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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보조금은 눈먼 돈?

    #사례1 충청남도 A씨는 지난해 4월 농산물보관시설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세금계산서 등을 허위로 작성, 공사비용을 4200만원에서 1억 100만원으로 부풀린 뒤 정부보조금 5000만원을 횡령했다.B씨 등 11명도 지난해 유사한 수법으로 정부보조금 2억 8000만원을 챙겼다. #사례2 경상북도 C버스회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주유소와 짜고 유류 사용량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3억 5000만원을 부당 지원받았다. 청소년수련단체 간부 D씨 등은 하지도 않은 행사를 개최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정부지원금 5억원을 횡령한 뒤 부동산투기 등에 유용하다 덜미를 잡혔다. #사례3 섬유연구기관 대표 E씨 등은 정부보조금 9억원을 받아 유령 연구원에게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조작한 뒤 비자금을 조성, 술값 등으로 탕진했다. 서울시 사회복지법인 대표 F씨도 근무하지 않는 생활재활교사에게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속이는 방법 등으로 4억 3000만원을 횡령했다. 이처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된 부패사건 가운데 정부보조금 횡령이 1위를 차지,‘정부보조금=눈먼 돈’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일정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10일 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 6월까지 검찰·경찰 등 조사기관에 이첩한 부패행위 신고사건 515건 중 정부보조금 관련 신고사건이 전체의 15%인 7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불)구속 기소된 혐의자만 92명, 고발 등 징계자도 53명에 이른다. 또 추징·환수된 정부보조금은 63억여원으로 파악됐다. 분야별로는 마을회관이나 창고 건립 등을 위한 정부보조금 횡령이 2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장애인·노인·어린이 등의 복지시설에 대한 급식·인건비 관련 비리 17건 ▲국책사업 행사비 부풀리기 15건 ▲수해복구비 부풀리기 및 횡령 10건 등의 순이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가장 전형적인 정부보조금 횡령수법은 지출금액을 부풀린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거나, 정부보조금만으로 사업을 마무리한 뒤 일정부분 자기 부담을 한 것처럼 정산서류를 꾸미는 방식”이라면서 “이는 정부보조금에 대한 사후관리가 소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현역중위 트리오 ‘400억 사기극’

    고수익을 미끼로 동료 군인과 민간인 등 750여명으로부터 400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현역 군인 일당이 적발됐다. 금액으로는 창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다. 육군 고등검찰부는 16일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3개월 안에 50% 이상의 수익을 내 돌려주겠다.”며 동료 군인 650여명과 민간인 100여명 등 모두 750여명으로부터 400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육군 박모(25) 중위 등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3사관학교 41기 동기인 박 중위 등은 전역 후 모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영입이 확정된 상태라고 사칭하는가 하면, 시가 5억원짜리 람보르기니와 벤츠 등 외제차를 여러 대 운행하며 자신들이 증권투자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이들은 편취한 돈으로 인터넷 금융다단계 조직에 투자했다가 110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주식투자로도 24억원을 날렸다. 또 강남의 고급호텔을 이용하고 강남 고급 룸살롱 등에서 하룻밤에 평균 300만∼400만원을 술값으로 허비하는 등 유흥비로만 40억여원을 탕진했다. 피해자들은 주로 부사관과 대위 이하 초급 장교들로 5000만원 이상 피해자도 200명이 넘는다. 피해자 중에는 헌병과 기무사 요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중위 등은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대출이자를 대납하고 원금·수익금을 상환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법으로 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토목보다 우선 제도를 건설하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열린세상] 토목보다 우선 제도를 건설하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중국 역사상 모두 245명의 황제가 군림하였다. 사람들은 그 중에서 최고의 명군은 당태종 이세민을, 최악의 폭군은 수양제 양광을 꼽는다. 당태종은 평소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라고 말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 배를 무사히 저어가고 싶다면 항상 물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을 섬기는 위민정신이 배어 나오는 현군의 어록이다. 하지만 그가 베스트 황제로 숭앙받는 진짜 이유는 민본주의 치국이상을 현란한 언사로만 표현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화하여 실천한 데 있다. 당태종은 갖은 악법을 폐지하고 3성6부제, 주현제, 과거제 정비와 함께 조세·군역의 감면 등 민생을 위한 좋은 법제를 많이 창제하였다. 특히 그의 재위시절에 확립된 당률(唐律)은 후대황조들의 기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양사회의 제도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수양제는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토목건설을 일으켰다. 그는 연인원 1억 5000만여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새로이 쌓게 하였으며, 수문제가 중단시킨 대운하 공사를 재개시켰다. 황제 전용의 거대한 용주(龍舟)를 대운하 양안에서 8만여명의 백성들이 밧줄로 끌고 다니게 하는 패악을 저질렀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경제적 기반을 자기과시용 토목공사와 대외원정에 탕진해 버려 결국 부하에게 교살당하고 수나라도 단명하고 말았다. 수양제의 무덤은 장쩌민 전 주석의 고향인 양저우(揚州) 교외 후미진 숲속에 ‘양광지묘’라 쓰여진 초라한 빗돌 하나를 앞세우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능이 아닌 묘로 불리는 유일한 황제의 무덤이라는 사실에서 그의 악정에 후세가 얼마나 몸서리를 쳐왔는지 알 듯하다. 중국 최고와 최악 황제 둘 다 ‘건설’에 힘썼으나 최고명군은 ‘제도건설’에, 최악폭군은 ‘토목건설’에 몰두하였다. 둘 다 ‘배’와 ‘물’의 키워드로 함축되지만 당태종호는 물(민심)을 항상 보살펴 중국사의 바다에 빛나는 항해를 하였고 수양제호는 물을 업신여겨 분노한 민심의 파도에 침몰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은 당태종 치세시의 영광의 재현을 위하여 경제건설 제일주의에서 제도건설, 즉 법과 제도에 의한 의법치국(依法治國)의 국가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과거 최고지도층이 이공계출신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후진타오 주석의 양팔이자 차기 최고지도자로 손꼽히는 시진핑, 리커창은 모두 법학박사 출신이라는 변화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호는 지금 성난 민심의 노도에 흔들리고 있다. 초·중·고 어린학생들조차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명박호가 겸허히 국민의 소리를 수렴하여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것을 믿는다. 새 대통령이 중국의 베스트 황제, 당태종처럼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소망하면서 국정어젠다를 ‘토목건설’에서 ‘제도건설’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할 것을 제언한다. 버려야 구한다. 대운하 등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토목건설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헌법의 리모델링(개헌)을 비롯한 민생을 안정시키는 제도건설에 힘쓰자. 현행 헌법은 20여년 전 중남미 정치후진국에서 운용되던 대통령단임제 통치프레임을 기초로 하여 가건물 세우듯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다. 개헌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의 다짐을 받은 바 있으며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영원한 명예는 40번의 승전이 아니라 자신의 법전이라고 말했듯 그의 정치군사적 업적은 덧없으나 나폴레옹법전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빌딩을 건설하듯 우리도 각계각층의 지혜를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은 참 좋은 헌법,‘이명박 헌법’을 건설하자.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 [오늘의 눈] 공기업 법인카드는 눈먼돈?/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오늘의 눈] 공기업 법인카드는 눈먼돈?/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지난 31일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공기업은 ‘신(神)도 놀랄 직장’임이 또다시 입증됐다. 특히 임원들은 ‘신도 부러워 숨겨놓은 자리’라고 할 만하다. 최근 치솟는 물가 속에 허리띠를 더욱 조이며 열심히 생활하는 서민들에게 이같은 소식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법인카드를 이용한 이들의 소비 행태는 황금열쇠와 백화점 상품권 구입에서 한끼 20만원짜리 식사도 모자라 룸살롱과 안마시술소까지 다양했다. 증권예탁결제원은 황금열쇠에 대해 “퇴직자 기념품으로 순금 1돈∼10돈짜리 행운의 열쇠”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설명은 다르다. 황금열쇠를 산 것도 문제지만 사외이사 등 퇴직 직원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이들에게도 황금열쇠를 전달했다는 것. 그렇다면 황금열쇠는 기념품을 넘어 뇌물성 선물인 셈이다. 구입한 백화점 상품권의 행방도 묘연하다. 임원들이 사적으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상급 부처 공무원들에게 전달됐는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 사적으로 썼다면 ‘횡령’이고 공무원에게 전달했다면 ‘뇌물’이다. 감사원이 “공무원들에게 상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만큼, 앞으로 더 파헤쳐야 할 대목이다. 한끼 20만원짜리 식사를 일삼은 공기업 임원들에 대해 감사원 직원들은 “아무리 접대 성격이라 해도 도를 넘어섰다.”며 혀를 내둘렀다. 제주도 골프장 등에서 열린 초호화 이사회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수백만∼수천만원을 들여 이벤트기획사까지 동원해 3년간 쓴 이사회 개최 비용만 1억원이나 된다. 또 한전 KDN의 한 감사는 자신의 옷을 사는데 119만원, 공휴일과 휴가 중 사용한 833만원 등 1130만원을 모두 업무추진비로 탕진했다. 그들이 이렇게 흥청망청 써대는 사이 공기업의 2006년 말 현재 부채는 119조원으로,2002년 말 74조원에 비해 60.8%인 45조원이나 증가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bori@seoul.co.kr
  • [이춘성의 건강칼럼] 의사단체 ‘사이비 의료’ 척결 나서야

    [이춘성의 건강칼럼] 의사단체 ‘사이비 의료’ 척결 나서야

    요즘 신문을 펼치면 병·의원, 한의원 광고가 넘쳐난다. 의료광고는 과대·허위광고를 막기 위해 사전 심사과정을 거치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성, 객관성을 잃고 치료법의 장점을 위주로 광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도권 내 의료기관의 광고도 이럴진대 각종 난치병을 신통하게 고친다는 비의료인들의 광고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온 몸에 퍼진 암을 감쪽같이 고친다는 광고, 유명 인사를 동원한 당뇨병 완치 세미나, 불치의 암을 치유한 환자 사례 발표회 등 광고의 형태도 기발하고 다양하다. 이런 종류의 광고는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건강한 사람들은 허위·과장광고에 눈길을 주지 않아 그 부작용을 잘 모른다. 하지만 불치병, 난치병으로 심신이 지친 환자나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사이비 치료에 의존하게 된다. 질병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쥐꼬리만큼 남아 있는 치료비를 탕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떻게 하면 사이비 광고의 피해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정부나 유관 기관이 그 역할을 하기에는 광고 기법이 너무 교묘하고, 분야도 다양해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하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크고, 폐해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전문가들의 모임인 관련 학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암 치료를 표방하는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내과학회나 종양학회가 나서고, 당뇨병의 사이비 치료 광고에 대해서는 내분비학회가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방식이다. 이 학회들은 모두 ‘대한의학회’ 산하의 학술 단체로, 설립 목적이 학술 활동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의학이 전문화되면서 학회의 역할을 학술 활동에만 국한할 수 없게 됐다. 사회적인 역할(social role)도 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학회의 사회적인 역할에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환자 보는 일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거나 공연한 일에 나서지 말자며 숨는 이도 있다. 하지만 교묘한 사이비 의료행위에 대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올바른 판단을 해 주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할 것인가. 전문가들의 모임인 학회가 국민 건강을 위하여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 ‘주부의 가치’

    ‘주부의 가치’

    전업주부 A(58)씨는 결혼 25년만에 남편 B(53)씨와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원인 남편은 신혼 때부터 회사일로 매일 늦었고 주말에도 출근하기 일쑤였다. 아내가 집안일을 의논하려고 들면 “피곤하다.”며 묵살했다. 두 아들의 교육도 A씨 몫이었다. B씨는 돈 관리도 맘대로였다. 친구에게 2800만원을 빌려줄 때도, 사채 1억 1000만원을 빌릴 때도 아내에게 말 한마디 없었다. 사채를 어디에 썼는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법원은 지난 1월16일 부부의 이혼을 결정했다. 가사와 양육에 무관심했던 남편에게 가정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아내에게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부재산 2억 7500만원은 아내 60%, 남편 40%의 비율로 나눠 갖도록 했다. ‘전업주부가 이혼하면 쪽박찬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요즘 법원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 때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경제활동과 대등하게 평가하며 전업주부가 재산의 50∼80%를 분할받도록 판결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홍창우 공보판사는 23일 “가사노동이 혼인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직장생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가정법원도 시대 흐름을 반영해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비율을 50%로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산 관리 등 재테크 능력이 뛰어난 주부일수록 분할받는 재산이 많아진다고 했다. 결혼 25년차인 전업주부 C(56)씨는 2005년 남편(55)과 이혼하면서 재산 27억 744만원 가운데 81%를 분할받았다.C씨는 결혼 후 9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98년 용인시 수지읍에 땅을 구입했다. 수지 택지사업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5억원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인근 아파트를 분양받고, 건물도 신축한 결과 재산은 날로 늘어났다. 남편 월급의 몇 십배를 웃도는 재산을 재테크로 벌어들인 것이다. 법원도 재산분할 소송에서 C씨의 재테크 능력을 인정했다. 친정 아버지가 사준 아파트를 밑천으로 재산을 늘려간 전업주부 D(52)씨도 결혼 24년 만에 이혼하며 재산 14억원 가운데 87%를 분할받았다. 남편(56)이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서 일하며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아내 몰래 부동산을 처분·탕진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했다. 여성의 재산분할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는 사법연수원 전주혜 교수가 2005년 재산분할 판결과 1998년 판결을 비교·분석해 발표한 논문 ‘재산분할에 대한 판결례 분석’에서도 나타났다.1998년 선고된 재산분할 소송 94건 가운데 여성이 재산의 30% 미만을 분할받은 사례가 33건으로 35.1%에 이르렀다. 반면 2005년 선고된 107건에서는 30% 미만의 재산분할이 18건,16.8%에 그쳤다. 반면 40∼50% 재산분할한 판결은 49건,45.8%로 1998년의 23건,24.5%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전 교수는 “판례를 분석해 보니 여성의 재산분할 비율은 나이가 많을수록, 결혼기간이 길수록 높아졌다.”면서 “재산 증식에 적극 기여한 전업주부는 50% 이상 재산을 분할받는 것이 현재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7) 리콴유 싱가포르 前총리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7) 리콴유 싱가포르 前총리

    싱가포르는 ‘원래 존재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아시아의 용으로 키운 이는 리콴유(李光耀·85) 전 총리다.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싱가포르를 이끌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그를 가리켜 “수에즈 운하 동쪽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지,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지의 오랜 의문에 후자라는 해답을 준 이”라고 극찬했다. 광둥 하카(중국대륙을 떠나 다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주민)에서 ‘건국의 아버지’가 된 리 전 총리. 그는 지난해 8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싱가포르는 원래 존재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살아남는 데 필요하다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리콴유 개혁’의 핵심은 다름 아닌 ‘국가 생존’이었던 것이다. ●국가생존 전략 ‘12345 비전´ 서른여섯에 그가 총리가 된 1959년, 싱가포르자치령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달러(40여만원)에 불과했다. 실업률은 13%를 넘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뒤섞여 툭하면 폭동과 파업이었다. 그나마 자원이 있는 말레이시아에 기대 살아보려고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에 가입했지만 이내 인종 갈등으로 쫓겨났다.‘원치 않는 독립’이었다. 1965년 싱가포르공화국을 세운 변호사 출신의 젊은 엘리트 총리는 ‘12345비전’을 내걸었다.1명의 부인,2명의 자녀,3개의 침실,4바퀴 달린 승용차,500달러 주당 소득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단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돈도 자원도 없었다. 마실 물조차도 없어 말레이시아에서 사다 먹는 형편이었다. 리 총리는 ‘없으면 오게 하자.’고 생각했다. 돈, 물건, 사람을 끌어 모으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면 유인책이 필요했다. 규제부터 대폭 풀었다. 외국기업이라도 사업설명서를 제출한 뒤 승인만 받으면 국가에서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했다.2차 오일쇼크의 와중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국제공항을 지었다.1981년 개항한 창이 국제공항이다. 정부 주도의 투자회사(GIC)와 국부펀드(테마섹홀딩스)도 만들었다.GIC는 훗날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 모델이 됐다. 의사소통(영어)이 되는 인력자원,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 편리한 교통, 빗장 푼 규제 등은 싱가포르에 돈과 사람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던 1990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1만 2200달러)은 취임 당시보다 무려 30.5배나 불어났다.‘(말레이시아에서)버림받은 작은 섬’이 아시아의 금융·물류 허브로 변신한 것이다.2006년 싱가포르의 외국인 투자 유치액(242억달러)은 우리나라(112억달러)의 두 배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도 지난해 싱가포르(2위)는 우리나라(29위)보다 훨씬 앞섰다. ●강력한 리더십 근간은 실용·반부패 리 총리가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단행했던 것은 부패 척결이다.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신설,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최측근이자 절친한 친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20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을 받던 테체앙 당시 국가개발부 장관은 오랜 동지였던 리 총리의 단호한 태도 앞에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청렴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리 총리는 공무원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렸다. 지금도 싱가포르 총리의 연봉(132만달러·13억원)은 미국 대통령(약 44만달러)의 3배, 한국 대통령(2억 4000만원)의 5배가 넘는다. 대신,‘파인(벌금) 공화국’ ‘태형의 나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구 450만명의 작은 도시국가가 거대 미국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공공기물을 파손한 미국인 청년(마이클 페이)에게 기어코 곤장 6대를 때린 일화는 유명하다. 리 총리는 포커게임으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때문에 도박을 지독히 혐오했다. 그러나 “세계경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며 2005년 싱가포르 정부의 카지노산업 허가를 지지했다. 이같은 실용주의와 원칙주의는 그가 퇴임한 후에도 강력한 ‘그림자 리더십’을 발휘하는 근간이 됐다. 물론 정치 인생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따른다. 그는 부유한 중국계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영국 케임브리지 법대)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이후 노동운동가로 변신, 좌파와 연대해 권력을 잡은 뒤 좌파를 몰아내고 화교자본을 끌어들여 정권을 지켰다. 그의 통치철학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섞여 있는 것은 이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런 그도 벌써 여든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나라의 위대한 거인’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90년대 DJ·리콴유 사상논쟁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90년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벌인 사상논쟁이다. 리 전 총리는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거부하고 자주적 정치체계를 만들려 애썼다.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박정희 전 한국 대통령과 ‘닮은꼴 리더십’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 근간이 바로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였다. DJ는 아시아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의 폐해에 눈돌렸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지도자들간의 이례적 사상논쟁이었다.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지만 지금도 종종 국제 심포지엄 화두로 오르내린다.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리 전 총리가 자유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몰랐다거나 평가절하했던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길고 고통스러우니 도달 속도를 단축하기 위해 아시아적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리콴유 업적’ 빛과 그림자 정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익에 도움되면 누구와도 손잡는다는 실용주의 표방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외국인 고문을 영입한 MB(이명박 대통령)정부는 리콴유 정부와 여러모로 닮았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그러나 “1950∼1960년대 일반 대중이 무지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것이 리콴유 개혁이었다.”며 “지금은 사회수준이 높아지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져 (우리나라에)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경계했다. 그는 “(리콴유의)강력한 리더십과 부패청산 의지 등은 MB정부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지만 지나친 엘리트주의, 국익 앞에 개인을 희생시킨 전제주의 등 부정적 유산도 많은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소수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는 엘리트주의는 가뜩이나 작은 도시국가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엘리트와 열패자 사이의 위화감이 심각하다. 국내 금융계조차 싱가포르투자청(GIC) 사람들의 엄청난 엘리트의식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나친 원칙주의는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억압하기도 했다. 청렴했다고는 하지만 독재자란 굴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2001년 홍콩 중문대가 리콴유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주려 하자 학생들이 “독재자”라며 거세게 반대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권력 세습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싱가포르 현 총리(리셴룽)는 그의 장남이다.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테마섹의 최고경영자(호칭)는 그의 며느리다. 그 자신 지금도 싱가포르투자청(GIC)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싱가포르 열풍이 요즘보다 더 극심했던 적이 있다.YS(김영삼)정부 출범 초기 때다.‘리콴유-권력과 리더십’ 책을 쓴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싱가포르를 배운답시고 어찌나 많이 갔던지 싱가포르 정부가 대사관을 통해 ‘업무에 지장이 많으니 자중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양 교수는 “리콴유는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가부장적 철권통치를 휘두른 사람”이라며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리콴유식 개혁이 가능했던 대목도 있고 우리나라와는 사회구조의 틀도 다른 만큼 옥석을 가려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지속 성장에 주목했다. 양 교수는 “서방의 많은 학자들이 싱가포르 경제가 1987년에 과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싱가포르는 견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MB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은 바로 이 점”이라고 환기시켰다. 소유는 국가가 하고 경영은 민간에 맡기는 싱가포르식 공기업 민영화 모델도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라는 전제조건이 요구된다는 조언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도 “GIC와 테마섹이 꼭 잘한다고는 볼 수 없는 만큼 (싱가포르식 모델 도입에)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현대판 ‘노예상인’

    정신지체 장애인 등을 선원으로 모집해 속칭 `노예선´에 팔아넘긴 일당이 해양경찰에 적발됐다. 부산해양경찰서는 12일 장애인과 범죄수배자 등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겠다고 속여 노예선에 팔아넘긴 혐의(직업안정법 위반)로 황모(50)씨를 구속하고 최모(45)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황씨 등은 2006년부터 대구, 부산, 마산 등지에서 생활정보지 등에 월 200만∼400만원의 수입을 보장한다는 과대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112명을 선원으로 팔아넘겨 1억 40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 등은 이들을 별도로 마련한 집단보호시설에 감금한 뒤 터무니없는 외상 빚을 지게 해 달아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구직자들에게 휴대전화를 강매해 도주에 대비한 추적장치로 활용했으며,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차용증에 강제로 서명을 받아내 보관해 왔다. 황씨 등에게 속아 팔려간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 범죄 수배자들로 서해안 외딴섬의 양식장과 염전에서 일하거나 이른바 노예선에서 새우잡이 작업 등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노동 강도가 워낙 높아 하선하는 선원이 속출하자 배의 동력을 제거한 뒤 6∼7개월씩 바다에 머물게 해 탈출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노예선에 갇힌 선원들은 음식물을 공급하는 배에 의존해 바다에 머물며 살인적인 노동을 견뎌내야 한다. 이들이 6개월 이상 바다를 떠다니며 일을 해 손에 쥐는 돈은 5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해경 관계자는 “이마저도 인신매매 조직에 바가지를 써 일주일 내로 탕진하고 오히려 빚이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해경은 서해안 일대 새우잡이 어선의 50∼60%가량이 노예선인 것으로파악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인신매매 형태로 선원을 충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납치한 정신지체 2급 장애인 권모(27)씨의 행방을 찾던 해경에 꼬리를 잡혔으며 해경의 추적이 계속되자 그해 7월 권씨를 고속도로에 버리고 달아났다. 해경은 달아난 부산지역 모집책 김모(43)씨와 이모(51)씨를 전국에 수배하는 한편 선주들과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단독]이공계 산학장학생 ‘모럴 해저드’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33)씨의 통장에는 매달 300만원이 입금된다. 대기업 두 곳에서 받는 산학장학금(연구장학금)이다. 김씨는 지난해 최대 2년6개월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산학장학생에 선발됐다. 졸업 뒤 해당 기업체에 입사한다는 조건이었지만 두 기업 어느 곳에도 취직할 생각이 없다. 그는 두 곳에서 동시에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이 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을 알면서도 거리낌이 없다. 공대 박사과정 동료 중에 자신처럼 행동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심각하다. 산학장학금의 전제조건인 ‘해당 기업체 입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최장 5년 매월 300만원 받기도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우수 인력의 입도선매 수단으로 산학장학금 제도를 운영한다. 서울대,KAIST 등 상위권 대학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상이다. 석사 과정은 매달 50만∼100만원, 박사 과정은 100만∼200만원을 받는다. 보통 1∼2년이지만 5년까지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포스텍의 경우 전체 학생의 30% 이상이 산학장학생일 정도로 일반화된 제도다. 그러나 최근 졸업 후 해당 기업 입사를 거부하거나,‘다른 기업과 계약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어기고 여러 기업과 중복 계약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기업별로 한정된 정원을 일부 학생들이 중복 독점하는 바람에 나머지 학생들은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들에 따르면 산학장학생 혜택을 얻은 후 입사를 거부하는 학생은 10대 그룹의 경우 5∼10% 수준이지만 중견기업으로 내려갈수록 50%에 육박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한다. 장학금을 펀드 등에 투자해 이자만 사용하는 학생도 있으며 유흥비로 탕진하는 경우도 있다. Y대 대학원의 이모(29)씨는 “중복 장학금을 받는 친구들이 많지만 대부분 쉬쉬한다.”면서 “‘이자만 먹어도 이익’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석사 장학생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이모(26)씨는 “‘기업 돈은 눈먼 돈’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인식”이라고 말했다.●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업들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다.‘미입사시 원금 배상’이라는 조건을 내걸지만,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압류’ 등의 추가 배상 조항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학생들의 악용 방법은 다양해지는데 기업 이미지 때문에 꼼짝없이 앉아서 당하는 형편”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해 B대학에서는 한 학생이 3개 기업에서 장학금을 2년간 받은 뒤 그 돈으로 유학을 떠나 버린 사례가 발생했다. 대기업 인사팀의 관계자는 “지도교수의 보증이나 학교 추천서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정부측 거시정책 재량권 제한해야” KDI ‘강만수 환율 주권론’과 배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일 “통화와 환율, 재정 등 거시정책에서 정부의 재량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수장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 정책은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 ‘환율 주권론’과는 다소 상치된다.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정부의 경제적 역할’이라는 보고서에서 “20세기 후반부터 정부의 역할은 민영화와 민간위탁, 바우처 등 시장형 구조를 확대하고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자유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통화정책과 관련,“단기적으로는 실물 경제에 부담을 주더라도 통화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중·장기적으로는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팽창적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할 경우, 경기 진폭만 확대시킬 뿐 경제 성장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환율정책에도 “세계 각국은 시장개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외환시장이 워낙 커져 정부의 실탄만으로는 외환 시장을 당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잘못 개입할 경우 환투기꾼의 공격에 외환보유고만 탕진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 각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은 고정환율제도를 선택하면서 통화정책의 독자성을 포기하거나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하면서 통화정책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美 대선 후보경선] 매케인 “내 본선 상대는 오바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확실시되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본격적인 ‘오바마 때리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누르고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일찌감치 선제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매케인 의원은 13일 “오바마의 연설에는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도 이날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에서 오바마의 외교 및 경제정책 등을 집중 비판했다.매케인은 전날 앞으로 선거운동의 초점을 오바마와 그의 선거 메시지인 ‘희망’을 공격하는 데 맞추겠다고 밝혔다. 매케인 의원의 공격에 대해 오바마 의원도 반격에 나섰다. 오바마는 13일 위스콘신 유세에서 “매케인의 비판은 내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받아넘긴 뒤 “매케인이나 클린턴 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이라크전을 지지해 수천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고 셀 수 없는 전비를 탕진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매케인과 오바마 간의 본격적인 대결 모습이 그동안 당내 경선 위주로 진행돼온 미 대선전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에 투입됐던 매케인의 아들 지미가 이날 무사히 미국으로 귀환했다.매케인은 이날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같은 사실을 전했으며,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고 CNN은 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을 일관되게 지지했다.dawn@seoul.co.kr
  • 달밤에 체조시킨 부부 강도(强盜)

    달밤에 체조시킨 부부 강도(强盜)

    아내가 밤길의 취객을 유혹, 남편은 이를 기화로 금품을 강탈해오던 부부강도가 잡혀 들었다. 어엿이 세 아이까지 둔 이 부부의 치사찬란한 미인계강도극, 그 사연인즉-. 지난 5월11일밤 10시 30분께. 전남 나주(全南 羅州)군 나주읍 교동 나주 고등학교 뒷길은 마침 보름달이라 초저녁처럼 훤했다. 길가에 핀 노란 유채꽃이 달빛을 받아 더욱 훤하고. 오랜만에 만난 매형과 거나하게 술을 나눈뒤 집으로 돌아가던 허(許)영철씨(37·가명 공무원)는 문득 취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바로 눈앞에 소복을 한 30대의 여인이 우뚝 서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흠칫하는 허씨에게 계속 미소지으며 애교를 떨었다. 허씨는 『무슨 여자가 밤길에 기분나쁘게 눈웃음을 치느냐?』고 점잖게 나무랐다. 그러나 여인은 태연히 대답했다. 『전 유부녀랍니다. 그러나 남편의 출장이 잦아 외로와 못살겠어요. 저를 기쁘게 해주실순 없으신지요?』 너무나 대담하고 노골적인 여인의 말에 허씨는 오히려 섬뜩했으나 여인은 틈을 주지 않고 팔짱을 끼며 갖은 교태를 부려왔다. 술도 들어갔겠다, 달빛은 밝겠다, 여인의 유혹에 허씨는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두 남녀의 발길은 가까운 꽃밭 한가운데로 향했다. 마치 다정한 연인들어럼 꽃밭속의 밀회가 진행되었다. 여인의 손길은 서슴없이 마구 사내의 품을 파고들고 허씨는 정신이 몽롱하게 여인의 매무에 취했다. 두 사람이 한창 신나게(?)입맞춤을 하고 있을때였다. 문득 남자의 구두발길이 얼굴을 강타했다. 곧이어 소나기처럼 주먹세례가 날아들었다. 허씨는 그대로 꽃밭속에 「넉·다운」되어 버렸다. 가지고 있던 현금 5천9백원과 팔뚝시계, 공무원증, 주민등록증, 예비군수첩등이 어느새 몽땅 털렸다. 얼마뒤 허씨가 정신을 차리자 낯선 사내가 『내 마누라를 강탈했으니 피해보상금 10만원을 5월20일까지 내놓으라』며 『10시정각 영산포읍 삼거리서 노란「점퍼」를 입은 사내에게 전하라』고 전달방법까지 지시했다. 허씨는 변을 당한뒤 창피한 마음에서 누구에게도 이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았다. 약속한 20일까지 기다리기가 지리했던지 부부강도는 12일 다시 연락을 해왔다. 『15일 정오 영산포읍 활쏘는데로 돈을 갖고 나오라. 만약 어기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쪽지가 전달되었다. 큰일나겠다고 생각한 허씨는 비로소 사건을 고발했다. 허씨의 신고를 받은 나주서는 전담반을 짜고 허씨집 부근에 형사를 배치했다. 13일 낮 1시쯤 경찰의 예상대로 비워둔 허씨집에 낯선 두 남녀가 나타났다. 이들은 30분가량 허씨집 마루에 앉아 두리번거렸다. 경찰은 일단 이들을 범인으로 단정, 경찰서로 연행했다. 사내의 호주머니에서 허씨의 시계와 주민등록증이 나오자, 이들이 진범임이 밝혀진 것. 사내는 편정보(片正甫·37·가명·나주군 나주읍 보산리), 여인은 편의 아내 염판숙(廉判淑·34·가명). 범행이 밝혀지자 염여인은 편의 아내가 아니라고 성을 나(羅)씨로 바꾸어 대었으나 편의 주민등록증사본을 떼어본 결과 편의 아내임이 드러났다. 『남편은 2년전부터 성병을 앓고 있었고 또 도박을 줄겨 가산을 탕진했읍니다. 남편의 강압에 못이겨 저지른 짓입니다. 제발 두 아들(중1, 국민학교3년)에게만은 비밀로 해 주십시오』 두 살된 젖먹이와 함께 수감된 염여인의 호소였다. <광주(光州)=정일성(丁日聲)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5월 30일호 제4권 21호 통권 제 138호]
  • [강유정의 영화in] ‘라듸오 데이즈’ 리뷰

    [강유정의 영화in] ‘라듸오 데이즈’ 리뷰

    하기호 감독의 ‘라듸오 데이즈´는 그때 그 시절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때는 1930년,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위업도 있었지만 아방가르드 예술인 이해경(이상)이 다방 제비를 열어 기생 금홍과 밤낮없이 허무에 빠져들던 시기이기도 하고, 모던 보이 박태원이 하릴없이 종일 종로를 거닐며 시간을 탕진하던 때이기도 하다. 어쩌면 당시, 번화가인 종로나 화신 백화점을 걷는 시민들에게는 ‘모던 껄´과 ‘모던 뽀이´의 행색이나 풍속도가 더 흥미로운 ‘현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1930년대는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물과 문명이 이 땅에 자리잡기 시작했던 과도기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던 걸이 6폭 한복 치마를 곱게 다려 입은 여성과 함께 길을 걸어가던 시기. 일본을 거쳐 수입된 재즈와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함께 울려 퍼지던 경성 거리.‘라듸오 데이즈´의 시작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라듸오 데이즈´는 전통과 신문물의 혼합과정보다는 ‘라디오´라는 신기한 문명의 도입에 주목한다. 닭울음을 전파에 싣기 위해 진짜 닭을 울리는 첫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어떻게 하면 라디오 방송의 묘미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연출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출연자들의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불가능한 인연으로 맺어진 멜로드라마로 최루성 인기를 얻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방송의 심리와 구조를 패러디한 작품에 가까워 보인다.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풍경보다는 방송의 생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청자 게시판 역할을 대신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나 ‘다시 보기´나 ‘불법 다운 로드´를 연상케 하는 재방송 상인들의 풍경이 그렇다. 드라마의 맥락과 무관하게 조미료 광고를 넣는 PPL 장면도 1930년대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더 잘 보여준다. 문제는 ‘라디오 데이즈´의 한계 역시 이 감각 속에 있다는 점이다. ‘라듸오 데이즈´는 최초의 방송이 이랬을 것 같다는 추측 위에서 시작한다. 알려진 자료가 없는 만큼 2000년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상상은 연역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1930년대다운 질감은 사라지고 없다. 방송의 생리는 입체적인데 1930년대 풍경은 사진관에 놓인 인공 세트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1930년대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주말 아침 TV에서 볼 수 있는 재현 프로그램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다.‘웰컴 투 동막골´과 유사한 마지막 불꽃 놀이 장면이 따뜻한 감동보다는 어색한 봉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인 ‘라듸오 데이즈´의 경성, 하지만 이 삐걱거림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심리적 거리감과 무게를 덜고 다시 보는 일제 강점기, 그 시도만으로도 격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1930년대를 조명하는 새로운 각주로서 이미, 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31일 TV 하이라이트]

    ●코끼리(MBC 오후 8시20분) 첫사랑을 닮은 해영 앞에만 서면 가슴이 설레는 영수. 그런데, 해영도 영수에게 넥타이를 고쳐주는 등 관심을 보여온다. 한편, 주가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 음식을 혼자만 못 먹는 상엽. 평소 좋아하던 채아가 매운 음식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끙끙거리면서도 앞장서 매운 음식을 찾아 다닌다.   ●부부 솔루션 미안해 사랑해(SBS 오전 9시)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만 하는 남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아내의 제보전화. 남편은 신혼 초부터 도박에 빠져 월급을 모두 탕진하는가 하면, 회사 공금횡령에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요즘에는 컴퓨터 도박에 빠져 툭하면 PC방에서 외박을 일삼는다. 이 젊은 부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큐 여자(EBS 오후 7시45분) 엄마는 딸 윤주의 유학을 앞두고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먼저 윤주의 건강상태부터 체크하기로 했는데 4개월 만에 들른 치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윤주의 부주의로 그 사이 충치가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화가 난 엄마는 또다시 윤주에게 소리를 지르고 만다.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결혼 후 4년 만에 소중한 보물 선채를 낳은 나란투야씨 부부. 하지만 행복도 잠시 세살배기 선채에게 재생불량성 빈혈증이란 시련이 찾아왔다. 슬픔과 절망을 뒤로한 채 선채를 위해 마음을 다잡은 나란투야씨 부부. 집 근처에 몽골 식당을 열어 수시로 선채의 건강을 살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꿈을 이루다(YTN 낮 12시35분) 학생수가 200명인 파라과이의 작은 한국 학교 학생들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꿈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꿈이 지난해 이뤄졌다.YTN 방송으로 사연이 소개됐고, 현대증권이 경비 전액을 지원했다. 파라과이 한인 학생들의 10일간의 일정을 함께해 본다.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45분) ‘식빵 굽는 시간’‘국자이야기’ 등에서 신작 ‘혀’에 이르기까지, 요리를 좋아하는 작가 조경란이 꾸미는 낭독 무대. 싱크대 위 가지런한 양념통, 보글보글 냄비 가득 끓고 있는 스튜 등을 배경으로 리듬감 넘치는 도마 난타와 그림자 마임이 펼쳐진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이 달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 [강유정의 영화 in] ‘무방비도시’

    [강유정의 영화 in] ‘무방비도시’

    영화는 누구의 힘으로 매력을 발산할까? 영화라고 하면 우선 배우를 떠올린다. 김명민, 손예진. 김명민이야 2007년 드라마 ‘하얀거탑’을 통해 탄탄한 마니아층을 마련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손예진은 어떨까? ‘클래식’‘연애소설’‘내 머리 속 지우개’에서 청순함을 발산했던 여배우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는 그가 ‘작업의 정석’에서 청순가련 여학생에서 내숭 9단의 여자로 변신하는 순간을 목격했었다. 그리고 2007년 그는 ‘무방비도시’에서 기존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김명민이라는 파트너도 든든한 후광이 돼 준 듯 싶었다. 문제는,“싶었다.”라는 기대감이 컸다는 데에 있다. 손예진의 노출신, 천수관음상 문신이라는 등의 화젯거리가 영화보다 먼저 관객들을 찾아 왔다.‘국내 최초 기업형 소매치기’라는 문구도 따라 다녔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무방비도시’는 괜찮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어딘가 어색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첫번째 어색함은 무엇보다 중요한 소매치기 장면이다. 여러 면에서 ‘무방비도시’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를 연상케 한다. 전문적 범법자들이라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한 번 빠지면 정상적 삶으로 되돌아 오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마약이나 술처럼 도박도 범죄도 중독성이 있다. 이 영화들은 모두 이 지독한 중독성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지독한 중독적 범죄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악이다. 사람들이 주머니에 자기 돈을 지니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소매치기는 존재했고 도박도 존재했다.‘타짜’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요인 중 하나는 우리가 모르는 두려운 세계에 대한 노출이었다. 화려한 손기술과 처음 듣는 ‘전문 용어’들 그리고 험악한 그들만의 법칙들, 최동훈 감독은 그 ‘다른 세계’를 현란하게 보여 준다. ‘무방비도시’의 무방비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가 보여 주는 몇몇 기술들은 슬로 모션으로 신비화되어 있다. 눈보다 손이 더 빨라야 한다지만 영화 속의 기술들은 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두번째 한계라고 한다면 여배우 손예진의 매력의 초점이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표독한 두목인지 아니면 섹시한 팜므파탈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문적 소매치기인지 카메라의 시선은 갈피 잡지 못한 채 손예진의 매력을 탕진한다. ‘기업형 소매치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회칼이 난무하는 기존 느와르 영화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무방비도시’가 전문범죄를 다룬 영화에 뛰어든 후발주자였다면 조금 더 다른 것을 보여 줬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만큼 생각도 많아지는 작품이다.
  •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쥐띠’의 문화적 의미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쥐띠’의 문화적 의미

    쥐(子)는 십이지의 첫자리이다. 쥐(子)는 정북(正北)과 오후 11시에서 새벽 1시, 달로는 음력 11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 기회의 해이다. 쥐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食福)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들 한다. 쥐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해는 크지만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본능이 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동물이다. 쥐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가야지역에서는 지붕 위의 고양이가 곡식창고로 올라오는 쥐 두 마리를 노려보는 집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곡식창고나 뒤주의 주인은 쥐였나보다. 쥐는 문화적으로 재물·다산·풍요기원의 상징이며,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이다. 쥐는 훔치는 행위가 늘 지탄의 대상이 되는 반면, 그 근면성은 칭찬을 받아 왔다. 아무리 딱딱한 물건이라도 조그마한 앞니로 구멍을 내어놓은 일에서 근면성과 인내력이 감지된다. 쥐는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놓기 때문에 숨겨 놓은 재물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우리 설화에 ‘혼쥐’ 이야기가 있다. 도둑질을 생업으로 하는 사내가 낮잠을 잘 때, 코에서 팥알만 한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이를 바느질하던 그의 처가 보았다. 그래서 이 생쥐를 다리미며, 잣대, 다림질판 등으로 길을 터 주었다. 그러자 그 생쥐는 복장(伏藏)인 황금더미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잘 살았다. 이 이야기에서도 쥐는 도둑과 재물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쥐는 생태학적 특징에서 보듯이 번식력이 왕성하다. 십이지의 자(子)는 玆(자),滋(자)와 동음으로 ‘무성하다.’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다.’는 뜻으로 싹트려고 하는 ‘만물의 종자’라는 다산(多産)의 상징이 된다. 또한 상자일(上子日) 풍속이나 쥐불놀이, 쥐와 관련된 주문이나 풍속에서 이러한 특성으로 풍요기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정월에 들어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 일명 ‘쥐날’이라고 한다. 이날 쥐를 없애기 위해 농부들은 들에 나가서 논과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을 놓는다. 논밭에 낸 거름기를 빨아들여서 잡초가 잘 자란다. 이것이 겨울을 맞아 자연히 마르면 여기에 불을 놓아 해충을 제거하고 동시에 불탄 재는 거름이 되어 땅을 거름지게 한다. 또 마른 잡초들을 태워 버리듯이 쥐도 없어지라는 뜻에서 이날 불은 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해의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쥐불놓기는 보름달의 달맞이 풍속과 겸해서 쥐불놀이와 함께 행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음력 11월은 자월(子月)이라 하는데, 자월의 자일(子日)이나 자시(子時)에는 무슨 일이든 도모해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헛수고뿐이고 종국에는 구설, 송사, 파산에 이른다고 믿었다. 자일(子日)에 쑥뜸을 뜨면 무슨 병이라도 고친다고 한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일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성격이 수그러진다고 한다. 쥐는 예로부터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뿐만 아니라 뱃길의 사고를 예시하거나 꿈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 들여졌다. 쥐에게는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진이나 화산, 산불이 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고 떼를 지어 그곳에서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쥐의 예지력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쥐는 해안도서 지방에서 섬기는 수호신의 하나이다. 전남의 비금도 월포리 당과 우이도 진리, 대촌리, 경치리, 서소우이도의 당은 쥐신을 모신 대표적인 예이다. 쥐는 예로부터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과 뱃길의 사고를 예지하여 꿈으로나 행동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파선이나 난선을 미리 쥐신이 꿈으로 알려주거나 암시해 준다고 믿었다. 선원들에게는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거나 ‘쥐가 없는 배에는 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따라서 쥐의 이변은 미래에 일어나게 될 특수한 사건의 상징적 예시로 보고, 아무런 변고가 없도록 제단을 설치하고 당의 주신(主神)과 더불어 제를 올리고 있다. 해안지역의 쥐신 신앙은 농작물의 풍년을 기구(祈求)하는 것보다는 뱃길을 지켜 주는 쥐의 효험을 믿었기 때문에 항해의 안전을 위해 쥐신을 모시고 있다. 속담의 소재로 사용된 쥐는 약자·왜소함·도둑·재빠름 등으로 표현되었다. 쥐와 고양이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천적으로 흔히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약자로서 쥐는 언제나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의 마지막 오기로서 강자에게 달려드는 역설도 있다. 쥐가 작거나 하찮음을 비유한 예가 많다. 쥐보다 더 큰 동물과 사물을 대비시켜 왜소함과 하찮음을 더욱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쥐구멍, 쥐꼬리, 쥐간에 이르면 그 왜소함의 표현은 극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 속담에 쥐의 생김새라든지 행동, 습관 등의 생태를 보고 만들어 낸 것도 있다. 여기서도 도적, 왜소함, 약자 등을 표현한다. 특히 재빠르고 약삭빠름에 비김이 많다. 문학 작품에서는 쥐의 모습을 도적이라는 이미지로 많이 묘사했다. 중국 고대의 시가집인 ‘시경’의 ‘석서(碩鼠)’편에는 큰 쥐가 백성에게 세금을 과중하게 거둬들이는 것을 탓하는 장면이 있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식량 앗아가지 말라/3년이나 널 보살폈는데도 날 보살필 생각은 없구나/이제 너를 버리고 저 평화로운 지역을 찾아가련다 여기서 큰 쥐를 폭정을 일삼는 임금이다. 임금이 백성을 못살게 굴어 견딜 수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정약용은 이노행(奴行)이라는 시에서 쥐를 간신과 수탈자에 비유했다. 쥐는 구멍 파서 이삭 낟알 숨겨 주고/집쥐는 집을 뒤져 모든 살림 다 훔친다/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기름 마르고 피 말라 뼈마저 말랐다네 들쥐는 백성의 곡식을 수탈하는 지방관리, 집쥐는 궁궐 내에서 국고를 탕진하는 간신배이다. 특히 인의(仁義)에 의한 덕치주의를 표방하는 유교는 국왕의 교화에 의한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 이 시에서는 이같은 군주의 정치가 쥐로 표상되는 간신배에 의해 피폐화됨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옛말에 ‘나라에는 도둑이 있고, 집안에는 쥐가 있다.’는 말과 통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치열한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영화미학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는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미국 3부작을 기획한 의도는, Pax Americana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정치 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계기는 911 테러였다.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의 오만함도 커지고 적대적인 시선도 늘어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해부해 보고 싶어했다.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미국 3부작이 기획된 셈이다. 그 첫번째 시도가 <도그빌>이다.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망치듯 들어와 겪는 폭력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화 언어와 날카로운 실험정신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어냈다. 연극적 무대 양식과 영화적 실험기법이 충돌하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이 작품은, 이른바 구동독작가인 브레히트류의 서사극에서 영향을 받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감정이입에 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동화효과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과 인물에 의문점을 갖고 관객들로 하여금 비판적 이성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이화효과를 창안한 브레히트의 극작술과 연출방법은 현대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었다. 가까스로 도그빌을 벗어난 그레이스가 도착한 곳이 미국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만덜레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미국 정치의 심장부를 소재로 한 <워싱턴>이다. 개들의 마을을 뜻하는 도그빌이나, 흑인 노예 농장을 소재로 한 만덜레이 등의 제목이나 소재에서도 드러나듯이,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잔혹한 폭력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 마치 연극 작품처럼 무대 위의 셋트에서 촬영된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사실주의 양식의 무대가 아니라, 표현주의 스타일의 상징적이며 압축적 이미지를 담은 무대다. 따라서 한 마을이나 농장은 무대 위에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벽이나 울타리 등은 의미적으로는 설정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를 마임으로 연기하면, 음향으로 가상의 벽이나 문이 존재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는 바닥에 글자로 쓰여 있다. 카메라는 가끔 버즈 아이샷으로 공중 높이 올라가면서 마치 건축 설계도의 평면도처럼 관객들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도그빌을 떠나 남부 알래바마주의 한 오지 마을 만덜레이에 도착한 그레이스(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와 갱단 두목인 그녀의 아버지(윌리엄 데포우 분)는 폐지된지 70년이 넘은 노예제도가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농장주인 백인 마님은, 농장의 흑인 노예들에 관한 모든 비밀이 적힌 자신의 침대 밑 노트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에게 하고 숨진다. 그레이스는 흑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농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갱단의 부하 몇 명에게 그레이스를 경호하도록 하고 떠난다. 흑인 노예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당황해 한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모르고 무질서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죽은 백인 마님 대신 농장에 질서가 집힐 때까지 그레이스에게 마님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그레이스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진 비밀노트를 본다. 그 속에는 모든 흑인 노예들이 7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자존심 강한 1등급부터, 아첨 잘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며 생존해 나가는 카멜레온같은 7등급까지 상세하게 분류된 그 노트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레이스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목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노력한다.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노예제도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날의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강제적으로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성장 불가능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그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문제와 노예제도가 일차적 소재라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자유에 대한 것이다. 억압이 사라졌다고 저절로 자유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인가?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박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강요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선택한 속박에 길들여진 그들 곁에서 그레이스는 혼란을 느낀다. 또 그녀는 흑인 노예들의 벌거벗은 강인한 몸을 보면서 욕망을 느낀다. 흑백의 섹스는 미국 영화에서 오랫동안 금기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섹스는 문제될 것이 없다. 백인이 우월자이고 지배자였으니까. 그러나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섹스는 미국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만약 그 부분이 내러티브 전개상 꼭 필요하다고 해도, 침대로 갔다가 다음 날 해가 뜨는 식으로 간단하게 묘사하는 게 전부였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흑인 인텔리로 등장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 나잇 스탠드>는 그런 점에서 충격을 준 영화다. <만덜레이>에도 그레이스와 흑인 노예 티모시(이삭 드 번콜 분)의 사실적인 섹스씬이 등장한다. 흑인 남자들의 벗은 몸을 보고 자위를 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이어, 후반부에는 음부까지 드러낸 그레이스와 검은 성기까지 노출한 티모시의 격렬한 섹스씬이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흑백의 터부를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깨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다. 자유와 속박의 문제다. 농장 노예들을 분석한 비밀노트도 사실은 농장 집사인 흑인 윌햄(대니 글로버 분)이 작성한 것이었고, 흑인들이 농장을 떠나지 않는 것도 속박에 의해사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의도적으로 노예제도의 틀을 유지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만덜레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또 자존심 강한 1등급 먼시족 남자로 생각하고 이끌렸던 티모시는 사실은 기회주의적인 7등급 만시족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더구나 티모시는 목화로 수확한 마을의 공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린다. 분노한 그레이스가 티모시를 결박해 놓고 채찍으로 후려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회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농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레이스를 마님 대용으로 이용한 흑인들의 대부 윌햄도 그렇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른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속박의 경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대담한 방식으로 접근한 라스폰 트리에의 용기와 실험정신은 <만덜레이>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영화 양식의 무대적 차용이라는 독특한 외형적 방식뿐만 아니라, 내적인 주제적 측면에서도 저울추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위장된 휴머니즘을 신랄하게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예리한 연출력이 <만덜레이>를 보는 동안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니콜 키드만에 이어 그레이스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빌리지>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신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론 하워드 감독으로서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을 만든 명장이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버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노력으로 주목받는 연기자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유로파>로 데뷔한 후, 병원을 소재로 한 장편 시리즈 <킹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가수 비욕이 참여했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 등을 만들었던 문제 감독이다. 그는 인위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자연광 등으로 순수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고, 이에 동조하는 젊은 영화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들고 찍기를 자주 사용하고 카메라와 편집 테크닉에도 능란한 그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항상 문제 영화를 만들어왔다. <만덜레이>는, 미학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적 방법론을 영화언어에 접목함으로써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는 힘을 높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관객들의 비판정신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부부 교사의 미인계

    부부 교사의 미인계

    외딴 여인숙의 한적한 방. 어느날 대낮에 남녀가 투숙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 숨가쁜 소리가 들리고 이어 방문을 때려 부수는 소리와 함께「카메라」의「플래시」가 터졌다. 간통하던 여자는 침입자의 아내. 간부는 침입자와 여자의 학교시절 동창. 그런데 3자가 모두 학교「선생님」이었다는 기묘한「드라머」의「치사한 내막」-. 제1막- “그립다” 편지로 꾀어내…현장에 사진사도 동원 -윤(尹)선생님, 그간 안녕. 7년전의 연정이 되살아 납니다. 교정에서 하루 멀다하고 얼굴을 맞대던 시절의 옛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중략(中略)) 긴 방학이 갑갑하지 않아요? 혹시 출장이라도… 기회를 얻으실 수 없는지…. 언제 어느때고 연락만 주신다면 보고싶은 얼굴, 달려 가겠어요. 순(順)이 씀-. 지난해 12월 28일. 경남 거제(巨濟)군 延草(연초)면 모 국민학교교사 윤모씨(31)는 그의 학교시절 애인이었던 고성(固城)군 고성읍 K중학교사 양학순(梁學順·30)여인으로부터 이런 기막힌 편지를 받았다. 윤교사는 1주일도 못되어 양여인에게 전보를 날렸다. 『-내일 9일 낮11시 마산XX다방 상봉요』 지난 1월9일, 그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재회했다. 1시간쯤 지난날의 추억이며, 세상 돌아가는 일등 잡담이 오갔다. 어느정도 회포를 푼 다음, 그들은 함께 일어섰다. 아주 자연스럽게 남녀의 발걸음은 마산(馬山)시내 서성동 분수대앞 K여인숙 12호실로 향했다. 2홉들이 소주1병과 오징어를 사다가 권커니 잣거니하며… 「회포」는 다음 단계로 무르익어 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양여인이 덥다며 내의까지 벗었고, 이에 질세라 윤교사도「넥타이」를 풀어 제쳤다. 『선생님. 두 아이를 거느린 과부가 됐어요. 어떻게 힘이 되어 주세요…』 양여인이 엎어지듯 윤교사의 가슴에 기댔다. 옷들이 벗겨지고, 숨가쁜 포옹, 격렬한 애무가 이어졌다. 벗은 양여인의 자태는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윤교사는 서두르며 끌어안았다. 그 순간 밑에 있던 양여인이 부자연스럽게『캑!캑!』두번 기침소리를 냈다. 기침소리를 신호로 방문이 벌컥 열리며 사내가 뛰어들었다. 사내는 불문곡직 여자위에 엎어진 윤교사를 두들겨 팼다. 이윽고 대기해 있던 사진사 김삼부씨(29·마산시 서성동84·D사진기사)가 들이닥쳐 이 기괴한, 벌거벗은 현장을「카메라」에 담았다. 제2막-교무주임도 같은 수법 3백만원짜리 각서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내의 기세에 윤교사는「팬츠」만 겨우 걸치고 꿇어 엎드려 싹싹 빌었다. 침입한 사내는 양여인의 남편 윤문석(尹汶錫·32·고성읍K중학교사). 30분동안의 3자회담끝에 윤교사가「2백만원 지불」의 각서를 쓰고 난경을 모면했다. 이상은 양·윤 부부교사의 간통조작극 제1막이었다. 제2막은 지난 2월19일 하오 1시, 같은 여인숙의 바로 옆방에서 개막됐다. 이번 대상은 양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무주임 이(李·34)모씨. 제1막의「드라머」와 별다른 차이없이 옷을 벗고, 끌어안고, 덮치고,「카메라」가「짤까닥」거렸다. 이번에는 액수가 커서「3백만원」의 현금보관증과 2월말까지 지불을 약속하는 지불각서, 그리고 윤씨가 이씨의 주머니를 뒤져 현금 2천5백원, 주민등록증, 공무원증등을 탈취했다. 모두 5백만원이 굴러 들어오게된 부부교사는 그 현금수납자로서 양여인의 오빠 양학율(梁學律·50·거제군 동부면 타포리)에게 사건의 마무리를 의뢰했다. 양은 1차 범행에 걸려든 윤교사를 찾아 지난 1월 3차에 걸쳐 15만5천원을 뜯어내 10만원은 동생부부에게 보내고 5만5천원은 자기가 가로챘다. 10만원을 받은 윤은 모두 이를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되자 2차범행의 이교무주임에게 우선 1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번 각서내용을 완전히 번복, 지불을 거절했고, 배신행위(?)에 화가난 윤은 이씨를 걸어 간통죄로 고성경찰서에 고소했다. 윤의 조작극이 들통난 것은 이때. 간통쌍벌죄로 고소한 윤이 무슨 까닭인지『아내는 풀어달라』고 경찰에 호소한 것.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남녀를 모두 풀어주고, 이교사만 따로 불러 진상을 조사한 결과 양·윤의 조작극임이 밝혀져 지난 20일 두 부부교사를 공갈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양여인의 오빠 양학율도 같은 혐의로 수배하기에 이른 것. 남편은 의처증 변태, 매일같이 팬티 검사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은 그 원인으로 윤의 (1) 심한 의처증 (2) 가정불화 (3) 변태성욕 이라고 판단했다. 윤은 아내 양여인의「팬티」검사를 하루도 빠뜨린 일이 없다는 것이며, 양여인은 또 가끔 바람 잘 피우기로 소문났었고, 특히 양여인이 반질반질한, 뱀껍질같은 윤기나는 피부의 소유자로서「섹스」에 강했다는 것. 윤이 여관 옆방에서 자기의 아내가 1시간이상 걸려 정사에 들어가기까지 지리한 시간 참을성있게 기다린 것은「변태성욕자」가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또한 윤은 이 지방에서 난폭하고 난잡한 여성관계로 소문이 나있다고. 마산(馬山)시내 자산동 C모양(29) 창원(昌源)군 L국민학교 C모교사(30)등과 오랫동안 교제를 해왔고, 심한 낭비벽으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여인은 이미 정력이 강하기로 평판이 나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조사에서 남편 윤이 이혼하겠느냐, 간통을 하겠느냐고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에 한 짓이라고 실토. 이들 부부는 문란한 성생활과 무절제한 낭비로 현재도 수십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 두 부부의 수입을 합해 월수 7만원정도 된다는 얘기이고 보면 시골 읍생활수준으론 얼마만큼 심한 낭비생활을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경찰은 말한다. [선데이서울 71년 3월 7일호 제4권 9호 통권 제 126호]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내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당쟁은 격화되었고 환관들은 날뛰고 있었다. ●격화되는 黨爭 1620년 7월 명의 만력제(神宗)가 죽었다. 제위에 오른 지 48년만이었다. 장남 주상락(朱常洛:1582∼1620)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창(泰昌)으로 고쳤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력제의 암우(暗愚)와 태정(怠政)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태창제(光宗)에게 기대를 걸었다. 태창제는 즉위 직후 내탕(內帑)에서 100만냥의 은을 풀어 누르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요동의 장사들에게 지급하고, 악명 높았던 광세사(鑛稅使) 등의 파견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야는 감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창제는 즉위한 지 한달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다시 태창제의 아들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니 그가 곧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이다. 만력 중반부터 천계 연간까지 명 조정의 당쟁은 격렬했다. 비운의 황제였던 태창제의 존재와 급사는 당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만력제는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상락은 왕(王)씨 성을 지닌 궁녀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만력제는 왕씨와 주상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력제는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삼남 주상순(朱常洵)을 총애했다. 그는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신료들은 ‘장유(長幼)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당시 명 예부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차남’ 광해군을 승인할 경우,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책립(冊立)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상락의 황태자 책립은 19년 동안이나 미루어졌고, 그는 1601년에야 비로소 황태자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파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1615년 장차(張差)라는 괴한이 주상락의 거처에 몽둥이를 들고 난입하여 그를 위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해치려 했던 엄청난 사건임에도 재상 방종철(方從哲) 등은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건의 배후에 정귀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신료들은 방종철 등을 탄핵했다. 이 사건을 ‘정격안(檄案)’이라고 한다.‘안(案)’이란 사건을 가리킨다. 태창제의 급사 원인을 둘러싼 당론(黨論)도 치열했다. 태창제는 병석에 누운 뒤, 이가작(李可灼)이란 관인이 바친 붉은 환약(紅丸)을 복용했다. 홍환 복용 후 황제가 급사하자 다시 치열한 논란이 빚어졌다. 동림당 관인들은 시약(侍藥)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방종철을 공격했고, 방종철을 옹호하는 관인들은 황제의 죽음이 홍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1625년(천계 5)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란을 ‘홍환안(紅丸案)’이라 부른다. 태창제 사후, 그가 총애하던 후궁 선시(選侍) 이(李)씨는 황자 주유교를 자신의 거처인 건청궁에 감추었다. 주유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환관 위충현(魏忠賢)과 연결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동림당 계열은 그 같은 기도에 반발하여 주유교를 이씨에게서 떼어내고, 이씨를 별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또한 격렬한 정쟁이 빚어졌는데 그것이 ‘이궁안(移宮案)’이다. ●東林黨과 奄黨 ‘정격안’,‘홍환안’,‘이궁안’을 아울러 삼안(三案)이라고 한다.‘삼안’을 놓고 명 조정의 관료들은 수많은 장주(章奏)를 올려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쟁은 격화되었다. 천계 연간(1621∼1627) 명 조정에는 절당(浙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제당(齊黨), 곤당(昆黨) 등 여러 당파가 있었지만 당쟁의 중심은 동림당과 엄당이었다. 동림당은 만력 초기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의 전횡에 반대, 도전했던 청의파(淸議派) 관료인 고헌성(顧憲成), 추원표(鄒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장거정이 죽은 뒤에도 내각과 환관들의 비정을 비판했다. 동림당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에 있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거점으로 삼았다. 주자학 강학(講學)을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조정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들이 황태자 책립, 인사, 요동 방어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내각이나 환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당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엄당은 환관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는 환관을 가리켜 ‘만들어진 제3의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환관 가운데는 종이를 발명한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나 명 초기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원정(大遠征)을 주도했던 정화(鄭和)처럼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환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환관이 맡은 일은 천한 것이었지만 때로 천자나 후궁과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궁극에는 국가의 명운마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자들도 나타났다. 명대에 특히 환관의 폐해가 심했다.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 등이 대표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삼안’처럼 궁정의 문제가 정쟁의 현안이 될 경우, 환관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았다. 천계 연간 위충현이 엄당을 이끌며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명하다. ●끔찍한 魏忠賢의 시대 위충현(?∼1627)은 하북성(河北省) 숙녕현(肅寧縣)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무뢰배였던 그는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뒤, 스스로 환관이 되었다. 본래 이진충(李進忠)이었던 이름도 위충현으로 바꾸었다. 천계제가 즉위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날로 높아졌다.1621년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 되었다. 환관들의 수장 격이었다. 그는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도 겸했다. 1624년, 동림당원 양련(楊漣)은 위충현을 탄핵했다. 그에게 스물 네 가지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위충현은 동창의 책임을 사임하는 등 일단 몸을 낮춰 위기를 벗어났다. 이윽고 천계제의 신임이 회복되자 보복이 시작되었다. 위충현은 1625년 동림당의 핵심 인물인 양련, 좌광두(左光斗), 원화중(袁化中), 위대중(魏大中), 주조서(周朝瑞), 고대장(顧大章) 등 6인을 ‘수뢰’ 혐의로 탄핵했고, 곧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 위충현의 심복 허현순(許顯純)은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을 못 이겨 고대장은 자살했다. 차라리 그가 행복했다. 나머지 5명의 시신은 전부 문드러졌다. 위충현은 1626년에도 옥사를 일으켰다. 고반룡(高攀龍), 주순창(周順昌), 황존소(黃尊素) 등 7명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고반룡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나머지 6명은 예의 혹형을 받았다. 환관들이 금의위(錦衣衛)에서 행한 고문은 잔혹했다. 끌려온 자들에게 5가지의 도구를 이용하여 혹형을 가한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고 한다. 주순창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위충현을 비판하다가 이를 모두 뽑혔다. 동림당을 탄압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배경에는 천계제의 방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림서원을 비롯한 동림당의 근거지는 파괴되었고, 각 지역에는 위충현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모문룡도 가도에 위충현을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다. 위충현의 전횡에 절망한 관료들은 사직했고,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는 누르하치에게 귀순했다. 누르하치의 철기(鐵騎)는 달려오고 있는데 명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아내는 사채업·경찰남편은 해결사

    채무자와 채무자 친척 등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2명을 다치게 한 전직 경찰관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5일 서울 방배경찰서와 경기 광명경찰서에 따르면 2001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경사로 정년 퇴직한 임모(64)씨는 지난달 10일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서 채무자의 사위 최모(39)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최씨의 아내(36)에게 상처를 입혔다. 또 같은 날 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또 다른 채무자 유모(46)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했다. 임씨는 10여년 전부터 사채업을 하는 아내를 도와 채무자들을 찾아가 빚 독촉을 하는 역할을 해왔다. 임씨는 최씨의 장모에게 빌려준 5000만원(피해자 주장 1000여만원)을 10여년간 받지 못하는 등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해 결국 가산을 탕진했으며 이 때문에 아내와 올해 초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경찰에서 “30여년 경찰 생활 끝에 마련한 집까지 팔아 아내의 사채업에 보탰는데 채무자들이 원금이 5억원이라는 큰 돈을 갚지 않아 앙심을 품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임씨의 전세방에서 최씨 장모를 비롯한 채무자 13명의 이름, 주소, 채무액이 인쇄된 종이를 발견해 두 사건 모두 임씨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소재를 파악해 왔다. 임씨는 범행 뒤 숙박업소 등을 전전하며 은신하다 3일 오후 10시25분쯤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앞 숙박업소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검거 당일 임씨가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으며,4일 수사본부가 차려진 광명경찰서로 신병을 인도했고,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고 밝혔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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