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우리 안의 반달리즘/ 구본영 논설위원
유치환 시인이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이라고 표현했던가. 그 시구에 어울리는, 아프가니스탄의 뜨거운 모래 언덕에서 한국인이 두 명이나 희생됐다.
탈레반 세력도 무고한 이들에게 몹쓸 짓을 할 만큼 처음부터 ‘막가파’는 아니었다.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왕따’였을 리도 없다. 탈레반이 1996년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했을 때를 돌아보라. 소련의 침공과 내전으로 고통받던 아프간인들이 그들의 개혁 깃발 아래로 모여들지 않았던가. 이슬람권 여성들은 외출 때 종교적 전통에 따라 베일을 두른다. 머릿수건인 히잡과 눈만 내놓고 얼굴까지 감추는 니캅 등 복식마다 가리는 정도는 다르다. 아프간 여성들은 발끝까지 덮는 부르카를 착용한다.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스며들 만한 토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탈레반 정권도 순식간에 민심과 국제적 지지를 함께 잃었다. 아니, 출발부터 자멸의 요인을 체화하고 있었다. 그 몰락의 DNA가 바로 반달리즘(vandalism)이었다. 문화재 파괴로 상징되는 반달리즘은 다른 문화와 섞이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말살하려는 게 본질이다. 그들은 2001년 로켓까지 동원해 아프간 내 불교 유적을 깡그리 파괴했다. 그해 9·11테러를 지휘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품고 있다가 미국의 침공을 받았다. 이 때 이슬람 국가들조차 탈레반을 동정하지 않았다.
탈레반은 율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일삼았다. 여학교 폐쇄와 여성 사회참여 금지를 자행했다. 텔레비전 시청 등 유흥문화를 원천봉쇄, 원성을 샀다.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의 부활도 세속 문화를 뿌리뽑으려는 반달리즘이었다.
눈을 대선정국으로 돌려보자.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 진영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중”(김형준 명지대 교수)이란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이 후보 측이 “(대운하 비방 UCC 제작의혹과 관련)금품 게이트를 고백하라.”고 압박하면, 박 후보 측에선 “국정원과 내통, 추악한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맞받아친다.“후보 사퇴하라.”란 말이 예사이니,‘반달리즘 정치’라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여야가 격돌할 본선은 또 어떻겠는가. 상대 당의 노선을 단 한치도 인정하지 않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정치가 불 보듯 훤해 보인다.‘반(反)한나라당’ 이외엔 지향점이 다른 범여 주자들이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니 재집권 의지보다 야당 집권 저지 의식만 두드러져 보인다. 이들의 지지도를 합해도 야권 빅2 후보의 그것에 못미치는 게 현 판세이다.“한방에 보낼 수 있다.”(이해찬 전 총리)는 호언에선 판세를 일거에 뒤집으려는 ‘비대칭 전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재래식 무기로 안 되면 ‘핵무기급’ 네거티브 공세로라도 야권을 초토화하려는 의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선거에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부박한 풍토 때문인가. 흑백논리와 결과에 대한 승복 거부가 한국정치의 속성처럼 됐다. 하지만 상대를 전면부정하는 반달리즘에서 벗어난, 통합의 정치가 시대정신임은 분명하다. 최근 각종 국민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이·박 간엔 권력분점의 대타협, 여야 간엔 어느 쪽이 이기든 정치보복을 않겠다는 선언 등 찾아보면 대안이 없지도 않을 듯싶다. 승자독식의 환상에 취한 주자들이 귀담아 듣기나 하랴마는….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