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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천억달러 수출」 큰잔치/오늘 무역의 날 행사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1천억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제32회 무역의 날 기념식이 30일 상오 서울 무역센터에서 열린다. 기념행사는 구평회 한국무역협회 회장의 기념사,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의 경과보고,수출 유공자에 대한 포상 및 수출의 탑 수여 순으로 진행된다.수출 유공자들에게는 산업훈장·산업포장 등 정부포상과 통상산업부장관 표창 등이 수여된다.
  • 답안 고치면 0점처리 “유의”/수능시험 이틀앞… 주의사항

    ◎수험표 분실대비 사진 지참토록/대중교통 이용… 10분전까지 입실 96학년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들은 사소한 실수나 부주의로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시험수칙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시험을 앞두고 예비소집일(21일)과 시험 당일(22일)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본다. ◇예비소집=21일 상오10시부터 하오3시사이에 시험지구별로 실시되는 예비소집을 통해 유의사항과 함께 수험표를 교부받는다.검정고시출신은 원서를 접수한 해당 교육청이 교부한다.수험생들은 무엇보다 시험실 위치와 시험장까지 가는 교통편을 미리 알아둬야 한다.수험표는 시험당일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분실에 대비,원서에 부착한 사진과 동일한 사진 1∼2장을 준비하는게 좋다. ◇입실=22일 상오8시30분까지 해당 시험실에 입실해야 한다.최소한 10분전에 도착,차분히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특히 고사장주변 2백m내에는 차량을 통제하므로 자가용보다는 지하철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게 바람직하다.수험표와 주민등록증(또는학생증)을 반드시 지참하되 수험표는 왼쪽 가슴에 달고 주민등록증은 책상 오른쪽에 놓는다.노트·책·지우개·일반 사인펜·전자계산기·무선호출기 등 시험에 불필요한 물품은 지참해서는 안된다.한자라도 더 보겠다고 참고서등을 가져가는 것은 부담만 줄뿐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시간운용=감독관이 입실한뒤 시험시작 15분전에 예비령이 울리면 답안지에 성명·수험번호·계열을 기입한다.시험시작 5분전에는 문제지를 배부받고 문제지 유형과 면수·인쇄상태를 확인한다.이상이 없으면 문제지에 수험번호및 성명을 표기한다.상오 9시 시험이 시작되면 감독관이 수험표와 주민등록증을 원서와 대조,본인여부를 확인한다.특히 1교시(언어영역)와 4교시(외국어영역)의 듣기평가는 시험시작과 함께 시작되므로 주의력을 빼앗겨 한번뿐인 청취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더구나 올해는 지문이 긴 문제가 많고 영어듣기평가문항이 8문항에서 10문항으로 는 만큼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문항당 문제풀이의 평균 소요시간은 언어영역 1분30초,수리·탐구Ⅰ 3분,수리·탐구Ⅱ 1분40초,외국어영역 1분30초로 대체로 충분한 편이다.시험종료 10분전에는 감독관이 「10분 남았음」을 알려주므로 이때 최종점검하고 문제지와 답안지에 정확히 기재되었는지를 재확인한다.종료령이 울리면 필기도구를 놓고 눈을 감은 다음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이때 답안지는 오른쪽에,문제지는 왼쪽에 둔다.시험이 끝난뒤 문제지는 밖으로 갖고 나가서는 안된다. ◇답안작성=반드시 감독관이 나눠준 흑색컴퓨터용 사인펜으로만 작성해야 한다.답란에는 답이외에 어떤 형태든 다른 표기를 해서는 안된다.일단 답안을 표기했다가 수정용 펜이나 수정액등으로 답안을 고치면 모두 0점 처리되므로 절대 유의해야 한다.물론 답안지를 시험종료 10분전까지 바꿀수는 있으나 시간이 모자라 당황할수도 있고 여분도 제한돼있어 처음부터 세심한 답안작성이 요망된다.
  • 누더기 한벌(외언내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긴 성철대종사는 일생을 「무소유」로 일관한 당대의 큰스님.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을 때의 별명은 「가야산 호랑이」였다.대쪽같은 성품과 구도자로서의 몸가짐이 워낙 엄격해 붙여진 별명이다.그가 몸담고 있었던 4평남짓 방에 가구라곤 고색창연한 서안 하나뿐이었고 93년11월4일(음력 9월21일) 세수 82세로 열반할 때 남긴 유품도 누더기 한벌뿐이었다. 30∼40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이 낡아빠진 가사는 성철스님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높고 청정했는가를 보여준 징표다.물질만능과 배금주의에 젖어 있는 세태속에서 이 한벌의 누더기는 청빈한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스님이 열반했을 때 수습된 사리는 1백10과나 되었다.스님은 생전에 제자들을 향해 『내몸에서 사리가 나오거든 모두 허공에 뿌려버려라』고 당부했지만 아직 보존되고 있다.이런 당부는 눈에 보이는 물질로 자신의 법력을 달고 재는 것이 싫었기 때문.그러나 열반직후 해인사에는 스님의 사리를 보기 위해 불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지금도 줄을 잇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만일 물질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라고 가르쳤다.지금 우리사회는 노태우씨의 부정축재와 비리로 진흙탕속에 빠져 있다.또 국민은 실의와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런 때일수록 너나할 것 없이 세속의 욕망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13일은 음력으로 따져 성철스님이 열반한 지 2주기가 되는날.이날을 맞아 스님의 제자들은 사리탑 기공,불교학술상 제정,이웃돕기 자비운동 전개등 다채로운 추모행사를 펼치고 있다.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추모행사보다는 큰 스님이 남긴 「누더기 한벌」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닦기에 힘써야 한다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새삼 뜻깊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 차르시대 민속촌 루코모리예(시베리아 대탐방:46)

    ◎러시아 혁명때 마을 원형대로 복원/가족공원 조성… 휴일마다 관광객 몰려 북새통/가정집 마당엔 눈치우기 좋도록 널빤지 깔아/목재 건물 짓는데 쐐기 이용… 목 박지 않은게 특징 브라츠크시내에서 약 20㎞ 앙가라강변으로 가면 「루코모리예」라는 민속마을이 나온다.가족단위 공원인 이곳은 휴일마다 이웃마을 주민·관광객으로 붐빈다.루코모리예는 1917년 러시아혁명전 앙가라강 주변마을을 최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곳의 마을이름이다. 그러나 이 「복원」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그것은 레닌에 의한 지난 70여년간의 러시아혁명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평온하던 「옛과거」를 다시찾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마을사람들의 이같은 의견이 담겨진 흔적은 루코모리예 어디서나 발견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소정의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다.승용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진입로를 따라 2백여m 들어가면 지상최대의 앙가라저수지를 배경으로 19∼20세기 초기때의 혁명전 마을이 나타난다. ○유람선 타려고 장사진 마을 한 귀퉁이에선 2∼3층의 오래된 목조주택을 뒤로 하고 이곳을 찾은 부녀자들이 러시아 민속춤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러시안풍의 아코디언반주를 들은 한 관광객이 춤추는 부녀자들에 합세한다.세계의 여느 관광지처럼 장사꾼의 호객행위도 만만치 않다.강가에는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이 수십m씩 줄을 서고 있었다.구경나온 마을사람들의 손에는 이름 모를 시베리안꽃이 한아름씩 안겨져 있었다. 루코모리예의 한 여성안내원이 취재팀을 발견하고 따라붙어주었다.그녀를 따라 대지가 1백50평쯤 되어 보이는 앙가라의 전통가옥에 들어섰다.27명의 대식구가 살던 집이다.안내원인 칼리나 미하일로브나 쉬텔리예씨(51·여)는 『차르시대에 아들이 장가가면 부모와 함께 살았다』면서 『이는 세금(주민세)을 적게 무는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말했다. 방은 4∼5개가 보통이었는데 늙은 부모는 부엌방에서,젊은 부부는 2층 창가방에서,어린 자녀는 페치카 옆방에서 각각 잠을 잔다고 그녀는 설명했다.19세기에 지은 집의 창은 대개 가로 30㎝,세로 40㎝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유리가 귀했기 때문인 것으로 그녀는 설명했다. 마당은 모두 앙가라주변에서 나는 사스나(소나무)를 이용,널빤지형태로 잘라 깔아놓았다.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나무를 깔아놓으면 눈을 치우기에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앙가라 루코모리예마을에 사는 사람은 당시 3계급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한다.관리나 성직자가 제1계급이었고 제2계급은 농·공·상인,제3계급은 일반하층민이었다.1·2계급은 자신들의 집안마당에 널빤지를 까는 것을 허용했지만 3계급등 하층민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를 끈다.하층민은 또 가족수가 적었으며 딸의 수가 유독 많았다고 한다. ○지붕밑 건초창고 이색적 편의상 당시 주민은 집에 창고가 많으면 「부자」로,창고가 적으면 「빈자」로 취급을 해왔다고 한다.특이한 것은 시베리아지역에는 서양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지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이는 시베리아땅이 넓어 누구든지 울타리를 친 뒤 집을 짓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당시 노예계급도 19세기 다른 서양의 노예와는 다르다는 것이 미하일로브나씨의 설명이었다. 목재구조물을 서로 잇는 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앙가라주택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모두 나무뿌리를 잘 깎은 쐐기를 이용해 지탱하는 식으로 지은 것이다.앙가라강 주변주택에만 사용된 독특한 양식도 돋보인다.삼각형태의 지붕 밑의 공간을 건초창고로 이용하는 것이 그것이다.여름에 거둬들인 풀을 이곳에 보관,사시사철 말리는 장소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현관에 있는 가죽신발도 시선을 끈다.겨울철 영하 30∼50도안팎을 기록하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는 곳이 앙가라강유역이다.이런 추위 때문에 18∼19세기 발전한 유럽 북부지역의 시람이 나무껍질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있었을 때 이곳 사람은 이미 짐승가죽으로 각종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가죽신발이 가능했던 것은 집집마다 재봉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거실쪽에는 옷감짜는 기계가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 당시 주민은 침대와 베개시트·커튼등을 직접 짜 사용하고 있었다. ○15세기 옛 성곽 잘 보존 혁명전 교회(러시아정교)도 복원시켜놓았다.1873년부터 2년동안 목재로 지은 이 교회는 공중에서 보면 +자형태를 띠고 있다.원래 이 교회는 레나강이 흐르는 키렌스크시에서 30㎞ 떨어진 곳에 있던 교회였는데 지난 89년 『앙가라양식을 띤 현존하는 최고의 교회』라며 「통째로」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1631년 러시아 로마노프가 두번째 왕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피르소프가 세워놓은 성곽도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다.이 성곽의 건설은 당시 동방으로 세를 넓히던 카자흐군이 예니세이강을 따라 북상하는 도중 예벤키족을 만났을 때로 거슬러올라간다.당시 카자흐군은 예벤키족으로부터 『앙가라강에 가면 부자가 많다』는 말을 듣고 북쪽으로 진출하다 다시 남하,앙가라강으로 진출하고 있었다.바로 이들을 막기 위해 세운 성곽이라는 것이다. 성곽의 주춧돌에는 준공일이 7162년5월14일로 적혀 있었다.이 연도는 이 지역에서 쓰던 독특한 것으로 지금부터 4천5백여년 전이라고 이곳 향토사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피르소트가 성곽를 세우기 훨씬 이전에 이미 성터가 있었다는 얘기다.성곽주위에는 4개의 탑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1개의 탑건물은 죄수를 수용하던 곳이었다.탑건물은 연통 없이 모두 중앙에서 나무를 때는 페치카가 있었으며 죄수를 수용하는 곳에는 물론 난방이 없었다.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목재사업가 세르게이 줄로마노프(39)는 『혁명전 마을인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르게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라며 루코모리예에서의 즐거움을 털어놓았다.
  • 능산리 사리감/창왕의 누이가 바친듯

    ◎부왕 명복 빌어… 백제 절 축조연대 처음 밝혀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지난 93년말 금동용봉봉래산향로라는 세기적 보물이 나온데 이어 백제시대의 절 가운데 처음으로 축조연대를 밝혀주는 화강석 사리감이 발견돼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리감은 능산리지역을 발굴중인 국립 부여박물관에 의해 출토됐다.사리감은 탑의 가운데 기둥을 받쳤던 주춧돌을 깊이 74㎝,세로와 가로 각각 50㎝씩을 파서 만들었고 감실 양쪽에는 「백제창왕십삼계태세재」와 「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라는 글씨 20자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새겨져 있다.이 글씨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에 보이는 글씨체와 흡사해 더욱 주목을 끌었다. 이 새김글씨는 능산리에 있던 절을 누가 언제 지어 사리를 봉안했는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위덕왕으로도 불린 창왕 재위13년 정해년에 형이라는 이름의 공주가 사리를 바친 것으로 돼있다.여기 「형」은 오늘날의 「형」의 고어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역사연표에는 창왕 13년은 서기 566년이고 정해년은 서기 567년이어서 1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창왕은 신라군과 오늘날 충북 옥천땅인 관성에서 싸우다 전사한 성왕의 아들.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절터는 창왕의 누이가 비명에 간 부왕(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새김글씨가 들어간 탑의 가운데 기둥 주춧돌은 1m깊이의 흙 아래서 기울어진 상태로 출토되었다.이같은 파괴를 겪는 과정에서 사리를 담았던 사리구는 없어져 찾지 못했다.그러나 탑 가운데 기둥에 사리감을 별도로 만든 경우는 동아시아 어느지역에서도 지금까지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출토된 다른 5백95점의 유물과 함께 백제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 성철스님 열반 2주기/해인사서 대규모 추모법회

    ◎문도회 주최로 새달 5일부터 1주일간/사리탑·기념관 추진… 학술상도 제정 불교 신도들에게 큰 깨달음을 남긴 성철스님의 열반 2주기를 맞아 회향법회와 추모제가 열린다.성철스님 문도회(회장 법전스님)는 스님이 입적한 음력 9월 21일에 해당하는 오는 11월12일 성철스님의 영정을 모신 해인사 백련암의 고심원에서 열반 2주기 회향법회를 갖고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제를 연다. 5일부터 11일까지 1주일간 열리는 「성철대선사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는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적 깨달음으로 만드는 수행의 자리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의 사리를 보관할 사리탑 건립도 추진된다.재일동포 미술가인 최재은씨를 사리탑 설계자로,주남철 교수(고려대),정영호 교수(교원대),홍원식 교수(동국대),김동현 문화재연구소 보존실장 등을 지도위원으로 위촉,현대적인 사리탑을 세울 계획이다.사리탑은 해인사 일주문에서 1백m 떨어진 동쪽 산기슭에 조성할 계획이며 내년 4월 착공,98년 11월 완공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성철스님 불교학술상 및 논문상을 제정,올해중으로 모집 공고하며 성철스님 제자들이 운영하는 사찰과 포교당을 중심으로 올바른 참선법 보급을 위한 선방 개설과 함께 「남모르게 남을 돕자」는 스님의 뜻을 받들어 이웃돕기 자비운동도 펼칠 계획이다. 또 불교서적중 가장 어려운 선서의 대중화를 위한 보급활동과 불전 원전의 연구자 및 번역자 양성등 역경사업도 집중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성철 스님의 영각 고심원은 스님이 남긴 5천여권의 서적과 유품을 모아 기념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20여년동안 성철스님을 모셔온 원택스님은 『성철스님이 참선에만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이웃의 불행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면서 『큰 스님의 뜻을 신도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것이 문도들의 도리』라고 말했다. 참회법회는 『나를 만나려면 1천배를 먼저 하라』는 스님의 생전 가르침에 따라 1주일간 1천배를 올린다.「참여 희망자는 해인사 백련암 (0599)32­7399,해인사 청량사 (0599)32­7987,서울 정안정사 (02)523­8088,서울 연등국제불교회관 (02)735­53 47,부산 해인선원 (051)628­7200,부산 해월정사 (051)742­4762,대구 정혜사 (053)624­9852,마산 정인사 (0551)56­5450,하남시 정심사(0347)791­7732.
  • “한­가 협력관계 국제사회 모범”­김대통령/김대통령 여로·오타와

    ◎만찬장에 가 유력인사 3백명 참석 성황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20일 상오(한국시간 20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수도 오타와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확대정상회담 및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등 양국의 협력관계를 다졌다. ▷한·캐나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20일 상오 오타와의 국회의사당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1시간여에 걸쳐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의 「특별동반자관계」를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숙소인 총독관저를 출발,10여분만에 의사당 평화의 탑 입구에 도착해 의사당 중앙홀에서 크레티앵총리의 소개로 영접나온 상·하원 의장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상원 및 하원 귀빈방명록에 차례로 서명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크레티앵총리의 안내로 의사당 3층에 있는 총리집무실로 이동해 유종하 외교안보수석과 신기복 주캐나다 대사만을 배석시킨 뒤 바틀먼 총리외교국방보좌관,페로 주한대사를 배석시킨 크레티앵총리와 20여분간에 걸친 단독정상회담에 돌입했다. 두 정상은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며 지난해 11월 보고르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만난 이후의 안부를 물으며 한국과 캐나다의 가을날씨등을 화제로 잠시 환담했다. ▷전쟁기념비 헌화◁ ○…정상회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20일 상오 공식수행원 전원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쪽 연방광장 중앙에 위치한 전쟁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전몰장병의 넋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레더먼의전장의 안내로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속에 사열대에 등단,1분동안 1·2차대전및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고 이어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헌화하고 다시 묵념했다.이어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나눈뒤 방명록에 서명했다. ▷손여사 아동병원 방문◁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20일 상오 오타와 시내 스미스 로드에 있는 아동종합병원을 방문,18세이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진료현황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에 앞서 손여사는 변성옥 주캐나다대사부인등 대사관 직원 부인들을 접견한데 이어 다이애나 폴러 총독부인과 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했다. ▷총리주최 공식만찬◁ ○…김대통령은 19일 저녁 오타와 문명박물관 그랜드홀에서 열린 크레티앵총리 주최 공식만찬에 참석해 한국과 캐나다간 협력증진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부인 손여사와 함께 레더먼 캐나다의전장의 안내로 숙소인 총독관저를 출발해 문명박물관에 도착,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크레티앵총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했다. 김대통령내외는 크레티앵총리와 함께 박물관 2층 캐나다홀을 20분간 둘러본 뒤 크레티앵총리의 안내로 만찬장인 그랜드홀로 자리를 옮겨 2시간10여분동안 만찬을 함께 하며 우의를 교환했다. 이날 만찬에는 캐나다 각계 유력인사 3백여명이 참석했으며 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크레티앵총리는 환영사에서 『2년전 시애틀에서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를 선포한 이후 올해 상반기 교역량이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증가하는등 양국관계가 확대일로에 있다』면서 『이번 김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기업간 새로운 합작사업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두나라가 국제사회에서도 모범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21세기 희망찬 아태시대를 함께 열어나가자』며 건배를 제의했다.
  • 직지사 고려때 규모의 90% 복원

    ◎30년 중창불사 마무리… 19일 기념 법회/2만6천평에 전각·전우 등 65채 신개축 신라 불교의 요람으로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 조계종 제8 교구본사 직지사(주지 녹원 스님)가 30년에 걸친 대중창 불사를 마무리짓고 새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김천시 황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자장,고려의 능려,조선의 사명대사등이 머무르면서 한국불교의 지도자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 고려시대 절정기를 맞은 직지사는 선조 29년인 1596년 임진왜란때 43동의 건물중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된뒤 1602년부터 70년에 걸쳐 절을 중건했다. 1681년의 사적기에 따르면 당시의 규모가 8전,3각,12당,3장,4문에 정실만 3백52칸이며 부속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1805년 사세가 기울기 시작 쇄락을 거듭해 경내는 줄어들고 건물은 허물어져 건물 4∼5개의 작은 사찰이 되었다. 지난 58년 녹원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직지사 대중창불사의 계획을 세우고 지난 30년간 대지 1만평,전답 1만2천6백평,임야 3천7백평을 매입하고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60여개의 건물을 지어 「동국제1가람」이라는 옛모습을 되찾았다. 지난 65년부터 시작된 중창불사는 국제불교회관으로 사용될 만덕전등 전각과 전우 34동을 신축하고 31동을 개축해서 모두 65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직지사 관계자들은 『사적비 기록을 토대로 30년간 진행된 중창 불사로 고려시대의 웅장한 사찰 모습의 90%를 복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지사는 오는 10월 19일 만덕전 앞 마당에서 30년의 중창 불사를 마무리짓는 법회를 봉행한다. 이날 법회에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중국,일본,스리랑카에서 불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중창불사의 경축행사는 사진전이 19일까지 열리며 15일부터 19일까지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만등탑 불사가 행해진다. 등탑은 황룡사 9층탑의 모형으로 만들어지며 1만1천개의 등을 장식하는 행사로 신도들의 신청을 받고있다. 15일 하오 3시 잔디광장에서는 정수라,박영미등 인기가수가 참가하는 「산사의 환경음악회」가 열려 환경보호창립대회를겸한다. 17일 하오 1시에는 직지사및 교구말사가 보유한 중요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 박물관이 개관되며 하오 2시 설법전에서는 신라 불교를 조망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행사 이모저모

    ◎「권력승계」 어떤 징후도 없었다/“충성” 구호만 요란… 새 노선 천명 없어/식량난·수해 불구 군중 1백만 동원 북한이 김일성 사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노동당 창당기념식을 가졌다.북한당국이 중시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인 50주년이기 때문이었다. 북한당국은 1년전부터 초대형 기념탑건설에 착공하는등 이번 행사에 대비해왔다.수주 전부터는 각종 학술·문화·체육행사를 통해 김일성부자의 우상화에 열을 올리는등 북한전역에 걸쳐 떠들썩한 경축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또 하나의 「소문난 잔치」에 그친 인상이었다.국외자의 관심의 초점이던 권력승계와 관련한 「의식」도,대내외적으로 김일성 「이후」시대를 알릴 만한 새로운 노선의 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식량난과 수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온 북한주민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청사진제시도 없었다.각종 행사에서 김정일에 대한 맹목적 충성다짐등 요란한 수사는 난무했으나 북한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제시가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이번당창건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김정일을 비롯한 당고위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와 1백만명이 동원된 군중집회.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서 주석단에 나온 김정일이 신임 인민무력부장인 최광의 보고를 받고 전체 열병부대에게 손으로 답례를 보낼 때 이번 행사가 절정에 이른 느낌이었다. 김정일은 이에 앞서 전날 당창건 50주년 기념에 맞춰 완공한 평양의 청류다리 및 금릉2동굴 개통식에도 참석했다.하지만 이날 열병식행사와 전날 개통식행사에서 그에 대한 호칭은 모두 국방위원장겸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의 당총비서와 국가주석등 최고위직 공식승계가 일단 당창건기념일 이후로 이월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김의 권력승계 공식화가 가시화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권력장악실패설을 거론하는 전문가는 정부내에서도 여전히 소수다.김이 김일성 생전에 그의 비호하에 20여년이상 후계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철저한 「가지치기」를 해왔기 때문에 아직 다른 대안이 나타날 수 없는 분위기라는 지적인 셈이다. 10일 북한은 당기관지 「노동신문」,군기관지 「조선인민군」,사로청기관지 「노동청년」등 3개 매체 공동사설을 통해 김일성이 업적을 계승해나갈 유일한 후계자가 김정일이라고 강조,이를 뒷받침했다.
  • 속도 기존칩의 10배 새 컴퓨터칩 개발/미국 마이크로 유니티사

    미국의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로유니티 시스템스 엔지리어링사는 기존의 마이크로프로세서보다 정보처리 속도가 10배 빠른 새로운 컴퓨터칩을 개발했다고 뉴욕 타임스지가 10일 보도했다. 미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위치한 이 회사는 새로 개발한 이 칩의 경우 1천50만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돼 있으며 데이터를 1기가헤르츠의 속도로 처리,초당 10억개의 연산작동이 가능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현재 개인용 컴퓨터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초당 1억개의 병렬연산이 가능하다. 이 회사는 또 일반 데스크 탑 컴퓨터가 한꺼번에 32비트 명령을 1회내지 2회정도밖에 처리하지 못하는데 비해 자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백28비트짜리 명령 4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마이크로유니티사가 이날 새너제이에서 개최되는 컴퓨터 디자인 회의인 「마이크로프로세서 포럼」에서 이 칩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 야심적인 칩이 앞으로 케이블 모뎀에서부터 슈퍼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 롯데그룹 신회장 남매 산업훈장 함께 받아

    ◎관광분야 공로로 금탑·동탑 “영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73)과 여동생(10남매 중 막내)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49)남매가 각각 관광분야에서 나란히 정부훈장을 받게돼 화제가 되고 있다. 남매가 동시에 산업훈장을 받는 것은 정부 수립이후 처음있는 일로 앞으로도 깨기 어려운 기록(?)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더욱이 신사장의 부군인 김기병(주)롯데관광 회장도 지난 84년 관광분야에서 동탑산업훈장을 수상,부부는 물론 처남과 매부가 관광분야에서 산업훈장을 받는 진기록을 연출. 신회장은 2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제22회 관광진흥촉진대회에서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다.기업인이 관광분야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는 신회장이 처음이다.신사장도 여성 최초로 관광분야에서 외화획득에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를 차지했다. 호텔 롯데도 3억불탑을 수상한다.
  • 광주 비엔날레가 펼친 의의와 과제

    ◎세계 미술계에 한국 존재 새롭게 각인/신선한 구성미… 국제무대진출 발판/작품 마구잡이 진열·소개부족 아쉬움 광주 비엔날레의 탄생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속에 크게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나 독일의 카셀도큐멘타,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는 물론 제3세계인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이 오늘 날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가며 중심부에 자리잡았듯이 세계 미술계에 한국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킬 수 있는 큰 계기를 광주비엔날레가 마련한 것이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국제 미술 시장에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경향에 맞물려 세계 미술제 주최국으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달라지면서 한국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또 신생 비엔날레답게 구성면에서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우선 작가들의 연령이 평균 37세로 젊고 세계 미술계에서 소외돼온 남미,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시아등 제3세계 작가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대상수상작가가 25세의 쿠바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복잡다단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예술이념을 제시하기위한 것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경계를 넘어」도 세기말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감성과 예술형식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 미술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진정한 미술행사로서 비엔날레를 과연 얼마만큼 잘 관리 운영하고 지켜나가느냐에 있다. 본 전시와 관련된 여러 부분에서 전문적인 실수가 드러날 경우 국제 비엔날레의 권위는 서기 힘들다. 이번 비엔날레의 도록 내용은 오자와 허점투성이인데다 전시장의 작품도 지역적 구분등 특별한 배려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진열됐다.작품에 대한 기본적 소개가 부족해 난해한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졸속추진에 따른 이같은 실수들이 다음에는 기필코 개선돼야 한다. 첫 해인만큼 출품작들의 수준을 까다롭게 가늠할 것은 아니나 앞으로 출품작가를 선정하는 커미셔너의 안목과 권위가 크게 뒷받침돼야 비엔날레가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국내미술인들의 관심과 후원이 지속적으로 따라야한다.현실적으로 미술계의 모든 흐름이 서울에 치우쳐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자칫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때문이다. ◎개막 이틀째 이모저모/북 작품전시장 아침부터 “장사진”/「작품설명 헤드폰」 제대로 작동안돼 불만 ○…광주 비엔날레 개막 이틀째인 21일 상오 비엔날레 행사장인 중외공원으로 향하는 시내 도로에는 비엔날레 홍보 아치탑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심한 교통체증을 유발.이날 사고는 광주 비엔날레 개최를 알리는 대형 아치탑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가는 4차선을 막아버린 것으로 무너진 아치탑이 철거될 때까지 행사장으로 가던 관람객과 출근 시민들이 꼼짝없이 3시간가량 갇힌채 불편을 겪었다. ○…중외공원내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2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는 20일 개막식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대부분 철수해 썰렁한 분위기.프레스센터에 파견된 비엔날레 자원봉사자들은 『개막 3일전부터 내외신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느라 북새통을 이루던 것과는 퍽 대조적』이라면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는데 왜 프레스센터가 이처럼 텅비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 ○…비엔날레 조직위는 본 전시장인 중외공원내 신축전시관 1층 로비에 전시작가와 작품을 설명해주는 수신 헤드폰 5백개를 마련해 관람객들에게 2천원씩에 대여하고 있으나 헤드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관람객들이 불만.관람객들은 각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작동하도록 돼있는 이 헤드폰이 일부 전시공간에선 설명이 끊겨 안타까울때가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특히 이 헤드폰은 당초 우리말과 영어로 입력되도록 계획했으나 영어입력이 안돼 외국인 관람객들에겐 무용지물. ○…중외공원 북한관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 미술품 전시회에는 동양화와 도자기,금속공예품 등 북한작가 96명의 작품 1백40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번 전시가 국내 공식행사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는 북한전인 만큼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반영.이중 북한의 천재 소녀화가로 알려진 오은별양(15)의 작품 7점가운데 수묵화인 「기러기」(540×90),「참대는 곧고 바르다」는 큰 화폭에 담긴 장중한 느낌 등으로 북한 미술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엔날레란/「2년마다 개최」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1895년부터 「2년주기 국제미술행사」 통용 「비엔날레(biennale)는 「2년마다 열리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 용어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적 미술행사」라는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1895년 베니스 비엔날레부터이다.그후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이 열리고있으며 미술이외에 영화 음악 무용등을 포함하는 종합축제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triennale)로는 인도 트리엔날레가 있다.
  • 「국제 현대 미술전」에 관람객 “만원”/광주비엔날레 개막하던 날

    ◎아마추어 사진작가 몰려 국제행사 실감/입장객 직접 참여하는 천인탑 제작 시작 ○동백나무 기념 식수 ○…20일 상오11시부터 중외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개막식은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야외공연장 뒤쪽 팔각정까지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송언종광주시장의 대회사와 주돈식문화체육부장관의 축사에 이어 비엔날레 수상작이 발표되자 수상자들을 큰 박수로 축하. 개막식 후 주장관과 송시장등 내빈들은 광주비엔날레 신축전시관 전시실 정문에서 개관식을 갖고 이봉우 전시기획실장의 안내로 20여분에 걸쳐 전시관을 둘러본 뒤 전시관 1층 현관 옆에 동백나무 한그루를 기념식수. ○…전시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자마자 신축전시관 정문은 입장객들로 장사진을 형성.내빈들의 테이프커팅이 끝나면서 동시에 전시실로 들어가려는 입장객들로 전시장 입구가 한때 북새통을 이루었으나 운영요원들의 안내로 곧 정돈. ○…이날 중외공원 야외공연장과 문예회관 대극장을 비롯한 광주시내에서는 하루종일 경축공연이 이어져 비엔날레 관람객과 광주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도. 중외공원 야외공연장에서는 개막식이 끝난 뒤 서울가무예술단,남사당패,시립국극단,현대무용단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하공연이 생방송되는 가운데 1시간동안 진행됐고 이어 유명 연예인,인도민속단들이 하오9시까지 공연. ○개막 경축공연 열기 가득 ○…이날 하오7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퍼포먼스는 광주비엔날레의 전위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축공연.황병기씨의 가야금 연주로 시작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피아노앞에 앉으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백씨는 무대 후면에 설치된 스크린 앞의 피아노에 앉아 직접 연주를 하면서 비디오 카메라를 작동,자신의 머리카락과 이빨 턱수염 등 얼굴 부분을 확대해 비추면서 독특한 영상이미지를 창출. 백씨는 자신의 공연에 이어 바이올린 음악연주와 인간 삶의 이미지를 기묘하게 조화한 아이슬란드 출신 비디오 아티스트 스타이너 바쉴카스를 소개.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리투아니아 초대 대통령 란스베르기스는 자신의 「민주투사」경력을 살려 암울했던 시절의 리투아니아 포크송 「당신은 나의 숲 변주」 등 심금을 울리는 피아노 연주와 관객들과의 대화로 개막축하 공연의 대미를 박수로 장식. ○…개막일인 이 날 중외공원에는 시상식과 개막식에 참여하는 국내외 예술인과 시민 등 수천여명이 몰리고 시립민속박물관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북새통을 이뤄 이번 행사가 국제 축제임을 실감케 했다. ○…관람객이 직접 만드는 「비엔날레 천인탑」도 개막식과 함께 제작이 시작됐다.전시관 입구에 마련된 천인탑은 높이 11m에 한 변의 길이가 2·5m인 피라미드식 탑 2개를 세우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무등산 모형을 얹어 놓은 모습. 관람객들이 원하는 그림이나 글씨를 새긴 가로·세로 각 21㎝ 크기의 네모 흙판 1천4백장을 피라미드 표면에 모두 붙이면 완성된다. ◎입장료 얼마나 되나/하루 관람료 어른 7천원·어린이 3천원 광주비엔날레의 본전시와 6개 특별전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입장료는 어른 7천원,청소년 5천원,어린이 3천원이다. 그러나 30인 이상 단체입장권은 각 5천원,3천원,2천원으로 할인된다.토요일과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할인이 되지 않는다. 행사기간 내내 볼 수 있는 입장권은 어른 4만원,청소년 3만원,어린이 2만원이다. 입장권은 매일 개관(상오 9시) 30분 전부터 폐관(하오 6시) 1시간 전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정문·시립민속박물관 앞 굴다리·중외공원 정문과 후문·무지개다리 앞 등에서 판다.
  • 강만수 재경원 세제실장(폴리시 메이커)

    ◎“당정 불협화는 내 순진함 때문”/「종합과세 회피 금융상품」 예상 못해 조세정책의 실무 사령탑인 강만수 재정경제원 세제실장은 재경원 내에서 「강고집」으로 불리고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방향을 정하고 나면 대담한 추진력으로 목표를 달성해 내고만다.그만큼 뚝심도 있다.그의 이런 기질과 뚝심은 당정협의에서 채권 등의 유가증권에 대한 예외없는 종합과세 원칙을 얻어낸 원동력이었다. 그는 만기 전 중도 매각하는 채권 등도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방침을 정한 데 대해 『금융기관들이 절세형 금융상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금융기관들이 「만기 전 채권을 팔 경우 종합과세가 되지 않는 점」을 악용,만기 전에 되사는 것을 조건으로 판 상품의 규모는 1조2천억원어치에 달한다. 그는 『금융기관에서 자기가 발행한 채권 등을 고객으로부터 만기 전 되사주는 것은 법 이론상 매매가 아닌 채무의 조기상환으로 봐야 한다』며 『따라서 금융기관의 이런 행위는 외형적으로는 적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탈법으로 보아야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채권 등에 대한 종합과세 원칙을 고수한 것을 결코 강경책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를 거부한다.조세체계의 이론상 합리적인 기준을 충실히 좇았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2·13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고위 당정협의에서도 그의 이런 논리가 당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 진 것으로 전해진다.다만 당과 사전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목이 당의 비위를 건드린 주 원인이 됐다. 재경원의 의도대로 예외없는 종합과세 원칙을 고수해 내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그는 일련의 당정 불협화가 자신의 「순진함」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애초 채권 종합과세 문제는 채권의 만기 때 최종 소지자에게 이자 소득세를 부과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었다.채권 소지자가 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만기전에 팔더라도 만기 전 매각 때 「종합과세 회피」가 감안된 과세락 가격이 형성됨으로써,시장기능만 제대로 가동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절세형 상품을 경쟁적으로 판매하리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순진한」생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강실장은 『입법예고를 하기 전 모든 경우의 수를 가상해 충분한 검토를 거쳤어야 했으나,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그렇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경남고와 서울법대 출신으로 행시 8회.경남고 재학시 한 때 소설가의 꿈을 키웠을 정도로 글도 잘 쓴다.
  • 힐러리와 크리스토(송정숙 칼럼)

    최근 한 외신란에서 읽은 기사. 「옛 독일제국 의사당을 포장하는 데 썼던 천과 끈의 재활용을 맡은 독일회사는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국대통령 부인으로부터 『기념으로 천 한조각을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공개했다.독일주재 미국대사는 힐러리의 부탁으로 지난 6월말과 7월초에 걸쳐 독일의회 건물을 포장하는 데 썼던 총 10만㎡의 천 가운데 한조각을 기념품으로 떼어달라고 요청했는 데 회사측이 『완벽한 재활용이라는 환경운동가들과의 약속 때문에 거부했다』고 대답했다. 이 기사만으로는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될 것이다.의사당을 「포장」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그 포장천이 무슨 「기념」이 된다고 미국의 대통령부인쯤되는 사람이 싱겁게시리 그걸 달랐는지,또 미국의 대통령부인쯤되는 사람이 그렇게 원하는 데 그 체면이나 우의를 생각해서 한조각쯤 떼 주지 거절한 건 또 무슨 무례함인지. 그러나 실은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장」한 것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크리스토가 벌인 예술작업이었다.그는 뭐든지 「뒤집어씌우기」를 예술행위로 한다.언젠가는 일본의 작은 섬을 덮어씌웠고,파리의 퐁뇌프다리를 천으로 뒤집어씌운 적도 있었다.대상이 정해지면 대대적인 역사를 벌여 짐보따리처럼 싸는 독특한 설치미술이다.그 크리스토가 이번에는 베를린에 있는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장」한 것이다.불가리아 출신이기는 하지만 미국예술가인 그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의 포장천을,그가 속한 미국의 대통령부인이 기념삼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도 아닌 포장천의 한조각을 얻고 싶다는 것은 너무 영세한 욕심이며 게다가 거절까지 당한 것은 대통령부인의 체면이 좀 깎인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한토막의 외신이 주는 정보로는 이런 궁굼증이 풀리지 않는다.그런무렵 크리스토의 「뒤집어 씌우는 예술」현장을 다녀온 ㄹ씨의 글(월간 춤 8월호)을 만났다. 10만㎡의 늘어진 은빛 직물과 1만5천6백m의 하늘빛 밧줄 그리고 정면탑과 지붕을 싸는 데에 70군데 맞춤집에서 만든 직물패널을 써서 전문 등산가 90명에 1백20명의 설치가들 그리고1천2백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이「포장」은 가능했다고 한다.그 포장된 독일 의사당이 어찌나 웅장하고 「굉장한지」는 현장에 가서야 느낄 수 있었고 환경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토가 보인 이런 설치미술은 이미 세계각국에 애호가를 두고 있어서 세계에서 몰려온 관람객들로 온 베를린은 흥분에 싸였었다는 것이다. 보름동안 그 자리에 놓아두었던 이 포장된 의사당에 든 비용은 1천1백50만마르크,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69억원이다.크리스토는 그걸 모든 스폰서를 거절하고 자기그림과 판화 부조조각 포스터등의 판매액으로 충당했다고 한다.그「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 수십만의 관객이 모여든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ㄹ씨를 만난 자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기념으로 포장했던 천 한조각을 얻고자 했다가 거절당한」의문도 풀 수 있었다.ㄹ씨는 득의만면한채 『나는 그천을 한조각 얻었다』고 말문을 열었다.전시중의 어느 한날을 택해 그 포장천을 관람객들에게 한조각씩 나눠주는 것이 그의 설치미술 프로그램이다.마침 「그날」 관람할 수 있었던 ㄹ씨는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들어가 미국대통령 부인도 못얻는 「한조각」을 얻어낸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에게 천조각 한점씩을 나눠주는 것도 「예술행위」에 포함된 셈이다.그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힐러리 클린턴이 천을 기념삼겠다고 한 것은 그의 「예술행위」에 어긋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환경을 위해 완전무결하게 재생한다는 약속』은 포장처리회사와 작가가 맺은 그 또한 예술행위의 연장이므로 당연히 안될 수 밖에. 그런데 힐러리 클린턴이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그런데도 『달랐다가 거절당하는』구차한 일을 왜 했을까.미국 설치미술가의 환경미술 작업에 퍼스트레이디가 관심을 보인 것,그것이 힐러리부인이 노린 것은 아닐까.그렇다면 대통령부인다운 생각이다.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는 각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며 거물정치인,그 직계들,여성운동의 대모들이 많이 몰려왔다.옛날과 다른 것은 이들 누구의 부인이거나 누구의 딸이라는 자격으로 온 여성들까지가 모두 맹렬하게 자기 역할을 해낸 점이라고 한다.분홍색 한복이 아름다워 칭찬을 많이 받은 우리 퍼스트레이디 손명순여사도 연설은 물론 여성으로 문맹퇴치에 공이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이 출연하여 만든 유네스코의 「세종대왕상」을 시상하고 강택민중국 주석과 회담도 가졌다.여성들이 모여 단순히 운동열기를 분출시킨 것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진지하고 폭넓게 확인한 기회였다고 하겠다. 누구라도,기회있는 대로,전폭적으로,자기 역할을 하는 시대.그것이 오늘의 인류가 갖는 소임인 것이다.
  • 유형의 수도 이르쿠츠크(시베리아 대탐방:34)

    ◎왕정반란 「12월 당원」들의 마지막 안식처/유형 온 주모자가 살았던 주택을 박물관으로/앙카라 강변엔 17세기 「시베리아 정복탑」 우뚝 이르쿠츠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은 앙가라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 정복탑이다.총독청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오벨리스크다.동진하던 러시아 정복자들은 17세기말 이곳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잠시 정복의 발길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이곳에 높이 10여m의 대형 정복탑을 세워 그동안의 공적을 자축했다.정복의 상징인 대형 쌍독수리 문양 아래 모라비요프·아무르스키·스페란스키 등 정복자들의 이름이 쓰여져있고 「시베리아 정복자들에게 영광있기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철도 개통… 도시 부흥 이르쿠츠크는 1686년 정식 도시가 된 뒤 성장을 거듭,1764년에는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다.그러나 도시발전의 진짜 전기는 1898년 시베리아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찾아왔다.따라서 3년 뒤면 동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지 1백주년이 된다.당시 이곳은 주도 였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철도업무를 이곳에서 관장했다.관공서 거리였던 칼 마르크스거리에는 당시 이르쿠츠크·부리야티·치타주의 철도를 총괄하는 동시베리아 철도청이 있었다.4층짜리 대형 대리석건물인데 혁명 전 세워진 건물원형에다 혁명 뒤 소비에트식 건물장식을 곳곳에 덧붙이고 역시 혁명성이 강한 대리석 조각까지 건물상단 곳곳에 만들어 붙여서 연대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돼버렸다.시베리아 곳곳에 이런 식으로 옛건물에 사회주의 장식을 덧붙여 건물의 원형을 훼손시킨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혁명 전 러시아 유형의 수도였다.특히 1825년 왕정에 반대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주모자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유형 와 생을 마쳤다.사회주의 시절 볼셰비키들은 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추앙했다.그래서 이곳은 혁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이 유형 와 거처했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성역화해 놓은 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 구경꾼들 몰려 제르진스키거리에있는 「돔 무제 데카브리스트」는 1826년부터 30여년간 12월당 혁명주모자들 수명이 유형생활을 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대표적인 명소다.12월당 혁명은 1825년 알렉산더 1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할 즈음에 일어났다.당시 군대내에 왕정폐지를 주장하던 비밀결사조직인 12월당원 5백여명이 「새 차르즉위 반대,공화정 수립 지지」를 내걸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나드광장에서 무력저항을 시작한 것이다.25년 12월14일 하오3시 직후였다.물론 이 저항은 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분쇄됐고 이후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주모자급 1백28명이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이들은 중죄인으로 유형지에서도 모두 죽을 때까지 카타르가(쇠족쇄)를 차고 살아야했다.박물관 자료에는 당시 12월당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북 소사이어티」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남 소사이어티」등으로 나뉘어 이미 광범위한 비밀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박물관,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입구에는 반드시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맞는 불청객들이 있다.바로 구걸꾼들.입구의 좌우로 10여명씩 늘어서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자비를 구하는 데 도저히 그냥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이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이르쿠츠크는 폴란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제정 러시아시절부터 러시아에 이주해온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 같은 곳이고 폴란드인들의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시베리아 폴란드인들도 유형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나폴레옹시대가 지난 1861년 당시 바르샤바가 있는 동폴란드는 러시아영토였다.1861년부터 63년까지 폴란드인들은 거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이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만여명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왔다.이들의 주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였고 그들의 친척·후손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모여살게 된 것이다. 주청사 바로옆 「폴란드혁명거리」에 위치한 폴란드성당인 「성모 무염시태(무염시태)성당」도 1884년 이들이 세운 것이다.소련시절 교회가 폐쇄된 채 국유화돼 시립 파이프오르간 연주장 등으로 쓰이다 지난해말 건물 일부가 폴란드신도들에게 되돌려졌다.폴란드에서 파견돼온 베르다벳다라는 젊은 수녀는 현재 이르쿠츠크 오블라스치(주)에 약 3천여명의 폴란드인이 사는 데 매주 3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이곳 뿐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옴스크 등 시베리아 여러 곳에 폴란드성당이 있는 데 하나 같이 교회건물 반환문제를 놓고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폴란드 혁명거리로 모스크바에도 많은 폴란드인이 살고 폴란드 성당이 2곳 있는 데 이들은 시베리아 폴란드인들과는 또 다른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서부러시아는 과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당시 그곳에 살던 폴란드인 다수가 모스크바로 옮겨가 살았다.특히 폴란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모스크바의 각종 대학·인스티튜트(단과대학)등에서 공부했다.소련시절에는 모스크바 거주 폴란드인수가 10만명을 넘었다.모스크바의 가톨릭교회도 소련시절 국유화됐는 데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폴란드인들과 시정부가 맞붙어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모스크바 폴란드성당건물은 외양만 교회이지 시정부에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내부는 완전히 일반 사무실처럼 바뀌어 있다.러시아전역이 마찬가지지만 국유화된 교회는 이렇게 사무실로,창고로,때로는 감옥으로도 바뀌어 철저히 파괴됐다.모스크바의 폴란드성당은 몇개월 전 건물일부가 반환돼 폴란드인들과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외국인 가톨릭신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본다. 이르쿠츠크의 폴란드성당 멀지 않은 곳에는 주청사건물을 비롯한 정부청사들이 들어서있다.시베리아의 각 도시들이 마찬가지지만 주도에는 주청사·지방의회·지방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연방대통령 대리인의 집무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게 흥미롭다.93년말 새헌법 채택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들로 임명하는 지방관을 보내 주정부의 일을 감독·감시토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주민이 선거로 뽑은 주지사·시장과 이 대통령 대리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 「삼풍」 잔해 68일만에 철거/북쪽 승강기탑부터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의 상징으로 남아있던 건물잔해의 철거작업이 4일 시작됐다.5백여명의 목숨이 고스란히 생매장된지 68일만이다. 이날 상오 11시20분쯤 작업반장의 「타격개시」 지시와 함께 높이 70m의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1t무게의 원통형 강철추가 삼풍백화점 A동 북쪽 승강기탑의 옥상을 위에서 아래로 「쿵」「쿵」때리기 시작했다. 먼지를 막기 위해 소방호스에서 뿌려지는 물줄기사이로 탑 벽체에 간신히 붙어있던 대형 슬래브 상판들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어 콘크리트조각들이 하늘 위로 튀어올라 지하3층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사망·실종자가족들의 반대로 난항에 부딪혀 착공예정일로부터 무려 1개월을 끌어온 잔해철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시 종합건설본부와 서초구청이 감독하고 철거전문업체인 성도건설산업이 시공하는 철거작업은 무너진 A동 북쪽과 남쪽의 승강기탑에 대해 실시되며 1개월여가 소요될 전망이다.남은 B동은 나중에 삼풍측과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다.
  • 유럽국가/“약탈 미술품 돌려달라” 한 목소리

    ◎구텐베르크 성화 등 60만점… 5조원 상당/「붉은 군대」 약탈,러시아선 “전리품” 주장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이 물러나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50년.당시 약탈한 예술품을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예술품의 반환요구대상은 독일이 아닌 러시아다.붉은 군대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미술품들을 모스크바 등으로 가져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들은 종전 직후 원품 그대로 봉인된 채 기차로 고리키에 반입됐다가 지난 58년 모스크바 등으로 옮겼다.그 가운데 일부는 수송을 맡은 군인들이 빼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고스란히 운송됐다. 붉은 군대가 가져간 작품은 60만점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추정되고 있다.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20만점.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비롯해 명작들이 포함돼 있으며 시가로는 5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품은 유화 등 그림이 7백점,데생화 3천점이다.헝가리와 벨기에 등의 작품에다 프랑스 화가의 작품들도 상당수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미술품은 그림이 6백69점이고 3천점의 데생화에다 7백점의 청동상 등이다.이 가운데는 드가의 「춤추는 여인」,고갱의 「타페라 마하나」,드가의 「두사람과 집안」,반 고흐의 「흰집」,르누아르의 「빗질하는 여인」,마티스의 「무희」 등 명작도 섞여 있다. 이들 프랑스 작품들은 「오소비판(OS)」이라는 별도의 목록으로 보관돼 있다.구소련이 이렇게 많은 서구와 동구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스크바대학의 미술사 교수인 알렉세이 라스토구에프씨가 지난 91년 러시아의 일간신문 이즈베스티야지에 처음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의 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자고르스키의 맥주의 탑에 유화와 청동상 등 1만6천5백점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들 미술품들은 스탈린이 대외비를 명령한 이후 외부에 공개가 절대 금지돼 왔다.단지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의장의 허락을 받아야 관람이 가능했으며 KGB를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경우에만 관람이 허용됐다는 것이다. 일부 미술품들은 러시아의 해외주재공관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러시아는 옛소련시대인 지난 74년 브레진스키와 지난 92년 옐친러시아대통령때는 일부 예술품을 헝가리에 되돌려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측은 「예술품을 두번이나 구조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나 헝가리는 「두번이나 도독맞은 작품들」이라고 맞서고 있다.특히 옛소련및 동구의 붕괴로 상호 연대가 느슨해지자 반환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반응은 다양하다.푸슈킨박물관의 야아다이리나 앙토노바푸슈킨 관장(72)은 『독일에 협력한 헝가리가 독일에 팔아치운 것을 되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또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증거』라고 전리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다.하지만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전리예술품들은 「전쟁의 마지막 감옥」이라며 반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관한 예술품들 가운데 일부는 내년부터 전시도 될것으로 전해진다.지하에 보관돼 있다가 50년만에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 장백진의 탑산(압록강 2천리:3)

    ◎발해의 기상 말하듯 「5층 전탑」 고고히…/높이 12.64m의 네모꼴… 꽃무늬 벽돌로 쌓아/조선인 2가구 19세기 이주,현재 4만명으로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 자치현 장백진의 탑산은 산에 탑이 서 있기 때문에 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그 탑산의 탑은 이른바 영광탑인데 벽돌을 쌓아 만든 5층 전탑으로 되어있다.네모꼴을 기본형으로 한 이 탑의 높이는 12.64m에 이른다.탑 꼭대기 지붕(옥개)위에는 마치 조롱박 5개를 포개 올린 것처럼 보이는 높이 1.98m의 청동제 상륜을 세워놓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불탑이다.청회색 꽃무늬 벽돌을 쌓아 마감한 상층기단 남쪽에는 아치형 문을 냈다.그리고 각층의 탑신 남쪽 벽에 네모꼴 창을 뚫었다.지붕의 추녀와 추녀 받침은 벽돌쌓기를 통해 마치 목조건물이 풍겨주는 것과 같은 그런 멋을 부렸다.상층기단 아래에는 길이 3.2m,너비 3.4m,깊이 1.49m의 지하공간 지궁을 갖추었다.지궁 뒷벽에는 사리함을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좌가 마련되었다. ○청동제로 상윤 세워 이 탑이 후대에 들어 발해의 탑으로 고증된 것은 19 82년께다.중국 동북고고대의 소춘화와 중국과학원 장어환 교수가 2년에 걸친 검증에서 발해시대 불탑임을 확인했던 것이다.그러나 어느때 누가 세웠는지,또 불탑의 이름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으로 담아있다.다만 19 08년 청나라 장백부 관리였던 장풍대가 이 탑을 보고 생김새가 노나라 때 영광전을 닮았다고 해서 영광탑으로 불러왔다. 이 탑에 대한 전설도 있다.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 이성태 관장이 들려준 전설은 발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한성 싶다.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어느 날 괴상한 사람들이 탑속으로 스며들어 이레를 보냈다.그리고 금불상을 훔쳐 배에 싣고 가다 배가 뒤집히는 통에 금불상이 강에 가라앉았다고 한다.그 뒤에 늘 빛을 훤히 드러내던 탑은 광채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그러자 독사가 탑주변에 살면서 사람과 가축을 마구 잡아먹었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다. 장백현 일대는 발해가 융성한 시기의 강역 압록부에 해당한다.그 중심지 서경이 하류에 있었는 데 장백진에서 그리 멀지 않다.이 탑은 물론발해가 융성했던 시기에 세웠을 것이다.오늘 날도 탑이 있는 산아래 압록강변 장백진의 벌이 탑전이고 보면 탑산의 탑은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이 탑의 영향력이 어디 장백진에만 국한했으랴.강건너 북한땅 혜산시 역시 옛 발해의 압록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압록강 유역의 양안은 본래 고구려 강역이었다.그러나 고구려는 당에 정복되어 장백진에는 정복자의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가 멸망한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더 많은 세월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쇠잔하기 이를 데 없는 잔영에 불과했다.그런 탓인지 탑산에는 당의 장수 설인귀의 전설이 남아있다.탑산에 세운 한 비석에다 설인귀가 말에 올라 군사를 호령했던 자리라고 기록해 놓았다.그리고 말발굽자리처럼 자연적으로 푹 파인 커다란 화산돌은 설인귀가 탔던 말발굽자리라 해서 과마석으로 묘사했다. ○정복자의 전설남아 역사의 흥망성쇠를 두고 「삼국지연의」머리시는 「한 마당 꿈」이라고 했다.정녕 그런 것인가.민족의 고대국가 강역에서 중국의 역사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발해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면서 요,금에 이어 명이 숨가쁘게 지나가고 청이 시작되었다.청은 중국의 동북을 만족(만주)자신들의 발상중지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봉금령을 내렸다.그리고 나서 청은 16 77년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천여리 넓은 땅을 봉금구로 정했다.특히 장백현은 경위장이라는 이름의 그들 사냥터가 되었다. 그러니까 장배현은 짐승들만 들끓는 무인지경이었다.19세기 초엽에 와서야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장백현황」에 따르면 청나라 연호로 도광 11년(서기18 31년)오늘날 길림성 임강 부근인 모아산 북탕하지방에서 조선인 2가구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이어 도광25년에 조선인 10여명이 임강으로 건너왔고,함풍 2년(서기 1852년)에는 함경도 단천군 사람들 10여명이 와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함경도서 많이 이주 이들이 바로 압록강을 건너온 이주민 선구자들이다.그로부터 세월리 흘러 20세기에 접어들어 19 05년에는 압록강 유역 장백·임강·집안 등지에 사는 조선족 이주민은 8천7백가구 3만9천4백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그 무렵 장백현으로 들어온 평안도 출신의 이주민2세 이동근(82)노인은 압록강을 건너와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뼈 아픈 사연을 회고했다. 『고향을 떠나서리 들어온 데가 장백진 탑전 사탕골이었댔시요.내 나이 연네살이었는데 자꾸 고향 생각이 납데다.그런 판에 부친은 한 해치 품삯 60원을 받고 연치산이라는 조선족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고 모친은 삯일을 했수다.부친이 만 네해 머슴을 살고 여섯식구가 다시 모였디요.기쁜 맘도 잠시고 여러 식구가 먹고 살게 있어야디.그래서 내 열여섯살 나던 해에 김세익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시요.저 노친(김증손·77)이 겨우 열한살이었던가 기래요.다섯 해 데릴사위 노릇을 하다보니 어린 처가 숙성해집데다.그래서리 결혼을 해버렸디요』 이 노인은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딸들은 모두 인근으로 출가하고 막둥이로 둔 아들도 커서 장가를 들었다.아들은 장사를 하는데 조선(북한)을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다.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조선에 물건만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기래요』라는 말을 했다.노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해관(세관)이 있는 압록강변 국경지대로 짐을 실은 차들이 몰려들었다.물건이 잔뜩 든 골판지 상자와 큰 부대자루들이 장백진 쪽에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 화염경 베낀 신라종이뭉치 발견/화엄사 5층탑서

    ◎청자양이병도 함께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서쪽 5층탑(보물133호)에서 통일신라시대때 종이에 쓴 화엄경 사경으로 추정되는 종이뭉치와 청자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는 청자양이병이 발견됐다. 문화재관리국이 지난 18일 5층석탑 보수를 위해 해체공사중 1층탑신의 장방형 홈(가로 33·세로 10㎝) 사리장치에서 발견,20일 공개한 종이뭉치는 두께 6∼7㎝,길이 27㎝의 크기로 되어 있다.이 종이뭉치는 두루마리 형태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붓글씨로 쓴 사경의 흔적이 현미경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강우방 실장은 『화엄사가 신라 10대 화엄사찰중 하나이고 인쇄본인 무구정광다라니경에 비해 두께가 두꺼워 사경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통일신라시대때의 종이류는 지난 66년 불국사 석가탑 보수공사때 나온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일제시대때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등 2종류에 지나지 않았다.이번 발견된 종이뭉치가 화엄경 사경으로 확인될 경우 출처가 분명한 신라때의 불경 사경으론 최초의 것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원형 홈(깊이 35㎝) 사리장치에서 금동 뚜껑이 덮인 채로 발견된 청자병은 고려청자의 시원을 다시 밝힐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었으며 그 안에서 22과의 사리가 담긴 녹색사리병이 함께 나왔다.이밖에도 청동합 2점,수정옥 1점,목제장식류 1점,유리구슬등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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