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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내 탈북자 5만명”

    중국 내 탈북자의 규모는 5만명으로 현재까지 강제 송환된 탈북자는 최대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난민·이민위원회(USCRI)는 14일(현지시간) ‘2006년 국제 난민조사:위협과 권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단체는 매주 100여명의 탈북자가 강제 송환되고 있으며 구금과 학대 등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 공안 등이 일부 체포된 탈북 난민들로부터 250∼600달러의 벌금을 뜯은 뒤 풀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탈북 여성들은 성매매 등에 내몰리고 있으며 일부는 생존을 위해 중국 남성과 결혼하지만 이들에게서 태어난 2세들은 ‘무국적자’로 방치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탈북자를 돕는 비정부단체 요원들을 탄압하며 탈북자를 숨겨주는 중국인과 사업주에게도 각각 120달러,36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2005년도에 1400명으로 한국 내 탈북 난민은 모두 2100명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전 세계 난민은 현재 1200만명으로 2004년 1150만명보다 50만명이 늘었다고 분석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World cup] 北에 월드컵경기 위성으로 제공

    독일 월드컵 경기가 우리 정부 지원으로 북한에 중계된다. 11일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북측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 마케팅 대행사측과 협의, 북측에 월드컵 경기를 위성으로 제공하기로 했다.”면서 “9일 독일-코스타리카 개막전에 이어 10일 열린 잉글랜드-파라과이 경기 화면도 위성을 통해 북측에 보냈으며 북측은 이를 녹화해 지상파로 방송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위성중계에 드는 중계료와 위성사용료는 방송발전기금과 남북협력기금에서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이날 “조선(북한)의 수도 평양도 대회 개최 기간에 ‘월드컵 열기’로 들끓게 될 것 같다.”며 “축구 애호가뿐 아니라 전 인민의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회 개막 이틀 후인 11일부터 경기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녹화방영된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TV 보급 대수는 약 300만대로 가시청 인구는 전체 인구(2200만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1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사설] 김영남 모자상봉 北 선전장 안돼야

    북한이 엊그제 납북자 김영남씨와 모친 최계월씨의 모자 상봉을 전격 허용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30여년의 긴 세월동안 생사 여부도 모른 채 생이별의 아픔을 견뎌왔던 가족들의 눈물 어린 만남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이 김씨 모자 상봉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리란 우려가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대남 공작교관까지 할 정도로 북한체제에 길들여진 김씨가 모친과의 상봉을 통해 북한에서 편안히 잘살고 있다는 점과 자신의 자진 월북을 강조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북·일간 쟁점 현안인 납치 일본인 여성 요코다 메구미의 사망 논란과 관련, 남편인 김씨의 입을 통해 그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려 할 것이다. 잇단 납치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여론을 무마해보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 모두에서 김영남의 딸 혜경양과 모친 최씨의 유전자 조사가 일치한 것이 북한 입장에선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부시 미 행정부는 탈북자와 함께 납북자 문제를 대북 압박수단으로 삼고 있는 터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씨의 모자 상봉이 북한의 선전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다른 당사국인 일본은 납치 문제를 일단락지으려는 북한의 속셈을 경계하며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물론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인도적 차원의 모자 상봉에 유보 내지 비판적 입장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번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김씨의 생사확인을 요청하는 등 납북자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했던 정부는 이번 상봉을 계기로 480여명의 다른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의 애끓는 만남이 하루속히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역시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원인 제공자로서 성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시작은 그 끝과의 약속이다.’라는 어귀가 먼저 눈에 띄는 평창동의 ‘김준 재즈클럽’. 이 곳에는 ‘재즈계의 신사’라 불리는 김준씨가 늘 삽화처럼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재즈는 여백이 많은 음악입니다. 불협화음을 화음화하는데 묘미가 있지요. 악보에 없는 음을 표현하는 즉흥적인 호흡이 생명입니다.” 재즈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걸로 끝장이라고 말하는 김준(66)씨. 때문에 그는 활발한 공연과 더불어 매년 한두 장 이상의 음반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남이 알고, 사흘 안 하면 무대에서 떠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즈에 몰두하는 김준씨 클럽에는 필자가 시간 날 때마다 드나들었지만 불과 두세 번 정도를 빼면 손님이 단 한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스스로 강조하듯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온 지 30여년째다. 솔로 활동 이전 ‘빨간마후라’로 잘 알려진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의 멤버였던 그는 또한 69년도부터 동료 박상규, 장우, 차도균씨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포 다이나믹스’를 결성해 현재까지 근 36년간 함께 활동하며 우정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수 겸 작곡가 김준씨의 본명은 김산현. 그의 삶은 귀족풍의 얼굴과는 달리 파란만장했다. 1940년 임야만도 18만여 평이 넘었던 신의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가족은 46년, 진남포 해안에서 어선을 이용하여 탈북, 서울로 와 남산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강원도의 원주와 영월, 문경, 목포 등을 거쳐 제주 최남단 모슬포에 정착, 대정고를 졸업했다. 타고난 음악적 자질로 각종 콩쿠르에서 제주를 석권했던 그였지만 가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는 경희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 음악경시대회’에 참가한다. 이미 졸업생이었지만 학교장의 배려로 고3재학생으로 서류를 위조해 응시한 것. 결국 그는 200여 명의 참가자 중 3위로 입상하며 경희대 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60년, 대학생활이 시작되자마자 4.19를 맞아 잦은 휴강과 함께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종로2가 ‘뉴월드’ 음악감상실 DJ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당시 50인조로 구성된 교회 성가대 ‘시온성가단(단장 이동일)’의 일원이 된다. 아울러 이 무렵 당시 4인조 쿼텟 ‘멜로톤’의 멤버 한 명이 입대해 결원이 생기자, 대타로 참여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61년 5월16일, 라디오에서 새벽을 가르는 군가연주와 ‘혁명공약’을 낭독하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학교는 4.19에 이어 다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 정문 앞에는 엄청난 포신을 자랑하듯 탱크가 버티고 있었고 이른바 ‘혁명군’들이 10m 간격으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2학기 수강신청을 끝내고 정상수업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는 한 방문객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지프차에 실려 미아리고개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이송된다. 그 곳엔 이미 예닐곱 명이 먼저 와서 초조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 한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술 중흥을 위해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새로 창단하는 ’예그린가무단‘의 합창단원으로 입회시키겠다’고 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고에 가까웠던 이 예그린의 단장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혁명 주체 세력’ 김종필씨였다. ‘단복은 계절에 따라 무상 제공’ ‘출연료 파격 대우’ ‘향후 무대활동 보장’ 등이 그들이 내건 조건이었다. 이 예그린합창단의 월급은 당시 돈으로 무려 ‘오천원’ 정도였기 때문에 기성가수나 교직에 몸담은 실력자들까지 앞 다투어 응시, 경쟁이 치열했던 터라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예그린, 그는 창작 뮤지컬 ‘한 여름 밤의 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 후 예그린은 해산되고 만다. 때문에 합창단 중 막내이자 가장 ‘끼’가 많았던 동갑내기들, 즉 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은 4중창단을 결성,62년 ‘자니브라더스’를 결성한다. 예그린은 당시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연기, 춤까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했던 만큼 이들 네 명의 실력은 이미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적 실력은 대표곡인 ‘빨간 마후라’ 취입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63년 초여름. 이 영화 제작사인 신필름 측은 작곡가 황문평씨에게 주제가 작곡을 의뢰해온다. 아울러 이 영화주제가는 파일럿들이 첫 출격할 때 불러야하는데 하필 오늘 OO기지 비행장을 빌려 촬영하는 날짜라 오늘 중으로 만들어 달라고 독촉을 해왔다. 가사를 받아 쥔 황문평씨는 노래 구상은 물론 동시에 노래를 불러줄 가수부터 찾아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급한 대로 당시 동아방송 강수향 음악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 마침 방송국에 자니브라더스가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황씨는 곧바로 악상의 뼈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멜로디를 다듬었다. 주제가를 의뢰받은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작곡을 했고 두서너 번의 연습 끝에 ‘빨간 마후라’는 자니브라더스에 의해 취입된 것이다. 자니브라더스의 넷 모두는 악보만으로도 곧 바로 노래가 가능한 실력자들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빨간 마후라’는 어느덧 대표적인 공군가로 자리했다. 또한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특히 대만에서도 이 노래가 대만 공군가로 불려지고 있는데 심지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대만국민들은 이 노래가 자국의 군가로 알고 있을 정도다.(계속) sachilo@empal.com
  • 국군포로 548명 생존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규모는 각각 489명과 1734명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제2정조위(위원장 송영선)는 국가정보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를 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난해까지 489명의 납북자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103명은 생사가 확인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전쟁 중 억류된 국군포로는 약 5만명으로 추산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1734명이었다. 생존자는 548명, 사망자는 885명, 행방불명자는 301명이었다.또 지난달 12일 현재 국내 입국 탈북자는 8023명으로,7346명이 서울(2874명) 등 전국에 분산돼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677명은 정부시설에 보호 중이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천태종 ‘새터민 정착’ 지원 나서

    새터민, 즉 탈북자들을 위한 템플 스테이가 국내 처음으로 천태종 사찰에서 실시된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주한 외교사절이나 국내의 신자·일반인들을 위한 템플스테이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탈북자만을 위한 사찰문화 체험 행사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대한불교 천태종(총무원장 정산 스님) ‘나누며하나되기운동본부’는 탈북한 뒤 남한 사회에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1,2일 충북 단양 구인사와 단양 일대에서 전통사찰문화 체험과 봉사활동으로 꾸며진 템플스테이 행사를 개최한다. 불교 종단 차원에서 처음 마련한 이번 템플스테이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새터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탈북 1∼2개월의 남성 30명이 참가한다.천태종은 이에 앞서 지난달 12일 탈북자 80여명을 구인사와 인근 마을에 초청해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효도 큰잔치를 열었다. 탈북자들은 템플스테이 기간 중 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기도와 탑돌이를 비롯한 불교문화체험을 한 뒤 구인사 인근 온달동굴 관광과 적성농공단지를 견학하며 봉사활동도 벌이게 된다. 천태종 사회부장 무원 스님은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을 필요로 하는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서 빨리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준비했다.”며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인 새터민 정착지원사업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탈북자 7명 또 美망명 준비”

    탈북자 6명이 지난 5일 미국 북한인권법에 의해 미국으로 입국한 이후 또다른 탈북자 7명이 미국행을 준비 중이라고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가 30일 밝혔다. 천 목사는 이날 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2차 미국 망명이 예정돼 있는 탈북자는 총 7명”이라면서 “어린 여자아이 한 명, 남자 여섯 명이며 이중 세 명은 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2일 제3국에 있는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난민지위를 획득했으며, 당초 8명이 준비했으나 최근 1명이 개인적 이유로 탈락했다고 천 목사는 전했다. 그는 미국 입국 시기에 대해 “조성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유동적”이라며 “(이번) 2차에 이어 3차도 예정돼 있다.”고 주장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가족 지켜줄것 같아 美 선택”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지난 5일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 6명은 2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에어포트 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을 탈출한 계기와 중국과 북한 수용소에서 겪었던 처절한 경험과 참상을 상세하게 증언했다. 남자 2명, 여자 4명인 탈북자들은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짙은 선글라스와 야구 모자를 착용했다.탈북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찬미(가명·20·여)씨가 먼저 증언에 나섰다.4년 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한 찬미씨는 2003년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됐다고 한다. 그녀는 미성년자여서 풀려나자 다시 탈출했으나 중국에서 2만위안에 팔려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됐다. 이후 한국으로 가려다가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찬미씨는 북한 수용소에서 형기를 마치기 전에 사망하는 죄수들에 대해 이중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관절을 꺾어 묻는 형벌을 목격했으며, 길가 옥수수를 따먹었다며 빗속에서 옥수수로 재갈을 물리는 등 처절한 고문을 받았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번째로 증언한 한나(가명·여)씨는 예술체조 지도교원이었다. 그녀는 군 복무 중이던 남편이 사고를 당해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당시 12살짜리 딸아이의 옷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국경을 넘는 물건을 배달하던 한나는 중국의 인신매매단에 끌려갔다. 한나씨 역시 2만위안에 팔려 선양의 50대 중국인 집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견뎠으며, 구타 당했지만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 채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 딸을 낳았지만 공안에 붙들리며 또다시 헤어지고 말았다면서 “이런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런 증언이 민족을 구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1998년 탈북해 한 차례 송환됐다가 재탈출한 나오미(가명·여)씨는 “중국인에게 팔려가 3년간 갖은 멸시를 받았고 출산 6개월 만에 북한에 다시 끌려가야 했다.”면서 북한 수용소에 있을 때 출산을 앞둔 한 여성이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은 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병들어가던 참상을 증언했다. 나오미씨는 워싱턴에 갔을 때 “왜 왔느냐?북한에서 죄짓고 온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하며 “정말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북한의 실상, 중국에서 겪는 탈북자의 실상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요한(가명)씨는 왜 미국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미국에서는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고 한국은 탈북자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나쁜 이미지를 남겨 취직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우리는 여전히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지만 단지 정치 체제가 잘못되고 경제난 때문에 살기 어려워 탈북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탈북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기를 원하며 그러면 피맺힌 원한이 풀릴 것”이라면서 “남북이 통일되기를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이끌어낸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현재 선양의 미 총영사관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미 당국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한국 대사관을 거쳐 미국 총영사관으로 넘어온 까닭에 이들의 망명을 허용하면 현재 한국내 탈북자도 똑같이 처리해야 하는 것이 미국의 고민”이라며 “구체적인 결론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이어 “이들 탈북자가 어디 정착할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한인교회연합(KCC) 측이 탈북자 지원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어서 조만간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dawn@seoul.co.kr
  • [이춘규특파원 도쿄이야기] 민단단장 총련 방문 ‘후유증’

    지난 17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방문, 반세기 만에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적 화해를 연출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하병옥 단장이 연일 일본 언론의 공세와 지방본부 등 내부반발에 시달리고 있다.일본 언론들은 하 단장이 지난 2월 말 취임 뒤 총련과의 화해 추진으로 납치피해자 공조 대열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하는 기류다. 아울러 민단이 총련의 눈치를 보며 탈북자지원센터 활동을 보류했다며 상당수 민단 지방본부들이 반발하는 등 내부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급기야 하 단장과 정몽주 사무총장 등이 22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자 회견장을 메운 40여명의 취재기자 대부분을 차지한 일본 기자들은 ‘인사청문회’를 하듯 민단 수뇌부를 몰아붙였다.한 주간신문 기자는 하 단장에게 총련계인 조선대학교 졸업설과 조선학교 영어교사설을 추궁하며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하 단장은 조선대학 졸업설은 사실이 아니라며,1950년대 재일한국인 사회의 상황을 들어 대학생 시절 2년간 조선학교의 교사는 했다고 밝혔다.이어 중앙일간지와 통신, 방송사의 기자들도 비슷한 태도로 끈질긴 질문을 계속했다. 이들은 민단·총련의 화해과정에서 탈북자 정보가 민단, 총련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따졌다. 일본인 납치에 총련이 개입했다면서 이에 대한 민단의 입장을 묻기도 했다. 아울러 민단의 전 지도부는 총련을 비판했다면서 현 지도부의 입장은 뭐냐고도 캐물었다. 민단이 왜 일본이 아니고 총련과 접근하느냐는 취지였다. 이에 하 단장은 27일 일본에 올 예정인 한국측 납치피해자 가족들을 영접하러 나가고, 위로의 말을 발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납치피해는 인권문제라면서 “민단이 총련과 일본 정부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적극 협력의지를 밝혔다. 그래도 질문이 그치지 않자 기자회견을 중도에 마치면서 정 총장은 일본 기자들에게 “민단과 총련의 화해를 통해 일본에 기여해 달라더니 왜 이러는가. 일본 언론들의 너무나 비판적인 보도는 놀랍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하 단장의 화해 행보는 이제 첫걸음이다. 민단 내부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가야 한다. 총련의 반발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일본 여론의 견제도 극복해야 한다. 섣부른 기대보다는 주도면밀한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taein@seoul.co.kr
  • 민단 “탈북자 지원 계속”

    l도쿄 이춘규특파원l 민단의 탈북자 지원이 계속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하병옥 단장은 22일 도쿄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탈북자 지원센터 활동을 보류하거나 중지하지 않았다.탈북자 지원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적십자사 등과 협의를 거쳐 좀 더 효율적인 지원 방안을 찾고 있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하 단장은 이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의식,탈북자지원활동을 중단했다는 보도를 부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나가노·니가타현 등 일부 지방본부의 반발에 대한 지적에 하 단장은 “민단 중앙은 (지원) 방향을 정했지만 각 지방본부에 대해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하 단장은 서만술 총련 의장 등의 민단 답방과 관련,“민단에 와달라고 초청했지만 일정 등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taein@seoul.co.kr
  • 민단 “탈북자 지원 계속”

    |도쿄 이춘규특파원|민단의 탈북자 지원이 계속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하병옥 단장은 22일 도쿄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탈북자 지원센터 활동을 보류하거나 중지하지 않았다. 탈북자 지원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 적십자사 등과 협의를 거쳐 좀 더 효율적인 지원 방안을 찾고 있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하 단장은 이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의식, 탈북자지원활동을 중단했다는 보도를 부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taein@seoul.co.kr
  • 美망명 탈북자 VOA 인터뷰 “느낌 좋아요”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의거해 처음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탈북자 6명 중 한 사람인 나오미(34·여·가명)씨는 지난 2주간의 미국 생활에 대해 “자유를 찾은 느낌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씨는 21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교육받을 때는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것만 배워 인식이 나빴지만 여기 와서 체험해 보니까 미국인들이 친절하고 남을 많이 도와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미국으로 가면 남한처럼 정착금이나 집도 제공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물질은 몇 년 쓰면 다 없어진다. 미국에 가서 정말 열심히 살면 그만큼 노력한 대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미국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나씨는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우리가 처음으로 난민지위를 받아 정착을 하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다.”면서 “그러나 북한이나 중국같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살아왔기 때문에 힘든 일을 이겨나갈 용기가 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나씨는 고교 졸업 후 회령 구두공장에서 재봉공으로 일하다 1990년대 중반 탈북했으며 그후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북한으로 압송되는 우여곡절을 겪다 2002년 12월 재탈북한 뒤 동남아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탈북자 처리 한·중·미 지혜모아야

    중국 선양(瀋陽)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대기 중이던 탈북자 4명이 우리 영사관과 이웃한 미국총영사관 담을 넘어간 뒤 미국 망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초 한국행을 원했으나 최근 탈북자 6명에 대해 미국이 망명을 허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 영사관 측에 미국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여의치 않자 미국영사관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문제는 한·중, 한·중·제3국, 한·미, 북·중, 남북간에 외교·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이번 사안은 한·중·미가 동시에 관련된 첫 사례여서 당사국들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보호 중인 탈북자가 다른 나라 외교공관으로 이탈했다는 점에서 곤혹스럽다. 미국은 탈북자들이 중국내 자국 공관을 거쳐 직접 망명을 요청한 첫 사례라서 대중(對中) 외교마찰이 무척 걱정되는 모양이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도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우려하는 등 관련국의 대립적 입장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더구나 이번 일이 처리 과정에서 서로 다른 해법 때문에 장기화할 경우, 크든 작든 상대국에 외교적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이미 일상이 되다시피했다. 최근 미국의 탈북자 망명허용 방침과, 이번 탈북자의 미국행 요구를 계기로 탈북자의 대량 미국 망명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관련국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한·중·미는 탈북자 처리시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놓고 공감대를 넓혀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인도적 차원에서 탈북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 주길 바란다. 탈북자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목표라면 합의가 어려울 것도 없지 않겠는가.
  • 탈북자 두번째 美망명 신청

    주중 한국영사관이 보호 중이던 탈북자 2∼3명이 시설을 나와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망명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 망명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의 미국 행이 성공하면 지난 6일 난민자격으로 미국에 들어간 탈북자 6명에 이은 두번째 미국행 사례가 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탈북자에 관한 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탈북자들이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국행을 시도하는지 아니면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제3국을 경유하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이와 관련, 그동안 탈북자들의 한국·미국행을 도와온 국내 탈북자 지원 단체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으나 미국 인권단체가 개입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들이 국내 탈북자 지원단체의 제의를 받고 제 3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간 6명의 탈북자와 달리, 중국내 미 공관을 통해 미국으로 직행할 경우 미ㆍ중간 외교 마찰은 물론, 탈북자들의 미 대사관 러시행이 이어지는 등 파장이 일 전망이다. 이들은 중국 내 한국 영사관으로 진입해 한국행을 전제로 대기하던 중 영사관 시설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에는 상하이, 광저우, 선양, 청뚜, 칭다오 등 5곳에 한국 총영사관이 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北 고위과학자등 2명 한국행 희망”

    북한을 탈출한 뒤 현재 제3국에 머물고 있는 북한 과학기술 분야의 간부와 의사 등 2명이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이날 “지난 3월 중국으로 탈출한 조선과학기술총연맹 00도 위원장 박원두(43·가명)씨와 1월 탈북한 조선인민무력부 산하 00호총국 병원장인 한영임(65·여·가명)씨 등 2명이 현재 동남아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탈북자 정착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미국보다 한국으로 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도 대표는 “지난 5월 동남아로 이동한 이들은 현재 안전한 장소에서 한국에 입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계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박원두씨는 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한 과학자 가운데 최고위급으로 북한 과학기술과 군사시설에 관한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회플러스] 美망명 탈북자 6명 23일 기자회견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따라 망명한 탈북자 6명이 2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공항 부근의 호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가 17일(현지시간) 밝혔다. 천 목사는 “탈북자들이 북한과 중국에서 겪은 참혹한 생활에 대해 증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 美, 북핵·평화협정 동시논의 검토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미국은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논의하는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대북 접근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뉴욕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국무부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제안한 이같은 내용의 광범위한 대북 정책안이 미 정부 내에서 격렬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새 대북 접근 방법을 승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에는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이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새로운 대북 접근법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그녀의 핵심 측근인 필립 젤리코 보좌관에 의해 기획됐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평화협정 협상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며 6자회담 참여국인 일본과 러시아는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의 평화체제 수립안은 이미 지난해 발표된 9·19 6자회담 공동합의문에서도 제시됐던 내용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경주 공동선언에도 들어 있다. 따라서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내용보다는 미 정부가 6자회담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자체가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사실상 김정일 정권의 ‘변화’ 또는 ‘몰락’를 기대해왔다.이 때문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북한 정권의 변화에 집중하는 정책이 (한반도)비핵화로 가는 길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 정부 관리들은 장기화된 이라크전과 이란 핵 문제에 지쳐 부시 대통령 임기 중 북한을 붕괴시키거나 핵을 제거한다는 희망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나 다름없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라면 일부의 우려대로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핵의 확산을 막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북한의 핵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 부시 대통령은 북핵 대신 탈북자 김한미양 가족을 만나고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는 등 북한 인권 쪽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그런 노력들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뉴욕타임스 기사 내용은 9·19공동성명에 모두 담긴 내용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면서 “미 행정부의 정책적 결단이나 결정이 나온 게 아니다.”고 밝혔다.dawn@seoul.co.kr
  • “어머니의 희생·미덕·향수 못잊어”

    “어머니의 희생·미덕·향수 못잊어”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 소설가 문순태(65)가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소설집 ‘울타리’와 산문집 ‘꿈’(이룸)을 동시에 펴냈다. 소설집은 2002년 ‘된장’이후 아홉 번째이며, 산문집은 세 번째다.‘타오르는 강’‘그들의 새벽’‘느티나무’등을 통해 분단과 5·18이라는 격동의 현대사에 천착했던 작가는 이제 역사인식의 틀에서 비켜나 자신의 문학적 뿌리인 어머니의 존재를 깊이 응시한다. ●어머니는 언제나 가족 감싸는 울타리 “올해 아흔셋의 노모는 도시 생활을 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농사 걱정을 하십니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셨던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가족을 든든히 감싸는 울타리였지요. 점점 잊혀져가는 농경사회 어머니 세대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의 미덕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수록작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에는 어머니의 냄새를 못 견뎌하는 아내가 나오는데 작가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빌려 어머니의 냄새를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갈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고 표현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2004년 이상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은행나무 아래서’‘느티나무와 어머니’등이 삶의 가치를 어머니와 관련지어 쓴 글들이라면 ‘울타리’는 작가가 요즘 화두로 삼고 있는 ‘경계인’에 관한 소설이다. 젊은 시절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두 친구가 오랜 세월이 흘러 한명은 탈북자로, 한명은 비전향 장기수로 재회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렸다.“‘된장’이후 역사에서 비켜서려 했는데 쓰다보면 결국 역사의 자리에 와있더라.”는 그는 “그게 작가로서 내 운명인 것 같다.”며 웃었다. 산문집 ‘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을 체험한 세대로서의 성찰, 그리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는 시각을 담았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쏟아지는 인파를 보며 시골길의 한적한 버스정류장을 떠올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보며 시골 우물가를 떠올리는 작가의 글은 광속의 시대 아날로그의 미덕을 돌아보게 한다. ●교단 퇴직후 고향서 창작활동할 것 “홀가분하다”는 말로 15년 교단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를 전한 작가는 퇴직 후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에 몰두할 것이라고 했다. 무등산 깊은 골짜기에 집필실 겸 창작교실을 지어 지역 문인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문학 사랑방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은 20년째 미뤄온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의 완간. 작가는 “7권까지 써놓고 시간이 없어 손대지 못했던 것인데 앞으로 3권을 더 써서 10권으로 완간하겠다.”고 말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北압박·산유국엔 관대… 부시 ‘인권’ 이중잣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이 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면서도 석유가 많은 나라의 인권에는 눈을 감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른바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 국제사회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의 웹 사이트에 부시 대통령이 탈북한 김한미양 가족을 만난 사진이 인권 침해 논란이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을 환영하는 사진과 함께 게재된 것을 부각시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부정선거 의혹을 빚고 있는 총선 문제를 거론했다고 밝혔지만 그의 에너지 안보 노력을 치하했다. 또 딕 체니 부통령은 국무부 인권 보고서에 반체제 인사 및 언론에 대한 탄압이 적시된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당시 “인권과 관련해 이 곳에서 이뤄진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국민이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도 미국 은행에 1300만달러(약 130억원)를 숨긴 사실이 밝혀진 아프리카 적도 기니의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을 ‘좋은 친구’라고 감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적도 기니 모두 석유 매장이 많고 수출이 활발한 나라들이다. 세계적인 인권 단체인 ‘인권 감시’의 톰 말리노프스키 워싱턴 사무소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는 인권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데 진지하다고 말하지만 세계가 이를 믿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서 “에너지 부국들에 예외를 둠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 추진에 전세계가 더욱 더 냉소적이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dawn@seoul.co.kr
  • 민단·조총련 반세기만의 만남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대표가 광주에서 열리는 6·15남북정상회담 6주년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석한다. 민단과 총련은 또 올해 8·15기념행사 공동 주최에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단 하병옥 단장은 17일 도쿄시내에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로 서만술 의장을 방문, 이런 내용의 공동성명에 합의할 예정이다. 민단과 총련의 관계자들은 16일 “하병옥 단장이 17일 조총련 본부로 서만술 의장을 방문할 계획”이라면서 “재일동포 화합차원에서 6·15기념행사 공동 참여와 8·15행사 공동 개최등에 합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단과 조총련 대표자가 공식적으로 만나기는 두 단체 결성 이후 처음이다. 이는 반세기 이상 계속돼 온 재일동포 사회의 대립해소를 향한 첫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하 단장과 서 의장의 만남은 조총련이 제시한 회담 조건 3가지 중 2가지를 민단이 받아들이기로 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총련측은 ▲동포들의 귀화를 촉진하는 지방 참정권 요구 포기 ▲민단기구인 탈북자 지원센터 해체 ▲재일동포 모국방문사업 중단 등을 요구했다. 민단은 이중 탈북자 지원활동과 재일동포 모국방문사업을 보류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은 16일 민단과 조총련간 화해 움직임에 대해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거나 (일본) 국내의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세간의 평가를 소개하는 논평만 했다.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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