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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총리, 한용운·오세창 선생 묘소 첫 참배

    이낙연 국무총리는 1일 오전 3·1운동 100주년인 해를 맞아 서울시 중랑구 망우공원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한용운·오세창 선생의 묘소와 항일의병 13도 창의군 탑을 참배했다. 역대 총리중 한용운·오세창 선생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이 총리가 처음이다. 지난 1월 손병희 선생 묘소와 지난달 26일 백범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한 데 이어 이번에 망우공원묘지를 찾았은 것은 100년 전 3월 1일 당시 뜨거웠던 만세 열기를 담아 애국선열들의 헌신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다. 만해 한용운 선생과 의창 오세창 선생은 1919년 3월 1일에는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독립선언식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두 선생 모두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과 대통령장을 각각 받았다. 이 총리는 일제 침략에 맞서 서울을 탈환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전국의 13도에서 모인 의병들이 서울진공작전을 펼친 것을 기념하고 순국한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13도 창의군 탑에도 들러 참배했다.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유공자 후손의 DNA를 확보하여 묘지를 확인하는 사업과 국외에 안장된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한용운·오세창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의 뜻을 기리자 학생과 국민들이 보다 쉽게 3·1독립선언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본을 보급하고 있다. 최광숙 선임기자@seoul.co.kr/
  •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된 해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활약상을 되새길 전국의 역사적 장소들이 후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짙게 배인 7개 지역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우리 근대사가 기억하는 선조들의 뜨거운 함성과 눈물에 귀 기울여볼 때다.① 서울 독립문… 역사박물관·경희궁 등 일제강점기 흔적 서울에는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을 전시한다.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아픈 역사가 서린 궁궐이다.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이 거주했던 궁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상이었다. 경희궁을 나서면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이 금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도심재생예술을 입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 등으로 시간 여행이 이어진다. 3·1운동 열사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딜쿠샤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 서울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위창 오세창 넋 기린 곳 망우리공원은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소파 방정환 등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연보비를 읽다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9월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이곳은 20년 전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25만여평)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는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숲이 우거져 고즈넉한 곳에 5.2㎞ ‘사색의 길’도 조성됐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③ 충북 괴산 홍범식 고택… 1919년 1500명의 함성 생생히 독립운동가 홍범식은 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탄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택에 들어서면 홍명희가 3·1운동을 준비했다는 사랑채를 만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1500여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안채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봤다면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괴산호의 절경이 아름다운 연하협구름다리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④ 충남 천안 유관순 생가와 7개 전시관 있는 독립기념관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높이 51m ‘겨레의 탑’과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를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자료와 체험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주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핑 공간에는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시설이 있어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병천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체포돼 옥사할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했다. 가까운 곳에 그의 영정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⑤ 전남 완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본섬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소안도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린다. 함경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땅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객선 이름부터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이곳이 어떻게 항일운동 성지가 됐는지 알 수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과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을 알게 된다. 인구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도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성지였음을 뒷받침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해변 등도 소안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다.⑥ 경북 안동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지사의 투쟁사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사를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유림이 생겨났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고문시설인 벽관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흥미롭다. 기념관을 나서면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생가 등이 있다. 안동의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임청각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가까운 월영교의 밤경치도 놓치면 아깝다.⑦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도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밀양은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으로 항일 독립운동 요람이다. 의열단은 식민지배자와 민족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 등 식민지배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모든 투쟁의 배후에 김원봉이 있었다. 김원봉이 태어난 집터에 지난해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영상과 자료들로 그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대는 밀양의 만세운동으로부터 태극기 변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이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밀양 관아지와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되는 장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촛불 대신 횃불로… 3·1 만세는 밤에 외쳤다

    촛불 대신 횃불로… 3·1 만세는 밤에 외쳤다

    시위자 독립된 줄 알고 경찰에 으름장 인쇄술 낮아 독립선언서 배포 어려워 장터 아닌 대부분 야간 산상봉화시위 정형화된 교과서 너머의 역사 생생히우리가 배운 ‘역사’란 대개 특정 사건의 일부이거나, 특정 시선에 따라 편집된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사건의 주인공은 주로 사회를 이끌던 고위 관리들일 테고, 사건들은 대개 정치, 외교, 경제 등의 시선으로 잘 정리됐을 터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역사에서는 특정 사건이 ‘기승전결’에 따라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고 마무리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러니 역사 공부가 재미없을 수밖에. 좀더 나은 점수를 받고자 사건 발생 연도와 배경, 그리고 결과와 의미를 달달 외웠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와 굉장히 다른 역사의 면면을 마주하면 ‘어?´ 하고 놀라게 된다.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봇물 터지듯 관련 책이 쏟아진 가운데,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신간 ‘3월 1일의 밤´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교과서는 3·1 만세운동이 왜 발생했는지, 우리는 어떤 저항을 했고, 일제는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알기 쉽게 알려준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죽은 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모두 기다렸다는 듯 한마음으로 태극기를 꺼내 들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곧바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진행됐다고. 그러나 좀더 알아보면 고종은 별반 힘없는 왕에 불과했고, 민중은 그의 장례식을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극기가 정작 3·1 만세운동에선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익히 알려진 터다. 최근 나오는 역사책이 이처럼 교과서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간 수준이라면, 권 교수의 신간은 교과서보다 두 단계 정도 더 들어갔다 할 수 있다. 예컨대 3·1 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민중의 사고방식은 어땠을까. 너도나도 벌이는 만세 시위에 대개는 조선이 당장 독립된 줄 알았다. 수백명이 집단으로 경찰서와 헌병분대를 찾아가 “조선은 독립했으니 일본은 물러서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일제의 고문에 “나는 돈 준다고 해서 만세를 불렀다”거나 “강압에 못 이겨 만세를 불렀다”고 한 이들은 풀려나고서 또다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시위문화 역시 익히 알던 모습과 다르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소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대개 장터를 꼽지만, 촌락공동체에서는 산상 봉화시위가 주를 이뤘다. 특히 충청도에서의 시위는 거의 다 야간 봉화시위였다. 1919년 3월 31일 아산군에서만 50여곳에서 2500여명이 횃불을 올리고 야밤에 만세를 외쳤다. 밤을 새우고, 혹은 2~3일 연거푸 목이 터져라 산에서 만세시위를 하다 마을로 내려오는 사례가 많았다.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시위보다 더 재밌는 모습도 많았다. 경남 함양군 함양시장에서는 30세 농민 김한익이 장터 한가운데 소금 가마니를 쌓아 둔 곳에 올라가 만세를 외쳤다. 평안북도 선천에서는 신성학교 교사 김지웅이 고무신장수가 끌고 온 수레 위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인쇄해 전국에 뿌리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사실 당시 등사기는 구하기도 어렵고 인쇄기술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일제의 감시도 심했다. 이 때문에 유생이었던 송준필은 서당의 마룻장을 뜯어내 통고문을 인쇄하기도 했다.신간은 이처럼 3·1 만세운동 전후 20년사의 세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엮어 냈다. 시간에 따른 일반적인 서술에서 벗어나 ▲선언 ▲대표 ▲깃발 ▲만세 ▲침묵 ▲약육강식 ▲제1차 세계대전 ▲혁명 ▲시위문화 ▲평화 ▲노동자 ▲여성 ▲난민 ▲이중어 ▲낭만 ▲후일담 모두 16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저자는 10년 전 3·1 만세운동과 관련한 당시 신문조서를 읽다가 자신이 생각하던 역사와 다른 모습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다. 3·1 만세운동에 관해 좀더 알고 싶은 호기심에 저자는 방대한 각종 사료로 향했다. 그 10년 공부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례, 이를 분석하는 저자의 깊이는 어느 역사학자 못지않다. 특히 3·1 만세운동 당시 사상 흐름이라든가,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인 문학 관련 자료들에 관한 분석 등이 그렇다. 3·1 만세운동에 관해 교과서 수준의 정형화된 역사 너머가 궁금하다거나, 그저 그런 역사책에 갈증을 느꼈던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주 남산 ‘무단 분묘 이전’ 지지부진…국립공원공단 몸부림 역부족

    경주 남산 ‘무단 분묘 이전’ 지지부진…국립공원공단 몸부림 역부족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남산에 공동묘지처럼 조성된 분묘를 언제까지 이장(移葬) 할꼬’ 국립공원공단이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남산에 공동묘지처럼 조성된 분묘 이장을 놓고 몸부림 치고 있다. 28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2011년부터 경주 남산지구에 조성된 분묘 6200여기를 대상으로 이장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립공원이자 사적지이기도 한 남산지구 문화 및 생태경관 복원을 위한 절박한 사업으로 판단됐기 때문. 국보 312호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용장사지 삼층석탑 등 보물급 문화재 13점 등 문화유적 672점(절터 147곳, 불상 118기,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이 곳곳에 산재한 경주 남산은 예로부터 천하 명당(名堂) 자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암매장 등 분묘가 마구 조성되면서 문화유적들이 훼손될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사업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지난해까지 8년간 국비 등 25억 5000만원 투입해 700여기의 분묘를 이장하는데 그쳤다. 전체의 11.3%에 해당된다. 공원공단의 분묘 이장 사업에 대한 정부 및 국민들의 낮은 관심으로 공단의 적극적인 예산 확보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해서다. 이 사업은 매년 희망자에 대해 기당(단장, 합장, 삼합장 등 매장 방식에 따라) 200여만~500여만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올해는 5억원을 들여 분묘 125기를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현재 경주국립공원사무소(054-778-4111)에서 신청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주 남산 분묘의 체계적인 정비와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할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비판을 받고 있다. 문화재청과 경북도 등은 2014년부터 뒤늦게 분묘 이전 사업에 참여해 올해까지 5년간(2017년 제외) 7억 8000만원 지원에 불과했다. 특히 남산지구 국립공원 전체 면적(21.85㎢)의 45%를 차지하는 9.86㎢(일부 사적지 포함)를 보유한 경북도는 고작 7600만원에 그쳤다. 이런 추세라면 남산 전체 분묘 이전에는 대략 70년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경주지역 문화재 관련 단체들은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 국립공원공단이 국비 확보에 공동 대처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남산은 1969년 12월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와 1985년 사적 제311호로 지정돼 관련 법에 따른 발굴 등을 제외한 각종 행위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안동·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포스코, ‘주니어 인성교실’로 지역사회에 꿈·희망 심는다

    포스코, ‘주니어 인성교실’로 지역사회에 꿈·희망 심는다

    포스코인재창조원은 지난 12일과 13일 각각 포항 청림초등학교와 광양 제철초등학교를 방문해 6학년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주니어 인성교실-꿈과 희망 With POSCO’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주니어 인성교실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실현하고자 포스코 직원들이 초등학교를 방문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어린이를 육성하는 교육 나눔 활동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번 활동은 포스코인재창조원과 포스코 직원이 강사로 나서는 재능기부로 운영돼 그 의미가 컸다”면서 “사내 공모에서 50여명의 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힐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주니어 인성교실의 교육은 교육부에서 인증받은 인성 전문 프로그램인 ‘나, 너, 우리’를 활용해 진행한다. 초등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인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활동 중심의 3시간 과정으로 구성했다. 1교시는 장점피자 만들기를 통해 스스로 자아 존중감을 높이고 2교시는 메시지 전달 게임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소통을 익히며 마지막 3교시는 종이탑 쌓기 활동을 통해 창의성과 협동력을 키운다. 교육 강사로 나선 포스코인재창조원의 한 직원은 “회사에서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줘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직접 해보는 뜻깊은 하루였다”면서 “어린이들의 인성을 성장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포스코인재창조원은 주니어 인성교실 활동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전문 인성 강사로 육성해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교육 나눔 활동을 전개하고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다음 달부터 오는 11월까지 포항과 광양 지역 희망 초등학교를 방문해 500여명의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인성교실을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포스코는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 실천의 일환으로 ‘기업시민봉사상’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룹사, 협력사, 외부 사회공헌 단체들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기여도, 임직원 자발적 참여, 재능봉사 활성화 및 1% 나눔 참여 정도 등을 사내·외 전문가들이 종합 평가해 수상자를 매년 선발한다. 이에 지난달 31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기업시민봉사상 첫 시상식에서 포항시에 소재한 사회복지법인 ‘기쁨의 복지재단’을 비롯해 포항제철소 클린오션봉사단, 광양제철소 반딧불전기재능봉사단, 그룹사 엔투비 봉사단, 해외법인 POSCO-Mexico의 POSAMI 봉사단, 협력사 유니테크 봉사단 등 총 6개 단체를 뽑아 총 3500만원의 상금을 줬다. 기쁨의 복지재단은 지난 2009년부터 포항제철소의 지역 사회공헌 파트너로 참여하기 시작해 지난해 포항지역 아동·청소년 돌봄과 다문화가정의 일자리 제공에 기여하고, 가정폭력 피해자 및 독거노인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공로를 인정받아 포스코 사회공헌 분야 외부단체 첫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포스코 관계자는 “빠른 시간 내에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기업시민 관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운영하고, 직원들의 활동 방향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라며 “1%나눔재단은 기부자와 함께하는 활동, 임직원들이 공감하는 사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은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능봉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의정 포커스] “응봉산~서울숲 잇는 출렁다리 만들어 랜드마크로”

    [의정 포커스] “응봉산~서울숲 잇는 출렁다리 만들어 랜드마크로”

    “응봉산과 서울숲을 잇는 출렁다리를 세워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성수(64·더불어민주당·응봉동, 성수1가1동, 성수1가2동, 성수2가1동, 성수2가3동) 서울 성동구의원의 제안이다. 이 구의원은 27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 꾸준히 필요성을 제기,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관심을 얻어 꼭 추진하고 싶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구의원은 산악회를 운영하며 전국 명산을 두루 찾아다녔다. 그러다 충남 청양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 강원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도심에도 지역 특성을 살린 출렁다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어 “응봉산 꼭대기에서 서울숲까지는 직선거리로 600~700m쯤 되기 때문에 길이는 문제 되지 않고, 서울숲엔 계단식으로 탑을 올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서울숲에 부영에서 6성급 호텔을 짓고 있어 앞으로 관광객도 많이 올 것”이라며 “출렁다리로 서울숲 위를 건너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서울숲은 세계적 관광명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건은 예산과 중앙정부·서울시의 관심과 의지다. 구 예산과 의지만으론 할 수 없다. 이 구의원은 “지역 국회의원과 중앙정부, 서울시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추진하긴 힘들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구의원은 서울시에 제안을 전달하는 것 자체부터 상당히 힘듭니다. 서울시를 위해서도 좋은 아이디어인 만큼 시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트럼프 “2차회담 매우 성공적일 것” 김정은 “훌륭한 결과 확신”

    트럼프 “2차회담 매우 성공적일 것” 김정은 “훌륭한 결과 확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소를 띄며 8개월 만에, 정확히는 260일만에 다시 손을 맞잡았다. 지난해 1차 회담 후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커진 회의론을 이겨내고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것이다. 위기마다 톱다운으로 기회를 만들어낸 두 정상이 이번에도 하노이 공동선언으로 새로운 길을 열 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27일 6시 30분(한국시간 8시 30분) 만난 두 정상은 성조기와 인공기 앞에서 악수로 첫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김 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 맺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언에 김 위원장이 웃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어 두 정상은 자리에 앉아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김 위원장은 “생각해보면 어느때 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신뢰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에는 보다 모든 사람들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 만들어질거라 확신하고, 그렇게 되길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회담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하고 이번 회담에서도 큰 진전이 있을 거라고, 성공적인 좋은 성과가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왔고 유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북한이 굉장히 큰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 지니고 있다”며 “북한이 앞으로 경제적 발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의 보도진을 바라보고 “내일 큰 회담이 있다”며 “내일 중에 기자회견장에서 보겠다”며 기자회견을 열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두 정상은 통역을 대동한 단독 회담을 시작했다. 양측 실무협상팀이 새해초부터 협의를 거듭하며 만들어 온 하노이 공동선언에 대해 두 정상이 가장 핵심적인 ‘마지막 터치’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어 7시쯤부터 친교 만찬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김 위원장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을 동반했다. 외교소식통은 “이날 만찬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들어간 것은 외교적 화법으로 정리해야 할 탑다운 협상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친교 만찬으로 정상회담을 시작한 것은 처음이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하프타임]

    女배구대표팀 수석코치에 강성형 내정 한국배구 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스테파노 라바리니(40) 감독을 보좌할 여자대표팀 수석코치로 강성형(49) 전 KB손해보험 감독이 내정됐다. 계약은 2020년 2월까지 1년이지만 한국이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에 오르면 연장된다. 협회는 또 여자대표팀 트레이너에 김성현(48) 전 여자대표팀 코치를 선발했다. 황선홍 지휘 中옌볜, 자금난에 해체 위기 북경일보 등 중국 언론은 26일 황선홍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중국 갑급(2부)리그 옌볜 푸더가 자금난으로 해체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2억 4000만 위안(약 401억원)의 세금을 내지 못한 구단은 그동안 당국과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논의했으나 결국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FC서울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지난해 12월 옌볜 감독으로 선임돼 현재 국내에서 전지훈련 중인 황 감독의 거취도 불확실해졌다. 그는 “경황이 없다. (중국에) 들어가서 정리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 하노이의 경복궁… 흥망성쇠 담긴 유산

    하노이의 경복궁… 흥망성쇠 담긴 유산

    베트남 하노이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탕롱(Thang Long, 昇龍)왕궁은 서울로 치면 경복궁에 해당한다. 1009년 리궁윈(李公蘊)이 리 왕조를 수립한 후 수도를 지금의 하노이인 탕롱으로 옮겼고 탕롱왕궁에서 정사를 보기 시작했다. 이후 하노이는 왕도로 번성했고 탕롱왕궁은 베트남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1802년 응우옌 왕조가 성립되면서 수도를 후에로 옮길 때까지는 말이다. 응우옌 왕조는 리 왕조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탕롱왕궁의 일부를 허물고 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작은 성을 축조했다. 19세기엔 베트남도 서구열강의 표적이 되었고 188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식민지 기간에 다시 탕롱왕궁이 행정 중심지가 됐지만 더 많은 것이 파괴되고 말았다. 1897년 프랑스는 군사 기지를 만들기 위해 탕롱왕궁의 성벽을 대부분 파괴했고 그나마 군용 관측탑으로 쓸 수 있는 하노이 깃대와 북문과 남문 정도만 남겼다. 북문의 탄흔은 당시 상황을 말해 준다. 대신 프랑스는 하노이에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하우스와 롱비엔 다리, 하노이 역 같은 프랑스 건축물을 지었다. 탕롱왕궁은 ‘하노이의 경복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방문자가 많지 않아 언제나 조용하다. 왕궁 전체를 아우르는 노란색은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金星紅旗) 한가운데 별 색깔과 닮았다. 탕롱왕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엔 아치형의 입구가 다섯 개 있다. 가장 큰 가운데 문은 황제가, 중간 크기의 문은 왕족이, 끄트머리의 작은 문은 하급관리가 드나들었다. 들어서면 아치가 가로로 수십 개 이어진 콜로니얼 양식의 노란 건물이 나타난다. 주변에서 발굴된 도자기나 지붕 일부분 같은 유물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다. 지하벙커로 들어가면 베트남 전쟁 때 지휘사령부로 쓰인 사무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포탄과 군복, 당시의 전화기까지 전시돼 있다. 황제의 집무실이자 침소로 쓰였던 궁전은 프랑스 부대가 포병본부를 짓는다고 모조리 파괴해버렸다. 용 조각만 덜렁 남은 황제의 계단은 화려했던 시절이 떠올라 쓸쓸하다. 이리저리 흩어진 노란색 건물에는 베트남의 흥망성쇠, 중국과 프랑스 문화, 미국과의 투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 외곽에선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탕롱왕궁은 중세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진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탕롱’은 ‘승천하는 용’을 의미한다. 베트남은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까닭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가 탕롱왕궁을 차지했던 리 왕조의 후손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베트남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박항서 감독의 공이 가장 크지만. 지금 세계의 눈과 귀가 베트남 하노이로 쏠리고 있다. 하노이가 세계평화를 위해 만난 동서양의 두 용(龍)을 훨훨 날게 할 무대가 될지 기대된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태국 방콕에서 부탄행 항공기로 갈아탄 지 약 세 시간 반. 창 밖으로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가 보였다. 부탄이었다. 비행기는 험준한 산골짜기 사이를 파고들며 곡예하듯 비행해 파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2235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한 곳이다. ●곳곳 험준한 산골짜기·비포장 도로·아찔한 협곡 부탄 여행의 첫 목적지는 수도 팀푸였다. 공항에서 팀푸로 가는 길, 비포장 도로는 아찔한 협곡 사이를 지났다. 실수하면 아득한 벼랑 아래로 차는 굴러떨어질 것이다. 가이드는 부탄의 길이 대부분 이렇다고 설명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버스는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른다. 부탄 땅의 대부분은 비탈과 협곡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초지는 국토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서자 극심한 교통정체로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팀푸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받은 부탄의 첫인상은 부탄이라는 나라가 상상했던 것처럼 신비하고 고요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 팀푸에는 멋진 손동작으로 수신호를 하는 경찰관이 있었고,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라테를 파는 카페가 있었고(전통 복장을 입은 금발의 외국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좀 신비로웠다), 부탄 록밴드의 공연을 보며 춤을 출 수 있는 클럽도 성업 중이었고, 잘생긴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었다.부탄에서의 어리둥절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섰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팀푸의 따시최종. 종(Dzong)은 행정과 종교를 관할하는 성을 일컫는 말이다. 티베트 침공에 대비해 세웠는데 지금은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부탄만의 독특한 복합 청사다. 따시최종은 부탄에 있는 수십 개의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정부청사 역할을 한다. 2008년 이전에는 궁궐로 사용됐으나 이후로는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및 사원으로 용도가 변했다. 4대 왕이 과감히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다. 따시최종과 함께 꼭 가봐야 할 곳은 푸나카에 자리한 푸나카종이다.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부탄 전역의 수십 개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전통 옷을 입고 술을 즐기는 부탄 사람들 부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복장을 입는다. 남자는 우리 한복과 비슷한 ‘고’를 입고 서양식 구두를 신는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이르는 X자형 띠인 ‘캄니’를 두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원이나 정부 기관에 갈 때 착용한다. 일종의 예를 갖춘 정장이다. 여자는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치마인 ‘키라’를 입는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천에는 독특한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공무원과 호텔 종업원 등은 반드시 전통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부탄 사람들의 식탁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밥에 고기 요리를 포함한 서너 가지 반찬을 곁들인다. ‘에마다씨’는 빨간 고추에 산양 치즈를 더한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다. 고기 요리도 즐긴다. 시내에는 가공된 고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정육점도 많다. 불교 국가인 부탄에서는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고기를 모두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 사람들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술을 즐긴다.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인 아락을 직접 담가 먹기도 하고 위스키와 맥주 등도 많이 마신다. 부탄 맥주인 드룩 비어는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부탄은 2007년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한 세계 최초의 금연 국가지만 외국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 운 좋게 부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레포츠인 활쏘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부탄 말로 ‘다체’라고 부르는 이 활쏘기는 부탄의 국민 스포츠다. 표적과의 거리는 무려 140~150m. 올림픽 양궁 종목 50m의 세 배에 이른다. 형식은 양궁보다는 국궁과 닮았다. 전통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마주 보고 과녁에 차례로 활을 쏜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과녁을 기가 막히게 맞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점수가 잘 나오면 같은 편 선수들이 환호를 보내고, 못 나오면 상대편 선수들이 놀리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불심으로 가득한 나라 부탄은 불교 국가다. 국민 모두가 불교신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부탄의 불교는 8세기쯤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파드마삼바바가 전했다.가장 유명한 사원은 ‘탁상곰파’(탁상사원)다. 부탄을 광고하는 포스터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8세기 호랑이를 타고 날아온 파드마삼바바가 아득한 절벽 위에 이 절을 짓고 수도했다고 전한다. 해발 3140m에 자리잡고 있다. 탁상은 부탄말로 ‘호랑이의 둥지’라는 뜻이다.팀푸 중앙에는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탑인 ‘메모리얼초르텐’이 있는데 팀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탑을 세 바퀴 돌고, 퇴근할 때 다시 세 바퀴 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토록 간절한 걸음과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고,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탄 서부 지역 왕디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은 부탄 불교의 시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진 것으로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밀교다. 파드마삼바바는 경전을 부탄 곳곳에 숨겨 놓았는데 네젤강 사원은 그 가운데 하나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왕디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사원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은 아마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그다지 모습이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읊조리는 경전 역시 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치미사원도 재미있는 곳이다. 푸나카 치미 마을에 있는 남근을 숭배하는 독특한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기이한 행적으로 유명한 둑파퀸리(1455~1529)라는 스님의 남근이 모셔져 있다. ‘5000명의 여자를 취한 자’, ‘히말라야의 미친 걸승‘으로 불렸던 둑파퀸리는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깨달았다는 독특한 수행법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둑파퀸리는 입적하면서 자신의 남근을 잘라서 그 속에 영험한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이 남근은 사원에 잘 모셔져 있는데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들에게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상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사색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흔히들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다. 행복지수 세계 1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1999년 부탄의 국가행복지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행복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탄행복연구소’ 도지펜졸 소장은 “부탄은 국민의 행복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고 국가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도 국민의 행복과 부합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은 10~15명으로 구성된 ‘국민총행복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총점 78점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이를 위해 부탄 정부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정책을 펴고 있다. 천연자원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헌법에 숲을 전국토의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가축 방목과 벌채, 채광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부탄은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약 34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탄을 여행해 보면 이들이 절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넉넉하고 친절한 부탄 사람들 앞에서 한국의 내가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절대로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죠.” 도지펜졸 소장의 말이 부탄 여행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여행수첩 부탄은 우리나라 면적의 약 40%,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넓이다. 언어는 종카어와 영어. 통화는 눌트룸을 사용한다. 1눌트룸은 약 17원. 달러로 바꿔 가서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ATM 가능.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로 6~8월은 우기다. 부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방콕이나 델리,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은 개별 여행이 금지돼 있다. 1일 최소 200달러의 체류비를 내고 부탄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체류비에는 숙박, 교통, 가이드, 식사 등이 포함돼 있다. 부탄문화원(02-518-5012)은 다양한 행사와 수교 프로그램을 진행, 운영한다. 여행에 관한 문의는 부탄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 또 컨베이어, 또 비정규직…당진 현대제철 50대 참변

    또 컨베이어, 또 비정규직…당진 현대제철 50대 참변

    컨베이어 벨트 정비 중 끼어 숨진 듯 文대통령·김씨 유족 만난지 불과 이틀 정부 ‘위험의 외주화’ 근절 의지 무색 같은 공장서 10년간 33명 숨져 논란지난해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20대 하청업체 근로자 김용균씨가 사고로 숨진 데 이어 이번엔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50대 외주업체 근로자가 사망하는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용균씨 유족을 만나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지 이틀 만이다. 20일 오후 5시 30분께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철광석을 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 부품 교체작업 중 이모(50)씨가 숨졌다. 이씨는 컨베이어 벨트 정비를 전문으로 하는 한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다. 이씨는 이날 동료와 함께 컨베이어 벨트 표면 고무 교체작업을 하던 중 인근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컨베이어 벨트 정비작업 중 이씨가 보이지 않아 현장 주변을 찾아보니 인근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채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이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는 조사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김용균씨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씨가 현대제철이 아닌 외주업체 소속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대다수 대기업은 많은 분야에서 외주업체를 활용하고 있다. 김용균씨 사고 이후 안전이나 보안 등 중요하거나 위험한 분야에서 외주업체를 쓰지 말고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2007년부터 10년 동안 산업 재해로 33명이 숨졌다. 2016년 11월 28일엔 이 공장의 환습탑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노동자 1명이 기계에 끼어 숨졌고, 2010년 5월에도 같은 환승탑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외주업체 근로자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같은 해 6월 울산 고려아연 황산 유출 사고, 2017년 8월 경남 창원 STX 선박 폭발사고, 2017년 12월 서울 지하철 온수역 선로 정비 중 사고, 2018년 1월 포스코 포항제철 가스질식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비정규직의 비극…당진제철소서 50대 하청 노동자 사망

    비정규직의 비극…당진제철소서 50대 하청 노동자 사망

    충남에 있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50대 협력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홀로 일하다 사망한 이후 ‘위험의 외주화’ 현상을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됐지만, 협력업체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이번에도 막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20일 오후 5시 30분쯤 이 제철소에서 이모(50)씨가 동료 3명과 철광석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의 표면 고무를 교체하다가 근처에 있던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숨졌다. 이씨는 가동을 중단한 컨베이어벨트에서 교체 작업을 하다 부품이 바닥나자 공구창고로 새 부품을 가지러 갔다가 인근 컨베이어벨트에 빨려 들어가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와 함께 작업한 한 동료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공구창고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진 뒤 계속 안 보여 찾아보니 다른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쓰러져 있어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자 현대제철은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벨트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대전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근로감독관을 보내 사고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동료들과 제철소 관계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씨는 이 제철소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하지만 이씨가 하던 일은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개정된 산안법은 유해·위험성이 매우 높은 작업에 대해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원청(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했다. 또 원청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정비 업무와 같이 발전소나 제철소 내 기계·설비 운전, 정비, 점검, 유지·보수·관리 등의 업무는 도급 금지 업무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노동자 30여명이 각종 사고로 사망했다. 2017년 12월 20대 노동자가 설비 정기보수를 하던 중 갑자기 작동한 설비에 끼여 숨졌고, 2016년 11월 이 공장의 환습탑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2010년 5월에도 같은 환승탑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혼자산다’ 박나래, 알차게 보내는 템플 스테이 ‘완벽 적응’

    ‘나혼자산다’ 박나래, 알차게 보내는 템플 스테이 ‘완벽 적응’

    ‘나혼자산다’ 박나래가 속세를 벗어 던지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15일 방송되는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박나래가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템플 스테이의 남은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템플 스테이의 첫날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일어난 박나래는 더벅머리와 빵빵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기상 규칙을 걱정하던 것과 달리 푹 자고 일어나 완벽하게 속세를 떨쳐낸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이어 뷔페식으로 차려진 아침밥을 접시에 가득 담아 온 얼굴 근육을 쓰며 음미한다. 김 가루가 뿌려진 밥을 또 한 번 김으로 감싸 하루 동안 먹지 못했던 나트륨을 채운다. 또한 미끌거리는 도토리묵과 젓가락 싸움을 시전,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한다. 박나래는 새벽부터 온종일 내리는 눈을 치우기 위해 나무 빗자루로 고군분투한다. 전현무의 여름 학당에서 남다른 팔근육을 자랑했던 박나래답게 빗자루질 한 방으로 탑 주변에 쌓인 눈을 깔끔히 정리해 감탄을 유발한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치워도 소용없는 상황에 닥친 박나래는 이를 유심히 지켜보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던져 웃음을 자아낼 예정이다. 한편, MBC ‘나혼자산다’는 15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겨울, 옛사랑을 추억하다 - 춘천 청평사(淸平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겨울, 옛사랑을 추억하다 - 춘천 청평사(淸平寺)

    “섬 속의 절” 춘천 소양호 건너편, 오봉산(779m) 기슭에 자리 잡은 청평사는 애당초부터 연인들을 위하여 만든 절집인 듯하다. 춘천까지 기차를, 소양호에서는 다시금 배를 갈아타고 들어갈 수 있는 청평사는 예로부터 산과 호수를 함께 거닐 수 있는 호반산행지이자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아울러 청평사는 떠나간 옛 인연의 아픈 사랑을 떠올리기에는 더더욱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옛날 옛적, 그 먼 시간을 거슬러 지금까지 슬픈 사랑의 전설이 청평사에는 전해져 내려온다. 요새 사람들 가늠에는 뜬금없는 이별 이야기 같지만 스토리 하나는 탄탄하고 국제적(?)이다.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중국 당나라의 태종의 딸, 그러니까 공주가 주인공이다. 이 딸을 사랑한 청년을 태종이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에 공주는 이곳 청평사까지 이르게 되었고, 스님의 옷인 가사를 직접 지어 올리자 뱀은 공주와의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고 한다. 이에 청평사에는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에 ‘회전문(回轉門)’을 지었다고 하는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잊히지 않는 과거 연인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졌다면, 춘천 청평사의 회전문으로 가 보자.청평사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가장 손쉬운 길은 자동차로 46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보면 배후령 터널이 나오고, 바로 오봉산 기슭으로 구불구불 차로 올라가면 된다. 바로 ‘청평사 관광단지’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1.8Km를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 또한 이 곳이 소양호에서 건너온 배가 멈추는 선착장이기도 하다. 현재 남아있는 청평사 전각 및 당우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청평사는 군사지리학적 위치로 인해 한국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기에 예로부터 남아있는 건물은 보물 제 164호로 지정된 회전문(回轉門)이 유일하다. 청평사의 대웅전은 1990년에 복원이 되었으며, 나머지 전각들도 197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청평사의 본형(本形)이 회전문이었으니 고려 이후 역사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여기서 회전문은 호텔이나 빌딩 입구의 그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쉽게도(?) 그런 문은 아니다. 회전문은 불경을 넣어 만든 팔각형 모양의 팽이처럼 생긴 불구(佛具)인데 이를 손으로 돌릴 때마다 부처가 설법하는 진리의 바퀴를 돌린다고 믿게 하는 도구다. 바로 이런 윤장대가 과거 이곳 청평사 회전문에 있었다고 전해진다.청평사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해보면,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영현선사가 백암선원(白巖禪院)으로 창건하였다. 이후 고려 시대의 권문 세족이었던 이의, 이자현등이 중창, 삼창을 하여 보현원, 문수원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명종 대에 이르러 보우(普雨) 선사에 의해 1577년 청평사로 이름 내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겨울의 끝자락, 춘천 청평사 오솔길을 오르며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아픈 인연의 기억을 떨쳐 내는 것은 어떨까. 청평사 회전문의 기둥을 어루만지면서. <청평사 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소양호에 온다면, 굳이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은 2. 누구와 함께? - 혼자. 물론 가족이나 연인끼리도 좋다. 3. 가는 방법은? - 소양호 선착장에서 30분마다 청평사로 가는 배가 있다. 소요시간 15분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4번지 4. 감탄하는 점은? - 청평사로 오르는 길. 청평사 주변의 소양호 풍광들. 아름답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회전문. 공주탑, 공주탕.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청평사 아래 부용교 주변 식당들도 괜찮다. 수수부꾸미나 산채비빔밥, 메밀 전병 추천.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cheongpyeongsa.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소양호, 김유정 문학관, 책과 인쇄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청평사의 전설이 그러하듯이. 잊혀지지 않는 인연의 기억이 있다면 이 곳 회전문에서 털어내기를. 근심으로 올랐던 길을 맑고(淸) 평안(平)한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을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남원 산림녹화탑 등 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

    남원 산림녹화탑 등 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

    산림청은 12일 전북 남원 향교동 산림녹화탑 등 5곳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산림문화자산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지만 조림 성공지와 숲 등 생태·경관·정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유·무형 자산으로 2014년 4월 홍릉숲 등 9곳이 첫 지정됐다. 이번에 신규 지정된 곳은 산림녹화탑을 비롯해 경남 하동 십일천송, 의령 신포숲, 강원 횡성 사방시설 유적, 충남 태안 소나무숲이다. 남원 산림녹화탑은 3단으로 구성된 석조물로 탑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백세청청(白世靑靑)’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산림녹화 유공자들의 뜻을 기리는 글이 담겼다. 하동 십일천송은 11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져 하나의 큰 소나무 모양을 하고 있다. 수련 도인들만 갈 수 있다는 11천도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공생과 상생을 의미한다. 노전마을 입구 어귀에서 재앙을 막는 당산나무로 1900년에 식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포숲은 ‘마을 동쪽을 가려야 좋다’는 풍수에 따라 조성된 숲이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의 수형이 우수해 경관이 아름답고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풍광을 보기 위한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다. 횡성 사방시설 유적은 1936년 8월 수해로 인한 피해지 복구 현장이다. 국내 사방공사 중 제일 큰 규모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면도 소나무숲은 적송으로 수려한 미를 자랑한다. 우산 모양의 수형이 장관을 이루면서 충남가 1978년 ‘소나무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번 지정으로 국가산림문화자산은 총 46건이 등록됐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문제적남자’ 진지희, 올A 과탑 성적표 “편견 깨고 싶었다”

    ‘문제적남자’ 진지희, 올A 과탑 성적표 “편견 깨고 싶었다”

    배우 진지희 ‘올 A 과탑’ 성적표를 공개했다. 11일 방송된 tvN ‘문제적 남자’에는 진지희가 게스트로 출연해 ‘문제적 남자’들과 함께 문제를 푸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진지희는 아역 때보다 한껏 성숙해진 여인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진지희는 ‘빵꾸똥꾸’로 유명하지만 ‘문제적 남자’에서는 진지한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진지희는 중고교시절부터 대학교 재학 중인 지금도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있었다. 학업과 연기 활동을 병행했던 진지희는 하루에 1시간만 자고 등교,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진지희는 “그때가 촬영이 한 새벽 5~6시 쯤에 끝났는데 아침 8시에 시험이 있어서 집에서 1시간 정도 눈 붙였다가 학교에 일찍 가서 기말고사를 봤다. 대본 보는 습관이 있어서 단기 기억력이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진지희는 촬영할 때 자신이 나오지 않는 신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물어봤다. 진지희는 “학교를 자주 빠지니까 부족한 부분은 선생님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기억이 오래 가더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체크했다가 수업 끝나고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봤다”고 전했다. 진지희는 “내가 연기자기 때문에 공부를 못할 거라는 시선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나랑 같은 반이 되면 ‘일단 쟤는 좀 지켜봐야겠는데’라는 눈빛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 벽을 깨보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입학한 대학교에서도 과탑이라고 전하며 학점 평균 4.44, ‘A’로 도배된 성적표를 공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57명 중 1등으로 학과 탑까지 기록한 진지희는 대학교에서도 예습과 복습을 했다며 “1학기 때 올 A였는데 영어 과목만 B+가 나왔다. 그것만 B라서 너무 거슬리더라. 2학기 때는 영어 성적을 올려야 겠다 해서 미리 수업 내용을 예습하고 복습했다. 결국 영어 과목까지 A+를 받았다”고 밝혀 감탄을 자아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계산서 용지에 쓴 일기…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모습

    계산서 용지에 쓴 일기…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모습

    “어떤 조선인 경찰이 와서 나의 몸을 수색하였다. 이에 내가 질책을 하면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중략) 이로부터는 단지 한 번 죽을 마음만 있어서 혹 며칠 동안을 밥을 먹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 대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귀 사이를 스스로 찌르기도 하였다.” “조사를 할 시간이 되면 7권으로 장정된 책자를 펼쳐 놓고서 물었다. (중략) 내가 본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후의 사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기재되어 있었으며, 항주 및 북경 등에서 한 일에 대해 내가 잊고 있었던 것도 그들은 오히려 기록해 놓고 있었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나로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었다.”독립운동가 이규채(1890~1947)가 죽기 몇 해 전 자신의 삶의 궤적과 독립운동 여정을 기록한 일명 ‘이규채 연보’에 담긴 내용이다. 1920년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이후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던 이규채는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 상점의 계산서 용지 32장 분량에 적힌 ‘이규채 연보’는 이규채가 자신의 상세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한 덕분에 다른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현장감이 뚜렷하다. 독립운동 당시 목숨을 수시로 위협받던 일부터 일제의 혹독한 감시를 피해 다니면서 느낀 고단함,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예를 들면 1932년 쌍성보 전투에 참여했던 이규채는 왼쪽 손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전투가 끝난 한참 후에 곁에 있던 사람이 알려줘서야 알게 됐다고 적었다. 중국 청나라 말기 민간 비밀결사단체인 대도회(大刀會)를 만나 수색을 당할 당시 ‘일본의 정탐꾼’으로 오인당해 몸이 묶이고, 그 끈을 말 안장에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 밖에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으로 생매장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일, 지난날 함께 활동했던 이민달(李敏達)이라는 자의 밀고 때문에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일, 체포된 이후 일본 영사관에서 조사받을 당시 일본 경찰이 7권 분량 책자를 펼쳐 놓고 신문한 일 등 당시 이규채가 겪었던 역경과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그간 독립운동사 자료는 ‘전투에서 누구를 처단하고 거사를 행했다’는 식의 활동 내용이 중심이지만 ‘이규채 연보’는 이규채 자신이 마적을 만나서 물건을 털리거나 목숨을 빼앗길 뻔한 이야기 등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면서 “사람들이 모르는 독립운동의 상세한 여정과 독립운동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규채 연보’에는 이규채가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규채의 손자 이성우씨는 “이 자료에 1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분들이 많다”면서 “민족문제연구소나 독립기념관 등의 기관에서 무명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탑을 만드는 등의 실천적인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와우! 과학]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벌집의 놀라운 비밀

    [와우! 과학]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벌집의 놀라운 비밀

    무더운 여름의 열기는 사람뿐 아니라 곤충에게도 치명적이다. 특히 좁은 둥지에서 여러 개체가 같이 생활하는 흰개미, 개미, 벌 같은 사회적 곤충은 잘못하면 군집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 곤충 가운데는 흰개미처럼 내부의 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둥지를 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벌이 벌집의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여러 센서와 카메라를 장착한 벌집을 이용해서 기온에 따른 꿀벌의 행동을 연구했다. 뜨거운 여름날 수많은 꿀벌과 애벌레가 움직이는 벌집 안은 외부보다 더 뜨거워진다. 따라서 이 열기를 빨리 배출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애벌레는 모두 죽게 된다. 그래서 꿀벌들은 살아 있는 냉각팬이 되어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배출한다. 일단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나가면 상대적으로 차가운 외부 공기가 자연적으로 흡입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수많은 벌이 중앙의 통제도 없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2017년 무더운 여름에 진행된 실험에서 꿀벌들이 매우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꿀벌들은 각기 온도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서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온도가 달랐다. 따라서 온도가 낮을 때는 적은 수의 개체만 날갯짓을 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많은 개체가 여기에 동참해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했다.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냉각을 위해 벌집의 출입구는 물론 뜨거운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공기를 내보내기 때문에 온도가 위험한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흰개미의 자연 공기 순환 방식과 비교해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꿀벌의 방식은 단점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로 높은 장소에 벌집을 짓는 벌의 경우 흰개미 탑 같은 형태로 건설이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여름철에도 수많은 벌이 날아다닌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냉방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꿀벌 역시 흰개미만큼 놀라운 사회적 곤충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진날

    뜻: [명사] 땅이 질척거릴 정도로 비나 눈이 오는 날. 쓰임새: 우길이 형제는 진날 갠 날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드나들었다.(한설야, ‘탑’) 국립국어원 제공
  • ‘흉물’ 오명 벗고 인류의 유산으로

    ‘흉물’ 오명 벗고 인류의 유산으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지금이야 누구나 사랑하는 명소지만, 설립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가 모파상은 흉물스럽고 시커먼 철골덩어리라며 에펠탑을 혐오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에펠탑 2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에펠탑이 눈에 띄지 않는 곳은 파리에서 이곳뿐이니까요.” 모파상은 죽은 뒤 에펠탑이 잘 보이지 않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에펠탑은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열린 만국박람회(EXPO)에 맞춰 세워졌다. 프랑스 정부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300m 이상 높이 철제 탑 설계안을 공모했다. 만장일치로 구스타브 에펠이 당선됐다. 당시 박람회조직위원회가 제시한 공사비는 150만 프랑이었는데, 구스타브 에펠이 계산한 예산은 650만 프랑이었다. 에펠은 예산을 훨씬 웃도는 건축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철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과 완공 후 20년간 철탑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을 자신의 회사가 가질 것. 20년이라는 조건이 붙은 것도 이유가 있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 흉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서 20년 후 철거하기로 하고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펠은 7개월간 이어진 만국박람회의 입장료만으로도 공사비에 가까운 수익금을 모두 거둬들였다. 그리고 에펠탑은 철거되지 않고 영원히 남았다. 프랑스의 상징에 자신의 이름까지 붙였으니 공사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간 셈이다. 이처럼 구스타브 에펠은 건축가이면서도 대단한 투자가였다. 명성을 얻은 에펠은 이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의 골격을 설계하기도 했다. 에펠탑은 철재가 주재료가 된 근대 건축기술과 철강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에펠탑은 2차 세계대전 때도 사라질 뻔했다. 당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파리에 주둔한 콜티츠 사령관에게 에펠탑을 포함한 파리의 모든 건물과 유적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콜티츠는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며 명령을 어겼다. 책상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화기에서 히틀러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 전쟁에서 점차 밀리는 히틀러의 절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다. 심리학 용어 중에 ‘에펠탑 효과’가 있다. 어떤 대상에 많이 노출될수록 호감을 지니게 된다는 이론이다. 에펠탑은 처음에 무수한 욕을 받았지만, 이제 흉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상드막스 공원을 산책했다. 작은 축구장에서 티에리 앙리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누구나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에펠탑 효과’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 같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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