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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이 싫어할 여자축구 대표팀 만든 포팔 “우리 선수들이 울고만 있어요”

    탈레반이 싫어할 여자축구 대표팀 만든 포팔 “우리 선수들이 울고만 있어요”

    그녀는 탈레반이 집권했던 시절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아프가니스탄 여자축구 대표팀의 주장이었다. 현재 덴마크에 머물고 있는 칼리다 포팔(34 사진)은 “잠도 이룰 수 없고, 울기만 할 뿐이며 무력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5월부터 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더니 불과 100일 만에, 그것도 지난 주말 속절없이 수도 카불마저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간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서다. 포팔은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모든 꿈이 사라졌다. 그저 악몽인 것 같다”고 진저리를 쳤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선수들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데 그네들은 울면서 자신들이 버려져 밖에도 나가지 못하며 집안에만 갇혀 지낸다고 했다. 그들은 겁을 먹고 있다. 선수들은 동영상을 보내오는데 ‘내가 반대했던 이들이 바로 문 밖에 와 있다. 숨조차 쉴 수가 없다. 너무 겁이 나고 어떤 보호 수단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쇼가 끝났다고 느낀다.” 포팔은 대표팀의 트위터 계정도 닫아버렸다고 전했다. 전에 몸담았던 선수나 지금 몸담고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아울러 선수들에게 소셜미디어 이용 내역을 지우라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예전에) 여성과 소녀들에게 당당히 맞서 일어나 용감해지라고 격려했는데 지금은 사진을 내리고, 소셜미디어를 닫고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우리 선수들에게 말하고 있다. 퍽이나 고통스럽다. 선수들은 여성의 인권을 부르짖는 데 앞장서왔다. 해서 지금 그들의 목숨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포팔은 2007년 첫 대표팀을 만들 때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여자축구 지도자로 떠오르면서 목숨을 위협받아 2011년 조국을 떠난 뒤 2016년에야 덴마크에 정착했다. 여전히 망명 신청 중이다. 탈레반이 집권하던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소녀들은 어떤 형태의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여성들은 남자 친척이 동반하지 않는 한 집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취업할 수도 없었고, 얼굴은 물론 온몸을 가리는 검정색 옷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이슬람 통치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공개된 곳에서 채찍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들이 인권과 자유를 위해 싸웠는데 우리들이 홀로 버려질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얼굴을 드러냈는데 이제 그들의 신원이 노출됐다. 우리가 듣는 말은 ‘우리 국익이 아프가니스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여권활동가들, 선수들, 기자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연례 컨퍼런스 평등과 포용에 연사로 등장했으며 현재 아프간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도움을 청하고 있다. 2007년 대표팀을 만든 뒤에도 탈레반 무장세력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용히 훈련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축구야말로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다음 세대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팀의 첫 경기는 카불의 가지 스타디움에서 국제보안협력군 팀과 맞붙었는데 5-0으로 이겼다. 그 뒤 여러 국제 대회에 나섰다. 그녀는 2017년 BBC 인터뷰를 통해 “국가를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감동적이었다. 우리 스스로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는 점에 먹먹해 모두 울었다”고 돌아봤다. 4년이 흘렀는데 그녀는 이제 FIFA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대표팀을 비롯해 아프간에서 위험에 빠진 이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신원이 노출된 여자선수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세요. 우리 선수들을 안전하게 도와달라.”
  • 정권은 내줘도 돈은 못줘…美, 수십억달러 아프간 정부자금 동결

    정권은 내줘도 돈은 못줘…美, 수십억달러 아프간 정부자금 동결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장악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의 수십억 달러 자금에 동결 조치를 취했다. 탈레반이 새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이전 정부의 자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17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15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미국 은행에 있는 아프간 정부의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동결했다. W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의 접근을 막기 위해 이러한 조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이 조치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 및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주도로 시행됐으며, 백악관과 국무부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프간 중앙은행은 4월 기준으로 94억 달러(약 11조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수십억 달러가 미국 내에 있는데 정확한 규모는 불분명한 상태다. 탈레반이 이미 9·11 테러에 따라 미국의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동결조치를 위한 별도의 법적 근거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이 아프간군 지원을 위해 보내는 연간 30억 달러(약 3조 5000억원) 규모의 자금도 끊길 가능성이 있다고 WP는 전했다. 이는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데 아프간군이 인권과 여성의 권리 보호에 헌신하는 민간 정부에 통솔되고 있다는 것을 미 국방장관이 의회에 입증할 때만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돼 있다. 미국의 이번 자금 제한 조치를 두고 올바른 결정이라는 평가와 향후 아프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재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소벨은 자금 제한이 탈레반에 대한 지렛대로 이용될 수 있다며 타당한 조치라고 평했다. 반면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마크 웨이스브로트 국장은 “미국 정부가 아프간 중앙은행의 자금을 틀어쥐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탈레반에게 미국 정부가 탈레반과 아프간 경제를 파괴하고 싶어한다는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은 경제적으로 빈국에 속한다. 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의 존 솝코 감사관에 따르면 아프간 예산 중 미국 등의 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80%에 달한다.
  • 탈레반 “여성의 권리 존중, 이슬람법 안에서” 연일 달라졌다는데

    탈레반 “여성의 권리 존중, 이슬람법 안에서” 연일 달라졌다는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국을 장악한 뒤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물론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란 단서를 달았다. 20년 전 집권 시절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여성 억압과 이슬람법에 따른 엄격한 사회 통제를 바꾸겠다면서도 조건을 단 것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17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은 종료됐다고 선언한 뒤 사면령이 선포된 만큼 이전 정부나 외국 군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존중해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면서 여성의 정부 참여를 독려했다. 다만 의복 규율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사회활동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용납할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아프간 내 민간 언론 활동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단 기자들은 국가의 가치에 반해서는 안 된다며 통제의 여지를 남겼다. 탈레반 대변인이 공개 석상에서 얼굴을 공개한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자히드 대변인은 국제 매체들의 질문도 받아 답변하는 등 분명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집권했을 때처럼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1996∼2001년 집권한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춤,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벌도 허용됐다. 특히 여성은 취업 및 각종 사회활동이 제약됐고 10세 이상 소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막았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까지 착용해야 했다. 탈레반의 변화 예고에도 여성의 얼굴이나 모발을 가리는 히잡 등의 착용은 의무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탈레반 정치국의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이날 외신과 인터뷰를 통해 “부르카만이 히잡은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히잡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탈레반이 적극적으로 정부 구성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며칠 안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며, 알카에다나 다른 극단주의자들의 온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아프가니스탄의 영토가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우리는 내부나 외부의 어떤 적도 원치 않는다”고 답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려 애를 썼고, 보안군의 멤버였거나 외국 세력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사면을 약속해 아프간인들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 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BBC의 지하디스트 전문기자인 미나 알라미는 탈레반이 전날 학교에 가는 소녀들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소녀들의 교육 기회가 계속 보장될 것임을 선전했다고 전했다. 또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할 소녀들의 명단을 작성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기사들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그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탈레반은 여성의 복장 규율과 직업 접근 같은 자유가 어느 정도로 허용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좀더 나중에 나올 수 있는데, 아프간인을 안심시키고 자신들이 훨씬 폭넓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초기 단계에서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치하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이 번영할 수 있거나 적어도 안전하고 안정적이 나라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것이야 말로 이슬람 통치의 명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자신들이 얼마나 신축적이며 실용적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 [씨줄날줄] 1975 사이공 vs 2021 카불/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1975 사이공 vs 2021 카불/임병선 논설위원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호찌민) 공식 함락 하루 전인 1975년 4월 29일 미국대사관 옥상 위의 사람들이 헬리콥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미국은 ‘잦은 바람 작전’ 아래 이틀 동안 자국민 1300여명, 베트남인과 제3국적 등 5500여명을 남중국해의 미군 함정으로 이동시켰다. 46년이 흐른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미국대사관 상공에 헬리콥터가 선회했다. 탈레반에 카불이 떨어지는 것이 시간문제가 되자 36시간 안에 대사관 직원 등을 피신시키려고 빈번하게 날아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군 철수 3개월 만에 속절없이 무너지자 1975년 사이공 함락과 닮았다며 미국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베트남 인민군이 20년 가까이 프랑스와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 정부와 전쟁을 벌여 사이공을 함락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민족해방운동을 펼친 호찌민이 1945년 베트남을 건국하고 프랑스 식민세력 등과 투쟁해 북부쪽에서 승리하자 1954년 미국 등 서방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남베트남이 탄생했다. 남베트남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1961년 참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1973년부터 철군을 시작했고 사이공 함락까지 2년이 걸렸다. 아프간에서도 미군은 20년 싸웠으나 미군 철수 3개월 만에 탈레반에 카불을 넘겼다. 소련을 몰아내고 1996년 집권했으나,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라덴을 내놓지 않아 2001년 미국에 의해 쫓겨났던 탈레반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993조원을 탕진하고 5만 8000명의 미국인이, 아프간 전쟁에서는 2500조원을 쏟아붓고 2400명의 미국인이 희생됐다. 미국 공화당 등 우파는 사이공 함락과 카불 함락의 닮은 점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결정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실행했다. 바이든은 전임자 오판까지 책임지는 것인가. 영국 노팅엄대학 크리스토퍼 펠프스 부교수는 “리더십의 손실로, 어쩌면 수치로 보일 것이다. 공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소명”이라고 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호크 다운’에는 미군 헬기를 격추한 반군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불의 미군기지에 발 묶인 블랙호크에 탈레반 전사가 깃발을 꽂고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을 보자니, 필사의 탈주를 시도하는 아프간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제 “미국의 국익과 관계없는 다른 나라 분쟁에 주둔하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미국 대외 정책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 탈레반 장악한 아프간, 끝내 출전 불발

    탈레반 장악한 아프간, 끝내 출전 불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도쿄패럴림픽 출전이 불발됐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선수단 아리안 사디키 단장은 17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서 진행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도쿄패럴림픽 출전 예정이던 선수 2명이 수도 카불에서 나오지 못했다”며 “우리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왼쪽·23)와 육상 선수 호사인 라소울리(오른쪽·24)는 16일 카불을 떠나 대회 개막을 일주일 앞둔 17일 도쿄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으로 공항이 마비돼 출국길에 오르지 못했다. 사디키 단장은 “카불 물가가 폭등해 항공편을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최초 여성 패럴림픽 선수가 되려던 쿠다다디의 꿈도 무너졌다. 그는 앞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인터뷰에서 “가족의 희생과 지원으로 패럴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며 “장애를 가진 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디키 단장은 “여성의 패럴림픽 참가 등 과거 탈레반 정권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현실로 다가와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며 “과거로 회귀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1996년 애틀랜타패럴림픽에 처음 선수단을 파견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무너진 뒤인 2004년 아테네 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계 패럴림픽에 출전해왔다.
  • 美 조기 테이퍼링·수출 먹구름에… 1180원 턱밑까지 간 환율

    美 조기 테이퍼링·수출 먹구름에… 1180원 턱밑까지 간 환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조기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전망, 반도체발(發) 수출 부진 우려 등으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70원대로 올라섰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3원 오른 1176.3원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 15일(1179.0원)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3.0원 내린 1166.0원으로 출발했지만, 곧바로 상승 전환되면서 장중 1179.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1180원대까지 근접한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16일 환율은 1139.5원이었다. 한 달 사이 36.8원 치솟은 것이다. 환율 급등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 확대로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진 영향이다. 게다가 최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 소식에 따른 투자 불안과 연준의 조기 테이퍼링 전망 등도 안전자산인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까지 겹치면서 외국인이 우리 금융시장을 떠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받았다. 지난주 코스피 시장에서 7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우며 환율 급등세를 이끌었던 외국인은 이날도 417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 간 것이다. 코스피는 외국인의 매도세에 전 거래일보다 28.20포인트(0.89%) 내린 3143.09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8거래일째 하락했다. 이날 코스닥지수도 전장보다 29.73포인트(2.86%) 내린 1011.05에 마감됐다. 이는 지난 6월 21일(1010.9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미 연준의 조기 테이퍼링 전망,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신흥국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수출 위주의 우리 경제에 나쁜 소식인 반도체 업황 부진 전망까지 겹치면서 원화가 더 약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 수색·폭행·히잡 강요… 공포가 시작됐다

    수색·폭행·히잡 강요… 공포가 시작됐다

    탈레반 “생명 훼손 없을 것” 강조했지만시내 곳곳에 검문소 세우고 무장 순찰“외출 못할라”… 온몸 감싸는 부르카 품귀“조직원과 결혼시킬 女 명단 작성” 보도도“나는 여기 앉아서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찾아서 죽이겠지만, 그래도 내 가족을 떠날 순 없다.” 아프가니스탄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시장인 27세의 자리파 가파리 시장은 17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3년 전 마이단샤르시 시장으로 당선된 그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가던 3주 전만 해도 다른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독려하던 가파리였지만, 희망과 용기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탈레반의 진격 앞에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대통령은 나몰라라 도망쳤다. 여성 인권을 멸시하는 탈레반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공포의 시간이 돌연 시작됐다. 가파리처럼, 탈레반이 20년 만에 나라를 장악한 뒤 아프간인들은 숨죽인 채 공포와 마주하고 있다. 전날 탈레반은 “누구든지 생명과 재산, 존엄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이날 전국에 사면령까지 내리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말뿐임이 속속 드러났다. 곳곳에 검문소를 세웠고, 미군이 버린 차에 탈레반이 깃발을 달고 마을을 순찰하자 텅 빈 거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와 일하거나 이슬람 교리에 맞지 않은 자료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색출하기 위한 강압적인 수색, 폭행 등이 벌써 자행되는 등 공포정치가 빠르게 본격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탈레반 조직원들이 수도인 카불 거리를 장악하고 정부 관계자 집과 사무실, 언론사를 수색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이 퍼졌다”고 전했다. 카불 여행 중 이번 사태를 맞이한 아프간·캐나다 이중 국적자 로지나는 탈레반이 자신과 남편이 머무는 호텔 객실까지 쫓아와 짐을 뒤지고 둘의 관계를 캐물은 뒤 여권까지 확인했다고 WSJ에 밝혔다. 혼인증명서를 요구하는 탈레반 조직원을 상대로 남편이 “독실한 이슬람 신자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탈레반은 남편을 폭행했다. 1996~2001년 집권하는 동안 12세 이상 여자에 대한 교육을 금지했던 탈레반의 정책을 떠올린 아프간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입증할 문서인 학위 증명서와 각종 자료를 불태워 없앴다. 탈레반의 가택 침입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가운데 관련 서류가 자신들을 처벌할 빌미가 될까 두려워서다.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아파트 입구에 모인 탈레반 조직원들을 보고 정부에서 일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를 모두 소각했지만, 대학을 다녔던 기록은 차마 태우지 못했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카불 서부지역의 한 모스크에선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부르카나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방송을 했다. 전신을 가리고 눈까지 망사로 가리게 하는 여성 의복인 부르카를 입고 남자 친척 없이 외출이 금지되는 20년 전 세상으로 회귀할 우려 속에서 부르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했다. 그나마 부르카가 없으면 아예 외출도 못 할까 봐 구하려는 것이다. 카불 상점가에서 탈레반 조직원들이 여성이 모델인 광고사진을 떼어 내거나 페인트로 덧칠하기도 했다. 프랑스24 방송은 “탈레반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조직원들과 결혼시킬 12~45세 여성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보고가 여러 건 있다”고 전했다.
  • 아프간 마지막 한국인 1명, 대사 등 3명과 철수 완료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교민 1명이 한국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17일 안전하게 철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지 체류 중인 교민 A씨의 출국을 설득하기 위해 잔류했던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를 포함한 공관원 3명은 이날 A씨와 함께 중동 제3국으로 이동했다. 지난 15일 현지 공관을 잠정 폐쇄하고 대사관 직원 대부분을 제3국으로 철수시킨 뒤 이틀 만에 모두 빠져나온 것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주카타르 대사관 내에서 주아프간 대사관 업무를 임시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모하메드 카타르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대사관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외교적 편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모하메드 장관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 밀려드는 아프간 난민에… EU, 다시 분열하나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의 공포에 떠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면서 인접국들도 긴장하고 있다. 아프간 내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는 만큼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표류하는 난민이 폭증하고 있어서다.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아프간 난민 수용을 두고 유럽 각국의 분열상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에선 탈레반의 수도 카불 장악 이전부터 수십만명이 인근 국가로 피난했다. 대다수가 국경을 맞댄 이란, 파키스탄 등으로 향했는데 파키스탄에 있는 아프간인만 이미 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부는 이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를 마련했지만, 상황이 안정되면 이들이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 사태를 겪은 유럽 국가들은 다시 난민 위기에 처할 것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 내에서도 강경한 입장인 오스트리아는 탈레반의 장악에도 망명 신청이 거부된 아프간인을 추방하는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시리아 난민 수백만명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도 추가 유입될 아프간 난민에 우려를 드러냈다. 반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등은 아프간인에 대한 강제추방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프랑스 등과 사태를 논의하고, 현지 구조 작전과 함께 이웃 국가들에 대한 지원 계획도 조율할 것이라 밝혔다. 알바니아, 코소보도 미국 입국을 원하는 정치 난민들을 임시로 받아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알바니아의 에디 라마 총리는 “현지에 남은 사람들을 보며 절망했다. 독재 정권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안다”며 “최소한 그들에게 다시 숨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다만 EU 27개 회원국이 아직 공동 난민 보호정책 등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아프간 난민이 계속 유입된다면 이들 국가의 결속력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 뒤늦게 목소리 낸 유엔 “아프간, 통합정부 수립을”

    뒤늦게 목소리 낸 유엔 “아프간, 통합정부 수립을”

    아프가니스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슬람 무장반군 탈레반에 장악되자 국제사회는 무자비한 인권탄압의 재연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지둥 ‘사후약방문’을 쓰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아프간 사태 관련 비상대책회의를 가진 뒤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안보리는 이를 통해 “이사국들은 모든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협상을 통한 포괄적이고 대표성을 갖춘 새 통합정부의 수립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아프간이 또다시 테러리스트 단체의 은신처나 무대로 이용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모든 당사자, 특히 탈레반에 생명 보호와 인도주의 요건의 충족을 위해 최대한 자중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암흑기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아프간 사태를 논의할 G7 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존슨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두 나라가 아프간 관련 결의안 도출에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다.
  • 美 ‘아프간 손절’에 불안한 동맹… 中 “다음은 대만” 흔들기

    美 ‘아프간 손절’에 불안한 동맹… 中 “다음은 대만” 흔들기

    대만 “교훈 삼아야” vs “우리는 달라” 시끌中언론 “美, 언제라도 대만 버릴 것” 공세우크라 활동가 “홀로 싸운다는 깨달음 줘” “한국, 미국 도움 없이 스스로 北 방어 못해”美언론인, 주한미군 관련 트윗 논란도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에 ‘국익 없는 곳에 무기한 주둔은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 미국에 안보를 기대는 민주주의 진영에서 불안감이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방위비 분담금을 빌미로 철군을 단행하지는 않겠지만, 고립주의 외교 기조에 힘을 싣는 바이든의 태도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라는 명제에는 균열이 생겼다. 대만에선 친중 진영을 중심으로 ‘다음은 우리 차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대만과 아프간은 다르다’는 반박과 충돌했다. 17일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친중 성향인 자오사오캉 BCC방송 회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아프간에서 미국이 보여 준 태도를 교훈 삼아 대만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며 차이잉원 총통(대통령)에게 “(중국과의) 전쟁을 결정했다면 징병제를 복원하고 이스라엘을 참고해 엄격한 훈련방식과 첨단의 무기 체계를 도입하라”고 지적했다. 이에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아프간이 이렇게 된 것은 내부 정세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라며 “대만을 침략하려는 어떠한 무력에도 스스로 대항할 저력이 있다”고 반박했다. 중국 매체들도 “대만은 아프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공세를 폈다. 환구시보는 “아프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시킨 것은 1975년 베트남에서 미국이 동맹이던 남베트남을 떠나 사이공이 무너진 일을 연상시킨다”며 “미군은 2019년 시리아에서도 (미국을 도와 ‘테러와의 전쟁’을 대신 수행한) 쿠르드족을 버리고 철군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아프간, 내일은 대만?’이라는 문구가 화제가 됐다”고 비꼬았다. 유럽에서도 아프간 철군이 미국에 대한 서방 동맹국들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활동가인 막심 에리스타비는 “(이번 사태는) 우리가 자유를 위한 전선에 정말 홀로 서 있다”는 끔찍한 깨달음을 준다고 했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핵심축(린치핀)으로 2만 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은 아프간과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미군 운용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CNN의 국가안보 전문 분석가인 피터 베르겐은 지난달 칼럼에서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맞서는 데는 주한미군의 단 10%인 2500명이면 된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폭스뉴스 해설가인 마크 티센은 “북한군은 탈레반보다 더 발달해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트윗을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 바이든 “국익 없는 전쟁 안 해”…셈법 더 복잡해진 美 동맹국

    바이든 “국익 없는 전쟁 안 해”…셈법 더 복잡해진 美 동맹국

    “탈레반 예상 밖 빠른 진군” 오판 인정“인권 중심 외교·인도적 지원 이어 갈 것”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로 인권 및 민주주의를 저버렸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대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프간인 스스로 버린 국가를 위해 미군이 피를 흘려야 하는가’라고 항변했다. 현지 언론은 철군 재고론을 일축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 없다고 밀어붙인 바이든의 연설 어조가 ‘도전적’(defiant)이었다고 평가했다. 동맹복원을 약속했던 바이든이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국익에 보탬이 안 되는’ 세계경찰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또렷하게 내보이면서 미국의 안보우산 밑에 있는 나라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이든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19분간의 연설에서 “솔직하게 말하겠다. 우리의 예상보다 (탈레반의 진군이) 더 빠르게 진행됐다”며 탈레반의 힘을 오판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은 국외로 도망쳤고 아프간군은 싸우지도 않고 무너졌다”고 책임을 돌리고 “(이러한데) 미국의 아들·딸들을 앞으로 몇 세대나 더 아프간 내전에 투입하려 하냐”고 따져 물었다. 지난 6~7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에게 회담에서, 또 전화로 부패 척결, 정치적 단합, 탈레반과의 정치적 협의 등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점도 밝혔다. 바이든은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서 무기한 머물며 싸우는 실수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맹국들조차 아프간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바닥에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데 대해 “인권 중심의 외교정책이나 인도적 지원”은 이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망명자를 위해 5억 달러(약 5880억원) 규모의 지원계획도 밝혔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아프간에 수십억 달러의 지원을 계속하길 바랄 것”이라며 외교적으로도 옳은 결정임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미군의 목표는 “아프간 국가 재건이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위협을 막는 것”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며 자국의 가장 긴 ‘20년 전쟁’을 끝내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아프간 미군 철수 책임은 자신에게 있고 “비난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날 바이든이 탈레반과 미군 철군 협상을 한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임을 명시하자, 트럼프가 “아프간 실패를 (내게) 미뤘다. 빅라이(Big Lie)”라고 반격하는 등 비방전도 벌어졌다.
  • “제2의 9·11 테러 터질수도” 우려에…탈레반 “우리 달라졌어요”[이슈픽]

    “제2의 9·11 테러 터질수도” 우려에…탈레반 “우리 달라졌어요”[이슈픽]

    탈레반, 여성 진행 TV프로그램 출연톨로뉴스 “역사 다시 썼다” 자축회의적 시선도 만만찮아“제2의 9·11 테러 터질수도” 초긴장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개월 만에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다시 넘어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9·11 테러 20주기 전 완수를 목표로 자국군 철군을 추진했으며, 지난 5월부터 실제 철군을 실행했다. 하지만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탈레반이 지난 15일 카불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았다. 국제 사회는 아프간이 다시 테러 세력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가운데, 탈레반은 TV 뉴스채널에서 여성 앵커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17일 뉴욕타임스(NYT)와 스푸트니크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프간 뉴스채널인 톨로뉴스에 여성 앵커 베헤슈타 아르간드가 탈레반 미디어팀 소속 간부 몰로이 압둘하크 헤마드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아르간드는 헤마드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상황에 관해 물었고, 헤마드는 “아프간의 진정한 통치자가 탈레반이라는 점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 등 전국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아프간 정부는 항복을 선언했다. 탈레반은 이후 카불의 주요 방송사 등 언론사를 모두 손에 넣었기 때문에 이날 영상은 탈레반의 의도에 따라 방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톨로뉴스를 소유한 모비그룹의 대표인 사드 모흐세니는 트위터를 통해 이 사실을 전하며 “톨로뉴스와 탈레반이 역사를 다시 썼다”며 “2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 할 일”이라고 자축했다.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에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을 앞세워 여성 인권을 가혹하게 제한했다. 당시 여성은 취업, 사회 활동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외출도 제한됐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의 항복 선언 후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며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탈레반 대변인은 “히잡(이슬람 여성의 머리와 목 등을 가리는 스카프)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 및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성 혼자서 집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탈레반은 전국에 사면령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새 정부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탈레반의 변화는 지난해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장에서도 조금씩 감지됐다.“제2의 9·11 테러 터질수도”…탈레반 부활에 초긴장 다만 탈레반의 이런 ‘이미지 메이킹’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제로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자마자 온라인에서는 여성이 등장한 외벽 광고사진이 페인트로 지워지는 사진이 올라와 우려를 낳았다. 서구에서는 ‘제2의 9·11 테러’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탈레반의 부활이 급진 이슬람 세력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영국 의회 국방특별위원회장인 토비아스 엘우드 보수당 하원의원은 16일(현지시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너무나 애석하지만 9·11 같은 서구에 대한 또 다른 대대적 공격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엘우드 의원은 “테러리스트 집단은 지난 20년이 얼머나 헛된 것이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아프간에서의 우리의 시기에 종지부를 찍길 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처음 아프간에 들어갔을 때 패배시키려 한 적에게 이 나라를 선물로 준 것도 모자라 테러집단이 다시 재편성돼 그들의 안식처로 돌아오는 광경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 역시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실패한 국가들이 이런 유형(테러 집단)의 사람들을 위한 온상이 되는 상황이 굉장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알카에다가 아마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이런 식의 온상을 원할 것”이라며 “세계 곳곳의 실패한 국가가 불안을 야기하고 이는 우리와 국익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은신처를 미국과 파트너들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는 데 쓸 것” 알카에다는 미국에서 2001년 9월 11일 테러를 일으킨 과격 이슬람 무장 단체다. 알카에다는 9·11 테러 당시 항공기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 충돌시켰다. 약 3000명이 사망한 미국과 서구 역사상 최악의 테러 참사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존 볼턴은 NPR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상황에 대해 “아프간을 15세기로 되돌려 놨다”며 “탈레반이 이전처럼 알카에다, ISIS(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같은 테러집단에 은신처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은신처를 미국과 파트너들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는 데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2001년 9월 11일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앞서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를 돕는 탈레반 정권을 박멸하겠다며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지만 작전을 끝맺지 못하고 아프간에서 20년 가까이 전쟁을 이어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20주기인 올해 9월 11일까지 아프간 철군을 완료해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끝마치겠다고 약속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주둔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다시 기세를 폈다. 이들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아프간 이슬람 수장국’ 설립을 선포했다.
  • 아프간 대통령궁 점령 탈레반, 악명높은 관타나모에 6년 갇혔다

    아프간 대통령궁 점령 탈레반, 악명높은 관타나모에 6년 갇혔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지난 15일 기념사진을 찍은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악명높은 미 해군 기지인 관타나모의 수용소에서 6년간 수감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17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도피한 대통령궁에서 자축 점령 사진을 찍은 탈레반 무장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골람 루하니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됐다 2007년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기록에 따르면 루하니는 보초병에게 “우리가 밖에 나가면 너를 잡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승리 연설에서 루하니는 자신이 관타나모에서 거의 8년간 있었다고 말했지만, 정확하게는 6년간 수감됐다. 쿠바 영토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는 9·11 테러가 일어나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중에 생포한 테러리스트를 수용하기 위해 설립됐고, 인권 침해로 악명높은 곳이다. 루하니는 9·11이후 미국이 처음으로 체포한 탈레반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2년 1월 관타나모 수용소가 문을 연 첫날 루하니는 이 곳에 갇혔다. 그는 2007년 12월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됐다. 미 당국은 루하니가 풀려나면 미국에 보복할 것이라 협박했다고 전했다. 그가 풀려나기 전 미 국방부 관리는 루하니가 민병대에 가족이 있다면서 여기에 합류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에 반격하는데 가담할 것이라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루하니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수감 기간 내내 보초병과 교도관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05년 4월 보초병에게 수용소에서 풀려나면 너를 잡겠다고 협박한 적은 있다.루하니는 탈레반의 정보부에서 일했으며, 2001년 12월 탈레반과 미국인과의 만남 도중에 체포됐다. 관타나모에서의 수감 기간 내내 루하니는 자신의 탈레반에서의 역할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미국이 그에 대해 수집한 증거를 부인했다. 루하니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1990년대에 군 복무를 해야만 했으며, 전투가 두려웠고 전쟁터에서 죽기 싫어 행정병을 자원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미 국방부에 자신이 정보국 소속이 아니라, 지역 경찰에 있었으며 풀뽑기나 청소와 같은 잡일을 했다고 말했다. 루하니는 자신이 탈레반에서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고향에서 가족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고 강조했다. 9·11 전에는 알 카에다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몰고 왔다며 비난했다고 미 국방부 수감 기록에는 되어 있다. 루하니는 또 9·11 테러가 일어나자 탈레반을 그만두고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아는 사람이 탈레반과 미국인과의 만남에서 통역을 해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된 탈레반과 미국인의 회담에 대해 “나는 우호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 통역하러 나갔을 뿐이며 내가 미국편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관타나모에서 루하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아픈 아버지 대신 가게를 돌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미 언론은 루하니 외에도 관타나모에 초기 수감됐던 탈레반들의 행적을 좇고 있다. 루하니의 전직 변호사는 그가 아프간으로 돌아가자마자 연락을 끊었다고 털어놓았다.
  • “아프간 장악한 탈레반…그런데 명찰에 한글 이름이 있네요”[이슈픽]

    “아프간 장악한 탈레반…그런데 명찰에 한글 이름이 있네요”[이슈픽]

    韓 ‘개구리 전투복’ 입은 탈레반보따리상, 탈레반에 납품 추정국방부, 전투복 불법 유출 근절에도온라인에서는 아직도 군복 매매 성행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 이를 보도한 외신 사진에서 탈레반 대원들이 한국군 구형 전투복을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명찰까지 그대로였다. 17일 영국 BBC, 프랑스 르피가로, 독일 슈피겔 등 외신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현황을 전했다. 이 가운데 다수의 탈레반 대원이 한국군 전투복을 입고 행군을 했다. 야전상의엔 병장 계급장이 선명하고 일부 사진에선 한국 육군 부대 마크도 포착됐다. 한국어로 된 명찰도 눈에 띈다. 프랑스 매체 ‘르 피가로’는 “무슬림 나이지리아인·파키스탄인으로 구성된 보따리상이 한국의 구제 의류 도매상에서 대량 매수한 구형 국군 전투복을 아프간 탈레반에 납품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탈레반 입장에서도 대량으로 풀리는 한국군 전투복이 가장 손쉬운 선택지일 것”이라며 “탈레반이 한국군 전투복으로 복장 통일성을 유지하며 정규군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여전히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구형 전투복’ 판매 앞서 국방부는 전투복 유출 논란에 지난 3월 ‘불용 군복류 불법 유출 근절을 위한 민·관·군 협의회’를 열었다. 환경부·경찰청·관세청을 비롯해 중고거래 플랫폼업체, 중고의류 수출업체 등이 참여해 전투복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단속반을 운영하고,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 전투복이 팔리면 국방부에 알리기로 한 것 등이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쇼핑몰 등에선 전투복 등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군 군복을 입은 북한군이 훈련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같은 과정으로 ‘개구리 전투복’이 탈레반까지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누가 보면 한국이 탈레반군 지원한 줄 알겠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너무 황당하네” 등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군복 판매·착용 금지,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한국군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디지털 전투복’을 도입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여간 혼용 기간을 마쳤다. 2014년 8월부터는 신형 전투복만 착용토록 했다. ‘군복단속법’은 유사군복의 판매·착용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형 전투복 도입에 따라 ‘개구리 전투복’은 현재 군복단속법에 따른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한편 2001년 시작된 아프간전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개월 만에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다시 넘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14일 20년 묵은 아프간전을 종식하겠다며 미군 철수를 공식화했고,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탈레반이 지난 15일 카불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았다. 미국에선 미군이 철수해도 친미 정권인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계속 맞서거나 여의치 못하면 영토를 분점하는 시나리오는 물론 최악의 경우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1년 6개월은 버틸 것이라는 관측을 했지만 예상보다 그 시기가 빨라졌다.
  • “소총 쥔 채 놀이동산 범퍼카 타는 탈레반”…필사의 탈출과 ‘대조적’

    “소총 쥔 채 놀이동산 범퍼카 타는 탈레반”…필사의 탈출과 ‘대조적’

    아프간 장악해 기쁜 탈레반범퍼카·회전목마 타며 자축 미군·국제동맹군이 철수한 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한 놀이동산에서 범퍼카·회전목마를 타고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들은 소총을 손에 쥔 채 범퍼카를 타며 웃거나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했다. 17일 트위터 등 SNS(소셜미디어)에는 카불의 한 놀이동산에서 탈레반 병사 한 무리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올라왔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탈레반이 원했던건 놀이동산에서 공짜로 놀이기구 타는 거였냐”는 조롱의 댓글을 달았다. 해당 동영상은 카불 주재 로이터통신 기자 하미드 샬리지가 올렸으나, 촬영된 시점과 놀이동산의 정확한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여러 외신은 “탈레반의 폭정과 탄압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이 카불을 빠져나가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인디아투데이 등의 매체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다음 날 병사들이 카불의 놀이동산에서 즐기는 모습”이라고 보도했다. 필사의 탈출…미 수송기에 포개져 앉은 아프간인 640명 이 가운데 탈레반에 넘어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아프간인들이 대형수송기에 발 디딜 틈 없이 앉은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원은 전날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인들을 태우고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까지 운항한 미공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 내부를 촬영한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사진을 보면 아프간 민간인인 수백 명이 수송기 내부를 꽉 채워 앉아있다. 당시 탑승 인원은 애초 800명으로 알려졌다가 추후 640명으로 확인됐다. C-17 수송기는 최대 77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대형수송기이긴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이 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제조사인 보잉사가 제시한 공식 최대 탑승 인원은 134명이다.미군 관계자는 “아프간인들이 반쯤 열린 수송기 후방 적재문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면서 “강제로 내리게 하는 대신 데리고 가기로 승무원들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2001년 시작된 아프간전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개월 만에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다시 넘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14일 20년 묵은 아프간전을 종식하겠다며 미군 철수를 공식화했고,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탈레반이 지난 15일 카불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았다. 미국에선 미군이 철수해도 친미 정권인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계속 맞서거나 여의치 못하면 영토를 분점하는 시나리오는 물론 최악의 경우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1년 6개월은 버틸 것이라는 관측을 했지만 예상보다 그 시기가 빨라졌다.
  • “한국, 주한미군 철수땐 아프간 꼴”…WP 칼럼니스트의 한마디

    “한국, 주한미군 철수땐 아프간 꼴”…WP 칼럼니스트의 한마디

    보수 성향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이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점령한 것과 관련해 “만약 한국이 이처럼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금세 붕괴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인물이다. 티센은 1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6·25 전쟁 이후 모든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면, 한반도는 북한의 지배 하에 빠르게 통일됐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글엔 티센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이 달렸다. 트위터에는 “한국군은 강하고 우리(미군)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한국은 잘 훈련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그러나 티센은 “한국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며 “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면 왜 우리가 거기에 있나? 그럼 일본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자는 말인가”라고 했다. 그는 아프간 철군을 결정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며 “바이든이 아프간에 한 일을 (과거에) 트루먼이 독일, 일본, 한국에서 했다면 오늘 세계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해리 S. 트루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독일 등 해외에 미군을 주둔시킨 바 있다.美국무부 “아프간 상황 바뀌어…특사 통해 탈레반 관여” 미 국무부가 자국군 철수 이후 혼돈을 겪는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두고 특사를 통해 탈레반과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CNN에 따르면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아프간 상황과 관련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본국을 떠나고 탈레반이 계속 카불을 잠식하면서 상황은 현저히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미군 철군 이후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15일 수도 카불에 진입해 대통령궁까지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한 상황이다.그간 아프간 정부를 지도하던 가니 대통령은 본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아프간 정부 붕괴가 임박해지고 가니 대통령이 도망쳤으며, 탈레반이 카불을 잠식했다“라며 ”방향은 명백히 바뀌었다“라고 했다. 국제 사회와 공조한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에서, 폭력 중단으로 초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프라이스 대변인은 현재 자국의 아프간 상황 대응을 ”카불의 질서를 유지하고, 매우 중요하게는 탈레반이 우리 국민이나 우리 작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군 당국이 이를 위해 탈레반과 계속 접촉 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는 현재 잘메이 할릴자드 특사를 통해 탈레반 및 아프간 정부 당국자들과 도하에서 협상을 이어간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9·11 테러 20주기 전 완수를 목표로 자국군 철군을 추진했으며, 지난 5월부터 실제 철군을 실행했다. 국제 사회는 이에 따라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을 비롯한 테러 세력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며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 아프간 출신 앵커 생방송 중 전화 건 탈레반…‘사지절단형’ 부활 가능성

    아프간 출신 앵커 생방송 중 전화 건 탈레반…‘사지절단형’ 부활 가능성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사실상 정권을 탈환한 가운데 영국 BBC 생방송 중 탈레반의 대변인이 아프간 출신 앵커에게 전화를 걸어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상황은 지난 15일(현지시간) BBC의 세계뉴스 전문 채널 BBC월드의 앵커 얄다 하킴이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벌어졌다. 이때 탈레반은 대부분의 도시를 장악하고 수도 카불만을 남겨놓은 채 접근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하킴은 이날 생방송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정세와 향후 전망에 대해 한 전문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킴은 전문가의 말을 잠시 끊고서 “죄송하지만 여기까지 해야겠다. 탈레반 대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을 수하일 샤힌이라고 밝힌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더라도 평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대변인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카불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국민 모두의 재산과 삶,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에게도 복수는 없다”면서 “우리는 이 나라 국민들의 종복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탈레반은) 아직 카불에 입성하지 않았다”라며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극단적 이슬람 사회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았다. 앵커 하킴이 범죄자에 대한 투석형, 사지절단형, 공개 교수형을 다시 도입할 것인지 묻자 대변인은 “지금 당장은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법원의 판사들과 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 “판사는 향후 정부의 법에 따라 임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샤리아’법이 부활할 것이라고 확인하면서 “당연히 우리는 이슬람 정부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샤리아’는 이슬람 율법으로 과거 5년 동안의 통치기간 중 탈레반은 샤리아법을 극단적으로 적용한 바 있다. 탈레반 통치 당시 음악이나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가혹한 형벌도 허용됐다. 또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을 받거나 노동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아 극단적인 샤리아법을 부활시킬까봐 카불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다만 대변인은 탈레반의 정책이 이제 바뀌었고, 여성과 소녀들이 계속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밝혔다.이날 탈레반 대변인과의 인터뷰는 약 30분간 진행됐다. 이후 밝혀진 상황에 따르면 하킴이 다른 인터뷰를 하는 도중 하킴의 개인 휴대전화로 탈레반 대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킴은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렸고, 즉석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별도의 방송 장비가 동원되지 않았고, 휴대전화 스피커폰 기능으로 방송이 이뤄졌다. 방송 책임자는 “이런 상황은 방송 인생 중 처음 겪는 일”이라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하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1986년 호주로 이주해 BBC월드뉴스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17일 알자지라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아프간 전 총리는 이날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등 아프간 인사들과 함께 카타르 도하로 이동, 그곳에서 탈레반 대표단과 만난다.
  • 아프간 여기자가 울먹이며 물었다 “함께 싸우자던 우리 대통령 어디 있나요?”

    아프간 여기자가 울먹이며 물었다 “함께 싸우자던 우리 대통령 어디 있나요?”

    “대변인도 알다시피 난 아프가니스탄인이다. 오늘 난 매우 화가 나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하룻밤새 탈레반이 들이닥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1990년대 말 박해를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한 아리아나 텔레비전 네트워크 소속 여기자 나지라 카리미는 1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국방부(펜타곤) 브리핑룸에서 존 커비 대변인을 향해 울먹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주말에 갑자기 아슈라프 가니 정권이 붕괴하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느냐고 개탄하고 분노했다. 그녀로선 미국의 섣부른 철군 정책이 믿기지 않고 특히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가해진 인권 유린을 잘 아는지라 무책임하게 아프간을 버린 미국 행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정이 복받치는지 정말 해야 할 질문을 잊은 게 아닌가 싶다. 조금 길더라도 먹먹한 그녀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아프간 정부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이 내 국기를 빼앗아갔다. 이게 우리 국기다. 그들이 대신 탈레반 기를 내걸었다. 모두가 화가 나 있다. 특히 여자들이, 질문을 까먹었다. 우리 대통령은 어디 있나? 전직 대통령인가 가니? 국민들은 그가 국민들과 함께 싸울줄 알았다. 그런데 금세 도망가버렸다. 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도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니 대통령을 잘 안다며 그가 우리 국민들과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해서 우리는 재정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대통령도 없다.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아프간 사람들은 뭘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여성은 아프간에서 수많은 성취를 이뤘다. 나 역시 많은 것을 얻어냈다. 나 역시 20년 전 탈레반을 겪어봤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옛날로 돌아갔다. (가니 대통령이) 아프간 국민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처음 그녀가 질문을 시작할 때부터 심상찮음을 직감했는지 그녀가 울먹울먹 질문을 이어가는 것을 숨죽여 들으며 때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했다고 느껴진다. 아래는 그의 답이다. “나도 분명히 아슈라프 가니가 어디에 있는지, 그의 견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아는 만큼만 말하게 해준다면,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고통을 우리 모두도 이해한다. 그건 확실하고 명백하다. 여기 펜타곤의 누구도 우리가 최근 며칠 봐왔던 모습들 때문에 즐겁거나 하지 않다. 우리 모두 탈레반이 이런 상황을 잘 관리하는 거버넌스를 갖고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걸어온 여정을 가슴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48시간, 72시간 당신이 봐온 모든 것은 여기 펜타곤의 모두에게 각별하다. 우리도 아프가니스탄에 많은 것을 투자했고 여성과 소녀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해서 우리도 당신이 느끼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똑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당장은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늘 다시 카불 공항이 열렸고 우리는 통역이나 번역가 등 우리를 도운 이들을 안전하게 퇴각시키는 데 집중하려 한다.”
  • 차 4대에 현금 꽉채우고 빛의 속도로 도망간 아프간 대통령, 도대체 어디에?

    차 4대에 현금 꽉채우고 빛의 속도로 도망간 아프간 대통령, 도대체 어디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간 대통령은 자동차에 현금을 가득 싣고서 국외로 줄행랑을 놓는 바람에 아프간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분노를 사고 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따르면 가니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카불이 함락할 위기에 몰리자 국민의 안위를 챙기는커녕 현금을 차 4대에 가득 채우고 부인, 참모진과 함께 황급히 도망쳤다. 니키타 이센코 러시아대사관 대변인은 “정부가 붕괴할 때 가니 대통령은 돈으로 가득한 차 4대와 함께 탈출했다. 돈을 (탈출용) 헬기에 실으려고 했는데 다 들어가지 않아 일부는 활주로에 줄줄 흘리고 떠나야 했다”고 조롱했다. 자미르카불로프 아프가니스탄 담당 러시아 대통령 특별대표도 “그(가니 대통령)는 가장 치욕적인 방법으로 아프간에서 도망쳤다”며 “그는 전날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생을 할 준비가 됐다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를 잘못 통치하고 결국 도주했다. 이것이 이 남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라며 가니 대통령은 아프간 국민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치욕적인 뒷모습을 보이며 떠난 가니 대통령의 행선지를 두고 언론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 스푸트니크는 그가 오만에 있다고 밝혔고,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겐트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인디아투데이는 가니 대통령이 당초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 향했지만 비행기 착륙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가니 대통령은 국민을 내팽개치고 국외로 몰래 달아난 후 뒤늦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탈레반은 카불을 공격해 나를 타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학살을 막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가니 대통령은 이어 만약 자신이 아프간에 머물렀다면 수없이 많은 애국자가 순국하고 카불이 망가졌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같은 가니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아프간 국민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가니 대통령의 경쟁 상대인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은 가니의 해외 도피 직후 가니 대통령을 ‘전 대통령’으로 표현하며 “신이 이런 상황에서 수도를 버린 것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인류학자 출신인 가니 대통령은 세계은행 등에서 근무하면서 경제 분야 전문가로 거듭난 인물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자 귀국해 재무부 장관을 맡았다. 그는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조세체계 확립 등 아프간 정부의 개혁을 주도했다. 카불대 총장을 거쳐 2006년에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4년 대선에 승리한 그는 2019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선거 때마다 대규모 불법 선거가 자행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가니 대통령과 맞붙었던 압둘라 의장은 두 선거 결과에 모두 불복했고 결국 두 사람은 어정쩡하게 권력을 나눠 가졌다. 그는 앞서 2005년 지식콘퍼런스(TED) 강연에서 “아프간 남성의 91%가 하루에 라디오채널 세 개 이상을 듣는데 그들에게 세계(의 이슈)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버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16년 후 자신의 말이 무색하게 국민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아프간을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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