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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골공원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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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냉이 타고 나들이… 진고개서 집뺏기 놀이”

    “냉냉이 타고 나들이… 진고개서 집뺏기 놀이”

    이원임 할머니는 1925년 서울 충신동에서 태어난 이후 85년간을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연지동 조양유치원을 다녔고 지금의 효제초등학교인 어의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기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 시절에는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좌익활동을 한 친구 오빠 수첩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서대문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교사로 일하다 1975년부터 25년 동안은 일본어 강사로 일했다. 현재 안암동에 살고 있으며 수필을 집필 중이다. 그는 “서울에도 문을 열어놓고 물장사가 마음대로 들어와서 붓고 가도록 해도 도둑 걱정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6명 경험담 생생히 담은 구술자료집 이 할머니처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엮은 구술자료집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이 8일 발간된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서울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시작한 ‘서울역사구술자료집’ 발간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다. 자료집은 이 할머니를 비롯해 1925~1938년 사이에 출생한 서울 토박이 16명이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사대문 안에 살면서 겪은 경험을 70여개 주제에 걸쳐 담고 있다. ●영천 동동구리무 장수 따라다니던 기억 토박이들에게 화신백화점과 탑골공원은 ‘놀이터’였다. 이들은 경적 대신 단 종소리가 맑고 냉냉거린다고 해 전차를 ‘냉냉이’라 불렀고 영천 동동구리무 장수를 따라다녔다는 공통된 기억도 있다. 1934년 통의동에서 태어난 김숙년 할머니는 “안국동 거리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젊음의 거리였다.”면서 “반면 집은 여인숙처럼 죽 늘어서 있었고 집 없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기억했다. 진고개에서 한 집뺏기 놀이, 일본인들이 만든 유곽에 쌓아 놓은 소금을 차고 달아난 기억 등 어린시절의 추억부터 광복 직후와 6·25전쟁 당시의 고통, 빠른 도시화 과정 속에서의 세태 변화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65년부터 계동 한옥에서 살아온 이형술 할아버지는 “한옥보존지구가 생기면서 집수리도 못하게 해 서울시와 주민들의 갈등이 심했다.”면서 “수십년에 걸친 논쟁과 혼란 끝에야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다양한 계층의 구술 내용을 모아 자료집으로 묶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시 문화정보네트워크(culture.seoul.go.kr)를 통해 전문이 공개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80여개 문화재 곳곳에 개발·보존 균형 어려워”

    “80여개 문화재 곳곳에 개발·보존 균형 어려워”

    “길은 무형의 문화재입니다. 한 예로 길가의 주막과 거기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길에 포함될 때 진정한 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서울 종로구청 학예사 나신균(36) 주임은 ‘종로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 주임은 관내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역사와 보존을 연구하는 책임자다. 구청에 별도의 학예사를 두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종로에는 박물관이나 개인소장품을 제외해도 총 80여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종로대로에도 세종로 사거리 교보빌딩 앞의 ‘고종즉위40년 친견기념비’부터 시작해 보신각터, 탑골공원, 종묘, 흥인지문(동대문)에 이르기까지 문화재가 줄을 잇는다. 급변하는 종로를 바라보는 나 주임의 입장은 어떨까? 그는 “개발와 보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개발을 하려고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온다.”고 입을 모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종로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던 시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문화재터를 덮거나 갈아엎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재개발이 진행되는 요즘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나 주임은 “개발의 필요성이 있고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도 원한다.”면서 “다만 개발이 이뤄지면서 옛 종로의 구획까지 사라지고 있는 점은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발조사가 한창인 청진구역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건물터와 조선백자 등 문화재급 유물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보존하고 어떤 부분을 옮기는 등의 판단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 주임은 탑골공원 옆에 위치한 육의전 빌딩이 문화재 보존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의전 빌딩은 개발 과정에서 발굴한 육의전 터를 지하 1층에 원형대로 보존해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돼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에서는 문화재보호를 위해 일반화된 방식이다. 그는 “유난히 건물터가 많고 개발이 필요한 종로에 적합한 방식이고, 건물주 입장에서도 문화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종로

    [도시와 길] 서울 종로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은 단순히 차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중심으로 집과 건물이 생기며 또 그곳에서 도시와 문화가 생긴다. 그래서 길은 도시나 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한다. 유행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있다. 서울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도시와 길’을 연재한다. ‘도시와 길’은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다. ‘종로로 갈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말 그대로 ‘1번지 길’이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수만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 보신각종의 서른 세 번 울림.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도 지켜보는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 1953년 이래 오늘날까지 ‘종로(鐘路)’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해를 시작하는 거리다. ●서민들 삶의 터전… 추억이 고스란히 종로는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길’을 떠올릴 때 감히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에서 이름에 유일하게 길을 담은 곳도 종로구뿐이다. 구로구가 있지만 구로(九老)는 길이 아닌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곳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종로 138번지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6가 78번지 동대문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2.8㎞의 왕복 8차선길인 종로는 수백 년 전부터 언제나 번화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세종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의 철마다 바뀌는 초대형 간판은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종각에서 인사동 초입, 종로3가부터 시작되는 귀금속 거리와 종로5가의 약국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겨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우정호(60)씨는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워서 장가를 보냈다.”면서 “종로는 나에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살거나 종로를 즐겨 찾는 사람들도 종로를 생각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종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학수(85) 할아버지는 “처음 기억하는 종로와 지금의 종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술회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종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로의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호연(25·여)씨는 “다른 번화가들은 유행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종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며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번화한 밤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고 전했다. 또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만 해도 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편안하게 찾는 곳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상점과 간판이 바뀌고, 건물의 높낮이는 달라졌지만 종로는 그 자체로 역사다.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사거리에 종을 매단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 종가(鐘街), 종루가(鐘樓街),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라는 이름도 모두 같은 연유다. 태종 때 시전행랑(오늘날의 상가)이 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들어선 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점과 노점들이 길을 잠식하면서 도로폭이 오히려 줄어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에 종로는 ‘최첨단’, ‘신문물’의 거리였다. 1899년 5월에는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 4월에는 종로사거리에 처음으로 전기 가로등 3개가 밝혀졌다. 당시 조선을 찾은 러시아인 파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서 “종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상점과 가게, 시장들이 있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은 종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1년부터 일제는 종로를 동대문에서 경희궁 앞까지, 폭을 28m로 좁게 줄였다. 일제가 조선인 상가가 밀집돼 있던 종로를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의 번영은 멈추지 않았다. 1931년 종로사거리 북동쪽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들어섰고 1932년에는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상인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혼마치(本)’의 일본인 거리와 각축을 벌이며 상권을 지켜 나갔다. 3·1만세시위운동의 출발과 중심도 종로였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경제자립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거점도 종로였다. ●‘도심재창조’… 변화의 갈림길에 선 종로 광복 후에도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배오개시장의 맥을 이은 광장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세운상가는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했고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이 급격히 커지자 종로는 번화가의 기능을 다른 곳에 나눠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백양로로 대표되는 신촌과 대학로를 찾기 시작했고, 유흥가는 강남대로와 영등포로 옮겨 갔다. 오래된 건물과 노점은 서민의 정취를 담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유행을 만들지도 못했고,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피맛골도 세운상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간판들이 들어섰고, 오랜 세월 종로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개발을 명목으로 역사를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신 서울시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세운상가 주변을 재정비해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종로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변화의 중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600년의 세월, 길 자체가 서울시민의 역사인 종로가 앞으로 또 다른 6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장거리 아니면 안갑니다”

    “장거리 아니면 안갑니다”

    20일 밤 12시 서울 강남역의 씨티극장 앞 대로변. 영하 10도의 추위속에 택시를 잡으려는 시민 수십명과 ‘구미에 맞는’ 손님을 가려 태우려는 택시 10여대가 1개 차로를 점령한 채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직장인 여성 3명이 앞 유리에 ‘예약표시등’을 켜고 창문을 반 뼘만큼 내리고 정차한 택시에 다가가 “건대입구까지”라고 외쳤지만, 기사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몇 분 뒤 또 다른 일행이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는 “예약 표시 안 보이냐?”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20분 뒤 한 남성이 “분당”을 외치자 기사는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끄고 손님을 태운 채 유유히 빠져나갔다. 실제로는 예약 택시가 아닌 것이다. ●허위로 예약 표시등 켜고 승차거부 같은 시간 서울 종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사동 입구에는 예약표시등을 켜놓은 택시 4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자가 “예약된 차냐?”고 묻자 기사는 곧바로 “어디까지 가요?”라고 되물었다. “안암동”이라고 밝히자 “큰 길로 걸어가서 타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하지만 종로3가 탑골공원 부근에 예약 표시등을 켜고 서 있는 택시에 “부천까지 간다.”고 말하자 기사는 “미터기에 5000원만 얹으면 바로 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장거리 손님에도 웃돈 요구 상당수 서울시내 콜택시들이 거짓으로 예약표시등을 켠 채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는 얌체영업을 하고 있어 시민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경찰도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택시 승차거부는 심야에 시민들이 몰리는 서울 강남역과 역삼동, 종로, 신촌 등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택시 3~4대당 1대꼴로 이뤄지고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심야에 택시 20~30%는 승차거부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임시환(35·경기 남양주시)씨는 “회식을 마치고 난 뒤 빈차는 없고 길가엔 예약 택시만 늘어서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선지를 말했더니 3만원을 주면 가겠다며 거래를 제안하더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탔지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재희(23·서울 잠실동)씨도 “아예 차를 인도에 올려놓고 버젓이 장거리 손님만 태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들이 승차거부를 하는 이유는 ‘돈이 되는’ 장거리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다. 택시기사 김모(51)씨는 “버스가 드문 밤 11시 이후 1~2시간의 피크타임 때 분당 등 장거리 손님을 태워야 밥벌이가 된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하는 거다.”며 “하루 14시간씩 운전해도 연료비, 밥값, 카드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한 달에 17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 다산콜’에는 택시 승차거부로 신고된 것만 1만 3147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과태료나 자격정지를 받은 건수는 각각 1393건, 25건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단속 한계… 과태료처분 11%그쳐 서울시는 다음달 1일부터 폐쇄회로(CC) TV까지 동원해 승차거부 차량을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약표시등을 켠 택시의 허위 여부를 구분하기 쉽지 않아 단속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콜택시들이 허위로 예약표시등을 켜놓고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 승차거부로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교통정보센터 관계자는 “허위로 예약표시를 한 택시를 CCTV가 촬영했더라도 승차거부를 당한 시민의 신고를 받았을 경우에만 확인을 할 수 있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연세희 화백 ‘풍속화 어제와 오늘 전’

     전통적인 풍속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온 우원 연세희 화백이 오는 28일부터 11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이즈갤러리에서 ‘풍속화 어제와 오늘 전’을 연다.   올해 고희를 맞은 연 화백은 1980년 첫 개인전을 열며 화단에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아세아 현대미술 초대전’, ‘독일 베를린 시장 초대전’, ‘중국 베이징올림픽기념 초대전’, ‘미국 뉴욕 코리아 아트센터 및 플러싱 오픈 스페이스 갤러리 동시 초대전’ 등 최근까지 국내외 전시회에서 한국 풍속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회에선 ‘인사동 풍경’. ‘아빠와 함께 춤을’, ‘실버 바이얼리니스트’, ‘골프대회’, ‘탑골공원에서’ 등 최근 시대상을 반영한 신작 20여점과 전통 풍속화 30여점, 미인도 10여점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기간:2009년 10월28일~11월3일  ■전시장소:이즈갤러리 2,3층(서울 종로구 관훈동100-5, 02-736-6669)    ■연세희 약력    1940년 충북 청주생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최우수상 수상  아세아 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일본)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출품  미국 Homestead Art Gallery 초대전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 수상  서울미술제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출품(1995~2000)  독일 베를린 시장 초대전(1999)  세계한의학 박람회 초대출품(코엑스)  중국 심양 국제미술박람회 초대전(2008)  홍콩 아트페어 초대출품(2008)  미국 캘리포이나 산호세 한인 초대전(1984)  중국 베이징올림픽기념 초대전(2008)  중국 북경 T&G 갤러리와 제일성국제회의 전람센터 동시 초대전  중국 베이징 아트살롱 초대전(2008)  미국 뉴욕 Korea Art Center와 뉴욕 Flushing Open Gallery 동시 초대전  한국 미술협회 회원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씨줄날줄] 인천도시축전/노주석 논설위원

    인천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백제건국설화에 처음 등장한다. 온조의 형 비류가 지금의 인천땅에 도착해 ‘미추홀’이라고 명명했다는 부분이다. 조선 초 잠시 인주(仁州)라고 불렸지만, 곧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첫 근대적 도시다. 우리 근대사에서 인천만큼 파란만장한 도시가 또 있을까. 인천은 무려 41가지의 한국 최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인천시 역사자료관이 2005년에 펴낸 ‘한국 최초, 인천 최고’란 책에는 최초의 근대식 등대 팔미도 등대, 탑골공원보다 9년 먼저 문을 연 각국공원(자유공원), 아펜젤러 목사가 묵었던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 등 최초, 최대의 역사가 빼곡하게 실려 있다. 야구경기가 처음 열렸던 곳이고 축구의 전래지였다. 자장면의 역사가 시작됐고 최초의 공창이자 최대의 집창촌이었던 옐로하우스가 자리잡았다. 인천의 역사는 조계(租界)와 함께 시작했다. 1883년 외국인이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거주지역이 처음 생긴 것이다. 지금의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일본조계, 청국조계, 각국 공동조계가 들어섰다. 6개 각국 공동조계가 온전히 구실을 한 곳은 인천이 유일했다. 중국 상하이 푸둥 강변 옛 조계지는 상하이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다. 치욕의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인천에 조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청국조계는 차이나타운으로, 각국조계는 자유공원으로 변신했을 뿐이다. 근대 한국의 첫 관문, 인천에서 세계 137개 도시와 1500개 기업이 참가하는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리고 있다. 80일 간의 대장정 기간에 68개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잔치가 열리는 송도국제도시는 제1호 경제자유구역 도시이다. 시인 조우성씨에 따르면 송도(松島)는 섬이 아니다. 일본해군이 자랑하던 삼경함(三景艦) 중 ‘미야기(宮城)현의 마쓰시마(松島)’에서 따온 군함의 명칭을 동네이름에 붙였다. 본래는 옥련동이었다. 유감스럽지만, 인천이 안고 있는 역사적 상처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라고 한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으로 인천은 1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관문이다. 달라졌다면 ‘미래도시 인천’의 새로운 비상이 준비됐다는 점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벼랑끝 내몰린 중산층 가장 3인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벼랑끝 내몰린 중산층 가장 3인

    중산층의 몰락이 심상찮다. 주위를 둘러봐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일컫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수년째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던 중산층 가장들이 자꾸만 고개를 떨군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벼랑에 선 중산층 가장 세 명을 실업급여 창구, 탑골 공원 등에서 만나 그들의 현실과 속내를 들었다.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아등바등 애쓰며 재기를 꿈꾸는 그들을 통해 ‘위기에 처한 가장의 아픔’을 들여다봤다. #1 실업급여 창구에서 20년 일자리 잃은 배관공 “구직 안되고 생활비 막막” 지난달 26일 오후 1시, 서울 상계6동에 위치한 서울지방노동청 북부지청 고용지원센터는 무더위를 헤치고 온 사람들로 붐볐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실업급여 신청하러 오신 분은 4층으로 가세요’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고용지원센터에 들어선 사람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직업진단, 고용동향 제공, 직업상담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는다. 기업지원팀 장현배 팀장은 “하루에 평균 300명, 많으면 400명 정도가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다.”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지만 대부분 40~50대 남성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서울시내 6개 지청 중 실업급여 신청이 가장 많은 곳으로 손꼽힌다. 갑자기 중랑구 창구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두 달 후에 다시 일하러 오라고 했다니까요.” 권정수(50·가명)씨는 건설현장에서 배관공으로 20년 넘게 일했다. IMF 환란으로 모두 실직할 당시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오히려 ‘반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4월2일 그는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았다. 현장소장은 사정이 좋지 않으니 두 달만 쉬고 오라고 말했다. 권씨는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고 두 달 후에 찾아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권씨는 참다 못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은 바닥나 통장엔 500만원이 채 남지 않았다. 80세의 노모와 단둘이 사는 권씨는 이혼한 부인과 함께 사는 자식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야 한다. 부인과 자식들에겐 실직을 알리지 않고 보내주다 보니 그동안 모아둔 돈도 다 까먹었다. 권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알아 보고는 있는데, 다들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막막합니다.” #2 호프집에서 52세때 퇴직한 대기업 국장 “두 아들 학자금에 식당 장사” 경남 진주에 사는 김동민(57·가명)씨는 대기업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국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IMF 환란 때에도 부족함이 없이 지냈다. 김씨는 2004년 52세의 나이로 명예퇴직을 했다. 그는 퇴직금과 함께 받은 2000주의 주식을 팔아 목돈을 마련했다. 살림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자녀의 학자금이었다. 김씨는 퇴직 후 그제야 아들 둘을 대학에 보냈다. 학자금으로 1년에 12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용돈까지 포함하면 자녀에게만 1년에 2000만원을 넘게 써야 했다. 게다가 씀씀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어서 생활비도 연 3000만~5000만원 정도를 썼다.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수입이 없었던 김씨에겐 더 이상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결국 가정 경제는 한순간에 몰락했다. 김씨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빚을 내 부인과 함께 작은 호프집을 하나 차렸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일했던 김씨에게 호프집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김씨는 1년도 안돼 호프집 문을 닫았고, 집 근처에 작은 식당을 차려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예전 떵떵거리며 살던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김씨. 그는 “예전 생각만 하면 자존심이 상해 드러내기조차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루빨리 경제 위기가 극복돼 서민경제가 살아나면 식당에도 사람이 넘칠 것”이라며 마지못한 기대감만 내비쳤다. #3 탑골공원에서 부도 맞은 가구공장 사장 “공무원 딸이 네식구 기둥” 24일 오전 10시쯤 탑골공원에서 만난 문일수(54·가명)씨는 어느 모임에도 끼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피하던 문씨는 담배를 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문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가구공장 사장이었다. 문씨는 부인 최씨(51), 1남 1녀의 자녀와 함께 일산에 있는 60평형 아파트에서 살았다. 연 수입이 6000만원을 훌쩍 넘었다고 했다. 생활에 여유가 넘쳤던 문씨는 주식에 손을 댔다. 여윳돈을 주식에 투자해도 살림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문씨가 투자했던 주가는 연이어 폭락했고 결국 문씨는 집까지 팔게 됐다. 더구나 가구공장도 매출이 급감했다. 가구 가격도 떨어졌고, 판매실적은 곤두박질쳤다. 문씨는 경제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가구 공장은 결국 부도처리됐다. 지금은 지인과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문씨, 현재 20평 남짓 되는 전셋집에서 네 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 문씨는 현재 소득이 없다. 지금은 지난해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딸의 수입으로 네 식구가 연명하고 있다. 문씨는 “일부 친척 이외에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면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지만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며 하릴없이 담배연기만 내뿜고 있었다. 이민영 이영준기자 min@seoul.co.kr
  • [이사람] 김효성 노원구 운동처방사 틴 휘슬 연주 인기

    [이사람] 김효성 노원구 운동처방사 틴 휘슬 연주 인기

    서울 노원구에서 노인들에게 운동치료를 해 준 뒤 ‘틴 휘슬(Tin whistle)’을 연주하는 ‘피리부는 운동처방사’가 인기를 얻고 있다. 주인공 김효성(30)씨는 이곳에서 ‘피리부는 사나이’로 유명하다. 노원구가 운영 중인 ‘찾아가는 허약노인 운동프로그램’의 운동처방사인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수건, 테라밴드,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해 맞춤형 운동치료를 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에 매주 한 차례 20분을 운동하지만 건강상태에 따라 횟수와 강도 등을 조절하게 된다. 김씨는 운동치료 뒤 자신의 특기인 틴휘슬로 가요, 민요, 동요 등을 연주해 치료받는 노인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틴 휘슬은 영화 ‘타이타닉’(1998년 국내 개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에 쓰인 악기로 유명하다. 악기 이름을 모르는 노인들은 “피리 부는 총각에게 치료받겠다.”거나 “운동보다 피리연주를 먼저 해 달라.”며 앙코르 요청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씨가 틴 휘슬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 아름다운 음색에 반해 독학으로 연주를 시작해 지금은 쉬는 날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아 무료 연주를 할 정도의 수준급이 됐다. 김씨는 “운동 뒤 휘슬을 연주해 드리면 노인들께서 마음의 문을 더 쉽게 여신다.”면서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틴 휘슬이 노인분들의 건강에까지 좋은 영향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현재 노원구는 169명의 노인들에게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낮 12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관절운동 및 테라밴드 운동도 실시하고 있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은 “운동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선택이지만 허약 노인들에겐 절대적 가치”라며 “간단한 운동이지만 어르신들에게 활력과 건강을 되찾아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구국의 만세’ 한반도 울린다

    ‘구국의 만세’ 한반도 울린다

    올해로 90돌을 맞는 3·1운동 기념행사가 정부가 주관하는 첫 공식 행사로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같은 날 서울 보신각과 탑골공원, 3·1운동 발원지인 충북 청주시 우시장 터와 제주 만세동산 등 전국 곳곳에서도 만세함성이 울려퍼진다. 3월1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3부 요인과 애국지사, 주한 외교단 등 2500여명이 참석한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정부 공식 기념식은 1987년 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민적 단결을 강조하기 위해 천안에서 행사가 개최된다는 게 독립기념관측 설명이다. 기념식에선 3·1정신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연계해 재조명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난관극복’, ‘자주자존’, ‘국민단결’을 강조하는 대국민 메시지도 전달한다. 충남 천안 인근에선 홍성군 독립유공자 추모제와 서천군 마산·신장 등지의 만세재현 행사가 마련됐다.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13일까지 기념행사가 계속된다. 특히 천안 아우내 장터에선 3·1절 전날인 28일 밤 봉화축제가 열린다. 밤 8시 매봉산 봉화탑이 점화되고, 태극기를 앞세운 참가자들이 횃불 행진을 벌여 열기를 고조시킨다는 복안이다. 3·1절을 전후한 재현행사와 걷기대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진다. 청주시는 남주동 옛 우시장 터에 3·1운동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한다. 저항운동으로 일본군의 보복학살이 일어난 경기 화성시 제암리 일대에선 재현행진이 열린다. 향남읍사무소에서 발안사거리를 거쳐 제암리 입구에 이르는 2.5㎞ 구간이다. 서울 탑골공원과 서울광장, 남산 팔각정 등에서는 시민 3만여명이 기념식과 문화행사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경북 영덕군에서도 영해장터를 중심으로 시민참여형 재현행사가 열린다. 최남단 제주도에서도 조천 만세동산의 만세 대행진과 3·1마라톤 대회가 열려 도민들의 만세열기를 고조시킬 전망이다. 전국종합·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탑골공원 → 종묘공원 어르신 씁쓸한 대이동

    탑골공원 → 종묘공원 어르신 씁쓸한 대이동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인 서울 종로 2가 탑골공원을 가득 메웠던 노인들이 어느새부턴가 사라졌다. 어르신들의 대표적 휴식처였던 탑골공원의 정비 및 단속강화로 노인들이 인근 종묘공원과 노인복지센터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빗방울이 흩날린 5일 오전 드넓은 탑골공원에는 단 4명의 노인들이 대화 상대도 없이 서성거렸다. 박모(73)씨는 “요즘은 노인복지센터에서 점심을 먹고 종묘공원으로 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중간에 있는 탑골공원은 일종의 경유지”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 약 500m 떨어진 종묘공원에는 궂은 날씨에도 바둑과 장기를 즐기는 노인들로 붐볐다. 그 주위를 빙 둘러싸고 훈수를 두는 노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적게는 하루 2000명에서 많게는 3000명이 찾는다는 종묘공원은 탑골공원을 대신해 노인들의 ‘마지막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탑골공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시 노인복지센터도 하루 3000여명(현재 등록회원 4만 1000명)의 노인이 찾는다. 무료급식과 동아리 활동을 위해 노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복지센터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종묘공원 경득수 관리소장은 “그쪽(탑골공원)에 있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모두 종묘공원으로 온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제 ‘탑골공원은 재미없다.’는 인식이 노인들 사이에서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일일 노인 방문객은 공원 추산 최소 30명에서 최대 60명에 불과하다. 탑골공원 손병희 관리소장은 “노인 방문객이 5년 전에 비해 10분의1로 줄어든 셈”이라고 했다.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지난 2001년 3·1운동 진원지를 기념하기 위해 성역화 작업이 진행돼 무료배식이 사라지고 일체의 위락행위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성역화 이후 한때 광복회원들이 탑골공원에 1시간 이상 머무는 노인들을 단속하기도 했다. 현재 광복회 회원들의 단속은 중단됐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돗자리·신문지 깔고 앉는 행위,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 음주·가무 등이 모두 금지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손 소장은 “보통 탑골, 종묘공원을 만남의 장소로 알고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이나 젊은 층들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서 “단속을 안 하면 이 일대가 노인 및 노숙인들의 천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탑골공원을 ‘빼앗긴’ 어르신들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수산(78)씨는 “일부러 못 앉게 하려고 예전에 있던 의자를 다 치웠다. 누가 차가운 돌의자에 앉고 싶겠냐.”면서 “탑골공원은 ‘공원’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 통도사서 ‘서유기 벽화’ 발견

    통도사서 ‘서유기 벽화’ 발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경천사터 십층석탑(1348)과 이를 모델로 조선 초기에 세워진 탑골공원의 원각사터 십층석탑(1467)의 탑신에는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줄거리가 조각돼 있다. 그런데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범하 스님)이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최근 ‘한국의 사찰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남 양산 통도사의 용화전(龍華殿)에서도 서유기의 주요 장면이 담겨 있는 벽화를 발견했다. 서유기 벽화가 제작된 시기는 영조 1년(1725)에 중건된 용화전에 후불탱이 조성된 정조 22년(1798) 무렵으로 연구원은 추정했다. 서유기로 사찰을 장엄하던 고려 불교의 전통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주목된다. 서유기는 서역에서 경전과 불상을 구하여 당나라로 돌아간 현장법사(602~664)의 업적과 명성이 후대에 설화화하면서 명나라의 오승은(1500?~1582)에 이르러 소설로 정착된 것이다. 통도사 용화전의 서유기는 7개 장면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가족과 함께 인사동서 ‘미션게임’

    종로구는 12일 가회동과 인사동 일대에서 ‘제3회 가족 걷기대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이날 오전 9시30분 운현궁에서 시작되는 행사에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 200가족(약 500여명)이 참여해 가족 화합의 시간을 갖는다. 완주한 가족에게는 사은품과 기념품을 나눠준다. 특히 이번 걷기대회는 가족이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오리엔티어링’을 가미해 재미와 성취감을 더하게 된다. 또 우리 전통이 남아 있는 가회동과 인사동 지역에서 행사가 펼쳐져 역사 여행과 다양한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게 꾸몄다. 인사동, 가회동, 종묘로 이어지는 걷기대회 코스는 ▲민영환 의사 자결터에서는 민영환과 관련된 문제를 풀고 ▲조계사에서는 떡치기, 차 체험, 투호놀이 등 전통음식과 놀이를 하면서 고유문화의 소중함을 느낀다.▲우정총국에서는 한국 최초의 우편행정관서의 의미를 살려 ‘가족에게 사랑의 엽서쓰기’가 열리고 ▲서울교육사료관 앞마당에서는 림보놀이, 제기만들기와 차기, 딱지만들기와 치기,1960년대 추억 속 가족사진 찍기를 할 수 있다.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손맛사지’ 체험으로 마무리된다. 또 가훈써주기, 문패만들기, 소원벽만들기, 건강가정지원센터 홍보관 등 체험부스와 가족 OX퀴즈 가족댄스타임 등 열린다. 정동식 가정복지과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가족들이 유대감과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길섶에서] 호수공원의 힘/임태순 논설위원

    공간은 그곳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좌우한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라도 젊은 연인들이나 노년층 또는 10대 등 특정층이 독점하고 있다면, 그들에 의해 성격이 규정돼 그들의 점유물이 되고 만다. 서울 탑골공원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지만 역사와 유래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오랜만에 일산 호수공원을 찾았다. 가을비와 함께 늦더위도 물러나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들, 열심히 공원 산책로를 걷는 할아버지·할머니들,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젊은 연인들.50대 아줌마 군단들은 뭐가 신나는지 잔디밭 그늘에 앉아 연신 웃음꽃을 터뜨렸다. 언제 찾아도 반갑고 정겨운 모습이다. 힘차고 생기차다. 호수공원 구성원들의 사랑, 우애, 우정 등이 이곳에 다른 이물질을 끼어들 수 없게 한다. 새삼 호수공원의 힘을 느끼면서 나도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Metro] 서울시 실버 예술대학 운영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인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을 12월까지 서울 각 지역에서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연극, 뮤지컬, 공공미술,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 강좌 등을 자치구별로 문화예술회관, 복지기관, 탑골공원 등에서 진행하는 것으로,60세 이상 시민이 참여할 수 있다. 문의 서울문화재단 (02)3290-7134.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깔깔깔]

    ●첫 아이 첫 아이가 생긴 부부의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밤에 아이가 보챌 때마다 아내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일어나요. 어째서 애가 우는지 봐요.” 잠을 설치는 날이 그렇게 계속된 어느날, 남편의 직장 동료가 유아마사지에 관한 책을 권했다. 그날 밤, 남편은 그 책에 있는 대로 아기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더니 조용히 잠을 잘 잤다. 그런데 한밤 중 남편이 아내를 깨우는 것이 아닌가. “여보, 일어나요. 애가 울지 않으니 어쩐 일인지 가봐요.”●우기는 여자 허장강을 강이라고 우기는 여자. 안중근을 내과의사라고 우기는 여자. 탑골공원과 파고다 공원이 다르다고 우기는 여자. 비자카드 받아놓고 미국비자 받았다고 우기는 여자. LA가 로스앤젤레스보다 멀다고 우기는 여자.
  • 두 얼굴의 경찰

    경찰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법을 적용해 엄정 사법처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고 시위대로 돌진해 시위대와 의경을 친 뒤 달아나려 했던 피의자를 불구속 입건한 것으로 드러나 이중잣대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7일 혈중알코올농도 0.194% 상태에서 촛불시위 현장으로 승용차를 몰아 시위대 4명과 의경 1명을 들이받은 뒤 도주하려 한 조모(28)씨를 단순 음주 교통사고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경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고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조씨는 이날 오전 1시20분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종로 2가 탑골공원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후 조씨는 30∼50m 정도를 도주하다가 경찰과 시위대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물론 의경 1명도 승용차 바퀴에 오른발이 깔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경찰은 조씨에게 뺑소니 혐의와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일 조씨의 신병처리가 궁금했던 피해자 진모씨가 종로서에 문의한 결과 드러났으며,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종로경찰서 홈페이지를 찾아 “뺑소니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적용시켜 엄하게 사법처리했어야 했다.”며 경찰을 비판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종로서 교통사고조사계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자가 전치 6주 이상의 상해를 입어야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전치 2∼3주의 진단밖에 나오지 않았다.”면서 “가해 운전자도 몸싸움 과정에서 눈밑 골절상을 입었다.”고 해명했다. 또 “판례상 피의자가 사고 이후 피해자 주변 인물들에게 신변의 위험을 느껴 달아난 경우 뺑소니로 보기 어렵고, 조씨가 고의적으로 의경을 친 게 아니라 브레이크 오작동으로 일어난 사고여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경찰이 오히려 피의자를 두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설창일 변호사는 “조씨는 시위대에 돌진한 뒤 시위대 일부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50m 정도 달아나 누가 봐도 명백한 뺑소니였다.”면서 “전·의경과 사소한 몸싸움을 벌인 피의자에게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한 경찰이 의경을 친 피의자에게는 이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00번째 촛불집회’ 사복 체포조 첫 투입

    ‘100번째 촛불집회’ 사복 체포조 첫 투입

    15일 밤 서울 명동 등 도심 곳곳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한 100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 3700여명(경찰 추산·주최측 추산 1만 2000여명)은 애초 촛불집회 장소였던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을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명동, 을지로, 종로 등으로 흩어졌다가 오후 7시30분쯤 명동 한국은행 앞으로 집결했다. 경찰은 집회 시작 40분 만인 오후 8시10분부터 파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면서 진압을 시작했다. 이어 곧바로 등산복이나 반바지에 티셔츠 등 사복을 입은 ‘경찰관 기동대’가 투입돼 도로를 점거한 시민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도 위나 골목에 있는 시민들도 파란 색소가 묻은 이들을 골라내 연행했다. 사복 체포조가 촛불집회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들은 광복절을 맞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뿐만 아니라 ‘6·15공동선언 실천’,‘민족자주 실현’,‘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유관순 복장(하얀 저고리·검정 치마)을 차려입은 100여명의 시위대는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인도로 올라가 시위를 계속했고, 경찰은 차도에 남아 있던 시위대를 포위했다. 경찰의 진압으로 9시쯤 시위대 중 일부는 해산했고,2500여명은 탑골공원 앞으로 장소를 옮겨 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종로와 동대문 등지로 옮겨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했다. 경찰은 이날 촛불집회와 거리행진을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도심 곳곳에 217개 중대 2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대 150여명을 연행했다. 김승훈 장형우기자 hunnam@seoul.co.kr
  • 건국·광복 ‘8·15 두쪽’

    일제에서 해방된 지 63년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이 된 2008년 8월15일. 서울 도심에서는 ‘광복절’과 ‘건국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제각각 열리는 안타까운 풍경이 연출됐다. 여당과 야당도 따로 기념 행사를 치렀다. ●“분열의 역사 아직 치유 안돼” 정부와 보수단체는 남한에서의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야당과 진보단체는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 법통 계승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분단과 분열의 역사를 치유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옛 중앙청 광장(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2만 7000명(이하 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을 열었다.1만 2000여명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300여명도 오전 11시부터 청계광장에서 ‘건국 60주년 기념 문화제’를 열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지도부는 정부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지만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3당 지도부는 정부 행사에 불참하고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했다. 오후 들어서는 진보단체들의 광복절 기념 및 건국절 반대 집회가 줄을 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독립유공자회 등은 오후 2시 종로구 신문로 역사박물관에서 ‘대한민국 건국 89주년 학술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연대와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8·15 기념대책추진위원회’ 소속 회원 3700여명은 오후 4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문화제를 열고 “정부는 진보진영 탄압과 민생경제 파탄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대학생연합 등은 탑골공원 앞에서 반일집회와 광복절 기념집회를 갖고 6·15공동선언 실천을 주장했다. ●경찰 촛불집회 물대포 진압 저녁 7시부터는 3700여명(경찰추산)이 종로, 명동, 남대문 등 도심 곳곳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100번째 촛불집회를 가졌으며, 경찰은 저녁 8시쯤부터 명동 한국은행 앞에 집결한 시위대를 향해 파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며 진압과 체포 작전을 벌였다. 상지대 사회학과 홍성태 교수는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현재의 보수세력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며,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올바르고 보편적인 인식을 가진 보수세력이 육성돼야 국민통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행사에 참여한 시민 강진수(62)씨는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다.”면서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종락 이경주 김승훈기자 kdlrudwn@seoul.co.kr
  • “빨간 마스크 찍었어… 네가 잡아”

    “빨간 마스크는 내가 잡았다.” 시위대 검거 경찰관에 대한 성과급과 마일리지 부여 방침이 결정됐던 지난 5일 촛불시위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검거작전을 펼쳤다. 검거자의 구속처리를 위해 경찰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시위대를 골라 집중 채증, 물대포 발사, 추적 후 연행하는 방식이었다. 오후 7시30분쯤 서울 청계광장 주변 종로구청 진입도로 방향에 배치된 경찰들은 거리행진을 시작하지 않은 시위대를 압박했다. 경찰은 이에 물병을 던지는 등 저항하는 시위 참가자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붉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 발사 후 경찰 4인 1개조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 사진이 찍힌 시위 참가자를 골라내 순식간에 연행해 갔다. 경찰은 사진 찍힌 시위대를 끝까지 쫓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도망친 시위 참가자를 잡기 위해 영업 중인 화장품 가게에 뛰어들었으며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밀려 들어가고, 넘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연행방식은 종각역 4거리, 종로 2가 탑골공원 앞, 종로 3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경찰의 집요한 검거는 승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마일리지 부여 방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즉심이나 훈방될 검거자 5명에 대한 마일리지와 구속자 1명에 대한 마일리지가 같기 때문이다. 검거에 성공한 경찰이 “아까 물병 던지던 사람은 내가 잡았다.”면서 “채증도 했으니 구속되겠지.”라고 동료들에게 말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또 “빨간 마스크 쓴 사람 찍었으니까 지켜보고 있어라. 이번엔 네가 가서 잡아라.”라고 의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이날 밤 모두 167명을 연행했다. 이들이 모두 훈방된다면 167점, 반대로 모두 구속된다면 835점의 마일리지가 검거유공 경찰관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촛불’로 돌진한 만취車

    만취한 운전자가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던 시민들 사이로 차를 몰고 돌진해 5명이 다쳤다.27일 오전 1시20분쯤 조모(28)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94%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에 일행 2명을 태운 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 차도에서 집회를 벌이던 시위대를 들이받았다. ●5명 부상… 시위대 42명 연행 이 사고로 진모(42·여)씨 등 시위참가자 5명이 다쳐 국립의료원과 서울백병원으로 나뉘어 후송됐다.119종합상황실 관계자는 “5명 모두 경상이고,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승용차가 시위대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후진하면서 1명이 다칠 뻔해 시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잠시 뒤 운전자가 급발진해 시위대를 들이받았다.”고 전했다. 운전자 조씨는 달아나려 했으나 경찰과 시민들에게 붙잡혀 종로지구대로 넘겨졌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임태훈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은 “비록 시위대가 차도에 있더라도 차를 통행시켜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면서 “경찰도 50%는 사고에 책임이 있으며, 경찰이 집회를 보장하지 않고 시위대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1500여명(경찰추산)의 시민들이 참가한 촛불집회는 26일 오후 7시부터 2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거리행진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거리시위를 계속하자 26일 밤 11시20분쯤 전의경들을 투입, 강제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의경들이 시민들을 방패로 내려치거나 발길질했으며, 시민들도 대열에서 떨어져 고립된 전의경들을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경찰은 시위대 42명을 연행했다. ●민노총 진영옥 부위원장 체포 한편, 민주노총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7일 오후 7시쯤 서울 신촌 부근에 잠복해 있다 가족과 만나는 현장을 덮쳐 진 부위원장을 체포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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