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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자당 장흥지구당/이종환위원장 탈당

    민자당의 전남 장흥지구당의 이종환위원장이 9일 일신상의 이유로 민자당을 탈당했다. 이위원장의 이날 탈당은 부실지구당 정비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 이미지산업과 사회의 질/이중한(시론)

    「펜트하우스」와 「임마누엘부인」이 외설시비에 걸려 있다.하지만 도덕기준에서만 외설을 거론해온 우리자신의 규칙에 의해 이 논의는 오히려 방향을 잃고 있다.그동안 외설규제는 제한된 특정부분 노출만을 들여다 봤다.그러니까 이번처럼 걸릴 장면들을 미리 자른뒤 나타나면 더 자를데가 없으므로 할말을 잃게 되는 것이다.이정도는 보아도 되지않는가라는 소리나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따져봐야 할것은 외설장면이 아니라 외설이미지다.오늘엔 외설이 누드를 팔고 있는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아직 우리에겐 이미지와도 싸워야한다는 생각이 없다.당연히 어법도 연습돼 있지 않다.오늘날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문화산업이라는 것은 사실상 그 대부분이 이미지산업이다.만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어떤 문화산물이든 그 물체가 혼자서 산업화되고 있지를 않다.그 물체에 새로 얹어 사회화하는 이미지,이를 소재로 유행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보급의 구조가 곧 이 시대 문화산업 양상이다. 「플레이보이」만 해도 「펜트하우스」와 같은계열 잡지이다.그래서 「플레이보이」를 손에 쥐려 하지않는 사람은 많다.그런 사람도 때로 플레이보이넥타이는 매고 다닌다.왜 그런가.「플레이보이」는 그것이 비록 섹스를 파는 잡지라 하더라도 상류사회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카터나 키신저도 권두인터뷰에 나온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것이다.「펜트하우스」는 이것도 아니다.「펜트하우스」는 사진을 잘 찍는다.발행인이 카메라맨이다.성을 얼마나 사진기술적으로 잘 팔수 있게 만드느냐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 이미지는 물론 세계시장에 깔려 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펜트하우스」는 넥타이와 같은 생활소도구 캐릭터시장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만으로도 「펜트하우스」는 굳이 보아야할 산물이 아니고 더욱 국내판까지 만들어 로열티까지 주어야할 품목은 아니다.때문에 이것은 외설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이 문화산업시대에서도 우리가 어떤사회를 만들어 갈것인가에 대한 「사회의 질」 선택의 문제이다. 문화의 산업화는 나날히 대기업화로 가고 있다.우리도 이 시장에 나서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배워야 할게 없지 않다.그러나 그 이전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세계차원 이미지를 우리도 수용하는것이 세계화가 아닐까 한다면 이것도 쑥같은 생각이다. 이 시장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자주 점검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실을 다룰수 있는 능력,자기들 자신의 사물들과 자신들의 역사를 창조할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할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이미지의 확대와 그것의 물량적 누적은 하나씩의 자신의 진실을 아끼며 사랑하는 능력을 파괴하고 좋든 궂든간에 공급되는 상품에만 매달려 살게하는 단순소비자로의 전락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은 TV시대도 아니다.정보고속도로의 시대이다.이미지 만들기와 팔기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초단위 속도로 진행된다.그래서 또다른 주장도 나와 있다.새로운 기술을 채택토록 하는 아무리 강한 압력이 산업체계에서 나온다 하더라도,뿐만아니라 국제경제구조에 깊히 편입돼 있다는 피할수 없는 입장이라 하더라도,어느 한 사회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할수 있고 또 저항해야 옳다는 것이다.그리고 사회마다 적응방식은 고정돼 있는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 따라 사려깊게 선택될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찍이 1982년에 프랑스 문화상 자크 랑이 말했다.「경제와 문화는 같은류의 투쟁이다」경제에서 제한조건을 달고 관세에 등급을 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못팔게 하기의 온갖 아이디어를 만들어 오던일은 UR이후 한풀 꺾일수밖에 없게됐다.그렇다해서 문화는 이런일을 할 필요가 없는것이 아니다.자신이 선택하는 사회의 질을 기준으로 외설만이 아니라 모든 하잘데없는 이미지상품들을 당당히 거부할수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우리는 진실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수있다.별것아닌 것들까지를 위해 예술과 창작의 자유가 있는것도 아니고,사회의 질을 낮춤으로서 오는 여러 폐해에 예술과 문화의 책임이 제외되는것도 아니다.문화산업의 시대일수록 질의 선택에서는 더 엄격해져야 한다.
  • 전라연기/「미란다」 주연 김도연씨

    ◎“출연교섭땐 뒷모습만 5초간/실제는 대본에 없는 연기요구” 알몸연기로 물의를 빚다 최근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연극 「미란다」의 주연여배우 김도연씨(25·경남 울산시 남구 신정3동)는 29일 『잠적한 것이 아니라 연출가의 무리한 요구로 공연을 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아버지 김희진씨(54·회사원)를 통해 『내가 출연한 연극으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전하고 『그러나 자신은 경찰의 수사를 피하거나 개런티문제로 잠적한 것이 아니라 연출가 문신구씨가 알몸연기를 강요해 공연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문씨와의 출연교섭때는 알몸장면이 뒷모습만으로 5초간 있을것으로 약속했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요구했고 대본에도 없는 연기를 시켰다』며 『지난 25일 문씨에게 인격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더이상 공연할수 없다는 「내용통보」까지 했다』고 밝혔다.
  • 깊기만한 흑백의 골(임춘웅칼럼)

    지난 6월 14일자 칼럼에 O·J·심슨에 관한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70년대 미식축구계를 빛냈던 불멸의 흑인스타 O·J·심슨이 백인이었던 전처와 전처의 젊은 백인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두고 미국이 시끄럽다는 것,미국민들은 억만장자인 심슨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의아해 한다는 것,그리고 그들은 이제 영웅을 잃은 허전함에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벌써 두달째 매일같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예심과정에서부터 심슨의 재판은 빠짐없이 TV로 생중계되고 있고 그의 변호사와 검찰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 뉴스다.처음에는 경찰이 살인현장에서 영장없이 채취한 증거물들이 법적효력이 있느냐는 법이론 논쟁이 중심이 되다가 최근엔 흑백문제로까지 비화될 낌새를 보이고 있다. 살해된 피해자들이 백인이고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 흑인이라고는 하나 그들은 부부였던 사이로 그것이 인종문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하는게 우리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우선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심슨이 살인자라고 해도 그것은 애증의 문제이지 피부색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게 우리들의 상식이다. 미국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사는 사회이긴 하나 때로는 한국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심슨 사건도 그런 예중의 하나일 것이다. ABC뉴스가 최근 전국적으로 여론조사한 것을 보면 백인은 63%가 심슨이 유죄라고 믿는데 비해 흑인은 불과 22%만이 심슨이 유죄라고 보고 있다.그밖에 CNN·갤럽여론조사에서도 흑인의 60%가 심슨은 결백하다고 보고 있는데 비해 백인은 58%가 거꾸로 심슨의 유죄를 지목하고 있다. 동일한 사건을 똑같은 정보를 통해 판단하는데 흑백간 이런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데 미국인종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미국의 흑백문제는 심슨사건같이 케이스별로 보아서는 파악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백인들은 흑인들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흑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늘 사로잡혀 있다. 유럽의 백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야수」(Beast)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미대륙의 초기 개척시대에도 백인들은 흑인들 앞에서 옷을 예사로 벗을 때가 있었다.흑인을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먼 옛날얘기이긴 하나 그런 차별의식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많이 개선됐고 백인중 더 많은 사람이 그들 선조들이 가졌던 편견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모든 백인이 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런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는 흑인들은 모든 일을 피해의식에서 보고 피해의식속에서 파악하려 한다.다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이 엄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심슨은 최근 그의 변호인단에 코크란이란 젊은 흑인변호사를 추가했다.변호인단 색깔이 더욱 짙어졌다.공교롭게도 검찰측은 모두가 백인이다.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재판의 재판장에 랜스 이토란 일본계 판사가 지명된 일이다.흑백의 대결(?)에 황인종이 심판을 보는 형세가 됐다.결과가 궁금하다.
  • “박보희 세계일보발행인 결격” 통보의 배경

    ◎「조문방북」 단호조치의 신호탄/“자의적 대북접촉 불용” 강한 경고/현직 언론사장의 자격박탈 “제1호” 정부가 세계일보 박보희사장의 발행인 결격사실을 발표한 것은 그에 대한 단호한 조치의 시작이다.멋대로 북한을 방문한 박씨를 사법처리하는 것을 넘어 어떤 위치에 있는 인사나 단체도 정부와 협의하지 않고 북한과 연관을 가질수 없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현역 언론사주가 정부에 의해 발행인 자격을 박탈당하는 첫 선례라는 점도 시사적이다. 정기간행물등록법은 발행인이 될 수 없는 범위를 4가지로 최소화하고 있다.우리의 국적을 가지지 않았거나 주소를 한국안에 두지 않았을 때,형법·국가보안법에 의해 금고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와 보안및 보호처분을 받았을 때 등이다. 박씨는 정부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북한정권을 고무·찬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귀국한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리라 예상된다.그렇지만 재판결과가 나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더구나 박씨가 미국영주권을 지니고 있어 아예 귀국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로서는 최근의 「조문파동」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박씨를 조기 응징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이해된다.한국 안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박씨의 발행인 자격을 박탈한 이번 조치는 정부가 할수 있는 1차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는 별개로 그동안의 행정처리 미흡도 지적된다.박씨가 세계일보 발행인으로 등록한 시점은 91년 11월25일이다.당시 박씨는 성동구 능동에 주민등록이 있었다.하지만 그 이전인 91년 1월14일 해외이주법과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어 해외영주권 소지자는 주민등록을 가질수 없게 돼있었다.지난 65년 미국영주권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진 박씨의 불법행위가 3년여 남짓 방치되었다고 볼수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해외영주권 소지자가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한 법에 저촉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번에도 박씨의 방북이 문제가 된뒤 미국 현지공관의 확인까지 거쳐 그의 영주권 소유사실을 확인,지난 18일자로 박씨의 주민등록을 말소시켰다고 밝혔다.이번 발행인 자격박탈은 주민등록말소에 따른 자연스런 조치라는 것이다. 박씨 사건과 관련,이제 주목되는 것은 세계일보의 대응이다.박씨는 세계일보사가 발행하는 세계일보를 비롯해 주간지인 「전교학신문」 「주간세계」,월간지인 「세계와 나」 「세계여성」 「쉬크」,계간지 「예술의 향기」등 모두 7종의 정기간행물 발행인으로 등록되어 있다.이들 발행인 자리를 모두 내놓아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박씨가 발행인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공보처로부터 받았음에도 그를 사장으로 그냥 둔다면 정부는 법에 따라 세계일보등 관련 정기간행물에 3개월 이하의 정간조치를 내릴수 있다.박씨 자신도 1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세계일보측은 아직 공식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박씨를 발행인에서 해임시킬게 유력시되고 있다.박씨 사건이후 세계일보측과 비공식접촉을 가졌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씨가 곧 사장을 그만둘 것 같다』고 전망 했다. 정부는 박씨의 거취를 결정하는 시한을 통보하지는 않았다.그렇지만 관례상 공문서가 발송된지 열흘 안에는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게 정부 관계자의설명이다.그 안에 발행인에서 정식 사퇴하든지 최소한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공식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대만,“유엔 옵서버자격 수락”/외교부 “재가입 노력 계속”

    ◎갈리총장 “신청하면 허용”… 중국은 “저지” 【타이베이 DPA AP 연합】 대만은 유엔에서의 옵서버 자격을 받아들이되 유엔회원국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만 외교부가 23일 밝혔다. 렁 조­쉐이 외교부대변인은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유엔사무총장이 대만이 옵서버지위 신청을 허용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이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은 과거 동·서독 그리고 남·북한처럼 본토인 중국과 유엔 동시가입을 원하고 있으나 이러한 안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측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차이나 타임스 데일리지는 샌프란시스코발 기사를 통해 갈리 사무총장이 대만의 옵서버 자격 신청을 허용했고 유엔이 이 신청에 대해 논의를 벌이고 있다는 에드워드 럭 유엔협회(UNA)국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와관련,성명을 통해 대만의 유엔 재가입 노력 결정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고 대만측의 그러한 노력을 강력히 저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중미·아프리카·카리브해 연안 12개국은 지난 15일 대만의 유엔 재가입문제를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대만은 지난 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 회원자격을 박탈당했다.
  • TK원로들 왜 이러나/보선기간 돌출행보에 눈살

    ◎박준규/현경자씨 격려… 지역정서 자극/이만섭/“의장탈락 납득못해” 불만 표출 「TK(대구·경북 지칭)원로들 왜 이러나」 최근 여권 일각에서 TK출신 원로인 박준규·이만섭 두 전직국회의장의 행보에 대해 말들이 많다. 박전국회의장은 새정부 출범초기의 재산공개파동 때 쫓겨나다시피 의장직과 의원직을 내놓고 정계를 떠난 대표적 인사이다.이전의장은 지난 6월 국회 후반기 원구성 때 본인의 재선희망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그리고 상식에 어긋나게 재선을 위한 득표활동을 벌였다는 구설수에 올랐었다.두사람은 공교롭게도 대구지역이 정치기반이다.이러한 정치적 사연을 가진 두사람이 「TK정서」가 한창 논란되고 있는 대구 수성갑의 보궐선거 중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식의 해명성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박전의장은 지난 20일 수성갑보선후보인 현경자씨(신민·박철언전의원의 부인)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대구가 정치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현후보를 격려했다.그의 이말은 「TK정서」로 표현되는 「반민자」분위기를 부추긴 것이며 현여권세력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전의장은 최근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만두게된 이유가 날치기 사회를 거부했고 민주계가 아니기 때문이라면 내 자신 뿐만 아니라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그는 또 『날치기를 거부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국회를 위해서나 잘된 것이니 당지도부는 내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라고 자신의 하차를 『납득할수 없다』는 불만을 떠뜨렸다. 두사람의 공개적인 불만에 대해 민주계를 중심으로 하는 집권실세들은 『입법부의 수장을 지냈다는 사람들이 공인의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다』 『언행이 그런 수준 밖에 되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그렇지않아도 대구지역의 보궐선거 상황이 탐탁지 않은데 새삼 TK정서를 부추기는 발언에 신경이 곤두선다는 반응이다. 물론 가진 자와 박탈당한 자의 말싸움쯤으로 비춰질수도 있는 상황이다.일부 정치권에서도 두 전직 국회의장에 대한 동정론이 있고 또 이들이 정치기반인대구지역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권인사,심지어 대구·경북지역 의원들까지도 두 전국회의장의 대응방식을 「원로답지 못한 행동」으로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특히 가진 자든 이긴 자든 그들이 누리는 권력의 빛과 그늘을 누구보다도 체감하고 있을 정치원로가 소외감이나 억울한 심정을 기껏 지역정서를 부추기거나 이에 편승하는 식으로 토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지적들이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좌우동거」의 과제(일 사회당총리시대:하)

    ◎연정3당 총선협력·후보조정 부담/탈당사태 진정… 노선갈등 불씨 잠복/「오자와 전략」 먹혀들땐 또 이합집산 「비둘기파 정권」.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말하는 새 내각의 성격이다.일본사회에서는 지금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과 함께 비둘기파 정권이라는 낯선 단어가 정치변화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둘기파 정권의 「일본적 의미」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추구하는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권력집중형 강권정치에 대한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다.그 말에는 「반오자와」 성향이 짙게 배 있다.일본정치는 이같이 자민당과 비자민세력의 대립에서 오자와와 반오자와세력의 대립구조로 바뀌었다. 오자와는 권력투쟁에서 패배,정권을 잃었지만 그의 패배는 완전한 패배는 아니라 할 수 있다.총리지명 선거에서 자민당과 사회당의 일부가 자신이 옹립한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지지함으로써 그의 중요한 목표인 자민당과 사회당의 분열을 꾀할 수 있는 하나의 바탕은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자와의 시니리오대로 하타 쓰토무전총리는 구여당과 자민·사회당 이탈세력을 모은 새로운 정당을 구상하고 있다.구연립여당의 총리후보로 출마한 가이후 전총리도 오자와 등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력 결집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사회당의 분열을 꾀하는 「오자와 전략」은 현단계에서는 잘 작용하지 않고 있다.총리지명 선거에서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세력의 탈당움직임이 아직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1차투표에서 자민·사회당내 반란표는 61표에 이르렀다.그러나 반란표를 던진 의원중 탈당을 발표한 사람은 자민당의 2명에 지나지 않는다.자민·사회당은 당의 분열방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데다 집권당의 메리트 때문에 탈당을 망설이고 있는 의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민·사회당내 대립도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자민당은 더욱이 여당으로서의 힘을 축적,다음선거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정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선거다.자민·사회당은 물론 선거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에 따른 소선거·비례대표제로 총선이 실시되면 자민당은 3백개 소선거구 전체에 후보를 내려 하기 때문에 선거협력과 후보조정은 매우 어렵다.후보조정이 안돼 선거가 자민·사회·구연립의 3파전이 될 경우 사회당은 지난번 선거에 이어 다시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당내에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 때문에 중도·우파를 중심으로 자민·사회 연정에 반대한 세력이 많았으며 당내 노선대립 재연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자민당내에도 무라야마 총리,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외상,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대장상 등 새 내각 「트로이카」가 지향하는 호헌세력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 등의 「신보수주의」세력간의 대립이 있다. 자민·사회당내의 이러한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사회당 총리 정권은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정계개편의 과도기적 성격과 함께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하는 일본 정국의 혼란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사회당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욱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은 오히려 사회주의 이상을 퇴색시키는 일본정치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될지 모른다.
  • 새정권 탄생 배경(일 사회당총리시대:상)

    일본정치의 사회당총리시대.얼핏보면 일본정치는 세계사 흐름에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준다.자민당과 사회당, 보수와 진보의 연립이라는 기묘한 정권등장의 배경과 그 면모,그리고 일본정치의 장래를 현지특파원의 시각을 통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노선 뛰어넘은 “동주”… 일 정계의 장래/긴급진단/「반오자와 정서」 업고 보수·진보 짝짓기/자민 재집권 노려 등졌던 사회선택/보수결집통한 대반전 가능성 상존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대표간사가 추구해온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좌절에 따른 반작용으로 예상밖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만년 집권당」에서 처음으로 밀려났던 자민당은 오자와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를 악다물고 「만년 야당」이었던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위원장을 새총리로 탄생시키며 정권에 복귀한 것이다.자민당이 이같이 노선상 거리가 먼 사회당과 손을 잡음으로써 일본정치는 과거와 같은 여·야, 노선의 대결이 아니라 새로운 합종연형의 시대를 맞게 됐다. 사회당은 전후 자민당 장기집권 시절 찬밥신세였다.따라서 세가 어느정도 불어난 지난해 8월 자민당 장기집권 타도를 부르짖으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연립여당에 참여,비자민 연립정권을 처음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사회당과 자민당은 외교·안보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에 있어서도 입장이 크게 다르다.사회당내에는 일·미안보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를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무라야마 총리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회당내 좌파를 대표하고 있다.그러한 사회당과 보수자민당이 구체적 정책협의도 없이 손을 잡은 것은 「야합」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강하다.따라서 벌써부터 자민­사회 연정의 단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강한 비난을 감수하며 자민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은 배경에는 하나의 공통분모,오자와의 국가관과 강권적인 정치수법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다.자민­사회 양당은 「반오자와」정서를 접착제로 하여 정치이념·철학과 정책의 차이는 묻어둔채 손을 잡은 것이다.외무장관에 지명된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총재는 오자와의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관이 「미니 초대국주의,신국가주의」라며 강하게 비판해왔다.고노 총재는 오자와의 군사분야를 포함하는 적극적인 국제공헌론에 반대하면서 비군사적 공헌을 강조하는 호헌파다.사회당의 좌파가 자민당과의 연립를 추진한 것은 고노 총재를 중심으로한 호헌파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헌파가 결코 자민당의 다수파라고 할수 없다.자민당내에는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개헌을 주장하는 커다란 세력이 존재한다.그러한 세력를 대표하는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과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전총리등은 이번 총리지명선거에서 자민­사회당의 무라야마 후보가 아니라 오자와가 옹립한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지지했다.새 연립정부는 일단 오자와가 추구하는 「대국주의」보다는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무라야마 신임총리도 『비군사적 공헌과 국민의 생활향상을 우선하는 「비둘기파 정권」을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일본이 어디로 갈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오자와는 일본의 역사적 전환기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권력집중형으로의 국가개조를 강력하게 추구해왔다.오자와전략이 좌절함으로써 그러한 국가개조계획은 일단 잠복하겠지만 보수세력의 결집에 의한 대반격 가능성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일본은 분명 정계개편과 국가관 정립의 중대한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새총리 조각 분석/자민 각료20석중 13석… 핵심부서 차지/연정세당수 입각… 안보정책 마찰예상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위원장이 전후 일본정치사에 두번째 사회당총리로 취임했지만 내각은 자민당 중심으로 구성됐다.이에따라 자민당측이 외교·내정에서 보다 핵심적 역할를 담당케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20석의 각료자리중 13석을 차지했다.반면 사회당은 5석,신당사키가케는 2석의 각료직을 각각 맡았다.연립정부는 이에따라 자민·사회당을 주축으로 신당사키가케가 참여하는 3당연립의 형태가 됐으며정권의 안정을 위해 당대표가 모두 입각했다. 자민당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외상,법무,통산,운수,방위청장관등 주요 부서를 맡고 있다.외상에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총재,통산상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정조회장등 자민당 실력자들이 대거 취임했다.외상,통산상,방위청장관등을 자민당이 맡은 것은 일본의 외교·통상·방위정책의 계속성을 내외에 보여주고 실제로 기본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다.고노 신임외상도 30일 취임기자회견에서 외교의 계속성을 강조했다.그는 북한핵문제와 관련,『관계국과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내각에서 매우 중요한 대장상(재무장관)에는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가 취임했다.그도 자민당 출신이다.관방장관은 총리와 호흡을 같이한다는 차원에서 사회당의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의원이 맡았다. 무라야마내각은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이 안보·외교등 주요 정책에 이견을 보이기 때문에 적지않은 마찰을 빚을것으로 예상된다.무라야마총리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소비세 인상등 세제개혁,엔고대책,오는 7월초 나폴리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및 미·일정상회담,미·일통상마찰등 많은 과제을 안고 있다.행정과 외교의 경험이 없는 무라야마총리가 미·일정상회담과 G­7회담에서 어느정도 능력을 발휘할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정권운영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자민당이 주요 각료를 맡고 있기 때문에 무라야마총리가 어려운 조정을 강요당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그러나 북핵문제와 관련,다시 제재론이 제기될 경우 내각내의 불협화음이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고노 요헤이 부총리겸 외상/개혁이미지 강한 10선 의원 신임 부총리겸 외상에 임명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57)자민당총재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다.지난해 7월 자민당총재직을 놓고 노장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와 경선을 벌인 결과 「만년 여당이 아닌 도전하는 야당」으로서의 포부를 밝혀 승리를 거두었다. 고노는 30세에 정계에 입문,중의원에만 10번 당선한 경력을 갖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많은 부심을 겪었다.자민당 창당에 기여한 고노 이치로 전농상의 차남으로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67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그는 한때 「자민당의 황태자」로까지 불릴 만큼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75년6월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시절 록히드 뇌물사건이 터지자 자민당의 금권정치와 원로정치에 염증을 느껴 동료의원 5명과 탈당,「신자유클럽」을 결성해 대표를 맡았다.신자유클럽은 76년 선거에서 18명으로 의석을 늘리는 등 한때 파란을 일으켰으나 끝내 보수의 벽에 부딪쳐 오래 가지 못했다. 고노는 86년 신자유클럽 동료들과 자민당에 복귀했으나 탈당의 경력으로 당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의 견제를 받아 각광받지 못하다가 다케시타파가 분열하면서 관방장관직에 올랐다.
  • 대만 정치범 복권/의회,몰수재산 반환·피해보상 승인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입법원은 38년간의 국민당 철권통치하에서 투옥됐던 정치범등 수천명의 인사들에 대한 복권을 골자로 하는 일련의 조치를 승인했다. 입법원 법사위원회가 29일 통과시킨 이 조치는 국민당정권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던 정치범들이 재산반환과 피해보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한편 자격을 박탈당한 변호사와 의사들이 변호및 의료행위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로저 히시에 입법원의원은 30일 『이들 피해자는 석방된 뒤에도 그동안 생존수단없이 지내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기본인권 회복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 “연정서의 사회당 역할에 한계”/우리정부­정치권의 시각

    ◎무라야마 「급진」 피할듯… 혼돈수습땐 한일관계 타격 우려도 일본에 자민당과 사회당의 새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47년만에 사회당총리가 등장했다. 우리정부와 정치권은 일본의 새정권 출범이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전체적인 분위기는 비록 사회당이 북한과 가깝다 하더라도 자민당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지난 날과 별다른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정부는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두나라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돈독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큰 여파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앞으로 일본정국의 추이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번 호소카와(세천)정권때 사회당이 보인 태도로 볼때 다시 집권당이 되긴 했지만 그 역할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풀이이다.또 사회당이 지난날처럼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움직이는 정당이 아니고 이제는 다양한 정당 가운데 한 정파로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일본 전문가는 『일본의 새 정권은 선거관리와 세법개정,정치개혁법의 마무리등에 역점을 둘 일시 동거내각으로서 결코 합쳐질수 없는 연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무라야마 새총리가 사회당 좌파이긴 하나 당내 조정자로서 신망이 두텁고 노동운동 출신이어서 급좌노선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때문에 관심은 오히려 앞으로 있을 일본의 정치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에 더 기울여 있는 눈치다.벌써부터 자민당 일부가 탈당을 선언하고 사회당 일각에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수연립이 정권은 잃었지만 막후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의 정계개편 구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오자와의 구상대로 된다면 일본은 앞으로 총선을 거치면서 자민·사회등 기존정당과 이에 반발해 뛰쳐 나온 연립정당으로 대개편을 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일본의 대외정책과 외교노선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 ○…여야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자민·사회당 연립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사회당 총리가 추대됐다 하더라도 한반도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국제적인 사찰활동,남북정상회담등 주요한 외교이슈가 이어지는 시점이어서 아무래도 친북성향이 강한 사회당 좌파출신의 무라야마총리가 어떤 외교정책을 펼쳐 나갈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나웅배국회외무통일위원장은 『일본의 대외정책이 혼돈상태여서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 예견된다』면서 『한일관계에 사회당측의 시각이 가미될 수는 있지만 연립정권이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한한일친선 협회회장은 『사회당의 기본 외교노선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수용』이라면서 『얼마전 무라야마를 만나보니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우리가 흡족하게 생각하지는 못해도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낙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민주당의 조순승의원은 『무라야마는 사회당내에서도 좌파로 분류되는 친북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현정권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경제를 제외한 외교·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한일관계에 타격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민자당의 박정수의원은 『옛 소련이 붕괴된뒤 일본 사회당의원들과 개별적인 접촉이 있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한일의원연맹등을 통해 더욱 활발한 교류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일 총리에 사회당위장 무라야마/중원 결선투표/가이후에 승리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연정출현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일·70)위원장이 29일 하타 쓰토무(우전자)전총리의 뒤를 이어 제 81대 일본총리에 선출됐다. 무라야마신임총리는 사회당 출신으로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내각이후 47년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이날 총리지명을 위한 중의원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어 1차투표의 1,2위인 무라야마후보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전총리를 놓고 결선투표가 실시돼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의 공동후보로 나선 무라야마후보가 2백61표를 얻어 2백14표의 가이후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참의원에서는 1차투표에서 무라야마위원장이 과반수에서 26표가 넘는 1백48표를 얻어 총리로 지명됐다. 이날 중의원투표에 앞서 사회당은 연립여당과의 최종 정책협의를 중단,자민당과 사키가케와 함께 무라야마후보를 내세웠으며 이에 반발해 자민당을 탈당한 가이후전총리를 연립여당측이 지지했다. ◎한·일 관계 증진기대/외부무 논평 외무부는29일 무라야마 토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사회당위원장의 총리선출과 관련,논평을 내고 『일본정국이 조기에 안정을 찾게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새로운 내각의 출범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간에 21세기를 내다보는 선린국관계가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오자와전략」 와해… 제2정계개편 가속/일 새연정 탄생배경과 전망

    ◎“어떻게든 정권잡고 보자” 자민 집념/자민분열·외교정책 달라 단명점쳐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사회당 출신 총리의 등장은 일본정치의 흐름이 일단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호헌파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사회당 총리는 지난 47년 「가타야마 내각」 이후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두번째이며 이번 총리선출을 계기로 자민당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일본정국은 제2정계 개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선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정치의 「사회당 시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무라야마정권은 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던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다.자민당 지도부는 총리후보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 대신 무라야마 위원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자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라야마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무라야마 위원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 집행부 결정에 대항,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가이후 전총리는 그러나 연립여당과 자민당 개혁파등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회당내 중도·우파들의 지지까지는 얻지못해 패배했다.가이후 전총리의 패배는 그동안 일본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권력집중형 보수양당제로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왔던 오자와의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패배라 할수 있다. 오자와는 군사면을 포함,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할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실현을 위한 정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 전략」이 일단 패배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사회당과 자민당의 호헌파,신당사키가케등을 중심으로한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세력이 정권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은 안보·외교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권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자민당은 특히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탈당할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재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오자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야마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사회당내에는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미·일,한·일관계등 기본적인 외교정책에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일총리 올른 무라야마 누구/팔자 흰눈썹 인상적인 화합형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신임 일본총리는 일본 사회당 출신으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총리 이후 47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 지난 24년 3월 3일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오이타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향리에서 노조지도자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72년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뒤 7선을 거듭해 왔으며 연금과 복지문제등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펴왔다. 그는오이타시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주위의 간곡한 권고로 출마했으며 지난해 국회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려 했으나 좌·우파의 추대로 야마하나위원장을 이어 사회당 위원장에 올랐다.그는 경력에서 보듯이 서민적인 풍모를 풍기는 대중정치인으로 화합에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같은 성품이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당의 지도자로서 난세를 맞고 있는 일본 정국에서 총리에까지 오르도록 한 비결. 사회당내 온건좌파 그룹의 지도자인 그는 우파에 비해 다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인 요시이에여사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한국판 카사노바 “되레 돈뜯겼다”(조약돌)

    ◎“관계가진 여자 둘 떼는데 1천만원” ○…여대생·회사원등 많은 여성들을 농락한 「한국판 카사노바」 나모씨(46)가 성관계를 맺은 여성 2명에게 돈을 뜯겼다고 주장,또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3백50여명의 젊은 여성과 접촉,이 가운데 1백3명을 농락한 나씨는 검찰에서 여성들에게 금품을 강요한 적은 전혀 없으며 도리어 1천여만원을 뜯겼다고 진술,담당수사관들을 당혹하게 했다. 나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김모양등 2명이 『결혼해달라』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울며 겨자먹기로 수백만원씩 모두 1천만원을 주고 이들의 입을 막았다는 것.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나씨는 지난 14일 평소 몸을 다듬던 남산 N헬스클럽에 나타났다가 여성회원들에 의해 문전축출당한 뒤 회원자격을 박탈당하는등 수난을 겪고 있다는 것.
  • 미불 가전제품 업체/대만환경 오염시켜

    【대북 AFP 연합】 대만집권 국민당의 탈당인사들이 창당한 중국신당은 대만에 진출한 미·불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이 대만의 환경을 심각히 오염시켰다고 비난,미·불두나라에 공식 항의할 것을 국민당 정부에 촉구했다. 대만 환경보호서 서장을 역임한 중국신당 당수 조소강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또한 해당업체인 미국의 RCA사와 프랑스의 톰슨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도 요구했다.
  • 임방현씨 민자 탈당

    민자당의 전주시 덕진지구당 위원장인 임방현전의원(64)이 7일 지구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임전의원은 최근 덕진지구당이 부실지구당으로 선정돼 지구당 위원장 교체설이 나돌고 있는 데 대해 반발,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관광 40대 한국인/강도 당한후 실종/LA아파트서

    【가데나(캘리포니아주) AP 연합】 한국인 관광객 김영문씨(46)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중 자신이 묵고 있던 한 아파트에서 9천달러상당의 물품과 선물을 도둑들로부터 강탈당한뒤 지난 5월12일 이후 현재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관광객 김씨의 친구들은 김씨가 돌발적인 건강상 문제를 만났거나 불량배들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친구들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 한달 동안 이 곳에 머물 예정이었다.
  • 재동/지명 유래:4(서울 6백년만상:35)

    ◎수양대군이 김종서일가 참살한 곳/이태원/임란때 왜군에 당해 낳은 아이들 길러/홍제동/청군에 정벌 버린 여인 목욕으로 구제 땅이 비로소 이름을 얻는 과정은 인간사만큼이나 사연도 많다.산수나 지형등 자연환경 혹은 지역특산물에서 유래되거나 역사에서 땅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자연」에서 비롯된 땅이름은 자연경관의 옛모습을 전해주지만 「역사」에서 붙여진 이름은 후손들에게 가름침을 전해준다. 어린조카 단종의 용상을 넘보아온 수양대군은 왕권다툼의 기선을 제압하기위해 계유년(1453년)에 당대의 실력자 김종서등을 제거하기위한 계유정란을 일으켰다.수양은 모사 한명회의 계략에 따라 장사들을 이끌고 재동에 있던 좌의정 김종서의 집을 습격,일가족은 물론 닥치는대로 참살했다.이같은 대학살로 재동일대는 선혈이 낭자했고 피비린내가 천지에 진동했다. 대학살의 참극이 지나간뒤 한명회는 피비린내를 없애려고 온 동네에 재를 뿌려 온통 재투성이로 만들었고 백성들은 이후부터 잿골이라고 불렀다.잿골이 한자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재동이 됐다고 전해진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땅이 이름은 얻은 곳으로 이태원과 홍제동을 빼놓을 수 없다.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1592년) 한양에 진주한 왜적들은 지금의 이태원동과 맞붙어 있는 용산에 진을 쳤다. 그때 이태원에는 운종사라는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사찰이 있었다.왜적들은 운종사를 습격해 여승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왜군이 퇴각하고 한양을 다시 찾은 조정은 운종사의 비구니들 뿐만아니라 왜적들에게 겁탈당해 태어난 아이들문제로 고심하게 된다. 결국 조정에서는 왜적의 아이를 낳은 부녀자를 벌하지 않기로 하는 한편 지금의 이태원에 보육원을 지어 이 아이들을 기르게 했다고 한다.이때부터 지금의 이태원일대가 이태원으로 불렸고 효종조에 이르러 이태원이란 땅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6·25이후 한동안까지 양색시들의 거리였고 지금도 인근에 외인부대가 주둔해 있으며 외국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고 보면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곱씹어보게 한다. 아픈 역사의 뒷얘기를 전해주기는 홍제동 역시 이태원못지 않다.홍제동은 홍제천이 가로지른다 해서 붙여진 땅이름이다.홍제천은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에서 발원해 홍제동을 지나면서부터는 물이 모래속에 스며들어 대부분 모래만 보인다해서 흔히 모래내(사천)로 불리는 길이 14㎞의 한강지류이다. 인조 14년(1637년) 임진란에 이은 정유재란이 끝나고 채 40년도 안돼 이번에는 청나라가 쳐들어왔다.임진란때와 똑같이 골칫거리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되돌아온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이었다.이름하여 환향녀. 정절은 여인네가 지켜야할 철칙이었지만 호란은 국가적 환란이 아닌가.조정중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궁리한 끝에 인조는 칙령을 내린다.『모래내에 목욕하고 나면 정절을 저버린 죄를 묻지 않겠노라.만일 이후 부녀자의 정절을 거론하는 자는 엄단하겠노라』 국란에 희생된 여인들은 모래내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사함을 받아 「널리 구제됐다」해서 이 냇물은 홍제천,그리고 그 여인들이 목욕하던 장소를 홍제원이라 부르게 됐다는 얘기가 설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 청와대 비서진 집단탈당 소동/정치특위 정당법 개정과정 “실수”

    ◎손질안한 「당원규정」 옮겨 적다 누락 지난해 12월 국회 정치관계법특별위원회가 정당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실무적인 「실수」가 민자당적을 갖고 있는 청와대 비서진등의 집단 탈당사태를 야기,정가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여야 동수로 구성된 정치특위는 당시 국가공무원법의 규정에 따라 정당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무원의 범위를 개정 정당법에 그대로 옮기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개정될 법에 그 규정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각 부처의 차관과 청와대 비서실장및 비서관,국회의장 비서실장등이 빠졌다.실무자의 실수였다는 것이 정치특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지방의원,선거직 자치단체장,국회의원보좌관,국공립대학 교원등을 제외한 공무원은 정당원이 될 수 없도록 정당법은 개정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박관용비서실장과 이원종정무수석,김영수민정수석,홍인길총무수석,김무성민정·윤원중정무·김재석총무비서관·장학로제1부속실장,김대환총무·박영환·표양호공보비서관,정병국제2부속실장,김길환·오세천민정비서관,김덕봉행정·김도정무비서관,김기수수행실장,그리고 정성철전정무1장관보좌관,강성재국회의장비서실장등 모두 19명의 고위공직자가 새로운 정당법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위법을 저지른 형태가 되고 말았다. 민자당은 이러한 사실을 지난달 중순 신·구 정당법의 조문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했다.이에 따라 강국회의장비서실장을 뺀 나머지 인사들은 지난달 22일자로 민자당에 탈당계를 제출,위법상태를 해소하기는 했다.실수에 따른 해프닝이라는 것이 여권의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우선 윤원중·김재석·김무성비서관이 전국구의원 예비후보자격을 상실하게 됐다.또 정성철전보좌관(차관급)은 당원자격을 상실한 상태에서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된 셈이 됐다.서울 성북을지구당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강국회의장비서실장은 27일에야 탈당계를 제출했다.재입당 후의 자리는 보장받았다 하더라도 고심끝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협상을 통해 정당법개정안을 만들어 낸 정치특위 위원들은 물론 민자당,민주당,청와대,그리고 법을 적용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조차 이러한 위법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농안법 파동에 이어 국회의 입법과정 특히 의원입법의 허술성,그리고 법운영과정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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