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탈레반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정진석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웨이트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연제구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윤태영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02
  • 파키스탄 자폭테러 “10대 자살폭탄 테러범이 자신의 몸에 폭탄 두르고…” 충격

    파키스탄 자폭테러 “10대 자살폭탄 테러범이 자신의 몸에 폭탄 두르고…” 충격

    파키스탄 자폭테러 “10대 자살폭탄 테러범이 자신의 몸에 폭탄 두르고…” 충격 인도와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동부 라호르 인근 국경검문소에서 2일(현지시간)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 최소 55명이 숨지고 120명 이상 다쳤다고 경찰이 밝혔다. 자폭공격은 이날 해질 무렵 라호르 인근에 있는 와가 국경검문소의 파키스탄 쪽에서 매일 장중하게 펼쳐지는 국기하강 행사를 보려고 80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있는 와중에 일어났다. 경찰간부 아즈말 부트는 10대로 보이는 자살폭탄 테러범이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던 폭약을 터트렸다고 말했다. 아민 와인스 라호르 경찰국장은 “관중이 와가 검문소에서 구경을 마치고 발길을 돌리고 있을 때 폭발이 있었다. 볼베어링들이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타히르 자베드 펀자브주 무장순찰대장은 “범인이 보안장벽을 타고 넘는데 실패했으며 관중이 밀려나오는 순간 자폭했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TV는 구급차가 사망자 시신과 부상자를 펀자브주 주도인 라호르로 실어나르는 장면을 방영했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손자 이맘 후세인의 순교(서기 680년)를 애도하는 아슈라를 맞아 파키스탄 전역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발생했다. 자폭테러 희생자 중에는 2명의 무장순찰대원, 여성, 어린이가 다수 포함됐다. 테러를 자행한 주체에 대해 파키스탄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 3곳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혼선을 빚고 있다. 파키스탄탈레반(TTP)의 분파 대변인 압둘라 바하르는 작년 미국 무인기 공격으로 숨진 자파 지도자 하키물러 메흐수드의 복수를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9월 TTP에서 이탈한 자마트 울 아흐라르 분파도 테러의 배후라고 나섰다. 에흐사눌라 에흐산 대변인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북와지리스탄에서 진행 중인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사망한 동료 대원의 복수 차원에서 자폭테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파키스탄 TV는 수니파 무장세력 준둘라(신의 아들) 소행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수년간 탈레반 반군의 무차별 살상과 테러로 수천 명이 숨졌다. 다만 최근 파키스탄 정부군이 서북부 지역에서 대규모 탈레반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테러공격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파키스탄군의 작전으로 탈레반 반군 1100여명이 사살되고 100명 이상이 투항했으며 정부군도 100명이 희생됐다. 와가 검문소는 파키스탄과 인도 간 주요 육상통로로 양국 사이에 대규모 교역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네티즌들은 “파키스탄 자폭테러, 너무 무섭다”, “파키스탄 자폭테러, 어떻게 이런 일이”, “파키스탄 자폭테러, 정말 황당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나친 등반 경쟁은 산에도 안 좋은 영향 미쳐”

    “지나친 등반 경쟁은 산에도 안 좋은 영향 미쳐”

    “억새가 아름다운 포천 명성산에 오르는 일이 매우 기대됩니다.” 엄홍길, 박영석에 이어 세계 10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스페인 산악인 알베르토 이누라테기(46)를 29일 아침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1992년 최연소(23세)에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반한 데 이어 14좌 완등을 모두 무산소로 이뤄낸 그는 2002년 세계 최고의 등반가로 선정됐다. 이누라테기는 알츠하이머, 파킨슨씨병 등 신경변성 질환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WOP(Walk On Project) 재단의 ‘678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트렉스타의 글로벌 홍보이사 자격으로 지난 26일 입국해 다음달 1일까지 머무른다. 이날 명성산을 올라 국내 산행 문화를 체험한다. 678 프로젝트는 히말라야 6000m, 7000m, 8000m 봉우리의 새 루트나 오래 전 이용됐던 루트를 오른다. 지난 7월 파키스탄 빠유피크 남봉(6050m)을 올랐는데 1976년 북쪽 루트를 통해서만 등정됐던, 산악인들에게 보석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내년 봄 네팔 자누(7710m)와 가을 초오유(8201m)의 알려지지 않은 루트 개척에 나선다. 지난 27일 열 손가락을 산에서 잃은 김홍빈(50·트렉스타 국내 홍보이사) 대장과 만난 그는 “김 대장의 굉장한 능력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삶을 지속하려는 자세에도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1995년 에베레스트(8850m) 남동릉과 2년 뒤 가셔브롬 서벽에서 엄홍길 대장과 친해졌다는 그는 “한국의 젊은 산악인들이 규모도 크고 규율도 엄격했던 과거 원정 방식에서 탈피, 더 가벼워진 방식으로 멋진 등정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딱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한 차례씩 올라 14좌를 완등했다. 한 해에 두세 봉우리를 발 아래 두는 한국 원정대와 달랐던 것. 그는 “정밀하게 계획하고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이런 등반 업적을 남겼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산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186㎝ 키에 손도 엄청 큰 그에겐 아픔이 있다. 피레네 산맥으로 자신을 데려가 산과 인연을 맺게 했던 형 펠릭스를 2000년 가셔브롬 2봉(8035m)에서 잃은 것. 형에게 헌정하기 위해 올랐던 2002년 안나푸르나(8091m) 남릉 등반을 23년 산악 인생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왜 산에 오르냐고 물었다. “어릴 적 하지 말라는 일을 했을 때 느끼는 흥분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첫 한국 방문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조금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나라가 발전한 것 같다. 알수 있는 한 한국을 많이 알고 싶다.→ 지난 27일 김홍빈 대장과 만난 것으로 안다. 그 전에 알고 있었는지, 신체적 장애를 딛고 열심히 등반하는 그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잘 알지 못했던 산악인이다. 언어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굉장한 능력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려운 여건에서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자세에도 많은 감명을 얻었다. → 당신은 엄홍길 박영석에 이어 14좌 완등을 세계 10번째로 해냈다. 당신 바로 뒤에는 한왕용이 14좌를 완등했다. - 여러 한국인을 알고 지내긴 했지만 그다지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한국인들의 히말라야 등정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굉장히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고 있다. 제가 14좌를 완등하는 동안 1995년 에베레스트 남동릉과 1997년 가셔브롬 서벽에서 한국 원정대를 만났는데 이 때 엄홍길 대장을 알게 됐다. 제 생각에 한국의 젊은 산악인들은 규모가 크고 규율이 엄격했던 원정대의 고전적인 방식을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변형했다. 여기에다 전보다 더 가벼워진 접근 방식으로 2008년 인도 메루피크(6660m) 북벽과 카라코람 바투라 2봉(7762m) 세계 초등과 같은 멋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 당신이 14좌를 완등하는 동안 한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한 차례씩만 봉우리에 올랐더라. 그러나 한국 원정대는 많게는 한 해 세 봉우리도 도전하는 일이 있다. 어떤 생각을 갖는지. - 한 해 두세 번 고산을 오르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강도높은 훈련과 치밀한 계획으로 그 같은 업적을 이룬 걸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지난해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에서 탈레반에 의해 총기 난사 테러가 저질러지듯이 레이스하듯 고산 등정을 경쟁하는 것은 분명 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 당신은 1992년 최연소(23세)로 세계 첫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에 성공했으며, 세계 10번째로 8000m 이상 완등을, 그것도 모두 무산소로 해냈다. 무산소 등반을 하면 산소통을 이용한 등반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 98%의 등반가들이 산소 등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또 대부분의 산악인에겐 정상에 도달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그 차이는 두드러질 거라고 본다. 산소가 있으면 등반 성과가 좋고 추위를 덜 느끼게 장점이 있다. 해발 0m의 산소 용존량이 8000m에서는 30%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몸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로 잘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8000m 이상에서는 등반할 수 있느냐 없느냐 두 가지 옵션만 존재한다. → 에베레스트 등정 때부터 14좌를 모두 무산소 완등하려고 생각했는지. -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적었으며 당시는 14좌 완등, 이런 얘기 자체가 지금처럼 유행하지도 않았다. 14개 봉우리를 오른다는 건 불가능한 꿈처럼 여겼다. → 등반을 하지 않을 때 당신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 늘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몸을 열심히 만들고 스폰서 구하느라 여기저기 다니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그런다. → 처음 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었나. - 형 펠릭스 덕에 피레네 산맥의 3400m급 봉우리들을 올랐는데 완전히 사로잡혔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어떻게 사로잡았다는 얘긴가. - 겨울산을 가보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노력과 위험, 아름다움이 상호 작용해 감동을 안긴다. → 678프로젝트는 당신이 직접 짜낸 아이디어였나. - 나도 아이디어를 내놓고 스페인의 여러 산악인들이 힘을 합쳐 지혜를 짜내고 있다. → 고산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 어렸을 때 하지 말라고 하던 일들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은 흥분 때문이다. →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 비유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어서, 다른 적절한 표현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등산은 늘 위험과 함께 하고 그 위험을 조절하는 일이다. 난 늘 빈틈 없이 준비하고 모든 위험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다. 난 인생에 뭘 걸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 14좌 등반을 완성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이미 몇 차례 언급한 2000년 가셔브롬 2봉에서 형 펠릭스를 잃었을 때와 2년 뒤 안나푸르나 남쪽 능선을 오르던 순간이다. → 안나푸르나는 어째서 그렇게 힘들었나. - 형을 잃은 지 얼마 안돼 슬픔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상태였고 또 예민했다. 가장 어려운 루트가 반복되는 상황이라 남사면이 너무 위압적으로 보였다. 또 형에게 헌정하는 산행이란 측면에서 꼭 올라야 한다고 마음먹었기에, 단 한번의 기회라 생각했기에 더 어려웠던 것 같다. → 다음달 1일 포천 명성산을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는 설악산, 지리산, 월출산처럼 좋은 산들이 참 많다. - 전 특혜받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한국을 조금 더 자주 찾도록 하겠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6~7년 뒤 한국의 어느 산이 가장 좋은지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 계획은. - 난 한 걸음 한 걸음 해결하고 다음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678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 그래도 일생일대의 꿈은 있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은퇴하고 싶다. → 체격이 어떻게 되나. -186㎝에 73㎏다. 그런데 왜. →당신의 그 큰 손 때문이다. 동료 산악인에 견줘 큰 편 아닌가. - 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체격을 타고 났다. 다른 등반가와 비교해도 확실히 크다. → 둘째 아들이 산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들었다. 전문 산악인의 길을 걷겠다면 어떻겠는가. - 허락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세대는 등반 테마나 기술 면에서 여러 지원이나 후원을 얻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미래 세대일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 아쓰따 루에고(다음에 또 봐요)!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군 장비 앞뒤로 메고...들고...마치 누가 챙길 수 있나 시합 같이...”

    “군 장비 앞뒤로 메고...들고...마치 누가 챙길 수 있나 시합 같이...”

    미국과 영국은 26일(현지시간)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종료했다. 영국은 아프간 최대 군사 기지 바스티온 기지의 작전권을 아프간 군에 이양했다. 미국 해병부대 레더넥 기지의 통제권도 아프간 군에게 넘겼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에 맞서 싸운 영국의 역할에 경의를 표했다. 영국군이 자부심을 가지고 작전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아프간에 주둔한 영국과 미국 군의 규모는 한 때 4만 명을 넘었다. 오는 12월 이후에는 1만 2000명이 남아 아프간 군의 훈련을 맡는다. 이에 따라 미군과 영국군은 각각 바스티온 기지와 레더넥 기지를 떠나 칸다하르에 도착, 본국으로 귀국하거나 아프간에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 AFPBBNews=News1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세계의 창] 미국은 왜 중동에서 발을 못 빼나

    [세계의 창] 미국은 왜 중동에서 발을 못 빼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겠다며 칼을 빼든 지 26일(현지시간)로 3개월이 돼 간다. 지난 8월 8일 이라크 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뒤 9월 22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5개국과 함께 이라크 옆 시리아 내 IS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 국방부는 IS 소탕작전에 대해 지난 15일 뒤늦게 ‘내재된 결단’이라는 작전명을 부여했다. 1970~1990년대, 이스라엘 돕고 석유 챙기고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우방 및 에너지 안보 수호,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점철된 굴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1970~1990년대 주요 정책은 이스라엘 안보와 석유전쟁에 의한 에너지 공급 보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에너지 등 안보를 위해서라면 걸프지역 보수 왕정국가들 어디와도 손을 잡았다. 1991년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걸프 전쟁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하려고 하자 불안해진 중동 정세 속에서 걸프만 군주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로,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발발한 첫 대규모 전쟁으로 기록된 걸프 전쟁은 43일 만에 다국적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미국이 탈냉전 시대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계기가 됐다. 또 미국의 대중동 최첨단 무기 수출과 미군 상주 등도 이뤄졌으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체제를 종식시키지 못해 ‘미완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걸프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중동 개입 전쟁은 미 정권에 따라 부침이 심했고 평가도 엇갈렸다. 걸프 전쟁이 에너지 안보와 역내 우방국들의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면, 2000년대 들어 미국이 벌인 대다수의 개입 전쟁은 소위 ‘테러집단과의 전쟁’이었다. 이는 2001년 미국에서 발발한 ‘9·11테러’에 대한 보복전에 따른 것이었다. 2000년대 부시 정부, 알카에다 잡으려다 미군만 잡고 조지 W 부시 정부는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7일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테러집단 알카에다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단행했다. 부시 정부는 그러나 빈라덴 세력을 소탕하지 못하고 알카에다·탈레반 등의 위력이 계속돼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여야 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1년 5월 2일 빈라덴이 파키스탄에서 미 특수부대 총격으로 사망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해 6월 아프간에서의 단계적 군 철수 계획을 밝히면서 올해 말 대다수 철수에 이어 2016년 말 완전 철수가 예정됐다. 아프간 전쟁이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미 군사력에 큰 부담을 줬고 전쟁 피로감을 야기했다. 부시 정부가 일으킨 또 다른 전쟁인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그야말로 실패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걸프 전쟁 때 제거하지 못한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보유 의혹과 9·11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와의 연계 혐의를 앞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과도한 일방주의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걸프 전쟁 때 미국을 지지했던 중동 국가들조차 미국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 결과 미국은 군인 4500명의 희생과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부시 정부는 후세인 정권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결국 후세인을 체포해 2006년 12월 30일 처형시켰다. 2011년 12월 전쟁이 끝났지만 이라크의 불안은 진행형이다. 2009년 이후 오바마 정부, 철군 선언했다가 IS에 발목 잡히고 오바마 정부는 과거 정부들과 달리 중동에 유연한 정책을 시도해 왔다. 아프간·이라크 전쟁 철수 계획을 밝히면서 10년여간의 전쟁 종료를 선언했고, 지상군 대신 경제 원조와 민주주의 전파를 앞세웠다. 그러나 2010~2011년 ‘아랍의 봄’과 2011년부터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에 이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시리아 IS 등 테러집단들의 준동에 대응하기 위해 여전히 중동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 정부가 일으킨 두 개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이라크·시리아 대테러 공습에 나서면서 오바마 정부도 대중동 개입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에도 이왕 시작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IS와의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인 만큼 미국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끝까지 공습을 망설였던 오바마 대통령 정책의 훗날 평가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전쟁, 너무 피곤하다. 이제 철수다...”

    “전쟁, 너무 피곤하다. 이제 철수다...”

    미국과 영국이 26일(현지시간)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종료했다. 영국은 2006년부터 수행해온 아프간 최대 군사 기지 바스티온 기지의 작전권을 아프간 군에 이양했다. 미국 해병부대 레더넥 기지의 통제권도 아프간 군에게 넘겼다. 바스티온 기지에서는 영국 국기 하강식이, 인근 레더넥 기지에서 미국 국기 하강식도 열렸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에 맞서 싸운 영국의 역할에 경의를 표했다. 영국군이 자부심을 가지고 작전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아프간에 주둔한 영국과 미국 군의 규모는 한 때 4만 명을 넘었다. 오는 12월 이후에는 1만 2000명이 남아 아프간 군의 훈련을 맡는다. 셰르 모하메드 카리미 아프간 육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친구’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2001년 아프간에 처음 파병한 이후 지금까지 453명이 사망했다. ⓒ AFPBBNews=News1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가자, 집으로...전쟁은 더 이상...” 미 해병대, 아프간에서 철수.

    “가자, 집으로...전쟁은 더 이상...” 미 해병대, 아프간에서 철수.

    미국과 영국이 26일(현지시간)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종료했다. 영국은 2006년부터 수행해온 아프간 최대 군사 기지 바스티온 기지의 작전권을 아프간 군에 이양했다. 미국 해병부대 레더넥 기지의 통제권도 아프간 군에게 넘겼다. 바스티온 기지에서는 영국 국기 하강식이, 인근 레더넥 기지에서 미국 국기 하강식도 열렸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에 맞서 싸운 영국의 역할에 경의를 표했다. 영국군이 자부심을 가지고 작전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아프간에 주둔한 영국과 미국 군의 규모는 한 때 4만 명을 넘었다. 오는 12월 이후에는 1만 2000명이 남아 아프간 군의 훈련을 맡는다. 셰르 모하메드 카리미 아프간 육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친구’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2001년 아프간에 처음 파병한 이후 지금까지 453명이 사망했다. ⓒ AFPBBNews=News1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 정도 쯤...무거우면 어떠냐...전쟁터에서 벗어나는데...”

    “이 정도 쯤...무거우면 어떠냐...전쟁터에서 벗어나는데...”

    미국과 영국이 26일(현지시간)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종료했다. 영국은 2006년부터 수행해온 아프간 최대 군사 기지 바스티온 기지의 작전권을 아프간 군에 이양했다. 미국 해병부대 레더넥 기지의 통제권도 아프간 군에게 넘겼다. 바스티온 기지에서는 영국 국기 하강식이, 인근 레더넥 기지에서 미국 국기 하강식도 열렸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에 맞서 싸운 영국의 역할에 경의를 표했다. 영국군이 자부심을 가지고 작전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아프간에 주둔한 영국과 미국 군의 규모는 한 때 4만 명을 넘었다. 오는 12월 이후에는 1만 2000명이 남아 아프간 군의 훈련을 맡는다. 셰르 모하메드 카리미 아프간 육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친구’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2001년 아프간에 처음 파병한 이후 지금까지 453명이 사망했다. ⓒ AFPBBNews=News1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말랄라와 이사투/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말랄라와 이사투/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17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선정됐다. 여자도 학교에 가게 해 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외침 때문에 등굣길 버스 안에서 탈레반 요원으로부터 머리에 총을 맞고 기사회생한 소녀다.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과 함께 또 다른 소녀가 떠올랐다.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있는 이사투 잘루는 내가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올해 14세 된 소녀다. 이사투가 10세 때 결연하게 됐고, 그동안 가끔이지만 재단을 통해 편지가 전해진 덕분에 중학교 진학 등의 소식을 듣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생김새도 알고 있어서 편지를 받을 때마다 반갑다. 지난봄에 받은 편지는 이전까지 아빠, 혹은 이모가 편지를 썼던 것과 달리 이사투가 직접 영문으로 써서 보내줘 더욱 반가웠다. 무엇보다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이사투는 연필을 꼭꼭 눌러가면서 쓴 편지에서 이제 곧 2학기 기말고사가 있어서 준비 중이고, 다음달(4월) 첫째 주에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남학생들을 위한 교육보다 유익하다’라는 주제로 연극을 한다고 적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후원자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이 연극에서 개성이 뚜렷한 패널리스트 역을 맡고 싶어요.” 이 한 문장은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기회를 빼앗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동등한 기회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이사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면서 아직 어린 나이의 소녀이지만 확실한 자의식을 갖고 성장해 가는 것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미뤘던 답장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어린이재단 홈페이지의 결연아동 답장하기 메뉴에 들어갔다. ‘(…) 지난번에 보내준 편지에서 이사투가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 기뻤어요. 이사투보다 세살 위인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이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들었겠지요. 말랄라는 여성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다 괴한으로부터 머리에 총을 맞고 죽다가 살아났어요.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믿고, 또 실천하는 이사투도 말랄라 못지않게 멋진 소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희망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바래요. 멀리서 응원할게요.’ 이런 내용을 담아 편지를 쓰고 보내려는데 뜻밖의 안내문구가 떴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으로 시에라리온 아동과의 결연 후원 및 서신교환 등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순간 가슴이 멍했다. 이사투는 경제적 빈곤, 차별 외에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질병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랄라도 마찬가지다. 영국 버밍엄에서 치료를 마치고 가족들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말랄라는 여전히 탈레반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말랄라와 이사투가 아무런 걱정 없이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요원할 것일까. lotus@seoul.co.kr
  • 말랄라 ‘필라델피아 자유메달’도 수상

    말랄라 ‘필라델피아 자유메달’도 수상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파키스탄 소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가 미국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수상한다.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은 미국의 건국 정신을 기리고자 미국 옛 수도인 필라델피아시 당국이 1989년 제정한 상으로, 인권 신장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이번 시상식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21일 오후 7시(한국시간 22일 오전 8시)에 열린다. 앞서 이 상을 주관하는 미국 국립헌법센터(NCC) 젭 부시 의장은 지난 6월 “말랄라는 억압 속에서도 평등과 자유를 위해 맞서 싸웠다”며 “그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지도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개혁을 이끌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말랄라는 “교육을 받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어린이를 대신해 이 상을 받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로써 말랄라는 노벨평화상과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모두 받은 7번째 수상자가 됐다.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의 영예를 안은 말랄라는 11세 때부터 영국 BBC 방송 블로그를 통해 파키스탄탈레반(TTP)의 만행을 고발하다 총까지 맞았다. 이후 탈레반의 계속되는 살해 위협에도 여성의 교육권을 옹호하는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적 사살이 목표” 총 든 3살 ‘전쟁 학교’ 논란

    “적 사살이 목표” 총 든 3살 ‘전쟁 학교’ 논란

    아직 3살에 불과한 아이가 장난감 대신 소총을 손질하고 있다. 또래들이 축구공, 그림책, 비디오게임에 관심을 가질 때 이들은 전쟁 전술, 총기 사용법 등을 교육받는다. 영국 BBC방송은 아직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에게 전술과 살상 기술을 교육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학교’의 충격적인 모습을 최근 공개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불과 1시간 여 거리에 위치한 탕기 협곡(Tangi Valley)에 위치한 아부 하니파 학교(Abu Hanifa School)의 수업시간은 다른 국가의 교육기관과 다른 점이 있다.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남자 아이 1400명은 첨단 무기 운용방법, 구글 맵으로 적 위치 파악하는 방법 등 ‘전쟁 훈련’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아직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도 있다. BBC에서 공개한 관련 영상에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아이들이 무거운 소총을 손질하며 “나는 사람을 사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있다. 학교에 재학 중인 다른 아이들도 “이슬람 율법과 국가를 지키는 것이 장래희망” 또는 “코란에 있는 말처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침략자들을 내쫓는 것이 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탕기 협곡의 교육기관과 사법권은 모두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장악되어 있다. 유념할만한 점은 해당 학교의 운영금은 이들이 적대시하는 영국 등 서방 국에서 지원돼 수도 카불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13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해온 서방 군대들의 철수가 진행되면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하려는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에 저항하며 수도 카불 인근 주요 전략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데 탕기 협곡(Tangi Valley)도 이 중 하나로 추정 중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그림자 조직을 구성, 국가 내외적 정치 영향력을 올리기 위한 움직임을 진행 중이다. 한편 미국은 올해 말 전투임무 종료 후에도 미군 9800명을 계속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키는 내용의 안보협정을 지난 달 30일 공식 체결했다. 사진=BBC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장난감 대신 ‘총’ 든 3살 아이…탈레반 ‘전쟁 학교’ 논란

    장난감 대신 ‘총’ 든 3살 아이…탈레반 ‘전쟁 학교’ 논란

    아직 3살에 불과한 아이가 장난감 대신 소총을 손질하고 있다. 또래들이 축구공, 그림책, 비디오게임에 관심을 가질 때 이들은 전쟁 전술, 총기 사용법 등을 교육받는다. 영국 BBC방송은 아직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에게 전술과 살상 기술을 교육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학교’의 충격적인 모습을 최근 공개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불과 1시간 여 거리에 위치한 탕기 협곡(Tangi Valley)에 위치한 아부 하니파 학교(Abu Hanifa School)의 수업시간은 다른 국가의 교육기관과 다른 점이 있다.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남자 아이 1400명은 첨단 무기 운용방법, 구글 맵으로 적 위치 파악하는 방법 등 ‘전쟁 훈련’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아직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도 있다. BBC에서 공개한 관련 영상에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아이들이 무거운 소총을 손질하며 “나는 사람을 사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있다. 학교에 재학 중인 다른 아이들도 “이슬람 율법과 국가를 지키는 것이 장래희망” 또는 “코란에 있는 말처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침략자들을 내쫓는 것이 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탕기 협곡의 교육기관과 사법권은 모두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장악되어 있다. 유념할만한 점은 해당 학교의 운영금은 이들이 적대시하는 영국 등 서방 국에서 지원돼 수도 카불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13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해온 서방 군대들의 철수가 진행되면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하려는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에 저항하며 수도 카불 인근 주요 전략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데 탕기 협곡(Tangi Valley)도 이 중 하나로 추정 중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그림자 조직을 구성, 국가 내외적 정치 영향력을 올리기 위한 움직임을 진행 중이다. 한편 미국은 올해 말 전투임무 종료 후에도 미군 9800명을 계속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키는 내용의 안보협정을 지난 달 30일 공식 체결했다. 사진=BBC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총알이 ‘방탄헬멧’에…美해병 구사일생 순간 (영상)

    총알이 ‘방탄헬멧’에…美해병 구사일생 순간 (영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저격수가 발사한 총알이 머리에 적중했지만 방탄헬멧 덕분에 목숨을 건진 미국 해병대원의 기적적 생존 순간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유튜브, 라이브리크닷컴 등에 업로드 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해당 동영상은 3명의 미국 해병대원이 아프가니스탄 사막의 한 유적 폐허로 잠입하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폐허 속으로 들어간 해병대원들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빛이 보이는 반대편 출구까지 나아간다. 선두에 서있던 해병대원이 끝까지 나아갔을 무렵, 갑자기 총성과 함께 두 번째 해병대원의 머리 부분에 파편이 튄다. 잠복해있던 탈레반 저격수의 총알이 명중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 해병대원은 착용하고 있던 케블러(미국 듀퐁사에서 개발한 고 탄성률(高彈性率) 섬유 재질) 방탄헬멧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황급히 본래 위치로 복귀한 해병대원들은 저격수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2번째 해병대원의 상태를 살핀다. 해당 대원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 듯 연신 자신의 방탄헬멧을 만져본다. 옆에 서있던 해병대원은 조용히 “너 진짜 운 좋았어”라는 말을 남긴다. 약 3분 남짓한 해당 영상은 현장에 있던 동료 해병대원의 방탄헬멧에 장착되어있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온라인에 게재한 샘 아놀드에 따르면, 해당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 나우자드 지구에서 진행된 헬리콥터 강습 작전 진행 중 발생됐다. 참고로 영상 속 해병대원은 약간의 이명 증상이 나타난 것 외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는 후문이다. 사진·영상=Youtube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탈레반 저격수 총알이 머리를…美해병대원 기적생존 순간 (영상)

    탈레반 저격수 총알이 머리를…美해병대원 기적생존 순간 (영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저격수가 발사한 총알이 머리에 적중했지만 방탄헬멧 덕분에 목숨을 건진 미국 해병대원의 기적적 생존 순간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유튜브, 라이브리크닷컴 등에 업로드 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해당 동영상은 3명의 미국 해병대원이 아프가니스탄 사막의 한 유적 폐허로 잠입하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폐허 속으로 들어간 해병대원들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빛이 보이는 반대편 출구까지 나아간다. 선두에 서있던 해병대원이 끝까지 나아갔을 무렵, 갑자기 총성과 함께 두 번째 해병대원의 머리 부분에 파편이 튄다. 잠복해있던 탈레반 저격수의 총알이 명중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 해병대원은 착용하고 있던 케블러(미국 듀퐁사에서 개발한 고 탄성률(高彈性率) 섬유 재질) 방탄헬멧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황급히 본래 위치로 복귀한 해병대원들은 저격수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2번째 해병대원의 상태를 살핀다. 해당 대원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 듯 연신 자신의 방탄헬멧을 만져본다. 옆에 서있던 해병대원은 조용히 “너 진짜 운 좋았어”라는 말을 남긴다. 약 3분 남짓한 해당 영상은 현장에 있던 동료 해병대원의 방탄헬멧에 장착되어있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온라인에 게재한 샘 아놀드에 따르면, 해당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 나우자드 지구에서 진행된 헬리콥터 강습 작전 진행 중 발생됐다. 참고로 영상 속 해병대원은 약간의 이명 증상이 나타난 것 외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는 후문이다. 사진·영상=Youtube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여성교육·아동인권 위해 목숨건 투쟁… ‘앙숙’ 두 나라 환호

    여성교육·아동인권 위해 목숨건 투쟁… ‘앙숙’ 두 나라 환호

    한쪽에서는 극우세력이 점차 세를 불리고, 다른 쪽에서는 이슬람국가(IS)의 무자비한 폭력이 등장하면서 문명 간 충돌 걱정이 커져서였을까. 노벨위원회는 10일 인도의 카일라시 사티아르티(60),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17)를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힌두교도와 무슬림인 이들이 교육에 찬성하고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일러 “이것이 힌두와 이슬람 세계를 위한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봤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수상 자격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유사프자이는 10대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해 유력 후보로 거론된 바 있고, 사티아르티 역시 아동인권 운동에 대한 오랜 헌신을 높이 평가받았다. 2011년 평화상 수상자인 예멘 언론인 타우왁쿨 카르만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둘 다 오랜 시간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사람으로 노벨상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아동인권과 관련해 이전에는 무장투쟁 종식 같은 공로를 인정했는데 이번 수상 결정으로 교육 문제로까지 아동인권 문제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유사프자이는 이미 슈퍼스타다. 2012년 ‘탈레반 피격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여성인권과 교육운동에 더욱 매진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총격 후유증으로 많은 수술을 받았고 탈레반의 위협도 여전하지만, 유사프자이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 남자에게 “당신의 딸도 교육받길 바란다”고 말하겠다는 당찬 소녀다. 유사프자이는 16살 생일이던 지난해 7월 12일 유엔 총회장에서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세계 지도자들에게 아동 무상교육 지원을 요청했다. 2013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과 CNN이 뽑은 ‘올해의 주목할 여성 7인’에 올랐으며, 자서전 ‘나는 말랄라’를 펴냈다. 사티아르티는 수상 소감부터 아동인권에 대한 열정이 묻어난다. 인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수상이 인도 국민들에게 기쁜 일이듯 인도 아이들에게도 기쁜 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범한 전기기사였던 그는 1983년 인도판 ‘세이브 더 칠드런’인 ‘바차판 바차오 안돌란’ 운동에 뛰어들었다. 돈에 팔려 가고 납치, 유괴되는 아이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다. 처음엔 인도를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보폭을 넓혔다. 1998년에는 103개국 1만개 단체가 참여한 ‘아동 노동에 반대하는 세계인 행진’이란 운동을 조직해 각국 정부에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아동노동 관행을 막아 달라고 촉구했다. 또 아동노동 없이 만들어진 카펫과 깔개를 인증하는 ‘러그마크’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1995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2002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월런버그 메달을 수상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카일라시 사티야티(인도) 노벨평화상 수상…말랄라,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카일라시 사티야티(인도) 노벨평화상 수상…말랄라,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일라시 사티야티’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카일라시 사티야티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10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와 카일라시 사티아티(인도)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올해 17세로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1살 때 영국 BBC 방송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글을 쓰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으로 탈레반의 공격 대상이 된 소녀는 2012년 10월 귀가길에 버스 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말랄라는 교육운동을 지속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야티 노벨평화상 수상…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탄생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야티 노벨평화상 수상…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탄생

    ‘말랄라 유사프자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일라시 사티야티’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와 인도의 아동 노동 근절 및 교육권 보장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야티(60)가 공동 선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한 투쟁을 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1살 때 영국 BBC 방송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글을 쓰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으로 탈레반의 공격 대상이 된 소녀는 2012년 10월 귀가길에 버스 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말랄라는 교육운동을 지속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야티 노벨평화상 수상…역대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는 누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야티 노벨평화상 수상…역대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는 누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일라시 사티야티’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와 인도의 아동 노동 근절 및 교육권 보장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야티(60)가 공동 선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한 투쟁을 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다.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ㆍ여)는 ‘탈레반 피격소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만 17세인 말랄라는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영광도 함께 안게 됐다. 파키스탄 북서부 시골지역의 평범한 소녀였던 말랄라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꼭 2년 전이다. 2012년 10월 9일 파키스탄 북서부 키베르 파크툰크와주 스와트 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말랄라(당시 15세)는 괴한의 총격에 머리를 관통당해 사경을 헤맨다. 말랄라가 11살 때부터 운영한 영국 BBC 방송 블로그를 통해 여학생의 등교를 금지하고 여학교를 불태우는 등 파키스탄탈레반(TTP)의 만행을 고발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사건 직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한 TTP는 “여성에게 세속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누구든지 율법에 어긋나는 세속주의를 설파하면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말랄라는 영국에서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 사건으로 오히려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권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건강을 되찾은 말랄라는 계속되는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부르짖었다. 말랄라는 자신의 16살 생일인 이듬해 7월 12일 미국 유엔 총회장에서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세계 지도자들에게 어린이 무상교육 지원을 요청했다. 올해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동북부 치복에서 극단 이슬람 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200여 명의 나이지리아 여학생의 무사귀환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7세 말랄라 최연소 노벨상

    파키스탄 여성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와 인도 아동인권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60)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만 17세인 유사프자이는 평화상은 물론 전 분야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유사프자이 이전 최연소 수상자는 1915년 25세의 나이로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인 로런스 브래그였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맞서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유사프자이에 대해 “수년 동안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워 왔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고 설명했다. 사티아르티에 대해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전통대로 평화적으로 투쟁하며 아동 노동 착취에 맞서 싸웠다”고 밝혔다. 유사프자이는 여성 교육을 탄압하는 탈레반에 맞서 온 10대 인권운동가다. 영국 BBC 방송 홈페이지에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녀들의 삶에 대해 글을 올려 주목받았다. 2012년 10월 9일 통학버스에서 탈레반 대원이 쏜 총에 두개골을 맞아 중태에 빠졌으나 영국에서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살아난 이후 교육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사티아르티는 1980년대부터 아동노동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가 설립한 인도 아동구조재단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Bachpan Bachao Andolan·아이들을 구하자)은 노예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 8만여명을 구조했다. 부모의 빚을 대신해 팔려 가는 어린이를 구조하는 데도 힘썼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비대위원 전대 나오려면 연내 물러나야… 김현 안행위 사임해야”

    “비대위원 전대 나오려면 연내 물러나야… 김현 안행위 사임해야”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비상대책위 위원이 (내년 초)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면, 당연히 비대위원에서 물러난 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또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같은 당 김현 의원은 경찰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 위원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 최고위원 등 당직 도전을 위해 비대위원 자리를 내놓아야 할 시점에 대해 “전당대회 날짜가 정해지고 역산해 보면, 언제쯤 사퇴해야 하는지 날짜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내년 1월 말 늦어도 2월 초 이전 전당대회가 실시될 예정으로, 이로부터 후보 등록 시점인 45~50일 이전에 사퇴해야 할 것으로 본다면 연말 전 비대위원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비대위원 중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위원의 전대 출마설이 자천, 타천으로 흘러나온다. 문 위원장은 직전 두 공동대표, 특히 안철수 전 대표가 비대위원으로 비대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당을 살리는 데 참여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외 인사의 비대위 추가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것은 비대위원 구성 당시 원칙을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30일 세월호특별법 타결과 관련해서는 “유가족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비대위가 계파 수장급으로 구성됐다는 비판과 함께 계파 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비대위원들이 (당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면 비대위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계산이 있었다면 잘못 들어온 것이다. 당을 살리기 위해 동의하는 마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지, 당권을 노린다면 인기 관리나 하고 있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계파 갈등과 같은) 그런 얘기를 하며 당내 분란을 바라는 사람들은 사심이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왜 세월호특별법을 그렇게 타결하느냐면서 극단론을 펴거나, 당이 죽을 힘을 다해서 투쟁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한가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문(문희상-문재인) 담합설’이 나오고, 분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면 내가 당직을 모두 친노(친노무현)로 바꿨어야 되는 게 아닌가. 안철수 전 대표 비서실장이었던 문병호 의원을 전략홍보본부장에 임명한 것을 봐라.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임명한 당직자들도 그대로 뒀다. 잘못된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사람이 잘못이다. 노란 안경을 쓰고 노랗다고 한다면 이것은 편견이다. 무조건 친노계 운운하며 특정 계파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또 하나의 계파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다양성은 야당의 생명이다. 일사불란하게 다 같다면 보스 밑의 졸병 모습밖에 안 된다. 그러나 기율은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만, 진짜 나간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후임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도 다시 친노·비노 계파 갈등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그것은 프레임이다. 프레임으로 자꾸 보지 말라. 나는 계파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한 적 없다. 민주주의라면, 투쟁 정당이면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당에 친노 아닌 사람 있나. 문제는 노무현 정신을 잊어버리고 우리 계파만 꼭 해야 한다는 계파 이기주의, 패권주의가 문제다. 원내대표 선거는 추대 형식이 좋겠지만, 두 사람 이상 후보가 나온다면 최후의 수단은 경선이다. →‘제3세력’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 -얼마든지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제3세력이 나와야 한다. 제주도 진돗개가 누렁이, 흰둥이가 있는데 둘 다 누리끼리해졌다. 그런데 소멸된 줄 알았던 까만 진돗개가 끼어들어서 달라졌다고 한다. 제3세력이 크는 것은 견제를 전제로 하기에 나쁘지 않다. 다만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무지개처럼 된다면 무너진다.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양쪽이 못하니 대안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도 소중하지만, 안철수 자신도 중요한 시작점에 서 있다. 안 전 대표의 비대위 참여를 바란다. →전 대표들이 중도·실용을 강화하다가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중도개혁 성향이다. 중산층, 서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우리 당의 변함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강경과 온건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병행 추진해야 한다. 강(强)만 주장하고 나가면 원칙주의, 탈레반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서생적 문제 의식에만 충실한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국회에 오지 말고 시민단체로 가야 한다. 근데 또 협상만 외치면 새누리당 2중대라고 해서 선명성을 상실해 국민에게 신뢰를 잃는다. 그러니 그것을 잘 섞어야 한다. 한편으로 나는 의회주의자이고 장외 투쟁을 반대했지만 김·안 전 대표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 체제에서 밖에 나갈 때 옆에 섰다. 정당의 생명은 뜨거운 동지애에서 나온다. 동지애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이다. 서로 따로따로 가면 투쟁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한곳에 몰아줘야 한다. →국정감사 국면에서 김현 의원의 국회 안전행정위 배치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유가족과 술을 먹으며 위로하는 ‘인간 김현’의 가치가 있지만 ‘국회의원 김현’은 지도자의 격조와 품위를 유지했어야 옳다. 본인이 두 차례 사과했지만, 개인적으로 당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비대위 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다. 또 공정한 수사를 위해 경찰을 피감기관으로 둔 안행위에서 김 의원이 사임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난달 30일 세월호특별법 합의 전 유족들을 끝까지 설득했어야 되지 않았나. -합의안에 사인하기 전에 최소한의 양해를 구했다. 박 전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 등이 총력으로 설득했다. 그러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상규명을 언제까지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언할 사람들이 지쳐서 기억을 잊어버린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에 대해 평해 달라. -난 아름답게 떠내보내고 싶었다. 막내 누이동생과 고등학생시절부터 친구이고 지금도 사석에서는 ‘영선아’라고 부른다. 우리 당에서 리더십을 형성하기 힘든데 고비고비마다 잘 넘겨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끌어내리기로 희생당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선 공약할 때의 신념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대 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서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상 규명이 본질이고, 이를 위해서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나, 외국 가서 수모를 당했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의원을 이렇게 무시한 적이 없었다. 유신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명분 쌓기였지만 모든 문제를 야당대표와 상의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야당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담 이춘규 선임기자 정리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교황·무퀘게·스노든…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

    교황·무퀘게·스노든…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

    교황궁 대신 게스트 하우스를, 벤츠 대신 중형차 포커스를, 프라다 대신 낡은 싸구려 구두를 애용하는 남자. 동성애자에겐 “내가 뭔데 당신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고 어루만지면서도 마피아에겐 단호히 “파문”을 선언한 남자. 세월호와 분단의 아픔까지도 함께했던 남자. 진정성 어린 행보로 즉위 1년 반 만에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위·77) 교황이 올해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에 올랐다. 3일 AFP통신에 따르면 노벨평화상위원회는 오는 10일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콩고의 드니 무퀘게(아래·56) 박사, 반기문(70) 유엔 사무총장,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31)을 포함해 개인 231명과 단체 47곳을 올해의 후보로 공개했다. 온라인 베팅업체 윌리엄힐과 패디파워는 이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을 수상 1순위로 점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교황은 특히 빈곤 퇴치와 경제 불평등 해소 등에 앞장선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베팅업체들이 2순위로 꼽는 후보는 무퀘게다. 의사인 그는 1999년부터 콩고 동부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내전 중 성폭행을 당한 수많은 피해 여성들을 치료해 왔다. 2008년 ‘올해의 아프리카인’, 2013년 미국 트레인재단의 ‘용기 있는 시민상’ 등을 수상했다. 정부기관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한 스노든도 눈여겨볼 후보다.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 옹호에 힘썼다는 여론이 적잖다. 파키스탄에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다 탈레반의 총에 머리를 저격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도 지난해에 이어 이름을 올렸다. 단체 가운데 러시아 반정부 성향 언론 ‘노바야가제타’도 주목할 만한 후보로 꼽힌다. 한편 올해 노벨상은 6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7일 물리학상, 8일 화학상, 10일 평화상, 13일 경제학상 순으로 발표된다. 문학상은 관례에 따라 일정이 미리 공개되지 않았지만 9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