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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국군포로 부부 北送위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 정부는 위조여권을 이용해 한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지난 17일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공안 당국에 긴급 체포된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사진·72)씨 부부 귀국을 위해 중국 당국과 교섭에 나섰다.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 이준규(李俊揆)총영사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용일씨가 국군포로 출신임이 거의 확실해 중국측에 전씨의 신변안전보장과 한국 귀국을 요구했다.”고 밝히고 중국 당국과 그의 귀국 교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총영사는 “중국 정부에 탈북자 전씨가 국군포로라고 전달한 이상 양국간 외교 마찰을 일으키면서 북송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씨의 강제북송 가능성을 일축했다. ‘전씨 부부가 국경지대인 투먼(圖們)의 탈북자 수용소로 압송됐다.’는 보도와 관련,주중 한국대사관측은 “아직 중국 정부로부터 그의 소재지를 통보받지 못했지만 투먼 수용소로 압송됐다고 해도 북송이 아닌,행정처리를 위한 조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씨 부부가 북한 송환 대기소로 알려진 투먼의 탈북자 수용소로 압송됐을 경우 강제 북송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씨는 지난 9월15일 탈북,대리인을 통해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국내 입국 의사를 밝혔으나 입국 조치가 지연되자 저장성으로 이동,부인 최은희(68)씨와 함께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항공편으로 입국하려다 체포됐다. 이와 관련, 대사관측은 “전씨 대리인으로 나선 K씨가 여권과 다른 이름으로 활동해 신분이 불확실했고 전씨가 국군포로 명단에도 없어 확인 작업이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대사관측은 이날 전씨의 자필 이력서와 국방부에 제출한 신분확인 요청서류 등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전씨측에서 주장하는 주중 대사관의 ‘문전박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사관측은 전씨에게 신원조회 등을 위해 베이징에서 기다리거나 베이징 총영사관내 탈북자 수용소에 들어오라고 제의했으나 전씨가 브로커 등의 사주로 위조 우대여권으로 성급하게 귀국하려다 체포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전씨 신분 확인 과정에서 정부의무성의 때문에 전씨의 남한행이 좌절됐다.”고 분노했다. 전씨의 입국을 후원해온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에 따르면,경북 영천 출신인 전씨는 지난 51년 군에 입대했으며 6사단 19연대 3대대 2중대 2소대에서 복무하다 53년 7월 강원도 금화군 제암산고지 전투중 북한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6·25전쟁 기간 북한에 억류된 사실이 공식 확인되고 구체적인 생사 여부와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1186명으로 지난 1994년부터 올 9월까지 탈북을 통해 귀환에 성공한 국군포로는 32명이다. oilman@
  • 어둠속의 1000명/밀입국 탈북자 국적취득 방법 몰라… 불법체류 단속피해 잠적

    “여기오니 온몸이 후들후들 떨립네다.저 진짜 잡혀가는 거 아니죠.” 20일 오전 서울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은 북한동포 최송죽(53·여)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절차를 밟아 북한동포라는 게 확인되면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듯 질문을 반복했다.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된 지난 17일 이후 북한동포로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국적회복을 신청하기는 최씨가 처음이다. 최씨는 지난 2001년 입국한뒤 “북한동포라도 불법체류자로 단속되면 보호소로 잡혀 간다.”는 소문에 2년 남짓 목동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숨어 살다시피 했다.최씨는 그러나 정부 단속이 본격 실시되자 수소문 끝에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사무총장 도희윤)’를 알아내고 이날 상담을 받기 위해 도 사무총장을 만나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최씨는 “북한동포는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에 금세 힘을 얻는 듯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3살이던 최씨는 할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함경북도 김책시를 떠나 중국 옌볜(延邊)으로 건너가 ‘조선교포’로 생활했다.하지만 중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북한국적을 가져야만 했던 최씨에게 중국사회는 냉담했다.5년전 중국인 남편과 헤어진 뒤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지만 비자 받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2001년 5월 여권브로커를 만난 최씨는 그에게 한화 1400만원을 주고 최양순(崔良順)이라는 가명으로 위조여권을 만들어 한국으로 들어왔다.최씨는 “한국에 온 뒤 줄곧 서울 동대문구 한 여관에서 청소 등을 하며 지냈지만 단속이 두려워 여관 밖엔 거의 나가지 못했다.”면서 “최근 집중단속이 시작된 이후엔 여관에만 머무르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담 결과,최씨는 북한 국적을 지닌 조선교포나 탈북자는 우리나라 국적법상 한국인으로 인정돼 국정원 등의 확인절차만 거치면 국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괜히 불안에 떠는 다른 북한동포들에게이런 사정을 얘기해 줘야겠다.”며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나섰다.최씨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경찰서에 자진 신고,국정원과 경찰 관계자로부터 입국 경위와 향후 계획을 조사받는 등 국적회복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고려대 북한학연구소 박현선 교수는 “위조여권을 이용해 입국한 탈북자의 수는 국내 탈북자 중 30∼40% 수준인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면서 “대부분 국적법 내용을 몰라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처럼 숨어 지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도 사무총장은 “탈북자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열려 있는 만큼 정부 당국에서 이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
  • 꼭 알고 가야할 시사문제 80선

    ●사회 이혼율 증가,청년 실업,스와핑,이민열풍과 해외원정출산(이중국적),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사회,몰래카메라,PC게임 중독증,청소년 매매춘자 신상공개,안락사,언론개혁,자살 사이트,사형제도,실업문제,인터넷 등급제,양심적 병역기피,동성애와 성전환,호주제 폐지,여성고용할당제 ●정치 이라크 파병,정치자금과 권력형비리,인사청문회,한미행정협정,북한 핵개발,중국내 탈북자 문제와 대처방안,북한의 개혁과 개방,연방제와 연합제의 차이,주한미군 철수론,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금강산 사업 ●경제 부동산 대책과 부의 재분배,담뱃값 인상과 금연풍조,경기활성화 방안,주5일 근무제,개발제한구역 논란과 경제성,신용카드와 신용불량자와의 관계,긴급 수입제한조치와 마늘 파동,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소리바다 서비스 중단과 지적재산권 ●문화 동거 신드롬,얼짱 신드롬,안티 사이트,대박 증후군,히딩크 리더십,노블리스 오블리주,보톡스 열풍,영어공용화론,예술과 외설의 차이,사이버문화 특성,디지털 문명,한류열풍,퓨전문화,사이버테러,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 ●환경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와 집단이기주의,물부족 현상과 수자원 보호,유전자변형식품(환경호르몬),청계천 복원 논란,이상기후,적조현상,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협약 ●과학 유비쿼터스 시스템,줄기세포 활용,구제역,신과학운동,나노과학,카오스이론,프랙탈이론,생명윤리 ●교육 공교육과 사교육,기여입학제,고교평준화 정책,심야학원 단속 및 보충수업 부활,0교시 수업 폐지문제,지역할당입학제,이공계 기피현상과 외국유학 지원 문제,교육이민과 공교육 위기론,학교체벌
  • [열린세상] 북한의 민주화를 위하여

    지난주 안식년 연구차 체류하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북한문제에 관한 특강을 하였다.강연에서는 지난해 8월과 지난 3월 두만강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들을 만나 조사한 자료와 지난 7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평양과 인근 지역을 방문한 경험들을 디지털 카메라 사진과 함께 발표하였다.최근 북한에 대한 관심 탓에 1시간 강연에 이어 40분의 질의 응답도 시간이 부족하여 정작 북한 핵문제는 내년 2월에 보다 큰 규모의 학술회의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미국의 국제정치학은 현실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국제문제를 분석 설명하고 예측하였다.현실주의에 대해 이상주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제도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고자 끊임없이 상호 의존과 자유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왔고,현실주의 역시 체제의 균형과 억제이론을 중심으로 신현실주의의 비전을 제시해왔다.그러나 이 모든 이론들이 물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국가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산물인 냉전의 불안정한 평화는 설명했지만 소련 및 동유럽사회주의체제의 해체로 도래한 탈냉전의 새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지 14년이 지났건만 국제정치학자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충격과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코소보 내전 등 민족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9·11사건 이후 대 테러전쟁은 조만간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자들의 고민과 상실감은 그만큼 더 깊어진 것 같다.국내 정치적 요소가 새삼 강조되고 보다 정교한 정책결정과정이론이 개발되는 동시에 정체성과 가치관,문화와 상호작용 등을 중시하는 구성주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나 요동치고 있는 국제사회를 명쾌히 규명하기엔 역부족이다.이러한 지적 풍토에서 현존하는 마지막 스탈린식 체제이자 동양적 전제군주제 요소가 가미된 북한체제는 최적의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더욱이 현실주의와 네오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민주주의 평화론에 기반한 민주화 정책추진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향후 북한문제는 더욱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우리 국내에서 북한문제는 냉전적 대결과 전쟁 억제 등 안보차원과 영토적 통일에 대한 관심에서 민족화해와 교류협력 등 탈냉전의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져왔다.굳이 국제정치이론으로 설명하자면 신(新)현실주의에서 신(新)기능주의로 전환되어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햇볕정책이 시행된 지 6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상태가 상존하고 있으며,체제로서의 북한 수령독재는 유지되고 있다.국제정치이론이 냉전 해체에 기여하지도,예측하지도 못했듯이 우리의 학계나 정부도 북한체제의 향방에 대해 아무런 예측이나 기여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보다 북한 지도층이나 사회 전반의 정체성과 문화를 체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황장엽 비서는 망명 이후 지금까지 북한문제의 해결책으로 북한사회의 민주화를 제시하고 있다.그가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하여 그의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국내외의반응은 한물간 망명객의 넋두리 정도로 흘려버린 것만 같아 안타깝다. 북한 군사력은 남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거나 북한 경제력이 남한의 20분의1도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햇볕론자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냉전시기 현실주의론자들의 기본 가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신남북관계를 주도한다는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 방향을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으로 상정하고 있다면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북한 지도부가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험을 배우면 그게 더 빠른 길이다.체제변화와 관련한 규범과 가치,그리고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우리 정부는 본격적으로 북한 민주화에 대한 황장엽 비서의 제안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으며,학계도 이와 관련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냉전 해체 이후 미국 국제정치학계가 겪었던 자괴심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 호 열 고려대교수 비교정치학
  • [씨줄날줄] 남북 이혼소송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어떻게 또 혼자 가요.나 집에 안 갈거야.이제 어떡하라고요.” 지난해 4월 정귀업 할머니는 52년 만에 만난 북녘의 지아비를 붙잡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다.일흔을 훌쩍 넘긴 정 할머니의 새색시와 같은 투정은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됐었다.많은 이들은 이산가족 1세대들이 분단으로 겪었을 통한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그게 다일까.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불과 6년여를 함께 산 남편과 헤어진 뒤 평생 수절하며 살아온 정 할머니에게서 우리 사회의 남성들은 전통적 여성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남모를 안도감을 느낀 건 아닐까. 국내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의 수가 늘면서,또다른 이산의 아픔이 커져가고 있다.통일부에 따르면 6·25 전쟁 이후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수는 3800여명.이들 중 극히 일부는 부모형제가 모두 왔지만,대부분은 외톨이로 남한 생활을 하고 있다.최근에는 탈북자중 남녀의 비율이 4대 6에 이를 만큼 여성의 수가 더 많다.사정이 이러하니 탈북자의 결혼과 이혼,재혼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북한은 1946년 남녀평등권 법령을 시행하면서 당사자간 ‘협의이혼’을 비교적 광범위하게 허용했다.이 결과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당 간부들이 ‘늙고 무식한 조강지처’를 버리고,젊은 지식인 여성들과 재혼하는 일이 빈발하자 1956년 협의이혼을 폐지하고,재판에 의한 이혼만 허용했다.그렇다고 이혼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서,1987년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주민의 이혼율은 1000명당 0.2건,100혼인당 2.3건이다.최근의 통계가 없어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전문가들은 지난해 남한의 1000명당 3.0건에 비해 10분의 1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0대 탈북 여성이 재혼을 위해 남한 법원에 북한에 있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탈북자들은 통상 단독 호적을 만드는데,이 여성은 동반한 아이를 호적에 올리면서 남편의 이름까지 등재했고,이로 인해 재혼하는데 문제가 제기됐다고 한다.북한에 남편이 실재하고 있고,그 남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법원이 어떤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지 주목된다.“남편을 다시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 이혼하고 싶다.”는 이 여성의 바람에 대한 최선의 해법은 무엇일까. 각자 생각해 보자. 김인철 논설위원
  • “北남편과 이혼시켜 주세요”/30대 탈북자 첫 이혼소송 北가정법 인정여부 관심

    탈북자가 재혼을 위해 북한에 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법원이 북한 가정법을 인정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지난 2001년 북한 주민이 남한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켜 달라며 낸 소송에 이어 국내법과 북한 민법의 효력 문제에 관한 두 번째 사례다.탈북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가족관계와 재산관계 등을 둘러싼 남북한 주민들의 소송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 7단독 정상규 판사는 “최근 30대 탈북여성이 ‘북한 배우자와 이혼하게 해달라.’며 이혼소송을 냈다.”고 10일 밝혔다.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재판부는 국내에서 북한 가정법을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법무부·통일부·국가정보원에 의견조회를,학회에 법률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은 국내에 들어오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호적을 취득하는데 이때 북한 배우자를 표시한다.이 때문에 재혼을 하려면 호적상 배우자를 제적해야 한다.이혼소송은 처음이지만 탈북자 수가 10월말 현재 3800명을 넘어서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탈북자 5∼6명이 북측 배우자와 이혼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변호인단에 법률상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탈북자 강모(36)씨는 “함경북도에 살고 있는 남편 박모(36)씨를 부재자로 인정해 달라.”며 서울가정법원에 부재자청구 신청을 냈다.부재자청구는 배우자를 실종자로 처리해 달라는 것으로 이혼소송과 다르지만,재혼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앞서 북한 황해도에 거주하는 손모씨 등 남매 3명은 2001년 6월 6·25때 월남해 2000년에 사망한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켜 달라는 소송을 남측 변호사를 통해 서울 가정법원에 냈다. 정은주기자 ejung@
  • 오피니언 중계석/‘제8차 통일문제 학술세미나’

    남북문화교류협회(회장 이배영)는 6일 서울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남북간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제8차 통일문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대한매일이 후원했다.주강현 한국민속연구소장의 ‘남북한 문화유산교류의 전망-민족생활문화교류를 중심으로’와 윤덕희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의 ‘통일과 여성의 역할’ 등 발제논문을 요약한다. ■남북 문화유산교류 전망 ●주강현 소장 반백년을 넘긴 남북관계의 구도는 결코 남북한만의 문제가 이니다.민족생활사란 측면에서는 민족 고유의 것에서 가려낸 특수적 가치와 보편적 지향을 조화,통일시키려는 슬기가 필요한 시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남과 북이 각기 상이한 체제에서 얻어낸 고귀한 경험과 오류들을 하나로 묶는다면 그 변화된 조건조차도 통일된 한민족의 역사 발전에서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통일은 외형적인 체제나 정권의 통합이 이니라 민족의 통일,곧 사람과 사람의 통일,삶의 통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남북문화공동위원회’가 실제 가동돼야 할 것이며,이에 민족문화 부문이 중요한 팀원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이북에서의 민족문화 부문의 비율은 남쪽에 비해 각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남북문화공동위원회의 구성과 합의는 곧바로 통일문화 형성의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그렇다면 문화교류의 최단거리 방법론은 무엇일까.그간의 통일 및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은 정치·경제적 문제로만 접근되는 편향성을 보여줬다.하지만 통일공동체를 염두에 둔다면 쌍방간 동질성을 확보,화해의 단서를 마련해나가야 한다.이를 위한 최단거리 방법론이 사회·문화적 교류인 것이다. 이에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구체적 문화교류사업 몇가지를 제안한다.우선 식생활사업으로 ▲북한음식점의 남한분점 개소 ▲남북한 향토식품 박람회 ▲북한의 고급 식생활용기 전시 등을 기획해볼 만하다.의생활사업의 경우 ▲남북한 우리옷 패션쇼 ▲북한의 전통 옷감 수입 ▲자수·장신구 전시회 등이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주생활사업은 ▲민족건축양식에 대한 모범안 교류 ▲살림집의 민족양식 교류 등을 꼽을 수있다.이밖에도 남북한 민속놀이를 비롯해 각종 명절행사,관혼상제 행사의 사업적 교류도 추진할 만하다. ■통일과 여성의 역할 ●윤덕희 교수 통일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우선 남북 여성이 많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이해와 신뢰를 다져야 한다. 또 통일을 위한 여성의 역할 확대는 시민사회의 활성화 및 여성의 시민의식 고취와 맥을 같이해야 한다.아울러 통일정책의 결정과정과 정부의 다양한 통일 관련 여성 활동에 정책결정자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사회갈등을 예측하고 이를 해소하는 작업과 여성 관련 노동정책 및 사회복지정책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데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민간분야에서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을 조정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와 함께 여성들에 대한 독자적 통일교육 실시 및 통일운동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여성계와 여성단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정부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해줘야 한다.통일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함에 있어 각계 여성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고,남북관계가 진전될 경우 여성대표들이 참여하는 남북여성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통일부 안에 여성 관련 전담부서를 신설하고,통일교육과 시민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아울러 탈북자에 대한 지원대책을 조속히 수립하고,여성단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국제기구나 제3국을 통한 여성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계와 여성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여성을 위한 통일교육 프로그램과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통일 관련 여성인력의 효율적 연대를 통해 여성들의 통일 지향적인 정책 능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 전광삼기자 hisam@
  • 뉴스 플러스 / 美의원 “北정권 이미 붕괴중”

    북한은 붕괴되고 있으며 자유국가들은 쓰러지는 북한을 떠받쳐주지 말아야 한다고 샘 브라운백(공화·캔자스) 미국 상원의원이 4일 주장했다.브라운백 의원은 이날 상원에서 열린 외교위 아태소위의 북한 인권유린에 대한청문회에서 “북한 정권은 붕괴되고 있다.”면서 “자유 국가들은 그 나라를 떠받치지 말고 북한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탈북자들을 막기 위해) 15만명의 군 병력을 파견했고 다시 그것을 50만명으로 증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북한의 체제붕괴 징후”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수십만 명의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한 종합법안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 駐中대사관 민원업무 3일부터 또 일부제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주중 한국 대사관은 날로 증가하는 수용 탈북자를 감당하지 못해 3일부터 당분간 또다시 민원업무를 일부 제한한다. 대사관 영사부는 31일 공고문과 인터넷을 통해 상용 및 친척 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민원인은 3일부터 당분간 지정 여행사를 통해 대리 수속해야 한다고 공고했다. oilman@
  • 전방 10곳에 탈북자수용소/ 軍부대에 2000명 수용규모

    군 당국이 북한의 정정불안 등으로 인한 대규모 주민 탈북사태에 대비해 휴전선 인접 군 부대 안팎에 임시 수용소 10곳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국방부에 따르면 육군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하하는 대량 탈북자를 한시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동·서·중부 전선을 담당하는 6개 군단 인근에 각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련시설 1곳씩을 임시 수용소로 지정했다.해군도 강원 동해 소재 1함대사령부와 경기 평택의 2함대사령부 영내에 수용시설 2곳씩을 갖춰놓고 있으며 필요시엔 관련시설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을 포함한 유사시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수립돼 운용중인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정부는 그동안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이를 비밀에 부쳐왔다. 군은 또 장병들이 탈북 주민과 접촉할 경우 우선 안전하게 귀순을 유도,임시수용소로 보내,관계당국의 합동신문을 거쳐 1주일간 수용했다가 정부 수용소로 옮기는 내용의 탈북주민 호송절차도 이미 마련한 상태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량탈북 대비계획은 지난 93년 합참에서 최초로 수립된 이래 수 차례 개정을 통해 구체화되고 실제 상황에 맞게 보완됐으며,각급 부대에서는 실전 대응훈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씨줄날줄] 김용순 비서

    ‘용순비서’.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남측 대표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보다 여덟살이나 위인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를 스스럼없이 불렀다.이 호칭은 당시 묘한 반향을 일으켰다.‘용순비서’는 김 위원장의 부름에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김 위원장이 북한 내부에서 최고지도자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했다.동시에 그는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와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만큼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음을 알리는 소득을 거뒀다.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였다.때문에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식 표현으로 가장 ‘뜬’ 인사는 김 비서라는 평가도 있었다. 김 비서는 같은 해 9월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제주도를 방문,1934년생 동갑인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와 회담을 갖고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 비서가 지난 26일 사망했다는 보도다.북한은 그가 지난 6월16일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치료중 숨졌다고 밝혔다.이에 외신이나 탈북자들은 북한 지도층의 파티 문화를 지적하면서 음주음전 사고 가능성을 주장했다.여하튼 김일성대학 국제관계학과(현 평양국제관계대학)를 나와 모스크바대학에 유학한 엘리트 출신의 김 비서는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겸직하며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사업까지 도맡아 왔다.고 정주영 현대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을 성사시키고,금강산관광사업을 현실화시킨 현대의 대북경협 파트너도 그다. 김 비서는 그러나 몇차례 좌천설에 휘말리기도 했다.특히 2001년 1월1일 이후 1년 2개월간 공식 행사에 나타나지 않자 금강산관광사업의 부진 때문에,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숙청됐다고 알려졌다.1993년과 1994년에도 실각설이 나돌았는데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책임추궁 때문으로 분석됐다.하지만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 위원장에 이은 제2인자로 대남정책을 총괄해 왔고,그가 활발히 움직이면 남북관계도 활기를 띠었다.그는 남북화해협력의 북한측 ‘상징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정부가 김 비서에 대한 조의 여부를 고민중이라고 한다.조문단 파견은 어렵겠지만,남북회담 대표 명의로 조전을 보내는 것은 검토해볼 만하지 않을까. 김인철 논설위원
  • 탈북… 자진 재입북… 또 탈북…/다시 돌아온 경계인?

    남한에 정착해 살다가 생활고 등으로 자진 재입북했던 남수(사진·46)씨가 재탈북해 다시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국내에 정착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탈북자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다시 입북해 활동하다 재탈북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으로 정부의 향후 처리 방향이 주목된다. 정부 소식통은 26일 “자발적으로 북한에 다시 들어갔던 탈북자 남씨가 다시 탈북해 지난 22일 국내에 들어왔다.”며 “현재 관계기관으로부터 신변 보호를 받으면서 재입북 및 재탈북 경위,그간의 활동사항 등을 조사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남씨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재입북,북한에서 탈북방지 강연 활동 등을 해 왔다는 점에서 대공 용의점 등을 집중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남씨는 함경북도 온성의 우산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탈북,지난 1996년 1월 홍콩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정착했으나 2000년 7월 중국으로 출국한 뒤 소식이 끊겼었다.이후 남씨는 북한으로 자진 입북했고 북한당국은 그를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온 ‘모범’으로 선전하며 국경지역에서 탈북방지를 위한 강연을 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남씨는 남한에서 생활하는 동안 결혼을 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나 자신이 개업한 식당 운영이 제대로 안되자 “정부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며 불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가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가 재탈북한 것은 지난 2001년 유태준씨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당시 유씨는 자진 입북이 아니라 아내를 만나러 밀입북했다가 북한당국에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하던 중 재탈북해 국내로 다시 들어왔었다. 이도운기자 dawn@
  • 황장엽 방미 / “전쟁부추기는 방미 반대”‘결사대’ 시민상대 홍보전

    “1997년 망명 이후 동포를 생각하지 않고 반북 입장에서만 활동해온 황장엽씨가 미국에 가서 할 일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지난 17일 결성된 ‘황장엽 방미 저지 결사대’(단장 임지훈·경기대 총학생회장)는 24일 팩스와 이메일을 통해 미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6자 회담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황씨가 미국을 방문,전쟁을 부추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사대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과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모두 2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정식 명칭은 ‘전쟁불쏘시개 황장엽 방미 저지 결사대’.결사대 소속 대학생 서모(25)씨는 “황씨의 방미 때 우익보수단체 인사가 동행한다고 알고 있는데 황씨의 방미 목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황씨 출국을 하루 앞둔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관련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이에 앞서 25일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리는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에도 참석한다.서씨는 “황씨를 직접 만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취지를 알리고 황씨가 자신의 행동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사대측은 탈북자 단체나 보수집단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에 대해 “평화적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황씨의 소재를 파악하더라도 1인시위 등 비폭력적인 시위 방법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
  • 황장엽 방미 / 황장엽씨 인터뷰 “조국땅에서 죽고 싶다”

    미국 방문을 앞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24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평화적으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가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김정일 독재체제 민주화 위해 방미” 방미 활동의 목적은. -내 모든 활동의 목적은 김정일 독재체제하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는 데 있다.방미 목적도 예외일 수 없다.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문제는 한 나라 안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다. 국제민주역량의 중심에는 미국이 서 있으므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투쟁도 미국과의 동맹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미국을 방문해 한·미 동맹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해 평화적으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가는 데 이바지하려고 한다. 미국 망명설과 망명정부 수립설이 나도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터무니없는 헛소문이다.대한민국은 나의 조국이고,나는 조국땅에서 죽고 싶다. 일부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난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어느 개인에 대해 감정을 갖고 지지하거나 숭배한 적이 없다.나의 어떤 사람에 대한 입장은 그의 사상에 대한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 ●“귀국후 한총련 만나 대화하고파”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방미저지 결사대를 결성했는데. -순진한 그들을 기만하고 부추기고 선동해 그릇된 방향으로 내몰고 있는 그 배후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민적 집단에 대해 비열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을 만나 진지하게 대화하겠다. 최근 탈북인단체연합회를 결성하고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을 독재체제에서 구원하고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인재다. 탈북자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할 뿐 아니라 그들이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애국자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연합
  • 황장엽 방비 / 방미 초청한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한매일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방문을 초청한 디펜스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황씨는 26일 미국을 방문,북한의 정세,인권문제 등에 대해 증언하고 행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숄티 회장은 황씨가 미국에서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은 황씨의 방문에 반대하는 세력이 만든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황씨를 미국에 초청한 이유는. -우리는 전제정권으로부터 망명한 인사들을 미국으로 초청,연설을 들은 전례가 많다.한국이건 미국이건 자유 세계의 사람들은 망명 인사들의 증언을 듣지 않으면 전제정권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황씨는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망명했다.우리는 그가 망명한 1997년 이래 그를 초청하려 했다.우리는 북한 정권을 다룰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그의 견해와 향후 전망을 듣고 싶다. 황씨의 방문은 북핵 해결을 위한 다자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때에 이루어져 특히 관심을 모으는데. -북한의 실상에 관한 그의생각과 의견은 북핵 위기를 평화롭게 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김정일 정권 아래서 불운하게 태어난 북한 사람들도 우리가 누리는 것과 똑같은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대량살상무기로 그들이 이웃국가를 위협하는 것이나 김정일 정권이 자기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다.우리는 인권문제가 북핵문제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황씨가 북한에 비판적인 증언을 할 경우 북핵사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다자간 노력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지 않는가. -외교적 노력과는 별개로 진실을 숨기거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자유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건전한 논쟁을 계속해야 한다.북한정권을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고 있는 그로부터 듣지 못한다면 누구로부터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겠는가.황씨의 증언은 우리 후손들과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도 당연한 의무이다.북한에 관한 정보를 많이 들을수록 대북 결정에도 더 좋은결과가 나올 것이다. 황씨의 미국 망명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다.그의 미국 방문을 무산시키려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이다.그의 방미를 허락한 한국 정부를 당황스럽게 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망명 이래 황씨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고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증진에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황씨가 김정일 정권과 관련된 폭탄급 정보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의 관심은 북한 정권에 있다.한국의 정책과 관련된 사항에는 언급할 수가 없다.우리는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모든 것을 듣고 싶다.그의 방문과 증언은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관료들에게 북한의 정보를 말해 줄 좋은 기회이다.그는 미국 정부가 북한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말할 것이다. 7박8일간의 일정 동안 일반에게 공개되는 회의는 디펜스포럼 주최의 1시간30분짜리 오찬 연설뿐이다.더 많은 연설 기회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다.물론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안전할 것이다.황씨의 안전을 위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회담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두나라 모두 그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그러나 미 의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개적인 회의를 개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부각됐다.다른 행사도 준비했으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 31일 연설로 만족했다. 황씨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가. -백악관에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딕 체니 부통령 등 다른 고위직 관료들과의 면담은 계속 추진중이다. 미국에서의 다른 일정은. -안전문제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그러나 이번 방문이 황씨를 위한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기간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국무부,국방부,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뤄질 것이며 의회 지도자들도 면담할 것이다.현재로선 국무부의 존 볼턴 군축안보담당 차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와의 회담이 확정된 것만 밝힐 수 있다. 황씨가 미국에서 머물겠다면 도와줄 용의가 있는가. -우리의 목적은 황씨의 첫 미국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데 있다.체류기간 동안 그가 안전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갖는 데 노력할 것이다.아마 내년 봄에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방문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기회가 되면 다시 초청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그의 일정이 연장될 것이라는 징후는 전혀 없다. 탈북자나 북한의 고위급 망명자들의 미국행을 계속 도울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상·하원에서도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북한자유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당초 초안과는 달라졌으나 다음달 중에는 상정될 것으로 안다.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국이 열쇠를 쥐고 있다.한국과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 통로로는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그보다는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나 탈북 지원단체들이 계속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은 탈북자 문제에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중국이 탈북자나 인도적 차원에서 일하는 단체들을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으로 대하지 않게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이어 중국이나북한의 접경지역에 북한 난민수용소를 설립하고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탈북자들이 원하면 미국에 쉽게 올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은. -쉽지 않다.장기적으로는 모르지만 경제난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것 같지 않다.북한은 한국과 일본,미국 등으로부터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정권유지 차원에서 악용하고 있다.김정일은 해외 은행계좌에 40억달러의 비자금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정권유지를 위해 쓸 준비가 됐다.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가하더라도 정권이 당장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mip@ 숄티 회장과 디펜스포럼 디펜스 포럼은 비영리 교육재단으로 안보와 외교,인권문제에 대한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한다.1987년 설립된 이래 1996년부터 북한의 인권상황 등에 초점을 맞춰 탈북자들의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수전 숄티 회장은 현재 미 인권단체들과 연대해 국제적인 탈북자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숄티회장은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비츠 국제종교자유연구소소장을 중심으로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 등과 함께 북한인권 지원활동의 3각축을 이루고 있다.
  • “송두율은 사상적 탈북자”/ 박홍씨 “술먹은 사람 잡으려고 낯붉은 사람 다 때려잡나”

    “송두율 교수는 사상적인 탈북자로 봐도 무방합니다.공산주의자는 결코 아닙니다.학자로서 순수하게 탈민족주의 를 염원했습니다.차분하게 그가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보수인사로 꼽히는 박홍(朴弘·61)서강대 이사장이 2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송두율 교수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10일 서강대에서 열린 철학자 대회에서 송 교수와 만나 노래도 함께 불렀던 박 이사장은 송 교수에 대해 “실정법을 거스른 부분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민족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심경은 이해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지난 91년 김기설씨 분신사건 이후 “재야에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한국 학생운동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날 박 이사장은 서강대 사제관에서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송 교수가 입국한 뒤부터 우리 사회가 ‘영웅’과 ‘간첩’을 오가며 대접하는 현실은 송 교수의 고뇌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라면서“송 교수는 학자의 입장에서 주체사상에 깊게 들어갔지만 왜 그 체제가 잘못됐는지 하느님 앞에 모자를 벗는 심경으로 그 분 스스로 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박 이사장은 남과 북,자본주의와 공산주의,과거와 미래의 경계인으로서의 경험이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그는 이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벌 받아야 하고 송 교수 스스로도 알고 있다.”면서도 “송 교수가 자수하는데 검찰이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썼다.”고 지적했다.그는 “자꾸 간첩 혐의로만 몰아가면 안 되지요.안 그렇습니까.술 먹은 사람을 잡으려고 낯 붉은 사람은 무조건 다 때려잡는 식 아니냐구요.”라며 목청을 높였다. 박 이사장은 그래서 사상 검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송 교수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박 이사장은 송 교수에 대해 오랫동안 외국에서 유학하며 분단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다 고향을 찾은 학자로 보고 있었다. “면회도 갈 겁니다.가서진리의 성령을 받아 마치 사오로가 바오로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올바른 판단을 내리라고 조용히 기도할 겁니다.” 구혜영기자 koohy@
  • 황장엽씨 교수 됐다/ 전주대 석좌교수로… 北정세등 강의

    북한의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黃長燁·사진·80)씨가 전주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대학 강단에 섰다. 전주대는 지난 1일 황씨를 3년 임기의 석좌교수로 임용했다고 22일 밝혔다.황씨는 개강 이후 임용된 탓에 우선 이번 학기에는 특별강좌 형식으로 북한 정세와 국제정치,안보론 등의 강의를 맡았다.또 교수에 준하는 대우에다 연봉을 받는다.대학측은 “다음 학기에는 북한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국제대학원이나 행정대학원 등에 전공을 개설해 정규 강좌를 맡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대는 “북한에 대해 자료로만 배우는 틀에서 벗어나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와 당의 요직에 있었던 황씨를 통해 실질적인 북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힘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아울러 탈북자가 3000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교육기관이 없는 현실도 황씨를 석좌교수로 임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석좌교수 제의에 대해 “비록 나이가 많지만 북한 실상에 대한 교육과 통일 이후의 지도자 양성에 여생을 바치겠다.”며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항간의미국의 망명설과 관련,“나의 조국은 여기다.”라며 소문을 일축했다는 것이다.황씨는 김일성종합대 교수와 총장직을 역임했으며 당 비서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지내다 지난 97년 망명,입국했다. 박홍기기자
  • 뉴스 플러스 / 황장엽씨 “北 붕괴 이미 시작”

    지난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북한에서 이미 붕괴가 시작됐으며 탈북자가 (붕괴 시작의)단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황 전 비서는 22일 밤 일본의 아사히TV 심야 종합 뉴스프로그램인 ‘뉴스 스테이션’을 통해 방영된 인터뷰에서 “북한을 떠나면서 5년만 기다리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고,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자신의 망명에 대해 “처음부터 망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양심의 가책과 책임을 느껴 독약을 먹고 자살하려 했다.”고 밝혔다.
  • “北수용소 15만~20만명 수감”/고문·영아살해등 자행 美인권단체 보고서 폭로

    북한에는 36개의 정치범 강제수용소에 15만∼20만명이 수감돼 있으며 고문과 강제노동,폭행,임산부에 대한 강제 낙태와 영아 살해 등 반인륜적 범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와 AFP통신은 22일 미국내 초당적 비영리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23일(한국시간) 발표하는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태 보고서를 미리 입수,보도했다. ‘비밀수용소:북한의 수용소를 폭로하다.’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유엔 인권조사관 출신의 데이비드 호크가 수용소에서 도망쳐 중국으로 탈출한 사람들과 강제수용소 전직 간수 등 30명과의 직접 면담을 통해 작성됐다. 보고서는 중국에서 강제 송환돼온 임신부들은 남편이 외국인일 경우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고 아기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폭로했다. 신의주 인근 탈북자 수용소에서 임산부를 위한 군병원에 배치돼 일했던 66세의 여성은 “6명의 아이를 받았는데 일부는 산달을 다 채우고,일부는 강제유도로 아이를 낳으며 모두 살해됐다.”고 증언했다.특히 그는 2명의 아이가 이틀간 살아 있자 “북한 경비병이 와서 핀셋으로 두개골의 연약한 부분을 찔러 죽였다.”고 폭로했다.북한인권위원회는 수용소 7곳의 위성사진도 공개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뉴스 플러스 / 주중 대사관 20일 영사업무 재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주중 한국대사관이 과다한 탈북자 업무로 인해 지난 7일 잠정 중단한 비자·여권 발급,병역 등 영사 업무를 20일 재개한다. 업무 재개를 위해 한국대사관은 이번 주말 수용 중인 탈북자 120∼130명 중 상당수를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송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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