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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전 차출 두려웠다”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64)가 월북한 이유는 당시 순찰대를 이끌 능력이 부족한 데다 베트남 전쟁에 끌려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본에 송환된 젠킨스의 법정 증언과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의 북한 내 생활상은 “절망과 후회, 속죄, 사랑의 이야기”였다고 13일자 최신호에서 전했다. 타임에 따르면 중학교를 중퇴한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젠킨스는 군 적성검사에서 ‘평균을 훨씬 밑도는’ 지능 소유자로 판정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위험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정찰 임무를 맡았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심한 음주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부대가 전쟁 중인 베트남에 배치될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 탈영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북한을 거쳐 러시아로 간 뒤 외교적 추방을 통해 고향인 미국에 가려고 했다. 1965년 1월5일 새벽 그는 맥주 캔 10개를 마신 뒤 탈영을 감행했다. 부하들을 따돌리고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그러나 북한군에 인계됐을 때 즉각 실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미군 탈영병 3명과 함께 지낸 7년간의 생활은 배고픔과 추위, 학대, 고문의 연속이었다. 침대도 전기도 수돗물도 없었다. 하루 10시간씩 김일성 사상을 공부했고 시험에 떨어지면 16시간으로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1972년 북한 시민권을 얻은 뒤 노동당 연락부가 운영하는 평양 군사학교에서 영어 교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젠킨스는 자신의 영어가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85년 해고됐다. 타임은 젠킨스의 거친 액센트는 미국인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법하다고 덧붙였다. 미군 탈영병들은 당초 북한의 불임 여성들하고만 사귀도록 허용됐다. 그러나 한 북한 여성이 임신한 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외국 여성들과의 결혼을 장려했다. 젠킨스도 1980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성 소가 히토미와 만나 결혼했다. 젠킨스는 미카(21)와 브린다(19) 두 딸을 뒀으나 남파 간첩이 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암담했다. 두 딸이 입학한 평양의 외국어학교는 사실상 정보요원 훈련소였다. 서구 스타일의 외형을 가진 혼혈들은 한국에서 간첩으로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활용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에게 돌파구가 된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 납치된 일본인 송환 문제가 핫 이슈가 됐고 북한의 회유에도 젠킨스는 두 딸을 위해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는 “생의 최대의 실수가 월북이었다면 가장 잘한 일은 딸들을 북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국제플러스] 美 탈영병 젠킨스 조기석방

    |도쿄 이춘규특파원|주한미군 탈영병 출신 찰스 젠킨스(64)가 27일 오전 수감중이던 미국 해군 요코스카 기지에서 석방됐다. 그는 군법회의에서 30일 금고형과 불명예 제대판결을 받아 복역기간이 12월3일까지이나 형기단축이 결정돼 이날 석방됐다. 그는 자마 기지로 옮겨져 제대수속을 밟는다. 젠킨스는 제대후 북한에 납치됐던 부인 소가 히토미(45) 및 두 딸과 함께 니가타현 사도에서 살 예정이다. 그는 “미국에는 방문형식으로 한 차례만 가보고 싶다.”면서 “사도에서 일하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 월북 미군 젠킨스 북한생활 증언

    “영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거부했다가 묶인 채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번은 상처가 심해 20일 동안 출근하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39년전 탈영하던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주한미군 탈영병인 찰스 젠킨스(64)가 3일 일본 가나가와현 자마 미 육군사령부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비참했던 북한에서의 생활상을 증언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뉴욕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1965년 탈영한 그는 1972년까지 미국인 3명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10시간씩 김일성 저작집을 외우도록 강요당했다. 내용은 ‘미친 자의 관점에서 본 계급투쟁’이었으나 이같은 표현을 쓰면 북한에서는 사형감이었다. 1980년 아내 소가 히토미(45)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소가는 법정에서 당시 자신의 감시인이 “젠킨스와 결혼하기로 정해졌다.”며 그와의 첫 만남을 주선했다고 진술했다. 소가는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나오는 평양시내 집으로 이사했으나 겨울에는 난방이 안돼 모든 옷들을 껴입고 잠을 잤으며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것은 아주 보기드문 사치라고 말했다. 젠킨스는 증언을 마치면서 군 동료들과 미국민, 가족 등에 사죄한다며 울먹였다. 일본 정부는 그가 금고형을 마치면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날 재판은 미 언론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미 대통령 선거일에 맞춰 열렸다. 백문일 기자 mip@seoul.co.kr
  • 젠킨스, 주일미군기지 자진출두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인 납치피해자 소가 히토미의 남편인 주한미군 탈영병 출신 찰스 젠킨스가 11일 주일미군 사령부가 소재한 가나가와현 자마기지에 자진 출두했다. 젠킨스는 이날 오전 도쿄여자의대병원을 퇴원,가족과 함께 기지로 향했다.출발에 앞서 그는 “하루라도 빨리 가족 넷이서 집이 있는 사도로 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그에 대한 미군의 사법처리 절차를 결정하는 데 1개월여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일본 언론들은 일본정부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 데다 젠킨스가 국선 변호인 역할을 할 주한미군 소속 법무관과 4차례 만나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형을 경감해 주는 ‘사법 거래’에 관해 집중적으로 설명을 들은 점 등에 주목,‘불명예 제대’ 등 사법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탈영 39년 만에 미군에 복귀한 젠킨스는 첫날 약 360만원의 월급을 받고 체포되지 않았다.시설대 중대 총무부에 배속돼 골프,낚시,볼링도 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병영생활에 복귀했다.전시라면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 혐의자이지만 주일미군에 대한 반감해소 차원에서 후대받고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taein@seoul.co.kr
  • [국제플러스] “마지막 미군 탈영병 북한에 생존”

    |베이징 연합|지난 62년 북한으로 넘어간 한 미국 육군 사병이 현재 평양에 생존해 있다고 영국의 한 영화제작자가 15일 밝혔다.이미 북한에서 2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영화제작자 니컬러스 보너는 62년 월북한 당시 미 육군 이병 제임스 드레스넉을 지난 5월 만났으며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인 드레스넉은 보너가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제공한 자료를 통해 최근 일본으로 건너간 미 탈영병 찰스 젠킨스와 함께 북한에 있었다면서 “북한군은 우리를 잘 대해줬으며 영어를 가르쳐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 [사설] 韓日 정상 북핵 공조와 볼턴 발언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어제 제주도에서 실무형 셔틀외교를 새로 선보였다.간편복 차림으로 북한핵 문제,이라크 전후복구지원 등 각종현안과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체결,동북아시대의 전략적 협력 문제 등 양국 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한 것은 인접국 간 정상회담의 새로운 시도다.한·일 양국간 정상회담 정례화에 그치지 말고,앞으로 중국까지 포함한 3국 실무형 정상회담 등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오는 9월 제4차 북핵 6자회담을 앞두고 한·일 정상이 협력 방안을 협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이즈미 총리는 북·일 조기수교를 주요 외교목표로 추진해오고 있고,북한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5월 납치 일본인들을 돌려보낸 데 이어 지난주 월북 주한미군 탈영병인 찰스 젠킨스씨를 일본의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 것이 단적인 예다.한·일 정상의 협력 약속이 북한핵의 평화해결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는 이유다. 방한중인 존 볼턴 미국 국무부 차관이 오는 11월 미 대선 전 북한핵 해결 의지와 리비아식 해법을 거듭 제시한 것도 주목된다.이달 초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안보보좌관의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깜짝 놀랄 만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핵만 포기하면 경제,안보는 걱정 말라는 것이고,미행정부가 이같은 메시지를 우리 정부를 통해 북한에 간접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리비아식 해법을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음모라고 비난하고 있다.하지만 대선을 앞둔 부시대통령이 지지율 만회를 위해 북한핵 해결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었을 수도 있다.경위야 어쨌건 이번 기회에 북한이 ‘통큰 정치’로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의외로 핵문제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북·미가 상호불신을 조금씩 덜고,한·일 양국이 지원한다면 굳이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라고 본다.
  • 얽히고 설킨 ‘젠킨스 게임’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1965년 주한미군 복무중 북한으로 도주한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64)의 일본 입국이 실현되면서 그의 가족 재결합 등을 둘러싼 북한·미국·일본의 복잡한 삼각 해법찾기가 시작됐다. 미국은 최고 사형이 가능한 젠킨스를 어떻게 처리할까?이에 따라 젠킨스와 부인 소가 히토미 등 일가의 일본생활도 좌우된다.북·일 수교는 ‘납북피해가족 전원귀국’이라는 큰 전제조건이 해소돼 본궤도에 오를 것 같다.하지만 북·미·일 3국의 복잡한 ‘젠킨스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란 지적이 많다.북·일,미·일,북·미 관계가 별개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젠킨스를 적어도 치료기간에는 체포,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입원치료’ 명목으로 입국시켰다.그렇지만 젠킨스의 일본 영주까지는 고비가 첩첩산중이다. 젠킨스의 건강이 회복되면 미국은 양국간 ‘지위협정’에 따라 신병을 넘겨받은 뒤 법대로 처리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베이커 주일 미대사는 16일 “탈영병이다.미국 사법제도에 따라 재판받아야 하나 인도적 관점에서의 배려도 중요하다.”며 사견을 전제로 ‘사법거래’ 가능성을 시사했다.젠킨스·소가 일가의 일본 영주도 민감한 문제다.새 생활은 병원에서 출발했지만,젠킨스의 치료가 장기화할 경우,병원근처에 소가와 딸 2명의 임시 거처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젠킨스의 소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영주의사를 밝힐 수 없다.합법적 지원이 어렵다는 얘기다.일본방문시 교통비나 의료비,숙박비 등도 정부가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taein@seoul.co.kr
  • 납북일본인 소가 가족 印尼서 재회

    |도쿄 연합|일본인 납치피해자 소가 히토미(45)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 이달 중 인도네시아에서 재회한다. 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중인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과 백남순 북한 외무상은 현지에서 북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인도네시아에서 소가 가족의 재회를 추진키로 합의했다. 가장 큰 현안의 하나이던 소가 가족 재회가 이뤄져 북·일간 국교정상화 협상 조기 재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재회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둘째딸 생일인 이달 23일 이전에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일정 조정을 서두르기로 합의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로써 북한에 피랍됐던 소가가 일본으로 돌아온 2002년 10월 이래 1년 9개월 만에 가족재회가 이뤄지게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22일 북한 재방문 당시 소가의 남편인 젠킨스를 직접 방문해 1시간여에 걸쳐 일본으로 오도록 설득했지만 남편인 젠킨스은 미국과 범인인도조약을 맺고 있는 일본으로 오면 미국에 신병이 넘겨져 탈영병으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해 오기를 거부했었다. 소가 가족은 남편과 큰 딸 미화(21),작은 딸 프린다(18) 등 4명이다.˝
  • [데스크 시각] 눈여겨볼 고이즈미식 訪北/황성기 사회교육 부장

    북한과 일본의 22일 평양 정상회담은 누가 뭐라든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뉴욕타임스가 비꼬았지만 도시락을 싸들고 평양에 갔건,회담시간을 다 못 채웠건 그렇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납치피해자 자녀 5명을 데리고 귀국했다.일본인이지만 북한사람으로 살아온 자녀들이 일본정부 전세기에 오르려 석양을 받으며 순안공항에 얼굴을 드러낸 순간,잘 적응해 살기를 바랐다. 납치는 북한이나,일본이나 빨리 손에서 내려놓고 싶은 뜨거운 감자다.일본에 귀환한 피랍자 두 부부의 열여섯에서 스물두살된 가족들이 일본땅을 밟고,부모들과 1년 7개월만에 재회함으로써 30년 묵은 북·일 납치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국교수립을 위한 회담재개에도 합의했다.납치문제를 매듭짓고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고자 하는 바람은 북한이나 일본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성으로 생중계되는 NHK를 지켜보면서 보통 우리가 봐왔던 정상회담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납치 가족 몇명의 송환을 위해 정상이 국교도 없는 나라의 수도에 들어가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핵·미사일과 관련한 의제가 회담에서 논의되긴 했어도 사실 송환이 회담의 ‘모든 것’이었다.직접 가서 김 위원장을 만나,납치 피해자의 염원이자 많은 일본인이 바라던 가족을 데리고 온 것은 잘한 일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후 미군 탈영병 출신으로 피랍자와 결혼한 젠킨스씨,그의 두 딸과도 1시간가량 만났다.그들의 귀국의사를 확인했으나 동행을 거부했다.기자회견에서 총리는 젠킨스 가족과 나눈 얘기를 소상히 전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들 한다.자신도 걸린 ‘국민연금미납 태풍’을 비켜가기 위한 퍼포먼스라거나,여름의 참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이라거나,나아가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북·일 수교를 이뤄낸 지도자로서 역사에 기록되고자 하는 명예욕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이 납치돼 젊음을 북에 파묻고,자식들마저 두고온 이산(離散)의 고통은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로서 핵·미사일만큼이나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였다.그것을 풀러 갔다. 2002년 9월17일 평양 회담이 일본 외무성이 ‘한상 바쳐올린’ 것이었다면 22일 회담은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주변에서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동반한다.”고 말렸다고 한다. 다녀오자 두번째의 평양행을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미흡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행방불명자 10명의 가족들은 “최악의 결과”라고 절규한다.잘해보자고 했던 일이 그를 자칫 위태롭게 할 수도 있어 보인다.그럼에도 일단 5명이라도 귀국함으로써 북과 일본이 다음 단계로 옮겨갈 발판은 생겼다.두 나라 사이에 놓인 암초 중 가장 큰 덩어리 하나를 두 정상이 들어냈다. 이제부터다.북핵해결과 맞물려 있긴 해도 북·일 수교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양국관계가 진전되면 한반도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일본에서 주장하는 실종자 10명의 재조사에 북측은 성실히 응해야 한다.일본 조야도 지난 1년10개월간의 모진 ‘북한 때리기’를 접고,대승적 차원에서 북·일관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얘기는 다르지만 우리의 피랍자가 마음에 걸린다.방식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숙제 하나를 풀러 평양을 오간 ‘고이즈미식’은 눈여겨 볼 만하다. 황성기 사회교육 부장 marry04@˝
  • [北·日 정상회담] 수교협상 재개시점 명시 안돼 성과논란

    |도쿄 이춘규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2일 회담에서 지난 2002년 9월 ‘평양선언’의 이행을 재확인하고 국교정상화의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난관도 적지않아 보인다.현안에 대한 인식차가 크고,‘원칙만 있고 실천 프로그램은 없다.’는 지적이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양국 정상은 2002년 9월에도 국교정상화를 핵심으로 한 평양선언을 채택했지만 불과 한달 뒤 납치문제로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선언 자체가 무색해 진 바 있다. ●국교정상화,갈 길 멀다 양국 정상이 국교정상화 의지에 맞장구를 쳤지만,일본 내에서 신중론이 팽배하고 있다. 변수도 많다.국교정상화 협상재개 시점조차 명시되지 않았고 고이즈미 총리도 정상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낙관이 불가능한 것이 북·일 정상 교섭의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을 정도다. ●피랍 의혹자 10명 처리 평양선언 이행에 근본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 있는 현안이다.납치 피해자인 소가 히토미의 남편 젠킨스와 두 딸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북한이 사망 등으로 일부 납치를 인정한 피랍 의혹자 10명은 ‘재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피랍 의혹자 가족들은 구체적인 진전이 전혀 없다며 고이즈미 총리 면전에서까지 강력히 반발했을 정도다.일부 언론은 “주도면밀한 전략이 부족해 북한에 역습당해 식량지원이라는 몸값만 지불했다.”는 혹평을 할 정도고,“최악의 협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특히 “일본이 자주·독자외교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고,“가족들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고,피랍 의혹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장벽,핵·미사일 일본이 북한과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북·일 국교 정상화의 선결 전제조건이라고 강력히 못박고 있다.어떤 양보도 없다는 입장이다.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인식이 첨예하게 다른 상태에서는 북·일 국교정상화는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긴급여론조사,“세부평가 냉랭” 요미우리신문이 22∼23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총론적으로는 63%가 ‘평가한다.’고 했지만 납치·핵문제 등 세부평가는 비판론이 우세했다. 피랍 의혹 10명의 재조사에 대해 64%가 진실규명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진실규명이 될 것이란 27%를 압도했다.완전폐기식 핵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70%의 일본인이 안될 것으로 전망했다.식량 및 의약품 지원도 56%가 평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taein@seoul.co.kr 정상회담 합의안 요지 1. 북·일 평양선언의 성실한 이행 확인. 2. 잔류가족 5명 귀국.그러나 미군탈영병 젠킨스와 딸 2명은 잔류하되 가족은 3국에서 상봉 추진.피랍 의혹자는 일본도 참여해 철저 재조사. 3. 국교 정상화 교섭 협의 재개. 4.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6개국협의 진전을 위한 노력.미사일발사실험의 동결을 확인. 5.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일본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발동하지 않기록 약속. 6. 일본은 인도적 견지에서 .식량원조 20만t,100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지원.˝
  • [北·日 정상회담] 수교협상 재개시점 명시 안돼 성과논란

    [北·日 정상회담] 수교협상 재개시점 명시 안돼 성과논란

    |도쿄 이춘규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2일 회담에서 지난 2002년 9월 ‘평양선언’의 이행을 재확인하고 국교정상화의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난관도 적지않아 보인다.현안에 대한 인식차가 크고,‘원칙만 있고 실천 프로그램은 없다.’는 지적이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양국 정상은 2002년 9월에도 국교정상화를 핵심으로 한 평양선언을 채택했지만 불과 한달 뒤 납치문제로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선언 자체가 무색해 진 바 있다. ●국교정상화,갈 길 멀다 양국 정상이 국교정상화 의지에 맞장구를 쳤지만,일본 내에서 신중론이 팽배하고 있다. 변수도 많다.국교정상화 협상재개 시점조차 명시되지 않았고 고이즈미 총리도 정상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낙관이 불가능한 것이 북·일 정상 교섭의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을 정도다. ●피랍 의혹자 10명 처리 평양선언 이행에 근본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 있는 현안이다.납치 피해자인 소가 히토미의 남편 젠킨스와 두 딸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북한이 사망 등으로 일부 납치를 인정한 피랍 의혹자 10명은 ‘재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피랍 의혹자 가족들은 구체적인 진전이 전혀 없다며 고이즈미 총리 면전에서까지 강력히 반발했을 정도다.일부 언론은 “주도면밀한 전략이 부족해 북한에 역습당해 식량지원이라는 몸값만 지불했다.”는 혹평을 할 정도고,“최악의 협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특히 “일본이 자주·독자외교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고,“가족들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고,피랍 의혹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장벽,핵·미사일 일본이 북한과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북·일 국교 정상화의 선결 전제조건이라고 강력히 못박고 있다.어떤 양보도 없다는 입장이다.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인식이 첨예하게 다른 상태에서는 북·일 국교정상화는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긴급여론조사,“세부평가 냉랭” 요미우리신문이 22∼23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총론적으로는 63%가 ‘평가한다.’고 했지만 납치·핵문제 등 세부평가는 비판론이 우세했다. 피랍 의혹 10명의 재조사에 대해 64%가 진실규명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진실규명이 될 것이란 27%를 압도했다.완전폐기식 핵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70%의 일본인이 안될 것으로 전망했다.식량 및 의약품 지원도 56%가 평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taein@seoul.co.kr 정상회담 합의안 요지 1. 북·일 평양선언의 성실한 이행 확인. 2. 잔류가족 5명 귀국.그러나 미군탈영병 젠킨스와 딸 2명은 잔류하되 가족은 3국에서 상봉 추진.피랍 의혹자는 일본도 참여해 철저 재조사. 3. 국교 정상화 교섭 협의 재개. 4.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6개국협의 진전을 위한 노력.미사일발사실험의 동결을 확인. 5.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일본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발동하지 않기록 약속. 6. 일본은 인도적 견지에서 .식량원조 20만t,100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지원.
  • [北·日 정상회담] 北잔류 젠킨스가족 日부인과 재회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탈영 등의 전력 탓에 미국에 체포될 것을 우려,일단 북한 잔류를 택한 미군 탈영병 출신의 젠킨스(64)와 부인 소가 히토미를 포함한 가족 재회가 ‘5·22 북·일 평양정상회담’ 이후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22일 재방북도 일본내 여론을 감안하면 ‘절반의 성공’으로만 기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일본인 납치피해자 소가의 남편으로 지난 1965년 주한미군 근무시 탈영한 젠킨스와 2명의 딸 등 3명의 귀국 문제에 고이즈미 총리가 22일 정상회담 시간의 3분의2인 60분을 할애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으나.당사자가 거부해 무산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고이즈미 총리에게 젠킨스를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 가라면서 “원치 않을 경우 젠킨스와 두딸,부인 등 4명의 가족이 베이징에서 상봉하는 방안은 어떤가.”라고 제안,결국 젠킨스도 수용했다. 하지만 일본내 반론이 많아 스위스에서 가족이 상당기간 함께 지내는 방안도 검토중이다.도쿄신문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과 정부 일각에서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서 가족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도 소가에게 전화를 걸어 “스위스에서 재회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의사를 타진,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젠킨스는 왜 일본행을 완강히 거부했을까.그는 정상회담 전 미국이 탈영병인 그를 “단호하게 처리하겠다.”는 일본의 보도내용을 다 파악,이를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젠킨스가 ▲타 병사에게 탈주교사(2건) ▲탈영 ▲이적행위 ▲국가에 대한 비(非)충성 장려(2건) 등 4종류 6건의 죄가 있다고 밝혔다.또 ‘통일군사재판법’에 따른 지극한 중죄인이란 걸 통보하면서 일본 정부가 요청한 사면·소추면제도 외면했다.일본 자유왕래나 제대처분 검토도 묵살됐다.˝
  • [고이즈미 방북] 월북美軍 ‘딜레마’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군 탈영병 찰스 토머스 젠킨슨(64)’이라는 인물이 북·일 정상회담의 막판 중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2일 재방북할 경우 최소한의 성과로 꼽히는 ‘납치피해 잔류가족 8명 전원의 귀환’문제에서 그가 막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본을 택하면 미군 형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기본입장이지만,젠킨슨은 처벌을 매우 우려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하루 전인 21일까지도 그의 거취에 대해선 “부시 대통령이나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정부 최고위 수뇌부만이 결단할 수 있다.”는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젠킨슨은 주한미군으로 근무중이던 1965년 1월 남북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중 탈영,북한으로 넘어간 후 일본인 납치피해자인 소가 히토미(44)와 1980년대 결혼했으며 2002년 10월 소가가 일본으로 돌아가자 두 딸과 함께 북한에 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젠킨슨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본으로 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젠킨슨은 미국의 처벌을 걱정해 일본행을 꺼리고 있으며,미국측 인사들도 “신병을 확보하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죄를 묻게 될 것”이라고 처벌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존 볼턴 미 국무차관이 “미국은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귀환을 전폭지지한다.젠킨슨 처리에 대해서도 정부 내에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혀 결국 미 정부의 막판 결단에 달려 있음을 시사했다. 미군 형법은 탈영죄는 평시 금고형 5년,전시에는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하지만 현재 미국과 북한은 휴전상태로 법적으로는 전시상태이기 때문에 그가 일본을 선택,미군 법정에 서면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 자신도 중요성을 감안,17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회담에서 방북 경위 등을 설명하면서 젠킨슨의 처벌을 말아달라는 ‘정치적 해결’을 요청했을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 등은 미·일간 통상적 외교라인의 협상으로는 젠킨슨 문제가 진전이 없어,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나섰지만 구체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젠킨슨이 귀국하지 않을 경우 두 딸도 북한에 잔류할 가능성이 있어 일본측의 납치협상은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 “재임중 北·日수교 의지 고이즈미 방북때 천명”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2일로 예정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와 핵 문제 해결’을 전제로 자신의 재임 중 국교정상화 의지를 표명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19일 보도했다.고이즈미 총리는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으면 자민당 총재 임기인 2006년 9월까지 총리로 재임할 수 있다. 북한과 일본은 2002년 9월 발표한 평양선언에서도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나 납치 피해가족과 핵·미사일 문제 등으로 진전이 없었다. 아울러 일본 언론에 따르면 북한은 국교정상화 협상 재개와 인도적 지원 재개 등을 조건으로 잔류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미군 탈영병 출신인 찰스 젠킨스(64)는 처벌을 우려해 북한에 남겠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왔다.일본 정부는 젠킨스가 잔류를 희망하면 북한에서 태어난 두 명의 딸도 같이 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taein@
  • 네번째 소설집 ‘누가‘ 펴낸 윤대녕

    지난해 4월 창작에 전념하러 제주로 내려간 윤대녕이 네 번째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를 들고 서울에 들렀다. 5년 만에 낸 작품집은 지난해 쓴 4편 등 6편의 작품을 모은 것인데 “중·단편을 정기적으로 쓰는 게 문학적 긴장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았다.”고 말했다.제주 생활에서 나온 여유와 성찰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로 내려간 것은)문학적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였는데 냉정해지고 객관적이 되면서 집중력과 문학적 내구력이 늘고 글에 대한 허영심도 가셨다.”고 스스로 진단했다.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기 속으로 더 들어간 덕분에 작가의 창작 열기는 더 그윽해지고 치열해진 듯 “매년 중·단편 3∼4편을 쓰고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생명의 고독감을 다룰,쓸 만한 장편도 쓸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작가는 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달의 지평선’‘미란’‘눈의 여행자’ 등 장편과 ‘은어 낚시 통신’‘남쪽 계단을 보라’ 등 중·단편을 가로질러 왔는데 그 차이를 물었더니 “단편이 문학하는 느낌을 더 주지만 힘은 더 든다.200∼300장 분량이 제일 편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집에는 ‘걷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흑백 텔레비전 꺼짐’의 일도와 정원은 서울 도심의 새천년 맞이행사장 주위를,‘찔레꽃 기념관’의 주인공 소설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여자 방송작가는 남산의 찔레꽃을 보러 무작정 비 오는 심야의 도심을 걸어간다.‘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의 남자는 아예 무작정 걷는다.작가는 그 ‘걸음 속 대화와 묘사’로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비춘다.그들은 대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현실에서 표류하는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하원(‘흑백 텔레비전‘),출생과 관련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독신녀나 현실에서 탈출구가 봉쇄된 탈영병(표제작),문학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찔레꽃 기념관’) 등의 모습으로 투영된다.해설을 쓴 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체성의 위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면서,그 현상과 원인을 정치적·문화적·사회적·존재론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작품세계는 ‘무더운 밤의 사라짐’‘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에서도 잘 나타난다.‘올빼미와의 대화’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듯한 사나이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아를 찾으려고 모색한다.이에 대해 작가는 “유독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삶의 경계를 걸으면서 자아이면서 타자,그림자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보이던 과감한 생략이 많이 줄어 눈길을 끈다.‘시적(詩的)’이라는 평까지 듣던 그의 세계에 설명이 늘어났다.작가는 그에 대해 “아마 불교적 취향 때문에 가능하면 설명을 줄이고 공간과 여백을 키워서 그런 평을 들었는데 내심 달갑지 않았다.”면서 “그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차츰 달라진다.생활 얘기도 늘리고 서사구조도 취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이를 관통하는 달라진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늘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면서 나이에 걸맞은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의욕을 비친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
  • [씨줄날줄] 미국판 兵風/김인철 논설위원

    아프간전과 이라크전 승리로 승승장구하던 부시 미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다.전쟁 때문이다.가까이는 이라크전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왜곡,과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멀리 베트남전은 더 깊은 수렁이다.재선을 확약할 듯하던 전쟁이 어느덧 부메랑이 되어 부시를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특히 부시의 병역기피 의혹은 ‘미국판 병풍(兵風)’으로 미 대선전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요점은 부시가 베트남전을 피하려 주(州)방위군에 특혜 입대했으며,그나마도 제대로 복무하지 않았다는 것.부시는 모든 군복무기록을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병역제도는 평상시 지원병제이지만,유사시 징병제로 즉각 전환할 수 있게 돼 있다.1960대 중반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당시 20대들에게 징병통지서가 날아든 건 당연한 일.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61) 상원의원은 예일대를 졸업하던 66년 해군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은성훈장 등 많은 훈장을 받고,70년 전역했다.케리와 예일대 동문으로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것이 분명한 부시(58)는 68년 5월 텍사스주 방위군에 입대해 73년 10월 제대했다.문제는 비행적성시험 성적이 형편 없었던 그가 주 방위군 공군에 배치된 것.당시 아버지 부시는 텍사스주 하원의원이었다.4성장군 출신의 파월 국무장관은 자서전에서 “권부지도자 아들 등이 누구보다도 건강하면서도 예비군이나 주 방위군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분노를 느꼈다.”고 술회한 바 있다.더욱이 72년 5월부터 73년 4월까지 부시의 군복무기록이 없어,근무지를 무단 이탈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하지만 전쟁영웅이 되어 돌아온 케리는 이후 전쟁의 야만성과 부당성을 설파하는 반전주의자가 됐고,탈영병이란 의혹까지 사고 있는 부시는 두차례나 전쟁을 명령한 군통수권자가 됐다.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게다가 케리의 반전운동 경력이 백악관으로 가는 그의 발목을 잡는 약점으로 보수파들의 공격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조국의 부름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던 참전용사이자 반전운동의 기수였던 케리와 자신은 전장(戰場)을 외면한 비겁자이면서도 훗날 젊은이들을 명분없는 전쟁터로 내몬 부시,누가 더 진정한 세계의 지도자 감일까.9·11테러를 빙자한 전체주의적 국가관에 함몰된 미국인들의 이성 회복을 기대한다. 김인철 논설위원˝
  • [영화 vs 영화] '콜드 마운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뜨겁게 달굴 화제작 2편이 20일 나란히 개봉한다.할리우드의 ‘간판’ 니콜 키드먼·르네 젤위거가 주연하는 서사멜로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과,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인 신예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데뷔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콜드 마운틴’은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 등 8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웠고,‘사랑도…’는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 등 4개 부문에 올랐다.두 작품이 같은 부문에서 불꽃경쟁을 벌이게 된 셈이다. ●콜드 마운틴 썩어도 준치.이것저것 따지는 까다로운 관객들에게 ‘콜드 마운틴’은 이 한마디만으로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을 듯하다.전혀 다른 색깔의 할리우드 톱스타 니콜 키드먼과 르네 젤위거,‘리플리’‘A.I’ 등을 통해 깎은 밤처럼 깔끔한 이미지를 다듬어온 영국출신 미남배우 주드 로가 타이틀롤을 맡았다.거기에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남북전쟁 막바지 무렵인 1860년대.불신과 증오만이 도사린 불안한 시대상황을 짧게 비춘 카메라는 곧 운명적이어서 더 위태로운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목사의 외동딸로 화초처럼 커온 아이다(니콜 키드먼)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콜드마운틴을 찾아오고,젊은 목수 인만(주드 로)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그러나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인만은 남군 병사로 전쟁터로 나가고 아이다는 기약없이 긴 기다림에 들어간다. 찰스 프레지어의 인기소설이 원작인 영화에서 전쟁은 남녀의 운명적 사랑이야기를 극적으로 돋을새김하는 부수적 장치.격렬한 전투신이나 전장의 포염 장면 등은 배제된 채 펼쳐지는 파란많은 러브스토리다. 인만이 떠나고 아버지까지 여읜 아이다는 세상과 담을 쌓고 폐인처럼 살아간다.얼마 뒤 삶을 방치하고 있던 아이다 앞에 아버지에게서 버림받고서도 삶의 의지로 똘똘 뭉친 산골처녀 루비(르네 젤위거)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멜로의 울타리 밖으로 시야를 넓힌다.탈영병으로 쫓기며 사선을 넘나드는 인만,탈영병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의용대,끝없는 불신 속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일상 등을 번갈아 비추며 전쟁의 후유증을 담담하게 고발한다. 호불호가 뚜렷이 엇갈릴 만하다.대자연을 담은 스펙터클 화면에 휴먼드라마처럼 느리고 굴곡많은,‘러브 오브 시베리아’류의 연애담을 좋아한다면 흡인력이 있을 영화다.반면 서사의 존존한 짜임새를 따진다면 ‘덩치만 컸지 싱겁기 짝이 없는 로맨스’로 폄하될 여지도 적지 않다.인만과 아이다의 짧은 만남에서 무엇이 그토록 절절한 사랑을 꽃피우게 했는지,최소한의 설명조차 생략해버린 듯해 뜨악해진다. 황수정기자 sjh@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인 고립감에 번민하는 고독한 군중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저서 ‘고독한 군중’에서 정의한 ‘군중 속의 고독’ 개념을 다룬다.나아가 그 고독이 의사소통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따스함도 갖고 있다. 영화는 연령과 경험 등 전혀 다른 조건의 남녀가 고독이라는 상처를 함께 앓다가 서로에게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삶의 모든 것이 심드렁한 40대 중반의 할리우드 스타 밥 해리스(빌 머레이)가 일본 위스키 CF를 촬영하기 위해 도쿄에 온다.이국 체험은 새로운 활력은커녕 고립감만 키워준다.통역도 엉망이고 일정에 없던 토크쇼 출연 제의 등 모든 게 혼란스럽다.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어로 더빙된 자신의 출연영화를 보거나 호텔 바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무표정한 일본인들의 얼굴 속에 키가 큰 해리스가 고개를 삐죽 내민 엘리베이터 장면은 그의 낯섦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쿄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인공은 또 있다.유명 사진작가인 남편의 출장을 따라 온 샬론(스칼렛 요한슨).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그녀 역시 모든 게 공허하게 느껴진다.일에만 매달리는 남편은 형식적 대화로 일관해 그녀의 허전함은 깊어간다.꽃꽂이 강습장을 나가고 친구들과 어울려도 보지만 다 시시하고 무료함만 커진다. 영화는 두 사람의 ‘실존적 고독’을 따로 조명하면서 스쳐지나게 하다가 차츰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을 택한다.호텔 바,수영장 등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비슷한 내면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극적인 반전 없이 두 사람의 일상과 겉도는 주위 풍경을 스케치하듯 진행하는 흐름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의 절제된 감성연기는 눈길을 끈다.특히 빌 머레이의 우수에 젖은 표정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종수기자˝
  • 뉴스 플러스 / 북한군 2년간 1만5000명 탈영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해 지난 2001∼2002년의 북한군 탈영병이 1만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나왔다.통일연구원의 정형태ㆍ박형중 선임연구원은 26일 ‘북한 병역제도 변화와 병력감축 가능성’이란 논문에서 국방부 자료를 인용,“군복무에 대한 회의감으로 북한 군인들의 일탈행위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 北 납치 日人가족 송환 / 對日 유화제스처… 이목 끈 北

    |도쿄 황성기특파원|북한이 북에 남아있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 일부를 돌려보낼 의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과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환 의향이 일본 정부에 공식전달되고 북·일 양측이 송환을 둘러싼 교섭을 시작하게 되면 경색된 북·일 관계는 자연스럽게 타개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북·일 관계 소식통은 “북한이 가족을 돌려보냄으로써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겠다는 일종의 신호로 여겨진다.”고 풀이했다. ●분명한 대(對)일본 유화 손짓 북한은 일본 정부와 국내 여론이 북핵보다는 납치 해결에 보다 비중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잔류 가족송환’이라는 강도높은 처방전을 제시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재방북 검토(니혼게이자이 신문 7월6일자),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의 “납치문제 개별해결” 발언(7월7일) 등 최근 일련의 흐름속에 북·일의 접근 가능성이 부쩍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쿠다 관방장관은 지난 7일 “핵문제는 다자협의가 있지만 인도상의 문제(납치)는 북한의 의사 하나로 가능하다.그렇게 정부는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납치와 핵·미사일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대북 정책의 기본방침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줄 만큼 핵과 납치의 분리에 한발 다가선 발언으로 주목됐다. 이런 일본 정부의 기류를 감안하면 북측의 가족송환 카드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경우,핵해결이 보다 요원해지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도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한국과는 장관급회담을 지속하는 등 민족을 강조하는 남북교류를 보다 활발히 전개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실타래처럼 얽힌 대일 관계의 경우 납치문제를 과감히 털어냄으로써 핵해결에 일본 정부가 완전히 북한에 등을 돌리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보자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환방침은 이미 정해져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피랍자 가족을 송환하는 것은‘납치문제의 원상회복’이라는 9·17 북·일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에 비춰볼 때 언제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자회담의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도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납치문제 해결에 나설 상황이 됐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조총련을 통하지 않고 북한 지원단체를 통해 피랍 가족 송환의 뜻을 일본측에 전달하려는 데 대해서는 “조총련이 북한 지령을 받아 일본인을 납치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조총련을 거칠 이유가 없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애태우는 피랍자 가족들 “(일본)정부를 믿고 아이들을 기다리기로 했지만 진전도 없고 정말 괴롭고 참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일본에서 아이들을 맞는 것이야말로 행복이고,정부도 (아이들이)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합니다.아이들이 건강하게 있기 바랍니다.미안한 마음뿐입니다.지금이 가장 괴로운 때라,우리(부부)도,아이들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78년 북한에 납치됐다 지난해 귀국한 하스이케 가오루(45)의 부인 유키코(47)는 30일 고향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에 있는 두 아이에 대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편 하스이케도 “납치는 현재 진행형”이라면서 아이들의 조속한 송환을 북에 촉구했다.31일로 납치 25년을 맞은 이들 부부에게 이산가족이 된 아이들과의 상면이 최대 소망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하스이케 부부의 두 자녀에게는 모두 한국식 이름을 붙였다.장녀 박영화는 올해 21세.대학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그녀는 운동은 서툴지만 악기 연주,노래를 좋아한다.일제 야마하 기타가 자택에 있다고 했다.하스이케는 “아직은 내가 딸보다는 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남 박기혁은 17세.축구,탁구를 잘한다.대학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작을 공부하고 있다.두 아이들 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읽고 쓸 줄 알지만 집에서는 조선말(한국말)을 사용했다고 한다.이들 가족은 평양시 낙랑구에 살았다.같은 낙랑구에 살았던 지무라 야스시(47)부부는 세 자녀를 두었다.지무라가 평양을 떠난 지난해 10월까지 장녀(오경애)는 사범대학생,장남(오경석)은 평양 기계대학생,차남(오경호)은 중학생이다.하스이케와 지무라 두명 모두 북한에서의 직업은 ‘사회과학원민속연구소 자료실 번역원’이었다. 하스이케,지무라 두 부부의 자녀 5명에 한해 북한 내 가족을 송환할 의향을 갖고 있는 북측 의도에 대해 북·일관계 소식통은 “두 가족은 소가 히토미나 요코타 메구미(사망)의 딸 김혜경과는 약간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하스이케,지무라 부부가 일본에 있는 반면,두 딸을 두고 있는 소가의 경우 남편인 로버트 젠킨슨(미 탈영병)의 동의가 필요한 상태이며,요코타의 딸인 김혜경도 북한사람인 아버지의 허가가 필요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납치의원연맹의 히라사와 의원은 “납치 피해자 가족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니혼TV는 전했다. marry01@
  • 北 “납치日人 가족 곧 인도”

    북한이 납치 일본인 피해자의 북한내 가족 일부를 조만간 일본에 돌려보내겠다는 의사를 30일 일본측에 전달해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일본내 북한 소식통과 한국내 북한 소식통이 복수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일본내 단체를 통해 “일본에 돌아간 하쓰이케 가오루(45) 부부와 지무라 야스시(47) 부부의 북한내 가족을 조만간 돌려보낼 뜻을 갖고 있다.”고 전해왔다. 북한은 이같은 의사를 이날 일본내 북한 지원단체에 전해 왔으며 이같은 피랍 일본인 가족 송환 의사는 31일중 일본 정부에 공식 전달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일본에 고향방문 명목으로 일시 돌려보낸 납치 피해자는 모두 5명으로 하쓰이케 부부는 북한에 2명의 자녀를,지무라 부부는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북측은 그러나 이들과 함께 귀국한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의 남편인 미 탈영병 젠킨스와 두 딸,니가타에서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사망)의 딸로 알려진 김혜경(15)의 송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북한이 이들 납치 일본인 부부의가족을 일본에 돌려보내겠다고 의향을 전달한 것은 최근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북 국제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일본내 여론도 악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내 소식통은 “북한이 이들을 돌려보냄으로써 일본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겠다는 뜻을 일본측에 적극 피력하기 위한 시그널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과 함께 대화,압력 두 가지 정책을 병행하기로 하고 일본에 들어오는 만경봉호 등 선박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북한에 대한 압력 정책만으로는 북핵 문제와 북·일간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대화정책도 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최근에는 북·일 정상회담 1주년을 앞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재방북,북측과 관계개선을 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이같은 북측의 제안이 이뤄져 주목된다.한편 북한이 납치 피해자 가족의 송환 의사를 이날 일본에 전달해온 것은 일본내에서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로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일본내 북한 소식통은 이 단체가 일본적십자나 납치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한 모임(가족모임)은 아니라고 말했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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