화가 하락했고 지난 88년에 물러난 미겔 데라 마드리드 대통령시절에는 인플레율이 1백60%에 이르고 페소화의 가치는 수배가 하락했다. 멕시코의 역대 대통령들은 엄청난 권력을 누리면서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왔다는 비난을 면치못하고 있다. 세디요 현 대통령의 바로 앞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전 대통령은 지난 88년 경제난국을 취임당시 물려받았으나 경제개방·자유시장개혁·균형예산의 집행·인플레율의 억제·적자 국영기업의 매각 등의 조치를 통해 이를 극복해내는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살리나스의 노력에도 불구,멕시코경제는 지난 82년 이후 1천17억달러에 달한 거대한 국제수지적자라는 짐을 지고 있었고 지난 93년 미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고금리현상을 보였던 멕시코로 유입됐던 외국자본이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감으로써 멕시코는 큰 타격을 받지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 범인 전용철 진술 배씨살해 동기·도피행각

    ◎“매니저 진출 막고 해고시켜 범행”/배씨 납치즉시 살해… 전국 스키장 전전/인출한 돈은 애인과 함께 유흥비 탕진 11일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배병수(36)씨는 결국 살해된 시체로 발견됐다. 무명이었던 탤런트 최진실·엄정화를 발굴한 데 이어 최민수·독고 영재·허준호를 잇달아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스타제조기」 배씨는 왜,무슨 이유로 데리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경찰은 범인 가운데 최진실의 운전사였던 전씨가 평소 배씨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던데다 배씨가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김씨와 공모해 범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씨는 92년 8월쯤 배씨를 만나 『연예계 일을 배워 배씨처럼 매니저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고 최진실의 운전사로 일하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해고됐다가 지난 10월 다시 복직됐으나 비슷한 이유로 한달여만에 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는 이때 최씨의 신용카드를 훔치는 등 손버릇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주변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김씨 역시 지난 11월부터 한달여동안 배씨밑에서 일을 하며 연예계 입문을 꿈꿨으나 전씨와 마찬가지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수사결과 배씨의 은행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애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유흥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전농동에서 「배석봉」이라는 이름으로 부기와 회계를 가르치다 돈을 벌어 전국에 학원을 6개나 운영하던 유명강사였다.그런 배씨가 연예인 매니저 세계에 뛰어든 것은 87년 군대동기였던 가수 김학래를 따라 방송국에 드나들면서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배씨는 6년전 당시 무명이었던 최진실양을 만나 『매니저를 봐주겠다』고 제의한 뒤 재력을 바탕으로 「스타 만들기」에 착수,연예계 매니지먼트 사업에 「기업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로비의 귀재」.자기가 관리하는 연기자를 드라마에 출연시키기 위해 대본작가의 집앞에서 몇시간씩을 기다리는 열의를 보였는가 하면 최진실·최민수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에 신인들을 「끼워팔기」식으로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독특한 「출연법」을구사했다. 배씨는 또 PD와 매니저의 관계를 역전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스타의 「몸값」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광고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스타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배씨는 최진실양과 결별을 선언했고 그뒤 최민수와 엄정화도 「홀로서기」를 결정해 배씨의 활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이처럼 자신이 공들여 키운 스타들과 결별하게 된 데는 배씨가 전횡에 가까울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영화 및 CF 출연료 등 돈문제로 연기자들과 사사건건 대립해왔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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