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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규모 독도 관광단 첫 출항

    ◎울릉도 연계 1박2일 코스에 700명 몰려/지역사학자 초청 역사설명회도 가져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망언으로 독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7백명의 대규모 독도관광단이 처음으로 독도관광에 나섰다. 포항∼울릉간을 정기 운항하고 있는 여객선회사인 대아고속의 썬플라워호(2천6백t급·정원 8백15명)는 12일 상오 10시 독도관광객 7백명과 승무원·여행사관계자 등 모두 8백명을 태우고 포항항에서 독도로 출항했다. 썬플라워호는 하오 1시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 후 2시쯤 다시 도동항을 출항,3시30분쯤 독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객선은 독도에 접안시설이 없는 관계로 섬주변을 여러차례 선회한 뒤 하오 5시30분쯤 울릉도로 되돌아올 예정이다. 앞서 대아여행사(서울시 강남구 신사동)는 해운항만청과 해경 등 관계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울릉도와 독도를 연계한 1박2일 코스의 독도관광단 7백명을 모집했다. 이번 독도관광객은 대부분 서울지역의 계모임 등 단체회원이다. 한편 경북 울릉군측은 독도를 방문한 이들 관광객에게 「독도탐방증서」를 줄 계획이며 대아여행사측도 울릉도에서 지역사학자를 초청,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설명회도 연다.
  • 어업기지 캄차카(시베리아 대탐방:66)

    ◎산업 70%가 어업… 연어알 최대생산지/외국합작기업 50개… 미·가서 대규모 투자/작년 연어 1천만마리 부화시켜 강에 방류/1m50㎝ 넘는 초대형 게는 특산물로 각광 캄차카주에서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전체 산업중 70% 이상이나 된다.연어알 생산은 러시아 최대를 자랑한다. 특히 캄차카 게는 유명하다.다리까지 합하면 1m50㎝ 이상 되는 초대형이다.다리에서 나오는 게살이 게몸통살보다 더 굵을 정도다.캄차카 사람들이 한국의 영덕대게를 보고 『웬 새끼게냐』고 말하는 것도 허풍은 아니다.대부분 게잡이 배에서 직접 가공해 실어온다. 세르게이 티모셴코 캄차카주 어업장관은 『여타산업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아직까지 어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그는 캄차카주에 있는 어업관련 외국합작기업이 50개로 그중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대규모 투자인 반면 한국측은 소규모이면서 주로 물고기를 사가려고만 한다면서 한국기업의 대규모 합작투자를 촉구했다. ○게다리살 몸통보다 굵어 캄차카 최대규모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어물가공공장.19 32년에 설립돼 12ha의 넓은 면적에 60t을 가공하고 40t을 통조림으로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직원은 4백명.주로 밤에 고기가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부터 가공한다. 95년초 취임한 세르게이 스몰랸코 사장은 『현재는 고기가 적어 통조림 40t만 제조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직원수를 1천명으로 늘려 1백t이상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한다.고기를 잡은 뒤 2시간내에 가공을 시작하기 때문에 외제보다 맛이 좋고,포장이 약한게 흠이지만 외국에서 포장기계를 사오면 좋아질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통조림에 양념·마늘 등을 넣기를 원한다면 주문대로 생산할 수 있고,앞으로 게가공도 할 생각이란다. 스몰랸코 사장은 『얼마전 가공한 가자미 통조림을 한국에 수출해 한국기업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서 『외국으로 수출하려면 기계와 기술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포장기계와 보일러를 한국에서 사오려고 한다』고 말한다. 5백t짜리 냉장고가 5대 있다.물고기가 소량이면 그대로 가공하지만 많으면 냉동후 찬물에 녹여 가공한다.생선을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뒤 벨트로 올려보내면 톱니날개가 잘라주고 이어 직원들이 내장과 뼈를 빼낸다.그후에는 자동적으로 캔에 담기고 가자미에는 후추와 기름,연어에는 소금이 뿌려진다.완성된 통조림은 큰 통에 넣고 가자미는 1백12도,연어는 1백20도로 70분씩 끓인다.온도가 안맞으면 맛이 달라진다.내수용은 국가규정대로 연어 2백45g당 소금 2.5∼3g을 넣지만 수출용은 외국의 주문대로 한다.갈리나 브류즈기나 어가공부장은 캔 뚜껑을 닫는 기계를 일본에서 사왔는데 고장이 잦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새로 개발한 가자미 튀김 통조림은 캔에 담는 일도 수작업으로 한다.튀긴 것이라 기계로 하면 부서지기 때문이다. 연어알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통조림은 끓이지 않는다.보통은 검은 색의 철갑상어알만을 캐비어(러시아어로는 이크라)라고 부른다.카스피해의 검은 이크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6세기 모스크바대공국이 카스피해를 지배할 당시 캐비어가 러시아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19세기에는 유럽 귀족계급에까지 널리 보급됐다.그러나 연어알 등도 캐비어라고 흔히 부른다. ○한국에도 통조림 수출 캄차카 필렌가 고도.러시아와 일본이 연어를 너무 많이 잡기 때문에 줄어든 연어수를 늘리기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캄차카주 및 어업회사와 일본연어협회가 공동으로 투자,러시아측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91년 설립돼 92년 처음으로 연어를 방류했다.오제르키에 등 양식장 두곳이 완성됐고 또 한 곳을 설립중이다.양식장 내부시설은 일본서 들여오고 벽체와 건물 등은 핀란드에서 사왔다.그러나 너무 멀고 비싸서 한국의 K사와 구입계약을 맺었으나 납기가 늦어지고 규격도 안맞고 숫자도 모자라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발레리 이시첸코사장은 불만을 터뜨린다. 95년에는 연어 1천만마리를 부화시켜 내보냈다.4년후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투자하는 것이다.캄차카에 있는 연어양식장 4곳중 2곳을 이 회사가 운영한다.물론 일본의 2백개,사할린의 20개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캄차카주는 2천년까지 연어양식장을 9개로 늘려갈 계획이다. 겨울에도 얼지않는 젤레노프스키강변에 위치한 게키노 양식장.8월11일 알을 넣어서 섭씨 4도 상태로 4개월을 유지한다.햇빛이 알에 좋지않기 때문에 필터로 덮어놓는다.붉고 거무스레한 알중에 드문드문 낀 흰색알은 죽은 것이다.4개월만에 부화하는 연어 새끼는 길이 3㎝,무게 0.2g 정도다.5개월정도 다시 키워 길이 4.5㎝,체중 1g이 되면 이듬해 5월쯤 강으로 내보낸다.새끼를 키우는 수조통이 20여개 널려 있다.통당 40여만 마리를 키운단다.이곳서 나간 고기들은 2∼4년 뒤 7∼9월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98%가 돌아오려고 시도한다.그러나 큰 고기에 잡혀먹히고,중간에 어선에 잡히고 하다 보면 실제로 강까지 돌아오는 회수율은 자연상태에서 0.14%정도.일본 양식장은 2% 이상으로 회수율을 높였고 이 회사도 그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부화된지 3년후면 평균 3㎏정도 된다.큰 것은 6∼7㎏까지 나간다.『95년에는 10㎞ 떨어진 다른 강에서 알을 가져와 키웠지만 앞으로는 이 강으로 들어오는 고기에서 알을 빼낼 계획』이라고 유리 바소프 과학담당 사장은 말한다.연어 한마리당 알 2천개정도가 나온다.양식부화장 직원 유리 니콜라예비치는 『국가규정상 연어알 사망허용치가 8%이지만 이곳에서는 평균 3%이내를 유지한다』고 자랑한다. ○연어 수 점차 줄어들어 캄차카 최대 규모인 레닌 어업 콜호즈.1928년 설립된 이 콜호즈에는 직원 3천명이 근무하고 대소형 선박 30대를 보유하고 있다.북베링해로 나가 주로 대구를 잡는다.한번에 3∼4개월씩 두차례 정도 고기잡으러 나가고 나머지는 쉰다.10년된 배인 1천3백50%급 세묜 벨로우소트호를 5년째 타고 있는 안드레 시프코프(27)는 지난번 출어나가서 대구 2백70t을 잡았을 때 월평균 3백20만루블(약 55만원)을 받았지만 배가 서있을 때는 월 70만루블밖에 못받아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다.어로선박들이 촘촘한 그물을 이용,바다밑을 훑기 때문에 고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같단다. 선박 10여대가 정비를 기다리고 있다.고철로 팔아버릴 정도로 낡은 배도 3∼4척 보인다.
  • 온천도시 파라툰카(시베리아 대탐방:65)

    ◎노천온천 70여곳… 야채 온실재배에도 활용/수온 32∼69도… 유황·나트륨·염소 등 함유/신경통·피부병에 효과… 병에 담아 팔기도/“토지 50년 임대에 세금혜택”­해외투자 “손짓” 화산천국 캄차카에는 온천도 많다.수백개나 된다.그중에서도 특히 파라툰카 온천은 유명하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에서 남서쪽으로 60여㎞ 떨어진 파라툰카지역에는 휴양소(사나토리엄)와 72곳의 천연 노천탕이 있다.유황 염소 나트륨 칼슘 등을 함유하고 평균온도 42.5도.pH 8.1로 알칼리성이다. 파라툰카 휴양소는 2백20명 수용규모의 2∼4인실 숙소와 함께 각종 치료실을 갖추고 있다.현재 전국에서 찾아온 1백70명이 머물고 있다.치료기간은 24일.상오에 온천치료와 진흙치료를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받고 하오에는 휴식과 산책을 즐긴다. 진흙치료의 경우 누워서 20분간 진흙을 몸전체나 상처부위에 바른다.비닐에 진흙을 넣어 환부에 대기도 한다.혈액순환이 잘 되고 피부가 깨끗해진다.부근의 우치노예호수에서 치료용 진흙을 가져다 쓴다. ○휴양소 22명 수용규모 치료용 진흙이 50∼60㎝가 되려면 진흙을 만드는 세균이 6천년 정도는 살아야 한다.우치노예 호수의 진흙은 1m나 쌓였으니 그 역사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이곳의 진흙치료법은 50년 이바노프가 발견했다.우치노예호수의 진흙은 파라툰카 온천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가져가 치료에 사용한다.고대 로마인들은 약을 쓰지 않고 진흙으로 치료했다고 한다. 온천물 치료는 병에 따라 다르다.심장병 혈압 신경통 등은 현대식 치료와 마사지도 병행한다.치료효과는 온천과 진흙에 달려 있지만 환자의 마음자세와 주변 자연여건도 중요하다. 휴양소 직원은 의사 12명을 포함,2백20명이다.의사 이고르 니콜라예프는 『온천목욕을 하면 피부호흡이 잘 돼 피부가 깨끗해지고 척추 신경통 부인병 피부병 치료에 효과적이며 여성 불임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24일간 숙식 및 치료비는 군인 5만루블(약 8천원),군인가족 10만루블,일반인 2백97만루블이다.회사원의 경우 본인은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회사가 부담한다.중병 환자는 안받는다는 얘기다. 휴양소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아직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받을 수도 있다』면서 『요금은 내국인보다는 다소 비싸겠지만 그래도 효과에 비해 결코 비싼 것이 아닐 것』이라면서 한국에도 잘 소개해달라고 말했다. 장교인 블라디미르 크로토프(41)는 『허리가 아파 10일쯤 치료를 받았더니 효과가 좋다』고 한다.무르만스크에서 온 갈리나 구시네렌코(여·52)는 『허리와 목이 아파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온천,진흙 치료와 함께 마사지도 받고 체조도 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한번 치료하면 효과가 1∼2년정도 지속된다.그래서 2년마다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다. 휴양소 인근 한 노천온천탕에 들어갔더니 20여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관리인 루드밀라 예르몰렌코는 『하루 평균 50∼60명씩 이곳을 찾는다』면서 『온천목욕을 하면 체온이 올라 며칠동안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혈압도 80∼120의 보통상태에서 90∼110정도로 좋아진다』고 말한다.깊이 4백m까지 관을 묻는 곳도 있지만 이곳 온천은 수온 32∼69도로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난다. 온천탕은 온도에 따라 세곳으로 구분돼 있다.각각 25도와 36도,42도짜리다.관절염은 42도 물에 팔과 다리만 5∼30분씩 담그고,부인병은 36도물에 배아래까지만 3∼5분씩 치료하며,천식은 목에 온천물을 대는 등 치료방식이 병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치료효과 1∼2년 유지 아들과 함께 이 온천을 찾은 라우자 아브드라시토바(여·53)는 『근처에 사는데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달에 한번 이상씩은 꼭 온다』면서 『왔다 가면 확실히 몸이 좋아짐을 느낀다』고 말한다.모스크바에서 출장온 5명의 남자들도 『출장때마다 꼭 이곳을 찾는다』고 말한다. 온천의 역사는 6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에서 온천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냈다.17 55년 러시아인 크라셰닌니코프가 「캄차카 기술」이란 책에서 캄차카 온천 6곳을 소개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1950년대에 휴양소가 건설됐고 60년대에는 온천물을 병에 넣어 팔기 시작했다. 파라툰카에서 멀지않은 산속 깊은 계곡에도 온천물이 나오는 곳이 꽤 있다.이른바 비탕이다.이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교포 김옥씨는 『헬리콥터를 빌려 직원들과 단체로 심심계곡의 온천목욕을 즐기고 나면 날아갈 듯 몸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말한다. 온천은 채소 온실재배에도 활용된다.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교외 체르말녜 국영농장에서는 68년부터 3㏊의 온실에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한다.캄차카의 날씨가 추워서 온실없이는 토마토와 오이를 키울 수 없다.그렇다고 보일러에 의존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 농장에서는 78도의 온천물이 파이프를 통과하면서 차가운 수돗물을 데워주고 52도정도로 데워진 수돗물은 지붕위로 순환시키고 72도정도로 식은 온천물은 다시 땅속으로 순환시킨다.비료를 섞은 더운 물은 자동으로 작물에 뿌려진다.여직원 라리사 보그다노바(48)는 『농약은 일체 주지 않는다』고 청정채소임을 강조한다. ○연 2차례 야채 수확 연간 토마토 6백30t,오이 6백70t씩을 수확한다.㎏당 토마토 1만3천루블(약 2천2백원),오이 1만1천루블에 판다.1년에 7월과 12월 2차례 수확한다.나머지 부족한 채소와 과일은 대륙에서 비싸게 들여온다. 블라디미르 벨리치코 부사장은 『겨울이면 온천물이 부족해 보일러를 가동할 때도 있다』면서 물값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2백60명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급료는 신통치 않다고 말한다.무트노프스키 지열발전소 건설과 함께 온수공급이 늘어나면 온실재배 면적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한다. 캄차카에는 온천과 화산 뿐 아니라 스키도 즐길 수 있고,순록을 해칠 정도로 많은 늑대와 곰도 사냥할 수 있는 등 관광여건이 좋다.블라디미르 볼텐코 캄차카주 부지사는 『좋은 호텔과 도로가 부족해 아직 관광산업이 발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관광을 캄차카의 주요산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라면서 『주정부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회사와 합작투자 하기를 원하며 토지를 50년간 임대해 주고 세금도 적게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 화산반도 캄차카(시베리아 대탐방:64)

    ◎화산 3백여개… 증기로 전력 생산/활화산만 29개… 세계최대 화산연구소도/연 3백회이상 지지발생… 25∼30회는 감지/각종 희귀광물 수두룩… 19종은 국제공인받아 캄차카주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시 교외에 있는 화산학 연구소는 화산 분야에서는 세계최대 규모의 연구소다.62년에 설립된 이래 한창 때는 직원수가 6백여명에 달했다.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최대다.일본·미국 등지에 화산연구소가 있기는 하지만 수십명 규모에 불과하다.91년부터 캄차카주가 개방된 뒤 한수 배우러 오는 전세계 화산연구소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특히 일본의 화산연구원들은 매년 수차례씩 방문한다. 이처럼 캄차카 화산연구소가 거대하게 운영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지구상에 활동하고 있는 6백여개 활화산중 29개가 캄차카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10월 1만m 상공까지 시커먼 재를 내뿜은 베즈미야니화산도 그중 하나다.활동을 중지한 화산까지 포함하면 3백여개나 된다.캄차카는 화산천국인 셈이다. ○전세계 과학자 줄이어 화산상층부는 연중 눈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산허리에 구름을 걸쳐 신비감을 더해준다.똑 같은 화산을 보더라도 그 모습은 날씨와 시간,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산꼭대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뭔가 거대한 존재가 만들어낸 굴뚝을 연상케 한다.코략스키·아바친스키·코젤스키화산 등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시를 둘러싼 화산들의 위용은 사람사는 시내 모습과 야릇한 대조를 이룬다. 화산,칼데라호,지상 수십m 높이의 물보라를 수시간 간격으로 뿜어내는 가이저 계곡 등을 헬리콥터를 타고 구경하는 화산 관광의 묘미는 캄차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자랑이다. 화산을 연구하면 땅속 깊이 30∼75㎞의 광석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1㎞이하에서 1m이상짜리까지 다양한 크기의 여러가지 광석들이 나온다.화산은 자연적인 실험실인 셈이다. 이 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부드니코프 박물관장은 『예전에는 지표면상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화산 폭발 때 새로 나온 광물을 이 연구소가 발견해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만도 19종류나 된다』고 자랑한다. 이 연구소 박물관에는 5천년전 아바차산에서 불이 나 타들어가던 나무밑둥이 땅속으로 파묻혀 들어가 굳은 상태로 1백년전 화산폭발 때 튀어나온 것을 비롯,필리핀·프랑스·멕시코·일본·아이슬란드 등 전세계 주요지역의 화산석들까지 각종 희귀자료가 보관돼 있다. 베즈미야니화산은 활동하지 않다가 56년 처음으로 터져 3㎦ 크기의 윗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없어졌고 주변 30㎞까지 나무가 죽었다.연구소가 서있는 자리도 3만년전 아바차화산이 터졌을 당시 재가 쌓여 1백m이상 높이가 올라갔다고 한다. 화산이 꼭대기에서 폭발할 때보다 옆으로 터지면 더욱 피해가 크다고 한다.1902년 세인트마르틴섬 몽펠리에에서 화산이 옆으로 터져 2만5천명이란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지난 75년 돌바치크화산 폭발로 작은 산이 몇개 생겨났고,1년반동안이나 연기를 내뿜었다.돌바치크화산 폭발은 처음으로 연구소의 사전 예상이 들어맞은 케이스였다.화산밑에 측량기가 설치돼 분출때 측량기록을 연구소로 보내온다. 캄차카에는 지진도 많다.블라디미르 볼텐코 캄차카주 부지사는 『캄차카주에는 지진이 연간 3백회이상 발생하며 감지될 정도의 큰 지진만 25∼30회나 된다』면서 『집을 높지않고 튼튼하게 지었고 지진에 대비해 매년 건물을 수리한다』고 말한다.특히 3∼5년내에 큰 지진이 온다는 화산학연구소 예측에 따라 캄차카주 건물 전체를 조사중이며 낡은 건물은 특별보수할 계획이란다. ○5천년전 나뭅밑동 보관 땅에서 솟아나오는 고온의 증기를 이용,전력을 생산하기도 한다.지열발전소는 파우제트카에 1만1천㎾ 규모로 67년 건설돼 가동중이다.무트노프스키화산 기슭에 추가로 지열발전소를 신설할 계획으로 도로를 건설중이다.해발 8백m 지점의 5곳에서 증기가 치솟는다.98년부터 8만㎾ 발전용량을 갖춰 전기를 생산할 예정이다.증기의 온도는 2백80도로 80년동안 써도 될 분량이다.이 증기를 식혀 95도 정도의 물로 만들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시의 난방도 해결할 예정이다. 화산학 연구소도 요즘은 어렵다.박사급 연구원들의 월급이 50만∼60만루블(약 9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보니 연구원들이 기회만 생기면 떠나고 새로 들어오지 않는다.모스크바에 가는 왕복 비행기 요금이 1인당 2백60만루블이니 부부가 모스크바에 한번 다녀오려면 연구원 1년치 봉급이 몽땅 들어가는 셈이다.정부예산지원이 줄어 최근 2년간은 헬리콥터를 빌리지 못해 현장연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평생을 바쳐온 화산학 연구에 대한 애정과 자존심,특별히 오라는 데가 없는 현실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화산 연구및 측량을 해왔는데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지원을 끊는 정부가 야속하다고 부드니코프관장은 불만을 토로한다.부인도 다른 일을 하지만 벌이는 시원치않고,주말이면 다차(주말농장)에서 일해 감자 등을 키우지만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다.1남1녀는 모두 대도시에 가서 대학을 다니고 있단다. 브리핑을 끝내자 부드니코프박사는 화산관련 책 두권을 내밀며 1백달러에 사라고 했다.그러나 그중 한권은 이미 시내 서점에서 25달러에 산 것이었고 다른 책의 내용도 비슷해 구입하지 않았다.그러자 필름과 사진 등 여러가지를 계속 꺼내놓았다.살만한 것이 없어 결국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여간 미안한게 아니었다.그의 표정에서도 섭섭함을 읽을 수 있었다. ○국가 지원 끊겨 생활궁핍 러시아 과학자들은 지난 91년 구소련 붕괴 이전에는 최고의 급료를 받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평균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고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기도 힘든 형편이다.과학자들은 실직후 학교나 민간기업 등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결국 실패하면 실의에 빠져 과음으로 죽음에 이르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부처에서 해고된 러시아 과학자 20여명은 지난해 7월 자신들을 포함한 러시아 과학자들의 곤경을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 모스크바 동물원의 멸종위기에 처한 오랑우탄 우리안에 들어가 11시간동안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기를 맞은 러시아 과학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초중고 「독도 지키기」교육 확산/「일 망언」 계기 정신무장 강화

    ◎감정차원 아닌 대응논리 키워/「우리땅」주제 토론회·백일장·특강 등 활발/방학기간 이용 현장탐방 장기계획도 마련 일본의 「독도 망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는 가운데 초·중·고교에서 독도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글짓기 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독도 지키기」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동안 독도에 대한 교육이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반성 아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신무장을 시킨다는 방침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강덕초등학교는 12일 하오1시부터 5학년을 대상으로 「독도는 우리 영토이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어린이들은 『멀쩡한 남의 땅을 가로채려는 일본은 도둑이나 마찬가지』라며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5학년 1반 유원석군(12)은 『커서 군대에 가면 꼭 독도를 지키는 부대에 가겠다』고 했다. 양해권교장(59)은 『독도에 대한 애착은 국토 전체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라며 『어린이에게 일찍부터 국토 수호의 정신을심어주기 위해 서둘러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언북중학교는 곧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독도를 지키는 방안 등을 주제로 글짓기를 실시,우수 학생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가원초등학교도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하는 독도와 울릉도 탐방여행을 강화키로 하는 등 국토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는 장기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 서초고등학교는 독도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는데 따라 역사문헌의 독도 관련 자료나 독도분쟁의 과정 등을 총괄해서 수업시간과 월요일 조회시간에 특강을 하기로 했다. 독도와 관련한 백일장을 준비하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고등학교 여성구교장(60)은 『그동안의 교육은 독도를 단순히 애국적인 차원에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데 그쳤다』며 『이번 일본의 망언을 계기로 우리의 교육도 역사적 실증을 바탕으로 한 대응논리를 갖추도록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보드카(시베리아 대탐방:63)

    ◎6백년 역사 자랑… 러시아인의 생활자체/마가단 공장 하루 5백㎖용 2만병 생산/망명 러인이 전수… 고급품 대부분 외산/감기·배아플때 고춧가루·소금 타 마시기도 보드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인 동시에 철학이요 생활 그 자체다.특히 추운 극동·시베리아지방의 겨울나기에는 보드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가두판매점인 키오스크의 진열대도 절반은 보드카로 채워져 있다. 마가단시내 마가단식료품공장.한쪽에서는 소시지 등 식료품을 만들면서 한쪽에서는 보드카를 만든다.상표는 「보드카 루스카야」.말하자면 러시안 보드카로서 서민이 즐기는 값싼 보통보드카다.여러 공장이 같은 상표를 공동사용한다.다만 뚜껑에 마가단식료품공장이라고 산지를 표시해줄 뿐이다.스피릿(알코올)에 물을 타서 여과장치를 통과시켜 만든다.불순물이나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고 독특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다. 이 공장에서는 여과장치에 모래필터와 활성탄필터를 사용한다.이 공장 1층에서 알코올과 물을 섞어 올려보내면 3층의 필터를 지나내려가면서 병에 담긴다. ○96도 알코올에 물 타 57년부터 이 공장에서 일해온 생산사장 라리사 고루보트스카야(여·51)는 『맛을 결정하는 핵심은 스피릿과 물·필터』라면서 『러시아 보드카는 물이 깨끗하기 때문에 외국 보드카보다 맛이 월등하다』고 강조한다. 옐레나 벨리첸코연구원(여·28)은 『알코올은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고 남쪽에서 전량 가져다 쓴다』면서 『밀·보리·호밀·옥수수 등 곡류나 감자에서 96도짜리 알코올을 뽑아내는데 밀에서 뽑는 알코올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레본 다다미얀 영업사장은 『하루 2만8천ℓ 생산용량을 갖추고 있으나 남쪽에서 수송해오는 알코올이 부족해 요즘은 5백㎖들이 2만병정도인 1만ℓ 생산에 그치고 있다』면서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희색이 만면하다. 다다미얀 사장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먹고 살기가 더 힘들어진 사람은 홧술을 더 마시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맞아 경쟁력 있는 사람은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한다.양극화현상이벌어지는 셈이다. 그루지야식당에 갔더니 마침 10여명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보드카도 빠지지 않았다.한국기자로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높은 분들이 참석해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다음날 다른 식당에서 생일파티가 벌어져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흔쾌히 응했다.남녀 구분할 것 없이 신나게 흔들어대며 보드카를 잘도 마셔댔다. ○축배 따라 예절달라 40도가 넘는 무색투명한 술 보드카가 러시아에서 만들어지기는 14세기말부터다.6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보드카의 제조·판매는 국가의 엄격한 규제를 받았고 보드카에 부과하는 세금이 중요한 국고수입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 고급보드카는 대부분 외제다.키오스크 판매가격이 5백㎖정도를 기준으로 스웨덴제 압솔룻이 6만루블(약10만원)로 가장 비싸고 미국제 스미르노프와 화이트 이글이 각각 4만루블,1만8천∼2만3천루블,러시아의 보드카 루스카야 1만4천∼2만8천루블 등이다.1917년 러시아혁명후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에 의해 제조법이 전해져 미국·독일·스웨덴을 비롯한세계 각국에서 보드카를 제조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킨 반면 러시아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스미르노프는 망명한 러시아의 보드카제조업자 이름을 딴 술이다.독일제인 고르바초프와 라스푸틴,핀란드의 핀란디아 등 외제 유명상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러시아의 고급보드카중에는 크렘료프스카야가 있다.크렘린에 있는 힘깨나 쓰는 사람만 마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세계적으로 9대 1정도로 외국제가 많고 러시아국내에서도 6대4정도로 외제 보드카 점유율이 높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보드카를 마시는 일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보드카로 건배를 하지 않으면 외교협상마저 풀리는 법이 없다.취할 때까지 무섭게 마시는 경우가 많다.맨정신에서는 서먹서먹하던 관계도 술이 들어가면 털어놓고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보드카를 권하는데 사양하면 관계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1인평균 14ℓ 소비 보드카 건배에도 예절이 있다.생일집에서는 첫건배가 생일을 맞은 사람을 위해서고,둘째건배는 그 부모를 위해서다.결혼식에서도 첫잔은 신랑신부,둘째잔은 그 부모를 위해 건배한다.하객중 한 사람이 『너무 쓰다.달콤하게 해라』고 외치면 일제히 『쓰다』고 합창을 하게 되고 신랑신부는 긴 키스를 해야 합창이 멈춰진다.키스할 동안 신부엄마까지 다 함께 큰 소리로 숫자를 센다.길수록 박수소리가 커진다.친구끼리 하는 첫 건배구호는 「부젬 즈도로비」(우리의 건강을 위하여)다.한참 건배를 하다가 더 할 게 없으면 그냥 「부즈ㅣ」라고 한다.우리의 「위하여」 식이다.초상집에서 첫 건배는 망자를 위한 것이지만 절대로 잔을 부딪쳐서는 안된다. 스탈린 철권통치시절에는 어린이 생일잔치 때도 첫잔은 으레 「스탈린을 위하여」「성공적인 과업완수를 위하여」 등이었으니 세월이 많이 변했다. 러시아사람은 감기에 걸리면 보드카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신다.아예 페르초프카(고추술)란 약한 술도 있다.배가 아프면 소금과 함께 보드카를 마시기도 한다. 러시아인은 술을 즐기기로 정평이 나 있다.회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회교는 술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1인당 보드카소비량은 84년 6ℓ,87년 10.7회ℓ,92년 14ℓ로 꾸준히 늘어왔다.거리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거나 얼어죽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흉악범죄의 85%는 알코올이 원인이라고 한다.남성 평균수명이 87년 65세에서 94년 58세로 줄어든 것도 술소비 증가와 무관치 않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서기장이 취임하자마자 엄격한 절주법을 실시했으나 술을 사기 위한 행렬이 길어지고 암거래만 늘어나는 등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구소련 붕괴와 동시에 흐지부지돼버렸다. 큰 인형속에 조그만 인형이 여러 개 들어 있는 마트료시카란 목각인형은 러시아 민족혼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실은 일본에서 19세기말에 건너와 러시아인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뒤부터 유명해진 것이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보드카시장은 외제가 장악하고,밖에서 들어온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민예품으로 정착된 것을 보면 세상은 돌고 도는가 보다.
  • 관권선거 논란소지 사전 차단/선관위의「단체장 행사참여 지침」내용

    ◎이·미용­양재 등 직업교실 허용/주부대학·유적지탐방 등 불허/정례적 읍·면·동 체육대회 가능/현안없는 홍보성 설명회 금지 중앙선관위가 7일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한 자치단체장의 각종행사 개최와 후원에 대한 운용기준을 일일이 적시한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면서 공명선거 의지를 확고히 천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자치단체의 각종행사를 제한한 선거법 제86조의 규정이 그 적용여부에 따라 관권선거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미리 화근을 없애기 위해 구체적 준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서울의 일부 구청장은 민선 단체장의 각종행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해석한 선관위의 결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는 등 집단반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어 어떠한 형태로든 교통정리가 불가피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날 선관위가 마련한 운용기준은 주민복지 차원에서 자치단체장의 각종행사를 허용하는 동시에 행정서비스를 명분으로 한 탈법적인 선거행위를 철저히 엄단하겠다는 이중적 뜻이 근저에 깔렸다. 선관위는이날 선거법 위반이 아닌 자치행사의 기준을 「특별한 사유」로 규정,조목조목 열거했다.선거법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자치행사를 금지한다고 규정했다.따라서 운용기준은 일종의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규정상 허용되지 않거나 반대해석될 소지가 있는 행위는 선거법 위반으로 본다. 교양강좌의 경우 유­무료를 불문하고 이용·미용·양재·도배등의 직업보도교육은 허용한다.통상적인 수강료를 받는 수영·스케이트·볼링·에어로빅·헬스·태권도·유도·외국어·한문·가요·컴퓨터·서예·수지침·꽃꽂이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료로 실시되는 시민대학과 주부대학,통상적인 수강료보다 싼 교양강좌,유적지 탐방등 선심성 강좌,종전보다 내용을 확대변경한 강좌등은 금지된다.지난 달 12일 서울시가 10년간 실시해 온 시민대학강좌를 「무료」라는 이유으로 불허한게 이 경우에 해당된다. 사업설명회는 쓰레기 소각장과 산업폐기물 처리장등 당해사업에 관련된 것과 예산회계법에 따른 입찰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만 가능하다.현안이 없는 홍보성 설명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간주한다. 체육대회는 정례적인 읍·면·동 이상의 주민체육대회와 전국 또는 시·도단위의 체육대회를 후원하는 행위만 허용한다.자치단체장배 쟁탈 체육대회는 불허한다.공청회의 경우 도축시설·화장장·교육시설·종합병원설치등 시급한 지역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방하다.단오제·단종제·군항제·철쭉제등 지역의 고유축제와 가정의 달·원호주간등 정부가 지정한 각종기념 주간행사도 위법이 아니다. 이밖에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규정된 구·시·군민의 날과 지방자치단체의 승격 기념행사,지방 특산물의 판매촉진을 위한 농수축산물 경진대회,고추아가씨·밀감아가씨등의 지역선발대회도 가능하다.
  • 마가단의 교육현실(시베리아 대탐방:62)

    ◎“배고픈 지식층 싫다”… 대학인기 시들/중학 11학년제… 9학년부터 취업·진학 선택/시장경제 전환뒤 교단이탈 교사 줄이어/유치원 국고보조금 줄어 학부모 부담 가중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학제는 중학교가 11학년제다.우리의 초·중·고교를 합쳐놓은 셈이다.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11학년까지 마친 뒤 5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하든지,아니면 9학년까지만 다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직업학교에 간다.만7살까지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마가단 제2중학교 역사실.정규대학 진학을 앞둔 졸업반인 11학년 1반학생 18명이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장래 희망직업을 물었다.변호사나 판·검사등 법률가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원 4명,사업 3명,경찰1명,통역1명이다.과학자나 우주인 군인 엔지니어 노동자 등 예전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수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법률가·은행원 가장 인기 9학년2반 교실.학생 23명에게 학교를 계속 다닐지 여부를 물었다.11명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 9학년까지만 다닌다는 대답이다.일부는 직업학교에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남학생 유라 아브라모프는 『공부도 잘못하지만 비싼 돈내고 대학에 다녀봤자 별볼일 없기 때문에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학급 담임 아냐 스처니코바(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학자나 교사 등 지식층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아져서 학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 나가 장사하거나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장사를 하거나 처우가 좋은 은행원이 되려고 하지 애써 열심히 공부해 배고픈 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루드밀라 베르진스카야 교장(여)은 『학부모들도 예전에 무료였던 대학학비가 이제는 유료로 비싸진 데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 터여서 공부를 시켜야 할지 시장에 내보내 장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설명한다.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덩달아 변화를 겪고 있는 학교교육 현장의 고민이다.마가단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학년별 4학급씩 44개반 학생 1천명이 다닌다.수업은 주5일.1학년 24시간에서부터 11학년 32시간까지다. ○교과서 공급 제대로 안돼 교사는 80명으로 대부분 여자다.작년에만 6명이 그만 뒀다.교사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초임이 25만루블(약4만원),10여년 경력자가 60만∼70만루블,20년이상이 1백만루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옐친 대통령이 지난 8월1일부터 교사월급 인상을 지시했으나 한달이상 오르기는 커녕 제때 지급마저 안돼 지난 9월26일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쟁취한 월급이 그 정도다.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이직자가 속출한다.사범대학 졸업생들마저 학교로 오지 않고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나이들어 오갈데 없어 연금받기를 기다리거나,아니면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들만이 교단을 지키는 형편이다.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져간다.1주일에 18시간 수업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20∼27시간이 보통이다.게다가 영어·독어 등 외국어 시간이 늘어나고 컴퓨터 등 새로운 과목이 많아서 인근 연구소나 도서관 등에서 특별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어렵사리 모셔오면 실력있는 특별강사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기존교사들이 일하기란 더욱 어렵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 교과서도 많이 개정되고 학생들도 잡지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역사 교과서는 트로츠키나 부하린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과 벌였던 권력투쟁 등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문학교과서도 예전에는 공산주의 작가의 작품위주로 실었으나 이제는 사상적인 작품분석은 사라지고 솔제니친 같이 예전에 공산주의에 맞지않아 발간되지 않고 잊혀졌던 작품들도 교과서에 나오고 시중에서 출간된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 5∼6년사이에 한꺼번에 교과서가 너무 여러가지 나와 어떤 책을 택해야 할지 교사들도 곤혹스럽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는교과서 공급마저 제때 안돼 교사들이 모스크바로 출장갈 때 한권씩 사와 복사해서 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생 52명에 직원 31명 25년 경력의 역사교사 마리아 스파크는 『러시아 역사의 좋고 나쁜 점이 모두 교과서나 시중서적에 다양하게 나오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책이나 잡지,신문 등을 읽고 재량껏 가르친다』고 말한다. 1학년의 경우 유치원에서 간단한 읽기 쓰기는 배워오는데 요즘에는 학비 때문에 유치원을 안다닌 학생들이 늘어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인근에 위치한 36년 역사의 마가단 제2유치원을 찾았다.만2세부터 7세까지 나이에 따라 4개학급으로 나뉘어 52명이 다닌다.아침 7시30분쯤 부모들이 출근하면서 데리고 와 저녁7시30분쯤 퇴근길에 찾아간다.러시아어 읽고 쓰기,산수·미술·체육·음악 등을 가르치고 하루 세끼를 제공한다.교실외에도 장난감실·체육실·마사지실·치료실·음악실 등을 갖추고 있다.취침실도 마련돼 있어 점심식사후에는 2시간 정도씩 재운다. 교사 11명,보조교사 6명과 요리사·마사지사·세탁부·운전기사 등을 모두 합하면 직원수는 31명이다.지난 9월부터 54% 인상된 월급이 30만∼42만루블(6만원 내외)이다.나탈리야 젤렌스카야 원장은 『봉급이 적어도 천직으로 알고 일한다』고 말한다. 학비는 하루 4천1백루블씩으로 월 평균 8만∼9만루블(1만5천원)씩이다.실제비용은 한아이당 한달에 50만루블이 소요돼 80%를 국가에서 보조받아야 하지만 국고보조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지만 여의치 않다.올들어 식비가 10% 올랐다.유치원 학비부담이 몇년전까지만 해도 월평균급여의 2%였지만 요즘은 10%로 높아졌다.앞으로 학비는 더욱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유치원생 1.7명당 직원 1명씩을 두고 부족할 것없는 시설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절의 유산이다.교육분야에서도 일정부분 시장원리에 따른 수익자 부담 원칙을 수용해야 하고 가치관마저 변화하는 현실은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 무진장한 광물 마가단주(시베리아 대탐방:61)

    ◎매장량 1백t 넘는 금광 곳곳에/다이아몬드·백금 빼고는 모든 광물 존재/교통·기후나빠 금·은·동 등 고가품만 캐내/32년 죄수동원 금광 개발… 연80t까지 생산 극동 시베리아의 우상귀끝에 위치한 마가단주는 자원의 보고다.블라디미르 바닌 마가단주 자원담당 부지사는 『마가단주에는 다이아몬드와 백금만 빼고는 없는 광물이 없다』고 말문을 열면서 마가단주가 사상 최초로 95년 외국회사와 금생산 합작기업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마가단 동북쪽 1천㎞ 지점에 위치한 매장량 1백t인 쿠바카지역의 금광 개발을 위해 미국회사와 합작해 총 2억달러를 투자,96년말부터 연 9t씩 생산할 예정이다.마가단 동북쪽 4백㎞지점의 줄리에타지역에도 영국·캐나다사와 합작으로 모두 5천만달러를 투자,97년말부터 연간 3.5t씩 금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외국과 합작할 대상도 두곳이 남아 있다고 바닌부지사는 상세히 설명했다.1백t의 금이 매장돼 있는 나타오카지역에 2억5천만달러를 합작투자하면 연간 8∼10t을 생산할 수 있고,은이 4만t이상 매장된 두카트지역에는 총 8천만달러만 투자하면 연간 1천t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기업과 첫 합작개발 바닌부지사는 『예전에는 연방당국이 일방적으로 싸게 책정한 가격으로 전량 매입했지만 최근 대통령령이 개정되어 이제는 런던금속시장 가격으로 사가고 외국합작기업에는 대금의 50%를 달러로 지불한다』면서 『법적으로 잘 돼있어서 합작기업이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은근히 투자를 권했다.얼마전 만난 LG 관계자가 은개발기술을 안다고 하길래 투자를 권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가단주에는 광물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철도가 전혀없고 북쪽의 교통과 기후가 나빠서 금·은·구리·건축자재 등 고가품만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금광석이라도 1t당 금함유량이 15g이상 되지 않으면 개발하지 않는다. 금생산은 70년대 중반 최고 80t까지 기록하며 러시아 최고를 자랑했지만 그후 사금 고갈로 점차 줄어들어 94년에는 사하공화국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금 28t,은 70t 생산에 그쳤다.세계적으로 금생산중 광석과 사금비중이 9대1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거꾸로다.그러나 앞으로 사금 비중은 점차 줄고 금광석을 캐내는 비용은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금광을 직접 가보고 싶었으나 너무 멀고 교통편이 나빠 뜻을 이루지 못했다.최소한 수백㎞이상 떨어져 있고 교통도 좋지않아 육로로는 가기 어렵고 비행기로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1주일에 1∼2편 정도만 운항하기 때문에 한번 가면 4∼7일을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사금채취는 하천이 결빙되기 전인 10월중순부터 이미 작업을 중지했단다.짧은 취재일정을 효율적으로 쪼개써야 했던 취재팀은 고민끝에 결국 금광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청사 옆에는 마가단 최대 금광회사인 북동채금합동총회사가 있었다.금생산이 마가단의 70%,러시아전체의 20%를 차지한다.블라디미르 쿨핀 부사장은 『유공에서 각종 기름도 구입하고 삼성에서 생필품도 6백만달러어치 구입했다』고 한국기업과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계가 노후해 많이 교체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기후여건이 안좋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도 1.5배이상 줘야 하고,연방정부의 금매입가격은 좋아졌지만 기름·전기·물값 등이 비싸져 이익은 많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광석보다 금이 더 많아 1928년 마가단에서 금이 발견돼 32년부터 캐내기 시작할 당시에는 죄수들의 강제노동에 의존했다.지식인 등 트로츠키주의자들 위주로 1백여명의 정치범및 일반죄수들이 32년 2월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편으로 이곳에 도착,콜리마지역으로 간 이래 죄수수는 이듬해 2만7천여명 등으로 급속히 늘어났고 세보스틀락 등 곳곳에 수용소가 늘어만 갔다.죄수수에 비례해 금생산도 늘어 32년 5백㎏에 불과했던 데서 40년대 초반 몇년간은 80t으로 절정을 이뤘다. 지하 수m 깊이의 하천바닥에 퇴적돼 있는 사금층을 채굴하려면 영구동토인 지표면을 파내야 한다.요즘이야 준설기와 불도저 등 중장비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화약의 힘만 빌릴 뿐 인력에 의존해야 했으니 당시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계 교포 1백명 거주 53년 3월5일 스탈린이 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자 정치범들이 대거 석방되고 수용소도 잇따라 없어졌다.53년 12월 마가단주가 설치됐다. 시외곽의 마가단주 박물관 3층에는 수용소실이 있다.개혁·개방정책을 계기로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91년 설치돼 5년간 시한부로 운영된다.이 전시실에는 당시 사진과 기록,강제노동장비 등이 보관돼 있다. 전시실 담당인 나제스타 훼도노바(여·51)는 『죄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아깝게 강제노동시켰던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근 지질박물관에는 마가단에서 나온 수백종의 광물이 전시돼 있다.32년 첫해에 콜리마금광에서 나온 사금과 22㎏짜리 순금덩어리,소 위장에서 나온 금도 보관돼 있다. 마가단 시내에는 한국계 교포가 1백여명 살고 있다.강제로 끌려온 한인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식 이름의 식당도 두곳 있다.그중 도라지식당에 갔더니 타슈켄트에서 온 30대 후반의 한국계여인이 운영하고 있었다.교포3세라서 한국말은 인사말정도밖에 못한다.음식도 국수와 밥정도 말고는 거의 러시아음식에 가깝다. 이 여인의 시아버지인 박재욱씨(70)를 식당에서 만났다.박씨는 신의주 학생의거에 가담했다가 46년 러시아로 끌려와 스탈린 사망 이듬해인 54년 석방되기까지 8년간 건물·도로 건설및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같은 민족을 이역만리 러시아 땅으로 보내는 냉혈한이 이세상 어디에 있겠느냐』고 북한당국에 대한 원망을 삭이지 못했다. 박씨는 『이곳은 1년 열두달 모두가 동지달』이라고 추운 날씨를 설명한 뒤 시내건물들을 가리키면서 『저 건물은 한인들이 지었고 이 건물은 일본군 포로들이 지었는데 먹을 것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하루 16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죽고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쓰라린 기억을 되살렸다. 북극에 가까운 마가단에는 해가 낮게 뜬다.그래서 한낮에도 그림자가 실물보다 1.5배이상 더 길다.마가단주는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이나 어두운 과거의 부담을 안고 어렵사리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었다.
  • 마가단 동물농장(시베리아 대탐방:60)

    ◎여우·밍크 한해 2만마리 모피로/생후 6개월 되면 가죽 벗겨 가공업자에/사육 우리마다 종자번호·품질평가 기록표/검은 단비 1백마리로 만든 긴 코트 5만불 호가 국내에 모피의류 보급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하지만 아직까지도 사치품이란 인식이 적지 않다.그러나 러시아인들에게는 모피 코트,모자,목도리가 사치품일 수 없다.문자 그대로 생활필수품이다.러시아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추운 지방에서 겨울을 지내려면 따뜻한 털로 무장해야 한다.그래서 마가단,사하,캄차카 등 북해인접 지역의 모피는 세계최상의 질을 자랑할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극동 마가단주의 마가단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즈베로 솝호즈 마가단스키」를 찾았다.마가단 국영 동물농장이다. 드넓은 오호츠크해변에 위치한 이 동물농장에서는 북극여우와 밍크를 사육한다.도로 위쪽에 북극여우 사육장이,아래쪽에는 밍크사육장과 건조실 등이 있다.북극여우는 종자 좋은 수놈 5백마리와 암놈 2천마리씩을 기른다.수놈 한마리가 암놈 4마리씩을상대하는 셈이다.밍크도 종자로 1천5백마리정도 기른다. ○좁은 우리에 가둬 사육 매년 북극여우는 5∼8마리,밍크는 2∼8마리씩 새끼를 낳는다.그래서 이 농장에서 연간 북극여우 1만4천마리,밍크 6천마리씩을 잡아 모피를 뽑아내 모피의류 제조업자들에게 넘긴다. 북극여우는 2∼3월에 교미시켜 56∼58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4∼5월중에 출산한다.6개월이 지난 10월중순부터 11월말까지 잡는다.더운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털이 쓸만하게 다 자라는 추운 겨울이 늦게 오기 때문에 잡는 시기가 늦어지고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판매시기를 놓친다고 한다. 여우는 지상으로부터 1m정도 공간을 두고 높이 70㎝,가로 세로 1m쯤 되는 좁은 우리에 가둬 기르고 있었다.우리당 새끼는 두마리,어른은 한마리씩 들어 있다.짧은 일생을 갇혀살다 모피를 남기고 가는 신세가 딱해 보인다.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것과 흰색의 두종류를 기른다.우리마다 부모와 자신의 고유번호,품질평가번호가 적혀 있다.종자는 새끼를 많이 낳고 털이 길고 좋은 것으로 매년 20%씩 교체한다. 사육장에는 털이 날아다니고 우리 주변에는 오물이 널려 있어 악취가 대단했다. 지난 7월부터 이곳 여우 우리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옥사나 즈이코바양(22)은 『처음 왔을 때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괜찮다』면서 『월급 1백10만루블(약19만원)을 받는데 옷사고 식품사고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에도 빠듯해서 저축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건조실앞 쓰레기통에는 털을 벗겨낸 동물의 내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아침에 주사기로 약을 투입해 죽인 뒤 껍질째로 털을 벗겨낸다.벗겨낸 모피는 폭 10㎝,길이 1.5m,두께 1㎝쯤 되는 노 비슷한 모양의 끝이 뾰족한 나무판자에 거꾸로 뒤집어 씌운뒤 작은 못을 박아 고정시켜 건조시킨다.난방된 상태에서 하루를 말린 다음 다른 곳으로 보내 기름제거 등 1주일 정도 제조작업을 거쳐 모피가 완성된다고 한다. 북극여우 한 마리분 털값은 45만∼50만루블(8만원 내외)이다.목도리는 한마리분이면 되지만 코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16∼18마리가 필요하다. ○여우 한마리 털값 8만원 밍크도 60일간 임신기간을 거쳐 3∼5월에 새끼를 낳는다.생후 6개월이 지나면 10월말부터 잡기 시작한다.낳을 때는 5∼6㎝에 불과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60∼70㎝ 크기로 자란다.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에서 꺼내자 생사의 기로에 접한 듯 겁에 질려 이빨을 드러낸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가로 40㎝,세로1m,높이 30㎝쯤 되는 길쭉한 우리에 갇혀 산다.암놈털이 길고 좋아 코트는 암놈 것으로만 만든다.수놈털은 주로 모자를 만드는데 쓰인다.목도리는 2마리,모자는 3마리,반코트는 20마리,긴코트는 30∼35마리가 필요하다.마리당 모피가격은 질에 따라 18만∼31만 루블. 모피중 최고급은 검은 담비로 1백마리 분량의 담비털이 들어가는 긴코트는 5만달러(약3천8백50만원) 이상 호가한다.밍크코트의 8∼9배,여우코트의 17배 정도 가격이다.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정복에 나선 이유는 넓은 땅을 탐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비털에 욕심을 낸 것도 이유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다.그래서 정복후 소수민족들에게 야사크라는 현물세를 부과,담비모피를 징수해가기도 했다. ○사료·연료값 올라 고전이 농장 직원은 모두 1백10명.동물 사육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일은 모두 여자몫이다.남자는 운전기사와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10여명뿐이다.아침8시면 출근해 하오4시까지 먹이주고 오물치우고 가죽벗기고 하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간다. 이 동물농장의 예브게니 이사예프 사장은 『마가단을 비롯한 북극과 시베리아 지역의 모피는 긴털안에 또 작은 털이 있는 최상품이라서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에서 뿐 아니라 한국 등지에서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모피값도 조금 올랐지만 사료,연료값은 더 많이 올라 남는 게 없다고 걱정한다. 하오4시가 조금 지나자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피묻고 털묻은 작업복 차림에 초라하던 여인들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루즈 바르고 모피나 가죽옷을 차려입은 멋쟁이 여인들뿐이다.통근버스가 이들을 싣고 집앞에까지 데려다준다. 마가단 시내 식당에서 대신흥산의 박찬문사장(48)을 만났다.모피구입 상담차 왔다고 한다. 『러시아의 모피는 종자개량을 하지 않고 좋은 사료를 많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질이 점점낮아지고 있는데도 값을 비싸게 달라고 해 거래에 어려움이 많다』고 박사장은 말한다.지구온난화 현상과 동물보호주의운동 등으로 인해 모피산업 자체가 고전하고 있고 한국산 모피의 수출도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미국의 모피소비량이 최근 7∼8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서구에서는 모피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그러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모피 인기는 최근 들어 더욱 치솟고 있다.평균 봉급이 1백∼2백달러 정도에 불과한 일반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같이만 여겨지는 고액을 주저할 것 없이 지불할 수 있는 신부유층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러한 모피 인기도 세계에서 두번째다.첫번째는 한국이라고 한다.
  • 제4부 투자손짓하는 극동/캄차카의 풍물(시베리아 대탐방:59)

    ◎화산과 온천의 땅에도 아파트촌이… 극동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캄차카반도.모스크바보다 9시간이나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화산과 온천의 땅.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환경.지구상에 몇 안남은,자연이 잘 보존된 청정구역이다.베링해 태평양 오호츠크해로 둘러싸여 있다.풍부한 어장 덕택에 어업이 산업생산의 70%나 차지한다.그러나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연방정부의 예산지원이 점차 줄어 환경보존과 산업개발 사이에 고민도 많다.육로로는 대륙과 연결이 안돼 물가도 비싸다.서민들의 고생이 심하다.캄차카의 자연과 사람사는 모습을 모아 보았다.
  • 교토­오사카 교포사회(세계속 한인촌 탐방:5·끝)

    ◎20∼30대 배우자 80%가 일본인/서툰 한국말… 다다미 깐 일본집서 한국식 제사/차별 줄어들고 고학력화… 관리·사무직 늘어나/어렵게 일군 삶의 터전 소유권분쟁에 휘말리기도 해방50년.재일동포의 삶은 일본사회의 차별과 무관심속에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하지만 지문날인 철폐운동등 피어린 투쟁과 일본인의 차별의식 약화,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등으로 뒤늦게 나마 빛이 들고 있다.소외자에서 이제는 「끼여들기」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재일동포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정립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묻고 있다.이 물음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한국정부도 모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 정립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재일동포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중의 하나가 교토(경도)시 부근 우지(우치)시에 있는 우토로지역이다.그곳을 취재하기 위해 교토를 찾아 「우토로 토지대책위원회」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교토민단 남지부 감찰위원장 김소도씨를 만났다. ○일제 패망전 강제연행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게 된 김위원장은 귀찮아 하는 기색없이 교토역앞 중국요리집으로 약속장소를 정했다.그곳에서 열리는 「오카모토(오본)」가와 「하야마(엽산)」가의 결혼식장에서 접수를 보고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혼식은 일본이름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끼리의 결혼식이었다.결혼식은 피로연에만 손님이 초대되는 일본식.피로연은 사회자의 일본어 인도에 따라 먼저 일본말 축가등이 불려지고 있었다.1백50명정도의 하객이 모여 성황인 그 자리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1∼2명 눈에 띄었다.양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인도 참석한 것이다.그러나 상당수는 한복 차림이었다.우토로주민들이었다.이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기자에게도 음식을 마음좋게 자꾸 권했다. 1시간여 지나 아리랑과 새타령,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경쾌한 템포로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일변.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일본인의 결혼식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신부 어머니가 낯 모르는 기자를 대하면서 한국말이 서툴러 미안해 할 정도지만 마음속의 신명은 그대로였다.덩실 춤은 1시간이나 계속됐다. 피로연이 파할 무렵 김위원장과 우토로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제가 패망전 한 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로 하여금 비행장을 만들도록 하던 곳이다.강제연행돼 오거나 막노동꾼으로 흘러들어온 재일동포를 부려 비행장을 건설하다가 패망했다.그들은 조선인 노동자를 방치했다.보상은 커녕 귀국여비조차 지급하지 않았다.조선인은 건설현장 한구석 「함바(반장·노무자 합숙소)」에서 새로운,그러나 고달픈 삶을 개척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이제는 6천4백평 대지위에 모두 재일동포인 80가구 3백80명이 살고 있다.고다쓰(각로)와 다다미를 깐 일본식 새 집을 지은 우토로의 동포들은 한국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살고 있다. 그 회사는 지금 닛산자동차 계열회사인 닛산샤다이(차로)다.그런데 땅값이 치솟던 거품경제의 절정기인 88년 6월 돌연 한 부동산회사가 토지를 명도할 것을 요구했다.닛산샤다이로부터 우토로토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재일동포 주민에게는 큰 충격이었다.힘겹게 닦아놓은 삶의 보금자리를 억울하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지금은 소유권을 둘러싼 재판이 진행중이다.김위원장은 『끌어다가 고생시키고 내팽개치더니 죽을 고생해 이제 살만하게 만드니까 나가라고 한다』고 분노한다. ○한국명절때 시장 북적 우토로는 불완전한 전후처리를 상징한다.해방후 헌 신발짝처럼 내팽개쳐진 동포들이 제법 터전을 일구고 일본사회에 끼여들고 있지만 아직도 식민통치로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또 교묘하게 민사화됨으로써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차별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일동포가 받는 차별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취직도 예전보다는 쉬워졌다.일본사회에 끼여들게는 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취직도 일본인보다는 상당히 어렵고 진급은 더 어렵다.이와관련,김세택 오사카총영사는 『사람이면 사람 대접 받아야 한다.이름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몇년전 귀화해 오사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와미 히데노리(암견영헌)씨도 『귀화한 뒤 사업을 해 보니 세무서와의 관계,은행융자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오사카 조센이치바(조선시장).입구에는 「태백산에서 10년동안 기도한 도사」라고 한글로 써놓은 선전문구를 땅바닥에 펴 놓은 한국인 여자 점쟁이가 동포를 상대로 일본말로 손금을 봐주고 있다.이곳에서 2대째 덕산물산이라는 튼실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여표씨는 『5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과 설 명절 때 조선시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면서 『요즘도 한국명절이 되면 붐비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홍씨는 『해외교포가 자랑할 수 있는 민족교육이 아쉽다』고 토로한다. 주재원을 제외한 순수 재일동포는 94년 현재 57만명 수준.1세대는 5% 내외이고 2·3·4세들은 한국말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통해 강요되는 일본동화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재일동포가 돈을 갖고 조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차별과 생활고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국적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나라사랑도 각별해 올림픽은 물론 나라의 기쁘고 슬픈 일에 꽤 많은 성금을 마다하지 않았다.경제발전 초기단계에 재일동포의 기여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나라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참정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2세 김정규(코리아 투데이발행인)씨는 『올림픽은 정말 감동적이었다』면서 『재일동포가 생활은 스스로 한다.나라가 잘되는 것이 가장 고맙다』고 말한다. ○생활고 불구 성금 쾌척 그러나 지난 84년 64만명이었던 숫자가 귀화자가 연간 7천명 안팎으로 늘면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최근 재일동포 자녀들의 결혼상대는 80%가 외국인,바꿔말해 일본인이다.동포들의 주요 업종은 빠찡꼬,야키니쿠(불고기)집,막노동등이다.최근 들어서는 관리직·판매업·사무직등 종사자가 늘고 있다.이들 3업종 종사자는 74년 4만8천6백여명이었으나 94년에는 10만5천명으로 늘어났다.직업별 구성비는 일본사회 전체 비율에 근접하고 있다.고학력화의 결과다.통계로 보나 동포들의 실생활을 보나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전의 이면에서 그들은 아이덴티티 정립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벌써 한국말이 불편한 2·3세들이 머리가 허옇게 센 노·장그룹이 되고 있다.교토민단 김재하(의사)단장은 『한국인으로 살 것인지,한국계 일본인으로 살 것인지,일본인으로 살 것인지 한국정부도 깊이 생각하고 어떤 방향이 결정된다면 그에 맞는 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라면서 『한국민이라면 국민으로서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동포에게도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김총영사는 『재일동포도 국민임을 재일동포 뿐 아니라 정부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면서 『서울의 국민과 같이 대우해줘야 한다.독일이나 미국이 일본에 자국민이 60만명이상 거주한다면 우리처럼 방치했겠는가.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김총영사는 특히 재미동포는 다수 기용되면서도 어려움속에 조국사랑이 남달랐던 재일동포가 본국정부에 아무런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적극적 사회참여로 권리 찾아야/재일동포 사회 이끌 전문가양성이 가장 중요/미야쓰카 도시오 산리학원대학 교수·재일동포 전문가 재일동포에 대해서는 일본사회가 대체적으로 공헌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하지만 빠찡꼬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서민의 오락으로 자리잡은 빠찡꼬산업을 일으킨 것은 재일한국인·조선인들이다.일본에 우체국이 1만8천곳 있고 슈퍼마켓이 4만5천여곳인데 빠찡꼬 점포는 1만8천곳이다.빠찡꼬 업소경영자의 70%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이다.폭력단과의 연계,탈세 등이 문제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만큼 발전시켰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이제 이들에게 햇빛을 주어야 한다.최근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줄고 있지만 일본국가가 재일동포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재일동포는 일본 전체인구의 1%도 안되는 적은 숫자다.재일동포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왜 일본에 재일한국인·조선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지 역사적 배경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한반도의 분단과 민단·조총련의 분열도 일본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고 있다.재일동포에게 불행한 시절이 있었지만 미래는 밝게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다만 현재의 재일동포의 상황으로는 문제가 잘 풀릴지 의문이다.일본사회의 차별은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재일한국인·조선인 3세 정도면 거의 일본인화돼 있다.이제는 일본정부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참여하면서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빠찡꼬와 불고기집이 지금까지의 동포들의 대표적인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빠찡꼬나 불고기집 경영자만이 아니라 과학자,기업가,교육·문화계 인사가 나와야 한다.이런 사람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 타이미르주 소수민족들(시베리아 대탐방:58)

    ◎야금공장 들어서 생업터전 상실/초원 찾아 뿔뿔이 북우로… 눈속 고립된 생활/생활고 비관 잇단 자살… 임구 20년새 반감 『노릴스크의 야금공장때문에 풀이 자라지 않습니다.가축의 먹이가 줄어들자 원주민의 일거리가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원주민이 오직 기대는 것은 보드카밖에 없고 그들은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그 수가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북극 타이미르주청사가 있는 두진카시의 소수민족장관 회의실.10여명의 소수민족대표는 주당국이 『소수민족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는 일이 없다』며 신랄한 어조로 소수민족장관을 질타하고 있었다.이들은 소수민족보호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수년안에 이곳 소수민족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날 회의는 지난 90년 소수민족대표들이 정례화시킨 회의로 이날은 그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회의는 상오부터 식사도 거른채 하오 늦게까지 계속됐다.취재팀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마침내 야코비프 부주지사와 만히로바 소수민족장관을 만났다. ○생필품 절대 부족 타이미르주의 소수민족은 모두 9천여명.지금의 사하족 원조인 돌칸족이 5천여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넨슈족이다.유럽어족과 원주민과의 혼혈계인 넨슈족은 전러시아에 가장 많은 소수민족으로 60만명이나 된다.이들 가운데 2천명이 노릴스크와 두진카 주위에 산다.세번째로 많은 민족은 느가나사니족으로 8백여명쯤 된다.이 민족은 주로 에벤키와 야쿠티족으로 구성돼 있다.가장 원시적으로 살고 있는 옌치족은 2백명 안팎이다.이들 소수민족은 가깝게는 도심에서 1백㎞쯤 되는 곳에서부터 멀게는 수백㎞ 떨어진 북극지방에 20∼30명 혹은 1백∼2백명 단위로 군집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온하게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재앙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지난 53년 노릴스크·두진카에 각종 금속생산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도심내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교외로 교외로 「탈출」했다.공장 굴뚝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엄청난 공해는 이들의 이주를 재촉했다.광대한 초목지역이 공장지대로 대체되면서 가축들은 먹이를 잃어갔다.그나마 주변 초목지대의 잡초들도 공해때문에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이들의 생업인 고기잡이와 가축사냥이 불가능해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당시 주당국에서는 이들을 위해 소수민족 초등 교육기관들을 세우기 시작,이들의 자녀들을 「강제입학」시켰으나 대부분은 「문명생활」이 두려워 자녀들을 데리고 숲으로 숲으로 사라졌다. ○문명생활 적응 못해 이들 소수민족의 최대관심사는 사느냐 죽느냐는 생존의 문제였다.소수민족들은 사냥과 고기잡이가 생업의 대부분이었다.타이미르 주일대에는 1만여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들은 바로 그들의 일터였다.호수에서는 뤼바(물고기)들을 잡아들였고 이 일대에서는 순록을 방목하거나 가축사냥에 몰입했다.이들은 수획한 고기·생선·모피등을 가까운 시장에 직접 내다 팔고 그 돈으로 필요한 생필품을 사 생활한다.문제는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시장사이를 오가는 교통편이었다.날씨·도로사정을 보면 유일한 교통편은 헬리콥터다.석유·천연가스가 풍부한 튜멘주의 경우 주당국은 정기적으로 헬리콥터를 띄워주고 있었지만 이곳 타이미르 주당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소수민족들의 교통문제를 방치하고 있었다. ○헬기동원 엄두 못내 만히로바 소수민족장관은 이와 관련,『소수민족들이 헬리콥터를 한시간동안 빌리려면 4백달러를 내야 한다』면서 『원주민 마을까지 왕복 6시간,물품운반하는데 2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소수민족들은 평생동안 벌어도 헬리콥터를 동원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물론 소수민족들은 여름에 목선을 이용,예니세이강 지류를 타고 나온다.또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가로 순록썰매를 타고 수십㎞미터 떨어진 시장을 찾기도 한다.하지만 배나 썰매를 사거나 수리하려해도 소수민족들은 이를 충당할만한 돈이 없다고 한다. 소수민족의 생존이 어렵다는 것은 당국의 소수민족인구통계에서도 보인다. ○보드타에 찌들어 지난 70년대 초 타이미르주의 소수민족은 모두 1만8천명.정확히 20년만에 인구는 반으로 줄어들었다.최근 3년동안에는 자연사를 빼고 매년 4백∼5백명이 각종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눈에 띄는 것은 사망원인 가운데 가장 많은 원주민들의 자살.30∼40대 10명가운데 한 사람이 『살기어렵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다음의 사망원인으로는 술을 많이 하는 탓으로 위암·간암등의 질병이다. 소수민족들은 이날 회의에서 러시아 최대의 노릴스크금속주식회사에서 벌어들인 이익금 가운데 일정액을 소수민족들을 위해 써야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원래 노릴스크는 금속공장만을 위해 인공적으로 건설한 러시아연방의 직할·계획도시다.때문에 노릴스크의 금속공장에서 벌어들인 이익금의 50%는 타이미르주가 속한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지방)에,나머지 50%는 러시아연방 예산으로 쓰이고 있다.하지만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 당국은 타이미르주를 위해서는 형편없는 예산을 할당하고 있다는 것이 타이미르 당국자들의 지적이다.회의를 마치고 나온 넨슈족의 한 대표는 『우리에게 공해만을 남기고 벌어들인 돈으로 남쪽 28개 구역들이 잘 살고 있다』며 분개했다. 물론 타이미르 주당국은 수백㎞ 떨어진 소수민족들에게 화물기(AN­26)를 띄워 석유·생필품을 공급해주기도 한다.또 여름철에 예니세이강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이들 물자를 조그만 화물선을 띄워 배급해주기도 한다.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치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유류등 절대량의 생필품을 필요로 하는 많은 소수민족에게 실제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해부터 극동시베리편 계속◁ 그동안 애독해주신 시베리아 대탐방 3부는 이번 회로 끝냅니다.새해부터 제4부 극동시베리아 편을 계속합니다.
  • 뉴욕 한인상가(세계속 한인촌 탐방:4)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신화창조/플러싱에 2천곳 밀집·브로드웨이 70% 장악/특유의 근명성으로 업종 다양화… 상권확대 「문화와 예술의 도시」 뉴욕.20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지 뉴욕은 오늘도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그 화려함속에는 한인교포의 꿈과 도전의 역사도 용해돼 있다.하지만 대부분의 한인교포는 너무나 바쁜 생활로 예술과 만날 여유가 없다. 상점을 직접 운영하는 한인교포는 주 6일을 일하고 있으며,심지어 일주일 내내 24시간 영업하는 한인상점도 적지않다.이 때문에 뉴욕이 자랑하는 미술관·공연장·전시장에서 매일 같이 주옥 같은 문화행사가 펼쳐지지만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인은 이민초기 잠안자고 할 수 있는 세탁업·청과업·생선가게등을 하나씩 「점령」하면서 특유의 근면성으로 죽어가는 「뉴욕경기」를 살리는 데 일조를 했다.맨해튼 남부 폴턴어시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으레 한국교민이다. 한인은 뉴욕지역에 「주 7일 무휴,24시간 영업」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놓은 장본인들이다.이런 경우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로 가게를 지키는 경우가 많아 미국인들로부터 『이게 무슨 부부인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70년대 코리아타운 형성 뉴욕시 5개 보로(행정구역으로 뉴욕시속의 작은 시)중에서도 한인이 가장 밀집해 살고 있는 퀸스보로 플러싱에는 밤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한인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곳이다.현재 10만여명의 한인이 살고 한인업소 2천여개가 있는 이 지역은 확고한 「한인촌」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이 지역에 한인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77∼78년께로 이민초기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지금의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게 됐던 것.그러나 그 때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생활권이 다소 나은 지역으로 이주해 갔으나 80년대말에 들어서면서 정착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인근 롱아일랜드나 뉴저지주로 옮겨간 사람들도 주로 한인을 상대로 하는 이곳으로 다시 영업장소를 옮기는 신풍조도 생겨나고 있다.주상권은 메인스트리트,루스벨트애비뉴,유니온스트리트에 형성되고 있으나 점포임대료가 비싸지면서 노던블르바드,니틀네그등 동쪽으로 상권이 확대되고 있다. 한인이 취급하는 업종도 초기에는 주로 세탁업·야채상등이었으나 이제는 업종이 다양화되면서 의류업·미용업·부동산업등 손을 안대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가발도매로 자리잡아 플러싱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곳이 유니온 상가.상점안이나 상점밖이나 모두 한국 사람이다.마치 서울의 한복판에 서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이곳은 의류·식당·제과점·미용·보석·여행사·콜택시·운송업체·오디오점·비디오대여점·유흥업소·부동산·보험등 거의 모든 업종이 총망라돼 있다.13년전에 생긴 이곳 상가는 한인상점수가 1백20여개로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한인업계의 축소판이며 플러싱 코리아타운의 상징이다. 유니온상가는 그러나 한인사회의 불황으로 파격적인 세일상품으로 손님을 끄는 등 대책마련에 한창이다.「왕창세일」,「거꾸로 세일」등의 광고문구가 어지럽다.중국상권이 메인스트리트와 루스벨트애비뉴 서쪽을 조금 잠식했지만 유니온 상가만은 난공불락이다.이곳에서 「우정이네 집」이란 여성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황(56),김한자(53)씨 부부는 『지금은 한인업소끼리 경쟁을 해야 할 정도로 한인업소 천지가 됐다』면서 『경쟁이 심하다 보니 단합이 저해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뉴욕시 중심지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중의 하나인 24가와 34가 사이에 늘어선 한인도매상가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상권지역이다.언제나 분주한 이곳은 한인 도매·무역업자들이 땀과 꿈을 거름삼아 지난 20여년간 뉴욕한인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곳이다.한인이 처음 시작한 업종은 가발도매업이다.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는 가방·의류·잡화·보석 중심의 도매상가로 재편됐다.80년대 들어 이 지역 빌딩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상권을 잡고 있던 유태인이 물러나고 한인이 본격적으로 진출,상권의 60∼70%를 장악하게 됐다.그러나 이곳도 불황과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 상실로 90년부터는 한인의 뉴욕도매상권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위기에 처해있다. ○한인상권에 중국계 침투 이 지역에서 20년동안 가방도매업과 스포츠라이센스업을 하고 있는 신진상사 김동빈 사장은 『중국계등이 브로드웨이 한인도매상가를 파고 들고 있지만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며 우리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한국상품의 국제적 신뢰성을 잃게 하는 한국 가짜상표 범람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바로 20여년전 한인이 「몸 하나를 밑천으로」유태계나 이탈리아계가 장악하던 청과업계를 점령해가던 현상이 거꾸로 한인상권에 일어나고 있지만 한인도매상인들은 뉴욕의 도매상권을 미래에도 다른 민족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각오를 새기고 있다.한인상가의 불빛은 여전히 밝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경제안정 바탕 정치적 힘 기를때”/윤용상 퀸스보로 플러싱 한인회장/“2백∼3백명이 투표권 행사” 안타까운 일 미국사회에서 한인이 가장 밀집해 있는 뉴욕 퀸스보로 플러싱의 한인회장 윤용상(56)씨는 『이제 이민 1세는 자녀들이 미국의 중심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갖가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그 지름길의 하나는 정치적으로 신장하고 투표권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회장은 『이민사회에서 미국 정치인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뽑는 힘을 가져야 하는 데 아직 인식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플러싱지역만해도 1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으나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고작 2백∼3백명에 불과하다. 한인교포의 유권자등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윤회장은 한인교포사회의 경제적 안정을 정치적 안정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최근 미 이민법이 강화될 움직임과 함께 사회복지혜택의 감소추세가 역력해지자 시민권과 투표권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윤회장은 미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6월 교포청소년들로 미 보이스카우트 뉴욕연맹산하의 정식 보이스카우트단을 창설했다.그는 『미국 주류사회로 파고들어 갈 수 있는 교육과 지도자양성이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78년에 미국으로 이민와 최근까지 교민사회 한국방송사를 운영하기도 한 윤회장은 『이민 1세는 언어장벽과 문화갈등을 극복하며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성공했지만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고 『이제는 한인교포사회를 이끌어 갈 차세대에게 책임을 지을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정체성 회의와 정신력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 사하공화국 툰드라(시베리아 대탐방:57)

    ◎세계최대 가스전 발견… 각국서 탐사 1827년 여름.당시 합동으로 시베리아 지역 석유·가스탐사에 나섰던 러시아 탐사팀과 미국의 쉘사팀은 현재 사하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시 외곽지역의 한 곳을 파내려갔다.바이칼지역 출신 탐사전문가이자 탐사대장 쉐르코는 땅을 지하로 아무리 파내려가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그가 당시에 판 곳은 지름이 2m,깊이는 29m였다. 페테르부르크연구원들이 이후 10년동안 1백16m까지 파들어갔다.그래도 땅은 평균 섭씨 영하12도를 유지하는 얼음이었다.탐사대원들은 결론을 내렸다.지구상에서 육지에 영원히 녹지않는 층이 있다는 결론이었다.툰드라지역을 발견해낸 것이다.이후 탐사기관과 야쿠츠크 동토연구소가 확인한 영구동토층은 지하 1천5백m까지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한반도의 14배 면적 야쿠츠크를 수도로 하는 사하공화국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땅이 영구동토층이다.사하공화국의 면적은 3백10만㎦.러시아땅의 5분의 1이자 한반도의 14배에 해당하는 큰 지역이다.동·서지역의 시차가 3시간이나 되는 이 지역은 동·서의 길이가 2천5백㎞,남·북의 길이가 2천㎞나 된다. 취재팀이 만난 주라블예프 빅토르 이바노비치 사하대통령보좌관의 경험이다.그는 62년 이곳으로 이주해와 행정가로 일했다.주택을 스스로 지어 살았던 그는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지은 집이 무너져버렸다.여름철의 기온이 섭씨 30∼40도.겨울철 기온이 영하 40∼6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 사하공화국이다.연교차 1백도를 견디는 기초공사가 필요했지만 그는 여느 주택의 기초공사처럼 집을 지은 것이다. 취재팀이 야쿠츠크 지역을 탐방하는 동안 주택들이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곳이 많이 목격됐다.도로 옆의 전봇대도 기울어진 곳이 여기 저기 방치돼 있었다.주라블예프씨는 이같은 상황이 영구동토층인 이곳의 땅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2년만에야 알았다. 『여름엔 지하3m까지 녹습니다.땅이 녹으면서 집이 기울기 시작하지요.겨울에 땅이 얼기 시작하면 집의 기초가 심한 비틀림현상을 보이기도 하구요』 그는 이곳 동토연구소가 개발한 「고상주택」기법을 나중에야 알고 집을다시 지었다.고상주택은 동토연구소가 지난 48년 세계최초로 개발한 건축기법.즉 지름 60∼90㎝정도의 콘크리트기둥 수십개를 만들어 먼저 건축물을 세우고자하는 대지위에 박은 뒤 이 기초위에 아파트나 다른 건축물을 짓는 방식이다.여름에는 지하3m까지 녹기 때문에 콘크리트 기둥은 최소한 6m이상 박아야 하고 콘크리트 배합도 동토의 특성에 맞게 잘 배합되어야 한다. 주택이나 다른 건축물이 모두 「밥상처럼」 위에 놓여져 있는 방식,이것이 고상주택이다.야쿠츠크의 건축물들은 거의 1백%가 고상건축물이다. 이런 식으로 집을 지으면 여름철 일부 땅이 녹을 때 건축물은 1∼1.5m위로 치솟는다.겨울철 기초가 수축작용을 일으키면 다시 건축물은 기초기둥을 따라 그만큼 가라앉는다는 것이다.러시아에서 처음 이같은 고상주택 기법을 개발한 이후 캐나다와 중국·아프리카 일부 동토지역에서도 이같은 건축기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라블예프씨의 얘기다. ○여름철 디프테리아 극성 주택가의 전봇대도 이같은 기법을 응용했다.콘크리트기둥 「심지」를 깊숙이 박아놓은 뒤 이 기둥에 별도로 전봇대를 잇는 방식이었다. 야쿠츠크 서북쪽 5백㎞ 지점에는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인 「오미야콘」이라는 지역이 있다.가장 추울 때의 기온이 영하 71∼72도.이곳보다 더 추운 곳이 남극에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서」가장 추운 곳이 바로 오미야콘이다.하지만 이 지역은 지상최대의 가스전이 발견돼 독일등 서구 여러나라에서 한창 탐사활동중이다. 취재팀은 야쿠츠크를 취재중 한 가스개발 예비탐사팀을 이곳에서 만났다.이들은 바로 한국에서온 예비탐사팀이었다.우리나라와 러시아는 최근 「한·러 사하지역 천연가스 개발협정」을 맺고 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천연가스 공동개발에 착수한 사실은 이미 알려진대로다.21세기 사업이랄 수 있는 이 개발은 사하지역의 가스전을 개발,가스파이프를 야쿠츠크∼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까지 매설하는 21세기 대형프로젝트의 하나다.한국에너지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인 이들 예비탐사팀은 이미 2개월을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이들 가운데 한대원은 『팀 가운데 한 연구원이 한달동안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다 살아났으며 취재팀들도 디프테리아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다.그들은 『나머지 다른 대원도 병원을 찾아 병원균 감염검사를 했다』면서 『이곳 디프테리아는 걸리면 일단 90%는 사망하며 나아도 다시 60%는 심장마비등 후유증으로 고생한다』고 말했다.빨리 병원을 찾아 백신을 맞으라는 주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10년전에 자취를 감춘 전염병이지만 이곳에는 여름철마다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디프테리아가 이곳에 만연하는 것은 바로 사하지역의 섭씨 1백도에 이르는 연교차 때문이다.또 곳곳의 많은 늪지대가 여름철이면 전염병균의 서식처라는 것이다. ○미주 야생밀렵꾼 몰려와 이와 관련,사하병원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병은 바로 디프테리아』라면서 『러시아 거의 모든 도시 사람들은 여름철이 되기전 예방백신을 맞는 것이 생활화돼있으나 백신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하의 이같은 생활조건에도 불구,여름철 외국인의 발길은 여객기 티켓을구하지 못할 정도로 붐빈다.사하공화국은 석유·가스 뿐만 아니라 멘델예프가 만든 화학원소기호에 나오는 모든 금속이 생산되기 때문이다.한편으로 멀리 미국·캐나다 등지에서는 야생밀렵꾼들이 야생조류나 곰·순록등을 사냥하기 위해 모여든다.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북극여우털을 「채집」하기 위해 모피산업 관계자의 발길도 부산한 곳이 사하공화국이다.
  • 제구실 못하는 은행(시베리아 대탐방:56)

    ◎여신업무 외면… 환전소로 전락/환차익 노리는 투기꾼 창구앞 장사진/영업시간 제각각… 늑장업무에 골탕도/외국기업들 신용장거래 상상도 못해 시베리아 은행들은 무질서하다.은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환투기꾼에 가깝다.은행이라고 해서 찾아가보면 그곳은 대체로 환전소에 불과하다. 은행의 주요기능인 예금과 대출,수출입자금 결제등 무역금융기능을 수행하는 은행은 거의 없다.때문에 러시아의 회사들과 거래하는 외국의 기업들은 대금결제방식으로 현금베이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신용장거래로 러시아에 상품을 수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힘들다.외국기업이 신용장을 받아 상품을 선적한 뒤 대금을 받기 위해 거래은행으로 가면 『러시아에 그런 은행이 없다』며 결제를 거부하는 사태가 지금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환투기꾼 경찰과 결탁 옴스크에서의 일이다.러시아는 93년 1월부터 「러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루블만 통용할 수 있다」는 옐친대통령의 포고령에 따라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은행으로부터 외화를 루블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취재팀은 노보시비르스크행 여객기표를 사기 앞서 환전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한꺼번에 루블로 몽땅 바꿔 놓을 수는 없다.달러가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바꿔놓으면 그만큼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옴스크 드라마극장 옆의 한 환전은행에서였다.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달러를 사두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그 행렬은 30여m 이상 되었다.취재팀은 환전을 위해 한시간 남짓 기다리다 이윽고 이중으로 된 은행출입문 사이에 자리했다.대기하는 동안 한 경찰관이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들고 경계중이었는데 이는 무장강도에 의한 강탈사건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바로앞에서 중국계로 보이는 70대노인 부자 두 사람이 아예「루블보따리」를 폴어놓고 환전을 「독식」하고 있었다.우리는 30여분간 지켜보다 참지못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은행마감시간인 하오3시까지 3분밖에 남지 않았고 루블로 바꾸지 못하면 다음스케줄이 차질을 빚을 참이었다.취재진의 거센 항의에 그들은 물러났다.그러나 이제는 은행측이 『시간이 다됐다』며 환전을 거부했다.시간은 아직 1분가량 남아있었다.가로 20㎝ 세로 10㎝되는 유리문 창구안쪽 커튼이 내려졌고 무장경찰은 우리를 강제로 밀어냈다.그 순간 환전을 「독차지했던」 70대노인은 『수고했다』며 경찰에 5만루블짜리 지폐를 쥐어주는 것이 목격됐다. ○대규모 기업집단이 소유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루블가격의 폭락·폭등이 계속되면서 환차액을 노리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은행창구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면서 『경찰과 결탁해 순서를 확보하는 환투기꾼이 득실거리고 있다』고 푸념했다.여행객들이 겪어야 하는 또다른 「어려움」은 은행측의 지연처리였다.시베리아의 대부분의 은행들은 5백달러를 루블로 바꾸는 데 창구처리시간이 30분은 족히 걸린다.위조지폐가 범람하자 불필요한 확인절차가 계속되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일단 받아든 달러를 육안으로 1차 검색하고 2차로는 위조여부를 가리는 기계에 넣어본다.3차로는 그 수를 세는데 보통 같은 돈을 4∼5차례 반복해 센다.그리고는 옆의 창구직원에게 보이며 다시 똑 같은 절차를 거친다.이후 루블을 내주는데 내줄 루블을 몇번이고 센다.기다리는 사람으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시베리아호텔이었다.이곳은 자체 환전소를 운영,외국인에게 서비스를 베풀고 있었다.하지만 서비스의 「대가」는 아주 비싼 값에 루블을 사야한다.당시 공식환율은 달러당 4천9백루블.그러나 이곳 호텔은 환전에는 용이했지만 1달러에 4천3백루블 밖에 주지않았다.환전하는 측이 거의 맘대로 환율을 정해 바꿔주고 있는 것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예니세이은행도 「은행은 서비스기관」이라는 인식이 없음은 마찬가지다.아니 이곳 서민들에게는 「착취기관」이나 다름 없었다.루블이 오를 때 루블을 팔고 달러가 오르면 달러를 판다.업무개시시간도 제각각이다.게다가 은행 출입문에 써 붙인 업무시간을 보고 찾아가면 허탕치기 일쑤다.그대로 지키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은행들을 커다란 기업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시베리아은행의 특징이다.세계 최대의 알루미늄공장 가운데 하나인 크라스노야르스크 알루미늄공장,튜멘주의 수르구트석유·가스주식회사등은 모두 자회사로서 자체은행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그 기능이 한정돼 있었고 초보적인 지불·환전기능만 하면서 수수료만을 챙기기에 바쁘다.주식이나 채권을 「멋대로」발행해 팔거나 종업원들에 월급을 주는 기능,환전기능등이 고작인 셈이다. ○중앙은행서 환율 조작 최근 시베리언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기시작한 금융회사는 우리의 제2금융권에 해당하는 「투자신탁회사」다.소위 피라미드식 판매기법을 동원한 「투자신탁회사」는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대도시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이들 금융기관은 「주식」을 마구 발행,『2∼3개월후에 액면가의 2∼3배를 준다』며 고객을 유혹한다.텔레비전 광고나 지하철 내부는 이같은 금융회사들의 광고로 가득하다.주민들은 그것이 사기극인 줄 알면서도 빠른시간안에 재산증식을 꾀할 수 있다는 말에 쉽게 현혹돼 피해자가 눈덩이 처럼 늘어나고 있다.최근 러시아의 루블가치가 이상상승한 적이 있었다.보름정도 계속된 루블상승 때문에 주민들은 수수료를 감수하고 다시 소유하고 있던 달러를 팔고 루블확보에 나섰다.이때 러시아 두마(의회)의 한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수출도 안되는데 루블가치가 왜 오르고 있느냐』며 조사단을 구성하자고 제의했는데 이 때부터 루블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이와 관련,이르쿠츠크국립대학의 바실리 이바센코교수는 『중앙은행이 환율을 조작하는 인상이 많다』면서 『이는 러시아 시장경제 정착에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르쿠츠크시에서의 일이다.취재진은 역시 「고액」이 들어가는 국내선 표를 사려 루블을 바꾸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시내 3∼4곳의 은행들은 상오11시가 넘어도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다.다운타운가 한 마가진(상점)건물에 세든 은행을 찾았다.하지만 그곳은 『루블이 없어 2백달러만 바꿔주겠다』고 해 취재진은 또 다른 은행을 찾아 헤매야 했다.취재진은 환전에 2시간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생각해 「삐끼」(개인환전상)를 찾았고 급기야는 그들에게 「환전사기」도 당했다.은행환율보다 높게 루블을 준다며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손님들을 유혹한 뒤 달러를 세는 척하며 몇장을옷자락에 넣는 수법에 당한 것이다.
  • 장애인 전문방송/「사랑의 소리 방송」 20일 개국

    ◎KBS­서강대서 송출·편성·제작 분담/FM라디오 전파에 특수 수신기부착 송출/「사랑을 모읍시다」 등 다양한 특집프로 마련/아나운서·리포터 등 자원봉사자 500여명 참여 국내 최초의 장애인을 위한 전문방송 「사랑의 소리방송」이 20일 개국한다. KBS와 서강대가 각각 송출,편성·제작을 맡게 되는 「사랑의 소리방송」은 서강대 최창섭 교수등이 지난 3년간 노력끝에 탄생시키는 의미깊은 방송.별도 채널이 있는 것이 아니라 FM라디오 전파에 특수 수신기를 부착한 형태로 방송이 시작된다. 서강대에 마련된 「사랑의 소리」방송국에는 아나운서·PD·구성작가·리포터 등 방송전문직과 대내외 홍보및 후원모금 활동을 하기 위해 지원한 자원봉사자 수가 현재 5백여명에 이르는 등 일반인의 관심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KBS는 20일 상오 9시40분부터 10시간 동안 수화안내와 함께 「사랑을 모읍시다」생방송을 실시한다. 또 「열린음악회」 「그때 그사건」 「청소년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특집방송을 실시할 계획. 「사랑을 모읍시다」프로그램에서는 개국식 현장중계와 모금함 운영,장애인들의 재활원 자원봉사 현장연결 등 다채로운 입체 방송으로 꾸민다. 농아부부인 임상태·백구인씨가 독특한 육아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는 감동적인 모습을 「사람과 사람들­채웅이에게 열린 세상을」(상오 11시30분)편에서 보여준다.또 두 손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의 의지의 삶을 다룬 중국 다큐멘터리 「얀후아의 새로운 삶」을 낮 12시10분부터 방송한다. 하오5시30분부터는 노이즈 박미경 인순이등 인기연예인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한 자선 음악회 공연실황을 방송할 예정. 라디오방송으로는 하오 4시5분부터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사랑의 가족만들기」를 생중계할 계획이다. 이밖에 개국일을 전후로한 정규프로그램으로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특집편 「어떤 외출」(21일 하오 7시35분)을 방송한다.후천성 장애 청소년과 자원봉사자의 우정을 다룬 내용. 또 「세계는 지금」(18일 하오 10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장애인 방송을 실시하고 있는 호주의 RPH방송을탐방한다.22일 하오 8시30분에는 「그때 그사건」프로에서 지난 75년 농아 어머니가 농아딸을 살해한 사건을 재연한다.「침묵의 모정」편으로 농아가족의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수있는 계기를 주고자한 것이 제작진의 의도. 한편 최근 청와대 안기부 대학 등 대규모 음악회를 개최해온 「열린음악회」는 24일 특집편으로 지체부자유 어린이와 시각장애자들이 관객으로 참가한 가운데 따뜻한 성탄의 음악소리를 선사한다. 특히 방송수신에 필수적인 수신기 보급을 맡고 있는 KBS는 「장애인을 위한 수신기 달아주기 알뜰장」행사를 20일 상오 11시부터 하오 4시까지 KBS신관 IBC홀에서 마련한다. 라디오국 신행식 차장은 『현재 모금된 금액이 수신기 1만대를 보급할 수있는 6억정도』라면서 시청자 및 청취자들의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크라스노야르스크 유람선 「안톤 체호프」(시베리아 대탐방:55)

    ◎6∼9월 북극관광 12회 운항/3천t급 호화시설… 수영장·헬스클럽도/3백명 승선… 구소공산당 간부 즐겨 이용 시베리언들사이에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지만 크라스노야르스크지방에서 「안톤 체호프」는 이제 더 이상 소설가의 이름이 아니다.3천t급 호화유람선­이 배의 이름이 바로 「안톤 체호프」이기 때문이다. 지난 78년 옛 소련이 오스트리아에 주문해 제작한 안톤 체호프는 그동안 공산당간부와 그들을 추종하던 관리들의 전유물이었다.이들은 해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모여 호화스런 파티를 벌였고 가족들과 이 배를 타고 시베리아대륙의 광막함과 대자연의 신비함을 만끽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열렸고 고급관리와 공산당간부들의 행각이 차츰 사라지면서 이 배는 그대로 예니세이강 하안에 묶이는 듯했다.그러다가 지난해 외국과의 경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주식회사 예니세이스크」라는 선박회사가 탄생했다.스위스의 미텔라우라는 관광회사가 이 회사의 설립을 도와주며 안톤 체호프를 서구의 호화유람선으로 개조한 것이다.이 회사는 연간 70만마르크에 안톤체호프호를 러시아로부터 임대,예니세이강을 본격 운항하는 유람선으로 사용하게 됐다.취재진이 크라스노야르스크항구에 도착했을 때 안톤체호프는 이틀정도 남겨놓은 올해 첫출항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관광객 50대이상 주류 선장 이반 티모베레비치씨(58)를 비롯한 승무원 37명은 출항에 앞서 각종 정비·점검에 임하고 있었다.관광객은 스위스측이 유럽 각국으로부터 모아 올 예정이었는데 첫운항 때의 손님은 1백70명정도라고 한 승무원이 귀띔해줬다.이 유람선의 최대 승선인원은 3백명정도였다.관광객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등 유럽각국에서 이미 6개월전부터 예약된 손님들이었다.젊은이들보다는 50대 이상의 나이든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었다. 관광코스는 여객기와 기차·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이 배로는 10∼11일동안 크라스노야르스크항구에서 예니세이강을 거쳐 북극도시 노릴스크·두진카까지 가는 것이다.두진카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다시 모스크바로 여객기를 타고 이동하고 모스크바에서는 다시 기차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를 여행하도록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북쪽으로 항해하는 동안 처음 만나는 도시는 예니세이강과 퉁구스강이 교류하는 「예니세이스크」다.이 도시는 16 28년에 탄생한 시베리아의 고도다.예니세이스크 도시관광이 끝나면 유람선은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그러다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동쪽 퉁구스강으로 빠진다.원시림으로 가득한 퉁구스강의 삼림지대,옛 원시인들이 살았거나 퉁구스족·예벤키족등 시베리언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유람선은 퉁구스강을 빠져 나와 본류인 예니세이강을 항해하고 10일째 목적지인 두진카항구에 도착한다.관광사들은 두진카로의 도착시기를 6월 초쯤되도록 스케줄을 짠다.이때쯤이면 북극바다의 거대한 얼음덩이가 녹으면서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대장관­「유빙」을 맞기 위한 것이다.유빙을 보며 유람선 승무원들과 관광객들은 선상에서 샴페인을 터뜨린다.순식간에 유람선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일부 러시아 관광객들은 유빙을 쳐다보며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기도 한다. ○종업원 외국어 구사 특기 매년 6월초쯤 시작되는 안톤 체호프의 예니세이 관광은 9월말(겨울이 늦어지면 10월 초순까지)이면 끝이 난다.이후에는 시베리아에 겨울이 시작되면서 북쪽의 강이 얼어붙기 시작,배가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안톤 체호프를 탈 수 있는 시기는 이 기간동안의 11∼12차례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선장의 설명이었다. 안톤 체호프는 벌써 1년간의 예약이 모두 끝나고 이제 96년 관광객들의 예약을 받고 있었다.티모베레비치 선장은 지난 84년부터 이 유람선을 운항해 온 베테랑 선장이다.취재진은 그의 안내로 배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갑판을 통해 객실 내부로 들어섰다.객실복도,층계마다 금장식 샹들리에가 눈에 부셨다.깔아놓은 붉은 카펫하며 마치 일류호텔을 방불케하는 시설물을 갖추고 있었다.2층은 2명씩 들어가는 객실로 가득차 있었다.3층은 헬스클럽과 수영장,식당,디스코바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유람선의 종업원들이 이틀후면 출항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수영장은 30t정도의 물이 들어가는 규모로 항해하는 동안 햇볕을 직접 쬘 수 있도록 지붕을 여닫을 수 있게 차양장치가 붙어 있었다. 디스코 바는 80여명이 들어가 즐길 수 있는 규모였다.디스코바 식당 등의 종업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대학을 졸업한 아가씨들.이들은 모두 한가지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특기로 갖고 있었는데 영어에서부터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이탈리아어등을 구사하고 있었다. 영화관이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갔다.이곳에서는 시베리아에 관한 영화나 외국의 최신영화,시베리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물등을 상영하고 있었다.4층을 거쳐 배의 갑판이자 옥상으로 빠져 나왔다.옥상에는 각양각색의 비치파라솔이 그득했다.운항이 계속되는 동안 따분한 날이면 옥상으로 나와 일광욕을 즐기게끔 각종 서비스도 곁들여져 있었다. 유람선의 안전장치에도 귀가 솔깃해졌다.선장은 『초당 15m의 강풍,5m의 파고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자랑했다.10여명이탈수 있다는 구조목선 24개를 비롯해 배의 수리를 위한 작업선이 유람선의 운치를 더했다.80년대 중반 옛공산당 정치국원이었던 리가초프,러시아의 첫우주유영인 옐리세예브가 이 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배를 타본 뒤 이들은 한결 같이 『환상적』이라며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 우솔레 시비르스코예 소금요양원(시베리아 대탐방:54)

    ◎지하 암반서 퍼올린 소금물로 질병 치료/1ℓ에 염분 45g·유황 등 천연성분 45종/진흙에 섞어 몸에 발라… 소아마비 등 특효/한해 1만명 치료가능… 노인·전상자들엔 무료 시베리아 중부 이르쿠츠크에서 앙가라강을 따라 1백㎞쯤 가면 우솔레 시비르스코예란 도시가 나타난다. 취재진은 이 도시가 암염생산으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차를 대절해 이곳에 도착했다.이 암염을 응용해 갖가지 질병을 고친다는 정보는 취재진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곧 도심 한 복판을 조금 벗어나 있는 「사나토리(휴양지라는 뜻)우솔레 시비르스코예」에 도착했다.간판은 휴양지였으나 요양원 같은 곳이었다.이곳 1층에는 5∼13세 정도의 어린 환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좁은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간혹 나이든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이들은 갖가지 병을 가진 환자였다.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에서부터 허리를 쓰지 못하는 아이들,선천적으로 뼈가 무른 아이들도 있었는 데 어른들은 대개 혈압과 류머티즘·부인병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었다. ○소금물요법 죄수가 발견 의사의 진료를 받은 아이들이 어떤 치료를 받는 지 따라가 보았다.이들은 옷을 모두 벗고 칸칸이 마련된 욕탕속으로 각각 뛰어들었다.욕탕에는 이 지역 4백m 땅속에서 퍼올린 소금물이 담겨 있었다.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욕탕물의 온도가 39도정도에 이르도록 온도를 조절했다.이들은 30분동안 욕탕찜질을 하고 난뒤 다음 코스로 향했다.침상 20여개가 양쪽에 놓여져 있었다.탄산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한쪽 모서리에는 검은 빛깔의 진흙덩이를 담은 양동이가 여럿 보였다.이 어린 환자들이 베드에 눕자 간호사들이 이 진흙을 어린아이들의 환부에 발랐다.어떤 아이는 다리쪽에 진흙을 바르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눈에·팔에·전신에 바르는 등 진흙을 바르는 부위가 서로 달랐다.몸에 문제가 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진흙을 바른다는 것이 간호사들의 설명이었다. 이들 환자가 사용한 물과 진흙은 바로 병의 치료제였다.「신비의 소금물」 「신비의 흙」으로 불린 이 치료제에 가장 많이 담긴 것은 염화나트륨,그러니까 그냥 소금이었다.다만 소금의 성분이 여느 다른 지역과 좀 틀리다는 얘기다.예를 들면 이곳 지하에서 퍼올린 물에는 1ℓ에 45g정도의 염분이 들어있고 유황 마그네슘 브롬 리튬등 무려 45가지의 천연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치료에 쓰이는 진흙은 이곳에서 약 30㎞ 떨어진 한 늪지대에서 실어온 것이다.치료할 때는 이 진흙과 이곳에서 퍼올린 소금물을 섭씨 70도로 데워 버무린 뒤 사용한다.물론 몸에 바를 때는 섭씨 40도정도로 식힌 뒤 사용한다. 이런 식의 치료기법은 1826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당시 이곳에는 영국의 기술자들이 와 땅속에서 소금을 캐기 위해 파이프를 박고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당시는 소금이 귀했으므로 정부는 반정부활동가들인 데카브리스트를 포함,죄수들을 이곳 시베리아로 차출해 소금공장에서 일하도록 했다.지하 깊숙이 작업하면서 죄수들은 갖가지 질병에 걸렸다.특별히 병원이 따로 없던 이들 죄수는 파상풍 때문에 죽는 일도 많았다.한 죄수가 일하다 다친 상처부위에 이곳의 진흙을 발라보았다.그러자 신비하게도 상처는 빠른 시간에아물었다. ○1회 최대 450명 치료 20년뒤인 1848년.니콜라이 1세때 이곳 시정부는 이곳에 정식 요양원을 세우고 진료에 들어갔다.이것이 「사나토리 우솔레 시비르스코예」의 탄생이다.이곳의 치료용 건물은 190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우솔레 시비르스코예」는 러시아말로 「소금이 있는 시베리아」라는 뜻이다.1회 최대 치료인원은 4백50명,연 1만명을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당시 파상풍이 고쳐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러시아 전역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각종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모여들었다.이들 환자 가운데 가장 치료가 잘되는 질병은 소아마비환자와 파상풍환자라고 요양원측은 말했다.이러한 질병말고도 심지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병 환자들도 이따금씩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취재진이 이곳을 방문하기 직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스웨덴의 30대 여성 두명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고 한다.이곳 요양원에서 만난 세르게이군(7)의 어머니(38)는 『여름방학을 이용,1년에 18일씩 3년동안 치료끝에 소아마비를 고쳤다』면서세르게이의 다리를 가리켰다.18일동안 입원치료비용은 1백50만루블,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원정도.연금을 타는 노인이나 전상자들은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요양원 원장인 마리나 자이체바씨(48)는 『2차대전 때 무려 1만3천7백여명의 전상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받고 나갔다』면서 『현재 이 요양원을 종합병원으로 바꾸기 위해 폴란드와의 합작을 추진중에 있다』고 말했다. ○의료용 소금 개발 박차 이곳 이웃에 있는 소금콤비나트의 역사는 소금휴양지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3백25년전인 1670년.당시 동쪽으로 진출하던 코자크들은 앙가라강줄기를 따라 이르쿠츠크지역을 가다 시커먼 물이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목격했는 데 이 지역이 바로 현재의 소금콤비나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이곳은 현재 깊이 1천4백m되는 곳에 파이프를 넣어 소금물을 퍼올리는데 1ℓ당 3백g의 소금이 포함돼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순도 99.9%의 이곳 소금은 지난 7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최고 식품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현재는 링거 주사약등 의료용 소금을개발하고 있다.이 콤비나트의 산하기관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소금연구소는 바로 소금을 의약용으로 쓸 수 있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레오니드 니콜라예비치 사장은 『소금의 순도가 좋아 몽골·노르웨이등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면서 『연간 13만t의 소금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1백년간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매장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곳.서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는 일반 저수조 물탱크청소용과 가축 사료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인다고 그는 말했다.이 콤비나트도 한국으로부터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현재 있는 시설들이 모두 스탈린 시대의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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