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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인천AG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

    인천시가 오는 2014년 제17회 아시안게임(AG) 개최지로 결정됐다. 지난달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년) 유치에 이은 쾌거로, 한국 스포츠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탑을 쌓은 것이다. 대회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안상수 인천시장과 유치위원회 관계자, 그리고 265만 인천시민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AG유치는 인천시의 영광이자 국가적 경사이기도 하다.AG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천시가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하고 경제자유구역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국은 이미 AG 두 차례, 올림픽, 월드컵 등 아시아와 세계 주요 스포츠 행사를 여러 번 치렀다. 이는 우리의 국가적 역량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런 국제행사들은 단순히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간 교류의 폭을 넓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아시아 다수 회원국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은 외교력의 승리일 것이다. 경제효과도 작지 않다. 순익 1000억원에다 생산유발 13조원, 부가가치 유발 5조 6000억원, 고용유발 27만명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특히 인천의 도시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동북아 허브는 물론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도약할 호기를 잡은 것이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7년 뒤 손님맞이를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유치활동을 하면서 아시아 회원국들에 약속한 ‘비전 2014’(스포츠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를 알차게 운영해서 국가적 신뢰를 쌓고 교류도 더 넓혀야 한다. 외교나 경제적 이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는 아시아인의 꿈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 역할임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가 대회를 잘 치러낼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국민의 성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강릉 괘방산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강릉 괘방산

    괘방산(掛膀山)은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와 임곡리·모전리·안인진리 사이에 있는 높이 339m의 산으로 화비령 북쪽 줄기에 있다.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 커다란 두루마기에 급제한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나란히 써놓은 방을 붙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임금에게 합격증서인 홍패(紅牌)와 백패(白牌)를 받으면 그 집안의 하인이나 방꾼들이 집으로 희소식을 알리고 괘방산에 방을 걸었다고 한다. 괘방산에는 ‘안보체험 등산로’라는 산길이 나 있다. 안보체험 등산로는 안인진과 정동진을 잇는 능선에 있다. 1996년 9월 잠수함으로 침투했던 북한 무장간첩이 도주했던 길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강릉시청 산악회 등에서 등산로로 개발해 당시 무장간첩의 도주로를 따라 청학산과 칠성산(953m)까지 개설됐다. 청학산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가면 망기봉(784m), 만덕봉(1035m), 석병산(1055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와 만나게 된다. 괘방산 등산로는 해안선에서 시작해 표고차 400m를 오르내리는 능선종주다. 푸른 동해바다와 백두대간의 준령이 한눈에 들어오며 거리에 비해 힘들지 않고 산행시간도 짧다. 산행 들머리는 무장간첩 침투로인 함정전시관과 안인진2리 삼거리로 정할 수 있다. 코스는 삼우봉∼괘방산∼괘일재∼당집∼화비령∼청학산∼밤나무정으로 이어지는 약 8㎞의 거리로 2시간40분이 걸린다. 역방향인 정동진을 들머리로 할 수도 있으나 주차에 부담이 없고 일출을 마주보고 산행할 수 있는 안인항 앞 들머리가 낫다. 안인항 오른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장 뒤편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동해바다와 아담하고 정겨운 안인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짙은 솔내음과 바다냄새를 맡으며 10여분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길은 능선으로 바로 올라서는 길이고 곧바로 가면 사선으로 능선에 붙는다. 첫 능선을 지나는 오솔길 좌우로는 진달래가 에스코트를 하듯 도열해 있다. 바다와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보면서 걷다 보면 작은 나무그늘과 넓은 공터가 있는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나온다. 발 아래로는 안보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용기와 바다, 안인항이 내려다 보이며 눈앞에는 삼우봉과 괘방산 정상이 건너다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을 따르면 길 끝에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임해 자연휴양림과 안보전시관으로 가는 길이다. 임도를 버리고 앞쪽에 보이는 오솔길로 접어들어 오르면 돌조각이 깔린 길이 나오며 꽤나 큰 돌무더기를 만나게 된다. 괘방산 성터다. 괘방산 성터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멋진 바위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데, 이곳이 삼우봉 정상이다. 삼우봉은 키 큰 잡목으로 시야가 좋지 않으며 여기에서도 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오솔길을 700m 정도 가면 TV중계탑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괘방산 정상이 있다. 중계탑을 왼쪽으로 돌아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고려산성과 ‘등명락가사’가 나온다.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이다. 건너편 오솔길을 따라 200m 정도 내려오면 괘일재다. 이곳에는 6·25 전쟁 사적비로 갈림길이 나 있다. 괘일재를 지나 능선으로 400m 정도 오르면 시원한 나무그늘에 나무의자가 있고 산 아래로 바다와 ‘하슬라 아트월드’가 보인다. 예약이 되어 있다면 이 길로 하산해 멋진 예술공원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다시 500m를 가면 당집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측 능선은 화비령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는 우측 사선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데 100m 정도 내려가면 안보체험 등산로의 유일한 샘터가 있다. 갈림길에서 진행 방향대로 정동진을 향하면 삼거리 임도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곧장 가면 된다. 오리나무 숲을 지나고 키 작은 소나무 숲을 지나 183고지에 도착하면 조각공원과 참소리박물관이 있는 큰 배가 산 위에 보인다. 어느 순간 잊었던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정동진에 도착한다. 이때에서야 진달래 길도 끝이 난다. 이영준 월간 MOUNTAIN 기자 # 여행정보 정동진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동진이나 안인리 일대에는 깨끗하고 좋은 숙박업소가 많다. 먹거리는 산행 들머리에 있는 (구)일미횟집(033-644-6139)의 시원한 물회(1만원)와 회덮밥(8000원)이 유명하다. 옛 영동고속도로에서 정동진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옛날가마솥보리밥집(033-644-5868)도 맛있고, 정동진역 앞에 있는 관제탑해물(033-644-5668)은 해물탕이, 금진리 헌화로 입구에 있는 쉼터(033-644-5138)는 감자옹심이와 감자떡으로 유명하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조선 세조(1417∼1468)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와 여주 신륵사, 양평 수종사, 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건봉사·표훈사·유점사, 양양 낙산사, 영암 도갑사, 합천 해인사 등 방방곡곡의 수많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수했지요. 세조는 온몸의 종창으로 크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왕위에 오르고자 조카인 단종을 죽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수군거렸지요. 불교에 의지한 것도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불교 중흥에 힘쓴 가장 큰 이유는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어린 단종이 집권한 뒤 유신(儒臣) 세력이 부각되면서 왕권과 신권(臣權)의 균형이 무너지자 ‘국정의 원상회복’을 외치며 반기를 들었던 이가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입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10층석탑은 이처럼 세조가 중심에 선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원각사의 창건과 10층석탑의 조성은 세조가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조가 자신의 통치력을 과시할 수 있을 만한 권위의 상징물을 만들고 싶은 의도를 원각사로 구현시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교국가의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였을 12m짜리 고층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신진사대부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인가 석탑의 8∼10층이 땅에 끌어내려진 뒤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이 동원되어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도 유신들이 가졌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년) 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내보내 원각사는 절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조광조 등이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에 원각사터는 아예 택지로 분양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종시대 잇따라 큰 불이 나고, 임진왜란(1592∼1598)을 거치면서 원각사터에는 다시 10층석탑과 탑비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 원년(1897년) 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300년 동안이나 원각사터는 왕실과 유신들의 상호견제 속에서 빈터로 남아 있게 됩니다. 원각사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세워진 라마불교의 영향이 짙은 원나라풍의 경천사10층석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탑이지만, 조선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미술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미술사적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가치까지 부여했을 때 원각사탑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가능해질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다라니경 글씨·종이 8세기 작품

    다라니경 글씨·종이 8세기 작품

    국립중앙박물관은 석가탑 중수기의 존재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라는 더욱 확실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라니경이 고려 초기인 1024년 석가탑을 중수할 때 새로 만들어 넣었을 수도 있다는 일부의 문제제기를 일축하고, 석가탑이 창건된 8세기 무렵 통일신라 시대에 봉안됐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내옥 유물관리부장은 “현재 모든 학자가 다라니경의 통일신라 제작설에 동의하고 있다.”면서 “중앙박물관이 중수기를 공개한 것도 내부 전문가의 검토 결과 통설에 지장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박물관은 28일 ‘석가탑 유물 관련 종합 경과’를 발표하면서 다라니경 신라제작설의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먼저 중수기에 나타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신라시대에 봉안했던 것을 다시 봉안했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려시대 것인 보협인다라니경이 사리기 외부에서 발견된 반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사리기 내부에 안치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신라시대에는 무구정광다라니경을 탑에 모셨고, 고려시대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이 조탑(造塔) 공양의 중심 경전이 됐다는 것도 그동안의 연구에서 드러났다. 또 다라니경에 쓰여진 글씨체는 울진 봉평비와 영일 냉수리비, 황복사 3층석탑의 사리함 명문과 비슷한 신라 특유의 형태를 보인다. 종이도 신라 특유의 가공법으로 만든 닥지(楮紙)이다. 현미경으로 확대 관찰한 결과 석가탑 중수기, 보협인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순으로 섬유가 치밀하게 보였다. 종이 제조 기술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만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라니경에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집권한 690년부터 704년까지만 통용된 측천무후자(字)가 10차례 쓰여졌다. 측천무후의 몰락 이후 측천무후자의 사용은 곧 역모에 해당됐다는 점에서 8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여섯 자 이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 금/우리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너 좋고 나 좋으면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열두 냥짜리 인생’(김희창 채보, 개사. 블루벨즈 노래.1963년) 당시 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부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던 블루벨즈의 대표곡 중 하나 ‘열두 냥짜리 인생’. 이 드라마가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당시는 속칭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입시를 거친 세대라 집안 형편에 따라 한 교실 안에서도 ‘진학반’ ‘비진학반’으로 나눠 공부했던 서글픈 기억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이러한 노래에 쉽게 공감하는지 모른다. 그렇듯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으로 막이 올라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우리의 1960년대는 아직 ‘보릿고개’였다. 느닷없이 적극 장려된 해외 이민으로 ‘브라질 이민선’을 타는 사람도 늘어나고 전 국민의 환호 속에 월남 전선으로 떠나던 맹호·청룡·백마부대 용사, 그 젊은이들. 당시 유년시절을 보내던 이들은 ‘파월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 숙제 속에 묻혀 있기도 했고,‘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며 아침저녁으로 스피커를 통해 학교 운동장마다, 동네마다 가득 울려 퍼지던 이 노래와 더불어 당시 구호,‘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다’가 어느새 ‘100만달러 수출 탑을 쌓아올린’ 건설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 들었던 새마을노래, 그 주인공 또한 블루벨즈였다. 우리나라 가요 최초의 쿼텟, 블루벨즈는 멤버들 개인이 군 입대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쇼무대 등을 위해 임시 멤버로 강수향, 곽규호씨 등으로 대체해 활동했지만 이들 대체멤버가 음반 취입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68년, 창단 멤버 현양씨가 정식으로 탈퇴하자 KBS전속가수 7기생인 장세용씨가 가세, 후기 블루벨즈를 이뤄 활동한다. 아울러 ‘블루벨즈’는 또한 스코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꽃’ 이름이기도 하다. 이 꽃말처럼 이들의 노래는 당시 다른 노래들에 비해 비교적 젊다. 소월 시에 김광수씨가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부두(장세용 작사, 곡)’ 등이 그렇듯. 아울러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 역시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는데, 특히 ‘싱어롱 Y’의 선구자 전석환씨에 의해 주도되었던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의 최전방에 섰던 첨병 또한 블루벨즈로 ‘정든 그 노래’,‘그리운 고향’,‘냉면’ 등을 이때 발표한다. 블루벨즈, 이들의 노래엔 늘 생동감이 느껴진다. 네 명의 목소리가 합쳐져 같은 화음을 구사하고 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약간씩 미묘한 차이도 감지되는 것이다. 완벽하고 정확한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절묘하게 이탈된 곡선이 이들 화음에 들어 있어 노래가 살아 있다고도 느껴진다. 특히 ‘잔치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로 시작되는 ‘즐거운 잔칫날(손석우 작사, 곡)’과 ‘고생도 달가와(최요안 작사, 손석우 작곡)’에서의 웃음소리를 표현한 부분 등에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화음의 이탈이, 그 흐름을 이어가는 묘한 곡선에서 이들 넷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멜로디 속에 함께하는 또 하나의 다른 흐름,‘부두’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노래를 휘감는 멋진 휘파람소리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1987년에 재결성, 기념 음반 ‘블루벨즈/내 인생 후회는 없지만’을 발표하는데, 이때는 오리지널 멤버인 박일호·서양훈·김천악·현양씨가 함께했다. 이들 멤버 모두 52세 때였다. 현재 리더 박일호씨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대중문화원장으로 활동 중이고, 서양훈씨는 미국 LA복음방송국의 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장세용씨는 적십자 봉사활동을 그리고 대체 멤버 곽규호씨는 송파실버악단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고, 김천악·현양·강수향씨는 타계했다. 1960∼70년대, 궁핍한 시대에 희망을 안겨준 ‘푸른빛의 종소리’ 블루벨즈, 이들의 멋진 하모니를 통해 노래는 지쳐있는 삶, 혹은 인생의 응원가이며,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쯤엔 옛 노래가 바로 마음의 고향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분양정보] GS건설-부천소사구 송내 자이

    [분양정보] GS건설-부천소사구 송내 자이

    고품격 아파트를 지향하는 GS건설의 야심작 ‘송내자이’가 다음달부터 분양을 시작한다. 경기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409의 3에 들어서는 송내자이(조감도)는 5789평에 지하 3층, 지상 20층 9개동(棟) 규모이다. 24평형 104가구,32평형 172가구,45평형 120가구,46평형 40가구 등 모두 436가구로 구성된다. 송내자이는 단지 남동쪽으로 거마산의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 외곽순환도로 송내 인터체인지(IC)와 제2경인고속도로가 가까워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또 단지에서 걸어서 지하철 1호선 송내역을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옆에 송일초등, 성주중, 부천여중, 부천고가 있다. 송내자이는 주차장을 지하로 하고, 지상에는 조경시설을 확보해 입주민들의 쾌적한 환경을 도모했다는 평을 듣는다.‘자이’만의 자랑거리인 단지 커뮤니티 시설 ‘자이안센터’가 250여평 규모로 설치돼 입주민에게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특히 송내자이에는 올해부터 ‘자이’의 특화된 아파트 옥상옥탑과 경관조명이 적용돼 주변의 랜드마크로 부각될 전망이다. 송내자이가 들어서는 부천시는 재개발 및 재건축의 개발 호재를 가지고 있다. 중동신도시의 GS백화점, 삼성홈플러스, 현대백화점 등 대형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송내역 및 중동역 중심의 상권도 발달돼 있다. 송내자이는 이와 함께 옥상옥탑에 디자인 저작권이 등록된 형식이 도입된다. 옥상옥탑 디자인은 올초 분양한 서울 서초 아트자이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는 9월로 예정된 분양가 상한제 등을 앞두고 아파트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씻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GS건설은 기대하고 있다. 최임식 GS건설 주택기술담당 상무는 27일 “올해에는 혁신적인 외관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먼 곳에서 보이는 옥상과 경관뿐만 아니라 실제 입주민들의 눈에 들어오는 공간 등에도 디자인이 특화됐다.”고 말했다.(032)651-0009.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오늘의 눈] 석가탑 중수기 공개하라/서동철 문화전문기자

    1966년 석가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가 갈수록 엉뚱한 추측을 양산하고 있다. 한두 쪽의 중수기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출되면서 상상을 넘어서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출된 중수기에 나오는 ‘탑파분퇴(塔坡分頹)’는 탑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만 있다면 ‘부재를 하나씩 들어내 해체했다.’는 내용으로 풀이할 것이다. 그럼에도 ‘탑을 부수고 나눠서 무너뜨렸다.’는 해석까지 나왔다.‘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비약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탑은 시간이 흐르면 일부 부재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못 쓰게 된 부재를 교체하는 것을 포함하는 중수(重修)는 불가피하다. 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중수된 것을 두고 다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한다면 해체·보수가 이뤄진 1966년에도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석가탑과 다보탑, 감은사터 동·서탑은 지난해부터 단계적인 해체·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이 신라 석탑이 모두 21세기 작품이 된다는 뜻인가. 중수기를 공개하지 않는 중앙박물관의 고뇌를 모르지 않는다. 통설을 뒤엎는 내용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중수기에서 한국미술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다. 중수기를 내돌린 것이 얼마나 철없는 짓이었는지, 박물관 내부 당사자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중앙박물관은 중수기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 보존처리가 완벽하게 이뤄졌다면 내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미술사에서 다소 혼란스럽던 대목이 명쾌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미술사가 꼭 ‘후퇴’만 하라는 법도 없다. 다만 앞으로의 연구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권위있는 ‘국립중앙박물관판 해석’을 먼저 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애정을 갖고 중수기를 포함한 묵서지편을 올바르게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버튼 게임 그 매력속으로

    휴대전화 없이는 못사는 ‘엄지족’ 중에서도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이른바 ‘귀차니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원버튼’ 모바일 게임은 귀차니스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휴대전화 숫자패드 중 버튼 하나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원버튼 게임은 귀차니스트만을 위한 단순한 게임은 아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지만 게임 속 주인공은 갖은 액션과 재주를 부린다. 다양한 그래픽·음향 효과, 재미있는 게임 내용, 그리고 첨단 네트워크 기능이 첨가돼 있다. 짧은 게임 시간과 단순함 때문에 쉽게 싫증을 낼 수 있는 이용자들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원버튼 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2년이다. 당시 컴투스가 버튼 하나만 눌러 줄을 넘는 단순한 구조의 줄넘기 게임을 내놓아 반향을 일으켰다. 컴투스는 이후 2005년 줄넘기, 높이뛰기 등 7개 원버튼 게임을 종합한 ‘미니게임 천국’으로 원버튼 게임의 붐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미니게임 천국 2탄’으로 인기몰이에 나섰다. 새로운 10개 게임을 모았다. 캐릭터도 1탄의 6개 캐릭터에 6개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됐다. 게임빌이 3월부터 선보인 ‘절묘한 타이밍’은 원버튼 미니게임 합본 장르다. 출시 전부터 회사 직원이 제작한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게임은 ‘절묘한 수리’,‘절묘한 유혹’ 등 총 6개의 미니게임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캐릭터와 독특한 사운드와 진동 등의 효과가 ‘손맛’을 더해준다. 특히 업계 최초로 선보인 ‘도발장’ 기능은 자신이 기록한 최고 점수를 지인에게 보내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게임빌의 ‘놈’,‘물가에 돌튕기기’,‘날려날려 대포알’등 3개 원버튼 게임은 지난해 2월부터 일본의 이동통신업체인 보다폰을 통해 서비스돼 인기를 끌었다. 이쓰리넷의 ‘동전쌓기 에볼루션’도 호평을 받고 있다. 버튼을 눌러 동전을 정확한 위치에 떨어뜨려 쌓아올리는 방식이다. 동전탑을 쌓을 때마다 밝고 귀여운 이미지와 색다른 그래픽의 배경이 바뀐다. 탑의 높이에 따라 캐릭터들의 다양한 댄스를 볼 수 있다. 동전 100개를 쌓을 때마다 미니게임도 즐길 수 있다. 40여개의 다양한 아이템 캐릭터, 이펙트, 동전, 아이템, 댄서 등을 컬렉션 북에서 구입해 이용자의 취향에 맞게 변경이 가능하다. 소프트젠의 ‘미니게임 씨네마’는 흔들리는 넝쿨과 넝쿨 사이를 타이밍을 맞춰서 점프로 넘어가는 ‘정글의 타잔’ 등 7개 원버튼 게임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한국 禪불교의 원류’ 中선종사찰을 찾아

    ‘한국 禪불교의 원류’ 中선종사찰을 찾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본질에의 철저한 탐구를 독려한 임제(臨濟·?∼867) 선사의 일갈이다.‘본디 내가 없는데 왜 나에 집착하는가.’ 허상인 나와 존재를 바로 봄으로써 해탈을 이루자는 선(禪)불교의 큰 가르침이기도 하다. 조계종 불교인재개발원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이 ‘선 불교’의 원류를 찾아나섰다.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의 임제사(臨濟寺)부터 광둥성 사오관(韶關)의 남화선사(南華禪寺)까지 선종 사찰 13군데를 돌며 선 불교의 초조 달마(達摩) 대사∼6조 혜능(慧能·638∼713) 대사의 향훈을 느껴보는 대장정이었다. 고우(전 각화사 선원장) 스님을 해설자로 모신 신도 60여명의 순례 길을 동행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27대 제자인 반야다라 존자를 40년간 시봉하다 동토(東土) 중국을 택해 전법에 나선 불교 선종(禪宗)의 종조 달마대사. 중국에 건너간 달마는 당시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릴 만큼 신심이 깊었던 양(梁)의 무제(武帝·464∼549)와 법 거량을 가졌으나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후 달마는 ‘아직 이 땅에서 법을 전할 때가 아니다.’라며 일체 중생과의 연을 끊고 9년간의 묵언 면벽수행에 들었다. 허난(河南)성 성도인 정저우(鄭州) 서쪽 등펑(登封)시 숭산(嵩山) 자락의 소림사(少林寺)는 초조 달마대사의 고행과 2조 혜가(慧可·487∼593) 대사에 대한 전법이 서려 있는, 선종의 시발점이다. 무술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소림사답게 일주문을 비롯해 사찰 주변에 소림 무술 교육시설이 즐비하다. 현재 50여곳에서 2만여명이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수련자들의 기합소리는 ‘과연 이곳이 선종의 시원지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달마 대사가 면벽수행을 했던 달마굴은 소림사 뒤쪽 깎아지른 듯한 산 중턱에 있다. 동굴 입구의 돌문에 ‘묵현처(默玄處)’라 음각되었고 벽에는 ‘달마동(達磨洞)’이라 새겨졌는데 3∼4명이 서기에도 비좁은 동굴 한가운데 가사를 입혀놓은 달마대사상이 인상적이다. 면벽수행 당시엔 벽을 향해 앉았을 터이지만 지금은 동굴 입구를 향해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달마대사의 면벽수행처였던 이 달마굴은 2조 혜가 스님이 팔을 잘라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는 단비구법(斷臂求法)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도 열정이 강했던 혜가 스님은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여도 꼼짝하지 않고 동굴 앞에 앉아 법을 구했다고 한다. 그토록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는데도 달마 스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왼쪽 팔을 잘라 마침내 달마대사의 마음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선종의 맥이 시작되는 것이다. 동굴 오른쪽 벽면에 혜가 스님이 잘라 바쳤다는 팔뚝을 생생하게 부조해 놓았다. 지금의 소림사는 1928년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혜가 대사의 단비구법을 형상화해 놓은 입설정(立雪停)과 9년 면벽한 달마 대사의 모습이 어려 있다는 바위가 있다. ‘천하에 붉은 눈이 내릴 때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달마 대사의 말에 서슴없이 팔뚝을 잘라 피를 뿌려 법을 전수받은 혜가 스님은 소림사 맞은편 발우봉에 터를 잡아 수행에 들었다. 지금의 이조암(二祖庵)이다. 소림사에서 10리길이니 1시간30분은 족히 걸어야 오를 수 있는데 케이블로 연결된 리프트가 힘겨운 발품을 덜어주고 있다. 이조암에 들어서면 원나라 때 세워졌다는 6각 전탑과 당대의 4각 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중심전각인 20평 남짓한 법당에는 금칠을 한 좌상에 옷을 입힌 혜가 스님이 앉아 있다. 법당 앞에는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의 네 가지 맛이 나는 물이 났다는 우물 사미정(四味井)이 있는데 수행하면서 물이 없어 고생하던 혜가 스님을 위해 달마 대사가 지팡이(錫杖)로 땅을 쳐 물을 솟아오르게 해 만들었다는 탁석천(卓錫泉)이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스님께서 편안케 해 주십시오.”/“불안한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편안케 해주겠다.”/“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나는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느니라.” 혜가는 달마 대사와의 이 대화를 통해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 선문답이 마음을 바로 깨달아 들어가는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 달마 대사가 전한 선(禪)의 실체이자 정수로 여겨진다. 달마 대사의 법을 이은 혜가는 나병을 심하게 앓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적두찬(赤頭瓚) 별명을 얻었다는 3조 승찬(僧瓚·?∼606) 스님에게 똑같이 안심법문으로 법을 전한다.“몸에 풍질(風疾: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풍질을 앓게 된 저의 죄를 참회케 해 주십시오.”/“죄를 가져오너라. 죄를 참회케 해 주겠노라.”/“죄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렇다면 너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저 불법승에 의지해 안주하라.” 안심법문을 통해 법맥을 이어받은 승찬 스님은 혜가 스님을 시봉하면서 병도 나았다고 한다. 안후이(安徽)성 첸산(潛山)현 천주산(天柱山) 삼조사는 바로 이 승찬 스님의 선기가 서린 곳. 혜가 스님을 찾아 깨달은 승찬 스님은 이곳 천주산에서 수행하며 법을 펴다가 나무 밑에서 설법을 마친 뒤 선채로 입적했다고 한다. 수행처인 삼조굴과 묘탑인 삼조탑, 서서 입적했다는 입화탑(立化塔)이 있다. 승찬 스님 열반 후 수습된 300과의 사리 중 100과를 넣어 세운 것이 삼조탑이다. 삼조굴 바로 앞에는 승찬 스님이 선문답을 통해 법을 전한 4조 도신((道信·580∼651)스님의 속박을 풀어준 ‘해박석(解縛石)’이 누워 있다.“해탈법문으로 나병을 앓는 이 몸의 속박을 풀어달라.”는 도신 스님에게 “본래 속박된 적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조차 없이 자성 그대로가 해탈이요 부처”라 일갈한 안심법문의 또 다른 현장이다. 황메이(黃梅)현 쌍봉산(雙峰山)의 사조사(四祖寺)는 도신(道信·580∼651) 선사가 30년간 주석한 곳. 창건될 때엔 1000명의 수좌들이 수행하던 대찰이었으나 조사전과 몇몇 석조물만 남았다가 근래 들어 30여개의 전각이 제모습을 되찾았다. 오른쪽 산등성이의 사조탑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람이 다른 조사들의 주석 사찰과는 규모나 양식 면에서 크게 달라 보인다. 사조사로부터 10㎞쯤 떨어진 곳에 5조 홍인(弘忍·594∼674) 선사가 머물며 설법했던 빙무산(憑茂山) 오조사(五祖寺)가 있다. 이른바 ‘동산법문(東山法門)’이 태동한 곳으로 4조 도신 선사가 바로 동산법문의 초조(初祖)인 셈이다. 중국 선종에선 초조부터 3조 승찬 스님대까지 걸식하며 떠도는 두타행 수행이 이어지다가 4조 도신 선사부터 비로소 도량에 정착해 법을 펴게 된다. 이 오조사는 그중에서도 중국 선종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유서깊은 곳이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산에 자리잡은 데다 우리의 절집처럼 잿빛 기와를 얹은 가람들이 퍽 친숙하다. 법당 왼쪽에 길쌈을 하며 아들을 훌륭한 조사로 키워낸 홍인 선사 어머니의 공덕을 기리는 성모전(聖母殿)이 있고 법당 뒤로 법우탑과 5조 홍인조사 진신전, 그 오른쪽에 6조전이 있다.6조 혜능(慧能·638∼713) 선사가 사미시절 찧던 방아도 재현되어 있다. 그 옆으로 5조 스님이 좌선했다는 수법동굴을 지나면 홍인 스님 사리탑이 눈에 들어온다. 홍인 스님은 이곳에서 6조 혜능에게 법을 전하는 증표로 달마조사로부터 전해내려온 가사와 발우를 준다. 중국에선 4조 도신 스님 때부터 스님들이 농사일과 참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이 일었는데 5조 홍인 선사 때 이곳에서 자리잡아 훗날 그 유명한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청규(淸規)를 낳게 된다. 6조 혜능 스님은 홍인 스님을 찾아가 출가의 뜻을 밝힌 뒤 이 절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다가 마침내 홍인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금강경’ 강론을 듣고 단번에 깨우친 뒤 법을 전수받아 선종의 육조(六祖)가 되었으며 한국 선 불교는 바로 이 혜능 대사 문하의 선법인 남종선(南宗禪)을 따르고 있다. 광저우·우한·스자좡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 집권하면 전쟁 우려된다니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미 FTA말고는 다 바꾼다했는데 그러면 남북전쟁까지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참 딱한 사람이다.2월 임시국회가 사학법에 발목이 잡혀 주택법 등 주요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운 시점이다. 당의 원내 사령탑이라는 사람이 국회 파행의 책임을 상대당에 전가하고, 전쟁 가능성 운운하다니 한심하다. 지금 북·미간 대화가 급물살이다. 여러 변수가 있지만, 양국 수교 등 급속해빙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하다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에 중심에서 벗어난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초당적 지혜와 합의를 모으는 게 긴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 특정정당 집권시 전쟁 가능성이라니, 정파적 단견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나라당은 발끈해 장 원내대표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심정은 이해하나 인신공격 차원의 험담은 자제하는 게 옳다. 또다른 정쟁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양식을 촉구하는 선에서 그쳤으면 한다. 이제 점차 가파른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또다시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 정책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금도는 지켜야 한다. 또다시 색깔논쟁으로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거나, 남북 화해의 분위기를 깨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것이다. 북한의 선거간여 의도가 먹혀들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북풍이나 역북풍 차단에 정당, 국민이 함께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캄보디아, 神들의 세상

    캄보디아, 神들의 세상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크메르루주….‘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그만큼 현대사의 숱한 아픔과 고통을 겪은 나라이다. 또한 위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이면서 대부분 방치됐거나 버려졌다. 15세기에 ‘앙코르’라는 왕도(王都)와 100만 인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전설 아닌 전설만 보더라도 캄보디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단절의 역사가 반복된 셈이다. 앙코르와트의 경우만 하더라도 1862년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생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 베일의 두께는 한층 더했을 터. 깊숙한 정글 속에 500년 넘게 잠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발견된 후에도 130여년이 지난 1994년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 시작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훼손이 많았던 세월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일대의 유적이 제대로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진단한다. 그만큼 캄보디아는 여전히,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나라이다. 오늘날 캄보디아 사람들은 국기와 지폐에 앙코르와트를 그려 넣을 만큼 캄보디아의 상징으로 여긴다. 최근들어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는 캄보디아 현지를 다녀왔다. 주요 관광지를 소개한다. 글 사진 앙코르와트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9~13세기 고대사원 유적도시 시엠립(siem reap)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수도 프놈펜보다 시엠립를 선호한다. 캄보디아 서북부에 위치해 앙코르 유적을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이 도시에는 9∼13세기에 이르는 고대 사원들이 산재해 있다. 시엠립의 앙코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은 종교와 역사에 대한 사전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를 할 수도 없거니와 감동도 반감되고 혹자는 더운 날씨에 보는 것마저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 54개 탑과 관음상 200여개 앙코르톰(Angkor Thom) ‘거대한(톰) 도시’라는 뜻을 가진 고대 크메르왕국의 수도.9세기경 크메르를 통일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건설을 시작해 300년 뒤인 13세기초 자야바르만 7세가 완성했다. 1.5㎞ 남쪽에 위치한 앙코르와트와 함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다. 성벽 한변이 3㎞, 높이 8m인 정사각형 모양이며 넓이는 45만평. 주변은 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파 놓은 약 100m 폭의 해자(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지름 25m, 높이 45m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54개의 탑과 관음상 200여개가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기행문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를 보면 이곳의 수많은 탑과 불상이 황금도금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왕국의 웅장함을 가늠케 한다. 사원에 쓰인 돌은 무려 60만개. 놀랍게도 한 개당 무게가 1t에 달한다. 부처님 얼굴의 거대한 4면 석상이 중앙사원인 바욘(Bayon)과 고푸라(23m에 달하는 성문 입구 구조물)에 얹혀 있다. 앙코르와트가 힌두교 사원이라면 앙코르톰은 힌두교 위에 전파된 불교 색채가 짙다. 10만에 달하는 왕족과 하인들이 이곳에, 일반 백성들은 성 밖에 살았는데 그 수가 100만명이 달해 매우 융성했던 고대 도시였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거대왕국은 15세기 말에 갑자기 사라진다. # 조각예술품으로 가득찬 앙코르와트(Angkor Wat) 우리나라에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앙코르와트는 시엠립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사원 중 하나. 또한 크메르 미술을 대표하는 탑과 부조 등의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가진 중앙사당은 힌두교 신으로부터 부처님에 이르는 절대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앙코르톰처럼 한 변이 1.6㎞인 정사각형 꼴이며 역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지만 전체 규모는 앙코르톰의 4분의1 정도다. 앙코르와트는 1972년 이후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주 게릴라가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많이 파괴되었다.2000개에 달하던 불상이 겨우 37개 남았다. # ‘스펑´ 나무에 짓눌린 성벽 따프롬(Ta Prohm)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사원.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엄청나게 큰 나무가 성벽 위에서 자라나 벽을 타고 내려오며 땅으로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무가 성벽을 집어 삼키고 있는 듯한 괴기스러운 모습이다. 나무뿌리의 굵기만 한 아름이 넘는다. 언뜻 보면 몇 천년은 흘러간 폐허 같지만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채 안된다.‘스펑’이라는 이름의 이 나무의 생장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이다. 사원건축에 쓰인 재료는 사암(sand stone)으로 수분을 함유한 다공성의 이 암석이 스펑나무의 씨를 받아들여 기르는 토양 역할을 했다. 왕조가 몰락하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동안 싹을 틔운 나무는 이 성벽이 제공해주는 수분을 빨아먹고 급속히 성장, 성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앙코르의 유적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 일몰이 장관인 호수 톤레삽(Tonle Sap) 메콩강이 역류해 생겨난 호수. 시엠립 남쪽 교외에 위치해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시엠립 시내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리면 탁 트인 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논과 습지들을 만난다.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어 먹고 있고, 수로를 따라 낚싯대를 드리우는 이도 있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당도한 톤레삽 호수는 우리나라의 작은 어촌의 포구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부터 호수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선착장에는 20∼30명의 관광객을 태울 수 있게 개조된 작은 어선급 규모의 배들이 수십척 정박해 있다. 호수로 향하는 폭이 10m가 넘는 큰 강가에 수상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수평선이 보이고 집들이 물위에 다닥다닥 떠 있다. 일몰이 장관이다. # 크메르루주 고문기구 전시 톨슬랭(Toul slang) 크메르루주가 제21보안대 건물로 사용하면서 반정부 인사 및 지식인, 그들의 자녀들을 수용하고 고문했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 시설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의 점령기간인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이곳에 끌려 온 1만여명 중 살아 나간 사람은 7명뿐이라고 한다. 감옥 내부에는 고문기구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고, 당시 희생자들이 이곳에 끌려와 찍은 얼굴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80여개 해골 위령탑 킬링필드(Killing Field) 크메르루주 집권 이전인 1969년∼1973년 사이에 40∼8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미국의 폭격으로 죽었다. 그 고통은 반미 마오이즘을 표방하며 1975년 캄보디아 혁명에 성공한 크메르루주의 집권기에 악순환이 됐다. 크메르루주는 친미 정권에 봉사한 이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10만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시민들을 프놈펜 근교인 이곳에서 처형했다. 8900구의 시신이 집단매장 되어 있는 이곳을 발견한 것은 1980년. 총알이 아까워 쇠막대기로 때려 죽이거나 갓난 아기들을 팜나무의 날카로운 잎에 던져 죽이는 만행을 자행했던 곳이다.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 높이 80여m의 위령탑을 만들었다. #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5시간 정도 날아가 밤에 내려다 본 ‘고대도시’는 불빛이 거의 없이 깜깜하다. 전력부족 탓이다. 호텔에 도착하면 최소한의 조명만 켜져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숙박시설은 충분하다. 깔끔한 1급 호텔이 50여개 정도 있고 배낭여행족들을 위한 하루 20달러 정도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호텔입구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 기사들로 늘 북적인다. 툭툭을 이용하면 저렴하고 낭만도 있지만 더운 날씨와 흙먼지, 매연을 각오해야 한다. 캄보디아 관광산업은 지난 한해 170만명의 관광객 유치라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 중 한국인 관광이 가장 많다. 캄보디아 여행은 인천-프놈펜, 시엠리아프 직항이 생기면서 3박5일 정도의 일정이 가장 많아졌다. 노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한다면 건기로 접어들고 날씨도 무덥지 않은 10월부터 3월 사이가 여행에 좋은 시기다.
  • 삼성·포스코 역시 !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세금을 내 ‘고액 납세의 탑’을 수상했다. 정부는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전군표 국세청장 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1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을 갖고 모범납세자 259명 등 600여명을 포상했다. 삼성전자는 2005 사업연도 실적 기준으로 지난해 1조 3230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해 ‘국세 1조 3000억원탑’을 수상했다. 삼성전자는 2002년부터 매년 법인세를 1조원 넘게 내왔다. 포스코도 지난해 1조 2000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해 이날 ‘1조 2000억원탑’을 수상했다. 국민은행(9000억원),SK텔레콤(6000억원), 기업은행·우리은행·삼성생명·SK(2000억원), 한국씨티은행·호남석유화학(1000억원) 등은 세금액에 맞는 납세의 탑을 받았다.이밖에 ▲금탑산업훈장 허명수 GS건설 대표이사 ▲은탑산업훈장 박양규 삼성네트워크 대표·이중구 삼성테크원 대표 ▲동탑산업훈장 임선민 한미약품 대표 등이 각각 수상했다.한편 인기드라마 ‘주몽’의 주인공 탤런트 송일국과 영화배우 이나영은 모범 납세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프로배구] 대한항공 첫 3강 PO행

    흥국생명이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대한항공은 프로 출범 후 첫 3강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통합 챔피언 흥국생명은 4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경기에서 김연경(19점)과 케이티 윌킨스(16점), 황연주(12점) 등 3각 편대를 앞세워 도로공사를 3-0으로 셧아웃시켰다. 이로써 흥국생명은 18승4패를 기록, 남은 2경기에 관계없이 챔프전에 직행했다.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1위는 지난해에 이어 두 시즌 연속. 지난 시즌 중반 팀이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김철용 전 감독에게 지휘봉을 내주고 밀려났다 이번 시즌 직전 사령탑으로 복귀한 황현주 흥국생명 감독은 뒤늦게 정규리그 우승 기쁨을 누렸다. 황 감독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정규리그 우승을 해서 기쁘다. 챔피언결정전까지 보름 동안 잘 준비해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주 동명고와 서울시립대를 거쳐 7년 간 LIG의 전신인 LG화재에서 선수로 활약한 뒤,1995년 LG정유 코치로 지도자 길에 들어섰던 황 감독은 2002년 흥국생명 코치에서 이듬해 사령탑으로 승격했다. 남자부 경기에서는 대한항공이 신영수의 21득점 맹활약에 힘입어 상무에 3-0 완승을 거두고 3강 PO 진출을 확정했다. 프로 원년인 2005년 이후 두 시즌 연속 사실상 꼴찌인 4위의 부진을 털고 첫 포스트시즌에 나가게 된 것. 대한항공의 프로 첫 PO행은 지난 3년간 차곡차곡 모아놓은 ‘새내기’라는 씨가 착실하게 움튼 결과. 신영수-김형우-강동진-김학민 등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한 ‘젊은 피’들은 프로의 옷으로 바꿔입은 뒤 하나같이 부상에 허덕이는 통에 이름값을 못했지만, 올시즌 제 기량을 나타내면서 대한항공을 ‘돌풍의 핵’으로 탈바꿈시켰다. 문용관 감독이 아우른 용병과 토종의 조화도 한몫했다.1등 공신은 역시 브라질 용병 보비. 지난 시즌 알렉스가 적응에 실패, 중도하차하는 등 ‘용병 농사’에 실패한 뒤 새로 영입한 보비는 득점과 서브, 후위공격, 오픈공격, 공격종합 등 공격 부문 1위를 석권하면서 대한항공 최고의 엔진으로 재평가됐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충남 부여에 정림사터 오층석탑이 없다면 사비시대(538∼660년) 백제의 흔적은 낙화암 전설로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탑이 사비성에서 제 모습을 유지한 거의 유일한 유적일 만큼 백제 문화는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도 나당연합군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대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반도의 오랑캐가 만리 밖에서 천상을 어지럽게 하여…일거에 평정하였다.’는 글을 1층 탑신에 새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오만한 낙서로 훼손되지 않았다면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라군사 쪽에서 보면 정림사는 사비성의 한복판에서 백제왕조의 안녕을 빌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럼에도 정림사를 폐허로 만들었을지언정 ‘소정방 기념탑’으로 탈바꿈해 버린 오층석탑은 허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백제라지만 남아 있는 석탑은 2∼3기에 불과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요즘 해체 복원작업이 한창인 익산의 미륵사터 서탑이 그것이지요. 학자에 따라서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도 백제시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제 석탑은 신라의 황룡사 구층석탑처럼 목재로 짜맞추던 탑을 석조로 번안한 것입니다. 정림사탑만 해도 부재가 149개에 이른다고 하네요. 백제 석탑의 모습을 본받은 이른바 백제계 석탑은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과 서천 비인 오층석탑,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강진 월남사터 삼층석탑 등 10여개가 꼽힙니다. 모두 백제의 옛 땅입니다. 백제계 석탑이 한결같이 고려시대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 석탑의 기술이 그대로 계승되었겠지만, 이 시기에 세워진 백제계 석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윤용혁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신라의 옛 백제땅에 대한 지배정책이 매우 완고하여, 백제계 석탑의 건립조차 불온시되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불국토(佛國土)를 표방한 통일신라에서 석탑이 갖는 대중적 영향력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백제계 석탑을 세우는 것은 백제계 주민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반국가활동’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고려시대에 백제계 석탑이 여럿 세워진 배경에도 정치적 해석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천득염 전남대 건축과 교수는 “나말여초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견훤을 비롯한 백제 추종세력에 고무 자극된 지역민들의 백제문화에 대한 향수의 발로였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를 비롯한 후대 석탑에 영향을 미친 한국 석탑의 출발점입니다. 더 이상의 조형적 발전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백제 석탑의 완결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수백년 동안이나 백제 국권회복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림사탑이 가진 또 하나의 가치입니다. 문화적 산물이 꼭 문화로 한정된 영향력만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1400년 전에 보여주었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41년만에 되찾은 신라 사리병

    40여년 전 도굴당한 이후 행방을 찾지 못했던 통일신라시대 은제 사리병이 최근 경남 합천 해인사로 되돌아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해인사 성보박물관은 27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되찾은 사리병을 오는 4월 박물관 개관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으로 만들어진 사리병은 높이 2.5㎝, 입지름 0.9㎝ 크기로 문양은 없고, 주둥이 부분이 일부 손상돼 있다. 이 사리병은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9년(895년) 해인사 일주문 밖에 세워진 묘길상탑(妙吉祥塔)에 보관돼 있다가 1966년 도굴당했다. 당시 도굴범들을 검거해 탑지 4장과 토제소탑은 회수했지만 함께 보관됐던 것으로 기록된 사리병은 행방을 찾지 못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탑지에는 ‘사리병 1개와 사리 2개(佛舍利一軀又二枚)’라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사리병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와 뚜껑은 찾지 못했다. 이 사리병은 홍제암의 종성 스님이 1970년대 중반 묘길상탑 주변에서 풀을 베다 발견, 최근까지 간직해 오다 해인사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졌다.박물관 관계자는 “종성 스님이 사리병을 발견할 당시 뚜껑과 사리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연륙교 5곳 이름 지어주세요

    ‘내고장 다리 이름은 내손으로 작명합시다.’ 전남도는 23일 섬을 뭍으로 바꿀 연륙교 5곳에 가장 알맞은 이름을 공개 모집한다. 다리 이름은 지역성과 상징성, 창의성, 보편성 등을 담아야 한다. 공모된 이름은 전남도청 홈페이지(www.jeonnam.go.kr)에 올려 네티즌들의 선호도 조사와 전남도 자체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이달 말까지 접수하고 다음달 초에 심사,4월 초에 발표한다. 대상은 올해와 내년 말까지 완공 될 ▲목포∼신안 압해도(1.4㎞)▲고흥 도양읍(녹동읍)∼소록도(1.2㎞)▲완도 고금도∼강진 마량면(0.8㎞) 등이다. 또 2011년 말까지 완공되는 ▲여수 석유화학국가산단에서 묘도(1.4㎞)▲묘도에서 광양제철소 앞(2.3㎞) 등이다. 압해 연륙교는 아치교로 막바지 공정에 들어갔다. 다리는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섬의 이미지와 목포와 신안을 의미하는 학과 갈매기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소록도 연륙교는 주탑이 두 손을 모아 비는 현수교 형태이다.섬의 생김새가 사슴과 비슷한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의 가슴아픈 사연이 숨어 있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고금·마량 연륙교는 고려청자골인 강진과 해상왕 장보고 제국을 연 완도군을 상징하는 횃불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여수산업단지∼묘도 구간 다리는 사장교로 지어 여수산단 유화공장들의 웅장함과 개방성을 표현하면 된다. 묘도∼광양제철소 구간 다리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현수교이다.이곳 광양만은 충무공의 노량해전 전적지로 충무공의 탄신해인 1545년을 기념해 교각과 교각 사이 길이를 1545m로 정했다.또 다리 밑에 거북선 머리 모양의 상징조형물을 설치해 관광자원으로 만든다.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700만 해외동포 권익 신장을”

    세계 175개국 700만 해외동포들의 권익을 신장하고 상호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민간 지원단체인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상임대표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가 출범한다. WKICA는 2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8일부터 3월2일까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창립식 및 세계총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국내외 정·재계, 학계, 교육계, 종교계, 예술계 등의 인사 150여명이 참여하는 WKICA는 ‘대한민국 해외 한인의 날’ 제정 청원을 비롯해 동포 지원사업 발굴과 교류협력 사업 전개, 참정권 등 동포 법적 지위 회복 운동 전개 및 해외동포청 설립 추진, 차세대 및 입양인에 대한 문화예술, 역사, 한글보급 운동, 동포 활동 유적지 탐방 및 복원 사업 전개, 대동포 현지 법률 서비스 지원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WKICA 세계총회에는 국내 각계 지도자와 각국 한인회 회장단, 교계 연합회 회장단, 민주평통 지회장, 세계 한인 무역인회 회장단 등 300여명이 참가한다. 대회 마지막날에는 국내외 2만여명이 서명한 ‘해외 한인의 날’ 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WKICA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송월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부의장, 서영훈 전 한적 총재, 박세직 전 88올림픽조직위원장 등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한다. 또 황우여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전용태 변호사, 임동진 극단 예맥 대표, 이근무 한인무역협회 전 회장, 김명균 로스앤젤레스 전 한인회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다.김영진 상임대표는 “미국 연방의회가 한인의 미주 이민이 시작된 1903년 1월13일을 기념, 매년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정하는 등 한민족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배려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며 “고국을 찾는 한인들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근처에 ‘한인문화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며, 재미동포 독지가가 쾌척하기로 한 100만달러로 ‘해외 한인 우정의 탑’ 건립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북한지폐 세뱃돈으로 확산

    `북한 돈이 설날 복돈?’100원짜리 북한 지폐 등 북한 돈이 설을 전후해 세뱃돈과 복돈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수집가들 사이에서 팔리던 북한 돈이 최근 중국 등을 통해 ‘기념품(?)’으로 국내에 들어와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 화폐 가치가 거의 없는 북한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약 150∼200원이 1달러 정도(암시장 거래환율)로 평가된다. 북한 돈을 소지하는 것이 현행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김일성 초상화와 주체사상탑 등 혁명사상을 담은 지폐들이 호기심 차원을 넘어 널리 확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인 지난 18일 대학생 박모(24)씨는 중국 여행 중에 구입한 북한돈을 조카들에게 세뱃돈으로 나눠줬다. 그는 “지난달 중국 패키지 여행 중 기념품점에서 북한 지폐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샀다.”면서 “함께 여행을 간 10여명도 ‘세뱃돈으로 주겠다.’며 북한 돈을 3∼4장씩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카들이 안보기념관 등에서만 보던 북한 돈을 받아들고 무척 신기해했고,‘북한에서 한달 월급이 100원’이라고 전하자 마치 큰 돈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고 말했다. 설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회사원 안모(36)씨는 거래처에서 온 연하장을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연하장에 새해 인사와 함께 100원권 북한 지폐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하장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만큼 지갑 속에 ‘복돈’으로 간직하시고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안씨는 “처음 보는 북한 돈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북한 돈이 기념품으로 전락해 남한 사회에 퍼지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오모(47)씨는 지난해 10월 중국 출장을 갔다가 베이징 공항 택시 정류장에서 조선족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서 북한돈 3세트를 1만원에 구입, 최근 지인들에게 선물했다.그는 “북한 돈 100원이면 북한 근로자 한달 월급과 맞먹는 돈이라고 하는데 의심스러웠지만 재미삼아 바꿨다.”면서 “아직도 진폐인지 위폐인지는 모른다.”고 전했다. 여대생 소모(25)씨도 백두산 여행을 갔다가 국경도시 투먼의 기념품 가게에서 북한 돈을 구입해 친구들에게 선물했다.고 전했다. 경찰 보안과 관계자는 “중국 공항 매점과 기념품 판매점 등지에서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것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국가보안법상 찬양 및 고무의 목적이 없다면 북한 화폐를 소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 돈에는 김일성 초상화와 만경대 김일성 생가, 주체사상탑, 천리마 동상 등 이념적인 것이 새겨져 있어 수집 차원을 넘어 확산될 경우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새영화] 바벨-소통에 대한 희망적 역설

    [새영화] 바벨-소통에 대한 희망적 역설

    생각의 폭을 넓히고 마음의 빗장을 열게 만드는 것이 영화가 갖는 가치 중 하나라면 ‘바벨’은 분명 이 목적에 충실한 영화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으로 세계 영화인들을 매료시켜온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바벨’에서 편견과 오해없이 진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모로코, 미국, 멕시코, 일본 등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4개의 사건이 마지막에 하나로 묶이는 독특한 형식이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물리적·심리적 소통이 힘든 사막과 도시가 주요 배경인 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발단은 모로코인 형제 유세프와 아흐메드의 철없는 장난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사격솜씨를 뽐내고자 지나가는 관광버스에 총격을 가한다. 때마침 그 버스에는 모로코 여행길에 나선 미국 중산층 부부 리처드(브래드 피트)와 수잔(케이트 블란쳇)이 타고 있었다. 수잔의 총상은 국제적인 뉴스로 떠오르고 형제가 테러범으로 지목되면서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건에 쓰인 총기의 원래 소유자였던 일본인 야스지로(야쿠쇼 고지)는 경찰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엄마의 죽음 이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둔 청각장애인인 여고생 딸 치에코(키쿠치 린코)와 어색한 관계다. 한편 멕시코인 가정부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자)는 아들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리처드의 두 아이를 데리고 국경을 넘게 된다. 세계화의 바람으로 지구촌의 거리는 전에 없이 가까워졌지만 그 심리적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영화는 9·11 테러와 신자유주의가 바꾼 세상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그리고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해의 벽이 쌓였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미국인들에게 중동 사람들은 모두 테러범이며,16년간 모범적으로 살아왔어도 멕시코 가정부는 한번만 삐끗하면 빈털터리로 강제 추방되어야 할 이방인일 뿐이다. 인파가 북적거리는 번잡한 도시에서 장애인은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영화는 절망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리처드와 수잔, 치에코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편견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지도 함께 보여준다. 바벨탑은 신에 대해 도전한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한다면 인간들이 신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해 탑을 그토록 높이 쌓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이 언어를 교란시킨 것도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껴안으라는 심오한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 ‘바벨’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희망을 담고 있다.22일 개봉,18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화가 남궁문의 자전거 성묘여행

    화가 남궁문의 자전거 성묘여행

    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설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것이었다. 또 다른 친구와 셋이서 만나기로 했던 우리의 약속은 지난 추석 이후부터 연말연시 해를 넘기면서까지 연기돼 왔다. 그래서 이번엔 나에겐 좀 멀기도 한 경기도 분당 쪽에서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약속을 하고 난 뒤부터 나에겐 하나의 객기(?)가 발동하고 있었다. 분당에 가는 김에(서울 남쪽이니까) 아예 설을 쇠러 고향으로 가볼까? 이미 자전거로 ‘땅 끝’까지 갔던 내가 못 갈 리는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부모님이 묻혀 계신 선산을 들러 ‘설을 쇠러’ 가는 것은 명목이나 구실로만 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artistdiary@hanmail.net 고향이 군산, 그러니까 서울에서 약 250㎞ 거리여서 나흘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날을 하루로 쳐도, 분당에서 고향까지는 사흘이면 가능할 터였다. 그러면 설 사흘 전에 도착할 것이니 나에겐 시간도 딱 맞는 여정이 될 것이었다. 비록 ‘한파주의보’가 내려진다는 기상예보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 첫째날 “한강 건너기가 이토록 어려워서야” 일기예보는 제대로 맞았다. 서울을 출발하던 날은 어찌나 추운지 오후에 나섰는데도 입김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서울 도심을 통과했다. 하지만 강북에 사는 내가 한강다리를 건너는 일조차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진입로 공사 중이던 영동대교를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 자체로 걸어 들어갈 길이 없었다. 그러니 좁은 교차로 진입로로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무단횡단하는 기분으로 진입로에 접어들었다. 크고 작은 차량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도로 끝으로 붙이면서 큰 차가 지날 때는 멈춰 섰다가 차가 지나면 얼른 가는 방법을 써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서울의 한복판인 한강 다리를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없다는 것. 이같은 현실은 우리나라가 곧 ‘선진국’ 진입을 목표에 두고 있다는 구호와 비교할 때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강 다리를 건넜어도 어려움은 남아 있었다. 도심을 피하기 위한 한강변의 자전거 도로 진입통로를 찾는 데 보통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안내판은 눈에 띄질 않았고, 인근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길도 있어요?” 하고 오히려 나에게 되묻기까지 하거나,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 위 아래로 훑어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다가 결국 동네 꼬마 아이를 통해 겨우 통로를 찾아 잠실 탄천의 자전거 도로만을 타고 분당까지 가는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 둘째날-공주까지 달리니 다리는 무뎌지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던 첫 밤은 용인 수지의 찜질방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 23번 국도를 타고 오산을 거치면서 다시 1번으로 바꿔 탔고 평택을 지나 천안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운 이유도 있었지만, 수도권과 경기도를 벗어나는 많은 교통량의 길은 나에게 ‘고향 가는 기분’을 느낄 여유마저 주지 않았다. 어떤 구간은 도로공사 때문에 달랑 차도 2차선 구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위험한지 도로 옆 무성한 마른 풀숲으로 자전거를 억지로 끌고 올라 지나기도 했다. 그렇게 차량에 정신을 빼앗기면서도 자전거를 달려 천안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3시쯤이었다. 빨리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천안에 아무 연고지도 없는 내가 찜질방에 들어가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다음 도심인 충남 공주까지 가기로 일정을 수정했다. 그러면 하루를 앞당겨 군산에 도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100㎞가 훨씬 넘어 뻐근한 다리가 걱정됐다. 그래도 짧기만 한 겨울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므로 서둘러 앞만 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다리의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무엇보다도 중간의 ‘차령고개’를 오르기가 힘에 부쳤다. 게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추위는 한층 매서웠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결과 시가지의 전깃불이 하나 둘 들어올 무렵, 나는 공주 진입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내 다리는 별 감각이 없었다. ■ 셋째날-정림사지 5층탑엔 고적함만 오롯이 공주 찜질방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엷은 구름마저 껴 더욱 추웠던 사흘째 아침을 맞았다. 몸을 떨며 출발을 하면서도, 이제 ‘부여’만 지나면 바로 고향일 것 같은 심정이었다. 공주 도심 터널을 지나자 백마강변으로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그 길을 택했다. 그런데 불어오는 강바람에 어찌나 추운지 내 손은 거의 마비 상태가 돼 갔다. 좋은 풍광의 언덕 강변길을 달리는 상쾌함은 고사하고, 시린 손 때문에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있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겉옷의 지퍼를 연 뒤, 손을 양쪽 겨드랑이 속으로 밀어 넣곤 했다. 그러면 손의 한기가 몸에 전해져 추위에 또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이번 여정은 정말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추위와 싸우며 달려 부여에 도착했다. 그나마 햇볕이 나오는 점심 무렵이어서 추위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었다. 부여의 시장에 찾아들어가 한기와 허기를 달래려 해장국을 먹었다. 갓 무쳐온 봄동 김치가 상큼하게 맛있었다. 그리고 시장 통에는 설을 맞아 하얀 가래떡을 뽑아내느라 분주한 떡집들이 몇 곳 눈에 띄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래떡을 보며 저절로 설 기분에 젖어보기도 했다. 부여에 온 김에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정림사지 5층탑’만은 둘러보고 싶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품과 안정감이 느껴져 예전부터 좋아하는 문화유적이다. 정림사지를 찾아가니 명절을 앞둔데다 추운 겨울이어서인지 담으로 둘러싸인 그곳엔 나 혼자뿐이었다. 이제 두어 시간 달려 웅포대교를 건너기만 하면 우리 선산에 도착할 것이었다. 남향인 선산엔 햇볕이 따스하리라. 내가 어디에 있든 항상 마음이 향하는, 부모님이 묻혀 계신 곳.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이제 추위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안 되었다. 걸을 땐 조금 절뚝거리며 뻐근했던 다리에도 힘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설’과 ‘세배’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며 어느덧 부모님 산소 앞에 멈춰섰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어머니 저 웃기죠? 서울에서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사흘 걸려서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 글쎄, 제가 뜬금없이 지난 가을부터 자전거를 타고 이 나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지요. 이번엔 설도 쇨 겸 어머니를 뵙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자전거로 와버렸습니다. 어머니한테 오는 길이어서 그런지 가슴이 설레기까지 하던 걸요. 나흘은 걸릴 거라고 계산을 했던 길인데 어머니를 뵌다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하루를 앞당겼습니다. 어머니, 춥고 먼 길을 어떻게 달려왔느냐며 이 아들의 언 손을 덥석 잡으며 어머니의 체온으로 비벼주실 광경을 문득 생각해 봅니다. 아, 세월은 흘러 이렇게 세상도 변하고, 부모님 손을 잡고 여기에 따라오던 제가 벌써 50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기까지 왔던 세월보다, 앞으로 저에게 남은 세월이 훨씬 적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 뒤에도 누가 이렇게 찾아오긴 할까요? 젊었을 땐 못 느끼면서 살아왔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제가 부모님께 큰 죄를 저질렀지요. 나중에 여기에 찾아 올 사람을 만들어 놓지 못해서 말입니다. 어머님, 아무튼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시고 편안히 계십시오. 그럼 내년 설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렇게 세배 올립니다.’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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