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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순자들의 대화/北의 가족 그리움에 애간장(탈북 그 이후:5)

    ◎“세월이 약이겠지” 무덤덤하게 시름 달래/각종 모임서 ‘두고온 가족’ 얘기가 큰 위안 “이제 와서 얘기하면 뭐 합네까,가슴속에 묻어둔 아픈 사연들이 되살아날까 두려울 뿐이야요” 탈북자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점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대개는 ‘세월이 약이겠지’라며 애써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탈북 7년째인 金모씨(32·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혈육의 정에 애간장을 태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향 얘기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金씨는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하루빨리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죄책감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잡았던 마음도 명절이나 부모의 생일 때가 되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향수병이 도지는 탓이다. 이내 눈시울이 촉촉히 젖는다. 감정에 복받쳐 종일 울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 95년에 탈북한 崔모씨(46·사업)는 “부모님의 생일이 되면 통일전망대로 가 ‘불효자의 한’을 달랜다”면서 “북녘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남겨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올 연말 착한 색시를 만나 결혼할 예정”이라는 柳모씨(31·평양외국어대학 출신)은 “누구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야속할 뿐”이라면서 “지난 번 꿈속에서 부모님께 결혼 날짜를 알려드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나마 이들에겐 ‘탈북자들의 모임’이 큰 위안이다. 숭의동지회,통일연구회 등을 통해 ‘우리들만의 대화’시간을 갖는다. 지난 연말에는 자유총연맹 주최로 ‘귀순자 망년회’를 처음 갖기도 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자체적으로 만든 ‘미니모임’이 더 활발하다. 탈북자 불교모임을 주도해 온 金명철씨(36·전 남순지장회 회장)는 “정신적·문화적 갈등으로 빚어지는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IMF한파 등으로 먹고 살기에 바빠 최근에는 잘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구소련동구유학생모임의 회장인 金지일씨(35·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종합대학 출신·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회사 대표)는 “탈북 8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면서 “탈북 유학생들끼리 유대관계를 갖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게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 적응과 이산의 아픔이라는 이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탈북자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얼굴 한켠에는 감춰지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고향의 사연’을 뒤로 한채 남북이 통일돼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
  • 귀순자 자립 지원/의무고용제로 직장 보장을(탈북 그 이후:4)

    ◎자격증 등 인정 못받아 단순 직종으로/절반이상이 월수입 100만원 못미쳐/적응교육 강화… 안정된 삶 부축 시급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朴모씨(36)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낯선 남한 생활에 후두암까지 겹쳐 또다른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다. 朴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처음 귀순할 때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해 94년 귀순한 韓모씨(38)도 버거웠던 지난 4년간의 남한 생활을 털어놨다. 韓씨는 “한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개인 한방병원에 취직했지만 ‘북한자격증을 어디에 쓰느냐’고 면박을 주며 잔심부름만 시켜 그만 두었다”면서 “죄인이나 무능력자 취급받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韓씨는 “한의학 서적을 출간해주겠다고 찾아 온 남자에게 산삼 두 뿌리를 사기당한 적도 있고 한 독지가가 귀순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 챈 사람도 보았다”면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꾸려가는 제2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이들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 문제와 생활고를 꼽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북한에서의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지적 열등감,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97년 제정된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라 귀순 후 통상 6개월간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절차 등을 거친 뒤 귀순전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 및 주택,보조금 등을 받는다. 가족이나 지위가 없는 경우 받는 지원금은 평균 1,400만원 정도. 하지만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쓴다. 정부기관의 주선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전문직 보다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올 초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700여명 가운데 매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314명에 불과하다. 월 50만원 이하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86명이나 되며 병약자나 노약자 등 생계곤란자도 40여명이 넘는다. 또 절반이상이 정부에서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金熙辰 사무국장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보장받는 것”이라면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응교육과정 및 법정 의무고용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잘 나가는 귀순자/지명도 활용 자립 꿈 결실(탈북 그 이후:2)

    ◎최세웅 부부·김용씨 북한음식점 성업중/황장업씨 집필·강연 김신조씨 목회 전념 지난 95년 귀순한 崔세웅씨(38·전 북한 대외무역회사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와 만수대 무용단 출신인 申영희씨(38) 부부는 요즘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지난 4월 일산 신도시에 북한 냉면집 ‘진달래각’을 개업하면서부터다. 6월에 평창동에,7월에 광주에 분점을 냈다. 전국에 분점을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자유의 품에 안긴지 2년 남짓된 ‘애숭이’지만 누구보다 적응력이 빠르다는 말을 듣고 있다. 냉면집 카운터에서 “어서 오세요”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崔씨 부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IMF잖아요. 더 열심히 일해야 해요. 그래야 통일 뒤에 부모님과 친척을 만나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이렇듯 탈북자의 상당수는 崔씨 부부처럼 생소한 여건속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하고 있다. 기반을 잡은 사람도 꽤 된다. 가수로 활동했던 金勇씨(35)는 고양시 근처에 북한냉면집을,93년 귀순한 요리사 출신 강봉학씨는 경기도 용인에 북한전문요리집을 차렸다. 崔씨 부부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시절,전문직종의 경험을 살려 성공한 예도 많다.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였던 黃長燁씨(75)는 당국의 신변안전실에서 기거하며 집필이나 외부강연 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외교관 출신인 高英煥씨(콩고주재 1등서기관)와 玄成一씨(잠비아주재 3등서기관)도 북한문제조사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2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근무하다 망명한 金동수씨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으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68년 1·21 청와대 기습사건의 金신조씨(56)는 지난해 1월 목사안수를 받은 뒤 충남 예천에서 농촌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87년 일가족 10명과 함께 한국에 온 金萬鐵씨는 남해에 기도원을 세웠고,모스크바대학 유학중 망명한 金명세씨는 침례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남북나눔운동연구위원회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87년 KAL기 폭파사건의 金현희씨(36)는 지난해 말 경주 출신의 사업가와 극비리에 결혼했다. 자신의 수기 ‘나도 여자가 되고 싶어요’의 희망처럼 지방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군 출신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83년 망명한 李웅평 공군대령(45·공군대학 교수)은 간경변으로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해 요양중이다. 96년 미그19기를 몰고 온 李철수대위와 같은 해 강릉무장공비 사건때 생포된 李광수씨(33)는 각각 공군과 해군본부에서 교관으로 자리잡았다.
  • 쉽지 않은 남녘생활(탈북 그 이후:1)

    ◎자본주의 적응못해 탈선 빈번/법·제도 등 잘몰라 자신도 모르게 범법/소외감 달래려 술·도박… 정착금 탕진도/부적응자 재교육·취업알선 등 대책 절실 오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분단 53주년이 되는 날. 지난 50여년 동안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에서 살다 남한으로 탈주한 북한 이탈주민(탈북자)들은 700여명에 이른다. 직업이나 탈출동기가 제각각이듯 남한에서의 삶도 다양하다. 상당수는 우리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사선을 넘을 때 기대했던 것 만큼 순탄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이 되고 싶다는 희망,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등 탈북자들이 겪는 明과 暗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남한 생활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6일 상오 서울 강남경찰서 유치장. 100만원짜리 고액 위조수표 사건과 관련,구속된 탈북자 鄭龍씨(28·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하룻동안의 유치장 생활로 얼굴이 몹시 상기된 鄭씨는 남한 생활 1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는 것이믿기지 않는 듯 담배를 계속 빼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만 남한 생활에 익숙했고 법을 알았더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鄭씨는 지난해 9월 먼저 북한을 탈출한 형 鄭연씨(33)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와 여동생,남동생 등 가족 3명과 함께 북한을 탈출,화제가 됐던 인물. 鄭씨는 “평양에서 비행군관학교를 다니다 92년 유학중 남한으로 귀순한 형 때문에 함북 온성군 탄광지역으로 쫓겨나 종이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생각난다”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다시 먼 곳으로 숙청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때 경찰을 잔뜩 긴장시켰던 100만원짜리 위조수표 사건은 말 그대로 남한 물정에 어두웠던 한 탈북자의 어처구니없는 범죄였다. 지난 6월 鄭씨는 사회적응 훈련을 마치고 형 친구이자 89년 귀순해 냉면 체인점 사업을 하는 全모씨(31)의 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월급은 불과 50만원이었지만 국가에서 아파트를 제공받아 다른 탈북자에 비해 쉽게 출발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회사 동료 金모씨의 컴퓨터 가방에 들어 있던100만원짜리 위조수표를 몰래 꺼내 은행에 입금하려다 은행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수표는 金씨 등 3명이 회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스캐너로 위조한 것이었다. 鄭씨는 “친한 동료의 수표가 사무실에 돌아다니고 있어 입금하려 했을 뿐 범행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및 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뒷면에 인쇄조차 안된 조잡한 수표를 알고도 입금시킨 뒤 신고한 은행원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90년대 이후 탈북 귀순자가 늘어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이들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순,주변의 지원 속에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전문직업인 연예인 신앙인 등으로 변신,북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꾸려 나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鄭씨처럼 적응에 실패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정착금을 탕진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시베리아 벌목공 출신인 金모씨(35)는 “솔직히 문화적 차이와 소외감 때문에 생활에자신이 없다”면서 “적응을 하지 못해 술과 도박으로 소일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귀순자 朴모씨(42)는 “취직을 해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싫어 그만두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탈북자 모임인 ‘숭의동지회’ 관계자는 “북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탈북자들은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상당수가 개인능력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정부는 부적응자들의 재교육 및 취업,장래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강제 송환 위기 40대 탈북자/日에 난민인정 거부 취소訴

    【도쿄 연합】 북한 탈출을 주장하며 한국을 거쳐 일본에 밀항한 뒤 난민을 신청했다 거부돼 중국으로 강제송환될 처지에 놓인 金龍華씨(45)는 27일 난민 인정을 거부한 법무상의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후쿠오카(福岡)지법에 제기했다. 대리인인 야노 세이고(矢野正剛) 변호사에 따르면 金씨는 소장에서 지난 88년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했음을 주장하면서 일 법무상이 “국적을 중국으로 인정한 것은 중대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 솔라즈 前 美 하원외교위 亞太소위원장(인터뷰)

    ◎“햇볕론은 한차원 높은 외교”/金 대통령 취임 20세기 가장 감격적인 드라마/DJ 제거 음모 저지위해 모든 노력 다했었다 미국 의회의 인권단체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NED)’ 이사장인 스티븐 솔라즈 전(前)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58)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솔라즈 이사장은 75년부터 92년까지 9선의 하원 의원을 지낸 관록있는 정치가.임기중 내내 아·태 소위원회에서 일하며 한국의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엔 민주화와 인권을,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이기도 하다. 한때 주한 미국 대사의 물망에도 올랐던 그는 지난 2월 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식 때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 한국을 방문했다.5일 출국에 앞서 솔라즈 이사장을 만나 ‘햇볕정책’ 등 한국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자세히 알아 보기 위해서다.4일 탈북자 5명을 직접 만나 북한의 인권상황과 경험 등을 자세히 들었다.불법체포및 구금,수용소 생활과 고문 등 북한에서의 인권상황을 폭넓게 조사해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전국재단은 이를 종합해 계간 소식지 ‘민주주의 저널’에 특집기사로 게재할 것이다. ­80년과 91년 등 북한을 두번이나 방문했다.특히 첫방문을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적 입지확보를 노린 방북이라고 지적했었는데. ▲처음 북한을 방문한 시기는 어느때보다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상정한 긴장이 고조됐을 때이다.북한이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방북했다.물론 북한의 초청에 응해 선전에 이용됐다는 비난도 있었다.그러나 방북 이후 변화없는 북한의 태도와 실질적인 대남위협을 눈으로 목격했다.그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金日成이 사라지면 북한이 개혁개방의 자세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는데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이 천명하고 있는 ‘햇볕정책’이 주효할 것으로 보는지. ▲당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햇볕정책’은 현재 한반도문제에서 취할 수 있는 대안중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본다.그것은 북한이 취하는 호전적인 자세를 수용하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주는 한단계 높은 외교술이라고 하겠다. ­지난 2월 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한국 현대사를 소상히 아는 사람으로 金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느낀 점도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金 대통령의 취임식은 20세기에서 가장 감격적인 한편의 정치 드라마였다.아마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떤 작품보다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본다.내 인생에서도 의미가 깊었다.그것은 진정한 한국 민주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또 인간 金大中씨의 인생역정 가운데 한 정점일 뿐만 아니라 한국민들이 이룩한 민주승리의 순간이었다.그를 살해하려던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불러 함께 앉은 장면은 믿기 어려운 의미있는 모습이었고 한국내 민주주의 신장을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 ­金 대통령과는 언제부터 교분을 쌓아 왔나. ▲70년대말 처음 金 대통령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어 왔다.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할 당시 집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한 적도 있다.나는 당시 한국 민주주의의 신장이 한국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며 이를 미 행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金大中씨를 제거하려는 것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이를 저지하고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한국의 반민주화나 인권상황을 강력히 지적하면서 비판적이었던 입장이 77년 한국방문 이후 크게 태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朴正熙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그점을 지적하면서 자연히 인권상황을 비판했고 그뒤에도 변화가 없었다.그러나 77년 한국을 방문해 북한의 조직적인 위협을 직시하게 됐다.그점이 한국 정치상황에 영향을 줘 인권상황도 안좋은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았다.그후 군사력이 월등한 북한의 위협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과 미군의 주둔을 행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었다.그래서 내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는 두번의 쿠데타가 있었다.특히 80년 全斗煥씨의 군사행동은 법원의 심판을 받아 쿠데타로 규정됐는데. ▲全斗煥씨의 군사행동은 광주학살을 초래하는 등 지극히 유감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그의 행동을 심판한 법원의 판결은 이성적이고 이유있는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이전에 한국내 인권을 지적한 것도 이 사건에 유감을 표한 차원이기도 했다. ­한국은 지금 국제통화기금(IMF)지원 체제하에 놓여 있다.경제위기가 닥친 원인을 지적한다면.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차관도입과 신용없는 대기업 대출일 것이다.그러나 투명성 없는 금융기관의 행동에는 정치권과 행정부 인사들의 은행업무 개입이 동기가 된 부분도 많다.
  • 北 억류 국군 포로 35명 공개/탈북 梁珣容씨 증언

    ◎11명은 가족이 사실 확인 6·25전쟁 때 실종됐거나 전사 처리된 국군 중 북한에 포로로 억류돼 있는 사람 35명의 인적사항이 처음으로 발표됐다. MBC­TV는 25일 상오10시부터 생방송한 특별기획 프로그램 ‘국군포로’에서 강노원씨(경북 달성 출신,키 작고 하사 출신)등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1명은 남한에 있는 가족에 의해 사실임이 확인돼 명단의 신빙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프로에는 지난해 12월 북한을 탈출한 梁珣容씨가 출연,방송이 진행되는 5시간 동안 자신이 만나거나 간접적으로 들은 국군 포로 한사람 한사람에 관한 기억을 되살려냈다. MBC­TV는 26일에도 상오10시부터 5시간동안 생방송을 하며 명단 10명을 추가로 발표할 계획이다.한편 담당PD 金學永씨는 “이 명단은 梁씨가 탈출 직후 이미 국방부에 밝힌 내용인데,국방부에서 발표를 미뤄왔다”고 밝혔다.
  • 해마다 6·25는 찾아오듯이/특집방송도 ‘연례행사’ 수준

    ◎일부 프로그램만 차별성으로 승부 6·25전쟁 48주년을 맞아 각 방송사가 다채로운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하지만 특집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 독창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이산가족 만남,황장엽 인터뷰,국군포로 등의 내용은 방송사간 중복 편성되기도 했다. KBS가 24일 북한 억류 국군포로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잊혀진 전사들­국군포로’편과 MBC의 ‘국군 포로’(25일)는 비슷한 포맷이다.조창호·양순용씨 등 귀환자들이 출연,지워졌던 이름들을 하나씩 살려내며 대응책을 찾아보는 시사적 의미 외에는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어느 한쪽이 따라간 느낌이다. MBC가 22일부터 사흘간 생방송하는 ‘이제는 만나야 한다’ 프로도 SBS가 지난 15일∼19일 사이에 마련했던 ‘분단50년,혈육을 찾습니다’와 비슷한 구성이다.이산가족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본다는 주제로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10일까지 이산가족의 명단과 사연을 접수한 MBC,중국인 연수생이 전한 편지로 이산가족들의 애환을 달래준 SBS의 틀은 소재의 측면 외에는 대동소이하다. 황장엽씨가 북한의 상황과 지금의 감회 등을 얘기해주는 ‘어제의 분단,내일의 통일’이라는 SBS 프로는 19일 방송된 KBS특집의 재판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진부한 풍경 속에 MBC의 2부작 드라마 ‘이방인’은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탈북자 가족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주제로 26일 방영될 ‘이방인’은 접근 방식이 특이하다.이전의 특집극이 과거의 상처에 머물렀다면 ‘이방인’은 처음으로 현재의 문제를 포착,통일 이후 민족동질성 회복방법을 모색한다는 이색적인 드라마다.다른 방송사와의 차별점을 확보한 기획이다. 그리고 이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을 생각,47년을 혼자 살면서 청렴한 의사로 살다간 오치관씨의 삶을 다룬 ‘왕룡사 홀아비의 47년 망향가’(KBS 23일)도 개성 있는 시도로 보인다. 케이블TV A&C코오롱이 22일부터 방영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인간과 전쟁’ 7부작이나,아리랑TV(채널 50)의 비무장지대에 생태계 밀착 취재도 어느 정도 특화에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 국군포로 송환(정직한 역사 되찾기)

    ◎‘실종 45년’ 2,000명 생존 추정 올해는 6·25전쟁 발발 48주년,종전 45주년이다.반세기 동안 죽은줄로만 알고 있던 국군포로들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는 현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이는 그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해온 우리의 국군포로 송환 문제 인식에 일대 각성의 전기를 가져왔다.18일은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 45주년이기도 하다 최근 梁珣容 일병의 귀환은 94년 趙昌浩 소위의 귀환과 함께 생존 국군포로의 존재를 명확히 했다.100여명의 생존자 명단까지 확인되고 있다.북한에 억류돼 강제노역 등 어려운 삶을 연명해온 이들은 대부분 70세 전후.더이상 기다릴 여유도 없다.이들의 송환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야말로 민족상흔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그 현실과 대책을 살펴본다. ◎정부의 해결방안/송환문제는 남북관계 진전 봐가며 추진/정착돕게 연금지급 근거법 등 제도 정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문제와 관련,정부는 두갈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북한은 6·25전쟁 포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때문에 전쟁포로의 존재 유무를 놓고 소모적 공방을 벌이기 보다는 우선 생사확인부터 해보자는 취지다.송환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추진키로 했다. 또 지난해 탈북자보호법을 만든데 이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귀환자지원법’을 제정키로 했다.국군포로나 강제납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북한 주민의 귀순과 다르다. 지원내용도 달라야한다.정부는 지난해말 귀환한 梁珣容씨 같은 국군포로에게 정당한 수준의 연금을 지급할 근거규정도 마련키로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송환 추진이 당연하다.제네바 포로협약을 근거로한 송환 공식요구,유엔 총회 및 안보리에서 문제제기 등을 생각할 수 있다.남북경협과 포로송환을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를 쟁점화함으로써 지금도 어려운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가능성을 정부는 염려한다. 曺龍男 통일원 인도지원1과장은 “북한은 현재 국군포로가 없으며 강제납치한 경우도 없다고주장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의 확실한 진전 없이는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밝혔다.유가족들이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개인 차원에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도 있으나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국군포로 및 강제납북자 유가족과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태도가 불만이다.李哲承 건국50주년기념사업준비위 회장은 “국군포로와 함께 6·25 당시,그리고 그 이후 강제납북된 민간인들을 송환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념사업준비위는 국군포로 송환 촉구 100만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2만2,562명 전사/6·25 희생국군 분류/1만7,020명 실종처리/민간 7,000여명 남북 국방부는 6·25전쟁에서 실종된 국군숫자가 4만1,95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중 2만2,562명이 추후에 전사처리 되었다. 나머지 1만7,020명을 실종으로 처리했고 2,372명을 미확인으로 분류했다. 국방부의 실종자 분류는 정확한게 아니다.주로 유가족 증언을 토대로 한탓이다.유가족이 신고해오면 전사로 처리하고 제보가 없는 경우 실종으로 분류했다. 현재 생존 국군포로는 2,000명 안팎일 것으로 관계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6·25전쟁 기간동안 납북된 민간인을 뜻하는 실향사민(私民)은 7,000여명이다.동진호 선원 등 전쟁후 납북억류자는 450명이다. ◎기고/지만원 군사평론가/‘戰士일생 관리’시스템 갖춰라 ○희생자 보상 형편없어 군이 무기를 구매할 때는 무기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군수지원’(ILS;Integrated Logistic Support)시스템을 운영한다.그러나 정작 전사(戰士)들의 일생을 관리하는 ILS시스템은 만들어져 있지 않다.군이 스스로의 일생을 관리하는데 게을리해온 것이다. 94년 10월 趙昌浩 소위가 64세의 나이로 귀환했다.그에게는 밀린 봉급,퇴직금,연금조로 1억6,000만원이 지급됐다.조국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송두리채 희생당하고 탈출해온 노전사에게 주어지는 돈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98년 4월 梁珣容씨가 72세의 나이로 귀환,기자회견을 가졌다.그에게는 45년간 밀린 사병봉급 200만원이지급됐지만 그는 이 돈을 군에 반납했다.그에 대한 국가의 대접이 겨우 이런 식이냐는데 대한 섭섭함과 항의의 뜻이었을 것이다.결국 그에게는 탈북자지원법에 따라 6,400만원 지급이 결정되긴 했지만,이 또한 국가의 도리가 아니었다. ○희생의 대가 충분히 정부는 ‘국군포로(귀환자)특별법’을 연내로 제정하고 적십자 기구나 유엔 등의 협력을 얻어 북한에 남아 있을 포로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주관 주체도 아직은 만들지 않고있는 듯하다.전사들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은 바로 군 자신들의 수치요,직무유기다.그러나 더 부끄러운 것은 전우애의 실종이다. 200만원을 돈이라고 지급하는 군수뇌의 식견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군전체가 72세의 나이로 적진을 탈출해온 기막힌 영웅들을 열열이 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현역 장병들과 향우회에서는 실직자들에게는 봉급의 10%를 떼어주면서도 그 기막힌 고통을 치르고 돌아온 전우를 위해 단 한푼의 성금도 갹출하지않았다.눈만 뜨면 외치는 전우애는 과연 무엇이며 이들이 목숨바쳐 따랐던 상관이란 과연 무슨 존재들이란 말인가. 전쟁이 나면 70만 현역은 누구나 다 포로가 될 수 있다.그들도 포로가 되면 두사람의 노병들처럼 북에서는 아오지탄광에서 혹사 당하고,남에서는 불청객에 가까운 대우를 받게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희생당하는 자만 억울하다.그러면 다음 전쟁에는 누가 나가 싸우려 할 것인가.국가는 위기에 처했을때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달라고 당당히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의 우리 국가는 그런 입장에 서있지 못하다. ○보병전 개념 수정해야 이번 기회를 통해 군은 두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하나는 전사의 일생관리를 책임지는 곳은 군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집행은 다른 행정부처에서 하더라도 마스터플랜과 시스템은 군이 만들어야 한다.아울러 월남전에 참가했던 병사가 고엽제 질환과 유사한 질환을 앓으면 무조건 보상해주어야 한다. 또다른 하나는 실속없이 사상자와 포로를 대량으로 양산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보병전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지금의 전쟁은 전자전과 화력전이다.군은 이에 대한 충분한 장비를 구비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은 현대적 장비를 가지고도 19세기식 보병전에 집착하고 있다.세상이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군만 변화의 사각지대가 아닌지 생각해주기 바란다. ◎작년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인터뷰/“편지왕래 물꼬라도 텄으면”/북에 남겨진 전우 생각하면 가슴 찢어져/정확한 숫자 조사·국제여론 유도 아쉬워 지난해말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梁珣容씨(72)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고향집에서 살고 있다. 실명한 왼쪽 눈,몇 개만 남은치아,절룩이는 다리….45년간 긴긴 억류의 흔적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북녘에 남겨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귀환후 첫 6·25를 맞는 느낌은. ▲지금도 미귀환 포로로 북한 공산체제 아래서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을 동료들이 생각납니다.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는 북한당국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정부에 바라는 사항은. ▲미국은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골까지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는데 우리는 포로는 물론 전사자 조사 조차 제대로 안돼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백발노인이 자식의 생사를 알기 위해 찾아와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봤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북한을 상대하려면 처음부터 너무 크게 시작하면 안됩니다.우선 편지왕래라도 하여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도 국력이 신장됐으니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북한이 전쟁포로들의 생사여부라도 확인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지원금 수령을 계속 거부할 것인지요. ▲지난 4월 귀환 기자회견을 마치고 동생(병용·64)이 연금수령을 거절하며 국방부관계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여기가 조국이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지요.북한에 억류됐던 세월동안 조국이 그리웠고,나이가 들면서 고향 선산에 묻히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습니다.돈이 탐나서 돌아온게 아닙니다.하지만 46년전에 일등병이었는데 지금도 일등병 연금을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정부가 관련법을 고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바뀐 법에 의해 책정된 연금은 받아야지요.
  • 탈북 두 가족 5명 입국

    북한을 탈출한 뒤 제3국에 머물던 두 가족 5명이 25일 상오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 안기부는 96년 12월 북한을 탈출했던 김인수씨(가명·30)부부와 지난 해 9월 탈북한 이정필씨(가명·42)와 두 아들 등 5명이 25일 상오 8시40분 대한항공편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김씨는 부부가 함께 탈북,한국으로 귀순을 희망해왔으며 이씨는 10살,7살된 아들을 데리고 있어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송환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 사회단체 대표 청와대 오찬 이모저모

    ◎“지방선거후 정계개편 시기올것” 金 대통령/金炯旭 실종·각종 의문사 사건 진상규명/적재적소 인재등용·장애인 고용 등 촉구 金大中 대통령은 14일 낮 청와대에서 가진 시민단체와 사회단체 대표 39명과의 오찬에서 이전과는 달리 말을 극도로 아꼈다.국정현황과 국정운영 철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참석한 단체장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질문을 듣고 핵심만 답하는 ‘간소함’을 즐겼다. ○현안 폭넓게 질문·건의 단체장들의 질문은 무척 광범위했다.인사문제에서부터,대통령의 ‘고군분투’모습,유(柔)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국정운영,장애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전반적인 현안들이었다.그러나 金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애정은 짙게 깔려있었다. 다음은 단체 대표와의 대화록. ▲權快福 광복회=국난때마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 슬기롭게 극복했듯이 다함께 극복해 나가자. ▲徐英勳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회=임기중 민족의 운명이 번영의 길로 나가도록 대통령을 밀어 국난을 헤쳐 나가자. ▲姜汶奎 녹색연합=기업구조조정은 부진하고 노동계만 불평등하게 고통이 분담되고 있는 것 같다.‘작은 정부’ 실천에도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다. ▲明魯根 한국YMCA연맹=유하게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은 개혁돼야 할것 ▲金대통령=기업은 개혁돼야 할 것이다.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노사정 2기 활동기간중 고치자는 것이다.대통령만 고군분투하는 건 아니다.나는 외환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있고,정부도 함께 노력하고 있다.유하다고 하는데,강하게 하는 것은 내 전문이다(웃음).그러나 국민과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宋寶炅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개혁성과 전문성을 고려,적재적소에 인재를 써야 할 것이다. ▲배다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회=통일부을 개방,수시로 협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민주화운동의 희생자도 보훈법 대상이 되어야 하고,의문사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金대통령=개혁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지적은 매우 옳다.전국연합이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고 통일부에 얘기해 주겠다(웃음).의문사 진상규명과 관련,金炯旭씨 실종사건 등은 당사자가 민주화투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진상은 규명돼야 한다. ▲金성재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고용 약속이 외환위기로 지켜지지않고 있다. ▲徐敬錫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회=인도적 관점에서 탈북자를 처리하고,현정계개편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金庸來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시민단체지원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 ▲金대통령=장애인에 대한 국민인식이 달라져야 한다.지방선거 끝나고 정계개편 시기가 오지 않나 생각한다.
  • 탈북 주민 국가시험 일부 과목 면제 검토

    정부는 탈북 주민들이 한의사,치과의사,공인중개사 등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국가시험에 응시할 경우,기능과 관련 없는 일부 시험과목을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또 북한에서 차량을 운전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의 경우 국내의 교통법규를 파악하기 위한 필기시험은 보되,실기시험은 별도로 치르지 않아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오는 13일 통일부차관부 주재로 18개 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북한이탈주민 대책협의회’를 열어 이같은 방안을 골자로 하는 지원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 “포로 귀환 脫北者와 동등대우라니”/梁珣容씨 지원금 반납

    45년만에 귀환한 국군포로 梁珣容씨(72)가 30일 밀린 봉급명목으로 받은 2백2만원을 반납했다. 梁씨는 장조카 基焄씨(34)를 통해 이날 국방부 민원실에 돈이 든 통장과 도장,千容宅 국방장관 앞으로 보내는 서신등을 전달했다. 基焄씨는 “탈출 국군포로를 탈북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정부가 제정을 추진중인 국군포로에 관한 특별법을 소급 적용,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국군포로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 梁씨에 대해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北 돕기 금식행사 오늘 전국 26곳서

    ◎6개 종단­94개 단체 참여/36國 107개 도시도 동참 ‘북한돕기 국제 금식의 날’행사가 25일 낮 12시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주무대로 전국 26개 도시,전세계 36개국 107개 도시에서 열린다. 국내에서는 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유교·천도교 등 6개 종단과 94개 단체가 참여하며,외국에서도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와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종교단체,유엔아동기금(UNICEF)과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민간구호단체 등이 북한주민의 고통을 덜고 인류평화를 기원하자는 뜻에 함께 한다. 25일 행사는 한국시간으로 낮 12시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주무대로 하여 부산 KBS홀,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일본 도쿄의 정토종 梅窓院,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침례교회 등 전국 각 도시와 세계 각지를 연결해 진행된다. 서울 펜싱경기장 행사는 3부로 나뉘어져 6시간 동안 계속된다.1부에서는 金鍾泌 총리서리 및 각당 총재의 격려사와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달라이라마,지미 카터 등의 영상 메시지가 소개되며 2부는 학생들의 통일백일장,탈북자들의 편지 낭송,3부에서는 테너 임웅균과 신승훈,변진섭 등 가수들이 공연을 펼친다.
  • ‘45년만에 免役 신고’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증언

    ◎“국군포로 50∼60명 北 생존”/7명 이름 공개… 5명 실종자 명단서 확인/대부분 탄광 배치… 자녀들도 막장 생활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힌 국군 포로의 대부분이 노령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고 현재 50∼60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귀환 국군포로 梁珣容씨(72)가 24일 밝혔다. 45년만에 북한을 탈출,지난해 말 귀환한 梁씨는 이 날 육군회관에서 면역(免役)신고를 한 뒤 이같이 말했다. 국방부는 특히 梁씨가 이름을 밝힌 생존 국군포로 7명 가운데 5명이 6·25전쟁 실종자 1만9천여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김수동 이차식 임점용 양재구 강성용씨는 실종자 명단에 들어 있어 실제로 생존 국군포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용환기 이영찬씨는 전사자 명단에 올라 있다. 梁씨는 “국군포로들은 56년 6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면서 대부분 탄광에 배치되고 극소수만 협동농장 등으로 옮겨졌다”며 “당시 아오지 탄광에만 국군포로 5백여명이 있었으며 미군 포로 3명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들은 대부분 탄광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대를 이어 채탄작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梁씨는 “지난 해 9월 국제적십자사 식량 조사단이 함북지역을 방문했을때 노숙자와 부랑아 등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실시됐고 일부 주민들은 특정 지역에 격리되거나 외출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북한당국은 95년 8월 노동력 부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 최저연령을 남자는 25세에서 29세,여자는 23세에서 27세로 상향 조정했으나 먹고살기가 힘들어 주민들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고 이혼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梁씨는 북한을 탈출한 뒤인 지난해 10월 중국에서의 첫 상봉에 이어 이날 본처 朴옥임씨(72)와 재회했다. 朴씨는 일제말 결혼한 남편이 53년 입대해 행방불명된 뒤젖먹이였던 두 딸을 의지해 왔으나 이들마저 병으로 잃고 시동생 집에 얹혀살아왔다고 말했다.
  • 우리의 소원은…/‘통일 노래 심기 운동’/경인女專 산업위생과

    ◎자유로에 매년 노래말 한구절씩 나무 글자로 “우리의 정성을 모아 심은 나무들이 민족 통일을 일구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어요” 경인여자전문대학 산업안전위생과 학생 120명은 14일 경기도 파주군 자유로에 ‘푸른 통일’의 꿈을 심었다. ‘민족통일교육’이라는 학교 교육이념에 따라 ‘통일 노래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통일의 노래’의 첫 구절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나무글자로 심은데 이어 이번에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심었다. 남북한을 잇는 자유로 임진각과 문산대교 사이의 중앙분리대 녹지공간이 나무글자를 심는 무대다. 99년에는 ‘이 정성 다해서 통일’,2000년엔 ‘통일을 이루자’를 심어 나무글자를 완성할 예정이다. 2백여그루의 묘목이 모여야 만들어지는 한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2m.노랫말의 글자 모양에 맞춰 매년 4월마다 1천6백여그루의 회양목 묘목을 심는다.이 학교의 통일 교육은 96년에 광복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통일 강연회와 북한실상알기 백두산 통일연수를 한 것이계기가 됐다.지난해 2학기에는 ‘통일의 기초’라는 교과목을 교양필수과목으로 개설했다. 전교생 3천8백여명이 지난해부터 ‘통일기금마련통장’을 만들어 지금까지 6천7백여만원을 적립,탈북자 돕기와 북한 구호물자 보내기 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학기마다 한번씩 회양목 가지치기와 물주기,주변 청소 등 ‘통일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김길자 학장(57)은 “통일 조국을 이끌어나갈 주역인 대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심고 남·북한을 잇는 관문인 자유로를 통일 염원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통일노래 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 탈북자 중국서 집단살인극/“가출아내 행적대라” 조선족 3명 살해

    【베이징 연합】 1년6개월전 아내와 중국으로 탈출한 30대 후반의 북한인이 다른 남자와 달아난 아내 문제로 주점 종업원인 3명의 조선족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최근 랴오닝(遼寧)성 잉커우(營口)시에서 발생한 것으로 5일 전해졌다. 이날 북경에 배달된 遼沈晩報 3일자에 따르면,96년 9월 아내 최운옥씨를 데리고 탈북한 김택민씨(39)는 지난달 14일 새벽 같은 탈북자 백용철과 함께 잉커우시 부산주점에 들어가 조선족 여종업원 3명에게 아내가 간곳을 대라며 흉기로 위협하다 거절당하자 이들을 모두 살해한후 달아났다. 탈북후 이 주점 종업원으로 일하던 최씨는 주점을 그만두고 다른곳에서 일하라는 남편 요구를 거절,여러차례 구타를 당했으며 그동안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에서 왔다는 조선족 남자와 눈이 맞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김씨는 범행 후 푸순(撫順)시 고향집에 가 있던 부산주점 주인 裵모씨(여·조선족)에게 아내의 행방을 물으러 갔다가 범행 3일만인 17일 붙잡혔으며 공범 백용철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 북 벌목공 등 4명 귀순/CIS 은신중 유엔도움으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은거하다 한국으로 귀순을 요청한 탈북자 4명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도움으로 9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서울에 도착한 탈북자는 장진(35),박병수(34),안성구(34),홍정철씨(34) 등이다.
  • 대대적 인사개편/연형묵 중용 가능성

    ◎김정일,최측근 최용해 해임 등 숙정 작업/연에 ‘영웅칭호’… 16일 전후 총리복귀 점쳐 지난해 10월 당총비서에 추대된 김정일은 체제를 정비하고 명실상부한 김정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과 함께 내부적으로 인사개편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북한문제전문가들은 지난해 농업당담비서인 서관희가 처형된 것으로 외신에 보도된 데 이어 김정일의 최측근 심복으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을 이끌어오던 최용해 제1비서가 지난달 전격 해임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군부의 핵심인물인 총참모장 차수 김영춘 역시 두달이 넘도록 공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신병이상설을 증폭시키고 있다.그런가 하면 자강도당 책임비서 연형묵 전 총리가 최근 ‘노력영웅’칭호를 받아 앞으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북한 내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가운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최용해의 해임이다.최는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14차청년동맹 전원회의에서 신병관계로 해임됐다고 보도됐다.그러나 최의 해임은 지난해 농업담당 비서인 서관희·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 이봉원 대장을 비롯 청년동맹 간부들이 반역 및 간첩사건 등에 연루돼 처형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또 최용해 자신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다 북한이 해당인물의 숙청때 통상 신병관계를 내세웠던 점으로 미루어 문책·숙청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전 정치국원·82년 사망)의 아들인 최용해는 연배가 비슷한 김정일과 막역한 사이로 김정일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친위조직 청년동맹을 이끌어왔다.최는 지난해에도 김정일의 공식나들이에 12회나 수행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12월12일 청년동맹 13차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총참모장 김영춘이 제법 오래동안 공석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김은 지난해 12월7일 김정일과 군악대 공연관람을 끝으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총참모장에서 해임됐다는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일단은 신병 때문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전총리로 자강도당 책임비서인 연형묵은 지난달 23일 노력영웅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관련,경제에 대해 많이 알고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장으로 지난 92년 한국을 방문하는 등 대남관계에도 밝은 연형묵이 한국의 새정부 출범에 맞춰 총리로 재기용될 가능성이 많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달들어 군부대 시찰을 강화하고 있는 김정일은 56회 생일인 16일을 전후에 총리, 인민무력부장 등 핵심요직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또 5일에 있은 로마주재 유엔식량농업기구(FAO)북한대표부의 서기관 가족 망명 등 외교관들의 잇단 탈북과 관련, 외교부 고위관계자에 대한 문책과 조직정비에도 나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달 하순의 민생현장 시찰에 이어 이달들어 군부대 시찰을 강화하고 있는 김정일은 자신의 56회 생일인 오는 16일을 전후해 총리,인민무력부장 등요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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