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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유고 파견 전문인력모집“붐”/사태악화 대비 지원요원 확보 부심

    ◎일간지 마다 구인광고 잇따라/전직 장성 등 「전쟁특수」 누릴듯 『사람구함­좀 위험함­침식제공,90일 이상 근무해야 하며 유고어와 영어를 구사해야 함.나이는 관계없음』 지난달 미육군정보사령부가 시카고의 한 경제일간지에 낸 구인광고다. 최근들어 부쩍 늘고 있는 이같은 광고는 보스니아사태가 악화되면서 2만5천명의 파병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미국방부와 정보관련부처들이 지원스태프를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다. 정보당국자들에 따르면 현재 각 정보관련당국들이 일촉즉발의 「발칸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지상군에 일반정보를 수집해줄 수 있는 인력을 찾고 있으며 심지어 유럽에서도 시한부로 일할 이같은 인력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당국자는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전직 정보통이면 대환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계통에 종사한 퇴역장성,전직 중앙정보국 간부,탐정들은 물론 유고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보스니아 특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전미국방정보국 사령관을 지낸 데이비드 그라함 예비역소장은 『옛 정보국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비슷한 정보관련기관들이 전직 작전·정보장교들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 중앙정보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며 유고지역에서 일할 사람들을 충원중』이라고 전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충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72살인 전중앙정보국의 한 직원은 『올해 초 정보국으로부터 세르비아로 가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고 『그러나 야전근무를 원치 않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유고가 전쟁터여서인지 인재확보가 여의치 않자 관계당국은 각종 일간지를 통해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 구함』 『유고어를 할 줄 아는 통역인 1백25명 구함』 『유고에서 미 지상군과 함께 일할 스파이를 구함』 등의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의 한 대변인은 『정부가 보스니아 파명을 결정할경우 통역관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고 전했다. 그는 『소말리아사태나 걸프전때도 비슷한 광고가 나갔다』면서 『당시는 대부분 학생들이 고용됐으나 이번의 경우 나이는 상관없지만 건강검진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것』이라고 덧붙였다.
  • 소설 「붉은 광장」 선풍/미 작가,구소 쿠데타 당시 사회상 그려

    요즘 러시아에서는 92년8월의 군부쿠데타를 전후해 급변하는 러시아의 어두운 사회상을 다룬 소설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미국 작가 마틴 크루즈 스미스가 쓴「붉은 광장」이란 이 책에는 도도히 러시아에 밀려오는 자본주의 풍조와 함께 공무원들의 비리,암달러상,범죄 증가등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작중 인물의 주인공은 고르키 공원을 담당하는 형사 아르카디 렌코.그의 암호명은 북극성. 형사 아르카디는 모스크바­뮌헨­베를린을 오가며 범죄행각을 일삼는 국제범죄단의 정보를 입수한 수사팀의 일원이 되어 사건해결에 나선다.신생 러시아의 초라하고 일그러진 영웅인 아르카디는 그러나 범죄단으로부터의 갖은 위협 때문에 더이상 사건을 추적하지 못하고 몸을 피해다녀야 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붉은 광장」을 단순한 탐정물로만 다루지는 않았다.범죄수사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있다.특히 새로운 자본주의의 도입을 둘러싸고 전직 고위관리들이 벌이는 암투는 상상을 초월한다. 뿐만아니라과거 70여년동안 권위주의 체제도 여전하다.루블화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으며 암시장은 날로 번창한다.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늘어선 서민들의 행렬도 길어진다. 아르카디는 이처럼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돈을 잔뜩 벌고있는 암상인과 밀고자를 수사하게 되지만 이를 포기하고 만다.그러다 그는 범죄단을 추적한다는 구실로 뮌헨을 거쳐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게 된다. 그가 베를린에서 목격한 것은 서독의 놀라운 발전상과 물밀듯이 밀려오는 동독 이민대열의 분노와 돈 냄새,가난 그리고 정치인들의 음흉한 음모다. 여기서 우연히 아르카디는 고르키 공원에서 근무할때 사귀던 시베리아출신의 옛 애인 이리나를 만나게된다.그들은 모스크바로 돌아오던 길에 쿠데타 소식을 듣는다. 모스크바에는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져있고 아르카디는 불심검문에서 2차대전이후 최대의 예술품 절도단으로 몰린다. 마침내 쿠데타군이 모스크바 한복판으로 진입한다는 뉴스를 듣고 그들은 의사당을 지키기 위한 비무장 군중들의 시위에 합류한다.공중에선예광탄이 터지고….
  • 영 예술품탐정회사 “성업”/도난 세계거장들 명품 잇따라 찾아내

    영국의 재계와 문화계는 요즘 런던의 한 예술품탐정회사에 짙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설립된지 겨우 1년밖에 안됐지만 경이적이라 할만큼 기업으로서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도난당한지 오래돼 애호가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세계거장들의 명품들을 불쑥 되찾아 내놓는 「깜짝쇼」를 자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중심부인 버킹검궁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 회사의 명칭은 국제미술·골동품분실물등록회사(ALR).처음엔 값비싼 미술품의 도난방지에 한계를 느낀 영국의 몇몇 미술품경매장과 보험회사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라도 도난범들에게 위협을 줄 목적으로 합작설립한 전시용 회사였다.그러나 감식작업에 최신형 컴퓨터를 활용,쪽집게같은 「탐정」의 위력을 발휘했으며 때마침 인공위성 사용료가 대폭인하됨으로써 엄청난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더구나 예술품탐정이라는 이 신종 사업영역은 해마다 도난당하는 전세계 예술품의 규모가 45억달러로 추정되는 황금시장이어서 성장잠재력은 무한정이라고 ALR의 관계자는 설명한다.ALR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는 3억달러어치의 도난예술품 4만5천점이 등록돼있으며 달마다 2천점씩이 추가등록되고 있다.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내용은 도난예술품의 사진과 미술사를 전공한 석사이상의 하이테크탐정들이 분석한 작품특성들.고객으로부터 도난품여부를 가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작품의 사진과 특성을 입력,컴퓨터의 자동검색작업으로 도난품인지를 가려낸다. ALR가 지금까지 찾아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80년대에 도난당한 피카소의 「금귀고리차림을 한 여인의 머리」,루벤스의 「오로라」,보나르의 「목욕하는 여인」등을 들수 있다.ALR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로이즈보험회사가 15만4천달러를 들여 1백만달러어치가 넘는 예술품을 찾아갔다면서 이 회사의 우수한 탐정능력을 역설했다. ALR의 주요 고객은 소더비·크리스티·필립스·본햄등 주요 예술품경매장들과 예술품을 취급하는 보험·재보험회사들로 요즘에는 인터폴·미연방수사국(FBI)등 수사기관들의 의뢰빈도도 늘어나고 있으며 개인소장자들의 문의 또한 증가추세에 있다.따라서 ALR는 현재 사업영역을 도난품판별에서 진품과 모조품을 가려주는 일반감정영역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뉴욕에만 있는 해외 데이터베이스망을 유럽대륙과 일본에까지 확대구축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중이다. 다만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면 박물관과 경매장·전시장을 노리던 예술품전문털이들이 앞으로는 그에앞서 이 회사의 컴퓨터를 노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 해체시대/김영수 청주대교수 문학평론가(굄돌)

    요즈음 유행하는 노래 가운데 「접시를 깨자」라는 구절을 들을수 있다.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예쁜 아가씨의 바지가 몇층을 찢어져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이러한 유행을 보면 바야흐로 세상 취미는 깨고 찢고 하는 판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노래나 춤이나 바지가랭이만 찢고 깨는것이 아니라 요즈음 소설도 보면 종전의 전통적인 수법이나 문법을 해체시키고 파괴시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수법이라는 것이다. 소설의 정석은 인물,사건,배경을 적절히 깔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소설가는 마치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을 제공하기도 하고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펼치기도 한다.그래서 거기엔 슬픈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따분한 사람에게는 흥겨운 재미를 주기도 하고 또 무미건조한 현실 앞에는 웃음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경우에 작가는 작품속에서 무책임한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그 작품속에 작자 자신이 개입하기도 한다.탐정소설 같은 경우에는 작가 자신이 스스로 탐정이 되거나 도적이 되거나 하여 웃지 못할 광경을 벌인다.이렇게 하여 작가는 작품을 밖에서 적절히 요리하고 조종하는 처지가 아니라 철저한 방관자이거나 스스로 작품 안팎을 들락이거나 또는 자기 작품에 대하여 스스로 그 작품을 흉보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요즈음 세상은 이렇게 모든 기존의 것을 파괴시키고 있다. 뒤 샹은 예술작품으로 변기를 전시했다.아름답고 수품있는 전통적인 것에 심한 권태를 느낀 때문이다.바로 걸어놓고 보던 그림액자도 거꾸로 걸고 옆으로 걸고본다.똑바로 걸린 것에 실증이 났기 때문이다.이러한 권태증이 심한 현대 인간은 늘 보는 자기얼굴에도 더 이상 보기 싫어졌다고 한다.그래서 초상화 그림이 사라지고 흉칙한 모습의 인간을 그리기도 한다.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본 것도 바꾸어 보자는 인간의 증상일 것이다. 말하자면 절대가치나 진리를 잴 잣대가 없다는 것이다.누가 그것을 진리라고 규정했느냐고 반문한다. 지금 포스트도더니즘이 상륙한 후 이상과 같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유행은 유행이기 때문에 유행되는 것이 당연하다.옷을 찢는것도 접시를 깨는 것도 소설이나 시에서 종래의 수법을 깨고 전통을 파괴하는 것도 유행은 유행이다.그러나 이러한 유행이 급기야는 질서를 깨고 도덕을 파괴하고 인륜 그 자체를 해체시키는 지경에까지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것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 아동상품광고 41%가 “위법”

    ◎공보처,4대매체 실린 6백69건 모니터/과장·과소비조장·폭력적표현 많아/“건전한 정서발달에 장애” 시정촉구 TV·라디오·신문·잡지등 4대매체에 실리는 아동용 상품광고의 대부분이 허위·과장표현과 과다경품제공 등으로 과소비와 사행심을 조장하고 폭력·외설·퇴폐적 표현으로 아동들의 건전한 정서발달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공보처는 지난 1,2월 두달간 전파나 지면을 통한 아동용상품광고 6백69건을 모니터한 결과 전체광고의 41.3%인 2백76건이 아동복지법·방송심의규정등 아동용상품광고 규제관련법규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히고 이같은 사실을 광고심의단체 및 관련부처에 통보,시정을 촉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매체별로는 신문(32.6%) TV(30.9%) 잡지(28.6%) 라디오(7.9%)순으로,품목별로는 아동도서문구류(14.8%) 과자등 스낵류(13.2%) 인스턴트식품 (11.7%) 학습교재(10.6%)순으로,유형별로는 허위·과장(45.7%) 과소비조장(20.7%) 폭력·외설(13.8%) 방송프로그램모방(10.5%) 외국상품오인(7.2%)순으로 문제광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밝혀졌다. 즉 「어린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카메라를 한대 장만해두세요.부모님으로부터 받고 싶은 생일선물 7가지를 몽땅 드립니다」의 광고문안(어린이왕국 브라운탐정 시리즈)의 경우 호기심을 자극하는 카메라를 선물로 내세워 과소비를 조장하며 「나의 입술을 처음으로 훔쳐갔다」(해태 키세스아몬드)는 등의 폭력·외설·퇴폐적 표현,「알고보니 내짝도 내가 가르쳐준 홈스터디로 매일 한시간씩 공부를 한다고 한다.내 짝도 이제 공부에 재미를 붙였나보다」(동아 홈스터디)등 열등감을 조성하는 표현,「빈틈없는 산수실력,쑥쑥 느는 수학실력­구몬수학」(공문교육연구원)등의 허위과장표현 등이 주로 지적되었다.
  • 외언내언

    독설가 버나드 쇼는 25살 때부터선가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된다.친구들은 고기 안먹으면 영양부족으로 일찍 죽는다고 경고한다.하지만 경고한 친구들보다 오래 살았다.94살에 타계했으니까.◆시도 쓰고 탐정소설도 쓰고 평필도 들었던 체스터턴은 뚱뚱보였던 모양.채식을 한 때문이었던지 대조적으로 말라깽이인 쇼가 쏘아댄다.『땀 흘리고 씩씩거리긴….내가 만에 하나 자네 같은 뚱뚱이가 된다면 차라리 목을 매어 죽고 말지』 이 말을 들은 체스터턴은 불룩 나온 배를 쓸어내리면서 되쏘아붙였다.『만약 제가 어느때 목을 맨다면 선배님을 목매는 노끈으로 쓰고 말겁니다』◆체스터턴은 쇼보다도 18살이 손아래.그러면서도 저승으로는 쇼보다 14년 먼저 갔다.62살에.쇼는 말라서 오래 살고 체스터턴은 살이 쪄서 그보다 못살았던 것일까.복실복실 살집이 좋은 처녀한테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 덕담하고 아랫배 튀어나온 사내에게 「사장감」이라 치켜세웠던 것은 옛얘기.지금은 체중 많이 나가는 것을 모두 꺼려한다.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면서.그렇건만 서울 어린이의 경우 5명중 1명은 비만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살이 붇는 사람은 물만 먹어도 체중이 는다고 푸념이다.먹고 싶어도 체중 느는 것이 두려워서 참는 사람도 적지않다.그러나 식욕은 사람의 본능.보고서 안먹을 수도 없다.그래서 먹고 운동은 부족하고.많은 도시인들은 체중때문에 고민한다.특히 중년여성들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그들은 체중을 줄일양으로 다이어트 식품도 먹어온다.그런데 소비자 보호원이 조사한바에 따르면 「효과 없었다」가 87%.부작용도 겪은 것으로 나타난다.◆「약」을 먹어 살을 급하게 빼려 드는 건 잘못.미식·과식을 삼가는 가운데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근원적 접근법이다.체중은 그렇게 천천히 줄여 나가야한다.
  • 이청준장편 「인간인」(이달의 소설)

    ◎역사·권력의 억압 탈피,자유 희구/해방전후∼80년5월까지의 인간사 두권으로 완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살면서 가끔은 부닥치게 되는 질문이다.질문은 늘 질문으로 끝나기 십상일 뿐 그 답 찾기란 흡사 맹구우목 아니겠는가.천 길 바다속의 눈먼 거북이가 천년에 한 번씩 수면위로 떠오르다가,그 중에 우연히 몸을 얹어 쉴 만한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그게 바로 깨달음이렸다. 중견작가 이청준씨의 장편 「인간인」은 그 깨달음이란 화두와 그것의 비극성을 다룬 역작이다.88년 출간된 장편 「아리아리강강」을 고쳐 1부 「아리아리랑」으로 하고,2부 「강강술래」를 완결편으로 하여 펴낸 이 소설은 『인간사의 무명과 참담스런 배이』를,역설적이게도 『현묘한 섭리』로 풀어보고자 한 지혜의 소설이라 하겠다.1부에서 작가는 해방 전후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풍운아 남도섭의 운명을 권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보이고 있다.「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드라마틱한 역전과 재역전이 탐정소설 구조 안에서 시종 긴장감을 자아낸다. 힘을 가진 자로 부상하기 위해 밀첩으로 쫓는 자가 되었던 도섭,하지만 해방이 되자 다시 쫓기는 몸이 되고,한순간 회복하지만 거듭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는 그의 삶의 족적은 타락한 역사의 순환논리를 암시한다.한번도 정당한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혹은 한번도 자신의 본 마음을 명찰하지 않았던 운명에게 채워진 윤회의 덫이었던 것이다.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옥죄어지는 게 그 덫의 속성이니,출구없는 방에 갇힌 악연의 운명을 상징한다 하겠다. 2부에 이르면,그 윤회의 덫 혹은 덫의 바큇살을 끊어내려는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다.70년대 말에서 80년 5월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역시 숨어사는 사람들과 그들을 쫓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가 그것이다.대개 반민주적 상황에 저항하던 사람들이거나 사회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개인적 한의 마디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숨어산다.그들이 갇혀 있는 한 윤회의 덫은 강고하다.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5월 광주로 함께 출정하게 함으로써,작가는 그 덫을 벗기려 한다.여기서 작가는 단순히 출정하는 모습을 박진감있게 보여주기보다는,한의 사람들 사이에서 잉태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심리를 통해서 그 덫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이렇게 볼 때 『순정한 어둠의 장막을 헤치며 일출처럼 눈부신 한 아이의 모습이 그를 향해 환하게 걸어오고 있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결국 이청준씨의 『인간인』은 역사와 권력과 인간의 함수관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묘파하면서 그 운명으로부터의 자유를 희구한 소설이라 하겠다.역사와 권력의 소용돌이는 인간에게 늘 억압의 굴레를 덮씌웠고,하여 굴레 속의 인간의 한의 존재였다.이럴 때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지금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작가는 「의미심장하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 북한 고위관리 지낸 재소동포의 「6ㆍ25증언」

    ◎“김일성,6ㆍ25새벽 내각 소집… 남침비준 강요”/4월초 군관학교간부 전선에 미리 배치/전쟁 한달전 강동학원서 통치요원 육성/폐쇄적인 북한체제는 「수용소적 사회주의」로 불러야 한때 북한의 권력 핵심에서 활약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했던 재소교포 18명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조국을 찾아왔다. 이들의 대부분은 6ㆍ25전쟁 전후 북한의 고위직에 있었으나 50년대말부터 60년대초까지 김일성 1인지배체제에 반발,소련으로 망명했던 「역사의 증인」들이다. 대부분이 70을 넘긴 고령인 이들은 22일 MBC시사토론에 참석,북한정권의 성립과 6ㆍ25전쟁의 발발 그리고 김일성 1인통치체제의 구축과정 등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날 토론에 나온 사람은 강상호(80ㆍ전 북한 내무성차관) 장학봉(71ㆍ전 북한 군관학교부교장) 박병률(82ㆍ전 북한 강동정치학원원장) 송진파(76ㆍ전 북한 문화성국장) 정상진(73ㆍ전 북한 문화성차관)등 5명이다. ­6ㆍ25당시 그리고 소련으로 망명하기전까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박병률=47년 12월부터 50년 6월25일까지 남로당원 양성기관이었던 강동정치학원 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훈련시킨 제자는 3천명에 이르는데 지리산 빨치산대장이었던 이현상과 제주도 폭동주역인 김달삼도 포함돼 있다. ▲강상호=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소련에서 북한으로 돌아왔다. 6ㆍ25당시 내무성 차관이었는데 북한의 내무성은 경찰권 탐정권등의 권한을 행사했다. 나는 여러명의 차관중 당정치교양사업ㆍ문화사업을 맡았으며 김일성을 도와 북한정권수립에 참여했다. 당시 내무성장관은 현사법상인 방학세였다. ○「김정권」수립에 참여 ▲정상진=6ㆍ25직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했다. 해방전에는 소련에 있었으며 45년 3월에서 8월까지 소련해병대원으로 5개월간 훈련을 받고 소련의 대일전쟁에도 참여했다. ▲장학봉=군관학교부교장으로 군장교양성교육사업을 맡았으며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상좌(우리의 준장)계급장을 달고 전투에 참가했다. 1988년까지 남한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는데 포항제철,울산자동차공장 등을 둘러보니,경제ㆍ문화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조국임을 실감,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콘크리트장벽 없어 ▲송진파=북한의 문화성국장,잡지 「새조선」의 주필을 맡았고 망명후에는 소련에서 발행되고 있는 한글신문 「레닌기치」의 주필을 맡았으며 현재는 은퇴했다. ­휴전선도 돌아보았을텐데 콘크리트장벽을 보았는가. ▲정상진=북한에서 선전하는 콘크리트장벽은 만리장성을 연상시키는데 대전차장벽은 있었으나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콘크리트장벽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베를린장벽과 같은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적 장벽」이 문제이다. 몇년전만해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소련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 시작해 정세를 바로 알게됐다. ­올해는 6ㆍ25발발 40주년이 된다. 6ㆍ25에 대한 연구도 많고 주장도 엇갈리는데 당시 내각에 참여한 사람으로 진상을 말해 달라. ▲강상호=그때 나는 병으로 평양중앙병원에 입원해있었으며 6월25일은 퇴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중앙당비서가 그날 새벽전화를 걸어와 퇴원즉시 내각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있었다. 내각회의에는 국가보위상인 최용건만 빠지고 전원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김일성은 『지금부터 2∼3시간전 38선 전역에서 남조선괴뢰군이 북침을 해왔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 즉시 반격을 명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사항은 내각의 비준이 있어야 하니 이를 비준해 달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이 제안은 토론없이 1백%찬성으로 통과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곧 원산행차에 올라 강원도당회의를 열고 전쟁에 대비한 과업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서울이 해방됐다는 소식과 함께 3ㆍ8선이 남의 강원도를 책임지라는 지시가 있어 춘천으로 출발했다. 이때 나는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 그 이유는 첫째 3ㆍ8선을 넘어 산굽이를 돌면서 국군포대를 관찰해보니 국군의 포와 포탄이 흩어져 있었는데 탄피는 몇개 없었다. 북침을 했다면 숱한 사격의 흔적이,공격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둘째 전선지대의 이북 농촌에는 파괴된 집도 없었으며 농민들은 들판에서 김을 매고 부녀자들은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는데 국군의 포격이 있었다면 그럴수 있겠는가. 셋째 미국무장관 덜레스가 이승만에게 북침을 명령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이 왜 하나의 사단도 남겨놓지 않고 군대를 철수했으며 딘소장이 포로가 될 정도로 전쟁초반에 패퇴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박병률=김일성이 도발한 것이라는 구체적 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지만 감지할 수는 있었다. 남한에서 월북한 사람들이 전쟁발발 1개월전부터 강동학원장인 내게 보내져 집중 훈련을 받았다. 또 전쟁이 발발하기 몇시간전에 서울 함락후 서울시 인민위원회위원장을 맡았던 이승엽이 『자기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강동학원을 떠났다. ○스탈린이 전쟁 묵인 ▲장학봉=당시 군관학교에는 인민군지도자 25명의 그룹반이 있었는데 50년 4월에 이미 이 그룹반이 해산돼 소속원들 모두가 전선으로 배치됐다. 50년 8월까지 북한의 신문 라디오 등 모든 선전기관은 남조선이 북침을 했고,북한이 이에 반격을 가했다는 선전을 거듭했고 나 또한 전선에 나가지않아 이를 그대로 믿었었다. 8월초 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정의의 전쟁에 참가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이 나오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이전에 스탈린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남조선해방과 전조선의 자유를 위해 남침을 호소했으나 스탈린은 남조선침입의 대가로 미국이 참전하면 다음은 소련이 이에 대응해야 하는데 준비가 안됐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후 6ㆍ25발발 5∼6일을 앞두고 김일성은 이 문제를 다시 스탈린에게 제기,스탈린은 「좋다 나쁘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으며 묵인했다. 이와 관련,흐루시초프는 내가 스탈린의 입장이었더라도 작은 나라가 통일을 하겠다는데 대해 어떠한 승인도 지시도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전쟁이틀후 열린 유엔안보이사회에서 소련대표가 유엔군의 참전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장한 것은 내막을 뻔히 아는 스탈린의 고육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정권 수립때의 실정은 어떠했는가. ▲강상호=김일성일파가 만주에서 유격활동중 일본군의 토벌강화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국공산당이 소련측에 이들의 보호를 제의했다. 김일성부대는 소련정찰여단으로 편입돼 아무르강유역의 비밀지역에 있었고 해방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원산으로 귀국했다. 나는 소련 제25군 정치부 지도원이어서 김일성을 해방전에는 본 적 없었는데 해방후 소련군 상위(대위)로 귀국한 김일성을 본적이 있다. ­이 자리에는 김일성 1인독재체제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이 많은데(일동 웃음) 지금 북한 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진=김일성은 북한에 들어오면서부터 정권에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인숭배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전당대회에서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이 대회에 북한 노동당대표로 참석한 최용건이 돌아와 귀국보고를 했을 때 김일성은 우리 당에는 과거 박헌영이란 개인숭배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숭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뒤 연안파 윤공흠 이필규 등이 반김일성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들은 곧 숙청됐다. 이후 김일성은 「이단」숙청을 결심,대대적인숙청작업에 나섰고 1인지배체제를 구축했다. 6ㆍ25당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군고위간부ㆍ당간부 등이 모두 숙청당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도 반당분자로 몰렸고 이것이 우리가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 이유다. ▲박병률=김일성은 북한체제를 「주체주의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북한체제를 「수용소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남측서 통일 주도를 ­북한에 있을때 남로당출신들을 많이 만났을텐데…. ▲정상진=당시 나는 문화성차관 및 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이어서 홍명희 이태준 김남천 임화 최승희 등 많은 남쪽예술인들과 알고 지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작곡가 김순남선생은 전쟁전 박헌영외상 취임 축하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이것이 죄가 됐다. 김순남선생이 궁지에 몰렸을 때 나를 찾아와서 「이제 어떻게 해야되느냐」라고 탄식하면서 춘향전을 가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 분은 모든 창작활동이 금지된 채 숙청되고 말았다. ­마직막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는가. ▲장학봉=화해의 물결은 그 누구도 억제할 수 없다. ▲강상호=오늘날에는 무력으로 누구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이 세계적 여론을 일으켜 북한측에 평화통일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남북통일을 하루라도 지연시키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이며 우리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범죄피해자ㆍ증인신변보호 시급/법원앞 보복살인 파장…법조계,대책부심

    ◎신원노출 꺼려 증언거부사태 올듯/증거보전제 활용,비공개 신문해야 13일 동부지원 앞에서 발생한 법정증인 임용식씨의 피살사건은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 인데다 「보복범죄」를 엄단하겠다는 검찰과 경찰의 다짐을 비웃듯 그 수법이 대담하고 잔인해 충격을 주고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범죄의 피해자와 신고자 및 증인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법률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마련돼 있지않아 유사한 범죄가 재발하더라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사건당사자의 참여권과 신문권이 형사소송법 제163조에 분명히 보장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나 신고자ㆍ증인의 신분을 감출방법이 없다. 다만 증거보전의 방법으로 공판이 열리기전 판사방에서 비공개리에 증인신문을 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에도 서류 또는 증거물을 열람,등사하면 바로 신분을 알수있게 된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은 우선이번 사건과 같은 류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증거보전 절차를 활용,살인ㆍ강도ㆍ강간 등 강력사건의 증인은 가능한 한 공개된 법정에 세우지 않고 판사방에서 비공개로 신문할 계획이다. 이러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동안 친ㆍ인척이 관련된 사건이나 뇌물수수사건 등에 한해 증거보전 절차를 활용해 온게 사실이다. 검찰은 또 범죄신고자에 대해서는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급적 소환하지 않고 우편진술이나 전화진술 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대질신문이 필요할 경우에도 피의자와 신고자를 분리해 신문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으로는 증인과 피해자 신고자 등을 끝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검찰이나 경찰이 이들에 대한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일정기간 상당한 책임을 지고 신변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보복범죄가 횡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CIA FBI 등 수사기관은 물론 사립탐정이나 보험회사 등이 이들의 신변을 전적으로 보호해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검찰과 경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피해자와 신고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신변보호규정」을 만들어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 강력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협조를 얻기가 어려워 결국에는 수사에도 애를 먹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규정을 두거나 법개정을 통해 신변보호 조항을 신설하기도 어렵다는게 법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원은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돼있다. 또 소환을 받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하지 않을 때에는 5만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함께 같은 이유로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구인장을 발부,강제로 소환할 수도 있다. 법원은 진술의 임의성 때문에 증인신문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진술을 부인할 경우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공개법정에 세울수 밖에 없다. 게다가 검찰과 경찰등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해자진술서나 조서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이를 부인해 버리면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돼있는 현행법이 피해자 보호차원에서는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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