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탈취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작전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혈액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앵커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동두천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09
  • 申昌源 도피중 가족 만났다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2)이 도피기간중 무기 탈취를 위해 파출소를 사전답사했으며 아버지와 누나를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검 강력부(閔有台 부장검사)는 18일 신을 검찰에 소환, 조사를 벌인결과 지난 98년 9월말 자신이 맨처음 범죄행위를 저지른 뒤 붙잡힌 전북 익산의 한 파출소에 들어가 무기를 훔치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은 사흘 간격으로 두차례나 파출소에 침입했으며 자신을 소년원에보내 범죄의 길에 빠지게 한 경찰관에게 보복하기 위해 파출소 무기고 탈취계획을 세웠으나 직원들이 다 바뀌고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무기 탈취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또 신은 파출소 침입때 직원 3명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등 근무태도가 엉망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신은 도피중인 97년 3월과 12월에 각각 아버지(전북 김제)과 누나(〃 정읍)를 만났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사실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자유기업센터소장”삼성회장 사재출연 요구는 약탈행위”

    공병호(孔柄淏·39)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정부의 삼성자동차 처리와 관련,이건희(李健熙)삼성 회장의 사재출연 과정을 ‘일종의 약탈행위’로,정부를 ‘일방적으로 한쪽 손을 들어준 거간꾼’으로 몰아부치면서 정부의 재벌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재계인사가 원색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으로,재계와 관계에 큰 파문이 예상된다. 공 소장은 월간중앙 8월호에 실린 ‘삼성자동차를 위한 변명’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재산권은 보호를 받아야 하며 국가공권력은 개인의 재산권을 지켜줘야 한다”면서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대상으로 개인재산의 헌납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사재출연이지,일종의 약탈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정부를 비난했다.또 삼성의자동차사업 진출에 대해 “삼성은 일상적 투자의 하나이자 미래 주력사업으로 자동차를 택했다”면서 “모든 의사결정이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길로연결됐다면 어느 누가 부자가 되지 않았겠는가”며 총수책임론을 반박했다. 그는 “이 사회는 언제든지 이런저런 명분으로 재산권의 탈취가 가능함을여과없이 보여줬다”면서 “이번 사태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재를 빼앗는데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우리 손으로 허물어버린 원칙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결국 삼성자동차 문제는 채권자와 채무자, 주주 및 이해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정부가 이런 저런 논리를 들면서 끼어들어 거간꾼역할을 담당,일방적으로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났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금감위 관계자는 “경영실패에 따른 파장이 국가경제 전체에 미칠 경우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은 정부가 강요한 게 아니라 삼성이 위기탈출을 위해 스스로 결정한사안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게 떠넘기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반박했다.재경부 고위 관계자도 “그동안 금융기관이 삼성자동차에 4조3,000억원이나 빌려준 것은 삼성자동차보다는 삼성그룹의 신용도를 보고 대출해준 것”이라며 “이에 따라 계열사와 기업주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한국전 참전 ‘英軍 만행’ 기록 공개

    6·25전쟁 기간중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군 등이 한국인 민간인을상대로 살인·방화·강도·강간 등의 만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재미사학자 방선주(方善柱·한림대 객원교수)박사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6·25 당시 참전한 미 9군단 관련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이같은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입수,본사에 단독제공했다.방 박사가 입수한 문건은 1951년3월19일 미 9군단 민사처 소속 한국인 의사들이 작성한 것으로 3월15∼18일까지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일대에서 자행된 31건의 만행을 기록한 내용이다. 문건에 따르면,3월16일 오후 10시경 영국군 3명이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한 민가에 침입,당시 23세의 한국여성을 총으로 위협한 후 말을 듣지않자 구타하고는 윤간했다.피해 한국인 여성은 국부와 전신에 중상을 입고 이튿날 오후 5시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18일 오전 4시에도 영국군 7명이 이천군 신둔면의 한 민가에 침입,당시 31세의 한국인 여성을 ‘순차적으로 강간’한것으로 나와 있다.특히 17일 오후 3시에는 영국군 3명이 13세한국인 소녀를 윤간하면서 일행중 1명은 문앞에서 보초를 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들은 또 민가에 침입,금전이나 가축을 강탈하거나 방화도 자행한 것으로나와 있다.한 예로 16일 오후 5시경 영국군 2명이 당시 60세의 남자집에 침입,가택을 수색하고는 현금 7,000원을 강탈했으며,14일에는 미국인(미군) 4명이 한 민가에서 시가 15만원 상당의 황우(黃牛) 1두를 강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또 18일에는 영국군 2명이 당시 50세의 한국인 남자 집에 침입하여부인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는 ‘없다’고 하자 가옥에 총을 난사,3만원가량의 재산피해를 입힌 것으로 나와 있다.이들은 미 9군단 산하 영국군 제29여단 소속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소속 부대명과 신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자료를 공개한 방 박사는 “영국·미국군 이외에도 38선 남하후 중공군의만행과 관련한 판결문 등도 찾아냈다”고 밝히고 “신사의 나라인 영국의 군대와 규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중공군이 이같은 만행을 자행한 것은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국방군사연구소 나종삼전사부장은 “그같은 내용을 기록은 물론 소문으로도 들은 바 없다”고 밝히고는 “당시 물자보급이 충분했던 상황에서 금전탈취 등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국은 6·25 당시 보병 2개 여단,해병특공대 1개 부대 등 지상군 1만4,198명과 항공모함 1척을 포함,함정 17척을 파견한 바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외언내언] 일본의 플루토늄 수송

    위험한 핵물질을 실은 ‘떠다니는 체르노빌’이 결국 영국의 배로 인퍼너스 항구를 출발했다.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일 출항한 두 척의 배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플루토늄을 포함한 혼합핵연료(MOX) 10t을 싣고 일본을 향해 가고 있다.플루토늄은 1g만으로도 100만명 이상의사람들을 암에 걸리게 할 수 있는 위험물질이다. 일본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재처리해 가져오고 있다.이번에 가져오는 플루토늄은 핵폭탄 60여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으로 약 두달반 동안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어떤 불행한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특히우리로서는 수송선이 한반도 근해를 지나갈 가능성이 높아 크게 걱정된다.수송선이 대한해협을 지나지는 않는다고 일본이 비공식적으로 밝혔다지만 공해상을 지난다고 해서 위험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수송선 가운데 한 척은동해를 바라보는 일본 후쿠이현의 다카하마 핵발전소로 향하고있다.수송선이 바다 위에 떠 있을 7∼9월은 태풍이 잦은 계절이기도 하다.실제로 지난 97년 대서양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 세슘을 싣고 가던 프랑스 화물선이 폭풍으로 난파,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때의 약 10분의1에 이르는 방사능이 누출된 바 있다.일본은 MOX가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는순수 플루토늄이나 마찬가지로 즉시 핵무기로 사용가능한 위험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또 해적이나 테러집단의 해상탈취 위험도 없지 않다.그럼에도 수송선에 대한 안전조치는 소홀하다.30㎜ 대포와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영국원자력에너지 당국 요원들이 수송선에 탑승한 정도여서 지난 92년 군함이 수송선을 호위했던 것과는 대조된다.게다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동해쪽에몰려 있어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날 경우 한반도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볼수 있다. 일본의 위험한 플루토늄 수송은 이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2010년까지 약 50t의 플루토늄을 80여회에 걸쳐 반입할 계획이다.한반도의 머리맡에 플루토늄 고속도로가 생기는 셈이다.일본의 풀루토늄은 단순히 원자력발전소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핵무장을 위한 것이라는 우려도 안겨준다.2010년쯤에는 일본의 플루토늄 잉여분이 6만㎏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5㎏만 가지고도 핵폭탄 제조가가능하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당국은 일본정부에 플루토늄 수송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일본의 플루토늄 대량비축 계획을 재검토하도록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본다.
  • [대한매일 95년] 연표

    ■1904년 7월18일 창간(영문판 4면,국문판 2면).초대 편집인 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 취임. ■1907년 1월16일 을사조약 무효를 선언하는 고종의 칙서 공개. ■1907년 2월21일 국채 1,300만원 보상운동 제창. ■1907년 5월23일 국문판 대한매일신보 별도 발간. ■1907년 10월 배설,영사 재판정에서 6개월 근신처분 받음.1908년 6월에도반일 보도로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처분 받음. ■1908년 5월 말 기준 부수 1만3,400부. ■1908년 7월12일 일제 통감부,양기탁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으로 몰아 구속. ■1909년 5월1일 배설 사망.영문판 중단. ■1910년 5월21일 통감부,대한매일신보사 탈취.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으로 대한매일신보 종간.(국한문판 1,461호,국문판 938호)■1910년 8월30일 경성일보에 흡수시켜 매일신보(每日申報)로 제호 바꿈(지령은 대한매일신보 계승). ■1938년 4월29일 경성일보에서 분리,매일신보(每日新報)로 제호 바꿔 발행(지령은 每日申報 계승). ■1945년 11월10일 미군정에 의해 정간. ■1945년 11월23일 서울신문으로 제호 바꿔 발행(지령은 每日新報 계승).사장에 오세창 취임. ■1959년 3월23일 옛 지령을 버리고 서울신문 첫 호를 1호로 기산,지령 변경. ■1998년 11월11일 서울신문의 뿌리인 대한매일신보의 애국정신을 되살려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꿔 재창간(지령은 대한매일신보 당시의 지령인 1,651호와서울신문 지령 16,852호를 합산한 18,508호로 출발). ■1998년 11월11일 편집권 독립을 위한 노사공동선언문 발표.
  • [대한매일 95년]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몇명의 외국인 중에는 본보 대한매일신보(대한매일)를 창간하여 항일구국 언론의 선봉이 된 영국인 배설(裵說·영국명 베델)과 일제 침략기에 언론인으로 한국에 특파되어 ‘대한제국의 비극’을 쓴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Mckenzie)그리고 고종황제의 밀령을 갖고 헤이그를 찾는 등 국권수호에 큰 역할을 하고 ‘대한제국멸망사’를 쓴 미국인 헐버트(Hulbert)를 빼놓을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외국 벗들“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남기면서 ‘대한매일’을 키우다가 이 땅에 묻힌 배설에 대해 매켄지는 이렇게 썼다. “일본인들은 갖은 수단을 다 부려 그의 생활을 위협했으며, 그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다. 그의 우편물은 하나도 거르지 않고 검열을 받았으며, 그가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은 여러가지 구실로 위협을 받거나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 주위에는 첩자들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놀라운 끈기를 보여주었으며 세월이 흘러도 굴복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비극’·신복룡 역주)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의 헌사에서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精氣)가 어둠에서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란 애정과 국권회복의 희망을 기대하였다.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대한매일)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는 개탄을 남겼다. 외국인 중에서 우리를 돕거나 해치는 입장이 이토록 달랐다.‘잊고 있는’잊어서는 안될 인물’배설이 우리 애국지사들과 손을 잡고 본보를 창간한 지 18일로 95주년이 된다. 20세기 마지막 생일을 맞아 배설의 일화와 유족 관계를 추적해본다. 배설생일과 한일 기념일 배설은 친한배일(親韓排日)을 ‘운명적’으로 하여 태어난 듯하다. 그의 생일 11월3일은 그가 그토록 증오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같은 날이고 후일 한국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던 날과 더불어 같은 날이다. 배설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일제의 농간으로 상해에서 3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후일 그의 비문을 쓴 장지연과 통음을 한 다음날 서둘러 한국으로돌아와서 다시 항일의 붓을 들었다. 그리고 심장병을 얻어 한살 아래인 부인 모드게일(Maude Gale)과 와아들 허버트 오웬을 남긴 채 37세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모드 게일은 남편이 죽은 뒤에도 “나는 결코 망부(亡夫)의 사업을 계속 하겠다”면서 사재를 털어 ‘대한매일’의 경영에 바쳤으며, 어린 아들에게 부친의 뜻을 잇도록 하겠다면서 한복을 입히고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매일’을 탈취하고 강제합병에 이르자 오웬을 데리고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영국에서 90세까지 살다가 1965년 7월2일에 사망하고, 아들은 어머니가 죽기 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한국정부는 1968년 3월1일 배설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오웬은 첫 부인과 사별하고 도로시 여사와 재혼하여 딸 수잔과 아들 토미를낳고 1965년 사망하였다. 1968년 7월 주영 한국대사관이 배설 유족찾기에 나서 런던타임스의 도움으로 도로시 여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시아버지가 ‘대한매일’사옥에 걸었던 낡은 태극기 등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5년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당대 최고의 논객 참여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에‘대한매일’에는 외국인 배설과 함께 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등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항일 우국지사들이 모여 피끓는 항일논조를 펼쳤다.한국병탄 과정에서 ‘눈엣가시’와 같은 ‘대한매일’에 일제는 배설과 양기탁을 재판에 회부하는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지만, 열혈지사들은 이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기우는 국운을 지사 몇 사람이 버티기에는 힘이 겨웠다. 배설의 죽음에 양기탁의 조시는 지금도 후학들의 심금을 울린다. 대영(大英)남자가 대한에 와서 한 신문으로 깜깜한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 온 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갔나 하늘에 이 뜻을 묻고자 하노라. 정명(正名)을 회복한 대한매일신보사는 금세기마지막 창간일을 맞아 삼가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선생 등 선각들의 애국혼을 기리며거듭 바른 글 정신을 다진다. 김삼웅 주필kimsu @
  • [대한매일 95년] 역사성과 그 정신계승의 의미

    대한매일신보(이하 대한매일)는 구국 필봉으로 일본 침략을 규탄한 민족언론의 본산이었다.국운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던 시기에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민족진영의 길잡이 구실을 했다.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면서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분투한 역사의 주체였다. 일본은 네 분야에서 한국 침략정책을 추진하였다.무력침략,외교침략,경제침략,언론침략이 그것이다. 대한매일은 이 네 가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투쟁하였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한반도에서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확보하였다.국내의 무장항일 투쟁을 무력으로 제압하였으며 한일의정서와 을사조약 등의 국권 탈취도 무력을 앞세운 강압으로체결했다. 대한매일은 일본의 무력을 앞세운 침략을 신랄히 비판하고 항일 의병투쟁을고무,격려하였다.대한매일의 기사와 논설에 감동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의병들이 많았다.일본은 이 신문의 선동으로 항일 무장투쟁이 격렬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국에 발행인 배설(裵說·Ernest Thomas Bethell)을 추방하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외교침략에 대해서도 대한매일은 그 실상과 일본의 야욕을 폭로하고 강력히저항하였다.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탈취하였고,형식상의 조약 또는 협약을강제하여 국권을 단계적으로 강탈하였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맺은 태프트(Taft)­가쯔라(桂太郞)협약,제2차 영일동맹,러시아와의 포츠머스조약과 같은 조약 또는 협약으로 한반도에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확보하고,열강으로부터 한국 강점의 동의를 얻어내었다. 대한매일은 이때마다 부당함을 역설하였으며 고종이 영국 특파원 더글러스스토리에게 전달한 밀서를 보도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일본은 경제침략으로 한국 경제를 파탄상태에 이르게 하였다.이에 저항하여 거족적인 민중운동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매일은 국채보상의연금 총합소가 되었다. 일제는 이를 와해하기 위해서 신문 제작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양기탁을 투옥하여 영·일 간에 외교마찰을 빚기까지 했다.통감부는 침략을 선전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신문을 활용하였다.일제는 친일지 지원과 민족지 탄압이라는 양면정책을 쓰면서 일인들이 직접 한국에서 한국어로 신문을 발행하여친일선전을 일삼도록 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한매일의 위력을 당할 수는 없었다. 역사적 격동 속에서 대한매일이 창간된 지 95년의 세월이 흘렀다.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구국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결의를 천명하면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대한매일의 역사적 사명은 막중하다.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구한말 대한매일이 창간되던 때나 근 1세기의 세월이 흐른 오늘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국은 이해관계를 교차하면서 더욱 복잡미묘한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당시와 비교하면 일본이라는 하나의 침략자가 아니라 더욱 복잡한 도전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군사적으로는 분단의 고통과 동족상잔의 큰 전쟁을 치른후유증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으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상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IMF가 끝나지 않았고 앞날도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외교적으로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국익의 증대와 통일을 위한 외교력의 강화는 절실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언론의 사명은 막중하다.사회적 위화감과 지역간·계층간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슬기롭게 해소하고 밝은 미래를 향해서 전진할 것인가. 대한매일은 해답을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일 책무가 있다.언론사상 가장 빛나는 민족지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 그것이다. 95년 전 창간한 대한매일의 정신을 거울삼아 민족 번영과 화합을 선도하고역사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한국 언론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에 따른 각오가 새로워야 한다. 정보양 한국외대 교수·언론학
  • 민족정신회복운동 나선 시인 金芝河 특별인터뷰

    요즘 김지하(金芝河·58)시인의 화두는 ‘단군(檀君)’이다.구체적으로 말하면 ‘개방적 주체’를 표방한 단군사상이다.서울대 미학과 학생이던 지난 63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으로 첫 투옥된 이래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청·장년기를 보낸 그가 ‘긴 여행’에서 돌아와 90년대 중반에 안착한 자리는 인간중심의 ‘생명사상’이었다.이제 다시 한 단계 도약하여 ‘단군’을 만났다.지난해 전통 풍류도를 되살리는 문화운동단체인 율려(律呂)학회를 발족한이래 김지하의 사상적 행보는‘담론부재’의 현 시점에서 또 하나의‘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22일 오후 안국동 로타리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서북쪽으로 탁 트인 창,양식사무실 한켠에 한식으로 꾸민 응접실은 그의 사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김지하가 임시대표를 맡아 지난 21일 발족한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약칭‘민족정신’)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민족정신’이 표방하는 것은 종교운동입니까,사상·정신운동입니까. 한마디로 동학사상과 그동안 내가 주창해온 생명사상,그리고 단군사상을 하나로합쳐 민족정신 회복의 구심력을 되찾자는 겁니다.근대 이후 우리 지식인들은 밖(서양)으로만 관심을 돌려 민족의 사상적·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하였습니다.종교 차원이 아니라 문화운동 차원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 줏대를 바로세우자는 거죠. 정신공황·경제파탄에 담론부재까지 겹쳐 오늘의 형국은 마치 ‘적막강산’과 꼭 같습니다.한마디로 21세기는 ‘문화담론’시대입니다.미학적 생산성,영적 창조력을 키워나가려면 예술가들의 깊은 명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시인이 갑자기 ‘단군’을 거론하는 것은 뜻밖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돌이켜보면 내 청춘은 ‘뿌리를 찾는 여행’이었습니다.4·19후에는 탈춤·판소리·민요 등 민족문화 운동에 탐닉하였고,동학사상을 거쳐‘오적(五賊)’을 발표한 직후에는 가톨릭에 귀의해 내적 평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14년전 강증산(姜甑山)동네에 갔다가 단군그림을 보고 영적 충격을 받았습니다.일종의 ‘정신적 환상’이었죠.그런데 당시 나를 치료하던 의사가 집단무의식,즉 조상문제가 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그 때 처음 ‘단군’을 깨달았습니다. ■‘단군’을 모체로 한 운동은 자칫 배타적·국수주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프랑스 음악가가 우리의 영산회상을 듣고는 ‘하늘의 음악’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습니다.문화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열매입니다.네것 내것하는 식으로 나누지 말고 단군사상을 ‘타자(他者)를 흡수하는 주체’로 승화해 세계화 시대의 지구적·세계적 사상으로 키워보자는 거죠.민주주의는서양만 해온 것이 아닙니다.이미 단군시대에도 신시·화백과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있었습니다. ■김 시인이 주장하는 ‘개방적 주체’란 구체적으로 무얼 얘기합니까. 우선 각 문화권이 ‘나와 다른’문화를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서양 지식인들은 지적으로 한계에 이르면 고대로 돌아갑니다.이들이 마르크스,니체,푸코,하버마스 등 대표적인 현대 서구 사상가들을 뛰어넘어 안착한 곳은 바로 그리스 시대입니다.‘고대로 돌아가는 큰 물결’을이룬 셈이죠.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모두 서양사람들을 베껴올줄만 압니다.IMF이후 우리도 지구시대의 민족주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우리는 우리 스스로 서야 합니다. ■단군의 실존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만. 단군의 실체는 고구려 고분의 묘지(墓誌)나 광개토대왕비(碑)등 명문(銘文)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통감부시절 일제는 총 51회에걸쳐 상고사 관련사료 23만건을 몰수했습니다.그런데 그 사료를 파기한 것이아니라 모처에 비밀리에 보관해 두고는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참고하여 단군사 등 상고사를 이 지경으로 왜곡하였습니다.우리가 곰의 자식이라니 말이나되는 얘깁니까. ■‘선언’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계획한 사업은 어떤 것들입니까. 왜곡된 상고사 교육을 중지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상고사 연구붐을 일으켜나가면서,남북·재외교포를 망라한 ‘민족역사교육 문화회의’를 소집할생각입니다. 아울러 일제가 탈취해간 상고사,특히 단군 관련사료 반환운동을적극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남북문제도 쌀·비료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닙니다.남북이 동일한 담론인 ‘단군’으로 만나서 정신적 통합을 먼저 이룩해야합니다.당장 통일은 못해도 화합은 이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한마디를 던졌다.“내후년이면 환갑입니다.일생의마지막 과업으로 알고 이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생전에 ‘문화국가’건설을 소망했던 백범(白凡)의 영(靈)이 요즘 나를 이끄는 듯 합니다.그러고보니올해가 백범 50주기지요”정운현기자 jwh59@
  • 장마철 퀴퀴한 옷 냄새 식초 한방울이면‘끝’

    장마철,집안의 가장 큰 적은 ‘습기’와 ‘냄새’.연일 계속되는 비로 인해 옷은 눅눅해지고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 불쾌감이 더하기 쉽다. 쾌적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집안 관리 요령을 청소 전문업체 ‘크린토피아’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습기제거 이불이나 커튼 천소파의 습기는 볕이 좋은 날 햇빛에 건조시켜 없애고 곰팡이·담배·음식냄새 등 퀴퀴한 냄새는 섬유탈취제를 뿌려준다. 얼룩이 생겼을 경우엔 중성세제를 희석시킨 물에 수건을 담갔다. 꼭 짜서두드리듯 닦아주고 드라이어를 이용해 말린다. 가구와 냉장고,세탁기 오디오 등은 벽면에서 10㎝ 정도 떼어둬야 습기가 덜 찬다.가구는 자주 왁스칠을 해 뒤틀림을 방지한다. 오디오는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아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여름철에도 1주일에 한번 정도는 난방을 해주어야 집안의 눅눅함을 없앨 수 있으며 창틀과 벽면 사이의 틈을 방수제나 양초 등으로 덫칠해두면 습기가차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냄새제거 주방 싱크대는 소다 한 스푼을 푼 물에 헝겊을 적셔 닦아 준다음 세제에식초 몇방울을 떨어뜨려 다시 한번 닦으면 소독은 물론 곰팡이를 제거할 수있다.그리고 볕이 좋은 날을 골라 바람이 잘 통하도록 싱크대 문을 열어놓거나 선풍기를 틀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도 방법. 배수구 주방용 세제를 이용,솔이나 치솔로 닦아내고 식초와 물을 섞어 부으면 악취가 사라진다.평소 설거지 후 뜨거운 물을 부으면 기름기와 악취를제거할 수 있다. 쓰레기통 쓰레기통이나 봉투를 사용하기 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말린 녹차 잎이나 커피 찌꺼기를 넣어 두거나 소독용 에탄올을 뿌려 두면 악취를 예방할 수 있다. 빨래 의류에 핀 곰팡이 세탁하려고 모아둔 옷에 간혹 곰팡이가 생기는 경우가있다.보통 세탁으로는 없어지지 않는다.먼저 햇빛에 내놓아 살균을 해서 곰팡이가 날아가도록 한 후 표백제를 200배의 물에 희석한 표백액에 담가두었다가 세탁을 하면 깨끗해진다. 냄새 제거법 옷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면 세탁할때 마지막 헹굼물에 섬유린스 대신 식초 1작은 술을 넣으면 냄새가 말끔히 제거되고 옷도 부드러워진다.자주 세탁하기 힘든 양복이나 여성용 정장 등은 섬유탈취제를 뿌려주면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스피드 의류건조법 탈수 후 큰 목욕 수건 위에 빨래를 편편하게 놓고 수건을 둥글게 말아 무거운 물건을 얹어 놓으면 수건이 물기를 흡수하여 빨리건조된다.여기에 드라이어나 선풍기,급할때는 다림질을 해주면 빨리 마르고살균효과도 겸할 수 있다. 비에 젖은 운동화는 맥주병 두개를 준비해 병입구에 한 짝 씩 엎어 두어 물기를 뺀 다음 신문지를 넣어 두면 습기를 흡수,빨리 말릴 수 있다. 옷장 속에 오래 넣어 둔 옷은 주름이나 구김이 생겨 다림질을 하거나 세탁을 해야한다.그러나 목욕하고 난 후 수증기가 가득 찬 목욕탕에 구겨진 옷을 하룻동안 걸어 둔 다음 바람을 통하게 하면 냄새도 없애고 구김도 펼 수 있다. 강선임기자 sunnyk@
  • 빅3 히트예감 상품들

    가전업계의 최근 마켓팅 전략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급화 전략’이다. 이같은 방향설정은 IMF관리체제 이후 뚜렷해진 시장의 양극화 현상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삼성,LG,대우 등 가전 3사가 잇따라 내놓은 완전평면TV나 초대형 냉장고 등 고가품들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모으면서 히트상품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다. ?鸞걀으4? 완전평면 TV 지난해 8월 출시된 삼성의 완전평면 TV ‘명품’은지난 4월 처음으로 월 4,500대를 돌파하는 판매실적을 거뒀다. 현재 국내 완전평면TV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29인치 고급군에선 판매점유율 80%를 기록중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2중주사(走査)방식으로 화질이 기존 TV보다 2배정도 선명하다.별도의 주변기기없이 PC와 연결할 수 있고 디지털 화질을 수신할 수 있어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비한 제품이다. LG가 내놓은 완전평면 TV ‘플라톤’도 지난 1월 3,000대의 판매실적을 거둔 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5월엔 6,000대를 넘어섰다.또 지난 4월엔중국과 중남미에 국내 처음으로 완전평면 TV5,000대를 수출,일본제품과 해외시장 쟁탈전에 돌입했다. 최근 국내 최대 크기인 32인치 완전평면 브라운관을 개발,오는 7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으로 대형화,고급화추세를 선도한다는 복안이다. ?蘿?국산돌풍’ 초대형 냉장고 ‘지펠’ 냉장고는 삼성의 고급화 전략 제품의 하나.한때 외국산이 국내시장의 90%를 차지했던 상황을 역전시킨 효자상품이다.올해 상반기 예상판매량 3만5,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50%정도의 급성장이 기대된다.양문개폐형 냉장고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독립냉각방식 채용 ▲얼음과 물 디스펜서 설치 ▲강력 탈취기능 채택▲육류및 생선 전용실과 분리형 야채/과일실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회사명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브랜드만 강조하는 ‘아웃 브랜드’ 홍보전략도 주효했다. LG의 ‘디오스’는 ▲외국산보다 14㏈낮은 24㏈의 세계 최저수준 소음 실현 ▲1등급 소비전력의 66% 수준에 불과한 초절전형 달성 ▲유럽스타일의 외부 디자인과 한국음식문화에 맞는 넓은 내부공간의 결합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5월 4,000대를 판매,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700ℓ급 대형 시장의 75%정도를 점유하고 있다.하반기중 600ℓ급도 내놓을 예정이다. 대우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장기화로 회사내부가 어수선한 가운데서도지난 3월 내놓은 입체냉장고 ‘동시만족’의 판매호조가 위안이 되고 있다. 550ℓ급의 경우 기존 1등급 냉장고의 절반수준인 월 38㎾로 소비전력을 줄인데다 냉각성능을 2배이상 향상시켜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5)-광개토대왕의 水軍상륙작전

    ‘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軍…取五十八城村七百…’ 광개토대왕이 즉위 6년 되던 병신년에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군을 토벌한 다음 58개 성과 700촌을 얻었다는 내용의 광개토대왕 비문의 기사이다. 삼국사기가 실수(?)로 빠뜨린 대왕의 수군작전을 동양에서 가장 큰 금석문이 새겨놓았다.이 비(碑)의 주인공은 우리 역사상 가장 넓게 영토를 확장했고 군사전략에 탁월했으며,세계국가적인 성격이 강했던 시대의 대왕,왕중의왕인 태왕,즉 광개토대왕이었다. 사람들은 광개토대왕을 군사전략에 능하고 영토확장에만 힘쓴 정복군주 정도로 간단히 이해하고 있다.그러나 4∼5세기의 동아시아와 고구려는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대였고,그 힘의 중핵에서 자리잡고 있었다.4세기 후반 중국지역은 남북분단과 혼란의 시대였다. 고구려는 요동을 중심으로 북방종족들과 화전 양면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었다.특히 해양을 활용,군사외교를 펼쳤다.이때 백제는 근초고왕이 황해도지역으로 북진하였다.경기만을 장악하고 황해중부 해상권을 획득해 일본열도와한반도 중부이남,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교역망을 구축하고자하였다.그리고 백제 중심의 국제질서로 재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정면 충돌을 하였고,결과는 고구려의 좌절로 일단락 되었다. 이같은 시기에 광개토대왕이 등극하였다.18세에 즉위한 청년군주인 광개토대왕은 첫해부터 왕성한 정복활동을 펼쳤다.북방종족들과는 화전 양면책을구사하였다.그러나 숙군성,요동성을 공격하고,406년에는 3,000리를 행군해온 연(燕)을 물리치면서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이는 요동반도와 서한만,대동강 하구를 잇는 황해동안의 해상로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비문에 의하면 대왕은 즉위초에 비려(碑麗)를 토벌하고,3개부락 6,700영(營)을 공파했으며,수많은 우마군양(牛馬群羊)을 획득했다고 한다.요동과 동몽고지역을 가로지르는 시라무렌강의 상류 초원지대까지 진출했다.410년에는동부여를 친정하여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일대도 영역으로 하였다.북부여의옛땅도 이때 영토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런데 비문에는 백제와 관계 등 주로 대왕의 남진정책에 비중을 둔 듯하다.그리고 해양활동이나 수군작전이 여러번 기록되고 있다.대왕은 즉위 2년에4만의 군사로 백제의 10현을 함락하고,10월에는 최전방기지이자 수군함대사령부가 있음직한 관미성(關彌城:강화도 북부)을 함락시켰다.그 후 6년(396)대규모 수군을 투입해 백제의 58성과 700촌을 탈취했다.기병과 수군을 활용한 선제공격 및 협공의 수륙양면작전이다.관미성 외에도 당시 비성(沸城:김포) 아단성(阿旦城:아차산) 미추성(彌鄒城:인천) 모로성(牟盧城:용인)등이점령된 것으로 보아 육군외에 수군은 3개방향으로 상륙했던 것 같다. 첫째는,대동강유역에서 출발,예성강하구와 한강이 만나는 강화북부에서 한강하류를 거슬러 오면서 김포반도와 수도를 직공하는 것이다.두번째는,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한성으로 진입하는 것이다.그리고 세번째는 남양만으로상륙하여 수원 용인 등을 거쳐 한성의 배후를 치는 것이다. 이런 전쟁양상은 경기만 쟁탈전및 서해안의 해상권 장악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경기만은 해상교통및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통합시키는 내륙수로교통의 요충지였으며,백제의 해양활동 근거지였다.광개토대왕은 한성을 공멸하면서 서해연안의 요충지들을 점령하여 백제의 수군활동을 마비시키고,황해중부연안의 해상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가 해양봉쇄를 통한 차단전략을 꾀하자 외교적으로 고립된 백제는 왜(倭)와 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비문에는 영락(永樂)10년 경자년(400년) 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파견,백제 가야 왜의 군대를 물리치고 신라를구원했다고 한다. 이는 신라를 복속시키고, 해양을 고리로 부상하는 백제와가야, 왜의 외교질서를 신라를 이용하여 제어하려는 것이었다. 대왕은 이어 가야 영역까지 침범하였다.함안 말산리,고령 지산동,동래 복천동 고분군 등에서 고구려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가야지역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출구이자 교섭 창구였다.고구려가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읽을수 있다.대왕 14년에는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황해도지역인 대방계를 침입했으나 대왕의 친정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궤멸시켰다. 이러한 상황과 동아지중해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고구려는 이미 일본열도에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대왕 18년(실성왕 7년),신라는 대마도를 정벌하려다 중지하였다.이같은 사실은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 영내에 주둔해 있을가능성으로 보아 공조체제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렇듯 광개토대왕은 전통적 육지질서를 기반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해양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아지중해 내부의 각 국을 연결함으로써 자국 중심의 거대한 망(중핵)을 구성하는 정책을 추진했다.황해 해상권를 확보함으로써 대륙의 남부와 한반도 북부,황해중부 이북의 해양에 걸쳐 있는 동아지중해의 중핵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1,600년 가까이 만주벌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글자 하나하나는 21세기를맞으면서 우왕좌왕하는 후손들에게 해양력의 강화와 국제질서 재편전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에어컨 시장 “벌써 한여름”

    올 여름이 더울까.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에어컨 시장은 이미 달아올랐다.업계는 올 내수규모를 80만대로 봤다가 뒤늦게 20만대 이상 올려 잡았다.일각에서 품귀현상도 우려하지만 예약후 배달까지 시일이 걸릴 뿐 못사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다.신청하면 배달까지 늦어도 10일이면 된다. ■기능성 에어컨시대가 열린다 2∼3년전 에어컨에 상당히 업그레이드됐다.냉방기능으로는 차별화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기술차가 사라지자 업체들은 디자인과 부가기능 제품의 다양성으로 승부를 걸고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항균,탈취,제습,음이온 발생,급속냉방,초절전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기능성 에어컨이 판을 치고 있다.두께도 더욱 얇아졌다.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여파로 가격대 별로도 다양하다. 각사마다 20∼40여개의 모델을 준비했다.기격은 60만원대에서 300만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LG전자의 에어컨에 앞에는 ‘바이오’,뒤는 ‘사계절’이라는 단어가 함께 한다.여름철 찬바람만 내는 장치만은 아니라는 의미다.12∼23평형의 스탠드형 16개 모델과 4∼17평형 분리형 17개모델 등 33개 신제품을 내놓았다. 가격도 10%가량 낮췄다.스탠드형에서 기존의 초소형인 13평형보다 작은 12평형을 추가해 스탠드형 최저가격을 170만원대에서 140만원대로 낮췄다. ■삼성전자의 주제는 ‘건강’이다.신제품에 5단계 항균시스템을 적용, 항균률 99%를 자랑하는 에어컨을 실현했다는게 삼성측의 설명이다.총 43개모델을 선보이고 있다.여기에 절전기능도 강화,종전제품보다 스탠드형은 52%, 분리형은 67%를 줄였다.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모서리 설치형,급속냉방, 제습기능을 비롯해 취침운전, 송풍운전, 원거리 운전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이중 일부 기능을 빼고가격을 낮추는 등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대우전자는 캐리어와 결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에어컨사업을 시작했다. 특수활성탄 산화티타늄 아연을 섞어만든 하이브리드 촉매를 이용한 ‘수피아’ 시리즈 22개 모델을 내놓았다. 자연광 상태는 물론 어두운 실내에서도 음이온을 발생시켜 숲속청정을 실현했다고 대우측은 설명한다.성능을 일시적으로120% 끌어올리는 강력 터보냉방,정음냉방, 제습기능 등을 달았다. 만도위니아도 염가형 3개모델과 자동차 에어컨용 열교환기를 적용한 2종을전략모델로 내놓았다.8평 분리형과 15평 스탠드형인데 크기가 다른제품의 63% 수준.센추리와 캐리어도 항·살균 및 탈취효과 기능을 강화한 신제품들을출시해놓고 있다. 김병헌기자 bh123@
  • 도심에 자원재활용 처리장 생겼다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에 전국 최초로 지하 자원재활용처리장 시설이 들어선다. 중구(구청장 金東一)는 의주로2가 16의 4 서소문공원 지하에 지하 3층,연건평 3,542평 규모의 ‘중구 자원재활용처리장’을 건설,오는 25일 준공식을가질 예정이다. 250억원을 들여 4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건설되는 이 자원재활용처리장은하루 평균 450t의 일반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지하 1층에는 재활용품 집하시설이 들어서고 지하 2·3층에는 쓰레기 투입시설과 적환 및 압축시설이 각각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서부역 앞,한양공고 옆,외환은행 본점 앞,황학동 등에 위치한 노상적환장 4곳과 장충동·신당동 등에 산재해 있는 재활용선별장 13곳은 없어진다. 이 가운데 쓰레기 압축시설은 하루 450t,재활용 처리시설은 하루 20t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다.이밖에 집진·탈취·세차시설 등도 갖추고 있어 종합적인 청소시설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중구의 하루 쓰레기 발생량이 일반쓰레기 272t,재활용쓰레기 11t인점을 감안하면 관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 처리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쓰레기 운반비용 절감 및 환경개선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구는 기대하고 있다. 구는 현재 11t 트럭으로 하루 67회씩 김포매립지까지 쓰레기를 실어나르고있어 적지않은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 왔으나 재활용처리장이 가동될 경우 운반차량이 하루 35회로 줄어들게 된다.여기에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연간 16억9,000여만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고가 밑과 공터 등에 아무렇게나 방치됐던 쓰레기를 지하 적환장에 수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각 동의 재활용품 수집소를 폐쇄,주변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게 됐다. 구 관계자는 “대도시 중심부에 지하시설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선진형 청소행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13)분출하는 욕구(上) /사형수 편지

    ‘혁명은 독한 술과 같다’던가. 4월혁명 후 한국사회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李承晩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시민은 제각각 품고 있던 기대와 욕구를 마음껏 뿜어냈다.남자나 여자,노인과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시위에 나서 목청을 높였다.그것은 어쩌면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자의 권리행사였다.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고들 말한 張勉정부 8개월여.그때일어난 데모 중에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전근 반대’를 내세워,또 ‘어른들은 이제 데모를 그만 하라’고 요구하며 각각 데모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은 국회의원이 경찰관의따귀를 때렸다고 시위를 벌였다.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논산훈련소에서는정훈부 사병들이 “宋모중령이 우리를 머슴처럼 부려먹는다”고 항의데모를벌이려고 해 장교들이 가까스로 저지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데모가 모두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많은 부분은 자유당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6·25 때의 양민학살사건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예다. 1960년 5월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는 주민 70여명이 朴모씨를 불태워죽이는 처참한 사건이 일어났다.51년 이 지역에서 양민학살이 있었는데 당시 면장이던 朴씨가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유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사건발생 후 경찰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주민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곳곳에서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요구가빗발쳤고 이에 따라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직접 조사에 나섰다.그결과 신원면에서는 51년 봄 3개 부락 주민 600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金宗元이 지휘하는 화랑부대에게 학살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 국회조사반이 파악한 6·25 당시의 양민 피살자는 경남 2,892명,경북2,200명,전남 524명,전북 1,028명,제주 1,878명 등이었다. 張勉정부 하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시위사태는 60년 10월11일 발생했다.‘4월혁명유족회’회원을 비롯한 시민·학생 수천명이 민의원에 난입한 것이다. 그 원인은 4·19 때의 발포자,3·15 부정선거 관련자,정치깡패 등 4월혁명을 불러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는 피고인들에게 1심 형량을 선고했다.발포건과관련해서는 柳忠烈 당시 서울시경국장에게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언도했을 뿐 역시 사형이 구형된 洪璡基내무장관에게는 징역 9월이,郭永周 대통령경호관에게는 징역 3년이 각각 떨어졌다.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또는 징역 8월∼5년이 언도됐다. 민심은 크게 격앙했다.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잇따르다가 급기야는 10월11일 내각책임제 권력의심장부인 민의원을 강타한 것이다. 국회 난입에는 환자복에 목발을 짚은 4·19 부상자 50여명이 앞장섰다.이들은 본회의장으로 몰려가 의사진행을 중단시켰다.그들은 “하루빨리 혁명입법을 완성하라”고 요구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신·구파가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고 강요했다.이에 구파의 金度演과 신파의 林文碩,구파의 徐範錫과 신파의 李哲承이 억지로 악수를 나누는해프닝이 벌어졌다. 그 상황을 郭尙勳 민의원의장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부상학생의 위세가 당당하여 마치 부상학생들의 천하와 같은 감이들었고 아무도 감히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정권을 우리가 주었는데’하는 생각은 ‘부상학생 천하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국회에 경호권을발동하여 한번 크게 호령을 해줄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그들의 항의방법이너무도 졸렬하여 그만 자신을 잃어버렸다”거듭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하고 정부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 듯한 이같은 상태,훗날 ‘무능하다’는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이 상황을 張勉정부는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 張勉의 뜻은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한번 주어보자”는 데 있었다(회고록에서 인용).그는 “오랫동안 자유당정권 하에서 억눌렸던 국민이 자유가허락된 이때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한번은 마음껏 발산시키고 나서야 가라앉을 것은 어쩔 수 없는 뻔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작용했음도 물론이다.張勉은 “귀와 입으로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는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었다.결국 張勉은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혐오를 느낄 때 비로소 진실한 자유를 얻는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었다. 張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李泓烈(77)은 4·19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한사건 직후 비서관들이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건의했다고 기억했다.자신을 비롯해 宋元英공보비서관,정보담당인 해군尹대령 등이 시국을 걱정하다 張총리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별도기구를 직속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비서진을 대표해 말했더니 張총리가 “泓烈군,무슨 소리야.민주적인 행정을 하자고 투쟁을 해서 총리가 된 것 아닌가.비상수단을 꼭 써야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라고 안색을 바꾸며 꾸짖더라는 것. 張勉과 그의 정부가 믿은 것은 시간이었다.세월이 지나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으면국민은 무절제한 자유가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깨닫겠지,그리고그 자각(自覺)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다.실제로 1961년에 접어들자 데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5·16의 총성이 울려퍼지기전까지 張勉정부의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는 꽃망울을 맺어가고 있었다. - 張勉 저격 共謀 사형수 편지 첫 공개 張勉의 인품과 인간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편지 2통이 8일 공개됐다.그의맏아들인 張震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가 최근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편지들은 한때 그의 목숨을 노린 崔勳이 1965∼66년에 걸쳐 보낸 것이다. 崔勳은 1956년 9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張勉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3명 가운데 하나이다.현장에서 張勉에게 직접 권총을 쏜 金相鵬과,金에게 권총을 마련해준 李德信(당시 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사이를 연결해준 것이 崔勳이었다. 65년 7월27일자 소인이 찍힌 첫 편지에서 崔는 張勉에의 존경심과 고마움을 절절히 토해냈다.그는 “진작 편지를 올릴 마음 간절하였으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박사님의 쓰라린 상처를 위로해드리는 일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은혜를 못잊어 조석으로 박사님을위해 기원하는 한 생명이 이 땅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점만은 알려드리고싶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張勉총리가 60년 10월1일 감형을 해줘 사형을 면한 일,그해 12월에는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 털내의를 건네준 덕에 따뜻하게 겨울을 난 일들을 기억했다. 崔는 “박사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상을 시범하신 사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박사님이 ‘그대의 죄를 전부 사해주노라’라는 말씀을 친히 들려주실 날이 오기를 간망(懇望)한다”고 기원했다. 張勉은 崔勳에게 바로 답장해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여러차례 오갔고,그 편지에서 張勉은 가톨릭에 귀의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현재 남아 있는 두번째 편지(66년 1월9일자 소인)에 이를 알려주는 구절들이 나온다. 새해인사를 겸해보낸 이 서신에서 崔勳은 “박사님의 편지를 받은 후 반년 이상이나 신중히 생각한 결과로 근방의 주임신부님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톨릭에 입문할 결심임을 알렸다.이어 “영세를 받기까지는 자주 편지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오해 마시기 바라며 그러는 것이 박사님의 심경에 위로를 드리는 것이라는 졸렬한 생각에서”라고 밝혔다. 張勉과 崔勳 사이에 오간 편지는 이 두 통밖에 남아 있지 않다.둘 다 우편봉함엽서이며,‘대구시 삼덕동 82의 1’에 사는 崔勳이 서울 명륜동 張勉의자택으로 보낸 것이다. 崔勳이 편지를 보낸 시점은 張勉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탈취당한 지 4년이 지난 때였다.張勉이 정계에서 완전 은퇴해 자택에서 가톨릭 서적을 번역하는 데 몰두한 시절이다.따라서 崔勳의 편지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았던 정치가,한때 그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사형이 확정됐던 사형수.역사의 현장에서 벗어나 둘만이 나눈 대화는 張勉을 가까이서‘모신’ 어느 누구의 증언보다도 張勉의 인간적인 면모를 진솔하게 들려준다.그 귀한 ‘증언’이 가족도 모르게 30여년을 숨어지내다 올해 ‘張勉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세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張勉에게 총을 쏜 金相鵬은 복역을 마치고 나와 목사가 되었다.金목사는 지난 87년 張勉의 셋째아들인 張益주교(춘천교구장)를 만나 ‘위대한 인격자 張勉’을 함께 회고했다. 李容遠
  • 3·1항쟁 80돌 아침에/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3·1항쟁 80주년이다. 1세기에 가까운 세월의 더께와는 달리 갈수록 엷어지는 항쟁의 정신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그날을 맞는다. 해마다 3월이면 3·1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은 일제 잔재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는 지식인들까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일제가 남긴 ‘역사용어’에 대해 살펴본다. 일제는 한국침략과 지배를정당화시키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각종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 용어를 우리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도록 부끄러움을 모른채 그대로 쓰고 있다. ▲정한론(征韓論)― 중·고등학교 국사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정한론’이란 용어가 수록돼 있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본 정부내에서는 조선을정벌하여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고 아시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은 이미 강호(江戶)시대의 해방론(海防論)에 이어 막부(幕府) 말기의정한론,다시 명치 이후에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으로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먼저 정(征)자의의미를 살펴보면,두인변과 바를 정(正)자가 합쳐서 생긴 회의문자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또는스승과 제자 즉,올바른 웃어른이 어린아이의 잘못을 꾸짖어 훈계한다는 뜻이다(여씨춘추). 또 다른 의미에는 정(征)이란 천자(天子)가 죄인을 호되게 꾸짖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진정벌’이나 ‘대마도정벌’의 경우,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할때 주체적 의미로 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의미의 ‘정한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일제의 침략론’으로써야 옳다. ▲이조(李朝)― 우리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합병하면서 한국민에게 조선왕조를 격하,한 씨족사회를 합방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만든 용어다. 즉,일본은 ‘조선’이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씨족 대표가 지배하는 사회를 해체하고 대신 자기들이 다스리게 되었으니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따위를 갖지 말도록 조작한 용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조 500년’,‘이조백자’,‘이조시대’ 어쩌고 하면서 역사를 말한다. 정식국호는 ‘대조선왕국’(1894),‘대조선제국’(1895),‘대한제국’(1897)이고 통칭 ‘조선왕조’또는 ‘조선’이라 써야 옳다. ▲의병토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일본군이한국의병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많다. ‘토벌’은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는것인데,왜병은 관군이고 우리 의병은 반란군이란 말인가? ‘의병학살’로 써야 한다. ▲당쟁― 흔히 조선왕조가 ‘당쟁’으로 망했다고 말한다. 당쟁이란 용어는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을 지낸 幣原단이 1907년에 쓴‘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처음으로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쓰면서 조선시대를 당쟁시대로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細井이란 자는 “조선사람의 혈액에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고,결국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체질론을 폈다. 조선시대에 파쟁이 심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어느 나라든 정도의 차이일 뿐 정치적 파쟁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민비― 고종의 왕비 민황후를 일제는 민비로 비칭했다. 1895년 일본공사미우라가 일본군대와 정치낭인들을 내세워 왕궁을 습격하고 황후를 시해한뒤 정권을 탈취하는 을미사변의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7년명성황후로 추책하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일제는 한국의 황후를 시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민비’라 부른 것을 우리가 그대로호칭한다. ▲모의(謀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모임을 ‘모의’라고 표기하는 경우가흔하다. 모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한 음모”를 말하는데,독립운동이옳지 않은 일인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협의’나 ‘논의’로 써야 한다. ▲징용(徵用)― 일제시대 많은 한국인이 전쟁터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노역에 시달렸다. 이를 ‘징용’이라 부르는데,원래 징용은 국가가 사람을불러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징용’당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당한 것이다. ‘징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대― 정신대란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일제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한 여성을 어찌 정신대라 부를까.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 표기하자. 3·1항쟁 80주기를 맞아 일제의 용어 한가지라도 바로 잡으면서 선열들의구국정신을 기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kimsu@
  • [외언내언] 영화 ‘쉬리’

    잘 만들어진 국산영화 한 편이 전국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개봉된지 열흘 만에 1백만명 관객동원이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영화제목은‘쉬리’.얼핏 보기엔 외화 제목 같지만 ‘쉬리’는 국내의 1급수 청정 하천에서만 서식하는 토종 물고기 이름이다. 우아한 자태로 헤엄치는 것 같지만아무리 빠른 물살도 끝까지 거슬러 역류하는 앙칼진 승부근성을 지니고 있다.‘쉬리’란 한 특수군단이 내건 통일작전 암호이며 아무리 거센 물살도 역류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밀첩보원들의 목숨을 건 활약상이 전편에 펼쳐진다. 영화 ‘쉬리’의 성공은 ‘서편제’이후 최대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더구나 우리의 햇볕정책 이후 남북문제를 다룬 소재의 탁월성과 무제한의 제작비 투입이 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공수해온 최첨단 무기, 총기와 함께 신소재 액체폭탄인 CTX를 둘러싼 탈취와 추적은 폭파직전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한다.여기에다 종전의 국산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종 고난도 폭파장면과 변화무쌍한 촬영의 역동성,편집·연출 기술이 완성도를 성취하여 홍콩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간다는 평을 듣는다.또 상식선에 그치지 않고 영화 속에 숨겨진 역할의 이중성과 의외성을 때맞춰 돌출시킴으로써 새로운 감동과 재미,관객이 스스로생각하고 해답을 얻게 한다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이 영화를 만든 강제규감독은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만드는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번에도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관객이 외면하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스크린 쿼터제의 냉엄한 시장논리는 국제기준에도 흔치 않은 제도지만 국내 팬을 사로잡고 국제시장을석권할 명작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거센 통상압력과 제도라도 맥을 못추는 법이다.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어쩌면 한국 영화부흥의 꿈을 키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던지면서 침체했던 우리 영화계가 술렁이는 분위기다.‘한 편의 영화가 한 나라의 영화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영화평론가 김종원씨의 말이 옳기를 바란다.결국은 ‘좋은 영화’는 관객이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배영화도 자연스럽게 물리치는 힘이 된다는 교훈을 이 영화는 확인시키고 있다./이세기 논설위원
  • 조 치 훈-고바야시‘인고의 대결’3라운드

    인고(忍苦)의 대결 3라운드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평생의 라이벌인 조치훈(趙治勳) 9단(43)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小林光一·47)이 일본 기전 서열 1위인 기성전 도전기에서 맞닥뜨렸다.기타니(木谷)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두사람은 지난 30여년간 타이틀을 주고 받은 숙적이지만 이번 대결은 여느 대국과는 다르다.개인적 아픔을 안고 대국이 진행되고있기 때문이다.두사람간 첫번째 인고의 대결은 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조9단이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기전 랭킹 1,2,3위인 기성,명인, 본인방을싹쓸이하는 ‘대삼관’(大參冠)의 위업을 이룩하자 고바야시 9단이 85년 명인전을 탈취하며 반격에 나섰다.이어 이듬해인 86년에는 기성전을 놓고 한판대결을 벌인다.당시 교통사고를 당한 조 9단은 휠체어에 앉아 수성에 나섰으나 2-4로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이른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휠체어대국’으로 인고의 대결 서막이 오른 것이다. 두번째는 97년 벌어진 23기 명인전.기성,명인,본인방을 휩쓸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 9단은 고바야시 9단을 명인전 도전자로 맞아 들인다.당시무관(無冠)의 세월을 보내다 국제기전인 후지쓰배를 차지,재기의 조짐을 보인 고바야시는 아내를 잃은 아픔을 딛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그러나 결과는 4-2로 조 9단의 승리. 세번째는 망부(忘父)의 슬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23기 기성전.조 9단은지난 13,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결승 1국에서 아버지 조남석(趙南錫)씨가 사망한 비보를 접하지 못하고 대국에 나서 고바야시 9단에게 승리를 거뒀다.조 9단은 대국이 끝난뒤 곧바로 귀국했으나 이미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승부의 분수령인 3국을 앞두고 있는 조 9단은 지난달 26,27일 이틀간 열린 2국에서도 승리,2승으로 타이틀 방어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전문가들은 조 9단이 힘과 기세에서 앞서 타이틀을 방어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3국에서 고바야시 9단이 승리하면 두사람간의 특유의 라이벌 심리로 인해 어려운 승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任泰淳기자 stslim@
  • 의회제도 3원화 … 정당정치 폐단 없애자

    지난 9일자 대한매일 ‘난장판 정국·정치개혁의 계기로’ 제하의 장기표씨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몇가지 구체적 실현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볼까 한다. 정치계는 경제·교육·체육계와 같이 사회의 한 분야를 점하면서도 국가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분야이므로 정치계가 흔들리면 국가사회 전체가 흔들린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국가사회 전체가 잘 움직이려면 무엇보다도 정치계가 잘 돌아가야 한다.정치인이 이성과 양심으로 일을 잘 하면 그 이상 바랄것이 없을 것이나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정당의 일차목표는 정권의 획득과 유지에 있으므로 정당은 이를 위해 당력을 기울여야 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품은 뜻을 펴려면 정권을 잡아야 하므로 정권획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정당은 그 존재 의의조차 없다. 이치가 이럴진대 평화로운 정국운영을 하려면 정권을 탈취하지 않고도 품은 뜻을 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정당정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그단점을 보완하고 전체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큰 힘을 발휘해 거침없이 전진할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의회제도의 시스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말이다. 우선 대한민국 의회를 ‘국민의회’로 호칭을 바꾸고 그 구성을 유당국회(현재와 같이 정당이 지배하는 국회) 무당민회(정당과 무관무연) 약식 국민투표(주민등록번호로 선정한 1,000∼1만명의 투표)의 삼부합일로 해 기계 하나가 고장나도 다른 성한 기계가 있어 무사히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당민회와 약식 국민투표가 제도권 안에 있으므로 소수당이나 야당도 정권을 잡아 품은 뜻을 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다수당 집권당도 마음대로 흔든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전체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 일을 한다는 면모를 보여줄 수 있어 대국민 친화면에서 바람직하리라 여겨진다. 다시한번 원만한 의회제도 운영의 구체적 방안으로 국민의회(유당국회-무당민회-약식 국민투표)안을 확신에 찬 느낌으로 제안한다. 우리는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바쁘다.정치가 마비되면 국가가 마비되어 주저앉는다.힘차고 위험이 덜한 다발(多發) 여객기에 올라타도록 하자.하루빨리 다엔진 여객기를 마련하자.
  • 오늘의 헤드라인-’529호실 사태’ 여야 공방

    국회는 14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金鍾泌국무총리와 朴相千법무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국회 529호실 사태’와 관련한 긴급현안질문을 벌였다. 여당의원들은 질의에서 이번 사건을 국가 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훼손행위로 규정,먼저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기부의정치사찰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시인·사과 및 안기부장 파면을 거듭 요구했다. 국민회의 林福鎭·鄭東泳의원은 “정보기관의 기밀서류가 탈취당한 것은 국기문란행위이자 중대한 안보문제”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검찰에 출두하고,제도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자민련 金學元의원은“안기부 하급직원의 개인 사물이라고 해도 내각제 관련 문건과 정치인 동향을 적은 문건까지 나온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李信範·洪準杓·孟亨奎의원은 “정부 여당은 불법 정치사찰에 대한 사죄는 커녕,야당의 529호실 강제개방만 문제삼고 있다”면서 “불법난입,기밀문서 탈취,헌정질서 파괴 운운하는 등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고강력히 비난했다.
  • ■국회본회의 이모저모

    14일 국무총리,법무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열린 국회본회의 ‘긴급 현안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은 ‘국회 529호실사태’의 불법성과 ‘안기부의 정치사찰’을 놓고 뜨거운 설전을 펼쳤다.이날 회의는 朴浚圭국회의장이 “일주일째 의장실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의원들이 철수하지 않으면 사회를 보지않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여 2시간 이상 늦게 시작하는 진통을 겪었다.회의는 朴의장이 辛相佑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 가까스로 이뤄졌다. 질문에서 여당은 야당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춘 반면 한나라당은 안기부의정치사찰에 초점을 맞췄다.자민련은 안기부의 잘못도 꼬집었다.●강제진입 불법공방 국민회의 鄭東泳의원은 “한나라당의 불법 난입사건이정치파행의 출발점”이란 점을 상기시킨 뒤 “한나라당의 정치사찰,공작정치 의혹 주장은 명백한 기만이며 여론조작”이라고 야당을 몰아세웠다.鄭의원은 이어 “한나라당이 국회 529호 사무실이 94년 폐지됐다가 98년 다시 부활됐다고 주장하는것은 사실과 다르며 94년이후 엄존했고,보강됐다”며 ‘약속의 정치’를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같은당 林福鎭의원은 ‘국기문란행위’에 초점을 맞췄다.그는 “정보기관의 기밀서류가 탈취당한 것은 헌정사상 최초의 일로 국기문란행위이자 중대한 안보문제”라며 야당의 행위를 안보문란행위로 가주했다. 이에대해 한나라당 洪準杓의원은 “어쩔 수 없이 범죄현장에 들어가 증거물을 확보한 야당의원들에 대한 검찰수사는 법리상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정치사찰 공방 한나라당 李信範의원은 “정보위에서 안기부장이 한 야당총재 비방발언,안기부 광주·전남지부의 홍보대책 문건 등은 명백한 안기부법위반”며 안기부장 파면 및 구속을 요구했다. 洪準杓의원은 “정치사찰을 자행한 안기부 직원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孟亨奎의원도 “정부여당은 불법 정치사찰에 대한 사죄는커녕,야당의 529호실 강제개방만 문제삼아 불법 난입,기밀문서 탈취,헌정질서 파괴 운운하며 본말을 전도,야당의원들과 사무처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비난했다. 이에대해 자민련 金學元의원은 “한나라당의 전신인민자당시절부터 사용돼온 열람실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기부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자기모순이며자기부정”이라고 공박했다.金의원은 그러나 “안기부연락관의 행위에 대해의혹이 일고 있는 것은 안기부의 불찰이며 하급직원의 개인 사물이라 해도내각제 관련 문건과 정치인 동향을 적은 문건이 나온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