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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을 받고 구조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여객선에 접근한 배 두 척이 있었다. 2700t급 연안유조선인 두라에이스호(두라호)와 1500t급 유조선 드라곤에이스11호(드라곤호)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든 교신 내역을 청취했고 침몰 전 과정을 지켜봤다. 두라호 선장 문예식(60)씨와 드라곤호 선장 현완수(57)씨는 2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는 누가 봐도 회복 불능 상태였고 선장이 퇴선(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내리는 등 탈출하는 것) 명령만 했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선장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두라에이스, 진도 연안 VTS입니다. 세월호 육안 확인됩니까.” 16일 오전 9시 6분, 진도 인근 해역을 지나 울산으로 가던 두라호에 긴급 메시지가 전달됐다. 진도 VTS에서 온 교신이었다. 두라호의 우측 전방 2.1마일(3.4㎞)에 400여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신을 접한 두라호는 즉시 속도를 높였다. 10분여 만에 세월호 옆에 접근했다. 문 선장은 “교신을 듣고 우현(배 오른편)을 보니 멀리 침몰하는 배가 보였다”면서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시속 20노트(약 37㎞) 정도로 우리를 앞질러간 배였다”고 회상했다. 문 선장은 사고해역에서 주춤하던 세월호가 다시 두라호와 맞닥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전 9시 15분, 드라곤호도 VTS에 구조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뒤 세월호에 전속력으로 접근했다. 오전 9시 21~22분, 세월호 왼편에 다가선 두라호는 곧장 구조활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당연히 퇴선 조치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선박 주변에는 어떤 탈출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는 5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현 선장은 “경험 있는 선장이라면 배가 30도만 기울어도 복원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론상 다 나와 있는 얘기”라면서 “퇴선 명령을 당연히 내렸어야 하는데 선장이 머뭇거린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문 선장과 현 선장은 모두 “9시 20분이 넘은 시점까지 배의 좌측으로 뛰어내려 얼마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오전 9시 14분 교신에서 VTS가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고 묻자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VTS 측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재촉만 했다. 오전 9시 27~28분, 해양경찰청의 구조 헬기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3분 드라곤호가 접근했고 목포해경 진도파출소의 무전을 받은 인근의 소형민간어선 40여척도 세월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때까지 바다로 탈출한 승객이 없었던 까닭에 작은 배들만 세월호 옆에 붙어 배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승객을 태웠다. 헬기를 통해서도 일부 탑승자들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의 핵심 승무원들도 이때 배를 빠져나갔다. 두라호는 9시 35분 진도 연안 VTS로부터 “구명정, 라이프링(구명튜브) 등을 전부 투하해 세월호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자가 없었다. 문 선장은 “당시 모여든 어선 등이 수십 척은 보였다”면서 “배, 헬기 등이 계속 모여드는 상황이어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구조됐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급선회’(항로를 급히 바꾸는 것)가 꼽히지만, 두 선장은 “급선회할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선장은 “침몰 지점이 거친 조류로 유명한 맹골수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좁은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탁 트인 해역”이라면서 “날씨도 좋았고 암초나 레이더에 잡힌 고깃배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항로를 틀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현 선장은 “조타수의 실수이거나 조타기 이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정과 어선, 헬기 등이 부산하게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세월호는 승객 476명 중 170여명만이 구조된 상황에서 오전 11시 20분 침몰했다. 두라호 등 대형 선박은 소형선과의 충돌 우려 탓에 가장 빨리 접근했지만,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 정오가 넘은 시간까지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지난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이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0일 “세월호(6825t)의 길이는 146m로 50층짜리 건물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데다 배에 바닷물이 들어가 더 무거워져 있다. 여러 대의 크레인으로 선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배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일본 해상 전문가들 견해를 전했다. 야마다 요시히코 도카이대학 교수는 “크레인으로 선체를 고정한 뒤 구멍을 내 내부를 조사하는 게 우선이다. 그후 배를 잘라서 인양할 지 그대로 인양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여객선의 인양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침몰한 아리아케(7910t)호의 인양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리아케호도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 등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복원력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 침몰했다. 세월호와 달리 탈출이 재빠르게 이뤄져 승객 7명을 포함한 29명의 탑승자 전원이 헬기 등으로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인양은 극도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인양을 맡은 업체는 배를 4등분으로 잘라 인양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2010년 3월 선수와 선체 앞부분이 5m의 강한 파도를 맞고 절단돼 깊이 20m 해저에 다시 가라앉았다. 이 과정에서 배의 화물과 기름이 유출돼 주변 어장에 피해를 입혔다. 결국 가라앉은 부분을 다시 50~100t짜리 덩어리로 잘라 인양하느라 결국 침몰한 지 1년이 넘은 이듬해 12월에야 인양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월호의 인양 조건은 아리아케호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다. 인양의 편의성을 위해 배를 절단하면 시신이 훼손되거나 유실될 수 있어 배를 통째로 들어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곳은 유속이 빠르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맹골수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카카오톡 압수수색 ‘세월호 승선자 실시간 대화 내용’ 통해 사건 규명

    카카오톡 압수수색 ‘세월호 승선자 실시간 대화 내용’ 통해 사건 규명

    ‘세월호 실시간, 카카오톡 압수수색, 승선자 대화 내용 압수수색’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승선자들의 실시간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일환으로 카카오톡 압수수색이 진행될 예정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0일 사고 당시 세월호에 타고 있던 승선자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카카오톡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합수부 관계자는 “사고 당시 승선자들이 실시간으로 카카오톡에 남긴 대화 내용을 확보해 수사에 참고하고자 카카오톡 본사를 압수수색할 계획이다”며 “이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오늘 중으로 발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승선자들은 스마트폰의 채팅 어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사고 순간들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했다. 합수부는 승선자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사건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카카오톡 측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저장기간이 영업일 기준으로 5~7일이기 때문에 영장허가가 늦으면 승선자들의 대화 내용을 못 볼 수 있다”며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는 대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카카오톡 승선자 대화 내용 압수수색, 세월호 침몰 상황 실시간으로 담겨있을 듯”, “카카오톡 승선자 대화 내용 압수수색, 빨리 진행돼야 한다”, “카카오톡 압수수색, 실시간 승선자 대화 내용에 세월호 침몰의 진실이 있다”, “카카오톡 승선자 대화 내용 압수수색,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의 결정적 열쇠될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20일 오후 10시 45분 현재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174명이 구조됐고 58명이 사망했으며 244명이 실종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승무원 지시만 따르면 안전” 그마음 어디로..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승무원 지시만 따르면 안전” 그마음 어디로..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가 공개돼 화제다. 승객을 버리고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씨가 4년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승무원의 지시만 따르면 안전하다”고 말한 영상이 공개됐다. 19일 OBS 경인TV에 따르면 이준석 선장은 4년전 OBS의 한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인천 제주 여객선을 이용하시는 분은 다음에 오셔도 안전하고 쾌적하고 우리 승무원들 지시만 따라서 행동하시면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프로그램에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오하마나호 여객선을 몰고 항해에 나선 이준석 선장의 모습이 담겼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당시 방송에서 승무원들을 믿으라며 승객들의 안전을 강조했지만 4년 뒤 발생한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는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하고는 먼저 탈출했다. 배 안에 있는 학생들과 탑승객은 이 선장의 지시대로 세월호 객실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선장을 비롯해 구조를 담당하는 선원 15명은 모두 구조됐다.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승무원들 지시 따랐는데 왜 이렇게 됐나”,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 “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왜 저 마음을 그때는 잊은 건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OBS(세월호 선장 4년전 인터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승객 버린 선장·우왕좌왕 해경… 구조시계 87시간 ‘스톱’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승객 버린 선장·우왕좌왕 해경… 구조시계 87시간 ‘스톱’

    16일 오전 8시 55분. 전남 진도 맹골수로를 운항하던 세월호가 다급하게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를 찾는다. “아 저기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그러고 5분 뒤,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생 등 탑승객 476명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음이 교신으로 드러난다. “인명피해가 없느냐”는 관제센터의 물음에 “선체가 기울어져 사람들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세월호는 답했다. 사고는 터질 수 있다. 문제는 사고 이후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그러나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선체 유리창을 깨고 객실 내부에 있던 시신 3구를 첫 수습한 19일 오후 11시 48분까지 약 87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구조시계는 멈춰 있었다. 긴급 상황을 총지휘해야 할 선장은 탑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줄행랑을 쳤고, 선박직 선원 15명도 100% 탈출해 공분을 샀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승무원들의 무책임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 여기에 해경과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화를 키웠다. 해경이 제주해상교통센터로부터 정식 조난 신고를 받은 것은 오전 8시 58분. 세월호는 침몰 직전 제주해상관제센터 외에도 제주해경이 관리하는 진도해상관제센터와 조난 교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사고 접수 약 30분 뒤인 오전 9시 30분쯤 사고 해역인 진도군 관매도 인근 조도면 병풍도 21㎞ 해역에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비함정과 군함, 어선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선체는 이미 반쯤 기운 뒤였다. 당시 구조에 나섰던 전남 201호 선장 최승용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측 핸들링이 물에 잠겼을 때는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물속에서 물 밖으로 헤엄쳐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명정 46척이 있었지만 1척만 작동됐고, 유일한 구명정도 선장 이준석(69)씨가 타고 도망쳤다. 늦은 출동은 아니었지만 해경은 일반 어선들처럼 이미 빠져나와 구명조끼를 입은 탈출자들 구조에만 매달렸다. 해경이 출동한 후 30분이 지난 오전 10시쯤에야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선체에 진입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2시간여 동안 배 안에 남은 승객들이 빠져나오도록 유도했다면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와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사고 후 30분인 ‘긴급구조 골든타임’과 48시간인 ‘본격구조 골든타임’마저 놓쳤다. “제2의 한주호 같은 사람이 왜 없느냐”는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조류가 세니, 시정이 안 좋으니, 수심이 깊으니 하면서 시간만 죽였다. ‘꽃다운 청춘들이 죽은 게 아니라 죽였다’는 비탄이 터져나오는데도 정부기관의 불협화음은 계속됐다. 골든타임이 지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18일 군·경 특수 구조대원들의 선체 진입을 놓고 해경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엇박자를 냈다. 이날 오전 10시 5분쯤 중대본은 “잠수부 4명이 선체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해경은 곧바로 부인했다. 그러자 중대본은 오후 3시 27분쯤 성공을 실패로 정정해 실종자 가족들을 또 한번 울렸다. 이날 정부의 무능과 거짓에 실종자 가족대표 마동윤씨가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의 현실입니까?”라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해경청장 등 주요 간부들이 사고 현장에 내려가 있어 현재로서는 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일이 없다”(해경 본부)거나 “사망자, 구조자 집계 현황 파악 업무는 중대본으로 넘어갔다”(해양수산부)고 모르쇠나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탑승객 ‘477명-476명-459명-462명-475명-476명’. 탑승자와 구조자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심한’ 정부였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눈물도 마른 가족들]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어, 손 잡아!” 그 아저씨가 교감 선생님이었다니…

    [세월호 침몰 참사-눈물도 마른 가족들]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어, 손 잡아!” 그 아저씨가 교감 선생님이었다니…

    “교감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 감사하고, 또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난 16일 오전 8시 40분쯤, 친구 5명과 함께 제주 여행을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던 대학생 A(21·여)씨는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5층 객실에 있던 A씨는 조금씩 기우는 배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복도를 엉금엉금 기어가 구명조끼를 간신히 입었다. 직감적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학생들의 탈출을 돕던 중년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재빨리 탈출구를 찾아 문을 열었다. A씨 일행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배가 기운 탓에 여자 힘으로는 쉽지 않았다.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팔에 힘이 풀려 포기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그 남성은 앞장서 출입구를 열고 올라가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A씨 일행을 독려했다. 힘을 얻은 A씨는 다시 탈출을 시도했고, 그가 손을 잡고 끌어줘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A씨 일행은 구조헬기를 타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A씨와 함께 헬기에 오르지 않았다. 먼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빨리 나와라. 이쪽으로 와라”고 외치며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나중에야 배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단원고 교감 강모(52)씨였다. 강 교감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수학여행단의 총책임자로서 가슴 한편에 죄책감이 남았던 모양이다. 구조된 단원고 후배 교사들이 실종 학생 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원망을 듣는 모습도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결국 마음의 짐을 덜어내지 못한 강 교감은 지난 18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저를 구해준 분이 교감 선생님인 줄 몰랐지만 뉴스에 나온 모습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면서 “감사한 마음에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교감 선생님 본인이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돌아다녔고, 내가 눈으로 본 것만 6~7명을 구했다”면서 “최선을 다하셨는데 돌아가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교감은 목숨을 끊기 전에 유서를 남겼다. 두 장짜리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줘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선생님이었다. 진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에…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시간이 넘었지만 구조와 수색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1970년 326명이 숨진 남영호 침몰 참사 이후 재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외쳤지만 이번에도 40여년 전과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20일 재난·방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영호 침몰 참사 이후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 훼리호 참사, 2010년 46명의 장병이 희생된 천안함 침몰 사건 등이 터졌을 때 정부 안팎에서는 선진 재난대응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제대로 된 후속 조치는 없었다. 천안함 침몰 사고 1년 뒤인 2011년 정부가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는 사건 초기부터 침몰 상황에 대한 보고 및 전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혼선을 초래했고, 위기관리 시스템에 따른 대응과 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러한 문제점은 판박이처럼 되풀이됐다. 서해 훼리호 참사 이후 승선자 명단 파악이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에서는 승선자 명단에도 없는 사망자가 나오는 등 탑승자 숫자가 다섯 차례나 변경됐고, 구조자 숫자도 여덟 차례 바뀌는 등 혼선이 벌어졌다. 또 ‘해상안전에 대한 국제협약’에 국제선을 운항하는 3000t 이상 크루즈는 통신과 항적 변화를 기록하는 블랙박스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세월호는 6000t급이 넘지만 국내 여객선은 협약 준수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과적이 원인이 된 남영호 침몰 사고 이후 한국해운조합에서 선박 화물적재 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나 실제 화물 적재량과 해운조합에 보고한 기록은 서로 달랐고, 점검도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해상 재난사고 대응 매뉴얼도 부실했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승객 대피를 책임져야 할 선장 이준석(69)씨와 항해사, 조타수, 기관사들은 현장 지휘와 응급처치, 구명정 작동, 외부와의 교신 등을 담당해야 했지만 가장 먼저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들 선박직 15명은 전원 생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은 325명 중 75명(23%)만 구조됐다.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사고 초기부터 우왕좌왕했다. 해경과 해군, 어선이 투입됐지만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되면서 사고가 발생해 배가 침몰할 때까지 2시간 20분 동안 제대로 된 구조 작업을 하지 못했다. 방재 안전 전문가인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사건은 현장에서 일어나지 정부 청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가 비상 시스템을 현장 중심으로 법·제도화하고 그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 전문가인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는 “위기 발생 시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현장 ‘사고지휘시스템’(ICS)의 통합 구축이 절실하다”면서 “위기 상황을 사례별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직급에 상관없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세월호 합동수사본부 “탑승객 카카오톡 대화 내용 조사할 것”

    세월호 합동수사본부 “탑승객 카카오톡 대화 내용 조사할 것”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0일 사고 당시 세월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카카오톡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카카오톡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합수부 관계자는 “사고 당시 승객들이 실시간으로 카카오톡에 남긴 내용을 확보해 수사에 참고하고자 카카오톡 본사를 압수 수색할 계획이다”며 “이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오늘 중으로 발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은 스마트폰에 깔린 카카오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사고 순간들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했다. 합수부는 승객들의 카카오톡 내용을 종합하면 사건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설] 주검이 된 아이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참담한 아침이다. 솟구치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기 힘든 아침이다. 그래도 새파란 생명이니 저 거친 물살을 어떻게든 이겨내 줄 것이라 믿었던 온 국민의 실낱같은 희망과 애끓는 소망이 하나씩 하나씩 황망하게 무너지는 아침이다. 아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디고 더딘 구조작업이 참사 발생 나흘째인 지난 주말부터 본격화됐으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진도 앞 검은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것은 좌절과 절망뿐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단 하나의 기적도 우린 낚아올리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첫날인 지난 16일 국민 모두의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간 302명의 생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린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지 못했다. 시간이 야속하고 바다가 야속하다. 우린 정녕 이렇게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족들을 이토록 허망하고 속절없이 바다에 묻어야 하는가. ‘아빠 걱정하지마. 구명조끼 입고 애들 모두 뭉쳐 있으니까’라며 외려 가족을 걱정했던 그 의젓한 아이도,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라며 준비 못 한 이별 앞에서 떨었을 아이도, 참가비 30만원이 아빠에게 짐이 될까 싶어 한사코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려 했던 속 깊은 아이도 그냥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는가. 이젠 정말 이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이게 정녕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말인가. 하나 둘 검은 바닷속에서 건져 올려지는 어린 학생들의 주검이 이 아침,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는 대체 무엇이냐고. 원칙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잘못 했느냐고. 우린 지금 왜 죽는 것이냐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제 그 답을 준비해야 한다. 바닷속으로 잠기기 직전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어른들이 우리를 구해 줄 것이라 믿었을 아이들의 주검 앞에서 처절한 마음으로 반성문을 써야 한다. 아이들이 죽음으로 보여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 앞에서 기성세대는 더 이상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얽히고설킨 부조리와 나태와 무모함과 무책임과 무신경을 고백해야 한다. 젊은 초보 항해사에게 배를 맡기고는 위기의 순간이 닥치자 나부터 살고 보자며 가장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 선장이 세월호 참사의 근인(近因)일 수는 있을 것이다. 탑승자 숫자는 물론 적재화물의 개수와 중량도 기록하지 않았을 만큼 허술하게 운영돼 온 연안여객 안전관리도 직접적 요인일 것이다. 엄청난 참사 앞에서 실종자 숫자조차 파악 못 하고 매일 바꿔 불러대며 허둥댄 정부의 무능한 대응도 화를 키운 요인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화근(禍根)의 줄기를 잡아 캐내 올라가다 보면 결국엔 ‘기본의 상실’이라는 만화(萬禍)의 뿌리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서로가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상응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적당주의를 낳고, 반칙을 낳고, 부실을 낳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책무를 비롯해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공공선의 공적 가치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얼마나 척박하고 가난한 나라인지를 지금 바닷속 아이들이 일깨워준다. 책임자 처벌과 희생자 보상, 관련 법령 정비라는 뻔한 수습책으로 이번 참사를 끝낼 수는 없다. 재난 대응,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할 때다. 국가는 무엇이고, 그 구성원 각자의 책무는 무엇인지 모두가 무릎을 꿇고 그 답을 써야 한다.
  • 항공기 바퀴타고 5시간 비행한 16세 소년

    항공기 바퀴타고 5시간 비행한 16세 소년

    항공기 바퀴에 몰래 타고 무려 5시간을 비행한 소년이 기적같이 살아남아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전 10시경 미국 하와이 마우이 공항에 착륙한 하와이안 항공기 바퀴 부근에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16세 소년이 발견됐다. 미 연방수사국 FBI에 따르면 이 소년은 캘리포니아 산 호세 공항의 펜스를 넘어 몰래 이 항공기 휠 웰(Wheel well) 부근에 올라타 무려 5시간을 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휠 웰은 바퀴 수납고로 활주 시에는 밖으로 나와있지만 하늘에서는 동체 격납공간에 들어간다.  놀라운 사실은 휠 웰은 산소기구나 난방 등의 장치가 없어 오랜 비행시 사람이 살아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때문에 과거 이와 유사한 사건 발생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소년은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건강상의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FBI 대변인 톰 사이먼은 “소년은 집에서 가출한 후 몰래 이 항공기에 탑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면서 “1만 2000m 하늘 위에서 무려 5시간 동안 산소 부족과 영하 50도의 추위를 견뎌냈다” 고 밝혔다. 이어 “병원 진단 결과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으며 현재 아동보호소로 보내져 조사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사고 보름전 조타기 ‘전원 접속불량’ 알고도 출항시켰나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사고 보름전 조타기 ‘전원 접속불량’ 알고도 출항시켰나

    대검찰청은 20일 “이번과 같은 참사는 결국 선박회사와 선주의 회사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검경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수사에 착수하도록 인천지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이날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최대 주주인 유모씨 등 2명과 청해진해운 김한식(72)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청해진해운은 조선업체인 천해지가 소유하는 구조로 돼 있다. 천해지는 1980년대 한강 유람선을 운영했던 ㈜세모의 조선사업부를 인수해 만든 회사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조치는 이번 참사가 결국 선박회사와 선주의 회사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회사와 선주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해진해운은 2∼3년마다 해상사고를 일으키는 등 총체적인 부실 운영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데모크라시5호(396t)는 2009년 10월 인천 옹진군 덕적도 인근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켜 3시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백령도로 가다 7.93t급 어선과 충돌, 승객 141명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하마나호(6322t급)는 지난해 2월 옹진군 대이작도 인근에서 표류해 6시간 늦게 인천에 입항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대처가 이번 대참사로 이어졌다. 청해진해운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선원 안전교육에 54만 1000원을 썼다. 광고비(2억 3000만원), 접대비(6060만원)에 견줘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항로 급선회만으로 배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화물기사들은 “갑작스러운 태풍주의보로 심하게 흔들려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도 화물은 멀쩡했다”며 “세월호 사고 때 화물차량이나 컨테이너 결박이 허술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엔 차량 180대가 실려 한도 150대를 웃돌았다. 화물기사 정모(45)씨는 “4.5t 화물차량 짐칸에 보통 20t의 화물을 싣는다”고 말했다. 결박을 엉터리로 했다는 의혹은 출항 당일에도 드러난다. 항해사가 최소한 15분 전 결박 상태 점검을 마쳐야 하지만 직전까지 차량을 실었다. 짙은 안개로 출항이 2시간이나 지연됐는데도 근무시간표를 수정하지 않아 위험 구간인 맹골도~송도에서 1등 항해사 대신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가 운항을 맡게 한 것도 문제다. 이날 막 사리(15일)를 지난 데다 썰물 때와 맞물려 물살이 더 거셌다. 박씨는 조타수에게 방향 전환을 지시했다. 병풍도를 끼고 제주를 향해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변침점(變針點)이라 방향을 바꿔야 하는 곳이다. 조타수는 “평소대로 키를 돌렸지만 많이, 빨리 돌아갔다”고 말했다. 왜인지 회전 각도가 크게 꺾이면서 배를 한쪽으로 쏠리게 했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중간수사 결과 실제 세월호는 보통 5도 이내인 것과 크게 동떨어진 115도를 회전했다. 박씨는 제주에서 인천으로 올라갈 땐 여러 차례 운항했지만 내려가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조타기는 사고 보름 전 이미 이상을 보였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1일 전원 접속불량 수리 신청서를 작성했지만 수리를 끝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1994년 5997t으로 진수된 뒤 589t에 해당하는 시설물을 증설한 이후 2012년 수입된 세월호는 다시 5층 증축과 더불어 239t 분량의 객실을 추가했다. 선박 상단에 무게가 쌓이면 무게중심도 올라간다. 특히 수직 증축을 하면 무게중심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원상회복 능력을 한층 떨어뜨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구명벌(라이프래프트)이나 구명정(라이프보트)을 작동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불합리한 운영을 보여 준다. 지난 5년간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상당수 선박들은 작동 레버를 아예 더욱 풀기 어렵도록 쇠줄로 묶거나 잠금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 관계자는 “구명벌은 캡슐 모양이라 승객들이 겉으로 봐서 분간조차 쉽지 않다”면서 “결국 키를 쥐고 있는 승무원들이 구명벌과 구명정을 작동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자 증언도 잇따랐다. A씨는 “구명벌이 단단한 쇠줄로 묶여 있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 쪽 말은 달랐다. 김재범 기획관리부장은 “구명벌은 밧줄로 묶여 있었다”면서 “안전핀을 뽑으면 자동으로 펼쳐지게 돼 있는 구조”라고 밝혔다. 구명벌이 물속에서도 펼쳐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배가 거꾸로 전복되다 보니 눌려져서 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해경 측은 구명보트는 쇠줄(와이어)로 묶어 놓으며, 구명벌도 본체는 쇠줄로 고정시키고 끝 부분만 밧물로 묶어 놓는다고 설명한다. 구명벌은 원통 모양으로 비상상황 때 바다에 던지면 저절로 펼쳐지게 돼 있다. 선박이 전복돼 물속에 5m 정도 들어가도 자동으로 펼쳐진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정한 규정에는 승선 정원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는 구명벌을 배 양쪽에 갖춰 놓도록 돼 있다. 세월호에는 개당 15명이 탈 수 있는 하얀색 구명벌 42개가 갑판 좌우에 비치돼 있었다. IMO 규정에는 미치지 못해도 630명을 태울 수 있어 탑승 인원 476명이 모두 대피하는 데 충분한 규모였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되는 순간 펼쳐진 구명벌은 2개에 불과했다. 구명벌은 모두 일본산으로 1994년 5월 제작됐으며, 지난해 정기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 함께 선박이 침몰 위기에 놓였을 때 승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구명정 4대도 갑판에 설치돼 있었다. 대당 25명까지 탑승이 가능하지만 한 대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구명벌·구명정 작동 레버의 잠금 장치나 밧줄 등을 승무원들이 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사고 초기에 탈출한 점으로 미뤄 설득력을 갖는다. 승객들이 당황한 상황에서 구명벌·구명정을 스스로 작동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서비스직 승무원(14명) 대부분은 배에 남아 승객 탈출을 도왔지만 잠금장치를 푸는 방법을 몰랐을 개연성이 크다. 결국 청해진해운은 평소엔 물론 사고 당일도 승객 안전에 눈을 감은 채 세월만 보내다 참사를 부르고 말았다.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전통’ 깬 세월호 선장, 형사책임 어디까지…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 승객을 남겨둔 채 먼저 탈출한 것은 침몰선 선장의 형사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19일(현지시간)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깨고 이 선장이 먼저 탈출했다”며 이런 일은 2012년 침몰해 30여명이 숨진 이탈리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경우에 이어 최근 2년 남짓 사이 두 번째라고 전했다. 이 선장의 탈출은 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행동규범으로서 국제적 또는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던 자랑스러운 전통을 깬 것이어서 많은 해양 전문가들이 충격적으로 여기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신문에 따르면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인 1914년 처음 채택된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은 선장이 배와 탑승자 전원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이 협약의 최근 개정 조항에는 승객들이 비상 상황에서 30분 내에 대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 원칙일 뿐 침몰 위기 등 위급 상황에서 선장이 배를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 법규는 협약에 없다고 미국 ABC 방송이 지난 17일 보도했다. 또 대부분 국가에서 명시적으로 선장이 최후까지 침몰하는 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고 구명선이나 인근 선박에 타고 대피를 지휘할 수 있도록 재량권도 준다. 미국 역시 승객과 배를 보호할 선장의 의무는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 인정해 왔다고 NYT는 덧붙였다. 다만 미국 해군의 경우는 1814년부터 선장은 침몰하는 배에 가능한 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군령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와 콩코르디아호 사건은 선장의 형사 책임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신문은 콩코르디아호와 세월호 사건은 각각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선장에게 형사책임을 묻고 있다고 소개했다. 콩코르디아호 프란체스코 스케치노 선장은 과실치사와 선박 유기 등 혐의로 기소돼 이탈리아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글로벌 시대] 철저한 여행안전시스템 구축 시급하다/장병권 호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철저한 여행안전시스템 구축 시급하다/장병권 호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등교하던 여고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지 20년 만에 이번에는 바다에서 안산시 단원고 수학여행단 325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했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극심한 안개 속에서 무리한 급선회로 인해 침몰하는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도 문제지만, 조난 신고 후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신속한 구조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은 더 심각한 일이다. 탑승자 중 174명만 구조되고 나머지 302명은 사망 또는 실종됐으나, 이들을 구출해야 할 위치에 있었던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등 선박직 선원 15명은 전원 탈출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아직도 고객의 생명은 제쳐 두고 직원 자신들의 안위만 신경 쓰는 기업이 있다니, 이게 과연 21세기형 선진한국의 모습인가 의문이다. 국민들이 종전처럼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애도에서 그치지 않고 크게 분노한 것은 이번 참사를 생생히 지켜보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뢰의 붕괴’이다. 앞으로 내 아들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구한테 그 안전을 의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은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에 5명 정도의 외국인도 탑승하였고 그중 일부가 실종돼 국제적 뉴스거리가 되면서 한국관광의 국제적 신인도(信認度)도 땅으로 떨어졌을 게다. 또한 최근에 나타난 사고들의 특징을 보면, 국민들의 자유시간 영역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5일 근무제 및 수업제가 정착되고 휴가분산제, 대체휴일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자유시간 제도가 확대되고 있는데, 유독 대형 사고가 즐겁고 행복해야 될 자유시간대에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의 항공사고, 올 2월 경주 리조트에서의 체육관 붕괴사고, 고속도로 버스대열 운행으로 인한 연쇄 추돌사고 등은 귀책사유도 없는 여행자들에게 희생만 강요했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공적 여행안전 서비스를 좀 더 확실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학여행 등 단체여행을 잘 보낼 수 있도록 교통, 숙박, 음식 등의 핵심 요소에 대한 상시 안전점검이 실시돼야 한다. 더는 침몰, 추락, 추돌 등으로 인해 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또 사고수습과 향후 대책 마련에 있어서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편의지향적 ‘대충대충형’ 문화도 속히 청산하고 과학적이며 데이터 분석에 입각한 ‘철두철미형’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선장과 항해사의 조종 미숙이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넓게 보면 정부나 기업, 그리고 사회 지도층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상시 안전운행 관리나 재난극복 훈련을 더 철저히 했어야 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물론 종사원들의 고객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안전지향적 생활문화와 교육을 강화했어야 했다. 이번 참사를 보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대형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국민의 자유시간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 그리고 민관협력을 통한 체계적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제 국내 여행 시 ‘여행의 즐거움’에 앞서 ‘여행의 안전’이 더 기본적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광정책 당국과 업계부터 안전 사각지대와 취약요소를 먼저 발본색원하고, 국민의 자유시간이 잘 보호되도록 제도 개선을 주도해야 한다. 더는 국민들의 자유시간에 행복은커녕 슬픔을 주지는 말자.
  • SBS 기자, 세월호 사고 현장서 ‘천진난만 웃음’ 논란.. SBS 공식 사과

    SBS 기자, 세월호 사고 현장서 ‘천진난만 웃음’ 논란.. SBS 공식 사과

    ‘SBS 공식 사과’  SBS가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특보를 내보내던 중 기자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방송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SBS는 20일 “세월호 승선자 가족들과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제목으로 공식 사과를 전했다. 앞서 SBS는 20일 오전 뉴스 특보를 전달하던 중 생방송 준비를 하던 기자가 웃고 있는 모습을 방송했다.  SBS는 “오늘(20일) 오전 10시 17분경 SBS 뉴스특보 해난 구조 전문가 출연 장면에서, 특보의 배경 화면으로 동거차도에서 생방송 준비를 하던 기자의 웃는 모습이 4초간 방송됐다”면서 “해당 기자는 생방송 이후 다음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동료 기자와 잠시 다른 사담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고, 현장 화면을 송출하던 방송 담당자의 실수로 방송 대기 중인 기자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잘못 방송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기술적인 실수였다고는 하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한 가운데 부적절한 장면이 방송되어서 세월호 승선자 가족과 시청자 여러분께 아픔을 드렸다”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네티즌들은 “SBS 공식 사과,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해 더욱 주의하길”, “SBS 공식 사과, 내내 슬퍼할 수 없는 거라는 건 알지만 카메라가 켜있을 때는 조심해야 할 듯”, “SBS 공식 사과, 웃음이 나옵니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20일 오후 10시 45분 현재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174명이 구조됐고 58명이 사망했으며 244명이 실종됐다. 사진 = SBS 캡처(SBS 공식 사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7명 사망한 사고 현장서 “고추줍기” 열중 논란

    7명 사망한 사고 현장서 “고추줍기” 열중 논란

    지난 20일 오전 6시 35분경, 중국 징강아오(京港澳ㆍ베이징~홍콩~마카오) 고속도로에서 대형 트럭과 지프차량이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트럭에 타고 있던 2명 및 충돌 차량 탑승자 5명이 현장에서 모두 사망했다. 대형트럭의 앞쪽은 형체를 알아보기 충격과 화재 때문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훼손됐다. 또 이 트럭은 당시 인근 도매시장으로 납품하려던 고추 수t을 싣고 있었는데, 사고 여파로 고추가 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여가 지난 오후 3시경, 인근에서 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의 창사(長沙)현 주민 일부는 사고 현장에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쏟아져 있는 고추를 자루에 담았다. 고추들은 화재로 발생한 그을음과 현장에서 유출된 기름에 ‘버무려진’ 상태였지만 주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현지 언론 기자에게 “집에 가져가 깨끗이 씻으면 먹을 수 있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주민들이 ‘고추줍기’에 열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현장 정리 담당인원이 도착해 사고 잔해 및 불에 타거나 상한 고추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당시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어차피 버려질 것(고추)들인데 주워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사진 속 주민들을 옹호했지만 일부에서는 “사람이 7명이나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예의가 아니다”라며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인 20일 해양경찰(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 등이 전남 진도의 사고 해역에서 활발한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기적’을 건져 내지는 못했다. 기다렸던 생환 소식 대신 가라앉은 선체에서 시신 10여구만 뭍으로 나왔다. 정부는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 요원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다에 들어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가 난 지 3~4일이 지나서야 선내에서 겨우 사망자를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분했다. 사고 뒤 첫 주말인 19~2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세월호 내부에 진입해 본격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잠수부들은 19일 오전 5시 50분쯤 여객선 3~4층 계단 통로에 들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4층 격실 창문 너머로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오후 11시 48분 수차례 시도 끝에 손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4층에서 남성 시신 3구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잠수부가 선체 내부에서 피해자를 발견해 수습한 것은 사고 뒤 처음이었다. 수십㎝ 앞조차 가늠할 수 없는 탁한 시계(視界) 탓에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객실로 보였다. 실종자 가족 사이에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잠수부들이 발견한 것은 숨을 거둔 시신뿐이었다. 21일 오전 1시까지 22구의 시신이 선체 안팎에서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다. 더디기만 하던 수색 속도가 빨라진 것은 ‘생명선’으로 불리는 가이드라인(안내선)과 손도끼 등 수동 장비 덕이었다. 로프의 일종인 가이드라인은 침몰한 세월호 선수와 선체 중앙부 등에 20일까지 모두 5개가 묶였다. 성인 남성 손가락 굵기인 로프는 수면 위에서 선체까지 이어져 있다. 잠수사 수백 명이 사흘간 번갈아 투입돼 라이트 불빛과 손의 감각으로 선체 돌출 부위에 묶었다. 수면 아래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잠수부들은 가이드라인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해 겨우 선체에 닿을 수 있다. 이 줄이 5개까지 설치되면서 그동안 2인 1조로 20여분간 선체를 수색하는 데 그쳤던 구조팀은 8~10명씩 동시에 입수해 구조 수색 작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선내 유리문을 깨뜨린 ‘특수 손도끼’는 민간 잠수부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쇠뭉치의 끝을 뾰족하게 갈아 손잡이를 단 모양으로 유리를 찌르듯 깨뜨리는 장비다. 묵직한 도끼를 동원해도 해저 수압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사고 이후 줄곧 좋지 않던 기상과 조류도 뒤늦게 호전됐다. 빠른 유속으로 악명 높은 맹골수도 조류는 속도가 최저가 되는 ‘조금’(23일)이 되면 8일 전보다 유속이 40% 정도 느려진다. 미국으로부터 원격 조종 무인잠수정 ROV 2대를 지원받아 현장 투입을 앞두는 등 첨단 장비도 동원되고 있다. ROV는 원격 수중 탐색장비로 1980년대부터 깊은 바닷속에서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 임무에 활용된 기계다. 관측함과 ROV를 케이블로 연결해 원격 조종하는 방식으로 해저 영상을 전달받아 수중 탐색에 활용한다. 또 이날 오후 사고 현장에 긴급 공수된 바지선(짧은 거리에서 화물을 수송하는 부선)이 정박해 잠수사들이 대거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 민간 잠수업체의 선박과 해경, 해군의 소형 선박들은 바지선에 잠수장비 등을 실어 놓고 잠수사들도 바지선 위로 올라탔다. 정조 시간인 오후 5시쯤에는 민간 잠수사 1개조가 바지선에서 잠수했다. 합동수색팀은 20일 민·경·군 잠수부 560여명과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을 벌였다. 사고대책본부는 이날까지 잠수부를 투입한 수색 구조 방식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박 표면을 절단한 뒤 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지만 선체의 중심이 흔들려 에어포켓(선실에 형성된 공기층)이 줄어 생존자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줄곧 ‘오보’를 양산해 빈축을 샀던 정부는 주말에도 사망자 수를 정정하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9일 밤 세월호 주변 50m 부근 해상에서 시신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사망자가 39명까지 늘었다고 밝혔지만 이내 “선체 안에서 발견된 시체를 두 번 셌다”며 정정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20일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다. 오전 7시쯤 진도대교에 모여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나서야 했다. 1시간에 걸친 설득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이 완강하자 정 총리는 차량에 탑승해 자리를 떠나려다 2시간여 동안 발이 묶였다. 경찰과 대치 중 가족 중 한 명이 오열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던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4500t)에서 화물승강기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승조원 윤모(21) 병장은 19일 끝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세월호 객실서 시신 추가, 사망 49명-실종 253명

    세월호 객실서 시신 추가, 사망 49명-실종 253명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사고대책본부는 20일 오전 7시 50분께 민관군 합동 구조팀이 세월호 객실 내에서 시신 10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서 민관군 구조팀은 19일 저녁 선체 유리창을 깨고 선내에 진입, 시신 3구를 수습했다. 이에 세월호 침몰 사고 사망자는 모두 49명으로 늘어났으며 실종자는 253명이다. 탑승자 476명 중 구조된 사람은 174명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자 우글거리는 사파리 관광 중 차량에 불 ‘아찔’

    사자 우글거리는 사파리 관광 중 차량에 불 ‘아찔’

    사파리공원을 관람 중이던 가족의 차량에 불이 붙어 사자들에게 무방비 노출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19일 영국 BBC뉴스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의 롱리트 사파리공원(Longleat Safari Park)에서 야생동물을 관람 중인 한 가족의 차량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끔찍한 사고는 글로스터셔 킹스우드에 사는 헬렌 클레먼츠란 여성이 아들 조지(9)와 딸 찰리(12)와 함께 롱리트 사파리공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가족이 탑승한 차량이 공원 내 사자우리 구역 중간 지점에 진입했을 무렵, 차에서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클레먼츠는 공원순찰대가 들리게끔 경적을 울려댄다. 연기가 점차 짙어지고 불꽃이 일자 마음이 급해진 그녀가 자녀들을 데리고 차에서 도망치려 한다. 주변 사파리차량의 순찰대원이 ‘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소리친다. 왜냐하면, 사파리 내의 사자들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순찰대원이 화재가 발생한 차량에 도착한다. 순찰대원은 클레먼츠 가족을 사파리차량으로 옮겨 태운 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이날 차량 화재를 목격한 조지 리어(16)는 “불탄 차량으로부터 150m 거리에 많은 사자가 있었다”며 “사자들이 화재와 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화재 진압은 사자우리 구역 내의 사자들을 전부 철수 시킨 후 진행됐으며 다행히도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부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BBC/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세월호 실시간]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청와대 가겠다” 무능 대처에 분노 폭발

    [세월호 실시간]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청와대 가겠다” 무능 대처에 분노 폭발

    ‘세월호 실시간,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청와대’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째인 20일 오전, 청와대에 직접 가서 항의하겠다고 결정한 실종자 가족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이 무려 5시간 넘게 심야 대치극을 벌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1시30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회의를 열고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청와대 항의 방문을 결정했다. 계속되는 수색 작업에 진전이 없는 것은 물론 사흘 전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 직접 찾아 약속한 것들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결국 슬픔이 분노로 바뀐 실종자 가족들은 오전 1시30분경 청와대 항의 방문 지원자 100여 명을 모집, 청와대로 가겠다며 진도실내체육관을 나섰고 버스가 안 된다면 걸어서라도 청와대를 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경찰은 체육관 인근 도로를 봉쇄 실종자 가족들의 행진을 저지하며 대치하게 이르렀다. 이 소식에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동참하면서 거리시위 규모는 더욱 커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진도대교 방향을 선회해 거리행진을 이었고 나머지는 경찰과 대치를 계속했다. 또 그중 일부는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현장 소식을 접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인 현장을 찾아 “지금까지 나온 모든 방법을 검토해 동원하겠다”고 실종자 가족들을 설득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같은 소리만 되풀이 한다”며 거부했다. 또 일부는 청와대 항의 방문를 막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20일 오전 10시 세월호 총 탑승자 476명 중 사망자는 49명, 구조자 174명, 실종자는 253명이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실시간 소식, 들을수록 암담하다”,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청와대 가서 항의하고 싶은 실종자 가족 마음이 깊이 이해된다”,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얼마나 답답했으면. 청와대 가야한다”, “세월호 실시간 소식, 밤새 또 사망자가 늘었구나”, “:세월호 실시간 소식, 이제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건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스포츠서울닷컴(세월호 실시간, 실종자 가족 경찰과 대치, 청와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대조영함 해군병장 끝내 숨져…세월호 구조지원 중 심한 머리 부상

    대조영함 해군병장 끝내 숨져…세월호 구조지원 중 심한 머리 부상

    대조영함 해군병장 끝내 숨져…세월호 구조지원 중 심한 머리 부상 세월호 탑승자 구조를 위해 지난 16일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가 중상을 입은 해군 대조영함 승조원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해군 관계자는 20일 “대조영함 내부에서 화물 승강기 작업을 하다가 머리를 다쳐 의식 불명된 승조원 윤모(21) 병장이 어젯밤 숨졌다”고 밝혔다. 윤 병장은 세월호 승객 구조와 탐색 지원에 나선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 소속으로, 당시 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윤 병장은 링스헬기로 제주 한라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해군은 윤 병장을 순직 처리하고 오는 22일 오전 10시 제주방어사령부 연병장에서 영결식을 치를 계획이다. 대조영함은 한국이 자체 기술로 설계·제작한 4500t급 다목적 스텔스 구축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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