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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14)한국생산성 본부

    ‘지자체 특산물 마케팅 방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자치단체 이벤트 기획 등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민간기업체 조직 컨설팅 및 직원교육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는 생산성본부의 새로운 시도다.국제통화기금(IMF) 한파 이후 지자체에도 경쟁력 제고와민간경영기법 도입이 강조되면서 새 교육시장으로 부각된 전국 300여개 지자체를 파고들려는 전략이다. 생산성본부는 이 교육을 전남 장성군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실시중이다.오는 6월말까지 500여명의 군청 직원을 12개팀으로 나눠 대전 삼성화재연수원에서 4일씩 순차적으로 진행중이다. 지자체 상품개발 및 마케팅 전략,지자체 이벤트 기획 실무,지자체 이벤트성공사례 등이 주된 내용이다. 생산성본부는 이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이벤트 기획,마케팅 등 전문 컨설턴트 5명을 강사로 기용했다. 강의는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사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이벤트 기획교육에선 장성군의 전통축제인 ‘홍길동 축제’를소재로 이벤트 성공기법이 다뤄지고 있다. 강의를 맡고 있는 이각규(李覺珪) 한국 지역문화 이벤트 연구소 소장은 자신이 직접 기획 총괄했던 ‘이천 도자기축제’ ‘금산 인삼축제’ 등의 사례별 문제점과 성공요인을 제시,수강 공무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6∼7명을 한 조로 자체 토론을 통한 문제점 및 대안찾기를 유도하는 참여형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소장은 “지역 이벤트가 과거엔 전통문화 고양,주민 화합 등을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관광수익이라는 경제적 목적이 부각되고 있다”며 “축제기간동안 지역경제 활성화 및 특산물 판매량,관광수익에 미치는 효과 등을 실제데이터를 제시하며 공무원들의 의식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특산물 마케팅 교육은 ‘물건만 좋으면 잘 팔린다’는 공무원들의 초보적 사고를 깨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장성의 경우 특산물은 고로쇠수액,단감,단풍,축령산 청정공기,비자,솔잎차등 다양하다.이들 특산물을 조별로 하나씩 주고 ▲환경분석 ▲마케팅 목표설정 ▲표적시장 선정 ▲경쟁자 분석▲총체적인 마케팅 전략 등 5단계 전략을 직접 작성하도록 한다.이어 전략안을 놓고 함께 토론을 벌여 취약점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다른 지자체들도 관심이 높다.전남 여수시와 장흥군,해남군,경남 진해시,대전 대덕구,강원도 인제군 등이 수강문의를 하고 있다. 안덕기(安悳基) 행정혁신팀장은 “현재 공무원 교육은 의식혁신이나 행정업무를 중심으로 한 직무교육이 주를 이뤄왔다”며 “지자체,특히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는 기초단체를 중심으로 마케팅 마인드를 불어넣는 전략을 구사할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13) 국가전문행정연수원 자치행정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국가전문 행정연수원(원장 吳馨煥) 산하 자치행정 연수부는 명실공히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들의 양성소라 할 수 있다.지난 65년 문을 연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이 그 전신이다. 자치행정 연수부는 연수원의 6개 연수부 가운데 직원이 71명으로 제일 많다.국가전문 행정연수원은 99년 1월 지방행정 연수원,교육행정 연수원 등 6개교육훈련 기관들이 통폐합돼 출범했다. 이 곳은 지방 공무원들 사이에서 시·도별 공무원 교육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번쯤 다녀보고 싶은 곳으로 통한다. 훌륭한 강사진에다 전국에서 모인 비슷한 직급의 공무원들과의 만남을 통해다양한 행정정보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강사진의 경우,김안제(金安濟)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달곤(李達坤) 지방행정연구원 원장,정세욱(鄭世旭)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등 쟁쟁한 교수들이 지도교수로 있다. 유상수(劉相秀) 교육총괄과장은 “시·도 공무원 교육원은 7급 이하 하위직공무원들을 주된 교육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국가전문행정연수원은 4∼6급 위주”라면서 “5급 이상 관리직들은 반드시 여기서 교육을 받고 간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여기서 교육받은 지방 공무원들은 65년부터 99년까지 모두 20만여명.올해의 경우,82개 과정에 9,573명이 교육받을 예정이다. 교육과정은 전체 82개 과정 가운데 75%인 62개 과정이 공통전문 및 선택 전문과정으로 짜여 있다.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과정은 6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중견간부양성과정.6개월 합숙교육 과정으로65년부터 운영되고 있다.추천을 통해 교육생을 모집하는 다른 과정과 달리 유일하게 시험을 봐 교육생을 선발한다.올해에도 교육 예정인원은 50명이나 72명이 응시,22명은 탈락될 지경이다. 유 과장은 “이 과정은 엘리트 공무원 양성과정으로 관선시대 시장·군수는물론 시·도지사도 많이 나왔을 정도로 지명도가 높다”고 설명했다.98년에이 과정을 수료한 대구시 기획관실 의회협력담당인 이현달(李鉉達)사무관도“강사진이 훌륭한데다 다양한 행정경험을 할 수 있어 매우유익했다”고 말했다. 인사·조직정책과정,21세기 비전 전략과정,정책개발·평가과정,지적관리자과정,사회복지전문요원 과정 등은 지자체가 개설을 요구한 것들로 올해 처음 개설됐다.지자체로서도 날로 늘어가는 다양한 행정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단순히 행정을 집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정책개발을 해야 하기때문이다. 이처럼 교육프로그램은 어느 곳보다 ‘교육생 제일주의’로 짜여 있다.지난 3월 15일부터 6개월짜리 신임관리자과정교육을 받고 있는 임승철(林承澈)지방고시 5기 합격생 대표는 “매달 연수부측과 교육생들이 합의해 세부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짜는 등 명실상부한 수요자중심 교육을 받고 있다”면서 “21세기 공무원문화는 우리가 창조한다는 자세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암사 선사주거지 관광코스로 개발

    서울 강동구(구청장 金忠環)가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서울의 대표적인관광명소로 가꿔나가고 있다. 지난 1925년 대홍수때 처음 발견된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최대의 집단취락지.당시 생활상이 그대로 재현돼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역사공부의 장이 되고 있다. 지난 95년 서울시로부터 선사주거지 관리권을 넘겨받은 강동구는 그동안 ‘도심에서 맛보는 원시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서울 동부의 대표적인 나들이코스로 개발해 왔다. 지난 1월 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제2전시관인 ‘원시생활전시관’을 세우고 한강유역의 신석기유적,한민족의 기원,신석기의 무덤 등 20개 테마별로유물과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특히 61인치 대형화면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영상체험실도 갖췄다. 또 지난 1일에는 ‘체험! 움집’을 주제로 움집과 실물크기의 인형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관람객이 원시생활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선사주거지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다방면으로 기울였다.지난 95년부터 선사주거지 정문앞 광장에서 ‘암사토요마당’을 개최,무용 연주 국악 등 각종공연을 통해 선사유적지를 알렸으며 97년 하반기부터는 이를 ‘금요예술마당’으로 바꿔 계속하고 있다.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성화의 채화도 유치,선사주거지를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알렸다. 또 지난 97년 말에는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하철 암사역∼선사주거지간 마을버스 노선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오는 8월에 개설되는 ‘한강 역사탐방로’와 9월부터 서울시가운영할 예정인 시티투어버스 ‘한강의 기적 코스’에 선사주거지를 포함시켜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강동구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학생들의 견학코스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 및 연인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24만명이 찾았으며 올해들어서만도 3월까지 5만6,000명이 입장,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의 신장세를 기록했다.올해부터는 입장료를 받기 시작,3월 말까지 1,703만원의 입장료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김충환구청장은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대한 종합적인 개발계획을 수립,인근의 길동생태공원과 연계한 관광코스로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시베리아 대탐방](16)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

    시속 100㎞는 되는 것 같았다.로만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손바닥처럼훤하다”고 자신했지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안되겠다 싶어 몇번이나‘안전운전’을 부탁했지만 허사였다.‘정식 렌터카를 빌릴 것을 괜히 돈 몇푼 아끼려다가 목숨을 거는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실제로 정면충돌하거나 뒤집힌 차들이 이따금씩 목격됐다.갑자기 숲에서 찻길로 뛰어드는 사슴 등 들짐승도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한다. 오전 7시 15분 드디어 목적지인 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에 무사히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동이 트지도 않았지만 시장은 벌써 가게를 열고 상품을 들여놓는 상인들로생동감이 넘쳤다. 정식명칭이 ‘우수리 쉔트르(센터)’인 우수리스크 중국인시장은 극동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민간시장이다. 중국인시장이란 별칭은 러시아 국경지역인 중국 지린(吉林)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인들이 중국산 물품을 들여와 장사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러시아 극동지역 공산품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만큼 ‘극동유통센터’로도 불린다. 지난 94년 건립된 이 시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의복이 가장 많다. 이와 함께 카페트,소파,가전제품,벽지,장판,건설재,조명기구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식품 가운데는 한때 러시아 전역을 휩쓸던 초코파이와 쌕쌕,봉봉같은 캔음료는 몇년전만큼 찾기가 쉽지 않았다.대신 최근에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고있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노점과 옥내점이 공존하는 구조였지만 간판이나 모습이 꼭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케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컨테이너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중국 지린성 무역발전협회 우수리스크 지점’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러시아에한번 들어오면 한달이상 머물러야 하는 중국상인들에게 싼 값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기숙사였다. 취재팀과 통역이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갑자기 “한국분이예요?”하며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가죽 의복 장사를 하는 조선족 양성학(梁成學·40)씨였다.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양씨는 “여기 상인 80%가 조선족”이라고 귀띔해줬다.그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가죽옷은 잘 안팔린다”며 “대신 한벌에 150루블 하는 T셔츠가 주력상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불이행) 선언 이후 러시아 국민소득이 급락하면서 이곳도 타격을 입었다. 옌벤(延邊)출신의 직물상인 신영호씨(43)는 “7달전 친구한테서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장사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신씨는 “그래도 얼마전 러시아 여성을 점원으로 고용한 뒤로는 말이 조금통해서 벌이가 나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단층 옥내점인 하얼빈 상품판매점에서는 TV 장식대에 ‘유즈나야 코레아(남한) 80달러’란 꼬리표가 붙여져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왠지 허술해 보이기도 해서 “정말 한국산이냐”고 캐물었더니 한족 점원은 “사실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털어놓은 뒤 “잘 팔릴까 해서 그렇게 썼다”며 겸연쩍어했다. 5년전부터 하얼빈 상품점에 근무했다는 조선족 김모씨(43세)는 “지금은 불경기지만 지난 93∼95년 여기서 큰 돈을 번 조선족들도 많았다”며 “중국에서도 못 본 물건이 여기는 있을 정도로 구색이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시장의 연혁과 앞으로의 계획등을 취재하기 위해 시장 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관리인격인 제 1부소장이 발레리 쉐크,우리 성(性)으로 서(徐)씨인 고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서 부소장은 다소 서툴지만 분명한 우리말로 “나도 고려인입니다”라고 밝혔다.우수리 시장은 상인도 조선족,관리인도 고려인이었다. 결국 중국인 시장이 아니라 한국인 시장인 셈이다. 서씨는 “현재 이곳의 정식 등록상인은 750명이지만 여름에는 1,500여명까지 늘어난다”면서 “지금도 주말이 되면 러시아 상인까지 들어와 상인 수는 90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점의 경우,상인과 손님 모두가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고생이심하다”며 “곧 건물을 신축해 시장을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중 국경무역의 상징인 우수리시장은 우리에게도 기회의 장(場)이다.중국 현지공장에서 값 싸게 생산한 물품이라면 이곳을 통해 극동 러시아의교두보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oosing@. * 고려인학과장 한국어 완벽 구사.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극동 러시아의 양대축인하바로프스크에도 한국어는 낯설지 않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는 아무런 현판도 붙어있지 않아취재반이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한국어학과가 있는 2층 복도에 들어서니 고려인인 임 발렌치나 한국어학과장이 취재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반은 그녀의 완벽한 우리말에 잠시 놀랐다.북한식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단어 선택과 문장 표현이 완벽에 가까왔다.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다닌 덕택이었다.그녀의 부모는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의 한국어학과 재학생은 1학년 18명,2학년 19명 등 5개학년(러시아대학은 5년제)에 걸쳐 모두 69명이다. 한 학년 재학생이 평균 14명으로 사범대에서 학생수가 가장 적다. 사범대에서 인기가 최고로 좋은 학과는 일본어과.한 학년 재학생이 35명수준이다. 임 교수는 “한국의 IMF사태로 최근 졸업생들이 한국어를 활용할 수 있는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경제난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있지만,일부에서는자동차나 가전제품같은 물건은 계속 갖다 팔면서 사무실은 철수하느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취재반은 1,2학년생들의 수업을 지켜봤다. 대부분 고려인이겠거니 하던 취재팀의 예상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여지없이 깨졌다. 슬라브족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고려인처럼 보여 말을 건네보면 절반은 야쿠트족이었다. 임교수는 “69명중 고려인은 23명뿐”이라고 말했다.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도착하기 앞서 들렀던 하바로프스크 한국어교육원(교육부 산하기관)의 석윤균(石允均)원장도 “교육생 대부분이 슬라브족”이라고 말했다.이제 우리말도 국제화됐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리말 실력은 저학년임을 감안해도 기대 이하였다. 국민학교 수준의 교과서였지만 제대로 읽는 학생들이 없었다.임교수는 “교수들도 한국에 유학해보지도 못하고 교단에 서니 학생들 실력이 이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1학년 수업중이던 올가 비예트로스카야 교수는 “지난 97년 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바로 교단에 섰다”고 실토했다.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2학년인 김 나타샤는 “한국어를 쓸 수 있는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 김명국기자.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12)철도경영연수원

    철도경영연수원(원장 安榮浩)은 국내 공·사립 연수기관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연수원이다. 구한말인 1905년 철도리원(吏員)양성소로 출발한 철도경영연수원은 지난 95년간 ‘중앙교통종사원양성소’ ‘교통공무원 교습소’ ‘철도공무원교육원’ 등 이름이 몇차례 바뀐 끝에 96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서울 용산의 옛 철도고등학교 자리에서 철도박물관과 철도대학이 있는 현재위치인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으로 옮긴 것이 86년. 역사는 오래됐지만 교육프로그램이나 시설은 최첨단이다.실제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고속철 기관차 운전시뮬레이션에서부터 민간기업을 빰치는 서비스 교육시스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는 2003년 경부고속철(서울∼대전구간) 개통을 앞두고 있는 데다 항공기나 고속버스 등 민간 부문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경영연수원의 교육은 서비스 향상과 기술 숙련을 통한 안전성 확보에초점이 맞춰져 있다.특히 서비스의 경우 항공기 수준을 능가하는 서비스를제공한다는 방침 아래 98년 연수원에 별도로 서비스아카데미를 설치했다. 4박5일 동안 실시되는 이 서비스 교육은 승객에 대한 인사법에서부터 객실내 서비스 요령에 이르기까지 열차 객실과 똑같이 꾸며진 교육환경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등 철저하기로 이름이 높다. 이같은 서비스 교육이 회자되면서 지난해에는 강사진이 청와대 초청을 받아출강하는 등 지금까지 15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출장 서비스 교육을했다. 행정연수부 전성무(田成茂)부장은 “서비스아카데미 입소때는 쉬는 기분으로 왔다가 나갈 때는 교육에 감동돼 울면서 나간다”며 “이곳을 거치면 서비스 전사가 된다”고 말했다. 기술교육 부문에서는 고속철 개통이 4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기존 열차관련 운행이나 보수 등의 교육프로그램 외에 올해부터 고속철 교육프로그램을 새롭게 추가,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오는 2003년까지 교육 예상인원은 기관사 240명을 포함,3,300여명에 이른다. 안전이 생명인 만큼 교육은 철저하다 못해 혹독하기까지 하다.속도에 따른열차 진동이나 기울기를 실제 상황과 똑같이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실에서 기관사가 조작하는 동안 교수진은 밖에서 끊임없이 돌발상황을 입력시킨다. 기관사는 상황변화에 맞춰 열차를 조작해야 하고 이는 곧바로 컴퓨터를 통해 점수화돼 실시간대로 교수진에 전달된다.점수가 나쁘면 질책과 함께 재교육이 이루어진다. 안영수 연수원장은 “젝 웰치회장이 크로톤빌 연수원을 통해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인재를 양성했듯 철도경영연수원도 앞으로 크로톤빌처럼 육성해나가겠다”며 “내실 있는 교육을 통해 철도서비스를 향상시키고 고속철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철도경영연수원은 교육 성과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94년과 지난해 공무원교육훈련 종합평가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97년에는 교육훈련연구발전대회에서 학사관리 전산시스템 개발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10)국방대학교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연합군은 군사작전을 펴는 독일에 맞서 경제봉쇄조치를 하는 심리전을 편 뒤 전세는 연합군으로 기울었다. 군사전문가들은 1차대전을 전쟁이 군사작전 이외의 요인으로 승패가 결정된 첫 사례로 꼽는다.전쟁이 군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사회지도층과 전국민이동참해 협조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1930년대 들어 서방국가들은 국방대학(또는 산업대학)을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교육대상은 ‘총력전론(總力戰論)’에 따라 고급 장교는 물론이고 고급 공무원·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했다.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투는 군인이,전쟁은 국민이 하는 총력전 양상이 어김없이 펼쳐졌다. 우리나라도 서방국가들처럼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에 국방대학을 세웠다. 국방대학은 국방대학원으로 바뀐 뒤 올해 1월 국방개혁 차원에서 국방참모대학(90년 설립),국방정신교육원(77년 〃)과 함께 국방대학교로 통합됐다. 육사 24기인 김희상(金熙相) 육군 중장이 초대 총장을 맡고 있는 국방대학교(국방대학원+참모대학+정신교육원)가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1만여명.과거 국방대학원 코스에선 대령 이상 고급 장교와 중앙부처 국장·공공단체 간부·경무관·교도소장·언론사 간부 등 150여명이 1년 동안 국가안보교육을받고 배출돼 왔다.그밖에 참모대학 코스와 정신교육원 배출자도 적지 않다. 교육내용은 예를 들면 서해안에서 교전이 벌어졌을 때를 가상해 범국가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한 부처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공무원·군인들이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사고와 행동요령을 훈련받는 것이다.까닭에 국방대학교는 단순한 군사학교가 아니라 국가안보 종합대학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김희상 총장은 설명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서로 입교하려고 경쟁할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졸업식에 반드시 참석해 졸업생들의 보직을 일일이 챙겼던 것으로 알려진다.“장군이 되려면 국방대학교를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에서의 국방대학교 인기는 여전하다고한다. 공무원들은 간부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말한다.지난 한해 동안 교육을 받은 정부중앙청사의 A국장은 “30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만일해왔는데 입교후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다”며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야를 넓히고 상대부처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말했다. 총력안보를 내세우는 국방대학교의 문은 민간과 외국인에게도 열려있다.올해에는 민간기업체 간부가 처음으로 동참했고,앞으로 민간인의 참여는 확대될 전망이다.일본의 자위대 대좌(대령)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해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물론 민감한안보사항 교육이 있을 때 그는 잠시 교육에서 제외됐다. 국방대학교는 통합된 뒤 올해초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와 학점을 서로인정하는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최고의 국가안보 종합대학으로서 새로운도약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 [시베리아 대탐방](7)블라디보스토크 국립 극동대 한국학대학

    [블라디보스토크 특별취재반] 외국에 한국관련 학과들만 모은 단과대학이있을까.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학 단과대학이 바로 냉전시대 우리의 오랜 적대국이었던 러시아,그것도 군항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 극동대에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23일 취재팀은 극동대 한국학 대학을 방문했다.한국학대학은극동대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빅토르 코제미아코 부학장이 유창한 우리말로 취재팀을 반겼다.그는 자신이 이 대학 출신이며 춘천 한림대에 교환교수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다.95년에는 북한을 방문,평양과 원산,남포,나진,금강산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대와 한국학의 인연은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899년 극동대 동양대 한국어학과로 출발했으나 30년대 스탈린의 소수민족 억압정책으로 동양대학은 폐쇄되고 직원 일부는 숙청됐다.75년 한국어학과가 다시 생겨나 5명의 학생을 모집했다.부학장도 이 때 입학했다.이후 94년 한국어문학과와 한국역사학과,한국경제학과 등 3개학과로 지금의 틀을 갖춘한국학부가발족했고 95년에는 한국학대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학대학에는 현재 250명이 수학하고 있으며 매년 50∼60명의 신입생을뽑는다.어학실습실에는 한국 위성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단과대 부설 도서관에는 7,000여권의 한국어 교재가 잘 정리돼 있었다.하바로브스크나 사할린의 사범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한국어 교재도 바로 이곳 극동대 한국학대학에서 만든 것이다. 한국학대학에는 태권도 전용 연습장도 설치돼 있다.경희대 출신의 한국인사범이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면서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또 한국 전통춤 동아리에도 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인터넷실은 특히 눈에 들어왔다.러시아에서 이처럼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수 있는 곳이 몇군데 되지 않기때문이다.학생들은 삼성전자에서 기증한 PC로한국의 주요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한국어 실력과 한국에 대한 지식을 쌓고있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로만 메신그씨도 2년전에 이 대학 한국경제학과를졸업,학교를 떠났지만 바로 이 인터넷 때문에 학교에드나들고 있었다.그는98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고려대 어학당에서 6개월 공부한 뒤다시 6개월 동안 서울의 러시아전문 바이칼 여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우리말을 스승인 부학장보다 잘하는 듯 보였다. 한국학대학의 또 다른 특징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밀도있게 가르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학생들은 졸업후 영어통역으로도 활동할수 있을 정도다. 부학장은 “학생들이 졸업한 뒤 봉급수준이 낮은 교수가 되기보다는 한국등 외국의 회사나 외교공관에 취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러나 “한국기업들이 IMF사태를 겪으면서 러시아내 지사를 속속 철수하고 있어 학생들의진로가 다소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학대학의 교수진은 모두 20명.이 가운데 경기대 김정오 교수 등 3명은한국에서 온 교환교수다.부학장은 그러나 “한국교수들이 이쪽으로 더 많이파견왔으면 한다”며 “회화를 가르칠 수 있는 3명 정도의 한국인 교수가 더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현재 극동대 한국학대학은 두가지 장기 과제를추진하고 있다.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한국어 관련 자료를 수집,보관,열람할 수 있는조직인 ‘한국어 은행’의 설치를 추진중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뱅크오브 잉글리쉬(Bank of English)’를 모델로 삼고 있다.이와함께 ‘한국 현대사 연구소’의 설립도 검토중이다.아울러 이 대학 교수들은 이미 한국어-한자-영어-러시아어 등 4개국어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전자 사전’편찬작업에 들어가 이미 상당부분 완성했다. 부학장은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학을 연구하기 가장 좋은 지리적 이점을갖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이 대학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김명국기자 oosing@. * 우수리스크 극동 최대 고려인촌. [우수리스크 특별취재반] 우수리스크는 극동지역에서도 고려인(까레이스키·한국출신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약 1만3,000명의 고려인이거주하고 있다. 우수리스크에 고려인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생활고를 겪던 한반도 북부의 주민들이 1862년부터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 춥지 않아 농사 짓기도 괜찮은데다 중국과 가까워 장사하기도 좋았기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의 주택협회와 새마을운동중앙본부,고합그룹이 인근에 농장을 갖고 있다. 현재 우수리스크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출신이 95%,사할린 출신이 5%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마을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사라졌다가 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복구됐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의 이 로베르트 아나톨리비예치 회장은 “스탈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인지 예전에는 고려인임을 나타내기를 싫어했다”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야 고려인 단체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모국을 잊어버릴만한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아직도 모국의 끈을 놓지 않고있다. 한글학교를 세워 고려인 3,4세들에게 한글과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도 꼭 지킨다. 한글학교 김문자 부회장은 “명절 전날 가족들이 모여 유쾌하게 어울리지만젊은이들은 잘 모이지 않는다”며 “이들은 조국을 다 잊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수리스크에는 또 연해주재생기금이란 고려인단체도 있다.고합그룹이 후원하는 이 단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주를 돕고 있다.요즘도 중앙아시아고려인 3,000여명이 여름내 이곳 농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겨울에 돌아가곤한다.북한인들도 연해주재생기금의 초청을 받아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 취재팀은 평양출신 북한 외화벌이꾼 신상현(40)씨와 려국현(36)씨를 만났다. 신씨는 “지난 5월 10명이 입국해 두명은 여기서,나머지는 이곳 산하 농장서일하고 있다”며 “1만달러를 벌러 왔는데 잘 안된다”고 걱정했다. 그들은 취재진과의 대화나 사진촬영에도 자연스레 응했다.하지만 “아무뜻없이 점심식사나 대접하겠다”는 취재팀의 제의에는 “할 일이 많다”며 황망히 자리를 떴다.
  • 서울·인천·충북·강원 청소년, 한강 뱃길 700리 탐사

    수도권 5개 시·도 청소년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한강 뱃길 700리를 따라 문화유적 답사 및 자연생태계 조사활동을 벌인다. 강원도는 서울·인천시와 경기·충북·강원도 등 5개 시·도 청소년 각 40명씩 모두 200명이 참가해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6일간 발원지인 태백검룡소에서 강화도에 이르는 한강유역 514㎞에 대한 ‘청소년 한강문화역사탐방’에 나선다고 28일 밝혔다. 강원도의 제안에 따라 수도권 5개 시·도행정협의회에서 채택된 이번 탐방에서 참가자들은 태백 검용소를 출발,석탄박물관 견학과 동강래프팅,장릉탐방 등 강원도내 한강변 주요 명소를 둘러보고 충북의 고수동굴·탄금대,경기도의 신륵사,서울의 아차산성,인천의 마니산 등을 둘러본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9)감사교육원

    경기도 파주시 운봉산 기슭에 위치한 감사교육원은 전문적·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깨끗한 주변환경과 교육,교류,여가생활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부대시설로 유명하다. 감사교육원을 설명할 때 종종 ‘세가지가 맑은 곳’이라는 표현을 쓴다.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가 맑고,낚시터가 있는 저수지의 물이 맑고,수려한 주변경관을 보며 마음이 맑아진다는 뜻이다. 주변환경과 함께 감사교육원의 자랑거리로 꼽히는 것은 교육과 교류,휴식이함께하는 교육원 부대시설이다.지난해 개방된 감사교육원 새 청사는 초현대식 건물로 민간에 개방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당구장,탁구장,미니축구장,테니스코트부터 오락실,노래방,헬스클럽까지 여가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주위에 유원지,놀이공원 등이 있어도 교육생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대규모 세미나를 위해 만들어진 대강당과 강의실,도서실,전산실 등이 갖춰져 있다.9개의 분임토의실에는 방마다 다른 디자인의 탁자와 의자들이 배치돼 있다.‘똑같은 환경에서는 창의적인생각이 나올 수 없다’는 담당자의아이디어였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공기관,공적단체,일반기업체 등에 시설의 이용을개방했다.지난 2월에는 한국중소기업학회 세미나가 열렸고,오는 8월에는 한국정책분석학회 등의 세미나가 예정돼 있다. ‘창과 방패를 모두 제조하는 곳.’이 감사교육원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다.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등을 감사하는 예리한 창 역할을 하는 감사원 직원들을 교육하고,그들의 창끝을 막아내기 위해 철저한 업무를 수행하는 방패역할의 피감기관의 자체감사인력 등을 교육한다는 뜻이다. 한해 4,000여명에 이르는 교육생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교수진을 4명에서 12명으로 늘렸다.새로 충원된 8명이 실무감사를 담당하고 있는 부감사관들이다.이론교육만으로는 완벽한 감사인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실무경험을 가진 직원들을 교수로 채용했다. 감사계획 수립·보고 및 처리과정이나 야간 교육프로그램을 새로 개설하는등 교육과목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특히 올해에는 지방재정 건전화 원년의 해를 맞아 회계감사를 강화하고 있다.공공·회계감사의 최일선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남정수(南政秀) 교육원장은 “교육원은 전문적인 교육과 함께 업무를 떠나자기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첨단의 교육시설과 쾌적한 환경은 내실있는 교육의 기초가 된다”고 강조했다. 최여경기자 kid@
  • [시베리아 대탐방](14)북한서 파견된 외화벌이꾼 실상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간부 ××들은 밤 늦도록 러시아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며 ‘재미’를 보지만 우리 건설 노무자들은 돈이 없어 담배 한대도 제대로 사 피우기 어려운 실정입니다”톰스크에서 만난 북한 평성 출신이라고 밝힌 외화벌이꾼 윤종식(尹鐘植·가명·43)씨가 불만을 터뜨리며 털어놓는 말이다. 노보시비르스크·옴스크·톰스크 등 서부 시베리아지역의 주요 도시에 가면북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공식적으로 파견한 외화벌이꾼들이다. 현재 러시아 전역에 파견된 외화벌이꾼은 모두 1만여명에 가까운 것으로 러시아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이들은 벌목공(7,000여명)과 해삼·미역을 채취하는 어부(1,500여명)가 대부분이다.미장·목수일을 하는 건설 노무자(400여명),농대 출신의 농업기술자(300여명),이들을 몰래 감시하는 보위부 파견 요원 (300여명),북한 고서화(古書畵) 판매일꾼(30여명) 들도 있다. 특히 벌목공들은 97년 후반 러시아 집단망명설이 나돌면서 2만3,000여명가운데 거개가 소환되고 30% 수준만 남아 있다. 서부 시베리아지역에 파견된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대략 400∼500명.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시에만도 건설 노무자 200여명이 시내 중심가 건물을 전세내 합숙생활을 하고 있는 등 외화벌이꾼 3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러시아 상점에 위탁해 북한 고서화를 내다파는 고서화 판매일꾼도 10여명있다. 옴스크에서 만난 벌목공 출신의 탈북자 한태민(韓泰民·가명·47)씨는 “북한 벌목공을 관리하는 사무실은 하바로프스크 시내 동쪽 화력발전소 옆 적색벽돌 3층건물”이라며 “처음에는 임업대표부라는 간판이 붙어있었으나 최근들어 떼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들 벌목공은 주로 하바로프스크 구역의 체크도민과 연해주 스베트라야 2곳에 나뉘어져 벌목일을 하고 있다.벌목하는 시기는 초겨울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말까지이다.비수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3명이 1개조(1명은 감시요원)로 팀을 이뤄 인근 도시로 나가 건설 및 농업 일꾼 등으로 일하며 돈을 번다. 한씨는“95년 중반까지만 해도 벌목공들이 벌목할 수 없는 때를 이용해 러시아 당국의 허락을 받아 옥수수·감자·콩 등을 재배해 북한에 가져 갔다”며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농업생산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품팔이에 나서고있다”고 덧붙인다. “1개조가 10시간동안 고되게 일하고 받은 돈중 하루에 250루블(약 10달러)을 국가에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물론 남는 돈도 없지만 설사 돈이 있더라도 쓸 수가 없습니다.돈이 있는 것을 간부들이 눈치채면 ‘너 그 돈이어디서 났느냐’며 심하게 추궁당하기 때문입니다”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청진 출신의 건설 노무자 김영철(金榮徹·가명·36)씨는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덕분에 돈이 없어도 속이 편하다”며 “밤에 눈을 감으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하루라도 빨리북한으로 가고 싶지만,돈을 벌지 못한 탓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귀국일자가 자꾸 미뤄진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탈북하는 외화벌이꾼들도 늘어나고 있다.카레이스키(고려인) 3세인 진(陳)모씨(47)는 “최근 러시아경찰로부터 외화벌이꾼 10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탈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러시아 당국은 이들중 2명을 붙잡아 북한에 연락,송환하려 했으나 북한 당국이 이들의 체류비용을 물지 못해지금도 러시아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물들지 않도록 주말을 이용,정치학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에서 파견된 정영길(丁永吉·가명) 목사는 “외화벌이꾼들은 주말이나 작업하기 곤란한 비오는 날 등에 외출을 못하게 하고정치학습을 시키며 잠시도 놀 틈을 주지 않는다”며 “이들을 만나면 정치학습보다 차라리 일하는 게 더 편하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고 귀띔한다.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하다보니 여러가지 크고작은 문제를일으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힘이 센 보위부 요원들은 가짜달러를 유통시키거나 사향·웅담·녹용 등을 밀거래하는 반면 힘없는 외화벌이꾼들은 개를 잡아먹거나 물건을 훔치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고려인 홍(洪)모씨(32)는 “북한 건설 노무자들이묵고 있는 합숙소 부근에서 러시아 개들이 자꾸 없어지는 바람에 지금 그곳에서는 개를 찾아 볼 수 없다”며 “북한 노무자들이 잡아 먹은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인들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는 등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일러준다. 반면 외화벌이꾼들이 애써 번 돈을 수금해가는 요원들은 오히려 러시아 범죄조직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이들은 한번에 수만∼수백만달러나 되는 많은 돈을 받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에서 숨어 있던 마피아 조직들이 이 돈을 강탈해간 적이 여러번 있다는 것이다. khkim@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이곳의 탈북자들.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생활….북한에서 탈출한 정용국(鄭容國·가명·55)씨와 이연수(李秊洙·가명·31)씨는 북한 탈북자 납치조에 붙잡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서부 시베리아 지역을 전전하고 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곳에서는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데다 돈을 조금 벌 수 있어 북한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이별로 없습니다” 벌목공 출신의 정씨는 주택 내부공사를 맡아 6개월 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며 미장일에서부터 도배일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낸다.그는 “북한에 아내와아들 둘을 두고 있다”며 “5년째 이 일을 하면서 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돈을 조금 모을 정도로 벌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1993년 극동 시베리아지역 벌목공으로 온 그는 94년 여름 벌목 일이 적을때 블라디보스토크로 돈벌러 나갔다가 벌어온 돈이 적자 간부들이 ‘돈을 떼먹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북한에 송환됐다.송환 도중 북한에 가면 죽을것같아 족쇄를 찬 채 열차 화장실을 통해 탈출,그곳에서 3,000∼4,000㎞ 이상 떨어진 서부 시베리아로 잠입했다. “최근 친구로부터 아내는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었으며,두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한국에 가고 싶지만 한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갈 수 없습니다”통일이 되면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는 정씨는 어느새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탈북자 이씨도 벌목공 출신.북한 건설대학을 졸업한 그는 나무 베는 일이싫은 데다 번 돈마저 북한에 들어가지 않고 간부들이 횡령하는데 불만을 품고 탈출했다.“형이 먼저 북한에서 도망와 현재 러시아 어디에서 마피아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만나지는 못했습니다”탈출 당시 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의 일을 거들어온 이씨는 1년동안 기거하면서 일해서 번 돈을 헌금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다투고 나왔다.교회를나온 후 그는 “러시아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카자흐스탄 여자와연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며 “한국 친척으로부터 받은 800달러(약 96만원)로 길거리에 옷좌판을 벌여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전한다. “서부 시베리아지역에는 50여명의 탈북자들이 붙잡힐 것을 걱정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곳에 파견된 탈북 납치조들을만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이씨는 러시아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덕분에생활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굳이 한국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다만 북한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데 일조(一助)하고 돈을 벌어 고향의 땅을 사서 개발하는 게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8)법무연수원

    법무연수원(원장 李泰昌)은 신임 검사 교육부터 공안·강력 등 전문교육,관리자 교육 등 과목이 다양하다. 법무연수원은 그러나 이같은 실무교육보다 소양교육을 우선시한다.검찰직이 다른 직렬보다 소명의식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법무연수원은 지난해 개원 이래 가장 큰 고비를 맞았었다.대전 법조비리를 비롯해 옷로비,파업 유도사건 등은 검찰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법무연수원은 이 때문에 모든 교육과정에 검찰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연수원에 입소한 검사와 일반 직원들은 선배들의 잘못된관행과 자기반성,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에 이르기까지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토로한다.뚜렷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이같은 과정을 통해 소명의식이 명확해지고 동질감이 회복된다.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도 취임 뒤 지금까지 10여 차례 법무연수원을 방문해 교육대상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지난해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7,000여명의 검사 및 일반 직원들 중 95% 이상이 ‘교육이 유용했다’고 답한것은바로 허심탄회한 토론을 중시하는 소양교육 때문이다. 법무연수원은 지난 51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교정직 공무원 교육을위한 형무관학교로 출발했다.62년 교도관학교로 이름을 바꾼 뒤,72년에는 조직과 기구를 확대해 법무연수원으로 재출발했다.88년에는 늘어나는 교육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법화산 자락으로 옮겼다. 법무연수원의 교육대상은 크게 검사와 검찰 일반직 교육으로 나뉜다.검사교육은 신임 검사 교육,공안·경제·강력·환경보건 등의 전문교육,관리자교육과 세미나 등으로 세분된다.검사 교육 가운데 전문교육과 세미나는 ‘검사가 만들어진다’는 표현이 가능할 만큼 깊이가 있고 전문적이다.전국 특수부 검사들은 전문교육을 통해 수표 추적 방법,회계장부 분석법 등을 익힌다. 주요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도 참석해 자신의 경험에 이론을 접목시킨다. 법무연수원은 지난해 공무원 교육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사이버교육을 실시했다.일선 지검·지청의 인력난 때문에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대상자들을위해 자신의 근무지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지난해 일반직 80여명이 이 방법으로 서무실무반,교무실무반 교육을 받았으며,1,200만원의 예산이 절감됐다.올해는 사이버교육 과목에 행정실무반을 추가하고 대상자도 600명으로 늘렸다. 법무연수원 조정환(曺正煥) 기획과장은 “내실있는 교육을 위해 모든 교육을 정보화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면서 “교육대상자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세분화 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자랑스런 공무원]공원관리 내장산지소 정장훈과장

    환경친화적 공원관리 모델 제시 지역 문화자원과 연계해 환경 친화적인 기법으로 공원 관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공무원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내장산 남부지소 관리과장 정장훈(鄭長勳·42·3급·사진)씨가 그 주인공.그는 96년부터 3년6개월 동안 전남 완도에 있는 국립공원다도해해상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먼저 공원구역인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九階登) 일대(730,000㎡)에 산재한갯돌과 식물 군락지를 활용,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곳은 수려한 바다 경관과 갯돌,온·난대 수종이 섞여 있는 특이한 식생군락지로 국가 지정 명승지 3호로 지정된 곳.특히 반질반질하고 새까만 갯돌 수천개가 경사지를 따라 아홉 계단으로 형성된 구계등(길이 800m·폭 50m)은 이색적이다. 그 동안 관리 소홀로 갯돌 밀반출,수목 고사 등으로 훼손 정도가 심각했다. 그러나 정 과장은 “해양과 산림 생태로 나눠 관광객이 피부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띠라 구계등 등의 생성 연대와 유래 등을해설판 10여개에 적어 곳곳에 세웠다. 뒤편에 자리한 수목은 희귀 상록수림(233종)의 보고.그래서 수령 400년 된방풍림 사이사이로 자연학습 관찰로(2.5㎞)를 조성했다.상록과 낙엽 활엽수100여그루에 이름표도 달았다. 또한 지금껏 단체 관람객 3,000여명을 직접 안내하며 구경하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지난해에는 ‘테마가 있는 숲,정도리 이야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에게 생태학습을 지도했다.덕분에 그는 완도군 교육청이 위촉한 현장 명예교사다. 특히 지난해 3월 인근에 종묘 배양장과 민속 어촌전시관을 연계 프로그램으로 개발,볼거리를 늘렸다.여기서는 광어와 농어 등 어류생태와 김과 어패류,어구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또 두달 가량 발품을 팔며 군청과 경찰서 등을 설득,지난해 7월1일부터 정도리 탐방객들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다.7∼8월 두달 동안 3만1,094명이 입장,2,867만7,200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곳을 다녀가는 탐방객은 일년이면 줄잡아 10만여명.어른(1,000원) 기준으로 입장료만 연간 7,000여만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정과장은 89년 5급으로 출발,지리산과 전북 남원,충남 태안 해안관리사무소 등을 거치면서 식생 분포와 수목 관리 등에서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구계등 일대는 2010년 세계 박람회 순례단의 방문지로 확정됐다”며“‘갯돌 되가져 오기’ 등 정도리 복원운동에 다같이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7)통일교육원

    北생활 가상공간서 체험한다‘피교육자는 항상 졸립다’는 말은 오래된 속설이다.사실 오랫동안 주입식강의를 듣는 일은 누구에게나 얼마간 따분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딱딱한 정부 교육기관의 강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통일부의 통일교육원이 올 들어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강의 기법상의 큰 변화를 꾀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최병보(崔炳輔)통일교육원장은 “‘생동감 있고 흥미있는 교육방법 도입’을 교육원의 올해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다”고 귀띔했다.교육의 실효성을높이기 위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북한 영화나 노동신문 등 북한 원전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갑갑한 강의실에서 벗어나 현장학습도 강화할 참이다.오두산 통일전망대나판문점,안성의 탈북자정착지원사무소(일명 하나원)등은 더 없이 좋은 학습장이다. 강의도 구태의연한 일방통행식과 다른 다양한 방식을 가미할 예정이다.탈북주민이나 방북 경험자와의 대화시간을 확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강의방식도 컴퓨터를 활용하는 등 정보화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있다.권영경(權英卿)교수 등 컴퓨터에 익숙한 일부 교수들은 프리젠테이션 전문 소프트웨어인 ‘파워포인트’ 프로그램까지 활용하고 있다. 통일교육원은 99년 두 차례의 조직개편으로 제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겪었다.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관리직은 물론물론 교수 요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감량을 감수해야 했다.98년 3부7과 119명이었던 조직이 현재 2부5과 61명(교수 9명)으로 줄어들었다. 통일교육원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우선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따라 기업인이나 금강산관광객 등 방북자 교육을 전담하는 단기적 과제다.다른 하나는정부 각 부처의 통일 대비 요원 양성 및 일반인과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한통일교육지원센터로서의 역할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예산은 우리의 통일교육원에 해당하는 서독의 연방정치교육센터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독일 통일주재관을 지낸 김영탁(金泳卓)지원관리과장은 “통일 후 내독성(통일부)은 없어졌지만 연방정치교육센터는동서독 주민간 갈등 해소 등 통일 후유증 치유에 아직도 엄청난 역할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같은 조직 슬림화에 따른 어려움을 ‘사이버교육’등 정보화로극복하려 하고 있다.즉 ‘사이버통일교육센터’를 구축,“전국민을 대상으로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종합적 통일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 원장)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통일·북한문제 정보검색 포탈서비스 등 정보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중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세대의 취향에 맞춰 가상공간을 통한 북한 체험 등 이벤트 위주의 콘텐츠를 개발해 제공할 방침이다. 구본영기자 kby7@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6) 정보통신교육원

    일상적인 편지 배달만을 생각하고 최근 우체국을 찾은 박모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인터넷,디지털,전자상거래….디지털혁명의 한 가운데 우체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우체국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우체국이 아니다.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혁명을 주도하는 정보화의 첨병(尖兵)역할을 하고 있다.정보통신부의 핵심영역인 우정업무는 이제 완전히 정보화됐다.그 주역은 단연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www.icoti.go.kr)이다. 교육원은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긴 공무원 교육기관이다.구한말 우정 역사가 시작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충남 천안시 유량동 태조산 기슭에 위치한 교육원에서 고리타분한‘옛그림자’는 찾기 어렵다.정보화의 첨병을 양성하는 보루답게 최첨단 기자재들로 넘쳐난다.6개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300여 좌석의 컨벤션룸까지갖추고 있어 웬만한 컨벤션센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교육원이 서울 용산구 원효로 옛 둥지의 70여년 세월을 마감하고 천안 신청사로 옮겨온 것은 지난해 5월.동시에 800명이 합숙,교육할 수 있는 시설을갖추고 있는 천안교육원을 거쳐간 정보통신부 공무원은 지난해만 모두 1만여명이 넘는다.올해는 다른 부처 공직자와 일반인 4,500여명을 포함,모두 1만9,000여명에 대해 살아 있는 정보화교육과 함께 우편,금융,정보통신,전파 등정보통신 업무의 전문성을 심화시키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4만여명의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에게 있어서 교육원은 공직생활중 숱하게 드나들어 친숙할 수밖에 없는 ‘필수코스’ 가운데 하나다.특히 간부가 되기위해서는 우정,금융,경영,정보통신(정보화,전파) 등 4개 분야를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최소한 4주 이상을 교육원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원의 정보화교육은 다른 교육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치밀하게 이뤄진다.모든 교육생이 PC를 접하도록 야간 전산실습 시간을 편성해 집중교육을 시키는가 하면,3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에대처할 수 있도록 ‘디지털 포스트’ 과정을 개설해 운영중이다.정보화교육과정이 우수하기 때문에 1주 동안의 합숙교육이 끝난 뒤 정보검색사 자격증을100% 취득한다.정통부 간부진들이 ‘서류없는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원은 정보화교육의 산실답게 최근들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이른바 ‘원격교육’이다.직접 교육원에 오지 않고 근무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교육을 받는 사이버 원격교육을 올 7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공무원 교육기관 가운데는 최초의 시도다. 구영보(具永甫)교육원장은 “인터넷,디지털 등과 관련,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일정시간을 정해 교육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면서 “2∼3년내 원격교육의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안 박홍환기자 stinger@
  • [시베리아 대탐방](13)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고려인(카레이스키)들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른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간난(艱難)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이겨내고 제법 여유있는 생활을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가에위치한 한국 음식점 오아시스는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이곳에 들어가면 건설업체 KPP를 경영하고 있는 김우광(金佑光) 사장(66) 등 고려인 1∼3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봉용 고려인 문화관장(53)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들은 기후와토양이 다른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하기까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사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구한말(舊韓末)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해주로,1937년 스탈린의 추방정책으로 다시 연해주에서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고려인들의 유랑은 지난 1863년부터 시작됐다. 피폐한 한반도에서 굶주림을 못이겨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초기 고려인들은 순탄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1919년 3·1운동 후 월경자가급격히 늘어나자 옛 소련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다. 당시에는 연해주 18만여명의 고려인들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만족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잡자마자 불행하게도 비극이 찾아왔다.스탈린이 연해주고려인들을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1937년 9월9일. 1937년 8월21일 공산당 중앙위 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서명한 ‘극비 문서 1428326’에서 비롯된 강제 이주의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의 공모,또는 스파이 혐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스탈린이 자행한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이날 느닷없이 날아든 소련당국의통지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하나둘 모여들었다.일부 가재도구만 챙긴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시베리아 열차속에 짐짝처럼 부려졌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들의 앞날에는 척박한 시베리아의 황무지가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37년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해였습니다.할아버지는 19세기말 연해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말을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종적도 모르는 곳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고려인 1세인 이학로씨(가명·77)가 털어놓은 비극적인 삶의 고백이다.고려인들은 밀폐된 화물 열차에 태워져 3개월동안의 ‘죽음의 여정’을 거쳐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알마타 등으로 옮겨졌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이주민들의 20%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교회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김 나제즈다씨(70·여)는 “영하 60도 가까이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이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야쿠트공화국에 몰려와 엄청난 추위와 참을 수 없는 굶주림,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며 “카마 마루스카(경찰차)가 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어느새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연명하다 보니 많은 고려인들이영양실조에 걸렸고 위장병과 간장병에 시달렸다.그러나 약도 없었고 치료도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가장 슬픈 기억중 하나가 쓰레기통을 뒤져버려진 감자껍질을 찾아 씹어 먹던 일이라며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거동이 불편하다고 전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에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쌀 전량을 옛 소련 당국이 빼앗아 군대로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한번 잘 살아보려던 고려인들의 열망과 의욕은 또 한번 산산이 깨져버린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해 옛소련 당국을 놀라게 했다.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로 거주제한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바꿔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강제 이주를 체험한 고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가져다준생채기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의 고령자들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가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게는 진정한 고향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이주가 불법이었다며 러시아 정부에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마음 편하게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khkim@. *강제이주 金나제즈다씨. “조국 한국의 품에 안겨 마음 편하게 남은 삶을 살아보는 게 나의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1930년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대변하는산증인 김 나제즈다씨(70·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기위해 이름도 ‘나제즈다(소망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로 지었다. 김씨가 옛 소련 스탈린의 추방정책에 따라 강제 이주당해 시베리아로 떠돈60여년의 유랑생활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다.러시아극동 우수리스크 인근 수후사에서 부모형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1937년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아버지와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가장 추운 야쿠트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당시 그곳에는 강제 이주돼온 고려인 100가구가 있었어요.그때 아무런 이유없이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얻은 지병으로 37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 집을 나선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어요.나의 기억으로아버지 친구들은 당시 모두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언니도 이때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김씨는 남동생과 함께 지금의 야쿠트공화국내 ‘알단고아원’에맡겨졌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기억할 수 없어요.나중에 들은얘기로는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김씨의 고아원 생활은 순탄했다.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하고모든 일에 앞장서 고아원 일을 도와줘 고아원 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덕분에 고아원 원장의 도움으로 마가단 광산전문대학에도 진학하게 됐다. 광산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9년 마가단에서 만난 러시아인과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두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첫째 아들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던 까닭이다.76년에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생활마저 궁핍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의 고아원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이가 들어영양결핍 증세를 보이며 시력이 약화돼 지금은 실명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연금으로 20달러를 받아요.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그동안 지난(至難)한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아직도 강제이주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 외국공무원 20명 대상 지방행정 교육훈련 실시

    국가전문 행정연수원은 17일부터 2주일 동안 이집트,네팔 등 개발도상국 10개국의 지방행정관련 고급공무원 20명을 대상으로 지방행정에 대한 교육훈련을 실시한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한국의 발전경험과 노하우,지방행정사례에 대한 집중적인 강의 및 토론,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문화탐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5)외교안보연구원

    해방 직후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회복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외무부(현외교통상부)에는 때아닌 ‘댄스 교습령’이 내려졌다.장택상(張澤相)외무장관이 유엔한국위원회 대표,주한 미군장교,국내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창덕궁인정전에서 첫 외교파티를 열었다. 취흥이 어느 정도 돌자 댄스파티가 열렸는데 춤을 출 줄 아는 우리 외교관은 단 한명.장 장관은 파티가 끝난 뒤 “외교관들이 춤을 출 줄 몰라서 되겠느냐”며 서기관 이상 간부들에게 댄스를 배우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교춤이 성행했던 시대상황이 반영된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외교관들은 필요하면 춤도 출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서울 서초동의 외교안보연구원은 외교정책연구를 하는 한편 그런 외교관을 길러내는 산실이기도 하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새내기 외교관에서부터 중견 간부,해외 공관장도 여기서 교육을 받는다.해외에 파견되는 정부부처의 주재관들도 연구원을 거쳐야 한다.부인도 외교관 역할을 하는 탓에 교육은 부부동반으로 진행되기도한다. 이승곤(李承坤)원장은 “외교관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가)이기도하지만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일 수밖에 없다”며 외교관의 폭넓은 교양을 강조한다.상대국 외교관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국의 음악과 미술품을 놓고 대화하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까닭에 연구원에서는 우리의 음악·미술·문학을 가르치고 의전과 예절이몸에 익어 나도록 한다.물론 국제정세·외국어·한국외교의 주요이슈·북한정치·동북아정세·통상·협상과 교섭기법 같은 과목은 기본이다. 20∼30년 이상의 오랜 경력을 갖춘 연구원의 본부대사·연구위원들이 노련한 외교관 생활을 바탕으로 강의를 맡고 있다.연구원의 교육과정에서 최고의 인기는 의전실무 교육과정.용어는 거창하지만 에티켓과 테이블 매너 교육이다. 예를 들면 상대국 대통령에게 인사할 때는 목례를 한 다음 악수를 나눠야한다거나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 식사하다 담배를 피면 여주인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 된다는 것이다.35년의 외교관생활 끝에 정년퇴직하고교육원의 명예교수로 근무하는 김창훈(金昌勳) 전필리핀대사는 “외교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질은 에티켓”이라고 말한다. 의전실무 교육과정에는 신라호텔 직원들이 초빙돼 칵테일 파티를 여는 법,테이블 매너 등을 가르친다.신선로와 빈대떡의 유래에서부터 한국요리에 대한 ‘이론무장’도 시켜주고 있다. 의전실무 과정은 외교관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인기이다.외국을 방문하거나 외국손님을 맞는 일이 잦아진 지방 공무원들이 에티켓을 배우러 몰려들고 있다.연구원은 한국 이해 프로그램도 개발해 지난해에는 주한 외교사절을 초청,교육하기도 했다.주한 외교관이나 가족들이 신문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를 단편적으로 알던 데서 벗어나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4) 국립환경연구원

    “폐수가 무단으로 방류되는 지하 배수구가 발견됐습니다.어떻게 수사를 진행하겠습니까” 13일 서울 불광동 국립환경연구원에서는 환경보전 지도·단속에 대한 강의가 한창이다.환경파괴 현장 적발에서부터 유·무죄를 가려 조사서를 꾸미는데까지,수사의 모든것을 배우고 있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이날 진행된 환경사범 수사실무반에서는 환경부,각 시·도 등 환경 지도·단속 업무를 맡은 공무원인 ‘사법경찰관’ 44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우리 자손 만대의 자연환경이 파괴된다는 책임감으로 뭉쳐 있는 듯했다. 국립환경연구원 환경연수부에서 실시하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은 환경 관련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는 필수코스.가끔 학생,교사,환경단체 회원 등 민간인들도 교육을 받는다. 환경문제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데도 이곳의 강좌들이 문외한들에게는 약간은 낯설게 느껴진다.물질관리,환경분쟁조정,지구환경관리,환경영향평가 등 이름만 들어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야생조수의 보호와 관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야생동물보호관리반’,국제환경협약 등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구환경보전반’,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는 환경분쟁을 효율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만든‘환경분쟁조정반’ 등 환경현안에 맞춰 총 48개 강좌를 개설했다. 환경연구원의 강의는 보통 1월말쯤 시작된다.지난 1월 24일 대기오염방지시설기술요원반,수질오염방지시설기술요원반,수질측정기술요원반이 개강되면서2000년의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강사진도 탄탄하다.검사,교수,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연구원 소속 박사,환경단체 대표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이들로 채워져 있다. 80년 설립된 환경연구원은 설립 당시 환경연구소에서 90년대 초 환경공무원교육원으로,지난해에는 환경연구원 환경연수부로 변화해 왔다. 환경오염방지요원반, 검사요원반 등 4개반 386명을 첫 교육한 이후 꾸준히교육생이 늘어 지난해에는 5,566명이 교육을 받았고,올해 예상 교육생은 5,419명에 이른다. 환경연구원 관계자들은 교육일정을 잡는 것에서부터 교육생을 배출해내는것까지 한해의 환경교육과정을 ‘농사’라고 표현한다. 환경연구원 교육과 김기덕(金基德)씨는 “옛날 농사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었듯이 환경교육은 우리 생활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라면서 “모든교육이 그렇듯이 환경교육도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강조했다. 최여경기자 kid@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 (3)국세교육원

    9일 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의 국세공무원교육원(원장 任智淳)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국세공무원교육원은 여느 공무원교육원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모두들 수석을 하려 하지요.” 교육원 관계자의 설명이다.‘세금공무원’ 특유의 분위기다. 이 때문에 교육원에 들어온 800여명(국세청 600명,관세청 200명)의 교육생들은 공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교육을 마친 뒤 기숙사나 교육원 부근의하숙집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된다.교육원 관계자는 “교육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는 교육생은 찾아보기 어렵고 밤 12시까지 공부를 한다”며 “비슷한 시기에 다른 교육원에서 교육받으면서 같은 하숙집을 쓰는 다른 부처공무원들이 혀를 내두르곤 한다”고 전했다. 국세청과 관세청 공무원들의 교육 합격점은 70∼80점.일반 부처 교육원의합격점인 60점보다 10∼20점 높다.올들어 21세기 신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전문교육 과정이 강화됐고,정신교육도 만만치 않다.외부인사를 초빙해 바깥에서 느끼는 ‘쓴소리’도 들려준다. 새해 들어 처음 실시한 ‘정책개발과정’은 국세청 안팎에서 좋은 반응을얻고 있다.교육생들이 일선 세무서에서 인식한 문제점들을 토론·분석하고정책대안을 내도록 했다.예를 들면 국세도 다른 공과금처럼 은행에 가지 않고 자동이체되거나 폰뱅킹으로 편리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최근 구조조정과 자동자격사 부여제도 폐지로 퇴직하는 공무원이 급증하자퇴직자 미래설계과정을 개설한 것도 특징이다.퇴직을 앞둔 공무원 80여명이벌써 창업정보와 재테크 방법 등을 들었다. 전체 국세청 직원은 1만7,000여명에 교육 대상자는 1만8,000여명.직원들은한차례 이상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관세청도 직원 4,000여명 중 3,200명이 교육을 받는다. 전국의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으러 수원으로 몰려드는 점을 감안해 공무원교육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이버교육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5월까지 시험가동을 실시해 9월부터는 지방에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교육원은 유능한 세금공무원을 만들겠다지만 시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강의에 쓰는 방송시설도 외부에서 빌려 쓰는 형편이다.기숙사에는 20년 전부터써온 철제 2층 침대를 쓰고 있다. 교육원 관계자는 “다른 교육기관을 찾아가면 눈이 뒤집힐 정도”라고 말한다.그마저도 기숙사 수용인원은 140여명이어서 나머지는 일주일에 10만원씩내고 교육원 부근에서 하숙을 하면서 교육을 받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
  • ‘내고장 뿌리찾기’ 헌신 15년 광양시 김광호씨

    공직자가 바쁜 업무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내고장 뿌리 찾기에 매달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전남 광양시 골약동사무소 김광호(金光浩·56·6급)씨. 지난 86년 옛 광양군 공보계장을 맡으면서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 첫 걸음을 시작했다. 이후 그에게 토요일 오후나 일요·공휴일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3년동안 관내 378개 마을을 직접 돌아다니며 노인들로부터 구전을 녹취하고 이를 토대로 대학 도서관 등에서 관련 문헌을 뒤졌다. 마침내 88년 6월 마을별 이름과 지리적 특성을 담은 ‘마을 유래지(709쪽)’를 펴냈다.이어 35년간 옥룡면 옥룡사에서 포교활동을 펴다 입적한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의 생애를 담은 ‘도선국사와 어사 박문수의 흔적 탐방기(12쪽)’를 발간했다.박문수가 영조 때 어사로 광양에 내려와 ‘조선에서는 전라도,전라도에서는 광양,광양에선 골약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광양 예찬론을 편 유래도 설화집을 인용해 기록했다. 입으로만 전해져 오던 ‘광양 12실과 광양 8포에 대한 이야기(12쪽)’도 엮어냈다.고산 윤선도가 3년동안 살았던 옥룡면 추동마을과 송강 정철(다압면섬진마을)의 유적지를 밝혀내기도 했다.요즘에는 ‘풍수지리로 살펴본 광양고을의 발자취’를 집필중이다. 광양 남기창기자 kc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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