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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질적 성과로 이어져 10년 안에 고향 가는 길 열리길”

    “실질적 성과로 이어져 10년 안에 고향 가는 길 열리길”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7일 서울 도심에서는 정상회담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다. 시민단체, 탈북자, 이산가족 등은 일제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이번 회담이 부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평화기원 사진전, 붓글씨 퍼포먼스가 진행된 가운데 시민단체들도 기자회견에 나섰다. 6개 단체의 연합체인 평화연방시민회의는 기자회견에서 “서로 적대시했던 양측의 지도자가 한 해에 세 번씩이나 만남을 가진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민족 공조를 성사시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에 불가역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동지회의 서재평 사무국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고향 가는 게 꿈 아니겠습니까”라면서 “희망사항이겠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추진한다고 정확히 말하고, 10년 안에 고향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박영철 탈북청년모임 ‘위드유’ 대표는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남북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면서도 “북한이 과거와 달리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기회로 본다”고 했다. 김경재(86) 남북이산가족협회장은 “이번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보니까 너무 부러웠다”면서 “이제 북한에 동생 한 명 남았는데 쉽게 만날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중점적으로 발표했을 때는 올해 안에 뭔가 해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혈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알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암 투병 중인 이산가족 김모(83)씨는 “이산가족 상봉 기회가 더 열렸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다”면서 “금강산 관광이 빨리 재개돼 손주와 같이 북한에 가서 평양에 사는 여동생 두 명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본격적인 남북 간 민간 교류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바람도 있었다. 한용운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편찬실장은 “현재 사전 편찬 진척률은 78% 정도 된다”면서 “아직 20여만개 단어에 대해 북한과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실무회의를 진행한다면 이번 정부 안에 사전을 완성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 집필정지 명령·교도소 수감설… 최근엔 월북보다 납북설 유력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 집필정지 명령·교도소 수감설… 최근엔 월북보다 납북설 유력

    여운형 계열 좌우 합작 노선에 가까워 자본주의적 퇴폐풍조 모더니즘 작품 함께 월남한 가족들 두고 홀로 北으로김기림은 해방 공간에 북한으로 간 것으로 돼 있다. ‘간 것으로 돼 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그가 해방 이후 스스로 북행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군에 의해 납치돼 북으로 끌려갔다는 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납북설이 유력하다. 그는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가입 건으로 좌익으로 분류되면서 초·중·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해금된 1988년 이전까지는 자진 월북한 문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김기림 연구자인 서울대 국문과 김유중 교수는 “최근 여러 증언과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월북이 아닌 납북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라는 학계 분위기를 전한다. 좌익단체에 몸담은 것은 사실이나 순수 좌익이라기보다는 여운형 계열의 좌우 합작 노선에 가까웠던 점, 가족과 더불어 월남했고 북으로 갈 때도 가족과 동행하지 않은 점, 이미 북한에서 지주 계급이라는 이유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점, 북에서의 행적을 확인할 길이 없고 다른 월북 문인들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대우받은 흔적조차 없는 점, 결정적으로 임화나 김남천 등 좌익 문인들이 남로당 불법화 이후 북행길에 올랐을 때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도 월북하지 않았던 점 등이 그 이유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김 교수는 신문 보도, 탈북자 정보, 김기림을 아는 지인의 얘기 등을 종합할 때 그의 북한 행적에 관한 두 가지 설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가 1958년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으로 간첩죄로 체포된 북한군 정치부사단장 출신의 증언이다. 증언에 따르면 김기림, 정지용은 북한에 가자마자 당국으로부터 집필활동 정지 명령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이 내용이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신빙성 있다고 본다”고 했다. 북한 출신으로 해방 후 월남했으며, 자본주의적 퇴폐풍조로 분류되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 창작활동을 한 그를 북한 당국이 좋게 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가 김기림이 북한에 가자마자 교도소 수감 생활을 했는데 친척, 지인, 제자들이 탄원서를 내 풀려났다는 설이다. 그렇지만 한 차례 숙청을 당한 몸이라 좋은 보직을 얻지 못하고 평양에 있는 극장의 말단 직원으로 허드렛일을 했다고 한다. 이때 남편과 별거 중인 극장 아나운서와 눈이 맞아 연애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자숙해도 못마땅할 놈이 부화뇌동해서 연애질이나 한다”고 당국의 눈총을 받고 재수감되었다는 그럴 듯한 스토리까지 붙어 있다. 김기림은 7살 때인 1915년 임명 보통학교에 입학, 서울로 와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중퇴한 뒤 1930년 일본의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 사회부에서 기자 활동을 하였으며, 이 시기에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시와 시론들을 집중 발표했다. 문인과 기자로서 한창 명성을 얻던 1936년, 신문사를 휴직한 그는 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홀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제국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 깊이 있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 것이다. 졸업 이후 조선일보에 복직한 그는 학예부로 소속을 옮겨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개시를 전후하여 신문사가 폐간되고, 총독부의 감시와 억압이 심해지자 그는 고향인 성진으로 가 한동안 인근의 경성(鏡城)고보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한편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운영하며 간간이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한다. 해방과 더불어 문단에 복귀한 그는 모더니즘의 실질적인 청산을 선언하며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주장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한다.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조선대 등에서 강의했다. 1930년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신문에 발표하면서 시단에 진출하였고, 시집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와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시론집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49) 등을 냈다. 상당 기간에 한국에서는 ‘월북’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그의 시집의 소지조차 금기시됐으나 1988년 해금 조치되면서 출간이 잇따르고 연구도 활발하게 됐다.
  •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북파 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 ‘공작’의 실제모델 박채서(64)씨를 만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북한 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과 북한을 무대로 활동한 안전기획부의 대북공작원이다. 1997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으며 이효리, 조명애가 나온 최초의 남북합작 광고도 성사시켰다. 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과 영화 등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했다.→영화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아내와 큰딸이 교도소로 면회 와서 내 얘기를 CJ에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고 하더라. 처음에 거부했다. 단순 용기만 갖고 할 수 없는 일 아니냐. 그런데 이미경 부회장이 원치 않던 외유를 나가야 할 정도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도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감 중 작성한 노트기록이 토대가 됐다. →리 참사(영화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의 실재 인물)는 어떤 사람인가. -리철은 북한의 몇 안 되는 자본주의 전공자다. 김일성대를 졸업했으며 박사논문이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다. 1954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라 쉽게 친구가 됐다. 리철은 아들이 둘이고, 나는 딸만 둘이다. ‘사돈 맺자’는 농담도 했다. →2005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나오는 남북합작 광고인 애니콜 사업 전에 추진하던 ‘남남북녀 결혼작전’은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지금 못지않게 힘들었다. 대량 탈북자가 나오고, 이에 북한이 반발해 미사일을 쏘는 등 대화가 안 됐다. 햇볕정책을 계승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자문요청이 오더라. 북측은 미사일 쏘다가 평화 모드로 가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며 이벤트를 만들자고 하더라.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에 북측 기수단으로 와 한국에서 인기 있던 조명애를 내 지인 중 한 분이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한 게 생각나 추진하게 됐다. 베이징에서 양가 상견례도 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방해했다. 신랑 어머니를 만나 ‘조명애는 기쁨조인데 결혼이 웬 말이냐’고 한 것이었다. 이벤트 무산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3일 뒤 고영구 원장이 기관보고를 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나를 비난하는 보고에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이 사건으로 원장은 강력경고 조치를 받고, 나머지 주요 간부들은 인사조치됐다. →결혼 무산으로 애니콜 광고는 힘들었겠다. -공작 실패에 대비해 늘 예비 계획을 세운다. 남남북녀 결혼작전이 무산되면서 내가 하면 또 국정원이 방해하니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해 애니콜 광고는 성사됐다. 삼성을 소개받았다. 다 돼 있더라. 감독이 차은택씨였다. 모델은 이효리고. 최고기업, 최고상품, 최고모델 콘셉트였다. 나머진 북한 몫이었다. 그런데 제동이 걸리더라. (광고 촬영지인) 상해로 갔는데 조명애가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 결혼이 미뤄진 충격으로 밥도 안 먹고 말이 없더라. 마음병을 앓은 것이다. 조명애는 ‘평양의 신데렐라’였다. 갑자기 남쪽으로 시집가야 하는 상황에 가족회의를 열고 “나 하나 시집가서 우리 가족이 잘산다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남자를 만나 보니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딱딱한 북한 남자와 달리 함께 놀러 갈 때 손도 잡아주는 등 싹싹한 매너남이었다. 게다가 시아버지 될 사람은 핸드백, 신발, 바바리 코트 등 온갖 명품을 다 사줬다. 가족 용돈도 따로 준비하고 예술단 단장, 부단장 선물도 따로 줬다. 조명애가 예비 시아버지를 만난 다음날 무용단에 출근하면 그날 오전 업무는 마비된다고 하더라. 서로 옷 입어 보느라고 말이다. 예술단 부탁으로 20인승 출퇴근 버스도 사줬다. 2년간 쓸 타이어와 유류비도 지원했다. 촬영이 힘들 것 같아 시아버지가 될 뻔한 사람을 급히 오라고 했다. 이 양반이 오자,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던 조명애가 벌떡 일어나 달려가 우는데,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우리도 다 울었다. 촬영은 일주일 동안 약 먹이고, 알로에 바르고, 얼굴 뾰루지 등은 화장술로 커버해서 끝냈다.→조명애는 그 이후 결혼했나. -소설 잘 쓰는 언론에서 북한군 장교와 결혼했다는데 거짓말이다. 완전히 폐인 됐다. 원래는 광고 찍고 나서 식당 같은 것을 마련해 중국에서 살게 할 계획이었다. 제가 2010년 보안법 위반사건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들은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가. -1997년 6월에 만났다. 유순한 편이다. 예능을 좋아해서인지 독하지 못하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정할 때, 자기 닮아 순한 김정철 대신 독한 김정은을 시켰다. →한·미 합동부대 있을 때 미군과 업무 협조는 잘됐나. -처음 3개월간은 많이 싸웠다. 양주 선물 등 온갖 유혹을 거절하고 한·미공조의정서에 따라 원칙대로 일했다. 오산공군기지는 통제가 안 된다. 전용기가 아무거나 싣고 온다. 나 보고 골프용품 거저 줄 테니까 하라고 하더라. 당시 골프채 등은 비쌌다. 안 했다. 결국 미군이 나를 인정해 미 대사관 등 우리나라의 어떤 미국시설도 24시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통행카드를 주더라. 이게 네 장뿐인데 대통령,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과 내가 받았다. 미국이나 북한을 나쁘게 버릇 들인 건 우리다. 우리나라에 ‘까만 눈 미국인’이 많더라. 미국에 가지도 않고 시민권은 갖고 있더라. 거래하기 위해서다. 각계각층에 다 있더라. 대학원 석사과정 때 일인데 조선 주둔 일본대위가 쓴 일본어로 된 비망록을 봤다.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회유작전에 바로 서약서 쓰고 넘어와 실망하게 되는 반면, 갖은 고문과 협박에도 굽히지 않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존경한다고 적고 있더라.→북한의 정보수집력은 어떤가. -신상옥·최은희가 1978년에 납북됐다가 8년뒤 탈북했는데 당시 수사관들이 물었다. 베를린영화제 참석 때 왜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북 정보력에 겁이 나 애기 못 했다고 했다. 하루 전 남한 대통령이 결재한 것이라며 서류를 보여 주는데 실제로 그 날짜에 결재한 서류였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는 거다. 사례를 더 들자면 1999년 평안북도 금창리에 숨겨진 지하 핵시설이 있다고 보도되면서 난리 난 적이 있다. 우리 공작원이 조선족을 시켜 흙을 파니, 우라늄이 검출됐다는 것인데 미국도 이를 믿은 것이다. 미국이 현장사찰을 했으나 핵 관련 움직임은 찾지 못했다. 빈 동굴뿐이었다. 왜 그랬냐. 북한 역공작에 당한 거다. 북한에서 돈 주고 우라늄을 넣어준 거다. →1994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에 미국의 공작이 있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북 핵무기 개발 자료를 1992년에 내가 입수했다. 미국 장비 등의 지원을 받아서 알게 된 것이라 미국에 보고했다. 난 당연히 그 사항이 김영삼(YS) 대통령에게도 보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안 됐더라. 당시 YS는 북한에 쌀을 주려고 난리 칠 때였다. 만약 핵무기 개발 사실을 알았다면 막았다고 본다. 이어 1994년에 북핵 위기가 벌어진다. 북한의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데 재원의 70%인 32억여 달러를 우리가 부담한다. 여기엔 미 중앙정보국의 공작이 있었다. 평양을 다녀왔다는 한 재미목사가 YS에게 긴급 보고를 한다. 북이 서해 5도를 잠수함으로 봉쇄, 무력으로 점령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YS는 재미목사를 잘 만났다. 대통령이 놀라 해군참모총장을 긴급호출하고 제주도가 제일 취약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어 북측의 회담 요구를 받아들여 경수로 건설사업비를 떠안는다. 미국이 YS가 재미목사를 잘 만나주고 위기의식, 안보 개념이 없다는 걸 알고 공작한 거다. 서해 5도는 수심이 낮다. 잠수함 봉쇄가 말이 안 된다. 첩보 가치도 없었다. 보안이 최고 생명인데 어떻게 재미목사가 기습공격을 아느냐. →이명박 정부 시절, 북에서 대남파에 대한 공개 처형이 많았는데 우리 측에서 움직임이 있었나. -대남파는 빨치산세력에 맞설 실용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30~40명씩 공개 처형 등 다 숙청됐다. 숙청 자료를 우리 정보기관에서 줬다. 과거 10년 동안 남북교류하면서 뒷돈 준 자료를 다 준 거다. 한 예로 본명이 권민인 권영욱이라는 김일성대 나오고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항상 북측 대표단장으로 나온 유연한 사고의 실용주의자, 그 친구도 날짜별로 돈 받은 게 나와 숙청됐다. 사는 아파트 바닥을 파 보니 비닐에 쌓인 8만 달러 꾸러미들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대남파들이 결딴나면서 북한 내 강경파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난 절대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그런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본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대책·무대응이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통한 정책이었다.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전에 북한에서 정책실패는 한 번도 없었다. 화폐개혁은 가진 자들의 돈을 뺏으려고 한 거다. 장성택도 모르게 말이다. 20분의1로 화폐가치를 낮췄다가 한 달 만에 원상복귀했다.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이었다. 개혁 전에는 베이징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김정일이가~”라고 말하면, 이 사람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반발했다. 그러데 화폐개혁이 되자 “개XX” 등 욕이란 욕은 다하더라. 뭘 의미하느냐. 화폐개혁 실패라지만, 기득권이 흔들린 거다. 볼셰비키 혁명, 중국 공산당 혁명 주도세력은 노동자나 농민이 아닌 엘리트다. 모택동은 호남성 제일갑부였다. 형식만 노동자, 농민이지 가진 사람, 엘리트 그룹이 주도했다. 북한의 엘리트 변화를 우리가 뒷받침해야 한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전망은. -미국은 북이 비핵화하면 제재를 풀겠다는 것인데 북은 점진적으로 비핵화하자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못 받겠다고 한다. 일방적 행동 강요는 강압이다. 북 강경파들이 절대 받지 않는다. 김정은이 맘대로 못한다.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정식 후계자 교육을 받고 17년간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당·정·군의 인사를 다 했다. 그런데도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 바로 못 들어갔다. 왜냐하면 호위총사령부는 자기 사람들이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2~3년 만에 아버지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해 지지기반이 약하다. 빨치산 세력은 손 못 대고 군부, 문화계 등 분야별로 중간층 중심으로 100인 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호위세력으로 만들었다. 이 그룹이 200인으로 늘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 눈에 벗어나면 김정은은 죽는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탈북민 1세대 강철환 대표가 말하는 ‘한국 생활’“이젠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24살 때까지 살았고, 한국에서 27년째 살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가까워지기는 했는데···.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진다던데 그래서인지 북한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북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보니깐, 그런 것인가 합니다.” 제21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다음 날인 27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강철환(51) 북한전략센터 대표 사무실을 찾아갔다. 남북 문제나 통일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수도 없이 인터뷰했을 터이니 이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와 인터뷰하고 싶어서 찾았다. 그는 “뭐,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이런 인터뷰는 처음 해봅니다.”라며 말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이 화제에 올랐다. “부모님이나 친지들과 헤어진 실향민들이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을 만나던데, 이젠 제가 이산가족이 된 지 25년이 넘었어요. 이분들의 절망 같은 그리움 이런 게 제게도 똑같이 밀려오는 거죠. 북한에 부모님과 동생들도, 많은 친구도 남아 있고···. 절절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나이 50이 넘으면서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북송된 재일교포 3세인 그는 9살 때인 1977년 재일 조선총련 간부 출신인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이혼한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간 참혹하게 지내다 풀려났다. 이후 요덕 근처에서 5년가량 지내다 1992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귀순’이 아닌 탈북민 1세대인 셈이다. 한양대를 마치고, 한국전력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3년 근무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2007년부터 북한에 인권과 자유 등을 확산시키는 북한전략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강 대표에게 인생이란.☞ 제가 가장 귀염을 받아야 할 9살부터 11살까지 요덕수용소에서 지냈습니다. 수용소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항상 언제든지 죽는다는 생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20~40대를 한국에서 보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 인생의 황금기였죠. 친구들과 만나서 여행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저랑 같이 수용소에 끌려갔던 많은 아이 가운데 저만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이 50이 넘어가니깐 이제 덤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이미 죽었어야 하는 인생인데···,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처절한 생활을 했던 그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옛날에는 북한에 잡혀가는 악몽을 자주 꾸었지요. 소스라치게 놀라 깨기도 하고. 한 10년 지나니 꿈에 한국과 북한이 섞여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잡혀 가 고문을 받는데 유엔이 나와서 감시한다든지, 이런 신변안전에 관한 꿈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꿈에도 잘 안 나와요. 꿈도 사회에 적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전기요금을 장기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기 공급을 끊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성북동 한 단란주점의 전기를 끊자 업소 주인이 식칼을 들고 ‘다 죽인다.’며 욕설을 난리를 쳤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도망가는데 저는 같이 욕설을 하면서 맨주먹으로 싸우려 했지요. 그때 제 말투가 이상하고 도망을 안 가니 업소 주인이 칼을 내던지고 이야기를 하다 나중엔 친구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은 금호동에 전기를 끊은 집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나 싶어서 찾아가보니 촛불을 켜고 지내더군요. 그때까지 한국의 좋은 모습만 봤는데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다닐 때 남쪽의 학생들과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갔더니 “반역자”라며 욕설을 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 자원봉사를 한다는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여성 직원 한 명이 컴퓨터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외국인 여성 한 명이 더 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엔 북한에서 발행한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었다. 맞은편 서가엔 북한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낡은 책들이 보이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북한의 학교 교과서”라며 끄집어내 보여줬다. 바스러질 듯 누런 종이에 적힌 활자의 잉크마저 바래서 글씨를 읽기가 어려웠다. 교과서 위쪽에 성경책이 꽂혀 있기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네, 15년 됐습니다.”고 답한다.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 한국 생활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와서 보니깐 지연과 학연 이런 것이 보기보다 강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고향과 출신 같은 지역주의, 학교와 학벌과 같은 학연, 가족주의 이런 데 탈북자 출신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탈북자들은 더욱 소외되고···. 북한은 독재를 강화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세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했습니다. 북한에서 고향이고 나발이고 뭐 다 필요없이 흩어버렸습니다. 지역주의 이런 게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화됐습니다.북한의 인권 운동을 빼고는 그가 어떻게 지낼까.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옛날 찍었던 사진을 단톡방 이런데 올려요. 거칠고 투박했던 시절인데, 이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게 세월이 지나갑니다.” 학교 친구들 만나서 옛날 이야기하고, 몸무게가 늘어 걱정이라는 고민도 한단다. 해외에는 웬만큼 나가볼 만한 나라는 다 가봤다고 했다. 한국의 평범한 5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 예멘 난민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돼 있어서 난민쿼터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분단국가기에 한국은 엄청난 난민 발생 가능성을 예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만큼은 북한 난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유엔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 예멘 정도의 자유가 주어지면 북한주민 절반이 국경선을 넘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도 중국엔 10만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난민이지요. 우리 가족, 우리 동포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외국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의 순서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북한 사람은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했고, 문화생활을 못 했기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탈북자들을 이등국민 취급하고, 열등하게 취급하는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어요. 지금이야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3만명이니 눈에 띄는 분쟁이 없겠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5000만명대 2500만명이 되면 큰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를 깔보거나 무시하고 이등국민 취급하는 그런 선입견 빨리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무한경쟁은 우리 탈북자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도 당부합니다. 후배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의 말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이 악의적이지 않으면 대범하게 넘겨라.’고 충고합니다. 예전에 제가 밥을 먹는데 “야, 너는 수용소에서 쥐도 잡아먹었다는데, 고기를 남기면 되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분은 되게 나빴지만 대수롭잖게 넘겼지요.그는 요즘의 젊은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진출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똘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후배들도 많아요. 지금은 탈북자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많아졌어요. 우리야 한국에서 기자 한 것이 최고의 사회 진출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활동이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도 하게 되는 후배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한국사회가 그동안 통일을 준비한다고 말하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회의의 주요 사업으로 ‘DMZ박물관’을 건립하자고 논의하더라고요. 민간 업체에 맡기면 되는 것을 이 위원회가 주요 안건의 논의하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트럼프, 北 인권 언급 없이 ‘한반도 비핵화’ 약속 실수”

    “트럼프, 北 인권 언급 없이 ‘한반도 비핵화’ 약속 실수”

    탈북자 출신 시인이자 북한 전문매체 ‘뉴포커스’를 운영하고 있는 장진성(47)씨는 21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뿐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6·12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고 약속한 것은 실수”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핵과 인권 문제를 분리하려 하지만 이 둘은 똑같은 동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하기) 불가능하다”면서 “둘 다 모든 면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우선시하는 정치체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것은 주민을 통제하고 내부 저항을 막기 위해서”라며 “북한은 (핵)폭탄을 필요로 하는 체계이자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어긋나는 죄를 짓고 있는 체계”라고 규정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19일 호주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이 발표한 ‘2018 세계노예지수’ 발표 이후 이뤄졌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 260만여명이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씨는 북한의 ‘공포정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씨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 내 대남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에서 대남 심리전 및 방첩 활동을 하다 2004년 탈북했다. 그는 북한 시장에서 굶주린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100원에 내놓는 상황을 목격하고 2008년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시를 발표한 바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에게 통일이란] 작년 ‘위협’→올해 ‘귀엽다’… 김정은 이미지 변신 성공했다

    [나에게 통일이란] 작년 ‘위협’→올해 ‘귀엽다’… 김정은 이미지 변신 성공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해까지 ‘비호감’의 대명사였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양손에 거머쥐고 미국과 대립하는 그를 바라보며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언제 터질지 모를 한반도 전쟁을 걱정했다. 고모부와 이복형을 죽인 잔혹한 권력자, 홀로 호의호식하는 독재자의 이미지가 그를 감쌌다. 네티즌들은 살찐 김 위원장의 외모를 희화화했다. 올 들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약속한 김 위원장의 이미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서울신문은 18일 CJ올리브네트웍스 빅데이터팀과 함께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언급된 김 위원장 연관 검색어(감정)를 분석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개발한 SNS 분석 플랫폼 ‘큐파인더’를 이용했으며 블로그와 트위터에 노출된 67만 1486건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해 김 위원장과 가장 많이 연관된 단어는 ‘위협’(5456건)이었다. 이 밖에 ‘강력’(5위), ‘무섭다’(6위), ‘비난’(7위), ‘포기’(8위), ‘반대’(9위) 등 상위 10개 연관어 중 6개가 부정적인 단어였다. 긍정적인 단어는 ‘이해’(2위), ‘좋다’(3위), ‘평화’(4위), ‘최고’(10위) 등 4개에 그쳤다. 여기서 ‘포기’는 핵 포기, ‘최고’는 최고사령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돼 각각 부정과 긍정이 서로 바뀔 수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김 위원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급변한 올해는 ‘귀엽다’(3만 8936건)가 가장 많이 연결됐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 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 당시 미디어에 장시간 노출되며 솔직하고 유머 있는 모습을 보였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 위원장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SNS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또 ‘인정’(2위), ‘평화’(4위), ‘좋다’(5위), ‘괜찮다’(6위), ‘믿다’(8위), ‘기쁘다’(9위)까지 합쳐 상위 10개 연관어 중 7개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채워졌다. 부정적인 단어는 ‘민망’(3위), ‘포기’(7위), ‘당황’(10위) 등 3개뿐이었다. ‘민망’의 경우 판문점 선언 당시 “북한 교통이 민망하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따른 것으로 보여 실제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포기’ 역시 핵 포기로 볼 경우 ‘당황’을 뺀 나머지 9개가 사실상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 버즈량(특정 키워드에 대한 언급 횟수)이 지난해 9만 5125건에서 올해 57만 6361건으로 6배나 늘어난 건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걸 보여 준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김 위원장에 대한 감정을 분석하면 귀엽다, 인정, 민망, 평화, 좋다, 괜찮다, 기쁘다, 당황이 1~8위에 포진한 가운데 ‘웃기다’(9위)와 ‘희망’(10위)이라는 단어가 새로 등장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엔 ‘평화’가 1위로 올라서고 유해, 옳다, 좋다, 순수, 신뢰, 믿다, 재능, 포기, 사랑 등의 순이다. ‘순수’와 ‘신뢰’가 새로 가세한 게 눈에 띈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워낙 극적으로 남북 관계가 개선된 데다 김 위원장의 웃는 얼굴 등이 여과 없이 공개되면서 단기간에 이미지가 대폭 바뀌었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한반도 비핵화 실천 방식 등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만큼, 정부는 방심하지 말고 ‘한반도 운전자론’에 탄력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자에 대한 인식 변화도 보인다. 지난해에는 ‘고통’(1위), ‘뚱뚱’(3위), ‘비판’(6위), ‘힘들다’(7위), ‘강요’(8위), ‘처벌’(10위) 등이 주요 연관어였다. 그러나 올해는 ‘귀엽다’(1위), ‘좋다’(2위), ‘엄청나다’(3위), ‘올바르다’(4위), ‘평화’(6위), ‘똑똑’(10위) 등이 상위 10개에 이름을 올렸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지난해 ‘피해’(3838건)가 1위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올해는 334건만 연동돼 공동 37위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2위 ‘억울’은 12위, 4위 ‘잘못’은 21위로 각각 내려앉았다. 대신 올해는 ‘평화’(1위)와 ‘좋다’(2위), ‘희망’(3위), ‘활발’(4위) 등이 윗자리를 차지했다. 개성공단이 2016년 전면 폐쇄라는 아픈 기억을 씻고 새롭게 문을 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아문 건 아니다. 천안함은 지난해 상위 10개 연관어 중 6개가 올해도 큰 변동 없이 자리를 유지했다. ‘진실’(1위→1위), ‘반대’(3위→5위), ‘의혹’(4위→2위), ‘의심’(5위→6위), ‘부정’(6위→9위), ‘희생’(7위→7위)…. 모두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단어다. 이들 외에 올해 새롭게 순위에 오른 ‘의문’(3위), ‘비이성적’(8위), ‘무시’(10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믿다’(4위)를 제외한 9개가 부정적인 어휘였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한과 교수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지만 과거 북한이 저지른 사건까지 없었던 것으로 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정부도 (천안함 재조사 등)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남북 관계 비전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국방부 ‘60단위 기무부대’ 폐지 검토… 與 이달 ‘기무사 개혁’ 법안 발의

    계엄령 문건 관련 소강원 참모장 기무사 개혁 TF위원에서 해촉 국군기무사령부의 지역 단위 부대를 지휘하는 중간 조직인 소위 ‘60단위 기무부대’의 폐지가 검토되고 있다. 국방부는 8일 “기무사 개혁위원회에서는 기무사령부 본부 조직뿐 아니라 60단위 부대를 포함한 전 예하부대에 대한 조직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60단위 기무부대는 600·601·608·613 부대 등으로 서울·인천·제주·청주·광주 등을 포함해 광역 시·도 11곳에 설치된 대령급 지휘부대다. 부대 전체의 요원 수는 1000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각 지역 군 부대 내에 설치된 기무부대에 대한 지휘·감독, 군 지휘관 등에 대한 임명 전 신원조회, 탈북자 합동심문 참여 등을 맡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일선 기무부대장이 대체할 수 있는 업무라는 점에서 그간 ‘옥상옥’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국방부는 또 4200여명 수준인 기무사의 인원을 20% 정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장인 기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추고 9명인 기무사 장성 수를 줄이는 방안도 개혁안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 기무사 명칭, 임무, 정치 개입 금지 시스템 구축 등 전반적인 개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혁위 관계자는 “12일 회의를 열고 (이미 제기된 여러 개혁안에 대해 혁신안에 포함할지) 정리를 시작할 것”이라며 “명칭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내용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달 중에 기무사 혁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더불어민주당은 기무사 개혁을 위해 외부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이달 중으로 발의키로 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번 주 기무사 문제를 오래 다뤄 온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와 만나 간담회를 하고 기무사 사찰을 받은 세월호 참사 유족의 의견도 들을 예정”이라며 “이달 안에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또 국회 국방위와 정보위에 기무사 현안 보고 등을 강화하고 기무사를 실질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기무사 흔들기’라고 맞섰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김영우 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건은) 대통령 탄핵 기각 시 혹시 있을 수 있는 만약의 상황에 군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법적·행정적으로 검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방부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 등의 문건 작성에 연관된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국방부 기무사 개혁 TF위원에서 해촉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탈북 BJ 한송이 “북한서 레드벨벳 ‘빨간맛’ 열풍...단속해도 소용 無”

    탈북 BJ 한송이 “북한서 레드벨벳 ‘빨간맛’ 열풍...단속해도 소용 無”

    탈북자 출신 BJ 한송이가 북한에서 그룹 레드벨벳 인기에 대해 언급했다. 5일 탈북자 출신 BJ 한송이가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에 출연한 가운데, 그가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한 레드벨벳 인기가 화제다. 한송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북한 사회의 레드벨벳 빨간 맛 열풍 강타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한송이는 “그룹 레드벨벳 곡 ‘빨간 맛’이 북한을 강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일 전에 환율을 알려달라고 브로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며 “환율을 알려주면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가 ‘언니 아직도 지역주민들이 한국공연 보고 있어?’라고 물어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언니는 ‘말도 말아라. ’빨간 맛‘이 전국에 퍼져서 액세서리도 빨간 거 심지어 속옷도 빨간색이 난리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송이는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빨간맛 춤이 그렇게 유행이다.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 가서 ‘빨간 맛’이라는 단어를 암호화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빨간 맛’이라는 단어를 사용 못 하게끔 단속을 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눈도 깜빡 안 한다. ‘빨간 맛’ 보지 말라고 단속하면 기승을 부리고 본다. 패션까지도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한편 레드벨벳은 지난 4월 남한 예술단에 합류, 북한 평양에서 ‘빨간 맛’, ‘배드 보이’ 등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사진=유튜브 ‘한송이tv’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비핵화 ‘악마의 디테일’은 고농축우라늄(HEU)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비핵화 ‘악마의 디테일’은 고농축우라늄(HEU)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된 미 국방정보국(DIA : Defense Intelligence Agency) 북핵 실태 보고서가 미 정치권과 외교가를 강타하며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최초 보도한 NBC 방송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최근 백악관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체제보장 약속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음에도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는 단지 큰 쇼(Big show)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새롭게 수집된 최신 정보들을 바탕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북한이 영변 이외의 비밀 장소 여러 곳에서 고농축 우라늄 생산 활동을 늘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지난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에 동의하는 척 하면서 차후 회담을 통해 더 많은 양보와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NBC 방송에 관련 내용을 인터뷰한 익명의 정보관계자는 “북한이 미국을 속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There is absolutely unequivocal evidence that they are trying to deceive the US)고 증언했고, 이러한 인식은 미국 정부 여러 관계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믿을 수 있으며 비핵화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미국 정치권과 외교가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북한이 비밀리에 핵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을 가능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인출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추출하는 플루토늄(Plutonium) 239의 경우 추출 과정에서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방사성 동위원소가 발생한다. 크립톤(Krypton)-85 등의 원소들은 대기 중 극미량만 존재해도 포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이 아무리 비밀리에 플루토늄 생산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도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HEU다. HEU는 원료가 되는 천연우라늄과 원심분리기 등 기본 재료와 작업을 진행할 비밀 공간, 그리고 전력만 있다면 누구도 모르게 원하는 만큼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비핵화 합의문에 도장을 찍은 직후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척 하면서 곧바로 HEU 핵무기 개발을 위해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손을 잡았던 전력이 있다. 우라늄 핵무기 개발만큼 미국의 눈을 속이기 쉬운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식은 크게 확산공법, 원심분리공법, 레이저공법 등으로 나뉠 수 있는데, 북한은 효율이 좋은 원심분리공법을 선호한다. 지난 2010년 방북한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약 2,000기의 신형 원심분리기를 목격한 바 있었다. 북한에 HEU 기술을 전달한 파키스탄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의 증언이나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 등 북한의 부품 밀수 시도 등을 종합해 판단해보면 북한이 대량으로 운용 중인 원심분리기는 연간 8,000 SWU(Separative Work Unit)를 처리할 수 있는 파키스탄제 P-2 원심분리기의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8,000 SWU의 처리 능력을 가진 원심분리기 2,000개를 1년간 가동하면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 40kg 가량을 생산할 수 있다. 핵탄두 2.5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이러한 헤커 박사가 목격한 농축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한 시기가 2010년경이고 이 시설의 연간 HEU 생산 능력이 40kg인데, 2017년 말 기준 한·미 정보당국이 추정하고 있는 북한의 HEU 보유량이 758kg에 달한다는 점이다. 헤커 박사의 방북 시기와 한·미 정보당국 조사 시점 사이에는 8년의 시간이 있다. 북한이 2,000기의 원심분리기를 풀가동해도 최대 생산 가능한 HEU는 320kg 수준이지만, 현재 추정 보유량은 최대 생산량의 2배가 넘는다. 즉, 모종의 비밀 시설에서 HEU 대량생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DIA는 그 모종의 비밀 시설을 '강성'(Kangsong)이라는 이름의 시설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가동된 이 시설은 P-2 원심분리기 6,000~12,000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연평균 7,000개 정도가 가동되어 왔다는 것이 DIA의 추정이다. 8,000 SWU 처리용량의 원심분리기 7,000개를 풀가동할 경우 연간 140kg 가량의 HEU를 생산할 수 있다. 연간 8.75개의 핵탄두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양이다. P-2 원심분리기에서 1g의 90%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전력은 약 1,000kW으로 알려져 있는데, 약 16kg의 HEU가 소요되는 핵탄두 1발 생산을 위해서는 1,600만kw라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해 핵무기를 만들어야 했던 북한은 사활을 걸고 전력 생산량 확대에 나섰다. 북한은 지난 2011년부터 원유 지원을 대가로 중국과 50:50으로 나누어 사용했던 수풍댐 전력생산량을 전량 회수했다.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일대의 소형 하천과 지류마다 발전용량 10,000kw 미만의 소형 수력발전소를 대량으로 건설하고 있고, 김정일은 죽기 직전까지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현장을 8번이나 찾으며 조기 완공을 독려했다. 이처럼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대량의 발전소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안도 및 자강도 일대의 전력 사정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정전은 일상이며, 김정은이 직접 챙길 만큼 중시했던 메기 생산 공장에서도 정전으로 인한 대량 폐사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북한의 전력사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즉, 2010년을 전후해 평안도-자강도 지역에 대량의 수력발전설비가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 사정은 더욱 나빠졌으며, 이것은 이 지역 어디에선가 대량의 전력이 은밀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2010년 이후 북한은 평안도-자강도 일대의 모처에 비밀 시설을 만들어놓고 대량의 전력을 투입해 HEU 생산을 진행해오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며, 이 때문에 이 일대 어딘가에 강성 우라늄 농축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북한에는 상당한 수준의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다. 북한 매체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국내에 약 400만톤 수준의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고, 품위 역시 상당한 고품질로 알려져 있다. 이 우라늄의 평균 품위를 0.4% 정도로 가정하더라도 가채매장량은 1.35만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원료의 대량 자체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력만 확보된다면 연간 10개 안팎의 핵탄두 생산도 가능하다. 북한이 HEU에 매달리는 이유다. 과거 남아공과 이란 등 핵사찰 수용 국가들의 전례에서도 볼 수 있듯 HEU에 대한 핵 사찰, 특히 HEU의 정확한 생산량과 시설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사찰 대상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한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남아공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비핵화 의지를 갖고 매우 성실하게 사찰에 임했음에도 신고된 HEU의 양과 사찰단이 발견한 HEU의 양이 달라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찰 대상국이 처음부터 기만 의도를 가지고 사찰에 임한다면 IAEA 등 국제사회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을 완벽하게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 주요 싱크탱크와 민간연구기관에서는 위성사진과 탈북자 정보 등을 종합한 결과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 이후에도 핵물질 생산을 늘리고 장거리 미사일 생산 시설을 증축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사실상 비핵화 합의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와 불신이 쏟아지는 가운데 오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아 북한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북한도 개인 간 부동산 거래 ‘활발’... “평양은 달러, 신의주는 인민폐로 거래”

    북한도 개인 간 부동산 거래 ‘활발’... “평양은 달러, 신의주는 인민폐로 거래”

    평양 등 북한 내 주요 도시들에서 개인간 부동산 거래가 일반화되고 가격도 높게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이다. 4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이 작성한 ‘북한 부동산의 가파른 성장세’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평양, 남포, 개성, 청진, 신의주, 나선 등에서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 가운데 평양의 고급별장은 거래가격이 제곱미터(㎡)당 약 8000달러(약 890만원)에 이르는 등 개인 간 부동산 거래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중 경협 기대감으로 중국 단둥과 맞닿은 신의주도 주택 매매가격이 ㎡당 5000 위안(84만원)으로 단둥과 비슷하다고 이 보고서는 전했다. 또 남포는 ㎡당 3500∼6000 위안, 개성은 ㎡당 2300~4000 위안, 청진과 나선은 ㎡당 1000 위안 수준으로 파악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주택용 토지와 부동산 재산권 모두 국가에 귀속돼 있으며 북한 당국이 주택을 일괄 건축·보수해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주민은 원칙상 주택에 대한 사용권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는 주택을 장기간 무상으로 빌릴 수 있는 사실상 소유주여서 사용권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에서 부동산 거래는 바로 사용권을 사고 파는 것이다. 북한 시·군 인민위원회의 도시경영과가 발급하는 ‘국가주택이용허가증’(입사증)에는 주택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명시돼있지 않으며 주택을 교부받은 후에는 상속도 가능하다.이에 따라 북한에서 주택 거래는 허가증에 사용자의 이름을 구매자의 이름으로 바꾸는 식으로 이뤄진다. 반대로 구매자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주택 거주증 소유로만 이루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이나 연합기업소의 주택 배정 담당자들이 부동산중개인 격으로 나서 허가증 명의 이전을 처리해주고 중개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돈을 주고 주택 사용권을 넘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탈법적인 뒷거래가 횡횡하고 허가증의 명의 변경 또한 편법일지라도 불법은 아니라고 전해졌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에서 부동산 거래는 불법도 아니고 합법도 아닌 회색 지대”라면서 “김정은 정권은 북한의 부동산 시장을 암묵적으로 제도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개혁·개방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코트라 보고서도 “북한에서 부동산 매입이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며 “평양에서 부동산 거래는 달러로, 중국 접경지역은 인민폐(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이 조금씩 이뤄짐에 따라 부동산 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며 “단기간에 부동산산업의 시장화 조치가 이뤄지지는 않겠으나 상업용 토지나 여행객을 위한 비즈니스 아파트 등의 개발이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주택난이 심각해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국가로부터 주택을 배정받는 일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면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 진행한 탈북자 설문조사에서는 돈을 주고 주택을 산 경우가 66.9%로, 국가에서 집을 배정받은 경우(14.3%)의 4.7배에 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생술집’ 길해연, 남편과 사별 고백 “애정 가질 대상 필요하다”

    ‘인생술집’ 길해연, 남편과 사별 고백 “애정 가질 대상 필요하다”

    ‘NEW 인생술집’을 찾은 길해연이 진솔한 속내를 밝혔다. 28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tvN ‘NEW 인생술집’에 씬스틸러 배우 길해연, 신정근, 장소연과 깜짝 방문한 손님 윤박이 출연한다. 먼저 최근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국민 밉상 엄마를 연기한 길해연은 “피해자 역할보다 가해자 역할이 더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길해연은 “피해자를 할 때는 (역할에 몰입해) 너무 힘들고 슬프다”는 것. 또한 “(남편과 사별 후) 아들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누굴 만나고 사랑을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살았다”며 “일이나 주변 동료들 말고 내가 애정을 가질 대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솔한 속내를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MC 신동엽은 “나이 차이는 상관 없냐, 저희 아버지가 혼자다”라고 말했고 길해연은 “저희 어머님도 혼자다”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남매가 될 뻔한 상황에 ‘NEW 인생술집’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리는 배우 신정근은 연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로 아버지를 꼽았다. 그는 “아버지가 의용소방대셨는데, 극장 2층에 항상 소방대원들의 자리가 있었다”며 “아버지가 항상 나를 목마 태워 가셨는데, 그게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연극 ‘혜화동 파출소’를 하던 당시 실제 거지로 오해 받았던 웃픈 에피소드와 함께 이준익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가난’ 때문이라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킨다. “황산벌 출연 후 이준익 감독님이 다음 작품 출연자를 황산벌 출연자에서 뽑았다”며 “감독님이 스탭들에게 ‘누가 제일 가난하냐’고 물었더니 연출부 친구들이 ‘정근이형’이라고 답했고,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함께하게 됐다”고. 이어 그는 “나는 가난하지 않은데”라고 덧붙여 ‘NEW 인생술집’ MC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정해인 누나’로 화제인 배우 장소연은 실감나는 현실 연기의 비결에 대해 “그분들만이 쓰는 언어나 표현들을 미리 배우고 현장에서 필요할 때 쓰려고 한다”고 밝힌다. 또한 일본어, 중국어, 연변 사투리 등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가졌다는 그녀는 연변 사투리를 처음 배우게 된 계기에 대해 “탈북자 출신 역할을 많이 했었고 연변에서 실제 영화 촬영을 했었는데 그때 (현지인들의) 말을 반은 못 알아들었다”며 “이런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 배우게 됐다”고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자’가 본인의 좌우명이라고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고 솔직담백한 연애관을 밝혀 눈길을 끈다. 이날 방송에는 장소연, 신정근과 함께 출연한 영화 ‘식구’ 속 ‘불청객’ 역할을 맡은 배우 윤박이 늦게 온 손님으로 출연해 사랑과 연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등을 공개하며 이목을 끌 예정이다. 오늘(28일) 밤 11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경찰 “MB에 노무현 퇴임 후 활동 동향 보고” 확인

    “좌편향 인권위원 걸러내야” 조언 우파단체·탈북자 등 여론전 활용 “깊이 반성”… 130건 수사 의뢰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보 경찰이 ‘좌파 세력 무력화’ 방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시민단체 등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경찰청 정보국이 ‘현안 참고 자료’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412건의 문건 목록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진상조사팀에 따르면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며 경찰청장에 대한 경고를 권고한 일을 두고 ‘좌편향 인권위에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특히 인권위 사무처에서 좌파 성향 직원들을 감축하고, 후임 인권위원 인선 때 이념적 편향이 있는 이들을 걸러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우병 촛불집회와 4대강 반대 등의 현안을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좌파 세력이 결집하니 부처별로 여론전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우파 단체와 탈북자, 누리꾼 등을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는 대책도 보고됐다.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실태를 재점검해 좌파 성향 단체는 철저히 배제하고 보수 단체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문성근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 등 ‘범좌파 세력’의 최근 동향과 견제 방안을 담은 보고서도 작성됐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이념 편향 행보’를 견제할 방안,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기 위한 대책 등도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정보 경찰은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해 활동한다는 동향 보고서도 생산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 관련 문건은 목록만 있고 원본은 없었다. 진상조사팀은 불법 사찰과 정치 관여 소지가 있는 문건 130여건을 경찰청 수사국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은 검찰이 현재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해 검찰과 협의를 거쳐 수사 주체를 정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전하지 않은 문건 3400여건을 지하 2층 ‘다스 비밀창고’에서 발견했다. 진상조사팀은 당시 경찰청 정보국과 청와대 파견 직원 등 대상자 340여명 가운데 퇴직 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조사에 불응한 이들을 제외한 270여명을 서면 또는 대면 조사했다. 경찰청 정보국은 “경찰이 인권 보호와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국민 신뢰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면서 “향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총리 아베’ 만든 납북 피해자 문제… 정권의 운명도 걸렸다

    [글로벌 인사이트] ‘총리 아베’ 만든 납북 피해자 문제… 정권의 운명도 걸렸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가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올 초부터 본격화한 남북과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 대화 국면에 편승해서다. 납치 피해자 문제 자체는 북·일 간에 새로운 이슈가 아니지만, 현재 놓여진 여건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속에 한국과 미국이 일본의 요청에 따라 대화 분위기 조성을 거들고 나섰고, 자국 내 정치역학 때문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성과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납치 피해자 문제의 해결은 북한과 일본 모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북·일 수교’의 가장 확실한 마중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인 납치 피해 문제와 관련한 과정을 정리하고 향배를 전망해 본다.18일 현재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는 17명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는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특정실종자’가 전국적으로 470명에 이르고, 이 중 77명은 가능성이 특히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식적인 북한의 납치 피해자는 17명 정부 집계 기준으로 첫 번째 피해자는 도쿄 관공서 경비원이었던 구메 히로시(당시 52세)로, 1977년 9월 19일 이시카와현의 바닷가에서 납치됐다. 이어 10월에 회사원 마쓰모토 교코(29)가 돗토리현에서, 11월에 중학생 요코타 메구미(13)가 니가타현에서 납치되는 등 석 달 새 연달아 3명이 납치됐다. 특히 당시 니가타시 요리이중학교 1학년이었던 요코타는 학교 배드민턴부에서 연습을 하고 오다 실종돼 1년간 연 3000여명의 경찰이 수색을 했지만, 전혀 행방이 파악되지 않았다. 특히 요코타는 자기 집 근처에서 납치된 어린 소녀라는 점 때문에 ‘납치 피해자의 대명사’처럼 일본 국민 사이에 인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남녀 3쌍을 포함해 10명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유학생 등 4명이 납치됐다. 대부분 원인불명의 실종 상태로 분류돼 있던 가운데 결정적인 전기가 되어 준 것은 1987년 11월 일어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이었다. 당시 체포된 범인 김현희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여성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고 말하면서 경찰은 북한 피랍 가능성이 있는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에 다시 착수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1988년 3월 최초로 북한의 개입 혐의를 공식화했다. 당시 가지야마 세이로쿠 공안위원장은 참의원 질의에서 “1978년 발생한 3건의 남녀 실종사건은 북한의 납치 혐의가 뚜렷하다”고 답변했다. 요코타 사건의 경우 발생 20년 만인 1997년 1월 북한 공작원 출신 탈북자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그해 3월 요코타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85)를 대표로 하는 ‘납치피해자가족회’가 결성됐다. ●사건 11년 만에 北 개입 혐의 공식화 북·일의 협상이 시작된 것은 28년 전이었다. 1990년 9월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와 사회당의 다나베 마코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가네마루 방북단’이 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 방북단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납치문제는 직접적인 의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은 2년 남짓 만에 결렬되고 말았다. 1992년 11월 일본 정부가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일본인 ‘리은혜’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달라”고 하자 북한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을 북한에 처음으로 직접 요구한 것은 1997년 9월 제1차 북·일 적십자 연락협의회에서였다. 그해 11월 김용순 조선노동당 비서가 일본에 ‘피랍자’가 아닌 ‘실종자’로서 조사는 해 볼 수는 있다고 하며 진전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북한이 “일본이 찾고 있는 실종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서 대화는 다시 중단됐다. 다시 전기가 마련된 것은 2002년 9월 17일의 제1차 북·일 정상회담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최초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일본과의 수교를 원했던 김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1970, 80년대 초에 특수기관의 일부가 망동주의, 영웅주의에 사로잡혔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며 사과했다. 이때 북한이 집계한 수치는 ‘5명 생존, 8명 사망’이었다. ●2002년 정상회담 후 첫 책임 인정 북·일 평양선언이 채택되고 그해 10월 15일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 지무라 야스시 부부, 소가 히토미 등 5명이 일본에 돌아왔다. 북한은 ‘일시 귀국’이라며 나중에 5명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북한과의 수교에 장애가 된다며 일단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자고 했으나 일부에서 “우리 국민을 다시 북한에 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당시 관방 부장관 자격으로 같이 갔던 아베 현 총리다. 그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에 힘입어 자기 주장을 관철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2003년 자민당 간사장, 2005년 관방장관을 거쳐 2006년 9월 총리(1차 아베 내각)까지 초고속으로 올랐다. 아베 총리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 국면에 과도하게 자국의 이슈를 끼워 넣으려 한다는 비판을 여당 내에서도 받을 만큼 납치 피해 해결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성장에서 이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5월에 열린 제2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사망했다는 8명에 대한 설명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과의 수교가 급했던 북한은 이를 수용했다. 이에 더해 2년 전 송환했던 하스이케 부부와 지무라 부부의 자녀 5명도 일본으로 보냈다. 이어 7월에는 소가의 남편 찰스 젠킨스도 두 딸과 함께 일본에 송환했다. 같은 해 11월 북한은 “납치 문제를 다시 조사했지만, 2002년 9월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고 일본에 통보하는 동시에 “요코타 메구미의 것”이라며 유골을 전달했다. 그러나 DNA 분석 결과 이는 요코타의 것이 아니라고 판명 났다.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납치문제, 日 정권차원 이슈로 팽창 ‘재조사’ 요구와 ‘해결 완료’ 주장의 평행선 속에 양측의 협상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근근이 이어져 왔다. 2014년 5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납치 피해자와 함께 특정실종자도 포함해 전면조사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나름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일본의 독자적 제재 등이 이어지면서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해 버렸다. 그로부터 2년여 만에 다시 찾아온 북·일의 협상 재개 가능성에 일본 내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다. ●9월 총선 앞두고 납치 문제 올인한 아베 일본에서 납치 문제는 한 번 불거지면 급격히 정권 차원의 이슈로 팽창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 없는 북·일 수교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를 해결된 것으로 볼 것인가”라는 대목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외무성 관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일 정부 간에 어떠한 타협이 이뤄져도 한국 국민들이 ‘해결됐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도 일본 내에서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그동안 납치 문제에 ‘올인’하는 바람에 ‘해결의 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임계점을 한껏 상승시켜 놓은 상태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 일본 최장수 총리 기록을 다시 쓰고 싶은 아베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지나치게 서두르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주요 대학 교수는 “아베 정부가 납치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과도하게 높여 놓고 있다”며 “이 문제를 일단락 짓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기대치를 낮춰 놓아야 하는데 아베 총리는 정반대로 가면서 마치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일본 국민 정서를 볼 때 납치 문제 해결에 있어 시작과 끝은 요코타 메구미 사건의 진전”이라면서 “요코타와 관련된 성과를 북한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을 성과로 들이대더라도 국민을 설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 기자가 맞춰 본 ‘김정은’이라는 퍼즐

    일본 기자가 맞춰 본 ‘김정은’이라는 퍼즐

    김정은/고미 요지 지음/배성인 옮김/지식의숲/296쪽/1만 5000원“현명한 조선인민 국군 육해공군 및 전략로켓군 장병 여러분….” 2012년 4월 15일 오전 10시 15분 평양 김일성광장.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검은 인민복 차림의 한 젊은이가 낮은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은 듯 그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연설 중 몸을 흔들어댔다. 100㎏에 이르는 체구에 옆으로 바짝 치켜 깎은 머리는 과거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했지만, 몇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이 그의 앳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줬다. 김정일의 뒤를 이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지난해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가더니, 돌연 올해 1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하겠다고 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12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났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행보다. 도쿄신문 편집위원인 고미 요지가 ‘김정은’(지식의숲)으로 그를 분석했다. 고미 요지는 김정은에게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이복형 김정남과 생전에 인터뷰하고 2012년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중앙M&B)를 낸 이 분야 전문가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김정은을 잘 아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각종 보고서와 단독 입수한 자료를 더했다. 베일에 가려진 김정은의 어린 시절부터 권력 장악, 그리고 갑작스러운 북한의 최근 변화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을 비롯해 그의 주변과 북한 정세를 심도 있게 다뤘다.저자가 보여 주는 권력 승계 과정의 일화는 김정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 김정일은 “더는 세습에 의한 권력 승계는 없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08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로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과 김정남이 있었지만, 둘 다 부적합했다고 고미 요지는 설명했다. 김정철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자유롭게 살기 원하는 김정남 역시 후계자감은 아니었다. 반면 셋째였던 김정은은 10대 때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야심이 넘쳤다. 김정일이 가족회의에서 “후계자는 정은이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그의 고모인 김경희가 “분별도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느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크게 화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스위스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 번은 여동생 김여정이 김정은을 “작은오빠”라고 부르자 화를 내기도 했다. 김여정은 그때부터 김정은을 “큰 대장 동지”라 부르게 됐다. 김정은이 제멋대로의 행보를 보이는 이유도 여러 사례로 분석했다. 저자는 이와 관련, “20년 동안 천천히 지도자로서 착실히 바닥을 다져 온 김정일과 달리 몇 년 만에 승계한 점, 생모인 고용희가 일본에서 태어난 귀국자라는 사실을 비롯해 후계자로서 여러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집권 초반 고모부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상(국방장관) 숙청의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던 일화로 설명한다. 예컨대 장성택이 쓰러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이대로 두면 나라 망한다”는 말을 잠꼬대처럼 중얼거린 일, 현영철이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된 것도 모른 채 “젊은 지도자를 모시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다가 김정은의 미움을 샀던 일 등이다.핵무기와 운반용으로 사용하는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분석도 흥미롭다.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등장하는 실록소설 ‘야전열차’를 비롯해 북한의 핵연료봉 추출 시기를 다룬 ‘영생’과 같은 소설, 그리고 한국에서 경호를 받는 주요 탈북자들과의 인터뷰 내용 등을 함께 수록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까지 핵무기를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에 관해 저자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김정은이 펼치는 ‘핵과 미사일 정책’, ‘경제 정책’, ‘대외 관계 정책’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면밀하게 파헤친다. 일본인 시각으로 서술한 부분들이 다소 불편하지만, 현재까지 파편으로만 알려졌던 김정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구성한 책으로 꼽을 만하다. 김정은의 행보 덕분에 그에 관한 경계가 잠시 무뎌졌지만, 저자는 여전히 김정은이 불안한 독재자라고 강조한다. “한반도에서 살얼음판 위를 신중히 걷는 듯한 위험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도 새삼 다가온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정은, 인권 가장 두려워해”

    북미회담 인권 문제 제외 격앙 북한 ‘꽃제비’ 출신 인권운동가인 지성호씨가 1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권”이라고 주장했다. 지씨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워싱턴DC 의회 신년 국정연설에서 특별손님으로 초대해 ‘섬뜩한 북한 정권에 대한 목격자’라고 소개했던 인물이다. 그는 1996년 북한에서 굶주림에 정신을 잃고 기차에 치여 왼쪽 다리와 팔을 잃었다. 지씨는 이날 워싱턴DC에서 미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진흥재단 주최 포럼에 참석해 6·12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제외된 것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 인권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며 “보통 한반도 통일을 말할 때 영토적인 통일을 얘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시간의) 약 90% 동안 비핵화 문제를 논의했지만 인권 문제를 포함해 다른 많은 사안도 의제로 삼았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또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에서 행해진 인권유린과 처형들에 대한 질문에 “김정은은 터프가이”라며 “다른 많은 이들도 정말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받아넘겼으며 ABC방송에서는 “김정은의 나라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김정은에 속지 마라” 한 탈북 여대생의 호소

    “김정은에 속지 마라” 한 탈북 여대생의 호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포옹하는 걸 보고 난 스스로 물었다. 그가 히틀러에게도 똑같이 할 것인지를.” 탈북 운동가 박연미(25)씨가 “김정은에 속지 마라”면서 “북한 인권을 위해 싸워달라”고 호소하는 영상이 최근 화제가 됐다. 이 영상은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오피니언 꼭지로 공개한 것이다.영상에서 박씨는 “지금 세계는 가장 악랄한 독재자와 협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응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또 “난 이런 쇼를 전에도 본 적이 있다”면서 “내가 7살 때 최고 독재자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더 부자가 됐고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관심을 북한 주민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 사용해 달라”고 말했다. 박씨는 “핵무기들은 제거될 수 있지만, 인간의 생명은 그보다 급한 문제”라면서 “자유 진영의 리더로서 최악의 독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민에게도 “당신들은 당신의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가 북한의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2007년, 당시 13살의 나이로 중국으로 탈북한 박씨는 201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참담한 인권유린을 고발하며 ‘북한 인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2015년에는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북한의 참상에서부터 인권유린에 노출된 탈북자의 처참한 삶, 인권운동가가 되기까지 23년 동안의 고된 여정을 기록한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이란 자서전을 출간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 “원수가 외나무다리서 만나 껴안아”… 두 정상의 악수에 환호

    [6·12 북미 정상회담] “원수가 외나무다리서 만나 껴안아”… 두 정상의 악수에 환호

    “한 편의 영화 보는 것같이 신기 죽기 전 통일 오지 않을까 기대” “남의 잔치 안 되게 냉정해져야” “트럼프 ‘여유’·金 ‘인간적’” 평가도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 온통 싱가포르로 향했다. 시민들은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높게 평가했고, 탈북민들은 “감회가 새롭다”며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만남을 갖기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쯤 서울역 1층 대합실 TV 앞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뉴스특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10시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적어도 50여명은 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양국의 국기를 배경으로 한 레드카펫 위에서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자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80대로 보이는 한 노인은 “잘한다 잘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TV 모니터로 전해지는 역사적인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남기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 용산역 대합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김완수(49)씨는 “미국과 북한이 만나는 모습을 생전에 보게 돼 마음이 뿌듯하다”면서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의 그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전했다. 박모(53)씨는 “두 사람이 서로 원하는 것을 잘 아니까 협상에서도 서로 잘 주고받을 것 같다. 두 사람이 ‘평화’라는 세계인의 열망을 잘 풀어낼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저 자리를 조율한 것이 문 대통령이라는 점도 자랑스럽다”며 뿌듯해했다. 최인언(30)씨는 “이날 만남이 ‘불신과 대결’의 역사가 ‘신뢰와 평화’의 역사로 대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바랐다. 전문가 못지않은 관전평을 내놓는 시민도 있었다. 김효찬(61)씨는 “트럼프가 감정 기복이 심한 줄 알았는데 아주 여유 있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 줬고, 김정은도 자존심이 센 줄 알았는데 국익을 위해 자존심도 내려놓을 줄 아는 인간적인 리더십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용산역에서 만난 이정우(33)씨는 “감격스러운 측면은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남의 잔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의 국익을 위해 향후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할지 냉정하게 짚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모(61)씨는 “원수가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나 껴안는 상황”이라면서 “남북이 분단된 이후 가장 감동적인 이벤트”라고 표현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공단이 폐쇄돼 되돌아온 기업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기업 대표 15명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부터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 모여 북·미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함께 시청했다.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는 “북한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저희는 다시 개성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면서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과의 경제협력 흐름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는데, 우리도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2년 4개월을 버텨 오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와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 시장을 형성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상협 협진카바링 대표는 “2016년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을 때 깜깜했던 시야에 이제야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느낌”이라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공단이 다시 열린다고 했는데, ‘비핵화’에 합의했으니 올해 안에 개성공단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은 우려 섞인 기대감을 내비쳤다. 2000년 탈북한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북·미 회담에 대한 탈북민들의 기대는 남다르다”면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철저히 지키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인권문제, 특히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탈북민들 사이에는 아직 김 위원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면서 “김 위원장이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밝히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사건팀 dream@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 통일 다룬 책 상반기 판매량 작년의 8배…트럼프 ‘거래의 기술’ 베스트셀러 등극

    [6·12 북미 정상회담] 통일 다룬 책 상반기 판매량 작년의 8배…트럼프 ‘거래의 기술’ 베스트셀러 등극

    출간 종수 절반에도 판매 폭발 “올림픽·정상회담 이슈가 견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관련 도서들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북한 관련 도서 판매량이 지난 3년간 판매량과 맞먹을 정도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관련 도서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12일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팔린 북한·통일 관련 도서는 모두 2만 9950권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배나 증가한 수치다. 출간 종수는 46권으로 지난해(88권)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판매량은 지난 3년간 전체 판매량에 맞먹는다. 손민규 예스24 사회·정치 MD(담당자)는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참가에 이어 두 차례 이어진 남북 정상회담이 관련 도서 판매량을 대폭 견인했다”고 분석했다.특히 트럼프 대통령 관련 도서의 약진이 눈에 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이 화제가 되면서다. ‘거래의 기술’(살림)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한국경제신문사), ‘트럼프 시대 트럼프를 말하다’(서교출판사)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내건 책이 인기다. 예스24에 따르면 이 책들은 지난달 대비 무려 6.4배나 더 팔렸다. 특히 그의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은 예스24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영풍문고 집계 결과 지난해 대비 판매량이 5배나 급증했다. 미국 NBA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 책이다. 트럼프가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고 삶을 꾸려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북한 관련 책 가운데에는 지난달 발간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기파랑)가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북한의 실상을 고발한 책은 3주 연속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의 방북을 중재했던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부키)도 주목받는 책이다. 서울신문 강국진 기자가 ‘김정은과 트럼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한반도 비핵화는 실현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하고, 박 명예교수가 답을 제시했다. 영풍문고에 따르면 책은 지난달 대비 판매량을 2배 이상 넘기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이 밖에 탈북자 주승현씨의 자전적 에세이 ‘조난자들’(생각의힘)과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의 ‘70년의 대화’(창비) 등의 신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쓴 ‘통일을 보는 눈’, 개성공단에서 근무한 남측 주재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개성공단 사람들’ 등의 옛 책들도 다시 판매 순위권에 올랐다. 도서관에서도 북한·통일 관련 책의 대출이 증가 추세다. 도서관 대출 정보 플랫폼인 ‘도서관 정보나루’가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3627만여건의 대출 추이를 분석한 결과 ‘새로운 100년’, ‘노무현 김정일 246분’, ‘서해전쟁’, ‘개성공단 사람들’, ‘북한 현대사’가 상위권에 올랐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지금까지 북한 관련 도서가 워낙 적어 일부 눈에 띄는 책과 과거 출간된 책들까지 독자들이 찾아보는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낸다면 앞으로 관련 도서 판매량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개성공단은 작은 통일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 연내 재가동 가능”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개성공단은 작은 통일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 연내 재가동 가능”

    남북 관계가 정말 풀리긴 풀리려나 보다. 지난주 찾은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는 제법 활력이 느껴졌다. 개성공단 철수 후 2년 넘게 분노와 실의에 빠져 있었던 만큼 기업인들의 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 아닐까. 4·27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경협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신한용(58)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을 만났다. 신한물산 대표인 신 회장은 개성공단에서 200여명의 종업원들과 함께 어망과 통발 등 어구를 제조했다. 신 회장으로부터 개성공단 철수 이후 겪은 어려움과 재가동 준비 상황 등을 들어봤다.→판문점선언 이후 북·미 정상회담 발표와 취소, 재개 등 반전이 거듭됐다. 심정이 어떤가. -“밀당은 예상했지만 전격 취소될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국이) 북·미 회담을 취소했다.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거라고 느꼈다. 한데 하루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시 회담 가능성을 열었다. 트럼프답다. 비핵화 방식 등에서 조율이 부족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걸러지지 않겠나. 더 봐야겠지만, (취소 사태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산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단에서 철수한 뒤 보상과 지원은 얼마나 이뤄졌나. -“협회가 추산한 실질 피해액의 3분의1 정도만 지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철수 직후 240여개 기업이 1조 600억원 정도의 피해액을 신고했다. 건물과 기계장치 등 투자자산과 원부자재, 위약금, 영업손실, 영업권 상실 피해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기준으론 영업 정지에 따른 손실이 늘어나 피해액이 1조 5000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지원금액은 총 4800여억원에 불과하다. 그중 3000억원은 보험금이니까 실질적인 정부 지원은 1800억원 정도인 셈이다. 보험금은 개성공단 재가동 시 보험사에 뱉어내야 할 돈이다. ‘지원’이란 용어도 잘못됐다. 정부 조치에 의해 철수한 데 따른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 맞다. 마치 안 줘도 될 돈을 주는 양 시혜를 베푸는 듯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당시 개성공단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이제 이런 시각이 바뀔까.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돈으로 핵을 개발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2016년 2월 정부가 정보기관 문건을 토대로 그런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 근거는 누구도 대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통일부는 그 문건이 주로 탈북자들의 진술과 정황에 의해서 작성됐음을 털어놓았다. 개성공단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 지시로 전면 중단됐다고 했다. 그 탓에 기업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빨갱이 기업’, ‘종북기업’이란 말까지 들으면서도 제대로 항변도 못 했다. 북·미 회담이 잘돼 핵·미사일이 폐기되더라도 이런 부정적 시각이 금방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북한의 변화 모습을 보면서 점차 희석될 것이다.” →개성공단이 북한에 어떤 도움을 줬다고 보나.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의 맛을 알게 해 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품질이나 계약 개념도 없이 자기 고집대로 하면 되는 줄 알면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다. 공단에서 일하면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 방식이 자기들 체제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공단의 하루하루가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점에선 말잔치나 일삼는 통일 전문가들에게 아쉬움이 많다. 통일 실험장인 개성공단 하나 지켜내지 못하지 않았나. 개성공단 전체 근로자가 5만명이 넘었다. 가족들까지 하면 20여만명이다. 공단이 10개만 생겨도 200만명이고 북한 전체 주민의 10분의1에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비용 안 들이고 통일로 가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경협이다. 통일로 가는 지름길은 북한 주민들을 끌어내고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개성공단이 조만간 재가동되겠나. 준비는. -“북·미 회담이 잘 풀려야 재가동도 빨라질 것이다. 유엔 제재도 결국 미국 중심이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제재 예외조항을 개성공단에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현금만 직접 북측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북·미 회담 한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정부가 어떻게 치고 나가느냐도 중요하다고 본다. 재가동하려면 최소한 2~3개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기계 파손 상황 등을 점검하고 전기·수도를 복구하는 등 준비할 게 적지 않다. 조만간 방북이 허용돼 준비를 서두른다면 연말까지 재가동될 수도 있다. 협회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기업 차원에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 →공단 철수 기업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124개 업체 중 60%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국내와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상당수는 근근이 유지만 하고 있다. 10여 군데는 아예 문을 닫고 사실상 폐업한 상태다. 폐업을 공식화하고 싶어도 금융권 부채 등의 문제가 남아 불가능하다. 일부 업체가 파산을 신청했지만, 개성에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있다. 그렇다고 금융권이 개성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지도 않는다.” →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업체가 개성공단 재입주 의사를 보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들의 노동의 질은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뛰어나다. 북 주민들의 잠재력은 우리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른 해외 노동자들처럼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고 응용력을 발휘해 더 잘하려고 한다. 머리가 좋고 민첩한 데다 이직도 거의 없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개성공단에 재산을 그대로 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재입주해야 공장을 계속 돌리든지, 아니면 팔고라도 나오든지 하지 않겠나. →대기업의 북한 공단 진출에 대한 의견은. 신규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은 있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부 개성공단 업체는 탐탁지 않아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대기업들도 진출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트럼프빌딩이 북한에 세워지고 맥도날드가 대동강변에 들어설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야 북한이 변화하고, 대한민국 위상도 올라간다. 언제까지 나홀로만 고집할 수는 없다. 현재 20여개 업체가 개성공단에 신규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공단 재가동이 가시화하면 늘어날 것이다.” →공단 철수 뒤 본인 회사는 어떻게 꾸려 왔나. -“20년 전 회사를 설립해 중국 산둥성에 공장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서 서해 공동어로구역 이야기가 나오자 ‘남북 공동의 바다에 어구를 뿌리겠다’는 꿈을 갖고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철수 뒤엔 충남 예산에 공장을 지어 어구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도 이젠 채산성이 맞지 않아 운영이 상당히 어렵다. 물가나 임금, 이직 문제 등 여건이 안 좋다. 북한은 중국이나 동남아를 대체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물론 안정성이 담보됐을 때 그렇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금융과 세금 우대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투자 기업을 모을 수 있었다. 한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혜택들이 없어졌다. 남북한 정세 변화에 따라 공단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와 함께 안정적인 정부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sdragon@seoul.co.kr
  • 탈북 BJ 한송이 “빅뱅, 위너 좋아해서 탈북 결심했다”

    탈북 BJ 한송이 “빅뱅, 위너 좋아해서 탈북 결심했다”

    7일 MBC FM4U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에는 탈북 BJ 한송이가 출연했다. 한송이는 과거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탈북자로, 현재 아프리카 TV BJ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 지석진은 한송이에게 “‘훅 들어온 초대석’에는 빅뱅, 위너 같은 유명 아이돌이나 대형 스타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분들 좋아하냐”고 질문했다. 이에 한송이는 “제가 그분들 때문에 탈북했다”고 답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TV에서 볼 때 코가 큰 줄 알았는데 크지도 않고 잘 생겼다”며 지석진 외모를 칭찬, “북한에서도 런닝맨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한송이는 이어 “북한에서 살던 곳이 양강도로 중국 국경 근처였는데, 중국 사람들이 USB에 다운받아서 밀수하면 볼 수 있다. 가격은 1회에 중국 돈 5원으로 한국 돈으로 850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서는 스마트폰을 ‘터치손전화기’로 부른다. 가격은 200달러에서 600달러 정도다. 난 금수저여서 5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썼다”고 전했다. 한편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는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방송된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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