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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두산 투수 임태훈, 일본 독립리그행

    전 두산 투수 임태훈, 일본 독립리그행

    지난 6월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한 투수 임태훈이 일본 독립리그 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 팀과 계약했다. 일본 독립리그 베이스볼챌린지리그(BC리그)에 속한 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는 14일 구단 홈페이지(www.m-elephants.com)에 “우리 구단이 새로운 선수를 영입했다”며 임태훈 영입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등번호는 32번으로 확정됐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아베 담화 전문

    아베 담화 전문

    종전 70년을 맞아 전쟁에 이른 길, 전후의 발자취, 20세기라는 시대를 우리는 조용히 되돌아보고 그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래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전 세계는 서양 제국을 중심으로 각국의 광대한 식민지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은 19세기 아시아에도 밀려들었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시작하고 독립을 지켜 왔습니다.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민족자결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식민지화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 전쟁은 1000만명의 전사자를 낸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하게 원하고 국제연맹을 창설해 부전(不戰) 조약을 탄생시켰습니다. 전쟁 자체를 위법화하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조류가 생겼습니다. 당초 일본도 발걸음을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공황이 발생하고 구미제국이 식민지 경제를 끌어들여 경제의 블록화를 진행하자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은 고립감이 깊어져 외교적, 경제적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힘의 행사로 해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국내의 정치 시스템은 그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세계의 대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만주사변, 그리고 국제연맹으로부터의 탈퇴. 일본은 점차 국제사회가 엄청난 희생 위에 쌓으려 한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돼 갔습니다. 나아갈 진로를 잘못 잡아 전쟁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전후 70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돌아가신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통석의 마음을 표시하고 영겁의 애도를 바칩니다. 과거 전쟁에서 300만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고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싸움터에서 돌아가신 분들. 종전 후, 극한(極寒)의 또는 작열하는 머나먼 타향에서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에서의 폭격, 오키나와 지상전 등으로 많은 시민이 무참히 희생됐습니다. 전쟁이 벌어진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목숨이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동남아, 태평양 섬 등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전투뿐 아니라 식량난 등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난에 빠지고 희생됐습니다.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란 실은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입니다. 개개인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면서 지금 다시 할 말을 잃고 단장(斷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희생 위에 현재의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후 일본의 원점입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 지배와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가 돼야 합니다. 전쟁에 대한 깊은 회오(悔悟)의 마음과 함께 일본은 그렇게 맹세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어 법의 지배를 중시하고 오로지 부전의 맹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70년에 걸친 평화국가로서의 행보에 우리는 조용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이런 변하지 않는 방침을 앞으로 관철해 가겠습니다.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습니다. 그런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노력을 다하더라도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 전화로 도탄의 고통을 맛본 사람들의 아픈 기억은 앞으로도 절대 아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전후 600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아시아 각지에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일본 재건의 원동력이 된 사실을. 중국에 두고 온 3000명 가까운 일본 어린이들이 무사히 성장하고 다시 조국 땅을 밟게 된 사실을.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 있던 포로들이 일본을 찾아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을 계속해 주고 있는 사실을. 전쟁의 고통을 겪은 중국인 여러분과 일본군에 의해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은 전쟁 포로들이 그토록 관대하려면 얼마만큼 갈등하고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러한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관용의 마음으로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70년을 계기로 일본은 화해를 위해 힘을 써 준 모든 나라,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습니다.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등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일본인들은 세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에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 또 그 부모 세대는 전후의 폐허, 가난의 밑바닥에서 생명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세대, 나아가 다음 세대들로 미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조의 꾸준한 노력과 함께 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미국, 호주, 유럽 각국을 비롯한 정말 많은 나라로부터 원한을 초월한 선의와 지원의 손길이 뻗친 덕분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미래에 계속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가면서 아시아,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힘을 다한다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힘으로 타개하려 했던 과거를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는 어떤 분쟁에서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힘의 행사가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앞으로도 굳건히 지키면서 세계 각국에도 호소하겠습니다. 유일한 원폭 피해국으로 핵무기 비확산과 궁극적인 폐기를 목표로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우리는 20세기 전쟁 중 많은 여성의 존엄과 명예가 크게 상처받은 과거를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그런 여성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나라가 되고 싶습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상처받는 일이 없는 시대로 만들기 위해 세계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우리는 경제의 블록화가 분쟁의 싹을 키운 과거를 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어떤 나라에도 함부로 좌우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하고 열린 국제 경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개발도상국 지원을 강화해 세계의 번영을 견인하겠습니다. 번영이 평화의 초석입니다. 폭력의 온상이 되는 빈곤에 맞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와 교육,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더욱 힘을 쓰겠습니다. 우리는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돼 버린 과거를 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기본적 가치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손잡고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어 세계 평화와 번영에 지금 이상으로 공헌하겠습니다. 종전 80년, 90년, 나아가 100년을 향해서, 그런 일본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는 결심입니다. 2015년 8월 14일 총리 아베 신조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70주년 ‘제2의 경술국치 없다’ 장담할 수 있나 (上)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70주년 ‘제2의 경술국치 없다’ 장담할 수 있나 (上)

    - 일본 연이은 군국주의 부활 선언 일본 제국주의의 군홧발 밑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빛을 되찾은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일제의 군홧발이 물러가고 곧이어 공산주의자들의 총칼이 우리 민족을 또 한 번 유린했지만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며 세계 10위권 선진국의 문턱까지 달려왔다. 5,000만이 넘는 인구와 3만 달러에 육박하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2위의 국방예산 규모와 63만 명에 달하는 상비병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명실 공히 ‘선진국’이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65년간 전쟁이 없었고 눈부신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태평성대 속에서 국민들은 불과 100여 년 전 있었던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치욕과 일제 치하 35년간의 고통을 잊어버린 듯하다. 서양 격언에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는 말이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그렇다. 100년 전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대한제국이 열강의 총칼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주변국을 침략해왔던 국가였고, 이러한 침략행위가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가였다. 일본 군국주의라을 붙잡아 놓고 있던 것은 미국과 평화헌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라는 맹수가 등장하자 미국은 일본을 붙잡고 있던 줄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고, 일본은 평화헌법이라는 족쇄를 아예 끊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패전 70주년인 8월 15일을 전후해 3가지 의미심장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8월 셋째 주에 일본 해상자위대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神風) 공격으로 유명했던 제로센 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복원 비행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선봉에 섰던 이 전투기는 우리나라에만 사과를 거부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했으며, 일본 태평양 침략의 상징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자존심과 같은 항공기이다. -인과관계 외면하고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만 8월 하순에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코마키 미나미(小牧南工場) 항공기공장이 있는 나고야 공항에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 ATD-X(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or-X)의 첫 시험비행 일정이 계획되어 있으며, 8월 27일에는 요코하마에 있는 전범기업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石川島播磨重工業) 조선소에서 24DDH로 명명된 항공모함 진수식 일정도 잡혀있다. 일본은 앞서 건조한 항공모함 22DDH의 함명을 독도를 관할구역으로 삼는 행정구역의 옛 지명인 이즈모(いずも)로 삼아 논란을 일으켰는데, 24DDH의 유력한 함명으로 제국해군의 상징과도 같았던 야마토급 전함 3번함시나노(しなの)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함으로 건조된 시나노는 추후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는데, 27일 공개되는 실제 함명이 시나노로 확정될 경우 해상자위대는 과거 제국해군으로의 회귀를 드러내놓고 선언한 격이 된다.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재래식 군사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재래식 군비 강화는 물론 핵무기 보유를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 지난 6일, 아베 신조 총리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추모식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자신들의 태평양 침공과 전쟁범죄, 그리고 옥쇄 전략 때문이었다는 피폭에 앞선 인과관계는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중했다. 그는 지난 19년간 역대 총리들이 매년 언급해왔던 비핵 3원칙(핵무기의 생산ㆍ보유ㆍ반입 금지)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추모식 하루 전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핵무기를 일본으로 들여올 수도 있다”고 발언한 내용과 맞물려 일본의 비핵 3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것을 시사했다.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47톤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다. 명분은 플루토늄 혼합산화물(MOX : Plutonium-uranium mixed oxide)을 연료로 사용하는 플루서멀(Plu-thermal) 방식의 신형 원자로 연료 확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보유한 전체 원전 48기 가운데 플루서멀 방식은 불과 4기에 불과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이 방식의 원자로는 추가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어 추가적인 플루토늄 소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밀어 붙이고 있다. 심지어 핵탄두 8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640kg 가량을 은닉해 보관하다가 IAEA에 적발되기도 했다. -다음 수순 '핵무장' 준비 착착 일본의 핵무장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족쇄는 핵확산방지조약(NPT :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국제사회의 동의하에 합법적으로 이 족쇄를 풀 수 있는 방안도 준비해 놓고 있다. 일명 ‘센카쿠 트리거'(Senkaku trigger)와 ‘북한 트리거'(North Korea trigger)가 그것이다. 일본은 최근 중국과 영유권 마찰을 빚고 있는 센카쿠 지역 분쟁에 대비해 오키나와 나하(なはし) 비행장에 전투기와 정찰기 전력을 2배 이상 증강 배치시켰으며, 이 일대를 초계하는 군함의 수도 대폭 늘리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군함이 일본 정찰기를 사격통제레이더로 조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조성되기도 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며 ‘북한 미사일 또는 미사일 파편의 일본 열도 추락 가능성‘을 들고 나와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것도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2년 북한이 은하3호 로켓을 발사할 당시 도쿄 시내 한복판의 공원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극대화시켰다. 중국과 북한을 이용한 의도적 긴장 조성을 통해 일본이 노리는 것은 바로 NPT 탈퇴이다. NPT는 제10조에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당사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결정된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센카쿠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하거나,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가 일본 영토 또는 영해에 떨어지면 일본은 이를 일본에 대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비상사태를 이용해 NPT 탈퇴를 선언하고 즉각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막대한 양의 플루토늄이 확보되어 있으며,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구면 폭발 기술이나 중성자 제어에 관련한 제반 기술 여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H-II/III는 물론 M-V 등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 가능한 대형 로켓도 구비되어 있다. 정부가 핵무장을 선언하면 한 달 이내에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핵강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나 있다는 것이다. -日 군국주의 칼날이 겨눈 대상은... 점차 봉인이 풀려가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것은 한반도다. 동북아시아 최약체인 대한민국은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가 ‘복귀전’ 상대로 유린하기에 가장 만만한 국가 중 하나이며, 일본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도발 명분도 충분하다.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이 격화되고 한미 동맹이 약화되었을 때 미국만 용인해준다면 군사력 과시를 통한 대중국 경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도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후 최초로 건조한 항공모함형 호위함인 휴우가(ひゅうが)를 독도를 관할하는 제3호위대군에 배속시키고 여기서 미 해병대의 MV-22B 수직이착륙 수송기를 이용한 강습상륙훈련도 실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제3호위대군이 보유하고 있는 7척의 구축함 가운데 6척을 최신형 중대형 구축함으로 교체했으며, 이 가운데는 1만톤급 이지스 구축함 아타고(あたご), 7,000톤급 ‘일본판 이지스함’ 후유즈키(ふゆづき)도 있다. 독도에서 불과 157km 떨어진 오키(隱岐) 제도의 도고(島後)섬에는 일본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3등급 공항인 오키 공항이 건설되어 있다. 오키 제도 180여개 섬 전체 주민은 1만 5000여 명, 이 제도를 왕래하는 인원은 연간 15만 명에 불과해 공항에 취항 중인 노선은 75인승 여객기 1대 뿐이지만,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자를 부담하면서까지 노선을 유지시키고 지속적으로 비행장 확장 공사를 실시해 왔다. 취항 중인 노선이 없고, 인근 지역에 대한 대규모 관광산업 개발 계획도 없는 곳에 대형 활주로와 주기장을 정부 주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비행장이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오키 비행장의 활주로와 주기장에 일본 항공자위대의 전투기를 전진 배치할 경우 1개 비행단급 수준인 60대 이상의 전투기 전개가 가능하다. 평시 독도를 관할하는 우리 해군 제1함대는 압도적인 전력 열세 때문에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교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군이 출격하더라도 독도 인근에 전진 기지를 마련해 놓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전자전기의 지원을 받으며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하는 항공자위대를 제압하는 것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공격부대의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세팅해 놓은 일본은 최근 한국해군의 증원 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준비까지 마무리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최신형 12식 지대함 미사일 16기 전량을 규슈(九州) 지역의 구마모토(熊本)현 겐군(健軍) 기지의 제5지대함 미사일 연대에 모두 배치하고, 쓰시마섬 남단의 후쿠오카(ふくおかし) 공군기지에 공대함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F-2A/B 전투기로 무장한 제8전투비행단을 배치했다.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했지만, 미사일의 사정거리와 기지 위치를 고려할 때 이들이 노리는 곳은 '대한해협'이다. 유사시 부산과 진해, 그리고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동해 독도로 향할 우리 해군 증원함대를 대한해협에서 대량의 미사일로 수장시켜 버리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이 한창인 시기에 대외정책 기조가 중국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리게 된다면 미국은 11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한반도를 포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과의 안보 협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시퀘스터 여파에 따른 군비삭감 속에서 주한미군 전력은 지속적으로 감축시키고 있는 반면, 주일미군 전력은 점차 증강시켜 나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남들이 총칼을 갖추며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릴 때 공자 왈 맹자 왈만 외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지킬 힘은 기르지 않은 채 내부 정쟁에만 여념이 없었던 조선은 왕과 왕비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국권을 유린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105년 전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주변국이 최신예 전투기를 대량으로 구매하든 항공모함을 건조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국방예산을 삭감해 지역구 챙기기 선심성 예산과 포퓰리즘적 복지놀음에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하편에 계속>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광복 70주년, 한반도가 다시 위험하다](上) - 일본 군국주의 부활, 손놓은 한국

    [광복 70주년, 한반도가 다시 위험하다](上) - 일본 군국주의 부활, 손놓은 한국

    일본 제국주의의 군홧발 밑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빛을 되찾은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일제의 군홧발이 물러가고 곧이어 공산주의자들의 총칼이 우리 민족을 또 한 번 유린했지만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며 세계 10위권 선진국의 문턱까지 달려왔다. 5,000만이 넘는 인구와 3만 달러에 육박하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2위의 국방예산 규모와 63만 명에 달하는 상비병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명실 공히 ‘선진국’이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65년간 전쟁이 없었고 눈부신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태평성대 속에서 국민들은 불과 100여 년 전 있었던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치욕과 일제 치하 35년간의 고통을 잊어버린 듯하다. - 일본 연이은 군국주의 부활 선언 서양 격언에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는 말이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그렇다. 100년 전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대한제국이 열강의 총칼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주변국을 침략해왔던 국가였고, 이러한 침략행위가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가였다. 일본 군국주의라을 붙잡아 놓고 있던 것은 미국과 평화헌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라는 맹수가 등장하자 미국은 일본을 붙잡고 있던 줄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고, 일본은 평화헌법이라는 족쇄를 아예 끊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패전 70주년인 8월 15일을 전후해 3가지 의미심장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8월 셋째 주에 일본 해상자위대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神風) 공격으로 유명했던 제로센 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복원 비행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선봉에 섰던 이 전투기는 우리나라에만 사과를 거부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했으며, 일본 태평양 침략의 상징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자존심과 같은 항공기이다. -인과관계 외면하고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만 8월 하순에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코마키 미나미(小牧南工場) 항공기공장이 있는 나고야 공항에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 ATD-X(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or-X)의 첫 시험비행 일정이 계획되어 있으며, 8월 27일에는 요코하마에 있는 전범기업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石川島播磨重工業) 조선소에서 24DDH로 명명된 항공모함 진수식 일정도 잡혀있다. 일본은 앞서 건조한 항공모함 22DDH의 함명을 독도를 관할구역으로 삼는 행정구역의 옛 지명인 이즈모(いずも)로 삼아 논란을 일으켰는데, 24DDH의 유력한 함명으로 제국해군의 상징과도 같았던 야마토급 전함 3번함시나노(しなの)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함으로 건조된 시나노는 추후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는데, 27일 공개되는 실제 함명이 시나노로 확정될 경우 해상자위대는 과거 제국해군으로의 회귀를 드러내놓고 선언한 격이 된다.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재래식 군사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재래식 군비 강화는 물론 핵무기 보유를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 지난 6일, 아베 신조 총리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추모식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자신들의 태평양 침공과 전쟁범죄, 그리고 옥쇄 전략 때문이었다는 피폭에 앞선 인과관계는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중했다. 그는 지난 19년간 역대 총리들이 매년 언급해왔던 비핵 3원칙(핵무기의 생산ㆍ보유ㆍ반입 금지)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추모식 하루 전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핵무기를 일본으로 들여올 수도 있다”고 발언한 내용과 맞물려 일본의 비핵 3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것을 시사했다.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47톤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다. 명분은 플루토늄 혼합산화물(MOX : Plutonium-uranium mixed oxide)을 연료로 사용하는 플루서멀(Plu-thermal) 방식의 신형 원자로 연료 확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보유한 전체 원전 48기 가운데 플루서멀 방식은 불과 4기에 불과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이 방식의 원자로는 추가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어 추가적인 플루토늄 소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밀어 붙이고 있다. 심지어 핵탄두 8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640kg 가량을 은닉해 보관하다가 IAEA에 적발되기도 했다. -다음 수순 '핵무장' 준비 착착 일본의 핵무장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족쇄는 핵확산방지조약(NPT :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국제사회의 동의하에 합법적으로 이 족쇄를 풀 수 있는 방안도 준비해 놓고 있다. 일명 ‘센카쿠 트리거'(Senkaku trigger)와 ‘북한 트리거'(North Korea trigger)가 그것이다. 일본은 최근 중국과 영유권 마찰을 빚고 있는 센카쿠 지역 분쟁에 대비해 오키나와 나하(なはし) 비행장에 전투기와 정찰기 전력을 2배 이상 증강 배치시켰으며, 이 일대를 초계하는 군함의 수도 대폭 늘리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군함이 일본 정찰기를 사격통제레이더로 조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조성되기도 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며 ‘북한 미사일 또는 미사일 파편의 일본 열도 추락 가능성‘을 들고 나와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것도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2년 북한이 은하3호 로켓을 발사할 당시 도쿄 시내 한복판의 공원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극대화시켰다. 중국과 북한을 이용한 의도적 긴장 조성을 통해 일본이 노리는 것은 바로 NPT 탈퇴이다. NPT는 제10조에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당사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결정된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센카쿠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하거나,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가 일본 영토 또는 영해에 떨어지면 일본은 이를 일본에 대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비상사태를 이용해 NPT 탈퇴를 선언하고 즉각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막대한 양의 플루토늄이 확보되어 있으며,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구면 폭발 기술이나 중성자 제어에 관련한 제반 기술 여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H-II/III는 물론 M-V 등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 가능한 대형 로켓도 구비되어 있다. 정부가 핵무장을 선언하면 한 달 이내에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핵강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나 있다는 것이다. -日 군국주의 칼날이 겨눈 대상은... 점차 봉인이 풀려가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것은 한반도다. 동북아시아 최약체인 대한민국은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가 ‘복귀전’ 상대로 유린하기에 가장 만만한 국가 중 하나이며, 일본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도발 명분도 충분하다.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이 격화되고 한미 동맹이 약화되었을 때 미국만 용인해준다면 군사력 과시를 통한 대중국 경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도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후 최초로 건조한 항공모함형 호위함인 휴우가(ひゅうが)를 독도를 관할하는 제3호위대군에 배속시키고 여기서 미 해병대의 MV-22B 수직이착륙 수송기를 이용한 강습상륙훈련도 실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제3호위대군이 보유하고 있는 7척의 구축함 가운데 6척을 최신형 중대형 구축함으로 교체했으며, 이 가운데는 1만톤급 이지스 구축함 아타고(あたご), 7,000톤급 ‘일본판 이지스함’ 후유즈키(ふゆづき)도 있다. 독도에서 불과 157km 떨어진 오키(隱岐) 제도의 도고(島後)섬에는 일본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3등급 공항인 오키 공항이 건설되어 있다. 오키 제도 180여개 섬 전체 주민은 1만 5000여 명, 이 제도를 왕래하는 인원은 연간 15만 명에 불과해 공항에 취항 중인 노선은 75인승 여객기 1대 뿐이지만,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자를 부담하면서까지 노선을 유지시키고 지속적으로 비행장 확장 공사를 실시해 왔다. 취항 중인 노선이 없고, 인근 지역에 대한 대규모 관광산업 개발 계획도 없는 곳에 대형 활주로와 주기장을 정부 주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비행장이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오키 비행장의 활주로와 주기장에 일본 항공자위대의 전투기를 전진 배치할 경우 1개 비행단급 수준인 60대 이상의 전투기 전개가 가능하다. 평시 독도를 관할하는 우리 해군 제1함대는 압도적인 전력 열세 때문에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교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군이 출격하더라도 독도 인근에 전진 기지를 마련해 놓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전자전기의 지원을 받으며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하는 항공자위대를 제압하는 것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공격부대의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세팅해 놓은 일본은 최근 한국해군의 증원 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준비까지 마무리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최신형 12식 지대함 미사일 16기 전량을 규슈(九州) 지역의 구마모토(熊本)현 겐군(健軍) 기지의 제5지대함 미사일 연대에 모두 배치하고, 쓰시마섬 남단의 후쿠오카(ふくおかし) 공군기지에 공대함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F-2A/B 전투기로 무장한 제8전투비행단을 배치했다.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했지만, 미사일의 사정거리와 기지 위치를 고려할 때 이들이 노리는 곳은 '대한해협'이다. 유사시 부산과 진해, 그리고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동해 독도로 향할 우리 해군 증원함대를 대한해협에서 대량의 미사일로 수장시켜 버리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이 한창인 시기에 대외정책 기조가 중국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리게 된다면 미국은 11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한반도를 포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과의 안보 협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시퀘스터 여파에 따른 군비삭감 속에서 주한미군 전력은 지속적으로 감축시키고 있는 반면, 주일미군 전력은 점차 증강시켜 나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남들이 총칼을 갖추며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릴 때 공자 왈 맹자 왈만 외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지킬 힘은 기르지 않은 채 내부 정쟁에만 여념이 없었던 조선은 왕과 왕비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국권을 유린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105년 전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주변국이 최신예 전투기를 대량으로 구매하든 항공모함을 건조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국방예산을 삭감해 지역구 챙기기 선심성 예산과 포퓰리즘적 복지놀음에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하편에 계속>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독립 50년… 강소국 싱가포르 계속될까

    9일로 독립 50주년을 맞은 동남아시아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생존을 위협받던 약소국에서 독립 후 반세기도 되지 않아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강소국으로 탈바꿈한 싱가포르는 최근 경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타계한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확립한 강소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날 싱가포르에선 독립기념일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됐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말레이시아 연방이 됐다가 1965년 연방에서 탈퇴, 독립국가 지위를 얻은 지 꼭 반세기가 지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오전 9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 기념행사는 리 전 총리가 생전 낭독한 독립선언문이 전국에 울려 퍼지며 막을 올렸다. 5만명이 운집한 행렬에선 국제 금융허브로 탈바꿈한 역사를 자축했다. 퍼레이드 말미에는 싱가포르 공군의 F16 전투기 20대가 상공에서 숫자 ‘50’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와 달리 국민 다수가 정치 개혁이 미진한 싱가포르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민자 증가와 빈부 격차 심화, 저성장과 물가 상승 등이 사회적 긴장을 조성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인구 540만명 가운데 40%가량은 외국인 노동자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심하고, 세제 혜택을 노리고 몰려든 거부들 탓에 주택 가격과 물가는 급등했다.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독립 축하 메시지에서 “앞으로의 여정은 알 수 없고 우리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계속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전문가들도 싱가포르가 경제와 사회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선 시민 자유를 확대하고 정치 개혁을 선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앞으로 연기돌로 변신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앞으로 연기돌로 변신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앞으로 연기돌로 변신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f(x)의 멤버 설리가 팀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에서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SM은 f(x)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f(x)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인 체제로 재편돼 그룹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편, 설리는 2013년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열애설에 휘말린 이후 f(x) 팀 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이후 설리는 잠적설, 불화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7월 f(x) 정규 앨범 ‘Red Light’(레드 라이트) 발매 후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입장 살펴보니?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입장 살펴보니?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입장 살펴보니?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f(x)의 멤버 설리가 팀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에서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SM은 f(x)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f(x)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인 체제로 재편돼 그룹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편, 설리는 2013년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열애설에 휘말린 이후 f(x) 팀 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이후 설리는 잠적설이나 멤버 간 불화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7월 f(x) 정규 앨범 ‘Red Light’(레드 라이트) 발매 후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아닌 배우로..” SM 공식 발표… 다른 멤버들은?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아닌 배우로..” SM 공식 발표… 다른 멤버들은?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아닌 배우로..” SM 공식 발표… 다른 멤버들은?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가 걸그룹 에프엑스에서 공식 탈퇴한다.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설리는 지난해 7월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해 탈퇴설과 불화설 등에 시달려왔다. 소속사는 “에프엑스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명의 멤버로 그룹 활동을 이어간다. 에프엑스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설리는 2013년 최자와의 열애설이 첫 불거진 이후 악성 댓글과 탈퇴설, 불화설 등 루머에 휩싸여왔다. 이로 인해 지난해 7월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설리는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를 통해 아역배우로 데뷔했으며 2009년 f(x) 멤버로 가수로 다시 데뷔했다. 그러나 걸그룹 활동 중에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패션왕’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등 연기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활동에 집중할 것” 더이상 걸그룹 아냐..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활동에 집중할 것” 더이상 걸그룹 아냐..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본인 의사 존중”

    설리 에프엑스 탈퇴, “본인 의사 존중”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공식 발표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공식 발표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아닌 배우로..” 에프엑스 4인조 체제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아닌 배우로..” 에프엑스 4인조 체제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SM 공식 발표

    설리 에프엑스 탈퇴, SM 공식 발표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근황 사진 보니 ‘행복 미소’

    설리 에프엑스 탈퇴, 근황 사진 보니 ‘행복 미소’

    SM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스케줄을 최소화하며 휴식중인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에프엑스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명 멤버로 그룹 활동을 이어간다. 한편 설리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2005년 SBS ‘서동요’를 통해 데뷔했다. 과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설리의 비공개 SNS 사진이 올라온 바 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속 설리는 커플링으로 추정되는 왼손 네 번째 반지를 지인에게 자랑하고 있다. 특히 설리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공식입장 무엇?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공식입장 무엇?

    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기돌로 활동” SM 공식입장 무엇?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f(x)의 멤버 설리가 팀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에서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SM은 f(x)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f(x)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인 체제로 재편돼 그룹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편, 설리는 2013년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열애설에 휘말린 이후 f(x) 팀 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이후 설리는 잠적설이나 멤버 간 불화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7월 f(x) 정규 앨범 ‘Red Light’(레드 라이트) 발매 후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불화설 끊이지않더니 결국 탈퇴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불화설 끊이지않더니 결국 탈퇴

    설리, 에프엑스 공식 탈퇴 “연기활동에 집중” 최근 모습보니 ‘훈훈’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가 걸그룹 에프엑스에서 탈퇴하고 홀로서기에 나선다.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지난해 7월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해 탈퇴설이 흘러나왔다. 설리 탈퇴로 에프엑스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4인조로 재편된다. 소속사는 “에프엑스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명의 멤버로 그룹 활동을 이어간다. 에프엑스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설리 에프엑스 탈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도대체 왜?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도대체 왜?

    설리 에프엑스 탈퇴 “설리 개별활동 적극 지원” 도대체 왜? 설리 에프엑스 탈퇴 걸그룹 f(x)의 멤버 설리가 팀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에서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SM은 f(x)의 향후 활동은 물론 멤버들의 개별 활동, 설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f(x)는 빅토리아, 루나, 엠버, 크리스탈 등 4인 체제로 재편돼 그룹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편, 설리는 2013년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열애설에 휘말린 이후 f(x) 팀 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이후 설리는 잠적설, 불화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7월 f(x) 정규 앨범 ‘Red Light’(레드 라이트) 발매 후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설리 에프엑스 탈퇴, “배우로 홀로선다”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7일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한 결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리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에프엑스로 데뷔한 설리는 최자와의 열애설에 휩싸인 이후 불화설, 탈퇴설 등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설리는 지난해 9월 14살 연상인 힙합그룹 다이내믹듀오 멤버 최자와의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리 에프엑스 탈퇴, “본인 의사 존중”

    설리 에프엑스 탈퇴, “본인 의사 존중”

    SM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스케줄을 최소화하며 휴식중인 설리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f(x)를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한편 설리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2005년 SBS ‘서동요’를 통해 데뷔했다. 과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설리의 비공개 SNS 사진이 올라온 바 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속 설리는 커플링으로 추정되는 왼손 네 번째 반지를 지인에게 자랑하고 있다. 특히 설리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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